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순간 나는 숨이 멎을 뻔했다.나는 윤지은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얼른 고개를 숙였다.“고개 들어!”윤지은은 명령조로 말했다.하지만 나는 곧이곧대로 그 말을 들을 수 없었다.차라리 쥐구멍이 있다면 들어가고 싶었다.윤지은은 내가 협조하지 않자 두 남자에게 명령했다.“그 자식 고개 들게 해.”두 남자는 강제로 내 머리를 들어 올렸다.그 순간 머리가 누군가 바이스로 내 머리를 집어 올리는 것처럼 아프고 꿈쩍도 할 수 없었다.더 무서운 건, 고개를 드는 바람에 윤지은과 눈이 마주쳤다는 거였다.“안철수, 정수호!”“정말 감쪽같이 속았네. 두 사람이 같은 사람이었다니.”나는 인정할 수 없었다. 이대로 인정하면 내가 어떻게 죽는지조차 알 수 없을 테니까.때문에 나는 헤실 웃으며 뻔뻔하게 말했다.“안철수라니, 무슨 말이에요?”“못 알아듣겠어? 그럼 여긴 왜 왔지?”“이런 곳에 처음 오니까 궁금해서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여기까지 들어온 거예요.”나는 끝까지 모르쇠로 일관하며 뻔뻔하게 헛소리를 지껄였다.윤지은은 차갑게 웃으며 나를 쳐다볼 뿐 바로 내 정체를 까발리지 않았다. 오히려 핸드폰을 꺼내 나에게 영상 통화를 걸었다.내가 폰에 저장해뒀던 얼음 마녀라는 이름이 뜬 순간 나는 머리가 하얘졌다.‘어떻게 이렇게 중요한 걸 잊을 수 있지?’‘이제 어떡해?’나는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죽겠네 정말.’그때 윤지은이 내 핸드폰을 주어 나에게 보여주었다.“증거가 확실한데 아직도 발뺌이야?”나는 그 순간 알았다. 더 이상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하지만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이 모든 게 내 운명 같았다.“하나만 물어볼게. 카톡으로 추가한 사람이 나라는 걸 언제부터 알았어?”난 윤지은의 눈을 볼 엄두조차 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거짓말도 할 수 없어 솔직히 말했다.“처음 병원에 갔을 때 발견했어요. 그때 지은 씨도 나를 알아챈 줄 알고 일부러 희롱했던 건데 모르더라고요.”윤지은은 갑자기 뭔가 생각났는지 표정이 어두워졌다.“그래서
나를 바라보는 윤지은의 이상한 눈빛에 나는 등골이 오싹해 계속 해명했다.“물론, 내 잘못인 건 맞아요. 상대가 지은 씨인 걸 알면서 거짓말로 다른 사람인 척 지은 씨와 데이트를 즐긴 건 내 잘못이에요. 하지만 내가 정수호든 안철수든 우리 다 즐긴 거 아니에요?”“우리 같이 즐긴 걸 봐서 너무 저한테 뭐라 하지 마요, 네?”윤지은은 내 말에 풉,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그 미소는 너무 무서웠다.이 상황에서 왜 웃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심지어 너무 겁에 질려 식은땀이 흘러내렸다.‘이럴 거면 차라리 통쾌하게 욕하기나 하지.’“제발 좀 웃지 마요. 웃으니까 더 무섭거든요.”나는 울고 싶었지만 눈물이 나지 않았다.그러면서 한편으로 성욕에 눈이 멀었던 게 후회됐다.‘이제 어떡해, 다 들켰잖아.’문제는 이런 날이 올 줄 알면서 그런 실수를 저질렀다는 거다.때문에 이런 일을 당해도 싸다.나는 윤지은한테 용서받길 바라는 게 아니다. 다만 너무 잔인한 방법만 아니길 바랄 뿐이지.예를 들면 물고기 밥으로 강에 처넣는다던가, 아니면 토막 낸다던가...“그래. 그쪽 잘못만은 아니지. 뭐든 한 사람 탓으로 돌리는 건 안 좋은 거니까.”윤지은이 갑자기 이해한다는 듯 말했다.그 말은 솔직히 조금 의외였다.‘이 여자가 갑자기 양심의 가책이라도 느꼈나? 이젠 나를 더 이상 적대시하지 않는 건가?’나는 속으로 생각하며 얼른 미소 지었다.“그렇죠? 나도 사실 이런 일은 직접 말하기 그랬거든요. 모든 게 우연히 벌어진 일이에요.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라 바로잡고 싶어도 바로 잡을 수 없어 그냥 흘러가는 대로 따랐을 뿐이라고요. 우리가 서로 모르는 사이도 아니니 서로 정을 봐주자고요.”나는 위험한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아무 말이나 지껄였다.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도망칠 기회를 노렸다.윤지은이 이렇게 쉽게 나를 용서할 리 없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물론 지금은 이렇게 나를 이해하는 듯 행동하지만, 언제 또 마음이 바뀔지 모른다.때문에 당장 도망치는 게 제
