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4화

Author: 복덩이
휴대폰 너머의 반하준은 진작 전화를 끊어버렸다.

강민아는 차에 올라타 액셀을 밟고 달려나갔다. 하지만 검은색 스포츠카 한 대가 따라오고 있다는 건 알아차리지 못했다.

...

도로 양쪽의 풍경이 빠르게 뒤로 밀려났다. 은색 볼보가 아스팔트 도로 위에서 번개처럼 달려갔다.

강민아는 칠흑같이 어두운 눈빛으로 전방을 주시했다. 차를 이렇게 빨리 몰아본 게 정말 오랜만이라 계기판의 수치와 함께 아드레날린도 폭발했다.

현란한 색상의 스포츠카 세 대를 연속 추월하자 스포츠카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소리쳤다.

“대박. 저 사람 누구야?”

다른 스포츠카에 타고 있던 사람이 블루투스 이어폰으로 부하에게 지시했다.

“저 차 번호판 좀 조회해봐.”

강민아는 개조된 스포츠카들을 가볍게 제쳤고 커버에서도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몇몇 재벌 집 자제들이 낀 이어폰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찾았습니다. 강씨 가문의 차입니다.”

누군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강씨 가문? 그럼 운전자가 강나현인가?”

“강나현이 운전 저렇게 잘한다고? 그럼 전에 우리랑 레이싱할 때 실력을 숨기고 있었단 말이야?”

은색 볼보가 산길을 따라 뱅글뱅글 올라갔고 뒤에 검은색 페라리가 바짝 따라붙었다.

심은호의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 그 순간 머리카락이 눈썹 앞으로 툭 내려왔다.

그는 한때 카리스마가 넘쳤던 강민아를 본 적이 있었다.

강민아는 14살에 고연대학교 영재반에 입학하여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서 3년 연속 우승한 천재였다. 19살에는 자동차 경주 연맹에 지원하여 레이싱 면허를 취득한 후 월드 랠리 챔피언십에서 10위 안에 들었다.

그녀의 인생은 꽃길이었고 항상 꽃과 박수갈채가 함께했다.

그런데 박사 공부를 한 지 3년이 되던 해에 갑자기 학업을 포기하더니 가정에 충실하기 위해 재벌가 전업주부가 되었다.

그 후로 그녀의 차에는 카시트가 설치되었고 시속이 70㎞를 넘은 적이 없었다.

타이어가 지면과 마찰하면서 귀를 째는 듯한 소리가 났다. 흰 연기가 피어오르던 그때 강민아의 차가 갑자기 멈춰 섰다.

심은호의 페라리가 그대로 추월해 지나갔다. 이젠 백미러를 통해서만 강민아가 길가에 세워둔 볼보를 볼 수 있었다.

강민아가 전화를 받자 차 안의 스피커에서 반우정의 담임 선생님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현민이 어머님, 빨리 어린이집으로 오셔야겠습니다. 현민이가 오늘 왁스 병 캔디를 가져와서 친구들한테 나눠줬는데 배가 아프다는 아이들이 몇 명 있어서요.”

그녀는 아직 조금 전 레이싱의 흥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선생님, 전 더는 현민이 엄마가 아닙니다. 앞으로 어린이집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현민이 아빠한테 연락하세요. 절 찾지 마시고요.”

그러면서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넘겼다. 목소리가 단호하기 그지없었다.

“더는 그 아이를 신경 쓰지 않을 겁니다.”

“네?”

담임 선생님의 얼굴에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어린이집에서 일어난 일을 해결하려면 강민아를 찾아야 했다.

“현민이가 그러는데 왁스 병 캔디를 어머님이 주셨다고 하더라고요. 그걸 먹다가 목에 걸린 아이들이 몇 명이나 있었는데 저희가 제때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정말 큰일이 날 뻔했어요. 지금 다른 어머님들이 오셨거든요. 현민이 어머님이 직접 오셔서 해명해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반현민과 반우정이 다니는 어린이집은 부유한 아이들만 다니는 귀족 사립 어린이집이었다.

담임 선생님이 전화 왔을 때 휴대폰 너머에서 여자들의 분노에 찬 목소리가 정확히 들려왔다.

“현민이 어머님한테 연락이 닿았나요? 어떻게 아들한테 이런 걸 어린이집에 가져오게 할 수가 있죠?”

“우리 애는 아직 어려서 왁스를 뱉어내야 하는지도 모른다고요. 목이 다 긁혀서 피가 나요.”

강민아가 물었다.

“우리 딸 정이랑 통화할 수 있을까요?”

“네. 잠시만요.”

“엄마.”

반우정의 앙증맞은 목소리가 강민아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 강민아가 물었다.

“정이 넌 왁스 병 캔디 먹었어?”

“민이가 나한테 뚱보라고 놀리면서 다른 친구들한테는 다 왁스 병 캔디를 줬는데 나한테는 안 줬어요.”

강민아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왁스 병 캔디 누가 민이한테 줬는지 알아?”

“이모요.”

강나현일 거라고 진작 예상하고 있었다.

반하준이 항상 강나현을 감싸준 바람에 반현민도 그대로 따라 했다. 반우정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휴대폰 너머에서 반현민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왁스 병 캔디는 엄마가 준 거야. 현이 형이 준 게 아니라.”

“반현민, 거짓말하지 마.”

“닥쳐. 으앙.”

강민아는 그쪽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랐지만 곧 반현민의 애처로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담임 선생님이 큰소리로 말했다.

“반우정, 현민이 때리면 안 돼.”

맞은 게 딸이 아니라는 걸 확인한 강민아는 전화를 끊고 오소정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주머니, 방금 민이 담임 선생님이 전화 왔는데 민이가 가져간 왁스 병 캔디가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대요. 담임 선생님이 지금 왁스 병 캔디를 더 보내 달라고 하시네요.”

“네? 왁스 병 캔디요?”

강민아는 어리둥절해 하는 오소정을 뒤로 하고 할 말만 한 다음 전화를 끊어버렸다.

오소정은 오늘 반현민을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는 길에 강나현을 만났다고 했던 운전기사의 말이 문득 떠올랐다. 하여 바로 운전기사에게 강나현이 왁스 병 캔디를 준 게 맞는지 확인했다. 그러고는 강나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현 씨, 그 왁스 병 캔디 어디서 샀어요? 도련님 반 친구들이 너무 좋아해서 담임 선생님이 왁스 병 캔디를 좀 더 보내 달라고 하시네요.”

강나현의 얼굴에 기쁜 미소가 나타났다. 드디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반현민의 새엄마 노릇을 할 기회가 생겼다.

