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청여는 석소 사저가 자신의 뜻을 오해했다는 것을 알았지만, 마음이 심란해서 사과할 겨를이 없었다. 문을 굳게 닫은 왕청여는 어머니에게 약을 건네며 말했다.“어머니, 일단 약부터 드세요. 나머지는 다시 천천히 생각하시고요.”그러자 노부인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청여야, 네가 솔직히 얘기해 보거라. 네 오라버니가 평소에 너에게 얼마나 잘해주었느냐?”“어머니, 하지만 저희는 이제 오라버니를 도울 능력이 없어요. 우린 지금 소주방에서 빌붙어서 살고 있고 어머니께서 드시는 약도 시만자 아가씨가 돈을 줘서 살 수 있었던 거예요.”왕청여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말하자 노부인이 반박했다.“네가 틀렸어. 그 돈들은 왕이장이 준 거야. 비록 왕이장이 우리를 가족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우리를 살리기 위해 여기저기 바쁘게 움직였었다고.”“그자의 돈이라고 해도 우리는 오라버니를 위해 그자에게 돈을 달라고 할 수는 없어요.”입술을 꽉 깨물고 있던 노부인이 솔직하게 얘기했다.“그 돈들은 왕이장 돈이 아니야. 그때 당시 왕이장이 돌아왔을 때 네 새언니가 왕이장에게 보상을 줘야 한다고 제안했어. 그래서 점포 여러 개를 왕이장에게 준 거야.”“그자에게 줬으면 그자의 것이잖아요. 그리고 왕이장 그자도 암암리에서 저희를 많이 챙기고 도왔는데 이제 와서 도로 내놓으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어머니, 이건 왕이장에게 불공평해요.”왕청여의 말에 노부인의 표정이 확 굳어졌다.“어차피 우리는 왕이장에게 미안한 짓을 이미 많이 저질렀어. 지금도 왕이장은 우리를 원망하고 있을 텐데 더 원망하게 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어. 네 오라버니가 잘못을 저지른 건 맞아. 잠시 정신이 나가서 그랬을 거야. 하지만 이제 더 이상 도망칠 곳도 없는데 네 오라버니가 이대로 죽는 걸 두고 볼 수는 없잖아.”고개를 푹 숙인 왕청여는 약 그릇을 내려놓으며 대꾸했다.“어머니, 차라리 새언니에게 말하는 건 어떨까요? 새언니는 좋은 방법이 있을 수도 있잖아요.”“그건 절대 안 된다!
왕청여는 결국 왕이장을 찾아가지 않았다. 예전이라면 뻔뻔하게 왕이장도 평서백부 핏줄이니 가족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반드시 도와야 하는 게 맞다고 얘기하겠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었다.왕청여는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면서 깨달은 게 많았다. 평서백부가 무한한 영광과 명예를 누릴 때 왕이장은 덕을 조금도 보지 못했다면 왕씨 가문이 패가망신한 지금, 왕이장에게 도와달라고 부탁할 자격도 없는 것이다.왕청여는 그보다 이 사실을 새언니에게 알려야 하는지 고민이 깊었다. 오라버니가 죽게 내버려둘 수는 없었기에 왕청여는 나무 그늘 밑에 앉아 한참동안 멍 때리고 있었다.이때, 석소 사저가 마침 이곳을 지나가다가 왕청여를 보자 그녀와 마주치기 싫어서 바로 방향을 틀었고 조금 전의 말실수가 떠오른 왕청여가 다급하게 석소 사저를 불러 세웠다.“석소 사저, 조금 전에는 제가 죄송했습니다. 하지만 절대 나쁜 뜻으로 얘기한 건 아니었습니다.”“예.”그러자 석소 사저는 대충 대답을 하고 바로 자리를 뜨려고 했다.왕청여는 자유롭게 사는 무림의 여인은 솔직하고 직설적으로 말을 해줄 것 같아서 돌아서는 석소 사저에게 말을 걸었다.“석소 사저, 혹시 사저와 얘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걸음을 멈춘 석소 사저가 잠시 망설이다가 돌아서서 왕청여에게 다가갔고 두 사람은 그렇게 나무 그늘 밑에 나란히 앉았다.“무슨 얘기하고 싶은데요?”왕청여는 무슨 말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서 우물쭈물하다가 석소 사저 손에 들고 있던 재봉실을 보며 물었다.“재봉실을 사신 거예요?”“아니요. 이씨 부인께서 보내왔어요.”석소 사저의 대답에 왕청여가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이씨 부인은 사람이 참 선하네요. 소주방에 신경도 많이 써주고.”“다들 선한 사람들이죠.”“맞아요.”석소 사저는 대충 대답을 하고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그러자 왕청여가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특별한 건 아니고 그냥 함께 사는 얘기나 하려고 그런 겁니다. 아
