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을 들은 우문호는 그녀의 의연한 표정을 보자 문득 지난 일들이 생각나 웃음을 참지 못했다."난 지금 진지한데 왜 웃어?"원경릉은 그를 노려보았다.우문호는 멈추고 손을 뻗어 그녀의 얼굴을 들었고 눈가의 웃음기는 적어지지 않았다."그때 기억나? 황조부께서 아프셔서 우리가 명을 받고 궁에 들어가 시중을 들어줬잖아. 그때 난 당신한테 아주 악랄했어. 당신이 중상을 입고 비녀를 들어 자신을 지키며 날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을 하고는, 내가 가까이 가자마자 바로 뛰어올라 비녀를 나에게 대고 있었잖아."그는 웃고 있었지만 눈가에서는 점점 후회와 안타까움이 가득해졌다."난 그때 정말 쓰레기였어."원경릉은 쓴웃음을 지었다."왜 기억 못 하겠어? 그때 난 정말 구렁에 빠져 살길이 없는 줄 알고 전전긍긍하며 살얼음판을 걷는 것만 같았어. 다행히 태상황을 찾아 도움을 청해서 그제서야 사람답게 살 수 있었지.""미안해…!"우문호는 침울하게 한숨을 내쉬었다."그건 내가 살면서 가장 잘못한 일이야."원경릉이 제일 답답했던 건, 애초에 잘못을 한 건 다른 원경릉이었지만 고생은 그녀가 했다는 것이다."됐어, 요 몇 년 동안 나한테 괜찮게 대해준 것을 봐서 이만 용서해 줄게."원경릉이 너그럽게 말했다."괜찮게?"우문호는 동의할 수 없었다."이걸 괜찮다고 할 수 있는 거야? 나 몇 년 동안 당신 말고 다른 여자들은 거들떠 본 적도 없어.""그건 당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지, 나한테 잘해준 건 아니잖아."그녀는 눈웃음을 지었다. 다섯째는 이렇게 은혜와 원한이 분명하고 선을 그을 줄 아는 게 귀엽다. 그때 주명취가 간사한 여인인 걸 알고 바로 옛정을 끊고 쓸데없는 엮임이 없었다.그와 방금 알게 되었을 때, 그는 수를 잘 쓰지 못했었다. 하지만 몇 년 동안 각종 풍파와 교활한 음모 속을 헤쳐 나오며 지내온 것은 정말 쉽지 않았다.시간은 정말 빠르게 흘러간다. 그 일들은 마치 어제 일어난 것 같은데, 그들은 이미 셋째까지 임신했다."부인, 천천히 가, 길
"부황께서는 동의하시지 않을 거에요."우문호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괜찮아요, 당신이 미래의 황제가 될 테니 저와 계약을 하면 됩니다."이리 나리가 입을 삐죽거리자 누군가 계약서를 들고 우문호 앞으로 왔다.우문호는 계약이 모두 준비된 것을 보고 그가 임시로 생각해낸 게 아니란 것을 알 수 있다. 어젯밤에 그렇게 침착하게 한 사람이 절반씩 내자고 했는데, 어쩌면 그는 자신이 돈을 내놓지 못할 것을 예상했을지도 모른다.아니나 다를까 이리 나리가 담담하게 말했다."어차피 당신은 돈을 모을 수 없어 공주에게 달라 해야 할 텐데요. 공주의 돈도 제 돈이라 결국 제가 모든 돈을 내는 것인데 왜 절충하는 방법을 취하지 않습니까, 당신과 조정이 모두 돈을 낼 필요가 없어요. 내가 손익을 홀로 부담할건데 이러면 서로 좋은 일 아닌가요?""난 50만 냥이 있네!"우문호는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50만 냥 보다 더 꺼낼 수도 있어요."우문호는 이 말을 꺼내자마자 바로 속았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의 이 계략은 공격도 방어도 할 수 있다. 동의를 하지 않는다면 우문호는 돈을 더 꺼내야 하고, 동의를 한다면 무기의 소유권을 잃는 것과도 같다.아이고, 요즘 세상, 공짜로 얻어먹는 게 왜 이리도 힘든 걸까?이리 나리가 웃으며 말했다."굳이요? 이 100만 냥을 다 꺼내게 된다면, 분명 초왕부는 가난에 허덕일 것인데, 혼자 가난하면 그만이지, 처자식에게까지 누를 끼쳐야 합니다. 알고 계시죠? 이 돈을 꺼내서 쓰고 나면 엎질러진 물처럼 돌려받을 수도 없다는 것을."우문호는 이를 악물었다."돌아가서 원 선생이랑 상의를 해봐야겠어요.""그럼, 그러세요!"이리 나리가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우문호는 몸을 돌리고 돌아갔다. 백만 냥은 정말 너무 많으니 원 선생이 동의를 하지 않을 수도 있다.돌아가 원경릉에게 말하자 원경릉은 반대하지 않고 오히려 그를 위로했다."괜찮아, 그저 백만 냥일 뿐이야. 나중에 설랑을 이리 나리네에 빌려주면 바로 본전을 얻을 수 있을 거야
