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가은 쓰레기를 계속 강북에 있게 하면 또 형수한테 무슨 짓 할지 모르잖아.”진동성은 나에게 기어와 싹싹 빌며 애원했다.“수호야. 내가 잘못했어. 정말 잘못했어. 이렇게 빌 테니 봐줘. 우리 같은 동네 출신이잖아. 내가 예전에 너 도와줬던 걸 생각해서 한 번만 봐줘.”나는 또 진동성을 걷어찼다.그 사이 윤지은은 어디론가 전화했고 얼마 뒤 양동준이 모습을 드러냈다.“아가씨.”“이 인간 강북에 다시는 못 오게 처리해.”윤지은은 차갑게 명령했다.“네.”양동준은 짤막하게 대답하고는 진동성을 향해 걸어갔다.그러자 진동성은 버림받은 개처럼 두 손 두 발을 사용해 앞으로 기어갔다. 하지만 그가 아무리 몸부림쳐도 양동준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건 불가능했다.진동성이 양동준에게 끌려가는 걸 보니 속이 다 시원했다. 그와 동시에 온몸의 힘이 빠져나간 듯 바닥에 주저앉았다.“수호 씨, 괜찮아?”윤미화는 나를 걱정하는 듯 물었다.“괜찮아요. 조금만 휴식하면 돼요.”나는 이제야 내 사지의 힘이 모두 빠져 흐물흐물해졌다는 걸 발견했다.이런 일은 처음 겪는지라 반응이 세게 온 모양이었다. 그 때문에 나는 체력을 회복하려고 한참을 휴식했다.휴식을 마친 뒤 나는 바닥에서 기어 일어났다.“이제 괜찮아요. 가요. 나머지 일은 제가 알아서 처리할게요.”윤지은은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어떻게 처리할 건데?”사실 나도 어떻게 처리할지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것마저 두 사람의 도움을 바랄 수는 없었다.내가 한창 망설이고 있을 때 윤지은이 말했다.“앞으로 이런 미친 짓 안 하겠다고 약속하면 뒤처리는 내가 해줄게.”“이런 일은 절대 안 해요. 아까는 상황이 상황인지라...”아까의 상황을 돌이켜 보니 나는 겁이 났다.윤지은은 내가 반박하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 나를 욕하지 않았다. 그저 동창으로 보이는 사람들에게 전화를 돌렸다.전화에서 윤지은은 이곳에 교통사고가 났으니 대신 처리해달라고 부탁했다.하지만 이 일은 사고가 아니라 내가
윤지은은 두말없이 가방에서 립스틱 하나를 꺼냈다.그걸 본 여경은 이내 눈을 휘둥그렇게 뜨면서 기분 좋은 듯 미소 지었다.“아르마니 한정판이잖아? 나 오래전부터 예약했는데 아직도 못 샀는데. 역시 우리 윤지은 아가씨가 나서야 한다니까. 나 그냥 주는 거야?”“그 컬러는 나한테 많아. 너한테 하나 주는 게 뭐라고.”“헐. 누가 부자 아니랄까 봐. 말로 사람 기죽이네. 그런데 대체 누가 우리 윤지은을 움직였는지 궁금한데?”여경은 말하면서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그 순간 나는 얼른 다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나는 윤지은의 말을 명심하고 있기에 절대 다른 여자에게 한눈팔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여경은 내가 이상하게 행동하자 곧바로 나를 가리키며 윤지은에게 물었다.“설마 저 남자야? 오 마이 갓! 윤지은, 너 연애해? 심지어 남자 때문에 나한테 부탁하는 거야?”여경은 놀란 듯 과장된 표정을 지었다.윤지은의 얼굴은 단번에 싸늘하게 굳어버렸다.“립스틱 갖기 싫어? 싫으면 돌려주든가.”말을 마치자마자 윤지은은 립스틱을 빼앗으려고 손을 뻗었다.여경은 단번에 몸을 비틀었다.“줬다 뺐는 게 어디 있어? 이미 줬으면 내 거야.”그러면서 또 나를 한번 흘긋거렸다.몰래 훔쳐보던 나는 여경이 나를 보자 또다시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그 모습을 본 윤지은이 낯빛이 어두워진 채 말했다.“정수호, 뭘 그렇게 피해?”‘왜 또 나한테 뭐라는 거야?’나는 억울함을 호소했다.“보는 것도 안 돼, 안 보는 것도 안 돼. 그럼 말해봐요. 어떻게 할까요?”나는 이번에 살가운 태도로 말했다. 그도 그럴 게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 모르겠으니까.하지만 윤지은은 또 화를 냈다.“어떡하긴. 내가 뭐 협박이라도 했어? 다 큰 성인이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라?”나는 너무 어이없어 헛웃음이 나왔다.“알았어요. 갈게요. 내가 있으면 지은 씨 화만 날 테니까.”나는 말을 마친 뒤 바로 뒤돌아섰다. 나는 더 이상 윤지은과 다투기 싫었다. 생각해 보니 윤지은은 가끔 아이처럼 너
