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가람은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바로 입술을 살짝 틀어 물었다.한성우는 팩트를 콕 집어 말했다.솔직히 말해 그는 송가람이 이해가 가지 않았고 그와 송민준은 가정사를 털어놓을 만큼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그래서 송가람이 대체 어떤 사람인지 쉽게 평가를 할 수 없었지만 송가람의 마음은 강한서에게 엄청난 부담이 되고 민폐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강한서 대신 그가 일침을 주고 있는 것이었다.머리가 나쁘지 않은 사람이긴 했지만, 충고를 알아듣지 못한다면 그럼 송가람은 가망이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한 곡이 끝나고 한성우는 바로 차미주를 찾으러 갔다.차미주는 구석에 앉아 랍스타 껍질을 까며 열심히 음식을 먹고 있었다.한성우를 발견한 차미주는 바로 시선을 홱 돌리며 관심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한성우는 그녀의 곁으로 다가갔다.“자기야, 왜 표정이 안 좋아?”차미주는 그를 째려보았다.“자기라고 부르지 마! 어휴, 느끼해!”한성우는 웃음을 참으며 그녀의 곁에 앉았다. 그리곤 팔로 그녀의 어깨를 감싸며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왜 그래, 왜 이렇게 뾰로통해진 거야?”차미주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흥, 손가락 허리는 어땠냐? 호리호리하냐?”‘손가락? 송가람을 말하는 건가?'한성우는 그녀가 한 말을 곱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뭐, 괜찮았어. 부드럽기도 한 것 같고.”그러자 차미주는 바로 두 눈을 부릅떴다.“이 색마! 음란 마귀! 몸도 그 지경 되었으면서 밝히냐?!”한성우는 한숨을 내쉬었다.“몸이 그 지경이 되었으니까 만지는 것밖에 못 하잖아. 몸이 멀쩡했으면 내가 너랑 이렇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겠어?”차미주는 어이가 없었다.그녀는 한성우의 말을 몸만 좋았어도 자신과 절대 이런 커플 연기를 할 일도 없고 자신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을 거라고 이해했다.가슴이 답답한 느낌에 차미주는 맛있게 먹고 있던 음식마저 목에 턱턱 막히는 기분이었다.그녀의 입술도 바르르 떨려오고 있었고 붉어진 눈가로 그를 째려보았다.“나라고 너랑 이러고
‘남자 복이 없는 것도 모자라 이젠 남자구실도 못 하는 사람이 나한테 꼬인 거야?!'‘분명 내가 그동안 개자식 곁에 자주 붙어있어서 착각한 걸 거야. 내가 걔를 좋아할 리가 없잖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조 선생님 같은 훌륭한 사람이라고!'차미주가 연회장을 나오자마자 주강운이 연회장 안으로 들어갔다.주강운이 인사를 하기도 전에 차미주는 바로 후다닥 나가버렸다.그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이내 구석에 미간을 찌푸린 채 앉아있는 한성우를 발견했다.“너 왜 혼자 여기 있냐?”정신이 든 한성우는 주강운이라는 것을 알아채고 옆에 앉으라고 했다.“다들 옷 갈아입으러 갔나 보네. 이따 온천 즐기기로 했겠지, 뭐.”뜸을 들이던 한성우가 말했다.“근데 넌 왜 지금 왔냐?”“로펌에 문제가 생겨서 조금 늦게 도착하게 되었네.”주강운은 직원이 가져다준 물잔을 받으며 바로 꿀꺽 마셔버렸다.“미주 씨는 왜 나가신 거야? 방금 들어올 때 마주쳤는데 안색이 조금 이상했어. 내가 인사하기도 전에 가버리더라고.”“나도 잘 몰라.”한성우는 여전히 미간을 찌푸린 채 말했다.“이상해도 너무 이상해. 갑자기 왜 화를 내는 건지 하나도 모르겠어.”그의 말에 주강운은 가볍게 웃어버렸다.그러자 한성우는 바로 그를 흘겨보았다.“웃기냐?”주강운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동안 연애를 그렇게 많이 해본 네가 이러고 있는 모습을 보니까 헛연애를 한 것 같아서 말이야. 네가 아직도 여자의 마음을 잘 모른다고 생각하니 웃음이 나오네.”한성우는 그의 말에 바로 반박했다.“그럼 넌 아냐? 아직도 솔로인 네가 알긴 아냐?”“...”주강운은 할 말을 잃었다.“어휴, 너도 이젠 어린 나이가 아니야. 아주머니께서 소개해 주신 여자나 많이 만나볼 때가 되었어. 지난번 아주머니를 뵀었을 때 머리에 흰머리도 나셨더라. 아주머니 속 좀 그만 썩여.”주강운은 시선을 떨군 채 가볍게 응답했다.한성우는 그의 어깨를 툭툭 치며 몸을 일으켰다.“난 나가볼게. 이따가 봐.”화장실에서 찬물 세수하고
