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에 제황후의 울음소리가 뚝 그치더니, 이내 떨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네? 정이가 정말 죽지 않았다는 것입니까? 장례까지 치렀는데 어떻게…….” 숙청제는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간신히 목숨만 건져서 상처가 매우 심각해. 다리가 부러져 이번 생엔 일어나지 못할 것이야. 단신의가 그를 치료하기 위해 신약산장으로 데리고 갔으니 치료가 성공하면 그는 이름을 숨기고 살 것이고 치료가 실패하면 신약산장 같은 아름다운 곳에 남아있는 것도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해.” 황후는 황제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 않자 마음속에서 갑자기 희망과 광희가 솟아올랐지만 곧이어 의혹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그가 죽지 않았는데 왜 장례를 치른 것입니까? 왜 진성에서 치료하지 않는 것입니까? 어쩌면 사실 그가 크게 다치지 않았고 황제폐하께서 그 신의에게 속았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단신의는 송석석의 백부이고, 송석석은 줄곧 삼황자를 태자로 삼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자 숙청제가 그녀에게 되물었다. “당신은 송석석이 삼황자를 태자로 삼고 싶어 한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소?” 그러자 제 황후는 급히 말했다. “공방을 차릴 때 저의 어머니가 저 보고 솔선수범하라고 했는데 제가 허락하지 않아 송석석의 체면을 구겼지만 수빈과 그녀의 어머니는 은자와 가게까지 선물하지 않았습니까? 그게 송석석을 끌어들이는 게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입니까?” 숙청제는 그녀의 말을 듣고 웃으며 말했다. “송석석이 그렇게 쉽게 끌어들일 수 있는 사람이라면 왜 애초에 공방을 위해 나서지 않았느냐? 그럼 송석석을 끌어들일 수 있지 않았느냐?” 제 황후의 얼굴은 금새 창백해졌다. ‘내가 진작에 공방이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질 것이라는 걸 알았더라면 왜 도와주지 않았겠어? 하지만 그땐 모두들 욕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내가 어떻게 나서서 욕을 먹고 명성을 잃겠어?’ 황후도 지금은 후회하지만 티를 낼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런 것을 신경 쓸 겨를도 없다는 듯이 황자의 안부를 물었다. “황자는 지금 어떻습니까
황후는 긴장한듯 땀을 뻘뻘 흘리다가, 목덜미를 감을 백릉을 보고 또 놀라서 소리쳤다. “아니다! 아직 늦지 않았다. 황제폐하께서 대황자를 얼마나 아끼는데 대황자가 어머니를 잃는 것을 허락할 리가 없다. 내가 직접 가서 그를 돌봐야 하니 아무도 내가 어머니로서의 권리를 박탈할 수 없어. 그리고 송석석이 그랬어, 대황자가 날 사랑한다고 했다고. 그건 대황자가 직접 한 말이다. 그는 지금 중상을 입어 고독하게 신약산장으로 갔는데 어떻게 내가 돌보지 않을 수 있어? 그러니 난 그를 돌보러 가야 한다고…….” 하지만 백릉은 이미 목에 휘감아진 뒤였다. 황후는 다시 날카로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황제폐하, 왜 저한테만 이렇게 잔인하신 겁니까? 덕비는 대황자를 모해하고도 처형당하지 않았는데 왜 저만 처형하시려는 것입니까? 제가 성격이 오만할 뿐 사람을 해치진 않았습니다.” 오 대반은 잠깐 멈추었다. 사실 그가 이런 말을 할 자격은 없지만 중상을 입은 대황자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파 신분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황후마마께서 왜 사람을 해치지 않았습니까? 복소의의 태아를 죽인 건 물론이고, 대황자께서 이렇게 된 것도 황후마마께서는 책임을 면할 수 없습니다.” 제 황후는 눈을 부릅뜨고 목에 감긴 백릉을 꽉 움켜쥐며 말했다. “헛소리하지 말거라.” 그러자 오 대반이 말했다. “헛소리가 아닙니다. 마마께서도 마음속으론 알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을 뿐이겠지요. 덕비가 왜 이런 위험을 무릅썼겠습니까? 황후마마께서 수빈과 함께 복소의의 태아를 모해하러 갔다가 덕비에게 약점을 잡혔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마마께서 어리석게 계란궁으로 가서 소란을 피웠으니 덕비가 소문을 내기에 딱 좋은 상황이지 않습니까? 희생양을 찾았으니 감히 못할 이유도 없겠지요.” 제 황후는 얼굴이 창백해졌다. “내 언행에 문제가 있다고 해도 잘못을 한 건 덕비이다.” 오 대반이 말했다. “그래서 황제폐하께서는 그녀를 죽게 내버려 두지 않을 것 이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내가 죽을죄를 지은 건