“무서운 것도 신경 쓰인다는 뜻이거든요. 아니에요?”강한나는 나에게 되물었다.그 말을 들어보니 왠지 일리가 있는 듯해 나도 반박할 수 없었다. 다만 순순히 인정할 수는 없었다.그때 동료가 조사를 마치고 상황을 보고하자 강한나는 일하러 가버렸다.약 새벽 3시가 되어서야 내 차는 견인차에 끌려갔고 나도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윤지은이 아니었다면 일이 이렇게 빨리 끝나지 못했을 거다. 심지어 일이 해결된 후에도 윤지은이 나와 윤미화를 집까지 바래다주었다.내가 윤지은더러 형수 동생네 집에 바래다 달라고 하자 윤지은은 미간을 찌푸리며 나를 봤다.“언제부터 거기서 지냈어?”“네?”“세 맡은 집도 있잖아. 그런데 언제부터 거기서 지냈냐고?”윤지은은 또다시 물었다.나는 그제야 윤지은의 질문을 이해하고 해명했다.“이틀 전이요. 제 친구 두 명이 제 집에서 얹혀살아 제가 지낼 자리가 없어서 잠깐 신세진 것뿐이에요.”“이제 겨우 형수랑 정정당당하게 만날 수 있어 기쁘겠네?”‘윤지은이 질투하는 것 같은 건 왜지?’‘설마 윤 사장님 말대로 윤지은이 나를 좋아하나?’자세히 생각해 보니 윤지은이 나에게 도움을 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비록 그동안 말로 나를 봐준 적이 없고 항상 쌀쌀맞게 대했지만 매번 나한테 일이 있을 때마다 최선을 다해 도와줬다는 건 인정할 수밖에 없다.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왜 그랬겠나?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니 내 가슴은 쿵쾅거리기 시작했다.결국 나는 용기를 내어 조심스럽게 물었다.“뭐 하나 물어볼게요. 절대 화내면 안 돼요.”“뭔데? 꾸물대지 마.”윤지은은 고개를 돌려 나를 차갑게 바라봤다.나는 심호흡을 한 뒤 물었다.“혹시 나 좋아해요?”그 질문을 한순간 윤지은은 털이 곤두선 고양이처럼 앙칼지게 반응했다.“뭐?”나는 흠칫 놀라 목을 움츠렸고 자신감을 잃어 목소리도 점점 작아졌다.“아무것도 아니에요. 먼저 가볼게요.”말을 마친 나는 도망치듯 차를 뛰쳐나갔다.내 심장은 터질 듯 쿵쾅거렸다. 나는 윤지은
[나중의 일은 나중에 얘기해. 왕정민 혼자 뭘 하지는 못할 거야.]윤지은이 나를 위로해 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덕분에 내 걱정도 조금 사라졌다.확실히 왕정민을 신경 쓰기보다 형수 일이 더 중요했다.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고 대답했다.시간은 벌써 8시라 병원에 가봐야 했다.어젯밤 고수연이 밤새도록 형수를 간호했기에 나는 특별히 아래층에서 아침을 사 들고 병실로 향했다. 다만 고수연이 어떤 걸 좋아할지 몰라 여러 가지를 골고루 준비했다.고수연은 피곤했는지 다크서클이 턱밑까지 내려왔다. 심지어 아침을 먹는 내내 하품을 해댔다.우리는 아무 대화도 없이 각자의 음식을 먹었다.아침을 먹은 뒤 내가 돌보겠으니 집에 돌아가라고 하자 고수연이 물었다.“우리 언니랑 무슨 사이인지 말해요. 그것도 설명해 주지 않았으면서 왜 남으려고 해요?”그 질문에 나는 순간 어리둥절했다.나는 고수연이 갑자기 그런 걸 물을 거라고 생각지도 못했다.‘내가 형수랑 무슨 사이냐니?’나는 형수와 법적으로 이어진 관계가 아니다. 다만 형수는 나한테 중요한 가족이다. 그런데 그걸 어떻게 설명한단 말인가?내가 한참 동안 대답하지 못하자 고수연이 다시 물었다.“사실 나도 다 알아요. 수호 씨가 우리 언니랑 썸 타는 사이라는 거. 나도 우리 언니도 다 결혼했던 사람이에요. 남편이 있을 때와 없을 때가 많이 달라 언니도 많이 외로웠을 거라는 거 이해해요. 성적 욕구를 혼자 해결하는 것도 말이 안 되긴 하고.”“그래서 언니 곁에는 언니를 걱정하고 관심해주는 잘생긴 남자가 있다는 게 부러워요. 나는 그런 행운이 없는데.”고수연이 갑자기 풀이 죽은 모습을 보이니 나도 모르게 위로했다.“사실 수연 씨도 그런 사람 만날 수 있어요. 수연 씨도 충분히 예뻐요.”“그게 무슨 소용인데요? 난 언니처럼 총명하지도 않고 모아둔 돈도 없어요. 심지어 아이까지 둘이나 딸려 있어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막막해요. 그런데 내 주제에 어떻게 젊고 잘생긴 남자를 만나겠어요?”하긴, 맞는 말이었다
