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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012화

작가: 유애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4-11-09 18:00:25
온천지가 하얀 눈으로 뒤덮여 있어 붉은 핏자국이 한 눈에 보였고 피비린내가 가시지 않았다.

곧이어 또 한 명이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그는 이리봉청을 보자 큰 소리로 부르짖으며 달려가 꿇어앉으며 공포와 절망감에 흽싸인 목소리로 외쳤다. “죽으시면 안 됩니다! 어서 일어나세요. 복수해야죠. 둘째 아가씨 복수를 해야 합니다!”

원경릉은 단 한 번도 배기의 시각에서 배기를 본 적이 없었는데, 그는 사실 모든 방법을 동원해 이리봉청을 도왔고 마지막엔 자신의 목숨까지 바친, 비극적인 사랑의 주인공이었다.

하지만 배기의 사형을 제외하고 그의 생사에 관심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배기가 이리봉청의 몸을 여러 번 흔들자 그녀는 다행히 의식을 조금 회복한 듯 천천히 눈을 떴다. 배기는 안도하며 얼른 바닥에 앉아 약 한 알을 부숴서 이리봉청의 입에 넣어주었다. 그러고는 이리봉청의 상태를 주시하며 말했다. “돌아가시면 안 됩니다, 복수하셔야죠. 제가 둘째 아가씨를 위해 복수하겠다고 맹세했는데 어길 수 없습니다. 돌아가시면 안 됩니다.”

“복수?” 이리봉청의 의식이 조금씩 또렷해지며, “아가, 우리 아가….”

배기가 이리봉청을 안았다. “사당으로 모시고 가서 당신부터 구한 뒤에, 경성으로 황제를 찾아가 둘째 아가씨 복수를 해야 합니다!”

이리봉청이 고개를 떨궜을 때 원경릉은 그녀의 눈가에 눈물 자국이 있고, 여전히 아가를 중얼거리고 있는 모습을 봤다.

배기가 그녀를 업고 달리는 동안 몇 번이나 쓰러진 탓에, 견디지 못한 이리봉청은 다시 정신을 잃고 말았다.

원경릉은 멀리서 그들을 주시하며 따라갔다.

두 사람은 사당 아래서 젊은 덕방 스님과 만났고, 덕방 스님은 그들에게 쉴 수 있는 동굴을 내주었다.

원경릉은 다가가지 않고 멀찍이 거리를 유지하며 영석을 깰 기회를 기다렸다.

마침내 셋이 상의하다가 덕방 스님이 영석에 대해 말을 꺼내는 소리가 들렸다. 이리봉청이 덕방 스님에게 영석을 어떻게 아는지 묻자, 영석은 원래 수백 년 전 사당에 속했던 보물로, 나중에 사당에 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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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로 그때 원경릉이 염력을 사용해 영석이 바닥에 떨어지기 전에 거대한 돌로 영석을 내리치게 했다. 영석은 그렇게 박살이 나서새까만 파편들이 되어 바닥에 흩어졌다. 원경릉은 원격으로 염력을 사용해 삽을 가져온 뒤 얼른 달려가 파편을 상자에 퍼담고 땅을 깊게 파서 상자를 묻었다.원경릉은 영석이 대체 무엇인지 몰랐지만, 그저 이 물건에서 강력한 방사능이 나올지도 모른다는걱정이 생겨 아무런 피해도 생기지 않기를 바라며 묻었던 것이다. 어쨌든 이곳은 설산 정상이니까. 덕방 스님은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매우 놀라 원경릉에게 물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왜 눈늑대봉에 나타나셨죠? 영석을 대체 왜 깨신 겁니까?”배기는 이미 바닥에 쓰러져 온 몸에 힘이 하나도 없는 상태였고, 이리봉청도 바닥에 주저 앉아 있었다. 이리봉청 또한 원경릉을 보고 역시 놀랐으나 머리가 점점 어지러워지며 선혈이 귀와 코에서 뿜어져 나왔다.영석이 바닥에 닿기 전에 깨졌으므로 이리봉청의 몸에는 영석의 에너지가 남아 있었다. 그러나 잠시 머물렀을 뿐이기에 다행힌 목숨에 지장은 없지만 정신은 혼미해질 것이었다.원경릉은 상당히 괴로워했다. 한참 동안 이리봉청을 바라보고, 바닥에 쓰러진 배기를 바라봤다. 배기가 전에 무슨 잘못을 저질렀든 이 순간만큼은 충분히 존경받을 만한 사람처럼 느꼈다.원경릉은 덕방 스님과 더는 얽히기 싫어 정신을 차리고 얼른 달아났다.드디어 영석이 깨졌으니, 원경릉은 풍도성에 가서 결과를 확인하는 동시에 소여쌍이 역천개명의 저주를 받아, 안지여가 그 분노를 애꿎은 백성에게 퍼붇지 않는지 확인해야 했다. 성을 다스리는 원칙에 손을 써놔야 할 수도 있어 원경릉은 풍도성의 현자라 불리는 오 선생을 찾아가기로 했다.원경릉은 날듯이 빠르게 산에서 내려왔다. 눈늑대봉에서 일어날 모든 변화는 이로써 끝이 났다.…풍도성루.천문 세가 사람이 전부 죽임을 당했고, 이리봉청은 비록 행적이 묘연하지만 수많은 철위들이 그녀를 죽이러 쫓아가며 여러 차례 매복 공격을 가했다.안지여는 성주

