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을 들은 우문호는 그녀의 의연한 표정을 보자 문득 지난 일들이 생각나 웃음을 참지 못했다."난 지금 진지한데 왜 웃어?"원경릉은 그를 노려보았다.우문호는 멈추고 손을 뻗어 그녀의 얼굴을 들었고 눈가의 웃음기는 적어지지 않았다."그때 기억나? 황조부께서 아프셔서 우리가 명을 받고 궁에 들어가 시중을 들어줬잖아. 그때 난 당신한테 아주 악랄했어. 당신이 중상을 입고 비녀를 들어 자신을 지키며 날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을 하고는, 내가 가까이 가자마자 바로 뛰어올라 비녀를 나에게 대고 있었잖아."그는 웃고 있었지만 눈가에서는 점점 후회와 안타까움이 가득해졌다."난 그때 정말 쓰레기였어."원경릉은 쓴웃음을 지었다."왜 기억 못 하겠어? 그때 난 정말 구렁에 빠져 살길이 없는 줄 알고 전전긍긍하며 살얼음판을 걷는 것만 같았어. 다행히 태상황을 찾아 도움을 청해서 그제서야 사람답게 살 수 있었지.""미안해…!"우문호는 침울하게 한숨을 내쉬었다."그건 내가 살면서 가장 잘못한 일이야."원경릉이 제일 답답했던 건, 애초에 잘못을 한 건 다른 원경릉이었지만 고생은 그녀가 했다는 것이다."됐어, 요 몇 년 동안 나한테 괜찮게 대해준 것을 봐서 이만 용서해 줄게."원경릉이 너그럽게 말했다."괜찮게?"우문호는 동의할 수 없었다."이걸 괜찮다고 할 수 있는 거야? 나 몇 년 동안 당신 말고 다른 여자들은 거들떠 본 적도 없어.""그건 당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지, 나한테 잘해준 건 아니잖아."그녀는 눈웃음을 지었다. 다섯째는 이렇게 은혜와 원한이 분명하고 선을 그을 줄 아는 게 귀엽다. 그때 주명취가 간사한 여인인 걸 알고 바로 옛정을 끊고 쓸데없는 엮임이 없었다.그와 방금 알게 되었을 때, 그는 수를 잘 쓰지 못했었다. 하지만 몇 년 동안 각종 풍파와 교활한 음모 속을 헤쳐 나오며 지내온 것은 정말 쉽지 않았다.시간은 정말 빠르게 흘러간다. 그 일들은 마치 어제 일어난 것 같은데, 그들은 이미 셋째까지 임신했다."부인, 천천히 가, 길
"부황께서는 동의하시지 않을 거에요."우문호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괜찮아요, 당신이 미래의 황제가 될 테니 저와 계약을 하면 됩니다."이리 나리가 입을 삐죽거리자 누군가 계약서를 들고 우문호 앞으로 왔다.우문호는 계약이 모두 준비된 것을 보고 그가 임시로 생각해낸 게 아니란 것을 알 수 있다. 어젯밤에 그렇게 침착하게 한 사람이 절반씩 내자고 했는데, 어쩌면 그는 자신이 돈을 내놓지 못할 것을 예상했을지도 모른다.아니나 다를까 이리 나리가 담담하게 말했다."어차피 당신은 돈을 모을 수 없어 공주에게 달라 해야 할 텐데요. 공주의 돈도 제 돈이라 결국 제가 모든 돈을 내는 것인데 왜 절충하는 방법을 취하지 않습니까, 당신과 조정이 모두 돈을 낼 필요가 없어요. 내가 손익을 홀로 부담할건데 이러면 서로 좋은 일 아닌가요?""난 50만 냥이 있네!"우문호는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50만 냥 보다 더 꺼낼 수도 있어요."우문호는 이 말을 꺼내자마자 바로 속았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의 이 계략은 공격도 방어도 할 수 있다. 동의를 하지 않는다면 우문호는 돈을 더 꺼내야 하고, 동의를 한다면 무기의 소유권을 잃는 것과도 같다.아이고, 요즘 세상, 공짜로 얻어먹는 게 왜 이리도 힘든 걸까?이리 나리가 웃으며 말했다."굳이요? 이 100만 냥을 다 꺼내게 된다면, 분명 초왕부는 가난에 허덕일 것인데, 혼자 가난하면 그만이지, 처자식에게까지 누를 끼쳐야 합니다. 알고 계시죠? 이 돈을 꺼내서 쓰고 나면 엎질러진 물처럼 돌려받을 수도 없다는 것을."우문호는 이를 악물었다."돌아가서 원 선생이랑 상의를 해봐야겠어요.""그럼, 그러세요!"이리 나리가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우문호는 몸을 돌리고 돌아갔다. 백만 냥은 정말 너무 많으니 원 선생이 동의를 하지 않을 수도 있다.돌아가 원경릉에게 말하자 원경릉은 반대하지 않고 오히려 그를 위로했다."괜찮아, 그저 백만 냥일 뿐이야. 나중에 설랑을 이리 나리네에 빌려주면 바로 본전을 얻을 수 있을 거야
이 일이 다 처리된 후 우문호는 원경릉에게 궁에 한 번 더 함께 가자고 했다. 호비 마마를 찾아 얘기를 해보고 방법을 강구해 부황을 궁 밖에 갈 수 있게 달래야 했기 때문이다.우문호는 그렇게 생각했다. 부황은 약 값과 진찰금이 높은 게 조정에 있어 이득이 결점보다 많다 느끼고 있기에 필경 세금을 받을 때는 편하다고 말이다.우문호가 찾아보니 북당 의원과 약방에서 납부한 세수는 비교적 많았다. 부황은 가난을 두려워했고 국고를 위해 수입을 늘일 수만 있다면 뭐든지 기꺼이 하려 했다.그는 약 값이 그저 10~20냥 정도만 비싸지니 의원에 가서 병을 보는 백성들이 개의치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그러나 이것은 높은 자리에 위치한 그의 생각일 뿐이다. 그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가장 좋은 방법은 그가 직접 보고 백성들의 고통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마음을 단단히 먹고 개혁할 수 있다.