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하기 그지없는 여인을 쳐다보며 도범은 식은땀을 흘렸다.상대방이 먼저 놀리듯이 그들을 아저씨라고 불렀으니 그도 농담처럼 아주머니라고 부른 거였는데, 여인이 이토록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심지어 그를 발로 찰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여인이 신은 하이힐 앞쪽은 엄청 뾰족해 만약 정말 그 뾰족한 부분에 맞게 된다면 큰일이 날 게 분명했다.그래서 여인의 발이 그의 몸에 닿으려던 찰나, 도범은 바로 몸을 굽혀 한 손으로 여인의 발목을 잡고 앞으로 살짝 당겼다."아!"여인은 똑바로 서지도 못하고 앞으로 엎어졌다. 그리고 다른 한 발도 덩달아 비틀거리더니 하이힐 굽이 부러지고 말았다."놔, 이 개자식아!"도범의 품으로 넘어진 여인은 얼굴이 순간 빨갛게 달아올라서는 갑자기 도범을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도범은 그제야 여인을 놔주면서 말했다."아가씨, 이건 단지 아가씨에게 주는 작은 교훈이야. 아가씨 하이힐 앞부분이 너무 뾰족하니 앞으로 함부로 사람을 차는 데에 쓰지는 마.""나쁜 자식아, 너 내가 누군지 알아? 난 영씨 가문의 사람이야. 이따가 우리 아빠가 경호원을 데리고 날 데리러 올 거야. 네가 감히 나한테 손을 대? 너 오늘 제대로 죽었어!"영송이 팔짱을 낀 채 도범을 바라보며 화난 어투로 말했다. 여전히 오만하기 그지없는 태도였다."그래? 그럼 데리러 오라 그래, 우린 다른 일이 있어서 먼저 갈게."도범이 웃으며 더는 영송을 상대하기 귀찮아 자리를 뜨려 했다.그런데 바로 이때, 멀지 않은 곳에서 한 젊은 남성이 손에 꽃을 들고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뒤에는 십여 명의 경호원이 따르고 있었다.늘 껌딱지처럼 자신을 귀찮게 하던 재벌 2세를 보자마자 영송의 표정이 순간 안 좋아졌다."뭐야, 저 녀석이 왜 온 거지?"그러다 갑자기 무엇이 생각났는지 바로 신발을 벗고 트렁크 끌고 앞으로 쫓아갔다. 그러고는 뒤에서 한 손으로 도범의 팔을 껴안고, 머리를 도범의 어깨에 기대고 말했다."몰라. 흥, 네가 방금 내 다리를 만졌으니, 난 앞으로 너의 여
영송이 이를 악물었다. 그러다 씩씩거리며 그들 쪽으로 걸어오고 있는 남자를 보더니 다시 웃으며 말했다."누가 후회했다고 그래? 나 영송은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어. 넌 너의 이름을 나에게 알려 줄 담이 있어?""도범."도범이 냉담하게 웃으며 말했다."난 누구보다도 떳떳한 사람이야, 알려주지 못할 것도 없지.""그럼 됐어."영송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고는 그들 쪽으로 다가온 남자를 향해 입을 열었다."헤헤, 최 도련님, 오랜만이에요! 여긴 어쩐 일로 오셨어요? 누굴 마중하러 온 거예요?"두 사람의 친밀한 모습에 최 도련님은 입가가 심하게 떨렸다.그러다 얼굴색이 어두워져서는 영송을 바라보며 물었다."영송, 이 자식이 누구야? 넌 내 약혼녀라는 걸 잊지 마. 우린 곧 결혼할 사이라고! 내가 누굴 데리러 왔는지, 너 설마 진짜 몰라?"옆에 있던 도범이 듣더니 순간 진땀을 흘렸다. 눈앞의 남자가 영송의 약혼남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하지만 상황을 보아하니 어른들이 주선한 혼사인 것 같고, 영송은 별로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그를 이용해 약혼남을 돌려보내고 싶었던 것일 거고."최 도련님, 아직도 모르겠어요? 우리 둘 사이의 혼약은 단지 저의 할아버지와 도련님의 할아버지 사이의 약속일 뿐, 우리 둘은 전혀 맞지 않다고요."영송은 다소 짜증이 묻은 어투로 상대방을 보며 말했다."이분은 제 남자친구 도범이에요. 우리가 함께 한 지 거의 1~2년이 되어가거든요, 그러니까 그냥 단념하세요. 전에는 도련님의 자존심에 타격을 줄까 봐, 또 도련님의 체면을 세워주기 위해서 말하지 않았는데, 오늘 마침 이렇게 만났으니 앞으로는 저한테 집착하지 말아 주세요."그러다 잠시 멈추더니 다시 말을 이어갔다."하지만 제 잘못이 큰 거 같으니까, 도련님에게 20억을 보상으로 드릴게요.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하기에 너무 적은 액수는 아니죠? 그리고 어차피 도련님의 곁엔 여인이 끊긴 적이 없었잖아요. 듣자니 곁에는 늘 미인들이 동반한다던데, 왜 꼭 저와