덕비도 결국 견디지 못하고 사망했다. 그녀는 이황자가 치매로 절에 가서 여생을 보내야 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이미 버틸 수 없었다. 고통이 뼛속까지 스며들어 계속 그녀를 괴롭힌 탓에, 결국 어느 추운 밤에 견디지 못하고 사망해버리고 만 것이다. 태후는 손을 써서 사건과 연루된 궁인들을 모두 처리했다. 하지만 어떻게 처리했는지는 송석석 등인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후궁에 황후를 포함한 두 명의 지위 높은 빈비가 사라졌고, 태후의 건강도 좋지 않아 공비에게 후궁을 관리하도록 했다. 숙청제는 다시 황후를 세울 계획이 없었다. 그는 후궁이 복잡하지 않으면 더 이상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공비가 능력이 부족해서 하루가 멀다 하고 문제가 생겼는데 후궁의 봉록과 하인들의 월례를 주는 것 때문에 소란을 피운 것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검소하고 양보하는 이미지를 세우기 위해 궁 안의 은냥을 아끼고 월례를 삭감했으며 빈비들의 봄 옷도 한 벌씩만 만들어 지출을 아끼려고 했다 하지만 후궁은 원래도 충분히 검소했고, 예전엔 누가 돈을 쓸 일이 있어도 모두 친정에서 준 돈을 썼는데 지금 또 줄이니 모두 마음이 내키지 않은듯 했다. 숙청제는 후궁에 갈 때마다 이런저런 불평만 들리니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태비들의 은자까지 많이 삭감되었기에 이 일은 금새 태후에게까지 알려졌다. 태후는 어쩔 수 없이 숙청제를 불러 상의했다. 공비만 지위가 높은 탓에 다른 사람을 발탁해도 그녀를 초월하긴 어려웠다. 그렇다고 공개적으로 빈비를 뽑자니 너무 떠들썩해질 것 같기에, 차라리 다시 재능 있고 현명한 사람을 뽑아 황후로 세우면 태자도 돌볼 수 있어서 좋을 것 이었다. 숙청제가 그 말에 어짜피 자신이 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지 모른다고 하자 태후가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생각대로 되기 마련이다. 본인을 믿고 단신의를 믿거라.”숙청제는 결국 황후를 다시 선택하는 걸 동의했지만 신약산장에서 소식이 온 후에 이 일을 처리하겠다고 했다
송석석은 절사약을 보고 마음속으로 몹시 놀랐다. “황제폐하께서 또 당신을 의심하셨습니까?” 그러자 사여묵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지금은 의심하지 않아. 오히려 더 신뢰하게 되었지. 지금은 많은 상주문이 나와 승상의 손을 거쳐 황제폐하의 앞으로 가거든.” “그럼 왜 대체 그러시는 것입니까?” 그의 말을 들은 송석석은 더욱 의혹스러웠다. 사여묵은 알약을 놓고 송석석의 손을 잡고 말했다. “내가 지금 고민하는 게 세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황제가 지금 나에게 준 신뢰와 권한은 방금 많은 일을 겪었고 병세도 안정적이어서 의심이 사라진 상태에서 준 것이지만 병세가 안정적이지 못한 데다 내 권력이 너무 크고 자식까지 낳게 되면 반드시 날 위험하다고 여길 것이야.” 송석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몇 년 더 있다가 아기를 가져도 되지 않습니까? 당신이 원래 먹었던 게 5년 동안 아기를 가질 수 없는 약이지 않습니까? 그럼 그 약을 한 번 더 먹으면 되지 않습니까?” 사여묵은 그녀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 “이게 바로 5년짜리오. 청작이 그러는데 처음 먹을 땐 5년 동안 아기를 가질 수 없지만 다시 한번 먹으면 다신 아기를 가질 수 없게 된다더군. 하지만 내가 이 약을 먹지 않으면 당신이 피임약을 먹어야 하는데 그 약은 몸을 상하게 할 뿐만 아니라 무조건 임신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고 하더군.” 송석석은 그의 어깨에 기대어 물었다. “그럼 두 번째와 세 번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러자 사여묵이 계속 말했다. “두 번째는 당신이 임신과 출산의 고통을 겪지 않았으면 좋겠소. 의서에서 통계한 바에 따르면 출산하는 여성 중에서 삼분의 일이나 난산을 겪고,아무리 순조롭게 출산을 한다고 해도 다른 합병증이 생겨 평생 고생을 한다고 하더군.”송석석은 그의 말에 감동한듯 그의 손을 꽉 잡고 위로했다. “여자는 항상 고통스러운 법이지요.” 사여묵은 한참 후에야 세 번째 이유를 말했다. “세 번째는 난 아버지가 되는 법을 잘 몰라. 자식이 생기면 앞으로