한편, 최숙심은 뜨개질로 딸에게 옷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현재 북명 황실에서 지내고 있는 딸이 먹고 쓰는 것까지 황실에게 부탁할 수는 없었다.최숙심은 뜨개질을 하면서도 왕비가 했던 말들이 실제로 벌어질 가능성이 클 것 같다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했다. 왕표가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으면 무조건 진성으로 돌아올 테지만 진성에 돌아온 그가 자신을 찾아올지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왕표는 일단 노부인에게 찾아가 도움을 청할 것이고 노부인이 도울 능력이 없다고 생각되면 그때가 되어서야 자신을 찾아올 것이다. 하지만 아들을 걱정하고 아끼는 노부인은 어떻게든 그의 이 일을 해결해주려고 할 것이다. 비록 오늘 노부인과 왕청여를 미행했을 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앞으로도 이럴 것이라는 보장은 없었다.왕표가 진성으로 돌아온 이유가 돈을 구하기 위해서이니 돈만 구해지면 바로 진성을 떠날 것이다.노부인 현재 가지고 있는 돈이 없지만 진성에서 오랜 세월을 보냈기에 인맥은 넓다. 여기저기서 돈을 조금씩 빌린다면 그건 상대방들을 구렁이에 빠트리는 거나 다름없다.하지만 거동이 불편한 탓에 노부인은 직접 돈을 빌리러 나갈 수도 없고 창피해서라도 절대 직접 나가지 않을 것이다. 그럼 보낼 사람은 남희나 왕청여밖에 없다.최숙심이 속으로 이런저런 분석을 하고 있을 때, 왕청여가 방으로 걸어 들어왔고 최숙심은 고개를 들며 물었다.“무슨 일로 찾아온 것이냐?”왕청여는 말을 꺼내기도 전에 눈물부터 줄줄 흘렸다.“새언니, 제가 예전에 멍청한 짓을 많이 저질렀어요. 저 때문에 새언니가 얼마나 많은 피해를 받고 조카들까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이제 알 것 같아요. 제가 다 잘못했어요. 예전에 했던 행동들이 너무 후회돼요.”최숙심은 왕청여가 감옥에서 간신히 살아나온 뒤로 많이 바뀌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먼저 찾아와서 사과까지 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다 지난 일이야. 이제 미래를 보면서 살아야지. 앞으로 다 잘 될 거야.”최숙심이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위로했다. “
최숙심은 왕청여에게 언제 어디에서 왕표를 어떻게 만났는지 자세하게 물으며, 왕표 곁에 아이가 없었는지도 확인했다.“어제 냄비를 사러 밖에 나갔는데 소주방으로 돌아오는 길에 오라버니가 갑자기 작은 골목에서 나타나서 깜짝 놀랐어요. 나쁜 사람인 줄 알고 겁을 먹고 있다가 오라버니가 제 이름을 부르고 나서야 오라버니를 알아보았거든요. 얼굴은 까맣고 눈썹도 다 잘랐는데 몸도 심하게 야위어서 자세하게 보지 않으면 오라버니라는 걸 절대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어요. 아이를 데리고 있지는 않았고 혼자였어요. 누군가에게 협박을 받아서 도주하게 되었는데 체포 공문이 떠서 여기저기 숨어 다닐 수밖에 없었다고 했어요. 이제 가진 돈도 다 썼고 아이까지 키워야 하는데 더 이상 방법이 없다고 하면서 저와 어머니에게 어떻게든 3천냥을 구해달라고 부탁했어요.”“돈을 구하면 그자에게 어떻게 주기로 했어?”최숙심이 다급하게 물었고 왕청여가 대답했다.“그건 아직 정하지 않았어요. 일단 저희에게 돈부터 구하라고 하곤, 나중에 오라버니가 날 찾아오겠다고 했어요.”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최숙심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그자가 눈썹이 없다고 했나?”“네, 오라버니는 눈썹이 짙어서 알아보기 쉽거든요. 그래서 다 잘라버린 것 같아요.”왕청여가 말한 것처럼 왕표가 눈썹을 자른다면 그를 알아보는 사람이 적을 것이다. 이 사실을 얼른 북명 왕비에게 알려야 하지만 눈썹을 다시 그릴 수도 있기에 눈썹이 없는 사람만 유의해서 될 일도 아니다.“그럼 넌 이틀에 한 번씩 밖을 돌아다녀서 관찰해봐. 병부에 가서 왕이장을 만나기도 하고. 네 오라버니는 기회가 생길 때마다 너를 몰래 미행할 거야. 난 석소에게 지금 당장 북명 왕비를 찾아가 순찰에 더욱 힘써 달라고 부탁할게. 그래야 네 오라버니가 한 시라도 빨리 널 찾아올 거야.”“알겠어요.”고개를 끄덕이던 왕청여가 다시 물었다.“그럼 어머니께는 뭐라고 말해야 할까요?”“돈을 마련하고 있다고 해. 왕이장이 돈을 주기로 했고 지금 점포를 팔고 있는 중
