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명양의 흑심둘째 부인이 이 말을 듣고 앞뒤가 꿰 맞춰지면서 어쩐지 계속 냉대인 얘기를 조작하 더라니 태자비의 얼굴에 먹칠을 하려던 것만이 아니라 냉정언과 혼사를 막으려던 거였구나. 혼사가 정해지지 않으면 은자를 돌려 달라고 하지 않을 테니까. 그날 은자를 돌려 달라고 해서 냉대인과 태자비 일을 말했군. 진짜 계략이 심해도 너무 심했다.둘째 부인은 당장 은자를 돌려받지 않았으니 주명양의 심기를 거스를 수 없어 미소를 지으며, “사람을 시켜 물어보니 전에 그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방법이 없었지만 최근 2년간 왕래가 전혀 없었 다니 그만 하려고. 나쁜 마음 품어보지 않은 남자가 어디 있나? 결국 마음을 돌렸으면 됐지. 그리고 민이 성격을 너도 알지. 고집을 부리면 바꿀 수가 없어.”주명양은 마음 속으로 ‘구정민 이 남자에 빠진 병신’하고 욕을 하면서도 겉으로는 유감스럽다는 듯, “그리 되었으니 사촌 언니인 제가 더 할 말은 없네요. 축복해요. 이모 안심하세요. 손 주인장에게 얘기해서 얼른 은자를 받아올 게요.”둘째 부인이 이 말을 듣고 마음이 다소 안정돼서, “명양이가 고생 좀 해줘, 걱정하지 마, 나중에 원금을 받으면 이모가 널 섭섭하게 하지 않을 테니.”“고마워요 이모!” 주명양이 건성으로 대답했다.“언제 돌려 받을 수 있을까? 내일 아니면 모레는 받을 수 있나?”주명양의 표정이 별로 좋지 않고 냉랭하게, “왜요? 이모는 절 못 믿으세요? 가서 손 주인장에게 얘기해도 돈이 돌고 있으니 당장 되는 건 아니죠.”“그럼 구체적으로 언제? 할 일이 많이 있어서 미리 알아야 준비하기 좋아서 그래, 절대 널 못 믿어 서가 아니야. 왜 걸핏하면 그런 얘기를 해? 이모가 널 못 믿으면 몇 십만 냥을 너한테 줄 수 있겠어?” 둘째 부인이 주명양의 낯빛이 좋지 않고 내켜 하지 않는 것을 보고 확답을 해주지 않으면 본인도 안심이 안되는 것이 만약 은자를 돌려받지 못하면 정말 죽을 수밖에 없다.“3~5일정도, 일단 가서 물어볼 게요. 손 주인장에게 준비
임소를 찾은 주명양“그야 그렇지. 늙은 구렁이라니까.” 원경릉이 웃었다.원경병이 깊이 탄복하며, “그럼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요?”원경릉이 느릿느릿, “아무 것도 할 필요 없어, 떡이나 먹고 굿이나 보면 돼. 당연히 둘째 부인께 한두마디 일깨워 줘도 되지, 구정민의 명성을 다치게 하지 않으려면.”원경병의 손가락이 도자기로 만든 잔을 쥐고 담담하게, “불쌍하지 않아요. 걔가 다른 사람의 명성을 상하게 한 게 한둘 이예요? 주명양이 이 일을 날조했지만 다른 남자였으면 구정민이 분명 떠들고 다녔을 거예요. 그런데 냉대인은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조용히 입다물고 있는 거잖아요.”원경릉은 동생이 지금 비록 둘째 부인과 화목하지만 원래 시집 갔을 때 그 모녀에게 얼마나 괴롭힘을 당했는지 생각했다.경병이는 그렇게 만만한 사람이 아니고 둘째 부인도 그렇다. 둘 다 집안의 안녕을 위해 태평한 척 가장하고 있지만 정말 심각한 고비를 맞닥뜨리면 넘어진 사람에게 손 내밀 사이는 아니지 안 그래?맞아, 원한이 있는데 언제나 부처님 가운데 토막처럼 그들을 상대할 수 없는 거다.주명양이 구후부에서 나간 뒤 바로 임소를 찾아갔다.임소의 만 냥을 받은 날 당장 우문군 앞에 고비는 넘겼지만, 그 뒤로 우문군이 그녀를 철저하게 원수로 여겨서 집에 가도 좋은 낯으로 맞아줄 리 없으니, 둘째 부인 일이 아니어도 주명양은 임소를 찾아가야 했다.임소 집 앞에서 한숨을 쉬고 문을 두드렸다. 어찌 됐든 해결방안을 찾아야 하는데 당장 찾아갈 사람이 없다. 임소는 은자 만 냥을 기꺼이 줬으니 분명 그녀를 더 도와주고 싶을 것이다.주명양은 임소가 자신을 돕고 싶어하는 건 자신을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문이 열리고 임소가 직접 나와서 맞았다. 이렇게 중시해주자 주명양의 마음도 으쓱해진 것이 그간 모든 사람에 업신여김을 당하며 이런 존중을 누려본 지 오래됐기 때문이다.주명양은 처음에 임소가 자신을 속인 것이 싫었지만 지금 그가 유일하게 자신을 중시해주는 사람이라 억울함을 누르며,