봄비는 기름만큼이나 귀중해서 4월에 내리는 비도 늦지 않았다.숙청제는 황실 서재 밖의 복도 앞에 서서 비바람에 흔들리는 풍등을 보며 눈앞의 화면이 꿈결 같기도 하며 현실 같기도 했다.사여묵의 그림자는 벌써 빗속으로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그는 마음속으로 씁쓸했다. 사여묵이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그 약을 복용할 때, 안심이 되면서도 마음이 아팠다.‘내가 사여묵을 이 지경으로 몰아넣은 것이다. 그들 부부는 아직 젊어서 첩을 들이지 않아도 아이를 두 세명을 낳을 수 있을 텐데. 그 약을 먹으면 다신 아이를 갖지 못할 것인데. 설령 양자로 들일 수 있다고 해도 결국 자신의 친자식이 아니니 어찌 후회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형으로서 그는 더없이 안타깝고 마음이 아팠지만 황제로서 그는 드디어 안심할 수 있었다.모순적인 생각에 그는 한숨을 내쉬며 혼자 중얼거렸다.“세상에 어찌 완벽한 방법이 있겠는가? 어떻게 해도 뜻대로 되지 않는 부분이 있기 마련인데.”그의 목소리는 너무 작고 빗소리에 가려져 그의 뒤에 서 있던 오 대반조차도 듣지 못했다.봄이 가고 겨울이 왔다. 음력 12월 8일이 되자 집집마다 팥죽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숙청제는 새로운 황후를 들였다.새로 들인 황후의 이름은 진의춘이었는데 그녀의 오라버니가 바로 대리사 소경인 진이였다.진 씨 가문이 귀한 집안은 아니었다. 조상들이 사업을 했었고 진 황후의 할아버지가 독서를 좋아했기에 진 씨 가문에서 그녀를 키워낸 것이어서 뿌리가 깊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진이가 대리사 소경이 되어서야 진 씨 가문이 서서히 번창하기 시작했다.진 씨 가문의 방계가 여전히 사업을 하고 있긴 했지만 숙청제는 조사한 결과 진 씨 가문은 관리와 결탁한 정황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 가문은 숙청제의 요구에 꼭 부합했다. 진 황후는 올해 열아홉 살이 되었는데 집안일에 지장을 받아 줄곧 혼담을 나누지 않았다. 진모는 몸이 좋지 않아 집안일을 책임질 수 없었고 진이의 부인은 몇 년 전 난산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2월 2일이 되자, 단신의가 신약산장에서 돌아왔다. 먼 길을 돌아 진성으로 돌아왔는데, 그는 옷도 갈아입지 않고 바로 입궁했다. 숙청제는 서재에서 회의를 하고 있었는데, 단신의의 청을 듣자 즉시 대신을 물리치고 사여묵만 남긴 후 단신의를 모셔오라고 했다. 단신의는 진성을 떠난 지 1년이 되었는데 그 사이에 많이 늙어 머리카락도 희끗희끗했다. 숙청제는 내려와 절을 올리려는 그를 부축했다. 일 년의 기다림 끝에 답을 듣는 날이 오자 그는 오히려 두려워졌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단신의의 말에 숙청제와 사여묵은 그제서야 마음이 놓였다. 그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편지를 보낼 땐 대황자의 병세가 안정되어 생명에 지장이 없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패혈증으로 인해 병세가 급속히 발전하였습니다. 전 처음에 그가 버텨내지 못할 줄 알았습니다. 임종에 들어서기까지 했는데 뜻밖에도 그가 다시 견뎌낸 것이죠! 1년 동안 그는 모든 어려움을 하나하나 돌파했습니다. 정말 대단하지요.” 숙청제는 단신의의 말을 들으며 눈가가 촉촉해지고 마음이 아팠지만 도와줄 방법이 없었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습니다. 비록 걸을 수는 없지만 휠체어로 밖에 나갈 수 있으니 방에 틀어박혀 있지 않아도 된답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그가 공부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의리학에 매우 흥미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탕약노래를 따라 배우고, 약초를 배우더니 지금은 냄새만 맡아도 무슨 약인지 알아맞출 수 있답니다. 그리고 제가 떠날 땐 진맥을 배우고 있었지요.”숙청제는 그 말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에게 그런 재능도 있었소?” 그러자 단신의가 말을 덧붙였다. “훌륭한 의사나 연약사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그것으로 따분한 시간을 때우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요.” 숙청제는 그가 너무나도 그리웠지만 거리가 먼 탓에 자신이 쉽게 갈 수가 없었고, 그렇다고 해서 대황자가 이곳으로 올 수도 없었다. 그러니 관심이 있다면 그것으로 시간을 때우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