  • 명의 왕비   제 3014화

    안지여는 정신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매월 며칠씩, 아니 그것도 36년씩이나 고통스러워야 한다니… 대체 누가 그걸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지만 천문 세가 사람들은 이미 모두 죽었으니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오 선생은 안지여와 얘기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와 문들 닫아걸고 누구도 만나지 않겠다고 했다.오 선생은 사람을 시켜 불단을 차리게 하더니 그 앞에 꿇어앉아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어젯밤 너무 놀라운 것을 봤기 때문이었다. 어젯밤 만난 여자가 깊은 밤 자기 방에 찾아와 아무런 기척도 내지 않고 탁자 위의 모든 물건을 손가락만 까딱하며 어지럽혀 버렸다.가장 놀라운 건 가위가 오 선생의 눈앞으로 날아와 허공에 멈춰 있었던 것으로, 그 여자가 말을 마치자 그제야 가위가 원래 있던 곳으로 다시 날아갔다.오 선생은 어제 그 여자가 했던 말들을 전부 기억하고 있었다. 앞으로 36년간 풍도성을 다스리는 방침을 전부 받아쓰라고 해서 하라는대로 전부 베껴 썼다. 그 여자는 자기 뜻대로 따르면 풍도성의 선지자가 될 것이고, 자신의 말을 따르지 않으면 언제든 시체로 변해 버릴 수 있따고 했기 때문이다. 그 여자는 신선이 아니면 악귀 같았기에 오 선생은 당연히 그 여자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오 선생은 안지여에게 신문 세가를 세워 성주가 풍도성을 다스리는 것을 돕도록 진언했다.원경릉은 그제서야 경호로 돌아올 수 있었다. 아직도 이렇게 하는 것으로 정말 아무런 변화도 일으키지 않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지만 어떤 무고한 사람도 엮이기를 원하지 않았다.이번 시간 여행 때문에 어쩌면 원경릉은 앞으로의 일생을 바쁘게 지내야 할지도 몰랐지만 이번 행동의 대가가 그렇다면 원경릉은 모든 것을 바쳐 기꺼이 책임을 다할 생각이였다.36년 전 경호로 와서 안풍 친왕이 준 안내를 보며 경호에 뛰어들어 돌아왔다.돌아오는 난이도가 높지 않았던 이유는 원경릉이 경호를 연구할 때 이미 경성에 살고 있는 연대의 시공간 좌표가 익숙했기 때문으로, 안풍 친왕의 지도도 있

  • 명의 왕비   제 301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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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의 왕비   제 3016화

    이리봉청은 여전히 봉두난발에 더러운 옷을 입고 있었지만 얼굴은 깨끗한 상태였다. 머리는 눈늑대봉에서 심하게 헝클어진 탓에 잘라 내고 뜨거운 물에 천천히 풀어서 씻어야 했다.옷은 갈아입지 않았지만 이리 나리의 겉옷을 덮어 바싹 마른 몸을 싸매었고, 신발을 새로 바꿔주려 해도 하도 싫다고한 탓에 여전히 헤진 예전 신을 신고 있었다. 예전 신발에는 천문 세가의 문장이 수놓아져 있었기 때문인데 그것마저 이미 낡아서 알아볼 수 없게 되었다.기울어가는 석양이 모자의 얼굴을 비췄고, 두 사람은 한 걸음씩 저택 대문을 들어갔다.공주는 문 앞에 나가서 그들을 맞이하고 싶었으나 미색이 바람이 차서 안 된다고 해 복도에 서서 기다렸다. 공주는 벌써 눈물을 흘린 탓에 남편이 시어머니 손을 잡고 들어오는 모습도 눈물이 앞을 가려 잘 볼 수가 없었다.이리 나리는 어머니 손을 잡고 눈물범벅이 된 아내를 바라봤는데, 순간 코끝이 시큰해져 솟아나는 눈물을 애써 참았다.공주가 달려 내려와 울며 예를 취했다. “어머니!”이리봉청은 낯선 사람이 갑자기 앞으로 오자 경계하며 무의식적으로 베개를 꽉 쥐고 이리 나리의 손도 꽉 쥐었다.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의 손을 꽉 되잡으며 속삭였다. “무서워 마세요. 령이에요. 어머니 며느리요!”“며느리?” 이리봉청이 중얼거리더니 살짝 고개를 옆으로 하고 놀라 물었다. “며느리? 우리 아들은?”“여기 있잖아요!” 이리 나리가 얼른 말했다.그제서야 이리봉청이 부드럽게 웃으며 눈을 반짝였다. 눈부시게 순수한 모습으로 이리 나리의 손에서 자기 손을 빼더니 이윽고 베개를 쓰다듬으며 자애로운 미소를 지었다. “우리 아가!”이리봉청은 비록 눈늑대봉에서 36년이나 긴 시간을 보냈지만 별로 늙지 않아 보였다. 어쩌면 실성해서 매일 베개를 안고 세상일에 신경 쓰지 않은 채 행복하게 아이와 같이 지낸다고 믿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걱정거리가 없으니 세월의 흔적이 조금은 비껴간 것 같았다. 이리봉청은 여전히 베개를 아들로 여겼다.공주는 눈물을 닦으며 이리 나리를

