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왕과 기왕, 제왕 등의 병문안원경릉은 살 빼는 중인 손왕이 청소기로 빨아들이듯 먹는 것을 봤다. 간식 큰 접시 두개, 양 갈비 한 접시에 볶음 두 종류에 밥 한공기를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싹 비웠다.“아주버님, 만약 모자라시거든 더 가져오라면 됩니다.” 원경릉은 여전히 갈망하는 눈빛으로 접시를 보는 손왕에게서 배고픈 가련함이 느껴졌다.손왕은 엄격한 눈으로 원경릉을 보며, “아뇨, 전 살을 빼야 해서, 제수씨가 이런 식으로 절 나쁜 길로 유혹하면 안됩니다.”원경릉은 정말 어이가 없다. 살을 뺀다는 사람이 원경릉이 있는 곳에 와서 잔뜩 먹고 나서는 원경릉이 자기를 나쁜 길로 유혹해?“그럼 아주버님 그만 드시지요.” 원경릉이 하는 수 없다는 듯 말했다.손왕은 천천히 고개를 들고 슬픈 얼굴로, “고작 간식 두 개밖에 안 먹었는데, 그렇게 짜게 굴 겁니까?”“아뇨……” 원경릉은 흥분한 그의 뚱뚱한 얼굴을 보며 어깨를 늘어뜨리고 할 수 없이, “제 말은 아주버님이 오늘 드실 건 거진 다 드셨으니, 내일 다시 오셔서 드시라는 말이죠.”“내일 무슨 간식 만들죠?” 손왕이 손수건을 꺼내 고상하게 입술의 기름기를 닦으며 별 일 아니라는 듯 물었지만 내심 기대가 충만한 눈빛이다.“아주버니께서 드시고 싶은 게 있으시면 궁중 요리사에게 하라고 할께요.” 손왕한테 졌다.“아무거나 만들어도 좋아요.” 손왕은 눈을 내리 깔고 소매 속을 몇 번 만지작거리더니 목록 한 장을 꺼내서, “그러고보니 참 절묘하네요, 며칠 전이 내 생일이라 왕비가 축하하는 의미로 특별히 식단을 정해줬는데 궁중 요리사에게 식단 중에서 몇 개 만들어 보라고 하는 것도 좋겠어요. 내가 맛을 좀 봐 주면, 나중에 손님에게 접대할 때도 실례가 되지 않고 말입니다. 양은 많이 할 필요 없어요. 난 살을 빼는 중이라 많이 먹을 수가 없어서.”식단을 탁자 위에 놓아두어 원경릉이 가져와서 훑어보고 개수를 세다가 그만 눈이 튀어나올 뻔 했다. “아주버님 생신 연회에 요리가 38개나 된다고요?”“비록 좀
원경릉, 기왕비와 주명취가 한 자리에. 주명취는 기왕비의 말을 듣고, 속으로 기분이 상했지만, 혜정후가 저지른 일도 있고 해서 원경릉 앞에서 말하기가 좀 껄끄럽다.주명취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원경릉을 바라봤다.두 사람은 전부터 서로 미워해서 지금은 가식 떨 필요도 없는 사이지만, 제왕이 오겠다고 하니 주명취도 문병을 올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니 제왕이 멍청하다고 하지.오히려 기왕비는 상당히 다정해서, “아바마마께서 궁중 요리사 두 명을 보내주셨다면서요, 오늘 우리 같이 밥 먹는게 어때요? 우리 동서들끼리 같이 앉아 얘기한 지도 오래됐고요.”원경릉은 고개를 끄덕이며, “좋아요!”원래 셋은 딱히 나눌 얘기도 없지만, 기왕비가 자연스럽게 진행해 나가고 있어 분위기를 싸늘하게 할 수 없으니 계속 원경릉이 장단을 맞춰 주길 유도했고, 이런 저런 화제를 얘기하다가 태상황의 병수발을 든 얘기까지 나오게 되었다.“”태상황 폐하는 뭘 좋아하세요? 건곤전에서 병수발 들 때 태상황 폐하는 시중들기 어려웠어요?”원경릉은 이 때는 경각심이 들어서 웃으며, “ 전 그저 태상황 폐하께서 약 드시는 거 시중 든게 전부여서 나머지는 거의 제가 한 게 없어요. 그리고 평소에 태상황 폐하도 저랑 거의 말씀하시는 일이 없으셔서 시중들기 어렵고 할 게 없었던 것 같아요.”“그래요? 제가 듣기론 태상황 폐하께서 초왕비에게 어화원 산책도 같이 하자고 하셨다고 하던데.” 기왕비가 웃으며 말했다.“네, 그런 일이 있었죠.” 원경릉이 답하며, 태상황을 모시고 한 바퀴 돌았을 뿐인데, 사람들의 이목을 이렇게 끌다니 몸 둘 바를 모르겠네 정말.손왕 이 놈 자식은 왜 아직 안 오는데?“그 말은 태상황 폐하께서 각별히 신뢰하신다는 뜻이죠, 태상황께서 오래동안 어화원을 가신 일이 없는데 이번에 같이 가자고 하셨잖아요. 그리고 초왕비가 폐하를 부축해 드렸다면서요?” 기왕비가 열정적으로 물었다.원경릉은 웃느라 얼굴 근육에 경련을 일으키며, “그날 태상황 폐하 기분이 특히 좋으셨죠.”“보세요