그제야 윤지은이 무서운 기세를 죽였다.나도 드디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대로 계속 말싸움하다간 내가 언제까지 버틸지 막막했다.윤지은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대체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없었다.“그게 정말이지?”윤지은이 되물었다.그 순간 나는 마음이 찔렸다.“음.”“음이 뭐지?”“응이요. 그러겠다는 뜻이었어요.”이젠 나도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머리가 내 머리가 아닌 것 같기도 하고.윤지은의 표정이 순간 어두워졌다.“명확한 답을 줘. 얼렁뚱땅 넘어갈 생각 하지 말고.”윤지은이 또 화를 내자 나는 얼른 해명했다.“내 말은 그러니까 내가 지은 씨를 책임져야 한다면 책임지겠다는 뜻이에요.”“정말? 그럼 여자 친구는 어떡하고?”윤지은은 팔짱을 낀 채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그 순간 나는 애교 누나와 형수가 떠올랐다.솔직히 나는 윤지은을 책임질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현재 상황상, 나를 지키려면 어쩔 수 없었다.그렇다고 윤지은한테 책임지기 위해서 애교 누나 혹은 형수를 포기해야 한다면 그건 싫었다.나는 뻔뻔하게 말했다.“여자 친구와는 헤어질 수 없어요. 나한테 너무 좋은 사람이거든요. 지은 씨만 괜찮다면 동시에 사귈게요.”“뭐라고? 지금 양다리 걸치겠다는 거야?”윤지은은 갑자기 화를 내며 당장이라도 나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았다.나는 다급히 해명했다.“아니에요, 양다리 걸치겠다는 생각 해본 적 없어요. 하지만 여자 친구를 포기할 순 없어요. 그러면 내가 너무 쓰레기니까.”“그럼 나한테는 공평하다고 생각해? 여자 친구한테는 이게 공평해?”윤지은이 화를 내며 물었다.나도 순간 머리가 복잡해 짜증을 냈다.“나도 지금 머리가 엄청 복잡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차라리 한 대 때려요. 화 풀릴 때까지. 다만 죽이지는 마요.”나는 아예 도망치는 것을 포기하고 윤지은의 처분을 기다렸다.도무지 좋은 해결책이 떠오르지 않았으니까. 그렇다면 유일한 방법은 윤지은이 화가 풀릴 때까지 나를 때리게 하는 것
나는 순간 또 넋을 잃었다.‘내 두 손을 원한다고?’‘그럼 난 평생 불구자가 되는 거잖아?’“난 두 손으로 밥 벌어 먹고사는 사람이에요. 두 손을 망가뜨리면 앞으로 어떻게 생활하라고요?”윤지은의 표정은 다시금 어두워졌다.“아래가 잘려 나가는 것도 싫고 껍질 벗겨지는 것도 싫고 손 망가뜨리는 것도 싫다고? 나랑 갈 데까지 갔으면서 다 싫다면 왜 차라리 죽지 않아?”곰곰이 생각해 보니 윤지은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하지만 윤지은의 요구에 응할 수는 없었다.“잘못했어요. 정말 잘못했어요.”나는 그저 애원할 수밖에 없었다.그때 윤지은이 손에 있는 칼을 내 앞에 있는 테이블에 쾅 하고 내리꽂았다.“잘못했다 한마디로 얼렁뚱땅 넘길 생각이었어? 내가 그렇게 싸구려야?”나는 그 순간 무슨 생각인지 저도 모르게 반박했다.“전에 남자 친구가 양다리 걸친 것도 용서해 줬잖아요.”전 남자 친구를 언급하는 순간 윤지은의 표정은 당장이라도 나를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그제야 나는 또 말실수를 했다는 걸 직감했다.그 쓰레기는 아마 윤지은이 제일 언급하기 싫은 치욕일 거다. 그런데 내가 그 상처에 소금을 뿌렸으니, 이게 죽여 달라는 게 아니면 뭔가?아니나 다를까 윤지은은 테이블에 꽂았던 칼을 뽑아 들고 나에게달려왔다.“사람 살려요. 여기 사람 죽여요. 사람 죽여요...”나는 도망치면서 미친 듯이 소리쳤다.내 뒤에서 칼을 든 윤지은이 미친 듯이 쫓아오고 있었다.그때보다 못한 경호원 두 명이 조심스럽게 물었다.“아가씨, 도움이 필요한가요?”“아니, 내 손으로 잡아서 족칠 거야!”윤지은은 차갑게 툭 내배었다.그렇게 쫓고 쫓기다가 얼마 지나자 윤지은은 점차 체력이 떨어졌다.나도 마찬가지였다.숨이 턱턱 막히고 폐가 터질 것만 같았다.나는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지은 씨, 계속 이러는 것도 좋은 방법은 아니니까, 우리 서로 한발씩 물러나는 건 어때요?”나는 이 문제를 정말로 해결하고 싶었다.하지만 윤지은의 화는 아직 가라앉지 않은 모양이었다.“
