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란주는 결국 대황자를 만나지 못하고, 자안궁 사람들에게 대황자가 천자문을 베끼고 있다는 말만 들었다. 태후가 아무도 대황자를 방해하지 못하게 한 것이다. 란주는 대황자가 책 베끼는 것을 가장 싫어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가 어떻게 순순히 말을 듣는지 궁금했지만, 자안궁의 소식은 알아내기 쉽지 않았고 돈으로도 소용없었다. 하도 규칙이 많은 곳이라 그녀는 한참 끈질기게 조르고 나서야 겨우 한 마디 얻었다. 태후께서 명령을 내린 것이라며 오늘 다 베껴야 밥을 먹을 수 있다고 했다.그러자 란주가 깜짝 놀란 얼굴로 물었다.“대황자께서 자안궁에 들어간 후 줄곧 식사를 하지 않으셨다는 말입니까?”‘대황자께서는 날이 밝기도 전에 일어나 아침도 먹지 않고 바로 금화전으로 가셨는데,지금까지도 아직 밥을 드시지 않았다니…’하지만 란주의 말에 대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에, 그녀는 밖에서 한참 서 있다가 결국 장춘궁으로 돌아가 이 사실을 보고하기로 했다.황후는 자안궁에서 대황자에게 밥도 주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 가슴이 아파 주먹을 꽉 쥐고 토로했다.“아무리 그래도 친손자인데 어찌 이리도 모질 수 있단 말인가? 안 되겠어. 내가 자안궁으로 가서 그를 데려와야겠다! 그가 언제 이런 고생을 한 적 있겠느냐.”그러자 란주는 급히 가로막았다.“마마께서는 아직 근신 중이시니 가실 수 없습니다. 다시 황제폐하의 화를 돋우시면 근신 기간이 언제 끝날지도 모릅니다.”황후는 결국 눈물을 흘리며 분통을 터뜨렸다.“나보고 대황자가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것을 보고만 있으란 말이냐?”란주가 황후에게 말했다.“마마께서도 이전에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대황자는 태후의 친손자이니 태후께서도 분명 마음이 아프실 겁니다. 제가 보기엔 태후께서 대황자를 진보하게 하기 위해서 그러시는 것 같습니다. 누가 알겠습니까? 태후의 가르침으로 인해 대황자께서 환골탈태하게 될 수도 있다는걸.”황후의 표정이 살짝 풀린 것을 본 란주는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황제폐하께
한편, 평서백부에서 왕준은 경조부에 찾아가기 전에 가족들을 전부 모아 최악의 결과를 알렸다. 큰 적을 앞두고 원수가 도망을 쳐 군심을 흔들어 온갖 소문이 돌았다는 것이다. 이번 전투에서 승리하지 못한다면 평서백부를 기다리는 건 가문을 멸족당하는 죄가 될 것이다. 설령 승리를 한다고 해도 작위와 가문을 빼앗기고 유배를 당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하마터면 놀라 정신을 읽을 뻔한 노부인은 결국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로 하고, 담담한 눈빛으로 최 씨를 바라보며 그녀가 다시 입을 열기만을 기다렸다. 예전엔 무슨 일이 있어도 그녀가 먼저 바쁘게 움직였기에, 최 씨에게 희망을 걸기로 한 것이었다. 하지만 최 씨는 침묵했다. 게다가 그녀의 표정엔 의아함이 하나도 없었고 마치 예상했던 일이란 듯 덤덤한 모습이었다. 그렂 노부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방법이 없다는 것이냐? 너 북명왕비와 친하지 않느냐? 그러니 어서 가서 그녀에게 도움을 청해보거라. 아직 희망이 있을지 모르지 않느냐?” 그러자 최 씨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번엔 누구에게 부탁해도 소용없어요. 우린 결과를 기다릴 수밖에 없어요.” “왜 방법이 없다는 것이냐?” 노부인은 놀라서 심장이 튀어나올 지경이었다.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어찌 계속 방법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냐? 어서 가서 물어보거라!” 이때 왕준이 울적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머니, 형수님 말씀이 다 맞습니다. 지금은 누구에게 부탁해도 소용이 없어요. 우리 가문은 이제 끝입니다…” “말도 안 된다…!” 노부인의 숨결은 점점 흐려졌고,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가슴을 움켜쥐며 말했다. “왕표가 남강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지키며 고생을 했는데 어찌 공이 조금도 없단 말이냐?” “정말… 없습니다.” 최 씨는 담담한 어조로 말했지만, 자신의 시어머니가 충격을 금치 못하는 모습을 보자, 자신의 아들딸을 생각나 목구멍이 점점 쓰라렸다. “그는 남강에 살면서 한 번도 고생한 적이 없습니다. 심지어 진성에 있을 때보다 더 잘 살았지요.