황금빛이 물드는 10월은 왕이장과 시만자의 결혼 날이였다. 작년 추석 때 시만자는 왕이장의 청혼을 받아들였고, 함께 동행하며 왕이장이 진심을 베풀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가 승낙했을 땐 그 순간의 느낌으로 진심으로 결혼하고 싶었다. 그런데 꼬박 1년이 지나서야 혼례를 치르는 건 혼수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은 아니었다.시만자가 태어난 해부터 시 씨 가문에서 그녀의 혼수를 장만하기 시작했고 해마다 늘여가 이제는 진성에서 집과 장원까지 샀기 때문이다. 그리고 혼례에 관해서는 매산에서도 이미 준비를 마쳤다. 혼사를 지금까지 미룬 것은 시 씨 가문, 적염문, 만종문, 그리고 시만자의 의견이 통일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시만자는 황실에서 시집가서 왕이장이 그녀를 그녀의 저택으로 맞이하길 바랐다. 그렇게 하면 편리한 데다 긴 여정을 거쳐 강남으로 돌아갈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시 가주는 시 씨 가문이 대 가문이니 반드시 크게 치러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크게 치르려면 강남에서 시집을 가야 맞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그는 연회를 열흘 밤낮을 열 생각이었다. 하지만 시만자가 적염문의 제자이고, 왕이장은 만종문의 제자이니 그렇게 복잡하게 할 필요 없이 적염문에서 만종문으로 시집을 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적염문의 명성을 얻기 위해 무림의 친구들을 초대하여 연회를 열고 싶었다. 만종문의 무소위는 왕이장은 왕 씨 가문의 사람이고, 그의 뿌리도 진성에 있기 때문에 혼사를 진성에서 치르는 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했다. 솔직히 말해서 만종문이 성대한 혼사를 치르려 한다면 무소위는 지쳐 죽게 될 것이었다.그는 돈은 지원할 수 있지만 힘은 쓰기 싫었다. 사람들과 왕래하는 걸 좋아하지 않던 임양운은 애초에 그의 소중한 제자였던 송석석이 매산에서 연회를 열지 않았으니 이번에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만종문에는 제자가 많은 탓에 연회를 열기 시작하면 해마다 연회를 열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속세를 피해 매산으로 간 그에겐 매일
송석석은 오늘 시만자와 이야기할 시간이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결혼식에는 여러 가지 번거로운 일들이 많이 일어났다. 특별히 화장하는 낭자를 찾아 화장을 하고 머리를 빗는 것만 해도 한 시진은 훌쩍 지나갔다. 시만자가 원래 아름답고 요염한 데다, 화장하는 낭자의 손재주가 좋아 더욱 아름다워졌다. 점심을 대충 때우자, 시집보내는 손님들이 잇달아 찾아오기 시작했다. 원래 최 씨 부인은 남자 쪽 형수라 이곳에 오지 말았어야 했는데 최숙심은 기어코 오려고 했다. 그녀는 남자 쪽이자 여자 쪽이니 충돌하지 않는다고 했다. 좋은 날이기도 하니 아무도 그런 걸 따지지 않았다. 신부 옷을 입었을 때 시만자는 이유 없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정말 시집가는 것인가? 시집을 가는 순간 집안일을 도맡아하고 아이를 낳아야 할 텐데, 그렇게 되면 다신 지금처럼 자유롭고 제멋대로 살 수는 없겠지? 그런데… 보주는 예전에 시집간다더니 왜 아직 안 간 거지?’ 시만자는 이런 생각에 갑자기 보주를 보며 물었다. “너 왜 아직까지도 시집 안 갔어?” 그러자 보주가 놀라서 말했다. “말했잖아요. 아직 인연을 만나지 못했다고.” 시만자가 중얼거렸다. “괜히 내가 약속을 어긴 것 같잖아. 난 한다면 하는 사람인데 말이야.” 송석석은 그런 그녀를 보더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다 꿰뚫은 듯 말했다. “그래. 넌 한다면 하는 사람이지. 오 사형에게 시집간다고 했으니 후회하면 안 돼.” 시만자는 자신의 봉관을 바로 하고 옷을 정리하며 말했다. “후회라니? 내가 시집간다고 했으면 꼭 가는 거야!”‘난 평생 다채롭게 살 거야. 전쟁터도 두렵지 않은데 결혼을 두려워하겠어?’ 그녀도 주장이 없는 사람이 아니니 왕이장이 잘해주지 않으면 이혼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불안한 느낌은 그녀의 강한 마음에 의해 사라져갔다. 그녀는 기쁜 날이니 안 좋은 것을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고 다시 다짐했다. 송석석이 위로를 하려고 했는데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시만자가 턱을 치켜
그의 이름은 신이었는데 그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그에 대해서 말할 때, 경멸하는 기색을 띠었고,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 모르는 사람까지 모두 침을 뱉으며 뻔뻔하다고 할 정도였다. 알다시피 애인과 야반도주하는 것은 사람을 죽이고 불을 지르는 것보다 더 욕먹을 일이니 말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에게 후회하냐고 묻기도 했다. 그녀는 시집간 것을 후회하지 않지만 죄책감을 느끼긴 했다. 왜냐하면 그로 인해 시 씨 가문의 명성이 손상되어 형제자매들과 조카들이 혼사에 어려움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신이는 시 씨 가문의 아가씨로서, 태어날 때부터 온갖 보살핌을 받아왔다. 먹는 것은 물론 모두 산해진미이고, 입는 것도 모두 능라 비단이었다. 게다가 보모님과 오라버니의 총애까지 한 몸에 받았다. 