두 경호원은 문을 지키는 신처럼 떡하니 서서 나를 지켰다. 덩치 큰 두 사람 앞에서 나는 짜리몽땅이나 다름없었다.나는 겁에 질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그 시각, 마사지룸에서 나온 윤지은은 여전히 화가 풀리지 않았다. 그러면서 속으로 나를 적어도 열흘 정도는 가두겠다고 생각했다. 아까 마사지룸에 있을 때 핸드폰이 잠깐 울렸었는데 그냥 무시했던 윤지은은 이제야 폰을 꺼내 확인했다. 그리고 방금 전화한 사람이 자기 친구 임유미라는 걸 알아챘다.윤지은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친구에게 전화했다.“유미야, 무슨 일이야?”“그냥 뭐 좀 묻고 싶어서. 아까 연우랑은 왜 그런 거야? 왜 갑자기 나가버렸어?”임유미는 걱정스레 물었다.백연우를 언급하자 윤지은의 얼굴이 또 어두워졌다.윤지은은 백연우가 얼마나 문란한 사람인지 알고 있다. 그건 사실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남자들도 내키는 대로 바람피우고 다니는데, 여자라고 그러지 말란 법은 없으니까.하지만 문제는 백연우가 나와 잤고, 나와 윤지은은 또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거다.때문에 윤지은은 마음이 불편했다.윤지은은 자기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차갑게 말했다.“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갑자기 기분이 안 좋아서.”“그럼 왜 기분 안 좋았는지 말해 줘.”임유미는 친구가 진심으로 걱정되었다.사실 네 친구 중에서 임유미는 끈처럼 나머지 친구들을 엮어주는 역할을 한다.때문에 윤지은도 그런 임유미에게는 화를 낼 수 없었다. 그녀는 말투를 점차 누그러뜨렸다.“유미야, 나 괜찮아. 걱정할 거 없어.”“그럼 얼른 돌아와. 걱정돼서 그래. 연우도 너 걱정해.”“난 좀 늦게 돌아갈게. 둘이 먼저 자, 엄마도 여기 와서 엄마한테 가보려고.”임유미는 그 말에 깜짝 놀랐다.“어머님도 여기 오셨어? 그럼 왜 말을 안 했어? 인사 드리러 가야 하는데.”“아니야. 네가 우리 엄마 모르는 것도 아니잖아. 다 큰 어른이 어린아이처럼 구는 분이니까, 인사하러 오지 않아도 신경 안 써.”“어머님은 신경 안 쓴다고 해도 인사 안 하는
백연우는 매우 의아했다.“이상하다? 어제 분명 여기 묵었는데?”백연우는 곧장 내 번호로 전화했다.하지만 내 폰은 윤지은이 가져가 이미 꺼둔 상태였다.나와 연락이 닿지 않자 백연우는 더욱 의아해 얼른 임유미를 찾아가 물었다.“유미야, 너 혹시 수호 씨가 어디 갔는지 알아?”임유미는 방금 일어나 요가를 하고 있었다.“모르겠는데. 방에 없어?”“없어. 아까 방에 찾아갔는데 침대가 깨끗한 걸 봐서 어제 방에서 지낸 것 같지 않아.”백연우는 자기가 본 걸 솔직히 말했다.그러자 임유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그럼 나도 모르겠는데? 호텔 직원한테 물어보는 건 어때?”백연우는 얼른 호텔 직원에게 물었다. 다만 호텔 직원도 알 리 없었다.이에 백연우는 호텔 CCTV를 확인해 보겠다고 요구했지만, 호텔 측 책임자가 특수한 상황이 아닌 이상 CCTV는 함부로 보여줄 수 없다고 대답했다.그 때문에 백연우는 호텔 직원과 실랑이까지 벌였다.“우리와 같이 온 사람이 사라졌는데, 이게 특수한 상황이 아니에요?”“고객님, 호텔 보안은 경비가 철저히 지키고 있어 절대 안전 문제는 일어날 수 없습니다. 게다가 친구분이 스물도 넘은 성인 남성이잖아요. 그 정도 성인이면 본인 행동에 스스로 책임질 능력은 충분합니다. 정 걱정되신다면 경찰에 신고하세요, 저희도 그러면 전적으로 협조할게요.”호텔 측 답변에 백연우는 버럭 화를 냈다.다행히 임유미가 제때 나타나 갈등을 해결했다.“됐어, 연우야. 호텔도 규칙이 있다는데, 왜 직원을 난감하게 하고 그래?”백연우는 씩씩거리며 말했다.“그럼 어떡해? 진짜 경찰에 신고할 거야?”“지은한테 물어보는 건 어때? 지은은 알고 있을 수도 있잖아.”두 사람은 그 길로 곧장 윤지은을 찾아갔다.그 시각, 윤지은은 어머니와 함께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다.그러다가 백연우한테서 내가 없어졌다는 말을 듣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덤덤하게 말했다.“나도 몰라.”“그럴 리가, 두 사람 아는 사이 아니었어?”백연우는 끈질기게 물었다.
