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야. 맹세해.”강한서는 그제야 더는 그녀의 전남친에 대해 캐묻지 않았다... 그의 관심은 전부 점수에 쏠렸기 때문이다.유현진은 휴대폰을 들고 메모에 점수를 기록하는 강한서의 모습에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얼마나 된 거야?”강한서는 휴대폰을 슬쩍 돌리며 그녀에게 보여주지 않으려 했다.“넌 변덕이 심해서 안 보여줄 거야. 괜히 보여줬다가 또 내 점수를 깎으려 할지도 모르잖아.”“...”유현진은 어이가 없었다.‘흥, 안 보여줘도 점수 깎을 건데!'강한서가 열심히 휴대폰 메모 앱에 기록하고 있던 와중에 유현진의 휴대폰이 울렸다.확인해 보니 발신인은 송민준이었다.그녀는 강한서에게 검지를 올려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보인 뒤 전화를 받았다.“현진아, 점심에 시간 돼? 같이 식사나 하고 싶은데.”유현진은 강한서를 힐끔 쳐다보았다. 그러자 강한서는 그녀를 응원하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유현진은 시선을 떨군 채 나직하게 물었다.“전부 오시는 거예요?”송민준은 멈칫하더니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너 아직 부담스러우면 내가 다음에 다시 오시라고 할게.”유현진은 한참 침묵하였다. 그녀는 자신을 만나러 오기 위해 직접 그녀가 있는 도시까지 찾아온 어르신과 백발이 듬성듬성 있는 송병천의 얼굴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그리곤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그래요, 오빠. 장소 정하고 알려주세요. 가족들과 한번 만나 뵙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송민준은 살짝 놀란 듯한 반응이었다. 그리곤 바로 입꼬리를 올리며 기쁜 듯 말했다.“그래, 이따 오빠가 데리러 갈게.”유현진은 웃으며 말했다.“아니에요. 오빠가 데리러 오면 사람들이 또 오빠가 내 스폰서라고 오해할 거예요. 게다가 파파라치한테 사진까지 찍히면 더 일이 귀찮아질 거예요.”송민준은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흥, 스폰서라고 해. 그 사람들이 뭘 할 수 있는 건데? 내가 우리 집안, 내 동생도 못 챙겨줘?”유현진은 한참을 웃었다.“그럼 저 연기 그만 포기하고 바로 사업을 물려받아도 돼요?
유현진이 한세 한식당 안으로 들어가자 강한서는 그제야 시선을 거두었다.마침 신우가 그에게 문자를 보내왔다.「출장비 줘.」강한서는 문자 내용을 확인하더니 바로 감사패 사진 한 장을 신우에게 보내면서 말했다.「만드는 중이야. 이따 저녁쯤에 고여정 씨 회사로 도착할 거야.」그러자 신우가 빠르게 답장했다.「? 출장비가 고작 3만 원짜리 감사패라고? 그때 축의금도 3만 원보다 훨씬 더 많이 넣었어.」강한서는 그의 답장을 바로 캡처하여 고여정에게 보내면서 물었다.「얼마였어요? 모자라는 돈은 제가 보충해 드릴게요.」고여정이 답장했다.「그이 말은 믿지 마세요. 저흰 축의금 안 냈어요.」강한서는 이내 고여정과 나눈 대화를 캡처하여 신우에게 보냈다.그러자 신우는 더는 문자를 보내지 않았다. 그러다 한참 후에야 신우는 강한서에게 중지를 날리는 이모티콘을 보냈다.강한서는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며 물었다.「지난번에 알아보라고 한 건, 알아봤어?」신우의 표정이 싸악 바뀌었다.「그게 어디 알아보라고 한 거냐? 훔치라고 한 거지?!」강한서는 담담하게 말했다.「심심하면 남의 시스템 보안을 뚫고 몰래 해킹하는 게 네 취미가 아니었나?」그러자 신우는 진지하게 말했다.「그건 재능 기부야. 그냥 허술한 시스템 보안을 다시 강화하게 해주려고 그런 거라고.」신우의 해킹 실력으로 뚫지 못하는 시스템은 없었다. 게다가 그가 몰래 코딩을 살짝 바꾸어도 다른 사람에게 들키지 않았다.고여정은 비록 평범한 집안에서 자랐지만,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었다.하지만 신우의 부모님은 고여정을 별로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그들은 심지어 고여정에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식으로 말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여정은 자존심이 아주 강한 사람이었기에 결혼하자마자 신우를 끌고 재산조회를 했었다. 재산조회를 함으로써 그녀는 이혼을 해도 절대 신우의 돈 한 푼을 쓰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하지만 매번 재산조회에 실패했다. 두 사람이 조회하러 갔을 때마다 컴퓨터가 항상 고장이 나서 조회가
