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여묵은 보좌관과 병풍 뒤에서 나와 먼저 송석석을 안고 사람들에게 방 마마를 데리고 나가라고 분부했다. 그러자 송석석이 말했다. “대추나무 아래에 상자가 있을 것이오. 거기에 그 여자들의 명단이 모두 기록되어 있을 것이니 반드시 찾아야 하오.” “네.” 보좌관은 명을 받고 나갔다. 사여묵의 품에 안긴 송석석은 마음과 목이 악취로 가득한 솜으로 막힌 듯 말할 수 없이 괴로웠다. “부인. 더 이상 취조하지 마시오. 방 마마가 한 말은 잊으시오. 장인께선 잘못을 하지 않았소. 모두 장공주가 혼자만의 사랑에 빠져 자신과 다른 사람을 해친 것이오.” 송석석은 자신의 목소리를 되찾고 얼굴이 창백해서 말했다. “난 괜찮아요. 계속 심문할 수 있어요. 방 마마가 정신을 차리면 내가 다시 천천히 물어보겠습니다. 적어도 그 여자들의 명단은 알아내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가족들에게 더 이상 찾지 않아도 된다고 전해주십시오. 죽었다는 걸 알았으니 더 이상 염 선생의 가족들처럼 전전긍긍할 필요가 없겠지요.” 송석석은 다리에 힘이 풀렸다. 그녀는 죽으면 다시 만날 수 없으니 실종된 것보다 더 잔인하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심호흡을 하며 몸을 바로 세웠다. “게다가 우리는 방 마마의 입에서 장공주가 문엄 황제를 미워한다는 정보를 알았지 않습니까? 선제는 문엄 황제가 가장 좋아하는 아들이니 장공주가 문엄 황제에게 복수하려고 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왜냐하면 선제가 살아 계실 때부터 그녀는 연왕과 역모를 꾸미지 않았습니까? 적어도 우리는 역모의 동기를 알아냈습니다.” 사여묵은 고개를 끄덕이며 여전히 송석석을 놓지 않고 말했다. “그래. 방금 얻어낸 정보만으로도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될 테니 더 이상 그녀를 심문하지 않아도 되오.” 그는 병풍뒤에서 석석이 괴로워서 주먹을 꽉 쥐고 참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장인어른은 석석 마음속의 영웅이야. 그런데 엉뚱한 사랑싸움에 말려들어 희생한 지 몇 년이나 지났는데도 욕을 먹다니, 석석이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것도 당연한 일이지.’
고청란은 시만자를 보고 놀랐지만 그들이 자신을 속였다는 생각을 하자 다소 불쾌했다. 계획을 순조롭게 진행하기 위해서 그랬다고는 하지만 속인 건 속인 것이기 때문에 고청란은 최소한의 예의밖에 유지할 수 없었다. “시 아가씨,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시만자는 눈치가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는 고청란이 자신에게 화가 났다는 것을 알아채고 말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그러자 고청란은 몸을 옆으로 돌리며 말했다. “들어오십시오.” 고청란은 그들에게 속은 게 화가 났지만 그들이 자신을 속이지 않는다면 아버지에게 가서 말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아버지가 자신을 팔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초라한 오두막집에는 작은 부엌과 안방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물을 길 수 있는 우물도 없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햇빛이 기왓장 사이로 스며들었다. 보나 마나 기와지붕이 낡아 장기간 수리하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폭우가 쏟아지면 이 집 안은 물바다가 될 것이 뻔했다. 시만자는 애써 무시하려 했지만 좁은 집에서 흔들리는 걸상에 앉아 머리 위에 햇빛까지 내리쬐니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그녀는 고청란이 그의 어머니를 부축하러 갈 때 지붕으로 날아올라 갔다. 그녀는 기와가 밀린 것이면 제자리로 조정하려고 했는데 올라가 보니 이미 기와들이 깨져 있어서 수리를 하려면 기와를 좀 사 와야 했다.고청란은 림봉아를 부축해 나와서 지붕에서 뛰어내리는 시만자를 보고 깜짝 놀라서 소리쳤다. “아가씨, 지붕에는 왜 올라간 겁니까?” “기와가 깨진 것 보지 못했습니까? 비가 오면 곤란합니다. 비가 오지 않는다고 해도 밤에 바람이 들어와 겨울에 고생일 것입니다.” 그러자 고청란이 말했다. “알고 있습니다. 그건 제가 알아서 사람 찾아 수리하겠습니다.” “그래요. 수리해야지요.” 그녀는 림봉아의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을 보고 말했다. “어머님은 왜 모시고 나왔습니까? 어서 부축해서 눕히십시오.” 림봉아는 시만자에게 절하며 말했다. “시 아가씨와 북명왕