임소의 계책주명양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는데 지금 냉정하게 말 하게 생겼어?’ 하지만 임소의 거동이 잔잔한 것을 보고 마음이 조금 누그러진 데다 물 한 잔을 받아 마시고, “구씨 집에서 이모가 구정민 혼수 준비하게 얼른 은자를 돌려 달래요.”“구씨 집안이 어느 집과 혼담이 오갔지?”“냉씨 집안 냉정언!” 주명양이 초조해 죽겠는지, “이 혼사는 이루어져서는 안돼요. 냉정언은 고결한 사람이 아니라고 내가 그렇게 얘기했는데 어떻게 여전히 바보같이 딸을 시집 보낸다는 거죠? 진짜 허영덩어리예요.”“냉정언이 왜?” 임소가 어조의 변화없이 물었다.주명양이 임소를 흘끔 보더니 임소 앞에서 자신의 비열한 마음을 감추지 않기로 했다. 어쨌든 임소도 광명정대한 인간은 아니므로,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그냥 내가 추문을 꾸며낸 거예요.”임소가 약간 실망하며 차가운 눈으로, “간단하네. 혼사가 이루어지지 않게 하려면 계속 추문을 꾸며내면 되지.”“소용없어요. 원래부터 엄청 안 좋게 얘기했는데 한사코 시집을 가겠다고 하잖아요.”임소가 미소를 지으며, “그럼 이번엔 온 경성에 퍼트리는 거지. 구씨 집안 아가씨는 부도덕하고 품행이 단정하지 못하다고. 냉씨 집안은 하늘같은 명문세가로 특히 냉정언은 냉씨 집안의 장자에 국자감 학장으로 절대 품행이 바르지 못한 여자를 아내로 맞지 않을 거야. 혼사가 틀어지면 물론 너에게 급하게 은자를 돌려 달라고 할 리 없고.”주명양이 듣고 놀라며 자기는 이런 생각까지는 못했는데 깊이 따져보니, 구정민이 예전에 자기와 사이가 좋은 편으로 자기가 나서서 도와준 적도 있는데 지금은 자기 신세가 영락했다고 이번에 몇 번 찾아가니 구정민의 태도가 오만함을 넘어서서 교만한데다 고귀한 티를 어찌나 내는지 자신과 구정민이 다른 차원이라는 듯 일부러 거리를 두려고 했다.“왜? 친척이라 안 내켜? 생각해 봐. 저들은 당신 신경 안 쓸 거 같은데, 사람이 너무 자비롭고 인자하면 안되는 법이야. 전에는 일하는 게 아주 칼 같더니 어쩌다 이렇게 됐어?”
구정민에 대한 소문따지고 보면 그와 처음도 아닌 게 전에 살을 맞대고 뜨겁게 나누던 사랑이 가슴에 되살아나며 그날의 광란의 몸부림이 다시 느껴졌다.그러자 주명양은 일어나 이용이든 위로든 상관없다. 잃은 것도 없으니까.임소를 바라보며 달아오른 눈빛으로 서서히 옷고름을 푸르는데 임소의 눈이 어두워지며 손을 대지 않고 가만히 주명양을 바라봤다.옷을 다 벗고 살포시 걸어오는 자태가 기가 막힌 게 손짓하나 발걸음 하나까지 전부 유혹 아닌 게 없다. 두 손을 임소의 목에 걸치고 눈을 가늘게 뜬 채 요염하게 숨을 토하는데, “하고 싶다고 한 거 아니었어요?”임소가 주명양을 안고 그녀의 입술을 깨물며 비바람처럼 사납게 몰아쳐 가슴아래로 완전히 싸 안아버렸다.주명양은 원래 억지로 였으나 진짜 임소와 몸을 섞자 눈 앞이 아득해 지고 모든 걸 손에 쥔 기분이 들었다. 사실 모든 건 임소의 수중에 들어가 있다는 걸 알 리가 없지만.모든 것이 원경릉의 예상대로 이틀이 못되어 경성 구석구석에 구정민이 2년전 회주에 갔을 때 한 남자와 몸을 섞고 평생을 약속했는데 그 남자는 기혼자였다는 것이다.이 말이 전해지자 경성이 들썩거리며 호사가들은 구씨 집안 하인들에게 물어보니 분명 2년전에 구정민이 유민 현주와 같이 회주에 갔었고 당시 유민 현주는 태자를 쫓아간 건데 구정민이 왜 따라갔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구씨 집안의 계집 종이나 시동도 바깥 소문에 부화뇌동 하니 믿지 않는 사람이 없다.둘째 부인과 구정민이 이 일을 듣고 기가 막혀서 뒷골 잡고 쓰러질 지경인데 구정민 성격이 예민하고 혼자 고고한 척은 다하는데 이렇게 명성이 짓밟히고 어떻게 참겠어? 울고불고 목을 맨다고 난리를 피우니 둘째 부인은 가슴이 미어지고 분노가 치밀어 구사에게 경조부에 신고해 명예를 더럽히고 모독한 근원을 조사해 달라고 했다.제왕이 사건을 수리하고 사람을 보내 조사 시켰다.어느 전기수가 구정민 대본을 읽었는지 조사하는 건 조금도 어렵지 않았다. 주명양은 구씨 집안이 이 일을 조용히 넘어가지 않고
깊어지는 음모임소가 돕겠다는 말을 듣고 주명양은 비로소 의심을 눌렀다. 방금 임소의 눈빛은 상당히 무정해서 주명양은 깜짝 놀랐다.“하지만,” 임소는 주명양의 목덜미를 놓더니 눈을 바라보며, “요부인 말이야, 당신이랑 왕래가 있어?”주명양이 순간 화들짝 정신이 들며 임소를 밀치더니, “왜요? 나만으로는 부족해요? 그 아줌마한테도 가고 싶어요?”임소가 주명양의 귓바퀴에 키스하며, “당신, 무슨 생각하는 거야? 난 그 사람 인맥을 쓰려는 건데. 당신을 위해 이 일을 해결할 수 있는 사람, 그리고 당신을 위해 돈 놀이 건을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 당신 예전에 요부인과 기왕의 처첩으로 같이 지냈으니 틀림없이 요부인이 아는 사람이 많다는 걸 알 거야. 그리고 그들의 약점을 쥐고 있지. 우리가 그 관원들의 약점을 쥐면 만약 그 관원들의 부인이 당신에게 돈을 빌려줬을 경우 그걸 가지고 자칫하면 당신들 재산도 몰수당하고 관직에서도 쫓겨난다고 협박할 수 있어.”주명양이 눈을 감고, “손전무를 찾을 수 있다고 하지 않았어요? 왜 이런 방법을 써야 하죠?”“”손전무가 돈을 가져갔으니 헤프게 절반이상 썼을 지도 몰라. 