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미화가 덤덤하게 비수를 꽂았다.[그건 수호 씨가 몰라서 그래. 유미가 어릴 때부터 각종 그릇을 수집하기를 좋아해. 특히 사기그릇. 그 집에 이상한 도자기 그릇이 엄청 많은 거 못 발견했어?]나도 그건 발견했다. 하지만 이해가 안 되는 건 여전했다.[그런 게 무드라는 거야. 남자들이 그런 걸 알 리가 없지.]그런 걸 아무리 몰라도 배상해야 할 건 반드시 배상해야 한다.“그럼 이런 그릇은 어디서 살 수 있어요? 인터넷에서 살 수 있어요?”[인터넷에 비슷한 건 있지만 모두 짝퉁이야. 정말 사려면 그 도자기 공방에 찾아가야 해. 하지만 꼭 찾으리라는 보장은 없어. 그 그릇은 유미가 어릴 때부터 사용한 데다 혼수로 가져간 거라 지금은 구하기 어려운 소장품에 속해.]윤미화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나는 터무니없다는 생각만 들었다.고작 그릇 하나가 소장품이라니.나는 전화를 끊은 뒤 다시 사모님 집으로 돌아갔다.“사모님, 죄송해요. 똑같은 그릇을 찾지 못했어요.”“괜찮아요. 이건 이제 찾기 어려워요. 이건 내가 호섭 씨를 위해 준비한 삼계탕이니 이따가 가져다줘요.”사모님은 화제를 전환하며 나를 탓하지 않았다.사모님이 좋은 사람인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어릴 때부터 애장하던 그릇을 나 때문에 쓰지 못했는데 탓하지도 않다니.나는 그릇을 몰래 사진 찍어 점심 휴식 시간에 공방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비록 똑같은 걸 찾을 수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최선을 다해보는 게 예의였다.나는 화인당에 삼계탕을 가져다주었다. 화인당 직원들은 사장님이 참 복 받은 사람이라며 모두 부러움의 눈길을 보냈다.“수호 형, 나 잠깐 따라와 봐요.”오민혁은 내 어깨를 감싸며 나를 구석으로 끌고 갔다.“무슨 일이에요? 뭔데 이렇게 비밀스러운 거예요?”“수호 형 친구인 조현성이 요즘 형의 그 선영 후배를 쫓아다닌다던데, 두 사람 어떻게 됐어요? 선영 후배가 동의했어요?”오민혁은 여전히 주선영을 마음에 두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딱히 내세울 장점이
“무슨 방법인데요?”나와 모태진은 좋은 친구이니, 모태진이 내 도움을 필요하다고한 이상 당연히 도와드려야 했다.모태진은 주위를 둘러보더니 나를 사람이 없는 구석으로 끌고 갔다. 마치 다른 사람에게 들키면 안 되는 것처럼. 그러고 나서 작은 소리로 말했다.“이 방법이 좀... 말하기 낯부끄러운데 이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어요.”“무슨 방법인데 낯부끄럽다는 거예요?”나는 궁금하면서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모태진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아내는 내가 다른 여자와 붙어먹었다고 불결해서 싫어하잖아요. 그러니 아내도 한번 다른 남자 만나게 하면 되지 않을까요?”나는 내 귀를 믿을 수 없어 눈이 커다래졌다.“미쳤어요?”“나 미친 거 아니에요. 나 진짜 진지해요!”“태진 씨가 너무 진지해서 미쳤냐는 거예요!”나는 높은 소리로 강조했다.“부부가 이러는 게 어디 있어요? 아내가 용서하지 않는다고 다른 사람 만나게 하겠다고요? 대체 결혼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예요?”모태진도 마음에 조급해 귀를 잡아당겼다.“나도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아 이러는 거잖아요.”“그게 무슨 말이에요! 아무리 방법이 없어도 그게 이유가 될 수는 없어요.”“난 수호 씨면 동의할 줄 알았어요...”모태진은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그 말을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내가 왜 동의할 줄 알았어요? 내가 평소에 바람기가 많다고 기본적인 도덕도 내다 버린 줄 알아요?”모태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침묵은 북인과 다름없었다.나는 진지한 눈빛으로 모태진을 바라봤다.“내가 아무리 바람기가 많다지만 책임을 안 지는 사람이 아니에요. 난 결혼이 뭘 의미하는지 알아요. 태진 씨의 방법으로 일을 처리하는 건 절대 아니라고 봐요.”“미안해요. 내가 수호 씨를 오해했네요. 난 수호 씨가 향락에 빠진 사람인 줄 알았어요.”모태진은 나를 향해 사과했다.내가 향락에 빠져 있다지만 그건 다 호기심 때문에 여러 여자를 만나는 거다. 게다가 나는 아직 결혼하지 않았다. 그러니 나는 고작해야