진성 전체에 대한 순찰을 강화하자 예상대로 왕표가 급하게 모습을 드러냈다.하지만 왕표가 찾아간 사람은 왕청여가 아니라 최숙심이었다.이날 최숙심은 딸에게 자신이 직접 만들어준 옷을 주러 북명 황실에 찾아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소주방 여인들을 위해 이런저런 필요한 물건들을 사기도 했다.눈앞에 갑자기 나타난 왕표를 봤을 때, 최숙심은 너무 놀라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왕표는 분명 왕청여에게 자신이 나타났다는 사실을 최숙심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는데 왜 이렇게 직접 찾아온 건가?’“부인, 나일세.”커다란 삿갓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목소리는 왕표가 확실했다. 최숙심은 잠시 넋을 잃고 있다가, 순간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이를 꽉 깨문 채 가까스로 화를 억눌렀다. 몰래 주변을 쓱 살폈는데, 골목 안에는 두 사람 외에 아무도 없었다.최숙심은 왕표가 절대 자신을 찾아오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었는데, 그녀의 판단이 틀려 버린 것이었다. “지금 무슨 말씀하시는 겁니까…?”이를 악문 최숙심의 목소리는 조금 떨렸는데, 왕표는 그녀가 자신을 오랜만에 보게 되어 흥분한 거라고 착각했다.왕표는 이내 삿갓을 위로 슬쩍 올려 삐쩍 마른 얼굴을 드러냈다. 왕청여가 말한 것처럼 눈썹은 전부 잘라버렸는데, 그 모습은 더할 나위 없이 우스꽝스러 보였다.“부인, 정말 나일세!”왕표는 기대에 찬 눈빛을 하고 있다가 이내 주변을 경계하듯 쳐다보다가 아무도 없다는 것을 인하고 나서야 다시 입을 열었다. “가족들이 걱정돼서 이렇게 진성으로 다시 돌아온 거라네. 다들 무사한 걸 보니까 이제 한시름 놓이는군.”하지만 최숙심은 가식적인 왕표의 모습에 헛구역질이 날 정도였다.“진성 곳곳에 당신의 체포 공문서가 붙어있는데 어떻게 감히 진성으로 돌아온 것입니까?”“다들 무사한 걸 봤으니, 이제 이곳을 떠날 생각이오.”왕표는 말을 하며 한걸음 가까이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앞으로 평생 이렇게 여기저기 숨어 다녀야 할지도 모르오. 부인, 내가 예전에 부인에게 많은 잘못
이내 표정을 숨긴 최숙심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얼른 가십시오. 돈을 구하면 바로 서방님을 찾으러 가겠습니다. 아, 그리고 요즘 진성 순찰이 삼엄하니 여기저기 돌아다니지 마십시오.”왕표는 자신을 걱정하는 최숙심의 말을 듣자, 그녀가 밖에서 아무리 대단한 여인이라고 불려도 결국 자신에게 만큼은 마음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는 뿌듯함에 경계심이 완전히 풀렸다.“최대한 3일 안에 마련해주면 고맙겠소.”그러자 최숙심이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대꾸했다.“그건 안 됩니다. 지금 상황이 어려운데, 어떻게 3일 안에 그 큰돈을 마련할 수 있겠습니까?”“우리 딸 지아가 지금 북명 황실에서 지내고 있지 않소? 그러니 난 부인이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믿소. 부인의 소식을 기다리겠소. 그리고 내가 부인을 찾아왔다는 말은 아무한테도 하지 마오. 어머니와 왕청여한테도 얘기해서는 안 되오!”말을 마친 왕표는 삿갓을 쓰고는 돌아서서 빠르게 떠났다.표정이 확 어두워진 최숙심은 그를 얼른 따라갔지만 골목 밖에도 순찰하는 경위대가 보이지 않았기에 섣불리 소리를 지를 수도 없었다.왕표는 궁지에 몰린 순간 백성들을 인질로 잡아 어떻게든 진성을 벗어나려고 할 것이고 만에 하나 왕표가 진성을 빠져나가게 되면 그를 찾아내는 건 더 어려워질 것이다.최숙심은 빠른 걸음으로 소주방에 돌아와 석소를 구석으로 불렀다.“석소 아가씨, 얼른 왕비에게 찾아가서 왕표 그자가 보화사에 여람 스님 신분으로 위장하여 숨어있다고 전하시오.”“네, 지금 바로 다녀오겠습니다.”그렇게 석소가 돌아서서 소주방을 떠나려던 그때, 최숙심이 그를 불러 세웠다.“잠깐만요! 왕비님께 너무 대놓고 보화사에 왕표를 잡으러 가지는 말라고 전해주세요. 저에게 거짓말을 한 것일 수도 있으니 일단 몇 사람만 데리고 가서 상황만 파악해보시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전하세요.”현재 수색이 삼엄해서 왕표는 더 이상 도망갈 곳도 없겠지만 그래도 최대한 조심해야 한다. 이는 최숙심이 공을 세울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고 단번에 확
한편, 송석석은 시만자를 데리고 일반 손님으로 위장한 채 직접 보화사로 향했다. 보화사에 도착한 뒤 절을 올리고 초를 꽂고는 주지 스님을 찾아 신분을 밝힌 뒤, 여람 스님에 관해서 물었다.주지 스님은 바로 지객 스님을 불러왔다. 각지 스님들이 보화사에 찾아와 며칠 묵고 갈 때마다 지객 스님이 그자들을 모셨기 때문에 자세한 상황을 제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보화사는 진성 3대 절 중의 하나일 정도로 꽤 유명했기에, 매년 보화사에 찾아와 경을 들으면서 며칠동안 이곳에 묵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많아도, 실제로 이곳에 머물 수 있는 사람은 몇 없었다. 지객 스님은 여람 스님에 대해 인상이 꽤 깊었다. 수련의 경지가 그리 높지 않았기에 원칙대로라면 이곳에서 지낼 수 없는데 몇 년 전부터 남강에서 죽은 이의 영혼들을 제도했기에 그 자비로운 마음을 높이 평가하고 덕행도 많이 쌓았기에 지객 스님은 의례적으로 여람 스님을 받아준 것이다.