원경릉은 우문호의 말대로 궁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호비에게 직언을 할 수 있고 호비도 사리에 밝은 사람이니 태자와 원경릉을 지지했다. 모든 일의 경과를 듣고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경성도 그러한가? 난 고한(苦寒) 지역에서만 그런 줄 알았어. 그 당시 변방에 있을 때도 의원의 진료비는 아주 값비싸서 일반 백성들은 병을 볼 수가 없었어. 병에 걸리면 그저 스스로 약초를 캐오거나 시골 의사를 찾았지. 부중 한 계집애의 동생이 나무에서 떨어졌는데, 처음에는 크게 다치지 않아 보였어. 하지만 의원을 청할 돈이 없으니 그 아이의 어머니가 산에서 약초를 캐와 상처에 덮어 놓았어. 그렇게 덮고 있다 보니 상처는 고름이 생겼고 아주 크게 부어올라 며칠 동안 고열에 시달렸지. 그제야 그 계집애가 본 궁의 앞에 무릎을 꿇고 의원을 청해달라 부탁하더구나. 하지만 그때는 이미 늦었고, 의원이 보고는 되돌릴 수 없다 하더군. 그러니 애초에 치료를 할 수 있었다면 그 목숨은 잃지 않았을 거야."원경릉은 마음속으로 괴로웠다. 그런 사람들이 아마 적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어쩔 수
"황후에게로 갔다."호비가 말했다.원경릉은 다소 의아했다."황후 마마에게요? 혹시 황후 마마께서 부르신 건가요?"호비가 물었다. "스스로 모후에게 가서 8황자와 놀겠다고 중얼거렸어, 하지만..."호비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을 하려다 머뭇거리는 모습이었다."왜 그러십니까?"원경릉이 이를 보고 묻자 호비는 목소리를 낮추고 말을 이어 나갔다. "요새 귀비 마마가 황후와 우호적으로 지내고 있는 것 같아. 매일 동행하러 가는 것도 모자라 특별히 사람을 불러 궁에 개인 주방까지 만들라 명했어. 가끔은 아예 황후 쪽에서 지내기도 하는데, 귀비는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이냐? 태자비가 알려줄 수 있겠나?"원경릉은 당연히 알고 있다. 하지만 호비는 종래로 잡담을 궁금해하는 사람이 아닌데도 왜 알아보기 시작하는 걸까. 아마도 귀비와 황후가 연합을 해 무슨 일을 할지 몰라 걱정하는 듯하다. 아무래도 그녀는 지금 총애를 많이 받고 있고 아들을 낳은 뒤 또 임신을 했다. 어머니가 된 사람이니 조심스러워지기 마련이다.원경릉은 이 일을 호비에게 알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 생각해 귀비가 부탁했던 일을 그녀에게 알려주었다.호비는 그 말을 듣고는 마음이 조금 놓였다."이 일 때문이었구나, 그럼 정말 다행이네.""너무 많은 걱정을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마마. 몇 년 동안 그렇게 많은 일들이 일어났으니, 후궁에서도 더 이상 소란이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호비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본 궁은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얼마 전에 누군가가 황귀비 앞에서 얘기를 꺼냈어, 후궁이 오랫동안 수녀를 뽑지 않았으니, 수녀를 뽑을 때가 되었다고. 그건 조상이 정한 규칙이라고, 황상이 본 궁만 총애해서는 안 된다 말했어.""누가 제기한 것입니까?"원경릉은 의아했다. 이 일은 들어본 적 없었다.호비는 눈가에 다소 근심을 품고 말했다."진비다."원경릉은 진비가 또 소란을 일으킬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우문군이 죽었으니 진비도 착실하게 살아갈 것이라 생각했다."지금 후궁에서 가장
그녀는 원경릉을 바라보며 말했다."그러니 너와 태자가 정말 부럽구나, 이렇게 오랫동안 태자는 한 번도 다른 사람과 결혼할 생각을 하지 않고 너만 지키며 살았다."원경릉이 가볍게 답했다."예, 그렇습니다. 저는 그래서 행복하다 생각합니다."원경릉은 말은 이렇게 했지만 속으로 조금 풍자적으로 느껴졌다. 그녀가 행복하다고 느낀 건 다섯째가 그녀만 지키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다섯째가 그녀에게 잘해주고 그들이 서로 사랑하며 함께 있기 때문이다.자신의 배우자에게 충성하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것이지만, 이 시대에서는 행복의 대명사가 되어버렸다.호비는 이내 웃으며 말했다."그러나 내 마음속에는 어떤 원한도 있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나 자신의 선택이다. 내가 선택을 할 때, 이미 언젠가 이런 일에 직면하게 될 것을 알고 있었다. 다만 요 몇 년 동안 황상이 잘해주시니 헛생각을 안 할 수가 없더구나. 그의 곁에 더 이상 여자가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내가 너무 욕심이 많은 거지? 결국엔 세속에 얽매이는 것을 면치 못했다."원경릉은 억지로 웃어 보였다."여자는 모두 자신의 남자가 자기밖에 없기를 바랍니다, 욕심이 아니에요.""