윤지은은 덤덤하게 CCTV를 흘긋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두 경찰은 CCTV를 확인한 뒤, 내가 마지막으로 모습을 비춘 곳이 마사지룸이라는 걸 확인하고는 결론을 내렸다.“우선 마사지룸부터 확인합시다.”결국 모든 사람은 함께 마사지룸으로 향했다.윤지은은 일행 뒤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사람들이 멀리 떠난 뒤 어디론가 전화했다.“사람을 다른 곳으로 옮겨. 경찰이 곧 도착할 거야.”전화를 끊은 윤지은은 아무 일 없었던 사람처럼 뒤따라 마사지룸으로 향했다.밤새 이곳에 갇혀 있던 나는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몰랐다.그저 두 남자가 갑자기 나를 다른 곳으로 옮겼다는 것밖에는.그리고 나는 모르는 곳에 또 갇혀버렸다.두 사람은 나한테 꼬박꼬박 음식을 가져다주었다. 그것도 최상급으로. 하지만 절대 풀어주지는 않았다.윤지은이 언제까지 나를 가둘지 모르는 나로서는 그게 두렵기만 했다.“저기요, 형님들. 혹시 그쪽 아가씨한테 말 좀 전해줄래요? 내가 이미 생각을 끝냈으니 만나고 싶다고.”“안 됩니다!”두 경호원은 쌀쌀맞게 거절했다.결국 나는 마지못해 다시 제 자리에 돌아가 앉았다.그 시각, 경찰은 사람들과 함께 마사지룸에 도착했다. 하지만 그곳에는 이미 아무도 없었다.“찾고 계신 분은 이미 떠난 것 같은데요?”“저희도 계속 찾을 테니까 단서라도 찾으면 제공해 주세요.”경찰은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자 결국 돌아갔다.내가 성인 남성이기도 하고, 내가 사고를 당했다는 증거도 없으니 기껏해야 도움을 줄 뿐이지 수사에 착수할 정도는 아니었다.하지만 경찰들마저 아무 단서도 찾지 못하자 벡연우는 더 의심했다.‘설마 일부러 나 피하는 건가? 그렇다면 이따 나타나기만 해 봐, 절대 가만 안 둘 거야.’한편, 나는 또 어딘지 모르는 곳에서 꼬박 하루 갇혀 있었다.나는 우울증이 걸릴 지경이었다.혼자 있는 게 너무 지루했다. 핸드폰도 없고, 말동무도 없으니 그저 자는 수밖에 없었다.나는 점점 윤지은이 나타나기만을 기대하면서 이번에는
‘이러다가 유언이라도 남겨야 하는 거 아니야?’나는 아쉬움이 너무 많이 남았다. 내가 그걸 다 이루지 못한다 해도 누군가 그걸 대신해 주길 바랐다.결국 아주 긴 유언을 생각한 나는 윤지은한테 결국 죽임당하면 애교 누나와 형수한테 유언이라도 전해달라고 설득하자고 생각했다.그러다 보니 갑자기 부모님이 생각나면서 두 분께 너무 미안했다.자식 먼저 보내는 부모 마음은 오죽할까?난 정씨 가문 독자인데, 내가 죽으면 부모님은 어떡하나? 이런저런 생각이 드니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그때, 밖에서 또각거리는 하이힐 소리가 들리더니 두 경호원의 공손한 목소리가 들렸다.“아가씨!”윤지은이 온 것이다.‘겨우 왔네!’나는 얼른 일어나 앉았다윤지은은 나를 보더니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울었어? 한심하긴.”나는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으며 설명했다.“갑자기 부모님께 미안해서요. 일박이일 동안 가뒀으니 이젠 화가 풀렸죠? 언제 풀어줄 생각이에요?”윤지은은 차가운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풀어줘? 난 풀어줄 생각 없는데?”“설마 나를 평생 여기 가둘 생각이에요?”그렇다면 너무 충격이었다.그때 윤지은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여기저기서 사람 해치고 다니는 당신 같은 사람은 여기 가둬야 얌전해지지. 내가 만약 풀어주면 또 얼마나 많은 여자를 해치고 다닐지 어떻게 알아?”“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니에요? 내가 언제 사람을 해쳤다고 그래요? 그리고 내가 여자들이랑 잔 게, 서로 원한 게 아니라고 어떻게 단정 지어요?”“이제야 많은 여자들이랑 자고 다닌 걸 인정하네?”나는 윤지은의 사고방식이 너무 기가 막혔다. 어떻게 이 대화에서 그걸 중점으로 집어내는 건지. 너무 어이없었다.“그런 뜻이 아니라, 난 누구도 해치지 않았다고요. 내가 누구랑 잤든 모두 서로 원한 거예요.”“흥! 나를 속였던 것처럼 다른 여자들도 속였을지 어떻게 알아?”“그럴 리가요! 모든 여자가 다 윤지은 씨처럼...”‘바보인 줄 아느냐?’라는 말이 하마터면 나올 뻔했다.물론 내가