오소정이 거절할 리가 없었다.

“알았어요. 그럼 부탁할게요.”

...

강민아는 한 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검지를 가볍게 두드렸다. 그때 누군가가 유리창을 두드렸다.

유리창을 내리자 뼈마디가 뚜렷한 손가락 사이에 껴있는 명함 한 장이 그녀 앞에 나타났다.

검은색 금박 명함에 대성 로펌 파트너 심은호라고 적혀있었다.

“이혼 상담이 필요하면 나한테 연락해요.”

강민아가 명함을 받으며 말했다.

“심은호 씨는 서경시 최고의 변호사라서 수임료가 너무 비싸요.”

심은호가 한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서 있었다. 양복을 입긴 했지만 넥타이를 매지 않았고 셔츠 깃을 밖으로 펼쳐 목이 더 섹시해 보였다.

“돈 안 받아도 됩니다.”

강민아가 웃으며 말했다.

“돈 말고는 드릴 게 없는데요.”

“5년 전에 민아 씨가 박사 과정을 밟다가 포기하고 결혼하러 간다고 아버지께 말씀드렸잖아요. 아버지가 요즘 몸이 안 좋으신데 시간 나면 보러 좀 와줘요. 그럼 소송을 무료로 도와줄게요.”

심은호의 아버지 심한기는 과거 서경대학교 수학 학과 교수이자 강민아의 박사 과정 지도교수였다.

강민아가 고연대학교에 입학했을 때부터 심한기는 얼른 대학교를 졸업하여 박사 과정을 밟으라고 했었다.

나중에 그녀는 서경대학교의 박사 과정을 밟았고 심한기는 그녀에게 자꾸만 연구를 다그쳤다. 왜냐하면 해외에서 대학교에 대한 봉쇄 제재가 언제 있을지 모르기에 그때가 되면 연구가 점점 어려워지기 때문이었다.

강민아는 서경대학교와 반씨 가문을 오가면서 바쁜 나날을 보냈다. 반하준의 어머니는 그녀에게 요리, 꽃꽂이, 예술품 감상 수업을 등록해주었다. 그녀는 훌륭한 재벌가 며느리가 되기 위해 노력했지만 일과 학업을 모두 잘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결국 임신하고 하혈한 후에 심한기에게 자퇴하겠다고 했다.

“교수님을 뵐 면목이 없어요.”

그녀는 아직도 심한기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었다. 분노나 비난도 없이 그저 고개를 돌렸고 더 이상 그녀와 말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

심은호는 한 손으로 차 문을 짚고 좁은 차 안의 강민아를 내려다보았다.

“젊었을 땐 누구를 사랑해도 괜찮고 성숙했을 땐 무엇을 포기하든 다 괜찮아요. 아직 당신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고 다시 시작할 용기만 있다면요.”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Related chapters

  • 사라진 아내, 돌아온 나   제5화

    강나현이 비닐봉지를 들고 개조된 오토바이에서 내렸다.딱 붙는 요가 바지를 입은 여자를 본 경비원의 표정이 거의 넋이 나갔다.강나현은 풀어헤친 긴 머리를 흩날리면서 경비원에게 인사를 건넨 후 어린이집으로 들어갔다.미리 반현민의 반을 알아본 그녀는 담임 선생님을 보자마자 웃으며 다가갔다.“안녕하세요. 민이한테 왁스 병 캔디를 주러 왔어요. 듣자 하니 다른 친구들한테 인기가 많다면서요?”담임 선생님이 강나현을 훑어보며 물었다.“혹시 현민이한테 왁스 병 캔디를 준 게 당신이에요?”강나현이 신난 얼굴로 말했다.“네. 제 친구가 만든 건데 최고급 식용 왁스로...”“당신이었군요. 당신 때문에 우리 아들이 질식할 뻔한 거 알아요?”그녀의 뒤에 있던 누군가가 고함을 질렀다. 강나현이 돌아서자마자 찰진 소리와 함께 뺨 한 대를 얻어맞았는데 그 순간 눈앞이 다 캄캄해졌다.“왜 때려요?”“당신 때문에 우리 애가 죽을 뻔했다고요.”남에게 얻어맞고 가만히 있을 강나현이 아니었다. 입가에 묻은 피를 핥더니 몇몇 학부모들에게 달려들어 몸싸움을 벌였다....어린이집 하원 시간, 반우정은 데리러 온 강민아에게 강나현이 얻어맞던 광경을 아주 실감 나게 묘사했다.강나현이 얻어맞는 걸 보고 반현민이 도와주려 하자 반우정이 반현민의 옷깃을 붙잡고 끌고 갔다고 했다.얼굴이 퉁퉁 붓고 멍이 든 강나현은 반현민을 데리고 선생님에게 조퇴를 신청했다.다른 어머니들도 강나현을 알아보고 욕설을 퍼부었다. 그들이 무슨 욕을 하는지 반우정은 알아듣지 못했지만 험한 욕이라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반우정이 카시트에 앉아 창밖으로 보이는 익숙한 풍경을 바라봤다.“엄마, 우리 집에 가는 거예요?”아이의 반짝이던 눈빛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강민아가 대답했다.“마지막이야.”...“사모님, 아가씨, 드디어 오셨군요.”오소정은 강민아를 보자마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강민아가 집을 나간 지 하루밖에 되지 않았지만 저택의 도우미들은 거의 버티지 못할 지경이었다.그녀가 대답했다.“