희상궁의 조언과 손왕의 등장두 여인이 간 후 원경릉은 비로소 길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희상궁에게 감사했다. “희상궁이 날 구했네.”희상궁이 아무렇지도 않게: “기왕비 마마는 생각이 깊으시니, 왕비께서는 가급적 왕래를 적게 하시는 편이 좋습니다.”원경릉이 웃으며: “기왕비가 생각이 깊다고? 아닌 것 같아, 오히려 경박한 감이 있던데.”희상궁이 비웃듯, “경박? 그건 일부러 가장한 겁니다.”원경릉이 어리둥절해서, “일부러 가장했다고? 왜 그래야 하는데?”“사람은 모두 보호색이 있습니다.” 기상궁은 원경릉에게 차를 따라주고 앉아서: “제왕비 마마는 독선적이시라 좀 똑똑한 걸 믿고 자신이 전부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지요. 풍요가 오히려 해가 된 셈입니다. 더 적나라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제왕비 마마께서 주씨 집안이기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기왕비 마마는 다르지요, 기왕비 마마는 어려서 서책을 통달하고 학식도 깊고 넓어 기왕의 뒤에서 일을 주도하는 인물입니다. 왕비께서는 기왕비 마마의 어떤 점이 가장 두려운 지 아십니까?”원경릉이 답하길: ‘뭔데?”“기왕비 마마가 이토록 대단한 사람이지만 다른 사람에게 겉으로 공손한 척 하고, 자신을 비하하고, 심지어 체면을 구기면서 까지 적이 방심하고 경각심을 늦추게 하지요. 기왕비는 경박한 부류의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방금 왕비께서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셨습니까?”원경릉이 이 얘기를 듣고 등에 소름이 끼쳐 쓴 웃음을 지으며: “그럼 이 많은 왕자들의 왕비 중에 착실한 사람은 없어?”“없지는 않지만, 손왕비는 그럭저럭 괜찮지요, 좀 자만하는 성격이지만, 익숙해지면 별 것 아닙니다.”손왕 이 놈, 하고 싶어도 꽃뱀이 너랑 결혼해줄 리가 없지.유유상종, 끼리끼리 모이는구나.하지만 제왕은 단순해서 주명취와 결혼했으니 앞으로 고생 좀 할거다. 제왕처럼 바보 멍청이는 주명취에게 속기 딱 좋다.원경릉은 이렇게 생각하고 냉소를 짓다가 아니다, 한 명이 더 있었지. 우리집 왕야.사실 손왕은 이미
황자들의 성격“형수한테 사과 했어?” 제왕이 물었다.주명취는 제왕을 보고 마음속으론 병신이라고 욕을 했지만 겉으로는 한숨을 쉬며: “이게 어디 미안하다는 한마디로 될 일인가요?”“사과도 표면적인 것에 불과하긴 하지, 엄밀히 말해 이 일은 당신이랑 무관하니까.” 제왕은 주명취가 진심으로 혜정후가 저지른 일에 분노와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다고 생각해서 위로했다.주명취는 마음이 콩밭에 간 상태로 응대하며 우문호가 다시 들어오는 것을 보고 일어나 우문호를 향해 예를 취하며, “호 오빠, 당숙을 대신해서 사과 드려요, 이런 일을 저지를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네요. 