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량 한복을 입은 유현진은 입을 열지 않을 땐 조선시대의 양반집 규수 같은 느낌이었다. 거울을 보며 두 바퀴 돌아보던 유현진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엉덩이가 너무 커보이네.”“...”사람들이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차미주는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내가 네 예쁜 얼굴 감상 좀 하게 그 입 좀 다물어줄래?”...백혜주는 창백해진 얼굴로 경찰서에서 나왔다. 유현아는 멀지 않은 곳에 주차하고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백혜주가 차에 올라타자 유현아가 얼른 물었다. “엄마, 어떻게 됐어요?”백혜주가 잔뜩 굳은 얼굴로 말했다. “모든 아이들의 신체검사 결과가 나오면 다시 와야 한대. 유치원은 영업 정지당했고, 다시는 교육 업계엔 발을 들이지 못하게 될 거야.”“그럼 작은어머니는...”백혜주가 냉담한 태도로 말했다. “그까짓 돈을 탐내지만 않았어도, 내가 이렇게까지 하진 않았을 텐데. 다 자기 탓이지, 뭐.”입을 다물었던 유현아가 잠시 후 나지막이 말했다. “엄마, 유현진이 X이 그 땅과 건물을 기부했어요. 애초부터 가질 생각이 없었던 것 같아요. 우리를 힘들게 하려는 게 목적인 것 같아요.”백혜주가 미간을 찌푸리며 최근 일어났던 일을 빠르게 회상하더니 중얼거렸다. “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왜 계속 날 저격하는 거지?”순간 백혜주의 머릿속엔 반짝 무언가 스쳐 지나갔다. 그 순간, 휴대폰이 울렸고 백혜주의 생각도 곧 끊겨 버렸다. 백혜주는 휴대폰을 확인했다. 이 번호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러니 백혜주는 통화 버튼을 눌렀다. “누구세요?”“사모님, 원하시는 바를 이루게 되신 거 축하드려요.”휴대폰 너머에서 허스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화 너머의 사람이 참지 못하고 기침했다. 움찔, 백혜주의 몸이 그 자리에 그대로 굳어버렸고 그녀는 곧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다. 유현아는 백혜주의 행동을 이상하게 여기고 있었다. ‘누구 전화길래 나 몰래 받는 거야?’백혜주는 사람이 한적한 곳에서 다시 입을 열었다. “축하
백혜주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녀는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성질을 죽이고 말했다.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 나도 그렇게 많이는 없어. 준비할 시간 좀 주면—”“내 병은 너 못 기다려. 3일. 3일 안에 돈을 안 보내면 그땐 그 집 큰 따님 찾아갈 거야.”전화를 끊은 백혜주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어두웠다. ‘그때 깔끔하게 처리했어야 했는데!’“엄마.”유현아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린 백혜주는 유현아임을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엄마, 누구랑 통화한 거예요? 차까지 내려서.”“아무것도 아니야.”백혜주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네 아빠 집에 있어?”유현진이 입을 삐죽였다. “말했잖아요. 요즘 계속 그 X 집에서 지내면서 그 X 배만 신경 쓰고 있어요.”“데려다줘.”유현아가 멈칫했다. “어디로요?”백혜주가 굳은 얼굴로 차 문을 열었다. “네 아빠한테.”가는 길 내내 백혜주의 미간은 펴지지 않았다. 그녀는 유상수가 다른 일에 대해 알게 되는 건 두렵지 않았지만, 하현주가 둘째를 유산한 진실만은 유상수에게 들킬 수는 없었다. 당시 유상수는 사립 병원의 의사에게 몰래 돈을 넣어주며 미리 아이의 성별을 알아 왔다. 남자아이였다. 그때 유현아는 4살이었고 백혜주도 고작 갓 스무 살을 넘겼을 때였다. 학벌도, 능력도 없던 그녀에게 유상수는 유일한 희망이었다. 하지만 하현주가 남자아이를 임신했다는 것을 안 뒤로 유상수의 태도는 완전히 바뀌었다. 그는 점점 가정적으로 변해갔고 하현주와 산부인과를 다니기도 했다. 심지어 백혜주와는 점점 거리를 두었다. 백혜주는 하현주의 아이가 태어나면 유상수가 더 이상 자신을 거들떠보지도 않을 것 같았다. 그렇게 된다면 미혼모인 자신과 딸은 어떻게 될까? 그런 두려움에 백혜주는 차태오와 손잡고 하현주의 아이를 유산시켰다. 그건 유상수의 첫아들이었다. 그는 그 아이가 태어나기만을 손꼽아 기다렸지만 아이는 그만 뱃속에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리고 결국 그 일로