나를 꿰뚫어 볼 듯 노려보는 윤지은을 보니 순간 소름이 돋았다.결국 나는 참다못해 먼저 헤실 웃으며 인사했다.“왔어요? 우리 형수 보러 온 거예요?”내가 먼저 인사하지 않으면 피바람이 불어올 거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윤지은과 그동안 지내오면서 나는 이제 그녀의 습관을 조금씩 알게 됐다.윤지은은 항상 강한 사람한테는 강하고 약한 사람에게 약하다. 비록 말은 독하게 해도 마음은 누구보다 약하고.때문에 웃는 사람 얼굴에 침 뱉지 못한다고 내가 웃으며 상대하면 절대 괴롭히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윤지은은 내가 이렇게 나올 줄 몰랐는지 목이 메어 하려던 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는 결국 짤막하게 맞다고 대답하고는 떠나버렸다.나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내가 하도 총명해졌으니 망정이지. 앞으로도 이런 방법으로 상대해야겠네.’윤지은은 여진수와 함께 왔다.여진수의 진찰이 끝나자마자 나는 다급히 물었다.“형수 상태는 어떤가요?”“어제랑 별반 다를 게 없어요. 각종 바이털은 다 정상이지만 아직 깨어날 기미는 보이지 않네요.”내 가슴은 또 싸늘해졌다.나도 사실 알고 있다. 환자를 구하는 골든 타임은 사고 직후 48시간이다. 만약 형수가 48시간 이내에 깨어나지 못한다면 평생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하지만 나는 이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 나는 무조건 형수를 도울 방법을 생각해낼 거다.한참 뒤, 애교 누나도 병원에 도착했다.나는 애교 누나한테 형수를 부탁하고 변석훈을 찾으러 갔다.그때 윤지은이 다가와 나에게 차키를 던졌다.“내 차 타고 가.”윤지은의 차는 벤틀리였는데 가격이 어마어마했다. 게다가 평소 관리도 잘 된 걸 보면 차주가 차를 얼마나 애지중지 대했는지 알 수 있었다.그런 사람이 제 차를 선뜻 내주니 나는 놀라우면서도 황송했다.나는 차키를 다시 돌려주며 말했다.“됐어요. 택시 타고 가면 돼요.”그 말에 윤지은의 표정은 확 어두워졌다.“왜? 나라서 싫어?”“아니요. 제가 왜 지은 씨를 싫어하겠어요? 차가 너무 비싸서
모태진도 나를 위로했다.역시나 화인당 식구들은 여전히 나를 살갑게 대해주었다. 동료들의 걱정에 나는 너무 고마웠다. 이런 동료들이 있기에 나도 안심하고 내 일을 할 수 있다.“나중에 내가 한턱낼게요.”내 말에 다들 기대된다며 무척 기뻐했다.우리가 한창 얘기하고 있을 때 현성이 들어와 나를 옆으로 끌었다.“수호야, 천수당 쪽은 준비가 끝나서 언제든 오픈할 수 있어. 그런데 지금 작은 문제가 생겼어.”“무슨 문제?”그동안 현성이 천수당 쪽 일을 진행하고 있었기에 나와 민우는 무척 안심했다. 때문에 무슨 문제가 생길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김진호가 자꾸만 경영에 끼어들고 싶어 해. 게다가 요구가 얼마나 많은지 나랑 너무 안 맞아.”“주해진한테 얘기해 봤어?”“당연히 했지. 그런데 나더러 직접 해결하래. 때리겠으면 때리고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했어. 주해진도 김진호가 마음에 안 들어 하는 것 같은데 그렇다고 내가 진짜 때릴 수는 없잖아.”“가게 오픈 전부터 사업 파트너끼리 싸움하면 앞으로 장사는 어떻게 하겠어?”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주해진이 말은 그렇게 했지만 우리가 정말 김진호 건드리면 엄청 번거로워질 거야.”“내 말이. 내가 걱정하는 게 그거야. 네 체면을 생각하지 않았다면 당장 주먹을 날렸을 거야. 내 성격 알잖아. 나 그런 거 못 참잖아. 그런데 앞으로 가게 일은 너랑 민우가 도맡아 할 거고 난 기껏해야 두 번째 주인 정도라 그런 일 내 관리가 아니잖아. 내가 끼어들면 문제가 커질까 봐 참았어.”“알았어. 내가 주해진과 잘 얘기해볼게.”이 일은 내가 직접 나서야 했다.현성은 내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너도 좀 휴식하면서 해. 이러다 쓰러져. 어쨌든 몸이 건강해야 다른 일을 할 거 아니야.”나는 싱긋 웃었다.비록 생활이 힘들어도 곁에 이런 좋은 친구들이 있다는 게 너무 기뻤다.현성이 떠난 뒤 나는 곧바로 주해진에게 전화해 김진호가 가게 일에 끼어들지 못하게 단도리 잘하라고 했다. [김진호가 또 찾아가서 소란
주해진이 전화를 끊자마자 김진호가 다급히 물었다.“어때요? 정수호가 뭐래요?”주해진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뭐라고 하긴, 당연히 동의하지 않지.”“형. 왠지 정수호 그 자식이 우리 둘을 쫓아낼 것 같아요.”김진호는 일부러 옆에서 부채질했다.하지만 주해진도 바보가 아닌지라 김진호의 속셈을 훤히 꿰뚫고 있었다.“정 심심하면 술집 일 좀 도와주던가. 천수당 쪽은 당분간 끼어들지 마. 오픈하기도 전에 정수호와 사이가 틀어지면 손님은 누가 끌어모아?”김진호는 이대로 포기하는 게 달갑지 않은 듯했다.“나도 의사인데 나더러 술집 알바를 하라는 게 어디 있어요?”“왜? 싫어? 돈만 벌면 되는 거 아니야? 신경 쓸 게 뭐가 그렇게 많아?”“그런데 난 술집 알바 따위나 하기 싫어요. 