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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59화

Author: 유애
왕이장과 시만자는 말을 끌고 나가 넓은 거리를 걸었다. 살랑살랑 부는 밤바람에 취기가 모두 날아갔다.

"오늘 밤 일은 너무 충동적이었어. 너를 데리고 오는 게 아니었는데…"

시만자가 약간 후회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나쁘지 않았어."

왕이장이 대답했다.

"지금 마음이 어떤데? 그들과 화해한 거야?"

"아니."

왕이장은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 전보다는 훨씬 여유로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노부인이 나와 최씨를 방으로 불러서 정말 많은 이야기를 했어. 하지만 단 한 번도 묻지 않더라. 그동안 내가 어떻게 지냈는지, 내가 끌려간 뒤에 무슨 일을 겪었는지 말이야. 그저 자신이 했던 일에 대해 변명하고, 잘못이 없다고 강조할 뿐이었어."

"그랬구나"

왕이장은 약간 흐트러진 머리카락과 함께 다시 자유분방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나는 처음 산을 내려갔을 때를 기억해. 한 달 동안 외지에서 지내고 돌아오니 사부와 사숙이 나를 둘러싸고 묻더라. 뭘 먹었는지, 누구를 만났는지, 어떤 여관에서 묵었는지, 싸움은 했는지, 남에게 속여 돈을 빼앗긴 적은 없는지, 그리고 어떤 경치를 봤는지."

"내 사부님께서도 그랬어."

시만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게 당연하지."

"맞아."

왕이장은 다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사랑받고 자란 아이였어. 내게도 집이 있었다고."

시만자는 그의 기분이 어떤지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꽤 좋아 보였다.

"그래서, 이제는 마음을 정리한 거야?"

"응. 그런데 그렇게 나쁘지도, 좋지도 않아. 그러니 굳이 화해할 필요도, 원망할 필요도 없지."

왕이장은 노부인이 남편을 독살해 복수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감동해야 마땅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감동하지 않았다.

그에겐 비록 아이가 없지만 만약 있었다면, 심지어 그 아이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이라면, 멀리 떨어진 곳으로 보내어 법도의 가호를 받게 해야 한다 할 때 그는 반드시 함께 갔을 것이다. 자신이 직접 가지 못한다면 믿을 만한 사람이라도 꼭 붙여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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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리를 돌며 공개적으로 조롱받는 동안, 영군왕은 완전히 무너져 미쳐버린 듯했다. 그는 백성들을 향해 무지하고 어리석다며 욕설을 퍼부었다. 그는 백성들이 조정에 속아 폭군을 현명한 군주로 착각하였으며, 자신 사청엄만이 진정한 군주가 될 수 있었다고 외쳤다.그러나 그의 쉰 목소리는 백성들의 저주 속에 묻혀버렸다. 사람들은 그를 죽이라 외치며 요참형조차 그에게는 너무 관대하다며, 차라리 천 번의 칼질과 만 번의 난도질을 하는 능지처참으로 갚아야 한다고 외쳤다.연왕은 줄곧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의 마음속은 억울함과 사청엄에 대한 증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만약 사청엄이 자신의 사람들을 배반시키지 않았다면 자신이 반드시 성공할 수 있었을 것이라 믿었다.사청엄은 어둠 속에 숨어 기회를 엿보던 독사처럼 그가 모르는 사이 치명적인 한 방을 날렸다.사청엄 때문에 그는 이제 단순한 역적이 아니라 어리석은 역적으로 전락했다. 자신이 평생 공들여 쌓아 온 모든 것을 남에게 넘겨야 했고, 자신을 배신한 부하들에게 묶여 조정의 군대에 넘겨지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훗날 역사에 기록될 자신의 이름은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 될 뿐이었다.그는 평생 동안 권력과 명성을 위해 애써왔지만, 결국 그 모든 것이 허사가 되고 말았다.형틀에 묶여 처형대로 끌려가는 순간, 그의 온몸은 주체할 수 없이 떨렸다. 마지막으로 바라본 세상은 온통 증오와 조롱의 눈빛으로 가득했다. 마침내 그는 울부짖으며 오열했다.이 모든 순간을 대체 무엇을 위해 살아왔던가? 대업을 이루기 위해 그는 단 한 가지도 자신의 뜻대로 해본 일이 없었다.그는 자신의 감정을 마음껏 드러내지도 못했고, 아내를 맞이하고 첩을 들인 것조차 모두 이용을 위한 수단이었다. 마음에 드는 여인을 만났을 때 단 한 번이라도 마음껏 사랑해보려 했지만, 그로 인해 무상과 부하들에게 배신을 당했다. 결국 그는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었다.눈물이 뒤섞인 시선으로 그는 군중 속에서 시만자를 바라보았다. 자줏빛 옷을 입은 그녀는 아름답고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403화