백혜주는 집안을 둘러보았다. 최연서가 멀지 않은 곳에서 컵에 물을 따르고 있었다.그녀는 시선을 거두고 목소리를 한껏 깔고 말했다.“오빠도 내가 여기서 하현주가 어떻게 교통사고를 당했는지에 대해 말 꺼내는 거 싫죠?”유상수는 그대로 경직되더니 버럭 소리를 질렀다.“너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백혜주의 표정이 어두워졌다.“전 내려가서 차에서 기다릴게요. 오빠가 오든 말든 마음대로 하세요.”말을 마친 그녀는 바로 나가버렸다.유상수는 당황한 얼굴로 제자리에 서 있었다.‘저 미친 여자가 정말! 정말로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 감히 내 앞에서 그 일을 꺼내? 그런다고 본인한테는 아무런 타격이 없을 것 같아?!'유상수의 안색이 변해가고 결국 겉옷을 챙겨 최연서에게 말했다.“잠깐 나갔다 오 마.”최연서는 바로 일어나 그에게 다가왔다.“저랑 같이 식사한다고 하셨잖아요. 왜 저 여자가 오자마자 가려는 건데요?”유상수는 그녀의 손을 잡고 토닥토닥 두드렸다.“그냥 두어 마디 얘기만 하고 바로 돌아오마.”최연서는 불쾌한 얼굴로 말했다.“무슨 얘기인데 나가서 해야 하는 거예요?”그러자 유상수는 대충 둘러댔다.“회사 일이야. 대충 두어 마디만 하고 올 테니까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알았지?”최연서는 비록 기분이 언짢았지만 더는 고집을 부리지 않고 겉옷을 들어 그에게 입혔다....클라우드 아파트 902호.차미주는 연한 핑크색의 원피스를 입고 방에서 나오더니 치맛자락을 들며 한성우 앞에서 한 바퀴 빙 돌며 물었다.“이 옷 어때?”한성우는 턱을 매만지며 다시 한번 고개를 저었다.“음... 뭔가 귀여운 척, 어린 척하는 것 같아.”차미주의 안색이 어두워졌다.“야, 지금 벌써 8벌 째야. 내가 입고 나온 옷마다 넌 별로라고 지금 말하고 있잖아. 왜, 네 눈엔 내가 뭘 입어도 안 어울리냐?”그러자 한성우는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내 눈에 넌, 뭘 입어도 다 예뻐. 다만 네가 입고 나온 옷들이 생일 연회에 입고 가기엔 이상할 뿐이
차미주는 우물쭈물하다가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네 친구가 비싼 것만 선물하니까 내 선물이 너무 초라해 보이잖아. 그래서 도저히 꺼낼 수가 없어서 현진이가 너한테 줄 때 얼버무렸어.”한성우는 바로 코웃음을 쳤다.“그러니까 넌 거저 한 끼를 챙겨 먹었다는 거네? 나한테 선물도 주지 않고?”차미주는 주눅이 든 목소리로 말했다.“어차피 그날 선물 많이 받았잖아. 딱히 부족한 것도 없어 보이던데, 왜 지금에 와서 그때 일을 따지는 거야?”“남이 준 건 남이 준 거고, 네가 준 건 네가 준 거지. 그게 같아?”한성우는 뜸을 들이다 다시 말을 이었다.“너 그럼 그날 왜 내 생일 파티에 온 건데? 그때 우리 친한 사이도 아니었잖아, 안 그래?”“그거야... 조 선생님이 오신다고 하니까 간 거지...”차미주는 애꿎은 치맛자락만 꼼지락거렸다.“원래는 조 선생님과 친해지려고 네가 날 초대했다고 말하려고 했었어. 근데 네가 갑자기 툭 튀어나와서 계속 나한테 꼬치꼬치 캐물을 줄 누가 알았겠냐? 혹시라도 내 속셈이 들통날까 봐 두려워서 너를 꽉 안고 있었던 거야. 내 얼굴 보지 못하게...”“...”한성우는 어처구니가 없었다.그저 아무 생각 없이 물어본 것이 차미주가 조준과 친해지기 위해 그랬다는 말에 순간 기분이 확 나빠졌다.그리고 생일 다음 날 아침 조준이 방문을 노크할 때 심히 당황한 모습을 보이던 차미주를 떠올렸다. 마치 자신과 밤을 보냈다는 사실을 조준이 알아버리는 것을 두려워하듯 말이다.그때의 기억을 떠올린 한성우는 순간 씁쓸함이 밀려왔다.“조준이 그렇게도 좋아?”한성우가 갑자기 물었다.차미주는 당황하더니 한참 후에야 답했다.“예전에는 아주 좋아했지. 근데 지금은 잘 모르겠어. 뭔가 조 선생님은 나에게 안개 같은 사람이야.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모르겠어. 그냥... 너처럼 그렇게 현실적이고 솔직하지 않은 것 같아.”한성우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내가 솔직하다고? 어느 부분이?”“그냥 모든 게 눈에 보이잖아. 비록 네 입에서 나
사실 조준은 한성우만큼 잘생긴 외모가 아니었다. 차미주가 조준에게 콩깍지가 쓰인 건 그저 조준의 의사라는 직업 필터 때문이었다.마치 사람들의 무의식 속에서 반장은 무조건 공부를 잘해야 하고 예체능을 배우는 학생들은 공부를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꽉 틀어막힌 인식처럼 말이다.차미주에게 연예계에서 일하는 한성우 같은 사람은 매일 그저 수많은 유혹이 오가는 알록달록한 세계에 사는 사람일 뿐이었다. 그랬기에 당연히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조준과 그를 비교할 수 없었다.그리고 지금, 그녀는 한성우의 다리 위에 앉아 반강압적으로 이 문제에 대답해야 했다. 그래서인지 갑자기 그의 얼굴이... 잘생겨 보이기도 했다.어쩌면 거리가 너무 가까웠던 탓일까. 그녀의 심장이 저도 모르게 두근두근 소리를 내며 뛰기 시작했다.