의사를 하고 싶어요. 정수호도 할 수 있는데 나라고 왜 못해요?”김진호는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무엇보다 내가 화인당에 오기 전에 그의 대우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오고 나서 그는 일자리마저 잃었다. 그것만 생각하면 김진호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때문에 그날 이후 그는 줄곧 나에게 시비를 걸어왔다.그런데 이제는 그것도 모자라 내가 아예 제 머리 꼭대기에 올라 천수당의 책임자까지 되었는데, 저는 일할 자격도 없으니 그 울분을 참을 리가 있을까?김진호는 단순히 돈이 목적이 아니라 자기 능력을 증명하고 싶었다. 때문에 이런 상황이 달갑지 않았다.“능력이 있으면 해.”주해진의 한마디에 김진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김진호도 하기 싫은 게 아니다. 다만 천수당은 그가 인수한 게 아니라 결정권도 발언권도 없다.김진호는 제 형이 나와 손잡으려고 하지 않았다면 절대 나와 내 친구들을 끼워주지 않았을 거다.실패하든 성공하든 모두 김진호의 능력에 달렸지만. 나까지 끼어들었으니 이제 의미는 달라졌다.김진호는 불만이 가득했지만 입 밖으로 내지 못하고 묵묵히 참을 수밖에 없었다.그때 주해진이 손을 휘휘 저었다.“됐어. 표정 풀어. 당분간은 내 가게 일이나 도와. 천수
나는 강북 한약 시장을 안정시키겠다고 약속했기에 그걸 어길 수 없었다.지금 날이 어두워지자면 한참 남았기에 나는 약재상들한테 일일이 전화를 돌려 만나볼 생각이었다.나는 조용한 찻집 하나를 찾아 사장님이 준 명단을 꺼내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안녕하세요. 혹시 천재 한약 시장의 전광진 사장님인가요?”[누구죠?]“저는 정호섭 사장님 친구입니다. 정 사장님께서 강북 약재 시장 관리를 저에게 맡겨 한번 얘기하고 싶어서요.”[난 할 말 없어요,]상대는 말을 마친 뒤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나는 곧바로 전광진 이름 위에 표기를 하고 다음 사람에게 전화했다.“안녕하세요. 경진당의 이규민 사장님인가요?”나는 상황을 설명했지만 이규민 역시 두말없이 전화를 끊어버렸다.나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전화를 돌렸지만 다른 사람들 역시 똑같았다.이쯤 되니 모두가 나를 견제하고 있다는 걸 모를 리가 없었다.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현재 나는 아무런 신분도 없고 말에 힘이 없으니 사장님들이 내 말을 믿지 않는 건 당연했다.하지만 내가 책임을 짊어진 이상 이번 일을 잘 해내야 했다사장님이 예전에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강북 약재시장 사장님끼리 상회를 설립해 평소 회의를 할 때면 그곳에 모인다고 했었다.나는 곧바로 상회로 차를 돌렸다.상회 문은 열려 있었다. 그렇다는 건 안에 사람이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내가 들어가려 하니 로비를 지키고 있던 직원이 나를 막아섰다.“잠시만요. 여긴 무슨 일로 오셨죠?”나는 사장님한테 받은 배지를 꺼내 들었다.“전 정호섭 사장님 사람입니다. 잠시 사장님 대신 이곳을 관리하게 되었습니다.”프런트 직원 두 명은 서로 눈치를 살피더니 상황을 보고하겠다며 나더러 잠시 기다리라고 했다.나는 그럴 필요 없다고 바로 들어가려 했지만 두 사람은 여전히 나를 막아선 채 들여보내지 않았다.“안 됩니다. 이건 상회 규정입니다.”나는 두 사람이 일부러 나를 막는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기다렸다.한참이 지나
하지만 형수는 너무 오랫동안 침대에만 누워 있어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에 반해 양춘옥은 힘이 넘쳐나 손쉽게 형수를 제압했다.형수는 순간 폭발해 버렸다.“당, 당신 뭐 하는 거야?”양춘옥은 얼른 아들에게 말했다.“아들, 뭐 해? 얼른 밧줄을 찾아오지 않고. 이 여자 윗몸만 움직일 수 있고 아래는 못 움직여. 너한테 마침 좋은 기회잖아.”양춘옥의 아들은 얼른 벨트를 풀더니 형수의 손을 묶으려고 다가갔다.그 순간 나는 방으로 쳐들어가 그 남자를 발로 걷어찼다.양춘옥은 그 순간까지 현실을 파악하지 못했다. 그때 나는 양춘옥의 머리채를 잡고 그녀의 뺨을 내리쳤다.나는 양춤옥이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뺨을 후려갈겼다.