“보아하니 두 사람 모두 조금희 씨 몸에 종양이 퍼지고 있어 곧 죽는다는 걸 알고 있었네요.”“혹시 조금희 씨가 뒤에서 꼼수 부린 거 아닐까요?”나는 문득 뭔가 떠올라 의문점을 제기했다.현재 상황으로 분석해볼 때 조금희의 혐의가 가장 높았다.그때 윤지은이 말했다.“자세한 건 조사해 봐야 하지만 나도 조금희 씨가 이상한 것 같아.”사모님은 참지 못하고 눈시울을 붉혔다.“다음에 조사할 때 나도 끼워줘. 나도 같이 조사하고 싶어. 두 사람 말 맞아. 호섭 씨가 억울한 죽임을 당했는데, 나라도 진실을 밝혀 억울함을 풀어줘야 해. 이게 내가 살아갈 유일한 동력이야.”사모님은 말하면서 또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슬픔 속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나와 윤지은은 항상 사모님 곁을 지킬 거다.그날, 우리는 곧장 종양 전문 병원에 가 조금희의 병력을 조사했다.조금희 몸에서 종양이 발견된 건 1년 전인데, 처음에 양성이었다가 악성으로 번지기까지 적지 않은 돈을 들였던 거로 확인되었다.게다가 조금희는 불치병에 걸리기 전에 아내와 갈등을 겪었다.“자세한 건 저도 모르는데, 조금희 씨가 우리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젊은 여자가 항상 와서 돌봐줬어요. 그러다가 부인이 병원에 찾아와 그 아가씨를 때렸고요. 그 일은 병원 사람들 다 알아요.”‘그렇다는 건 조금희가 바람을 피웠다는 거네?’조금희가 이런 사람일 주은 생각지도 못했다.윤지은은 여간호사에게 돈다발을 건넸다. 그러자 간호사는 아주 기뻐하며 떠나갔다.조사를 마친 뒤 우리는 밖에서 식당을 찾았다.식당에 도착한 윤지은은 분석을 시작했다.“조금희 씨가 불치병에 걸렸고, 예전에 아내와 아들한테 잘못을 저질렀다면 혹시 자기가 얼마 못 살 걸 알고 호섭 씨를 배신해 돈을 챙겼던 건 아닐까?”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그럴 가능성이 커요. 만약 조금희 씨 계좌에 큰돈이 입금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아쉽지만 이곳은 강북이 아닌 Y시다. 안 그랬다면 윤지은의 인맥
나는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다.배고픔을 느낀다는 건 좋은 일이다.윤지은이 아침을 사 오자 사모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음식을 먹었다.그걸 본 윤지은은 나를 향해 엄지를 추켜들었다. 그건 내 실력을 인정한다는 뜻이었다. 이번 치료 방법이 확실히 효과적이었으니까.나는 사모님을 한참 동안 관찰했다.비록 컨디션이 많이 안 좋은데도 사모님은 음식 드실 때 여전히 우아하고 단아했다. 살짝 슬픔을 띄고 있어 살짝 비극의 여주인공 같기도 했다.내가 한창 사모님을 바라보고 있을 때, 윤지은의 날카로운 눈빛이 갑자기 나를 쏘아봤다. “짐승!”윤지은은 욕지거리를 퍼부었다.그 욕에 나는 억울함을 호소했다.“제가 뭘 했다고 짐승이라는 거예요?”“아무튼 짐승 맞아. 이런 상황에서 훔쳐보기나 하고.”윤지은은 나를 째려봤다.난 그저 사모님을 몇 번 본 것뿐인데 나를 짐승 취급하다니, 너무 어이없었다.하지만 이러다 또 싸움 나겠다 싶어 나는 얼른 아침을 들고 다른 곳에 가서 배를 채웠다.식사를 마친 뒤 사모님은 자발적으로 나와 윤지은을 찾아왔다.“알고 있는 거 사실대로 다 알려줘요. 난 호섭 씨 사고에 대한 모든 사실이 알고 싶어요.”사모님은 너무 평온해 마치 다른 사람 같았다. 때문에 나는 사모님 상태가 여전히 걱정스러웠다.“사모님, 우선 맥 좀 짚어봐도 될까요?”“그럴 필요 없어요. 내가 뭘 해야 하는지 나도 알아야. 걱정할 거 없어요. 어젯밤 많이 생각해 봤고, 호섭 씨가 떠난 사실을 받아들였어요.”“내가 받아들일 수 없는 건 호섭 씨처럼 착한 사람이 남한테 죽임을 당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억울함을 풀어줄 거예요.”“난 강해져야 하고 호섭 씨처럼 용감해져야 해요. 그래야 호섭 씨가 마음 놓고 갈 수 있어요.”사모님은 애써 슬픔을 참으려 했지만 결국 참지 못하고 또 흐느꼈다.그 말을 들으니 나도 코끝이 시큰거리고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이제 우리에게는 같은 목표가 생겼다. 바로 진실을 밝히는 것.나는 얼른 마음의