그의 시선을 마주한 차미주는 순간 주체할 수 없이 가슴이 뛰게 되었고 말도 버벅거리게 되었다.“내, 내, 내, 내가 왜, 왜 이런 하찮은 질문에 대, 대답해야 하는 건데!”그녀는 있는 힘껏 그의 품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쳐댔다.“궁금하면 조 선생님한테 가서 물어봐.”그러자 한성우는 담담하게 말했다.“난 조준보다 내가 더 잘생겼다고 생각해. 너 혹시 눈에 문제 있는 거 아니야?”차미주는 헛구역질하는 제스처를 보이며 말했다.“자아도취 심하네!”대화를 나누고 있던 와중에 초인종 소리가 들려왔다.한성우가 현관을 확인하러 간 사이 차미주는 얼른 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었다.그녀가 옷을 갈아입고 나왔을 땐, 한성우는 소파에 앉아 고양이를 쓰다듬어 주고 있었고 테이블 위엔 선물 상자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안에는 연두색의 작은 꽃 패턴 원피스가 있었다.어딘가 바닷가에 놀러 가면 입을 법한 원피스였지만 질감은 아주 좋아 보였다.그녀는 바로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뭐야? 내 거야?”한성우는 그녀를 흘겨보며 말했다.“아니, 여자 친구한테 주려고.”그러자 차미주가 말했다.“내가 지금 네 여자 친구잖아.”그러다가 이내 뜸을 들이며 다시
“...”송민준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형님”이라고 부르는 강한서에 송민준은 온몸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그는 굳어진 얼굴로 강한서를 몇 초간 빤히 보다가 눈을 가늘게 뜨면서 말했다.“난 왜 예전에 네가 이렇게 뻔뻔한 사람이란 걸 몰랐지?”강한서는 아주 태연하게 말했다.“그건 네가 일찍 해외로 나가서 그렇잖아. 우리가 함께 있은 시간이 별로 없었으니까 나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거야.”송민준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너 설마 현진이가 네 마음을 받아줬다고 마음 편해진 거 아니지?”강한서는 바로 겸손한 태도를 보이며 말했다.“형님의 인정까지 받아야 마음이 편해질 것 같아. 현진이는 너를 많이 신경 쓰는 것 같더라고.”“... 자신감 넘치네. 만약 네가 마음에 안 든다면 어떻게 하려고?”그러자 강한서가 고개를 들고 말했다.“그럼 뭐 어쩔 수 없는 거지.”“?”송민준은 어이가 없었다.강한서는 휴대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다.몇 초 지나지 않아 휴대폰 화면에 여자의 형체가 나타났다.“강한서, 지금 어디길래 주위가 이렇게 까만 거야?”강한서가 말했다.“여긴 까맣지 않아.”말을 마친 그는 휴대폰을 들어 송민준에게 건넸다. 휴대폰 속 여자를 확인한 송민준은 잠깐 멈칫하더니 입술을 틀어 문 채 한참이나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여자도 당황한 듯 침묵하다가 이내 그를 불렀다.“민준 오빠, 오빠야?”송민준은 한참 후에야 대답하였다.“응.”...유현진은 강한서의 연락을 받자마자 집에서 나왔다.강한서가 말하길 송민준이 주차장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유현진은 상당히 당황했고 송민준이 강한서를 차에 타지 못하게 할까 봐 걱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강한서는 이미 송민준의 차에 타고 있었다.한성우와 차미주도 시간에 맞춰 같이 내려왔다.여하간에 공짜로 차를 얻어 탈 기회였기에 한성우는 당연히 그 기회를 놓칠 인물이 아니었다.그렇게 동생만을 데리러 온 송민준의 차엔 그들도 앉게 되
강한서는 룸미러로 뒤를 힐끔 보더니 만족의 미소를 지었다.커플이라면 응당 앞자리에 나란히 앉고 방해꾼 같은 솔로들은 뒷자리에 앉아야 했다.그가 손을 들어 기어를 움직일 때 우연히 유현진의 맨살에 닿게 되었다. 유현진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송민준의 눈썹이 쉼 없이 들썩거렸다.“넌 눈에 곰팡이가 폈냐? 손 어디에다 두는 거냐? 기회를 틈타 변태 짓을 하려고?”차미주는 결국 참지 못하고 웃어버리게 되었다. 엄청 진지하게 꺼낸 말이었지만 차미주의 웃음소리에 순간 분위기도 기묘해졌다.그리곤 입술을 틀어 물며 웃음을 참는 듯 말했다.“민준 오빠, 저 두 사람 비록 이혼하긴 했어도 결혼 기간은 꽤 길었어요. 그간 무슨 짓을 했을지도 모르는데, 손등이 스쳤다는 이유로 그렇게 화내실 필요는 없다고 봐요.”“...”송민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차미주는 유현진의 둘도 없는 친구였기에 뭐라 할 수도 없었다.옆에 있던 한성우는 웃음을 참느라 힘들어진 모습으로 차미주의 소매를 살짝 당기며 말했다.“넌 알고 있는 게 너무 많아.”가는 길 내내 다들 즐거운 마음이었다.물론 송민준을 제외하고.