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자 찻잔을 손에 들고 있던 송석석이 담담한 목소리로 물었다.“제 상서께서 제게 무엇을 주실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혹은 스스로의 힘으로 얻을 수 없는 물건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송석석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제 상서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자 송석석은 이내 피식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얼른 저택으로 돌아가십시오. 오늘밤은 제가 직접 이곳을 지키고 있을 겁니다.”“그럼 왕비님께서 진정으로 원하시는 게 무엇인지 솔직하게 얘기해줄 수 있으시겠습니까?”제 상서가 집요하게 묻자 송석석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대답했다.“아무것도 원하지 않습니다. 전 그저 선황제의 체면을 위해 이 일을 하고 있는 겁니다. 모든 일에 이익 관계가 따르는 건 아닙니다. 아 참, 경위부에서 음식을 공급하지 않으니 저택 하인들을 시켜 음식을 보내오세요. 혹은 저희 경위부에서 음식을 살 수 있게 은화를 남기고 가셔도 됩니다.”제 상서는 여전히 송석석의 속을 알 수 없어서 고개를 갸우뚱거린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송석석은 제씨 가문과 깊은 원한 관계가 있는 건 아니지만 서로 그리 우호적이지는 않았기에 이렇게 조건 없이 제씨 가문을 도와준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다.송석석이 선황제의 체면을 위해 제씨 가문을 돕는 거라고 했지만 제 상서는 그 말이 믿어지지 않았다.“대감님, 혹시 제 곁에 능력 있는 자가 생기면 제가 북명왕에게 소개를…”“제 상서, 멀리 나가지 않겠습니다.”송석석은 재빨리 제 상서의 말을 끊었고 잠시 고민하던 제 상서는 자신의 몸을 뒤적이다가 은화를 챙겨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저택으로 돌아가서 음식을 준비해오겠다고 얘기한 뒤 떠났다.제 상서가 떠나자마자 시만자가 잔뜩 들뜬 얼굴로 달려왔다.“나 먼저 돌아갈게. 조금 전에 황실에서 말을 전해왔는데 신신과 만두가 곧 도착할 거라고 했어서. 넌 오늘밤 이곳을 지키고 있을 거지? 그럼 나 먼저 갈게?!”그러자 송석석이 놀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고는 반짝이는 눈빛으로 물었다.“그게 정말이야?
조용하게 지켜보던 송석석이 순방영 경위에게 일단 열 냥을 챙기라고 명했다.“이걸로 일단 모든 사람들이 먹을 수 있을 정도의 음식을 샀다가 나중에 풀려나면 이 사람들끼리 알아서 돈 계산하라고 하면 돼.”송석석은 일부러 갇혀 있는 사람들에게 들으라고 말했다. 이곳에 잠깐 갇혀 있는 것이니 난동을 부리지 말고 조용하게 버티라는 뜻이다.밤이 깊어지자 송석석은 다시 한번 순찰에 나섰는데, 이번에 본 제 제사는 조금 전보다 더 심하게 떨고 있었다.그러자 주위를 경계하던 양기웅이 조심스럽게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대감님, 혹시 덮을 것 하나만 주실 수 있겠습니까? 저희 어르신께서 추위에 많이 약하십니다...”송석석은 제 제사를 힐끗 쳐다보았다. 제 제사는 이상한 자세로 움츠리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온몸이 점점 더 굳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계속 이대로 뒀다가는 동상으로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송석석은 결국 지시를 내렸다.“여봐라. 이 자를 데리고 가서 따로 가두거라. 이대로 두면 동상으로 사망할 수도 있으니 덮을 것도 하나 내어주거라.”양기웅은 얼른 무릎을 꿇은 채 훌쩍이면서 머리를 조아렸다.“감사합니다!”스스로 일어설 힘도 없는 제 제사는 양기웅 등에 업혀 옥에서 나갔고 이를 지켜보던 나머지 사람들은 불만이 생겼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뒷모습으로 보았을 때 업혀 나간 늙은이는 곧 죽을 사람처럼 보였기에 이곳에서 죽은 사람과 함께 갇혀 있고 싶지는 않았다.경위부는 매우 커 정당 옆에는 곁방도 하나 있었다. 곁방은 평소에 송석석이 쉬는 곳으로 공간은 작지만 아늑하고 따듯했다.송석석은 양기웅과 제 제사를 곁방에 안치한 뒤 의자를 가리키며 말했다.“의자는 마음껏 사용해도 되지만 침대에 누우면 안 됩니다. 이곳은 제가 평소에 잠깐 휴식을 취하는 공간입니다.”송석석의 말에 양기웅이 사정하기 시작했다.“저희 어르신은 몸이 약해서 밤새 앉아 계실 수 없습니다. 저희 어르신께서 일단 이 침대에 며칠만 신세를 지고 나중에 새것으로 사드리