나는 사모님 팔을 힘껏 잡으면서 사모님과 눈을 마주쳤다.“사모님! 현실을 받아들이세요. 더 이상 자신을 속이지 마세요. 사장님이 이런 사모님 보고 편히 가지 못하길 원하시는 건 아니잖아요.”내 말이 사모님의 마음에 큰 상처를 줬는지, 사모님은 순간 울음을 터뜨렸다.윤지은은 내가 강제로 사모님을 자극했다며 나를 탓했다.“유미 지금 안 그래도 나약한 상태인데, 왜 그런 말을 직접 해?”나는 너무 난감했다.“누구는 뭐 이러고 싶은 줄 알아요? 하지만 사모님이 계속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환상 속에 살고 있는데, 계속 이러면 상태가 점점 악화해요.”윤지은은 내 말에 일리가 있다고 인정했지만 그와 동시에 사모님이 또 상처받을까 봐 걱정했다.나도 사모님이 현실을 받아들이게 하려면 그 과정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고 있다. 하지만 사모님을 절망 속에서 끄집어내려면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나는 윤지은에게 말했다.“정말 사모님을 돕고 싶다면 모질어야 해요. 이럴 때 마음 약해지면 오히려 해치는 거예요.”윤지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내 말에 동의하는지, 내가 치료할 수 있도록 묵묵히 자리를 비켜줬다. 나는 나른하게 힘이 쭉 빠진 사모님을 잡고 진지하게 말했다.“죽은 사람이 다시 돌아올 수 없어요. 사모님이 속사한 건 알겠어요 하지만 지금 속상해할 때가 아니에요. 우리 할 일이 있어요.”“사장님 사고 단순 사고가 아니에요. 누군가 인위적으로 사고 낸 거예요. 사모님, 정신 차리고 우리와 함께 진실을 조사해요.”사모님은 텅 빈 눈으로 나를 보며 중얼거렸다.“그게 무슨 말이에요?”사모님을 깊은 슬픔에서 꺼내는 건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무엇보다 중요한 건, 서두르지 않고 그녀가 진실을 받아들일 수 있게 천천히 다가가는 것이다.나는 말투를 부드럽게 하며 방금 한 말을 또다시 반복했다.“사장님 교통사고에 수상한 점이 발견됐어요. 사모님도 사장님이 억울하게 돌아가시는 거 원하지 않죠? 우리 함께 진실을 알아내 사장님이 억울하게 죽임당하
나는 그 말을 들은 순간 식은땀이 송골송골 솟아올랐다.사모님 상태는 살짝 이상해 보였다. 아마도 의식이 혼미해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모를지도 몰랐다.나는 사모님이 바보 같은 짓을 할까 봐 서둘러 사모님 팔을 꼭 잡았다. 그러면서 계속 따라오지 않으면 강제로라도 데려올 생각이었다.“수호 씨, 이거 놔요. 난 남아서 호섭 씨랑 같이 있을래요...”사모님은 마구 버둥대며 소리쳤다.이러다가 사고가 날 것 같아 나는 아예 사모님을 어깨에 두러 업었다. 그러자 사모님은 곧바로 버둥거리며 소리쳤다.벼랑 끝에 서 있는지라 조금만 실수하면 함께 아래로 떨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나는 결국 사모님을 손날로 기절시켰다.내가 가드레일 안쪽으로 다시 넘어왔을 때 윤지은의 차가 마침 도착했다.“왜 그래?”윤지은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나는 사모님을 차에 앉히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사모님 지그 정신이 이상해서 현실과 환각을 구분하지 못해요. 방금 사장님이 춥다고 한다면서 옷 주러 내려가겠다고 했어요. 제가 제때 나타나지 않았으면 뛰어내렸을지도 몰라요.”윤지은은 내 말을 듣더니 미간을 찌푸렸다.“계속 이럴 순 없어. 우리가 잠깐은 지켜볼 수 있지만 평생 지켜볼 순 없잖아.”그때 내 머릿속에 문득 방법이 떠올랐다.“사모님께 사장님이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알려드리는 건 어때요?”“미쳤어? 이번 일로도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닐 텐데, 또 자극하자고?”윤지은은 내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이에 나는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제 할아버지가 남긴 의학 서적에 비슷한 사례가 있는데, 옛날에는 환자가 가족을 잃고 감정을 통제하지 못할 때 치료가 안 된다면 환자한테 희망을 줘야 한대요. 그 희망이 의학에서 말하는 기예요.”“그 기를 가진 환자가 음식 치료와 약물 치료를 함께 진행하면 서서히 회복할 수 있대요.”“사장님의 죽음에 수상한 점이 있잖아요. 그래서 사모님과 함께 그 사건을 수사하는 거예요. 아마 사모님도 사장님이 죽은 진실을 알고 싶을 거예요.”
