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공공은 울면서 무릎을 꿇고 공주를 부르더니 땅에 엎드려 통곡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온은 눈길도 주지 않았다. 치매에 걸려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 것 같았다. 고 공공은 한바탕 울고 나서야 찬합에서 떡 한 접시를 꺼냈고 유은이 검사해 보겠다고 하자 만소가 말렸다. “왕야께서 떡은 검사할 필요 없다고 하셨습니다.” 고 공공은 무릎을 꿇고 눈시울을 붉히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공주님, 한 입만 드십시오. 이건 영태비께서 특별히 저에게 부탁하여 보내온 것입니다. 공주님께서 가장 좋아하는 달콤한 떡입니다. 아직 많이 있으니 천천히 드셔도 됩니다. 사온은 영태비의 이름을 듣고서야 천천히 눈을 들어 그를 쳐다보았다. 그녀의 얼굴은 검게 물들어 드러웠으며, . 눈가에도 검푸른 색깔이었지만 눈시울은 붉어졌다. “내려놓거라.” 그녀는 이가 없어 발음이 또렷하진 않았지만 모두가 알아들을 수 있었다. “옷도 한 벌 가져왔는데 제가 입혀드리겠습니다.” 고 공공은 옷을 받들고 와서 더러운 사온의 몸을 아랑곳하지 않고 한 손으로 그녀를 일으켜 부축해서 들어갔다. 그러자 유은은 다급하게 만소와 고 씨 유모를 보며 물었다. “들아가보지 않아도 괜찮습니까?” “괜찮아, 옷을 바꾸게 둡시다.” 만소는 말하며 떡 한 조각을 소매 속에 숨겼다. 유은은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왕야님과 왕비님의 뜻이라고 생각하고 상관하지 않았다. 반 시진 정도 지나자 고 공공은 사온을 업고 나왔다. 사온은 옷을 갈아입었는데 몸이 너무 말라서 옷이 헐렁해 보였다. 고 공공이 그녀를 떡 옆에 내려놓자 그는 다시 몸을 웅크렸다. 이때 만소가 말했다. “자, 이제 유 대인을 곤란하게 하지 말고 돌아가십시오.” 고 공공은 눈물을 글썽이며 다시 사온을 보더니 아쉬운 마음으로 떠났다.사온은 고 공공의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더니 문이 닫히고 나서야 흐느끼며 울기 시작했다. 만소는 떡을 들고 약왕당에서 청작을 찾아 독이 들어있다는 것을 확인한 후, 왕야와 왕비에게 보고를
동지 날, 궁에서 단합연회를 열기 전에 내외 명부들이 입궁하여 문안인사를 올렸다. 태후께서는 평소에 조용한 것을 좋아하지만 이 날은 명부들의 방문을 허락해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황후는 먼저 와서 함께 있다가 다시 장춘궁으로 돌아가 친정 식구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친정어머니인 제대부인은 입궁하지 않고 오히려 숙모와 사촌 여동생들이 몰려왔다. 물어보니 어머니는 몸이 좋지 않아 바람을 맞으면 안 된다고 했다. 게다가 입궁을 하면 황태후께 문안을 드려야 할 텐데 태후에게 병을 전염시키면 큰일이라 오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제황후는 믿지 않았다. 그녀는 지난번에 어머니가 공방의 일을 말했는데 거절을 한 탓에 그녀가 화났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제황후는 실망이 컸지만 내색하지 않고 란주에게 몇 마디와 효심을 전하라고 분부했다. 번잡한 예절이 끝난 후, 황후는 작은 사촌 여동생을 남겨놓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제자예는 여학에서 주 장군의 손녀인 주창우와 광릉후의 막내딸인 향회옥과 함께 소란을 피워 안여옥을 못살게 굴었던 사람이다. 한바탕 혼쭐이 난 후부터는 좀 수그러들긴 했지만 가끔씩 안여옥을 격분시켜 다른 사람에게 성격이 조급하다는 말을 듣게 하려고 했다. 그해서 여학의 명성에도 큰 영향을 받았던 것이다. 제자예는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사촌 언니, 국태부인은 너무 무섭습니다. 심 선생도 저를 엄하게 꾸짖었으니 나도 당분간은 조용히 지내겠습니다. 그러니 이쯤에서 그만둡시다. 태후에게까지 알려지면 언니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황후는 몸을 반쯤 기울인 채 담담하게 그녀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는 내가 여학을 괴롭힌다고 생각하느냐? 황제도 나와 같은 생각이다. 여학이 설립되었을 때 황제는 송석석의 형세가 너무 세 질까 봐 걱정했단다. 다만 여학이 태후의 뜻이었기에 공개적으로 거절하기 어려워 수단을 써서 여학의 명성을 훼손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 그렇게 되면 나중에 태후가 원망을 하더라도 송석석이 훈장 노릇
