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를 하다손 왕비도 눈시울이 붉으며 세자빈을 쳐다봤다. “이렇게 말하지 마세요. 제 마음도 괴로워요.”“도대체 왜 이러는 것이에요?” 원경릉이 물었다.손 왕비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어느 날 둘째 형이 앞으로 너희를 예전과 같이 대하면 안 되다고 했어요. 반드시 군신의 예의를 지켜야 한다고 말했어요.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다섯째가 황위를 얻으면 우리가 다른 생각을 할까 봐 두려워할 것이에요. 그리고...”“그리고 형제끼리 서로 싸워요?” 원경릉은 정말 분통이 터질 것 같았다. “다섯째를 그런 사람으로 보여요? 둘째 형의 말은 정말 어이가 없어요. 다른 마음을 품고 있는 것은 황위를 염려하고 있다는 말이에요? 자신을 너무 높게 평가해요.”손 왕비는 멍하니 세자빈을 보고 있었다. “이 말은... 사실이네요. 저도 말이 좀 황당하다고 생각했어요. 둘째 형은 평생 먹는 것 외에는 다른 일에 관심이 없는데 황위를 염려한다고 누가 의심하겠어요. 지금은 홍려시에서 심부름을 하고 있지만 반은 자기 밑의 사람에게 의지하여 일을 하고 자신은 종일 한가하게 지내기만 하고 있어요.”“그가 왜 갑자기 이렇게 말해요?” 원경릉이 물었다.손 왕비는 아직 대답을 하지 못했는데 원용의와 사식이가 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잠시 지나서 부 집사가 자매들과 같이 들어왔다. 원용의는 급한 마음에 화장도 고치지 못하고 옷에는 아직도 수아가 묻은 얼룩이 남아 있었다.사식이가 그녀에게 자세하게 설명하였다. 일곱째가 태자에게 그런 말을 하여 속이 화나고 있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황급히 달려와서 앉자마자 따지지도 않고 물어보았다. “일곱째가 요새 멍청해지고 실성한 것 같아요. 세자와 술 한 뒤로는 일득일실에 끙끙 앓아요. 계속 태자의 칼끝을 피해야 한다고 앞으로는 신중해야 한다며 형제간의 의리마저 저버리자고 얘기해요.”원용의가 이렇게 말하자 손 왕비도 한마디 했다. “일곱째도 세자와 술을 마셨어요? 둘째 형도 요즘에 세자와 술을 마시는데
취중진담“일단 얘기 먼저 하고, 얘기 끝나면 음식을 올리지, 오늘 밤 식단은 원 선생이 직접 희상궁을 특별히 모셔서 요리 부탁했어, 몇 가지 요리를 준비했으니 얘기 끝나면 먹을 수 있어, 안 그러면 계속 마셔야 할 거야. ”우문호가 말한다. 손왕은 술잔을 놓고 그를 바라본다, “이 둘째 형이 너랑 거리를 둔 게 아니고 단지 가끔은 이미 정해놓은 규정은 지켜야 한다고 생각해. 지금 규정을 안 지키면 황위에 오른 다음부터 지키려고?”우문호는 화가 치밀었다. “뭔 규정?뭔 황위?부황이 지금 아직 펄펄해서 한창 장년인데 부황보다 내가 더 빨리 저세상 갈 수도 있겠다.”“뭔 헛소리야?”손왕은 쉬쉬하면서 입 막을 행세하며 눈을 부릅떴다.“재수 없게?아무나 막말을 해 진짜! ”우문호는 피했다.“틀린 말 했어? 큰형도 부황보다 일찍이 죽었잖아? 너희 때문에 매일 화를 나는데 얼마 살 것 같니?”화풀이하더니만 형제 몇은 그제야 정직하게 대화하려 한다. 우문호는 그제야 자초지종을 알았다. 평남왕은 그들한테 각각 술 약속을 했는데 두세 번은 동일 날에 나갔다가 즉 먼저 손왕을 요청하고 느지막이 일곱째와 얘기 나누었는데 만나는 사람마다 말이 거의 비슷했다. 지금 본인 댁에 태자가 들인 사람들이 있어 왕이 댁에서 하는 말 한마디 그리고 일거일동이 태자에게 보고된다고 한다.그리고 평남왕은 역대 제왕들의 전쟁을 사례로 들어 처음부터 군자와 신의 예의를 잘 지켜야만 사람들의 의심을 사지 않을 수 있고 그들한테 절대로 남의 눈에 티 나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 대사는 부하들을 시키고 정작 본인은 자질구레한 일들만 전념하여 제왕이 원래는 경조 부에서 능력이 뛰어난 인물이었는데 현재는 작은 일에만 신경 쓰고 적중양을 위해 여러 번이나 일 처리 하러 사방에 다녔다고 한다.우문호는 들을수록 화가 났다, “그런 얘기를 너희 다 믿었어?”제왕은 우물쭈물했다. “술도 많이 마셨고 여러 번 반복으로 얘기하다 보니 점점 그렇나 싶기도 해. 난 지금은 홑몸