  • 사라진 아내, 돌아온 나   제6화

    그 순간 강민아는 머릿속이 백지장처럼 하얘졌다. 마치 거대한 파도가 몰아쳐 그녀의 몸을 찢고 분노와 굴욕감을 일으키는 듯했다.그녀는 덤덤한 표정으로 그 목걸이를 받았다. 강나현의 눈빛이 반짝이더니 어느새 조롱할 준비를 마쳤다.반하준은 소파에 기대앉아 시선을 돌렸다.‘어쩜 저렇게 개처럼 굴어? 조금 전까지 그렇게 차갑더니 손가락 하나 까딱하니까 바로 꼬리를 흔드는 것 좀 봐.’강민아가 한 손가락으로 목걸이를 들더니 강나현의 목걸이 옆에 가져다 대며 비교했다.“나현아, 네가 한 목걸이 색깔이 더 좋네. 나랑 바꿀래?”만약 가짜라고 대놓고 말한다면 강나현이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온갖 변명을 늘어놓을 게 뻔했다.‘어디 한번 속으로 끙끙 앓아봐.’가느다란 목걸이였지만 강나현의 목덜미를 조이는 듯했다.강나현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원래는 강민아가 어리석게 가짜 목걸이를 걸고 밖에 나가서 남들에게 비웃음을 살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진짜와 짝퉁을 단번에 구별해냈다.찔리는 구석이 있던 강나현이 반하준의 안색을 살폈다. 이 화해 선물은 그녀가 멋대로 반하준을 대신해 준비한 것이었다. 일부러 가짜 목걸이를 사서 강민아에게 줬다고 생각하게 해서는 안 되었다.“언니가 원하는 거라면 다 줘야지.”그러고는 쿨하게 목에 걸고 있던 목걸이를 풀었다.그녀가 진짜 목걸이를 건넸지만 강민아는 받지 않고 가짜 목걸이를 천천히 강나현의 목에 걸어주었다.“이게 더 잘 어울려.”강나현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어울리긴 개뿔. 이 목걸이는 만 원도 안 되는 짝퉁이고 내 진짜 목걸이는 2백만 원이 넘는다고.’강민아는 그녀가 들고 있는 진짜 목걸이를 받아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언니, 화나면 나한테 풀 거지, 왜 멀쩡한 목걸이를 버리고 그래?”강민아가 강나현의 말을 가로챘다.“저 목걸이가 아까우면 직접 주워서 다시 해, 그럼.”“언니, 하준 씨랑 화해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거야?”말하면서 목에 건 가짜 목걸이를 벗으려 했다. 조금만 더

  • 사라진 아내, 돌아온 나   제7화

    강민아가 반하준에게 펜을 건넸다.강나현이 기대에 찬 눈빛으로 쳐다보다가 반하준이 이혼 합의서에 사인한 순간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언니는 너무 약해빠졌어. 난 만약 하준 씨 같은 남편이랑 살면 자다가도 웃었을 텐데.”강민아가 웃을 듯 말 듯한 표정으로 강나현을 쳐다보았다.“이젠 한시도 못 참겠어? 너무 티가 나잖아.”반하준이 사인한 이혼 합의서를 강민아에게 던졌다.“억지 부리는 건 그렇다 쳐도 왜 나현이한테 뭐래 그래?”더는 강민아와 말을 섞고 싶지 않았던 반하준은 목소리를 낮추고 반우정에게 말했다.“집에 오고 싶으면 언제든지 아빠한테 전화해.”반우정은 반하준을 쳐다보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강민아의 손을 꽉 잡았다. 강민아를 쳐다보는 반하준의 눈빛이 차갑기 그지없었다.“정이는 내 딸이라서 언제든지 다시 돌아올 수 있지만 넌... 쉽지 않을 거야.”반하준이 경멸 가득한 눈빛으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사실은 강민아에게 수를 잘못 뒀으니 언젠가는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었다.강민아가 웃으며 말했다.“이 집을 떠나서 내 앞에 펼쳐진 길이 낭떠러지일지라도 절대 돌아오지 않을 거야.”반하준의 두 눈에 알 수 없는 빛이 스쳤다.“4주 후에 법원에서 만나.”이 말을 내뱉고 나니 마음이 다 후련했다. 강민아는 반우정의 손을 잡고 현관으로 걸어가 신발을 신은 후 마지막으로 반현민을 돌아보았다.“민아, 엄마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거야.”반현민이 화를 내며 말했다.“그냥 빨리 가요. 맨날 아빠 화만 돋우는 엄마가 싫어요.”강민아가 반우정을 데리고 나간 후 강나현이 반하준에게 불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민아 언니는 너무 유난스러워. 여자들은 항상 징징거린다니까. 그중에서도 가정주부가 제일 징징거려. 능력도 없고 하는 일도 없어서 이 집을 나가면 굶어 죽을 수밖에 없을 텐데.”그러고는 반하준에게 속마음을 드러냈다.“난 만약 이혼하게 되면 무조건 빈손으로 나갈 거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더라도 사랑했던 사람한

  • 사라진 아내, 돌아온 나   제8화

    강나현의 꼬드김에 반현민이 고민하기 시작했다.“근데 이렇게 간단한 걸 만들면 칭찬 스티커 못 받는데...”“형이 인터넷에서 칭찬 스티커 왕창 사 줄게. 그럼 우리 민이 칭찬 스티커 부자 되는 거야.”강나현을 쳐다보는 반현민의 눈빛은 마치 바보를 보는 듯했다.“현이 형, 평소에 짝퉁만 입고 다녀요?”강나현이 바로 부인했다.“절대 안 입지.”반현민이 목소리를 높였다.“형이 사 준 칭찬 스티커를 어린이집에 가져갔다가 친구들한테 놀림받으라는 거예요? 선생님이 주는 스티커야말로 진짜 칭찬 스티커란 말이에요. 벌거벗은 임금님 이야기 몰라요?”반현민이 씩씩거리면서 화를 냈다.“그건 자신을 속이는 거잖아요.”다섯 살짜리 어린이에게 혼나자 강나현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알았어, 알았어. 건담 로봇 만들어주면 되잖아.”‘강민아도 플라스틱 빨대로 건담 로봇을 만들었는데 내가 못 만들 리가 없지.’10분 후 반현민의 처절한 비명과 함께 90%나 완성된 건담 로봇이 강나현의 실수로 와르르 무너져버리고 말았다.반현민이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내... 내 건담 로봇 돌려줘요.”“민아, 이건 내 잘못이 아니야. 네 엄마가 만든 건담 로봇이 튼튼하지 않아서 그래.”반현민이 울먹거리며 말했다.“내일 제출해야 한단 말이에요. 엄마한테 갈래요.”강나현이 반현민을 째깍 붙잡았다.“네 엄마는 널 버렸어. 이젠 숙제 안 도와줄 거야.”그러고는 휴대폰을 들고 연락처를 뒤졌다.“다른 사람 불러서 네 엄마가 만든 것보다 훨씬 멋진 건담 로봇을 만들어줄게.”강나현이 아는 이성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반씨 집안에 와서 숙제를 도와주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건담 로봇은 무슨. 나와서 술이나 마시자. 아가씨들도 몇 명 불러줄게.”강나현이 솔깃해하는 표정으로 말했다.“약속 지켜. 난 애기 같은 여자애들이 제일 좋더라.”전화를 끊은 그녀는 숙제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오늘 밤에 무슨 일이 있어도 친구들과 밤새 술을 마실 생각이었다.결국 중고 거래