제황후는 그녀에게 대황자와 공주를 데리고 나가 놀라고 하고 제자예의 어머니인 경 씨를 불러들였다. 경 씨는 방시원의 일을 듣고 눈살을 약간 찌푸렸다. “황후마마, 그는 자예보다 나이도 훨씬 많아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오히려 광릉후의 향삼랑이 젊은 나이에 능력까지 있어 벌써 거인이 되지 않았습니까? 비록 작위를 물려받지는 못하겠지만 그의 능력에 제 씨 가문의 추대를 더하면 반드시 큰 성과를 이룩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게다가 삼랑은 풍채가 넘치는 데다 올해 열아홉 살 밖에 되지 않았는데 작년에 과거에 진급했으니 진사에 급제를 하기만 하면 앞날이 창창할 것입니다.” 경 씨의 말이 끝나자 란주가 옆에서 웃음을 터뜨렸다. “부인, 제 씨 가문의 아들 중 출세한 사람이 많습니까?” 그러자 경 씨는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지으며 말했다. “당연히 많지요. 우리 제 씨 가문의 아들들 중에 훌륭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셋째 집이 가장 모자라지만 제수찬도 공주와 결혼을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자 황후가 웃으며 말했다. “셋째 삼촌은 모자란 게 아니라 머리를 다친 탓에 그런 것 입니다. 머리를 다치기 전엔 아주 총명했답니다. 우리 제 씨 가문엔 모자란 사람이 없습니다. 이렇게 큰 가문에 아들들은 모두 뛰어나고 이미 벼슬에 들어간 사람과 곧 벼슬에 들어갈 사람도 적지 않지요. 그렇다면 외가에 의해 올라온 향삼량이 무슨 좋은 벼슬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까?” 그녀는 자신의 손가락을 들여다보며 무심한 듯 계속 말했다. “사위가 아들과 앞길을 다투게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제 황후의 말을 들은 경 씨의 표정이 순간 엄숙하게 변했다. 그러자 란주가 말했다. “맞습니다. 부인, 사람은 많고 벼슬은 한계가 있으니 차라리 아가시의 사위는 제 씨 가문과 달리 다른 길을 개척하는 사람을 찾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방시원의 나이가 좀 만긴 하지만 벌써 삼 품 총병까지 올라갔고 어머니도 고명을 받았으니 아가씨께서 시집을 가 고명을 받으면 젊은 나이에
혜태비는 궁에 들어오자마자 덕귀태비와 제귀테비를 찾아가 정원을 노닐었다. 혜태비는 홍보석 장신구가 오늘 피부색을 잘 받쳐주어 모두에게 자랑하고 싶었다. 사여묵은 송석석과 함께 태후마마에게 문안을 드리러 태후전에 들어갔는데 많은 명부들 또한 때를 지어 태후에게로 왔다. 마침 방시원의 어머니인 오수인도 태후에게 인사를 드리러 궁으로 들어왔는데, 태후가 이렇게 많은 명부들 앞에서 방시원의 혼사를 물을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 같았다. 오수인은 마음속으로 괴로움이 가득했지만, 감히 태후 앞에서 하소연하지는 못했다. “태후마마, 혼인을 조급해서는 안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자 태후도 한숨을 쉬며 말했다. “방시원이 고생이 많구나. 이유 없이 이런 일에 연루되고, 너희 집안은 더할 나위 없이 인자한데 하필이면 그 사람들 때문에 발칵 뒤집히다니.” 오수인은 그제야 태후께서 왜 갑자기 그 말을 물으셨는지 알았다. 알고 보니 방시원과 방 씨 가문을 위해서였다. 그녀는 감격에 겨워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아무래도 복이 천박한 것 같습니다.” 그러자 태후가 말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말거라. 그는 우리 상국의 훌륭한 장군이자 황은을 받들고 있는데 복이 천박하다니? 그의 운명은 분명 찾아올 것이다.” “예, 태후마마께서 좀 더 신경을 써주십시오.” 사건이 일어난 후 사람들은 다소 조롱스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보았었는데, 지금 현장에 있던 명부들의 오수인을 보는 눈빛은 순식간에 달라져 있었다.하지만 태후께서 말씀을 하시니 상황이 달라졌다. 태후는 방시원을 상국의 훌륭한 장군이라고 평가했다. 여태껏 조정의 일에 참견하지 않았지만 이번만큼은 방시원을 위해서 나선 것이었다. 자리에 있는 사람들 모두 총명한 사람이기에, 태후의 이 뜻을 알아듣지 못할 리 없었다.그러니 앞으로 아무도 감히 방 씨 가문을 무시하지도, 함부로 입에 담지도 못할 것이다.태후마마께서는 방시원의 얘기를 길게 하지 않고 다른 가문의 일도 물어보았다. 그리고 제대부인이 보이지 않자