    사람들이 모두 모이자 드디어 대청산이 시작되었다.대리사와 경위 형부의 공동 조사 끝에, 연왕과 영군왕을 중심으로 한 반란이 사실로 밝혀졌다.모두 죄목이 확실했기에, 이렇게 오랜 시간 기다린 이유는 그들의 모든 죄목을 하나하나 나열하여 천하에 알리기 위해서였다.연왕 일가는 정보를 제공한 공을 세운 사여령을 제외하고 모두 황실 감옥에 갇혔다.사여령은 황실 족보에서 이름이 제외되었다. 여전히 대리사에서 감옥을 관리하는 직책을 맡고 있긴 했지만, 앞으로 10년 동안은 승진의 가능성이 전혀 없었다.진이는 그를 일시적으로 직무에서 배제시켰고, 처분이 끝난 후 복직시키겠다고 했다.진이는 선의를 베풀어 그에게 앞으로 이 직책을 계속 맡고 싶다면 황실 감옥에 가까이 가지 말고, 집에서 조용히 휴식을 취하며 반성하라고 당부했다.진이는 사여령이 어리석기는 해도 성실하고 가르침을 잘 받아들이는 자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예전처럼 우유부단하지 않고, 무슨 일이든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려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기에 진이는 여전히 그를 돌보아 주려 했다.진이는 송석석에게도 사여령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송석석은 사여령이 어릴 적부터 겁이 많아 무슨 일이 생겨도 반항하지 못하는 성격으로 자랐지만, 다행히 적모 밑에서 자라며 훌륭한 교육을 받아 본성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녀는 사여령을 특별히 돌보지 말라고 당부했다. 사여령이 진성에 머물며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만이 황제를 안심시킬 수 있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진이는 그 말의 뜻을 이해했다. 사여령이 이번 처벌을 피할 수 있던 이유도 연왕의 사병 정보를 제공한 덕이었지만, 일이 지나간 후 황제가 그를 떠올리면 여전히 불편함을 느낄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황제가 그의 직책을 박탈하지 않은 이유는 그를 자신의 눈앞에 두고 감시하려는 의도였다. 그가 진성을 떠나겠다는 마음을 품는 순간, 그는 살아남을 가능성이 없었다.조정 회의에서 숙청제는 영군왕과 연왕을 비롯한 관련자들의 죄목을 발표했다. 그들의 죄목은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402화

    추몽의 눈빛에 섬뜩함이 스쳤다."좋습니다. 위선적인 말 어디 한번 들어보지요."숙청제는 원래 의심이 많아 항상 북명황실을 경계해 왔다. 송석석에게 여성이 억압받아 살 길이 막힌다면 반기를 들겠냐고 묻는 것도, 비록 그녀가 부정한다 하더라도 마음 한구석에 의심을 남겨두기 위한 것이었다.송석석이 그가 무슨 의도를 가지고 이렇게 묻는지 어떻게 모르겠는가? 그녀는 질문을 들었을 때부터 이것이 함정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아직 송석석이 대답도 하기 전에, 추몽은 비웃으며 말을 덧붙였다."먼저 아첨하며 숙청제를 치켜세워 보시지요. 그의 정책이 여성을 얼마나 잘 대우했는지 떠들어 보십시오. 양심에 거리낌이 없다면, 마음껏 칭송하시지요."송석석은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지으며, 그의 비꼬는 듯한 도전적인 시선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그럴듯하게 가정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근본적으로 전혀 같은 일이 아닙니다. 당신은 세상이 어리석고 폐쇄적이라 당신의 기호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여겼고, 그래서 이런 극단적인 방식으로 세상의 인정을 얻으려 했습니다. 그것은 철저히 당신 개인의 문제일 뿐입니다. 당신은 당신과 같은 사람들을 대표하지도 못하며, 그들에게 복을 가져다주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당신은 그들에게 원한과 적대감을 불러일으키고, 세상이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더 큰 혐오와 배척을 느끼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들이 이를 안다면 틀림없이 당신을 꾸짖고 비난할 것입니다."추몽의 안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졌지만, 그는 이내 섬뜩하게 웃으며 말했다."결국 대답하지 않으시는군요. 여성이 억압받아 살 길이 막힌다면, 당신은 나와 같은 일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입니까?"그러자 송석석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만약이라는 것은 그저 가정일 뿐이고 사실이 아니니 제가 굳이 고민할 필요 없다고 생각합니다.""결국 여전히 대답하지 못하시는군요." 추몽이 코웃음을 치며 말하자 송석석이 차분히 대답했다."살 길이 막혔다는 것과 대다수에게 이해받지 못하는 것을 같은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401화