하지만 그녀에겐 한 가지 결함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열네 살 때까지 월사가 오지 않은 것이었다. 많은 의사들을 불러 진찰을 받고 밤낮으로 약을 먹었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어머니는 그녀에게 몸이 차서 그러니 몸조리를 하면 나을 수 있다고 위로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몰래 의사가 부모님께 하는 말을 들었다. 의사는 그가 몸이 차서 그런 병이 생긴 것이 아닌, 아이를 키우는 곳이 어린아이와도 같아서 평생 아이를 가질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의 몸이 마치 작은 꽃병과 같아서 꽃을 꽂을 수는 있지만 나무를 심고 꽃을 피워 열매를 맺는 건 불가능하다고 비유했다. 그녀는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건 여자에게 어떤 의미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어머니는 그녀를 속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나중에 좋은 사람에게 시집가서 부군에게 첩을 들인 후, 첩이 낳은 아이를 친자식처럼 키우라고 조언해주었다.시 씨 가문이라는 후원이 있으면 그녀가 아이를 낳을 수 없어도 아무도 그녀의 지위를 흔들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 씨 가문의 재물은 그녀가 평생 부귀하게 살기에 충분했다. 신이의 조모도 그녀에게 아이를 낳을 수 없으니 자세를 낮춰야 한다고 했다. 시 씨 가문의 딸이라고
추운 겨울이 되자 눈이 내려 성릉관은 하얗게 뒤덮였다. 세상이 마치 깨끗해진 것처럼 보였다. 이황자는 몇 년 동안 너덜너덜한 승복을 입고 발우를 받쳐 들고는, 가는 길에 동냥을 하다가 절을 보면 이틀 묵으며 부처님께 참회하면서 살았다. 사실 그는 원래 있던 절에서 계속 지낼 수 있었다. 편안하진 않지만 풍찬노숙할 필요도 없고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그런 안일한 곳에서는 평생 죄를 씻을 수 없다고 생각했고, 계속 길을 걷고 계속 고생해야 마음이 조금이나마 편했다. 그가 성릉관에 도착했을 때 짚신은 이미 찢겨 있었고 발바닥에는 두꺼운 굳은살이 박여 있었다. 이제는 신발을 신지 않고도 자갈이 가득한 길을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추운 날씨에는 모든 옷을 껴입어도 추위를 막을 수 없었지만 이미 익숙해진 뒤였다. 그는 눈보라를 맞으며 성릉관에 위치한 감은사로 향했는데, 몇 년 동안 발걸음을 멈춘 적이 없는 탓에 고단함이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심지어는 이틀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아 그는 눈이 가득 쌓인 길에서 의식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깨어났을 때 그는 따뜻한 두꺼운 이불 속에 누워 있었다. 그가 있는 방에는 숯불이 피워져 있었고, 살짝 열린 창문으로 눈에 눌려 허리가 굽은 나뭇가지가 보였다. 그는 눈동자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렇게 편안하고 따뜻한 느낌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의 마음속에 순간 욕심이 생겨 조금만 더 누워있고 싶어졌다. 그런데 바로 그때, 문이 활짝 열렸다. 그가 벌떡 일어나 앉았는데, 갑자기 눈앞이 핑핑 돌더니 다시 힘없이 침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누워 있거라.” 이때 누군가가 부드러운 말투로 말하면서 약그릇을 그의 침대 옆에 놓았다. 그는 말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익숙해, 어지러움을 가라앉히고 고개를 돌려보니, 그 사람은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었다. “오랜만이야.” ‘서우 형?!’ 그는 자신이 잘못 보았을까 봐 다시 자세히 보려 했지만, 몸이 너무 어지러운
대황자는 봄 사냥 때 숙청제에게 꾸중을 듣고 돌아간 후 앓아누웠다. 당시 이황자와 서우가 모두가 걱정했는데 덕비는 오히려 기뻐했다. 그는 이번 일을 겪으면서 황제폐하께서는 분명히 대황자를 싫어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덕비는 이황자를 안고 반드시 부지런해야 하고, 태부와 황숙의 말을 잘 듣고 누구보다 잘 배워 황형을 제압해야 한다고 당부까지 했다. 그로 인해 이황자의 마음은 몹시 복잡했다. 덕비가 줄곧 그에게 태자와 황제가 되는 것이 얼마나 좋은 지 말해주었을 때 비록 그도 마음이 설렜지만 자신과 거리가 먼 얘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지금 그와 대황형, 서우 형, 그리고 셋째 동생이 사이가 좋아 도저히 대황형을 미워할 수가 없었다. 매일 모순적으로 지내다 보니 오히려 학업이 나빠졌고 승마 연습을 할 때도 여러 번 실수를 했다. 하지만 덕비는 이상하게 그를 탓하지 않았고 며칠 동안 계속 게으르게 하라고 했다. 