유현아의 말에 유현진은 호탕하게 웃었다.“쯧쯧, 살인범 집 호적등본에 내 이름을 올리고 싶어 할 정도로 내가 바보는 아니지 않겠어? 제발 너희 가족끼리 오래오래 행복해.”유현진은 더 이상 유현아의 말에 신경 쓰지 않고 곧장 경찰서 안으로 들어갔다. 유현아는 이를 악물고 어두운 얼굴로 뒤따라 들어갔다.두 딸이 동시에 도착하자, 경찰은 유상수에게 가서 누구를 먼저 만나고 싶은지 물었다. 유현아는 유상수가 자기를 먼저 만나겠다고 할 거라고 확신했다. 어쨌든 한주 유씨 가문에 남은 사람은 이제 유현아뿐이었으니, 유상수가 모든 것을 유현아에게 맡기고 싶지 않더라도, 이 상황에서 자기를 구해주길 기대하리라 생각했다.그러나 현실은 유현아의 생각과 달랐다. 경찰이 다시 돌아와 유상수가 유현진을 먼저 만나겠다고 했다고 알렸다. 유현진은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유상수의 재산 대부분이 강한서의 연현 테크의 주식이 물려 있었고 회사는 이미 적자인 상황에서 유현아가 물려받게 될 것은 빈 껍데기일 뿐만이 아니었다. 일단 유상수의 죄명이 확정되면, 유현아는 유상수를 대신하여 빚을 갚아나가야 할 상황에 놓일 것이다. 유상수는 이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반드시 유현진을 먼저 만나야 했다. 어쨌든 유현진과 강한서는 여전히 그렇게 가까운 사이고, 유현진을 구워삶아 강한서의 도움을 받으면 감방에서 나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유현진은 면회실에 앉아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문이 열리더니 유상수가 경찰에게 끌려왔다. 그는 유현진을 보고 매우 흥분하여 막 달려오려다가 경찰에게 제압당했고 천천히 걸어와 면회용 의자에 착석했다. 아직 감방으로 인계되지 않았기에 면회할 때 두꺼운 유리를 사이에 둘 필요가 없어 유상수는 그나마 체면이 섰다.그러나 상황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어서, 유상수는 며칠 사이에 살이 좀 빠졌고 귀밑머리가 희끗희끗해졌다. 유상수는 유현진을 보고 애써 웃음을 짜내려고 애썼고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현진아, 네가 왔구나.”유현진은 담담하고 차분했다. 지금 눈앞
유상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나지막하게 말을 이었다.“네가 나를 도울 수만 있다면, 유씨 가문은 모두 네 것으로 될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처음부터 나와 네 어머니의 노력으로 이룬 것들이니,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것보다 네게 물려줘야만 내가 안심할 수 있어. 네가 유씨 가문 재산을 상속받으면 강한서와 재혼할 때, 네게도 힘을 보태줄 수 있을 거야. 이 혼수가 있으면, 한주 강씨 가문도 감히 너를 얕볼 수 없을 거란 말이다.”유현진은 눈을 내리깔고 괴상하다 싶을 정도로 껄껄 웃었다. 한참 동안 웃고 난 유현진이 담담하게 말했다.“이 와중에도 제 생각을 다 주시다니요...”유상수는 계속해서 자애로운 아버지의 탈을 쓰고 말했다.“너를 이렇게 오래 키워오며 혈연관계가 없어도 진작에 마음속으론 너를 내 친딸처럼 여겼다.”“친딸처럼 생각했다고...”유상수의 말에 유현진은 눈빛이 돌변했고 차가운 눈초리로 그를 바라보았다.“친딸처럼 생각했다고요? 그래서 유현아가 저에게 누명을 씌운 걸 뻔히 알면서 저에게 손찌검하셨어요? 당신보다 나이 많은 못된 늙은이들에게 저를 시집보내겠다고 하지 않았어요? 인제 와서 어떻게 뻔뻔스럽게 자기 친딸처럼 생각한다고 할 수 있죠?”유상수가 궤변을 늘어놓았다.“그때는 백혜주와 유현아 모녀에게 심리적 지배 당해서 너를 눈엣가시로 생각했어...”“제발 그만 하세요! 당신은 우리 어머니를 교통사고로 7년 동안이나 병상에 누워 있다가 억울하게 죽게 만든 장본인입니다. 당신은 왜 제가 당신을 도우리라 생각하는 거죠? 대체 왜요? 제가 오늘 왜 온 줄 아세요? 설마 제가 당신을 도우러 온 줄 아시는 거예요? 꿈 깨세요. 저는 어머니를 대신해서 쓰레기 같은 당신의 결말이 어떻게 끝나는지 보려고 왔을 뿐이니까요!”유현진이 매몰차게 말하자 유상수는 표정이 굳어지며 유현진이 이렇게 듣기 싫은 말을 할 줄은 몰랐다는 듯한 표정이었다.그러자 유현진이 계속 비꼬았다.“백혜주가 당신을 폭로한 줄로 알아요?”유상수는 어안이 벙벙했다“아니야?”“당