찾아냈다고 해도 그렇게 많은 은자를 토해내지 않으면 헛일이라고 결국 당신이 채워 넣어야 해. 그런데 빚쟁이 중에 당신에게 약점이 잡힌 사람이 있으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지 않겠어?”주명양이 화도 나고 급하기도 해서, “손전무가 감히 돈을 헤프게 써요? 보기만 하면 아주 죽여버리겠어.”“손전무가 돈을 토해낸 다음 내가 당신을 위해 그를 죽여버리겠지만 지금은 당장 이 일부터 해결해야 해. 요부인 옆집에 훼천이라는 자가 사는데 홍매문 사람으로 명을 받고 요부인을 감시하고 있어. 당신에게 단약을 하나 줄 테니, 들어가기 전에 당신이 먹으면 온통 기이한 향을 풍기게 될 거야. 훼천을 미혹해 정신을 잃게 만들어. 와서 막지 못하게 만들기만 하면 돼. 내가 요부인을 협박해서 관원들의 약점을 내놓도록 만들지.”주명양은 훼천을 아는데 끔찍하고 무서웠으나 자기가
스톡홀름 증후군임소와 주명양 쪽은 계속 누군가 따라 붙어서 매일 원경릉과 우문호에게 보고했다.그 황당한 일은 세세하진 않지만 대략 요점만 추려서 얘기하면 이날 마침 소홍천이 그 자리에 있어 이 일을 보고하자 원경릉이, “이런 천박한 인간은 그리워할 가치가 없네요.”소홍천이 쓴웃음을 지으며, “지금 보면 토할 거 같아요. 어떻게 그때는 그 사람에게 이끌려서 허송세월 한 건지.”서일이 순간, “그래요, 그자가 전에 정후 나리와 뭐가 다릅니까?”말은 이미 뱉아버렸는데 사식이 때리며, “닥쳐, 똥 오줌 못 가리면 말을 하지 마.”서일이 정신이 번쩍 들어서, “태자비 마마 죄송합니다. 제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원경릉이 평소처럼, “괜찮아, 사실이 그러니까.”“오늘 임소가 아마도 약간 눈치를 챈 거 같은 게 미행하는 자들을 바꿔야 할 듯 싶습니다.” 귀영위 나장군이 말했다.“내일 임소가 요부인을 찾아간다고?” 우문호가 말했다.“그렇습니다.”우문호가 서일에게, “회왕비를 찾아가서 설명 해 드려, 무슨 일이 생기지 않게 훼천을 잘 지켜보고 방심하지 마시라고.”“예!” 서일이 나갔다.우문호가 소홍천과 귀영위 나장군에게, “둘 다 일단 미행하지 말고 늑대파에 넘겨주도록. 임소는 무림맹 사람으로 무공이 뛰어나고 내공이 심후한 데다 역용술에 능한 자로 늑대파에서 미행하는 게 그나마 나을 거야. 특히 홍매문은 임소에게 굉장히 친숙해. 홍매문은 미행하면 안돼.”“예!” 소홍천과 나장군이 동시에 명을 받들었다.사식이는 나장군을 보내 드리고 부부가 마주보고 방금 보고한 내용을 떠올리며 역겹다고 생각했다.“주명양이 임소를 아주 증오한다더니, 전에 임소가 그런 짓을 했는데 어떻게 임소와 놀아날 수가 있어? 은자 때문이면 보수를 주면 그만 이지, 왜 하루가 멀다 하고 임소를 찾아가는데?” 우문호는 정말 이해가 안 갔다.원경릉이, “주명양이 요 몇년간 계속되는 좌절을 겪고 우문군은 아마도 주명양에게 잘 안 해줄 거야. 임소는 사람을 어르는데 일가견이 있으니
요부인을 찾은 임소하지만 잠시 머뭇거리다가 사람을 다시 보내 훼천에게 임소와 주명양을 다치지 않게 하라고 요부인만 아무일 없으면 된다고 했다.우문호는 원경릉에게, “지금은 아직 그물을 거둘 때가 아니야. 임소는 우리에게 유일한 단서로 오직 그를 통해서만 배후의 인간을 찾아낼 수 있어. 따라서 임소에게 무슨 일이 생겨서는 안돼. 우린 임소의 최종 목적을 봐야만 해.”포석을 이렇게 오래 배치했는데 이렇게 잘라내 버릴 수는 없다. 만약 배후의 인물을 잡아내지 못하면 두 다리 뻗고 잠들기는 글렀다고 원경릉은 이해했다.다음날 정오, 임소와 주명양은 거의 동시에 도착해서 주명양이 옆집으로 들어가고 임소는 곧 요부인의 마당 밖에 다다랐다. 요부인이 안에서 아이들 옷에 수를 놓다가 개 짖는 소리를 듣고 낯선 사람이 왔다는 걸 알았다.자수를 내려놓고 나가서 개를 안고 마당을 향해, “누구시죠?”임소가 밖에서, “요부인이십니까? 저는 귀영위로 태자전하의 분부로 왔습니다.”요부인은 낌새가 이상한 게 ‘우문호가 귀영위를 왜 보냈지?’요부인은 속이기 쉽지 않아, “귀영위면 귀영위의 영패를 던져 보이게.”“그럼 부인 잠시 피하십시오!”요부인이 뒤로 몇 걸음 물러서자 영패 하나가 호를 그리며 담장 안 마침 요부인의 발 아래 떨어져서 허리를 굽혀 집는데 영패 위에 귀영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고 뒤에는 호수가 쓰여 있다. 요부인은 귀영위 영패를 본 적이 있는데 이건 진짜다.요부인이 문을 열자 임소가 요부인에게 예를 취하고, “부인!”요부인은 전에 본 적이 없는데 눈빛이 온화한 것이 귀영위 같지 않은 게 귀영위는 대부분 얼음장 같기 때문이다. 요부인이 강아지를 안고 경계심을 품고, “태자 전하께서 왜 자네를 보냈지? 무슨 일인가?”임소가 성큼성큼 들어와 문을 닫더니 요부인에게 미소를 지으며, “태자 전하께서 부인이 여기 홀로 지내시니 저더러 가보라고 하셨습니다.”요부인이 의혹의 눈길로 임소를 노려보는데, 이 말이 굉장히 위화감이 드는 게 다섯째는 절대 남자 혼자 아무