주먹 다짐서일은 화가 치밀어 올라오면서 원래 이번에 그를 만나 다시 돌아오게끔 설득하려 했으나 방금 얘기를 듣고 나서 가망이 없는 걸 알아챘다.이어서 화를 냈다.“그래, 기다려봐,내가 내쫓기는지 남기는지 탕양 너 언젠가는 네가 틀렸다는 걸 알게 될 거야. ”“서일,너 나랑 같이 왕부를 떠나자,그. 사람 곁에 머물지 말고. ”탕양은 손을 내밀어 그를 당겼다. 취한 얼굴은 왠지 괴이해 보였다. “우리 말이야,안왕의 곁에서 목숨을 걸고 지내왔는데 그 사람 비밀 알대로 다 알잖아, 이걸로. 부귀를 쉽게 누릴 수 있어, 우리 그 사람 곁을 떠나자. ”서일은 버럭하더니 그의 머리로 주먹을 날렸다. 눈은 점차 빨개져 터질 것만 같았다. “더 말해봐,내가 널 죽여버릴 테니. ”탕양도 악을 쓰고 그와 부둥켜 때리기 시작했다. 얼마 안 되어 얼굴 곳곳에 붓고 청색으로 되었다.서일은 그를 싫어하긴 하지만 죽도록 패진 않았고 홧김에 문을 박차 나가더니 소리를 내어 울기 시작했다. 그는 꿈에도 생각 못했다. 생사를 함께 하던 형제들이 오늘 이 시각 탕양 이 꼴이 되다니... 탕양은 지쳐 바닥에 쓰러져 누웠다. 밖에서 들려오는 울음소리에 웃으면서 일어났다.“바보,멍청이,나중에 꼭 후회할 일이 있을거야, 그때 가서 쫓기더라도 이 형이 안 봐줬단 얘기 꺼내기만 해봐. ”서일은 탕양을 찾아 겨루었다. 무공을 따지면 탕양은 서일의 상대가 아니다. 게다가 내쫓기던 그날 그는 술에 마취된 상태라 서일이 찾아와서 한 손에 목덜미를 잡아 한 주먹을 그의 얼굴에 퍼부었다.“너 이 꼬락서니가 뭐야? 그동안 태자마마께서 얼마나 잘해줬는데 자택도 선물해 주고 네가 꼼꼼하지 못해서 신변에 간첩이 있는 줄도 몰라서 30대를 맞아 내쫓긴 거잖아! 따지면 그 간첩이랑 동죄인데, 알아? 배은망덕한 자식, 함부로 입을 나불대고 태자와 태자 왕비 얼굴에 먹칠을 해? 내가 예전에 눈이 돌았지, 미쳤으니, 형으로 모시고 말이다.”탕양은 취기에 억울하게 한 대를 맞았다. 갑자기 화가
안왕과 우문호문지기에서 발을 퉁퉁 치더니 호위를 불러냈다. “이 사람을 데리고 가게, 이 늦은 밤 사방이 조용한데 누구라도 알게 되면 왕은 입이 두 개라도 할 말이 없어. ”몇몇 호위들이 그를 치켜들었다. 입에선 안왕 전하와의 계략을 맺자고 투덜대는데 거리 한복판에 던져도 하책이었다. 하는 수 없이 뒤통수를 때려서 의식을 잃게 해야 했다. 그들은 그를 객전으로 모시고 잘 챙겨서 큰 소리 못 치게끔 당부했다. 거리에서 혼수상태에서 깨어났다간 또 잡소리 칠 수 있으니, 그때는 거둬가는 사람도 없다.탕양이 객전으로 버려진 뒤 머리가 어지러워 아예 땅바닥에 드러누웠다. 의외로 큰소리는 치지 않지만 토를 하고 나서 투덜댄다.“전하, 우리 같이 대사를 꾸며 우문호를 치워요......”이때 누군가 방문을 밀어 차분히 걸어들어온다.“누구야!”탕양은 구름무늬 비단으로 된 장화를 보며 시선이 점점 위로 향하는데 취김에 몇 사람의 그림자가 보였다. 취김에 초점을 맞추지 못하고 그는 껄껄 웃어댄다,“안왕 전하시군요?드디여 왔군요,자,자,신이 바로 일어나서 상세 내용을 말씀드리겠사옵니다......”그는 애써 일어나 비틀거리며 앞으로 달려들었다. “전하......”한 손으로 그의 팔뚝을 안으면서 말했다.“탕 나으리,똑바로 봐주시죠! ”오늘 밤 안왕은 너무 화가 났다. 탕양 그 주정뱅이가 왔으면 왔지 이 정도로 시끄럽게 굴고 갈 줄 몰랐다. 주변 몇몇 부저에서 아마 어느 정도 귀가 솔깃해 들었을 것이다. 안 그래도 사람들의 말거리로 되는 마당에 탕양을 치워도 어느 정도 주변 의심을 삼을 것 같다.안 왕비는 딸 안지를 안으며 안달나는 그의 얼굴을 보며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내일 일찍이 가는 거예요?궁에 들어가 어마마마한테 인사하고 오시지 그랬어요?”안왕은 눈썹을 찡그리며 어두운 낯빛으로 말했다.“입궁하면 정오가 되어서야 출발할 수 있어요. ”“그럼, 정오에 출발하죠. 뭐. ”안 왕비는 가볍게 품에 둔 아기를 흔들면서 말했다.“이번에
안왕의 걱정안왕은 아침 일찍이 궁에 들어갔다.떠나기 전 안왕비에 물건을 잘 정리해 두고 누가 와서 말려도 만나주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왕비가 마음이 약해질 거라는 걱정이 앞섰다.안 왕비는 내심 몹시 슬펐다. 원래 동서들이랑 이별 인사도 하고 싶은데 천성이 마음이 약한지라 작별 인사할 때 왠지 펑펑 울 것만 같았다.궁중 금군은 그를 말리지 않았고 순리롭게 입궁하였다.적귀비는 면전에 꿇어있는 아들을 보더니 한마디 말을 안 해도 모자는 한마음으로 무엇을 얘기하려는지를 다 꿰뚫고 있었다. 너무 비통했다.“이제 온 지 얼마 됐다고? 너 부왕이 내쫓지도 않았는데 왜 그리 급해? 안지 책봉도 아직인데, 더 있다가 가면 안 되더냐?”안왕은 모비가 슬프게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면서 똑같이 비통해하며 울먹였다. “전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 경성에서는 더 이상 머물지 못해요. 마마 몸 건강 잘 챙기시고 아들이 달마다 서한을 보내 안부를 묻겠습니다. ”“백봉투를 보내봐라? 너희 보고 싶어도 못 보는데. ”적귀비는 울면서 말했다.“어머님, 이러지 마세요,아들도 사정이 있습니다,용서해 주세요.”“너 부황의 뜻이더냐?”적귀비는 눈물을 머금고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안왕은 머리를 저으면서 말했다. “아니에요, 어마마마는 더 이상 묻지 마세요, 아무튼 안 돌아가면 안 되니까 몸 잘 챙기고 있으세요!”