  • 명의 왕비   제 3017화

    이리 나리는 이리봉청의 맑고 슬픈 눈동자를 보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긴장한 채로 무릎을 꿇고 슬쩍 ‘엄라’라고 불러봤다. “엄마?”그러자 이리봉청은 미친 듯이 눈물을 흘렸다. 마치 36년간 쌓아온 눈물 둑이 터지며 일시에 쏟아지는 듯했다. 이리봉청은 눈앞에 이 남자를 제대로 알아볼 수 없었지만 그 사람이 자신 앞에 꿇어앉아 엄마라고 부르는 것은 알 수 있었다.시간이 마치 한 순간에 36년 전의 눈늑대봉으로 돌아간 듯했다. 이리봉청이 막 아이를 낳았을 때 검붉은 얼굴의 신생아가 울지도 못하고 있어 가슴에 꼭 품었다. 이리봉청은 자신과 아이의 인연이 어쩌면 지금, 이 순간을 위해 만들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이리봉청은 믿을 수 없어 떨리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 아무 말도 잇지 못 했다. 그저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릴 뿐이였다. 이리 나리의 얼굴을 차마 만질 수 없었다.감히 그럴 수도 없었다. 그때 따스하고 넓고 두꺼운 손이 이리봉청의 떨고 있는 손을 꼭 쥐고 자신의 가슴에 끌어당겨 꼭 안아주었다.“엄마…!”다시 한번 자신을 부르는듯한 소리가 들렸다. 품에 안은 느낌은 이전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이리봉청은 주먹을 꼭 쥐고 아들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비통함과 애절함이 울컥울컥 솟구쳤다.이리봉청은 울부짖었다. 넋을 놓고 가슴이 찢어지도록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울부짖었다. 아들을 안은 채로 자신의 머리를 때리며 상처받은 야수처럼 낮게 으르렁거렸다. “아…. 아….!”그 자리에서 이 장면을 본 사람 중에 눈물을 참을 수 있는 사람이 있었을까? 가슴을 쥐어뜯는 아픔이 모든 사람에게 전염되어 우문령과 미색도 동시에 소리죽여 눈물을 흘렸다.이리 나리는 스스로 머리를 때리는 이리봉청의 손을 잡고 그 두 손을 자신의 가슴에 올렸다. 붉어진 눈은 봄날 나뭇가지 끝에 걸린 목면처럼 새빨간 상태였다. “엄마, 괜찮아요. 전 여기 있어요. 다 지나간 일인걸요. 전부 다 지나갔어요.”이리 나리가 어떻게 설득하고 위로해도 이리봉청의 처참한 울음은 그치지 않았다

  • 명의 왕비   제 3018화

    아들의 손은 이리봉청에게 큰 안도감을 주었다. 그리고 이리봉청은 조금씩 냉정을 되찾으며 머릿속 단편 조각들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너무도 불가사의했다. “세상에 늑대가 널 구했다고? 그럼, 네 사부는 지금 어디 계시니? 그분께 절 올려야겠다. 아들의 생명을 구해주신 은인이시구나!”“만나게 되실 거예요. 내일 오신다고 했거든요. 어서 일어나세요. 차가운 땅바닥에 앉지 마시고요.” 이리 나리가 우선 천행이를 안고 다시 손을 내밀어 이리봉청을 일으켰다. “어머니의 며느리가 앞에 있는데 궁금하신 건 없으신가요?”“며느리…?” 이리봉청은 아직 어리둥절한 모양으로 우문령과 미색의 얼굴을 보더니 다시 우문령을 되돌아봤다.우문령은 울어서 눈이 퉁퉁 부어 있었는데, 시어머니의 눈빛을 보고 앞으로 다가와 눈물이 아직 가시지 않은 얼굴로 꿇어앉으려 하자 이리 나리가 얼른 우문령을 일으켰다. “지금은 절할 필요 없어. 바닥이 찬데 아이를 낳은 몸으로 안 돼.”그러자 우문령이 예를 취하며 울먹였다. “며느리 우문령 드디어 시어머니를 뵙습니다…!”이리봉청은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우문령의 손을 잡고, “내가 아들이 있고 며느리가 있고 손자가 있다니…. 이 모든 게 진짜라니. 어떻게 전부 다 있을 수가 있어? 난…. 도무지 믿을 수가 없네.”“엄마, 전부 진짜예요. 어머니는 눈늑대봉에서 36년을 계셨고 아들은 계속 어머니께서 거기 계신 줄 모르고 불효했어요….” 이리 나리가 말하다 목이 메었다. 이리 나리는 천하제일의 부호요 늑대파도 강호를 호령하는 패주였지만 정작 이리 나리의 어머니는 눈늑대봉에서 온갖 풍상과 비바람을 맞고 있었다.이리봉청이 고개를 흔들고 하염없이 이리 나리를 바라보다가, 이제는 손을 뻗어 이리 나리 얼굴을 쓰다듬었다. “네가 살아 있는 것보다 엄마를 더 기쁘게 하는 게 또 있을까 싶네… 바보로 지낸 세월 동안 엄마는 세상을 몰랐지. 하지만 밤마다 네가 늑대에게 물려가는 꿈을 꿨어. 대부분 식은땀에 젖은 악몽이었지만 세상일을 몰랐어…. 그런데 네가 살아있다니