겁탈임소는 이렇게 일이 쉽게 될 줄 알았으면 이런 강력한 약을 낭비할 필요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신으로 이렇게 오래 살았다는 걸 고려하는 건데.식은 죽 먹기라고 생각하고 입술을 덮치러던 찰나 요부인이 갑자기 눈을 번쩍 뜨고 무릎을 차 올렸다.임소가 고통으로 팔짝팔짝 뛰며 따귀를 날리고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잡년이, 봐주니까 뻔뻔하게 굴어!”요부인이 비녀를 뽑아 들고 다짜고짜 찔러 대는데 힘껏 임소를 찔러도 명중하지 않자 비녀를 자기 목에 댔다. 두려웠지만 만약 자신을 보호할 수 없으면 자진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이자는 절대 색마가 아니라 요부인의 정절을 더럽혀 다섯째를 다치게 만들라고 협박할 것이다.요부인이 명예를 지키고 딸에게 오명을 물려주지 않으려면 이수밖에 없다.임소는 이렇게 일이 꼬일 줄 몰랐고 우문군의 여자는 전부 주명양 같아서 적당히 유혹하고 약을 쓰면 넘어올 거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정절을 중시하는 열녀일 줄 몰랐다.임소는 눈앞이 캄캄해 지며 소매에서 환약 한 알을 꺼내 요부인의 손을 벌려 비녀를 빼앗고, 요부인의 입을 억지로 벌려서 약을 부숴 그녀 입안에 털어 넣었다.요부인은 야릇한 냄새가 입안에서 진동하고 뭔 지 알 수 없어 토하고 싶은데 턱을 잡혀 쳐 들려 있는 관계로 토하지 못하고 입안에서 녹아 내리자 놀라서 소리 없이 울부짖었다. 힘껏 몸부림을 치려 해도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장의자에 철퍼덕 무너져 내렸다.임소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무림에서 대단하다는 여자도 이 약에는 못 당했는데 내공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일개 여염집 부인이 무슨 수로 버티겠어?막 몸을 덮치려는 순간 목에 갑자기 차가운 기운이 느껴지며 전신의 피가 굳어지더니 아차 싶었다. 주명양이 뜻밖에도 훼천의 정신을 잃게 하는데 실패한 것이다.그자는 분명 훼천으로 기이한 향이 그에게 위협이 되지 못했다. 어제 태자 전하께서 사람을 보내 알려줘서 주의하고 있던 참에 주명양이 들어왔다. 주명양은 훼천의 음침한 얼굴을 보고 놀라서
추 할머니 방에서 나온 원경릉은 마음이 몹시 무거워졌다.사실, 추 할머니는 이미 연세가 많고, 그동안 몸이 계속 좋지 않아 치료를 반복하는 것에 지쳤을 것이 당연했다. 오랜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은 쉽게 포기하려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아마도 추 할머니는 주위 사람들과 이별하기 싫어서 끝까지 버티고 있는 것 같다.원경릉은 그저 새로운 약이 효과가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녀 또한 평생을 함께해온 이들이 드디어 모였을 때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일이 생기는 것을 원치 않았다.모든 것이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면, 그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늘릴 수 있기를 바랐다.아마도 지금이 그들에게 있어 가장 아름답고, 걱정 없이, 짐 없이 보낼 수 있는 시간일 것이다.요즘 미색도 자주 숙왕부에 들러 작은 일들을 도와주고, 어르신들을 돌보며 노력했다. 미색은 오기 전, 손왕비에게도 함께 가자고 권유했지만, 손왕비는 무상황을 겁내며 오려 하지 않았다.그는 미색에게 원경릉은 이제 더 이상 초왕비나 의원이 아니기 때문에 황후로서의 신분을 지키며 조심해야 하며, 혼자서 궁 밖으로 자주 나가는 것은 위험하니 반드시 호위를 대동해야 한다고 당부하라고 전해달라고 했다. 손왕비의 말은 선의였지만, 미색은 늘 그래왔듯 그녀를 반박했다."신분이라니요? 신분으로 따지면 숙왕부의 어르신들도 황후 못지않게 귀한 분들입니다!"숙왕부에 도착한 미색은 이 말을 원경릉에게 그대로 전했다.원경릉은 듣고 웃으며 말했다."둘째 형수도 선의로 말한 것이오. 하지만 자네의 말도 맞소. 신분이 뭐가 중요하오? 신분으로 따지면 나는 원래 의원이라네. 황후는 그저 자리일 뿐, 결코 내 영광이 아니라고 생각하네.""전적으로 동의합니다!"미색이 그녀를 지지했다. 그녀는 오래전부터 회왕비였지만, 황실의 신분에 얽매이지 않으며, 자신을 대흥 군주라고 여기지 않고 늑대파 출신이라고 자처했다. 그녀는 험난한 강호에서 버틴 사람으로서 자신의 사업을 가지고 있었다.미색은 앞으로 손왕비에게도 일을 시작하라고 권유하