송석석은 이내 곁방을 나서자, 뒤따르는 양기웅이 문을 굳게 닫았다.그렇게 곁방 안에는 부자 두 사람만 남게 되었고 한참 동안 침묵을 유지한 채 아무도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그러다가 결국 먼저 아버지에게 다가간 제 상서는 제 제사 머리에 씌워진 천을 거두려고 했지만 제 제사는 두 손으로 천을 꼭 잡은 채 놓지 않았다.제 상서는 한숨을 푹 내쉬며 이불과 의상을 아버지 곁에 내려 놓았고 뒤로 돌아서며 말했다.“일단 의상부터 갈아입으세요. 전 돌아서서 보지 않을게요.”한참 뒤, 옷을 벗는 소리가 들렸고 제 상서는 갑자기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으며 코끝이 찡해진 채 눈물도 글썽였다.이 감정이 서러움인지 분노인지 아니면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어서 생긴 건지 제 상서 자신조차도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제 제사는 아들 앞에서 늘 위엄이 넘치는 모습을 보였었고, 심지어는 사람들의 존경과 찬송을 한 몸에 받는 권위의 상징이었다. 제 제사의 말 한 마디면 문단 전체가 흔들릴 정도였기에, 지금 이 모습이 외부에 전해지기로 한다면 사람들은 어마어마한 충격을 받을 것이다.한참 뒤, 제 상서가 물었다.“다 갈아입으셨습니까?”제 제사는 아무 대꾸도, 움직임도 보이지 않자 제 상서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제 제사는 이불로 얼굴과 몸을 가린 채 합쳐 놓은 의자에 누워 있었고 그의 옆에는 조금 전까지 입고 있었던 의상이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었다.제 상서는 화려한 색감의 의상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결국 꾹 참고 있던 눈물을 뚝뚝 흘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도대체 왜 그러신 겁니까…?”자신의 아버지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불을 꽉 잡고 있던 제 제사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제 상서는 곁방에 들어와서 지금까지 제 제사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았으며 제 제사도 아들이 무슨 생각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아들마저 지금의 자신을 창피하게 여기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제 상서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의자에 털썩 앉았고 방을 떠날 생각이 없어 보
결국 곁방에서 나온 제 상서는 정당을 지나가다가 불 앞에 앉아 몸을 녹이고 있던 송석석을 발견하게 되었다. 제 상서는 그녀와 마주하기 싫었지만 마음과 다르게 발길은 이미 송석석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만약 송석석이 이곳을 지키고 있지 않았었다면 제 상서는 강제로 아버지를 데리고 갔을 수도 있을 것이며 이런 행동으로 황제 폐하께 벌을 받는다고 해도 아버지가 이곳에서 창피를 당하게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시간도 늦었는데 제 상서께서는 댁으로 돌아가지 않으십니까?”송석석이 물었고 제 상서는 기가 확 죽은 채로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으며 겁이 나서 경위부 문턱을 나설 수가 없었다.밖에 나가면 어떠 상황을 마주하게 될지 감도 잡히지 않고, 너무 두려웠다.오늘밤 경위부에 처음 찾아왔을 때, 제 상서는 송석석과 담판할 준비를 철저하게 했는데 송석석은 이 사건으로 이익을 얻을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있었다.높은 관직으로 수많은 관원들의 목숨줄을 쥐고 있는 제 상서는 평소에 권력과 이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을 많이 봐왔으며 심지어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추태를 부리는 사람들도 있었다.하지만 송석석은 전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황제가 북명왕을 경계하고 있는 상황에서 조정에 인맥이 있어야 나중에 문제가 터졌을 때 편들어줄 사람이 있을 텐데 송석석은 그런 걱정을 하지 않는 듯했다.이런저런 생각들이 제 상서의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었지만, 조금 전에 본 아버지의 허연 얼굴과 알록달록한 의상은 계속 생각이 났다. 제 상서는 괴로워서 미쳐버릴 지경이었다.“대감님께서는 오늘밤 계속 이곳을 지킬 생각이십니까?”“네, 오늘밤은 계속 이곳에 있을 겁니다.”송석석의 대답에 제 상서는 괜히 그녀의 눈을 피하며 말했다.“이젠 왕비님께서 댁으로 돌아가셔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송석석은 제 상서를 힐끔 쳐다보며 대답했다.“제가 이곳을 떠나면 누군가가 권력의 힘을 이용하여 옥에 갇힌 자들을 데리고 갈 수도 있습니다.그런 상황이 벌어지기라도 한다면