  • 사라진 아내, 돌아온 나   제9화

    반우정이 지지 않고 맞섰다.“건담 로봇은 엄마가 밤새워서 만들어준 거잖아.”“엄마가 만든 건담 로봇이 튼튼하지 않아서 벌써 망가졌어. 현이 형이 다시 만들어준 새 건담 로봇이 최고야.”반현민의 의기양양한 모습에 반우정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엄마가 밤새워 숙제를 도와주는 모습을 다 봤을 텐데 왜 엄마의 노력을 저렇게 무시하는 거지?’사실 강민아도 그렇게까지 힘들게 밤새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가정부에게 야근 수당을 줘서 두 아이의 숙제를 맡긴 적이 있었지만 도우미가 시어머니에게 일러바친 바람에 크게 혼났었다.“우리 집의 후계자를 정성껏 키우라고 고연대를 졸업한 천재 소녀를 며느리로 들인 건데 애들 숙제를 도우미한테 맡기면 어떡해? 민이를 키우는 건 네 평생의 임무야.”도우미는 정해진 시간이 되면 퇴근할 수 있지만 엄마인 그녀는 계속 야근하면서 아이들의 숙제를 끝마쳐야 했다.반우정은 더는 반현민을 쳐다보지 않고 강민아의 손을 잡고 옆으로 지나갔다.반현민이 목을 길게 빼 들고 도로 끝을 애타게 보면서 중얼거렸다.“내 건담 로봇은 왜 아직도 안 오는 거야?”반현민은 다른 친구들이 부모와 함께 지나가는 걸 지켜보았다. 몇몇 아이들이 문 앞에서 뭐 하냐고 물을 때마다 웅장하고 멋진 건담 로봇을 기다린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이번 숙제는 환경 지킴이 발표회 행사 중 하나였고 선생님이 각 반에서 우수 작품을 선정할 예정이었다.우수 작품을 만든 아이만이 강단에 서서 작품을 소개할 자격이 있었다.어린이집에서는 매번 행사를 크게 열었는데 심지어 서경 방송국 어린이 채널 기자들까지 와서 이 발표회 행사를 촬영할 예정이었다.어린이집에 다닌 후로 반현민은 1등 자리를 놓친 적이 없었다. 그로 인해 무슨 일이든 1등을 하려는 습관이 생겼다.그때 강나현이 개조한 오토바이를 타고 나타났고 오토바이 소리가 문 앞에 울려 퍼졌다.반현민이 강나현에게 달려갔다. 강나현이 오토바이를 타는 모습이 항상 멋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감상할 겨를이 없었다.“왜 이렇게 늦었어

  • 사라진 아내, 돌아온 나   제10화

    건담 로봇을 제작한 사람은 강나현에게 상자를 열면 거대한 건담 로봇이 쉽게 무너질 수 있으니 상자를 조심해서 다루고 파손 시 책임은 그녀에게 있다고 주의를 줬다.반현민은 강나현을 굳게 믿었던 터라 고개를 끄덕였다.주아영이 엄숙하게 말했다.“강나현 씨, 이러시면 안 됩니다. 현민이 작품이 전시 및 심사를 거치지 않고 무대에 오를 자격을 얻는 건 다른 아이들에게 불공평합니다.”하지만 강나현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연진숙 어르신이 이 어린이집 이사장인 거 아세요? 민이 아빠가 오늘 민이 발표를 보러 온다는 건 아시고요?”반현민의 두 눈이 반짝였다.“아빠가 여길 온다고요?”자리에 앉아 있던 반우정은 반현민의 말에 심장이 쿵쾅거렸고 두 눈이 다 반짝였다.“일이 바쁜 아빠가 어린이집에 온다고요?”반현민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묻자 강나현이 자랑스럽게 말했다.“내가 오라고 하면 무조건 와.”“현이 형 진짜 대단해요.”강나현을 쳐다보는 반현민의 눈빛에 존경심이 가득했다.강나현이 한 손을 허리에 얹고 가슴을 쫙 펴더니 주아영을 차갑게 쏘아보았다.“제가 말한 대로 해야만 강당에서 진행되는 녹화가 최고의 효과를 낼 수 있을 겁니다. 반씨 가문의 도련님이 1등 하지 못하면 이사회에 어떻게 설명하는지 두고 보겠어요.”주아영도 달리 방법이 없었다. 반현민을 건드리는 걸 그녀도 두려워할 뿐만 아니라 다른 학부모들조차도 반씨 가문에 함부로 하지 못했고 아이더러 항상 반현민에게 양보하라고 했다....강당 안에 학부모들로 가득 차 있었다. 대부분 엄마들이었는데 다들 한껏 치장한 티가 났다.재벌 사모님들은 함께 모여 아이들과 남편 얘기를 하는 것 외에 새로 산 명품이나 경매에서 낙찰받은 골동품에 대한 얘기도 나눴다.“현민이 어머님, 오늘 옷차림이 좀 수수하신데요?”몇몇 재벌 사모님들이 강민아에게 말을 걸면서 그녀를 훑었다. 눈썰미 좋은 사람들은 이미 강민아의 결혼반지가 사라진 것을 알아챘다.모두 강민아가 아들딸 쌍둥이를 낳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 사라진 아내, 돌아온 나   제11화

    반하준을 돌아보던 강민아는 제자리에 굳어버렸다.해가 정말로 서쪽에서 떴나. 그동안 반하준에게 어린이집에서 여는 학부모 동반 활동에 참석하라고 여러 번 말했어도 그는 늘 시간이 없다고 말했다.시어머니 연진숙도 어린이집 활동 때문에 반하준을 귀찮게 하지 말라고 그녀에게 한소리를 했었다.자녀를 교육하고 자녀와 관련된 모든 문제를 처리하는 것은 전적으로 아내인 강민아의 책임이라면서 말이다.눈 깜짝할 사이에 강나현과 반하준이 강민아 앞으로 다가왔다.“언니, 내가 하준 씨 데려왔어.”자신을 바라보는 강민아의 눈동자에 초점이 없는 것을 본 남자는 피식 웃음이 났다.강민아가 어떻게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자신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엔 누가 봐도 사랑이 가득하지 않나.반하준이 강민아 옆에 앉고 강나현도 반하준 옆에 자리를 잡았다.이곳에 있던 재벌가 사모님들이 저마다 이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흥미진진하게 수군거리기 시작했다.“이따가 민이 손재주 보면 깜짝 놀랄 거야.”강나현이 고개를 옆으로 기울여 반하준에게 속삭이는 모습이 뒤에서 보면 두 사람의 머리가 바짝 붙어있는 것 같았다.“오늘 반차 냈어?”강민아의 목소리가 들리자 반하준이 대답하기도 전에 강나현이 끼어들었다.“하준 씨 오늘 바쁜데 내가 한 시간만 내서 민이 강연 보러 오자고 했어.”강민아의 입가에 조롱 섞인 미소가 번졌다.“나현이 네가 하는 말이면 다 듣네.”발붙일 틈도 없이 바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단지 반하준에겐 그녀가 중요하지 않았던 거다.막이 걷히고 아이들의 강연이 시작되자 강나현이 무대를 가리키며 신이 나서 외쳤다.“하준 씨 아들 무대에 올랐어!”반현민은 카트를 이용해 1미터가 넘는 커다랗고 빨간 골판지 상자를 무대 위로 가져갔다.붉은 상자엔 ‘우수작'이라는 라벨이 눈에 띄게 붙어 있었다.반현민은 무대 아래 착석한 반하준을 보고 자랑스럽게 가슴을 쭉 내밀었다.강나현은 거짓말하지 않았다. 아빠가 정말로 그녀의 말 한마디에 보러 온 것이다.반현민의 맑고 앳된 목소