하지만 그는 황상이다. 황상은 아무리 한 여자를 깊이 사랑한다 하더라도 그녀만 지킬 수 없어. 대를 이을 자식을 낳으려면 후궁을 채워야 한다. 어느 황제의 후궁이 미녀들로 넘쳐나지 않았냐? 그리고 이것은 조상의 제도이기도 하다."호비는 자신의 슬픔에만 빠져 이 말들을 듣고 있는 원경릉의 기분이 언짢은 것을 차마 생각하지 못했다.호비의 궁에서 떠나고 원경릉은 황후를 찾아보러 갔다. 황후는 지금 한약을 먹고 있으니 많이 호전된듯했고 적귀비와 황귀비와 안에서 얘기를 하고 있었다.마침 그녀들은 수녀를 뽑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비록 지금 황후는 후궁을 관리할 권리가 없지만 황귀비는 그녀에게 큰 변화가 생긴 것을 보고 시종 그녀를 황후로 모셨다. 그래서 황귀비는 직접 와서 이 일을 그녀에게 보고하였다.원경릉은 그저 안부만 묻고 물러나
황귀비는 몰래 웃기 시작했다."이번 간택은 사실 젊고 미혼인 황실 자손에게 어울리는 규수(閨秀)를 찾아주기에도 좋습니다, 궁안이 드디어 떠들썩해지겠네요."원경릉은 황귀비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진심으로 이 말들을 하는듯했다. 하지만 그녀는 정말 많은 여자들이 들어와 그녀와 은총을 빼앗는 것을 전혀 개의치 않을까?적귀비는 처음 그녀의 말을 듣고는 그다지 찬성하지 않았지만, 주최권을 얻으니 더 상관하지 않았다. 이렇게 보면 황제가 그녀들 마음속의 무게에서는 주최권보다도 못했다.그녀들이 말을 마치자 원경릉은 황후에게 진료를 하러 갔다. 황후의 부종은 많이 좋아졌고 복수의 상황도 호전되었다. 그러나 아직 상황이 아주 이상적인 것은 아니다. 원경릉도 그저 위로를 하며 계속 약을 먹으라고 전한 뒤, 될수록 다른 일들에 너무 많은 신경을 쓰지 말라 당부하였다.말을 하고 있을 때, 원용의가 상궁을 데리고 왔다. 상궁은 손에 약을 들고 있었고 원용의가 직접 와서 황후의 약을 시중들었다.원경릉은 그녀가 궁에 들어와 병시중을 드는 동안 살이 많이 빠지고 피곤해 보여, 떠날 때 원용의에게 데려다 달라고 했다."직접 시중을 들 필요는 없지 않아? 얼마나 힘들었는지 눈 주위마저 껌해졌어."원경릉이 말하자 원용의가 창백하게 웃었다."예, 사실 제가 직접 올 필요는 없이 일곱째가 오면 됩니다. 하지만 제가 일곱째를 안타까워하니 어쩌겠어요? 요즘 관아가 바쁘다 보니 그는 이미 심각한 수면 부족이에요. 의원 문제로 요즘 도처에서 싸우는 사람들이 생겨나요, 어제 그가 궁에 들어왔을 때 두 사람이나 맞아 죽었다고 했어요.""싸워? 왜 싸우는 건데?"원경릉은 의아했다. 두 사람이나 때려죽였다면 꽤 심각한 문제였기 때문이다."많은 의원들이 지금 50명의 환자만 받고 있고, 50명이 넘으면 병을 보지 않아요. 급한 병에 걸려 정원을 뺏기 위해 가족들이 싸우기 시작했어요. 얼마나 세게 싸우는지, 칼부림에 벽돌까지, 그렇게 두 사람의 목숨이 없어졌죠."원경릉은 멍하니 그녀의 말을 듣
혜평공주 대 원경릉원경릉의 마차가 다가오자 혜평 공주가 커튼을 걷어 올리면서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태자비께서는 궁에서 돌아오시는 길입니까?”이 말을 들은 원경릉이 몹시 노하며 말했다.“나를 미행하라고 사람까지 보낸 겁니까?”혜평 공주가 낄낄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본 공주가 왜 사람을 보내서 태자비를 미행하겠습니까? 당신이 궁에 들어와서 어디에 있었는지, 본 공주는 모르는 것이 없습니다.”원경릉이 무심코 차갑게 말했다.“공주님이 손을 그렇게 길게 뻗어서 뭐 합니까? 궁궐의 모든 일을 다 꿰뚫어 차고 있는 걸로 보아 공주님의 사업도 대단한 모양입니다.”“나쁘지는 않네요, 당신 부부가 엉뚱한 수작만 부리지 않았다면 장사가 더 커졌을 수 있을 텐데 말이죠.”원경릉 역시 공주의 얼굴을 역겹게 바라보며 냉정하게 말했다.“환자를 치료하는 것을 장사의 수단으로 여기는 게 공주님은 정말 옳다고 생각합니까?”혜평 공주는 턱을 치켜들고 차갑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원경릉을 바라보며 말했다.“환자를 치료하는 것을 자선 사업 취급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부적절합니다. 어제 회덕 의원에서 사람이 두 명이나 죽었다는 걸 태자비도 알고 계시겠죠? 만약 태자비께서 의도적으로 태자께 의서를 증설하고 약 값을 낮추라고 하지 않았다면 이 일은 절대 발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두 사람, 모두 억울하게 죽었습니다. 그들은 태자비에 의해 죽게 된 것이고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만약 태자비가 늘 고집하는 자애로운 마음만 아니었다면 의원은 여전히 환자를 치료하는 데 전념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의원은 자선 단체가 아닙니다. 돈이 있으면 들어와서 치료받을 수 있고 돈이 없으면 스스로 약초를 캐서 치료합니다. 이런 상황이 수년 동안 이어져 왔는데 왜 태자비께서는 의원을 극악무도하다고 비난하는지 이해할 수 없네요. 정말로 극악무도하다면 경중에 그렇게 많은 백성이 우리 의원 의사를 우러러보지는 않았을 겁니다.”“정말 억지스러운 추론이군요. 제가 언제 의원을 차리는 것이 극악무도한