한참 동안 버티고 있던 제 상서는 결국 경위부를 떠났고, 송석석은 몸을 잔뜩 움츠린 채 걷고 있는 제 상서의 뒷모습을 쳐다보았다.평소에 기세 등등하던 제 상서의 모습은 사라져. 지금 이 순간만큼은 너무도 비참해 보였다.제 상서 때문에 잠이 완전히 깬 송석석은 감옥을 한 바퀴 더 순찰한 뒤, 필명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사실 대감님께서 이만 댁으로 돌아가셔도 됩니다. 소관 혼자서도 잘 지킬 수 있습니다.”“괜찮다. 어차피 이제 곧 날이 밝을 때도 됐어. 경위부 밖에 지키고 있는 세가들이 많아. 그 사람들이 난동을 부리면 네 힘으로는 절대 제지하지 못할 거야. 그리고 황제 폐하께서도 그자들 신분을 외부에 알릴 생각이 없는데 만에 하나 문제가 생기면 폐하께 상황을 설명하기 어려워질 수도 있어.”“맞는 말씀이십니다.”필명도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다음날 아침, 제 상서와 송석석보다 더욱 이른 시간에 황제를 찾아간 사람은 다름아닌 광릉후였다. 그는 숙청제를 보자마자 무릎을 털썩 꿇곤, 눈물을 뚝뚝 흘리며 구구절절 얘기했다.처음 남풍관을 만든 건 사온이었고 사온이 망한 뒤로 남풍관을 닫으려고 했지만 제 제사의 제안과 설득에 넘어가 남풍관을 이어서 계속 운영하게 되었다고 했다.간단하게 얘기하자면 광릉후는 제 제사를 모함하고 팔아버린 것이다.이런저런 방법을 많이 생각해봤지만 결국 제씨 가문을 원수로 등지는 방법을 선택했다. 사국 정탐조에 대해 깊이 알아본 광릉후는 대신 이 죄를 뒤집어쓸 희생양이 필요했고 제 제사를 끌어내려야만 자신의 가문을 지킬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그 대가는 제씨 가문과 원수 사이가 되는 것이지만 이렇게 얘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제 제사는 더 이상 남풍관을 자주 찾는 손님뿐만이 아니라 남풍관을 계속 운영할 수 있었던 장본인이 되었기에 문제의 성질이 바뀌었다.하지만 숙청제는 선황제의 체면을 고려해서라도 이 사건을 조용하게 처리할 것이다.조금 뒤, 제 상서가 궁에 찾아왔을 때 그를 맞이한 건 숙청제의 들끓는 분노였다.숙
조금 뒤, 숙청제는 세 사람을 불러들여 크게 혼을 냈고, 광릉후와 제 상서는 무릎을 꿇은 채 연신 사죄를 했지만 유독 송석석만은 입을 꾹 닫고 있었다.숙청제는 그런 송석석을 보며 다시 버럭 소리를 질렀다.“너도 전혀 억울한 게 아니다! 넌 제 제사가 남풍관에 자주 오가는 사실을 알고도 짐에게 미리 보고를 하지 않았다.”송석석은 밤새 잠도 못 잔 탓에 피곤했는데, 황제에게 혼까지 나고 있으니 마음속에 불만이 차올라 반문했다. “소인이 폐하께 미리 보고를 했다면 폐하께서 남풍관을 수사하지 않으셨을 것입니까?”“수사할 건 당연히 수사를 해야겠지. 하지만…”숙청제는 언성을 높였지만 바로 말문이 막혔다. 미리 알았다면 몰래 제 제사에게 얘기해줬을 거라고 말을 할 수는 없었다.더군다나 제 제사가 어젯밤 남풍관에 찾아갈지 확실하지 않는 상황에서 송석석이 남풍관에서 제 제사를 본 적이 있다고 보고를 해도 숙청제는 절대 믿지 않을 것이다.체포되기 전까지 이 사실을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제 제사는 하늘이 무너져도 절대 그런 곳에 갈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신분 지위가 높고 백성들의 존경과 찬양을 한 몸에 받고 있으며 모든 이의 모범인 사람이 어떻게 그런 곳에 갈 리가 있단 말인가!송석석이 미리 이 사실을 보고했다면 숙청제는 송석석을 무고죄로 벌했을 것이었다.송석석은 목청 높여 말을 이어갔다.“이 큰 제씨 가문에 노비와 시녀들이 얼마나 많은데 아무도 제 제사께서 남풍관에 오갔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게 말이 됩니까? 소인은 그저 수사만 했습니다. 누가 언제 남풍관에 나타날지 소인도 예측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남풍관에 제 제사만 있었던 게 아니라 관원들과 세가 자제들도 많았습니다.”송석석의 말은 다 맞는 말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화가 나 있는 숙청제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리가 없었다.“아무튼 네 일 처리가 확실하지 못했던 건 사실이야. 그러니 변명할 것도 없어!”“네, 모든 게 소인의 잘못입니다. 소인은 지금 당장 경위부로 돌아가서 제 제사를 풀어