  • 사라진 아내, 돌아온 나   제12화

    “민아, 얼른 건담 로봇 꺼내.”강나현이 손을 내밀자 반현민은 곧장 상자를 닫으며 당황한 듯 강나현을 향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아니요. 꺼내면 안 돼요.”“꺼내!”강나현이 낮게 윽박질렀다.“내가 힘들게 건담 로봇 만들어줬는데 네가 이렇게 감추면 얼마나 창피하겠어!”반현민은 강나현이 상자를 열지 못하도록 아예 골판지 상자에 몸을 밀착시켰다.강나현은 아이를 떼어내려 하고 아이는 종이 상자를 꽉 붙잡고 버텼다.그때 갑자기 상자가 뒤집어지고 안에 있던 플라스틱 빨대가 모두 쏟아져 나왔다.흩어진 빨대 더미 속엔 분홍색 포스트잇 한 장도 들어 있었다.포스트잇에 적힌 글이 카메라를 통해 스크린에 그대로 전해졌다.[고작 59,900원으로 사람한테 밤새 건담 로봇을 만들라고 해? 나가 죽어!]반현민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플라스틱 빨대가 무대 아래로 굴러가는 것을 지켜보았다.무대 아래 서 있던 주아영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민아, 너 숙제를 안 해 온 거야?”“아니요. 전 했어요!”반현민의 작은 입은 떨리고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주아영은 포스트잇을 집어 들고 아이에게 물었다.“그러면 이 쪽지는 뭐야? 누구한테 돈을 주고 시킨 거야? 선생님은 너희들이 부모님과 함께 숙제를 완성하길 바랐는데 어떻게 선생님한테 거짓말을 할 수가 있어?”“윽...”한 번도 이처럼 억울함을 당한 적이 없던 아이는 작은 체구로 큰 무대에 주저앉은 모습이 꼭 버려진 아기 새 같았다.“전...”무슨 말을 해도 소용이 없다는 걸 잘 알았다.반현민은 강민아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강민아가 반씨 가문을 떠나지 않았다면 플라스틱 빨대로 만든 아름답고 멋진 건담 로봇을 만들 수 있었을 거다.아직 완성되지 못한 건담 로봇은 강나현이 망가뜨렸고, 강나현의 거짓말 때문에 이렇게 큰 상자에 쓸데없는 플라스틱 빨대만 잔뜩 들어 있었다.그리고 자신과 강나현은 선생님과 모두를 속인 거짓말쟁이가 되었다.억울한 마음에 눈물이 반현민의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아이가 많은

Latest chapter

  • 사라진 아내, 돌아온 나   제216화

    그는 루나가 일부러 자신을 꼬드긴다고 생각했다.여자들이 이런 식으로 밀고 당기는 걸 수없이 봐왔으니까.하지만 루나가 원하는 스포츠카를 경매에 부쳤는데도 루나가 나타나도록 유인하는 데 실패했다.이에 반하준은 종주산에서의 레이스가 빠르고 격정적인 하룻밤 단꿈이 아니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그런데 이번에 루나가 다시 나타난다는 말에 반하준은 엄규민에게 음성 메시지를 보냈다.“국제 레이싱 대회에서 루나가 나타나면 잘 지켜봐!”그는 루나의 헬멧을 벗기고 그녀의 진짜 모습을 보고 싶다는 강한 충동이 들었다....검은색 드림이 도로 위를 달리고 조수석에 윤세현이 앉았다.그녀는 고개를 돌려 운전하는 강민아를 바라보며 달콤한 미소를 지었다.마치 5년 전,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이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5년 동안 연락이 끊겼다가 다시 만났어도 마치 서로의 마음이 한 번도 떨어지지 않은 것처럼 조금의 어색함도 느껴지지 않았다.“발동기가 소음이 좀 심하네. 오늘 밤에 정비소로 보내서 제대로 고쳐야겠어.”강민아가 대답했다.“그래, 같이 가자.”그녀와 단둘이 있으니 윤세현은 부쩍 말수가 늘었다.“내가 돌아와서 시범경기에 참여하는 거야?”강민아는 흑백이 분명한 눈동자로 앞만 주시했다.“세현아, 난 언제 시작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해. 내가 다시 레이서의 길을 걷게 된다면 가장 먼저 함께하고 싶은 사람은 너야.”그녀의 말에 윤세현의 귀가 붉게 물들었다.“다시 레이서의 길을 가려고?”“응.”강민아는 핸들을 꽉 잡았다.“이번에는 더 이상 루나라는 이름에 숨지 않고 전 세계에 루나의 본명이 강민아라는 걸 알릴 거야.”육성민이 운전하는 SUV 뒷좌석엔 심은호와 정이가 앉아 있었다.심은호는 두 손을 운전석과 조수석 뒤편에 올려놓은 채 시선은 줄곧 이미 차들 사이로 사라진 드림을 노려보고 있었다.“쫓아가요. 바짝 붙어요. 기사님, 제 아내와 바람난 남자가 저 차 안에 있어요!”육성민의 이마가 들썩이며 푸른 핏줄이 툭 튀어나왔다.“당장 차 밖으로