초왕비가 크게 다치지 않으셔서 불행 중 다행이에요, 그렇지 않았으면 미안해서 죽을 뻔 했어요.”울음 섞인 주명취의 목소리는 처량하고 혜정후에 대한 미움과 분노가 서렸다.우문호는 주명취를 보고: “왕비는 상처가 상당히 심해서 크게 다치지 않았다고 할 수 없어요, 하지만 제왕비도 미안해 할 필요 없습니다. 이 일은 당신과 무관하니까요.”주명취는 이 말을 듣고, 마음이 복잡해 졌다.우문호가 비록 너그럽게 받아주었지만 원경릉의 상처를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떨떠름하게 웃으며, 넋이 나간 채로 앉는데 애처로운 눈빛에 슬픔이 어려 있다.이어서 황자들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주명취는 듣고 싶은 마음도 없고, 마음을 다쳐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둘째야, 듣자 하니 네가 다섯째를 경조부 부윤으로 천거했다면서.” 기왕이 갑자기 물었다.손왕이 고개를 들고 천천히, “맞아요, 아바마마께서 나에게 할 거냐 말 거냐 하셔서, 난 당연히 안 한다고, 그래서 다섯째를 추천했습니다.”“흥, 못난 녀석.” 기왕이 코웃음을 쳤다.“이건 주제를 정확히 아는 거죠.” 손왕이 매정하게 딱 잘라 반박했다.제왕이 호기심에: “둘째형은 왜 싫은데?”“내 능력 밖이야.”“둘째형 겸손했네, 둘째형이 문무 겸비한 걸 다 아는데……” 제왕이 말하면서 자기도 웃으며 그래, 이건 너무 비꼬는 거 같다.손왕이 제왕을 한 번 째려보더니,
여인의 식사 예절과 혼절한 주명취원경릉은 사실 나와서 같이 밥 먹을 생각이 별로 없었는데 그게 가능한 게, 원경릉이 상처가 심하게 아프다거나 신체적인 원인으로 환자식을 먹어야 한다고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희상궁이 말한 것이 떠올라 기왕비를 다시 한 번 관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왕비는 도대체 두 얼굴인지 아니면 가면이 여러 개 인지 말이다. 우문호는 원경릉이 오는 것을 보고 안색이 어제보다 안 좋은 듯하니 눈살을 찌푸리며, “약 먹었어?”“먹었어요.” 원경릉이 답했지만 그녀가 먹은 건 자기가 조제한 약으로 어의가 처방한 건 딱 한 모금 마시고 구실을 대서 쏟아버렸다.“정말 먹었으면 다행이겠지만, 가서 확인해보고 몰래 버렸으면 그땐 두고 봅시다.” 우문호는 낮은 목소리로 위협했다.원경릉이 목을 움츠리며, “안 그래요.”우문호는 정말 위협하고 있고, 원경릉도 진짜 소심한데 이 대화가 주명취의 귀에는 남녀가 “’꽁냥꽁냥’ 하는 것처럼 들렸다.원경릉이 자리에 앉자 우문호는 그녀의 왼쪽에, 주명취는 원경릉의 오른쪽에 그 옆은 제왕이, 다음은 기왕비, 기왕 그리고 손왕 순이다.하인이 들어와 식사 시중을 들려 하자, 손왕이 크게 손을 한번 내저으며, “오늘 형제가 모여 식사하는 자리니 시중들 필요 없다, 다들 나가봐.”하인이 요리를 집어오는 게 얼마나 느린지 원, 또 마음에 딱 들지도 않아서 자기가 먹고 싶은 걸 마음대로 집는 것만 못하다.현대에서 원경릉은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으로 식탁 예절을 알기 때문에 절대로 손왕처럼 후루룩 먹어 치우지 않는다. 원경릉은 지금까지 자기가 교양 있게 먹는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주명취와 기왕비가 식사하는 것을 보고 원경릉은 자기가 얼마나 우악스럽게 먹었는지 깨달았다.주명취는 입을 살짝만 벌려 앞니 두개만 살짝 보이고 젓가락으로 집는 양이…… 원경릉이 한 번 세 보니 쌀알 다섯 알이다. 고작 이 정도로 작게 입에 넣고 입을 다물고 씹어서 천천히 목으로 넘기는데 이 동작이 얼마나 고상한지, 특히 밥알이 목구멍