말을 타고 저택으로 달려온 송석석은 도착하자마자 바로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왕비님께서 돌아오셨습니다!”저택 앞을 지키던 하인 한 명이 그 모습을 보고 큰소리로 외쳤다. 조금 전 시만자가 송석석이 오면 바로 보고를 하라고 명했기 때문이다. 송석석이 저택 안으로 들어서자 갑자기 나타난 모신신은 송석석을 향해 풀쩍 뛰어올랐고 화들짝 놀란 송석석은 재빨리 모신신을 꽉 끌어안았다.“왜 이제야 왔어! 우리 송 대감! 진짜 너무 보고 싶었어!”신난 모신신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리자 송석석은 모신신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은 뒤 손으로 모신신의 볼을 마구 만졌다.“신신아, 너 살이 좀 찐 거 같구나.”송석석을 확 밀어낸 모신신은 입을 삐죽 내밀며 반박했다.“너 진짜 이럴 거야? 어떻게 만나자마자 내 아픈 곳을 그렇게 콕콕 찌르지?!”“아니야, 아니야! 안 뚱뚱해! 딱 보기 좋아, 여전히 예뻐!”송석석이 피식 웃으면서 말하자 모신신은 송석석의 팔짱을 끼고는 안으로 걸어갔다.“네가 완전 뚱뚱한 사람을 아직 못 봐서 그래.”이때, 시만자와 만두가 맞은편에서 걸어왔다. 만두는 살이 찐 건 아니지만 몸매가 전보다 훨씬 건장하고 튼튼해 보였다. 그리고 저번에 봤을 때보다 훨씬 차분해진 모습으로 송석석을 보며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왜 이제야 돌아와? 공사가 다망하네.”“만두야!”송석석은 만두의 가슴팍을 툭 치다가 건실한 근육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너 이제 무술 실력도 고수 수준에 도달한 거 아니야?”만두가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대답했다.“고수까지는 모르겠는데 전보다는 훨씬 늘었지. 이제 너랑 싸우면 지지 않을 자신 있어.”“오, 그래? 그럼 조만간 제대로 한 번 겨뤄봐야겠네?”송석석이 피식 웃으면서 대꾸하자 모신신이 어이없다는 듯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됐거든. 네가 우리 석석이를 이길 수 있다는 게 말이 돼? 그러다가 강냉이 다 털린다? 무술을 고작 2년 배우고 천하무적이라도 되는 줄 알아? 내가 다 창피하거든.”모신신과 만두는 예전부터 티격태격
그렇게 네 사람은 밥을 먹으면서 각자에게 있었던 일을 바삐 얘기했다. 그렇게 송석석은 만두와 모신신이 혼인을 약속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 폭탄 발언에 송석석과 시만자는 입을 떡 벌린 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두 사람을 뚫어져라 쳐다봤다.송석석이 모신신과 만두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근데 두 사람 꽤 잘 어울리는 거 같지 않아? 둘 다 얼굴이 동글동글하잖아.”“네가 그렇게 얘기하니까 두 사람이 꽤 닮은 것 같네? 근데 너희 두 사람 언제 눈이 맞은 거야?”시만자가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묻자 만두가 모신신을 힐끔 쳐다보며 말했다.“신신이 네가 얘기해.”“눈이 맞을 게 뭐가 있어. 혼인할 나이도 됐고 사부께서 처음 보는 남자와 혼인할 바에는 차라리 만두와 하는 게 나을 것 같다고 하셔서 그렇게 됐지.”모신신이 발그레한 얼굴로 대답했다.종파 내에서 혼인을 하는 남녀가 많았다. 그들은 외부인과 접촉할 기회도 적고 한창 이성에게 눈을 뜰 나이에 매일 붙어 있었기에 서로 정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모신신과 만두는 같이 전장에 나간 적 있는 전우로써 경험도 비슷하고 마음이 잘 맞았기에 점점 서로에서 정이 생긴 것이며 많은 것을 함께 해온 두 사람은 평생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을 것이다.한참동안 두 사람을 축하해주던 송석석은 이내 한숨을 푹 내쉬며 남풍관에 관한 일을 털어놓았고 모신신은 안쓰러운 표정으로 송석석을 쳐다보며 말했다.“밤까지 새야 하는 걸 보면 관직을 책임지는 것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닌 것 같네. 그때 우리가 진성을 떠나기로 한 게 참 잘한 선택이었어. 그런데 조금 전에 들어올 때 보니까 표정이 많이 안 좋던데 혹시 황제한테 혼이라도 난 거야? 고생은 혼자서 다 하고 혼까지 나면서 그 관직을 계속 맡고 싶어? 차라리 우리랑 같이 매산으로 돌아가서 자유롭게 사는 게 낫지 않아?”송석석은 매산으로 돌아가는 게 꿈이었기에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았다.“매산으로 돌아가긴 하겠지만 지금은 아니야. 어른이 됐으니 책임이 따르는 법이지. 이
한편, 제 황후의 부름에 송석석은 어안이 벙벙했다.‘왜 갑자기 제 제사를 만나러 오라고 부르는 것이지? 죄를 묻고 싶다면 궁으로 부르면 될 텐데 말이야.’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제 제사를 상대로 송석석은 욕을 먹어도 감히 한 마디도 반박하지 못할 게 분명했다. 그러다가 제 제사가 눈앞에서 사망하기라도 하면 송석석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어진다. 시만자는 송석석에 제 제사가 며칠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있기에 작은 자극에도 사망할 수 있을 것 같다며 그의 현재 상황을 얘기해주었다. “제 제사께서 설마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봐 달라고 부르는 건 아니겠지? 늙은이가 아주 못됐네!”자초지종을 들은 모신신은 씩씩거리며 독설을 날렸고, 만두는 옆에서 송석석을 말렸다.“가지 않는 게 좋겠어. 