도범이 듣더니 순간 할 말을 잃었다.‘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 거지?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이런 일에 말려들다니.’그는 단지 이 여인을 도와 남자친구인 척하고 상대방을 쫓아내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그런데 지금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키스까지 하라니? 게다가 안 하면 절대 안 믿는다고?그것도 그럴 것이, 영송이 줄곧 남자친구가 없었는데 갑자기 ‘남자친구’라는 사람이 나타났으니, 그가 최무신이었어도 믿기 어려웠을 것이다.최무신의 말에 영송은 얼굴이 다시 빨개졌다. 게다가 눈썹도 찌푸리고 있는 게 많이 난감해하는 모양이었다.하지만 도범이 이미 그녀의 허리를 껴안았고, 제대로 희롱을 당한 판에 이제와서 도범이 자기 남자친구가 아니라고 인정한다면 그녀만 큰 손해를 보는 셈이 될 것이다. 줄곧 체면을 제일 중히 여겼던 그녀는 지금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빠지게 되었다.영송이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자 최무신이 바로 웃음을 터뜨렸다."허, 왜, 내 말이 맞았지? 영송, 넌 나를 속일 수 없어. 나 최무신이 그렇게 쉽게 당할 사람이 아니라고.""우리가 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단지 지금 여기에 보는 사람이 너무 많아 하기 불편할 뿐이야."그런데 이때, 도범이 담담하게 웃으며 영송을 꼭 껴안았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영송을 바라보며 말했다."게다가 송이가 지금 오랜 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서 많이 피곤해진 상태야. 그러니 일단 먼저 호텔을 찾아 밥 먹고 휴식을 취하도록 하자고. 그리고 정을 나누는 일은 아무래도 저녁에 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영송이 듣더니 얼굴이 더욱 빨개졌다. 바로 눈앞에서 보니 도범이 확실히 잘 생겼다는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지금 두 사람의 거리는 엄청 가깝고, 도범이 또 영송의 허리를 껴안고 있으니, 영송의 심장이 왠지 제멋대로 콩닥콩닥 뛰고 있는 것 같았다.도범의 뒤에 서서 그 장면을 목격하고 있던 장진은 마음이 시큰거려 났다. 이 순간만큼은 영송이 너무 부러웠다. 연기라도 좋으니, 도범의 품에 서 있는
"미안하지만 난 말 두세마디에 쉽게 넘어가는 사람이 아니야. 이 녀석이 내 약혼녀랑 잤으니 난 오늘 반드시 이 녀석을 죽일 거야."최무신은 핏발이 가득 선 눈으로 영송을 노려보며 말했다."영송, 네가 감히 이렇게 거리낌 없이 다른 남자를 찾는 걸 보면 아무래도 내가 예전에 너한테 너무 잘해준 거 같아. 난 너희영씨 가문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거든? 잊지 마. 난 이류 세가의 사람이고, 너희 영씨 가문은 겨우 삼류 세가에 드는 가문이라는 걸. 감히 나한테 어쩔 건데?""미, 미안해.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영송은 순간 두려워 났다. 그 모습을 보아하니 이미 상대방에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다 털어놓을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그런데 의외로 도범이 웃으며 말했다."괜찮아, 저 자식에게만 경호원이 있는 거 아니야, 나에게도 경호원이 있거든."한우현과 장진이 듣더니 바로 나서서 말했다."너희들, 죽고 싶어? 감히 우리 도련님의 미움을 사?"맞은편에 있던 경호원들은 하나같이 멍해졌다. 줄곧 뒤에만 서 있던 두 사람이 도범의 경호원일 줄은 생각지도 못한 듯했다. 게다가 ‘도련님’이라고 부른 걸 보면 설마 어느 가문의 도련님이라도 되는 건가?미움을 사지 말아야 할 사람에게 미움을 살까 봐 경호원들은 하나같이 최무신을 바라보았다."도련님?"최무신도 그 호칭에 순간 멍해졌지만 바로 냉담하게 웃었다."허, 녀석. 너무 잘난 척하는 거 아니야? 누구한테 겁주려고 그러는 거야? 나 이 촉성에서 도씨 성을 가진 부잣집 도련님을 한 번도 본 적이 없거든? 게다가 일류 세가가 그 몇 가문밖에 안 되는데, 뭐가 두려워? 아무리 부자라 해도 기껏해야 일반 부잣집 도련님일 거니까, 다들 덮쳐!""도련님 말씀이 맞는 것 같습니다. 이 녀석이 영씨 가문의 가주가 올 때까지 시간을 끌려고 하는 게 분명합니다."한 경호원이 차갑게 웃으며 주먹을 쥐고는 바로 앞에 있는 한우현을 향해 공격을 날렸다.뻥뻥뻥-한우현과 장진이 눈길을 마주쳤다. 두 사람의 눈
"너 이 자식, 딱 기다려!"최무신은 속으로 너무 화가 났다. 이류 세가의 큰 도련님으로서 약혼녀가 다른 사람에게 빼앗긴 것도 모자라, 다시 빼앗아 오기는커녕 되려 상대방에게 위협을 당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하지만 계속 남아 있어봤자 좋은 결말이 없을 거라는 걸 아니까, 이를 악문 채 경호원과 함께 그곳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후!”최무신이 떠난 후에야 영송이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저 자식, 다시는 나를 귀찮게 하지 않을 거야! 오늘 정말 고마웠어!"도범은 진작에 영송을 놓아주었다. 그러고는 영송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방금 내가 너에게 아주 큰 도움을 준 셈이긴 하지. 