“유상수 씨, 당신은 온갖 악행을 저지르고 조강지처를 죽이기까지 해놓고, 당신 인생에 아들까지 있길 바라는 거예요? 받아들이세요. 이건 다 업보예요!”유상수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토록 바라던 유일한 아들이 이미 몇 년 전에 백혜주의 손에 죽었다니... 유상수는 아이를 잃고 가슴 찢어지듯 울던 하현주의 모습을 기억했다. 그때 유상수는 뭐라고 했을까? 유상수는 그저 괜찮다며 몸조리 잘하라고 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이내 백혜주에게로 몸을 돌려 그녀와 어울리며 방금 유산한 하현주를 혼자 내버려뒀다.“당신은 어머니를 원망한다고 했었죠? 어머니가 당신이 아닌 다른 남자와 몰래 나를 낳았기 때문이라고 했었죠? 당신은 내가 당신 친딸이 아닌 거 알면서도 왜 한 번도 친자확인을 안 했던 거죠? 당신도 바람을 피웠기 때문에, 당신도 확인하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죠. 그러면서 마음속으로는 어머니가 바람을 피웠다고 확신하며 스스로 죄책감을 덜려고 했던 거죠?”유현진은 한숨을 내쉬고 나서 활활 타오르는 유상수의 분노에 장작을 하나 더 던져주었다.“당신이 친자확인을 하지 않아서 그동안 몰랐겠지만, 당신 친딸은 25년 전에 병원에서 죽었습니다. 저는 어머니가 다른 남자와 바람피워 낳은 딸이 아니라, 외할아버지가 딸을 잃은 어머니의 아픔을 달래주기 위해 입양한 아이예요. 어머니는 제가 친딸이 아니라는 것을 일찍부터 알고 있었지만 자기 친딸이 이미 죽었다는 것을 알고 받아들였고 당신에게까지 딸을 잃은 고통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아 혼자 비밀로 간직했던 거예요. 어머니는 모든 고통을 혼자 견뎌냈습니다. 당신은 뭘 했나요? 당신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냐고요? 꽃과 술, 애인을 품으면서 허송세월이나 했던 당신은 어머니와 무덤을 나란히 할 자격도 없어요.”말을 마친 유현진은 유상수의 잿빛으로 된 얼굴을 쳐다보지 않고 일어나 떠나려 했다. 사실 유현진도 자기가 어떻게 입양되었는지 자세히는 모르고 있었다. 하현주가 혈육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도 유상수에게 알리지 않은 것에 대해서, 유현
유씨 가문의 일은 마침내 일단락되었고, 이젠 형량이 확정되기만 기다리면 됐다.마침 하현주의 생일이 돌아왔고, 유현진은 혼자 묘원에 가서 조용히 하현주의 생일을 축하하려고 했다. 하지만 짐을 꾸리고 나가자, 강한서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강한서는 오늘 아주 점잖게 차려입었고, 검은 양복에 넥타이를 매지 않았으며, 손수건 대신 하얀 국화꽃 한 송이를 꽂았다. 유현진의 검은색 옷차림과 흰색 비녀 꽃과 일치했다.강한서가 손을 내밀며 속삭였다.“나도 데려가.”“엄마 장례식에서 당신이 무릎 꿇지 않은 일을 엄마가 기억하고 미워할까 봐 두렵지 않아?”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두렵지... 그래서 빨리 인사드리고 사죄드리고, 어머님께 안심하고 너를 내게 맡겨달라고 할 거야.”유현진은 강한서의 손을 잡고 따듯한 목소리로 말했다.“엄마는 말씨는 날카로워도 마음은 여리여리한 분이셨어. 좋아하는 음식 몇 가지 챙겨서 잘 말씀드리면 용서해 주실 거야.”강한서는 유현진의 허리를 잡고 이마에 뽀뽀했다.“그러면 같이 준비하러 가자.”“좋아.”두 사람이 하현주를 위해 잔뜩 준비하고 꽃까지 들고 묘원에 찾아왔을 때, 송민준이 먼저 도착해서 제사를 지내고 있었다.유현진은 송민준을 보고 인사했다.“오빠, 여긴 왜 왔어요?”송민준은 고개를 돌리고 웃으며 말했다.“현주 이모께 너를 송씨 가문으로 데려갈 거라고 말씀드리려고, 너를 보고 싶어 할까 봐 미리 말씀드리려고 왔어.”송민준은 말을 마치고 고개를 강한서에게로 돌리며 입술을 삐쭉 내밀며 비꼬았다.“이번엔 절이라도 하고 가겠지?”유현진이 난감한 얼굴로 강한서를 끌어당기며 말했다.“한서 씨가 엄마가 좋았던 음식을 가져왔어요... 우리 엄마가 생전에 좋아하셨던 음식들로...”송민준은 힐끗 쳐다보더니, 퉁명스럽게 대답했다.“살아서는 한 입도 못 먹더니, 죽고 나서야 호강하네.”유현진은 송민준의 소매를 잡아당기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오빠 따라와요, 할 말이 있어요.”“현주 이모한테 인사드리고 나
유현진은 순간 어이가 없었다.‘얼굴 말고 잘난 거 없다는 말은 오빠 자신을 표현하는 데 더 어울리는 것 같은데?’유현진은 한숨을 쉬었다.“오빠가 더 좋은 조건을 갖추 남자들을 찾아줄 거라 믿어요. 하지만 내 맘에 드는 사람은 저 사람뿐인걸요... 강한서는 확실히 많은 결점이 있어요. 말씨가 날카로울 뿐만 아니라 개성도 강하고 무뚝뚝하지만, 장점이 없는 것은 아니에요. 저를 화나게 해줄 때도 있지만 달래줄 방법도 찾고, 제가 선을 넘는 일을 해도 화를 내지 않아요. 제가 싫다고 하면 절대 강요하지 않고, 제가 좋아하는 물건이라면 값을 따져본 적이 없었어요. 어쩌다 싸우게 되어 제가 실수로 손찌검해도 한서 씨는 화를 내지도 같이 손찌검하지도 않아요...”송민준은 기가 막혔다.“여자를 때리지 않는 건 기본 아니야? 지금 그걸 칭찬이라고 하는 거야?”“내가 다 말할 때까지 기다려봐요.”유현진은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많은 부부는 이혼 후 서로를 물어뜯거나 비하하기 바쁘지만, 강한서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나를 나쁘게 말하거나 비하하지 않아요. 오빠, 항상 헤어지고 나서야 그 사람의 인품이 보인다는 말도 있잖아요. 