“며칠동안 매일 여람 스님께서 밖에 돌아다니셨습니다. 진성 내에 전란이 일어나 사상자가 많았기에 여람 스님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죽은 이들의 영혼을 제도하느라 고생이 많았습니다.”지객 스님은 여람 스님을 매우 좋게 평가했다. 송석석은 그런 지객 스님의 말을 조용하게 듣고 있을 뿐, 반박하지는 않았다.그러고는 지객 스님에게 여람 스님을 만나보고 싶다고 얘기하며, 여람 스님을 존경하는 마음에 돈을 기부하며 여람 스님을 위해 따로 절 하나를 지어주고 싶다는 말도 함께 전해달라고 했다.한편, 지객 스님은 송석석과 시만자의 신분을 알지 못했지만, 두 사람이 수수한 옷차림과 달리 기품이 넘쳐 흘렀기에 모 훈작 세가의 부인이나 아가씨일 것이라고 추측해,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인 후 바로 왕표에게 말을 전했다.왕표는 자신을 찾아온 자가 있다는 말에 흠칫 놀랐다가 절을 만들어주며 돈까지 기부하겠다는 소식에 바로 표정이 환하게 바뀌었다.평서백이었던 왕표는 가문의 번영을 위해 절에 돈을 기부하는 명문 가문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그렇게
왕표는 중범죄자이기에 바로 대리사로 이송되어야 하지만, 송석석은 그를 일단 경위부로 압송했다. 경위부에서 심문을 마친 후, 어전에 보고를 올리며 최숙심의 공을 황제에게 잘 얘기한다면,왕준과 현이 하루 빨리 진성으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더군다나 고청우도 아직 경위부에 갇혀 있기에 왕표와 고청우가 만난다면 더욱 많은 일들을 알아낼 수도 있었다.그렇게 고청우와 왕표는 같은 곳에 갇혔으며, 중간에 나무 울타리 하나를 세워 두 사람을 갈라놓았다.고청우와 왕표가 서로 눈이 마주치자, 표정이 순식간에 바뀌었으며 왕표가 먼저 이를 갈면서 마구 소리를 질렀다.“천박한 놈! 결국 네 놈 꼴도 이렇게 되었구나! 드디어 벌을 받은 게야!”그러자 고청우가 실눈을 살짝 뜨며,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비아냥거렸다.“내가 천박한 년이면 왕표 너는 뭔데? 나도 벌을 받았지만 너도 결국 이렇게 갇혀 있잖아! 넌 뭐 다를 것 같아?”“이게 다 네 놈 때문이야!”왕표가 울타리 사이로 손을 뻗어 고청우를 잡으려고 허우적거렸고 뒤로 살짝 물러난 고청우는 오아표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코웃음을 쳤다.“버러지 같은 놈!”“네 놈이 감히…! 지금 뭐라고 했느냐! 네 놈이 역적과 손잡고 날 꼬셔서 야반 도주하게 만들지 않았다면 난 지금 남강 원수의 신분으로 잘 살고 있었을 거야! 절대 이런 꼴을 당할 리 없었을 거라고!”왕표가 씩씩거리며 소리를 지르자 고청우가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널 꼬셨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마. 넌 결국 죽음이 두려워서 그런 선택을 한 거야. 넌 내가 무엇인가 노리고 접근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잖아. 그런데 내가 아이까지 낳으니 이제 날 곁에 묶어 둘 수 있겠다고 확신한 거지. 이 세상 모든 여자들이 네 본처처럼 아이들을 위해 목숨까지 바칠 수 있는 줄 알아? 가족애라는 건 이 세상에서 가장 우스운 거야. 그딴 걸로 날 묶어 둘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멍청한 놈! 내가 널 버리고 갈 때 분명하게 얘기했잖아. 넌 무능하고 무술 실력도 보잘것없는데
송석석이 태후에게 말했다. "단신의께서 궁에 들어오신다면 분명 최선을 다해 치료하실 겁니다."넋이 나간 채 있던 태후의 눈에서 이내 눈물이 쏟아졌다. "최선을 다해도 생명을 구하는 것은 어려울 테니, 그저 조금만 더 오래 살게 해주어 국본의 큰 일을 잘 마무리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태후의 눈물을 보자 송석석도 마음이 아팠다. 예전에 모친께 듣기로, 태후는 강인한 성품을 가진 여성이라 큰 일에도 눈물 한 방울 쉽게 흘리지 않으신다고 하였다.송석석은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했다. 하지만 이내 지금 태후에게 필요한 것은 위로가 아니라 묵묵히 곁에 있어주는 것임을 깨달았다.같은 시간, 사여묵은 약왕당에 가서 단신의를 만났다.오늘 궁에 호출된 후, 염선생이 약왕당에 가서 단신의에게 이 일을 바로 알렸기에 단신의는 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그는 이번에 제자를 데려오지 않고 혼자서 사여묵을 따라나섰다.청작과 홍작은 그를 따라가려 했지만 단신의는 그들을 엄하게 꾸짖으며 돌려보냈다.마차 안에서 사여묵은 단신의에게 안전하게 보호하겠다고 약속했다.단신의는 약상자를 열어 이것저것 살펴보며 고개도 들지 않고 말했다. "상관없습니다. 진짜 머리가 잘리게 된다면 그것 또한 제 선택입니다.""그럴 일 없을 겁니다." 