황제 폐하의 명도 아니고 황후의 명을 어긴다고 해서 큰일이 날 것 같진 않은데?”하지만 시만자의 의견은 달랐다.“황후의 명을 어기면 황제가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듯 보여도 속으로 체면이 깎였다고 생각할 거야. 가야 돼. 제 제사가 정말 네 앞에서 죽는다고 해도 그건 하늘의 뜻이니 어쩔 수가 없어. 이건 피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시만자는 숙청제에 대해 잘 알고 있었기에 황제 부부의 심기를 함부로 건드리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았다.“석석아, 내가 너랑 같이 가줄게.”시만자의 말에 잠시 고민하던 송석석이 말했다.“네까지 같이 안 가도 돼. 단 신의를 불러서 함께 갈 생각이야. 그리고 제 제사를 만날 때 제 대부인께 같이 있어달라고 부탁할 거야.”제씨 가문이 막무가내인 집안은 아니기 때문에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당당하게 맞서서 증인을 데리고 가는 게 차라리 나을 수도 있다.“그래, 그럼 내가 단 신의께 찾아가서 같이 가줄 수 있는지 여쭤보고 올게.”모신신의 말에 시만자가 대꾸했다.“여쭤볼 필요도 없어. 단 신의께서 석석에 관한 일이라면 당연히 나서실 거야.”“다행이네!”모신신과 만두는 그리 걱정되지 않았다. 문제가 생긴다면 해결하면 그만이고 정
제 상서는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말했다.“아버지, 폐하께서는 이제 더 이상 우리 제씨 가문을 중히 여기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제가 어찌 북명왕 가문의 심기까지 건드리겠습니까?”“그럼 그냥 죽게 내버려둬. 내가 죽어야 너희들이 살 수 있어.”말을 하던 제 제사는 다시 눈을 지그시 감았고 이렇게 몇 마디 한 것만으로도 너무 힘들었다.한편, 제 황후는 오래 전부터 송석석이 마음에 들지 않았었는데, 송석석이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든 탓에 제씨 가문은 명성이 무너졌을 뿐만 아니라 황후인 그녀까지도 피해를 받고 있다고 생각했다.제 황후는 밖으로 나가자마자 제 상서를 불러 조용하게 얘기했다.“조부께서 요구하신 대로 송 대감을 불러오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목 승상도 함께 불러오세요. 그래야 송 대감이 조부를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사실을 증언해줄 사람이 생길 것 아닙니까?”제 상서가 고개를 번쩍 들고는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제 황후를 쳐다보았다.“안 된다. 지금 그게 무슨 말이냐! 그러다가 네 조부께서 정말 사망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러는 것이냐!”“아버지, 조부께서 맞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조부가 돌아가셔야 저희 제씨 가문이 살 수 있습니다. 조부께서 살아 계신 한, 저희 제씨 가문은 계속 손가락질 받을 것입니다. 하지만 조부께서 사망하시면 조부의 공적을 찬송하는 사람이 생길 것이고 시간이 지나면 다들 남풍관에 관한 일은 잊을 것입니다.”“너 제정신인 것이냐? 그건 그저 네 조부께서 홧김에 한 말일 뿐이다!”그러자 제 황후가 눈물을 닦으며 그를 진정시켰다.“아버지, 일단 제 말을 들어보시지요. 조부께서 이렇게 되신 게 송석석 그 여자 탓이 아닙니까? 조부께서는 그 여자를 원망하고 계신 겁니다. 그래서 만나고 싶다고 얘기하신 것이죠. 송석석 앞에서 생을 마감하시는 게 조부의 복수 수단이고 저희 제씨 가문이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조부께서 이런 결정을 하신 것도 다 생각이 있으신 게 아니겠습
이 충격적인 소문이 퍼지자마자 제 제사를 숭배해왔던 백성들은 크게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다.제 제사와 안 태부는 상국의 유명한 대학자였는데, 현재 안 태부는 자리에서 물러난 상황이라 조정의 세력에 가담하지도 않았기에, 안여옥에게 문제가 터졌을 때 안씨 가문을 위해 나서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하지만 제 제사는 달랐다. 제 제사의 아들은 사부에서 관직을 맡고 있었기에, 진실을 알지 못하는 관원들이 제씨 가문에게 잘 보이기 위해 너도나도 나서서 함부로 모함하는 광릉후 가문을 엄벌해야 한다고 외쳤다.솔직히 큰 파장을 일으킬만한 일이 아니었지만 그때 당시 남풍관에서 체포된 사람들 중에 관원과 세가 자제들도 많았기에 다들 자신이 비판을 덜 받기 위해 사람들의 관심을 제 제사에게 돌리려고 한 것이었다. 결국 며칠 뒤, 남풍관에서 일하던 몇몇 머슴들이 남풍관에서 제 제사를 본 적이 있다고 증언했고 심지어 이틀에 한 번씩 볼 정도로 자주 방문했다며 말을 덧붙였다.일이 이 지경이 된 이상, 숙청제 선에서 더 이상 해결할 수가 없었다. 숙청제 곁을 지키던 목 승상은 이 일이 사실이기도 하고 계속 숨긴다고 해서 해결되지도 않는다고 하면서 어차피 선황제에게 스승이 더 계시니 다른 스승의 명분을 바로잡는 게 그나마 선황제의 체면을 지키는 일이라고 고했다.