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맨스 / 봄날 / 제4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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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화

작가: 유리
발신자를 확인하니 차우미였다.

익숙한 이름이 눈에 보이자 나상준은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전화하기 전, 차우미는 나상준이 다녀가면서 했던 얘기를 숨김없이 하선주에게 털어놓았다.

그리고 도움을 받는 게 불편하다는 얘기도 잊지 않았다.

하선주도 그녀의 생각에 동의했다. 이혼한 사이인데 자꾸 엮이는 건 좋지 않았다.

비록 어쩌다가 차우미가 나상준의 조카를 구하긴 했지만 이 일로 그 집에 보상을 바라지는 않았다.

그래서 하선주는 차우미의 전화로 나상준에게 전화를 걸고 딸의 귓가에 핸드폰을 가져갔다.

차우미는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차우미는 잠시 숨을 고르고 그에게 물었다.

“지금 바빠?”

예전에도 먼저 전화를 걸면 항상 했던 질문이었다.

나상준은 창 밖을 바라보며 담담히 대답했다.

“아니, 안 바빠.”

“그래. 내일 병원 옮기는데 필요한 절차는 우리가 마무리하기로 했어. 더 이상 날 위해 뭘 해줄 필요 없어. 이 말 하려고 전화했어.”

“당신 마음은 알겠지만 정말 우연이었고 다른 사람이었더라도 그렇게 했을 거야. 그러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바쁜 사람인 걸 알기에 차우미는 길게 말하지 않고 용건만 간략해서 전달했다.

그리고 말을 마친 그녀는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하지만 수화기 너머로 간호사와 의사들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으로 보아 아직 병원을 떠나지는 않은 것 같았다.

차우미는 말없이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차우미, 뭐가 두려워서 그러는 거야?”

한참이 지난 뒤에야 그가 물었다.

차우미는 그 질문에 당황했다.

뭘 두려워하냐니?

갑자기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그게 아니라….”

그녀는 무슨 말이라도 하려고 입을 열었지만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예전에는 한 번도 이런 식의 질문을 한 적 이 없었다. 병실에 왔을 때도 자신의 생각만 전달했을 뿐, 그녀의 의견은 들으려고 하지도 않았다.

차우미는 남자가 뭔가 변했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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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화를 끊은 뒤, 나상준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그는 싸늘한 눈을 하고 어둠이 내려앉은 창 밖을 바라보았다.“상준 씨.”주혜민이 그에게 다가왔다.나상준이 고개를 돌리자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가자. 뭐라도 좀 먹고 오자. 상희는 이제 괜찮아졌어.”나상준이 말했다.“돌아와서 할 일도 많을 텐데 비행기 티켓 예약해 줄 테니까 청주로 돌아가.”주혜민의 입가에서 미소가 사라졌다.말을 마친 그는 뒤돌아서 어딘가로 가고 있었다.주혜민은 멀어지는 발걸음 소리를 들으며 하고 싶었던 말을 속에 삼켰다.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얘기가 아니었다.주먹을 꽉 틀어쥐고 다시 입가에 미소를 띄운 그녀는 병실로 들어가려는 그의 등을 보며 말했다.“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해. 난 은혜 언니 부탁을 받고 여기서 상희를 돌봐주기로 했어. 내가 있는 게 불편하면 은혜 언니한테 얘기해.”나상준은 그 말을 듣고도 그대로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주혜민의 입가에서 미소가 사라지고 싸늘한 표정으로 바뀌었다.차우미.이혼한 사람들끼리 아직도 연락을 유지하고 있다니!조금 전 옆에서 그들의 대화를 다 듣고 있던 그녀였다.한편, 차동수와 함께 호텔로 온 온이샘은 뜨거운 물을 끓여 커피를 타고 아까 사온 과일을 씻어 접시에 담았다.모든 일을 마친 뒤에야 그는 차동수에게 말했다.“아저씨,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저 불러요.”차동수는 그런 온이샘의 마음이 고마워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고마워. 이제 필요한 거 없어. 자네는 최선을 다했어.”“아니에요. 제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인걸요. 저한테는 사양하지 말고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말씀하세요.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건 최선을 다할게요.”차동수는 그런 온이샘을 한참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고마워.”온이샘이 웃으며 말했다.“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안심이네요.”“자네도 힘들었을 텐데 어서 들어가서 쉬어.”“아저씨도 편히 쉬세요.”온이샘은 차동수와 연락처를 교환한 뒤에야 밖으로 나갔다.그는