최무신의 표정을 봐서는 아마 나를 엄청 미워할 것 같던데. 하지만 상관없어, 난 두렵지 않으니까."그러다 잠시 생각하더니 다시 말을 이어갔다."내가 이렇게 큰 골칫거리를 해결해 줬는데, 어떻게 나에게 감사를 표할 거야?""뭐......"방금 전까지만 해도 도범이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바로 그녀한테서 이득을 챙기려 하자, 영송은 순간 화가 다시 치밀어 올랐다.그러다 도범을 보면서 갑자기 무엇이 생각났는지 입을 열었다."나쁜 놈! 너 설마 진짜 나를 호텔로 데리고 가고 싶은 거야? 내가 분명히 말하는데, 방금은 나도 급한 나머지, 어쩔 수 없어서 그런 연기를 하기로 택했던 거야. 그러니 내 몸에 손댈 생각은 절대 하지마! 나 영송은 그렇게 함부로 사는 여자가 아니야!""허, 함부로 사는 여자가 아닌데 내 여자친구로 사칭을 해?"도범이 듣더니 재밋거리를 구경하는 듯한 웃음을 드러냈다.영송은 딱 봐도 그보다 몇 살 정도는 어려 보이는 게, 소녀 소녀하면서도 부잣집 아가씨들한테서만 볼 수 있는 도도함이 묻어나 있었다.게다가 몸매도 괜찮은 축이었으니, 최무신처럼 집에 돈도 있고 권세도 있는 재벌 2세가 눈독을 들이지 않는 게 더욱 이상할 법했다.반대로 영송이 만약 아주 평범하거나 아주 못생겼다면 최무신이 무조건 일방적으로 혼약을 파기했을 것이
도범이 듣더니 진땀을 흘리며 쓴웃음을 지었다."이봐, 아가씨. 설마 정말 내가 그쪽을 욕심내 할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겠지? 그쪽이 비록 이쁘게 생기긴 했지만, 난 그쪽에게 아무런 관심도 없으니까, 그런 말도 안 되는 착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누가 착각을 했다고 그래? 착각한 건 그쪽이고. 아까 그쪽이 내 허리를 껴안은 것 때문에 아직도 온몸이 불편하다고!"영송은 치밀어 오르는 화를 억누를 수가 없었다. 촉성의 보기 드문 미녀 부류에 속하고 있는 그녀는 얼마나 많은 도련님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지 모를 정도인데, 도범이 그녀에게 전혀 관심이 없다니? 영송의 자존심이 순간 큰 타격을 받았다.하지만 방금 도범이 그녀를 위해 최무신의 미움을 산 일을 생각하니 뭐라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하지만 그쪽이 알아보고 있는 물건에 대해 내가 알고 있어. 그럼 이렇게 해, 일단 먼저 저쪽에 가서 신발 두 켤레 사줘. 나의 신발을 이렇게 만들었으니, 배상은 해야 할 거 아니야? 그러고 나서 내가 당신들을 데리고 여러 약방을 돌아보는 거야, 어때?"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도범이 듣더니 갑자기 눈빛이 밝아졌다."하하, 그래 주면 좋지. 아무래도 우리는 이쪽에 대해 익숙하지 않으니까.”"하지만 부탁이 하나 더 있어. 내가 지금 신발도 안 신었는데 맨발로 공항 맞은편 큰 백화점까지 갈 수는 없잖아? 그러니까 날 백화점까지 업고 가. 당신의 성의를 표시해야지......"영송이 득의양양하게 웃으며 도도한 말투로 말했다."나...?"도범의 순식간에 어두워진 얼굴에 진땀이 흐르기 시작했다.그리고 도범의 표정에 영송이 눈썹을 찌푸리더니 씩씩거리며 말했다."그게 뭔 표정이야? 얼마나 많은 사람이 나를 업고 싶어도 기회가 없는데! 왜 선심을 써서 기회를 줘도 이렇게 내키지 않는 표정을 짓고 있는 거지?""이분이 누구신지 알고 업으라고 강요하는 겁니까? 그쪽이 제명에 못 죽을 수도 있는데?"옆에 있던 장진이 더는 들어줄 수가 없어 말했다. 감히 장군인
얼마 지나지 않아 도범은 영송을 업고 비행장 밖의 큰 백화점에 도착했다.도범의 등에 업혀있는 영송의 얼굴은 어느새 빨개져 있었다. 도범의 몸에서 풍겨져 나오는 사나이의 강건한 기운이 그녀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쭉 그녀를 화나게만 했던 녀석이 그녀에게 이런 느낌을 줄 줄은 생각지도 못한 듯했다."나 많이 무거워?"영송이 한참 생각하더니 일부러 화제를 돌렸다."딱히?"이에 도범이 전혀 성의 없게 대답했다. 그러고는 바로 전방에 있는 한 신발가게로 들어갔다."참, 진짜 두 켤레 살 거야?""당연하지! 내 신발을 망가뜨렸으니, 두 배로 배상해야 한다는 거 몰라?"영송이 입을 삐죽 내밀고는 도도하게 말했다."그래, 두 배."도범이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뭐야, 언니! 남자친구가 생겼어?"그런데 이때, 두 사람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가계 안에서 신발을 신어보고 있던 한 소녀가 영송을 발견하고 놀라서는 눈을 크게 뜨고 달려왔다. "어서! 어서 날 내려줘!"영송은 순간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당장이라도 어딘가로 숨어버리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냥 도범한테 짖굳게 장난치려고 했을 뿐인데, 의외로 사촌 여동생을 이곳에서 만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그건 도범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바로 영송을 내려놓았다."