    제제사와 추몽은 대리사의 심문실에서 마주 앉아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낡은 책상 하나가 놓여 있었는데, 송석석은 서리의 책상 뒤에 앉아 있었다. 그들과의 거리가 그리 멀리 않았기에 그들이 아무리 낮은 목소리로 대화하더라도 송석석은 모두 들을 수 있었다. 숨소리와 심장 박동 소리, 그리고 간혹 들릴 듯 말 듯한 한숨 소리 전부 말이다.하지만 대화는 하지 않았고, 심지어 서로 시선을 몇 번 마주하지도 않았다. 마치 강제로 한자리에 앉혀진 낯선 이들처럼 거리감과 냉담함이 느껴졌다.송석석은 자신이 이 자리에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여겼지만, 자리를 떠날 수 없었기에 그 어색함을 어쩔 수 없이 함께 견뎌야 했다.오랜 침묵 끝에 제제사가 겨우 한 마디 꺼냈다.“왜 이런 짓을 한 거냐?”그는 진심으로 의아해했고 이해하지 못했다. 마치 눈앞의 사람이 자신이 기억하는 그 사람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고, 아무리 보아도 과거의 모습과 현재의 모습이 겹쳐지지 않았다.추몽은 두 손을 움켜쥐고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굳이 따져 묻을 필요가 있나? 승자는 왕이 되고 패자는 역적이 되는 법이지.”“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는 법이 아니더냐?” 제제사가 목소리가 약간 잠긴 채로 묻자, 추몽이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어차피 이 생에서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을 다 할 수는 없었다. 선황제가 그러지 않았나? 나는 패역한 자라고. 그래서 생각했지. 내가 가진 생각들이 진정 패역한 것이 아니라면, 차라리 진짜로 패역한 일을 저질러 보자고. 다른 모든 것은 더는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제제사가 그의 시선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말했다.“이번 너희 반란으로 수천수만 명이 죽었고, 피비린내는 지금도 가시지 않았다. 네가 이런 짓을 했다는 걸 나는 믿을 수 없다. 네가 언제부터 사람 목숨을 이렇게 하찮게 여겼느냐?”추몽은 입술을 굳게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모습은 심히 차갑고 냉담해 보였다.“추몽, 너는 그런 사람이 아니잖나. 무슨 사정이라도 있는 거냐?” 제제사가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400화