임화영은 슬쩍 자기 주머니를 열어 전에 내가 버렸던 본인의 팬티를 보여주었다.“무슨 뜻이에요?”나는 경고 섞인 눈빛으로 임화영을 바라봤다.그러자 임화영인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나를 따라오지 않으면 이걸 꺼내서 수호 씨가 내...”‘지금 나를 협박하는 건가?’‘내가 그걸 두려워할 줄 알고?’나도 차가운 미소를 되돌려주었다.“마음대로 해요. 가게 영업에 영향 줘도 괜찮다면.”임화영은 내가 이런 거로 저를 협박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다만 화가 나면서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원래 계획대로라면 임화영은 진작 목표를 다른 사람으로 바꿔야 했지만 분을 삭히지 못해 이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게, 미모도 뛰어나고, 몸매도 뛰어난 자신이 주해진 같은 사람의 마음도 얻었는데 미혼인 총각의 마음 하나 흔들지 못한다는 걸 인정할 수 없었다.임화영은 다시 내 사무실로 들어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궁리했다. 은밀한 방법이 안 된다면 간단하고 폭력적인 방법을 쓸 수밖에.임화영은 아예 옷을 모두 벗고 인어처럼 내 침대에 누워 있었다.물건을 가지러 사무실에 온 내가 본 건 다름 아닌 매혹적인 자세로 홀딱 벗고 침대에 누워 있는 임화영이었다. 그녀의 옷은 이미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나는 어두운 얼굴로 임화영을 바라봤다.“당신 물건 당장 주워요.”“수호 씨가 대신 주워줘요.”임화영은 고의로 나를 유혹했다.하지만 내 목소리는 여전히 차가웠다.“안 주우면 밖에 내다 버릴 거니까 잘 생각해요.”“어디서 감히!”“내가 감히 그럴 수 있을지 없을지 두고 봐요.”나는 문 앞에 다가가 민우를 불러왔다.“민우야, 네 방에 있는 빗자루 가져다줘.”민우는 내 사무실에 들어와 눈앞의 광경을 본 순간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단번에 눈치챘다. 그러고는 곧바로 방에 있던 빗자루를 가져왔다.내가 바닥에 있는 옷을 쓰레기처럼 쓸어내려고 할 때, 임화영은 흠칫 놀라 헐레벌떡 침대에서 내려왔다.“정수호, 당신 남자 맞아? 내가 이렇게까지 했는데
임화영은 시간을 대충 가늠해 살금살금 내 사무실에 들어왔다.“수호 씨, 수호 씨...”임화영은 내가 정말 의식을 잃은 게 맞는지 확인하려고 나를 흔들었다.나는 약간 어디러운 건 맞았지만 의식을 잃을 정도는 아니었다. 심지어 쓰러지는 순간 이미 이상하다는 걸 알아차렸다.하지만 임화영이 이렇게 비겁한 수단으로 나를 모함한 것일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젠장. 정말 별수단을 다 쓰네.’‘그래. 그럼 나도 당해주는 척 기회를 볼 수밖에!’나는 선반 위에 놓인 카메라를 한 번 확인했다. 이윽고 녹화 중인 걸 확인하고는 계속 쓰러진 척 연기했다.임화영은 내가 아무런 반응이 없으니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었다.“어린 것이 별것도 아니면서. 결국엔 내 손에 들어오게 될 거 왜 그랬어?”임화영은 말하면서 나를 부축해 침대에 세게 밀치더니 곧이어 침대에 올라 내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나는 그 순간 갑자기 눈을 떠 임화영의 손목을 잡았다.“뭐 하는 거예요?”임화영은 흠칫 놀라 얼굴이 창백해졌다. 하지만 그녀도 바로 사태를 파악하고 머리를 굴렸다.“나, 난 수호 씨가 불편하게 누워있길래 부축해 준 거예요.”“내 차에 약을 탔죠?”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묻고는 몸을 가누지 못하는 척 힘든 시늉을 했다. 그러고는 시선을 임화영 가슴에 고정한 채 침을 삼켰다.그 모습을 본 임화영은 이내 다시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더 이상 나를 두려워하지 않고 나를 마구 만져대기 시작했다.“맞아. 내가 약 탔어. 어쩔래? 괴롭지? 하고 싶지?”나는 조금 전 은침으로 이미 약효를 완화시켰기에 지금 보이는 모습은 모두 연기였다. 나는 연기를 계속했다.“뻔뻔스럽긴. 여자가 어떻게 남자한테 이런 짓을 할 수 있어? 주해진이 이러라고 시켰어?”임화영은 가소롭다는 듯 피식 웃었다.“주해진이 시킨 거 아니야. 내가 너무 화가 나서 벌인 짓이야. 내가 그냥 대주겠다는데, 네가 뭔데 싫어해? 그럴 자격 있어?”나는 속으로 싱긋 웃었다. ‘보아하니 계획 성공이네.’나는