강한서와 나는 정말 어렵게 헤어졌었어요. 만약 한서 씨가 복수하고 싶어 한다면 난 속수무책으로 당했을 거예요. 결혼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인품 아니겠어요? 강한서는 내가 인생을 걸어볼 만큼 괜찮은 남자예요.”송민준은 뭐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유현진은 그의 말을 끊었다.“이혼할 때 제가 위자료 한 푼 받지 못하고 맨몸으로 나온 것 때문에 오빠가 한서 씨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거 알아요. 하지만 맨몸으로 나가겠다고 고집부린 건 저였어요. 그땐 오해 때문에 한서 씨를 미워했어요. 그리고 결혼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어 안달이 났었죠. 제가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고 해서 한서 씨가 정말로 아무것도 주지 않은 건 아니었어요. 한서 씨는 제 남은 인생을 걱정 없이 살기에 충분할 만큼 많은 돈을 송금해 주었어요. 하지만 한서 씨는 오빠 앞에서
유현진이 팔꿈치로 툭툭 치자, 한참 동안 멍때리던 강한서는 정신을 차리고 입술을 만지작거렸다.“오빠, 이따가 같이 밥 먹어요.”송민준은 향을 꽂고 일어서며 말했다.“밥은 안 먹을 거야. 선약이 있어. 늦어도 이번 달 말에는 집에서 피로연을 할 거야, 정식으로 현진이의 신분을 공개할 거야. 그리고 강한서, 현진이를 잘 돌봐요. 머리카락 하나 부족해도 피로연 참석 자격이 없어질 거니까요.”강한서는 넋을 잃고 한참 동안 말을 잇지 않았다.송민준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왜, 돌보기 싫어요? 그럼...”“당연히 잘 보살펴야죠!”강한서는 정신을 차리고 송민준의 말을 끊었다.“잘 챙겨서 피로연에 모시고 갈 겁니다.”송민준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강한서에게 가까이 다가가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우리 둘의 계산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강한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송민준이 떠나자, 유현진이 황급히 물었다.“우리 오빠가 방금 옆으로 와서 뭐라고 했어?”강한서는 자신의 무례했던 행동들을 돌이켜보며 헛기침을 한 번 했다.“아무 일도 아니야. 그냥 잘 부탁한다고 했어. 방금 둘이 무슨 얘기를 나눴어?”“강한서와 함께 있지 못하게 하면 죽겠다고 했어.”강한서는 미소를 지었다.“가자.”강한서가 별 반응을 보이지 않자, 유현진이 쫓아갔다.“이 반응은 뭐야? 너무 감동적이지 않아?”강한서는 코웃음 지었다.“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어.”‘예전에 내가 한날한시에 죽자고 운명을 함께하자고 했을 땐 천둥 벼락에 맞아 죽어도 나보고 먼저 죽으라더니... 전쟁이나 목숨이 위협을 받는 순간이 오면 각자도생하자고 하더니, 나와 함께 하는 것이 아니면 죽겠다고 했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강한서는 이미 수년 전에 유현진과 죽음을 함께 하자는 환상이 깨진 지 오래였다....바이브 엔터테인먼트.비서가 친구와의 모임을 끝내고 회사 근처를 지나다 미리 다음날 필요한 서류를 출력해 두려고 회사에 들렀다. 그렇게 하면 내일 아침은 일찍 오지
한성우의 비서가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대표님은 편히 앉아계시면서 왜 저더러 받으라고 하시는 거예요?’비서가 여전히 움직이지 않자 한성우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뭐해요? 얼른 와요.”말하며 잠깐 생각하던 한성우가 말을 이었다. “오늘 야근 수당 챙겨줄게요.”그러자 비서가 얼른 달려와 전화를 받았다. 전화가 연결되자마자 휴대폰 너머에서 차미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개자식아, 지금이 몇 시인데 아직도 안 오는 거야?”비서가 한성우에게 시선을 돌렸다. 한성우는 소파를 가리키며 잠자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의 바디랭귀지를 알아들은 비서가 말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한 대표님 비서입니다. 대표님께서 야근하시느라 피곤하셔서 사무실에서 잠깐 잠이 드셨어요.”한성우가 엄지를 치켜들었다. 민경하와 비교할 수는 없었는지만, 한성우의 비서도 제법 눈치가 빠른 편이었다. “잠들었다고요?”차미주가 미간을 찌푸렸다. “언제면 깰 것 같아요?”비서가 또 한성우를 쳐다보자 그가 손을 가로저었다. “모르겠어요. 요즘 회사에 일이 많아서 대표님께서 많이 피곤하셨던 것 같아요.”휴대폰 너머의 차미주는 한참 동안 침묵하더니 말했다. “알겠어요. 사무실에 담요 있으면 한성우에게 좀 덮어주시겠어요? 춥지 않게요.”