형수는 위험한 순간에 나타난 나를 보자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나 역시 형수가 깨어난 걸 보니 흥분을 주체할 수 없었다.“형수!”“수호 씨, 타이밍 너무 좋았어요. 이 둘은 인간도 아니에요! 감히...”형수는 흐느끼며 말을 잇지 못했다.나는 얼른 형수의 두 손을 꼭 잡았다.“알아요. 다 알아요. 형수, 걱정하지 마요. 이 사람들이 한 짓 내가 모두 찍었어요. 지금 경찰에 신고할게요.”양춘옥은 경찰에 신고한다는 내 말에 얼굴이 창백해지더니 마구 달려들어 내 손에 있는 핸드폰을 빼앗으려고 했다.나는 또다시 양춘옥의 뺨을 내리쳤다.그러자 이번에는 양춘옥의 아들이 나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모자 둘이 달려들어도 내 상대는 아니었다.양춘옥은 더 이상 방법이 없자 그제야 무릎 꿇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다.“정 사장님, 제발 신고하지 말아 주세요. 제 아들이 이제 막 출소했는데 또 잡히면 이번에는 끝장이에요.”나는 이를 악물며 양춘옥을 바라봤다.“당신 아들 생각하기 전에 우리 형수는 생각했어? 내가 마침 집에 오지 않았다면 당신과 당신 아들이 형수한테 끔찍한 짓을 저질렀을 거잖아.”“내가 아줌마를 얼마나 믿었는데, 이렇게 보답하는 거야? 정말 악독하기도 하지. 오늘 당신도 법의 처벌을 받게 될 거야.”“안 돼요. 정 사장
“뭐요? 너무 까다로운 거 아니에요?”“까다로운 게 아니라 원래부터 얌전하지 않은 여자인 것 같아. 남편과 잘 지내지 않고 별 같잖은 남자랑 바람이 났어. 정수호라는 사람인데, 매일 이 여자 몸을 닦아주러 와서 이 여자를 형수라고 불러...”“너무 막 나가는 거 아니에요? 이런 일이 다 있다니. 이 여자도 참 뻔뻔하네요.”아들의 말에 양춘옥이 말했다.“그러니까 내가 널 불러온 거잖아. 이 여자도 워낙 얌전하지 않은 여자니까 너도 욕구나 풀어보라고. 아들, 너 이제 막 감방에서 나와 많이 쌓였을 거 아니야?”“밖에서 아가씨 찾기보다 이 여자한테 욕구를 푸는 게 더 나아. 적어도 이 여자는 깨끗하잖아.”고태연은 두 모자의 대화를 들으면 들을수록 화가 치밀어 당장이라도 일어나 양춘옥의 뺨을 후려갈기고 싶었다.하지만 결국 그녀가 가장 걱정하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그것도 그녀가 혼자 집에 있을 때 말이다.이런 상황에서 당하면 다른 사람은 아무도 모를 거다.고태연은 너무 무섭고 두려웠다. 심지어 이 두 모자에게 이토록 모욕당할 바에는 죽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리고 그 시각 양춘옥과 아들의 대화를 들은 나도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하지만 나는 서둘러 안으로 쳐들어가지 않았다.나는 우선 거실에 설치했던 감시 카메라를 찾았다. 그랬더니 카메라는 어느새 구석으로 옮겨졌다.‘이 아줌마가! 나는 그래도 믿고 매일 카메라를 돌려보지 않았는데, 이런 짓을 하다니.’나는 핸드폰 녹화 기능을 켜고 방 안을 몰래 촬영했다.탐정 사무소에서 일을 하게 된 이후로 나는 뭐든 증거싸움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때 남자가 형수 몸에 바짝 붙어 다리에 코를 가져다 대며 냄새를 맡았다.“냄새 좋다. 식물인간한테서 이렇게 좋은 냄새가 나다니. 피부도 이렇게 좋고. 대박, 몸매도 완전 끝내주잖아.”양춘옥은 옆에서 키득거렸다.“당연하지. 그리고 무엇보다 이 여자는 깨끗해. 아들, 얼른 하지 않고 뭐 해?”“헤헤. 그럼 엄마는 밖에서 망 좀 봐...”양춘옥은
“나 그만 놀려요. 내가 보고 싶은데 왜 애교 누나 집에 와서 혼자 술을 마셔요?”나는 아직 어려 정치계 판을 잘 모른다지만 그렇다고 바보는 아니다.남주 누나는 내 말에 피식 웃었다.“우리 푸들 많이 똑똑해졌네? 예전처럼 타격감이 좋지 않아. 하지만 점점 더 귀여워.”나는 자꾸만 내 몸을 타고 올라오는 남주 누나의 손을 덥석 잡았다.“말해요. 대체 무슨 일이에요? 일에 무슨 문제 생겼어요?”“응. 이 세상에서 날 괴롭힐 수 있는 건 일밖에 없어.”“왜죠? 왜 혼인이나 가정 문제는 될 수 없어요?”“헛소리 아니야? 혼인과 가정이 나보다 중요할 리 없잖아.”‘맞다. 누나도 가정보다 자기 지위가 우선인 여자였지. 백연우처럼.’“그래서 일은 해결됐어요?”나는 그 말을 내뱉은 순간 후회했다. 해결되었으면 술로 기분을 달랠 리 없을 테니까.하지만 남주 누나는 의외의 답을 내놓았다.“해결된 셈이지. 하지만 강등됐어.”“얼마나요?”“아무 실권도 없는 말단직으로. 그래도 괜찮아. 이제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내 약점을 잡고 나 협박하는 사람 없을 테니까.”남주 누나는 강등된 건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했다. 