말을 하고 있을 때, 영태비가 사적으로 사람을 보내 송석석을 초대했다. 송석석은 태후마마의 허락을 받은 후에야 그곳으로 향했다. 영태비는 문엄 황제의 빈이라 아들을 따라 봉지에 가서 복을 누려야 했지만 지금은 궁궐의 외딴곳에 홀로 남아 생활을 했다. 송석석이 고 공공을 따라 영수궁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설 분위기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고, 심지어는 몇 개의 전각이 아닌 하늘과 땅을 사이에 두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겨울이 되자 영태비의 병세가 악화되어 연왕의 아들인 사여령이 진성에 남았는데 오늘 입궁해서 조모의 곁을 지켰다. 송석석이 온 것을 보자 사여령은 일어나 인사를 했다. “왕비님, 오셨습니까?” 송석석은 그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큰 도련님도 계셨군요.” “네, 조모께 문안인사를 드리러 왔습니다.” 사 여령은 송석석 앞에서 감히 그녀의 눈을 쳐다볼 수 없어 고개를 숙였고, 송석석은 아랑곳하지 않고 영태비께 인사를 올렸다. 영태비는 등에 비단 베개 두 개를 받치고 침대에 기대 있었는데 안색이 노란 데다 푸르스름했고, 희끗희끗한 머리는 풀어헤친 채 계속 누워있었던 탓에 헝클어져 있었다. 그녀는 연신 기침을 하더니 송석석에게 말했다. “왕비, 어서 앉게.” 영태비는 말하는 속도가 아주 느리고 힘이 없었다. 궁녀가 의자를 가져와 침대 옆에 놓자 고 공공이 말했다. “왕비님, 앉으십시오. 태비마마께서 몸이 허약해서 말소리가 크지 않으니 가까이 앉으셔야 들을 수 있습니다.” 송석석은 태비마마께 감사를 표하고 자리에 앉아서 말했다. “태비마마께서는 좀 괜찮으십니까?” “아마도 낫지 않을 것이다.” 영태비는 말을 하며 입술에 립밤을 좀 발랐는데 혈색을 더하지 못하고 오히려 더 창백해 보였다. 송석석은 영태비를 위로했다. “잘 치료한다면 금방이라도 괜찮아질 것입니다.” 전 중의 숯불은 아주 따뜻하게 타올라서 송석석은 조금 뜨겁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렇게 태우는데도 연기 한 점 보이지 않을 것으로 보아 좋은 숯임을 알 수
“여령아, 무릎을 꿇거라.” 영태비가 갑자기 목소리를 높여 사여령에게 말했다. “불효자식아, 어서 왕비에게 용서를 빌거라! 그녀는 너의 사촌 여동생이기도 하고 사촌 형수이기도 하다. 그녀가 너를 용서해야 하늘에 계신 네 어머니의 영혼에게 할 말이 있지 않겠느냐?” 사여령이 무릎을 꿇으려 하자 송석석은 그를 째려보며 말했다. “어디 한 번 감히 무릎을 꿇어보십시오.” 그녀의 차가운 말에 사여령은 굽으려던 무릎이 뻣뻣해졌다. 송석석은 영태비에게 말했다. “태비마마께서 다른 일이 없다면 저는 그만 물러나겠습니다.” 그녀는 말을 마치고 성큼성큼 밖으로 나가자 영태비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왕비, 앞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 손자와 손녀를 보호해 주게.” 송석석은 제 자리에 서더니 고개를 돌려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 “태비마마께서 정말 보살님이십니다. 하지만 저희 사촌 이모께서는 태비의 연민을 받아본 적이 없지요. 그러니 그들도 누군가의 연민과 보호가 필요 없을 것입니다.” 태비는 울며 소리쳤다. “왕비님, 아무리 그래도 친척인데 어떻게 상관하지 않을 수 있단 말입니까?” “그들이 나쁜 짓을 하지 않는다면 왜 보호가 필요하겠습니까? 황가의 자손이 거지라도 될 수 있단 말입니까? 태비마마께서 괜한 걱정을 하신 것 같습니다. 만약 태비마마께서 괜한 걱정을 한 것이 아니라면 이런 말을 내가 아니라 손자들에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송석석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성큼성큼 떠났다. 사여령은 쏜살같이 쫓아나가 그녀를 막았다. “사촌 동생아.” “당신이 내 사촌 이모의 친아들도 아닌데 사촌 동생은 무슨!” 송석석은 줄곧 사여령을 미워했다. 연왕에겐 아들이 세 명 있는데 가장 밉살스러운 것은 그가 아니었지만 첩이 낳은 아들이었다. 그래서 사촌 이모가 그를 키워줬는데 효의가 조금도 없다니. 살아있을 때 효도한 적도 없으면서 죽은 후에야 울고불고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사촌 동생. 나는 그저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을 뿐입니
노주라는 말 한마디에 사여묵과 송석석은 연회를 마치자마자 급히 북명황실로 향했다. 그들은 의사당에서 지도를 펼쳤다. 노주는 강남에 위치해 있고 당시 이왕의 봉지였다. 이왕은 문엄 황제의 형제였는데 오늘날은 진국장군이 되었다. 진국 장군은 봉호만 있을 뿐 병권은 없었다. 지금의 진국장군은 사청엽이었고 황가의 청짜 돌림이었다. 이제껏 조정의 봉록을 받고 살았지만 지금은 복지가 반 이상 줄었다고 했다. 전에 심사할 때도 그를 의심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노주는 비록 부유한 집안이긴 하지만 연주와 옹현에서 멀어 군대를 노주로 이동시키는 것은 꽤 곤란한 일이었다. 게다가 사청엽이라는 사람이 나쁜 일이란 나쁜 일은 다 하고 다녀 대대로 장악해 온 가업까지 망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예전에 그 사람에 대혼 조사에 따르면 그의 집에는 처가 32명이 있었고 미인 통방도 오 육십 명은 되었다. 