감옥이 대리사에 위치했긴 하지만 대리사에서 관리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감옥에 갇힌 죄인들 대다수가 중죄범자거나 황제의 친인척, 혹은 조정의 중요 대신들인데, 감옥에 가둔다는 건 그만큼 죄명이 무겁다는 뜻이기 때문에 감옥에서 멀쩡하게 살아나갈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유배되어 버린 최씨는 이제 목숨만을 부지할 수 있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전에 아들 현이를 몽둥이에게 보내 무술을 배우게 한 것도 이런 상황을 대비하기 위한 것이다. 몸이 건강하고 튼튼해야 최소한 유배지까지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고, 대사령이 반포될 때까지 버티다가 진성으로 돌아갈 수 있다.최씨는 이후의 계획을 다 짜놨기에 살아남기만 하면 되었다.한편, 왕청여는 자신의 처소에서 잘 살고 있다가 갑자기 경조부 사람에게 잡혀와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왕청여는 감옥에 갇혀서도 여전히 멍한 표정이었으며, 평서백부 노부인이 한걸음에 달려가 왕청여를 품에 안고 엉엉 울자 그제야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우리가 왜 이곳에 잡혀온 거죠?”하지만 노부인은 그저 눈물만 흘릴 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고 왕청여는 갇혀 있는 가족들을 쓱 훑어보다가 점점 불안해지는 마음을 부여잡은 채 목청 높여 말을 이어갔다.“이게 대체 무슨 일이냔 말입니까?! 저 사람들은 나를 이곳에 잡아오면서 내가 대체 무슨 죄를 지었는지도 얘기해주지 않았습니다. 둘째 오라버니와 조카는 어디에 있죠?”최씨가 왕지아를 품에 안은 채 구석에 앉아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대답했다.“아가씨, 둘째 오라버니와 현이는 반대편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남녀를 따로 가두거든요.”“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에요?”왕청여는 자신의 가족 전체가 감옥에 갇힌 사실을 알고는 당황함을 감추지 못했다.‘그럼 이제 아무도 구해줄 사람이 없다는 뜻이잖아…?’바로 그대 너무 울어서 눈이 퉁퉁 부은 남희가 훌쩍거리며 말했다.“아가씨, 큰 오라버니께서 전쟁을 치르기 전에 야반 도주하신 탓에 폐하께서 저희 가족 모두
한편, 황실로 돌아온 송석석은 평서백부 일가족 모두 감옥에 갇혔다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는데, 사실 그녀는 방금 전 궁에 있을 때부터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혹은 조금 더 일찍, 왕표가 야반 도주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부터 훗날 이런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황제가 평서백부 사람들을 감옥에 가둔 이유는 아마 두 가지일 것이다. 첫 번째는, 왕표의 죄가 이미 일가족 전부에게 연대 책임이 생길 정도로 크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왕표가 스스로 나타나 죄를 인정하고 벌을 받길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그러니 작위를 없애고 가문 전체를 몰수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이렇게 심각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높은 작위로 계속 부귀영화를 누리며 안일한 삶을 살 수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그런 송석석도 황제가 앞으로 이 일을 어떻게 처치할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한편, 왕이장도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여기저기 돌아 다니면서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했는데, 모두 권위가 높은 세가들이 아닌 평민 백성들 뿐이었다.선견지명이 있는 최씨는 큰돈을 들여 성 외에 죽을 파는 점포를 차려 상황이 어려운 백성들을 도와줬을 뿐만 아니라 중병에 걸린 사람들을 최선을 다해 치료해주까지 했었다.하지만 노부인과 왕청여는 최씨가 하는 일에 극성으로 반대했으며 최씨가 큰돈을 낭비해가면서 자신의 명예를 쌓고 있는 거라고 비판했다.그렇기에 지금, 최씨를 도울 수 있는 건 딱 두 가지 방법 뿐이었다. 남강이 전쟁에서 대승을 거두거나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일어나 최씨를 위해 황제에게 선처를 부탁하면 된다. 최씨와 왕표는 엄연히 다른 사람이기에 최씨를 위하는 것과 왕표를 위한 것도 엄연히 다른 것이다.왕이장은 이내 사람을 시켜 왕표가 정실을 버리고 첩과 첩이 낳은 딸만 데리고 야반 도주한 사실을 널리 퍼트렸으며, 그가 나라를 버린 죄인으로 황제 폐하께 죄를 지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부인과 아이들에게도 큰 죄를 지은 사람이라고 강조했다.또한, 백성들에게 최씨가 부군에게 버림받은 불쌍한 여