이 일이 다 처리된 후 우문호는 원경릉에게 궁에 한 번 더 함께 가자고 했다. 호비 마마를 찾아 얘기를 해보고 방법을 강구해 부황을 궁 밖에 갈 수 있게 달래야 했기 때문이다.우문호는 그렇게 생각했다. 부황은 약 값과 진찰금이 높은 게 조정에 있어 이득이 결점보다 많다 느끼고 있기에 필경 세금을 받을 때는 편하다고 말이다.우문호가 찾아보니 북당 의원과 약방에서 납부한 세수는 비교적 많았다. 부황은 가난을 두려워했고 국고를 위해 수입을 늘일 수만 있다면 뭐든지 기꺼이 하려 했다.그는 약 값이 그저 10~20냥 정도만 비싸지니 의원에 가서 병을 보는 백성들이 개의치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그러나 이것은 높은 자리에 위치한 그의 생각일 뿐이다. 그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가장 좋은 방법은 그가 직접 보고 백성들의 고통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마음을 단단히 먹고 개혁할 수 있다.원경릉은 우문호의 말대로 궁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호비에게 직언을 할 수 있고 호비도 사리에 밝은 사람이니 태자와 원경릉을 지지했다. 모든 일의 경과를 듣고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경성도 그러한가? 난 고한(苦寒) 지역에서만 그런 줄 알았어. 그 당시 변방에 있을 때도 의원의 진료비는 아주 값비싸서 일반 백성들은 병을 볼 수가 없었어. 병에 걸리면 그저 스스로 약초를 캐오거나 시골 의사를 찾았지. 부중 한 계집애의 동생이 나무에서 떨어졌는데, 처음에는 크게 다치지 않아 보였어. 하지만 의원을 청할 돈이 없으니 그 아이의 어머니가 산에서 약초를 캐와 상처에 덮어 놓았어. 그렇게 덮고 있다 보니 상처는 고름이 생겼고 아주 크게 부어올라 며칠 동안 고열에 시달렸지. 그제야 그 계집애가 본 궁의 앞에 무릎을 꿇고 의원을 청해달라 부탁하더구나. 하지만 그때는 이미 늦었고, 의원이 보고는 되돌릴 수 없다 하더군. 그러니 애초에 치료를 할 수 있었다면 그 목숨은 잃지 않았을 거야."원경릉은 마음속으로 괴로웠다. 그런 사람들이 아마 적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어쩔 수
"황후에게로 갔다."호비가 말했다.원경릉은 다소 의아했다."황후 마마에게요? 혹시 황후 마마께서 부르신 건가요?"호비가 물었다. "스스로 모후에게 가서 8황자와 놀겠다고 중얼거렸어, 하지만..."호비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을 하려다 머뭇거리는 모습이었다."왜 그러십니까?"원경릉이 이를 보고 묻자 호비는 목소리를 낮추고 말을 이어 나갔다. "요새 귀비 마마가 황후와 우호적으로 지내고 있는 것 같아. 매일 동행하러 가는 것도 모자라 특별히 사람을 불러 궁에 개인 주방까지 만들라 명했어. 가끔은 아예 황후 쪽에서 지내기도 하는데, 귀비는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이냐? 태자비가 알려줄 수 있겠나?"원경릉은 당연히 알고 있다. 하지만 호비는 종래로 잡담을 궁금해하는 사람이 아닌데도 왜 알아보기 시작하는 걸까. 아마도 귀비와 황후가 연합을 해 무슨 일을 할지 몰라 걱정하는 듯하다. 아무래도 그녀는 지금 총애를 많이 받고 있고 아들을 낳은 뒤 또 임신을 했다. 어머니가 된 사람이니 조심스러워지기 마련이다.원경릉은 이 일을 호비에게 알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 생각해 귀비가 부탁했던 일을 그녀에게 알려주었다.호비는 그 말을 듣고는 마음이 조금 놓였다."이 일 때문이었구나, 그럼 정말 다행이네.""너무 많은 걱정을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마마. 몇 년 동안 그렇게 많은 일들이 일어났으니, 후궁에서도 더 이상 소란이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호비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본 궁은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얼마 전에 누군가가 황귀비 앞에서 얘기를 꺼냈어, 후궁이 오랫동안 수녀를 뽑지 않았으니, 수녀를 뽑을 때가 되었다고. 그건 조상이 정한 규칙이라고, 황상이 본 궁만 총애해서는 안 된다 말했어.""누가 제기한 것입니까?"원경릉은 의아했다. 이 일은 들어본 적 없었다.호비는 눈가에 다소 근심을 품고 말했다."진비다."원경릉은 진비가 또 소란을 일으킬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우문군이 죽었으니 진비도 착실하게 살아갈 것이라 생각했다."지금 후궁에서 가장