옛말 틀린 것 하나 없다더니, 정말 웃는 얼굴에 침 뱉을 수는 없었다. 한성우는 입만 동동 떴다고 느낄 정도로 말주변이 좋았지만 일 처리도 흠잡을 데 없이 깔끔했다. 차미주도 어쩐지 자기가 생떼를 부리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한성우에게 흔들린 건 자신이면서 한성우 탓을 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억지였다. 차미주가 물 속으로 들어오자, 한성우가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나 잡아. 넘어지지 말고.”복잡미묘한 기분이 들었던 차미주는 얼떨결에 한성우가 남겨준 자리에 앉았다. 그 옆에 앉은 한성우는 팔을 뻗어 그녀를 품에 안고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물었다. “어때, 편안하지?”차미주가 한성우의 말에 대답하려고 고개를 든 차미주는 한성우의 탄탄한 가슴과 마주했다. 물결이 한성우의 가슴에서 일렁였고, 그 사이로 탄탄한 복근이 어렴풋이 보였다. ‘환장하겠네. 개자식은 왜 배불뚝이가 아닌 거야? 술이랑 여자 밝히는 인간이 살이 쪄야 정상 아니야? 이 인간은 왜 몸매도 선수처럼 좋은 거냐고.’차미주는 요즘 한성우에게 보양식을 많이 해줬었다. 그녀는 살이 찔까 겁이 나 많이 먹지도 않았지만 1.5kg이나 쪘다. 하지만 한성우는 왜 여전히 근육질 몸매인 걸까?한성우가 그녀를 유혹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퍼붓고 있는지 차미주는 당연히 알 리가 없었다. 그는 매일 식사를 마친 후 헬스장에서 두 시간씩 운동하며 칼로리를 소모했다. 살이 뒤룩뒤룩 짼 채로 차미주를 꼬실 수는 없으니 말이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운동의 효과를 톡톡히 볼 수 있었다. 한성우의 몸매를 본 차미주는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차미주에게 다가가 목소리를 한껏 내리깔며 물었다. “만져볼래?”“만... 만지기는 뭘 만져!”번뜩 정신이 든 차미주가 얼굴을 붉히며 한성우를 노려보았다. “변태!”한성우가 피식 웃음을 터뜨리자 그에 따라 그의 가슴도 진동했고 물결이 일렁였다. 겨우 웃음을 그친 한성우가 물었다. “다른 여자들은 다 비키니를 입었는데 넌 너무 꽁꽁
차미주는 한성우의 말을 절반만 듣고 생각했다. ‘역시 쭉쭉빵빵한 여자만 좋아하는 바람둥이였어.’유현진은 아직 물에 들어오지 않았다. 수영장이 있는 것을 확인한 그녀는 수영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영하고 싶다는 유현진의 말에 강한서는 얼른 그녀를 따라나섰다. 유현진이 말했다. “넌 수영할 줄도 모르잖아. 나 수영하는 거 구경하게? 그냥 여기 있어. 수영 조금만 하고 돌아올 거야.”강한서가 고집을 부렸다. “가르쳐줘.”유현진이 강한서를 쳐다보았다. “내가 가르쳐준다고 했을 땐 싫다고 했잖아.”강한서가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수영할 줄 모른다는 이유로 다른 남자들이 너에게 치근덕대는 걸 지켜볼 수는 없잖아?’하지만 그는 입으로는 전혀 다른 말을 했다. “뭐든 더 배워야지. 나중에 써먹게 될 일이 생길지도 모르잖아?”잠시 생각하던 유현진은 뭐든 배워두는 건 나쁘진 않다고 생각했다. 매번 놀러 갈 때마다 그녀가 수영하는 모습을 강한서가 앉아서 지켜볼 수만은 없으니까. “그래, 가자.”수영장 쪽에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 유현진은 강한서를 데리고 수영장 밖에서 몸을 풀고 물속으로 들어갔다. 유현진이 먼저 들어가 강한서를 불렀다. 강한서가 한쪽 발을 내딛기 무섭게 그의 머릿속에는 어릴 적 물에 빠졌을 때의 느낌이 떠올랐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발을 뺐다. 유현진이 그의 손을 잡고 응원했다. “계단 딛고 천천히 들어와. 내가 잡고 있을게.”마음을 가다듬고 천천히 두 번째 발을 내디뎠다. 물 공포가 있는 사람에겐 한 걸음걸음이 힘겨운 사투였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앞에서 나지막이 응원하고 있으니 그 순간 모든 것이 그리 무섭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속으로 완전히 들어간 강한서는 그제야 얕은 구역의 물은 그의 가슴 정도밖에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그의 발은 심지어 수영장 바닥을 딛고 있었다. 바닥이 발에 닿으니 공포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자신감을 얻은 강한서는 유현진의 손을 놓았다. 막 걸음을 떼려는데 그만 미