다음날 조정에서 허 어사는 어제 자신이 조사한 사실을 황제 폐하에게 전달했고, 곁에 서있던 목 승상도 고개를 끄덕이며 최씨를 칭찬했다.“최씨가 성 외에 점포를 차려 선행을 하고 있다는 건 저도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혼인을 한 여인이 저택 안에 갇혀 할 수 있는 일이 제한되어 있지만 최씨는 초심을 잃지 않고 선행으로 덕을 쌓고 있었습니다. 이는 충분히 널리 선양할 일이고 백성들의 본보기가 될 만한 일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렇게 선하고 박애한 여인이 자신의 부군이 저지른 죄 때문에 감옥에서 어려운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제 상서도 말을 보탰다.“요 며칠동안 백성들도 전부 이 일에 대해서만 수군거리고 있습니다. 다들 최씨는 억울하다고 자발적으로 외치고 있습니다. 폐하, 조심스럽게 소인의 생각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왕표 그자가 죽을 죄를 지은 건 사실이고 그 죄가 일가족에게 연대 책임이 생길만큼 중한 것도 맞습니다. 하지만 작위도 폐위했고 가문 전부를 몰수했으니 이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폐하께서 자비를 베풀어 그 가문 일가족들에게 약한 벌을 내리시길 부탁드립니다.”숙청제는 왕표의 가족들을 이용하여 왕표가 스스로 나타나 죄를 인정하길 바라기에 일가족들을 절대 풀어줄 수도, 약하게 처벌할 수도 없었다.“그건 짐이 알아서 할 것이오. 공문서를 보내 왕표를 체포하고, 만약 스스로 나타나 죄를 인정한다면 일가족들은 엄하게 벌하지 않겠다는 방문을 붙이게.”최씨의 선행은 백성들에게 본보기가 될만한 행동이었기에 숙청제도 인정하는 부분이었다.“어명을 받들겠습니다!”공양이 나서서 허리를 숙이며 대답했다.한편, 송석석은 아직 관직을 회복하지 못했기에 여전히 휴가를 보내고 있는 상태였는데, 이는 되레 그녀에게 여기저기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편리를 주었다.그리고 황제의 어명은 이내 남강에 전해졌다. 남강군들이 이미 그에 대한 믿음이 강한 상태에 어명이 내려왔으니 더욱 자신감 있는 태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병부에서는 새로 양산한 육안통을 남강
감옥에 갇힌 지 6일이나 지날 동안 최씨는 눈물 한 방울도 보이지 않았는데, 송석석을 보자마자 눈시울이 순식간에 붉어져 있었다. 최씨는 얼른 고개를 돌려 몰래 눈물을 훔치고는 허리를 숙여 송석석에게 인사를 올렸다.“왕비님께서 이렇게 누추한 곳에 소인을 보러 오시게 만들어… 정말 죄송합니다.”송석석은 허름한 죄수복을 입고 있는 최씨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잔뜩 헝클어진 머리에 먼지가 잔뜩 묻은 얼굴까지, 평소에 단아하고 우아하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고생이 많으십니다.”송석석이 조심스럽게 말하자 최씨가 초췌한 얼굴로 대답했다.“소인은 괜찮은데 아이들이 끝까지 버티지 못할까 봐 걱정입니다. 왕비님, 황제께서 저희를 어떻게 처치할 생각이신 겁니까? 전부 죽이라고 하셨습니까…?”송석석은 최씨를 부축하여 의자에 앉힌 뒤, 차분하게 말했다.“폐하께서 그대들을 죽여 분풀이할 생각이었으면 진작 그러셨겠지요. 지금 폐하께서는 그대들 가족들을 이용하여 왕표를 끌어내려고 하시는 겁니다. 하지만 왕표 그자가 스스로 죄를 인정하고 벌을 받으면 그대들은 선처해주실 겁니다.”“그럴 리는 없을 겁니다. 그 사람은 절대 스스로 나타나 죄를 인정하지 않을 겁니다...”최씨가 연신 고개를 저었다.“그럴 사람이 아니긴 하지만… 저희가 최대한 자수하게 만들 겁니다.”말을 하던 송석석은 들고 온 보따리를 풀더니 안에서 약들을 꺼내 최씨 앞에 놓았다.“바깥 상황은 걱정하지 마시고 최대한 자신을 잘 지키고 있으셔야 합니다. 제 사저가 사람을 보내 왕표 그자를 찾고 있고 오사형도 암암리에 부인을 돕기 위해 여기저기 바삐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전에 부인께서 백성들에게 음식을 베풀고 병을 치료해준 게 꽤 효과가 있습니다. 지금 자발적으로 들고 일어나 부인을 위해 외치는 백성들이 많습니다.”조용하게 듣고 있던 최씨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눈물을 줄줄 흘렸다.“다들 정말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감옥에 갇힌 동안 최씨는 왕표만 생각하면 치가 떨릴 정도로 분노가 차올