  • 명의 왕비   제 3019화

    미색과 시녀가 이리봉청이 목욕하고 옷 갈아입는 것을 도왔다. 원경릉이 과거에서 돌아오는 시간 동안 이리 나리가 사람을 시켜 새 옷을 여러 벌 준비시켜 두었다.머리카락은 다 씻어낼 수 없어 미색이 직접 가위를 들고 잘랐다. 다행히 뜨거운 물에 한참 담그자 대부분 풀어진 덕분에 잘라낸 부분이 많지는 않았다.새 옷으로 갈아입은 후 미색이 약간 화장을 해 드리고 머리를 이쁘게 묶어 주었다. 그러자 동으로 된 거울에 비친 중년 여인은 몰라보게 달라져 있었다.세월도 미녀를 아까워했는지 이리봉청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눈가에 잔주름이 있고 이마에도 주름이 약간 있지만 그녀의 아름다움엔 전혀 손색이 없었다.너무 말라서 그런지 얼굴이 심하게 창백해져 있었고, 수수한 색 비단옷을 깡마른 몸에 걸치자 약간 커 보이긴 했지만 보기 싫지 않고 오히려 선풍도골의 정취를 풍겼다. 어쩌면 그녀가 36년간 눈늑대봉에서 세상일과 관련없이 지낸 덕분일지도 모른다.이리봉청은 온통 기쁨과 희열로 가득했다. 모든 것이 꿈 같고 환상 같아서 더 이상을 상상할 수 없었다. 원한과 복수심만 마음에 가득 찬 게 아니었다. 그런 생각을 할 틈이 없었다.미색이 이리봉청의 손을 잡고 나왔을 때 이리봉청 얼굴은 여전히 행복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저녁 수라에 미색은 참석하지 않았다. 일부러 저녁 수라를 들 때 자리를 비켰다. 36년간의 이별 뒤 모자가 처음으로 같이 하는 식사였다. 미색은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미색은 달빛을 따라 걸으며 중앙 정원으로 나가며 돌아보았는데, 어머니가 조심스럽게 앉아서 이리 나리를 한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봐도 봐도 모자란 듯 지난 36년 치를 채우려는 것 같이 느껴져 미색은 다시금 눈물이 차오르는 것 같아 얼른 자리를 떠났다.잠시 후 네 식구는 한 곳에 앉아서 같이 밥을 먹었다. 이리 나리는 천행이를 안고 줄곧 내려놓지 않았다. 천행이도 아빠가 앉아 주는 걸 즐기고 있는지 울지도 않고 떼도 안 쓰고 포동포동한 얼굴에 웃음꽃이 만발했다.저녁 수라는 담백하게 했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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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지여에게 구원 병력이 없는 상황에서, 이리 나리 일행이 성을 제압하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대오가 경성에서 출발하기 전에, 안풍 친왕비가 미리 사람을 풍도성으로 보내 각처, 특히 성 수비군과 군대에 잠입시켜, 음식에 효과가 천천히 나타나는 독을 풀어, 오늘 중독 증상이 나타나도록 독의 분량을 조절했다.적어도 내일까지는 안지여를 도우러 올 사람은 없었다. 독성은 적어도 이틀이 지나야 깨끗해지기 때문에 이틀 동안 그들은 설사와 전신 무기력으로 성에 무슨 일이 있다는 걸 알아도 와서 도울 수 없었다.그리고 그들이 기력을 회복할 때쯤이면, 안지여는 벌써 죽었을 것이다.안풍 친왕과 이리 나리는 성을 통제하고, 안지여 부부를 제압해 두 사람을 줄로 묶고 지혈시켜 주었다.안지여는 요 몇 년 동안 자신이 상당히 대단하다고 여겼다. 이는 풍도성이 부유하기 때문으로, 돈으로 많은 사람을 살 수 있었으며, 여러 곳에서 추켜세워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처절하게 패배한 적이 없었던 이유는 진정한 적이 없기 때문으로, 주변의 떠돌이 비적은 작은 마을 규모로 너무 작아서 소탕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결코 그가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적이 너무 약해서였다.조정 사람과 비교했을 때, 그는 제대로 훈련받은 적 없는 비적었기에 일격도 감당할 깜냥이 못됐다.이리 나리는 둘을 중정에 묶어 두었다. 온 바닥에 남은 음식과 깨진 기와가 널브러져 있는 것을 본 안지여는 마음속 깊이 분노가 일었다. 자신의 생일날, 그를 다치게 한 것이 바로 그의 친자식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더욱이 오늘 이렇게 많은 고수가 현장에 있었는데도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이런 결말을 맞다니 너무 불쾌했다. 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을 부축하고 안지여 부부 앞으로 가서, 그녀가 안지여 부부를 내려다보자, 그들은 낭패에 달가워하지 않는 기색으로, 이리봉청은 분노하는 마음과 함께 서글픈 마음도 들었다. 그들을 죽이면 커다란 복수는 이뤄 천문 세가 망자의 원혼은 달랠 수 있었다.하지만 저들을 이렇게 쉽게