그러자 사여묵이 단호하게 말했다. "제가 모시고 온 것이니, 가실 때 또한 반드시 안전하게 모셔다 드릴 것입니다."단신의는 약상자를 잠근 후, 마차의 부드러운 방석에 기대어 앉았는데, 그의 눈빛은 어두웠으며 무엇을 생각하는지 보이지 않았다.오랜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단신의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의 이름은 운지입니다. 세 살에 약방를 외우고 다섯 살에 모든 약초를 다 알았으며, 열여섯에 출사하여 스물다섯에 명성을 떨쳤습니다. 그 자야 말로 진정한 신의였지요."사여묵은 등을 곧게 펴고 진지한 표정으로 조용히 그의 말을 들었다."의관은 어진 마음을 가져야 하며, 병을 치료할 때 신분을 가리지 않아야 합니다. 그의 눈에는 장사꾼
송석석이 무릎을 꿇고 있던 순간이 비록 아주 잠깐이었지만, 마치 한 세기가 지나간 듯했다. 그리고 마침내 숙청제의 미묘한 한숨과 웃음소리가 들렸다. "이 녀석아, 어쩌다 이렇게 버럭 화를 내는 거냐?"숙청제의 말에 송석석의 마음이 조금 놓였다.처음에는 분노와 억울함이 가득해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그렇게 말을 쏟아낸 것이었고, 그 뒤의 말들은 약간의 도박과도 같았다.그녀의 마음속에도 두려움이 가득했다. 생명이 거의 다한 황제가 잔혹해지면 얼마나 잔혹해질 수 있는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그가 그 질문을 했을 때, 그녀는 자신이 어떻게 증명해 보이려 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았다. 오직 이렇게 버럭 화를 내는 것만이 효과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행동한 것이었다."일어나라." 숙청제의 목소리는 이미 훨씬 부드러워졌고, 앙상하고 누런 얼굴에도 미소가 떠올랐다. "너는 여전히 어릴 적 그대로 입에 발린 말을 절대 못 참는구나. 그냥 한마디 물어봤을 뿐인데 하늘을 뒤엎을 듯이 짐을 꾸짖어 대는 거 하고는. 정말 네게는 당해낼 수가 없구나."송석석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한층 깊어졌다. "너 말이다, 죽어가는 사람과 언쟁하여 어디에 쓰려고 그러느냐? 하늘에 올라가 네 둘째 오라버니에게 네가 짐을 괴롭혔다고 말할까 봐 걱정되지는 않느냐? 어렸을 때 너 또한 짐에게 형님이라고 불렀다는 사실을 잊지 말거라. 그리고 지금도 짐은 네 형님이다."송석석은 고개를 돌렸다.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이제 와서 형님이라 하다니……"왕비님, 일어나십시오." 오 대반이 곁에서 가볍게 몸을 일으키는 시늉을 하자, 송석석이 일어나고는 몸을 돌려 눈물을 닦았다.반면, 숙청제는 여전히 고통을 참지 못해, 손을 들어 그녀에게 물러나라고 손짓한 뒤, 우원정을 불러들였다.잠시 후 들려오는 고통의 신음소리에 송석석은 한동안 멈춰 서 있다가,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그녀는 황제에 대한 감정이 복잡했다. 때로는 군주이자 형님 같았고, 때로는 그렇게
송석석은 부친을 끌어들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황제가 무엇을 말하든 부친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기에 부친의 충군애국을 계속 강조하며 답해야 할 질문을 강요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하지만 그녀가 좋아하든 싫어하든, 그것은 황제의 고려 사항이 아니었다.그녀는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말씀하십시오. 듣고 있습니다."뼛속까지 스며드는 듯한 고통으로 인해 숙청제는 예전처럼 우회적으로 묻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너는 사여묵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일 테지. 만약 짐이 죽으면 그가 섭정왕이 되어 어린 황제를 죽이고 스스로 왕위에 오를 것이라고 생각하느냐?"송석석의 마음은 세차게 가라앉았고, 분노가 눈에 가득 차올랐다. 남강에서 막 죽을 고비를 넘기고 돌아온 그가 이렇게 노골적인 의심을 받아서는 안 되었다. 그녀는 사여묵을 대신해 억울함을 느끼며 차갑고 빠른 말투로 말했다. "폐하, 저는 그와 부부가 된지 겨우 삼 년밖에 되지 않았으니, 이 세상에서 그를 가장 잘 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그의 형님이신 폐하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폐하께서는 그가 그런 일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화낼 필요 없다. 짐은 상국의 미래를 걱정하는 것이다. 너는 신하로서 네 부친과 마찬가지로…...""폐하!" 송석석은 바로 그의 말을 끊었다. 