사제가 의심하는 사람은 휘왕과 영군왕 부자 두 사람이었으며 특히 영군왕을 제일 의심했다.휘왕은 평소에 외출을 거의 하지 않았기에 자주 왕래하는 사람도 없었고 굳이 왕래가 잦은 사람을 뽑자면 송석석과 북명왕 뿐이었다. 그리고 그는 평소에 저택에서 고청영과 맛있는 것도 먹고 예쁜 경치를 구경하는 것에 진심이었으며 평생 먹고 노는 것이 삶의 목표기도 했다.그때문인지 저번에 그들을 보러 갔을 때 고청영과 휘왕은 살이 많이 쪄 있었다.송석석이 며칠 동안 조사했는데도 큰 진전이 없었기에 시만자를 데리고 휘왕 저택에 직접 방문하기로 했다. 휘왕은 두 사람을 보자마자 환한 미소로 반기며 고청영에게 말했다.“어제 내가 직접 낚시해서 잡은 잉어를 회로 떠서 가지고 오거라. 피를 확실하게 빼야 한다. 그래야 더 맛있고 살점도 더욱 싱싱할 테이니.”고청영은 이내 노비를 데리고 주방으로 들어갔고 시만자는 전보다 살이 더 찐 휘왕을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요즘 너무 잘 드시는 것 아닌가요? 전보다 살이 더 찌신 것 같네요.”“만자야, 북명 황실에서 맛있는 거 안 해주면 바로 나한테 오거라. 네가 먹고 싶어하는 건 내가 다 해줄 수 있으니. 하하하!”휘왕이 환하게 웃으며 말하자 시만자도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어르신, 그렇게 말씀하시면 저 진짜 이 집에 들어와서 살 수도 있습니다?”“얼른 오라니까. 내가 맛있는 거 잔뜩 해주마!”“그럼 나중에 황실이 지겨우면 바로 이리로 올게요. 살도 찌고 좋을 것 같네요.”시만자의 말에 곁에 있던 송석석이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뭘 지겨울 때까지 기다려? 내일 바로 사람 시켜 네 물건을 이 저택으로 옮기면 되지.”시만자가 허리에 손을 올린 채 입을 삐죽 내밀었다.“너 설마 오래전부터 날 황실에서 쫓아내고 싶었던 거 아니야?”“네가 이리로 오고 싶다고 했잖아. 왜 내 탓을 해?”휘왕은 차 한 모금 마시며 티격태격하고 있는 두 사람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이내 진수성찬이 차려졌고 평소에 날것을 먹지 않는 송석석과 시만자
전북망의 본가, 문희거(文熙居). 창호지 너머로 은은한 불빛이 아른거리며 그림자를 흔들어놓았다. 송석석(宋惜惜)은 수수한 옷차림으로 의자에 앉아 두 손을 포갠 채 눈앞의 남자를 바라봤다. 그는 결혼 후 곧바로 전장으로 떠나 일 년이나 보지 못했던 남편이었다. 전북망(战北望)은 전장에서 돌아온 복장 그대로 당당히 그녀를 마주보고 있었다.“폐하의 교지(旨意)까지 내려진 이상, 되돌릴 수 없소. 이방(易昉)은 이 집에 들어오게 될 것이오."송석석은 손깍지를 끼면서 어두운 눈빛으로 전북망에게 물었다."태후(太后)마마께서도 능력을 인정한, 그 이방 장군님이 첩이 되길 받아들이셨단 말씀입니까?"그 말을 들은 전북망의 눈빛에 살짝 노기가 서렸다."아니, 이방은 첩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오. 평처(平妻: 본처와 같은 지위를 가진 여인)라, 그대와 다를 것이 없소."송석석은 자세를 바꾸지 않고 말을 이었다."장군님도 아시다시피 평처라는 명칭은 듣기 좋을 뿐, 실제로는 첩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전북망이 눈살을 찌푸리며 대답했다."첩이라니, 이방과 나는 전장에서 마음을 나누면서 서로 사랑하게 되었소. 그리고 이건 나와 이방이 군공(军功: 군사적 공로)으로 받은 교지이니, 사실상 그대의 동의는 필요 없소."송석석은 억누를 수 없는 비웃음을 입가에 띄우며 말했다."서로를 사랑하게 되었다라, 그럼 출정 전에 저에게 했던 약속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일 년 전, 출정 명령이 떨어진 혼례 첫날밤에 전북망은 약속했었다. 평생 그 하나만을 바라보며 절대로 첩을 들이지 않겠다고. 송석석이 언급하자 그제야 약속을 떠올린 전북망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그 약속은 잊어버리시오. 그때 나는 진정한 사랑을 알지 못했소. 그저 그대를 아내로서 적합하다고 판단했을 뿐. 하지만 이방을 만나고 마음이 달라졌소."이방을 떠올린 그의 표정이 서서히 부드러워졌다. 그가 숨길 수 없는 깊은 감정이 느껴지는 눈빛으로 말을 이어갔다."이방은 내가 만난 그 어떤 여인과도 비교할 수 없소.