유현진이 고개를 돌리자 멀지 않은 곳에서 그녀를 바라보며 웃고 있는 주강운이 보였다. 그는 거리낌 없이 팔에 있는 흉측한 상처를 드러낸 채 반팔 수영복을 입고 있었다. 전처럼 그 흉터를 옷 아래에 숨기지 않았다. 유현진은 주강운의 그런 변화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녀는 늘 주강운이 너무 많은 것을 신경 쓰며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그가 이렇게 변화했다는 건 분명 많은 결심이 필요했을 것이다. 유현진은 애초부터 칭찬에 인색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랬기에 그녀는 주강운의 변화에 바로 엄지를 척 치켜세우며 칭찬했다. “주 변호사님, 오늘 정말 멋져요!”멈칫하던 주강운이 조금은 부끄러운 듯 시선을 아래로 향했다. 그의 눈초리는 파르르 떨려왔고 귓불도 발갛게 물들었다. 강한서가 눈을 씰룩거렸다. ‘뭘 부끄러워해!’그는 손을 뻗어 유현진의 엄지를 물속으로 꾹 눌렀다. “나 아직 못 배웠어.”유현진이 할 말을 잃었다. “너 계속 숨 쉬는 법도 못 배우면 영원히 수영 못 해.”강한서가 애교 부리며 말했다. “귀에 물이 들어가서 불편한걸.”“그럼 계속 불편해.”유현진이 손을 뺐다. “네 플라밍고나 안고 둥둥 떠다녀.”그러더니 유현진은 물속으로 들어가 잠영으로 몇 미터를 가더니 곧 수면 위로 고개를 들어 강한서를 쳐다보며 씩 웃었다. 입 모양으로 몇 글자 내뱉더니 이내 다시 물속으로 들어갔다. 속으로 분을 삭이는 강한서를 보던 주강운의 시선이 그가 안고 있는 플라밍고 튜브로 향했다. “새가 괜찮네.”말을 마친 주강운이 유현진 쪽으로 향했다.“...”손에 있는 핑크 플라밍고 튜브를 보던 강한서는 순간 플라밍고의 목을 조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유현진은 수영을 꽤 잘했다. 잠영, 평영, 배영을 자유롭게 오가며 심지어 속도도 느리지 않았다. 주강운은 멀지도 그렇다고 가깝지도 않은 거리에서 수영하는 유현진을 따라가고 있었다. 두 바퀴쯤 수영하던 유현진이 드디어 수영을 멈췄다. 오랜만에 하는 수영이라 그런지 확실히 체력이 많이 소모되
그런 생각이 들자 유현진이 물었다. “어쩌다 물에 빠진 거예요?”강한서는 정인월도 불면 날아갈까 귀하게 키우던 강씨 집안의 귀한 보물이었다. 그런 강한서가 물에 빠졌다니, 유현진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주강운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구체적인 건 저도 잘 모르고 당시 상황이 심각했던 것만 기억나요. 한서는 3일 만에 깨어났고 그 일에 대해 얘기하고 싶지 않아 하는 눈치라 우리도 더 묻지 않았었죠.”사실 그 당시 상황은 주강운이 얘기하는 것보다 더 심각했다. 강한서가 코마에 빠진 그 며칠 동안, 의사는 여러 번 위독하다는 사실을 전했었다. 물에 빠진 뒤 코마 상태가 지속되면 뇌사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었다. 강씨 가문에선 심지어 상조를 알아보기 시작한 사람도 있었다. 다행히 강한서는 생사의 문턱에서 다시 살아 돌아왔다. 그런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물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겼을 것이다. 강한서가 수영을 배우고 싶지 않아 하는 것도 어쩌면 당연했다. 강한서는 멀리서도 유현진과 주강운이 얘기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플라밍고 튜브를 안고 한참이나 허우적거렸지만 뒤돌아보니 이제야 겨우 1M를 “수영”해 온 것을 발견했다. 수영이 이렇게 중요한 기능일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는데, 지금의 강한서는 어떻게든 수영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수영을 못하는 결과가 누군가 유현진을 따라다니며 수영하고 자신은 플라밍고나 안고 그들을 노려보는 것이라면 말이다. ‘고작 수영이잖아. 내가 배우지 못하는 게 뭐가 있어?’강한서가 숨을 깊이 들이마시더니 물속으로 들어가 방금 유현진이 가르쳐준대로 숨 쉬는 연습을 했다. 처음은 당연히 고통이었다. 물에 대한 공포 때문에 물속으로 머리를 넣자마자 당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곧 유현진이 입 모양으로 전했던 말을 떠올리며 그는 점차 평정을 되찾고 천천히 요령을 터득했다. 유현진도 사실 단순히 주강운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대화를 나누며 틈틈이 강한서 쪽을 쳐다보고 있다. 그가
유현진이 강한서를 힐끔 쳐다보았다. “무슨 얘기?”강한서가 나지막이 말했다. “네가 아까 입 모양으로 했던 말 있잖아. 내가 수영 배우면 재혼한다던 그 말.”유현진이 그런 얘기를 꺼낸 건 강한서를 격려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방금 주강운에게서 강한서가 물에 빠졌었다는 얘기를 들은 후, 그녀는 재혼을 격려 조건으로 걸고 싶지 않아졌다. 유현진이 나지막이 말했다. “네가 못 배워도 나만 너랑 결혼하고 싶다면 아무도 못 말려. 하지만 난 그래도 네가 배웠으면 좋겠어. 우리 엄마... 그러니까 키워주신 엄마가 늘 그랬었거든. 뭐든 하나 더 배워서 나쁠 건 없다고. 어느 날이든 쓸모가 있을 수가 있다고 말이야. 수영은 생존을 위해 필요하기도 하니까 한 번 배워봐. 음... 정말 못 배워도 괜찮아. 내가 할 줄 알면 되니까. 물에선 내가 너 잡을 수 있어.”강한서의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그는 물속에서 유현진의 손을 살며시 잡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노력해 볼게.”