비서에게 부탁하고 차미주가 전화를 끊었다. 그녀의 말에 한성우의 마음 한편이 따듯해졌다. 그는 당장 집으로 돌아가 차미주를 끌어안고 입 맞추고 싶었다. 하지만 일주일간 계속되는 차미주의 보신탕을 떠올린 그는 곧 이성을 되찾았다. 아무리 발기부전이라도 이렇게 몸보신하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게다가 한성우는 정말 발기부전인 것도 아니었다. 그날 차미주는 새로운 레시피를 배웠다며 음식을 해줬다. 그녀는 기력보충 해주는 보신탕이라고 했고 한성우는 그 말을 믿었다. 보신탕을 다 먹고 새벽이 되자 몸이 조금씩 이상해졌다. 그의 머릿속은 야한 생각으로 가득 찼고, 아래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고개를 쳐들었다. 하필 이때 차미주가 밖에서 문을 두드렸다.
실험팀은 전부 남자들이었다. 그러니 그들은 거리낌 없이 떠들었다. “제가 잘못 들은 거 아니죠? 방금 뭐라고 한 거예요? 보양탕?”“제대로 들은 거 같은데요? 저도 들었어요.”“대박. 제 와이프만 저에게 그런 걸 해주는 줄 알았는데, 강 대표님도 역시 중년 남자의 문제를 피해 갈 수는 없나 봐요.”“매일 이렇게 야근하는데, 그 어떤 미녀가 제 앞에 서 있어서도 전 못 선다고요.”“갑자기 강 대표도 그냥 보통 남자라는 생각이 드네요.”“민 실장님, 한 대표님이 말씀하시는 형수님은 누굴 말하는 거예요? 강 대표님 새 여친?”민경하가 태연하게 말했다. “대표님 사생활을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매일 대표님과 그림자처럼 붙어 계시잖아요. 대표님 연애사를 모른다고요?”팀원들은 전혀 믿지 않는 눈치였다. 민경하가 말했다. “궁금하면 비서 해보실래요? 대표님 곁에 하루 종일 붙어있으면 알게 되실 겁니다.”그 말에 더 이상 아무도 말이 없었다. 비록 그들은 모두 연봉 비밀계약서를 체결했지만 각자의 연봉이 얼마인지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민경하의 연봉은 모든 이들의 부러움의 대상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건 그저 그의 수입일 뿐이었다. 민경하의 자리로 인사이동을 원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민경하가 오기 전, 강한서의 비서 중 제일 오래 버틴 것이 고작 3개월이었다. 강한서는 감정 기복이 심한 사람은 아니었다. 다른 재벌 2세와 비교해도 모시기 어려운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강한서는 비서에게 요구가 높았다. 능력이나 처세, 임기응변, 게다가 둘째라면 서러울 기억력과 직언할 수 있는 용기까지. 이 중 어느 하나라도 부족하면 해고될 위기에 놓였다. 그러니 가끔 팀원들은 강한서는 비서를 고용하는 것이라 아니라 그와 함께 싸워줄 전우를 구하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강한서의 잘못을 따지는 일만 해도 지금 회의실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감히 상상도 하지 못했다. “민 실장님은 입이 너무 무거워요. 어떤 상황인지 언질이
윤명훈은 그야말로 미칠 지경이었다. 그가 인터넷에 떠도는 스캔들을 처리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동안, 이 미친 인간들은 경찰서 앞에서 소란을 피웠다. 한열의 반항적인 성격을 받아주는 것만으로도 윤명훈은 충분히 버거웠다. ‘하지만 이젠 한 명이 더 늘었잖아. 젠장. 그 놈의 돈 벌기가 점점 더 힘드네!’비록 화가 치밀긴 했지만 의식을 잃은 신하리와 한열 몸에 묻은 피를 보자 윤명훈도 걱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신하리 씨는 어때?”“안 죽어요.”한열이 신하리가 꼬집던 허리를 어루만지며 쓰러진 척 연기하는 여자를 노려보았다. “언제까지 연기할래요?”그제야 천천히 눈을 뜬 신하리는 한열의 눈빛과 반말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어때, 누나 연기가 좀 실감났어?”흥, 콧방귀를 뀐 한열이 시선이 저도 모르게 신하리의 뒤통수를 힐끗 쳐다보았다. 머리숱이 많아 얼마나 많이 다친 건지 잘 보이지 않았다. 조금 전 날아온 돌멩이는 힘이 꽤 실려있었다. 옆에 있던 한열의 귀에도 돌멩이가 무겁게 머리에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신하리는 얼굴이 창백해진 것을 제외하면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처럼 굴었다. 그녀는 심지어 티슈를 뽑아 뒤통수의 피를 닦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한열이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티슈로 상처 닦으면 안 돼요. 더럽잖아요.”“더러우면 걸레라고 하겠지, 왜 티슈라고 부르겠어?”신하리가 억지스러운 논리를 늘어놓았다. “티슈로 엉덩이를 닦을 땐 왜 더럽다고 하지 않는 거야?”한열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제가 티슈로 엉덩이를 닦지, 치질을 닦는 건 아니잖아요.”멈칫하던 신하리가 순간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그녀는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장난스레 말했다. “너 아이돌 이미지는 버린 거야? 아이돌 입에서 어떻게 엉덩이니, 치질이니 그런 말이 나올 수 있어?”한열이 불퉁한 말투로 대답했다. “머리 상처에 출혈이 꽤 있었어요. 티슈로 닦으면 상처에 먼지가 붙어서 염증이 날 거예요. 나중에 흉터