시만자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그런데 왜 그러는 것입니까? 당신의 어머니는 림씨 집안의 딸이고 당신은 그들의 외손녀인데 왜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까?”그러자 고청란은 손가락을 입에 대고 말했다.“조용히 하십시오. 어머니가 듣겠습니다.”그러자 시만자가 말했다.“차라리 나가서 얘기합시다. 마침 홍작의사를 기다려야 합니다. 홍작의사는 당신들이 림씨 가문에 있는 줄 알고 있을 테니 그쪽으로 가서 기다립시다.”두 사람은 문을 열고 나갔다. 시만자는 몇 걸음 걷고 뒤돌아보며 물었다.“이 집은 림씨 가문에서 당신들에게 준 겁니까?”고청란은 담담하게 말했다.“원래는 세를 놓았었는데 너무 낡아서 아무도 사는 사람이 없자 우리에게 잠시 머물라고 한 겁니다. 사건이 해결되면 우리를 데리고 림씨 가문으로 돌아가겠다고 하더군요.”시만자가 물었다.“당신은 그 말을 믿습니까?”“믿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저희 모녀도 마땅히 갈 곳이 없고 해서 일단은 여기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이틀 후에 저는 일을 찾으러 나갈 것이예요. 돈을 벌면 머무는 곳을 바꿀 것이고요.”“일거리를 찾으러 나간다는 말입니까? 무슨 일을 찾으려는 겁니까?”시만자가 물었다.그녀의 물음에 고청란은 눈살을 찌푸렸다.“내가 무공을 좀 하니까 원래는 부잣집에 가서 시녀로 일하려고 했는데 내 출신으로서는 아무도 나를 쓰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직 좋은 방법을 생각해내지 못했습니다. 정 안 되면 길거리에서 재주를 팔든 부두에 가서 심부름이라도 해야지요. 그래도 나에겐 힘이 남아있으니까요.”시만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래요. 당신의 무공은 형편없지만 힘은 있으니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짐 심부름꾼을 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습니까?”고청란은 시만자를 보며 성격이 정말로 직설적이라고 생각했다.“수입은 보통입니다. 내가 예전에 알아봤는데 아무래도 힘을 쓰는 일이니 찻집과 술집에서 반찬을 나르는 것보다는 많이 벌 수 있다고 하더군요.” 시만자는 부귀한 가문의 아가씨지만
시만자는 화를 내는 고청란을 보며 왠지 산에서 내려와 석석과 전쟁터에 나가고 다시 진성으로 돌아와 많은 일을 겪다 보니 인내심이 예전보다 훨씬 좋아진 것 같았다. 예전 같았으면 고청란에게 이런 말을 들으면 바로 자리를 떴을 텐데 말이다. 그녀는 원래 독단적이었는데 지금은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이젠 시만자는 고청란의 분노와 두려움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는 줄곧 친척에게 이용당해 왔을 뿐만 아니라 근 몇 년 동안 조금의 신뢰도 받지 못했다. 고부진과 어머니, 그리고 언니를 가족으로 생각해 왔는데 고부진은 자신을 배신했고, 이젠 언니마저 어머니를 해하려고 했다고 하니, 그것도 외부인이 말하니 당연히 믿지 않을 만도 했다. 시만자는 화를 내지 않고 계속 말했다. “당신이 믿든 말든 이건 사실입니다. 그리고 공주부의 의원이 거짓증언을 했다해도 대리사 사람들을 속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언니가 공주부의 의원을 이용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와 잠자리를 했기 때문입니다.” 고청란은 온몸을 떨며 눈물을 글썽였다. “그만하십시오. 어떻게 우리 언니를 그렇게 모욕할 수 있습니까? 언니가 명기라서 그러는 것입니까? 언니도 어쩔 수 없이 그 길을 가게 된 것입니다. 언니도 충분히 고통스러운데 왜 당신들마저 그를 모욕하고 우리 세 모녀 사이를 이간질하려는 것입니까?” 그러자 시만자가 말했다. “그래요. 믿거나 말거나, 그건 당신의 선택입니다. 나는 알려줬으니 내 도리를 다 한 겁니다. 나중에 장사를 하려 거든 언제든지 나한테 은냥을 빌리러 오십시오. 우리 사이에 친분을 봐서 내가 은 300 냥은 빌려줄 수 있습니다.” 시만자는 친구를 대할 때 항상 돈으로 관계를 계산했다. 이것은 시씨 가문의 관례인데 어떤 큰 인물에게서 배운 것이라고 했다.석석에겐 한도가 없어 그녀에게 빌려주든 그저 주든 말만 하면 모두 줄 수 있었다. 하지만 몽동이에겐 오늘 아침 이 주먹으로 인해 한 푼도 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고청란과는 함께 일을 했었으니