  • 봄날   제49화

    “이번에 우연히 조금 겹쳤어. 상대 여자애가 그쪽 친척일 줄 누가 알았겠어? 우미랑 이혼하고 연락도 안 하던 사이인데 이렇게 되었지 몰라. 자네도 청주 사람이니 NS일가에 대해 잘 알겠지. 우미 전남편이 NS 오너 일가 사람이거든. 그쪽에서 우미가 이번 일로 다쳤다는 얘기를 듣고 극구 치료를 책임지겠다고 해서 말이야. 그래서 병원 옮기는 일은 자네가 나서줄 필요 없다고. 그 말하려고 전화했어.”“이번 일만 마무리되면 그쪽이랑 더 이상 연락할 일 없으니까 너무 서운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해.”처음에는 차우미가 잘 이야기하기로 했는데 하선주는 오히려 자신이 이야기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해서 차우미 대신 전화하게 된 것이었다.하선주는 온이샘 같은 남자라면 차우미를 잘 보살펴 줄 거라고 믿었다.그래서 해야 할 말은 정확히 전달하고 싶었다.온이샘이 웃으며 말했다.”아줌마가 그렇게 말씀하시니 저야 안심이죠.”“그래, 그럼 그렇게 알고 끊겠네.”그렇게 통화가 끝났다.온이샘은 착잡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내려놓았다.신경이 안 쓰인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그녀의 부모님이 자신을 지지해 주고 있으니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다.그녀의 부모님은 NS일가에 미련이 없고 그를 무척 만족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이제 우미 마음만 돌리면 되겠네.’온이샘은 미소를 지으며 엘리베이터에 탔다.차우미는 침대에 앉아 멍하니 창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손을 쓸 수 없으니 무료하고 갑갑했다.나상준이 오늘 했던 말이 자꾸만 떠올라 혼란스러웠다.아무리 생각해도 그는 이혼 전에 비해 사람이 많이 변한 것 같았다.예전에는 항상 멀게만 느껴졌는데 오늘 만난 그의 모습은 친근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참 이상한 기분이었다.문이 열리고 하선주가 그녀의 핸드폰을 들고 들어왔다.“봐, 우미 저기 있어.”그러더니 카메라를 차우미에게 비췄다.여가현의 목소리도 들려왔다.차우미가 당황한 표정으로 엄마를 바라보았다.병원에 입원한 일을 여가현에게 알린 적도 없는데 어떻게 알고 연락이 온 걸까?

  • 봄날   제50화

    말투를 보아 하니 중요한 일인 것 같았다.“너 온이샘이랑 같이 산에 갔으면서 어떻게 나한테는 한마디도 안 해줄 수 있어? 강서흔 그 자식이 연락 오지 않았더라면 너 다친 것도 몰랐을 거잖아.”서운함이 가득 담긴 말투에 차우미가 웃으며 말했다.“별로 큰일도 아닌데 뭐 하러 일일이 연락해?”“이게 어떻게 별일이 아니야? 굳이 이혼한 네가 있는 안평으로 가서 도움을 핑계로 같이 산까지 올라갔는데 이걸 정말 우연이라고 생각해?”차우미는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그녀가 말이 없자 여가현이 계속해서 말했다.“넌 이런 면에 너무 둔감해. 온이샘이 너한테 마음 있는 거 정말 몰랐어?”차우미는 그 말의 가능성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다가 말했다.“나는 아닌 것 같아.”그녀는 한 번도 그런 쪽으로 온이샘을 생각해 본 적 없었다.여가현이 말을 해서 진지하게 고민해 봤지만 그럴 가능성은 적은 것 같았다.온이샘은 매우 뛰어난 사람이었다. 좋은 학벌에 가정 환경, 인품, 어느 것 하나 나무랄데 없는 사람이었다.나상준에 비해도 많이 뒤처지지 않았다.만약 그녀가 결혼 경험이 없었다면 아마 여가현이 그런 말을 했을 때 믿었을지도 모른다.하지만 그녀는 이미 이혼을 한번 한 사람인데 온이샘이 자신에게 그런 마음을 품었을 것 같지는 않았다.뛰어난 남자 주변에는 여자들이 넘쳐나기 마련이다.여가현은 그녀의 대답을 듣고 답답하다는 듯이 말했다.“우미야, 넌 네가 얼마나 예쁘고 매력 있는지 정말 모르는 것 같아. 그렇다면 이 언니가 가르쳐주지.”“넌 화목한 가정에서 자랐고 부모님들도 모두 순박하고 좋은 분들이야. 그리고 신체 건강하시고 정당한 직업도 갖고 계시지. 얼핏 보면 평범해 보이지만 자산도 많이 축적했을 거야. 내 말이 틀려?”“물론 온이샘처럼 타고난 재벌가들이랑은 못 비기지만 평범한 가정은 넘어섰다는 말이야. 그리고 넌 예뻐. 학벌도 최고라고 할 수는 없지만 어디 가서 내놓기 부끄러울 정도는 아니잖아?”“게다가 넌 성격도 좋고 좋은 직장에 다니고 있어. 이