한열의 마음에 남아있던 감동이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두 사람이 신고를 마치고 나오자 경찰서 밖은 이미 수많은 기자와 팬들로 둘러싸였다. 경찰서 앞이었던 만큼 경찰들이 질서를 유지하고 있어 현장은 그나마 평화로웠다. 한열이 신하리를 감싸며 차에 오르던 그때, 누군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한열!”한열이 고개를 들어 소리가 난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계란 크기의 돌멩이가 한열을 향해 날아왔다. 한열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그의 앞으로 누군가 나타나 온 몸으로 돌멩이를 막았다. 신하리였다. 그 돌은 신하리의 뒤통수에 부딪혔다. 극심한 통증에 신하리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몸이 앞으로 휘청였다. 한열이 무의식적으로 신하리를 부축했다. 미간을 찌푸린 신하리가 손을 뻗어 돌멩이에 맞은 곳을 만졌다. 뜨뜻하고 축축한 촉감이 느껴졌다. 손바닥을 펼치자 빨간색의 피로 흥건했다. 신하리의 부축하고 있던 한열의 손이 움찔 떨렸다. 그의 얼굴은 섬뜩할 정도로 창백했다. 돌을 던진 사람이 큰소리로 질타했다. “개 같은 자식! 우리가 얼마나 힘들게 투표해서 널 데뷔시켰는데. 연애도 부족해서 이젠 뭐, 성추행? 팬들한테 미안하지도 않아?”너무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심지어 옆에서 질서를 유지하던 결찰들도 미처 반응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돌을 던진 그 사람이 달려들려고 하자 경찰이 얼른 앞으로 나서 제압했다. 그 사람은 심지어 바닥에 제압당한 채 여전히 욕설을 내뱉으며 난동을 부렸다. “네가 이런 인간이란 걸 진작 알았다면 차라리 지나가는 강아지에게 투표를 했을 거야! 넌 정말 네가 연기에 재능이 있다고 생각해? 정말 팬들이 네 재능에 반했다고 생각하는 거야? 네 그 반반한 얼굴 아니었으면 너에게 투표한 사람이 있긴 했을 것 같아? 팬들 덕에 넌 아이돌이 될 수 있었던 거야. 팬들이 아니면 넌 아무 것도 아니라고!”구경 중이던 사람들과 기자들이 미친 듯이 사진과 동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한열은 신하리의 허리를 감싸 안은 채 그녀의
신하리는 말하며 예쁜 눈웃음을 지었다. “저 정신병 있는 거 다들 아시죠?”그 말에 사람들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얼마 전, 신하리가 한 드라마 촬영 중 현장에서 갑자기 귀신에 쓰인 사람처럼 아무런 안정장비도 하지 않은 채 6미터가 넘는 곳에서 뛰어내려 뼈가 부러진 사건이 있었다. 다들 신하리에게 왜 뛰어내렸냐고 묻자 그녀는 아래에서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고 했다.그러나 당시 상황을 증명해 줄 동영상은 없었고 그 사건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그저 흘러가는 이야기처럼 듣고 지나보냈었지만 지금 신하리의 입으로 직접 그녀에게 정신병이 있다고 말하니 그때의 사건을 떠올린 사람들은 순산 오싹함을 느껴야 했다. 이건 분명한 경고였다. 마치 난 심신이 미약한 사람이라 너에게 정말 염산을 뿌려도 충분히 빠져나갈 수 있으니 내 말을 장난으로 가볍게 받아들이지 말라고 얘기하는 것 같았다. 신하리의 등장으로 [아기 고양이]의 라이브 방송의 인기는 더 뜨거워졌다. 댓글에도 다양한 의견이 더 많아졌다. [사랑에 눈이 먼 연예인 1위! 보상은 산에서 산나물 캐기 18년!][신하리 미친 거 아녜요? 이렇게 대놓고 협박이라니.][면전에 협박하는데 아직도 신고하지 않는다고? 증거가 없는 거야, 아님 애초부터 한열을 모함하고 있었던 거야?][성추행을 한 사람도 경찰서에 신고했는데 당한 사람은 대체 뭐가 무서워서 신고하지 않는 거야.][지난번에 스스로 신고한 인간은 아직도 감옥에서 사회봉사 중이예요.][만약 지금 당장 신고한다면 전 아기 고구마 말을 믿을 거예요. 계속 이런 식으로 수작을 부리는 건 오히려 한열을 이용해 돈을 벌겠다는 작당 모의에 더 가까워 보여요.][지금 루머를 퍼뜨리는 건 너무 쉬운 일이 됐어요. 스크린샷 몇 장이면 바로 스토리를 짤 수 있으니까요.]여론이 점차 자신이 원하는 방향과 멀어지자 [아기 고구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녀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주먹을 꽉 움켜쥐고 이를 악물었다. “지금 저 협박하시는 거예요? 아