  • 명의 왕비   제 3032화

    “그럴 필요 없을 것 같은데?!” 이리 나리가 검을 휘두르며 안지여를 겨누자, 안지여가 공중으로 뛰어올라 후퇴했다.공자들은 돕고 싶었으나 검은 옷을 입은 노인들에게 바로 제압당했다. 안지여는 이리율 것으로 그들은 주변 사람을 제압하기만 할 뿐 옆에 서서 전투를 관전하고 있었다.이리율의 무공이 얼마나 뛰어난지 그를 가르친 안풍 친왕 부부를 제외하고, 사실 많은 사람들은 모르고 있었다.이리율의 검법은 신속하고 맹렬해서 안지여는 상대하느라 쩔쩔매고 구석으로 몰리고 있었다. 성안의 호위들은 늑대 무리와 늑대파, 홍매문 사람들에게 막히는 바람에 안지여는 홀로 고전을 면치 못했는데 그래도 아직은 버틸 수 있었다.하지만 30분을 못 가서 안지여는 질게 틀림없었다.놀란 나머지 계속 실성해 있던 소여쌍이 갑자기 이리봉청을 향해 바싹 마른 손을 뻗어, 그녀의 목을 조르며 광적인 집착과 분노에 사로잡혀 성질을 부렸다. “멈춰, 다들 멈추라고. 안 그러면 내가 이년을 죽여버릴 것이니까!”소여쌍은 무공을 할 줄 알았지만 잘하지 못한 것이 어릴 때부터 계속 중병을 앓아 무공 연습에 소홀했고 성주 부인이 된 뒤로는 더욱 병기에 가까이할 일이 없었지만, 공력만큼은 아직 약간 있었다.소여쌍은 증오의 힘으로 이리봉청의 목을 졸랐는데, 소여쌍이 조금만 더 힘을 주면 이리봉청의 목을 부러뜨릴 것만 같았다.안풍 친왕이 차가운 눈빛으로 나서려 하자, 안풍 친왕비가 말리며 고개를 살짝 흔들었는데, 그럴 필요 없다는 뜻으로 뒤에 있던 사람들에게도 참으라는 눈짓을 하자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모두가 이리봉청이 제압당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손가락으로 뭔가를 쥐고 있어 소여쌍의 어깨 위를 휘감고 팔을 눌러 소여쌍이 머리를 돌리게 했다. 이리봉청 손에 쥔 것은 바늘로, 그대로 소여쌍의 오른쪽 눈을 찌르고 들어갔다.소여쌍이 절규하며 이리봉청을 놔주고 선혈이 흐르는 눈을 움켜쥔 채 비틀거리다 바닥에 쓰러져 데굴데굴 구르며 새된 소리를 지르는데, 원망과 저주의 말을 끊임없이 쏟아

  • 명의 왕비   제 3031화

    풍도성 중정에는 안지여의 아들들과 사위가 그의 곁에 남았는데, 크고 작은 부상을 입어 점점 공포에 질려가고 있었다.‘이 사람들, 아주 대단하구나!’안지여는 이리봉청을 보고 비록 조금 냉정해 보였지만, 여전히 놀라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갑자기 소여쌍이 큰 소리로 웃으며, 몸을 앞뒤로 흔들며 눈물을 찔끔거리더니 완전히 미친 사람처럼 갑자기 웃음을 멈추고 부들부들 떨리는 손가락으로 이리봉청을 가리키며 원망했다. “뜻밖에 네가 안 죽었단 말이지? 게다가 아들까지 있고. 참으로 황당하구나. 정말 너무 황당해. 원래 죽어야 했을 인간은 죽지 않고, 잘 살아야 할 사람은 36년간 괴로움을 당했어. 이리봉청 네가 날 비참하게 만들었으니 넌 이제 지옥에 떨어져야 해.”이리봉청은 소여쌍의 말을 들은 체 만 체했는데, 그녀 눈에는 지금 안지여만 들어왔다.안지여는 36년을 살아왔지만, 이리봉청에게 있어 36년은 마치 사라진 시간처럼 멸문지화의 원한이 어제 일 같았다.안지여도 이리봉청의 눈에서 분노와 악랄함을 보고, 처음으로 마음속에 두려움을 느꼈다.안지여는 억지로 감정을 가라앉히고 말했다. “네 사람을 데리고 가. 지난 일을 묻지 않을 테니. 그렇지 않으면 풍도성에서 곧바로 10만 대군이 올 것으로, 살아서 도망갈 생각은 꿈도 꾸지 않는 게 좋아.”이리봉청의 목소리가 낮게 잠겼다. “우리는 이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바로 네 성으로 쳐들어갈 수 있어. 넌 이미 졌어.”안지여가 웃었다. “졌다고? 그래?”안지여는 수하의 대장군이 믿음직해서, 그들을 당하게 놔줄 수도 있다고 여겼다. 대장군의 부대는 분명 치밀하게 준비되어 있을 것으로, 아마 지금쯤이면 궁수들이 이미 배치를 마치고 그들을 전부 쏴 죽이기 위해 기다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의 손을 잡고 말했다. “어머니, 저자와 말 섞으실 필요 없어요. 앉아서 지켜보시기만 하면 됩니다!”말을 마치고 의자를 올리더니 이리봉청을 부축해서 앉혔다.안지여가 이리 나리를 보는데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 명의 왕비   제 3030화