화가나서 자리를 뜬 기왕 부부제왕은 ‘아’하고 어쩔 줄 몰라 하며: “빈혈일까요?”제왕은 원경릉을 보고, “그럼 형수님이 들어와서 도와주세요.”우문호는 한 손으로 원경릉의 팔목을 잡고, “우선 사랑채로 옮깁시다. 초왕부에 어의가 있으니 바로 어의에게 가라고 명하겠습니다.”“좋아요!” 제왕이 주명취를 안고 달려 나가고 기상궁이 앞장 서서 길을 안내했다.모두 다시 앉았지만 식욕이 없다, 손왕만 빼고 말이다.기왕비가 웃으며: “결혼한지 1년도 되지 않았는데 이렇게 서둘 거라 생각도 못했네요.”손왕이 먹으면서 말하길: “어떻게 안 급합니까? 지금 우리 형들이 아직 전부 아들을 못 낳았잖아요.”기왕비는 머쓱하게 웃으며, ‘그럼 둘째 아주버님이 힘내시면 되겠네요.”“전 그러죠, 형도 힘내셔야 됩니다.” 손왕이 먹는 틈틈이 기왕을 흘끔 보며, “형 애가 타지?”기왕은 방금 젓가락을 들었다가 이 말을 듣고 천천히 내려놓으며 엄숙하게: “나한테 할 말이 있으면 직접 하면 되지, 그렇게 공격할 필요 없잖아. 난 너한테 잘못한 게 없는 걸로 아는데.”“없어.” 손왕이 계면쩍어 하며 고개를 들고, “난 말하는 게 늘 이런 식이야. 언제 공격했다고 그래? 아들 낳는 거에 애타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어? 나도 애탄다고. 그냥 나오는 대로 말한 거야. 형은 뭘 그렇게 화를 내고 그래?”기왕이 ‘흥’하더니 기왕비를 끌고: “말이 안 통하네. 가자!”기왕비가 미안해 하며 원경릉에게: “그럼 우리 먼저 갈게요.”원경릉이 예를 취하며, “조심히 가세요.”형제들이 모인 식사는 유쾌하지 못하게 마무리 되었으나 원경릉은 기뻤다. 적어도 이제 밥은 편하게 먹을 수 있으니 말이다.원경릉이 앉아 손왕에게: “저분들이 안 드셨으니 우리가 많이 먹어요, 낭비하지 말고요, 전부 신선한 채소와 고기잖아요.”“나도 사실 배가 부르지만 이렇게 많은 요리를 재료도 최고급을 사용한데다 궁중 요리사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것인데 안 먹으면 낭비군요, 조금만 더 먹죠.”우문호는 안 먹고 앉
손왕과 원경릉손왕은 식탁에 가득한 빈 그릇을 보며 그만 화가 났다. 또 다 먹어버리고 말았다. 가슴 속 저 깊은 곳에서부터 죄책감이 진하게 피어 올라 애꿎은 원경릉을 원망하며, “요리 3개만 준비하라니까 왜 이렇게 많이 했어요? 이렇게 잔뜩 차려서 낭비하느라 백성이 뼈가 부서지게 일하고 피를 빨리는 거 아닙니까. 재수씨는 흡혈모기예요 흡혈모기.”욕을 다 뱉고나서 배를 내밀고 헉헉거리며 돌아갔다.원경릉은 가만 있다가 욕만 얻어 먹고 정신이 멍한 채로, “누가 아주버님을 저렇게 많이 드시게 했어요?”사실 원경릉이 제일 많이 먹은 것도 아닌데 왜 그녀가 흡혈모기란 말이야? 사실 손왕 아냐?원경릉은 우문호를 보고, “둘째 아주버님 머리가 좀 이상하신 거 아냐?”우문호가 진지하게, “응.”그럼 됐다. 머리가 좀 이상한 사람과는 싸우는 거 아니다.기상궁이 와서 아뢰길: “제왕과 제왕비 마마께서는 벌써 가시며 쇤네에게 대신 전하라 하셨습니다.”원경릉은 묻는 김에: “제왕비 마마 몸은 괜찮으셔?”기상궁이: “어의 말로 제왕비께서는 울화가 오른 것일 뿐이라 합니다. 화기운이 일시적으로 심장에 무리를 줬지만 돌아가셔서 조리하시면 괜찮다고 했습니다.”원경릉이 우문호를 보자 우문호가 일어나 나가는데 얼굴에 아무 표정이 없다.원경릉이 어깨를 으쓱하며, 아닌 척 하긴!원경릉은 기상궁에게 식탁에 음식 좀 챙겨서 이따가 다바오 밥 주라고 하고, 마당에서 다바오와 놀고 있는데 탕양이 오는 게 보인다. “왕비마마, 왕야께서 가서 쉬라고 하십니다.” “쉰다고? 나 안 피곤해!” 원경릉은 다바오와 신나게 논 탓에 좀 더워서 이마의 땀을 닦았다.“안 피곤하시다고요?” 탕양이 미소를 지으며, “왕야께서 안 피곤하시면 금강경을 백 번 필사 하라고 하셨습니다.”원경릉이 손을 가지런히 내리고, “그러고보니 좀 피곤하네, 그럼 난 먼저 들어가서 쉬고 있을 테니 탕대인이 가서 왕야에게 좀 전해줘.”“알겠습니다!” 탕양이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원경릉은 돌아가 침대에 엎드려 잠이