신하리의 라이브 방송 연결 요청에 [아기 고구마]가 잠시 멍해졌다. 무의식적으로 옆을 바라보던 그녀가 곧 시선을 돌렸다. 많은 사람들은 그 미세한 행동을 포착하지 못했지만 한현진에겐 들키고 말았다. [아기 고구마]는 혼자 방송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 아닌 듯 했다. 그녀의 옆에는 조언을 해주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았다. 라이브 방송을 시청하던, 궁금증 해소를 위해 모인 사람들과 진실 규명을 바라는 팬들이 미친 듯이 댓글을 남기기 시작했다. [겁쟁이! 네가 그러고도 무슨 남자야! 사건이 터지면 뒤로 물러나 여자친구가 나서서 모든 걸 감당하게 하다니. 네 팬이었다는 게 너무 후회돼!][끼리끼리는 과학이라잖아요. 한열이 이런 쓰레기라면 신하리도 그리 좋은 인간은 아니지 않겠어요? 연결해요. 뭐라고 하는지 들어나 보죠.][언니! 얼른 입도 벙긋 못하게 증거를 뿌려버려요. 저런 인간은 아이돌을 할 자격이 없어요.][경찰 조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진 난 영원히 한열을 믿을 거야!][덕질에 도덕 같은 건 중요하지도 않나보네.]...[아기 고구마]는 사람들의 부추김에 신하리와 라이브 방송을 연결했다.신하리의 모습이 라이브 방송 화면에 나타나자 카메라는 신하리의 얼굴을 향해 바짝 다가갔다. 후드 차림에 화장도 하지 않은 신하리가 카메라를 쳐다보며 말했다. “제가 그쪽 대신 경찰에 신고했어요. 얼른 오세요.”카메라가 홱 회전하며 한주 용하구의 경찰서 대문을 비췄다. 그에 라이브 방송을 보고 있던 사람들이 순간 멍해졌다. ‘신하리, 미친 거야? 어제 저녁에도 한열 대신 해명해주더니.’[아기 고구마]도 멍한 표정을 지었다. “전, 전 신고한다고 안 했어요.”신하리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한열이 그쪽을 성추행했다면서 신고를 안 해요? 성모 마리아세요? 방송으로 울면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도와달라고 하는 것보다 신고하는 편이 더 낫지 않겠어요? 경찰은 그쪽을 도와줄 수 있는데도 싫다고요?”네티즌들도 신하리의 말을 따라 댓글을 남겼다. [맞아요
알겠다고 대답한 한현진이 전화를 끊기 전 호기심을 못 이겨 물었다. “오빠, 문채영 씨와는 어떻게 됐어요?”멈칫한 송민준이 눈을 가늘게 떴다. “강한서 그 자식 혹시 네 옆에 있어?”한현진이 움찔하며 옆에서 귀를 쫑긋 세우고 고개를 가로젓는 강한서를 쳐다보았다. 가볍게 목을 가다듬은 한현진이 대답했다. “아뇨. 샤워 중이예요.”송민준이 한현진의 말을 믿은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가 개의치 않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걔한테 내 말 똑바로 전해. 다음에 또 이렇게 입을 가볍게 놀렸다간 내가 그 입을 꿰매 버릴 거라고.”강한서: ...그 말에 한현진이 어색하게 하하, 웃어버렸다. “사실 강한서는 별말 안 했어요...”송민준은 더는 아무 말 없이 일찍 쉬라는 인사와 함께 전화를 끊었다. 송민준의 얼굴이 공개된 후, 한열의 바람 스캔들은 자연스레 사라졌다. 사람들도 점차 한현진이 한열의 사촌누나라는 사실을 믿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열의 성추문은 여전히 일파만파 퍼져나갔다.한열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밝힌 여성의 페이스북 계정은 [아기 고구마]였다. 이 계정은 피드를 올릴 때마다 다음 업로드 시간을 예고하며 다음엔 마치 증거를 공개할 것처럼 사람들을 암시하기도 했다. 그에 [아기 고구마] 계정의 팔로워는 점차 늘어갔다. 하지만 예고와는 달리 매번 터무니없는 사실들만 업로드 했고 그 피드의 내용으로는 한열이 여자 연예인을 성추행했다는 것을 증명할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계정의 인기는 줄어들지 않았다.하룻밤 사이, 한열의 팔로우는 십만 명 이상이 줄어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한열의 회사 측에서는 변호사가 작성한 소장을 공개하며 이미 경찰에 신고를 마쳤고 루머를 퍼뜨린 사람을 찾아 법적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한열의 회사에서 소장을 공개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기 고구마]도 페이스북에 점심 열두시부터 라이브 방송으로 빼박 증거를 공개해 한열과 직접 맞설 것이라고 예고했다. 그에 네티즌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 했다.