고청란은 어깨를 부들부들 떨며 눈물을 뚝뚝 떨구었다. 하지만 시만자는 그녀를 위로하지 않고 홍작이 오는지 골목만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고청란은 한참 울다가 말했다. “그날 어머니를 모시고 돌아오는 마차에서 어머니는 저에게 언니의 어떤 말도 믿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이미 이 일을 알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언니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제 내 말을 믿는 것인가?’ 시만자는 그제야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어머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는 겁니까? 그럼 알고 있을 가능성이 크겠네요. 당신 언니가 왜 그랬는지는 당신 어머니에게 물어보십시오.” 홍작이 당나귀를 타고 골목으로 들어서자 시만자가 얼른 손을 흔들며 소치 쳤다. “홍작, 여기입니다.” 홍작은 그들을 보고 왜 림씨 가문 앞에서 기다리는지 궁금했다. 그녀는 당나귀를 타고 다가와서 물었다. “왜 여기 있는 것입니까?” “고청란과 어머님은 림씨 가문에 살지 않고 저쪽에 있어요.” 시만자는 고청란을 바라보며 말했다. “감정적으로 일을 처리하지 마십시오. 어머님의 병세가 아주 심각합니다. 석석이 바쁜 와중에도 당신 어머니의 병을 치료해 주라고 당부했으니 그녀의 호의를 저버리는 것은 상관없지만 자신의 감정 때문에 어머니를 해치지 말라는 뜻입니다. 홍작은 눈시울이 붉어진 고청란을 보며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치료하지 않겠다는 것입니까?” 그러자 고청란은 얼른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선생님. 저 따라오십시오.” “그래요. 나는 돌아갈 테니 둘이서 가십시오.”시만자는 마음속에 오기가 치밀어 올라 더 이상 고청란과 다투기 싫었다. 그녀는 자신의 말투가 좋지 않아 고청란 모녀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하기 싫었고 자신을 억울하게 하기 싫었다.고청란은 손을 뻗어 시만자의 소매를 당기며 말했다.“시 아가씨, 방금은 제가 잘못했으니 화내지 마십시오. 저는 단지 받아들일 수 없었을 뿐입니다.”그녀는 또다시 눈물을 흘리며 부서질 듯한 눈빛으로 말했
문 밖으로 나오자 홍작은 더 이상 청란을 속이지 않고 말했다. “방금은 당신의 어머니가 계셔서 말하기가 곤란했습니다. 하지만 이젠 사실대로 말하겠습니다. 한 달만 더 일찍 치료받았어도 지금처럼 악화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시간이 많지 않으니 잘 돌봐 주도록 하십시오.” 고청란은 벼락을 맞은 것 같았다. 방금 까지만 해도 그녀는 시만자의 말을 의심했는데 이젠 믿었다. ‘어머니가 지하감옥에서도 약을 드셨는데 이제 보니 폐병을 치료하는 약이 아니었어. 장공주부의 의원은 의술이 뛰어나 정말로 어머니의 병을 치료해 주었다면 분명 좋아졌을 것인데. 그런데 언니가 대체 왜 그런 짓을 했을까?’ 그녀는 멍하니 처방과 은표를 움켜쥐었다. 눈물이 줄 끊어진 구슬 마냥 흘러내렸다. 홍작은 세상의 애환에 익숙해져 말로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 “세상일이 다 이렇지 않습니까? 그러니 자신이 강해지는 것만이 답인 것 같습니다.” 홍작은 당나귀를 타고 떠났다. 시만자도 함께 떠나려고 했지만 고청란의 모습을 본 그녀는 마음이 놓이지 않아 그녀를 집으로 끌고 들어갔다. “어쨌든 당신 어머니는 당신이 돌봐야 하지 않습니까?” 고청란은 손에 쥔 은표와 처방을 모두 바닥에 내팽개치고 방으로 뛰어들어가 림봉아의 침대 옆에 무릎을 꿇고 고통스럽게 물었다. “어머니, 말해보십시오. 언니가 왜 그런 짓을 한 겁니까?” 림봉아는 잠깐 멍해졌다가 바로 고청란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알아챘다. 그녀는 한참 동안 멍해 있다가 침울하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청란아, 사람이라면 힘든 순간이 오기 마련이지. 네 언니가 정말 힘든가 보구나. 내가 너더러 언니를 멀리하라는 것도 네가 언니를 이해했으면 해서 한 말이었단다. 그녀는 전에 장공주에게 벌을 받은 적이 있단다. 그러니 그녀에게도 그녀만의 고통이 있는 것이겠지.” “그건 진짜 이유가 아닙니다. 나는 황실의 믿음을 얻었다고 언니에게 말했었습니다. 언니도 우리가 성공적으로 어머니를 구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고 했고요. 그런데 왜…언니는 왜
떠나는 시만자는 화가 나면서도 속상한 기분이 들었다.그들 모녀는 장공주가 해친 수많은 여인들 중 일부일 뿐이다. 다행히도 가장 비참한 자들은 아니었기에 이렇게 장공주의 저택에서 걸어 나올 수 있었지만, 그들 외 많은 이들은 이미 백골이 되어버렸다.그러니 갈기갈기 찢어버리지 않고서는 결코 풀리지 않을 원한이다.송석석은 아직 대리사에 있었다. 깨어난 방 마마는 국을 몇 모금 들이킨 후 다시 심문실로 보내졌다.사여묵이 더는 심문할 필요가 없다고 했지만 송석석은 꼭 해야 할 말이 있었다. 여전히 똑같은 심문실이었으나, 이번에는 보좌관이 없었고 사여묵이 병풍 뒤에 앉아 있었다.송석석과 방 마마는 책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었다.송석석은 안색이 어두워지고 눈빛에서 생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 남은 것은 오직 쓴웃음과 한숨뿐이었다. "하.. 