그는 절을 세 번 치르고 나서 곧바로 돌아섰다.“황조부께 절 인사하러 가야 하니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잠깐!”안왕이 다급한 걸음을 보고 적귀비는 놀래서 마음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그 와중에도 아드님 미래가 걱정되어 사람을 불러 은표를 안왕한테 건네주었다. “난 알지, 너 자산 모두 다 털렸잖아! 강북부에 가서라도 일계 왕이라도 돈이 부족해서 삶을 헤매는 경우가 많을 거야, 이 은표들 가지고 가….”“전 싫습니다......”적귀비는 발을 동동 구르며 엄하게 말한다.“뭘 자꾸 미는데?너 이걸 안 가져가면 내가 어떻게 시름을 놓으란 말
작별“무슨 일 있느냐?”안 왕비가 놀란듯 물었다.그러자 집사가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왕비 마마, 너무 많은 걸 물어보시면 곤란하옵니다. 왕야께서 서둘러 가야 한다고 하셨습니다.”안 왕비는 속으로는 의심이 갔지만 모비가 보낸 사람이니 자신을 해칠 일은 없고, 아마도 왕야 쪽에 무슨 일이 생겼을 거라 생각했다. 집사의 말에 안 왕비는 그에게 영향을 끼칠 수 없다고 생각하고 마차에 올라탔다. 물건도 모두 뒤에 있는 마차로 옮겼다.안 왕비는 가는 내내 마음이 불안했다. 자기 자신이 아니라 왕야에게 무슨 일이 생갈까 두려웠다.그녀는 커튼을 젖히고 집사가 직접 마차를 모는 것을 보고는 말했다.“누가 와서 보고한 것이냐? 오늘 왕야께서 혼자 나가시지 않았느냐?”집사는 채찍을 휘두르며 고개를 돌려 말했다.“궁중의 구사대인께서 친히 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왕비 마마께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구사대인께서 왕야를 대신해 기꺼이 심부름까지 하시는 걸 보면 분명히 잘 돌봐 주실 것입니다. 금군 안에서 왕야의 말은 큰 힘이 있을 것입니다.”안 왕비는 가슴이 떨렸다.“도대체 무슨 일이길래 구대인의 돌봄을 받아야 한단 말이냐?”“왕야께서 황제께 몇 마디 말대꾸하셔서 황제께서 노하셨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왕야께 명덕전에서 무릎을 꿇고 있으라는 벌을 내렸다고 하십니다. 왕야께서 왕비 마마와 군주께 누를 끼칠까 봐. 왕비 마마를 성밖으로 모시라고 하셨습니다. 성 밖에서 기다리시면 왕야께서도 금방 왕비 마마를 찾으러 오실 것입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집사가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안 왕비는 오히려 뭔가 잘못된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왕야가 부황에 대들었다고? 부황은 지금 병중에 있고, 그가 전에 비록 불효한 짓을 많이 저질렀었어도 나름 자기만의 원칙은 있었다. 게다가 부황이 쓰러졌을 때 그는 죄책감에 그동안 자신이 한 행동을 반성했다. 오늘 궁에 작별 인사를 하러 갔고, 또 일찍이 부황의 동의도 구했는데, 이 상황에서
의기투합원래는 안왕 부부가 이대로 떠났다고 생각했는데, 밤이 되어 원경릉 부부가 잠자리에 들었을 때 안 왕이 왔다는 말을 들었다.원경릉은 매우 이상했다. 자시가 다 되어 가는데, 안 왕이 아직 안 떠났다니! 안 왕비는 아침 일찍 이미 떠났는데 말이다.“혹시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닐까요?”원경릉이 말했다.우문호가 옷을 걸치고 일어나며 말했다.“내가 나가 볼 테니. 얼른 자.”"네!”원경릉이 대답했다.서일은 이미 자러 갔으니, 우문호는 혼자 초롱을 들고 나갔다. 문지기가 이미 안 왕을 들여보냈다.안왕은 수행원 한 명을 데리고 왔다. 이 수행원은 우문호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는 안왕의 곁에 공손히 서 있었다. 하지만 우문호는 그가 간단한 인물이 아니라 생각했다.아무리 숨겨도 그가 숨 쉬는 소리만 들어도 고수라는 걸 알 수 있었다.안왕은 무뚝뚝한 얼굴로 입술을 약간 떨며 허리를 꼿꼿이 펴고 의자에 앉았다. 위엄있는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우문호는 한눈에 그의 이상함을 알아차렸다.“형님, 오늘 떠난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우문호는 들어가자마자 먼저 물었다.안왕은 희미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우문호, 짐이 떠나기를 그토록 바르느냐?”우문호가 웃으며 대답했다.“형님이 가시든 안 가시든 저에겐 아무런 영향이 없습니다.”“오늘 밤 짐이 찾아온 건 너에게 알려주기 위해서다. 짐은 절대 떠나지 않는다. 그리고 너와 정정당당히 싸울 것이다.”안왕이 말했다.우문호는 의아함의 눈빛을 보냈다.“싸운다고요? 뭘 위해 싸운다는 겁니까? 태자 자리를 위해서 말입니까? 하지만 그 자리는 이미 제 것입니다.”“네가 감당 못 할 자리야.”안왕은 콧방귀를 뀌며, 날카로운 그를 쳐다보았다.“네가 처음으로 전쟁에 나갔을 때, 짐이 했던 말을 기억하느냐?”우문호는 기억하지 못했다. 그날 처음 전장에 나갈 때 그는 매우 긴장했고, 많은 사람들이 모두 그에게 비슷한 격려의 말을 했던 터라 그날, 정확히 무슨 말