선전포고마부는 이미 혜평 공주의 기세에 눌려 무의식적으로 옆으로 기대고 싶었지만,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았고 이어 채찍을 내리자, 말은 성질이 난 듯 놀랍게도 꼼짝도 하지 않았다.그러나 혜평 공주의 마차는 이미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기 시작했다.혜평 공주의 마차는 말 네 필이 끄는 덜렁이 마차로 한편으로는 매우 쾌적하고 튼튼했다.그에 비해 초왕부의 마차는 두 필이 끌고 있었는데 약간 허름한 것이 자칫하다 뒤집힐 것 같은 작은 마차였다.“돌진해!”원경릉의 말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고 고의로 막고 있다는 생각에 혜평 공주가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태자비, 얼른 내려요!”이를 본 마부는 겁에 질려 소리 지르기 바빴다.하지만 원경릉은 미동도 없이 말을 계속 재촉하며 외쳤다.“어서 발굽을 들어라!”반대편에서는 마차가 급박하게 돌진해 오고 있는데, 원경릉의 말 두 필이 갑자기 냅다 길게 이웃 소리를 내더니 앞발굽을 번쩍 세우며 기세가 일시에 폭발했다.그러자 혜평 공주의 말 네 필이 발굽이 갑자기 힘이 빠지면서 급기야 무릎까지 꿇었다.마차가 쓰러지면서 혜평 공주도 마차에서 굴러떨어졌고 원경릉의 마차 바로 앞에 머리를 부딪쳤다. 시종과 마부는 깜짝 놀라며 급히 다가가서 일으켜 세웠다.하지만 혜평 공주는 위엄을 잃고 머리칼이 헝클어져서는 놀란 얼굴로 화를 버럭버럭 내며 마부의 뺨을 냅다 갈겼다.“쓸모없는 것!”원경릉은 천천히 마차에서 내려 그녀 앞에 다가가 섰다.그녀는 혜평 공주보다 조금 큰 키에 눈매는 싸늘하면서도 차분한 분위기가 감돌았다.“공주님, 이제 드디어 천벌이 내리니 달게 받으시지요.”“당신…”혜평 공주는 얼른 손을 들어 그녀를 가리키려 했지만, 손 한쪽 전체가 다 까지고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흥분 상태에서는 그녀도 별로 아픔을 느끼지 못했지만 피를 본 지금, 그녀는 군데군데 온몸이 저절로 아프다고 느꼈다.원경릉은 차갑게 웃으며 그녀를 지나쳐 저택 입구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저택 문 앞에 있던 사람이 이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다섯째 일행은 여전히 도착하지 않았다.그래서 원경릉과 할머니는 다른 의관을 더 둘러보기로 하고, 몇 군데 더 돌아본 뒤 관아에도 갈 계획을 했다.그런데 한 의관에 들어서자마자, 푸른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다급히 뛰어오며 말을 걸었다. “수 의원, 대인께서 병세가 위중합니다. 어서 봐주셔야 합니다.”의원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약상자를 집어 들고 다른 환자들을 그냥 남겨둔 채, 푸른 옷의 중년 남자와 함께 나가려 했다.원경릉이 그를 막아 세우며 말했다.“의관에 있는 환자들을 돌봐야 하지 않소? 우리 할머님께서도 의원이니, 지부 대인의 병은 할머님께서 봐 드릴 것이오.”푸른 옷의 사내는 초조한 듯 원경릉을 향해 소리쳤다.“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대인의 병세가 급박한데, 혹여라도 지체되면 당신들이 책임질 수나 있겠소?”바로 그때, 원 할머니가 호패를 꺼내, 그의 눈앞에 들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길을 안내하거라!”조급한 표정을 짓던 푸른 옷의 사내는 호패를 보자마자 표정이 얼어붙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곧장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리며 말했다.“서관 대인께서 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무례를 범해 송구하옵니다.”“그만 사과하고 길 안내나 하시오.”원경릉이 말했다.“예, 예!”사내는 급히 물러서서, 예를 갖춰서 길을 가리켰다.“마차가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서관 대인, 이쪽으로 오시지요.”원경릉은 할머니를 부축해 마차에 올랐고, 곧장 관아로 향했다.지부 대인은 따로 사저가 없어 관아의 뒷마당에서 거주 중이었다. 혼자 지내는 데다 관아가 워낙 가까워 편리했기 때문이다.관아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안으로 들어갔다.주 지부는 병세가 꽤 심각해져 있었다. 그는 어지럼증과 흉통에 시달려, 침대에 누운 채 말을 꺼낼 힘도 없었다.원경릉은 직접 치료에 나섰고, 약상자를 열어 체온 측정기와 청진기를 꺼냈다.푸른 옷의 사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가씨께서도 의원이십니까?”그러자 곁에 서