어찌하여 또 묻는 것이오? 그대는 내가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오? 내게 장공주의 반역을 증언이라도 하라는 것이오? 그대들은 이미 지하 감옥에서 증거들을 찾아냈으니 그 어떤 자백도 필요 없지 않소? 폐하께서도 절대 넘어가지 않을 것인데 어찌하여 나를 괴롭히는 것이오? 어찌하여 나를 곤경에 빠뜨리려 하는 것이오? 만약 죄를 저질렀다면 벌은 반드시 받을 것인데 굳이 이럴 필요 있소?" 송석석은 다시 물었다. "그녀가 받을 응보가 무엇을 상쇄할 수 있겠느냐? 또 무엇을 돌릴 수 있냔 말이냐? 저지른 악행은 영원히 그녀 곁에 남아있을 것이고, 죽은 자들은 결코 부활하지 않는다. 너는 그녀가 불쌍하다고 여기지만 그저 내 아버지에게 거절당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척이나 존귀한 삶이지 않았느냐? 누군가는 평생을 바라는 것을 그녀는 쉽게 얻었다. 누군가는 모든 것을 바쳐서도 장공주의 저택에 있는 탁자 하나마저 사지 못한다." "그녀는 하늘이 내린 행운아라 끝없는 복과 부를 지닌 채 이생을 순탄하게 살 수 있었느니라. 유일한 상처는 누군가를 원했지만 얻지 못했을 뿐이다. 내 아버지를 사랑했다고
방마마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는 장공주가 결코 소봉아처럼 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마음속에는 오직 자신의 억울함뿐이였다. 만약 그녀가 송회안과 혼인해 한 번이라도 그녀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천지가 무너질 듯한 큰 소동을 일으켰을 것이다.송석석은 무시하고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그대는 첩들은 천하기에 고구한 장공주가 무엇을 하든 모두 은혜라고 하였구나. 그럼 그런 은혜를 내가 그대에게 하사한다면 어떨 것 같으냐? 내가 너의 사지를 잘라내더라도 너는 기꺼이 바칠셈이냐?" 방 마마는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눈을 아래로 내리깔며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그대가 천하다고 말한 첩들도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란 자들이다. 부유한 가문이든, 평범한 가문이든 간에 그녀들의 부모 역시 그대가 장공주를 사랑하듯 자신의 자식들을 사랑했을 것이니라. 하지만 그런 그녀들이 납치당해 장공주 저택에서 조용히 죽어갔다. 그런데도 그대는 그녀들이 감사해야 한다 여기느냐? 너무 무서운 세상이라 생각하지 않느냐? 영혼이란 존재하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존재한다면 틀림없이 장공주 저택을 맴돌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매년 한의절에 그토록 영혼을 위로하려 했던 모양이구나. 너는 죽은 첩들과 어린 남아들을 꿈속에서 보지 못했던 것이냐?" 방 마마의 손이 갑자기 입을 틀어막았다. 그녀는 끊임없이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송석석의 차가운 눈이 그녀를 노려보았다. "생명을 경외하거라." 말을 마친 그녀가 자리를 뜨자 사여묵도 병풍 뒤에서 나와 그녀의 뒤를 따랐다. 그러면서 방 마마를 감옥으로 돌려보내라고 명하였고, 그렇게 방 마마는 비틀거리며 끌려 나갔다. 그녀의 굽은 등은 더 이상 예전의 위엄을 조금도 간직하지 못하였다.송석석이 사여묵에 말했다."며칠 기다렸다가 그녀를 다시 심문해야 할 것입니다. 그녀가 고부진의 딸들이 어디로 갔는지, 장공주가 전에 가깝게 지냈던 사람들의 행방과 수없이 교체된 경비와 하인들이 생사를 알고 있을 것입
혜의궁에서는 삼황자가 의자에 앉아 있었다. 삼공주는 그의 젖은 머리카락을 닦아주며 못마땅한 표정으로 말했다."어제 막 머리를 감았는데, 굳이 그 고양이랑 놀겠다고 해서 온 머리와 얼굴이 털투성이가 되었잖아. 다음번에도 이러면 엉덩이를 때려줄 거야."도자기처럼 매끄러운 분홍빛 살결의 귀여운 아이가 까만 눈동자를 반짝이며 공주의 품에 기댔다."누이, 고양이는 재미있고 귀여워요. 작은 발로 내 몸을 밟고 지나갈 때면, 포근해서 기분이 좋아요. 안고 있으면 따뜻하기도 하고요."그러자 삼공주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어마마마께서 그러셨잖아. 아바마마께서는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으신다고. 그런데 넌 자꾸 아바마마께 고양이 이야기를 해서…… 그러니 요즘 아바마마께서 널 찾지 않으시는 거야."삼황자는 누이가 머리를 말려주는 대로 꼿꼿이 앉아 있으면서도 입을 다물지 않았다."아바마마와 나는 다른 사람이잖요. 당연히 각자 좋아하는 것이 다를 수도 있는 거지요. 아바마마께서 싫어한다고 해서 나까지 싫어해야 해요? 