말을 아끼던 윤명훈이 한참만에야 입을 열었다. “계약 해지 때문에 문제가 좀 있어서요. 회사에서는 쿨하게 한열을 보내줄 마음이 없거든요.”그가 한현진에게 솔직하게 얘기하지 않았다는 것을 한현진도 알 수 있었다. 윤명훈은 똑똑하고 신중한 사람이었다. 한열이 아직 취해 있는 지금 그에게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은 채 윤명훈은 한현진에게 모든 걸 털어놓을 리가 없었다. 잠시 생각하던 한현진이 말했다. “제가 잠시 후 해명글을 올릴게요. 명훈 씨는 신하리 씨에게 인터넷에 떠도는 쓸데없는 기사들 처리해 달라고 연락하세요. 제가 변호사를 선임해 보내드릴게요. 최대한 빨리 해결해야 해요. 시간을 오래 끌면 끌수록 해명하기 어려워질 거예요.”한열의 바람 스캔들을 터트린 건 그저 페이크에 불과했다. 성추문으로 한열에게 흙탕물을 뒤집어씌우려는 것이 그들의 진짜 목적이었다.만약 한현진이 한열의 회사 대표였다면, 자신의 두 손으로 탑급의 자리까지 올린 아이를 이렇게 쉽게 버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설사 계약을 해지 한다고 해도 한열의 빛을 어느 정도는 계속 받을 수 있었다. 게다가 지금의 한열은 신하리라는 충무로 연기파 배우의 인맥까지 갖고 있으니 앞으로 어느 정도로 발전할 수 있는지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 굳이 이렇게까지 끝장을 볼 이유는 없었다. 연예계에게는 영원한 이익만 있을 뿐, 영원한 적은 없는 법이었다.그러니 이번 일은 오히려 누군가 한열을 나락으로 보내기 위해 꾸미고 있는 일 같았다. 전화를 끊은 한현진은 세남매가 함께 찍은 사진을 SNS에 업로드 했다. 다만 송민준의 눈은 모자이크 처리했다.[저희 오빠와 사촌 동생이 그렇게까지 닮은 건 아닌 것 같은데요. @신하리]사진 속에서 한현진은 가운데 서 있었고 그녀의 왼쪽엔 송민준이, 그리고 오른쪽엔 한열이었다. 막내 동생인 한승은 아예 잘라버린 후 사진을 업로드 했다.비록 송민준의 눈을 모자이크 처리하긴 했지만 하관만 보아도 한열과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닮은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
[두 여배우 모두 연기력이 그렇게 뛰어나면서, 대체 얼마나 보는 눈이 없어야 한열을 좋아할 수 있는 거지?][그건 좀 아니지 않나? 한열도 미남상이긴 하잖아. 이런 사람인 줄은 몰랐지만.][세 사람 같이 촬영했었잖아요. 한현진이 한열과 신하리가 사귀는 걸 몰랐을까요? 이건 뻔히 알면서도 만난 거잖아요.][살려줘! 나 한현진 정말 좋아한단 말이야. 전에 햇살 유치원 사건 때문에 엄청 호감이었는데. 봄의 연인의 중전마마 역도 완전 잘 소화했었다고. 대체 바람은 왜 핀 거야. 연예계에 사고 안 치는 연예인이 있긴 한 거야?] [두 여신을 동시에 만나다니. 한열, 능력도 좋아. 지까짓게 뭔데...] [한열은 신하리에게 빌붙으려는 목적이었던 거예요. 지금 소속사와 계약 해지를 준비 중이예요. 회사에서도 전혀 신경 안 쓰고 있고요. 신하리가 아니었으면 한열 주제에 어떻게 유명 감독에게 캐스팅 될 수 있었겠어요. 정말 어떻게든 여자 덕 좀 보겠다고 애쓰네.]아래의 댓글들은 더 이상 눈을 뜨고 볼 수도 없었다. 대부분은 그들을 욕하는 악플이었다. 한열과 신하리의 공개 연애에 대해 두 사람의 팬들은 자신의 배우가 아깝다며 강력한 불만을 토로했다. 두 사람이 열애를 인정한 후부터 양측의 팬들은 줄곧 다툼을 이어왔다. 두 사람의 커플 팬계정인 [이열치열]은 팬들의 감정 쓰레기통 같은 곳이 되어버려 차마 보고 있을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한열은 열애 인정으로 회사와 갈등을 빚어 계약을 해지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가 지금의 인지도와 이미지를 그대로 유지한 채 나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회사 측은 말도 안 되는 루머를 퍼뜨렸다. 하지만 확실한 증거가 없었던 터라 잠깐의 파장을 일으킨 후 곧 사그라들었다. 공개 연애 후 꽤 빠른 속도로 떨어지던 한열의 인기는 요즘 다시 천천히 오르고 있는 추세였다. 회사 측에서 밀어주던 신인은 그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한열의 뒤를 이어받아 인기를 누리지는 못했다. 그 때문에 회사 측은 화가 치밀었다. 그러니 한열이 바람 폈다는 기사가