불경을 저지르는 것이든 아니든 그녀는 상관하지 않았다. "제가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은 저 자신을 대변하는 것이지, 제 부친과는 관계없습니다. 부친은 이미 남강 전장에서 전사하셨고, 그의 공로는 후세 사람들이 평가할 것입니다."숙청제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송석석, 네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느냐? 너와 네 부친이 한 일이 서로 다르다고 말하려는 것이냐?"오 대반이 깜짝 놀라 급히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폐하, 진정하십시오. 화를 내시면 안 됩니다." 송석석이 벌떡 일어나 단호히 말했다. "그렇다면 폐하께서는 지금 무슨 말을 하고 계신지 아십니까? 이 질문은
몇일 전, 숙청제는 오 대반을 약왕당에 보내 단신의의 행방을 묻게 했다. 그러자 약왕당에 있던 이들은 단신의가 이미 성을 떠나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고 전했다.오 대반이 돌아와 위 사실을 보고하였고, 숙청제는 단번에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아바마마께서 당시 민간 명의를 처형했던 일이 있었기 때문에, 단신의가 궁으로 들어와 치료하기를 꺼리는 것이 분명했다.그는 단신의를 궁으로 불러오기 위해 사람을 보낼까 생각했다. 천하에 왕의 땅이 아닌 곳은 없는 법이기에 그가 어디 있든지 간에 반드시 그를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그가 원하지 않는다면 노력할 필요도 없었다. 데려온다 해도 소용이 없었다.숙청제는 단신의를 부를 수 있는 단 한 사람을 떠올렸다. 바로 송석석이었다.그러나 그의 병세는 계속 비밀에 부쳐져 있었고, 그는 조정의 문무백관들이 이를 너무 일찍 알아차리지 않기를 원했다. 특히, 사여묵에게는 더욱 알리고 싶지 않았다.사여묵은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운 뒤 막 돌아온 덕분에 민심이 하늘을 치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병세를 미리 알고 준비하여 계획을 세운다면, 성공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사람은 결국 육신을 지닌 존재일 뿐, 병의 고통에 시달리며 그는 더 이상 예전처럼 이성적일 수 없게 되었다.그는 그저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고통을 완화하고 싶을 뿐이었다.단신의는 그런 그의 마지막 희망이었다.사여묵은 송석석과 함께 궁에 들어갔는데, 오랜만에 황제를 다시 보게 된 두 사람은 깜짝 놀랐다.그는 몹시 말라 뺨이 움푹 들어갈 정도였으며, 얼굴은 창백하고 누렇게 질려 있었다. 삼월의 추운 날씨임에도 그의 이마는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고, 옆에는 방금 갈아입은 옷이 놓여 있었는데, 그것도 젖어 있었다.궁 안은 태의들로 가득 차 있었고, 그들 또한 매우 지쳐 보였다. 아마도 근래 줄곧 황제 곁을 지킨 듯했다.숙청제는 침상에 기대어 앉아 허리 뒤에 부드러운 방석을 받치고 있었다. 목이 머리를 잘 지탱하지 못해 흔들렸
다음 날, 공로 축하연은 취소되었다. 궁에서는 황제가 갑자기 풍한에 걸려 기침이 심하다고 전해왔다.비록 축하연은 열리지 않았지만 공적에 대한 상훈은 곧바로 내려졌다.방천허는 남강군을 이끈 공을 인정받아 정이품 정국장군으로 진위하였다.제린과 다른 무장들은 정삼품과 종삼품 무관으로 진위하여 여전히 남강에 주둔하게 되었다. 동시에 남강에 장군부를 세우는 비용 또한 지급된 덕분에 가족을 모두 데리고 갈 수 있었다.전사한 장병들에게는 일률적으로 위로금이 지급되었고, 부상당한 장병들에게는 십 량의 은하가 지급되었다.모든 이들의 공로가 명확하게 정해진 가운데, 유독 사여묵의 공로만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따라서 그에게는 우선 천 금과 오십 필의 비단과 옷감이 상으로 주어졌으며, 여전히 대리시경에 임명되었다.상 지급에 관한 명령에서는 북명왕 사여묵의 노고와 공을 확실히 인정하며, 상국을 위해 큰 공을 세운 것을 칭찬했다.칭찬은 매우 화려했지만 다소 공허한 느낌이었고, 사실 천 금보다 실질적이지도 않았다.사여묵도 그것을 딱히 바라지 않았다. 그는 그저 친왕으로서 조정과 백성의 은혜를 받으며 자라왔기에 그에 따른 책임을 다했을 뿐이었다.황제의 이 풍한은 두 번의 아침 조회를 연속으로 결석하게 만들었고, 사여묵이 궁에 들어가 알현을 요청했지만 소집되지 못했다. 조정의 문무백관들은 모두 황제의 병세에 대한 소식을 파악하려 했지만, 어떤 병에 걸렸는지 알아낼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이 중병이라고 거의 확신했다.황제가 풍한에 걸린 이후로 태의들은 모두 궁에 상주하여 집에 돌아가지 못했다.3월 13일, 약왕당의 청작이 사여묵의 재진을 위해 방문해서 단신의의 말을 전했다.“사부께서 말씀하시길, 만약 폐하께서 사부를 청해오라 명하신다면, 그저 승낙하면 된다고 하셨습니다.”사여묵의 상처는 이미 완전히 치유되었기에 더 이상 단신의가 직접 올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이 두 번 모두 청작이 왔던 것이다.옆에서 청작의 말을 들은 송석석이 놀라며 물었다. “폐하께