사제가 의심하는 사람은 휘왕과 영군왕 부자 두 사람이었으며 특히 영군왕을 제일 의심했다.휘왕은 평소에 외출을 거의 하지 않았기에 자주 왕래하는 사람도 없었고 굳이 왕래가 잦은 사람을 뽑자면 송석석과 북명왕 뿐이었다. 그리고 그는 평소에 저택에서 고청영과 맛있는 것도 먹고 예쁜 경치를 구경하는 것에 진심이었으며 평생 먹고 노는 것이 삶의 목표기도 했다.그때문인지 저번에 그들을 보러 갔을 때 고청영과 휘왕은 살이 많이 쪄 있었다.송석석이 며칠 동안 조사했는데도 큰 진전이 없었기에 시만자를 데리고 휘왕 저택에 직접 방문하기로 했다. 휘왕은 두 사람을 보자마자 환한 미소로 반기며 고청영에게 말했다.“어제 내가 직접 낚시해서 잡은 잉어를 회로 떠서 가지고 오거라. 피를 확실하게 빼야 한다. 그래야 더 맛있고 살점도 더욱 싱싱할 테이니.”고청영은 이내 노비를 데리고 주방으로 들어갔고 시만자는 전보다 살이 더 찐 휘왕을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요즘 너무 잘 드시는 것 아닌가요? 전보다 살이 더 찌신 것 같네요.”“만자야, 북명 황실에서 맛있는 거 안 해주면 바로 나한테 오거라. 네가 먹고 싶어하는 건 내가 다 해줄 수 있으니. 하하하!”휘왕이 환하게 웃으며 말하자 시만자도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어르신, 그렇게 말씀하시면 저 진짜 이 집에 들어와서 살 수도 있습니다?”“얼른 오라니까. 내가 맛있는 거 잔뜩 해주마!”“그럼 나중에 황실이 지겨우면 바로 이리로 올게요. 살도 찌고 좋을 것 같네요.”시만자의 말에 곁에 있던 송석석이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뭘 지겨울 때까지 기다려? 내일 바로 사람 시켜 네 물건을 이 저택으로 옮기면 되지.”시만자가 허리에 손을 올린 채 입을 삐죽 내밀었다.“너 설마 오래전부터 날 황실에서 쫓아내고 싶었던 거 아니야?”“네가 이리로 오고 싶다고 했잖아. 왜 내 탓을 해?”휘왕은 차 한 모금 마시며 티격태격하고 있는 두 사람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이내 진수성찬이 차려졌고 평소에 날것을 먹지 않는 송석석과 시만자
감옥에 갇힌 지 6일이나 지날 동안 최씨는 눈물 한 방울도 보이지 않았는데, 송석석을 보자마자 눈시울이 순식간에 붉어져 있었다. 최씨는 얼른 고개를 돌려 몰래 눈물을 훔치고는 허리를 숙여 송석석에게 인사를 올렸다.“왕비님께서 이렇게 누추한 곳에 소인을 보러 오시게 만들어… 정말 죄송합니다.”송석석은 허름한 죄수복을 입고 있는 최씨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잔뜩 헝클어진 머리에 먼지가 잔뜩 묻은 얼굴까지, 평소에 단아하고 우아하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고생이 많으십니다.”송석석이 조심스럽게 말하자 최씨가 초췌한 얼굴로 대답했다.“소인은 괜찮은데 아이들이 끝까지 버티지 못할까 봐 걱정입니다. 왕비님, 황제께서 저희를 어떻게 처치할 생각이신 겁니까? 전부 죽이라고 하셨습니까…?”송석석은 최씨를 부축하여 의자에 앉힌 뒤, 차분하게 말했다.“폐하께서 그대들을 죽여 분풀이할 생각이었으면 진작 그러셨겠지요. 지금 폐하께서는 그대들 가족들을 이용하여 왕표를 끌어내려고 하시는 겁니다. 하지만 왕표 그자가 스스로 죄를 인정하고 벌을 받으면 그대들은 선처해주실 겁니다.”“그럴 리는 없을 겁니다. 그 사람은 절대 스스로 나타나 죄를 인정하지 않을 겁니다...”최씨가 연신 고개를 저었다.“그럴 사람이 아니긴 하지만… 저희가 최대한 자수하게 만들 겁니다.”말을 하던 송석석은 들고 온 보따리를 풀더니 안에서 약들을 꺼내 최씨 앞에 놓았다.“바깥 상황은 걱정하지 마시고 최대한 자신을 잘 지키고 있으셔야 합니다. 제 사저가 사람을 보내 왕표 그자를 찾고 있고 오사형도 암암리에 부인을 돕기 위해 여기저기 바삐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전에 부인께서 백성들에게 음식을 베풀고 병을 치료해준 게 꽤 효과가 있습니다. 지금 자발적으로 들고 일어나 부인을 위해 외치는 백성들이 많습니다.”조용하게 듣고 있던 최씨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눈물을 줄줄 흘렸다.“다들 정말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감옥에 갇힌 동안 최씨는 왕표만 생각하면 치가 떨릴 정도로 분노가 차올
다음날 조정에서 허 어사는 어제 자신이 조사한 사실을 황제 폐하에게 전달했고, 곁에 서있던 목 승상도 고개를 끄덕이며 최씨를 칭찬했다.“최씨가 성 외에 점포를 차려 선행을 하고 있다는 건 저도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혼인을 한 여인이 저택 안에 갇혀 할 수 있는 일이 제한되어 있지만 최씨는 초심을 잃지 않고 선행으로 덕을 쌓고 있었습니다. 이는 충분히 널리 선양할 일이고 백성들의 본보기가 될 만한 일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렇게 선하고 박애한 여인이 자신의 부군이 저지른 죄 때문에 감옥에서 어려운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제 상서도 말을 보탰다.“요 며칠동안 백성들도 전부 이 일에 대해서만 수군거리고 있습니다. 다들 최씨는 억울하다고 자발적으로 외치고 있습니다. 폐하, 조심스럽게 소인의 생각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왕표 그자가 죽을 죄를 지은 건 사실이고 그 죄가 일가족에게 연대 책임이 생길만큼 중한 것도 맞습니다. 