그녀는 원경릉을 바라보며 말했다."그러니 너와 태자가 정말 부럽구나, 이렇게 오랫동안 태자는 한 번도 다른 사람과 결혼할 생각을 하지 않고 너만 지키며 살았다."원경릉이 가볍게 답했다."예, 그렇습니다. 저는 그래서 행복하다 생각합니다."원경릉은 말은 이렇게 했지만 속으로 조금 풍자적으로 느껴졌다. 그녀가 행복하다고 느낀 건 다섯째가 그녀만 지키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다섯째가 그녀에게 잘해주고 그들이 서로 사랑하며 함께 있기 때문이다.자신의 배우자에게 충성하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것이지만, 이 시대에서는 행복의 대명사가 되어버렸다.호비는 이내 웃으며 말했다."그러나 내 마음속에는 어떤 원한도 있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나 자신의 선택이다. 내가 선택을 할 때, 이미 언젠가 이런 일에 직면하게 될 것을 알고 있었다. 다만 요 몇 년 동안 황상이 잘해주시니 헛생각을 안 할 수가 없더구나. 그의 곁에 더 이상 여자가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내가 너무 욕심이 많은 거지? 결국엔 세속에 얽매이는 것을 면치 못했다."원경릉은 억지로 웃어 보였다."여자는 모두 자신의 남자가 자기밖에 없기를 바랍니다, 욕심이 아니에요.""하지만 그는 황상이다. 황상은 아무리 한 여자를 깊이 사랑한다 하더라도 그녀만 지킬 수 없어. 대를 이을 자식을 낳으려면 후궁을 채워야 한다. 어느 황제의 후궁이 미녀들로 넘쳐나지 않았냐? 그리고 이것은 조상의 제도이기도 하다."호비는 자신의 슬픔에만 빠져 이 말들을 듣고 있는 원경릉의 기분이 언짢은 것을 차마 생각하지 못했다.호비의 궁에서 떠나고 원경릉은 황후를 찾아보러 갔다. 황후는 지금 한약을 먹고 있으니 많이 호전된듯했고 적귀비와 황귀비와 안에서 얘기를 하고 있었다.마침 그녀들은 수녀를 뽑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비록 지금 황후는 후궁을 관리할 권리가 없지만 황귀비는 그녀에게 큰 변화가 생긴 것을 보고 시종 그녀를 황후로 모셨다. 그래서 황귀비는 직접 와서 이 일을 그녀에게 보고하였다.원경릉은 그저 안부만 묻고 물러나
황귀비는 몰래 웃기 시작했다."이번 간택은 사실 젊고 미혼인 황실 자손에게 어울리는 규수(閨秀)를 찾아주기에도 좋습니다, 궁안이 드디어 떠들썩해지겠네요."원경릉은 황귀비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진심으로 이 말들을 하는듯했다. 하지만 그녀는 정말 많은 여자들이 들어와 그녀와 은총을 빼앗는 것을 전혀 개의치 않을까?적귀비는 처음 그녀의 말을 듣고는 그다지 찬성하지 않았지만, 주최권을 얻으니 더 상관하지 않았다. 이렇게 보면 황제가 그녀들 마음속의 무게에서는 주최권보다도 못했다.그녀들이 말을 마치자 원경릉은 황후에게 진료를 하러 갔다. 황후의 부종은 많이 좋아졌고 복수의 상황도 호전되었다. 그러나 아직 상황이 아주 이상적인 것은 아니다. 원경릉도 그저 위로를 하며 계속 약을 먹으라고 전한 뒤, 될수록 다른 일들에 너무 많은 신경을 쓰지 말라 당부하였다.말을 하고 있을 때, 원용의가 상궁을 데리고 왔다. 상궁은 손에 약을 들고 있었고 원용의가 직접 와서 황후의 약을 시중들었다.원경릉은 그녀가 궁에 들어와 병시중을 드는 동안 살이 많이 빠지고 피곤해 보여, 떠날 때 원용의에게 데려다 달라고 했다."직접 시중을 들 필요는 없지 않아? 얼마나 힘들었는지 눈 주위마저 껌해졌어."원경릉이 말하자 원용의가 창백하게 웃었다."예, 사실 제가 직접 올 필요는 없이 일곱째가 오면 됩니다. 하지만 제가 일곱째를 안타까워하니 어쩌겠어요? 요즘 관아가 바쁘다 보니 그는 이미 심각한 수면 부족이에요. 의원 문제로 요즘 도처에서 싸우는 사람들이 생겨나요, 어제 그가 궁에 들어왔을 때 두 사람이나 맞아 죽었다고 했어요.""싸워? 왜 싸우는 건데?"원경릉은 의아했다. 두 사람이나 때려죽였다면 꽤 심각한 문제였기 때문이다."많은 의원들이 지금 50명의 환자만 받고 있고, 50명이 넘으면 병을 보지 않아요. 급한 병에 걸려 정원을 뺏기 위해 가족들이 싸우기 시작했어요. 얼마나 세게 싸우는지, 칼부림에 벽돌까지, 그렇게 두 사람의 목숨이 없어졌죠."원경릉은 멍하니 그녀의 말을 듣
혜평공주 대 원경릉원경릉의 마차가 다가오자 혜평 공주가 커튼을 걷어 올리면서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태자비께서는 궁에서 돌아오시는 길입니까?”이 말을 들은 원경릉이 몹시 노하며 말했다.“나를 미행하라고 사람까지 보낸 겁니까?”혜평 공주가 낄낄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본 공주가 왜 사람을 보내서 태자비를 미행하겠습니까? 당신이 궁에 들어와서 어디에 있었는지, 본 공주는 모르는 것이 없습니다.”원경릉이 무심코 차갑게 말했다.“공주님이 손을 그렇게 길게 뻗어서 뭐 합니까? 궁궐의 모든 일을 다 꿰뚫어 차고 있는 걸로 보아 공주님의 사업도 대단한 모양입니다.”“나쁘지는 않네요, 당신 부부가 엉뚱한 수작만 부리지 않았다면 장사가 더 커졌을 수 있을 텐데 말이죠.”원경릉 역시 공주의 얼굴을 역겹게 바라보며 냉정하게 말했다.“환자를 치료하는 것을 장사의 수단으로 여기는 게 공주님은 정말 옳다고 생각합니까?”혜평 공주는 턱을 치켜들고 차갑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원경릉을 바라보며 말했다.“환자를 치료하는 것을 자선 사업 취급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부적절합니다. 어제 회덕 의원에서 사람이 두 명이나 죽었다는 걸 태자비도 알고 계시겠죠? 