장례식장 안을 모두 뒤져 봤지만 사모님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리 조급하지 않던 내 마음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불안해졌다.사모님은 현재 몸 상태도 안 좋고 정서도 매우 불안하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가족한테 어떻게 말해야 할지 걱정됐다.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내 마음은 점점 불안해졌다.그러다 결국 방법이 없어 나는 문득 사모님 번호를 떠올려 그쪽으로 전화를 걸었다.전화는 계속 긴 연결음만 들릴 뿐 아무도 받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내가 포기하려고 할 때 연결음이 꺼졌다. 액정을 확인하니 전화가 연결되었다.“사모님?”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수호 씨, 나 괜찮으니까 좀 내버려둬요.]사모님 목소리는 매우 우울해 보였고 기운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나한테는 너무 듣기 좋았다. 나는 다급히 물었다.“사모님, 어디 있어요? 너무 걱정돼요.”[혼자 있고 싶어요.]“알아요, 아는데 어디 있는지만 알려줘요. 사모님이 안전하다는 거 확인해야 해요.”전화 건너편에서 한참 침묵이 흘렀다.그때 갑자기 차 경적음이 들려왔다.그렇다는 건 사모님이 장례식장에 있는 게 아니라는 뜻이었다.나는 문득 사모님이 있을 수 있는 곳이 떠올랐다. 하지만 조심스럽게 물었다.“사모님, 알려주시면 안 돼요?”사모님은 아예 전화를 끊어버렸다.하지만 이미 대충 답을 얻은 나는 장례식장을 뛰쳐나가 택시를 잡고 사장님이 사고를 당한 곳으로 향했다.가는 길에 사모님을 찾았냐는 윤지은의 전화를 받은 나는 내 추측을 말했다.“아니요. 사모님 아마도 사장님 사고 난 곳에 있는 것 같아요.”[거긴 왜?]윤지은은 이해가 되지 않아 무의식적으로 물었다.“사장님 죽음이 수상해 직접 조사하고 싶었을 수도 있고, 단순히 사장님이 그리웠을 수도 있고... 아무튼 저 지금 가는 중이에요.”[그럼 먼저 건너가. 나 이따 바로 갈게.]나는 윤지은과 상의한 뒤 먼저 사장님이 사고 난 곳으로 향했다.사고가 난 곳은 절벽인데, 사모님은 마침 절벽
사모님의 이런 모습을 보니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입을 꾹 다문 채로 옆을 지켜드렸다. 그러다 저도 모르게 졸음이 몰려왔다.최근 계속 이리저리 다니다 보니 그동안 제대로 휴식한 적 없어, 나는 너무 피곤한 나머지 잠시 눈을 붙이려고 했다.하지만 잠을 편히 잘 수 없었다. 꿈속에서 정 사장님은 계속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나도 사장님을 구하고 싶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사장님과 닿을 수 없었다. 그러다 꿈의 마지막쯤 정 사장님은 가면을 쓴 사람에게 살해당했다.꿈에서 놀라 깬 나는 이미 온몸이 식은땀에 푹 젖어 있었다.비록 꿈이었지만 꿈에 나온 장면들이 너무 생동해서 직접 경험한 것 같았다.밖은 어느 때부터인지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고, 유리창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최면 노래처럼 느껴졌다.피곤함에 눈을 비비다가 문득 사모님이 침대에서 사라졌다는 걸 발견한 나는 다급히 호텔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디에도 사모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나는 호텔 안을 마구 달리며 윤지은에게 전화했다.“혹시 유미 사모님 봤어요?”[나 계속 밖에 있어서 유미 본 적 없는데? 네가 유미 호텔에서 돌봐주던 거 아니었어? 그런데 어디 갔는지 모른다고?]윤지은이 반문했다. 이에 나는 얼른 설명했다.“제가 너무 피곤해서 잠깐 눈 붙였는데 깨어나니 사모님이 사라졌어요.”[넌 대체 뭘 할 수 있어? 사람 하나 돌보는 것도 못해?]윤지은은 나를 꾸짖기 시작했다.나는 얼른 전화를 끊고 이리저리 찾으며 물어봤지만 호텔 직원들도 모두 사모님을 본 적 없다고 했다.결국 나는 프런트에 달려가 물었지만 프런트 직원들도 못 보기는 마찬가지였다.“그럼 CCTV 한번 확인할 수 있을까요?”“안 됩니다. 호텔 규정상 CCTV는 함부로 보여드릴 수 없어요.”나는 다급히 말했다.“제 친구 남편이 이틀 천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 친구 정서가 엄청 불안해요. 반드시 빨리 찾아야 해요. 지금 우선 CCTV 확인해 줘요. 제가 당장 경찰에 신고할 테니까...”“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자가 이렇게 빨리 남편 시신을 화장하려고 하는 이유가 없다.내가 분명 이번 교통사고가 단순한 사고가 아닐 거라고 말했는데 들을 생각도 하지 않다니.나는 슬쩍 찔러보려고 다시 물었다.“왜 그렇게 서둘러요? 혹시 뭐 알고 있는 거 아니에요?”여자는 내 말을 듣더니 얼굴색이 확 바뀌었다. 나는 뭔가 찔린 듯 불안해하는 여자의 행동을 눈에 담았다. 그러고는 갑자기 여자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뭔가 알고 있는 거죠? 알고 있는 거 다 얘기해요. 그게 이번 사고의 진실을 밝힐 수도 있어요...”“뭐 하는 거예요? 아파요.”여자는 내 손을 뿌리쳤다. 여자의 아들은 어머니가 괴롭힘당하는 걸 보자 바로 나를 막아섰다.지금 내 실력으로 두 사람을 상대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윤지은은 일을 크게 만들까 봐 내 팔을 쿡쿡 찔렀다.“됐어. 