그가 데려올 수 있는 미녀라면 사든 아니면 빼앗든 반드시 가져야 했다. 그래서 그는 현지 관아와도 관계가 좋지 않아 관아에서도 늘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1년 동안 그가 말썽을 일으키고 민녀를 강탈한 사건만 해도 수백 건이 넘었다. 하필이면 노주가 그의 봉지라 쫓아낼 수도 없고 맞서자니 아무리 그래도 진국장군이니 감히 그러지도 못했다. 그를 탄핵하는 상주서는 많지 않았다. 노주 지부가 3년에 한 번씩 바뀌는데 모두 황실의 체면 때문에 감히 보고도 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황제가 황실이라고 방임하면 나중에 자신의 벼슬길에 영향을 미칠까 봐 모두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랬더니 그가 나쁜 짓을 하도록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이때 염 선생이 말했다. “그에게는 특징이 하나 있는데 바로 횡포하다는 것입니다.” 사여묵은 잠깐 생각하더니 말했다. “한 사람이 가난이 극에 달하면 당연히 돈을 벌 방법을 생각해 내겠지. 하지만 요 몇 년 동안 그가 노주에서 빈둥빈둥 지내면서 친구는 거의 없고 손에 실권이 없으니 돈을 벌 수도 없겠지. 조사해서 그의 개인 마을이나 산이 있는지 알
사여령은 새로 부임했을 때 아버지에 관한 질문을 받을까 봐 매우 두려웠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도록 사여묵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물어보는 이조차 없어 점점 긴장이 풀렸다. 그 중 대리사 소경인 진이가 몇 마디 말을 건넸다. 그는 모든 일에 조언을 아끼지 않는 온화한 사람이었다. 사여령은 그에게 매우 감사하며, 모르는 것이 있으면 예의를 차리지 않고 바로 물었다.그는 태어나서 제대로 된 일을 해본 적이 없었기에, 감옥 관리자 일을 잘 수행해내고 싶었다. 그는 배워야 할 것도 많았고 수하의 옥졸들을 잘 관리해야 했으므로 매일 바빴다.사여묵은 진이에게 당분간 사여령에게 너무 많은 것을 묻지 말고 그가 제대로 업무를 처리할 수 있도록 도우라 했다. 사여령이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지원해 주고, 작은 성취를 통해 자신감을 얻은 후 스스로 판단해 선택할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었다.동지가 지나고 나서부터 중매쟁이들이 방씨 가문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오수인은 방시원에게 부인을 찾아주고 싶어 했다. 자식 문제야 그렇다 쳐도, 그의 곁에서 그를 잘 챙겨줄 사람 한 명정도는 필요했다.오수인은 아들이 생사의 갈림길에서 살아 돌아온 후, 후손에 대한 기대는 크게 없었다. 오수인은 그저 아들이 평온하게 살아가길 바랐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왕청여 사건 이후, 그녀는 며느리를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품성을 꼽았다.이전에 혼담이 오갔던 집안은 비록 6품 관원의 딸이었지만, 덕목과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하지만 왕청여와 노세진 사건이 터지면서 이 일은 무산되고 말았다.그 후 중매 얘기가 많이 들어오자, 그녀는 먼저 그들의 품성을 알아보고자 했는데, 그러던 중에 뜻밖에도 제씨 가문에서 먼저 혼담을 꺼낸 것이다.제씨 가문의 막내딸인 제자예는 갓 성인이 된 지 반년이 채 안 된 16세도 지나지 않은 나이었다.오수인은 그 얘기를 듣자마자, 품성을 알든 모르든 나이가 너무 어리다고 느꼈다.오수인이 원래 선택했던 아가씨는 모두 18세 이상이었다. 18세가 되도록 혼
숙청제는 신하들을 어서방에 불러들였고, 그들은 밤늦게까지 논의했다. 논의는 결국 단신의가 들어가서 시간이 많이 늦었음을 알리며 중단을 요청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숙청제는 팔을 뻗고 웃으면서 말했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었다니. 그럼 궁문도 이제 잠가야겠으니 다들 돌아가시게.”그는 여전히 기운이 넘쳤고, 특히 지금은 얼굴에 혈색이 돌아 병든 사람 같지 않아 보였다.송석석은 논의 중이던 사여묵을 기다렸다. 그들은 함께 궁을 떠나 황실로 돌아갔다. 매우 피곤했던 그녀는 사여묵의 어깨에 기대어 잠이 들었다.마차가 황실 문 앞에 도착하자 사여묵은 그녀를 안아 들었다. 송석석은 그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내려오기 귀찮았기에 그대로 안겨 있었다. 그의 넓고 따뜻한 품은 정말 편안했다.그와 떨어져 있던 세 달 동안 그녀는 성릉관에서만 편히 잠을 청할 수 있었으며, 그 외의 곳에서는 늘 경계하며 지냈다. 이제 집에 돌아오니 자연스럽게 긴장이 풀렸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불안함을 느꼈다. 