내가 고양이를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내가 이 아이를 사랑하니, 아바마마께서 아무리 싫어하셔도 나한테 버리라고 하시면 안 되는 거죠."삼공주는 그의 코끝을 톡 하고 건드리며 말했다."말은 참 잘하네."삼황자는 웃으며 말했다."누이가 나를 설득 수 없는 건 누이의 말이 논리적으로 맞지 않기 때문이에요. 황숙께서 그러셨는데, 이치에 맞게 말을 한다면 그 누구도 이길 수 있다고 하셨거든요.""그래? 그런데 요즘 왜 황숙께 무예를 배우러 가지 않는 거야?"삼황자는 고개를 기울였다."무예라 해도 기본적인 것만 가르쳐 주시니까요. 그런 건 궁에서도 연습할 수 있어서 이미 다 할 수 있어요! 그리고 말 타기는… 아직 말 위에 혼자 올라갈 수가 없으니까 좀 더 자라서 다리가 길어지면 그때 배울거에요.""다 할 수 있다고? 못 믿겠는데." 삼공주가 말했다."정말 할 수 있다니까요!"삼황자는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황숙께서 며칠 동안 같은 걸 반복해
복소의는 춘당의 입가에 스친 조소를 알아채지 못했다.춘당은 복소의가 첩여로 승급될 때부터 곁에서 그녀를 모셔왔다. 그녀는 영리하고 침착한 성품을 지녀 복소의에게 여러 차례 계책을 내주었고, 당시 황후가 그녀를 끌어들이려 했을 때도 춘당은 이렇게 말했었다.‘황후마마께서 여러 번 금족 처분을 당하신 것으로 보아, 폐하께서 이미 탐탁지 않게 여기시는 것이 분명합니다. 게다가 후궁을 다스릴 권한도 없으시니, 황후마마께는 겉으로만 응하는 척하고 실질적으로는 덕비 마마와 수빈 마마께 가까이 다가가시는 것이 더 좋을 것입니다.’그리고 춘당의 말은 역시나 옳았다. 덕비는 늘 그녀를 잘 대해주었고, 먹고 입는 것 모두 넉넉히 챙겨주었다. 그 덕분에 더 이상 감히 그녀를 깔보는 자도 없어졌다.예전의 덕비는 분명 좋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녀가 아이를 가졌다는 것을 이유로 폐하께 가까이 가려 하는 것 같아 못마땅했다."마마께서는 덕비 마마께서 오시는 것이 싫으십니까?"춘당이 그녀의 머리와 허리를 살짝 받쳐주며 말했다. 침상에 오래도록 누워만 있어 등이 아픈 그녀를 배려한 것이었다.그녀는 춘당을 신뢰했기에 자연스레 속내를 털어놓았다."내 태가 안정되었을 때는 덕비 마마께서 그리 열심히 오시지도 않으셨는데, 이제 와서 이렇게 자주 찾으시는 것이 진심이겠느냐? 분명 폐하를 의식해서 오는 것일 것이다. 게다가 폐하께서 날 아끼시기에 자주 찾아와 주시는 것인데, 매번 덕비 마마와 이황자가 끼어드는 바람에 폐하와 두세 마디도 제대로 나누지 못하지 않느냐."춘당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위로하며 말했다."마마께서는 그저 몸을 잘 돌보시면 됩니다. 그 외의 일은 신경 쓰지 마세요."복소의는 한숨을 쉬었다."이렇게 밤낮으로 누워만 있어야 하다니…… 폐하께서 오실 때만 겨우 앉을 수 있구나. 이 아이는 나를 참 힘들게 한다. 부디 황자가 되어주기를 바랄 뿐이지. 내가 이 고생을 한 보람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춘당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반드시 마마께서 바라시는
복소의의 태는 안정적이었기에, 태의도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겨울이 지나면서 태가 점점 불안정해져, 두 번의 출혈을 경험했다. 금태의는 그녀의 태를 지키기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그 덕분에 그녀는 겨우 안정을 찾을 수 있었지만 계속해서 침상에 누워 있어야 했기에 바닥에 내려갈 수가 없었다.갑자기 이런 상황이 발생하자, 태의는 신중히 식단과 궁에서 사용하는 모든 것들을 점검했다. 하지만 별다른 문제가 발견되지는 않았다. 아마 황제가 장기간 약을 복용한 탓에 태아가 불안정해진 것일 가능성이 있었다. 숙청제는 그녀의 태에 매우 긴장하고 있었다. 숙청제는 그녀가 침상에서 요양을 시작한 후 거의 이틀에 한 번씩 그녀를 보러 갔으며, 가끔은 같이 식사를 하기도 했다.상황이 이렇게 되자 그는 수빈의 궁에 자주 가지 않았고, 삼황자를 어서방에 불러 들이지도 않았다.덕비는 후궁을 관리하는 일을 맡고 있었기에 시간이 날 때마다 이황자와 함께 복소의를 보러 갔고, 이로 인해 황제와 함께 몇 번의 식사를 함께했다.복소의는 첩여 시절 후궁에서 자신이 의지할 사람을 찾으려 했고, 비밀리에 수빈과 덕비에게 아첨하며 양쪽을 오갔다. 하지만 수빈은 늘 거만하게 행동했으며, 그녀가 한때 황제의 총애를 얻었기도 했기에, 복소의는 수빈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반면 덕비는 후궁에서 유명한 온화하고 자애로운 인물로, 공정하게 일을 처리하며 위치가 낮은 여인들까지 보살펴 주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복소의는 점차 덕비에게 더 접근했지만 지금은 조금 고심했다. 황제가 그녀에게 올 때, 덕비가 여러 번 이황자를 데리고 왔고, 그 목적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수빈의 성격에 이런 일을 할 리가 없었기에, 그녀는 오히려 수빈의 도도함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결국 불만을 마음속으로에만 토로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의지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덕비는 후궁을 관리하는 권한이 있기에 그녀를 적대할 수도 없었다. 이러한 날들이 지속되자, 그녀는 덕비가 오지 않