언니, 이분이 바로 언니 남자친구야? 언니 참 보는 눈이 있다니까? 정말 잘생겼어. 보는 나도 탐날 정도로!"소녀가 다가와서는 위아래로 도범을 훑어보더니 히죽거리며 말했다."무슨 소리 하는 거야? 내 남자친구 아니야!"영송이 앞에 있는 소녀를 한번 노려보고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완이야, 정말 공교롭구나. 비행기에서 내린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너를 만나게 되다니.""그러게 말이야. 공교롭지 않았더라면 언니가 남자친구랑 이렇게 달콤하게 장난치고 있는 장면을 보지도 못했을 건데."완이가 싱글벙글 웃더니 "부정할 생각하지 마. 얼굴이 빨개진 거 내 눈으로 똑똑히 봤으니까."라고 한마디 덧붙였다."허튼소리 하지 말라니까, 완이야. 이
완이가 듣더니 순간 눈빛이 밝아졌다. 그러고는 앞으로 두 걸음다가가 맑은 눈동자로 도범을 바라보며 물었다."그럼 잘생긴 오빠분 아직 솔로인 거예요? 제 언니 남자친구가 아니라면 제 남자친구가 되는 건 어때요? 저 언니만큼 예쁘지는 않지만, 그래도 볼만 하잖아요? 게다가 저 아직 어려서 다 자라지 않았거든요. 2년만 더 지나면 제가 언니보다 더 예쁠 수도 있어요, 어때요?"완이의 말에 도범의 입가가 심하게 떨렸다. 18세 좌우밖에 안 되는 어린애한테서 고백을 받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심지어 오늘 처음 보는 사람인데.‘지금의 어린애들은 다 이렇게 주동적인 건가?’"꼬마야, 장난치지 마. 난 단지 이쪽에 볼일이 있어 온 것뿐이지, 촉성 사람이 아니야. 마침 네 사촌 언니의 도움이 필요하기도 하고."도범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으며 대답했다.이에 완이가 불쾌해서는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재미없어! 나 같은 미인이 고백하는데 거절하다니. 정말 눈치 없는 남자라니까.""어서 네 신발이나 마저 골라."완이가 거절당하는 모습에 영송은 왠지 모르게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러고는 신발 고르러 갔다.그러다 두 켤레를 고른 후 도범을 향해 물었다."야, 도범. 내가 고른 이 두 신발이 엄청 비싸거든? 두 켤레를 합치면 몇백만은 할 건데, 그만한 돈이 없는 건 아니겠지?""이분 것도 같이 계산해 주세요. 카드로 결제할게요."도범이 듣더니 웃으며 옆에 서 있는 완이를 한번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바로 카드를 점원에게 건네주었다."네, 고객님!"점원이 손 큰 부자를 만났다는 생각에 순간 흥분해져서는 계산하러 달려갔다."와우, 잘생긴 오빠 역시 손도 크다니까요. 난 오빠처럼 쿨한 남자가 좋은데, 정말 나 같은 어린 여자랑 연애할 생각 없어요? 새로운 느낌을 줄 수도 있는데?"자기의 신발 값도 같이 지불해 준 도범의 모습에 완이가 히죽거리며 다시 물었다."완이야, 너 이제 몇 살인데 벌써 그런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정말 몰라봤네? 예전엔
“풍린수의 가장 큰 약점은 지능이 낮다는 거야. 이들은 그렇게 많은 꾀를 부리지 않기 때문에 무사들이 조금만 머리를 쓰면, 버티기만 해도 풍린수를 처치할 수 있지.”삼각눈의 남자는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혹시 구록종이 무슨 종문인지조차 모르는 건 아니겠지? 방금 구록종을 언급했을 때, 네 표정이 어찌나 비웃음이 깃든지 말이야. 중주에 어떤 강력한 종문들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거 아니야? 넌 정말 중주 출신이 맞긴 한 거냐?”이 일련의 의심에 삼각눈을 가진 남자는 점점 오수경을 변두리에서 나온 우물 안 개구리라 여겼다. 그렇지 않다면 그런 말을 할 리 없었다. 오수경은 무심코 입꼬리가 바들바들 떨렸다. 이제야 도범이 왜 침묵을 즐기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이들과 다투는 것은 시간 낭비일 뿐이었다. 애초에 오수경은 이들과 말다툼을 할 생각조차 없었지만, 이제는 이들이 오수경을 끝없이 몰아붙이고 있었다.오수경은 인상을 찌푸린채 말했다.“물론 구록종은 중주 7품 종문 중 하나로, 그중에서도 손꼽히는 강자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그러자 삼각눈을 가진 남자는 오수경의 말을 듣고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그런데 왜 내가 구록종을 언급했을 때, 네 얼굴에는 비웃음이 서린 거냐?”오수경은 미간을 찌푸린채 되묻고 싶었다.‘네가 어떻게 내 얼굴 표정을 그렇게 자세히 본 거야? 난 내 얼굴에 어떤 표정이 있는지도 몰라.’이 삼각눈을 가진 남자는 모든 걸 알고 있는 듯했다.오수경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목소리를 높여 이들과 싸우려는 순간, 도범이 오수경을 막았다. 그러자 도범이 일부러 목소리를 낮추지 않고 말했다.“이 사람들과 싸워서 뭐하겠어? 저들과 싸우는 건 네 시간만 낭비하는 거야. 이들은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야.”이 말에 주위는 순간 조용해졌다. 도범은 지금까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아 사람들이 도범을 허세 부리지 않는 사람으로 생각했으나, 도범의 말은 그들의 예상과는 완전히 달랐다.오수경도 이미 충분히 오만했지만