그건 아마도 자기 위로일 수 있었다.“이 얘기는 여기까지 하고 시간도 아까운데 계속 즐겨볼까?”남주 누나는 또다시 나에게 다가왔다. 심지어 리듬 있는 음악을 틀어 놓아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며 나에게 또 충격을 안겨주었다.나와 남주 누나는 그사이 애교 누나가 집에 다녀갔다는 사실을 몰랐다.애교 누나는 내가 걱정되어 직접 와 봤다. 하지만 방에서 들리는 나와 남주 누나의 소리에 얼굴을 붉히며 물러났다.“남주였네. 다른데 좀 가지. 왜 우리 집에서 수호 씨를 꼬시는 거야?”애교 누나는 입을 삐죽거렸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뒤돌아섰다.나와 남주 누나는 한밤중까지 몸을 섞고 피곤한 몸을 한 채 잠이 들었다.오랜만에 푸는 욕구에 우리 둘 다 너무 흥분해 버린 탓이었다.심지어 남주 누나는 열정적이다 못해 심지어 내가 지금 동영상 촬영 현
남주 누나는 헤실 웃으며 말했다.“정수호네. 이리 와, 와서 한잔해.”나는 남주 주나 쪽으로 걸어갔다. 가까이 가봤더니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와인 두 병 중 한 병은 이미 텅 비어 있었고, 남주 누나도 이미 술에 취했는지 얼굴이 발그스름했다.“누나, 혼자 이렇게 마신 거예요?”남주 누나는 똑바로 앉아 내 팔을 감싸안았다.“너 아니면 애교를 불러 곁에 있어 달라고 부탁하려고 했는데 요즘 바쁘다고 해서 안 불렀어. 그런데 마침 이렇게 와 버렸네? 나랑 한잔해.”나는 지난번 남주 누나를 봤던 때를 떠올렸다. 그때 누나도 기분이 안 좋아 보였는데 아마도 일 때문인 것 같았다.그런데 이번에 이토록 취해 있는 걸 보니 일이 잘 안 풀리는 모양이었다.나는 남주 누나 손에 있는 와인을 빼앗았다.“그만 마셔요. 취했어요. 부축해 줄 테니 방에서 휴식해요.”“정수호, 예전에 너한테 장난치던 때가 그리워. 도 장난칠 테니까 내 장난 받아줘. 응? 나도 기분 좀 좋아지게.”남주 누나는 몽롱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그게 대체 뭐가 그립다는 건지.’나는 그때 너무 단순해 항상 남주 누나한테 농락당했다. 심지어 몇 번이나 나를 유혹하는 남주 누나를 눈앞에 두고 입맛만 다시며 마음을 졸였었다. 하지만 나는 그때가 조금도 그립지 않았다. 나는 하고 싶을 때면 마음대로 하는 지금이 더 좋다.“내가 네 소원 들어줄게.”남주 누나는 내 목을 끌어안고 취한 말투로 말했다.누나의 완벽한 몸매를 보니 나도 솔직히 몸이 달아올랐다. 하지만 남주 누나는 지금 많이 취한 상태고, 기분도 안 좋아 보이니 몸을 섞는다고 즐겁지는 않을 거다.“됐어요. 누나 지금 취했어요. 부축해 줄 테니 방에서 자요.”“나 많이 안 마셨어. 그냥 조금 알딸딸한 정도야. 나도 내가 무슨 짓을 하는지 알아.”“있잖아. 나 요즘 너무 바빠서 남자 만날 시간도 없었어. 그러니 오늘 너 땡잡은 거야.”남주 누나는 말하면서 나를 자기 쪽으로 잡아당겼다.나는 술에 취한
“정 사장님, 물 바꿔드릴까요?”내가 형수의 팔을 닦아주는 동안 양춘옥이 방에 들어와 열정적으로 물었다.그 모습에 나는 간단히 말했다.“아니에요. 거의 다 닦아요.”나는 형수가 뭘 걱정하는지 몰랐다. 무엇보다 양춘옥이 문제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그때 양춘옥이 목적성이 다분한 질문을 했다.“정 사장님, 요즘 안 보이시던데 바쁘셨나요?”“네. 요즘 일이 바빠서 매일 오지 못해요. 그러니 이모님이 우리 형수님 잘 돌봐주세요. 참, 요즘도 제가 바쁘니 부탁드릴게요.”양춘옥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며 싱긋 웃었다.“정 사장님은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무조건 잘 돌봐드릴게요.”“형수, 다 닦았어요. 형수가 깨끗한 걸 좋아하는 거 알고 특별히 피부 관리하는 스킨로션도 발라줬어요.”나는 형수를 돌본 뒤 옆에서 대화를 나누다가 고아연이 돌아온 뒤에야 떠났다.고아연은 나를 집 앞까지 마중하며 물었다.“요즘 바빠?”“네, 왜 그래요?”“아니, 별 건 아니고. 지난번에 찍는다던 영상을 안 찍었길래 바쁜가 해서.”“요즘 너무 바빠서 정신이 없었어요.”이건 단순한 오락이라 돈을 버는 것에 비하면 당연히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그래. 그럼 앞으로 안 찾을게. 내 연락처 삭제해.”고아연은 갑자기 말투가 날카로워졌다.그 말에 나는 순간 멍해졌다.“여자들은 다 이래요? 심심하면 연락처 삭제하고? 이런 거 엄청 예의 없는 거 알아요?”고아연은 팔짱을 낀 채 웃었다.“우리는 원래부터 아는 사이도 아니었어. 그런데 지금 바빠서 영상 찍을 시간도 없다는데 내가 네 연락처를 왜 남겨? 난 원래 이래. 연락 자주 하지 않는 사람은 삭제해. 수호 씨도 마찬가지야.”나는 일부러 고아연에게 맞섰다.“그럼 형수가 지금 이러니까 형수도 삭제했겠네요?”“그래.”“흥. 누가 믿을 줄 알고.”“믿든 말든.”고아연의 모습은 거짓 같지 않았다.나는 이 순간 고아연을 또다시 봤다.“바쁜 일 다 처리하면 도와줄게요. 연락처 삭제하지 마요. 앞으로 또다시 추가하