하지만 작위도 폐위했고 가문 전부를 몰수했으니 이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폐하께서 자비를 베풀어 그 가문 일가족들에게 약한 벌을 내리시길 부탁드립니다.”숙청제는 왕표의 가족들을 이용하여 왕표가 스스로 나타나 죄를 인정하길 바라기에 일가족들을 절대 풀어줄 수도, 약하게 처벌할 수도 없었다.“그건 짐이 알아서 할 것이오. 공문서를 보내 왕표를 체포하고, 만약 스스로 나타나 죄를 인정한다면 일가족들은 엄하게 벌하지 않겠다는 방문을 붙이게.”최씨의 선행은 백성들에게 본보기가 될만한 행동이었기에 숙청제도 인정하는 부분이었다.“어명을 받들겠습니다!”공양이 나서서 허리를 숙이며 대답했다.한편, 송석석은 아직 관직을 회복하지 못했기에 여전히 휴가를 보내고 있는 상태였는데, 이는 되레 그녀에게 여기저기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편리를 주었다.그리고 황제의 어명은 이내 남강에 전해졌다. 남강군들이 이미 그에 대한 믿음이 강한 상태에 어명이 내려왔으니 더욱 자신감 있는 태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병부에서는 새로 양산한 육안통을 남강
한편, 황실로 돌아온 송석석은 평서백부 일가족 모두 감옥에 갇혔다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는데, 사실 그녀는 방금 전 궁에 있을 때부터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혹은 조금 더 일찍, 왕표가 야반 도주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부터 훗날 이런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황제가 평서백부 사람들을 감옥에 가둔 이유는 아마 두 가지일 것이다. 첫 번째는, 왕표의 죄가 이미 일가족 전부에게 연대 책임이 생길 정도로 크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왕표가 스스로 나타나 죄를 인정하고 벌을 받길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그러니 작위를 없애고 가문 전체를 몰수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이렇게 심각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높은 작위로 계속 부귀영화를 누리며 안일한 삶을 살 수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그런 송석석도 황제가 앞으로 이 일을 어떻게 처치할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한편, 왕이장도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여기저기 돌아 다니면서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했는데, 모두 권위가 높은 세가들이 아닌 평민 백성들 뿐이었다.선견지명이 있는 최씨는 큰돈을 들여 성 외에 죽을 파는 점포를 차려 상황이 어려운 백성들을 도와줬을 뿐만 아니라 중병에 걸린 사람들을 최선을 다해 치료해주까지 했었다.하지만 노부인과 왕청여는 최씨가 하는 일에 극성으로 반대했으며 최씨가 큰돈을 낭비해가면서 자신의 명예를 쌓고 있는 거라고 비판했다.그렇기에 지금, 최씨를 도울 수 있는 건 딱 두 가지 방법 뿐이었다. 남강이 전쟁에서 대승을 거두거나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일어나 최씨를 위해 황제에게 선처를 부탁하면 된다. 최씨와 왕표는 엄연히 다른 사람이기에 최씨를 위하는 것과 왕표를 위한 것도 엄연히 다른 것이다.왕이장은 이내 사람을 시켜 왕표가 정실을 버리고 첩과 첩이 낳은 딸만 데리고 야반 도주한 사실을 널리 퍼트렸으며, 그가 나라를 버린 죄인으로 황제 폐하께 죄를 지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부인과 아이들에게도 큰 죄를 지은 사람이라고 강조했다.또한, 백성들에게 최씨가 부군에게 버림받은 불쌍한 여
감옥이 대리사에 위치했긴 하지만 대리사에서 관리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감옥에 갇힌 죄인들 대다수가 중죄범자거나 황제의 친인척, 혹은 조정의 중요 대신들인데, 감옥에 가둔다는 건 그만큼 죄명이 무겁다는 뜻이기 때문에 감옥에서 멀쩡하게 살아나갈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유배되어 버린 최씨는 이제 목숨만을 부지할 수 있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전에 아들 현이를 몽둥이에게 보내 무술을 배우게 한 것도 이런 상황을 대비하기 위한 것이다. 몸이 건강하고 튼튼해야 최소한 유배지까지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고, 대사령이 반포될 때까지 버티다가 진성으로 돌아갈 수 있다.최씨는 이후의 계획을 다 짜놨기에 살아남기만 하면 되었다.한편, 왕청여는 자신의 처소에서 잘 살고 있다가 갑자기 경조부 사람에게 잡혀와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왕청여는 감옥에 갇혀서도 여전히 멍한 표정이었으며, 평서백부 노부인이 한걸음에 달려가 왕청여를 품에 안고 엉엉 울자 그제야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우리가 왜 이곳에 잡혀온 거죠?”