  • 사라진 아내, 돌아온 나   제215화

    “루나도 시범경기에 참가한다고요?”이 소식을 처음 들은 엄규민은 강민아에게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그걸 어떻게 알아요?”하지만 이내 알 것 같았다. 윤세현이 강민아에게 말했겠지.강민아와 윤세현은 워낙 친한 사이였기 때문에 그녀가 레이싱에 대해 전혀 몰라도 윤세현으로부터 루나에 대해 들었을 것이다.루나가 시범 경기에 출전한다는 소식을 접한 빈센트는 승부욕에 불이 붙었다.“루나가 복귀한다고요?”그는 다른 동료들에게 이 소식을 전했다.“루나의 성공은 우리 덕분이라는 걸 보여줄 거예요. 우리의 도움 없이 루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빈센트가 윤세현에게 흥분하며 말했다.“루나가 문라이트 클럽 대표의 챙김을 받아 우리보다 더 대단한 팀을 만들어야만 시범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따낼 수 있을 거야.”또 다른 엔지니어도 이렇게 말했다.“현재 전 세계에서 우리보다 더 강한 레이싱 팀은 없어. 우리는 아마추어 선수로 루나를 이길 거야. 윤세현, 똑똑히 지켜봐!”윤세현의 눈은 빨갛게 달아올랐고 얼굴은 피가 거꾸로 솟아올라 연분홍빛으로 물들었다.오만한 외국인들에게 너무 화가 나서 말도 잇지 못했다.그때 시원한 물처럼 차가운 강민아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그러면 어디 한번 두고 보죠. 너무 비참하게 지지는 않길 바라요.”강민아는 그들을 향해 담담한 미소를 짓고는 차가운 손을 윤세현의 뜨거운 볼에 갖다 댔다.“열 좀 식히고 집에 가자.”심은호는 강민아와 윤세현의 다정한 모습에 입에서 쓴맛이 느껴졌다.그는 팔짱을 낀 채 엔지니어라는 사람들을 쳐다보지도 않았다.문라이트 레이싱 클럽이 해체된 후 루나를 위해 일하던 팀원들은 여러 회사에 스카우트되어 높은 연봉을 받으며 일하게 됐다.빈센트는 문라이트 레이싱 팀에서 총괄 엔지니어로 있다가 클럽에서 일하던 경험으로 자서전까지 썼다.루나 곁에서 일했다는 경험만으로 여러 명문대에 객원 교수로 초빙되기도 했다.심은호가 일을 맡긴 매니저의 눈에 띄어 영입되었고 루나 덕에 유명세를 치렀으면서 이제 저만치 콧

  • 사라진 아내, 돌아온 나   제214화

    엄규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윤세현이 말했다.“전 부신 그룹이 싫어요. 제가 소유한 회사 전부 부신 그룹과 협업하지 않을 거예요.”엄규민은 의아했다.“혹시 부신 그룹에 대해 어떤 오해가 있으신가요?”그가 강민아를 돌아보더니 알겠다는 듯 윤세현에게 물었다.“혹시 강민아 씨가 부신 그룹에 대해 좋지 않은 얘기를 했나요? 윤 선생님, 오해하지 마세요. 강민아 씨는 부신 그룹에 대해 모릅니다. 게다가 저희 대표님과 사이도 좋지 않습니다. 반 대표님께선 거금을 들여서 강나현 씨 레이싱 코치로 모시고 싶어 합니다. 신중하게 생각을...”“됐어요.”윤세현은 엄규민을 경계하는 표정으로 바라보더니 강민아에게 딱 붙어 그녀의 어깨에 턱을 올려놓았다.“난 루나만 위해서 일해요.”“윤세현, 하늘에서 떨어지는 돈을 왜 안 받아?”한 중년 남자가 다가왔다. 그의 이름은 빈센트, 문라이트 레이싱 클럽 엔지니어 중 한 명이었다.윤세현의 얼굴이 굳어졌다.“반하준이 세계적인 대회에서 프로 레이서가 아닌 아마추어 선수를 도와달라는데 부끄럽지 않아요?”빈센트는 대수롭지 않은 듯 두 손을 벌리며 말했다.“그냥 시범 경기잖아.”강민아는 엄규민과 윤세현의 말에서 대충 상황을 파악했다.“강나현이 국제 레이싱 대회에 출전한다고요?” 엄규민은 강민아에게 자랑스럽게 말했다.“저희 부신 그룹이 이번 서경에서 열리는 국제 레이싱 대회의 스폰서 중 하나라 강나현 씨가 레이서로 시범 경기에 출전할 예정입니다.”그러면서 웃으며 덧붙였다.“강민아 씨는 잘 모르겠지만 윤 선생님과 친구시죠? 윤 선생님은 최고의 여자 레이서 루나 선수 곁을 지켰어요. 훌륭한 내비게이터라 반 대표님께서 거액을 들여 데려가려는 거니까 강민아 씨는 윤 선생님 돈 버는 데 방해하지 마세요.”“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 되는 줄 아네.”강민아의 말에 엄규민의 잘난 척하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고, 옆에서는 윤세현이 빈센트에게 말했다.“아마추어 레이서가 시범 경기에 출전했다는 건 시범 경기에 출전할 수 있었던

  • 사라진 아내, 돌아온 나   제213화

    심은호는 온몸의 피가 싸늘하게 식어가며 손발이 차가워지고 속에선 열불이 들끓었다.세상이 미쳐 돌아가고 있다.강민아의 침대가 그렇게 크다면 셋이 같이 자는 건 안 될 게 뭐가 있나!말문이 막힌 심은호의 목울대가 요동쳤다.강민아는 심은호의 붉어진 눈가를 보고 물었다.“심은호 씨, 왜 그래요?”남자가 고개를 저으며 울먹이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아니에요. 민아 씨가 행복하면 됐어요.”강민아는 어리둥절했고, 두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감고 있던 윤세현이 턱을 그녀의 어깨 위로 올려놓으며 작게 말했다.“저 사람 이상해.”심은호는 두 손으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살면서 이런 서러움을 당해본 적이 없었다.저 기생오라비가 강민아의 애정을 믿고 이 틈에 그를 모함하고 있다.심은호가 입을 열어 조롱하려는데...강민아가 다정하게 윤세현의 얼굴을 쓰다듬었다.“우선 집에 가자. 10시간 동안 비행기 타느라 힘들었지? 집에 가서 씻고 푹 쉬어.”심은호는 벼락을 맞은 기분이었다.물에 빠진 강아지 같은 표정을 짓는 그의 머리 위로 만약 귀가 있었다면 축 늘어졌을 거다.‘그래, 윤세현만 챙기지.’그는 그냥 어두운 구석에 숨어서 혼자 상처를 핥으며 질투심에 미쳐버릴 수밖에. 잔뜩 뒤틀리고 벌레가 되어서 기어다니기나 하겠지.심은호에게서 원망 섞인 기운이 끊임없이 흘러나오자 윤세현은 자신과 강민아의 등을 완전히 밀착시켰다.“응!”그러면서 강민아의 코트에 비비적거렸다.5년 동안 떨어져 지냈지만 두 사람은 한 번도 헤어진 적 없었던 것처럼 가까웠다.두 사람이 서로에게 기대고 나서야 윤세현은 5년 동안 비어 있던 자신의 마음이 비로소 채워졌음을 느꼈다.“저 사람 윤세현 아닌가?”“우리랑 같은 비행기 타고 왔는데 몰랐어?”입국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커다란 짐을 카트에 가득 싣고 온 외국인들이 여러 명 있었다.그들은 한참 동안 윤세현을 관찰하면서 윤세현의 품에 안겨 있는 강민아를 살펴보았다.윤세현이 누구와 이토록 가깝게 지내는 건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 사라진 아내, 돌아온 나   제212화