송가람의 생일 연회는 온천 리조트에서 진행되었고 유현진과 강한서도 전에 온 적 있는 곳이었다.몇 년 전, 밸런타인데이에 유현진은 직접 리조트를 예약하고 강한서와 둘만의 세계를 보내며 휴식을 즐기려 했었다.그러나 강한서가 준비하고 있었던 프로젝트의 실험 결과에 오류가 생기면서 새벽까지 야근하게 되었었다.그렇게 다음 날 그녀와 함께 온 리조트에서 온종일 잠만 자게 되었다.그녀가 기대했던 둘만의 세계는 그녀가 노곤히 잠을 자는 강한서를 노려보는 것으로 끝이 나게 되었다.심지어 잠에서 깬 강한서는 온천을 즐기며 잠을 자면 피로가 싹 풀린다고 말했었다.신경을 써서 준비한 섹시한 잠옷은 결국 하나도 입지 못해보고 둘만의 세계는 끝이 났다.다음날 체크아웃을 할 때 잔뜩 굳어진 그녀의 얼굴을 본 강한서는 의아한 듯 말하기도 했었다.“네가 오고 싶다고 했잖아. 그
한성우는 들고 있던 가방을 바로 침대 위로 휙 던지며 강한서 탓을 하며 불만을 털어놓았다.“말해 봐, 네 머리는 장식이냐? 아니, 왜 미래의 형님을 연적으로 만들어서 저 인간이 자꾸 방해하게 만든 건데? 이거 봐, 너를 인정해 주기는커녕 나한테까지 피해 주잖아!”강한서도 여자 친구인 유현진과 같은 방을 쓰지 못해 많이 짜증이 나 있었고 거기에 한성우의 원망 섞인 목소리를 들으니 짜증이 더 솟구치게 되었다.“넌 거저 놀고 공짜 밥 먹으러 온 거잖아. 그래 놓고 피해를 줬다고? 내가?”그러자 한성우가 그를 째려보며 말했다.“내가 기대하던 스위트룸이 아니잖아!”강한서는 바로 팩트로 폭행했다.“스위트룸이라고 한들 넌 뭐 할 수 있는데? 네가 연기해 왔다는 걸 차미주가 알았다면 그땐 정말로 병원에 입원하게 될 거야. 지금 차미주한테 그런 보살핌을 받는 것도 다 네가 ‘아픈 사람' 연기를 해서 그렇잖아. 그래 놓고 어디서 피해 타령을 해?”“...”한성우는 할 말을 잃게 되었다.‘저놈의 주둥아리! 지가 유현진이랑 같은 방 쓰지 못하니까 바로 나를 공격하는 거 봐!'한성우는 침대 위에 벌러덩 누우며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난 너랑 달라. 미주의 가족들은 나를 아주 좋아하시거든. 난 그냥 미주의 마음에 들면 되는 거야. 게다가 우리를 방해하는 사람도 없어. 너랑은 다르게 말이야. 너는 송씨 가문에서도 한씨 가문에서도 좋은 인상을 남기지 못했잖아. 그분들 중에서 네 편을 들어주는 사람이 있기나 해?”“...”강한서는 어처구니가 없었다.“차미주랑 본가 한번 다녀온 거로, 지금 차미주 집안에서 널 좋아한다고 바로 확신하는 거냐?”한성우는 아주 얄밉게 말했다.“나야 매력이 넘치는 사람이잖아. 그래서 아주머니랑 어르신들의 귀여움을 듬뿍 받는 타입이지.”강한서는 차가운 시선으로 그를 보았다.“설마 또 사기 친 건 아니지?”그러자 한성우는 코웃음을 쳤다.“하, 날 무시하지 마!”‘점쟁이한테 돈을 줘서 나랑 미주 팔자가 찰떡궁합이라고 한 건 사기가
대장은 고개를 여러 번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건 물론이죠. 이미 먼저 주혁 씨에게 연락했어요. 집에서 가족들과 상의한 후 곧바로 답을 준다고 했습니다. 그의 집안 사정으로 회사가 이렇게 좋은 혜택을 주는데 그가 신청하지 않겠어요? 절대 그럴 리 없죠.”원율은 잠시 담배를 피운 뒤 담배 끝을 비벼 끄며 말을 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다른 부서에도 더 전해야 하니까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대장님, 일 보세요.”원율을 보내고 나서 대장은 다시 주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주혁 씨, 가족이 두 명이니까 연간 십만 원도 안 되게 더 내면 돼. 한 달에 만 원도 안 되고 가족이 병원 갈 때 드는 비용은 전부 보장돼. 이 작은 돈 아끼려고 하지 말고 큰 기회를 놓치지 마.”주혁은 돈에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그가 가장 싫어한 건 그 돈을 드러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가족을 위한 보험에 가입하면 이번 주 금요일에 반드시 그들과 함께 건강검진을 받아야 했다. 설령 병원이 서대금이 손수 준비한 곳이라 해도 그에게는 그 사실이 부담스럽고 꺼려지는 일이었다.대장은 계속해서 재촉하며 보험 가입 후의 이점을 설명했다. 결국 주혁은 마지못해 동의했다. “그럼 내 아내와 아들도 함께 가입시켜줘. 나중에 주민등록증 사진 보내줄게.”“알겠어. 잘 쉬고 빨리 회복해. 듣자 하니 곧 송가람 씨 밑에서 일하게 된다면서? 잘 됐어. 정해지면 꼭 한턱 쏴.”주혁은 송가람 밑에서 일하게 될 생각에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그의 눈빛에 부드러운 감정이 스며들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확정되면 한 번 쏠게.”최종적으로 제출된 명단에 주혁의 가족이 포함된 것을 확인한 한현진은 비로소 안심했다. 체크업은 금요일과 토요일로 이틀에 걸쳐 나뉘어 진행되었고 한현진은 주혁이 토요일에 가는 것을 일부러 확인한 후 같은 날에 병원을 가기로 했다.주혁은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왔다. 그의 아내는 평범한 주부였고 깔끔하게 차려입고 있었다. 한현진이 그녀를 보았을 때 그녀는 주혁