하지만 노부인은 그저 눈물만 흘릴 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고 왕청여는 갇혀 있는 가족들을 쓱 훑어보다가 점점 불안해지는 마음을 부여잡은 채 목청 높여 말을 이어갔다.“이게 대체 무슨 일이냔 말입니까?! 저 사람들은 나를 이곳에 잡아오면서 내가 대체 무슨 죄를 지었는지도 얘기해주지 않았습니다. 둘째 오라버니와 조카는 어디에 있죠?”최씨가 왕지아를 품에 안은 채 구석에 앉아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대답했다.“아가씨, 둘째 오라버니와 현이는 반대편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남녀를 따로 가두거든요.”“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에요?”왕청여는 자신의 가족 전체가 감옥에 갇힌 사실을 알고는 당황함을 감추지 못했다.‘그럼 이제 아무도 구해줄 사람이 없다는 뜻이잖아…?’바로 그대 너무 울어서 눈이 퉁퉁 부은 남희가 훌쩍거리며 말했다.“아가씨, 큰 오라버니께서 전쟁을 치르기 전에 야반 도주하신 탓에 폐하께서 저희 가족 모두
한편, 평서백부에서 왕준은 경조부에 찾아가기 전에 가족들을 전부 모아 최악의 결과를 알렸다. 큰 적을 앞두고 원수가 도망을 쳐 군심을 흔들어 온갖 소문이 돌았다는 것이다. 이번 전투에서 승리하지 못한다면 평서백부를 기다리는 건 가문을 멸족당하는 죄가 될 것이다. 설령 승리를 한다고 해도 작위와 가문을 빼앗기고 유배를 당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하마터면 놀라 정신을 읽을 뻔한 노부인은 결국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로 하고, 담담한 눈빛으로 최 씨를 바라보며 그녀가 다시 입을 열기만을 기다렸다. 예전엔 무슨 일이 있어도 그녀가 먼저 바쁘게 움직였기에, 최 씨에게 희망을 걸기로 한 것이었다. 하지만 최 씨는 침묵했다. 게다가 그녀의 표정엔 의아함이 하나도 없었고 마치 예상했던 일이란 듯 덤덤한 모습이었다. 그렂 노부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방법이 없다는 것이냐? 너 북명왕비와 친하지 않느냐? 그러니 어서 가서 그녀에게 도움을 청해보거라. 아직 희망이 있을지 모르지 않느냐?” 그러자 최 씨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번엔 누구에게 부탁해도 소용없어요. 우린 결과를 기다릴 수밖에 없어요.” “왜 방법이 없다는 것이냐?” 노부인은 놀라서 심장이 튀어나올 지경이었다.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어찌 계속 방법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냐? 어서 가서 물어보거라!” 이때 왕준이 울적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머니, 형수님 말씀이 다 맞습니다. 지금은 누구에게 부탁해도 소용이 없어요. 우리 가문은 이제 끝입니다…” “말도 안 된다…!” 노부인의 숨결은 점점 흐려졌고,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가슴을 움켜쥐며 말했다. “왕표가 남강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지키며 고생을 했는데 어찌 공이 조금도 없단 말이냐?” “정말… 없습니다.” 최 씨는 담담한 어조로 말했지만, 자신의 시어머니가 충격을 금치 못하는 모습을 보자, 자신의 아들딸을 생각나 목구멍이 점점 쓰라렸다. “그는 남강에 살면서 한 번도 고생한 적이 없습니다. 심지어 진성에 있을 때보다 더 잘 살았지요.
하지만 란주는 결국 대황자를 만나지 못하고, 자안궁 사람들에게 대황자가 천자문을 베끼고 있다는 말만 들었다. 태후가 아무도 대황자를 방해하지 못하게 한 것이다. 란주는 대황자가 책 베끼는 것을 가장 싫어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가 어떻게 순순히 말을 듣는지 궁금했지만, 자안궁의 소식은 알아내기 쉽지 않았고 돈으로도 소용없었다. 하도 규칙이 많은 곳이라 그녀는 한참 끈질기게 조르고 나서야 겨우 한 마디 얻었다. 태후께서 명령을 내린 것이라며 오늘 다 베껴야 밥을 먹을 수 있다고 했다.그러자 란주가 깜짝 놀란 얼굴로 물었다.“대황자께서 자안궁에 들어간 후 줄곧 식사를 하지 않으셨다는 말입니까?”‘대황자께서는 날이 밝기도 전에 일어나 아침도 먹지 않고 바로 금화전으로 가셨는데,지금까지도 아직 밥을 드시지 않았다니…’하지만 란주의 말에 대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에, 그녀는 밖에서 한참 서 있다가 결국 장춘궁으로 돌아가 이 사실을 보고하기로 했다.황후는 자안궁에서 대황자에게 밥도 주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 가슴이 아파 주먹을 꽉 쥐고 토로했다.“아무리 그래도 친손자인데 어찌 이리도 모질 수 있단 말인가? 안 되겠어. 내가 자안궁으로 가서 그를 데려와야겠다! 그가 언제 이런 고생을 한 적 있겠느냐.”그러자 란주는 급히 가로막았다.“마마께서는 아직 근신 중이시니 가실 수 없습니다. 다시 황제폐하의 화를 돋우시면 근신 기간이 언제 끝날지도 모릅니다.”황후는 결국 눈물을 흘리며 분통을 터뜨렸다.“나보고 대황자가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것을 보고만 있으란 말이냐?”란주가 황후에게 말했다.“마마께서도 이전에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대황자는 태후의 친손자이니 태후께서도 분명 마음이 아프실 겁니다. 제가 보기엔 태후께서 대황자를 진보하게 하기 위해서 그러시는 것 같습니다. 누가 알겠습니까? 태후의 가르침으로 인해 대황자께서 환골탈태하게 될 수도 있다는걸.”황후의 표정이 살짝 풀린 것을 본 란주는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황제폐하께