애교 누나 얘기를 언급하니 내 기분은 저절로 다운되었다.“난 누구랑 결혼할지도 모르겠어.”“왜? 애교 누나랑 사이가 틀어졌어?”민우가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그런 건 아니야. 그냥 애교 누나랑 나는 결혼할 사이가 같지 않아. 애교 누나가 나한테 너무 관대하고 너무 풀어줘. 그래서 너무 진실감이 없어.”“헐. 여자 친구가 풀어주는 게 얼마나 좋은데? 네가 밖에서 다른 여자 만나도 뭐라 안 하고 오히려 응원해 준다며? 그렇게 좋은 여자 손전등 켜고 찾아도 없어.”현성과 민우는 나를 부러워했다.사실 나도 예전에는 똑같은 마음이었지만 지금은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다.애교 누나는 너무 좋고 너무 관대하여 질투도 하지 않아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심지어 가끔 이 모든 게 허상이라는 생각도 들곤 한다.그에 반해 윤지은은 또 나에게 너무 현실을 체감하게 해준다. 좋아할 때도 질투할 때도 있어 오히려 더 커플 같은 느낌이 들곤 한다.“정수호, 너 진짜 쓰레기네. 너 설마 애교 누나 버리려고 그래?”현성이 갑자기 물었다.“헛소리. 내가 언제 버린다고 했어?”“그럼 아까 발언 무슨 뜻인데?”“난 그냥 애교 누나가 너무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뜻이지 버리겠다는 뜻 아니야. 함부로 누명 씌우지 마.”나는 바로 현성을 반박했다.하지만 그때 민우가 바로 끼어들었다.“사실 나도 네가 좀 쓰레기 같아. 아마 네가 만난 누나들이 다 너 같은 나쁜 남자를 좋아하나 보다.”“젠장. 내가 너희들한테서 무슨 좋은 말을 듣겠냐?”그날 저녁 퇴근 후 나는 형수네 집에 들렀다.그동안 너무 바빠 형수를 보러 오지도 못하고 몸을 닦아주지도 못했기에, 나는 얼른 따뜻한 물을 담아 형수 몸 곳곳을 닦아주었다.형수는 이렇게 오랫동안 누워만 있었지만 뺌은 여전히 발그스름하고 피부도 백옥 같은 피부에 핑크빛이 감돌았다.아마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그저 잠자고 있다고 생각할 거다.내가 형수의 몸을 닦아주는 동안 형수의 가슴은 사실 콩닥콩닥 북을 쳤다.‘수호 씨가 이제야 날
“이 얘기는 이쯤에서 하고. 말해요, 서나연 씨 일 외에 다른 볼 용건 있어요?”나는 화제를 다시 끌어왔다.그러자 소여정은 내 턱을 잡으며 생글생글 웃었다.“있지 그럼. 너 놀리러 왔어. 내가 너 놀리는 거 오랜만이잖아.”“미쳤어요?”나는 다급히 소여정의 손을 쳐냈다.“날 미친X 취급해? 내가 진짜 너 가만 안 둔다?”“못 믿겠어요. 나 이제 임천호도 안 두려운데 소여정 씨를 두려워하겠어요?”나는 소여정에게 계속 휘둘리고 싶지 않았다.소여정은 대단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오호라. 며칠 새에 많이 컸네? 그런데 그런 모습 점점 더 좋아지는데?”소여정은 정말 역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매번 나타났다 하면 나에게 귀찮은 일을 던져주곤 한다.물론 내가 이제 임천호를 두려워하지 않는다지만 그렇다고 귀찮은 일에 휘말리고 싶지는 않았다.나는 그저 장사를 잘해서 돈을 많이 벌고 싶다.내가 소여정을 무시하자 소여정도 나를 보는 체도 하지 않고 스스로 가게 안을 둘러봤다. 그러다가 결국 몇 가지 선물 세트를 골랐다.소여정이 계산하려고 할 때 나는 다시 그녀에게 다가갔다.“선물 세트 사서 누구한테 주려고요?”“이젠 임천호 안 두렵다며? 내가 누구한테 주든 무슨 상관이야? 아니면 내가 이 선물을 가져갔다가 이 가게에서 샀다는 걸 들킬까 봐 그러는 거야?”소여정은 마치 내 배에서 나오기라도 한 것처럼 나를 빠삭하게 알았다.“찾아오겠으면 찾아오라고 해요. 소여정 씨는 정상적인 소비예요.”나는 말발로 소여정을 이길 수 없다는 생각에 바로 뒤돌아 떠나갔다. 하지만 마음은 여전히 후들거렸다.소여정은 물건을 구매한 뒤 가게에서 택배로 보낼 수 있는지 물었다. 그 질문에 점원 한 명이 가능하다고 대답했다.소여정은 주소 하나를 남기고 직원더러 선물 세트를 주소에 적인대로 보내달라고 당부했다.소여정이 떠난 뒤 나는 그 위에 적힌 주소를 확인했다. 주소는 H시로 되어 있고, 받는 이는 ‘소원규’로 되어 있었다.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이름에 한참을 떠