신우가 답장했다.「여정이가 그러는데, 그 주삿바늘의 방향과 각도가 안에서 밖으로 찌른 것 같대. 보통의 상황이라면 스스로 주사를 놓을 때 방향이 밖에서 안이거든? 근데 방이진 몸에 있는 주삿바늘 흔적을 보니 어깨 바깥쪽에 있었어. 아무리 방이진이 안에서 바깥으로 주사를 놓는다고 해도 각도가 틀려.」강한서는 미간을 찌푸렸다.「확실히 수상하네. 경찰한테는 말해봤어?」「사건 현장에 다른 사람의 것으로 추정되는 체모나 지문 같은 것이 발견되지 않았거든. 그리고 방이진의 가족도 나 몰라라 하고 있어서 아마 다시 수사하기는 어려울 거야. 그리고 이 사건에 별다른 용의자도 나오지 않아서 아무리 재수사를 신청한다고 해도 경찰 측에서 들어주지 않을 거야.」강한서는 입술을 틀어 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미심쩍은 부분이 있었지만, 범행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이 제일 무서운 것이었다.「아참, 지난번에 현진 씨 메이크업 정말 짱이더라. 네 앞에 그렇게 대놓고 있었는데, 너 현진 씨 전혀 몰라봤잖아. 여정이가 대신 물어봐달라고 하던데, 대체 어느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한 건지 말이야. 우리 팀원들도 제대로 배우게 하려고. 나중에 분장 잠입할 때 아주 유용할 것 같거든.」“...”강한서는 더는 아무런 답장도 하지 않았다....유현진은 한세 한식당의 문턱을 넘자마자 캐주얼한 옷을 입은 송민준이 입구 근처에서 누군가와 전화하는 것을 발견했다.그의 차림새는 정식적인 차림새가 아니었고 집에서 바로 온 듯한 캐주얼한 모습이었으며 분위기도 전보다 훨씬 부드러워 보였다.유현진은 그런 송민준의 모습을 빤히 보았다. 확실히…. 어딘가 그녀와 닮은 구석이 있었다.그녀는 그제야 차미주가 왜 줄곧 송민준이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선해 보인다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그녀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던 와중에 송민준이 고개를 돌렸다. 그는 바로 전화를 끊고 그녀를 향해 걸어왔다.유현진은 가방 줄을 꽈악 잡았다. 무언가가 그녀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송민준은 아
유현진은 심호흡을 깊게 하고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그녀는 허리를 꼿꼿하게 세운 채 걸었다. 긴장한 이유도 있었지만, 가족들이 자신의 모습을 보고 실망하지 않길 바라는 이유도 있었다.룸은 아주 컸고 정중앙에 있던 테이블에 4명이 앉아 있었다.테이블 중앙 자리엔 당연히 인자해 보이는 노부부가 앉아 있었다. 두 사람은 유현진이 이미 전에 영상통화로 만나 뵌 적이 있었다. 바로 그녀의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될 분들이었다.외할머니 옆엔 송병천이 앉아 있었다. 그는 살짝 살이 오른 모습이었지만 풍기는 아우라는 그대로였다. 그녀가 들어오는 모습에 그의 안색이 살짝 변하기도 했다.그리고 외할아버지 옆엔 이목구비가 선명한 중년의 남자가 앉아 있었다. 얼굴이 다소 낯익었고 아주 훤칠하여 대충 40대 초반으로 보였다. 게다가 몸도 아주 건장하여 머리 스타일만 조금 바꾼다면 강한서와 나이 차도 얼마 나지 않을 것으로 보였다.유현진은 마스크를 벗었다. 그러자 외할아버지는 참지 못하고 그녀를 불렀다.“우리 아가.”공영선의 눈시울도 많이 붉어졌다. 그녀는 한태진의 팔을 잡으며 나직하게 말했다.“애가 놀라겠어요.”송병천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의자를 뒤로 빼주며 말했다.“현진아, 얼른, 얼른 여기 앉아.”송민준은 그녀의 손을 잡고 소개했다.“외할아버지랑 외할머니는 전에 영상통화로 한번 뵀을 거야. 아버지도 뵀었고. 그리고 이분은 우리 외삼촌, 이름은 한준웅이셔. 이번에 특별히 널 보러 할아버지랑 할머니랑 함께 오셨어. 외숙모는 오늘 부영시에 세미나가 있어서 오지 못하셨고, 나중에 다시 시간 내서 널 보러 오겠다고 하셨어.”긴장한 유현진은 손만 꼼지락거렸다. 줄곧 긴장감이라는 것 없이 얘기를 잘하던 그녀는 잔뜩 기대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니 순간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송민준은 손에 든 선물을 테이블 위로 올려놓으며 말했다.“할아버지, 할머니, 이건 현진이가 두 분을 위해서 준비한 선물이래요.”두 사람의 얼굴엔 바로 기쁜 웃음꽃이 피었다. 공영선이 말했
공영선은 유현진의 얼굴을 자세히 훑어보았다. 그녀의 얼굴에서 자신 딸의 모습을 발견하기라도 한 것인지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유현진도 마음이 울컥해지는 기분이었지만 눈물 흘릴 정도는 아니었다.그녀는 이 사람들과 달랐다. 어릴 때부터 하현주의 보호 속에 잘 컸기에 그녀는 20여 년간 자신이 하현주의 친딸이 아닐 거라는 의심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가족과 생이별하게 된 고통과 슬픔을 느끼지 못했다.하지만 한씨 가문과 송씨 가문에서는 눈앞에서 딸이자, 아내인 한아람을 잃었다.그래서 그들은 한아람의 딸이 살아있다는 소식에 이렇게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눈물을 보일 수 있었던 것이었다.