밖에 있던 오 대반은 둘의 대화를 듣고 놀라 온몸에 식은땀이 흐르며 다리에 힘이 다 빠찐듯한 기분을 느꼈다. 심지어 송석석이 걸어 나올 때까지도 아직 가슴이 허공에 매달려 있는 것 같았다. 황제가 진노하지 않은 것도 그의 예상 밖이었다. 그가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배웅하자, 송석석이 둘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작게 말했다. “오 공공, 걱정 마십시오.” 오 대반은 가슴이 찡해서 말했다. “송 대인, 그럼 조심히 가시지요.” 송석석이 떠난 후, 오 대반은 궁으로 들어가 시중을 들며 황제를 흘끔 보았는데, 그의 안색이 환희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보고 다시 깜짝 놀랐다. ‘오늘 아침 대황자를 지안궁으로 보낼 때까지만 해도 북명왕이 남강으로 가면 다른 꿍꿍이가 있다고 했는데 왜 지금은 기뻐하는 것이지? 정말 군주의 마음은 헤아리기 어렵군.’ 숙청제가 그를 쳐다보더니 분부를 내렸다. “식사를 내오너라.” 왕표가 탈출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후부터 황제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기에, 오 대반은 서둘러 사람을 시켜 식사를 내오고 차를 따랐다. 숙청제는 입이 마르고 쓴 맛이 나 괴로웠었는데, 차를 한 모금 마시니 나아져 기분이 좋아졌다. “모르겠느냐?” 또한 그의 어조가 매우 가벼운 것으로 보아 기분이 좋아진 것이 확실해졌다. 그가 웃는 것을 보고 오 대반도 덩달아 웃으며 말했다. “저는 몰라도 괜찮습니다. 폐하께서 기뻐하시면 소인도 기쁘니깐요!” 그러자 숙청제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정말로 기쁘구나. 송석석이 오늘 한 말들이 북명왕의 속마음이라면 기쁜 일이고, 만약 반대라면 북명왕이 송석석까지 속이는 것이니 부부가 한마음 한 뜻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지 않느냐? 그럼 송석석은 여전히 날 위해 충성을 다 하겠지.”오 대반이 대답했다.“폐하의 말씀에 일리가 있습니다.”“북명왕과 아무 다툼도 없었던 시절을 생각하니 내심 그땐 정말 기뻤다는 후회가 든단다.”숙청제는 기침을 몇 번 하더니 찻잔을 들고 차를 한 모금 더 마셨다. 하지만 물을 삼키
그녀가 손으로 성지를 받들며 말했다.“황제폐하, 왕야껜 사실 마음의 질병이 없습니다. 임태의와 오대반을 속이고 바로 매산에 가지 않고 남강으로 향한 것입니다.”“너희는 남강의 상황을 미리 알고 있었단 말인가?”이 문제는 숙청제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였다.“아뇨, 왕야께서 남강에 갔을 땐 왕표가 도망간 줄 몰랐고 그저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간 것이라 저희도 몰랐습니다.”송석석이 숙청제 앞으로 다가가며 말을 이었다.“왕야께서 안심하지 못했던 이유는 그와 함께 사국인을 시몬에서 몰아낸 전우 때문입니다. 그들은 생사를 함께하며 목숨까지 버리고 오직 하나의 공통적인 목표만을 바라보며 싸웠습니다. 결국엔 남강을 수복하고 병권을 넘겨주었는데 사국인이 다시 들이닥친 데다 내부 인원과 결탁한 혐의까지 받고 있는 와중에 어떻게 오랫동안 전쟁터에 나간 적이 없고 쾌락에만 빠진 사람을 원수로 삼을 수 있겠습니까? 왕야는 남강의 백성들이 더 이상 전선을 확장하는 전쟁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속전속결해야 한다고 했고, 왕표는 작전 경험이 부족해 잘못된 결정으로 많은 병사들의 목숨을 잃게 만들 것이라고 했습니다.”그러자 숙청제의 눈빛이 점점 흔들리더니, 순간 자신이 사람을 잘못 썼다는 후회가 들었다. 송석석은 그의 표정을 놓치지 않고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왕표는 정말로 쓸모없는 놈일 뿐만 아니라 아주 악랄한 놈입니다. 그리고 그의 탈출로 인해 군심이 흔들리고 있으니 황제폐하께서도 책임이 있습니다.”숙청제의 표정은 순간 파리 한 마리를 삼킨 것 같았다.“그리고 그가 출정 요청을 올리지 않은 건 황제폐하께서 허락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황제폐하께서 그를 시기하고 의심하는 건 그가 욕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가 군대를 통솔할 수 있고 민망이 있다는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지요.”송석석이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말했다.“황제폐하께서는 제가 망언을 한다고 해도 인정합니다. 하지만 저는 황제폐하께서 그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마음을 꺼내서 폐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