무언가 뜨겁고 큰 손이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만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눈을 감은 채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단 백부 말씀을 잊으셨나요?”귓가에 따뜻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단 백부가 이제 괜찮다고 말씀하셨소.”송석석은 감고있던 눈을 떠, 뜨겁고 열정적인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마주하며 물었다.“정말인가요?”“틀림 없소.”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입술이 덮였다.불꽃이 강렬하게 타올왔다. 침실의 온도마저 높아진 듯 했다.두 사람은 뜨겁게 사랑했다. 오랜 시간 떨어져 있었기에 마치 새롭게 결혼한 듯한 기분이었다!한 달 후, 상국은 시박사를 설립할 예정이었다. 이는 상국과 해외 북당과의 화물 교류를 담당할 기관이었다.원래의 시역업도 시박사의 운영을 전폭적으로 지원할 것이며, 상국에서 다른 국가에 판매할 수 있는 화물 목록을 정리하여 서경으로 사신을 파견해 화물 교환 협정을 체결할 것이다.이 한 달 동안 단신의는 약을
10월 15일, 사절단은 드디어 진성에 도착했다.현갑군은 그 자리에서 먼저 해산했고, 이덕회와 홍려사경은 궁에 들어가 황제를 뵈러 갔다. 그동안 몸이 약해져 혼자서는 거동할 수 없었던 진왕은 이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자신도 궁에 가겠다고 말했다.송석석은 이미 성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여묵에게 인도되어 황실로 돌아갔다.그동안 사여묵은 매일같이 성문 앞에서 그녀를 기다렸고, 때로는 낮잠시간에 직접 가서 기다리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이 되어서야, 드디어 기다리던 그녀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이덕회와 그들이 궁에서 황제에게 보고할 때, 송석석은 이미 태비께 인사를 드린 후였다.혜 태비는 송석석이 피곤해 보이자, 가서 씻고 옷을 갈아입으라고 말했다.송석석은 사여묵과 함께 나와서 매화원으로 돌아갔다.목욕을 마치고 옷을 갈아입고 나왔을 때, 송석석의 입술이 어쩐지 조금 부풀어 있었다. 서주는 깜짝 놀라 왕야를 바라보았다. 왕비가 목욕하는데 왕야께서 꼭 직접 모셔야 한다며 들어가더니, 보아하니 제대로 보살피지 못한 것이 틀림없었다.서방에서는 염선생과 심청화가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송석석은 그들에게 서경에서의 일들을 말해주었다. 협상 결과는 그들이 이미 알고 있었기에, 송석석은 길에서 일어난 암살 시도, 원신제의 곤경, 그리고 북당의 안풍친왕이 말한 3년과 5년의 기한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었다.사여묵은 두려운 마음으로 이야기를 들었는데, 서경이 그렇게 혼란스러웠음에도 그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았음에 안도하며 다행이라 여겼다.안풍친왕이 성릉관을 자유롭게 오고 간 것과 그가 말한 3년, 5년 기한에 대해서, 심청화는 사부에게 편지를 보내면 알 수 있을 거라 말했다. 사부는 그들을 잘 알기 때문에 그 말의 숨은 의미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었다.이야기를 마친 후, 사여묵은 송석석이 휴식을 취하게 하기 위해, 송석석에게 더 이상 질문하지 못하게 그들을 막았다. 그는 오후에 휴가를 내어 일을 쉬려고 했지만, 황제가 사람을 보내 궁에 오라고 일렀다.송석석
성릉관에서 다섯 날을 지낸 진왕은 어느 정도 몸이 회복이 되었다.그가 회복되었다는 것은 이제 다시 진성으로 향해야 함을 의미했다.이별은 너무나 아쉬웠지만, 송석석은 눈물을 삼키며 그저 작별 인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소 대장군 앞에서 여러 번 절을 했는데, 그로 인해 소 대장군도 눈물이 거의 터져 나올 뻔했다.이덕회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바로 소 대장군이었다. 소 대장군은 상국을 위해 수십 년 동안 성릉관을 지킨 노장이었기 때문이다.송석석은 눈물을 삼켰지만, 그는 얼굴을 가리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이 평생 다시는 그를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이미 노령에 접어든 듯, 이전에 만났을 때보다 훨씬 더 노쇠해 보였다. 설령 황제가 그를 진성으로 돌아가게 허락한다 할지라도, 긴 여정과 고된 일정을 고려했을 때 소씨 가문 사람들이 그를 돌아가지 못하게 할 수도 있었다.소 대장군은 이덕회와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그러자 이덕회는 더 크게 울음을 터뜨렸다.