만약 태자비께서 의도적으로 태자께 의서를 증설하고 약 값을 낮추라고 하지 않았다면 이 일은 절대 발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두 사람, 모두 억울하게 죽었습니다. 그들은 태자비에 의해 죽게 된 것이고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만약 태자비가 늘 고집하는 자애로운 마음만 아니었다면 의원은 여전히 환자를 치료하는 데 전념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의원은 자선 단체가 아닙니다. 돈이 있으면 들어와서 치료받을 수 있고 돈이 없으면 스스로 약초를 캐서 치료합니다. 이런 상황이 수년 동안 이어져 왔는데 왜 태자비께서는 의원을 극악무도하다고 비난하는지 이해할 수 없네요. 정말로 극악무도하다면 경중에 그렇게 많은 백성이 우리 의원 의사를 우러러보지는 않았을 겁니다.”“정말 억지스러운 추론이군요. 제가 언제 의원을 차리는 것이 극악무도한
선전포고마부는 이미 혜평 공주의 기세에 눌려 무의식적으로 옆으로 기대고 싶었지만,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았고 이어 채찍을 내리자, 말은 성질이 난 듯 놀랍게도 꼼짝도 하지 않았다.그러나 혜평 공주의 마차는 이미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기 시작했다.혜평 공주의 마차는 말 네 필이 끄는 덜렁이 마차로 한편으로는 매우 쾌적하고 튼튼했다.그에 비해 초왕부의 마차는 두 필이 끌고 있었는데 약간 허름한 것이 자칫하다 뒤집힐 것 같은 작은 마차였다.“돌진해!”원경릉의 말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고 고의로 막고 있다는 생각에 혜평 공주가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태자비, 얼른 내려요!”이를 본 마부는 겁에 질려 소리 지르기 바빴다.하지만 원경릉은 미동도 없이 말을 계속 재촉하며 외쳤다.“어서 발굽을 들어라!”반대편에서는 마차가 급박하게 돌진해 오고 있는데, 원경릉의 말 두 필이 갑자기 냅다 길게 이웃 소리를 내더니 앞발굽을 번쩍 세우며 기세가 일시에 폭발했다.그러자 혜평 공주의 말 네 필이 발굽이 갑자기 힘이 빠지면서 급기야 무릎까지 꿇었다.마차가 쓰러지면서 혜평 공주도 마차에서 굴러떨어졌고 원경릉의 마차 바로 앞에 머리를 부딪쳤다. 시종과 마부는 깜짝 놀라며 급히 다가가서 일으켜 세웠다.하지만 혜평 공주는 위엄을 잃고 머리칼이 헝클어져서는 놀란 얼굴로 화를 버럭버럭 내며 마부의 뺨을 냅다 갈겼다.“쓸모없는 것!”원경릉은 천천히 마차에서 내려 그녀 앞에 다가가 섰다.그녀는 혜평 공주보다 조금 큰 키에 눈매는 싸늘하면서도 차분한 분위기가 감돌았다.“공주님, 이제 드디어 천벌이 내리니 달게 받으시지요.”“당신…”혜평 공주는 얼른 손을 들어 그녀를 가리키려 했지만, 손 한쪽 전체가 다 까지고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흥분 상태에서는 그녀도 별로 아픔을 느끼지 못했지만 피를 본 지금, 그녀는 군데군데 온몸이 저절로 아프다고 느꼈다.원경릉은 차갑게 웃으며 그녀를 지나쳐 저택 입구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저택 문 앞에 있던 사람이 이
원경릉은 추 할머니와 함께 산책을 마치고 돌아온 뒤, 이리 나리를 몰래 끌고 나가 조용히 물었다.“왕비께 자녀가 있습니까?”그러자 이리 나리가 되물었다. “예이와 진이를 말하는 것이냐?”원경릉이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네, 예이와 진이입니다. 그들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북당에는 없다. 하지만 스승님께서 이미 추 마마를 보러 오라고 하셨다는구나.”추 할머니와 왕비가 같은 세대 사람이였기 때문에 이리 나리는 항상 추 할머니를 마마라고 불렀다.“그들이 돌아온다니… 정말입니까?”원경릉은 순간 이유 모를 흥분을 느꼈다. 그들에게 자녀가 있다는 것을 몰랐을 때, 북당이 그들을 제대로 대우해 주지 않아, 아이를 낳지 못하게 한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 그들에게 자녀가 있다는 말을 들으니 정말 기뻤다.“그래. 돌아올지 말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돌아올 것 같다고 생각한다. 사부님이 명을 내렸으니, 감히 거역하지 못할 것이다.”“한번 만나보고 싶습니다. 아마 다섯째도 만나고 싶을 것입니다. 어찌 그들은 친왕과 왕비의 곁에서 지내지 않는 것입니까?”“상황을 대충 알고 있지 않느냐? 사부님께서 한때 황태자가 될 뻔하셨다. 그래서 그들은 모습을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무상황도 장인어른께서도 황위에서 물러나 다섯째가 황제가 되었다. 