그렇게 덕비는 이황자를 데리고 복마마를 자주 뵈러 갔고, 복마마 궁전에서 숙청제를 만날 수도 있었다. 덕비는 며칠 동안 그곳을 드나들더니 어느 날 굳은 표정으로 다시는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차가운 말투로 청이에게 자신의 보살핌이 없으면 아이가 태어날 수 있는지 보겠다고 했다. 황제폐하를 자주 뵈러 갈 수 없어 아쉬웠지만 이황자는 마음을 가다듬고 공부와 승마술에 전념했다. 이황자는 당시 앞날이 어떻게 될지도 몰랐고, 비록 매일 힘들긴했지만 한편으로는 즐거웠기에, 계속 이렇게 지내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숙청제의 천추세에 승마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니 세 황자와 서우도 가서 겨뤄 보기로 했다. 원래 그런 대회에서 황자들은 재미있게 참석만하면 되지만, 덕비는 그 경기를 몹시 중시했다. 덕비가 이황자에게 마름쇠를 건넬 때, 그는 하늘이 무너져내리는듯한 기분을 느꼈다. 이황자는 원하지 않았다. 그는 절대로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대황형의 목숨을 앗으려 하다니, 이황자는 처음으로 어마마마가 무서워졌다.하
이황자의 출가하기 전의 이름은 사범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이황자가 가장 많이 들었던 평가는 총명하고 지혜로우며 세 황자 중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것이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그는 진짜라고 믿으며, 자신이 자랑스럽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이런 말로 인해 자랑스러워할 때마다 덕비는 매번 그를 바닥으로 밀쳤다. 그녀는 늘 연민과 복잡한 감정이 가득한 눈빛으로 그를 보며 말했다. “내 뱃속에서 태어나 평생 그 바보에게 밀리게 생겼구나. 바보 주제에 운은 또 얼마나 좋은 지.” 그는 어릴 때부터 그런 말을 귀에 익힐 정도로 들었다. 하지만 덕비는 사람들 앞에서 말하지 않고 매번 사적으로만 그에게 말했다. 그는 어렸을 때 어마마마가 대황형을 가장 싫어하면서 왜 매번 자애롭고 온화한 눈빛으로 대황형을 보며, 분명 바보라고 해놓고 총명하다고 칭찬하는지 몰랐다. 이해가 안 돼서 몰래 청이에게 물어보았더니 청이는 한숨을 쉬며 그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이황자 님, 마마께서는 이황자 님을 위해서 계획을 세우고 계신 거예요.”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어머니가 자신을 위해 무엇을 계획하고 있는지 몰랐다. 하지만 그가 말을 들을 때마다 어머니는 기뻐하셨고 그에게 한숨을 쉬거나 애처로운 눈빛을 보이지 않았다. 숙청제가 그를 보러 올 때마다 덕비는 그가 책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려주었다. 그러자 숙청제는 그에게 어떤 책을 읽는지, 그리고 어떤 내용을 기억했는지도 물었다.그는 매번 대답을 아주 잘해서 숙청제를 흡족하게 했다. 답은 모두 미리 외운 것이기 때문에 어려울 건 없었다.가끔은 숙청제가 그에게 대황형이 괴롭히거나 장난감을 빼앗지는 않는지 물어보기도 했다.하지만 그런 질문에도 정답이 있었는데, 그는 매번 자기가 동생이니 황형에게 양보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했다. 이황자가 매번 그렇게 대답할 때마다 숙청제의 눈빛은 몹시 복잡했는데, 이황자는 그 눈빛을 이해할 수 없었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는 그저 숙청제가 잠시 침묵한 후에 그의 머리
어릴 때부터 친했던 두 친구는 각자의 분야에서 항상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수철이 약을 접하게 되면서 약과 의리는 그가 신약산장을 의지하는 모든 것이 되었다. 산에 내려가 의관을 차리고 사람들을 치료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매번 참기만 했는데 서우가 왔다 간 후 보내온 편지를 본 그는 산에서 내려갈 희망이 생겨 마음이 부풀어 잠이 오지 않았다. 그는 예전에 부상에 시달린 적이 있어서 열심히 통증과 부상을 치료하는 약을 연구했는데, 의술이 전면적인 나머지 뒤처지지도 않았다. 그의 마음속에는 지난 몇 년동안 한 번도 타오르지 않았던 한 줄기의 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신약산장에 도착한 순간부터 그는 자신이 설령 살아갈 수 있다 하더라도 이번 생은 그곳에서 지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채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신분과 얼굴을 바꾸고, 배운 것을 가지고 산에서 내려갈 수 있다면, 그는 유용한 사람이 될 수 있고 더 이상 숨지 않고 떳떳하게 살 수 있었다. 그 생각에 그는 며칠 동안 흥분한 상태로 제약 공장에서 먹고 마셨다. 