그러나 유현진은 그저 가슴이 아프다는 감정만 들뿐 한순간에 비어 있던 마음에 그간의 감정을 가득 채워 넣을 수 없었다.공영선은 그녀의 손을 잡고 다정하게 물었다.“현진아, 그동안 힘든 일은 없었어?”유현진은 시선을 떨군 채 나직하게 말했다.“엄마가- 아니, 그러니까 저를 키워주신 엄마가 저한테 아주 잘해줬어요. 그래서 고생 같은 건 별로 해본 적이 없이 자랐어요.”공영선은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그 아이도 참 인생이 고달프구나. 그래도 이젠 더는 고달피 살지 않아도 되겠구나. 이틀 뒤에 우리를 산소로 데려가 주렴. 직접 그 아이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구나.”유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임자, 좀 비켜보세요. 나도 우리 아가랑 말 좀 해봅시다.”한태진은 둘 사이에 끼어들며 두둑한 돈 봉투를 유현진의 가방에 밀어 넣으며 말했다.“현진아, 이건 내가 너를 위해 매년 준비했던 세뱃돈이다. 그간 계속 모아두고 있었단다.”그리고 이내 작은 목소리로 유현진에게 말했다.“다른 애들은 이만큼 받지도 못했어.”한중웅은 멍한 표정으로 말했다.“아버지, 왜 제가 할 말을 먼저 하세요?”한준웅도 두둑한 돈 봉투를 꺼냈다.“그럼 제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잖아요.”송병천은 입술을 틀어 문 채 주머니에서 돈 봉투를 꺼냈다.“민준이 이 자식, 너 설마 내가
서해금은 말을 마쳤다. 유현진은 빠르게 현장의 분위기가 미묘하게 변했다는 것을 눈치챘다.조금 전까지 열정적인 모습으로 그녀를 대하던 한태진의 표정도 다소 차가워졌다. 그리고 공영선의 얼굴엔 표정이 사라졌다.술잔을 들고 있던 한준웅은 그저 입술을 틀어 물고 있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송민준도 한참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아줌마.”송병천은 어색한 모습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당신이 여긴 어쩐 일이야?”서해금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당신 혈압약을 깜박하고 안 가져가셨더라고요. 혹시나 해서 제가 가져왔죠.”송민준은 입술을 틀어 문 채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혈압약은 심장질병에 먹는 약처럼 긴급상황에 먹는 약이 아니었다. 그랬기에 굳이 매일, 매 순간 몸에 약을 지닐 필요는 없었다.하지만 송병천은 별다른 생각 없이 약을 받으며 나직하게 말했다.“사람을 시켜서 보내도 되는데, 왜 직접 온 거야?”서해금이 답했다.“아저씨랑 아주머니께서 한주시에 이렇게 오래 머물고 계신 건 처음이잖아요. 그래서 한 번쯤은 뵈러 올까 생각하기도 했었어요. 그리고 현진이, 현진이는 당신이 그동안 그렇게 집에 데리고 오고 싶어 했던 당신 딸이잖아요. 저도 당신이랑 친딸을 만난 기쁨을 같이 느끼고 싶었어요.”송병천은 다소 난감해졌다.한씨 집안의 두 노부부는 그의 재혼에 비록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불쾌한 심정 정도는 송병천이 어느 정도 눈치챌 수 있었다.게다가 이번은 현진이와 가족 사이임을 밝히는 자리였기에 서해금이 이 자리에 나타나는 건 확실히 부적절했다.송병천이 나직하게 말했다.“당신 먼저 돌아가게. 나중에 현진이가 다시 어느 때에 시간이 난다면 그때 식사 자리 한번 마련할 테니까, 오늘은 그냥 어르신들과 함께 좋은 시간을 보내도록 해주게.”서해금은 다소 실망한 듯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고집을 부리지 않고 오히려 여전히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그럼 아저씨랑 아주머니께 몇 마디 하게 해줘요. 그
유현진은 목이 메어오는 것 같았다.현장의 분위기는 더욱 미묘해졌다.결국, 송병천이 먼저 말을 꺼냈다.“현진아, 받아. 그냥 어른이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해.”유현진은 하는 수 없이 받으며 예의상 감사 인사도 했다.공영선은 한참이나 서해금을 뚫어지게 보다가 고개를 돌려 한준웅에게 말했다.“준웅아. 가서 수저 하나 더 가져다 달라고 해라.”서해금은 급히 손사래를 쳤다.“전 괜찮아요, 아주머니. 어차피 지금 가려고 했어요. 그럼 얘기들 나누세요.”그녀는 고개를 돌려 송병천을 보며 말했다.“집에 있는 방은 제가 얼른 치워볼게요. 나중에 현진 씨가 들어와 살아야 하니까요. 가람이 방이 마음에 든다고 하면 가람이한테 바꾸라고도 말해볼게요. 얼른 아이를 집에 데려와야죠.”송병천의 표정이 다소 부드러워지고 그녀의 어깨를 토닥이며 다정하게 말했다.“그래, 수고 좀 하게.”서해금은 웃으면서 나직하게 말했다.“뭘요.”말을 마친 그녀는 그들에게 인사를 한 후 바로 떠나버렸다,비록 서해금이 갔지만, 그곳의 분위기는 다소 서해금이 등장하기 전보다 무거워졌다.그녀는 한태진과 공영선의 기분이 살짝 불쾌해졌다는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그녀는 다시 곰곰이 생각해 봤다. 