사면초가본관에 도착하자마자 우문호가 물었다.“짐과 함께 처음으로 출정을 나갔을 때, 넷째 형님이 무장 한 명에게 쓸모없는 겁쟁이라고 꾸짖었던 일이 생각이 나느냐?”서일은 곰곰이 생각해 봤다.“그런 일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그 무장이 어떤 말을 했었던 것 같은데, 정확히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아마 우리와 북막병의 군사력 차이가 매우 크니, 싸움에서 이길 수 없으면.....뭐 대략 이런 말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만 당시 그 무장이 첫날밤부터 술에 취해, 출발 직전에 이런 말을 하여 사기를 떨어뜨리니, 안 왕이 크게 노하여 그 자리에서 그에게 군용 곤장 서른 대와 추방 명령을 내렸습니다.”우문호도 대충 생각났다.“그래, 그런 일이 있었던 것 같구나. 그때 넷째 형님은 이미 전쟁터에 몇 번 나갔고, 몇 차례 군공을 세워서 보주를 하사받고, 보주 친왕의 존호를 받았으니. 젊고 기세도 왕성한 데다 군공까지 세웠으니, 군의 원수 허락 없이 스스로 그 무장을 처리했어.”서일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나리, 그런데 왜 갑자기 몇 년 전의 일을 물어보시는 것입니까?”“그 무장의 이름이 무엇인지 기억하느냐?”우문호가 물었다.서일은 고개를 저었다.“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들과 접촉한 적이 없어서요. 아니면 전진 장군에게 물어보십시오. 전진 장군은 기억하고 있을 수도요.”“네가 가서 모셔 오너라.”우문호가 말했다.“오늘은 늦었으니 내일 모시는 게 어떨까요?”우문호는 고개를 저었다.“아니다. 지금 당장 모셔 오너라.”서일은 분명 급한 있다고 생각하고, 바로 몸을 돌려 전진 장군을 모시러 갔다.우문호는 소월각으로 돌아가서 원경릉에게 알렸다. 그녀도 안왕이 온 걸 알고 있으니 분명히 자지 못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원경릉은 일어나 등불을 켜고 책을 읽다가 우문호가 들어온 걸 보고는 그에게 다가가서 물었다.“무슨 일로 오셨어요? 왜 아직 안 가신 거예요?”그녀의 우문호가 대답했다.“나한테 모진 말을 퍼붓고 갔어. 나에게 전하
며칠 뒤, 다섯째가 정말 아이를 데리고 궁에서 나왔다.원경릉은 이미 화를 풀었다. 그가 어찌 나쁜 마음을 품었겠는가? 그는 단지 딸과 단둘이 시간을 더 보내고 싶었을 뿐이었다.그리고 사실이 증명하듯이, 계란이는 무상황을 만난 후 아버지를 금세 잊어버렸다. 그녀는 무상황을 태조부라고 부르며 함께 뜰을 산책하고, 함께 식사하며, 얼굴과 손을 닦아 주고, 함께 바둑도 두었다.이때 택란이가 조심히 원경릉에게만 말했다.“어마마마,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이 돈으로 판단할 수 없다고들 하지만, 만약 누군가가 금이고 은이고 다 주려 한다면, 틀림없이 아주 사랑한다는 증거일 것입니다.”원경릉은 순간 자신이 이 사실을 잊고 지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 무상황의 계란이에 대한 애정은 누구보다 특별했다.예전에 그녀는 무상황이 계란이를 너무 편애하여 다른 왕비들이 질투해, 형제자매 사이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우려했었다.실제로 손왕비가 몇 마디 불평하며 약간 질투를 내비치긴 했지만, 미색이 바로 반박했다. “뭘 안다고 그러십니까? 이 금을 계란이에게 준다면, 앞으로 조정에 돈이 필요할 때 계란이가 가만히 보고만 있겠습니까? 손왕비나 제가 받았다면, 돈을 내놓으려 하겠습니까?”이 말에 손왕비는 순식간에 화를 가라앉히고, 곧장 원경릉에게 사과했고, 그 이후로 원경릉도 더는 걱정하지 않았다.우문호와 원경릉은 함께 정원을 거닐며, 안풍친왕의 자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섯째도 이 소식에 안도하며 말했다.“그들을 만나보고 싶소. 삼촌이라고 불러야 하오? 아니면 작은아버지라고 불러야 하오?”아직 그는 아버지보다 나이가 많은지 적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그들이 돌아온다고 들었지만, 언제가 될지는 모르오.”원경릉이 대답했다.“안풍친왕의 성격을 생각하니, 자녀들도 그를 닮았을지 궁금해졌소.”원경릉이 웃으며 여우 같은 한 가족이진 않을까 생각했다.안풍친왕의 자녀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지만, 원용의에게서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원용의가 아이를 낳았다.제왕은 아이를