황실에 새로운 가족이 생긴 것은 큰일이었기에, 서둘러 잔치를 준비해야 했다.이전에 원 할머니는 숙왕부에서 자주 연회를 열면 안 된다며 경고한 적이 있었다. 나이 많은 어르신들에겐 고기를 많이 먹는 것이 좋지 않은데 연회라 그저 고기만 먹는 것이 아니라 술도 같이 마시게 되니 절제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 할머니는 큰 경사가 아니면 고기를 금지한다는 엄명을 내렸었다.하지만 제왕 부부가 딸을 낳은 지금은 큰 경사였기에 한 무리의 검은 옷을 입은 노인들이 기대하는 눈빛으로 원 할머니에게 허락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그러나 그들은 포기하지 않고 차례로 설득에 나섰고, 결국 원 할머니도 어쩔 수 없이 허락하며, 술과 고기의 양은 반드시 자신이 통제한다는 조건을 붙었다.그녀는 이제 숙왕부의 집사처럼 보일 정도로 나서서 제지했고, 그녀도 이 역할을 즐기는 것 같았다. 그녀가 가장 원하던 노후 생활은 존경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이니 말이다.추 할머니의 병세는 약물 치료 후 조금 호전되었다. 병세가 더 악화하지 않았고, 진통제 주사의 빈도도 줄어들었다.사실 원경릉이 사용하는 약물이 병세를 억제한다고 단언할 수는 없었다. 어쩌면 모두의 격려와 그녀의 강한 의지가 병세를 멈춘 이유일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숙왕부 사람들은 이것만으로도 또 한 번 연회를 열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물론, 원 할머니는 단호히 거절했다.연회가 열리는 날, 원경릉도 참석했다. 그녀는 숙왕부의 활기를 또 한 번 느끼고 싶었고, 그 분위기가 역시나 그녀를 매우 기쁘게 만들었다.나이 든 늙은이들이 마련한 연회가 젊은 그녀조차도 활기를 느낄 정도로 생동감이 넘쳤다.고기의 양은 엄히 제한되었고, 채식 요리가 늘어났다. 원 할머니는 야채를 구워도 맛있다는 것을 직접 보여주었다. 다들 원 할머니의 말을 따르듯 채소를 먹긴 했지만, 여전히 제한된 고기를 서로 차지하려고 분주했다. 모닥불이 모든 사람의 기쁨 어린 얼굴을 비추고 있었고, 안풍친왕 부부도 직접 고기를 구워 열기를 더했다.식사가
며칠 뒤, 다섯째가 정말 아이를 데리고 궁에서 나왔다.원경릉은 이미 화를 풀었다. 그가 어찌 나쁜 마음을 품었겠는가? 그는 단지 딸과 단둘이 시간을 더 보내고 싶었을 뿐이었다.그리고 사실이 증명하듯이, 계란이는 무상황을 만난 후 아버지를 금세 잊어버렸다. 그녀는 무상황을 태조부라고 부르며 함께 뜰을 산책하고, 함께 식사하며, 얼굴과 손을 닦아 주고, 함께 바둑도 두었다.이때 택란이가 조심히 원경릉에게만 말했다.“어마마마,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이 돈으로 판단할 수 없다고들 하지만, 만약 누군가가 금이고 은이고 다 주려 한다면, 틀림없이 아주 사랑한다는 증거일 것입니다.”원경릉은 순간 자신이 이 사실을 잊고 지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 무상황의 계란이에 대한 애정은 누구보다 특별했다.예전에 그녀는 무상황이 계란이를 너무 편애하여 다른 왕비들이 질투해, 형제자매 사이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우려했었다.실제로 손왕비가 몇 마디 불평하며 약간 질투를 내비치긴 했지만, 미색이 바로 반박했다. “뭘 안다고 그러십니까? 이 금을 계란이에게 준다면, 앞으로 조정에 돈이 필요할 때 계란이가 가만히 보고만 있겠습니까? 손왕비나 제가 받았다면, 돈을 내놓으려 하겠습니까?”이 말에 손왕비는 순식간에 화를 가라앉히고, 곧장 원경릉에게 사과했고, 그 이후로 원경릉도 더는 걱정하지 않았다.우문호와 원경릉은 함께 정원을 거닐며, 안풍친왕의 자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섯째도 이 소식에 안도하며 말했다.“그들을 만나보고 싶소. 삼촌이라고 불러야 하오? 아니면 작은아버지라고 불러야 하오?”아직 그는 아버지보다 나이가 많은지 적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그들이 돌아온다고 들었지만, 언제가 될지는 모르오.”원경릉이 대답했다.“안풍친왕의 성격을 생각하니, 자녀들도 그를 닮았을지 궁금해졌소.”원경릉이 웃으며 여우 같은 한 가족이진 않을까 생각했다.안풍친왕의 자녀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지만, 원용의에게서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원용의가 아이를 낳았다.제왕은 아이를