유현진이 말했다. “너무 무서우면 됐어. 너무 무리하지 마. 나 처음엔 너 물에 빠졌던 적 있는 줄 몰랐어.”강한서가 멈칫했다. “강운이가 말했어?”유현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조금은 원망스러운 말투로 말을 이었다. “너희는 다 알고 나만 몰랐던 거지.”강한서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는 사람 많지 않아. 할머니가 얘기하지 말라고 하셔서.”유현진이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물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강한서가 입술을 짓이기더니 한참 만에야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물에 빠진 건 6살이 되던 해였다. 그땐 강민서도 없었던 터라 그는 강씨 집안의 외동아들이었다. 하지만 외동아들이라는 신분은 딱히 신미정의 사랑과 관심을 가져오지 못했다. 그가 일을 기억하던 그때부터 신미정의 생활은 늘 명품을 사거나 사모님들과 서로 쓸데없는 비교를 하며 에프터눈 티를 즐기는 것 뿐이었다 . 그렇게나 똑똑한 아버지가 왜 저렇게도 허영심이 가득한 여자와 결혼했는지, 그는 이해하지
신미정은 단 한 번도 엄마다운 엄마였던 적이 없었다. 특히 강한서에겐. 강한서의 얘기를 다 들은 유현진은 한참이나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유현진은 사실 강한서에게 그 인간이 널 그렇게 대하는 데도 넌 왜 그 사람을 신경 쓰는 거냐고 묻고 싶었다.하지만 그건 애초에 정답이란 있을 수 없는 질문이었다.사람은 늘 가질 수 없는 물건에 집착한다. 여전히 신미정에게서 티끌 만한 모성애을 찾는 것일 수도 있었고 그것도 아니면 아버지가 임종 전에 했던 유언을 지키려는 것일 수도 있었다. 애초에 강한서는 그렇게 무정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니 그는 이 모자 관계가 고통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유현진이 한숨을 내쉬더니 나지막이 말했다.“우린 과거를 선택할 수 없고 그들을 개변시킬 수도 없어. 하지만 우린 그런 부모가 되지 않는 길을 선택할 수는 있어.”“사실 수영 하는 건 전혀 무섭지 않아. 네가 얼마나 깊은 곳까지 빠지든 난 널 잡을 수 있어. 너 나 못 믿어?”그녀의 눈빛은 부드러우면서도 확고했다. 그 눈빛은 마치 한줄기 빛처럼 6살 그날의 무섭도록 어두웠던 물 속을 비추었고 강한서가 조금씩 수면으로 올라올 수 있도록 인도해주었다...강한서가 미소 지으면서 말했다.“수영 꼭 마스터 할게.”유현진이 눈이 휘어지게 웃어 보였다.“그럼 내 손 잡고 호흡법 몇 번만 더 연습 하자.”강한서가 손을 들자마자 송민준이 바로 그 손을 쳐냈다. “뭐 하는 거야.”송민준은 말하며 두 사람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두 사람을 갈라놓았다. “...”유현진이 나지막이 말했다.“오빠, 내가 수영 가르쳐 주고 있었어요.”송민준이 힐끔 강한서를 쳐다보았다. “여기도 전문적으로 수영을 가르쳐 주는 선생님들이 계셔. 강 대표가 정말 수영을 배우고 싶다면 내가 선생님을 미리 모셔 올게. 수영 배운다는 핑계로 날로 먹을 생각하지 마.”“오빠, 그런 거 아니에요.”유현진이 강한서의 편을 들자 송민준이 그녀의 말을 잘랐다. “이따 남자 모델 공연이 있어. 제일 좋은 자
식사 자리가 마무리된 후 홍혜림을 배웅하러 나온 서해금의 뒤를 오성빈이 따라나서며 나지막이 물었다. “서 대표님이 말씀하신대로 했으니 약속하신 건...”“걱정마세요.”서해금이 시선을 거두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일만 잘 마무리 되면 약속드린 건 꼭 지켜드리죠.”“그럼 최대한 빨리 해결하도록 할게요. 질질 끌어봐야 좋을게 없으니까요.”“부탁드려요.”고개를 끄덕인 서해금이 성월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서해금의 뜻을 바로 알아들은 성월이 곧바로 오성빈을 배웅했다. 사실 학교에서는 진윤의 부정행위에 관해 아무런 결론도 내린 것이 없었다. 여론은 여전히 뜨겁기만 했다. 하지만 그런 때일수록 여론에 흔들리지 말아야 했다. 만약 조사 결과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긴다면 그 여론은 오히려 학교에 독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성빈은 학교 임원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며칠 동안이나 홍혜림의 연락을 무시했다. 물론 그 역시도 최대한 빨리 이 일을 마무리하고 싶었다. 진윤이 부정행위를 저질렀다는 증거는 전혀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오성빈이 모든 증거 수집을 마치고 드디어 진윤의 누명을 벗겨주는 쇼를 하려던 그때, 경찰이 갑자기 학교로 찾아왔다. 진수 그룹에서 진윤의 시험 부정행위 문제로 경찰에 신고를 한 탓이었다. 교장의 연락을 받은 오성빈은 그만 멍해졌다. 제일 먼저 서해금이 떠올랐지만 그녀가 약속했던 일을 떠올린 그는 곧 주먹을 꽉 움켜쥐고 서해금에게 연락하고 싶은 충동을 꾹 참으며 홍혜림의 연락처를 눌렀다. 홍혜림이 전화를 받자마자 오성빈이 물었다. “사모님, 어제 분명 진윤 학생 일은 잘 처리해 드리겠다고 말씀 드렸잖아요. 왜 신고를 하신 거예요?”홍혜림이 놀란 말투로 말했다. “신고라뇨? 전 신고한 적 없어요.”“사모님이 신고하신 게 아니라고요?”의아한 듯 묻는 오성 빈에게 홍혜림이 대답했다. “전 신고한 적 없어요. 교수님께서 이미 윤이가 부정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찾으셨다면서 조치를 취하시겠다고 말씀하셨잖아요. 그래서 계속