회의실의 사람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떠나자 한현진은 물건을 정리한 뒤 아직 자리에 앉아 있는 서해금을 향해 파일을 들고 다가갔다. “아주머니, 방금 지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서해금은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네가 직원들을 생각해서 한 거니까 당연히 지지해야지. 우리 모두 같은 회사에 있는 한 하나의 팀이니까.” 한현진도 미소 지으며 말했다. “아주머니가 제가 먼저 조사를 했다고 문제 삼지 않으셔서 다행이에요. 그리고 집에 보내주신 곤약도 가람 씨 통해 잘 받았어요.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서해금은 여유 있게 말했다. “가족끼리 서로 아끼는 거지. 너무 예의 차리지 마.”한현진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주머니, 제가 회사에 온 이래로 여러모로 신경을 많이 쓰게 해드렸어요. 제가 성격이 직설적이고 고집도 세서 가끔 말이 거칠어질 때도 있어요. 그런데도 아주머니께서 항상 너그러운 마음으로 받아주셔서 감사해요.” “아빠한테 들었어요. 아주머니가 아빠한테 저를 칭찬해 주셨다고요. 그 말을 들으니 저도 마음이 무겁고 어쩌면 제가 너무 어리석게 행동했나 싶어요.”“너무 깊게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서해금은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얘가 무슨 말이야. 어른이 아이와 다툴 일이 뭐가 있겠어? 현진아, 아주머니는 네 친엄마는 아니지만 너희 어머니와는 정말 소중한 친구였어. 네가 송씨 가문에 돌아올 수 있게 되어 아주머니는 그 누구보다 기뻐.” “지금 네가 집안에서 가람이랑 함께 지내는 걸 보니 젊은 시절 너희 어머니와 함께 보낸 시간들이 가끔 떠올라. 우리가 반평생을 함께 지냈고 너희는 진짜 자매가 된 거지. 이것도 하나의 인연이란 거야.”한현진은 속으로 토할 뻔했다. ‘정말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온다고?’만약 당시 아이를 바꾼 일과 그녀 어머니의 죽음이 모두 바로 눈앞에 있는 이 온화하고 친절한 여자과 관련이 있었다는 여러 가지 증거들이 없다면 이렇게 진심 어린 말투를 들었을 때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을 것이
하지만 이 제안이 실행되면 소문이 돌아 사람들이 그것을 한현진 덕분이라고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서해금은 아마도 이를 기꺼이 받아들이려 하지 않을 것이다. 서해금은 잠시 생각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제안은 나쁘지 않지만 실비보험은 본래 회사가 직원들에게 제공하는 기본적인 보장이기에 만약 직원들에게 요금을 부과하게 되면 일부 사람들은 이를 회사가 급여를 삭감하려는 방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일부 직원들의 가족은 병원을 거의 가지 않아 이 비용이 꼭 필요한 지출은 아닐 수 있어요. 그런데 전액을 회사가 부담하게 된다면 일부 직원들이 가족을 허위로 신고해 다른 사람의 보험을 대신 받으려 할 가능성도 생길 수 있을 겁니다.”한현진은 그녀가 이렇게 말할 것을 이미 예상하고 있었기에 처음부터 말하는 방식에 약간의 여유를 두었다. 서해금이 자신의 의문을 제기하자 그녀는 다시 말을 이었다. “직원들이 가족을 위한 보험을 구매할지 말지는 전적으로 자발적입니다. 회사는 강제로 요구하지 않아요. 다만 구매의 문턱을 낮춰놓고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죠. 원하는 사람은 구입하고 원하지 않는 사람은 추가 비용을 부담하지 않도록 말이에요.” “서 대표님 생각은 어떠신가요?”서해금은 입술을 꽉 다물고 잠시 침묵한 후 말문을 열었다. “현진 씨, 구입을 개방하는 것은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우리 쪽은 괜찮지만 보험사와의 협상이 필요해요. 어떤 보험사도 손해 보려고 하진 않잖아요.” 한현진이 살짝 웃으며 답했다. “보험사와의 협상은 제가 맡을게요. 지금 여쭤보는 건 서 대표님 개인의 의견이에요. 동의하시는지요?” 서해금은 당연히 반대한다고 말할 수 없었다. 회의실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반대한다고 말하면 그 소문이 바로 회사 전체에 퍼지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녀가 그동안 쌓아온 직원들을 위하는 좋은 상사의 이미지가 무너질 게 뻔했다. 서해금은 절대 자기를 망칠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서해금은 잠시 침묵한 뒤