    윤세현은 칼날 같은 심은호의 눈빛을 보고 작은 심장이 몇 번이나 놀랐는지 모른다.‘누구지? 낯이 익은데.’이제 막 비행기에서 내렸는데 원수라도 만난 걸까.정이는 가볍게 캐리어를 끌며 매끄러운 타일 위를 날아다녔다.심은호의 눈빛에 놀란 윤세현은 강민아의 뒤로 숨었다.낯을 가리는 그녀에겐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무척 힘들었는데 빤히 쳐다보는 이성의 눈빛은 더더욱 불편했다.늘 머리를 짧게 자르고 옷도 중성적으로 입어서 이성의 시선이 그녀에게 향하는 일이 드물었다.본다고 해도 잘생긴 외모에 대부분은 우호적인 시선을 보냈다.육성민이 덤덤하게 윤세현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네요.”윤세현도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강민아의 오빠에 대해서는 키 크고 가슴도 크다는 것 외엔 별다른 기억이 없었다.강민아가 윤세현에게 소개했다.“이쪽은 심은호 씨, 문라이트 클럽 대표야.”윤세현은 제법 놀라며 고개를 돌려 강민아의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난 줄곧 문라이트 대표가 느끼한 아저씨인 줄 알았어.”심은호는 빠득 이가 갈렸다.‘저 기생오라비가!’감히 그가 보는 앞에서 강민아와 귓속말을 주고받는 건 기선제압이 아니고 뭘까.심은호는 서늘한 시선으로 윤세현을 뚫어져라 보며 손을 내밀고 차갑게 말했다.“안녕하세요.”윤세현은 강민아의 팔짱을 낀 채 심은호와 악수할 생각이 없는 듯 고개만 끄덕였다.심은호의 어두운 눈동자엔 두꺼운 얼음이 한층 더 쌓였다.강민아가 설명했다.“세현이가 낯을 가려서 남자와 신체적 접촉하는 게 익숙하지 않아요.”강민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심은호가 강한 적대감을 드러낸 탓인지 윤세현이 목을 움츠리며 강민아 뒤로 숨었다.그녀의 두 손이 자연스럽게 강민아의 허리를 감쌌다.이렇게 강민아를 안으면 안정감이 느껴졌다.심은호의 눈동자에 드리웠던 차가운 얼음이 쩍쩍 갈라졌다.자주 사람을 죽이는 친구에게 먼저 오른손을 자를지, 왼손을 자를지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그런데 강민아는 윤세현의 스킨십에

  • 사라진 아내, 돌아온 나   제211화

    심은호는 경멸 섞인 야유를 내뱉었다.“허, 누구 심장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네요.”그가 딱딱하고 차가운 목소리로 오만하게 비아냥거린 뒤 육성민의 얼굴을 바라보았다.육성민의 표정도 굳어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는 팔짱을 낀 채 다정하게 안고 있는 두 사람을 바라볼 뿐, 깊고 어두운 눈가엔 흐뭇한 감정까지 담겨 있었다.‘나만 한심한 놈이야?’부서진다는 심장은 심은호 것이었나보다.‘역시 육 소위, 흐트러짐이 없네.’사실은 그도 당장 달려가 윤세현에게 주먹을 날리고 싶지만 강민아 때문에 억지로 참는 게 분명하다.심은호는 깊게 심호흡하며 육성민을 따라 배우기로 했다. ‘이 정도 아량도 없이 어떻게 첩 노릇을 해?’“나도 뽀뽀할래요!”윤세현에게 다정하게 입 맞추는 강민아를 본 정이도 기회가 오자마자 달려들었다.강민아가 정이를 안아들자 정이는 윤세현의 볼에 여러 번 뽀뽀했다.윤세현의 눈가는 촉촉했고 목까지 빨개진 그녀가 수줍게 말했다.“네 딸이야?”강민아는 고개를 끄덕였다.“응, 이름은 강윤정, 그냥 정이라고 불러.”윤세현은 다정하게 정이를 안아주었고 강민아는 그녀와 정이를 동시에 품에 가두었다.심은호는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옛말에 하늘에서 떨어져 다친 학처럼 잘생긴 얼굴이 창백해졌다.“그쪽은 왜 안 가요?”심은호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내가 왜 가요?”육성민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그쪽이 죽이고 시체는 내가 처리할게요.”심은호는 육성민의 감옥생활까지 생각해 둔 상태였다.한꺼번에 두 라이벌을 제거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였다.육성민이 한심하다는 눈빛을 보내며 윤세현에 대한 심은호의 적대감을 알아차리고 경고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방해하지 마세요.”심은호는 경악했다.“오빠가 돼서 둘이 공공장소에서 뽀뽀하고 껴안는 걸 그냥 놔둘 거예요?”육성민은 크게 이상해할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그게 뭐 어때서요? 민아가 얼마 만에 윤세현을 만난 건데요.”심은호는 다시 봤다는 눈빛으로 육성민을 바라보았다.“육 소위님은 진작