우문호의 동생 회왕의 병원경릉이 돌계단에 앉아 있고 다바오는 그녀의 발치에 엎드려 사람 하나 강아지 한 마리가 해바라기를 하고 있는데, 손왕이 와서 아무렇 게나 되는 대로 계단 한쪽에 앉아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겨 아는 척을 해도 답이 없다.“왜 그래요?” 원경릉이 물었다. “또 살 빼요?”“아니!”“배고파요? 그럼 아주버님께 뭘 좀 만들어드리라고 하게요.”“안 넘어가!”원경릉이 의아해하며 먹보가 밥이 안 넘어간다고? 이거 심각한데.“무슨 일이 에요?” 원경릉이 다바오의 머리를 두드리며 한쪽으로 보냈다.다바오는 게으른 몸뚱이를 이끌고 느릿느릿 걸어갔다.손왕이 옆으로 원경릉을 보며, “다섯째가 얘기 안 해? 여섯째 가망이 없을 것 같다고.”여섯째? 원경릉은 그제서야 그 가엾은 회왕, 우문회가 생각났다.우문회와 우문호는 같은 해에 태어났는데 우문호는 우문회보다 한 달 형으로, 우문회는 노비 마마 소생으로 2년전 병이 나서 왕부를 하사 받은 후 왕부밖으로 한 걸음도 나와보지 못했다.“여섯째 도련님…..무슨 병이시죠?” 원경릉이 물었다.“폐병!”“폐병이요? 폐결핵이에요?”“응!”원경릉이 웃으며, “결핵은 치료가 가능하고 죽을 병도 아닌 걸요, 가망이 없긴 뭐가 없어요.”손왕은 원경릉을 힐끔 보더니, “너 능력 좋네, 폐병도 낫게 하고, 어의도 너만큼 능력은 안되나 보다.”원경릉이 퍼뜩 정신이 들었다. 항생제가 발견되기 전에 폐병은 절망적인 병으로 그저 죽음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상황이 심각한가요?” 원경릉이 물었다.손왕이 허탈하게: “아바마마께서 이미 사람을 시켜 여섯째의 후사를 준비하게 하셨고, 내가 보니 이미 관도 집에 준비되어 있더군. 올해 초 아바마마께서 황릉에 여섯째를 위한 묘를 수리하게 하셨는데 아마 지금쯤 다 고쳐졌겠지. 앞으로 여섯째는 침릉(寢陵)에 살게 되겠지, 형제가 백리를 떨어져 지내게 되겠구나.”원경릉은 이 말을 듣고 회왕 입장에서 너무 잔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사람이 아직 살아있는데, 몇 개월전부터
안지여의 이마에 파란 힘줄이 불끈불끈했으나 냉정을 가장했다. “내가 두려워할 줄 알았나 보지? 죽음도 두렵지 않은데 뭘 더 두려워하겠어?”“넌 두려울 것이야!” 이리봉청이 고개를 돌려 이리 나리를 보고 살짝 그의 팔을 잡았다. “내가 오는 길에 늑대파 사람이 그러던데, 천하에서 제일 잔혹한 형벌을 아는 사람이 늑대파에 있다고. 그게 사실인 것이냐?”이리 나리가 가볍게 답했다. “물론 사실이죠. 훼천이라고 합니다. 늑대골 출신이에요.”“안지여가 버틸 수 있는지 어디 한 번 보고 싶구나.” 이리봉청이 말했다.이리 나리가 엄숙한 태도로 명을 내렸다. “훼천!”그러자 훼천이 급히 나왔다. “이리 나리, 분부하시지요!”이리 나리는 그가 짐짓 냉정한 척하고 있으나 눈빛이 조금씩 허물어져 가고, 몸까지 부들부들 떠는 것이 아주 만족스러워 훼천에게 담담하게 말했다. “시작해!”안지여가 갑자기 큰 소리로 욕했다. “난 네 아버지거늘, 감히 나에게 손을 대다니, 천벌을 받아 마땅한 놈 같으니라고!”이리봉청이 이 말을 듣고 잠시 주저하는 눈빛으로 이리 나리를 바라봤다.