나는 피식 웃고는 침대에서 내려와 선반 위에 놓인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임화영은 내 손에 있는 핸드폰을 보더니 벌떡 일어섰다.“아까 녹화했어? 이건 너무 비겁하잖아.”나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했다.“당신이 먼저 비겁하게 나한테 약을 타고 내 몸 노렸잖아. 난 똑같이 돌려준 것뿐이야. 왜? 당신만 비겁한 방법 사용할 수 있고 난 안 돼?”임화영은 내 말에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했다.“핸드폰 이리 내!”임화영은 명령투로 말했다.그 말투에 내 표정은 바로 싸늘해졌다.“무슨 꿈을 꾸는 거야? 이건 내가 당신을 주무를 수 있는 증거인데, 내가 왜 당신한테 주겠어?”그 순간 임화영의 머릿속에 주해진의 경고가 울려 퍼졌다. 주해진은 전에 분명 내가 상대하기 어려우니 경계를 늦추지 말라고 경고했었다.하지만 임화영은 그 경고를 무시한 채 내가 아직 사회 새내기라 자기가 쉽게 상대할 수 있을 거라고 자신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돌을 들어 제 발등을 찍은 격이 되었다.“계속 나한테 시비 걸지만 않고 가게에서 쓸데없이 자꾸만 돌아다니지 않는다면, 이 핸드폰 안에 있는 증거는 다른 사람한테 공개하지 않을게.”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내 패를 깠다.그 말을 들은 임화영은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노려봤다.“비겁해!”“하. 마음대로 지껄여 봐!”임화영은 잠시 생각하더니 이내 다시 미소를 지었다.“손에 증거도 있겠다, 이참에 나랑 자는 거 어때?”“당신 미쳤어?”“나 안 미쳤어. 사실 수호 씨 얼굴은 잘생겼잖아. 내 스타일이야. 나도 한 번 즐겨보지, 뭐.”임화영은 허리를 살살 흔들며 나한테 몸을 밀착해 왔다.나는 그런 임화영을 힘껏 밀쳐냈다.“그쪽 눈에 내가 잘생겨 보일지 몰라도, 내 눈에 그쪽은 별로거든. 당신은 내 스타일 아니야.”“공짜로 성용 좀 푼다고 생각하면 되잖아.”“나도 취향이라는 게 있거든. 내가 그동안 굶어서 아무거나 막 주워 먹는 사람도 아니고.”임화영은 내 말에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그녀는 분노 섞인 눈빛으로 나를 노려봤
아래층에 도착해 보니 웬 중년 남자 한 명인 몸을 웅크린 채 끊임없이 ‘아이고’를 외쳐며 곡소리를 냈다.그 남자 옆에 호피 무늬 치마를 입은 섹시한 여성이 서 있었는데, 머리는 산발인 데다 화장도 다 번지고 옷도 흐트러져있었다.눈치 있는 사람이라면 두 사람이 그 짓을 하다가 이렇게 됐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게다가 남자가 감싼 곳을 보면 너무 선명했다.나는 남자의 그곳을 흘긋거리며 말했다.“그곳을 다친 거야?”“응.”현성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병원에 가야지 정형외과에는 왜 왔대?”현성은 내 귓가에 대고 소곤거렸다.“저 남자의 마누라가 병원 고위층이라서 발각될까 봐 병원에는 가지 못 한대.”나는 속으로 남자를 자업자득이라며 혀를 찼다.아내가 병원 고위층이라면 분명 수입도 많고 권력도 많고 인맥도 많을 거다. 그런 아내를 잘 떠받들지는 못할 망정 밖에서 바람이나 피워대니 고생하는 게 당연하다.나는 남자 앞으로 다가가 쪼그려 앉았다.“환자분 상태에 대해서는 대충 알았어요. 하지만 여기에서는 간단한 처치만 해드릴 수 있지 수술은 큰 병원에서 받으셔야 해요.”“내가 큰 병원 안 가려고 여기 온 거잖아. 만약 이거 못 고치면 내가 여기를 싹 다 뒤엎을 거야.”남자는 아파 죽을 것처럼 신음을 흘리면서도 나를 협박해댔다.나는 피식 웃으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그렇다면 죄송하네요. 환자분 증상은 여기서 못 고쳐요. 그냥 가세요.”그때 호피 무늬 옷을 입은 여자가 앞으로 다가와 위세를 부렸다.“안 돼. 치료하고 싶어도 해야 하고, 싫어도 해야 해!”“왜요? 치료하지 않는 게 불법이라도 된다는 거예요?”“난 그딴 거 상관 안 해. 무조건 고쳐. 이 사람이 누군지 알아? 연씨 가문 사람이야. 이 사람한테 무슨 일 생기면 책임질 수 있어?”‘연씨 가문 사람?’‘설마 연승호와 무슨 관계라도 있나?’나는 몸을 다시 쪼그렸다.“당신 연승호와 무슨 사이인데?”“승호는 내 조가야. 내 아들이 바로 그 유명한 연재혁 변호사거든. 당신이 나 제대