  • 봄날   제51화

    “그 인간이 어디가 좋다는 거야?”“그 집 어머니만 생각하면 머리가 아파. 그 인간이 조금이라도 중재를 잘했으면 나도 헤어지지 않았을 거야.”“그런데 그 인간 엄마가 무서워서 아무 말도 못하더라? 그런 인간을 뭘 믿고 같이 살아?”차우미는 한숨을 내쉬었다.강서흔과 온이샘, 나상준은 비슷한 가정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이었다.하지만 그나마 자유분방한 NS일가에 비해 강서흔의 가족들은 그가 회사에 도움이 되는 결혼을 하기를 바랐다.그들은 여가현을 며느리로 인정하지 않았고 여가현도 만만한 성격이 아니었다.그래서 두 사람은 서로를 사랑했지만 결국 결혼까지 가지는 못했다.“아니지. 지금 네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내 얘기가 왜 나와?”“참, 나 티켓 끊었으니까 내일 안평에 도착할 거야.”“난 다른 일엔 관심 없어. 너랑 온이샘 밀어주려고 가는 거야. 그럼 내일 봐!”여가현은 뭐라고 말할 기회도 주지 않고 전화를 끊어버렸다.차우미는 꺼진 휴대폰을 보며 웃음이 나왔다.그렇게까지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데도 이 친구는 항상 그녀를 먼저 걱정해 주었다.그녀는 여가현이 했던 말을 다시 곱씹었다.“우리 둘 다 행복해지자. 내가 행복을 못 찾으면 네가 내 몫까지 행복해져야 해.”강서흔과 헤어지기로 결심했을 때 여가현이 했던 말이었다.그때 그녀는 술을 마시고 눈물을 흘리며 이 말을 했었다.옛날 일이 떠오르자 차우미는 여가현이 안쓰러웠다.그녀도 친구가 행복해지기를 바라지만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안타까웠다.차우미는 어두워진 창 밖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선배가 정말 나한테 그런 마음인 걸까?’다음 날 아침, 온이샘과 차동수가 병원에 도착했다.퇴원 절차를 처리하려면 가족 사인이 필요했다.그들이 여기저기 뛰어다닐 필요 없이 의료진이 서류를 병실까지 가져다주었다.차우미네 집 근처에 있는 안평 병원은 안평에서 가장 좋은 대학병원이었다.온이샘이 어제 그녀를 대신해 알아봐준 병원이기도 했다.하지만 주치의가 바뀌었다.온이샘은 안평 병원에서 화상

  • 봄날   제52화

    차우미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여자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그녀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문밖에는 V넥 티셔츠에 몸에 딱 붙는 청바지를 입고 긴 웨이브 머리를 늘어뜨린 여자가 서 있었다.주혜민이었다.나상준이 3년이나 잊지 못한 사람.차우미는 그녀를 한눈에 알아보았다.주혜민은 과일바구니와 꽃다발을 들고 담담한 표정으로 서 있는 여자를 잠시 바라보았다.임상희의 은인을 만나려고 아침 일찍 선물까지 사들고 찾아왔는데 그 상대가 차우미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주혜민은 잠시 차우미를 관찰했다. 긴 생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화장기 없는 얼굴에 부드러운 인상을 가진 여자.주혜민은 붕대를 감은 그녀의 손을 보고 뒤로 물러서서 병실 번호를 확인하더니 뜻 모를 미소를 지었다.“잘못 찾아온 건 아닌 것 같네요.”주혜민은 꽃다발과 과일바구니를 들고 차우미에게 다가왔다.차우미는 담담한 표정으로 상대를 바라만 볼뿐, 아무런 말도 건네지 않았다.병실 분위기가 순식간에 어색해졌다.“상준 씨가 바빠서 비교적 한가한 제가 대신 왔어요. 상희 구해주셔서 정말 감사해요.”말을 마친 주혜민은 꽃다발을 차우미에게 건넸다.그리고 그녀를 향해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마치, 진심으로 차우미에게 감사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차우미는 대놓고 자신을 쳐다보는 그녀의 눈빛에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감사해요.”말을 마친 그녀가 붕대를 감은 손을 내밀었다.주혜민은 그제야 깜빡했다는 듯이 사죄의 말을 건넸다.“죄송해요. 손이 불편한 걸 깜빡했네요.”상황을 조용히 지켜보던 하선주가 말했다.“저한테 주세요.”주혜민은 말없이 꽃과 과일바구니를 하선주에게 건넸다.차우미는 3년 만에 더 예뻐진 여자를 바라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니 너무 마음 쓰지 마세요.”주혜민은 그녀와 나상준의 결혼식에 참석했었다. 물론 그때는 그녀가 나상준이 마음에 품은 여자라는 것을 까맣게 몰랐다.그래서 그때 의미심장한 그녀의 말과 아련한 그녀의

  • 봄날   제53화

    차동수도 다가오며 말했다.“가자, 우미야.”차우미는 부모님의 눈치를 조심스럽게 살폈다. 분노한 그들의 표정을 보아 하니 이제 숨길 수 없을 것 같았다.“알았어, 아빠.”차우미는 주혜민에게 눈인사를 한 뒤, 차동수를 따라 병실을 나갔다.담당자도 그들과 함께 자리를 떴다.하선주는 꽃과 과일바구니를 바닥에 내려놓으며 주혜민에게 말했다.“아가씨, 다신 여기 찾아오지 마. 아가씨 마음은 알겠어. 하지만 아가씨가 좋아하는 그 사람, 우린 관심 없으니까 우리한테 그런 말할 필요 없어.”하선주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일부러 나타나서 딸의 아픈 곳을 건드린 여자가 곱게 보일 리 만무했다.말을 마친 하선주는 그대로 병실을 나가버렸다.병실 밖, 온이샘은 복도에서 통화 중이었다.여가현은 안평에 도착했다며 그에게 구체적인 위치를 물었다.그는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안평 병원에서 잠시 기다리고 있으라고 말해주었다.전화를 끊자마자 강서흔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여가현이 안평에 도착했는지 묻는 전화였다.그녀가 안평에 왔다는 얘기에 강서흔은 자신도 지금 출발하겠다고 알려왔다.온이샘은 친구가 아직 여가현을 놓지 못했다는 것을 알기에 이번 기회에 잘해보라고 했다.“친구야, 만약 우리 넷이 같은 날 결혼식을 올리면 정말 장관일 것 같아!”강서흔이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며 말했다.생각은 참 그럴싸하지만 그게 과연 가능할까?온이샘은 친구에게 실망을 주기 싫어 대충 얼버무리고 전화를 끊었다.“알았어. 우리 출발해야 하니까 여기까지만 하자.”“그래! 도착하면 연락할게!”드디어 전화를 끊은 온이샘은 급하게 차우미 가족들을 쫓아갔다.그런데 가까이 가서 보니 일가족 표정이 좋지 않았다.하선주는 아예 똥 씹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차우미와 차동수의 표정도 별로 좋지 않았다.조금 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았다.그는 무슨 일인지 묻고 싶었지만 일단은 참기로 했다.지금은 때가 아닌 것 같았다.일행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다.병실에 남은 주혜민은 떠나는 그들