“황조부님, 다섯째와 계란이가 왔습니까?”원경릉이 무상황에게 묻자, 무상황이 순간 하던 동작을 멈추고, 얼굴에 기쁨을 띄우며 말했다.“그들이 온다고? 그럼, 얼른 사람을 불러 음식을 더 준비하라 해서 둘이 술 한잔해야겠구나!”원경릉은 깜짝 놀랐다. 그의 말을 들으니, 그들 부녀가 아직 오지 않은 듯했다.그들은 그녀를 찾으러 궁을 나선 것이 아니었던가? 평소 바쁘던 그가, 오늘 이렇게 일찍 업무를 마쳤는데, 자신을 찾지 않았다면 대체 어디로 간 걸까?그녀가 궁을 나설 때, 그는 틈이 나면 왕부에 들르겠다고 약속했었다.무상황은 그녀가 말이 없자 물었다.“그래서 온다는 것이냐, 안 온다는 것이냐?”원경릉은 그들 부녀가 자신을 두고 나가 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안 옵니다.”무상황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그래, 무슨 계란이를 데리고 나를 보러 오겠느냐?! 쓸데없는 생각이구나.”그의 심기가 불편해지는 것 같자, 원경릉이 더 기분 상할 틈도 주지 않게 서둘러 그를 달랬다. “분명 온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일이 많은 탓에 아직도 바삐 보내나 봅니다.”“거짓이다!”하지만 무상황은 여전히 믿지 않았다.“계속 바쁘면 직접 오지 않고, 사람을 시켜 아이만 보내면 되지 않느냐? 그놈은 계란이가 이곳에 오면 궁에 가지 않을까 봐 걱정하는 것이다. 우리가 계란이를 빼앗아 갈지 걱정해서지.”그럴 가능성도 있었다. 딸에 대한 다섯째의 애정은 언제나 독단적이었다. 심지어, 어머니인 그녀의 자리를 탐낼 때도 있었다.원경릉이 서둘러 화제를 돌리며 물었다.“왕비님께 자녀가 있다고 들었는데, 조부님께선 알고 계셨습니까?”“알고 있지.”무상황이 순간 그녀의 표정이 어두워지는 것을 보고 되물었다. “넌 몰랐단 말이냐?”“아무도 제게 말해주지 않았습니다.”원경릉은 억울해하며 답했다.“부부라면 자녀가 있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걸 일일이 말해줘야 하는 것이냐?”무상황은 그녀를 약간 어리석게 여겼다.“……”원경릉은 잠시 생각하다
원경릉은 추 할머니와 함께 산책을 마치고 돌아온 뒤, 이리 나리를 몰래 끌고 나가 조용히 물었다.“왕비께 자녀가 있습니까?”그러자 이리 나리가 되물었다. “예이와 진이를 말하는 것이냐?”원경릉이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네, 예이와 진이입니다. 그들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북당에는 없다. 하지만 스승님께서 이미 추 마마를 보러 오라고 하셨다는구나.”추 할머니와 왕비가 같은 세대 사람이였기 때문에 이리 나리는 항상 추 할머니를 마마라고 불렀다.“그들이 돌아온다니… 정말입니까?”원경릉은 순간 이유 모를 흥분을 느꼈다. 그들에게 자녀가 있다는 것을 몰랐을 때, 북당이 그들을 제대로 대우해 주지 않아, 아이를 낳지 못하게 한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 그들에게 자녀가 있다는 말을 들으니 정말 기뻤다.“그래. 돌아올지 말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돌아올 것 같다고 생각한다. 사부님이 명을 내렸으니, 감히 거역하지 못할 것이다.”“한번 만나보고 싶습니다. 아마 다섯째도 만나고 싶을 것입니다. 어찌 그들은 친왕과 왕비의 곁에서 지내지 않는 것입니까?”“상황을 대충 알고 있지 않느냐? 사부님께서 한때 황태자가 될 뻔하셨다. 그래서 그들은 모습을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무상황도 장인어른께서도 황위에서 물러나 다섯째가 황제가 되었다. 상황이 변했으니, 그들도 이제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혹시 그들이 너무 조심스러웠던 건 아닙니까? 굳이 그렇게까지는 안 해도 될 것입니다.”원경릉이 답했다.이리 나리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주 작은 위험이라도 있을 수 없다. 작은 일이 큰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 그러니 조정에 폐를 끼칠 수 있는 일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동안 일이 참 많지 않았냐?”원경릉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라에 수많은 문제가 쌓여 있어 몇십 년 동안도 해결되지 않았으니, 굳이 더 많은 문제를 만들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자세히 생각하니, 북당이 그들에게 빚진 것이 참 많은