“역시 숲이 크면 별의별 새가 다 있는 법이지. 거울이라도 보고,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알아봐야 할 텐데, 감히 그런 말을 하다니.”그 중 한 명이 손가락으로 앞쪽에 서 있는 흰 옷을 입은 사람을 가리키며 말했다.“저기 흰옷 입은 사람 보이지? 저 사람은 구록종 출신으로 친전 제자야. 그런데도 30분이 되서야 겨우 수정구를 파란색으로 바꿨다구! 방금 그렇게 큰소리쳤으니, 네 옆에 있는 이 친구가 첫 번째 관문을 통과해서 보라색 수정구를 파란색으로 바꾸는 데 얼마나 걸리는지 한 번 볼까?”다른 사람도 거들며 말했다.“그래, 말 좀해봐. 네가 그렇게 치켜세운 저 친구가 보라색에서 파란색으로 바꾸는 데 얼마나 걸릴 것 같아?”주변 사람들은 이 상황을 재미있어하며 오수경을 계속 몰아세웠다. 그들은 오수경에게 도범이 첫 번째 관문을 통과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말하라고 강요하며, 주변 사람들이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까지 구체적으로 언급했다.이들 대부분은 6품 종문이나 자유 무사 출신으로, 첫 번째 관문을 통과하는 데 최소 4시간이 걸렸다. 출신이 뛰어난 천재들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처음에는 오수경이 이들과 대화할 생각이 전혀 없어서 입을 꾹 다물고 인상을 쓰며 침묵을 지켰다. 그러나 이들은 끈질기게 질문을 던지며 진실을 밝히지 않으면 물러서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오수경은 도범에게 도움을 구하는 눈빛을 보냈지만, 도범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네가 만든 일이니 네가 해결해.”도범은 오수경이 이미 여러 번 경솔하게 발언해 문제를 일으킨 적이 있기 때문에, 매번 오수경의 뒤처리를 해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오수경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고, 계속되는 질문에 결국 고개를 들어 크게 말했다.“저 사람들이 30분이 걸린다면, 도범 오빠는 15분이면 충분해!”오수경은 어차피 모든 것을 걸고 말하기로 했다. 이 사람들은 정말 짜증나는 존재들이었기 때문이다. 오수경의 말이 끝나자마자, 주위 사람들은 오수경의 말에 반
두 마리의 풍린수를 처치하면 수정구는 파란색에서 청색으로 변하게 된다. 그때 무사는 몇 배나 강력해진 풍린수와 마주하게 되며, 이 마지막 풍린수를 처치해야만 4층을 통과하여 5층에 진입할 자격을 얻게 된다.도범의 설명을 들은 오수경은 미간을 찌푸린채 되물었다.“그러니까 4층은 사실 세 단계로 나뉜다는 말이지? 수정구의 색이 변할 때마다 단계를 하나씩 통과하는 거야. 총 세 가지 색이 있는 셈이니까, 5층으로 가려면 세 번을 모두 통과해야 하네.”도범은 고개를 끄덕였고, 오수경은 손가락을 꼽아가며 말했다.“즉, 네 마리의 풍린수를 상대해야 한다는 거지. 첫 번째 풍린수는 상대적으로 약하고, 두 번째와 세 번째 풍린수는 좀 더 강해지지만, 가장 강력한 풍린수는 마지막 한 마리라는 거군. 이 마지막 풍린수를 처치해야 비로소 통과가 완료되는 거네.”도범은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오수경의 정리가 꽤나 명확했다. 오수경은 5층으로 순조롭게 진입하려면 이 절차를 그대로 따라야 한다. 네 마리의 풍린수를 모두 처치해야만 5층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오수경은 웃으며 말했다.“4층은 도범 오빠에게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겠네. 그 무슨 풍린수라는 것도 결국 선천 후기에 불과하니까 말이야.”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도범이 답하기도 전에 주위의 사람들이 참지 못하고 들고 일어섰다. 그들이 일부러 사람이 적은 곳을 선택하긴 했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오수경의 말이 크게 들리자 주변 사람들이 주의를 기울이게 된 것이다.이때, 눈이 삼각형 모양인 한 사내가 오수경의 말을 듣고 냉소를 터뜨렸다.“너는 저 녀석의 부속인이겠지? 어디서 그런 배짱을 얻었길래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거냐? 마치 4층이 이 어린 녀석에게는 쉬운 일인 것처럼.”그러자 삼각눈 사내 옆에 서 있던 백색 옷을 입은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저 사람은 말이 너무 과장된 것 같아. 풍린수가 얼마나 상대하기 어려운 상대인지 전혀 모르는 것 같은데, 그냥 입만 뻐끔했