“황조부님, 다섯째와 계란이가 왔습니까?”원경릉이 무상황에게 묻자, 무상황이 순간 하던 동작을 멈추고, 얼굴에 기쁨을 띄우며 말했다.“그들이 온다고? 그럼, 얼른 사람을 불러 음식을 더 준비하라 해서 둘이 술 한잔해야겠구나!”원경릉은 깜짝 놀랐다. 그의 말을 들으니, 그들 부녀가 아직 오지 않은 듯했다.그들은 그녀를 찾으러 궁을 나선 것이 아니었던가? 평소 바쁘던 그가, 오늘 이렇게 일찍 업무를 마쳤는데, 자신을 찾지 않았다면 대체 어디로 간 걸까?그녀가 궁을 나설 때, 그는 틈이 나면 왕부에 들르겠다고 약속했었다.무상황은 그녀가 말이 없자 물었다.“그래서 온다는 것이냐, 안 온다는 것이냐?”원경릉은 그들 부녀가 자신을 두고 나가 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안 옵니다.”무상황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그래, 무슨 계란이를 데리고 나를 보러 오겠느냐?! 쓸데없는 생각이구나.”그의 심기가 불편해지는 것 같자, 원경릉이 더 기분 상할 틈도 주지 않게 서둘러 그를 달랬다. “분명 온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일이 많은 탓에 아직도 바삐 보내나 봅니다.”“거짓이다!”하지만 무상황은 여전히 믿지 않았다.“계속 바쁘면 직접 오지 않고, 사람을 시켜 아이만 보내면 되지 않느냐? 그놈은 계란이가 이곳에 오면 궁에 가지 않을까 봐 걱정하는 것이다. 우리가 계란이를 빼앗아 갈지 걱정해서지.”그럴 가능성도 있었다. 딸에 대한 다섯째의 애정은 언제나 독단적이었다. 심지어, 어머니인 그녀의 자리를 탐낼 때도 있었다.원경릉이 서둘러 화제를 돌리며 물었다.“왕비님께 자녀가 있다고 들었는데, 조부님께선 알고 계셨습니까?”“알고 있지.”무상황이 순간 그녀의 표정이 어두워지는 것을 보고 되물었다. “넌 몰랐단 말이냐?”“아무도 제게 말해주지 않았습니다.”원경릉은 억울해하며 답했다.“부부라면 자녀가 있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걸 일일이 말해줘야 하는 것이냐?”무상황은 그녀를 약간 어리석게 여겼다.“……”원경릉은 잠시 생각하다
원경릉은 추 할머니와 함께 산책을 마치고 돌아온 뒤, 이리 나리를 몰래 끌고 나가 조용히 물었다.“왕비께 자녀가 있습니까?”그러자 이리 나리가 되물었다. “예이와 진이를 말하는 것이냐?”원경릉이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네, 예이와 진이입니다. 그들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북당에는 없다. 하지만 스승님께서 이미 추 마마를 보러 오라고 하셨다는구나.”추 할머니와 왕비가 같은 세대 사람이였기 때문에 이리 나리는 항상 추 할머니를 마마라고 불렀다.“그들이 돌아온다니… 정말입니까?”원경릉은 순간 이유 모를 흥분을 느꼈다. 그들에게 자녀가 있다는 것을 몰랐을 때, 북당이 그들을 제대로 대우해 주지 않아, 아이를 낳지 못하게 한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 그들에게 자녀가 있다는 말을 들으니 정말 기뻤다.“그래. 돌아올지 말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돌아올 것 같다고 생각한다. 사부님이 명을 내렸으니, 감히 거역하지 못할 것이다.”“한번 만나보고 싶습니다. 아마 다섯째도 만나고 싶을 것입니다. 어찌 그들은 친왕과 왕비의 곁에서 지내지 않는 것입니까?”“상황을 대충 알고 있지 않느냐? 사부님께서 한때 황태자가 될 뻔하셨다. 그래서 그들은 모습을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무상황도 장인어른께서도 황위에서 물러나 다섯째가 황제가 되었다. 상황이 변했으니, 그들도 이제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혹시 그들이 너무 조심스러웠던 건 아닙니까? 굳이 그렇게까지는 안 해도 될 것입니다.”원경릉이 답했다.이리 나리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주 작은 위험이라도 있을 수 없다. 작은 일이 큰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 그러니 조정에 폐를 끼칠 수 있는 일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동안 일이 참 많지 않았냐?”원경릉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라에 수많은 문제가 쌓여 있어 몇십 년 동안도 해결되지 않았으니, 굳이 더 많은 문제를 만들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자세히 생각하니, 북당이 그들에게 빚진 것이 참 많은