사위가 다른 여자와 재혼을 하고 새로운 가정을 꾸렸으니 속으로 어느 정도 신경 쓰고 있는 것이 당연했다.사실 그녀도 다소 신경 쓰였다. 특히 서해금이 방금 선심을 쓰는 듯한 그 어투는 마치 그녀가 애초에 그녀의 것이 아닌 낯선 가정에 끼어든 침입자 같게 들려 기분이 불쾌했다.그녀는 송씨 가문으로 들어갈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식사 계속하죠.”한준웅이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을 꺼냈다. 그리곤 웃는 얼굴로 유현진에게 물었다.“현진아,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많이 많이 먹어. 우리 집안엔 그렇게 복잡한 규칙 같은 거 없으니까 눈치 볼 필요도 없어.”유현진도 많이 누그러진 모습으로 답했다.“알았어요, 삼촌.”한준웅은 멈칫하더니 바로 고개를 돌려 한태진에게 말했다.“아버지, 들으셨죠? 얼른 카
20분 전.강한서는 차 안에서 휴대폰을 들고 한성우와 가격 흥정을 하고 있었다.“네가 알아보라고 한 사람 때문에 내가 새벽 3시 반이 되어서야 집에 도착했어! 그런데 200만 원? 내 고생이 200만 원이라고? 적어도 2억 정도는 줘야 할 거 아니야!”강한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2억? 네가 2억 받을 정도가 된다고 생각해?”한성우가 강한서와 지금까지 친하게 지내고 있는 것은 전부 한성우의 뻔뻔함 덕분이었다. 그랬기에 이 정도 타격은 그에게 솜방망이였고 아무렇지도 않았다.“내가 왜 그 정도 받을 자격이 없는 건데? 내 나이가 지금 몇인데? 내가 네 예전 장인어른 일로 밤을 얼마나 많이 샜는데! 밤새우는 게 쉬운 줄 알아? 건강에 안 좋다고! 내가 거의 매일 밤 자지 않고 알아봤어! 그런데 내가 밤을 새운 대가가 2억도 안 된다고? 네가 예전에 술집에서 다쳤을 때도 네 와이프가 나한테 5억을 달라고 했어! 너는 그만한 가치가 있고, 나는 그만한 가치가 없다고?”그때의 5억만 생각하면 한성우는 이가 갈렸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검소한' 이미지 회복을 위해 반드시 이 기회에 그 돈을 돌려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강한서는 유현진에게서 배운 가격 흥정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었다.“네가 앞으로 안 다치게 될 거라는 걸 어떻게 확신하지? 만약 그때 내가 아니었으면 병실에 누워있는 건 너였어. 나한테 고마워하지 못할망정 지금 억울하다는 거냐? 병실에 누워있지 않은 것만으로도 넌 이미 충분히 돈 굳었어.”한성우의 입가가 파를 떨려왔다.“이 개자식! 이젠 형수님과 사귀고 있으니까 끝이라 이거지?! 나한테 저주를 해? 너야말로 미래에 병실에 누워있을 거야! 형수님이 네 뒤치다꺼리를 하다가 어느 순간 너에게 질려서 구정물을 너한테 확 쏟아부을지도 모르지!”강한서는 등받이에 기대며 입꼬리를 올렸다.“현진이는 그런 애가 아니야. 너야말로 미래에 병실에 입원하게 되면 누가 챙겨줘? 계속 차미주를 속일 거냐?”“...”한성우는 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대장은 고개를 여러 번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건 물론이죠. 이미 먼저 주혁 씨에게 연락했어요. 집에서 가족들과 상의한 후 곧바로 답을 준다고 했습니다. 그의 집안 사정으로 회사가 이렇게 좋은 혜택을 주는데 그가 신청하지 않겠어요? 절대 그럴 리 없죠.”원율은 잠시 담배를 피운 뒤 담배 끝을 비벼 끄며 말을 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다른 부서에도 더 전해야 하니까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대장님, 일 보세요.”원율을 보내고 나서 대장은 다시 주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주혁 씨, 가족이 두 명이니까 연간 십만 원도 안 되게 더 내면 돼. 한 달에 만 원도 안 되고 가족이 병원 갈 때 드는 비용은 전부 보장돼. 이 작은 돈 아끼려고 하지 말고 큰 기회를 놓치지 마.”주혁은 돈에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그가 가장 싫어한 건 그 돈을 드러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가족을 위한 보험에 가입하면 이번 주 금요일에 반드시 그들과 함께 건강검진을 받아야 했다. 설령 병원이 서대금이 손수 준비한 곳이라 해도 그에게는 그 사실이 부담스럽고 꺼려지는 일이었다.대장은 계속해서 재촉하며 보험 가입 후의 이점을 설명했다. 결국 주혁은 마지못해 동의했다. “그럼 내 아내와 아들도 함께 가입시켜줘. 나중에 주민등록증 사진 보내줄게.”“알겠어. 잘 쉬고 빨리 회복해. 듣자 하니 곧 송가람 씨 밑에서 일하게 된다면서? 잘 됐어. 정해지면 꼭 한턱 쏴.”주혁은 송가람 밑에서 일하게 될 생각에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그의 눈빛에 부드러운 감정이 스며들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확정되면 한 번 쏠게.”최종적으로 제출된 명단에 주혁의 가족이 포함된 것을 확인한 한현진은 비로소 안심했다. 체크업은 금요일과 토요일로 이틀에 걸쳐 나뉘어 진행되었고 한현진은 주혁이 토요일에 가는 것을 일부러 확인한 후 같은 날에 병원을 가기로 했다.주혁은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왔다. 그의 아내는 평범한 주부였고 깔끔하게 차려입고 있었다. 한현진이 그녀를 보았을 때 그녀는 주혁