상황이 변했으니, 그들도 이제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혹시 그들이 너무 조심스러웠던 건 아닙니까? 굳이 그렇게까지는 안 해도 될 것입니다.”원경릉이 답했다.이리 나리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주 작은 위험이라도 있을 수 없다. 작은 일이 큰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 그러니 조정에 폐를 끼칠 수 있는 일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동안 일이 참 많지 않았냐?”원경릉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라에 수많은 문제가 쌓여 있어 몇십 년 동안도 해결되지 않았으니, 굳이 더 많은 문제를 만들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자세히 생각하니, 북당이 그들에게 빚진 것이 참 많은
하지만 원경릉은 거절했다. 모두가 시중을 들지 않는데, 그녀만 시중을 데리고 오면 괜히 특별한 척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황후라는 신분도 숙왕부 사람들 눈에는 단지 어린아이처럼 보일 뿐이었다.그녀는 짐을 다 챙긴 후, 계란에게 아버지를 잘 돌보라고 당부하곤, 서일의 보호를 받으며 궁을 나섰다.그러자 사식이는 한숨을 쉬었다. 이제 막 궁에 왔는데, 원경릉이 다시 나가버리니 앞으로 심심한 나날을 보내야 할 자신이 걱정됐기 때문이다. 원경릉이 숙왕부에 도착했을 때, 이리 나리 부부도 추선을 방문하기 위해 와 있었다.이리 나리도 추선과 정이 깊은 사이었다. 공주는 원경릉에게 이리 나리가 어렸을 때부터 왕비가 키웠다고 말해 주었다. 처음에는 왕비가 아이를 키우는 법을 모르기에 대부분 추할머니가 그를 돌보았는데, 나중에 무예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도 추할머니 덕분에 엄한 왕비 곁에서 고생을 조금 덜 할 수 있었다고 했다. 원경릉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렇군요. 왕비께서 아이를 낳지 않으셨으니, 아이를 키우는 게 익숙하지 않으셨겠지요.""듣자 하니, 왕비께서 아들과 딸을 한 명씩 낳으셨다고 하네. 열몇 살에 어디론가 보내셨다네.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리도 그들을 몇 번 보지 못했다고 하더군.""왕비께서 아이를 낳으셨다니요?"원경릉이 살짝 놀란듯 물었다."저는 아이를 데려다 키웠다고 들었습니다. 예전에 보친왕..."공주는 손을 저으며 말했다."아니네. 정말 아니네. 왕비께서 직접 낳으신 아들딸이네. 쌍둥이고, 나리보다 훨씬 나이가 많네.""그렇습니까?"원경릉은 믿기 어렵다는 표정을 지었다. 과거 왕비 부부가 은거하고 지낸 탓에 자녀를 보지 못한 것이 이해는 되었지만, 최근 몇 년간 그들은 경성에 머물러 있었고, 자녀들이 찾아왔다는 이야기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관계가 아무리 나빠도 몇 년 동안 부모를 찾아오지 않을 수는 없을 텐데. 혹시나 부모와 자식 간에 어떤 갈등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의심 되었다. "그렇네. 나리가
추선의 방에서 나온 원경릉은 청우헌으로 가서 세 거두와 이야기를 나누고 혈압까지 재주었다.그녀는 그들의 말에서 추선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그녀의 이름은 추선으로, 왕비의 옛 시녀였다. 그러나 가장 힘든 시절에 추선은 왕비와 왕부를 떠나지 않았고, 줄곧 평남왕 우문극을 돌봐왔다고 했다.그리고 그 두 명의 첩인 운 마마와 몽 마마는 실제로 왕비의 첩이라고 했다. 대체 왜 왕비의 첩이 되었는지 명확히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두 사람을 알게 되었을 때부터 그녀들은 이미 왕비의 첩으로 불렸다.세 거두는 추선의 병세를 물었다. 원경릉이 악성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자 충격을 받았다.현대에 다녀온 경험이 있는 그들은 ‘악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그들의 얼굴에 한순간 무거운 분위기가 감돌아, 원경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왕비의 시녀라 하셨는데, 잘 아시는 것입니까?”무상황이 말했다.“숙왕부에서는 누구의 시녀인지 따로 구분하지 않았다. 나중에는 매미도 시녀를 그만두고, 모두와 함께 고생했다. 평생 혼인도 하지 않고.”“매미요?”“네가 말하는 추선이다.”원경릉은 웃음이 터질 뻔했다.추선의 이름을 매미로 부르는 것도 어찌 보면 이해가 가는 일이었다.추선이 큰 병에 걸렸다는 소식은 숙왕부 전체에 퍼졌고, 많은 사람이 원경릉에게 그녀의 병세를 물었다.