장준의 아버지는 요직을 맡고 있었고 장씨 가문엔 그의 아버지를 제외하고도 수많은 정치인들이 있었다. 그랬기에 가족 중 단 한명이라도 꼬리를 밟힌다면 그의 가문은 수습 불가능한 상황으로 치닫기도 했다. 장준이 저질렀던 인간 같지도 않은 일들이 하나하나 밝혀지기 시작했다. 폭행, 음주 운전, 도박, 성폭행...피해자들이 하나둘 인터넷에 장준의 진짜 모습을 폭로했다. 수많은 피해자의 목소리를 누를 수 없었던 장씨 가문의 스캔들이 결국 전부 드러나고 말았다. 홍혜림 역시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곧 회사 계정으로 진윤은 그날 운전을 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발표와 함께 그와 관련된 증거들과 범죄경력증명서를 전부 공개 했다. [그러니까 진윤은 또 다른 도련님의 기사를 막기 위해 총알받이가 됐다는 거네?][어쩐지 뭔가 이상하더라니.][그렇게 심각한 교통사고에 진윤 한 사람만 공개 처형하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역시 여론을 부추기는 사람이 있었다는 거네요.][발 빼려고 하지 마. 장준이 주범이었다고 하더라도 진윤이 그 경기와 아무런 관련도 없는 건 아니잖아. 끼리끼리는 과학이라고 했는데 그놈이 그놈 아니겠어? 서화 대학에서도 진윤의 재시험 부정행위를 인정 했잖아.][학교엔 이미 소문을 파다해요. 이번 일과는 관련이 없다고 해도 언젠가는 비슷한 사고를 쳤을 거예요. 장준이나 진윤이나 크게 다를 거 없잖아요.][저기요. 두 사람을 싸잡아 욕 하지는 마요. 한 명은 범죄자고 다른 한 명은 그저 인성에 문제가 있는 것뿐이에요. 그게 어떻게 같아요? 얼른 진상 규명이나 하시죠. 피해자에게 피해 보상은 해야 하잖아요.]...휴대폰을 한 쪽으로 던져버린 서해금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장준이었어? 어쩐지...”성월이 그녀에게 차를 건네며 나지막이 물었다. “대표님, 진윤 씨 일은 이미 어느 정도 해결이 된 것 같아요. 그럼 저희 계획은 어떻게 해요?”“아직 끝나지 않았어요.”서해금이 찻잔을 들어 올리며 덤덤하게 말했다. “홍혜림은 누구보다
장씨 가문 아들이라는 이유로 여론이 들끓는 것을 염려한 탓인지 기사는 간단한 몇 마디 말로 상황을 간결하게 보도했다. 하지만 한현진은 감추려고 할수록 일은 점점 더 커질 것이라 생각했다. 드디어 주강운이 손을 쓴 모양이었다.고개를 들어 강한서를 바라보는 한현진의 눈이 별처럼 반짝였다.“여보, 장준이 잡힌 것 같아.”강한서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누가 그래?”한현진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강한서에게 한성우가 보낸 기사를 보여주었다. “시간, 교통사고, 장 모 씨, 약물. 이 단어들만 봐도 누군지 뻔하잖아.”강한서가 놀랍다는 듯 말했다. “장 모 씨가 정말 장준이야? 어떻게 잡힌 거지? 누가 신고라도 한 건가.”“나쁜 짓을 그렇게 많이 했으니 벌을 받는 거지. 피해가 한두 명이면 집안 세력으로 어떻게든 막을 수 있겠지만 그 수많은 피해자를 전부 막을 수는 없잖아?”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기사에 다른 얘기는 없어?”“없어. 그냥 언급만 한 수준이야. 하지만 이 기사를 시작으로 진실을 밝혀 나가려는 사람은 분명 있을 거야. 그건 우리가 상관할 일이 아니지.”한현진이 나지막이 말했다. “장준과 관련된 기사가 퍼져 나가기 시작하면 사모님께 이 기회를 빌려 진윤 씨에 관련한 입장 발표를 하시라고 말씀 드려.”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아침 연락드릴게.”강한서는 이상할 정도 순순히 대답했다. 예전이라면 어떻게 된 일이냐며 꼬치꼬치 캐 물었을 것이 분명했다. 지금처럼 쉽게 넘어갈 리가 없었다.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한현진의 시선에 강한서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가 다정한 목소리로 한현진에게 물었다.“왜?”하지만 한현진은 곧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산책 가자.”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옷 가지고 올게.”강한서의 뒷모습을 지긋이 바라보던 한현진이 휴대폰을 들어 한성우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늘 강한서가 좀 이상해요. 평소엔 꼬치꼬치 따지더니 오늘은 기사를 보여줘도 아무것도