그는 송석석의 손을 잡고 진지하게 말했다. “나는 결코 측비나 첩을 맞이할 생각이 없소. 낭자에게 두 마음을 품고 있지 않다는 말이오. 항상 나를 믿어야 하오.”송석석은 애틋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물론 믿지요. 그렇지 않았다면 제가 당시 어찌 그렇게 단호히 거절했겠습니까?”그는 손을 내밀어 그녀를 품에 안았다. 두 사람은 서로를 의지하고 믿었으며, 이는 그들에게 안정감을 가져다주었다. 그들은 감정의 파란이 일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다.“폐하의 병은 단신의의 진찰을 받았소?” 사여묵이 물었다.송석석은 그의 품에서 살짝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받지 않았습니다. 폐하께서 직접 그를 언급하지 않으셨기에 감히 누군가 그를 추천하지도 못했습니다. 태후께서도 언급하지 않으셨습니다.”사여묵은 살짝 한숨을 쉬며 말했다. “폐하는 마치 십 년은 더 늙은 것 같았소. 처음 폐하를 봤을 때, 마음속으로 정말 깜짝 놀랐소.”송석석은 가끔 황제를 봐왔기 때문에 그가 갑자기 십 년을 더 먹은 것처럼 보인다고 느끼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는 확실히 초췌했고, 그 눈동자마저 흐릿했다.송석석이 말했다. “육부상서와 허어사가 단신의를 추천하지 않은 것은 폐하께서 궁을 나서서 황실에 왔을 때 비밀리에 단신의를 찾아온 것이라고 변명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유로 육부는 더 이상 추천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목 승상마저 추천하지 않은 건 의아합니다.”목 승상은 모든 일의 전말을 알고 있었다.사여묵은 갑자기 예전 일을 떠올라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예전에 폐하께서 병중이셨을 때, 목 승상이 민간의 유명한 의사를 불러 입궁시켰소. 그러나 폐하는 병세가 다시 악화되자 분노하시어 그 명의를 처형시켰소. 아마 목 승상은 그래서 더 이상 추천하지 않은 것일 거요.”송석석은 깜짝 놀라며 말했다.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그렇소. 듣기로는 그 명의가 단 백부의 친구라고 하던데.”사여묵은 놀라 말을 잠시 멈추었다. “모후께서도 단 백부와 그 명의의 관계를
상처를 치료받고 난 후, 송석석은 단신의와 그의 제자를 직접 배웅했다.단신의는 낮은 목소리로 계속해서 주의를 주었다.“내력을 다시 사용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싸움도 되도록 피하게 하고. 상처 입은 곳이 단전인데다가 내력을 과도하게 사용하여 상처가 아물지 않은 채로 무리하게 급히 돌아왔으니…… 진맥할 때도 기를 모아 몸을 보호하려 하더군. 정말 큰일 날 뻔하였다. 지금 그는 깨지기 쉬운 계란처럼 아주 연약한 상태이기에 누군가 그의 목숨을 노리면 쉽게 해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매우 조심해야 한다, 알겠냐?”“그리고 그의 이러한 상황은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을 거다. 지금 이 상황에서 사람의 마음은 가장 믿을 수 없으니 말이다.”송석석은 단 백부의 세심한 배려에 감사를 표하며, 그가 말한 대로 신중하게 행동할 것을 다짐했다.같은 시각, 황실에서는 염선생이 사람들을 모두 물러가게 하고, 왕야가 충분히 휴식할 수 있도록 했다. 긴 여정에 피로가 많이 쌓여 있었고, 게다가 추운 날씨 속에서 오랫동안 전투를 치르며 눈으로 배를 채워 위장이 상했으니 이제는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 회복해야 했다.염선생도 더 이상 방해하지 않기로 했다. 오늘 밤은 그들 부부만의 시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송석석은 사여묵을 부축하여 함께 혜 태비의 방으로 갔다. 그들은 정중하게 머리를 숙이며 문안 인사를 올렸다.단신의를 청했다는 소식을 들은 혜 태비는 고 씨 유모를 보내 상황을 물어보았고, 사여묵이 위장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그러나 그 외에는 별다른 상황은 알지 못했다.혜 태비는 수척해진 아들을 보며 마음이 아파져,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얘야, 이제 남강은 가고 싶은 자들이 가게 하고, 싸우고 싶은 자들이 싸우게 해라. 너는 이제 그곳에 가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안정된 삶을 살아야지. 아니면 아이라도 낳는 것이 어떻겠냐? 그래야 더 이상 싸우며 죽고 살고 하지 않아도 될 테니 말이다.”혜 태비는 그가 싸우고 싶어서가 아니라 나라를 위해 충성하는 것임을