원경릉은 검은 옷을 입은 노인들이 그렇게 침통한 표정을 짓는 것도, 누군가를 이렇게 걱정하는 모습도 처음 보았다. 평소 그들은 늘 차가운 태도를 보였고, 유일하게 열정을 보일 때는 식사 시간뿐이었으니 말이다.그날, 원경릉은 숙왕부에서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숙왕부의 식사 방식은 한 사람이 큰 사발 하나씩 받는 것이었다. 이날 집안사람들은 음식에 거의 손을 대지 않아, 남긴 음식이 가득했다.이런 일은 전례가 없었다.원경릉은 이로부터 추선이 그들 마음속에서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알게 되었다. 소요공에 따르면, 과거 추선은 적성루에서 음식을 배분하는 일을 맡았다고 했다. 고기를 얼마나 줄
“이전에 무슨 큰 병을 앓았습니까?”원경릉이 물었다.“폐결핵이었네. 의원을 불러 치료했지만, 몇 년 동안 건강이 계속 좋지 않았네.”왕비가 대답했다.“치료했던 의원의 능력이 뛰어났겠습니다. 누구였습니까?”“주진이요.”왕비가 말했다.주진의 이름을 들으니, 원경릉은 그녀가 왕비와 오랜 세월을 함께해온 자라는 것을 확신했다.원경릉은 초능력을 사용해 노파의 폐 상태를 감지했다. 결절과 섬유화가 있었고, 심지어 종양으로 의심되는 덩어리도 발견했다. 나이가 많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았고, 우선 약물을 통해 상태를 지켜보기로 했다.그저 악성이 아니길 바라며 기도할 뿐이었다.우선 링거를 놓고 산소를 공급하며, 스테로이드를 사용해 기관지를 확장해 그녀가 조금 더 편하게 호흡할 수 있도록 했다.약물을 사용하자 노파의 안색이 서서히 나아졌고, 호흡도 훨씬 수월해졌다.그러자 노파가 감사의 말을 전했다.“이렇게 숨을 쉬어본 게 정말 오랜만인 것 같습니다…”치료가 진행되는 동안, 두 명의 나이 든 여성이 방을 드나들었다. 다들 원경릉이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기에, 왕비가 그녀들을 소개해주었다.“모두 수년간 나와 함께해온 사람들이네.”그러고는 잠시 망설이더니 말을 덧붙였다.“내 첩들이네.”그러자 원경릉은 자신이 잘못 들은건 아닌지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녀의 첩인지 아니면 왕의 첩인지 궁금했지만, 차마 질문하기엔 입이 쉽게 열어지지가 않았다.잠시 후, 원경릉이 침대에 누워 있는 환자를 가리키며 물었다.“그럼, 이분은요?”“날 처음 모신 사람이네. 이름은 추선이야. 수십 년 동안 대부분 평남왕부에서 평남왕을 돌보며 지냈네.”왕비가 그녀의 물음에 답했다.원경릉은 이해했다. 그들은 정말 이곳에 정착하려는 것 같았다. 그래서 예전에 함께 지내던 사람들을 하나씩 데려와 함께 여생을 보내려는 것이었다.젊은 시절 함께 했던 사람들이니, 나이가 들어도 서로 곁에 머물고 싶어 했다.왕비는 원경릉과 함께 밖으로 나와 진지하게 말했다.“심각하다는 건
다섯째는 갑자기 마음이 불안해졌다.아이가 혼인을 올리지 않고 곁에 머무는 건 분명 기쁜 일이었고 효심이 있는 일이었지만 평생 결혼하지 않는다면 얼마나 외로울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만약 자기와 원경릉이 저세상으로 떠난다면, 그녀가 혼자 어떻게 지낼 수 있을까 싶었다.그렇다고 해서 혼사를 허락하자니, 세상에 과연 걸맞은 사내가 있을지 걱정되었다.택란을 그녀보다 못 한 사내에게 보내는 건 그녀에게 너무 큰 희생이다.다섯째가 갈등하는 것 같자 원경릉이 웃으며 그를 다독였다.“택란은 이제 여덟 살이네. 너무 앞서 생각하지 마오.”다섯째가 그녀를 흘깃 쳐다보며 말했다.“자네는 모르네. 시간이 정말 순식간에 흘러가네. 벌써 여덟 살이니, 7년만 지나면 성인이 되오.”그는 시간이 조금만 천천히 흘렀으면 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두는 게 좋소. 너무 멀리 내다봐도 소용없네.”원경릉은 그의 손을 잡고 살며시 깍지를 꼈다.“아이도 운명과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것이오. 만약 언젠가 자네만큼 훌륭한 남자를 만난다면, 그와 혼사를 해도 나쁠 게 없지 않겠소?”“그런 남자는 있을 리 없소!”우문호는 세상에 둘도 없는 사람이었다.하지만 이런 칭찬해도 우문호는 여전히 복잡해 보였기에, 원경릉은 자신이 그를 걱정하게 만든 것 같아 후회했다. 하지만 자신이 말하지 않아도 그가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 리 없었다.택란이 태어난 날부터 우문호에게는 새로운 적이 생겼다. 바로 택란과 혼인할 상대였다.그 적이 누구인지, 어디에 있는지 몰랐지만, 그는 여전히 미워하고 있었다.더구나 금나라의 어린 황제가 혼사를 직접 언급했으니, 이제 그 적은 실체가 생겼고, 이에 따라 그는 한동안 신경을 곤두세우게 되었다.그 후 며칠간 택란은 매우 순진하고 착하게 행동했다. 아버지가 시간이 날 때마다 곁에 머물며 대화를 나누고, 놀고, 책을 읽고, 글씨를 쓰며 시간을 보냈다.어린 나이임에도 이미 아부하는 법을 터득해, 다섯째의 마음을 부드럽게 만들어 더 이상 화낼 수 없게 했다.다