  • 봄날   제54화

    검은색 정장을 깔끔하게 차려입은 나상준이 차에서 서류를 보고 있었다. 그가 직접 왔을 거라 예상하지 못했던 차우미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지금 같이 이동하겠다는 건가?“우미야, 왜 그래?”하선주는 그녀가 움직임이 없자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아직 주혜민이 찾아온 일도 마음에 내려가지 않았는데 제대로 이야기할 기회도 없어 딸이 안타깝기만 했다.애지중지 키운 딸이 다른 사람에게 그런 취급을 당했을 것을 생각하니 괴롭기 그지없었다.차우미는 정신을 차리고 여전히 서류에서 시선을 떼지 않는 남자를 빤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었다.“별거 아니야.”말을 마친 그녀는 조용히 차에 올랐다.이 시점에서 부모님에게 나상준이 여기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 담당자는 차 문을 닫아주고 하선주 부부에게 말했다.“두 분은 뒤에 타시면 됩니다.”하선주는 차우미와 같이 타고 싶었지만 도움 받는 입장에 뭐라고 하기 그래서 고개를 끄덕였다.두 사람은 그렇게 뒷차를 타고 온이샘은 자신의 차로 가서 시동을 걸었다.온이샘은 차를 운전해 벤츠가 가는 방향으로 차를 꺾었다.창 밖으로 부지런히 움직이는 출근 인파가 보였다. 창밖은 무척 시끄러웠지만 차우미가 탄 차량에는 무거운 정적만 흐를 뿐이었다.차우미는 여전히 서류에 파묻혀 있는 남자를 힐끗 바라보았다.그는 이혼 전과 별로 변한 게 없어 보였다.여전히 일을 사랑하고 한번 집중하기 시작하면 주변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차우미는 피식 미소를 지으며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이혼한 뒤로 다시는 만나지 않을 줄 알았는데 이런 우연으로 다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게다가 그 여자가 그를 따라왔을 줄은 더욱 예상 밖이었다.하지만 그렇게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결혼하고 3년 동안 그들 사이에는 그 어떤 스킨십도 없었다.주혜민의 존재를 알기 전에는 그가 일을 사랑해서 다른 곳에 신경 쓸 여유가 없어서 그런다고 스스로 위안을 삼았다.하지만 주혜민의 존재를 알게 된 뒤로는 생각이 바뀌었다.그는 사랑할 줄 모르는