멈칫한 강한서가 입술을 짓이겼다. “누가 어딜 들어갔다고?”강한서의 목소리에 수화기 너머의 사람은 순간 조용해졌다. 그러더니 곧 어색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한서야, 야근 안 했어? 오늘은 일찍 퇴근했네.”강한서는 화제를 돌리는 한성우의 말에 전혀 동요하지 않은 채 다시 물었다. “방금 누가 어딜 들어갔다고?”“방금 내가 뭐라고 했어?”한성우가 모른 척 대답했다. “갑자기 네가 튀어나오는 탓에 다 잊어버렸잖아.”강한서가 말했다. “강운이가 장준을 처넣었다며.”한성우: ...후회 막심한 얼굴로 자신의 입을 툭 친 한성우가 웃으며 대답했다. “어, 맞아. 바로 그거야. 나도 방금 어디서 그 소식을 듣고 형수님과 수다나 떨려고 전화한 거야. 너도 알잖아. 형수님과 내가 뒷담화 할 땐 죽이 척척 맞는 거.”“그래?”강한서가 담담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난 두 사람이 나한테 뭔가 숨기는 게 있는 줄 알았지.”“그럴 리가 있겠어?” 한성우가 당당하게 말했다. “우리가 널 속일 수는 있고? 두 사람 요즘 진윤 씨 일 때문에 걱정이 많잖아. 그래서 나도 신경 좀 썼지. 봐, 소식을 듣고는 바로 알려 주려고 전화했잖아.”“그래.”강한서의 대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한성우의 귓가로 곧 다시 강한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진이가 강운이한테 뭐라고 했는데?”한성우: ...한성우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뭐? 형수님이 강운이와 연락했어?”잠시 침묵하던 강한서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너한테 전해달라고 한 말이 뭐냐고.”의심이 아닌 확신에 찬 말투에 한성우는 머리가 찌릿, 할 정도로 소름이 돋았다. ‘조금만 참았다가 나중에 전화할 것이지, 난 왜 하필 지금 한 거야?’어차피 한강서가 전부 눈치 챈 마당에 더는 숨길 필요가 없어진 한성우는 결국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형수님이 너한테 숨겼다고 뭐라고 하지 마. 형수님이 강운이에게 연락한 게 아냐. 나한테 눈치를 주라고 부탁하셨어. 강운이네는 줄곧 장씨 가문과 사이가 안 좋았잖아
“실망이라니. 엄마는 단 한 번도 널 창피하게 여긴 적 없어. 넌 엄마가 배 아파 낳은 내 자식이야. 내가 널 몰라? 엄마는 그냥 네가 이번 일 때문에 힘들어 할까봐 그래. 엄마는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즘 네가 말도 없고 조용하기만 해서 우리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진윤의 등을 어루만지며 홍혜림이 나지막이 말했다. “이런 일은 아무것도 아니야. 인생 살면서 이런 일 안 겪는 사람은 없어. 이겨내면 돼.”고개를 끄덕인 진윤이 홍혜림을 꽉 끌어안았다. ...아름드리.“그러니까 아주머니가 뒤에서 여론몰이에 동조했다는 거야?”한현진이 자몽을 까며 강한서에게 말하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절묘한 타이밍에 나타나서 알아봤더니 오성빈 교수라는 사람, 성 비서님의 먼 친척이시더라고. 그러니까 그분이 나서서 얘기만 해주면 잘 해결될 가능성이 높아.”잠시 생각하던 한현진이 말했다. “그래서 일부러 홍혜림 씨가 신세를 질 수밖에 없게 만드시겠다? 홍혜림 씨를 다시 뺏어가려는 거야?”“그럴 수도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아.”한현진이 눈을 반짝이며 강한서 곁으로 다가갔다. 꿍꿍이 가득한 얼굴로 한현진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그럼 우리는 그걸 지켜보면 되겠네. 본인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든 다음대체 뭘 하려는 생각인지 지켜보자고.”강한서가 어쩐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한현진을 쳐다보았다. 그 표정에 어리둥절해진 한현진이 물었다. “왜 그렇게 웃어? 뭐야, 그 음흉한 웃음은.”강한서가 나지막이 대답했다. “근묵자흑이라는 단어가 너무 맞는 말인 것 같아서.”한현진: ?“설명 똑바로 해. 누가 그 묵인데?”강한서는 씩 웃으며 한현진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한현진이 깐 자몽을 가져가 한 입 베어 문 강한서의 표정이 곧 강한 신맛에 잔뜩 일그러졌다. 자몽을 겨우 삼킨 강한서가 인상을 찌푸린 채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넌 이걸 대체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먹을 수 있는 거야.”한현진이 눈을 깜빡였다.