  • 사라진 아내, 돌아온 나   제210화

    “하...”그녀는 자기 목을 빙빙 돌며 움직이는 가느다란 생명체가 무엇인지 깨달았다.그런데 눈을 크게 떠도 상대의 얼굴이 보이지 않자 숨막히는 공포에 강나현은 소리조차 낼 수 없었다.“헉!”강나현은 두 다리가 풀리며 곧바로 기절했다.그들이 있는 곳 위쪽 경사면에는 감시용 카메라가 곳곳에 설치되어 있었고, 반하준은 잠시 생각한 뒤 민이를 데리고 다시 경사면 아래로 내려갔다....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반하준이 민이와 강나현을 데리고 병원에 갔다.비탈길 아래쪽에는 벌레가 유난히 많아 반하준은 얼굴과 목에 여러 방 쏘였고 그의 옷 속으로 파고들어 가슴 쪽을 문 벌레도 있었다.민이 역시 온몸에 붉은 발진이 생겼다.강나현은 더더욱 엉망진창이었는데 비탈길에서 기절한 후 벌레에게 물려 눈꺼풀이 부어올랐고 정신을 차렸지만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었다.강나현은 눈이 멀었다고 생각했는지 반하준과 민이의 귀청을 찢을 듯한 비명을 내질렀다.침대에 엎드린 그녀의 엉덩이와 허벅지에 약을 발라주던 간호사는 쉬지 않고 아우성치는 그녀 때문에 몇 번이나 눈을 흘겼다.“강나현 씨?”뒤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들리자 강나현은 고개를 돌렸다. 눈꺼풀에 연고를 발라 눈을 뜨지 못해서 자신을 보러 온 사람이 누구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아, 네. 누구세요?”“저희는 운학구 지구대에서 온 경찰입니다. 신고를 받고 출동했고 폭행 미수에 대한 증거도 있으니 조사에 협조해 주시기를 바랍니다.”...며칠 후 서경 국제공항.강민아는 정이의 손을 잡고 출구 쪽 난간 뒤에서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다.“엄마, 윤세현이란 사람은 어떻게 생겼어요?”“사람 중에 제일 잘생기고 매력 있는 사람이 엄마 절친이야.”육성민과 심은호는 그들 모녀 뒤에 서 있었다. 심은호는 하품했다. 현재 시각 아침 7시, 윤세현을 데리러 오기 위해 그는 날이 밝기도 전에 일어났다.그곳에 지나가던 여행객들은 저도 모르게 두 남자를 돌아보곤 했다.마스크를 쓴 육성민은 사람들의 눈에 띄기 싫어했지만 훤칠하고

  • 사라진 아내, 돌아온 나   제209화

    강민아는 식사를 마친 후 서둘러 반용화의 서재로 들어갔다.반용화의 서재는 개인 서재보다 도서관에 더 가까웠다.그의 거처에는 3층짜리 서재가 있었는데, 소장하고 있는 책 대부분이 절판된 책이었고, 자료들은 기밀에 속해 유수의 대학교수들도 접근하기 어려운 것이었다.강민아는 지식의 바다에 푹 빠졌고 정이와 육성민은 여전히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두 시간 넘게 책을 읽고도 그녀는 미련 가득한 채로 서재를 나섰다....구름 목장, 언덕 아래 차가운 산바람이 휘젓고 지나갔다.“아빠, 오줌 마려워요! 못 참겠어요!”민이의 목소리는 금방이라도 울 것만 같았다.반씨 가문에서 애지중지 키운 도련님인데 이렇듯 궁색한 처지에 놓였다.민이는 비탈길에 기댄 채 두 손은 양옆에 묶여있어 화장실이 아니라 스스로 바지 벗을 능력도 없었다.그런 민이 옆에 누워 있던 반하준은 바람막이를 입고 있었지만, 날이 춥고 안개가 자욱한 산속에서 기온이 떨어지는 데 장시간 움직이지 않으니 몸의 혈액 순환이 원활하지 않아 온몸이 뻣뻣하고 팔다리가 저린 상태였다.반하준은 굳은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며 마음속으로는 이 또한 반용화가 그에게 주는 퀘스트라고 생각했다.그런데 민이가 자꾸 귓가에서 칭얼거리니 반하준은 상당히 짜증이 났다.그는 평소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이 드물었고 민이는 정말 철이 없었다.‘대체 5년 동안 강민아가 어떻게 가르친 건지.’조금 전 반하준은 비탈길 위에 있는 사람을 부르려고 했지만 애초에 거기를 지키는 사람이 없었다.반하준은 고개를 들어 위를 쳐다보았다.시간이 늦어질수록 사람이 있을 가능성은 작아졌다.그래서 우선 민이를 붙잡아 데리고 나간 뒤 사람을 불러 강나현을 구할 생각이었다.강나현은 발을 삐끗하고 엉덩이와 허벅지까지 다쳤기에 그 혼자 어리고 약한 두 사람을 데리고 떠나기엔 무척 성가셨다.반하준은 늘 약자를 싫어했다.한 손으로 몸을 지탱하고 비탈길을 막 올라갔을 때 어두운 숲에 여러 개의 손전등 불빛이 보이자 반하준은 급히 몸을 숙여 경사

  • 사라진 아내, 돌아온 나   제208화

    장기명은 고작 대학교수이고 옴 테크를 도와주는 학자 중 한 명에 불과한데 옴 테크 임원 앞에서 이렇게 큰 입김을 자랑한다고?반용화는 휴대전화를 들고 조용히 부하에게 지시를 내렸다.“장기명의 모든 움직임을 주시해.”장기명은 전화기 너머로 강민아에게 히죽거리며 말했다.“정 고마우면 밥이나 한 끼 사요.”“일 끝나면 제대로 감사 인사드릴게요. 지금은 불필요한 구설수를 피하기 위해 접촉을 줄이는 게 좋을 것 같아요.”장기명은 전화기 너머로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었다.“물론이죠. 강민아 씨가 인수 책임자라는 소식이 알려지면 반 대표도 주시할 텐데 조심하세요.”그러면서 그녀 대신 욕설을 퍼부었다.“반하준은 사람도 아니에요. 민이 그 자식도 마찬가지고. 두 부자가 강민아 씨에게 그랬다는 걸 듣고 정말 달려가서 주먹을 날리고 싶었어요.”“그럼 가서 구름 목장 지키세요.”반용화의 서늘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그의 목소리를 들은 장기명은 고양이를 본 쥐가 되어 황급히 목을 어깨 쪽으로 움츠렸다.조금 전 강민아가 반용화 집에 있다고 했으니 불쑥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그들 부자와 강나현이 비탈길 위로 올라오려고 하면 가서 주먹을 날리세요.”장기명은 다리에 힘이 풀렸다.강민아 앞에서 큰소리 한번 친 것뿐인데...정말 반하준을 만나면 그 앞에서 감히 방귀도 뀌지 못했다.“반... 반 연구원님, 저는 오늘 밤에 정리해야 할 중요한 자료가 있어서...”전화기 너머로 장기명의 목소리가 덜덜 떨리고 있었다.“구름 목장에 가서 하세요. 사람 보내서 모셔다드리죠.”“하, 하지만...”반용화의 살얼음 같은 목소리가 귓속을 파고들었다.“대답만 하세요.”분명 휴대폰으로 통화만 하고 있는데도 장기명은 보이지 않는 커다란 손이 자기 목을 움켜쥐고 있는 것 같았다.목소리가 너무 떨려서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었다.결국 그는 순순히 반용화의 말에 답했다.“네...”강민아는 장기명의 사색이 된 얼굴을 상상했다.반용화가 경고 차원에서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