    안지여가 퍼뜩 눈을 돌려 이리 나리를 보았다.‘이리봉청이 저자를 아들이라고 불렀다는 건러니까?이리 나리는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을 찬찬히 훑어보더니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안 성주와 좀 오래된 원한을 따져야 하는데, 관련되기 싫으신 분은 자리를 피해 주시지요!”그때 한 사람이 검을 짚고 일어나 호통을 쳤다. “넌 도대체 어떤 놈이냐? 무슨 자격으로 자리를 피해라 마라야? 안 성주를 귀찮게 할 생각이면 일단 나부터 통과해 보시지!”그는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장검을 뽑아 파죽지세로 이리 나리를 향해 휘둘렀다.이리 나리는 손을 살짝 움직여 손바닥으로 칼자루를 밀자, 검이 날아가며 그 사람의 귀를 베어 한 줄기 피가 공중에 뿌려지더니, 방금까지 기고만장하던 자가 비명을 지르고 귀는 바닥에 떨어졌다.검이 다시 이리 나리 수중으로 정확히 돌아왔다.이 모든 게 3초 안에 벌어진 일이었다.“회선검?” 검법을 아는 사람들이 깜짝 놀라며 외쳤다.현장은, 숨소리마저도 들리지 않았다.회선검은 검마의 검법으로, 그렇다는 건 저 사람이 검마의 계승자?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무리에서 검마를 찾았다. 과연 두 손으로 검을 안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도 차가운 안광이 느껴졌다.과연 진짜 검마구나, 사람들의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검마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이리 나리를 흘끔 보더니 속으로 의아해했다. ‘이 자식, 언제 내 비장의 검법을 배운 거야?’이리 나리의 검 끝에선 아직 선혈이 떨어지는데, 여전히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말했다. “이 아수라장에 끼고 싶은 거라면, 제가 무례하다고 원망할 생각 마세요.”“무엄하도다!” 안지여가 몹시 놀랐다가 천천히 정신을 차리고 눈을 치켜뜨며 이리 나리를 노려봤다. “너는 내가 누구인 줄 아느냐? 내가 네 아버지다!”이리 나리가 코웃음을 쳤다!안지여의 몇몇 아들이 달려 나와 소리쳤다. “아버지, 저희가 지켜드리겠습니다.”안풍 친왕이 젓가락을 던지고 일어나 차갑게 명을 내렸다

  • 명의 왕비   제 3029화

    오늘은 성주의 생일이기에 경사라 섣불리 피를 볼 수는 없으므로 칼은 빼 들었지만 먼저 나서서 늑대를 죽이는 사람은 없었다.안지여는 어두운 눈빛으로 ‘늑대 무리라고? 척후병의 보고로는 안풍 친왕이 늑대 무리를 끌고 온다고 했는데, 저들이 의외로 성으로 직접 쳐들어 왔다 이거지?’라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안지여는 잔을 들고 꿈적도 하지 않은 채, 무너지기 직전까지 미동도 없는 태산처럼 냉정하고 침착했다. 늑대 무리는 안으로 들어온 뒤로 두 패로 나뉘어 서서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을 호시탐탐 엿보며 으르렁거렸다.“성주님, 성주님, 저들이 기어코 쳐들어오겠다고….” 문지기가 외치는 소리는 들렸으나 사람은 보이지 않더니, 그보다 조정에서 보낸 사람들이 먼저 들이닥쳤다.앞에 걸어들어오는 두 사람을 안지여는 본 적이 있었는데, 바로 안풍 친왕 부부로 예전에 그들이 천문 세가 사람들을 조사하러 왔을 때 그에게 속은 적이 있었다. 비록 당시 일면식 뿐이었으나 천문 세가 일을 캐내고 있다는 사실에 놀란 탓에 그들의 얼굴을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그런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어째서 별로 변한 게 없는 거지?’안풍 친왕 부부 뒤에 따라오는 10여 명의 검은 옷을 입은 노인은 그들의 호위 무사일 것으로, 주인인 안풍 친왕 부부는 별 표정이 없었으나,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들어와 고개를 들자 괴팍하고 악랄한 얼굴이 안지여 마음에 들지 않았다.안지여는 여전히 일어나지 않았고, 미소는 띠고 있었지만 매서운 눈빛으로 저들이 돌계단을 오르면 그때 일어나도 늦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게 그의 태도였다.하지만 안풍 친왕 부부는 돌계단을 오르지 않았고, 손님 중 건배를 권하느라 자리를 비운 사람들 의자에 검은 옷을 입은 노인들이 차지하고 앉아, 그들을 대놓고 밀치더니 품에서 자기 젓가락을 꺼내 옆 사람 상관하지 않고 먹기 시작해 사람들이 다 경악했다.그들이 자리를 잡고 앉자 뒤따라 들어오는 사람들이 보였다.두 사람이 사람들에 둘러싸여 천천히 걸어들어오고 있었