하지만 원경릉은 거절했다. 모두가 시중을 들지 않는데, 그녀만 시중을 데리고 오면 괜히 특별한 척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황후라는 신분도 숙왕부 사람들 눈에는 단지 어린아이처럼 보일 뿐이었다.그녀는 짐을 다 챙긴 후, 계란에게 아버지를 잘 돌보라고 당부하곤, 서일의 보호를 받으며 궁을 나섰다.그러자 사식이는 한숨을 쉬었다. 이제 막 궁에 왔는데, 원경릉이 다시 나가버리니 앞으로 심심한 나날을 보내야 할 자신이 걱정됐기 때문이다. 원경릉이 숙왕부에 도착했을 때, 이리 나리 부부도 추선을 방문하기 위해 와 있었다.이리 나리도 추선과 정이 깊은 사이었다. 공주는 원경릉에게 이리 나리가 어렸을 때부터 왕비가 키웠다고 말해 주었다. 처음에는 왕비가 아이를 키우는 법을 모르기에 대부분 추할머니가 그를 돌보았는데, 나중에 무예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도 추할머니 덕분에 엄한 왕비 곁에서 고생을 조금 덜 할 수 있었다고 했다. 원경릉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렇군요. 왕비께서 아이를 낳지 않으셨으니, 아이를 키우는 게 익숙하지 않으셨겠지요.""듣자 하니, 왕비께서 아들과 딸을 한 명씩 낳으셨다고 하네. 열몇 살에 어디론가 보내셨다네.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리도 그들을 몇 번 보지 못했다고 하더군.""왕비께서 아이를 낳으셨다니요?"원경릉이 살짝 놀란듯 물었다."저는 아이를 데려다 키웠다고 들었습니다. 예전에 보친왕..."공주는 손을 저으며 말했다."아니네. 정말 아니네. 왕비께서 직접 낳으신 아들딸이네. 쌍둥이고, 나리보다 훨씬 나이가 많네.""그렇습니까?"원경릉은 믿기 어렵다는 표정을 지었다. 과거 왕비 부부가 은거하고 지낸 탓에 자녀를 보지 못한 것이 이해는 되었지만, 최근 몇 년간 그들은 경성에 머물러 있었고, 자녀들이 찾아왔다는 이야기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관계가 아무리 나빠도 몇 년 동안 부모를 찾아오지 않을 수는 없을 텐데. 혹시나 부모와 자식 간에 어떤 갈등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의심 되었다. "그렇네. 나리가
추선의 방에서 나온 원경릉은 청우헌으로 가서 세 거두와 이야기를 나누고 혈압까지 재주었다.그녀는 그들의 말에서 추선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그녀의 이름은 추선으로, 왕비의 옛 시녀였다. 그러나 가장 힘든 시절에 추선은 왕비와 왕부를 떠나지 않았고, 줄곧 평남왕 우문극을 돌봐왔다고 했다.그리고 그 두 명의 첩인 운 마마와 몽 마마는 실제로 왕비의 첩이라고 했다. 대체 왜 왕비의 첩이 되었는지 명확히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두 사람을 알게 되었을 때부터 그녀들은 이미 왕비의 첩으로 불렸다.세 거두는 추선의 병세를 물었다. 원경릉이 악성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자 충격을 받았다.현대에 다녀온 경험이 있는 그들은 ‘악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그들의 얼굴에 한순간 무거운 분위기가 감돌아, 원경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왕비의 시녀라 하셨는데, 잘 아시는 것입니까?”무상황이 말했다.“숙왕부에서는 누구의 시녀인지 따로 구분하지 않았다. 나중에는 매미도 시녀를 그만두고, 모두와 함께 고생했다. 평생 혼인도 하지 않고.”“매미요?”“네가 말하는 추선이다.”원경릉은 웃음이 터질 뻔했다.추선의 이름을 매미로 부르는 것도 어찌 보면 이해가 가는 일이었다.추선이 큰 병에 걸렸다는 소식은 숙왕부 전체에 퍼졌고, 많은 사람이 원경릉에게 그녀의 병세를 물었다.원경릉은 검은 옷을 입은 노인들이 그렇게 침통한 표정을 짓는 것도, 누군가를 이렇게 걱정하는 모습도 처음 보았다. 평소 그들은 늘 차가운 태도를 보였고, 유일하게 열정을 보일 때는 식사 시간뿐이었으니 말이다.그날, 원경릉은 숙왕부에서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숙왕부의 식사 방식은 한 사람이 큰 사발 하나씩 받는 것이었다. 이날 집안사람들은 음식에 거의 손을 대지 않아, 남긴 음식이 가득했다.이런 일은 전례가 없었다.원경릉은 이로부터 추선이 그들 마음속에서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알게 되었다. 소요공에 따르면, 과거 추선은 적성루에서 음식을 배분하는 일을 맡았다고 했다. 고기를 얼마나 줄