한현진은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힐 지경이었다. “지금 예능부 기자 채용 문턱이 이 정도로 낮아진 거야? 두 눈이 멀어도 기자로 활동할 수 있나봐?”진윤: ...‘우리 여신님 사석에서는 이렇게 독설을 날리는 사람이었어?’휴대폰 너머에서 한참을 듣고 있던 차미주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그 사진 너와 한열 아니야?”한현진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저건 나랑 오빠야.”“하지만 이 사진들은 정말 한열과 비슷해 보여. 게다가 네 오빠가 운전한 거 한열 차 아니야?”한현진은 그날 송민준이 운전한 차를 눈 여겨 본 적이 없었다. 만약 정말 한열의 차를 운전하고 온 거라면 파파라치가 착각했을 수도 있었다. 다시 페이스북을 다운로드 받고 인기 검색어를 확인한 한현진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연예 부문의 인기 검색어의 TOP 5는 전부 한열의 바람에 관한 이슈가 차지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새로운 꽃뱀, 이열 커플 사이에 끼어들다], [이열 커플, 결별 위기 스크린 밖에서도 삼각관계], [한열 살아있네], [찐사랑을 못 숨겨] 등이었다. 이처럼 말도 안 되는 검색어들이 가득 했다. 한현진이 페이스북에 로그인하자 수백 개의 DM과 십만 개가 넘는 댓글이 쏟아졌다. 굳이 읽어보지 않아도 신하리와 한열 두 사람의 팬들의 남긴 수많은 욕이거나 일반 네티즌의 호기심에 가득한 댓글일 것이 분명했다. 인터넷이 얼마나 필터 없이 악랄한 글로 난무한 곳인지 잘 알고 있는 한현진은 아예 댓글을 확인하지도 않고 뉴스피드로 들어갔다. 한열과 한현진의 기사는 두 시간에 터졌다. 그러니 지금쯤이면 각 마케팅 계정에서는 이미 타임 라인까지 정리한 피드를 올리기 시작했다. 한현진은 관련 피드를 대충 훑었다. 마케팅 계정의 분석에 의하면 한열과 신하리는 [살의] 촬영 이전에 이미 사귀기 시작했고 송민영이 하차된 후 한열이 자신의 여자친구인 신하리를 여주인공으로 추천했으며 영화 홍보 현장에서의 친밀한 스킨십 사진이 폭로되어 어쩔 수 없이 공개 연애를 택한 것이었다. 그 계정
한현진은 반나절이 걸려서야 일의 자초지종을 파악할 수 있었다. ‘어쩐지 지난번 홍혜림 씨 사건이 있었을 때 왜 진윤 씨가 갑자기 나타나 상황을 반전시키나 했더니,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는 거잖아.’순간 한현진은 뻘쭘함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럴 줄 알았다면 방금 전화를 받고 모르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입도 벙긋하지 말았어야 했다. 진윤의 말처럼 이건 정말 비열한 짓이었다. 유치한 강한서가 벌일 만한 일이 맞긴 한 것 같았다. 강한서 본인 역시 이번 일은 너무 얍삽했다고 생각한 것인지 어쩌다 아이를 달래주었다. “내가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탓이라고 해. [정상에서]에서 지금 자체 테스트 중인 스킨 한 세트 줄게. 어때?”진윤이 작게 울먹이며 말했다. “스킨 세 세트?“강한서는 어이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이 와중에 딜을 하는 걸 보니 그리 큰 상처를 받은 건 아닌 모양이었다. “세 세트 전부 줄게.”진윤이 곧바로 울음을 멈췄다. 절판되어 더는 살 수 없는 게임 스킨과 이미 다른 사람과 결혼한 여신 중 아무리 바보라도 그와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그래요. 제가 오해한 거라고 하죠.”말하며 한현진을 쳐다보던 진윤은 여전히 아쉬워하며 말했다. “현진 누나, 왜 이렇게 빨리 결혼하셨어요. 남자 때문에 손에 넣었던 트로피도 놓칠 수가 있어요.”강한서의 눈가가 파르르 뛰었다. “결혼이 커리어 영향주지 않아. 이간질 하려고 하지 마.”“형님은 남자니까 당연히 영향을 안 받으시겠죠.”강한서에게 농락을 당한데다 하루아침에 구닥다리에게 여신을 뺐긴 진윤은 누구보다 빨리 흑화 했다. “결혼하면 아이도 낳아야 하잖아요. 어떤 유명한 감독이 임산부를 캐스팅하려고 하겠어요. 제일 예쁠 나이를 남편과 아이에게 바치면 나중에 아이가 클 때쯤엔 본인의 레전드 시절은 이미 지났다고요. 제가 다 아쉬워서 그래요. 너무 불공평해요.”비록 진윤은 그저 이간질을 하기 위해 꺼낸 말이었지만 그 말은 현실이기도 했다. 임신과 출산은 여자의 커리어엔 고난과 역경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