회의실의 사람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떠나자 한현진은 물건을 정리한 뒤 아직 자리에 앉아 있는 서해금을 향해 파일을 들고 다가갔다. “아주머니, 방금 지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서해금은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네가 직원들을 생각해서 한 거니까 당연히 지지해야지. 우리 모두 같은 회사에 있는 한 하나의 팀이니까.” 한현진도 미소 지으며 말했다. “아주머니가 제가 먼저 조사를 했다고 문제 삼지 않으셔서 다행이에요. 그리고 집에 보내주신 곤약도 가람 씨 통해 잘 받았어요.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서해금은 여유 있게 말했다. “가족끼리 서로 아끼는 거지. 너무 예의 차리지 마.”한현진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주머니, 제가 회사에 온 이래로 여러모로 신경을 많이 쓰게 해드렸어요. 제가 성격이 직설적이고 고집도 세서 가끔 말이 거칠어질 때도 있어요. 그런데도 아주머니께서 항상 너그러운 마음으로 받아주셔서 감사해요.” “아빠한테 들었어요. 아주머니가 아빠한테 저를 칭찬해 주셨다고요. 그 말을 들으니 저도 마음이 무겁고 어쩌면 제가 너무 어리석게 행동했나 싶어요.”“너무 깊게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서해금은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얘가 무슨 말이야. 어른이 아이와 다툴 일이 뭐가 있겠어? 현진아, 아주머니는 네 친엄마는 아니지만 너희 어머니와는 정말 소중한 친구였어. 네가 송씨 가문에 돌아올 수 있게 되어 아주머니는 그 누구보다 기뻐.” “지금 네가 집안에서 가람이랑 함께 지내는 걸 보니 젊은 시절 너희 어머니와 함께 보낸 시간들이 가끔 떠올라. 우리가 반평생을 함께 지냈고 너희는 진짜 자매가 된 거지. 이것도 하나의 인연이란 거야.”한현진은 속으로 토할 뻔했다. ‘정말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온다고?’만약 당시 아이를 바꾼 일과 그녀 어머니의 죽음이 모두 바로 눈앞에 있는 이 온화하고 친절한 여자과 관련이 있었다는 여러 가지 증거들이 없다면 이렇게 진심 어린 말투를 들었을 때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을 것이
하지만 이 제안이 실행되면 소문이 돌아 사람들이 그것을 한현진 덕분이라고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서해금은 아마도 이를 기꺼이 받아들이려 하지 않을 것이다. 서해금은 잠시 생각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제안은 나쁘지 않지만 실비보험은 본래 회사가 직원들에게 제공하는 기본적인 보장이기에 만약 직원들에게 요금을 부과하게 되면 일부 사람들은 이를 회사가 급여를 삭감하려는 방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일부 직원들의 가족은 병원을 거의 가지 않아 이 비용이 꼭 필요한 지출은 아닐 수 있어요. 그런데 전액을 회사가 부담하게 된다면 일부 직원들이 가족을 허위로 신고해 다른 사람의 보험을 대신 받으려 할 가능성도 생길 수 있을 겁니다.”한현진은 그녀가 이렇게 말할 것을 이미 예상하고 있었기에 처음부터 말하는 방식에 약간의 여유를 두었다. 서해금이 자신의 의문을 제기하자 그녀는 다시 말을 이었다. “직원들이 가족을 위한 보험을 구매할지 말지는 전적으로 자발적입니다. 회사는 강제로 요구하지 않아요. 다만 구매의 문턱을 낮춰놓고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죠. 원하는 사람은 구입하고 원하지 않는 사람은 추가 비용을 부담하지 않도록 말이에요.” “서 대표님 생각은 어떠신가요?”서해금은 입술을 꽉 다물고 잠시 침묵한 후 말문을 열었다. “현진 씨, 구입을 개방하는 것은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우리 쪽은 괜찮지만 보험사와의 협상이 필요해요. 어떤 보험사도 손해 보려고 하진 않잖아요.” 한현진이 살짝 웃으며 답했다. “보험사와의 협상은 제가 맡을게요. 지금 여쭤보는 건 서 대표님 개인의 의견이에요. 동의하시는지요?” 서해금은 당연히 반대한다고 말할 수 없었다. 회의실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반대한다고 말하면 그 소문이 바로 회사 전체에 퍼지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녀가 그동안 쌓아온 직원들을 위하는 좋은 상사의 이미지가 무너질 게 뻔했다. 서해금은 절대 자기를 망칠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서해금은 잠시 침묵한 뒤