  • 봄날   제55화

    긴 생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차우미의 모습은 생소하면서도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평소에 그녀는 머리를 깔끔하게 하나로 묶거나 올림 머리를 많이 했지 긴 머리를 그대로 풀어헤친 적은 별로 많지 않았다.하지만 오늘 아침에는 워낙 시간이 급박해서 머리를 묶는 대신 그대로 늘어뜨리는 스타일을 택했다. 귀로 빗어 넘긴 머리 사이로 그녀의 하얀 볼과 귀걸이 없는 작은 귓불이 보였다.그녀는 평소에 장신구를 착용하는 것을 별로 선호하지 않았다. 중요한 자리에 갈 때만 귀걸이를 착용하고는 했다.그녀에게서는 항상 샘물을 닮은 청량하고 수수한 향기가 풍기고는 했다.나상준은 잠시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시선을 거두며 입을 열었다.“필요한 거 있으면 나한테 얘기해.”차우미는 고개를 돌려 남자를 바라보았다.‘지금… 나랑 얘기한 건가?’나상준은 생후 한 병을 따서 마시려다가 그녀의 시선을 느끼고 물었다.“목 말라? 물 마실래?”말을 마친 그는 생수병을 그녀에게 건넸다.차우미의 눈빛에는 의아함이 스쳤다.그녀가 기억하는 나상준은 자상한 사람은 아니었다.정확히 말하면 그는 자상함이나 섬세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그녀는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한 뒤로 그에게 변화가 찾아왔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저었다.“목 안 말라. 상준 씨 마셔.”말을 마친 그녀는 다시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그가 다른 사람을 좋아한다는데 아무렇지 않았다면 그건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다.누굴 좋아하든 그의 자유였고 다른 사람의 마음까지 그녀가 통제할 수는 없었다.변화할 여지가 없다고 생각했기에 초라해지기 싫어서 신경 끄고 살았을 뿐이었다.누구에게나 각자의 인생이 있고 이혼한다고 꼭 슬픔에 빠져 살아야 하는 건 아니었다.그녀에게는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가 있고 세상은 여전히 아름다웠다.나상준은 잔잔한 미소를 띤 여자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전방으로 시선을 돌리고 물을 마셨다.청량감이 목을 적시자 기분이 조금 좋아진 것도 같았다.그렇게 둘은 아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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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상준은 차우미 뒤에서 두 모녀가 포옹하는 것을 지켜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지만 자기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시선을 느끼고는 흠칫하며 눈을 들었다.차동수는 하선주의 뒤를 따라 입구로 왔는데 문이 열리자마자 차우미를 보았고, 이어서 딸의 뒤에 서 있는 나상준을 보았다.그는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깜짝 놀랐다.사위였던 나상준은 나씨 가문의 후손으로서 언제나 예의가 바르고 사려가 깊었다.나상준의 성격은 보통 사람과 달랐는데 말하기를 좋아하지 않고 잘 웃지도 않으며 내성적이어서 사람들이 잘 접근하지 못한다.차우미와 나상준이 결혼한 3년 동안 차동수도 사위 나상준과 몇 마디 해본 적이 없어서 여전히 낯설었다.차동수에게 나상준은 아주 훌륭하고 교양이 있는 젊은이였고 동시에 따뜻함도 인간미도 없는 사위이기도 했다.이런 사윗감은 좋다고 하기도 나쁘다고 하기도 애매했는데 차우미만 좋으면 그들은 의견이 없었다.그런데 두 사람이 이혼한 이유가 제3자 때문이라는 것이 제일 의외였다.차동수의 마음속에 나상준은 절대 교양이 없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일이 발생하고 나니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다만 나상준의 신분과 지위를 곰곰이 생각해 봤을 때 있을 법한 일이기도 했다.비록 부모 눈에 자신들의 자식이 제일이겠지만 차우미가 어느 정도인지는 그들도 똑똑히 알고 있었고 또 사람과 사람은 차이가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나상준과 같은 훌륭한 아이가 나씨 가문과 차씨 가문의 관계가 아니었다면 절대 차우미와의 결혼이 없었을 거라고 생각했다.만약 나상준이 차우미보다 훨씬 훌륭하다는 것을 처음부터 알았더라면 차동수는 절대 두 사람을 만나게 하지 않았을 건데 나중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그가 알았을 때는 이미 너무 늦었기에 운명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얼마 전에 차우미가 나상준과 이혼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마음이 아팠는데 동시에 다행이라고도 생각했다. 모든 사람이 그렇듯이 맞지 않으면 하루빨리 헤어지는 게 좋은 것이기 때문이다.그래서 하선주가 나상준을 못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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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우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아니야. 시간도 늦었고 아빠와 엄마는 이제 주무실 거야. 그러니 상준 씨도 일찍 돌아가서 쉬어.”안평에 오기 전에 나상준은 차은평과 소명진을 보러 온다고 했지, 차동수와 하선주도 만나겠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기에 차우미는 조금 놀랐다.하지만 그녀는 금방 나상준의 뜻을 이해했다.후배로서 예의상 부모님을 찾아뵙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고 안 가면 오히려 말이 안 되는 것이다.하지만 차우미는 나상준이 자기 집에 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는데 왜 그러는지는 나상준도 잘 알고 있었다.“가자.”차우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듯 나상준은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했다.나상준이 말을 마치자마자 차가 그와 차우미 앞에 멈춰 섰다.나상준은 몸을 옆으로 돌리고 뒷좌석의 차 문을 열어 차우미를 타라고 했다.차우미는 약간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오늘은 너무 늦었으니 다음에 가. 그리고 상준 씨는 일도 바쁠 텐데 얼른 가서 일해. 굳이 오늘 갈 필요 없으니 나중에 시간이 많을 때 가도 돼.”“지금 시간이 돼.”“...”차우미는 할 말을 잃었다.그녀가 싫어하는 것을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왜 굳이 가겠다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순간 차우미는 나상준의 깊은 눈동자를 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나상준은 차우미의 생각을 아예 모르는 듯 대답이 없는 차우미를 향해 말했다.“계속 이러고 있으면 시간이 더 늦어져.”차우미는 입술을 다시며 열려 있는 차 문을 보더니 잠깐 머뭇거리다가 올라탔다.나씨 가문에서 자란 나상준에게 예의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에 더 이상 말리지 않았다.차동수와 하선주가 나상준을 반가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가겠다고 하니 차우미는 포기했다.차우미가 차에 타자 나상준은 문을 닫고 다른 쪽으로 가서 차에 탔다.그들은 순식간에 청강 아파트를 떠났다.청강 아파트와 차동수가 살고 있는 아파트가 멀지 않았기에 십여 분이면 도착할 수 있었다.게다가 지금 시간은 교통이 막히지 않은 시간이고 도