사부님은 그런 그의 모습이 조금 두렵게 느껴져 사공에게 편지를 써 알리려고 했다. 그는 사부에게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환한 미소를 띠었다. 그 웃음에 놀란 사부님은 심지어 무당을 불러 귀신이 씐 건 아닌지 보려고까지 했다. 하지만 서우 형이 성공하지 못할 수도 있으니 그는 사부에게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비록 그가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긴 하지만 나중에 너무 실망하지 않도록 마음의 준비를 항상 해야 했다. 날이 지나고 더위와 추위가 오가더니 벌써 2년이란 세월이 흘렀다.추분, 날씨가 상쾌한 어느 가을, 하늘의 밝은 태양은 사람을 뜨겁게 하지 않았고 하얀 구름들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불어 들어오고 있었다. 서우는 다시 한번 신약산장에 발을 들였는데, 이번엔 그의 서동인 진소설을 데리고 왔다. 진소설은 몽동이를 따라 무술을 익혔다. 그런데 노력한 사람은 역시 보답을 받는다고, 비록
“사정언, 너 말 좀 그만해.” 송석석은 눈살을 찌푸리고 서우에게 매달려 쉴 새 없이 말하는 딸을 혼냈다. 새빨갛게 그을린 작은 얼굴에 닭장처럼 헝클어진 머리카락은 한 눈에 봐도 밖에서 뛰어놀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우가 돌아오자마자 그녀는 쉬지도 않고 사촌 오빠에게 길에서 본 재미있는 일들을 물었다. “어머니.” 사정언은 눈을 크게 떴다. 안 그래도 큰 눈을 더 크게 뜨니 왠지 억울해 보였다. 그녀의 외모는 부모님의 장점만 닮아 있었다. “제가 이렇게 오랫동안 사촌 오라버니를 만나지 못했으니, 당연히 할 말이 많지요. 하루만 못 봐도 3년 못 본 것처럼 길게 느껴진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게 무슨 말이야? 대체 누가 그런 말을 가르쳐줬어?” 송석석이 눈살을 더욱 찌푸렸다. “왕사백이요. 그가 며칠 전에 매산으로 갔었는데, 돌아오자마자 시 고모를 안고 그렇게 말했었습니다.” 그녀의 말에 시만자는 고개를 숙여 송석석의 눈빛을 피했다. 그녀는 그때 정언이 나무 위에 숨어 있을 줄은 몰랐다. 알았다면 아이 앞에서 껴안고 그런 오글거리는 말을 할 수 없었을 것이었다. 그녀는 이 아이가 말을 따라 하는 능력이 아주 뛰어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하지만 이 나이의 아이들이 왜 어른들의 말을 듣는 것을 좋아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녀는 이맘때쯤에 최대한 어른들과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말이다. 사정언은 대답한 후에도 계속 서우를 잡고 말했다. “오라버니, 혹시 상서에 갔어? 상서에서 시신 업는 것을 봤어? 정말 소국이 말한 것처럼 앞에서 종을 흔드는 도인이 있고, 뒤에 좀비들이 따라가는 거야? 그들은 걸어가 아님 뛰어가? 꼭 밤에만 볼 수 있는 거야? 낮에는 햇볕이 쨍쨍해서 볼 수 없는 거야? 그들은 말할 줄 알아? 뭘 먹어? 그리고 그곳엔 주술을 잘한다고 들었는데 혹시 미인을 본 적이 있어? 그런 미인은 오라버니가 마음에 드는지…….” “그만해!” 송석석도 이내 참지 못하고 호통을 쳤다. “보주, 서주, 어서
송석석은 이번에 외출할 때 황제에게 유람하러 간다고 했다.하지만 그녀는 신약산장에 오래 머물지 않고 7일 만에 떠나 만종문으로 향했다.그녀는 원래 진성으로 돌아가 홍현 고모를 찾고 싶었지만 평무종 고모를 직접 찾아가서 분장술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분장술은 어렵지 않지만 능숙하게, 아무도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하려면 한두 달 만에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간단한 분장술은 기존의 얼굴에도 할 수 있었지만 비가 오기만 해도 쉽게 흔적이 드러날 수 있었다.그러니 간단한 분장술만 배워서는 안 되었다.그리고 또 다른 미용술은 가면을 만드는 것인데 일반적인 가면은 일정한 두께가 있어 답답하고 오랫동안 착용하면 얼굴에 상처가 날 수 있다.게다가 가면을 착용할 때는 특수 물약을 묻혀야 했기에, 뜯을 때도 얼굴에 상처가 입을 수 있었다.운익각 사람들은 가면을 착용할 때 오래 착용하지 않았다. 게다가 정탐꾼들은 무공도 괜찮고 경공도 높아 임무를 수행할 때만 가면을 착용해서 물약을 묻힐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벗겨져도 얼굴에 검은 천으로 복면을 쓰고 있어서 알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그리고 일반인들이 변장해서 탐문할 때 사용하는 것은 변장의 첫 번째 방법이었다.평무종은 서우의 요구를 듣고 말했다.“얼굴에 오래 쓰고 있을 수 있으면서도 원래 피부를 해치지 않고 잘 벗겨지지 않는 가면이라, 그럼 상어가죽으로 만드는 것은 어떠냐.”“상어가죽이 무엇입니까?”서우는 매미의 날개처럼 얇고 물에 젖어도 흔들리지 않는 상어비단은 들어본 적이 있었지만 그건 엄청 귀중한 비단이었다.그러자 평무종이 설명했다.“상어가죽은 분장술에서 쓰이는 가장 좋은 소재이다. 