이틀 후 깔린느 정기 회의에서 서해금은 직원들의 건강검진을 언급하며 각 부서가 직원들의 시간을 조율하고 차례로 검진을 받을 수 있도록 준비하라고 말했다. 말을 마친 후 시간을 확인하며 말을 이었다.“그럼 특별한 사항 없으면 오늘 회의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잠깐만요.” 한현진이 서해금의 말을 가로막았다. 모두가 그녀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서해금도 눈을 들어 한현진을 응시하며 여유 있게 말했다. “현진 씨, 더 지시할 거라도 있어요?” 한현진은 살짝 웃으며 말했다. “지시라뇨. 이 자리에 계신 분들 모두 제 선배님들이세요. 업무적인 부분은 앞으로도 많이 배우고 의지해야 할 분들입니다. 다만 서 대표님께서 직원 건강검진에 대해 언급하신 걸 듣고 마침 오늘 회사 고위층 분들도 다 계셔서 한 가지 제안을 드리고 싶어서요.” “서 대표님, 괜찮으실까요?”모두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한현진이 아마도 회사 관리와 관련된 문제를 제기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녀가 회사에 온 지 몇 달이 되었고 비록 진씨 가문 사모님 홍혜림을 중심으로 몇몇 고객을 끌어들였지만 서해금의 기반은 그렇게 쉽게 흔들리지 않았다. 두 사람의 실력 차이가 매우 컸고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도 큰 진전이 없었으니 한현진은 분명히 조급할 것이다.서해금은 두 손을 가볍게 포개어 테이블에 놓고 여유롭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정기 회의는 원래 경영진이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는 자리입니다. 어떤 의견이라도 편하게 말씀하세요. 좋은 제안이라면 우리는 반드시 적극적으로 채택할 겁니다.” 그녀는 매우 너그러운 태도로 민주적인 자세를 보여주었고 이것이 바로 서해금이 이렇게 확고한 위치를 유지하는 이유였다. 회의에서 나온 의견과 제안은 결코 당면에서 거절하지 않으며 오히려 지지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뒤에서는 다른 수단을 써서 상대를 밀어내는 법이었다. 사람들의 마음을 다루는 데 그녀는 능숙했다.한현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서 대표님이 이렇게 말씀하신다면 직설적을 말
송가람은 급히 말을 이었다. [지금 저도 정확히 알 수가 없어요.] 그녀는 강한서보다 더 초조해했다. 황 닥터는 금지된 물품을 소지하고 있던 이유로 출국 금지 명령을 받았고 당분간 국내로 돌아오지 못한다고 했다. 그가 오지 않으면 강한서를 제어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 그는 분명히 모든 것을 기억해 낼 것이다. 송가람은 점점 더 초조해졌다.[한서 오빠, 저랑 같이 외국에 가서 교수님한테 진료받으러 갈래요? 그쪽에서 꼭 잘 봐주실 거예요.] 송가람은 더 이상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강한서는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가람아, 평소 같았으면 바로 갔겠지만 지금은 안 될 것 같아. 너도 알잖아. 요즘 한주시 상황이 얼마나 복잡한지. 난 지금 이곳을 떠날 수 없어. 정말 어쩔 수 없으면 여기서 다른 의사를 찾아서 진료를 받는 방법을 찾아볼게.][그럴 수는 없어요!] 송가람이 목소리를 높였다. 강한서는 잠시 멈칫했다. [왜 안 되지?] 송가람은 자신이 너무 지나치게 행동했다는 걸 깨닫고 잠시 말을 더듬으며 겨우 입을 열었다. [교수님은 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뇌과학 전문가 중 한 분이세요. 국내 의사들하고는 비교도 안 되죠.]의사를 바꾸면 강한서가 예전에 사용한 약에 대해 물어볼 것이었고 그렇다면 그녀는 그것을 말해야 하므로 폭로될 위험이 있었다.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날 수 없었다. 강한서는 난처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지금은 다른 방법이 없는 것 같네.] 그는 잠시 침묵을 지킨 후 다시 말을 이었다. [사실 그 약은 효과가 좋았어. 매번 먹고 나면 머리가 맑아지고 잡생각들이 사라졌거든.] [그런데 지금은 그 약이 다 떨어져서 최근에 다시 두통이 찾아왔어. 그 약만 있으면 황 닥터가 올 때까지 버틸 수 있을 텐데.]송가람의 눈이 번쩍였다. ‘맞다. 그 약이 있었지.’ 그녀는 속으로 들뜬 마음을 억누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한서 오빠, 너무 서두르지 마세요.