현성은 걱정스러운 듯 나를 봤다.“이대로 보내줘도 괜찮아? 저 사람들 미움 사는 거 아니야?”“저 사람들을 이곳에 남겨도 치료하지 못하면 똑같이 미움 사. 그런데 무서워할 거 뭐 있어?”나는 덤덤하게 물었다.그 말을 들은 현성은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하긴, 그래! 그런데 나 진짜 새로운 세계에 눈떴어. 예전에 뉴스에서만 그 짓을 하다가 그곳이 부러지는 걸 봤는데, 오늘 그걸 내 눈으로 직접 보다니. 대체 어떤 자세로 하면 그곳이 부러져?”나는 키득키득 웃으며 말했다.“알고 싶어? 그러면 네 선영 후배랑 알아 나가면 되잖아.”선영을 언급하자 현성은 바로 흥분한 듯 말했다.“아, 네가 한번 얘기해 봐. 선영 후배 마음은 대체 뭘까?”“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네 여자 친구지 내 여자 친구야? 그리고 그동안 진도 좀 빼지 않았어? 왜? 또 무슨 일 있는 거야?”“아무 일 없어. 그냥...”현성은 갑자기 말을 더듬었다.나는 힘껏 현성을 걷어찼다.“말할래, 안 할래? 안 하면 말아. 난 그냥 조언하는 입장인데, 내가 왜 너를 재촉해야 해?”현성은 말하면서 엉덩이를 문질렀다.“우리 둘이 계속 마지막 단계까지 가지 못해. 왜 그럴까?”“이유가 뭔데? 이유가 있어야 할 거 아니야?”현성의 말은 너무 두루뭉술했다. 내 말에 현성은 자기와 주현영의 일을 상세히 털어놓았다. 알고 보니 주현영이 원하지 않는 게 아니라 현성이 중요한 타이밍에 자꾸만 물러난다는 거였다. 다시 말해서 현성은 아직도 배짱이 모자란 거였다.나는 현성에게 아이디어를 제시했다.“다음에 둘이 만날 때 술을 마셔. 술을 마시면 용기가 생기고 뭐든 할 수 있어.”“그게 될까?”“왜 안 돼?”“내가 오늘 점심에 선영이를 불러낼 거니까 우리 같이 밥이나 한 끼 하자.”현성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나는 현성을 돕기로 한 이상 끝까지 돕기로 결심했기에 흔쾌히 대답했다.“그래. 내가 같이 가 줄게. 민우한테 가게 맡기고 넌 자유를 즐겨.”그날 점심, 현성은
“오, 오빠가 뭘 하려는지 알아요. 만약 하고 싶으면 날 오빠한테 줄 수 있어요.”주선영은 입술을 살짝 깨물며 옷자락을 잡고 긴장한 표정으로 고백했다.이건 현성에 대한 인정이었다. 현성은 너무 설레어 심장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그는 두말없이 주현영을 와락 끌어안았다.그러자 주현영이 이내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여, 여기서는 안 돼요. 우리... 호텔 가요.”“그래, 바로 가자.”나는 현성과 주현영이 손잡고 뛰쳐나오는 걸 본 순간, 현성이 오늘 소원을 이룰 거라는 걸 알았다.나는 싱긋 웃으며 현성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파이팅.”“당연하지.”현성은 헤헤 웃으며 말했다.이윽고 두 사람은 손을 잡고 기쁜 얼굴로 떠나갔다.나는 얼른 이 기쁜 소식을 민우에게 알려주려고 전화했다.[수호야. 왜 그래? 나 지금 바빠.]민우는 목소리를 한껏 낮추고 말했다.그 목소리에 나는 의아했다.“너 지금 뭐 해? 가게 보는 거 아니었어?”[설아가 점심에 나 찾아와서 지금 설아랑 호텔에 있어.]“헐, 너 뭐야? 임설아랑 결실을 보는 거야?”‘왜 친구들한테 버림당해 혼자가 되었다는 느낌이 들지?’민우는 헤실 웃었다.[이만 끊어. 설아가 샤워하러 갔다가 지금 나와. 우리 오늘 마지막까지 갈 거거든.]민우는 말을 마치자마자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이 상황에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대충 음식을 먹고 가게로 돌아가는 것뿐이었다.하지만 혼자 사무실에 앉아 있을수록 기분이 안 좋았다.예전에는 내가 민우와 현성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었는데, 현재는 내가 두 사람을 부러워하는 꼴이 되었으니.하지만 윤지은과 애교 누나한테는 연락할 엄두도 나지 않고 형수는 아직 혼미해 있으니 누구를 찾아야 할지 고민이었다.나는 주위에 여자가 끊이지 않다고 이렇게 외로이 혼자 남는 날이 오게 될 줄은 몰랐다.‘정수호 몰락했네. 몰락했어!’내가 속으로 감개무량해하고 있을 때 아래층에서 직원 한 명이 나를 불렀다.“정 사장님, 누가 찾아왔어요.”“알았어요. 내려
하지만 형수는 너무 오랫동안 침대에만 누워 있어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에 반해 양춘옥은 힘이 넘쳐나 손쉽게 형수를 제압했다.형수는 순간 폭발해 버렸다.“당, 당신 뭐 하는 거야?”양춘옥은 얼른 아들에게 말했다.“아들, 뭐 해? 얼른 밧줄을 찾아오지 않고. 이 여자 윗몸만 움직일 수 있고 아래는 못 움직여. 너한테 마침 좋은 기회잖아.”양춘옥의 아들은 얼른 벨트를 풀더니 형수의 손을 묶으려고 다가갔다.그 순간 나는 방으로 쳐들어가 그 남자를 발로 걷어찼다.양춘옥은 그 순간까지 현실을 파악하지 못했다. 그때 나는 양춘옥의 머리채를 잡고 그녀의 뺨을 내리쳤다.