외숙모 남씨는 회 왕비에 관한 질문을 하지 않았었다가 이별을 앞두고서야 송석석을 옆으로 데려와 그녀의 상황을 물었다.송석석은 회 왕비가 지금 감옥에 있다는 사실과 란이가 그녀를 위해 손을 써주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렇게 힘든 상황은 아닐 거라며, 혹시 태자가 세워지면 대사면이 내려져 그녀가 나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남씨는 살짝 안도의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렇다면 다행이구나. 외조부께서 말씀하시지는 않으셨지만, 엄청 신경 쓰고 계실 거다. 세상에 정말로 모진 부모는 드무니까. 네 외조부는 모진 분이 아니시다. 그때 그녀가 란이에게 그렇게 까지 모질게 대했던 게 안타깝다. 란이가 여전히 그녀를 돌보아야 하다니."송석석이 말했다. "걱정 마세요. 란이는 지금 편안하고 자유롭게 지내고 있어요. 그리고 앞으로도 더 잘 지낼 거예요.""그렇지. 분명히 잘 지낼 거야." 남씨는 아쉬움이 가득한 눈빛으로 송석석을 바라보다가, 이내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귀환길에 오를 무렵, 이미 9월 초가 되어, 날씨는 더 이상 뜨겁지 않았으며, 오히려 약간 선선했다.수란키는 직접 군대를 이끌고 나와 그들을 녹분성까지 배웅했다.이번 귀향길에서는 암살 시도가 없었기에 매우 순조로웠다.이들은 끝없이 이어지는 산을 넘어가 상국의 경계에 들어섰다.소 대장군에게 사전에 도착 예정일을 알리지 않았기에 아무도 마중을 나오지 않을 줄 알았지만, 상국의 경계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전북망이 이끄는 소씨 가문 군대와 마주했다.무사히 돌아온 그들을 보자, 전북망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없이 말을 몰고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는 말에서 내려 진왕과 이덕회를 비롯한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며 말했다."왕야와 이상서, 그리고 여러 대감님들, 소 대장군께서 저를 시켜 이곳에서 여러분을 맞이하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성릉관까지 호위하겠습니다."그러자 이덕회가 호기심에 차서 물었다. "대장군께서는 우리가 오늘 돌아올 것을 어떻게 아신 것입니까?"전북망이 대답했다. "대장군께서는 모르셨습니다. 매일 여기서 기다리라고 명하셔서 계속 기다린 것입니다.""그렇군요." 이덕회는 소 대장군의 매우 신중함에 감탄했다. 진왕은 오는 동안 몸이 좋지 않았다. 그는 마차의 발을 올리고 한 번 쓱 둘러보았다. 자신이 상국에 돌아온 것을 확인하자, 그는 그제서야 기운을 조금 차리며 말했다. "빨리 출발하게.""예!" 전북망은 재빨리 대답하고 말에 올라 선두를 이끌었다.시만자는 그가 한 손으로 능숙하게 말을 다루는 모습을 보며, 그가 많은 노력을 기울였음을 알아차렸다. 그녀는 말의 고삐를 잡고 송석석에게 말했다. "이 사람 나쁘지 않네. 어머니께서 그 당시 사람을 잘못 본 것이 아니었나봐. 마음을 예측하기 어렵긴 하지만..."송석석은 시만자가 전북망을 칭찬하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사실 시만자는 여전히 전북망에 대한 모친의 기대를 저버린 것을 항상 마음에 두고 있었기에, 이 말을 함으로써 모두 안심할 수 있도록 한 것이었다.송석석은 아무 말도 하
안풍친왕이 말했다."이번 여정은 서경과 상국을 위한 것이지만, 북당을 위한 것이기도 하니 감사할 필요는 없습니다. 국가 간의 교류는 언제나 이익을 우선으로 하니까요. 개인적인 인연이 있을 때 진심으로 대하는 것이죠."송석석은 깨달음을 얻은 동시에 궁금한 점이 있어 물었다."혹시 제 사부 임양운을 아십니까?"안풍친왕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알지요. 그는 북당에 와서 제 채성루에서 잠시 머문 적이 있습니다. 제 호위 지휘사인 흑영위가 당신의 사부와 매우 친한 사이입니다. 그들은 자주 함께 술을 마셨죠.""그렇군요." 송석석은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을 떠올렸다. 그 중 어떤 사람이 흑영위 선배인지는 모르겠지만, 만날 수 없다면 정말 아쉬운 일이었다.안풍친왕은 이내 그녀의 마음을 눈치 챘는지 웃으며 말했다.“우리 북당은 3년 혹은 5년 후에 상국을 방문할 예정입니다. 그때 흑영위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송석석이 막 감사의 말을 하려는데, 시만자가 말했다."왜 3년 혹은 5년 후인가요? 좀 더 일찍 갈 수 없나요? 왕야와 왕비께서 가시는 걸 기대하고 있습니다."안풍친왕은 미소를 지으며 깊은 뜻이 담긴 말을 했다."지금은 아직 그때가 아닙니다."그들이 말하지 않으니 더 이상 물어보는 건 예의가 아니었다.