[그래도 학교 측에서 끝까지 부정행위라고 주장하면서 재수강하라고 하면 어떡해요?]강한서가 웃으며 말했다. [넌 언제든 법적 대응을 할 수 있다는 걸 잊지 마. 내가 대신 신고해줘?]진윤은 그제야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번뜩 정신이 들었다. 인터넷에 도배된 악플로 잔뜩 지친 진윤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일에만 몰두해 있었다. 그는 심지어 학교 측에 새로운 시험 문제를 내도록 제안한 후 라이브 방송을 통해 부정행위가 없었음을 증명할까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강한서의 한마디는 진윤의 모든 고민을 한 방에 해결했다. 스스로의 결백을 증명하는 건 결국 그 사람들이 파놓은 함정에 뛰어 드는 것 과 다를 바가 없었다. 사람들은 애초부터 그가 부정행위를 했을 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니 진윤이 라이브 방송으로 결백을 증명한다고 한다고 해도 사람들은 또 미리 답을 알고 있으면서 카메라 앞에서 쇼를 하는 것이라며 의심하게 뻔했다. 부정행위의 증명해야 할 사람은 진윤이 아니라 그를 의심한 사람들이었다. 진윤이 순간 눈을 반짝였다. [얼른 엄마를 말려야겠어요. 교수님에게 부탁할 필요가 없잖아요. 전 당당하니까 얼마든지 조사하라고 해요.][잠깐만.]강한서가 진윤을 불렀다. [잠깐만 기다려 봐.][왜요?]입술을 깨물던 강한서가 중얼거렸다. [고작 학생인 네가 시험에서 부정행위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여론이 이 정도로 들끓는게 처음부터 이상했어. 이제야 의문이 조금 풀리는 것 같네.][그게 뭔데요. 얼른 얘기 해줘요.]성격 급한 진윤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 강한서 때문에 괜히 마음만 조급해졌다. 강한서가 말했다. [넌 지금 아무것도 하지 마. 어머님께도 오 교수님이라는 분 만나보라고 해. 뭐라고 하는지 얘기나 들어 보고 다시 대책을 세워야해.]진윤이 조금 전처럼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형님,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그 인간들의 계략을 역이용하시려는 거예요?]강한서가 쯧, 혀를 차며 말했다. [매형이라고 불러]진윤: ...홍혜림과
법적 장모님이라는 여섯 글자에 멍한 표정을 짓던 강한서가 물었다. [서해금 대표 말하는 거야?][네. 그 분, 현진 누나 새엄마잖아요. 그럼 형님에겐 법적 장모님 아녜요?]강한서: ...‘맞긴 하네.’[난 오성빈 교수님과는 전혀 모르는 사이야.]멈칫하던 강한서가 물었다. [그건 왜 묻는데?]강한서의 말에 기분이 축 처진 진윤이 한참만에야 대답했다. [학교에서 제 재시험 성적을 취소하더니 재수강하래요.]강한서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말이야? 학교에서는 네가 부정행위를 했다고 판단한 거야?][명백하게 얘기한 건 아닌데 사실은 그런 셈이죠. 하지만 다른 처분은 없이 그냥 재수강만 하래요. 친한 친구에게 들은 건데 학교에 신고 전화가 빗발쳤었데요. 홈페이지에도 전부 부정행위 진상 규명을 바라는 댓글로 도배됐다고 하더라고요.][아마도 학교의 이미지 회복을 위한 판단이었던 것 같아요. 저에게 적당한 책임을 전가할 수도 있고 대중들에게는 그들이 원하던 조치를 취했다고 보여줄 수 있으니까요.]강한서는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그럼 교수님에게는 무슨 일로 연락을 하려는 거야?][조교님께서 이번 일은 오 교수님 담당이라고 하셔서요. 비록 재수강으로 결론이 났다고 하지만 아직 완전히 결정된 건 아니니까요. 그래서 엄마는 오해를 풀기 위해 오 교수님을 한 번 만나 얘기를 나누고 싶어 하세요.][아는 분께 부탁해 오 교수님과의 자리를 만들어보려고 했지만 결국은 연락이 닿지 않았어요. 하지만 마침 형님 법적 장모님께서 제 병문안을 오셨다가 그 얘기를 들으시더니 오 교수님과 아는 사이라고 하더라고요.][꽤 가까운 사이인 것 같아 엄마는 만약 가능하다면 그분께 다리를 놔달라고 부탁할 생각이세요.]진윤이 한숨을 내쉬었다. [워낙 지적인 얼굴을 하고 계서서 좋은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던데요. 딸인 현진 누나에게도 가식적으로 대하는 것 같던데 전 그런 사람이 진심으로 저희를 도와줄 리가 없잖아요.][방금 형님과 얘기를 하면서 혹시 형님도