나는 양춤옥이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뺨을 후려갈겼다.형수는 위험한 순간에 나타난 나를 보자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나 역시 형수가 깨어난 걸 보니 흥분을 주체할 수 없었다.“형수!”“수호 씨, 타이밍 너무 좋았어요. 이 둘은 인간도 아니에요! 감히...”형수는 흐느끼며 말을 잇지 못했다.나는 얼른 형수의 두 손을 꼭 잡았다.“알아요. 다 알아요. 형수, 걱정하지 마요. 이 사람들이 한 짓 내가 모두 찍었어요. 지금 경찰에 신고할게요.”양춘옥은 경찰에 신고한다는 내 말에 얼굴이 창백해지더니 마구 달려들어 내 손에 있는 핸드폰을 빼앗으려고 했다.나는 또다시 양춘옥의 뺨을 내리쳤다.그러자 이번에는 양춘옥의 아들이 나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모자 둘이 달려들어도 내 상대는 아니었다.양춘옥은 더 이상 방법이 없자 그제야 무릎 꿇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다.“정 사장님, 제발 신고하지 말아 주세요. 제 아들이 이제 막 출소했는데 또 잡히면 이번에는 끝장이에요.”나는 이를 악물며 양춘옥을 바라봤다.“당신 아들 생각하기 전에 우리 형수는 생각했어? 내가 마침 집에 오지 않았다면 당신과 당신 아들이 형수한테 끔찍한 짓을 저질렀을 거잖아.”“내가 아줌마를 얼마나 믿었는데, 이렇게 보답하는 거야? 정말 악독하기도 하지. 오늘 당신도 법의 처벌을 받게 될 거야.”“안 돼요. 정 사장
“뭐요? 너무 까다로운 거 아니에요?”“까다로운 게 아니라 원래부터 얌전하지 않은 여자인 것 같아. 남편과 잘 지내지 않고 별 같잖은 남자랑 바람이 났어. 정수호라는 사람인데, 매일 이 여자 몸을 닦아주러 와서 이 여자를 형수라고 불러...”“너무 막 나가는 거 아니에요? 이런 일이 다 있다니. 이 여자도 참 뻔뻔하네요.”아들의 말에 양춘옥이 말했다.“그러니까 내가 널 불러온 거잖아. 이 여자도 워낙 얌전하지 않은 여자니까 너도 욕구나 풀어보라고. 아들, 너 이제 막 감방에서 나와 많이 쌓였을 거 아니야?”“밖에서 아가씨 찾기보다 이 여자한테 욕구를 푸는 게 더 나아. 적어도 이 여자는 깨끗하잖아.”고태연은 두 모자의 대화를 들으면 들을수록 화가 치밀어 당장이라도 일어나 양춘옥의 뺨을 후려갈기고 싶었다.하지만 결국 그녀가 가장 걱정하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그것도 그녀가 혼자 집에 있을 때 말이다.이런 상황에서 당하면 다른 사람은 아무도 모를 거다.고태연은 너무 무섭고 두려웠다. 심지어 이 두 모자에게 이토록 모욕당할 바에는 죽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리고 그 시각 양춘옥과 아들의 대화를 들은 나도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하지만 나는 서둘러 안으로 쳐들어가지 않았다.나는 우선 거실에 설치했던 감시 카메라를 찾았다. 그랬더니 카메라는 어느새 구석으로 옮겨졌다.‘이 아줌마가! 나는 그래도 믿고 매일 카메라를 돌려보지 않았는데, 이런 짓을 하다니.’나는 핸드폰 녹화 기능을 켜고 방 안을 몰래 촬영했다.탐정 사무소에서 일을 하게 된 이후로 나는 뭐든 증거싸움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때 남자가 형수 몸에 바짝 붙어 다리에 코를 가져다 대며 냄새를 맡았다.“냄새 좋다. 식물인간한테서 이렇게 좋은 냄새가 나다니. 피부도 이렇게 좋고. 대박, 몸매도 완전 끝내주잖아.”양춘옥은 옆에서 키득거렸다.“당연하지. 그리고 무엇보다 이 여자는 깨끗해. 아들, 얼른 하지 않고 뭐 해?”“헤헤. 그럼 엄마는 밖에서 망 좀 봐...”양춘옥은
“나 그만 놀려요. 내가 보고 싶은데 왜 애교 누나 집에 와서 혼자 술을 마셔요?”나는 아직 어려 정치계 판을 잘 모른다지만 그렇다고 바보는 아니다.남주 누나는 내 말에 피식 웃었다.“우리 푸들 많이 똑똑해졌네? 예전처럼 타격감이 좋지 않아. 하지만 점점 더 귀여워.”나는 자꾸만 내 몸을 타고 올라오는 남주 누나의 손을 덥석 잡았다.“말해요. 대체 무슨 일이에요? 일에 무슨 문제 생겼어요?”“응. 이 세상에서 날 괴롭힐 수 있는 건 일밖에 없어.”“왜죠? 왜 혼인이나 가정 문제는 될 수 없어요?”“헛소리 아니야? 혼인과 가정이 나보다 중요할 리 없잖아.”‘맞다. 누나도 가정보다 자기 지위가 우선인 여자였지. 백연우처럼.’“그래서 일은 해결됐어요?”나는 그 말을 내뱉은 순간 후회했다. 해결되었으면 술로 기분을 달랠 리 없을 테니까.하지만 남주 누나는 의외의 답을 내놓았다.“해결된 셈이지. 하지만 강등됐어.”“얼마나요?”“아무 실권도 없는 말단직으로. 그래도 괜찮아. 이제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내 약점을 잡고 나 협박하는 사람 없을 테니까.”