저 사람들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해.”나는 이대로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두 사람이 너무 수상해 반드시 기회를 잡아 두 사람의 입을 열어야 했다.하지만 점점 모여드는 구경꾼들 때문에 나는 결국 포기할 수박에 없었다. 만약 나 혼자였다면 내가 내키는 대로 소란을 피웠을 테지만, 정서가 불안정하기에 사모님한테 피해 가게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나는 장례식장을 떠난 뒤 두 사람을 찾아 결판 낼 생각이었다.오늘 장례식장에 나타난 유가족은 또 있었다. 바로 운전한 오 기사님 가족이었다.오 기사님 가족은 얘기가 잘 통해 화장을 조금 미루기로 했다. 그들 역시 이번 교통사고가 수상쩍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오 기사님 아들은 심지어 확신했다.“제 아버지 운전 실력은 엄청 좋아요. 사고가 난 곳도 생전에 수백 번도 더 다녔던 곳이라 그 길을 잘 알고 있어요.”“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도 처음에 믿지 않았어요. 난 이번 일 제대로 조사해서 아버지 결백을 증명할 거예요.”겨우 생각이 같은 사람을 찾았다는 생각에 나는 너무 기뻤다. 결국 조금희의
“들여보내 줘요. 나 호섭 씨랑 같이 있을래요. 같이 있어 줘야 해요...”장례식장 입구에서 유미 사모님은 몇몇 직원들에게 가로막혀 애타게 울고 있었다.그 모습을 보자마자 나와 윤지은은 급히 달려갔다.“사모님, 여긴 왜 왔어요?”장례식장도 규칙이 있는데 가족 방문 횟수가 제한되어 있다. 우리가 나가기 전 분명 사모님더러 호텔에서 휴식하라고 했는데, 여기까지 올 줄은 몰랐다.한참 애를 먹던 두 직원이 얼른 말했다.“얼른 이분 좀 말려 봐요. 이곳 냉기를 보통 사람들은 견디기 힘들어하세요. 그런데 자꾸만 안에 들어가겠다고 하시는데, 절대 안 됩니다.”“그리고, 절차는 다 밟았나요? 다 밟았다면 얼른 화장할 수 있게 사인하세요. 시체 안에 계속 두고 있는 것도 좋은 선택은 아니에요...”나는 손을 저으며 두 직원의 말을 잘랐다.“네, 알겠어요. 먼저 가서 일들 보세요.”나와 윤지은은 유미 사모님을 조용한 곳으로 데려갔다. 사모님은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고 너무 지쳐 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그 모습을 보며 윤지은도 드물게 눈시울을 붉혔다.“유미야, 이러지 마...”윤지은은 흐느끼느라 말도 제대로 내뱉지 못했다.사모님 역시 슬피 울부짖었다.“왜? 좋은 사람은 복이 온다며? 그런데 왜...”“호섭 씨는 이 세상에서 가장 착한 사람인데. 호섭 씨가 가난한 사람을 위해 얼마나 많은 선행을 베풀었는데 왜 이렇게 된 거야? 왜...”처절한 외침에 듣는 나도 너무 괴롭고 삼장이 칼에 베이는 것처럼 아팠다.이 순간 어떤 위로의 말도 소용없다. 그 어떤 위로도 사모님의 비통한 심정을 달랠 순 없으니까.나는 그저 사모님이 진정할 수 있게 침을 놔줄 수밖에 없었다. 잠시 뒤 나는 조금 안정이 된 사모님을 안아 차에 앉혔다. 창백하고 초췌한 사모님의 얼굴을 보니 내 마음은 더욱 괴로웠다. 그때 윤지은이 이를 악물며 악에 받쳐 말했다.“이번 사건 우리가 꼭 밝혀낼게.”그 순간 나도 윤지은과 같은 마음이었다. 나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고 그걸 당장 토
나는 윤지은이 갑자기 이렇게 말할 거라고 생각지도 못해 무척 감격스러웠다.나 혼자 다른 도시에서 도움 없이 이 사건을 조사하는 건 확실히 힘들다. 하지만 윤지은이 같이 조사하겠다고 하니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나는 느릿한 말투로 진지하게 말했다.“이번에 우리 같이 손을 잡고 정 사장님을 위해 진실을 밝혀요.”그동안 나와 윤지은은 서로 고양이와 개처럼 항상 만나기만 하면 싸웠는데, 이번만큼은 힘을 합쳐 함께 정 사장님 사건을 조사하기로 했다.우리는 해야 할 일을 확인한 뒤, 강한나를 만나러 갔다. 강한나라면 전문가의 관점에서 우리를 도와 증거를 수집할 수 있을 테니까.“최선을 다해 볼게. 하지만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마. 내가 방금 사건 기록을 봤는데 현장 사진과 다양한 증거들을 취합해 보면 단순 사고사일 수 있어.”“내가 의심했던 브레이크 흔적 거리인데, 이것도 어찌 보면 사고사일 수도 있고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어. 결론적으로 조사하기 매우 어려워.”한참 듣고 있던 윤지은이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현장 증거로 조사할 수 없으면 다른 쪽으로 출발해야겠네.”한창 낙담하고 있던 나는 윤지은의 말에 다급히 물었다.“혹시 방법이 있는 거예요?”윤지은은 팔짱을 끼면서 냉정하게 분석했다.“내가 알기로 운전한 기사는 호섭 씨랑 오랜 친구였고 운전 실력도 엄청 뛰어나. 이 점에서 출발하면 될 것 같아. 그리고 함께 차에 탔던 피해자 가족들도 조사해 볼 수 있어.”나는 맞장구치며 고개를 끄덕였다.“음, 좋은 방법인 것 같아요. 그럼 사고 유가족들부터 조사해 봐요.”강한나는 우리를 보며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정말 그렇게 할 거야? 이 사건이 만약 인위적인 거면 두 사람도 위험해. Y시는 국내 다른 도시들과 달라. 여긴 무법지대인 D국과 엄청 가까워.”윤지은이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그게 뭐? 의심 가는 구석이 있는데 그냥 덮자고? 그러고도 내가 무슨 친구야? 유미 지금 충격이 너무 커. 호섭 씨는 유미한테 가장 중요한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