  • 봄날   제954화

    차우미는 걸음을 멈추고 소명진의 손을 잡아주며 말했다.“할머니, 저는 괜찮아요. 상준 씨는 좋은 사람이고 아무 문제가 없어요. 저도 그렇고요. 저희는 그냥 맞지 않을 뿐이에요. 그러니 걱정하지 마세요.”소명진은 밤하늘을 바라보더니 평소와 같은 단순하고 깨끗하고 부드러운 얼굴이었지만 눈에는 걱정이 많았다.“알았어. 맞지 않으면 다시 찾으면 되지. 우리 손녀가 얼마나 훌륭한데, 꼭 잘 어울리는 사람을 찾을 수 있을 거야.”차우미가 웃으며 소명진을 끌어안더니 소명진의 등을 다독이며 말했다.“할머니, 저 꼭 행복할 거예요. 저만 믿으세요.”소명진도 웃었다.“그럼, 우리 우미는 꼭 행복할 거야.”차우미와 소명진은 밖에서 너무 오래 머무르지 않고 30분 정도 있다고 신선한 과일을 사 들고 집으로 돌아갔다.집에 들어서자마자 차우미는 거실의 분위기가 나갈 때와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차우미는 나상준과 차은평을 번갈아 보았는데 두 사람은 여전히 소파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지만, 표정은 모두 달라졌다.나상준의 표정은 여전히 기쁨과 분노를 알아볼 수 없었지만 차우미가 예민한 탓인지 그녀는 나상준이 조금 전과 너무 달라진 것 같았다.반면에 차은평은 표정에 명백한 변화가 있었는데 전처럼 웃는 모습이 아니고 근엄하고 위엄이 느껴졌다.차우미와 소명진이 나가자마자 그다지 좋지 않은 대화를 한 모양이다.차우미는 과일을 테이블에 놓으며 말했다.“할아버지, 할머니, 시간이 많이 늦었으니 이제 쉬셔야죠. 저희는 이만 갈게요. 나중에 시간이 되면 다시 또 뵈러 올게요.”현재의 시간은 노인들에게 있어서 늦은 시간이 확실하다.차운평은 찻잔을 내려놓고 고개를 끄덕였는데 조금 전의 엄숙한 표정은 차우미 집에 들어오는 순간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다시 인자한 얼굴로 변했다.“우리도 알아. 걱정하지 마. 너도 지금 금방 도착했으니 얼른 집에 가서 쉬어. 너의 부모도 너를 기다리고 있을 거잖아. 그런데 너 몇 달 못 본 사이에 야윈 것 같아.”매년 청주에서 새해를 맞이하고 차우

  • 봄날   제953화

    주변의 공기가 갑자기 응축되면서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른 것 같았다.차은평은 주전자를 들고 나상준을 바라보았는데 조금 전까지 보이던 후배에 대한 사랑은 온데간데없이 엄숙했다.나상준은 허리를 약간 굽혀 주전자를 받으려던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차은평의 진지한 말에 그는 동작을 멈추고 차은평과 눈을 마주치고 말했다.“네, 사실입니다.”대답을 들은 차은평의 표정은 엄숙하고 모르는 사람을 대하듯 낯설게 변했다.그와 동시에 나상준에게 차를 주려고 들었던 주전자를 거두고 테이블에 올려놓았다.나상준은 차은평의 행동에 놀라지 않고 다시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저와 우미가 이혼하게 된 건 제3자 때문이기도 하지만 전적으로 제 문제입니다. 하지만 결혼 3년 동안 절대 혼인 생활을 배신하는 일은 하지 않았어요. 저희 사이에 오해가 좀 있어요. 제3자는 저도 생각을 못 했던 부분이었습니다. 저의 실수입니다.”차은평은 찻주전자를 내려놓고 자기 찻잔을 들고 마셨다.나상준이 담담한 어조로 하는 말을 들으며 차은평은 잠깐 흠칫하고 눈빛이 흔들리더니 계속 차를 마셨다.그 모습은 나상준의 말을 들은 것 같기도 하고 듣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나상준은 조금은 당황한 표정으로 계속 말했다.“할아버지, 저는 우미와 다시 시작하고 싶습니다. 보상하려는 것도 죄책감도 아니고 나씨 가문과 차씨 가문의 관계 때문도 아닙니다. 오로지 우미와 이번 생을 함께 하고 싶습니다.”“...”차은평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차를 마시며 눈을 내리깔고 나상준의 말에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나상준은 말을 마치고 차은평을 바라보면서 무슨 말이라도 하기를 기다렸다.두 사람이 그렇게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거실은 다시 조용해졌다.차은평은 그렇게 나상준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모르는 듯 고요함을 만끽하며 차를 천천히 마셨다.손에 들고 있던 차를 절반 넘게 마시고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자, 차은평은 찻잔을 내려놓고 나상준을 바라보았는데 화는 조금 풀리고 미소가 살짝 보였다.하지만 그 미소는

  • 봄날   제952화

    청강 아파트는 도시 중심이 아닌 외곽에 자리잡고 있으며 입주한 지 2년밖에 안 되는 아파트인데 그 옆에는 강이 있고 그 맞은편에는 작은 산이 있다.때문에 청산녹수가 한눈에 보이고 경치가 너무 좋아 어르신들이 살기에 매우 적합한 곳인데 차우미의 조부모님들도 바로 이 아파트에 살고 있다.그들은 이제 백발노인이 되었지만, 아파트 앞에서 기분 좋게 오가는 차들을 보고 있었다.차가 멈추려 하자 노인들은 누구인지 궁금해서 차 쪽으로 보고 있었고 차 안에 있는 차우미도 밖에 있는 노인들을 바라보았다.차가 멈추자 차우미는 잽싸게 내려서 노인들에게로 다가가서 손을 잡고 말했다.“할머니, 여기까지 나와서 기다리지 않으셔도 되는데...”오늘 밤 차우미가 나상준과 함께 조부모님 뵈러 가는 것을 하선주는 싫어했지만, 그녀는 그래도 하선주와 통화를 마친 후 조부모님께 연락했었다.그리하여 그들이 아파트에 도착하기 전에 차우미는 할머니 소명진의 전화를 받고 도착 예정 시간을 얘기했다.그런데 이렇게 밖에 나와서 그들을 기다릴 줄은 생각도 못 했다.소명진은 차우미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괜찮아. 조금 전까지 산책하다가 마침 네가 올 시간이 되는 것 같아서 기다린 거야.”두 사람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소명진은 차에서 내려 차우미 옆에 서 있는 키가 큰 사람을 보았다.나상준이 말했다.“할머니, 안녕하세요.”소명진은 나상준을 향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차우미를 보고 말했다.“들어가자. 할아버지는 기다리다가 먼저 집에 들어갔어.”“네.”차우미는 소명진의 팔짱을 끼고 손을 잡고 계속 문질렀다.소명진은 차우미의 일과 생활에 관해 물었고 차우미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하나하나 대답했다.나상준은 한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차우미 옆에서 두 사람이 걷는 속도와 비슷한 페이스를 유지하며 걸었다.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그렇게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고 두 분이 사는 건물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 봄날   제951화