남주 누나는 강등된 건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했다. 그건 아마도 자기 위로일 수 있었다.“이 얘기는 여기까지 하고 시간도 아까운데 계속 즐겨볼까?”남주 누나는 또다시 나에게 다가왔다. 심지어 리듬 있는 음악을 틀어 놓아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며 나에게 또 충격을 안겨주었다.나와 남주 누나는 그사이 애교 누나가 집에 다녀갔다는 사실을 몰랐다.애교 누나는 내가 걱정되어 직접 와 봤다. 하지만 방에서 들리는 나와 남주 누나의 소리에 얼굴을 붉히며 물러났다.“남주였네. 다른데 좀 가지. 왜 우리 집에서 수호 씨를 꼬시는 거야?”애교 누나는 입을 삐죽거렸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뒤돌아섰다.나와 남주 누나는 한밤중까지 몸을 섞고 피곤한 몸을 한 채 잠이 들었다.오랜만에 푸는 욕구에 우리 둘 다 너무 흥분해 버린 탓이었다.심지어 남주 누나는 열정적이다 못해 심지어 내가 지금 동영상 촬영 현
남주 누나는 헤실 웃으며 말했다.“정수호네. 이리 와, 와서 한잔해.”나는 남주 주나 쪽으로 걸어갔다. 가까이 가봤더니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와인 두 병 중 한 병은 이미 텅 비어 있었고, 남주 누나도 이미 술에 취했는지 얼굴이 발그스름했다.“누나, 혼자 이렇게 마신 거예요?”남주 누나는 똑바로 앉아 내 팔을 감싸안았다.“너 아니면 애교를 불러 곁에 있어 달라고 부탁하려고 했는데 요즘 바쁘다고 해서 안 불렀어. 그런데 마침 이렇게 와 버렸네? 나랑 한잔해.”나는 지난번 남주 누나를 봤던 때를 떠올렸다. 그때 누나도 기분이 안 좋아 보였는데 아마도 일 때문인 것 같았다.그런데 이번에 이토록 취해 있는 걸 보니 일이 잘 안 풀리는 모양이었다.나는 남주 누나 손에 있는 와인을 빼앗았다.“그만 마셔요. 취했어요. 부축해 줄 테니 방에서 휴식해요.”“정수호, 예전에 너한테 장난치던 때가 그리워. 도 장난칠 테니까 내 장난 받아줘. 응? 나도 기분 좀 좋아지게.”남주 누나는 몽롱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그게 대체 뭐가 그립다는 건지.’나는 그때 너무 단순해 항상 남주 누나한테 농락당했다. 심지어 몇 번이나 나를 유혹하는 남주 누나를 눈앞에 두고 입맛만 다시며 마음을 졸였었다. 하지만 나는 그때가 조금도 그립지 않았다. 나는 하고 싶을 때면 마음대로 하는 지금이 더 좋다.“내가 네 소원 들어줄게.”남주 누나는 내 목을 끌어안고 취한 말투로 말했다.누나의 완벽한 몸매를 보니 나도 솔직히 몸이 달아올랐다. 하지만 남주 누나는 지금 많이 취한 상태고, 기분도 안 좋아 보이니 몸을 섞는다고 즐겁지는 않을 거다.“됐어요. 누나 지금 취했어요. 부축해 줄 테니 방에서 자요.”“나 많이 안 마셨어. 그냥 조금 알딸딸한 정도야. 나도 내가 무슨 짓을 하는지 알아.”“있잖아. 나 요즘 너무 바빠서 남자 만날 시간도 없었어. 그러니 오늘 너 땡잡은 거야.”남주 누나는 말하면서 나를 자기 쪽으로 잡아당겼다.나는 술에 취한
“정 사장님, 물 바꿔드릴까요?”내가 형수의 팔을 닦아주는 동안 양춘옥이 방에 들어와 열정적으로 물었다.그 모습에 나는 간단히 말했다.“아니에요. 거의 다 닦아요.”나는 형수가 뭘 걱정하는지 몰랐다. 무엇보다 양춘옥이 문제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그때 양춘옥이 목적성이 다분한 질문을 했다.“정 사장님, 요즘 안 보이시던데 바쁘셨나요?”“네. 요즘 일이 바빠서 매일 오지 못해요. 그러니 이모님이 우리 형수님 잘 돌봐주세요. 참, 요즘도 제가 바쁘니 부탁드릴게요.”양춘옥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며 싱긋 웃었다.“정 사장님은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무조건 잘 돌봐드릴게요.”“형수, 다 닦았어요. 형수가 깨끗한 걸 좋아하는 거 알고 특별히 피부 관리하는 스킨로션도 발라줬어요.”나는 형수를 돌본 뒤 옆에서 대화를 나누다가 고아연이 돌아온 뒤에야 떠났다.고아연은 나를 집 앞까지 마중하며 물었다.“요즘 바빠?”“네, 왜 그래요?”“아니, 별 건 아니고. 지난번에 찍는다던 영상을 안 찍었길래 바쁜가 해서.”“요즘 너무 바빠서 정신이 없었어요.”이건 단순한 오락이라 돈을 버는 것에 비하면 당연히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그래. 그럼 앞으로 안 찾을게. 내 연락처 삭제해.”고아연은 갑자기 말투가 날카로워졌다.그 말에 나는 순간 멍해졌다.“여자들은 다 이래요? 심심하면 연락처 삭제하고? 이런 거 엄청 예의 없는 거 알아요?”고아연은 팔짱을 낀 채 웃었다.“우리는 원래부터 아는 사이도 아니었어. 그런데 지금 바빠서 영상 찍을 시간도 없다는데 내가 네 연락처를 왜 남겨? 난 원래 이래. 연락 자주 하지 않는 사람은 삭제해. 수호 씨도 마찬가지야.”나는 일부러 고아연에게 맞섰다.“그럼 형수가 지금 이러니까 형수도 삭제했겠네요?”“그래.”“흥. 누가 믿을 줄 알고.”“믿든 말든.”고아연의 모습은 거짓 같지 않았다.나는 이 순간 고아연을 또다시 봤다.“바쁜 일 다 처리하면 도와줄게요. 연락처 삭제하지 마요. 앞으로 또다시 추가하