이 대인이 원경릉에게 의학을 잘 모른다고 반박할 틈도 없이, 원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대로 하게. 하루만 줄 테니, 그 안에 역병에 관한 모든 자료를 가져오게. 사망자 수도 포함되어야 하네." 이 말까지 듣자, 이 대인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비록 조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서관 대인이 멀리서 오계부까지 왔으니, 시키는 일은 해야지 대인의 마음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을 보내 조사를 명한 후, 이 대인은 거처를 마련해 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원경릉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의서에 의원이 많지 않으니, 대인도 바쁘실 텐데요. 저희가 직접 오계부를 돌아보겠습니다." 이 대인은 그녀가 원 할머니의 힘을 빌려 위세를 부린다고 생각해,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말에 답도 하지 않고, 원 할머니에게 예를 올렸다. "어르신께서 머무실 계획이 있으시면, 부디 저에게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대인을 잘 대접하라, 명을 내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일이나 보게." 원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원경릉에게 말했다. "먼저 좀 돌아보다, 객사를 찾아 머물자꾸나." "예!" 두 사람은 역병을 조사하기 위해 다급히 이곳을 찾아왔기에, 먼저 각지의 의원을 직접 돌아보려 했다. 아마 다섯째 일행은 빨라야 내일이나 모레쯤 도착할 것이었다. 두 사람이 의서를 나서자, 이 대인은 뒤따라 나오려다 원 할머니의 날카로운 눈빛에 움찔하며 발길을 멈췄다. 두 사람은 오계부의 거리로 향했다. 거리가 꽤 번화했고, 사람들도 제법 많아, 대낮에는 조금 붐볐다. 그들은 곧장 의원으로 향했다. 의원 앞에는 약차가 많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환자는 얼마 없었다. 겉보기엔 역병이 퍼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원경릉은 안으로 들어가 의원에게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의원은 요즘 들어 약차가 잘 팔리고 있고, 하루에 천 봉지가 넘게 팔린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도 역병
늦게 출발한 원경릉은 신속하게 오계부로 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오계부 근처 주현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가 현지 혜민서로 가야 한다며 잠깐 멈추자고 했다. 그러고는 혜민서에 오계부로 약을 공급할 준비를 하게 했고, 명을 받으면 바로 오계부로 보낼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당부했다. 혜민서 산하의 의료기관들은 지난 몇 년간 개혁을 통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고, 지역 간의 연결도 긴밀해졌다. 특히 역병을 상대하는 체계가 가동되면 상부에서는 전력을 다해 의원과 약을 지원해줄 수 있었다. 신신당부한 뒤에야 원경릉과 할머니는 오계부로 재빨리 향했다. 곧이어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우문호 일행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계부는 인구가 500만 명에 이르는 곳으로, 두 개의 주부가 통합된 지역이었다. 열대에 있어, 경작지가 많고 산이 많아 농업을 위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조정은 이곳을 서부의 주요 곡창지대로 삼고 있었던 것이었다. 농업이 발달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경제도 번화했고, 현지 백성들은 벼 외에도 감, 자두, 리치 등을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리치는 신선할 때 먹을 수도 있고, 말려서 건과로 만들어 팔 수도 있기에, 어느 정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다. 오계부는 백월국과 인접해 있었는데, 백월국은 북당의 속국으로 사이가 우호적이며 경제 교류도 활발했다. 이는 양국의 번영을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계부의 지부는 장씨 성을 가진 오계부 출신이었다. 장 지부는 훌륭한 관리이며 지역 백성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었다.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오계부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지역 혜민서를 찾았다. 할머니는 혜민서의 서관(署館) 신분을 밝혔다. 그녀는 북당 각 주부의 의서를 총괄하는 인물이고, 총책임자이기도 했다. 혜민서의 이 의원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두 사람을 안으로 청한 후, 바로 예를 올렸는데, 마치 신선이라도 본 것처럼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다. "소인은 이자옥이라 합니다. 어르신께서 친히 오신 줄도