옆에서 조용히 앉아 있던 안풍왕비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으며, 그저 눈앞의 간식들을 맛있게 먹고 있었다. 아무것도 특별할 것 없는 설탕절임과 육포였지만, 그녀는 그것을 매우 맛있게 먹었다.송석석은 탁자 아래에서 그들이 손을 서로 맞잡고 있는 것을 보고, 그들의 사랑이 누구보다 깊다는 것을 느꼈다.두 나라 간의 교류에 대해 더 얘기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들은 잠시 가볍게 잡담만 나눈 뒤 그들을 보내주었다. 떠나기 전에 안풍친왕비가 먼저 입을 열었다.“송대감, 시 소저, 4년 후에 상국에서 뵙겠습니다."송석석은 급히 손을 모으며 말했다."네. 왕야와 왕비께서는 반드시 오셔야 합니다."그들이 떠난 후, 별관 문이 닫혔다.송석석과 시만자
이틀 동안 돌아본 후, 수란키가 송석석에게 말했다. "귀국에 단신의라는 신의가 계십니다. 그분이 만든 단설환의 한 가지 재료인 설연화가 귀국에서 생산량이 매우 적다고 알고있습니다. 남강에 있기는 하지만, 설산 정상에 자생하고 있어 채집하기 매우 어려우며, 또한 드뭅니다. 하지만 저희 쪽에서는 설연화가 그리 희귀한 것이 아닙니다. 고산지대 어디에서나 볼 수 있지요. 그가 사용하는 설연화는 모두 서경 약장수에게 몰래 사서 쓰는 것으로, 가격이 매우 비쌉니다. 그 가격으로 단설환을 팔면, 한 알을 팔아서 한 알을 잃는 셈입니다."송석석은 단설환이 부족한 이유가 일부 약재를 구할 수 없기 때문임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단 백부는 구체적으로 어떤 약재가 부족하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서경과 상국은 그동안 무역을 하지 않았고, 특히 약재는 더 조심스럽게 다뤄졌기 때문에 그가 서경 사람에게 약재를 산 것을 비밀로 한 이유가 이해가 됐다.수란키와 원신제는 한 마음으로 이렇게 세세하게 조사를 진행했으며, 두 나라 간에 상호 교역을 이루려는 계획이 이미 있었을 것이다. 안풍친왕을 불러들인 것도 이 일을 실현하기 위해서였다. 단설환은 생명 구제용 약이라, 만약 약재만 부족하지 않다면 평민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어 실로 민생에 큰 이익이 된다. 송석석은 그들이 지나쳤던 약재 시장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럼 왜 약재 시장에서는 설연화를 본 적이 없죠?" 수란키가 웃으며 답했다. "그건 당연합니다. 우리 서경에서 설연화가 많이 자생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희귀한 재료입니다.고산지대를 올라가야만 채집할 수 있기에 위험하기도 하지요. 게다가 약효가 뛰어나지 않습니까. 심장을 강하게 하고 통증을 멈추는 효과가 있어, 시장에서 거래되는 법이 없습니다. 송대감께서 믿지 못하신다면, 제가 지금 당장 사람을 보내서 설연화 한 바구니를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그것을 상국으로 가져가서 단신의께 검증받으시면 됩니다."그는 말을 마친 후 시 사람을 시켜 설연화 한 바구니를 가
그가 앉은 자리는 북당이 이번 협상에서 취한 입장을 대표했다.그는 중립의 위치에 있었다. 송석석은 다시 한 번 국가가 강성한 것이 정말 좋다며 감탄했다. 협상의 처음 부분은 조금 지루했다. 양쪽 모두 똑같은 말을 반복하며 강조하였고, 양쪽의 역관들이 그것을 전달하며, 모두 역사적 문제를 강조했다.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처음부터 양보를 한다면 계속해서 양보하게 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따라서 첫 번째 협상에서는 아무런 합의도 이루어지지 않았고, 서로의 한계를 시험하는 데 그쳤다. 다음 날, 바로 두 번째 협상이 시작되었다. 역시 초반에는 전날처럼 양쪽에서 강조하는 말들이 오갔다.그러다가 잠시 후, 안풍친왕이 먼저 말을 꺼냈다. "이렇게 계속해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두 나라의 국경 문제는 이미 수십 년간 지속되어 왔고, 이것은 하루아침에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우선 국경 문제는 잠시 제쳐두고, 본왕은 두 나라가 서로 친선을 맺고, 서로 침범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확인하고 싶습니다." 그의 말에, 모두 두 나라가 더 이상 분쟁을 일으키지 않기를 바란다며 긍정적인 의사를 내비쳤다. 안풍친왕은 한 장의 목록을 꺼냈다. 그 목록에는 양국의 상품들이 나열되어 있었고, 그 중에는 곡물, 가축, 비단, 직물, 수공예품, 찻잎, 모피, 도자기, 종이, 벼루, 각자의 나라에서만 자생하는 약초, 향료, 청염, 철광, 옥석 광물 등이 있었다. 양쪽은 그것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처음의 긴장감이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막대한 이익 앞에서, 어떤 일들은 협상이 가능했다. 협상이 되지 않으면 잠시 미룰 수도 있었다. 수년간의 전쟁은 두 국가의 국고를 이미 소진시켰기에 양쪽 모두 휴식을 취할 필요가 있었다. 북당의 발전 경험에 따르면, 농업을 중시하고 상업을 억제하는 것은 뒤처진 생각이며, 농업과 상업을 동시에 중시하는 것이 살길이었다. 상업세 또한 매우 높았다. 안풍친왕의 이 목록 덕분에 두 나라는 국경