  • 명의 왕비   제 3028화

    풍도성 안은 술잔을 주고받고 건배하며 흥겨운 잔치가 한창 무르익고 있었다.안지여는 오늘 황금색 예복을 입었는데 예복에 거대한 이무기를 수놓았으며, 황실의 밝은 황색과는 약간 구별되었지만, 자세히 보지 않으면 진짜 곤룡포로 착각할 만큼 거대한 이무기가 하늘로 날아오르는 형상이 구름을 뚫고 솟아오르는 용과 매우 흡사했다.안지여는 자신의 야심을 이미 조금도 감추지 않았다.당연히 안지여는 오늘도 야심을 감출 생각 없이 손님들에게 보란 듯이 자세를 잡았다. 심지어 인근 지역 조정 관리들이 손님으로 왔어도 안지여는 전부터 맺어온 관계였기에, 그들과 개인적인 친분이 매우 두터워 산 넘고 물 건너 저 멀리 있는 황제가 그들을 시시콜콜 관리할 수 없었다.그 자리 있던 사람들은 모두 오늘 황실에서 파견한 일행이 온다는 것을 알고, 연회석에서 큰 소리로 물었다. “성주님, 듣자하니 안풍 친왕 전하와 이리 부마께서 오늘 오신다던데 어째서 안 보입니까?”안지여가 잔을 들고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진심으로 생일을 축하한다면 결국 오겠지요.”“여정을 듣기론 오늘 분명 풍도성에 도착한다고 했는데, 어째서 밤이 되도록 아직 안 보입니까? 설마 성주님이 직접 나가서 맞이하셔야 하는 건 아니겠지요?”“성주님이 가서 맞이하셔야 한다고? 아주 허세가 대단한데? 퉤!”“누가 아니랍니까? 진심으로 생신을 축하하는 거였으면 며칠 전에 풍도성에 도착해 성의를 보여야지, 오늘까지 늑장을 부리다가 늦게서야 와서, 아직도 잔치에 오지 않은 건 분명 성주님의 체면을 안중에도 두지 않은 행태입니다. 제가 보기에 못 들어오게 막고 돌려보내시지요, 마음만 받은 셈 치고요. ”“맞습니다. 그동안 조정에서는 풍도성에서 받은 공물이 적지 않았으니, 만족한 줄도 알아야죠.”“풍도성은 더 이상 조공을 바칠 필요 없어요. 뭐 때문에 그럽니까? 수백 년 전에 풍도성은 원래 북당의 영토가 아니었어요. 선을 긋고 나와 독립해야 합니다.”모두 안지여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서, 몇 잔 들어가자, 비위를

  • 명의 왕비   제 3027화

    소여쌍의 욕은 거의 반 시진 동안 계속되었다. 이것도 별로 드문 일이 아니라 무쌍거 사람들은 다 익숙해져 있었다. 성주가 오지 않거나 소여쌍이 아프기 시작해도 이렇게 욕을 해댔다.욕하다 지치기를 기다렸다가 늙은 몸종이 가서 달랬다. “부인 그러실 게 뭐가 있으십니까? 몸이 가장 중하십니다.”소여쌍이 의자에 기대 늘어졌다. 극도로 피곤해 풀린 눈으로 천정을 보며 비참함이 가슴 깊은 곳을 타고 내렸다. “오늘이 초엿새지?”“네!” 늙은 몸종이 대답했다.소여쌍이 창백한 얼굴로 말했다. “곧 15일이구나. 또 내 명을 재촉하는 고통이 오겠지. 죽으면 죽었지 다시는 그 고통을 느끼고 싶지 않다.”그러자 늙은 몸종도 매우 괴로워했다. “부인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고통도 며칠이면 그럭저럭 지나가서, 그동안도 그렇게 지내셨잖아요?”“며칠이면 뭐 그럭저럭 지나가나?” 소여쌍이 잔인한 눈빛으로 말했다. “그건 네가 이 고통을 안 당해봐서 그래. 이게 다 이리봉청 그년 짓이야. 오빠가 그년을 쫓아가서 죽이게 한 걸 정말 후회해. 그년을 잡아 와서 가두고 내가 한 번씩 아플 때마다 그년을 갈기갈기 찢어발겨 나보다 수천 수백 배 고통스럽게 해야 했어.”늙은 몸종이 소여쌍의 손을 쥐었다. “부인 그런 생각 마세요. 벌써 죽은 사람을 이제 와서 생각해 봤자 아무 도움도 안 됩니다. 성주님과 자꾸 다투지 마세요. 자꾸 다투시다 보면 감정이 사라집니다.”소여쌍이 처연한 웃음을 지었다. “오빠는 진작부터 나한테 아무 감정 없어.”“성주님은 이리봉청에게 아무 감정 없으세요. 감정이 있을 리도 없고요. 안 그러면 당시 부인을 위해 이리봉청을 죽이고 천문 세가 사람을 다 죽이셨을 리가 없죠.”소여쌍이 고개를 돌리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전에는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요 몇 년간, 성에 들어온 여자들 생긴 걸 보라고. 전부 이리봉청을 쏙 빼닮았잖아? 오빠는 역시 후회하고 있는 거야. 날 위해 이리봉청을 죽인 걸.”소여쌍은 늙은 몸종의 손을 잡는데 고여서 썩