하지만 원경릉은 거절했다. 모두가 시중을 들지 않는데, 그녀만 시중을 데리고 오면 괜히 특별한 척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황후라는 신분도 숙왕부 사람들 눈에는 단지 어린아이처럼 보일 뿐이었다.그녀는 짐을 다 챙긴 후, 계란에게 아버지를 잘 돌보라고 당부하곤, 서일의 보호를 받으며 궁을 나섰다.그러자 사식이는 한숨을 쉬었다. 이제 막 궁에 왔는데, 원경릉이 다시 나가버리니 앞으로 심심한 나날을 보내야 할 자신이 걱정됐기 때문이다. 원경릉이 숙왕부에 도착했을 때, 이리 나리 부부도 추선을 방문하기 위해 와 있었다.이리 나리도 추선과 정이 깊은 사이었다. 공주는 원경릉에게 이리 나리가 어렸을 때부터 왕비가 키웠다고 말해 주었다. 처음에는 왕비가 아이를 키우는 법을 모르기에 대부분 추할머니가 그를 돌보았는데, 나중에 무예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도 추할머니 덕분에 엄한 왕비 곁에서 고생을 조금 덜 할 수 있었다고 했다. 원경릉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렇군요. 왕비께서 아이를 낳지 않으셨으니, 아이를 키우는 게 익숙하지 않으셨겠지요.""듣자 하니, 왕비께서 아들과 딸을 한 명씩 낳으셨다고 하네. 열몇 살에 어디론가 보내셨다네.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리도 그들을 몇 번 보지 못했다고 하더군.""왕비께서 아이를 낳으셨다니요?"원경릉이 살짝 놀란듯 물었다."저는 아이를 데려다 키웠다고 들었습니다. 예전에 보친왕..."공주는 손을 저으며 말했다."아니네. 정말 아니네. 왕비께서 직접 낳으신 아들딸이네. 쌍둥이고, 나리보다 훨씬 나이가 많네.""그렇습니까?"원경릉은 믿기 어렵다는 표정을 지었다. 과거 왕비 부부가 은거하고 지낸 탓에 자녀를 보지 못한 것이 이해는 되었지만, 최근 몇 년간 그들은 경성에 머물러 있었고, 자녀들이 찾아왔다는 이야기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관계가 아무리 나빠도 몇 년 동안 부모를 찾아오지 않을 수는 없을 텐데. 혹시나 부모와 자식 간에 어떤 갈등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의심 되었다. "그렇네. 나리가
추선의 방에서 나온 원경릉은 청우헌으로 가서 세 거두와 이야기를 나누고 혈압까지 재주었다.그녀는 그들의 말에서 추선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그녀의 이름은 추선으로, 왕비의 옛 시녀였다. 그러나 가장 힘든 시절에 추선은 왕비와 왕부를 떠나지 않았고, 줄곧 평남왕 우문극을 돌봐왔다고 했다.그리고 그 두 명의 첩인 운 마마와 몽 마마는 실제로 왕비의 첩이라고 했다. 대체 왜 왕비의 첩이 되었는지 명확히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두 사람을 알게 되었을 때부터 그녀들은 이미 왕비의 첩으로 불렸다.세 거두는 추선의 병세를 물었다. 원경릉이 악성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자 충격을 받았다.현대에 다녀온 경험이 있는 그들은 ‘악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그들의 얼굴에 한순간 무거운 분위기가 감돌아, 원경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왕비의 시녀라 하셨는데, 잘 아시는 것입니까?”무상황이 말했다.“숙왕부에서는 누구의 시녀인지 따로 구분하지 않았다. 나중에는 매미도 시녀를 그만두고, 모두와 함께 고생했다. 평생 혼인도 하지 않고.”“매미요?”“네가 말하는 추선이다.”원경릉은 웃음이 터질 뻔했다.추선의 이름을 매미로 부르는 것도 어찌 보면 이해가 가는 일이었다.추선이 큰 병에 걸렸다는 소식은 숙왕부 전체에 퍼졌고, 많은 사람이 원경릉에게 그녀의 병세를 물었다.원경릉은 검은 옷을 입은 노인들이 그렇게 침통한 표정을 짓는 것도, 누군가를 이렇게 걱정하는 모습도 처음 보았다. 평소 그들은 늘 차가운 태도를 보였고, 유일하게 열정을 보일 때는 식사 시간뿐이었으니 말이다.그날, 원경릉은 숙왕부에서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숙왕부의 식사 방식은 한 사람이 큰 사발 하나씩 받는 것이었다. 이날 집안사람들은 음식에 거의 손을 대지 않아, 남긴 음식이 가득했다.이런 일은 전례가 없었다.원경릉은 이로부터 추선이 그들 마음속에서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알게 되었다. 소요공에 따르면, 과거 추선은 적성루에서 음식을 배분하는 일을 맡았다고 했다. 고기를 얼마나 줄