통풍이 잘 되고, 얼굴에 단단히 붙어 쉽게 떨어지지 않아 빗물을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심지어 눈으로 보나 만지나 모두 진짜 피부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상어가죽으로 가면을 만들려면 상어 눈물을 사용해서 실을 짜내고 다시 밑감을 만들어야 해서 매우 번거롭다.”그러자 서우가 물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촛불을 들고 한참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지만 조정의 일은 일절 말해주지 않은 탓에, 수철은 지금 나라가 안정적이라는 사실만 알 수 있었다. 그는 이미 대황자가 아니다. 따라서 지금 그가 지켜야 할 것은 자신의 목숨뿐이고, 다른 것은 이미 그와 상관이 없어졌다. 그는 조정에 관한 화제를 꺼내면 모두가 예민해질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릴 때 그는 왜 자신이 죽어야 하는지 몰랐지만, 나중에 단 사공이 와서 조금씩 분석해 주었고, 그의 사부님도 이해관계에 대해 이야기해준 적이 있었다. 그와 셋째 동생 사이에 가족의 정으로 목숨을 걸고 불안정한 여생을 걸어야 한다면 결코 모두에게 좋은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받아들기로 한 것이었다. 삶은 계속될 텐데, 매일을 의미 있게 잘 보내야 목숨을 건진 보람이 있기 때문이다. 서우가 그의 다리에 대해 물었다. “내가 오기 전에, 고모가 그러던데 넌 다리를 다쳐서 일어날 수 없다고 했는데 지금은 어떻게 걸을 수 있게 된 거야?” 그러자 수철이 말했다. “부황께서 승하하신 해에 산장에서 몇 사람이 와서 진찰해 보더니 정말 심하게 다쳤다며 이대로 두었다가는 계속 아플 테니 반드시 극단적인 방법으로 치료해야 한다고 하더군.” 그러자 서우는 호기심에 물었다. “어디서 온 신의야? 그럼 그때부터 치료한 거야?” 그 물음에 수철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북당에서 왔는데 그 사람은 그 말만 하고 날 치료해주지 않고 당일에 떠났어. 그러다가 지난달에 와서 약주를 줘서 그걸 마셨는데, 난 하루 종일 혼수상태에 빠졌어. 심지어 깨어나니 다리가 아파 죽을 것 같았지. 그런데 며칠이 지나자 점점 좋아지더니 누군가 부축하면 일어날 수 있게 되었어. 처음에는 잘 일어나지 못했는데 시간이 지나자 점점 똑바로 설 수 있게 되었지. 그리고 지금은 혼자 몇 걸음은 걸을 수 있게 됐어.” 그러자 서우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북당신의? 그분께서 아직 살아 계셔?” “아니, 돌아가셨어. 내가 일어나
[번외편]신약산장의 진달래가 온 산천지에 피었다. 다채로운 경치는 사람들로 하여금 황홀하게 만들었다. 특히 신약산장에 가본 적이 없는 사람들마저 그곳에 살고 싶어 할 정도였다. 하지만 예외인 사람이 한 명 있었다. 그는 말을 타고 산 아래에 도착해 말을 잘 배치한 후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직 눈앞의 길만 보았고 찬란한 꽃들은 그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빠르게 걸으며, 가끔 경공을 사용하기도 했다. 신약산장이 비록 높지는 않았지만 은밀하게 숨겨져 있었고 많은 갈림길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지도를 수도 없이 봐 온 덕분에 신약산장으로 향하는 길을 이미 마음속에 깊이 새기고 있었다. 약관 때 그가 작위를 계승했을 당시, 작은 고모가 많은 선물을 주었는데 그중 가장 큰 선물이 바로 지도였다. 그리고 그에게 온몸의 피가 끓게 하는 소식을 알려주었는데 바로 수철이 아직 살아있다는 사실이었다. 당시, 그는 한숨도 자지 못했고 옛날의 모든 일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작위를 받은 후 입궁해서 사은하고 선조들에게 제사를 지낸 후 답방 인사를 드려야 했는데, 작은 고모의 말로는 인맥을 굳건히 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그래서 무려 보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신약산장으로 출발했다. 산 아래에 도착하자 그는 날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막상 산문을 본 순간, 강한 슬픔에 휩싸여 발걸음을 멈추고 그저 멍하니 서 있을 뿐이었다. 작은 고모는 그에게 수철이가 두 다리를 못 쓰게 되었고, 불행 중 다행히 치료 후에 목숨은 건졌지만 약 없이는 살 수 없게 되었다고 했다. 그것은 평생 약을 달고 의자에 앉아 있거나 침대에 누워서 지낼 수밖에 없다는 뜻이었다.그의 기억 속의 수철의 모습은 두 가지로 나뉘었는데, 하나는 제멋대로며 횡포한 모습이었고, 다른 하나는 성실하고 열심히 공부하며 태후마마와 황제폐하를 실망시킬까 봐 무술이든 공부든 최선을 다 했던 모습이었다. 특히 무술은 고모부가 재미있게 가르쳐 준 덕분에 그들은 항상 활기차게 뛰어다닐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