숙청제는 이내 백골이 된 용운덕을 선황제의 제사로 임명하고, 위패를 왕실의 종묘로 옮겼다.후대가 없는 용운덕은 문엄 황제가 조정에 통솔하던 때의 탐화랑이었으며 재능이 뛰어난 덕에 관직을 2년 동안 맡았다가 그만두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세상 구경에 전념했다.그러다가 진성에 돌아온 뒤로부터 문엄 황제는 용운덕을 태자의 스승으로 임명했고 그때 당시의 태자가 바로 선황제였다.하지만 2년 뒤, 세상 구경이 너무 간절했던 용운덕이 결국 태자의 스승 자리에서 물러났다.그가 극단적이고 예리한 문장만 고집한 탓에 그때 당시엔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지 못했지만, 나중에 쓰기 시작한 시가 현재 죽어서도 널리 알려지고 있다.용운덕이 사망
송석석도 당연히 잘 알고 있었다. 황제는 송석석이 미리 얘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미 그녀를 탓하고 있는데, 이 상황에서 제 제사까지 경위부에서 사망하면 경위부 전체가 벌을 받게 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 당시엔 미리 언질을 줄 수가 없었다. 아무리 상황이 안 좋다고 해도 상서부에 사람을 보내 요 근래에 남풍관을 엄하게 다스리고 있으니 조심하라고 제 제사에게 말을 전할 수는 없지 않은가?제씨 가문 사람들은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고 되레 송석석이 말도 안 되는 모함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여길 게 뻔하다.송석석은 미간을 확 찌푸리며 말했다.“제 제사께서 남풍관에 방문하기로 선택한 순간부터 언젠가 들킬 날이 있다는 걸 아셨어야지. 감당할 수 없는 일은 저지르지도 말았어야지.”송석석은 제 상서에게 아버지를 다시 한번 설득하라고 얘기했지만 30분 동안 그 어떤 말을 해도 제 제사는 입을 꾹 닫은 채 눈도 뜨지 않았다.제 상서는 아버지에게 약을 먹이려 했지만 제 제사가 입을 꾹 닫고 있었기에 약물은 입가를 통해 전부 옷에 흘러내렸다.차라리 의식이 희미했을 때가 더 나았을 수도 있었다.송석석은 제 제사 곁에서 조용하게 지켜보다가 그의 마음속에 아직 원망이 남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굳이 경위부에서 죽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제 상서가 아버지에게 황제가 전혀 탓하지 않는다고 말을 해도 제 제사는 여전히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참다못한 송석석은 제 상서와 나머지 사람들을 전부 방에서 내보낸 뒤, 의자를 끌고 와서 제 제사 앞에 앉았다.“제 제사, 지금 저를 원망하고 계신 게 맞으십니까?”송석석의 물음에도 제 제사는 여전히 두 눈을 지그시 감은 채 한 치의 표정 변화도 없었다.“저를 원망한 게 아니라면 제 제사와 같은 사람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 세상을 원망하고 계신 거지요. 하지만 제사께서는 아무도 원망할 수 없습니다. 이 나라에는 이런 사례에 대한 확실한 법이 제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때문에 제사께서 젊으셨을 때 혼인을
조금 뒤, 한걸음에 경위부로 달려온 단 신의는 제 제사의 상태를 꼼꼼하게 살핀 뒤, 바로 약 한 알을 입에 넣어주었고 침술도 사용했다.한 시간 정도 지나자 제 제사는 다행히 의식을 되찾았다. 열도 조금 내렸지만,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단 신의는 이내 송석석을 끌고 곁방에서 나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제 제사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체질이 약한 데다가 마음의 병까지 생겨서 치료가 쉽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건 제 제사께서 현재 생의 의지가 없다는 점입니다. 제가 보기엔 최대한 빨리 저택으로 모셔서 전문적인 치료를 받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이러다가 정말 경위부에서 사망할 수도 있습니다.”송석석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난처한 표정을 지며 말했다. “저도 백부님 말씀에 동의하는데 이제 날도 밝아서 저택으로 모시기 쉽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제사께서 몸 상태도 안 좋으셔서 찬바람이라도 맞으면 상태가 더 악화될까 봐 걱정입니다. 어쩌면 제사께서도 겁이 나서 못 가겠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단 신의가 이내 제안했다.“손 난로를 몇 개 준비하고 옷을 최대한 두껍게 입히셔야 합니다. 그리고 저와 같은 마차를 타고 이곳을 떠나 일단 약왕당으로 갔다가 제 상서 저택의 하인이 약왕당에 와서 저를 찾으라고 하십시오. 