후궁에서는 황제의 병에 대해 추측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지금 복소의가 임신을 했다고는 하지만, 단신의가 궁에 들어와 치료하고 있다는 사실은 황제의 몸이 단순히 요양을 하면 괜찮아질 상태가 아님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황제의 편애가 계속될수록 몇몇 사람들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특히 황후는 더욱 불안해했다. 그녀는 황제의 병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에, 지금 단신의가 궁에 들어와 치료하고 있지만 치료의 효과는 확실하지 않다고 생각해, 그녀는 황제가 심각한 상태라고 여겼다. 황후는 복소의의 임신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아이의 성별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을 뿐더러, 설령 황자가 태어난다고 해도 그에게 까지 순서가 올 리 없었다. 그러나 삼황자에게 집중된 황제의 편애는 그녀에게 위기의식을 가져다 주었던 것이다.황제는 그녀에게 선택권을 주었을 때 그녀는 황후 자리를 선택하며 생명을 보장받았다. 하지만 며칠의 시간을 보내자, 황후는 황제가 대황자를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요즘 대황자가 열심히 공부하고 있으며, 태부와 황숙도 그를 칭찬하고 있었다. 황제도 대황자의 그러한 모습에 매우 만족해 한다고 전해 들었다.이황자와 삼황자는 그녀에게 모두 위협적인 존재였다. 그러나 황후는 황제가 이황자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고 여겼다.최근 몇 달 동안 그녀는 거의 이황자를 본 적이 없었고, 또한 이황자가 이제는 예전처럼 열정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후는 강력한 뒷배경이 없는 덕비가 여전히 유력하지 않다고 여겼지만 수빈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수빈의 아버지는 형부상서이며, 사여묵과 같은 공문이었다. 공무의 일이든 사적인 일이든 접촉이 분명 많았을 것이고, 수빈의 어머니인 이씨 부인은 송석석에게 잘 보이기 위해 공방에 많은 돈을 기부했다. 어쩌면 이미 그녀를 손에 넣었을지도 모른다.“마마, 오늘 대황자께서 또 왕야의 칭찬을 받으셨습니다.”란주 상궁이 들어오며 웃으며 말했다.황후는 별다른 감정을 보이
숙청제는 신하들을 어서방에 불러들였고, 그들은 밤늦게까지 논의했다. 논의는 결국 단신의가 들어가서 시간이 많이 늦었음을 알리며 중단을 요청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숙청제는 팔을 뻗고 웃으면서 말했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었다니. 그럼 궁문도 이제 잠가야겠으니 다들 돌아가시게.”그는 여전히 기운이 넘쳤고, 특히 지금은 얼굴에 혈색이 돌아 병든 사람 같지 않아 보였다.송석석은 논의 중이던 사여묵을 기다렸다. 그들은 함께 궁을 떠나 황실로 돌아갔다. 매우 피곤했던 그녀는 사여묵의 어깨에 기대어 잠이 들었다.마차가 황실 문 앞에 도착하자 사여묵은 그녀를 안아 들었다. 송석석은 그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내려오기 귀찮았기에 그대로 안겨 있었다. 그의 넓고 따뜻한 품은 정말 편안했다.그와 떨어져 있던 세 달 동안 그녀는 성릉관에서만 편히 잠을 청할 수 있었으며, 그 외의 곳에서는 늘 경계하며 지냈다. 이제 집에 돌아오니 자연스럽게 긴장이 풀렸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불안함을 느꼈다. 무언가 뜨겁고 큰 손이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만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눈을 감은 채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단 백부 말씀을 잊으셨나요?”귓가에 따뜻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단 백부가 이제 괜찮다고 말씀하셨소.”송석석은 감고있던 눈을 떠, 뜨겁고 열정적인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마주하며 물었다.“정말인가요?”“틀림 없소.”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입술이 덮였다.불꽃이 강렬하게 타올왔다. 침실의 온도마저 높아진 듯 했다.두 사람은 뜨겁게 사랑했다. 오랜 시간 떨어져 있었기에 마치 새롭게 결혼한 듯한 기분이었다!한 달 후, 상국은 시박사를 설립할 예정이었다. 이는 상국과 해외 북당과의 화물 교류를 담당할 기관이었다.원래의 시역업도 시박사의 운영을 전폭적으로 지원할 것이며, 상국에서 다른 국가에 판매할 수 있는 화물 목록을 정리하여 서경으로 사신을 파견해 화물 교환 협정을 체결할 것이다.이 한 달 동안 단신의는 약을