“이전에 무슨 큰 병을 앓았습니까?”원경릉이 물었다.“폐결핵이었네. 의원을 불러 치료했지만, 몇 년 동안 건강이 계속 좋지 않았네.”왕비가 대답했다.“치료했던 의원의 능력이 뛰어났겠습니다. 누구였습니까?”“주진이요.”왕비가 말했다.주진의 이름을 들으니, 원경릉은 그녀가 왕비와 오랜 세월을 함께해온 자라는 것을 확신했다.원경릉은 초능력을 사용해 노파의 폐 상태를 감지했다. 결절과 섬유화가 있었고, 심지어 종양으로 의심되는 덩어리도 발견했다. 나이가 많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았고, 우선 약물을 통해 상태를 지켜보기로 했다.그저 악성이 아니길 바라며 기도할 뿐이었다.우선 링거를 놓고 산소를 공급하며, 스테로이드를 사용해 기관지를 확장해 그녀가 조금 더 편하게 호흡할 수 있도록 했다.약물을 사용하자 노파의 안색이 서서히 나아졌고, 호흡도 훨씬 수월해졌다.그러자 노파가 감사의 말을 전했다.“이렇게 숨을 쉬어본 게 정말 오랜만인 것 같습니다…”치료가 진행되는 동안, 두 명의 나이 든 여성이 방을 드나들었다. 다들 원경릉이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기에, 왕비가 그녀들을 소개해주었다.“모두 수년간 나와 함께해온 사람들이네.”그러고는 잠시 망설이더니 말을 덧붙였다.“내 첩들이네.”그러자 원경릉은 자신이 잘못 들은건 아닌지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녀의 첩인지 아니면 왕의 첩인지 궁금했지만, 차마 질문하기엔 입이 쉽게 열어지지가 않았다.잠시 후, 원경릉이 침대에 누워 있는 환자를 가리키며 물었다.“그럼, 이분은요?”“날 처음 모신 사람이네. 이름은 추선이야. 수십 년 동안 대부분 평남왕부에서 평남왕을 돌보며 지냈네.”왕비가 그녀의 물음에 답했다.원경릉은 이해했다. 그들은 정말 이곳에 정착하려는 것 같았다. 그래서 예전에 함께 지내던 사람들을 하나씩 데려와 함께 여생을 보내려는 것이었다.젊은 시절 함께 했던 사람들이니, 나이가 들어도 서로 곁에 머물고 싶어 했다.왕비는 원경릉과 함께 밖으로 나와 진지하게 말했다.“심각하다는 건
다섯째는 갑자기 마음이 불안해졌다.아이가 혼인을 올리지 않고 곁에 머무는 건 분명 기쁜 일이었고 효심이 있는 일이었지만 평생 결혼하지 않는다면 얼마나 외로울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만약 자기와 원경릉이 저세상으로 떠난다면, 그녀가 혼자 어떻게 지낼 수 있을까 싶었다.그렇다고 해서 혼사를 허락하자니, 세상에 과연 걸맞은 사내가 있을지 걱정되었다.택란을 그녀보다 못 한 사내에게 보내는 건 그녀에게 너무 큰 희생이다.다섯째가 갈등하는 것 같자 원경릉이 웃으며 그를 다독였다.“택란은 이제 여덟 살이네. 너무 앞서 생각하지 마오.”다섯째가 그녀를 흘깃 쳐다보며 말했다.“자네는 모르네. 시간이 정말 순식간에 흘러가네. 벌써 여덟 살이니, 7년만 지나면 성인이 되오.”그는 시간이 조금만 천천히 흘렀으면 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두는 게 좋소. 너무 멀리 내다봐도 소용없네.”원경릉은 그의 손을 잡고 살며시 깍지를 꼈다.“아이도 운명과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것이오. 만약 언젠가 자네만큼 훌륭한 남자를 만난다면, 그와 혼사를 해도 나쁠 게 없지 않겠소?”“그런 남자는 있을 리 없소!”우문호는 세상에 둘도 없는 사람이었다.하지만 이런 칭찬해도 우문호는 여전히 복잡해 보였기에, 원경릉은 자신이 그를 걱정하게 만든 것 같아 후회했다. 하지만 자신이 말하지 않아도 그가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 리 없었다.택란이 태어난 날부터 우문호에게는 새로운 적이 생겼다. 바로 택란과 혼인할 상대였다.그 적이 누구인지, 어디에 있는지 몰랐지만, 그는 여전히 미워하고 있었다.더구나 금나라의 어린 황제가 혼사를 직접 언급했으니, 이제 그 적은 실체가 생겼고, 이에 따라 그는 한동안 신경을 곤두세우게 되었다.그 후 며칠간 택란은 매우 순진하고 착하게 행동했다. 아버지가 시간이 날 때마다 곁에 머물며 대화를 나누고, 놀고, 책을 읽고, 글씨를 쓰며 시간을 보냈다.어린 나이임에도 이미 아부하는 법을 터득해, 다섯째의 마음을 부드럽게 만들어 더 이상 화낼 수 없게 했다.다