이틀 후 깔린느 정기 회의에서 서해금은 직원들의 건강검진을 언급하며 각 부서가 직원들의 시간을 조율하고 차례로 검진을 받을 수 있도록 준비하라고 말했다. 말을 마친 후 시간을 확인하며 말을 이었다.“그럼 특별한 사항 없으면 오늘 회의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잠깐만요.” 한현진이 서해금의 말을 가로막았다. 모두가 그녀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서해금도 눈을 들어 한현진을 응시하며 여유 있게 말했다. “현진 씨, 더 지시할 거라도 있어요?” 한현진은 살짝 웃으며 말했다. “지시라뇨. 이 자리에 계신 분들 모두 제 선배님들이세요. 업무적인 부분은 앞으로도 많이 배우고 의지해야 할 분들입니다. 다만 서 대표님께서 직원 건강검진에 대해 언급하신 걸 듣고 마침 오늘 회사 고위층 분들도 다 계셔서 한 가지 제안을 드리고 싶어서요.” “서 대표님, 괜찮으실까요?”모두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한현진이 아마도 회사 관리와 관련된 문제를 제기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녀가 회사에 온 지 몇 달이 되었고 비록 진씨 가문 사모님 홍혜림을 중심으로 몇몇 고객을 끌어들였지만 서해금의 기반은 그렇게 쉽게 흔들리지 않았다. 두 사람의 실력 차이가 매우 컸고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도 큰 진전이 없었으니 한현진은 분명히 조급할 것이다.서해금은 두 손을 가볍게 포개어 테이블에 놓고 여유롭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정기 회의는 원래 경영진이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는 자리입니다. 어떤 의견이라도 편하게 말씀하세요. 좋은 제안이라면 우리는 반드시 적극적으로 채택할 겁니다.” 그녀는 매우 너그러운 태도로 민주적인 자세를 보여주었고 이것이 바로 서해금이 이렇게 확고한 위치를 유지하는 이유였다. 회의에서 나온 의견과 제안은 결코 당면에서 거절하지 않으며 오히려 지지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뒤에서는 다른 수단을 써서 상대를 밀어내는 법이었다. 사람들의 마음을 다루는 데 그녀는 능숙했다.한현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서 대표님이 이렇게 말씀하신다면 직설적을 말
송가람은 급히 말을 이었다. [지금 저도 정확히 알 수가 없어요.] 그녀는 강한서보다 더 초조해했다. 황 닥터는 금지된 물품을 소지하고 있던 이유로 출국 금지 명령을 받았고 당분간 국내로 돌아오지 못한다고 했다. 그가 오지 않으면 강한서를 제어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 그는 분명히 모든 것을 기억해 낼 것이다. 송가람은 점점 더 초조해졌다.[한서 오빠, 저랑 같이 외국에 가서 교수님한테 진료받으러 갈래요? 그쪽에서 꼭 잘 봐주실 거예요.] 송가람은 더 이상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강한서는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가람아, 평소 같았으면 바로 갔겠지만 지금은 안 될 것 같아. 너도 알잖아. 요즘 한주시 상황이 얼마나 복잡한지. 난 지금 이곳을 떠날 수 없어. 정말 어쩔 수 없으면 여기서 다른 의사를 찾아서 진료를 받는 방법을 찾아볼게.][그럴 수는 없어요!] 송가람이 목소리를 높였다. 강한서는 잠시 멈칫했다. [왜 안 되지?] 송가람은 자신이 너무 지나치게 행동했다는 걸 깨닫고 잠시 말을 더듬으며 겨우 입을 열었다. [교수님은 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뇌과학 전문가 중 한 분이세요. 국내 의사들하고는 비교도 안 되죠.]의사를 바꾸면 강한서가 예전에 사용한 약에 대해 물어볼 것이었고 그렇다면 그녀는 그것을 말해야 하므로 폭로될 위험이 있었다.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날 수 없었다. 강한서는 난처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지금은 다른 방법이 없는 것 같네.] 그는 잠시 침묵을 지킨 후 다시 말을 이었다. [사실 그 약은 효과가 좋았어. 매번 먹고 나면 머리가 맑아지고 잡생각들이 사라졌거든.] [그런데 지금은 그 약이 다 떨어져서 최근에 다시 두통이 찾아왔어. 그 약만 있으면 황 닥터가 올 때까지 버틸 수 있을 텐데.]송가람의 눈이 번쩍였다. ‘맞다. 그 약이 있었지.’ 그녀는 속으로 들뜬 마음을 억누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한서 오빠, 너무 서두르지 마세요.