10월 15일, 사절단은 드디어 진성에 도착했다.현갑군은 그 자리에서 먼저 해산했고, 이덕회와 홍려사경은 궁에 들어가 황제를 뵈러 갔다. 그동안 몸이 약해져 혼자서는 거동할 수 없었던 진왕은 이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자신도 궁에 가겠다고 말했다.송석석은 이미 성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여묵에게 인도되어 황실로 돌아갔다.그동안 사여묵은 매일같이 성문 앞에서 그녀를 기다렸고, 때로는 낮잠시간에 직접 가서 기다리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이 되어서야, 드디어 기다리던 그녀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이덕회와 그들이 궁에서 황제에게 보고할 때, 송석석은 이미 태비께 인사를 드린 후였다.혜 태비는 송석석이 피곤해 보이자, 가서 씻고 옷을 갈아입으라고 말했다.송석석은 사여묵과 함께 나와서 매화원으로 돌아갔다.목욕을 마치고 옷을 갈아입고 나왔을 때, 송석석의 입술이 어쩐지 조금 부풀어 있었다. 서주는 깜짝 놀라 왕야를 바라보았다. 왕비가 목욕하는데 왕야께서 꼭 직접 모셔야 한다며 들어가더니, 보아하니 제대로 보살피지 못한 것이 틀림없었다.서방에서는 염선생과 심청화가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송석석은 그들에게 서경에서의 일들을 말해주었다. 협상 결과는 그들이 이미 알고 있었기에, 송석석은 길에서 일어난 암살 시도, 원신제의 곤경, 그리고 북당의 안풍친왕이 말한 3년과 5년의 기한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었다.사여묵은 두려운 마음으로 이야기를 들었는데, 서경이 그렇게 혼란스러웠음에도 그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았음에 안도하며 다행이라 여겼다.안풍친왕이 성릉관을 자유롭게 오고 간 것과 그가 말한 3년, 5년 기한에 대해서, 심청화는 사부에게 편지를 보내면 알 수 있을 거라 말했다. 사부는 그들을 잘 알기 때문에 그 말의 숨은 의미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었다.이야기를 마친 후, 사여묵은 송석석이 휴식을 취하게 하기 위해, 송석석에게 더 이상 질문하지 못하게 그들을 막았다. 그는 오후에 휴가를 내어 일을 쉬려고 했지만, 황제가 사람을 보내 궁에 오라고 일렀다.송석석
성릉관에서 다섯 날을 지낸 진왕은 어느 정도 몸이 회복이 되었다.그가 회복되었다는 것은 이제 다시 진성으로 향해야 함을 의미했다.이별은 너무나 아쉬웠지만, 송석석은 눈물을 삼키며 그저 작별 인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소 대장군 앞에서 여러 번 절을 했는데, 그로 인해 소 대장군도 눈물이 거의 터져 나올 뻔했다.이덕회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바로 소 대장군이었다. 소 대장군은 상국을 위해 수십 년 동안 성릉관을 지킨 노장이었기 때문이다.송석석은 눈물을 삼켰지만, 그는 얼굴을 가리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이 평생 다시는 그를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이미 노령에 접어든 듯, 이전에 만났을 때보다 훨씬 더 노쇠해 보였다. 설령 황제가 그를 진성으로 돌아가게 허락한다 할지라도, 긴 여정과 고된 일정을 고려했을 때 소씨 가문 사람들이 그를 돌아가지 못하게 할 수도 있었다.소 대장군은 이덕회와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그러자 이덕회는 더 크게 울음을 터뜨렸다.외숙모 남씨는 회 왕비에 관한 질문을 하지 않았었다가 이별을 앞두고서야 송석석을 옆으로 데려와 그녀의 상황을 물었다.송석석은 회 왕비가 지금 감옥에 있다는 사실과 란이가 그녀를 위해 손을 써주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렇게 힘든 상황은 아닐 거라며, 혹시 태자가 세워지면 대사면이 내려져 그녀가 나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남씨는 살짝 안도의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렇다면 다행이구나. 외조부께서 말씀하시지는 않으셨지만, 엄청 신경 쓰고 계실 거다. 세상에 정말로 모진 부모는 드무니까. 네 외조부는 모진 분이 아니시다. 