그녀는 일단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냉 대인이 자세한 상황을 묻는 사이에 제 대인의 피를 뽑았다. 약상자는 기능이 꽤 다양하기에, 바이러스 검사도 문제없었고, 안에는 양여혜가 준 소형 현미경도 있었다. 하지만 바이러스 관찰이나 세균 배양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오계부로 향하고, 그녀는 이곳에 남아 제 대인을 치료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면 바이러스든, 세균 감염이든, 결과가 나와야 제대로 된 치료 방안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미색이 말했다. "저도 이곳에 함께 남겠습니다. 제가 환자를 돌보는 것 정도는 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괜찮으니 먼저 가거라. 어쩌면 내가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으니깐." 원경릉이 말했다. 그녀는 혼자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미색까지 데리고 가는 건 무리였다. "우리가 먼저 출발하는데, 어찌 더 일찍 도착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미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가능한 일이다. 원 선생은 늘 기적을 만들어내니." 우문호가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원경릉에게 다가가 조심하라고 몇 마디 당부했다. "알았소. 지체하지 말고, 어서 떠나시오. 오계부에 도착하면 곧바로 관아를 찾아가, 의원의 빠른 대처를 명하라 하시오. 만약 내가 먼저 도착한다면, 내가 관아를 찾아가겠소." "알겠소. 그럼, 먼저 가겠소!" 우문호는 그녀와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보는 이가 많으니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서일은 황후를 홀로 두고 가는 것이 걱정되어, 우문호를 따라나서며 계속 물었다. "정말 황후를 이곳에 혼자 남겨도 되는 것입니까?" "그럼, 네가 남을 것이냐?" 우문호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도 원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있지 않느냐?" 회왕 부부도 걱정은 되었지만, 다섯째의 여유로운 모습에 자신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다섯째 부부는 늘 비밀이 많은 사람들이라, 그들은 더 이상 신경
원경릉은 밖으로 나가, 오계부에 역병이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오계부는 서쪽에 자리 잡고 있어, 기후가 더운 탓에 가끔 역병이 생기긴 했었지만 백성들은 고뿔 치료에 쓰이는 약초로 끓인 차를 즐겨 마시기에, 대규모로 역병이 돈 적은 없었다. 냉 대인이 말했다. "오계부에서는 이 상황을 조정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비록 해마다 역병이 생기긴 하지만, 빠르게 통제해 왔으니, 이번에도 예전과 같은 상황이지 않겠습니까?"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번엔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 대인의 형도 역병으로 돌아가셨고, 그와 가까이 지낸 사람들도 병에 걸렸습니다. 이렇게 관아에만 역병에 걸린 자들이 많으니, 예전보다 더 심각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해마다 역병이 생겼으니, 그에 대한 대응책도 이미 있을 것입니다." 원경릉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마다 역병이 생겼지만, 대대적으로 유행하지 않았기에, 현지 관리들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쉽게 통제될 것이라 생각하고, 방심할 수도 있으니깐요." 우문호가 물었다. "원 선생, 역병을 어떻게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역병 상황이 안 좋을 것이라 추측할 뿐, 정말 오계부의 상황이 어떠한지는 아직 모르네. 제 대인은 여전히 고열에 시달리고 있어, 수액을 맞히고 해열제를 먹였소. 냉 대인과 함께 들어가 상황을 자세히 물어봐야겠소. 하지만 꼭 마스크를 끼고, 병을 막아야 하오." 원경릉은 유행성 독감이나 변이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일 것이라 의심하고 있었다. 