홍혜림이 서해금에게 얘기를 꺼내려던 그때, 진윤이 그녀의 말을 잘랐다. “잠깐 실례할게요.”홍혜림이 곧바로 하려던 말을 삼키고 몸을 일으켰다. “엄마가 부축해줄게.”“네.”진윤이 대답했다. 진윤을 부축하며 병실을 나서는 홍혜림을 쳐다보던 서해금이 고개를 돌려 성월에게 물었다. “아무 문제없이 잘 해결했죠?”성월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표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했어요.”멈칫하던 성월이 나지막이 물었다. “대표님, 정말 사모님께서 저희에게 부탁하러 오실까요?”서해금이 덤덤하게 말했다. “평소라면 부탁하지 않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궁지에 몰린 상황이라면 분명 부탁할 수밖에 없을 거예요. 홍혜림은 지금 아들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안달이 나 있는 상황이에요. 그러니 저를 통해 이 일을 해결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면...”“아무리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고 해도 결국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어요.”“조향 대회의 마지막 경기는 OM향 협회의 투표로 승패가 결정돼요. 홍혜림은 OM향 협회의 오래된 회원이에요. 게다가 이번 조향 대회 열 명의 심사위원 중 한 명으로 선정되기도 했고요.”“홍혜림은 누구보다 의리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제가 큰 도움을 준다면 어떻게든 그 빚을 갚으려고 할 거예요. 전 준비가 안 된 싸움은 시작하지 않아요.”피식 웃음을 흘린 서해금의 눈빛이 멸시로 가득했다. “전 조금의 실수도 용납할 수 없어요.”성월은 이토록 치밀한 서해금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성빈의 친척과 친분이 있다는 얘기를 꺼내는 서해금의 모습에 성월은 그녀가 단지 빼앗긴 고객을 다시 찾아가기 위해 던지는 미끼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서해금이 바라는 것은 자신에게 마음에 빚을 진 홍혜림이 조향대회에서 관건적인 한 표를 행사하는 것이었다. 서해금이 이렇게까지 서포트 해주고 있으니 송가람은 조금만 노력해도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순간 뭔가를 떠올린 성월이 목소리를 잔뜩 낮추며 물었다. “대표님, 인터넷에서 진윤 씨에 관한 여론이 들끓고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 가면 걔들은 거짓말을 들킨 네가 양심에 찔려서 해외로 도피하는 거라고 생각할 거야.”진윤이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걔들이 뭐라고 생각하든 저랑 무슨 상관이에요. 어차피 출국하면 아무것도 듣지도 보지도 못할 텐데.”“그럼 너 평생 해외에만 있을 거야? 안 돌아올래?”입술을 달싹인 진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당연히 그럴 수는 없었다. 부모님도, 집도, 가족도 전부 한주에 있으니 지금 당장 해외에 나간다고 해도 결국 돌아와야만 했다. 홍혜림이 의미심장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윤아, 사람의 명성이라는 게 한 번 나빠지면 다시 좋아진다는 건 어려운 일이야. 해외로 도망쳐 이번 일을 지나보낸다고 해도 졸업하면 결국 여기 동기들과 다시 마주해야 한 텐데, 걔들이 널 보고도 옛날 얘기를 꺼내지 않을 것 같아?”“다들 널 안 좋게 보고 있는 지금, 네가 끝까지 네 결백을 증명해야 나중에 걔들이 다시 이 얘기를 꺼내도 억울하지는 않을 거야. 알겠어?”“결백을 뭐로 증명해요? CCTV도 없고 아무것도 없잖아요. 전 당당하다는 걸 아무도 증언해줄 사람이 없어요. 절 믿는 사람도 없다고요.”진윤이 잠김 목소리로 물었다. “엄마, 저 어떡해요?”홍혜림은 미어지는 가슴을 붙잡고 아들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위로를 건넸다. “아무도 널 안 믿어도 엄마는 널 믿어. 네 아빠, 형 그리고 네 형수님도 널 믿어. 그러니까 아들, 괜찮아. 엄마가 있는 한 아무도 우리 아들 못 건드려. 엄마가 꼭 네가 정정당당하게 학교로 돌아갈 수 있게 할게.”홍혜림이 말에 진윤이 대답하려던 그때, 누군가 병실 문을 두드렸다. 진윤이 고개를 돌려 얼굴을 닦으며 감정을 추슬렀다. 홍혜림 역시 심호흡을 하고는 몸을 일으켰다. 문을 열자 보이는 의외의 인물에 홍혜림의 눈이 동그래졌다. 서해금이었다.서해금은 성월과 함께 진윤의 병실로 찾아왔다. 두 사람은 손에 선물을 잔뜩 들고 서 있었다. 병실 문이 열리자 서해금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