그때 그녀가 란이에게 그렇게 까지 모질게 대했던 게 안타깝다. 란이가 여전히 그녀를 돌보아야 하다니."송석석이 말했다. "걱정 마세요. 란이는 지금 편안하고 자유롭게 지내고 있어요. 그리고 앞으로도 더 잘 지낼 거예요.""그렇지. 분명히 잘 지낼 거야." 남씨는 아쉬움이 가득한 눈빛으로 송석석을 바라보다가, 이내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귀환길에 오를 무렵, 이미 9월 초가 되어, 날씨는 더 이상 뜨겁지 않았으며, 오히려 약간 선선했다.수란키는 직접 군대를 이끌고 나와 그들을 녹분성까지 배웅했다.이번 귀향길에서는 암살 시도가 없었기에 매우 순조로웠다.이들은 끝없이 이어지는 산을 넘어가 상국의 경계에 들어섰다.소 대장군에게 사전에 도착 예정일을 알리지 않았기에 아무도 마중을 나오지 않을 줄 알았지만, 상국의 경계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전북망이 이끄는 소씨 가문 군대와 마주했다.무사히 돌아온 그들을 보자, 전북망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없이 말을 몰고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는 말에서 내려 진왕과 이덕회를 비롯한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며 말했다."왕야와 이상서, 그리고 여러 대감님들, 소 대장군께서 저를 시켜 이곳에서 여러분을 맞이하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성릉관까지 호위하겠습니다."그러자 이덕회가 호기심에 차서 물었다. "대장군께서는 우리가 오늘 돌아올 것을 어떻게 아신 것입니까?"전북망이 대답했다. "대장군께서는 모르셨습니다. 매일 여기서 기다리라고 명하셔서 계속 기다린 것입니다.""그렇군요." 이덕회는 소 대장군의 매우 신중함에 감탄했다. 진왕은 오는 동안 몸이 좋지 않았다. 그는 마차의 발을 올리고 한 번 쓱 둘러보았다. 자신이 상국에 돌아온 것을 확인하자, 그는 그제서야 기운을 조금 차리며 말했다. "빨리 출발하게.""예!" 전북망은 재빨리 대답하고 말에 올라 선두를 이끌었다.시만자는 그가 한 손으로 능숙하게 말을 다루는 모습을 보며, 그가 많은 노력을 기울였음을 알아차렸다. 그녀는 말의 고삐를 잡고 송석석에게 말했다. "이 사람 나쁘지 않네. 어머니께서 그 당시 사람을 잘못 본 것이 아니었나봐. 마음을 예측하기 어렵긴 하지만..."송석석은 시만자가 전북망을 칭찬하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사실 시만자는 여전히 전북망에 대한 모친의 기대를 저버린 것을 항상 마음에 두고 있었기에, 이 말을 함으로써 모두 안심할 수 있도록 한 것이었다.송석석은 아무 말도 하
안풍친왕이 말했다."이번 여정은 서경과 상국을 위한 것이지만, 북당을 위한 것이기도 하니 감사할 필요는 없습니다. 국가 간의 교류는 언제나 이익을 우선으로 하니까요. 개인적인 인연이 있을 때 진심으로 대하는 것이죠."송석석은 깨달음을 얻은 동시에 궁금한 점이 있어 물었다."혹시 제 사부 임양운을 아십니까?"안풍친왕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알지요. 그는 북당에 와서 제 채성루에서 잠시 머문 적이 있습니다. 제 호위 지휘사인 흑영위가 당신의 사부와 매우 친한 사이입니다. 그들은 자주 함께 술을 마셨죠.""그렇군요." 송석석은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을 떠올렸다. 그 중 어떤 사람이 흑영위 선배인지는 모르겠지만, 만날 수 없다면 정말 아쉬운 일이었다.안풍친왕은 이내 그녀의 마음을 눈치 챘는지 웃으며 말했다.“우리 북당은 3년 혹은 5년 후에 상국을 방문할 예정입니다. 그때 흑영위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송석석이 막 감사의 말을 하려는데, 시만자가 말했다."왜 3년 혹은 5년 후인가요? 좀 더 일찍 갈 수 없나요? 왕야와 왕비께서 가시는 걸 기대하고 있습니다."안풍친왕은 미소를 지으며 깊은 뜻이 담긴 말을 했다."지금은 아직 그때가 아닙니다."그들이 말하지 않으니 더 이상 물어보는 건 예의가 아니었다.옆에서 조용히 앉아 있던 안풍왕비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으며, 그저 눈앞의 간식들을 맛있게 먹고 있었다. 아무것도 특별할 것 없는 설탕절임과 육포였지만, 그녀는 그것을 매우 맛있게 먹었다.송석석은 탁자 아래에서 그들이 손을 서로 맞잡고 있는 것을 보고, 그들의 사랑이 누구보다 깊다는 것을 느꼈다.두 나라 간의 교류에 대해 더 얘기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들은 잠시 가볍게 잡담만 나눈 뒤 그들을 보내주었다. 떠나기 전에 안풍친왕비가 먼저 입을 열었다.“송대감, 시 소저, 4년 후에 상국에서 뵙겠습니다."송석석은 급히 손을 모으며 말했다."네. 왕야와 왕비께서는 반드시 오셔야 합니다."그들이 떠난 후, 별관 문이 닫혔다.송석석과 시만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