애교 누나 얘기를 언급하니 내 기분은 저절로 다운되었다.“난 누구랑 결혼할지도 모르겠어.”“왜? 애교 누나랑 사이가 틀어졌어?”민우가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그런 건 아니야. 그냥 애교 누나랑 나는 결혼할 사이가 같지 않아. 애교 누나가 나한테 너무 관대하고 너무 풀어줘. 그래서 너무 진실감이 없어.”“헐. 여자 친구가 풀어주는 게 얼마나 좋은데? 네가 밖에서 다른 여자 만나도 뭐라 안 하고 오히려 응원해 준다며? 그렇게 좋은 여자 손전등 켜고 찾아도 없어.”현성과 민우는 나를 부러워했다.사실 나도 예전에는 똑같은 마음이었지만 지금은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다.애교 누나는 너무 좋고 너무 관대하여 질투도 하지 않아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심지어 가끔 이 모든 게 허상이라는 생각도 들곤 한다.그에 반해 윤지은은 또 나에게 너무 현실을 체감하게 해준다. 좋아할 때도 질투할 때도 있어 오히려 더 커플 같은 느낌이 들곤 한다.“정수호, 너 진짜 쓰레기네. 너 설마 애교 누나 버리려고 그래?”현성이 갑자기 물었다.“헛소리. 내가 언제 버린다고 했어?”“그럼 아까 발언 무슨 뜻인데?”“난 그냥 애교 누나가 너무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뜻이지 버리겠다는 뜻 아니야. 함부로 누명 씌우지 마.”나는 바로 현성을 반박했다.하지만 그때 민우가 바로 끼어들었다.“사실 나도 네가 좀 쓰레기 같아. 아마 네가 만난 누나들이 다 너 같은 나쁜 남자를 좋아하나 보다.”“젠장. 내가 너희들한테서 무슨 좋은 말을 듣겠냐?”그날 저녁 퇴근 후 나는 형수네 집에 들렀다.그동안 너무 바빠 형수를 보러 오지도 못하고 몸을 닦아주지도 못했기에, 나는 얼른 따뜻한 물을 담아 형수 몸 곳곳을 닦아주었다.형수는 이렇게 오랫동안 누워만 있었지만 뺌은 여전히 발그스름하고 피부도 백옥 같은 피부에 핑크빛이 감돌았다.아마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그저 잠자고 있다고 생각할 거다.내가 형수의 몸을 닦아주는 동안 형수의 가슴은 사실 콩닥콩닥 북을 쳤다.‘수호 씨가 이제야 날
“이 얘기는 이쯤에서 하고. 말해요, 서나연 씨 일 외에 다른 볼 용건 있어요?”나는 화제를 다시 끌어왔다.그러자 소여정은 내 턱을 잡으며 생글생글 웃었다.“있지 그럼. 너 놀리러 왔어. 내가 너 놀리는 거 오랜만이잖아.”“미쳤어요?”나는 다급히 소여정의 손을 쳐냈다.“날 미친X 취급해? 내가 진짜 너 가만 안 둔다?”“못 믿겠어요. 나 이제 임천호도 안 두려운데 소여정 씨를 두려워하겠어요?”나는 소여정에게 계속 휘둘리고 싶지 않았다.소여정은 대단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오호라. 며칠 새에 많이 컸네? 그런데 그런 모습 점점 더 좋아지는데?”소여정은 정말 역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매번 나타났다 하면 나에게 귀찮은 일을 던져주곤 한다.물론 내가 이제 임천호를 두려워하지 않는다지만 그렇다고 귀찮은 일에 휘말리고 싶지는 않았다.나는 그저 장사를 잘해서 돈을 많이 벌고 싶다.내가 소여정을 무시하자 소여정도 나를 보는 체도 하지 않고 스스로 가게 안을 둘러봤다. 그러다가 결국 몇 가지 선물 세트를 골랐다.소여정이 계산하려고 할 때 나는 다시 그녀에게 다가갔다.“선물 세트 사서 누구한테 주려고요?”“이젠 임천호 안 두렵다며? 내가 누구한테 주든 무슨 상관이야? 아니면 내가 이 선물을 가져갔다가 이 가게에서 샀다는 걸 들킬까 봐 그러는 거야?”소여정은 마치 내 배에서 나오기라도 한 것처럼 나를 빠삭하게 알았다.“찾아오겠으면 찾아오라고 해요. 소여정 씨는 정상적인 소비예요.”나는 말발로 소여정을 이길 수 없다는 생각에 바로 뒤돌아 떠나갔다. 하지만 마음은 여전히 후들거렸다.소여정은 물건을 구매한 뒤 가게에서 택배로 보낼 수 있는지 물었다. 그 질문에 점원 한 명이 가능하다고 대답했다.소여정은 주소 하나를 남기고 직원더러 선물 세트를 주소에 적인대로 보내달라고 당부했다.소여정이 떠난 뒤 나는 그 위에 적힌 주소를 확인했다. 주소는 H시로 되어 있고, 받는 이는 ‘소원규’로 되어 있었다.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이름에 한참을 떠