하지만 이 보험은 직원 개인에게만 해당되며 가족은 이 보험을 가입할 수 없다. 지금 강한서의 의도는 이 혜택을 직원의 가족에게까지 확장하려는 것이다. 주혁은 집에 두 명의 환자가 있고 약을 자주 복용해야 한다. 만약 그가 회사의 이 선의를 거절한다면 그의 이미지와 맞지 않는다. 예전에 아들을 위해 인공 와우 이식 수술을 받을 돈을 마련하려고 위험을 무릅쓰고 직장을 잃었던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절대로 거절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강한서의 개인적인 의도도 있었다. 이런 세심한 직원에 대한 배려는 점차 아래 직원들이 한현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바꿀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고위층은 작은 이익에 별로 신경 쓰지 않지만 일반 직원들에게는 다르다. 대부분 사람들이 열심히 돈을 버는 이유는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다. 그들 대부분은 삼십대에서 마흔다섯 사이로 이 나이대의 사람들은 부모님을 부양하고 자식들을 키워야 한다. 회사가 약속한 성과급 같은 허황한 말보다는 이런 쉽게 보상받을 수 있는 실비보험이 직원들에게 실질적인 혜택을 주기 때문에 더욱 마음을 얻을 수 있다. 한현진은 마치 뭔가 깨달은 듯 강한서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이렇게 사람 마음을 얻는 거구나.” 강한서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 “사실 처음엔 이런 생각까지는 못 했어. 할머니가 병원에 갈 때는 항상 진씨 아저씨랑 같이 가서 내가 직접 겪을 일이 거의 없었거든. 이런 일도 거의 없었고.” “그런데 한 번은 민 실장이랑 같이 출장 가는 길이였어. 그때 민 실장 어머니께서 비를 맞으면서 우리를 마중 나왔는데 길이 미끄러워서 자전거를 타다 넘어지셨어. 가벼운 사고가 나이었고 수술이 필요한 정도로 심했었지.”“그때 민 실장한테 병원에 남아서 어머니를 돌보라고 하고 혼자 고객을 만나러 갔어. 며칠 만에 일을 마치고 병원에 들렀더니 수술은 다행히 성공적이었어.” “그런데 입원부터 치료까지 전부 합쳐서 거의 천만 원 가까이 들었더라. 민 실장은 보험 청구를 했
강한서가 가식적인 말투로 말했다. “부탁할게. 나중에 내가 너랑 여정 씨에게 크게 한 턱 쏠게.”강한서에게 등을 돌린 신우가 손을 들어 중지를 내밀었다. 한현진이 강한서에게 나지막이 물었다. “신우 씨가 널 꽤 귀찮아하는 것 같아. 전에 여정 씨에게 신우 씨는 욕을 하지 않는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아닐 걸?”강한서가 헛소리를 지껄였다. “난 우리 사이가 좋다고 생각해. 봐봐, 지금 얼마나 열심히 우릴 도와주고 있어.”한현진이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강한서를 쳐다보았다. ‘그래? 난 왜 신우 씨가 마지못해 하는 것 같지?’생각하던 한현진이 말했다. “이제 이런 일로 신우 씨 번거롭게 하지 말자. 우리 다른 방법 찾아보자. 언제까지 부탁할 순 없잖아.”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도 계속 신우에게만 매달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신우처럼 능력 있고 입도 무거운 사람을 찾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한현진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언제까지 신우에게 부탁할 수는 없었다. 신우의 할아버지가 위독하시기 때문에 지금은 삼촌들의 후계자 싸움이 가장 치열한 시기였다. 수많은 눈이 서로의 약점을 노리고 있었기에 신우의 처지 역시 살얼음판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이럴 때일수록 그 어떤 실수도 있어서는 안 된다. 신씨 가문에서 요즘 경쟁이 제일 치열한 것이 바로 제일 많은 계약금이 걸린 프로젝트였다. 강한서는 이 기회를 빌려 신우에게 투자금을 보태 그동안 진 신세를 갚을 생각이었다. 그날 오후, 지문 대조 결과가 나왔다. 편지 봉투와 그림에는 한현진과 강한서의 지문을 제외한 세 사람의 지문이 있었다. 그 세 사람 중 한 명은 주혁의 아내였고 또 다른 사람은 주혁의 아들인 주지호였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지문 대조 시스템에 등록되어 있지 않은 또 다른 사람의 지문이었다. 그 결과에 한현진은 조금 실망스러웠다. 이 정보를 따라 뭔가를 캐낼 수 있을 것이라 여겼지만 이렇게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조사 결과는 결국 시스템에조차 등록되어 있