”이제 화가 풀린 것이오?”원경릉이 웃으며 물었다.“화 풀렸네. 하지만 금나라의 어린 황제는 조심해야 하오. 어린 자식이, 정말 너무하오!”우문호는 선물을 하나 열었다. 안에는 알록달록한 도자기로 만든 정교한 인형이 있었는데, 머리카락까지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었다. 그는 미소를 멈출 수 없었다.“이 도자기 인형, 정말 우리 딸을 닮았구나. 예쁘오!”“내가 산 것이오!”원경릉이 질투라도 난듯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자네가 산 것이니 더 좋소. 아주 좋아!”우문호는 선물을 하나씩 열어보며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몇 개를 연 후에야 그는 약도성의 상황을 묻기 시작했다.원경릉은 자리에 앉아 약도성에서 있었던 상황을 하나하나 설명했다. 특히 택란이 약도성에서 보여준 대처 방법에 대해 상세히 말했다.그러자 우문호가 매우 놀라며 말했다.“택란이 지진을 예측하고 백성들을 대피시켰다니. 이건 정말 대단한 일이오. 정말 대단하네. 원 선생, 난 택란이 약도성에서 놀기만 했을 줄 알았네. 몰래 이런 큰일을 해내다니.”“택란과 경단은 모두 자네를 위해 무언가를 하고 싶어 하오. 자네가 걱정하지 않도록 말이네. 그래서 자네한테 말하지 않았던 거고. 이게 택란이 자네를 더 사랑한다는 이유요. 자네를 평생 아끼며 짐을 덜어주고 싶어 하오.”우문호는 그녀의 손을 놓고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원 선생, 갑자기 눈물이 날 것 같소.”원경릉은 그의 팔을 감싸 안으며 웃으며 말했다.“그래, 우시오. 우리 큰 아기 울어도 괜찮네!”우문호는 답답한 표정으로 말했다.“자네가 날 ‘큰 아기’라고 부르니 눈물이 갑자기 멈추네요.”“그럼 울지 말고 어서 앉으시오. 약도성 백성들이 택란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말해주겠소.”원경릉이 그의 팔을 잡아 의자에 앉히고는, 약도성에서 한 달 동안 있었던 일들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우문호는 그녀의 이야기에 몰입하며 감동하였다. 특히 약도성 백성들이 택란을 존경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그는 믿기 어려워했
우문호는 이 말을 듣고 얼굴빛이 확 어두워지며 깜짝 놀랐다.“청혼? 누가 청혼을 한 것이오? 미친 것이오? 겨우 여덟 살인데! 대체 어떤 정신 나간 사람이 이런 짓을……”그는 너무 충격을 받아 분노가 치밀었다. 겨우 여덟 살인 딸을 누군가 눈독을 들이고, 심지어 청혼까지 했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그는 그자가 누구인지 알게 되면 반드시 혼쭐을 내겠다고 마음먹었다.원경릉이 그의 손을 잡고 말했다.“이미 택란의 비밀을 다 털어놨으니, 이제 더 이상 나한테 화내면 안 되오.”“말하시오. 용서할 테니 더 말하시오!”우문호는 더 이상 원경릉에게 화를 낼 힘도 없었다. 사실 처음부터 그렇게 심하게 화가 난 것도 아니었고, 복잡한 감정만이 뒤섞여 답답할 뿐이었다.하지만 지금은 그런 감정들도 모두 사라지고, 이 터무니없는 사건이 더 중요해졌다.원경릉은 택란이 금나라에 가서 10만 냥을 얻은 전말을 설명했다. 특히 금나라의 어린 황제가 그녀에게 청혼했다는 이야기도 빠뜨리지 않고 전부 털어놓았다. 단 한 글자도 숨기지 않고 진실만 말했다.우문호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그건 너무 대담하잖소! 금나라에서 10만 냥을 빼앗았다니? 어찌 이야기가 이렇게 익숙한 것이오? 그래, 기화요! 어찌 스승이 이런 짓을 가르친 것이오? 그리고 그 금나라의 어린 황제는 이제 몇 살이오? 듣자 하니 겨우 열 살이라고……”“열셋이오. 금나라의 진국왕이 그의 권력을 누르려, 일부러 열 살이라고 소문낸 것이오.”우문호는 벌떡 일어나 뒷짐을 지고 방을 빙빙 돌며 어쩔줄 몰라했다. “열다섯이라도 안 되네! 금나라가 북당의 경성에서 얼마나 먼지 알고 있소? 아이가 그곳에 시집가면 1년에 한 번도 못 돌아올 것이네. 북당의 진국 공주를 부인으로 삼겠다니? 허망 된 꿈이요! 꿈!”“아이들의 농일 뿐이요.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안 되네.”원경릉이 서둘러 말을 덧붙였다.“농담이라도 안 되네. 황위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면서 우리 귀한 딸을 부인으로 삼겠다니? 이런 녀석은 앞