도범은 한숨을 내쉰 후 다시 입을 열었다.“네가 오양수와 대결할 때, 나는 곽치홍이 너희 두 사람의 싸움을 계속 지켜보는 것을 발견했어. 그래서 곽치홍을 주시하고 있었는데, 나중에 곽치홍도 내가 본인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지. 하지만 내가 너무 멀리 있어서 곽치홍의 표정을 자세히 볼 수 없었어. 그런데 곽치홍이 나를 쳐다볼 때, 마치 독사에게 주시당하는 느낌이 들었어. 네가 전에 말했던 게 맞아, 곽치홍은 분명 우리에게 적대감을 품고 있어.”도범은 고개를 끄덕였다. 곽치홍이 등장한 이후로, 온갖 의문들이 곽치홍의 마음속에 떠올랐다. 이전에 장로들이 했던 말은 전부 믿을 수 없었고, 이 안에 더 큰 비밀이 숨어 있을 게 틀림없었다.도범이 숨을 고르고 막 입을 열려던 순간, 오수경이 먼저 말했다.“네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 나를 위로하려고 하지 마, 이제 다 이해했어. 내가 전에 했던 충동적인 행동들이 너에게 폐를 끼쳤다는 걸 알아. 앞으로는 항상 이 점을 명심하고, 더 이상 너에게 폐를 끼치지 않을 거야.”오수경의 이 말을 듣고 나니 도범은 한결 마음이 놓였다. 오수경은 단순한 순진한 바보였고, 팔 다리는 튼튼하지만 머리는 물에 잠긴 것 같아 항상 충동에 휘둘렸다. 하지만 이번 일을 겪고 나서 오수경도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그렇게 말하고 나서 오수경은 마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편안해졌다. 두 사람은 함께 4층으로 발을 내디뎠다.그곳은 희미한 빛으로 덮인 광활한 초원이었다. 초원 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는데, 대부분은 풀밭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손에 든 수정구를 받쳐 들고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을 감고 명상하는 것처럼 보였고, 소수의 사람들은 낮은 목소리로 무엇인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분위기는 침묵과 압박감이 공존했다. 누군가가 이야기를 한다 해도 일부러 목소리를 낮췄다. 여기가 바로 천엽7현탑의 4층이었으며, 겉보기에는 환상 세계와도 같았다.오수경은 눈을 깜빡이며 도범의 손에 들린 보라색 수정구를 한 번
이 말을 들은 오수경은 고개를 저으며 완강히 거부했다.“나는 3층에 남고 싶지 않아. 도범 오빠가 4층을 돌파하면, 분명히 5층도 갈 거잖아. 천엽 7현대는 총 7층인데, 도범 오빠가 7층까지 돌파할 수도 있잖아? 그럼 도범 오빠는 다른 곳으로 바로 전송될지도 모르는데, 그러면 나 혼자 3층에 남게 되잖아. 그땐 난 어떻게 해야 하지?”도범은 오수경의 말을 듣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수경의 걱정도 일리가 있었다. 만약 도범이 정말 7층까지 한 번에 돌파한다면, 천엽 7현대는 자신을 완벽한 도전자로 간주할 가능성이 높았고, 보상을 주고 다른 곳으로 전송할 수도 있었다.그렇게 되면 오수경을 홀로 남겨두게 되는데, 도범과 다시 만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여러 가지로 생각한 끝에, 도범은 여전히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한편, 오수경은 도범이 망설이는 모습을 보고 조급해졌다. 오수경은 도범의 팔을 잡으며 간절히 말했다.“난 도범 오빠의 인맥으로 천엽성에 들어온 거야. 인맥으로 들어온 만큼, 나는 어떠한 도전도 직면하지 않을 거고, 그저 도범 오빠만 따라가면 계속 위로 올라갈 수 있어. 어떤 위험이 닥치더라도, 나는 절대 혼자서 떠나지 않을 거야. 정말 운 나쁘게 여기서 죽더라도, 제가 감수해야 할 일이니까.”오수경의 이 말은 진심이었다. 도범을 처음 만난 이후, 오수경은 자신의 인생이 위험과 맞물려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건 자신이 바꿀 수 없는 일이었다.다른 것은 판단할 수 없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도범은 매우 신뢰할 만한 사람이었고, 그 뒤를 따라가야만 생존의 가능성을 얻을 수 있었다. 오수경은 이곳에서의 2년을 버텨내어 바라문 세계를 떠나, 자금단방으로 돌아가 다시는 나오지 않기를 바랐다.도범은 오수경의 결심을 확인하자,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함께 걸음을 옮겨 4층의 입구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모두가 다소 망설이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미래의 운명을 예측할 수 없기에 그들