    “띵. 존경하는 여러분 안녕하세요. 우리 비행기는 15분 후에 안평 공항에 착륙할 예정입니다. 착륙 준비를 위해...”기내에서 항공 승무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차우미는 속눈썹을 움직이다가 멍한 표정으로 눈을 떴는데 기내의 희미한 조명과 윙윙거리는 비행기 소리가 들려왔다.그녀는 제대로 한잠을 잤다.무의식적으로 창밖을 바라보니 안평시의 불빛들이 깜빡였는데 밤하늘의 가득 채운 것이 은하수의 별빛처럼 아름다웠다.차우미는 일어나 앉아서 눈을 비볐다.나상준은 옆에 있는 차우미가 일어나면서 담요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고 잽싸게 손을 뻗어 담요를 잡아 다시 덮어주었다.차우미는 무언가 느끼고 고개를 숙였는데 관절이 명확한 손이 자기에게 담요를 덮어주고 있었다.“고마워”그리고 직접 담요를 가져다가 덮었다.담요를 정리하고 차우미는 자연스럽게 하품하며 계속해서 창문으로 점점 가까워지는 도시를 바라보았다.목적지에 가까워지면서 비행기는 점차 하강했는데 익숙한 도시, 고향이 가까워지자, 차우미는 자연스럽게 미소를 지었다.드디어 돌아오게 되어 그녀는 행복했다.나상준은 미소를 짓고 있는 차우미의 옆 모습을 바라보았는데 눈에 빛이 반짝거렸고 또 하품으로 인해 살짝 촉촉했다.눈빛에서 나상준은 차우미가 고향으로 돌아와서 너무 행복해하는 것을 느꼈다.어느덧 시간이 흘러 비행기는 유유히 안평 공항에 순조롭게 착륙했다.기내는 어느새 등이 전부 켜졌고 승무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차우미는 안전벨트를 풀고 가방을 챙겨 일어섰는데 도로 옆에 앉은 나상준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그녀의 가방을 들고 먼저 나갔다.차우미는 하는 수 없이 나상준의 뒤를 따라 기내에서 나갔다.두 사람은 여전히 VIP 통로로 아무 막힘없이 일사천리로 몇 분 만에 공항을 나왔다.차는 이미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기사는 차우미와 나상준이 나오는 것을 보고 즉시 짐을 받아 트렁크에 넣었다.나상준은 뒷좌석의 차 문을 열어 차우미에게 먼저 타라고 했다.차우미는 사양하지 않고 올라가서 안쪽으로 앉

  • 봄날   제950화

    진문숙은 마음이 어찌 조급했는지 가능하다면 올해에 결혼식까지 치르고 싶었다.파티에서 사람들은 서로 잘 아는 사람들과 모여 앉아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며 우아한 음악 선율에 맞춰 각자의 생각과 행복, 그리고 걱정들을 이야기했다....성북동 별장에서.주혜민은 운전해서 별장을 떠난 후 액셀러레이터를 세게 밟고 큰 도로로 빠르게 달렸다.그날 밤, 그녀는 나상준의 냉정한 눈빛이 너무 두려워서 가까이 다가갈 엄두를 내지 못했고 당황했다.주혜민은 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해 봤지만, 도저히 나상준과 가까이할 수 없었다.그래서 고민 끝에 문지영을 만나서 상황을 얘기하려고 했다.비록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문지영과 친해지면 그것 또한 자기에게 유리할 거라고 믿었다.그런데 주혜민이 문지영이 집에 있을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방문했는데 결국 집에 없었다. 그리고 그녀는 가정부의 말에서 문지영이 자신을 만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왜 나를 안 만나려고 하는 거지?’주혜민은 설마 나상준이 다른 여자를 데리고 문지영을 만났고 또 문지영은 그 사람이 마음에 들었는지 궁금했다.그녀는 문지영의 성격을 잘 아는데 절대 아무에게나 마음을 주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그런데 이제 며칠도 되지 않았는데 문지영이 자기를 만나주지 않는다는 건 그 이유 외 다른 건 없다고 생각했다.이제 문지영이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여자가 자신을 이겼다는 생각에 화가 났다.‘절대 안 돼!’주혜민은 지금 상황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녀는 상대가 자기보다 조건이 좋든 안 좋든 절대 나상준을 포기할 수 없었다.3년을 기다려서 겨우 기회가 왔는데 다시는 나상준을 다른 여자에게 뺏기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핸들을 꽉 잡고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았다.그러자 기다란 브레이크 소리가 깊은 밤에 울려 퍼졌다.차를 길옆에 주차하고 주혜민은 분노로 가득 찬 눈으로 앞을 바라보았는데 눈빛에는 분노가 활활 타올랐다.그녀는 더 이상 시간