큰소리로 제 제사께서 쓰러지셨다고 외치면 제가 몰래 제 제사를 마차에 태워 저택으로 가겠습니다. 이러면 아무도 모르게 제 제사를 저택으로 모실 수 있습니다.”“좋은 방법이네요. 지금 당장 제 상서께 말씀드리겠습니다.”송석석은 바로 제 상서에게 이 얘기를 전했고 제 상서는 그제야 마음이 조금 놓였다.단 신의를 의심할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 지금으로서는 이 방법이 가장 안전하다.제 상서는 단 신의에게 고마움을 표했고 단 신의는 얼른 자신의 외투와 갓을 벗어 제 제사에게 입혔다.이미 경위부 밖에는 힐끔거리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제 제사는 단 신의로 위장하여 사람들의 눈을 피해 마차에 타야 한다.제 상서는 바로 곁
시만자 일행은 백성들 입에서 송석석에 대한 칭찬도 들을 수 있었다. 여학을 설립하고 소주방까지 운영하고 있으며 이렇게 남풍관까지 철저하게 조사한 송석석은 완벽한 여중호걸이라고 했다.물론 이와 반대로 안 좋은 평가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예를 들면 집안에서 남편의 시중을 들고 가사에 신경 써야 할 여인이 밖을 돌아다니는 건 문제가 있다고 하거나 여자의 본분을 다하지 못했다는 등 비판을 받기도 했다.시만자는 이런 말들이 이제 익숙했지만, 모신신과 만두가 오히려 송석석에 대한 이런 평가를 도무지 용납할 수 없는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반박하려 했다.바로 그때, 시만자가 급하게 두 사람을 잡아당기며 담담하게 웃었다.“안 좋은 말들은 그저 귓등으로 흘려 보내면 돼. 저런 사람들과 말다툼하는 건 오히려 석석의 명성에 먹칠하는 거야. 그럴 가치도 없어. 그리고 우리가 아니더라도 반박하는 사람이 있을 거야. 석석을 존경하고 따르는 백성들이 많거든.”아니나 다를까 일부 사람들은 바로 반박에 나섰고 모신신은 이 광경을 보며 너무 흐뭇하고 뿌듯했다.“우리 석석이는 점점 더 훌륭한 어른으로 크고 있네.”한편, 경위부에서는 결국 제 자서의 문제가 터졌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고 심지어 물 한 모금도 마시지 않은 제 제사는 저녁이 되자 고열을 앓기 시작했으며 불을 더 피우고 이불을 두 개나 덮었지만 여전히 몸을 심하게 떨고 있었다.송석석은 바로 사람을 시켜 제 상서에게 이 사실을 알리자, 제 상서는 마음이 매우 급해져 걱정됐지만 함부로 외부의 의원을 부를 수도 없었기에, 일단은 저택에 있는 부의를 데리고 경위부로 출발했다.황제에게 크게 혼이 나고 처벌까지 받은 제 상서는 출궁하자마자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머리가 아팠는데 설상가상으로 아버지 건강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그나마 다행인 건, 황제가 제씨 가문이 이대로 무너지도록 내버려두지는 않았다.제 상서는 현재 송석석에 대한 감정이 매우 모순적이었으며 고맙기도 하고 원망스럽기도 했다.송석석이 이렇게 적
그렇게 네 사람은 밥을 먹으면서 각자에게 있었던 일을 바삐 얘기했다. 그렇게 송석석은 만두와 모신신이 혼인을 약속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 폭탄 발언에 송석석과 시만자는 입을 떡 벌린 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두 사람을 뚫어져라 쳐다봤다.송석석이 모신신과 만두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근데 두 사람 꽤 잘 어울리는 거 같지 않아? 둘 다 얼굴이 동글동글하잖아.”“네가 그렇게 얘기하니까 두 사람이 꽤 닮은 것 같네? 근데 너희 두 사람 언제 눈이 맞은 거야?”시만자가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묻자 만두가 모신신을 힐끔 쳐다보며 말했다.“신신이 네가 얘기해.”“눈이 맞을 게 뭐가 있어. 혼인할 나이도 됐고 사부께서 처음 보는 남자와 혼인할 바에는 차라리 만두와 하는 게 나을 것 같다고 하셔서 그렇게 됐지.”모신신이 발그레한 얼굴로 대답했다.종파 내에서 혼인을 하는 남녀가 많았다. 그들은 외부인과 접촉할 기회도 적고 한창 이성에게 눈을 뜰 나이에 매일 붙어 있었기에 서로 정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모신신과 만두는 같이 전장에 나간 적 있는 전우로써 경험도 비슷하고 마음이 잘 맞았기에 점점 서로에서 정이 생긴 것이며 많은 것을 함께 해온 두 사람은 평생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을 것이다.한참동안 두 사람을 축하해주던 송석석은 이내 한숨을 푹 내쉬며 남풍관에 관한 일을 털어놓았고 모신신은 안쓰러운 표정으로 송석석을 쳐다보며 말했다.“밤까지 새야 하는 걸 보면 관직을 책임지는 것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닌 것 같네. 그때 우리가 진성을 떠나기로 한 게 참 잘한 선택이었어. 그런데 조금 전에 들어올 때 보니까 표정이 많이 안 좋던데 혹시 황제한테 혼이라도 난 거야? 고생은 혼자서 다 하고 혼까지 나면서 그 관직을 계속 맡고 싶어? 차라리 우리랑 같이 매산으로 돌아가서 자유롭게 사는 게 낫지 않아?”송석석은 매산으로 돌아가는 게 꿈이었기에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았다.“매산으로 돌아가긴 하겠지만 지금은 아니야. 어른이 됐으니 책임이 따르는 법이지. 이