하지만 이 보험은 직원 개인에게만 해당되며 가족은 이 보험을 가입할 수 없다. 지금 강한서의 의도는 이 혜택을 직원의 가족에게까지 확장하려는 것이다. 주혁은 집에 두 명의 환자가 있고 약을 자주 복용해야 한다. 만약 그가 회사의 이 선의를 거절한다면 그의 이미지와 맞지 않는다. 예전에 아들을 위해 인공 와우 이식 수술을 받을 돈을 마련하려고 위험을 무릅쓰고 직장을 잃었던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절대로 거절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강한서의 개인적인 의도도 있었다. 이런 세심한 직원에 대한 배려는 점차 아래 직원들이 한현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바꿀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고위층은 작은 이익에 별로 신경 쓰지 않지만 일반 직원들에게는 다르다. 대부분 사람들이 열심히 돈을 버는 이유는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다. 그들 대부분은 삼십대에서 마흔다섯 사이로 이 나이대의 사람들은 부모님을 부양하고 자식들을 키워야 한다. 회사가 약속한 성과급 같은 허황한 말보다는 이런 쉽게 보상받을 수 있는 실비보험이 직원들에게 실질적인 혜택을 주기 때문에 더욱 마음을 얻을 수 있다. 한현진은 마치 뭔가 깨달은 듯 강한서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이렇게 사람 마음을 얻는 거구나.” 강한서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 “사실 처음엔 이런 생각까지는 못 했어. 할머니가 병원에 갈 때는 항상 진씨 아저씨랑 같이 가서 내가 직접 겪을 일이 거의 없었거든. 이런 일도 거의 없었고.” “그런데 한 번은 민 실장이랑 같이 출장 가는 길이였어. 그때 민 실장 어머니께서 비를 맞으면서 우리를 마중 나왔는데 길이 미끄러워서 자전거를 타다 넘어지셨어. 가벼운 사고가 나이었고 수술이 필요한 정도로 심했었지.”“그때 민 실장한테 병원에 남아서 어머니를 돌보라고 하고 혼자 고객을 만나러 갔어. 며칠 만에 일을 마치고 병원에 들렀더니 수술은 다행히 성공적이었어.” “그런데 입원부터 치료까지 전부 합쳐서 거의 천만 원 가까이 들었더라. 민 실장은 보험 청구를 했
강한서가 가식적인 말투로 말했다. “부탁할게. 나중에 내가 너랑 여정 씨에게 크게 한 턱 쏠게.”강한서에게 등을 돌린 신우가 손을 들어 중지를 내밀었다. 한현진이 강한서에게 나지막이 물었다. “신우 씨가 널 꽤 귀찮아하는 것 같아. 전에 여정 씨에게 신우 씨는 욕을 하지 않는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아닐 걸?”강한서가 헛소리를 지껄였다. “난 우리 사이가 좋다고 생각해. 봐봐, 지금 얼마나 열심히 우릴 도와주고 있어.”한현진이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강한서를 쳐다보았다. ‘그래? 난 왜 신우 씨가 마지못해 하는 것 같지?’생각하던 한현진이 말했다. “이제 이런 일로 신우 씨 번거롭게 하지 말자. 우리 다른 방법 찾아보자. 언제까지 부탁할 순 없잖아.”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도 계속 신우에게만 매달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신우처럼 능력 있고 입도 무거운 사람을 찾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한현진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언제까지 신우에게 부탁할 수는 없었다. 신우의 할아버지가 위독하시기 때문에 지금은 삼촌들의 후계자 싸움이 가장 치열한 시기였다. 수많은 눈이 서로의 약점을 노리고 있었기에 신우의 처지 역시 살얼음판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이럴 때일수록 그 어떤 실수도 있어서는 안 된다. 신씨 가문에서 요즘 경쟁이 제일 치열한 것이 바로 제일 많은 계약금이 걸린 프로젝트였다. 강한서는 이 기회를 빌려 신우에게 투자금을 보태 그동안 진 신세를 갚을 생각이었다. 그날 오후, 지문 대조 결과가 나왔다. 편지 봉투와 그림에는 한현진과 강한서의 지문을 제외한 세 사람의 지문이 있었다. 그 세 사람 중 한 명은 주혁의 아내였고 또 다른 사람은 주혁의 아들인 주지호였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지문 대조 시스템에 등록되어 있지 않은 또 다른 사람의 지문이었다. 그 결과에 한현진은 조금 실망스러웠다. 이 정보를 따라 뭔가를 캐낼 수 있을 것이라 여겼지만 이렇게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조사 결과는 결국 시스템에조차 등록되어 있