    이튿날 아침, 송석석은 경위부로 돌아갔는데, 회왕비가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이번에 회왕이 진성으로 잡혀왔을 때, 그의 아들은 아직 잡히지 않았기에 목종욱은 여전히 병사들을 이끌고 회왕의 아들을 수색하고 있었다.회왕비는 자신의 아들도 왕표처럼 요참형에 처형당할까 봐 걱정되어 급하게 송석석을 찾아온 것이다.사실 전에 회왕이 진성으로 압송되었을 때에도 회왕비가 란이를 찾아가 송석석에게 도움을 청해보라고 시켰지만 란이는 단호하게 거절했었다. 심지어 송석석 앞에서 단 한번도 언급한 적이 없었기에, 송석석도 석소 사저를 통해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이었다.회왕비가 재빨리 송석석에게 다가가 조급한 표정으로 말했다.“석석아! 이모가 너에게 부탁할 일이 있어. 일단 조용한 데 가서 얘기 좀 할까?”“지금 처리할 일이 많아서 그럴 시간이 없습니다.”송석석이 돌아서서 떠나려고 하자 회왕비는 얼른 두 팔을 활짝 벌려 다시 그녀의 앞을 막았다.“몇 마디만 하면 돼. 네가 네 사촌 오라버니를 좀 살려주면 안 돼? 네 사촌 오라버니는 아무 잘못이 없어. 걔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어. 전부 걔 아버지 때문에 벌어진 일이야. 제발 네가 좀 구해줘!”송석석은 눈시울이 붉어진 회왕비를 보며 예전에 외할아버지가 진성으로 돌아와 관아에 갇혀 있었을 때 회왕비가 단 한번도 외할아버지를 보러 가지 않았던 일이 떠올랐다.송석석은 이기적이고 냉정하며 나약한 회왕비와 단 한 마디도 섞고 싶지 않았으며 회왕비를 슬쩍 피해 경위부 안으로 들어갔고 경위대에게 회왕비를 쫓아내라고 지시했다.이때 등 뒤에서 회왕비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석석아, 너 어찌 이리 인정머리가 없을 수 있느냐? 네가 어렸을 때 이모가 너에게 얼마나 잘해줬는데 벌써 다 잊은 거야?”송석석이 뒤도 안 돌아보자 회왕비는 더욱더 큰소리로 외쳤다.“송석석, 네 어머니는 나를 제일 사랑하고 아꼈다! 네가 날 이렇게 모른 척하면 분명 네 어머니 상심이 클 것이다!”자신의 어머니가 언급되자, 걸음을 멈춘 송석석은 싸늘하게 굳은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399화

    한편, 송석석은 서재에서 편지 한 장을 쓴 뒤, 편지를 염구진에게 주면서 사람을 시켜 남강에 있는 사여묵에게 전달하라고 했다. 송석석은 현재 남강의 상황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빅토르는 병사들만 끌어 모을 뿐 공격도 하지 않고 물러서지도 않은 채 대치를 하고 있었다. 빅토르가 시간을 끌고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 남강 전쟁에 참여하겠다고 황제에게 먼저 얘기한 빅토르는 전쟁을 이기지 못하면 군령에 의해 처벌을 받겠다는 서약서까지 썼지만 사청엄이 반역에 성공하지 못했기에 빅토르에게 성을 나눠줄 수 없었고 빅토르도 공을 세울 수 없었다.이대로 섣불리 자신의 나라로 돌아갔다가 자신이 쓴 서약서 때문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빅토르는 초원과 연합하여 자신의 퇴로를 확보하려고 했지만 초원은 그의 제안을 거절했다.초원은 애초부터 전쟁을 싫어했을 뿐만 아니라 중간에 끼어 마음을 졸이면서 어렵게 생존하고 있었기에 반드시 중립을 유지해야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만약 둘 중 한 나라를 반드시 선택해야 한다면 초원은 반드시 상국을 선택할 것이다.전에 사제가 송석석에게 보낸 서신에 의하면 남강 병사들은 빅토르를 확실하게 공격하여 다시는 전쟁을 일으킬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만들 거라고 했다.송석석이 생각에 잠겨 있었던 그때, 시만자가 문을 두드렸다.“석석아!”“들어와.”송석석의 말에 시만자가 최숙심과 함께 방으로 들어왔다.“최씨께서 너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싶다고 하셔서 모시고 왔어.”최숙심은 한걸음 앞으로 다가가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왕비님, 그동안 신경 써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제가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까요?”송석석은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농담을 던졌다.“전 여색을 즐기지 않으니 몸으로만 갚지 않으시면 됩니다.”송석석은 분위기가 무거워지는 게 싫어서 농담을 하자, 흠칫하던 최숙심도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시만자는 잠깐 앉아있다가 왕경루로 가야 한다고 방을 나섰다. 종문파와 시씨 가문 사람들은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398화