“이전에 무슨 큰 병을 앓았습니까?”원경릉이 물었다.“폐결핵이었네. 의원을 불러 치료했지만, 몇 년 동안 건강이 계속 좋지 않았네.”왕비가 대답했다.“치료했던 의원의 능력이 뛰어났겠습니다. 누구였습니까?”“주진이요.”왕비가 말했다.주진의 이름을 들으니, 원경릉은 그녀가 왕비와 오랜 세월을 함께해온 자라는 것을 확신했다.원경릉은 초능력을 사용해 노파의 폐 상태를 감지했다. 결절과 섬유화가 있었고, 심지어 종양으로 의심되는 덩어리도 발견했다. 나이가 많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았고, 우선 약물을 통해 상태를 지켜보기로 했다.그저 악성이 아니길 바라며 기도할 뿐이었다.우선 링거를 놓고 산소를 공급하며, 스테로이드를 사용해 기관지를 확장해 그녀가 조금 더 편하게 호흡할 수 있도록 했다.약물을 사용하자 노파의 안색이 서서히 나아졌고, 호흡도 훨씬 수월해졌다.그러자 노파가 감사의 말을 전했다.“이렇게 숨을 쉬어본 게 정말 오랜만인 것 같습니다…”치료가 진행되는 동안, 두 명의 나이 든 여성이 방을 드나들었다. 다들 원경릉이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기에, 왕비가 그녀들을 소개해주었다.“모두 수년간 나와 함께해온 사람들이네.”그러고는 잠시 망설이더니 말을 덧붙였다.“내 첩들이네.”그러자 원경릉은 자신이 잘못 들은건 아닌지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녀의 첩인지 아니면 왕의 첩인지 궁금했지만, 차마 질문하기엔 입이 쉽게 열어지지가 않았다.잠시 후, 원경릉이 침대에 누워 있는 환자를 가리키며 물었다.“그럼, 이분은요?”“날 처음 모신 사람이네. 이름은 추선이야. 수십 년 동안 대부분 평남왕부에서 평남왕을 돌보며 지냈네.”왕비가 그녀의 물음에 답했다.원경릉은 이해했다. 그들은 정말 이곳에 정착하려는 것 같았다. 그래서 예전에 함께 지내던 사람들을 하나씩 데려와 함께 여생을 보내려는 것이었다.젊은 시절 함께 했던 사람들이니, 나이가 들어도 서로 곁에 머물고 싶어 했다.왕비는 원경릉과 함께 밖으로 나와 진지하게 말했다.“심각하다는 건
다섯째는 갑자기 마음이 불안해졌다.아이가 혼인을 올리지 않고 곁에 머무는 건 분명 기쁜 일이었고 효심이 있는 일이었지만 평생 결혼하지 않는다면 얼마나 외로울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만약 자기와 원경릉이 저세상으로 떠난다면, 그녀가 혼자 어떻게 지낼 수 있을까 싶었다.그렇다고 해서 혼사를 허락하자니, 세상에 과연 걸맞은 사내가 있을지 걱정되었다.택란을 그녀보다 못 한 사내에게 보내는 건 그녀에게 너무 큰 희생이다.다섯째가 갈등하는 것 같자 원경릉이 웃으며 그를 다독였다.“택란은 이제 여덟 살이네. 너무 앞서 생각하지 마오.”다섯째가 그녀를 흘깃 쳐다보며 말했다.“자네는 모르네. 시간이 정말 순식간에 흘러가네. 벌써 여덟 살이니, 7년만 지나면 성인이 되오.”그는 시간이 조금만 천천히 흘렀으면 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두는 게 좋소. 너무 멀리 내다봐도 소용없네.”원경릉은 그의 손을 잡고 살며시 깍지를 꼈다.“아이도 운명과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것이오. 만약 언젠가 자네만큼 훌륭한 남자를 만난다면, 그와 혼사를 해도 나쁠 게 없지 않겠소?”“그런 남자는 있을 리 없소!”우문호는 세상에 둘도 없는 사람이었다.하지만 이런 칭찬해도 우문호는 여전히 복잡해 보였기에, 원경릉은 자신이 그를 걱정하게 만든 것 같아 후회했다. 하지만 자신이 말하지 않아도 그가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 리 없었다.택란이 태어난 날부터 우문호에게는 새로운 적이 생겼다. 바로 택란과 혼인할 상대였다.그 적이 누구인지, 어디에 있는지 몰랐지만, 그는 여전히 미워하고 있었다.더구나 금나라의 어린 황제가 혼사를 직접 언급했으니, 이제 그 적은 실체가 생겼고, 이에 따라 그는 한동안 신경을 곤두세우게 되었다.그 후 며칠간 택란은 매우 순진하고 착하게 행동했다. 아버지가 시간이 날 때마다 곁에 머물며 대화를 나누고, 놀고, 책을 읽고, 글씨를 쓰며 시간을 보냈다.어린 나이임에도 이미 아부하는 법을 터득해, 다섯째의 마음을 부드럽게 만들어 더 이상 화낼 수 없게 했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