시원하게 욕을 날린 신우는 의리 있게 강한서의 부탁을 들어줬다.10여 년 전 주혁이 경찰서에 남겼던 지문을 받은 강한서는 곧 생체 인식 실험실에 보내 두 지문을 대조하도록 했다. 2시간도 지나지 않아 결과가 나왔다. 한지와 편지봉투에서는 주혁의 지문을 찾을 수 없었다. 그 결과에 한현진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말도 안 돼. 뭔가 착오가 있는 거 아냐? 그때 직접 손으로 나에게 건네줬었어. 심지어 장갑도 하지 않았는데, 지문이 안 나왔다고?”신우가 말했다. “여긴 여정이와 여정이 사수가 함께 만든 실험실이에요. 게다가 형사들과 자주 협력하는 곳이기도 하고요. 지문 대조 시스템은 여길 따라올 곳이 없어요. 한 번도 틀린 적 없었어요.”신우의 말은 지문 대조 결과가 틀렸을 리가 없다는 얘기였다. 신우는 주머니에서 담배 한 갑을 꺼냈다. 이제 막 담배 한 대를 꺼내려던 그때, 손에 들린 담배가 강한서의 손에 내쳐져 툭, 쓰레기통으로 떨어졌다. 신우: ???머리가 복잡했던 한현진은 두 사람을 전혀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럼 왜 없는 거지?”여전히 오리무중에 빠진 한현진과 달리 강한서는 이미 눈치 채고 있은 듯 말했다. “혹시... 지금 그 사람은 애초부터 주혁이 아니었던 거야. 그래서 경찰에게 지문이 남아있을까 봐 그런 방법의 자신의 모든 지문을 지워버린 거야. 자신의 진짜 신분을 들키지 않기 위해.”강한서의 추측에 한현진의 등골이 오싹해졌다. “어떻게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거야? 그건 너무 많이 앞서간 거 아냐? 기사님은 가족도 있고 아이도 있어. 만약 정말 사람이 바뀐 거라면 가족들은 눈치 채야 하는 거 아냐?”“데가 이 세상에는 그렇게 똑같이 생긴 사람은 없어. 아무리 닮은 쌍둥이라고 해도 가족들은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잖아.”강한서가 입술을 짓이겼다. “어쩌면 가족들은 원래 그 사람이 돌아오길 바라지 않을 수도 있지.”한현진은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그녀는 얼른 강한서에게 물었다.
“얼른 다시 가져와. 급히 쓸데가 있어.”강한서: ?“왜 그래?”한현진이 말했다. “전화로 얘기하긴 복잡한 일이야. 아무튼 얼른 전화해서 그림 다시 가져오라고 해. 만약 안 건드렸으면 못 건드리게ㅔ 하고 만약 꺼냈으면 얼른 다시 포장하라고 해. 내가 금방 갈게. 만나서 더 자세하게 얘기해 줄게.”강항서가 대답했다. “알겠어. 지금 당장 다시 가져올게.”한현진은 일찍 퇴근하고 집으로 향했다. 전화에서 한현진이 워낙 급하게 얘기한 탓에 강한서도 그녀가 걱정이라 손에 있던 일을 미리 마친 후 칼퇴근해 집으로 돌아왔다. 만나자마자 강한서를 본 한현진이 물었다. “기사님 아직 그림 안 넣었지?”강한서가 고개를 가로 저었다. “네가 너무 일찍 얘기해서 넣지도 못한 상황이야. 네가 그림을 가진 후로 우리 두 사람을 제외하면 아무도 그림을 본 적이 없어.”한현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랍에서 일회용 장갑을 꺼내 낀 후 그림과 평지를 함께 꺼내 일회용 봉투에 넣었다. 한현진의 행동을 본 강한서의 눈가가 파를 뛰었다. “증거 수집해?”한현진은 봉토를 밀봉하며 말했다. “정말 증거가 될 수도 있어. 일단 가직해 둬.”“대체 무슨 일이야?”한현진이 장갑을 벗고 나서야 강한서에게 그동안 있었던 일과 본인의 의심과 의혹을 얘기했다. “이번 주에 기사님께서 뭔가 사고를 친게 틀림없어. 그래서 재판장에서 지문 인식하는 걸 거부하는 거겠지. 만약 기사님이 전과범이고 회사에서 그 사람을 그대로 둔다면 기사님이 영향을 끼치는 것 나뿐만이 아니야. 그건 말이 안 되는 것 같아.”“내가 생각해봤는데 일단 지문을 수집하는 게 더 나을 것 같아. 일단 고여정 씨께 이 사람이 대체 무슨 죄를 지었는지 알아봐. 그래야 만일이 사태에 대비를 하지.”한현진의 말을 들은 강한서가 의문을 제기했다. “주혁 씨의 지문은 이미 시스템에 등록되어 있어. 무슨 범죄를 저질렀는지는 신상 조회를 하면 바로 나올 텐데 지문을 지우는 게 무슨 소용 있어?”한현진이 멈칫했다. “없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