목여 태감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우문호에게 말했다.“폐하, 공주를 너무 꾸짖지 마십시오. 공주께서는 단지 세상을 경험하고 싶어 한 것 뿐입니다. 큰일도 아니지 않습니까? 안왕과 위왕도 그곳에 있었고, 아무 문제도 생기지 않았잖습니까?”우문호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그래. 택란이 자네에게는 과자 한 조각을 주었지만, 나한테는 안 주더군.”택란은 그 말을 듣고 재빨리 과자 한 조각을 가져와 아버지의 입가에 가져다 대며 환심을 사려는 목소리로 말했다.“아버지, 드셔 보세요. 이건 그렇게 달지 않은 생강 과자인데, 정말 맛있습니다!”생강 과자의 향기가 코끝을 스쳤다. 딸의 귀엽고 앙증맞은 얼굴을 보니 어떻게 밀쳐낼 수 있겠는가? 화가 난 상태였지만 결국 한입 물었고 생강과 설탕의 맛이 입안에 퍼졌고, 딸의 사랑스러운 미소를 보니 얼굴에 굳었던 표정이 풀어졌다.“나도 먹고 싶은데.”원경릉이 가볍게 웃으며 그의 옆에 앉아 턱을 괴고 물었다.“다섯째야, 맛있느냐?”우문호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무시했다. 그녀가 스스로 만든 규정을 어겼으니, 좋은 표정을 지을 마음이 없었다.원경릉이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택란아, 나한테도 한 조각 줘 보거라!”택란은 다시 과자 한 조각을 가져와 엄마의 입가에 가져다주며 더 큰 죄책감을 느꼈다. 이번엔 자신의 엄마까지 곤란하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원경릉은 과자를 먹고 나서 웃으며 말했다.“정말 맛있구나. 다 먹었으니 나가서 좀 자거라. 돌아오는 길에 제대로 못 잤으니.”“예!”택란은 얌전히 대답하고 나머지 과자를 빨리 먹어 치운 뒤 아버지에게 다가가 그를 한 번 안아주었다.“아바마마, 저 먼저 자러 가겠습니다. 깨고 나면 다리 주물러 드릴게요!”우문호는 더 이상 화를 내지 않고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 “그래, 어서 가거라.”택란은 목여 태감의 손을 잡고 방을 나섰다. 그녀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엄마를 한 번 돌아보며 아버지가 너무 오래 화를 내지 않기를 바랐다.원경릉은 문을 닫고 탁자 옆에
기다리고 기다리던 택란이 드디어 경성으로 돌아왔다. 우문호는 소월궁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옆에서 목여 태감이 계속해서 설득했다. 그는 공주가 아직 어리니, 노는 것을 좋아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라 하며, 그저 택란이 다른 어린아이들이 저지를 수 있는 잘못을 한 것뿐이라고 말했다. 목여 태감은 혹시라도 황제가 공주를 꾸짖을까 봐 걱정되어 공주를 감쌌다. 그의 약한 마음은 그런 걸 감당하지 못했다.마침내 택란과 원경릉이 도착했다.우문호는 작은딸이 원경릉의 뒤에 숨어 겁먹은 얼굴로 머리를 살짝 내밀고 자신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았다.원경릉이 딸의 손을 꽉 잡고 말했다.“가봐라, 아버지께서 기다리신다.”택란은 고개를 숙이고 아버지 앞으로 다가갔다. 우문호 앞에 서서 조심스럽게 자기 손을 그의 손 위에 올려놓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아바마마, 저 돌아왔습니다.”그러자 우문호는 딸의 손을 잡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뿌리치지도 않았다. 앞에 서 있는 그녀를 보는 눈빛엔 복잡한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약도성에 얼마나 있었느냐?”택란은 거짓말을 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솔직히 대답했다.“지난번 여름방학 때 집에 돌아온 후 바로 약도성으로 갔어요.”우문호는 큰 충격을 받았다.“모두가 알고 있었으면서, 나만 속였단 말이냐?”택란은 미안한 마음에 아버지를 껴안으며 말했다.“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안 그러겠습니다!”우문호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원경릉이 다가가 말했다.“아이가 자네 선물을 많이 샀소. 한번 보시게.”“필요 없소!”우문호가 단호하게 말했다. 딸을 뿌리칠 마음은 없지만, 그는 여전히 속았다는 사실에 너무 힘들었다.원경릉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을 텐데, 자신에게 말하지 않았다. 서로 비밀이 없기로 약속했건만, 그 약속이 깨진 것 같아 화가 났다.원경릉은 그의 표정을 보고 더 걱정해야 할 사람이 자기라는 것을 깨달았다.오는 길 내내 택란만 걱정하며 우문호에게 딸을 변호해 주려 했지만, 정작 자신이 그를 속인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