도범은 냉소를 띠며 말했다.“전 당신과 싸울 생각 없어요. 다만 한 가지 중요한 일을 잊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나게 해주러 왔을 뿐이죠.”도범의 말에 민경운은 순간 얼어붙었다. 민경운은 잠시 고민하며 무슨 의미인지 되새겼고, 이내 도범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깨달았다. 바로 얼마 전 자신과 도범 사이에 벌어진 내기 때문이었다.그 순간, 민경운의 가슴은 마치 여러 개의 큰 돌이 짓누르는 듯 답답해졌다. 그러나 민경운은 이를 갈며 분노를 삼켰다. 애초에 민경운은 도범이 절대로 이번 대결에서 이길 수 없을 것이라 확신하고 내기를 걸었던 것이다.민경운은 도범이 처참하게 패배할 것이라 생각했고, 자신의 손에 들어올 19만 영정을 기대했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하게 결과는 정반대였다. 도범이 승리한 것이다.이때, 도범은 손을 내밀며 말했다.“빨리 돈을 내세요. 저도 할 일이 있거든요. 그러니 제 시간 뺏지 마세요. 원래 9만 개의 영정으로 내기를 시작했는데, 본인이 10만 개를 더 얹어 19만 개의 영정으로 만든 거잖아요. 그러니 빨리 결제해요.”도범의 이 말에 민경운은 가슴이 터질 듯했다. 상황은 정말로 도범이 말한 대로였다. 도범은 9만 개의 영정으로 내기를 제안했고, 민경운은 도범이 분명히 패배할 것이라 생각하여 곧바로 10만 개를 더해 19만 개로 올렸다. 하지만 결국 자신의 발등을 찍고 말았다.지금 민경운은 자기 뺨을 세게 때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9만 개의 영정은 민경운에게 꽤나 큰 금액이지만, 19만 개의 영정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그러나 두 사람은 이미 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에 민경운이 이를 되돌릴 방법은 없었다. 만약 민경운이 결제하지 않으면 계약이 곧바로 발동하여, 결국에는 영혼의 역반작용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이후의 일은 의외로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오양수는 원건종의 제자들을 들것에 실어 나갔고, 도범은 마침내 세 번째 영패를 손에 넣었다. 이번 영패는 조금 특이하여 입탑 영패가 아닌 출성 영패로 바뀌어 있었다.이
관중석에는 각양각색의 무사들이 섞여 있었고, 불량배들도 많았다. 평소에 거리에서 욕을 퍼붓기 좋아하는 이들은 이제야 자신들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기회를 찾은 듯, 원건종의 제자들에게 온갖 욕설을 퍼부었다.일부 사람들은 진원을 목에 운용하여 의도적으로 목소리를 크게 했다. 다른 사람들이 듣지 못할까 봐 걱정이라도 되는 듯, 그들은 더욱 큰 소리로 온갖 더러운 말을 쏟아냈다. 이로 인해 도범의 귀는 무척이나 시끄러웠고, 고통스러울 정도였다.도범은 자신과 원건종의 제자들 사이에 오간 몇 마디 대화가 이렇게 사람들을 폭발시키게 될 줄은 몰랐다. 또한, 도범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며 이런 싸움은 결국 아무런 결론도 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몸싸움을 할 수도 없고, 계속 말다툼만 이어질 뿐이었다.그래서 도범은 더 이상 들으려 하지 않고, 대련 무대의 한쪽 가장자리로 가서 조용히 서 있기로 했다. 도범은 아직 오양수를 죽일 생각이 없었다. 오양수가 자신에게 했던 그 약속, 즉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그대로 돌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다.시간은 조금씩 흘러갔고, 싸움 소리는 계속해서 끊이지 않았다. 마침내 오양수의 몸부림이 점점 약해지고, 장벽이 완전히 해제되자 원건종의 제자들이 한꺼번에 몰려가서 오양수를 부축했다.한편, 진태산은 눈살을 찌푸린 채 오양수의 코에 손을 대 그의 호흡을 확인했다. 비록 오양수는 아직 숨을 쉬고 있었지만, 그 호흡은 매우 미약했다.민경운은 급하게 자신의 보관 반지에서 여러 개의 단약을 꺼내 오양수의 입에 넣었다. 그러나 이 단약들은 오양수의 현재 상태를 치료하기에는 전혀 효과가 없었다. 방금 도범이 사용한 참멸현공이 오양수의 영혼을 완전히 찢어놓았기 때문이다.영혼이 찢어진 상태에서 내상을 치료하는 단약이 효과가 있을 리 없었다. 따라서 민경운이 오양수에게 많은 단약을 먹였지만, 오양수의 상태는 전혀 나아지지 않은 것이다. 민경운은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만약 오양수가 정말로 이 사건으로 인해 죽는다면, 그들 모두 책임을