그들은 단신의를 따라 내실에 들어섰다. 발이 내려지자 단신의는 그들을 향해 진지하고 엄숙하게 말했다. “밤일은 금지입니다. 함부로 하지 마십시오. 알겠습니까?”사여묵은 귀가 붉어진 채 말문을 열었다. “그…… 그렇게 심각하지 않습니다.”단신의는 여전히 엄숙한 표정으로 단호히 말했다. “반드시 금지해야 합니다.”송석석의 마음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상황이 그녀가 예상한 것보다 혹은 훨씬 더 심각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단신의는 계속 말을 덧붙였다. “밖에는 사람들이 많으니 말도 많아 믿을 수 없는 이들도 있을지 몰라서 더 이상 말씀드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상처가 완전히 낫지 않았는데 병에도 걸렸으니, 한기가 오장육부에 들어가 큰 손상을 입힌 모양입니다. 몸에 내력이 없었다면 상한을 이기지 못했을 것입니다. 말하자면 내력을 쓸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결국 내력을 쓰게 된 셈입니다. 지금 원기와 내력이 많이 소진되어 있으니, 신경 써서 회복하지 않으면 무공은 다 잃게 될 것이며 수명도 단축될 수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씀드린 것도 다 부드럽게 표현한 것입니다.”“그렇게 심각한가요?” 송석석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당황한 표정으로 단신의를 바라보았다. “몸을 회복하면 괜찮아질까요…?”“천천히 잘 돌보거라. 며칠 뒤에 다시 진맥하러 오겠다.” 단신의는 특히나 엄숙하게 당부했다. “이 일을 너무 많은 사람에게 알리지 마십시오. 지금은 내력을 거의 쓰지 못하는 상태이기에, 일부 사람들이 이 기회를 노릴지도 모릅니다.”사여묵은 자신의 상태를 잘 알고 있어 숨기려고 했으나, 단신의가 다 말해버려 숨길 수 없어졌기에 지금은 그저 송석석을 위로할 수 밖에 없었다. “별일 아니오. 단 백부의 말을 잘 들으면 곧 좋아질 거요.”송석석은 안타까운 마음에 잠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조금 괜찮아지자 조심히 그에게 물었다. “상처가 어디에요?”“하복부 단전에 있다.” 단신의가 대신 대답했다. “단전은 본래 내력을 쓸 수 없는 곳이다. 그러나 그때는
그들이 막 황실에 도착하자, 곧이어 폭죽 소리가 울려 퍼졌다. 모두가 몰려나와 그를 둘러싸고 맞이했다. 국공부의 진복과 황 마마, 심지어는 서우도 왔다.사여묵은 두 손으로 서우를 번쩍 들어 어깨 위에 올려 태우고 위풍당당하게 본채로 들어갔다.서우는 너무나 기뻐하며 두 손으로 그의 이마를 잡았다. 서우의 웃음은 귀 뒤까지 번졌고, 눈에는 고모부에 대한 존경과 애정이 가득했다.본채에 들어가자 사여묵은 서우를 내려놓고 먼저 그의 학습 상황을 물었다. 궁에서 대황자의 학습을 도우며 태후와 태부의 칭찬을 받고 있다는 말을 들은 사여묵은 연속으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그의 근면과 노력을 칭찬했다.서우는 고모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약간 부끄러워하면서도 기쁨이 가득한 모습이었다.송석석의 눈빛은 환하게 빛나고 있었지만, 눈가에는 여전히 눈물이 맺혀 있었다.혜 태비는 원래 아들이 와서 절을 하며 안부를 전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직접 나와 그를 맞이했다. 이렇게나 수척해진 아들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리지 않을 수 없었다.차려진 음식은 매우 풍성했다. 그러나 혜 태비는 그들과 함께 먹지 않고 그들이 마음껏 이야기할 수 있도록 했다.사여묵은 배가 고팠지만 가벼운 음식만 먹었고, 그와 멀리 떨어져 있는 두부만 몇 번 떠먹었다.송석석이 그에게 준 고기 요리는 조금만 먹고 더 이상 먹지 않았다. 그리고는 두세 번 위를 움켜쥐는 동작을 보였다.이를 눈치챈 송석석은 눈물이 금방 눈가로 차올랐고, 곧바로 나가 사람을 청해 단신의를 부르도록 했다.모두가 이를 알아채고 안타까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사여묵은 젓가락을 내려놓고 송석석의 손을 잡으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별일 아니오. 그러니 단 백부 또한 부를 필요 없소. 위장은 천천히 돌보면 곧 나아질 것이오."염선생이 말했다. "그래도 진찰은 한 번 받아보십시오. 그래야 모두 안심할 것입니다."그러자 시만자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아타목에 있을 때 위장이 상하신 겁니까? 먹을 것도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