“누구한테 들었어?”“그건 상관하지 마요. 맞는지 아닌지만 대답해요.”나는 얼렁뚱땅 넘기려고 했다.다행히 소여정은 내 질문을 회피하지 않고 바로 인정했다.“맞아. 나도 예전에 윤지은과 임유미처럼 잘 사는 집 딸이었어. 안 그러면 우리 넷이 왜 친구가 됐겠어?”하긴. 소여정은 나를 바라보더니 갑자기 물었다.“뭐 하나만 물을게. 소씨 가문 사람들이 강북에 있지?”“그걸 어떻게 알아요?”나는 흠칫 놀랐다.그 말에 소여정이 대답했다.“어떻게 알았는지는 알려고 하지 마. 맞는지 아닌지만 말해.”소여정이 이렇게 묻는다는 건 이미 단서를 찾았다는 뜻이기에 나는 사실대로 대답했다.“맞아요. 임천호 아내가 강북에 와서 요즘 유미 사모님과 같은 동네인 백조의 호수에 살아요.”“백조의 호스? 보아하니 나도 그곳에 집을 마련해야겠네.”소여정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그 말에 내 눈은 휘둥그레졌다.“지금 제정신이에요? 소씨 가문 사람들이 그곳에 있는데 멀리 숨지는 못할망정, 같은 동네에 살겠다고요? 대체 무슨 생각인 거예요? 설마 서나연 씨를 쫓아내고 본인이 임천호 아내가 되려고 그래요?”소여정은 생글생글 웃으며 물었다.“안돼? 임천호가 얼마나 대단해. 나한테도 잘해주고.”“대단하긴 무슨. 부시장님과 윤 회장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더만.”나는 내가 임천호 뒷담화를 하는 날이 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소여정은 나를 다시 봤다는 눈빛으로 바라봤다.“정수호, 대단하네. 임천호를 그렇게 말하고. 임천호가 안 뒤 죽이려고 할까 봐 두렵지 않아?”“내가 임천호 산하의 대출 회사도 무너뜨렸는데, 임천호를 무서워하는 거로 보여요?”나도 비록 내가 너무 잘난체 한다는 걸 알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정말 참을 수가 없다.이 세상에 허영심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게다가 이건 내가 평생 자랑스럽게 말하고 다닐 일이기도 하다.소여정은 입을 가리며 웃었다.“아주 어깨뽕이 하늘로 치솟는구먼? 그 대출 회사 임천호한테 엄청 중요한 회사인 건
“오, 오빠가 뭘 하려는지 알아요. 만약 하고 싶으면 날 오빠한테 줄 수 있어요.”주선영은 입술을 살짝 깨물며 옷자락을 잡고 긴장한 표정으로 고백했다.이건 현성에 대한 인정이었다. 현성은 너무 설레어 심장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그는 두말없이 주현영을 와락 끌어안았다.그러자 주현영이 이내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여, 여기서는 안 돼요. 우리... 호텔 가요.”“그래, 바로 가자.”나는 현성과 주현영이 손잡고 뛰쳐나오는 걸 본 순간, 현성이 오늘 소원을 이룰 거라는 걸 알았다.나는 싱긋 웃으며 현성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파이팅.”“당연하지.”현성은 헤헤 웃으며 말했다.이윽고 두 사람은 손을 잡고 기쁜 얼굴로 떠나갔다.나는 얼른 이 기쁜 소식을 민우에게 알려주려고 전화했다.[수호야. 왜 그래? 나 지금 바빠.]민우는 목소리를 한껏 낮추고 말했다.그 목소리에 나는 의아했다.“너 지금 뭐 해? 가게 보는 거 아니었어?”[설아가 점심에 나 찾아와서 지금 설아랑 호텔에 있어.]“헐, 너 뭐야? 임설아랑 결실을 보는 거야?”‘왜 친구들한테 버림당해 혼자가 되었다는 느낌이 들지?’민우는 헤실 웃었다.[이만 끊어. 설아가 샤워하러 갔다가 지금 나와. 우리 오늘 마지막까지 갈 거거든.]민우는 말을 마치자마자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이 상황에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대충 음식을 먹고 가게로 돌아가는 것뿐이었다.하지만 혼자 사무실에 앉아 있을수록 기분이 안 좋았다.예전에는 내가 민우와 현성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었는데, 현재는 내가 두 사람을 부러워하는 꼴이 되었으니.하지만 윤지은과 애교 누나한테는 연락할 엄두도 나지 않고 형수는 아직 혼미해 있으니 누구를 찾아야 할지 고민이었다.나는 주위에 여자가 끊이지 않다고 이렇게 외로이 혼자 남는 날이 오게 될 줄은 몰랐다.‘정수호 몰락했네. 몰락했어!’내가 속으로 감개무량해하고 있을 때 아래층에서 직원 한 명이 나를 불렀다.“정 사장님, 누가 찾아왔어요.”“알았어요. 내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