하지만 송석석은 서경의 종친과 관리들이 북당이 협상에 개입할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의 얼굴에는 놀람이 역력했다.놀란 마음이 지나고 나자, 그들은 기쁨과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들은 북당이 협상에 참여하는 것이 서경을 위한 든든한 지원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송석석은 이 장면을 보며 오히려 안심을 했다. 정말 그렇다면 원신제가 미리 그들에게 이를 알려줄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협상에 참여하는 관리들에게는 알렸어야 하는데, 그녀가 왜 말을 하지 않았는지이제야 확실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녀도 서로 양보하는 방향으로 가길 원했지만, 궁정의 문무 백관들 중 그녀를 지지하는 이들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신복하는 북당 안풍친왕을 초대한 것이었다.이렇게 보니, 어제 원신제가 그녀와 시만자를 궁으로 부른 이유도 이해가 되었다. 처음에 말했던 그런 것들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다는 말이었다. 여성의 과거 시험을 예로 든 것은, 그녀의 많은 결정들이 추진하기 어려운 상황임을 말하고자 했기 때문이었다.여기까지 분석을 마친 송석석은 점점 더 낙관적이게 되었다.궁중 연회가 끝난 후, 북당 사람들은 대접을 받으며 떠났다. 그들은 그 한 끼를 제외하고는 의견을 거의 내비치지 않았으며, 단지 짧은 대화를 나누었을 뿐이었다.그들이 떠난 후, 상국의 사절단도 일어나 인사를 하며 물러났다. 모두가 돌아가서 협상 준비를 해야 했다. 수란키가 제공한 일정을 따르면, 이틀 후부터 협상이 시작될 예정이었다.황궁 별관에 돌아가자, 이덕회는 모두를 모아 앉히고 논의했다.사실상 또 다른 진부한 이야기였다. 이번에도 양보를 해야 한다면, 모두가 지도 위에서 함께 논의해야 할 상황이었다. 하지만 출발하기 전에 황제가 이미 양보의 한계를 설정해 두었기 때문에 더 이상 양보를 하게 되면 돌아가기도 어렵고, 역사적인 죄인이 될 수도 있었다.그래서 아무도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으며, 그저 지도만 바라보며 각자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사실 이런 자리에서는 모두 입맛이 그다지 좋지 않기 마련인지라, 많은 음식들이 한 입 먹고 나면 다시 치워지곤 한다.하지만 북당의 사람들은 정말 음식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어떤 요리가 나와도 모두 다 먹어버렸으며, 가득 채운 술잔도 순식간에 비웠다. 그들을 시중드는 궁인들도 꽤 힘들었을 것이었다.시만자는 그들이 춘만루에서 먹었던 그 한 끼를 떠올렸다. 그때도 남은 음식이 하나도 없이 모든 것이 비워졌었다.그녀는 송석석에게 무언가 말을 건네고 싶었다. 하지만 식사 소리 외에는 아무 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기에 말을 꺼내기 어려웠다.그러나 그들은 눈짓만으로도 서로가 하고자 하는 말의 의미를 알아차렸다.시만자는 북당 사람들이 이곳에 등장한 것이 협상과 관련이 있을 거라고 했고, 송석석도 그렇게 생각했다.하지만 그녀는 그들이 중재자로 온 것인지, 아니면 서경을 돕기 위해 온 것인지 확실하게 알 수 없었다. 만약 중재자라면 협상 또한 오래 걸리지 않고 조약을 체결할 수 있을 테니 더 좋을 것이었다.하지만 만약 서경을 돕기 위해 온 것이라면 협상은 공방전이 될 것이 분명했다. 북당이 그들의 방패가 된다면 상국이 협상에서 어려움을 겪을 것이 틀림 없으니 말이다.이덕회와 홍려사경 등 상국의 사절단들은 상황을 어느 정도 눈치챈 듯 했다. 그래서 그들은 처음의 그 기쁨을 잃은 대신 마음속으로 여러 가지를 고민하는 모습이었다. 눈앞의 음식도 별로 먹고 싶지 않은 듯했지만, 모두가 식사를 하고 있었기에 그들도 어쩔 수 없이 천천히 먹었다.이 궁중 연회는 그들이 참석했던 연회 중 가장 이상한 연회였을 것이다. 마치 폭풍이 다가오는 듯한 무서운 고요함이 느껴졌다.궁중에서 준비한 요리는 총 32가지였다. 그러나 각 요리의 양은 매우 적었으며, 궁인들은 음식을 하나씩 들고 들어와서는 다시 하나씩 치워갔다.누군가 술잔을 들고 싶어했지만, 역시 원신제와 마찬가지로 한 번 쓱 훑어본 후, 술잔을 비우고 다시 내려놓고는 식사를 계속했다.마침내 32가지 요리가 모두 올라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