그녀가 살던 세계에서는 A형 독감의 대규모 변이가 십수 년마다 한 번씩 발생했는데, 그런 변이 독감은 현대에서도 의료 체계에 큰 부담이 되곤 했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만약 역병이 다시 시작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통제해야만 했다. 원경릉의 말을 우문호와 냉 대인은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도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 그의 폐를 확인해 보았는데, 남녀가 가까이 접촉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제 대인은 이내 손을 뻗어 그녀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병세가 심해 아픈 데다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묘한 위압감을 풍기는 의원의 단호한 눈빛과 기운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다. 원경릉은 앞쪽을 청진한 뒤, 그에게 옆으로 돌라고 한 다음에 꼼꼼히 살피고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며칠을 아프신 것입니까?" 제 대인은 꽉 막힌 코 때문에 콧소리를 내며 천천히 몸을 돌리고 답했다. "며칠 사이의 일입니다. 오계부를 떠날 때도 멀쩡했는데, 밤새 달리고, 말을 오래 타다 보니 고뿔에 걸렸나 봅니다." "기침 말고, 가슴 통증도 있습니까?" "예. 이곳이 아픕니다!" 제 대인은 가슴 근처를 손으로 누르며 말했다가, 숨쉬기가 어려운 듯 손바닥을 움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도 아프고, 온몸 뼈마디도 다 아픕니다." 그러자 원경릉은 더 자세히 증상을 확인한 뒤 말했다. "약을 준비할게요. 수액을 좀 맞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수액이요?" 제 대인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예. 질문은 하지 마시고, 그저 치료에 협조만 해주십시오. 병세가 꽤 심각한 편입니다." 원경릉은 제 대인이 폐렴이라 확신했고, 중증 폐렴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 대인은 병이 심하다는 말에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말했다. "의원 나리, 제발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십시오… 저에게는 아직 모셔야 할 노모가 있습니다. 지난달 병으로 형님께서 세상을 떠난 터라, 형님의 자식들도 제가 돌봐야 하니, 절대 이대로 목숨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원경릉이 답했다. "최선을 다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치료에만 집중하시지요!" 제 대인은 감동을 받은 듯 감사 인사를 올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원경릉은 곧바로 약을 지어 수액을 준비했다. 수액을 맞는 동안, 제 대인은 여전히 놀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냉정언이 물었다. "그렇다면 어찌 의원을 부르지 않은 것이냐?" 역 일꾼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돈이 없다고 하셔서 해열에 좋은 약초를 조금 달여주었지만, 별 효과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방에 다른 사람이 들어오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의원을 부르고 진료하고 약을 짓는 데에는 모두 돈이 필요했지만, 역에서는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예산이 따로 없었다. "오계부의 부승이 상경하여 직무를 보고하러 왔는데, 돈도 지니지 않았다는 것이냐?" 냉정언이 놀라서 물었다. "나리께서 돈이 든 보따리를 도둑맞았다고 하셨습니다." "혼자 온 것이냐?" 냉정언이 물었다. "예. 관속이나 아전도 없이 혼자입니다." 경성과 꽤 멀리 떨어진 오계부의 부승이 그 먼 길을 수행 인원도 없이 홀로 와, 직무를 보고하는 것은 꽤 이상한 일이었다. 원경릉이 말했다. "내가 확인하겠소." "부인께서 의원이십니까?" "그렇다. 길을 안내하거라." 원경릉이 답했다. 역 일꾼은 별다른 의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 북당에서는 여인이 의술을 익히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 황후가 의학원을 세운 이후, 해마다 여인들이 입학하여 의술을 배우고 있었다. 우문호가 미색을 돌아보자, 미색이 바로 입을 열었다. "저도 함께 가겠습니다." 원경릉은 약상자를 챙겨 들고, 역 일꾼의 안내를 받아 한 객실로 향했는데, 문이 세게 잠겨져 있었다. 일꾼이 문을 두드렸다. "제 대인, 제 대인. 의원께서 오셨습니다. 문 좀 열어주십시오." 하지만 방은 일꾼의 부름에도 여전히 잠잠했다. 이내 기침 소리가 들려왔고, 한참 기침을 하다, 쇳소리 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마." 말이 끝나자, 침대에서 일어나 휘청거리며 걸어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곧 문이 열렸고, 솜으로 만든 마스크로 코와 입을 가린 채, 핏발이 선 눈만 드러낸 관리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피곤하고 지친 모습으로 문턱을 잡고 서 있었다. 그는 숨을 고른 뒤