“맞아! 당장 우리 오양수 선배를 풀어줘! 양수 선배에게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하면, 너는 천번 만번 죽임을 당할 거야! 오양수 선배는 도민수 선배가 아니야. 네가 도민수 선배를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갔을 때는 우리도 나서서 협상할 여지가 있었어.그러나 네가 오양수 선배를 진짜로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간다면, 염라대왕이라도 너를 보호할 수 없을 거야! 바라문 세계를 벗어나는 순간, 너는 원건종의 끝없는 추격을 받게 될 거야!”바깥에서 들려오는 원건종 제자들의 고함과 욕설은 도범의 귀에 전부 들렸다. 이는 이미 예상된 일이었기에 도범은 일말의 두려움도 느끼지 않았다.원건종은 일반적인 자유 무사들에게 충분한 위압감을 줄 수 있지만, 도범에게는 그렇게 중요한 상대가 아니었다. 원건종이 무엇이건, 자신의 힘이 충분히 강하다면 더 강력한 종문에 가담할 수 있을 테니, 원건종이 손해를 본다고 해도 도범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게다가 이번 일은 처음부터 끝까지 원건종이 문제를 일으킨 것이었다. 도범은 결코 선을 넘는 행동을 하지 않았고 원건종 쪽에서 여러 번 도발하지 않았다면, 도범 역시 이들과 싸울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잠시 후, 도범은 차가운 웃음을 지으며 원건종의 제자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일부러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원건종 제자들, 잘 들어! 8품 종문 출신이라는 이유로 제멋대로 행동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 처음부터 끝까지 문제를 일으킨 건 너희들이었잖아. 그런데 패배하고 나니 이제와서 나를 협박하는 거야?만약 너희들이 먼저 건드리지 않았다면, 나 역시 너희들과 엮일 생각이 전혀 없었을 거야. 즉, 너희들은 본인들의 강력한 종문을 배경을 믿고 제멋대로 행동해도 된다고 착각하는 거야. 하지만 나는 너희들의 그런 행태를 전혀 묵인할 생각 없어!”도범의 이 말은 관중석에서 큰 박수갈채를 일으켰다. 관중들은 도범이 그들 마음속에 담아둔 말을 대신 말해준 것 같아 고무되었다. 이들 고급 종문의 제자들은 항상 약한 무사들 앞에서만 무력을 과시하며, 이
“오양수는 원건종의 친전 제자 아닌가요?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약할 수 있죠?”“당신 바보 아니에요? 이건 오양수이 약한 게 아니라 도범이 너무 강한 거에요! 아까도 말했잖아요? 빙봉천리는 지급 상급 무기에요.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 몇이나 지급 상등 무기를 수련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도범이 빙봉천리를 부순다는 건, 도범의 무기가 오양수의 무기보다 강하다는 걸 의미해요!”“설마 도범이 천급 무기를 수련한 건가요?”이 말이 나오자마자, 주변의 거의 모든 이들이 단번에 부정했다.“미쳤어요? 무슨 말이든 막하네요. 천급 무기가 어떤 개념인지 알고나 하는 소리에요? 수련 경지가 고신경에 도달했거나, 혹은 특별한 재능을 지닌 영천 경지 후기에 이르러야만 천급 무기를 수련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는 거에요.그리고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바라문 세계의 규칙을 지켜야만 이곳에 들어올 수 있고요. 나이도 60세를 넘지 않아야 하죠. 그렇다면 60세가 넘지 않은 사람이 천급 무기를 수련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그렇네요! 아마도 지급 상급 무기를 수련한 거겠죠. 도범이 오양수를 이길 수 있었던 이유는 도범이 지급 하급 무기를 대원만 단계까지 수련했기 때문일 거에요.”“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도범의 재능은 정말 두려운 수준이네요. 8품 종문의 친전 제자조차 도범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거잖아요!”“이번에 바라문 세계에 온 보람은 있네요. 이렇게 많은 천재들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다니.”오양수와 관련 없는 관중들은 이런 논의를 흥미롭게 이어갔다. 이전에 도범을 비하하던 사람들도 이제는 도범을 칭찬하며, 도범을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라고 말하기 시작했다.8품 종문의 친전 제자들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원건종의 제자들은 차분할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관중석에서 편안하게 앉아있던 그들은, 도범이 빙봉천리를 단칼에 베어내는 모습을 보고는 그만 입을 다물고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지금 오양수가 이렇게 극심한 고통을 겪는 걸 보니, 분명 도범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