시원하게 욕을 날린 신우는 의리 있게 강한서의 부탁을 들어줬다.10여 년 전 주혁이 경찰서에 남겼던 지문을 받은 강한서는 곧 생체 인식 실험실에 보내 두 지문을 대조하도록 했다. 2시간도 지나지 않아 결과가 나왔다. 한지와 편지봉투에서는 주혁의 지문을 찾을 수 없었다. 그 결과에 한현진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말도 안 돼. 뭔가 착오가 있는 거 아냐? 그때 직접 손으로 나에게 건네줬었어. 심지어 장갑도 하지 않았는데, 지문이 안 나왔다고?”신우가 말했다. “여긴 여정이와 여정이 사수가 함께 만든 실험실이에요. 게다가 형사들과 자주 협력하는 곳이기도 하고요. 지문 대조 시스템은 여길 따라올 곳이 없어요. 한 번도 틀린 적 없었어요.”신우의 말은 지문 대조 결과가 틀렸을 리가 없다는 얘기였다. 신우는 주머니에서 담배 한 갑을 꺼냈다. 이제 막 담배 한 대를 꺼내려던 그때, 손에 들린 담배가 강한서의 손에 내쳐져 툭, 쓰레기통으로 떨어졌다. 신우: ???머리가 복잡했던 한현진은 두 사람을 전혀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럼 왜 없는 거지?”여전히 오리무중에 빠진 한현진과 달리 강한서는 이미 눈치 채고 있은 듯 말했다. “혹시... 지금 그 사람은 애초부터 주혁이 아니었던 거야. 그래서 경찰에게 지문이 남아있을까 봐 그런 방법의 자신의 모든 지문을 지워버린 거야. 자신의 진짜 신분을 들키지 않기 위해.”강한서의 추측에 한현진의 등골이 오싹해졌다. “어떻게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거야? 그건 너무 많이 앞서간 거 아냐? 기사님은 가족도 있고 아이도 있어. 만약 정말 사람이 바뀐 거라면 가족들은 눈치 채야 하는 거 아냐?”“데가 이 세상에는 그렇게 똑같이 생긴 사람은 없어. 아무리 닮은 쌍둥이라고 해도 가족들은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잖아.”강한서가 입술을 짓이겼다. “어쩌면 가족들은 원래 그 사람이 돌아오길 바라지 않을 수도 있지.”한현진은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그녀는 얼른 강한서에게 물었다.
“얼른 다시 가져와. 급히 쓸데가 있어.”강한서: ?“왜 그래?”한현진이 말했다. “전화로 얘기하긴 복잡한 일이야. 아무튼 얼른 전화해서 그림 다시 가져오라고 해. 만약 안 건드렸으면 못 건드리게ㅔ 하고 만약 꺼냈으면 얼른 다시 포장하라고 해. 내가 금방 갈게. 만나서 더 자세하게 얘기해 줄게.”강항서가 대답했다. “알겠어. 지금 당장 다시 가져올게.”한현진은 일찍 퇴근하고 집으로 향했다. 전화에서 한현진이 워낙 급하게 얘기한 탓에 강한서도 그녀가 걱정이라 손에 있던 일을 미리 마친 후 칼퇴근해 집으로 돌아왔다. 만나자마자 강한서를 본 한현진이 물었다. “기사님 아직 그림 안 넣었지?”강한서가 고개를 가로 저었다. “네가 너무 일찍 얘기해서 넣지도 못한 상황이야. 네가 그림을 가진 후로 우리 두 사람을 제외하면 아무도 그림을 본 적이 없어.”한현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랍에서 일회용 장갑을 꺼내 낀 후 그림과 평지를 함께 꺼내 일회용 봉투에 넣었다. 한현진의 행동을 본 강한서의 눈가가 파를 뛰었다. “증거 수집해?”한현진은 봉토를 밀봉하며 말했다. “정말 증거가 될 수도 있어. 일단 가직해 둬.”“대체 무슨 일이야?”한현진이 장갑을 벗고 나서야 강한서에게 그동안 있었던 일과 본인의 의심과 의혹을 얘기했다. “이번 주에 기사님께서 뭔가 사고를 친게 틀림없어. 그래서 재판장에서 지문 인식하는 걸 거부하는 거겠지. 만약 기사님이 전과범이고 회사에서 그 사람을 그대로 둔다면 기사님이 영향을 끼치는 것 나뿐만이 아니야. 그건 말이 안 되는 것 같아.”“내가 생각해봤는데 일단 지문을 수집하는 게 더 나을 것 같아. 일단 고여정 씨께 이 사람이 대체 무슨 죄를 지었는지 알아봐. 그래야 만일이 사태에 대비를 하지.”한현진의 말을 들은 강한서가 의문을 제기했다. “주혁 씨의 지문은 이미 시스템에 등록되어 있어. 무슨 범죄를 저질렀는지는 신상 조회를 하면 바로 나올 텐데 지문을 지우는 게 무슨 소용 있어?”한현진이 멈칫했다. “없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