말을 타고 저택으로 달려온 송석석은 도착하자마자 바로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왕비님께서 돌아오셨습니다!”저택 앞을 지키던 하인 한 명이 그 모습을 보고 큰소리로 외쳤다. 조금 전 시만자가 송석석이 오면 바로 보고를 하라고 명했기 때문이다. 송석석이 저택 안으로 들어서자 갑자기 나타난 모신신은 송석석을 향해 풀쩍 뛰어올랐고 화들짝 놀란 송석석은 재빨리 모신신을 꽉 끌어안았다.“왜 이제야 왔어! 우리 송 대감! 진짜 너무 보고 싶었어!”신난 모신신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리자 송석석은 모신신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은 뒤 손으로 모신신의 볼을 마구 만졌다.“신신아, 너 살이 좀 찐 거 같구나.”송석석을 확 밀어낸 모신신은 입을 삐죽 내밀며 반박했다.“너 진짜 이럴 거야? 어떻게 만나자마자 내 아픈 곳을 그렇게 콕콕 찌르지?!”“아니야, 아니야! 안 뚱뚱해! 딱 보기 좋아, 여전히 예뻐!”송석석이 피식 웃으면서 말하자 모신신은 송석석의 팔짱을 끼고는 안으로 걸어갔다.“네가 완전 뚱뚱한 사람을 아직 못 봐서 그래.”이때, 시만자와 만두가 맞은편에서 걸어왔다. 만두는 살이 찐 건 아니지만 몸매가 전보다 훨씬 건장하고 튼튼해 보였다. 그리고 저번에 봤을 때보다 훨씬 차분해진 모습으로 송석석을 보며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왜 이제야 돌아와? 공사가 다망하네.”“만두야!”송석석은 만두의 가슴팍을 툭 치다가 건실한 근육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너 이제 무술 실력도 고수 수준에 도달한 거 아니야?”만두가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대답했다.“고수까지는 모르겠는데 전보다는 훨씬 늘었지. 이제 너랑 싸우면 지지 않을 자신 있어.”“오, 그래? 그럼 조만간 제대로 한 번 겨뤄봐야겠네?”송석석이 피식 웃으면서 대꾸하자 모신신이 어이없다는 듯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됐거든. 네가 우리 석석이를 이길 수 있다는 게 말이 돼? 그러다가 강냉이 다 털린다? 무술을 고작 2년 배우고 천하무적이라도 되는 줄 알아? 내가 다 창피하거든.”모신신과 만두는 예전부터 티격태격
조금 뒤, 숙청제는 세 사람을 불러들여 크게 혼을 냈고, 광릉후와 제 상서는 무릎을 꿇은 채 연신 사죄를 했지만 유독 송석석만은 입을 꾹 닫고 있었다.숙청제는 그런 송석석을 보며 다시 버럭 소리를 질렀다.“너도 전혀 억울한 게 아니다! 넌 제 제사가 남풍관에 자주 오가는 사실을 알고도 짐에게 미리 보고를 하지 않았다.”송석석은 밤새 잠도 못 잔 탓에 피곤했는데, 황제에게 혼까지 나고 있으니 마음속에 불만이 차올라 반문했다. “소인이 폐하께 미리 보고를 했다면 폐하께서 남풍관을 수사하지 않으셨을 것입니까?”“수사할 건 당연히 수사를 해야겠지. 하지만…”숙청제는 언성을 높였지만 바로 말문이 막혔다. 미리 알았다면 몰래 제 제사에게 얘기해줬을 거라고 말을 할 수는 없었다.더군다나 제 제사가 어젯밤 남풍관에 찾아갈지 확실하지 않는 상황에서 송석석이 남풍관에서 제 제사를 본 적이 있다고 보고를 해도 숙청제는 절대 믿지 않을 것이다.체포되기 전까지 이 사실을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제 제사는 하늘이 무너져도 절대 그런 곳에 갈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신분 지위가 높고 백성들의 존경과 찬양을 한 몸에 받고 있으며 모든 이의 모범인 사람이 어떻게 그런 곳에 갈 리가 있단 말인가!송석석이 미리 이 사실을 보고했다면 숙청제는 송석석을 무고죄로 벌했을 것이었다.송석석은 목청 높여 말을 이어갔다.“이 큰 제씨 가문에 노비와 시녀들이 얼마나 많은데 아무도 제 제사께서 남풍관에 오갔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게 말이 됩니까? 소인은 그저 수사만 했습니다. 누가 언제 남풍관에 나타날지 소인도 예측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남풍관에 제 제사만 있었던 게 아니라 관원들과 세가 자제들도 많았습니다.”송석석의 말은 다 맞는 말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화가 나 있는 숙청제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리가 없었다.“아무튼 네 일 처리가 확실하지 못했던 건 사실이야. 그러니 변명할 것도 없어!”“네, 모든 게 소인의 잘못입니다. 소인은 지금 당장 경위부로 돌아가서 제 제사를 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