  • 명의 왕비   제 3026화

    안지여는 소야쌍을 놓고 천천히 안으로 걸어갔다. “이틀 뒤가 내 생일인데, 당신 몸 상태는 어때?”그러자 소여쌍은 시녀의 손을 뿌리치고 얼른 안으로 따라 들어가려 했는데, 몇 걸음 만에 휘청거리더니 하마터면 안지여 뒤로 넘어질 뻔했다.안지여는 소여쌍을 잡아줄 수 있었지만, 손을 뻗지 않고 그녀를 등지며 보이지 않는 척했다.시녀는 이미 이런 상황이 익숙한 듯 얼른 소여쌍을 부축해 바닥에 넘어지는 것까지 막았다.소여쌍이 숨을 돌리고 살짝 웃었다. “몸이 많이 좋아져서 오빠 곁에 있을 수 있어요. 오빠 생일에 당연히 제가 곁에 있어야죠.”안지여는 그제야 소여쌍을 돌아봤다. “생일엔 손님이 많이 올 거야, 올해는 다른 어떤 해보다 성대하게 하니까 당신도 잘 차려입어. 내가 내일 사람을 시켜 장신구를 보내도록 하지.”“네, 알았어요!” 소여쌍이 기쁜 듯이 말하며 안지여를 한없이 바라봤다.하지만 안지여는 소여쌍을 더는 보고 싶지 않았다. 사정 설명했고 체면도 차렸으니 됐다 싶어 말했다. “난 아직 일이 있어서. 당신 쉬는 걸 방해하지 않을 테니 잘 쉬고 있어.”안지여는 말을 마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려고 했다.이때 소여쌍이 갑자기 닭발 같은 손을 뻗어 안지여의 팔을 붙잡으며 서둘렀다. “오빠, 어렵사리 왔는데 저랑 얘기 좀 더 해요.”안지여가 고개를 숙이고 소여쌍의 마르고 늙은 손을 바라봤다. 손등에 주름이 자글거리는 것이 구겨진 비단 뭉치처럼 너무 흉해서 혐오감이 든 나머지 쓱 손을 뺐다. “말했잖아, 일이 바쁘다고.”소여쌍의 눈빛이 갑자기 매서워지며, 늙고 쉰 목소리로 소리쳤다. “일이 바쁜 거예요, 아니면 그 여우 년을 찾아가는 거예요? 제가 모를 줄 아세요?! 여자를 성에 얼마나 숨겨놨는지.”안지여가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헛소리야?”소여쌍이 두 손으로 가슴을 움켜쥐고 축 처진 눈에서 원한이 쏟아져 나왔다. “제가 늙었다고 싫어하는 거잖아요, 아녜요? 잊지 마세요. 오빠의 동안도 결국 늙는다고요. 이리봉청이 아직 살아있어도 지금 저보다

  • 명의 왕비   제 3025화

    안지여의 생일잔치에 상인, 인근 주와 현의 관리, 무림 사람들, 강호의 무리가 모여들었다. 안지여는 그동안 사교의 폭이 넓고, 각계각층 인사들과 교분을 맺고 있어 이번에 생일잔치란 이름을 빌려 그들 모두 한자리에 모아 대사를 논의하고자 했다.안지여는 너무 오래 기다려왔다. 전에 시기를 놓치고 이제 우문호가 등극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민심이 아직 안정되지 않은 이때가 대사를 치를 적기였다.우문호가 몇 년 더 북당을 다스리고 나면 그에게 더는 기회가 없을 지도 몰랐다.그래서 조정이 사람을 파견한다는 소식에 그는 기뻤다. 이를 빌미로 조정에 본때를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천문 세가의 무덤도 생일잔치 후 태워버릴 계획으로, 물론 완벽한 구실을 붙여 백성들에게 설명할 생각이었다.조정에서 사람을 보내온 건, 안지여에게 아주 완벽한 빌미를 제공해 주는 셈이었다. 모든 것을 이리 부마 탓으로 돌리고 백성들에게 조정이 저지른 일이라고 알리면 천문 세가를 그토록 떠받들던 풍도성 백성들은 조정을 증오하게 될 것이다.안지여는 부마 이리율을 별로 개의치 않았으나 그의 내력 정도는 알고 있었다. 거부이자 늑대파 문주라고 했으나 그건 전부 민간에 있을 때 신분에 불과했다. 결국 공주와 결혼해 부마가 되는 길을 택한 이 사람은 극도로 지위와 재산을 중시하는 사람으로, 이런 사람을 다루기 어렵지 않은 건, 안지여 주변에도 이런 사람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부마 이리율의 마음 저 밑엔 상인이란 출신을 벗어던지고 상류 계층에 들어 후작 세가가 된 후 2~3세대가 지나면 철저하게 이전 상인의 신분을 벗어던질 수 있다는 목표가 있을 게 틀림없었다.생일까지 아직 이틀 남았다.안지여는 두번 다시 소여쌍을 보고 싶지 않았지만, 한번은 가야 했다. 그의 생일잔치에 소여쌍이란 성주 부인이 자리를 지켜야 했기 때문이었다.성주 부부가 서로 깊이 사랑하고 있다고 믿게 해서, 백성들에게 아름다운 허상을 심어주려는 것뿐이었다.소여쌍은 풍도성 동쪽 무쌍거에 살고 있었다. 혼인하던 그해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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