”이제 화가 풀린 것이오?”원경릉이 웃으며 물었다.“화 풀렸네. 하지만 금나라의 어린 황제는 조심해야 하오. 어린 자식이, 정말 너무하오!”우문호는 선물을 하나 열었다. 안에는 알록달록한 도자기로 만든 정교한 인형이 있었는데, 머리카락까지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었다. 그는 미소를 멈출 수 없었다.“이 도자기 인형, 정말 우리 딸을 닮았구나. 예쁘오!”“내가 산 것이오!”원경릉이 질투라도 난듯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자네가 산 것이니 더 좋소. 아주 좋아!”우문호는 선물을 하나씩 열어보며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몇 개를 연 후에야 그는 약도성의 상황을 묻기 시작했다.원경릉은 자리에 앉아 약도성에서 있었던 상황을 하나하나 설명했다. 특히 택란이 약도성에서 보여준 대처 방법에 대해 상세히 말했다.그러자 우문호가 매우 놀라며 말했다.“택란이 지진을 예측하고 백성들을 대피시켰다니. 이건 정말 대단한 일이오. 정말 대단하네. 원 선생, 난 택란이 약도성에서 놀기만 했을 줄 알았네. 몰래 이런 큰일을 해내다니.”“택란과 경단은 모두 자네를 위해 무언가를 하고 싶어 하오. 자네가 걱정하지 않도록 말이네. 그래서 자네한테 말하지 않았던 거고. 이게 택란이 자네를 더 사랑한다는 이유요. 자네를 평생 아끼며 짐을 덜어주고 싶어 하오.”우문호는 그녀의 손을 놓고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원 선생, 갑자기 눈물이 날 것 같소.”원경릉은 그의 팔을 감싸 안으며 웃으며 말했다.“그래, 우시오. 우리 큰 아기 울어도 괜찮네!”우문호는 답답한 표정으로 말했다.“자네가 날 ‘큰 아기’라고 부르니 눈물이 갑자기 멈추네요.”“그럼 울지 말고 어서 앉으시오. 약도성 백성들이 택란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말해주겠소.”원경릉이 그의 팔을 잡아 의자에 앉히고는, 약도성에서 한 달 동안 있었던 일들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우문호는 그녀의 이야기에 몰입하며 감동하였다. 특히 약도성 백성들이 택란을 존경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그는 믿기 어려워했
우문호는 이 말을 듣고 얼굴빛이 확 어두워지며 깜짝 놀랐다.“청혼? 누가 청혼을 한 것이오? 미친 것이오? 겨우 여덟 살인데! 대체 어떤 정신 나간 사람이 이런 짓을……”그는 너무 충격을 받아 분노가 치밀었다. 겨우 여덟 살인 딸을 누군가 눈독을 들이고, 심지어 청혼까지 했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그는 그자가 누구인지 알게 되면 반드시 혼쭐을 내겠다고 마음먹었다.원경릉이 그의 손을 잡고 말했다.“이미 택란의 비밀을 다 털어놨으니, 이제 더 이상 나한테 화내면 안 되오.”“말하시오. 용서할 테니 더 말하시오!”우문호는 더 이상 원경릉에게 화를 낼 힘도 없었다. 사실 처음부터 그렇게 심하게 화가 난 것도 아니었고, 복잡한 감정만이 뒤섞여 답답할 뿐이었다.하지만 지금은 그런 감정들도 모두 사라지고, 이 터무니없는 사건이 더 중요해졌다.원경릉은 택란이 금나라에 가서 10만 냥을 얻은 전말을 설명했다. 특히 금나라의 어린 황제가 그녀에게 청혼했다는 이야기도 빠뜨리지 않고 전부 털어놓았다. 단 한 글자도 숨기지 않고 진실만 말했다.우문호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그건 너무 대담하잖소! 금나라에서 10만 냥을 빼앗았다니? 어찌 이야기가 이렇게 익숙한 것이오? 그래, 기화요! 어찌 스승이 이런 짓을 가르친 것이오? 그리고 그 금나라의 어린 황제는 이제 몇 살이오? 듣자 하니 겨우 열 살이라고……”“열셋이오. 금나라의 진국왕이 그의 권력을 누르려, 일부러 열 살이라고 소문낸 것이오.”우문호는 벌떡 일어나 뒷짐을 지고 방을 빙빙 돌며 어쩔줄 몰라했다. “열다섯이라도 안 되네! 금나라가 북당의 경성에서 얼마나 먼지 알고 있소? 아이가 그곳에 시집가면 1년에 한 번도 못 돌아올 것이네. 북당의 진국 공주를 부인으로 삼겠다니? 허망 된 꿈이요! 꿈!”“아이들의 농일 뿐이요.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안 되네.”원경릉이 서둘러 말을 덧붙였다.“농담이라도 안 되네. 황위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면서 우리 귀한 딸을 부인으로 삼겠다니? 이런 녀석은 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