    오후 3시 정각, 커다란 판대기가 처형장에 올라왔다. 철로 만들어진 판대기는 매우 단단했으며 상국에서 요참형에 쓰이는 유일한 판대기였기에, 오랫동안 방치되어 먼지가 뽀얗게 쌓여 있었다.문엄 황제 때 요참형이 너무 잔인하다는 평가가 많았기에 죄가 아무리 중한 범인이라고 해도 요참형을 내리지 않았다.하지만 이 형이 현재까지 폐지되지 않은 이유는 단 하나, 반역자에게 겁을 주기 위한 것이다.요참형을 처형할 때 백성들에게 보여주지 않는 게 원칙이지만 국정을 어지럽히고 역적들과 손을 잡고 나라를 배신한 건 역천 대죄이기에 이러한 방식으로 반역의 마음을 품고 있는 사람들에게 겁을 주려고 했다.왕표는 이내 입고 있던 옷이 전부 벗겨졌고 관원 부하 두 명이 왕표를 판대기에 눕혀 어깨를 꾹 누른 뒤 꿈쩍도 못하게 제압했다.공포에 질린 왕표는 순간 정신을 잃은 채 기절했고 망나니가 대도를 치켜 들자 대부분 사람들이 급하게 고개를 돌렸다.구경꾼들과 달리 영군오아과 연왕 등 사람들은 전방을 직시하게 고정되어 있었기에 고개를 돌릴 수 없었고 눈을 꼭 감은 채 온몸을 덜덜 떨었다.연왕은 그 중에서 가장 겁이 많은 사람이었다. 망나니가 대도를 든 순간 눈을 꽉 감은 연왕은 심지어 비명까지 질렀다.하지만 겁을 먹은 사람들과 달리 추몽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전방만을 직시했다.망나니의 대도가 왕표의 허리를 자른 순간에도 추몽의 표정은 한 치의 변화도 없었다.왕표에 이어 고청우가 처형당할 때에도 그는 눈을 피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주변의 비명소리나 흐느끼는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 듯 왕표와 고청우가 발버둥 치다가 완전히 의식을 잃을 때까지 빤히 지켜 보았다.한편, 왕청여는 왕표가 처형되기 전에 노부인을 데리고 이미 처형장을 떠났고, 최숙심은 처형이 끝나고 나서도 여전히 남아 있었다.최숙심은 결국 왕표가 처형당하는 모습을 보지 않았다. 눈을 꼭 감고 있다가 주변에 모여 있던 백성들이 왕표가 죽었다는 말에 그제야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가족들이 시체를 거둬가지 않으면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397화

    경위대가 노부인과 최숙심 그리고 왕청여를 처형장 안으로 호송했고 다리에 힘이 쫙 풀린 노부인은 온몸을 덜덜 떨면서 눈물을 줄줄 흘렸다.“이 멍청한 놈아! 넌 우리 집안 조상님들과 네 아버지의 얼굴을 보기 창피하지도 않아? 이제 하늘나라로 가면 어떻게 마주하려고 이런 짓을 저지른 거야!”그러고는 노부인은 엉엉 울면서 왕표의 뺨을 강하게 내리쳤다.한편, 감당할 수 없는 공포에 영혼이 나간 왕표는 어머니를 보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소리를 질렀다.“어머니, 저를 구해주세요! 제발 저를 구해주세요! 전 이대로 죽고 싶지 않다고요!”“네가 이렇게 큰 죄를 저질렀는데 내가 무슨 수로 너를 구해? 황제 폐하께서 너를 얼마나 중히 여기고 믿어줬는데 네가 어찌 이런 배은망덕한 짓을 저지른단 말이냐!”“어머니, 저 정말 잘못했어요. 제 죄를 다 뉘우쳤어요. 다시는 그러지 않을 거예요! 나라를 위해 목숨 걸고 싸울게요. 제발 이 아들을 살려주세요!”왕표가 오열했지만 노부인은 그저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숙였다. 이때, 곁에 서있던 최숙심이 직접 만든 음식과 술을 꺼내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당신과 나 사이에 부부의 연은 끝났지만 어머님과 아이들은 제가 잘 돌볼게요. 그러니 걱정 말고 떠나세요.”왕표는 담담하게 말을 하는 최숙심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네가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와! 서방을 배신한 천박한 년! 감히 나에게 부부의 연을 운운해?”“그래요. 저희는 이제 부부가 아닙니다. 그러니 앞으로 각자 갈 길을 가는 게 좋겠지요.”“나쁜 년!”왕표가 잔뜩 분노한 목소리로 외치자, 이를 들은 백성들이 너도나도 최숙심을 불쌍하게 여겼다. 평생 전전긍긍하면서 왕표를 위해 아들과 딸을 낳고 집안일을 처리하면서 시부모에게도 최선을 다했는데 결국 저런 말을 듣다니.뒤로 한 걸음 물러난 최숙심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한편, 고청우는 왕씨 가문의 일에 전혀 관심이 없었으며 모여 있는 백성들을 자세하게 쓱 훑었다. 이제 곧 죽을 텐데 정말 아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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