“누구한테 들었어?”“그건 상관하지 마요. 맞는지 아닌지만 대답해요.”나는 얼렁뚱땅 넘기려고 했다.다행히 소여정은 내 질문을 회피하지 않고 바로 인정했다.“맞아. 나도 예전에 윤지은과 임유미처럼 잘 사는 집 딸이었어. 안 그러면 우리 넷이 왜 친구가 됐겠어?”하긴. 소여정은 나를 바라보더니 갑자기 물었다.“뭐 하나만 물을게. 소씨 가문 사람들이 강북에 있지?”“그걸 어떻게 알아요?”나는 흠칫 놀랐다.그 말에 소여정이 대답했다.“어떻게 알았는지는 알려고 하지 마. 맞는지 아닌지만 말해.”소여정이 이렇게 묻는다는 건 이미 단서를 찾았다는 뜻이기에 나는 사실대로 대답했다.“맞아요. 임천호 아내가 강북에 와서 요즘 유미 사모님과 같은 동네인 백조의 호수에 살아요.”“백조의 호스? 보아하니 나도 그곳에 집을 마련해야겠네.”소여정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그 말에 내 눈은 휘둥그레졌다.“지금 제정신이에요? 소씨 가문 사람들이 그곳에 있는데 멀리 숨지는 못할망정, 같은 동네에 살겠다고요? 대체 무슨 생각인 거예요? 설마 서나연 씨를 쫓아내고 본인이 임천호 아내가 되려고 그래요?”소여정은 생글생글 웃으며 물었다.“안돼? 임천호가 얼마나 대단해. 나한테도 잘해주고.”“대단하긴 무슨. 부시장님과 윤 회장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더만.”나는 내가 임천호 뒷담화를 하는 날이 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소여정은 나를 다시 봤다는 눈빛으로 바라봤다.“정수호, 대단하네. 임천호를 그렇게 말하고. 임천호가 안 뒤 죽이려고 할까 봐 두렵지 않아?”“내가 임천호 산하의 대출 회사도 무너뜨렸는데, 임천호를 무서워하는 거로 보여요?”나도 비록 내가 너무 잘난체 한다는 걸 알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정말 참을 수가 없다.이 세상에 허영심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게다가 이건 내가 평생 자랑스럽게 말하고 다닐 일이기도 하다.소여정은 입을 가리며 웃었다.“아주 어깨뽕이 하늘로 치솟는구먼? 그 대출 회사 임천호한테 엄청 중요한 회사인 건
“오, 오빠가 뭘 하려는지 알아요. 만약 하고 싶으면 날 오빠한테 줄 수 있어요.”주선영은 입술을 살짝 깨물며 옷자락을 잡고 긴장한 표정으로 고백했다.이건 현성에 대한 인정이었다. 현성은 너무 설레어 심장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그는 두말없이 주현영을 와락 끌어안았다.그러자 주현영이 이내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여, 여기서는 안 돼요. 우리... 호텔 가요.”“그래, 바로 가자.”나는 현성과 주현영이 손잡고 뛰쳐나오는 걸 본 순간, 현성이 오늘 소원을 이룰 거라는 걸 알았다.나는 싱긋 웃으며 현성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파이팅.”“당연하지.”현성은 헤헤 웃으며 말했다.이윽고 두 사람은 손을 잡고 기쁜 얼굴로 떠나갔다.나는 얼른 이 기쁜 소식을 민우에게 알려주려고 전화했다.[수호야. 왜 그래? 나 지금 바빠.]민우는 목소리를 한껏 낮추고 말했다.그 목소리에 나는 의아했다.“너 지금 뭐 해? 가게 보는 거 아니었어?”[설아가 점심에 나 찾아와서 지금 설아랑 호텔에 있어.]“헐, 너 뭐야? 임설아랑 결실을 보는 거야?”‘왜 친구들한테 버림당해 혼자가 되었다는 느낌이 들지?’민우는 헤실 웃었다.[이만 끊어. 설아가 샤워하러 갔다가 지금 나와. 우리 오늘 마지막까지 갈 거거든.]민우는 말을 마치자마자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이 상황에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대충 음식을 먹고 가게로 돌아가는 것뿐이었다.하지만 혼자 사무실에 앉아 있을수록 기분이 안 좋았다.예전에는 내가 민우와 현성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었는데, 현재는 내가 두 사람을 부러워하는 꼴이 되었으니.하지만 윤지은과 애교 누나한테는 연락할 엄두도 나지 않고 형수는 아직 혼미해 있으니 누구를 찾아야 할지 고민이었다.나는 주위에 여자가 끊이지 않다고 이렇게 외로이 혼자 남는 날이 오게 될 줄은 몰랐다.‘정수호 몰락했네. 몰락했어!’내가 속으로 감개무량해하고 있을 때 아래층에서 직원 한 명이 나를 불렀다.“정 사장님, 누가 찾아왔어요.”“알았어요. 내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