  • 봄날   제949화

    문지영도 멀지 않은 곳에서 들리는 편안하고 기분 좋은 웃음소리를 들으며 시선을 돌렸는데 한 번에 몇몇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아봤다.거의 모두 만나봤던 사람들인데 그중에 온씨 가문의 진문숙도 있었다.문지영은 친구 사귀는 걸 좋아하지 않는 사람인데 특별히 필요가 있을 때만이 그 필요한 사람과 가까워지려 한다. 예를 들어 지금의 서혜란처럼 말이다.예를 들어 온씨 가문의 진문숙과는 거의 왕래가 없었는데 평소에 가끔 만나면 간단하게 웃으면서 인사만 하는 사이였다.서혜란의 말에 문지영은 궁금해서 물었다.“결혼식이라니? 어느 가문에 결혼식이 있을 것 같아?”문지영 나이대의 사람들은 자식들의 나이가 모두 나상준과 비슷했는데 거의 모두 결혼해서 아이까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게다가 최근에 어느 가문의 자식이 약혼하고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없었다.서혜란은 문지영을 보더니 턱으로 진문숙의 방향을 가리키며 말했다.“저기 가운데 있는 온씨 가문의 며느리 진문숙 씨 알지?”문지영은 진문숙 방향으로 보았는데 거기에는 3~4명이 있었는데 진문숙에 가운데서 제일 기쁘게 웃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무슨 경사가 있는 듯싶었다.문지영이 잠깐 생각하더니 무언가 떠오른 듯 말했다.“온씨 가문의 아들은 해외에서 무슨 연구를 하는데 괜찮다고 들었어.”예로부터 사람들은 훌륭한 아이와 나쁜 아이들에 대한 인상이 깊게 남는다.“맞아. 온씨 가문의 아들은 모두가 좋다고 해. 최근에 들었는데 그 아들이 좋아하는 아이가 있다고 해. 성격이 조용하고 가문도 좋으며 진문숙 씨도 보고 엄청 마음에 들었나 봐.”문지영이 그제야 이해했다.그들과 같은 가문에서는 며느리를 볼 때 아들만 좋아한다고 되는 거 아니고 가문 어른들의 동의도 받아야 하는데 만약 어른들이 동의하지 않으면 절대 불가능했다.그런데 서혜란이 진문숙도 만나보고 만족한다고 하니 아마도 성사될 거라고 생각했다.“그럼, 잘된 일이군.”말은 그렇게 했지만, 문지영은 마음속으로 조금 다급했다.주변의 많은 아이들은 모두 결혼

  • 봄날   제948화

    어떤 일은 당사자가 눈치채기 전에 잘못 말하면 미움을 사는 일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그 뒤에 주씨 가문에 일이 발생하고부터 문지영은 서혜란과 가까이 지냈는데 그녀를 통해서 더 많은 아기씨를 요해하고 직접 며느리를 고르고 싶었다.그때 서혜란은 마음속으로 기뻐했고 문지영이 장님은 아니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혜란은 주혜민의 나쁜 말은 하지 않고 자기가 알고 있는 아가씨들에 대해서만 문지영에게 알려주고 문지영이 직접 만나보고, 조사하고 고려하게 했다.비록 주혜민은 좋아하지 않지만, 서혜란은 나상준을 높이 평가했다.서혜란이 봤을 때 나상준은 능력이 있고 대담하고 용감하며 신중하게 일 처리 하는 모습에 호감을 느꼈다.하지만 결혼은 서로 맞아야 하는 것을 알고 있기에 비록 자기 가문에 나이와 조건이 비슷한 소녀를 나상준에게 소개해 주려고 골라봤지만, 도저히 찾을 수 없어서 포기했다.사람은 자신의 상황을 잘 알아야 한다.사람과 사람이 이어지려면 서로 맞아야 한다.서혜란은 모든 일을 한 번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본다.때문에 문지영이 며느리를 찾는 문제에서 그녀는 특별히 신경을 써서 모두 나상준과 잘 어울릴만한 아가씨들만 문지영에게 말했다.이제 남은 건 나상준의 마음에 달렸는데 그는 아무나 쉽게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다.문지영이 주혜민을 얘기하는 것을 듣더니 서혜란은 곧바로 문지영이 이제 주혜민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주혜민은 정말로 며느리로 적합하지 않았기에 서혜란도 그냥 준다고 해도 거부할 것이다.“그 아이가 상준이를 많이 좋아하나 봐요.”서혜란은 여전히 주혜민에 대한 나쁜 말은 하지 않고 이해한다는 듯이 말했다.주혜민과 나상준에 대한 소문은 서혜란도 들었지만 믿지 않았다.나씨 가문의 나상준이 만약 정말로 주혜민을 좋아한다면 절대 다른 사람과 결혼하지 않았을 거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게다가 주혜민이 어떤 사람인지 나상준이 모를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때문에 나상준이 주혜민을 선택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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