이번 순행에 서일이 동참하면서 사식이도 함께 가게 되었다. 그러나 고된 여정에 아이를 데리고 다니기엔 무리가 있었다. 다행히 원가에서 사식이가 서일과 함께 순행에 나선다는 소식을 듣고, 원가는 서일 부부가 3년이든 5년이든 돌아오지 않더라도 아이를 잘 돌보겠다고 약속해주었다. 그 역시 아이들과 떠들썩하게 지내고 싶어 했던 터라 기뻤다.탕양도 순행에 참여했으나, 그의 부인은 맡은 직책이 있어 동행하지 않기로 했다. 미색 또한 당연히 회왕을 따라갈 예정이었으나, 오랜만의 외출인 만큼 아이를 데리고 간다면 재미가 없을 테니, 아이를 데리고 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러자 그녀의 시어머니인 태비도 흔쾌히 아이를 돌보겠다고 나섰다. 이제 아이도 다 컸으니 힘들게 돌볼 필요가 없어졌으니 말이다. 그렇게 모두가 신나게 순행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원경릉은 순행을 기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숙왕부의 노인들이 걱정되었다. 비록 삼대 거두는 여행을 떠난 상황이긴 하지만, 숙왕부에는 아직 흑영 어르신들이 계셨다. 그리고 안정을 찾은 추 할머니마저 지속해서 약을 복용해야만 했다. 온갖 걱정에 흽싸인 원경릉 때문에 오히려 원 할머니가 그 모습을 보고 성가시다고 느꼈는지, 진지하게 말했다. "그냥 편히 놀러 가면 되지, 뭘 그렇게 걱정하냐? 내가 있지 않느냐?"그 말에 원경릉은 할머니를 껴안으며 웃었다."맞아요. 제가 몸이 열 개라도 할머니는 못 이길 테니까요!"이 말은 틀리지 않았다. 원경릉이 비록 황후라고 해도, 숙방부에서의 위세가 그리 대단하지는 않았다. 그런 그녀가 유일하게 권력을 행사할 수 있을 때는 바로 주사기를 꺼낼 때 뿐이지만, 원 할머니는 달랐다. 그녀는 그냥 서 있기만 해도, 눈빛 하나만으로 모든 사람을 제압할 수 있었다. 게다가 최근 몇 년 사이, 그녀의 성격이 점점 난폭해져서, 틈만 나면 사람을 끌고 가서 주사를 놓았다. 원 할머니가 손수 만든 약이 한가득 담긴, 원경릉의 약상자에는 없는 귀한 약들을 보여주며 말했다. “이 약들은 수토불복, 고
조사가 끝난 후, 목을 쳐야 할 자는 목을 치고, 옥에 보내야 할 자는 옥에 보냈다. 그리고 오씨가 챙긴 돈은 전부 피해자 가족들에게 배상되었다.우문호는 신하들 앞에서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지 못했다. 그는 탐관오리를 금지하고 청렴을 장려하는 법을 내렸으며, 부정부패 전담 조사 관아를 설립해 전국을 조사하라 명했다. 부정부패를 근절해야 백성들이 잘 살 수 있다고 강조했다.동시에 그는 신하들의 봉급 인상을 제안했다. "예전엔 나라가 가난해 관리들의 봉급이 적었지만, 이제는 나라도 번영하고 산업이 활성화되었으니 함께 잘 살아야 할 때다." 봉급을 높이면 부정부패 예방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 덧붙였다.조회가 끝난 후 우문호는 수보와 친왕들을 불러 오래 전부터 품어온 생각을 털어놓았다."과인은 순행하고자 하오!"나라가 태평하지만 황제의 관심이 미치지 못하는 곳도 있다는 걱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초왕과 태자 시절에는 백성들의 고통을 잘 알았지만, 지금은 점점 백성과 멀어지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직접 돌아다니며 백성들의 삶을 보고 싶었고, 공무를 핑계로 원 선생과 북당 전역을 둘러보고 싶었다.냉정언이 적극 찬성하며 말했다."상소문만으로는 진실을 알 수 없습니다. 은폐된 사실, 억울한 사건, 고통받는 백성들을 직접 확인해야 합니다.""옳은 말이네." 우문호는 최근 냉정언의 말이 마음에 들었다.그러나 냉정언이 갑자기 태도를 바꿨다."하지만 아직 각지에 위험한 도적들이 있습니다. 그러니 폐하의 안전을 위해 소신이 대신 가는 것이..."그러자 우문호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수보의 말도 일리 있지만, 참 뻔뻔하구먼!" 그러고는 어명이 적힌 서찰을 건네며 덧붙였다."함께 순행할 명단이니 반포하시게!"냉정언은 자기가 제외될 줄 알았으나 명단에 자신의 이름이 있는 것을 보고 기쁜 목소리로 물었다."소신도 갈 수 있습니까?""가시게. 국정에 큰일이 없으니 내각에서 처리할 수 있네. 새로 양성한 인재들의 능력을 시험해볼 기회이기도 하고.""상산명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