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제 아버지는 오직 저를 키워주신 안풍 친왕뿐이십니다.”이리봉청이 살짝 안도했다. “저 인간이 단지 나만 해쳤으면 네 체면을 봐서 놔줬겠지만 천문 세가의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갔으니 난 용서할 수 없구나.”“이리봉청, 너 언제 이렇게 악랄하게 변했어? 죽이려거든 그냥 죽여. 난 천문 세가 사람을 죽이긴 했어도 그들을 괴롭히진 않았어. 네가 날 죽이려거든 깨끗하게 단번에 죽여!”안지여가 크게 노해 몇 번 몸부림을 치다가 상처가 벌어지는 바람에 배에서 선혈이 흘러나오고, 훼천이 가까이 다가가자, 눈에 두려움이 깊어졌는데, 늑대골 출신 훼천은 온몸에서 피비린내가 뿜어져 나와 안지여를 덜덜 떨게 했다.“이리율!” 안풍 친왕비는 시ㅈ가하기 전에 이리 나리를 불렀다. “내가 여기서 네 엄마와 같이 있을 테니 넌 먼저 나가 있거라!”이리 나리가 안풍 친왕비에게
안지여에게 구원 병력이 없는 상황에서, 이리 나리 일행이 성을 제압하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대오가 경성에서 출발하기 전에, 안풍 친왕비가 미리 사람을 풍도성으로 보내 각처, 특히 성 수비군과 군대에 잠입시켜, 음식에 효과가 천천히 나타나는 독을 풀어, 오늘 중독 증상이 나타나도록 독의 분량을 조절했다.적어도 내일까지는 안지여를 도우러 올 사람은 없었다. 독성은 적어도 이틀이 지나야 깨끗해지기 때문에 이틀 동안 그들은 설사와 전신 무기력으로 성에 무슨 일이 있다는 걸 알아도 와서 도울 수 없었다.그리고 그들이 기력을 회복할 때쯤이면, 안지여는 벌써 죽었을 것이다.안풍 친왕과 이리 나리는 성을 통제하고, 안지여 부부를 제압해 두 사람을 줄로 묶고 지혈시켜 주었다.안지여는 요 몇 년 동안 자신이 상당히 대단하다고 여겼다. 이는 풍도성이 부유하기 때문으로, 돈으로 많은 사람을 살 수 있었으며, 여러 곳에서 추켜세워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처절하게 패배한 적이 없었던 이유는 진정한 적이 없기 때문으로, 주변의 떠돌이 비적은 작은 마을 규모로 너무 작아서 소탕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결코 그가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적이 너무 약해서였다.조정 사람과 비교했을 때, 그는 제대로 훈련받은 적 없는 비적었기에 일격도 감당할 깜냥이 못됐다.이리 나리는 둘을 중정에 묶어 두었다. 온 바닥에 남은 음식과 깨진 기와가 널브러져 있는 것을 본 안지여는 마음속 깊이 분노가 일었다. 자신의 생일날, 그를 다치게 한 것이 바로 그의 친자식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더욱이 오늘 이렇게 많은 고수가 현장에 있었는데도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이런 결말을 맞다니 너무 불쾌했다. 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을 부축하고 안지여 부부 앞으로 가서, 그녀가 안지여 부부를 내려다보자, 그들은 낭패에 달가워하지 않는 기색으로, 이리봉청은 분노하는 마음과 함께 서글픈 마음도 들었다. 그들을 죽이면 커다란 복수는 이뤄 천문 세가 망자의 원혼은 달랠 수 있었다.하지만 저들을 이렇게 쉽게
“그럴 필요 없을 것 같은데?!” 이리 나리가 검을 휘두르며 안지여를 겨누자, 안지여가 공중으로 뛰어올라 후퇴했다.공자들은 돕고 싶었으나 검은 옷을 입은 노인들에게 바로 제압당했다. 안지여는 이리율 것으로 그들은 주변 사람을 제압하기만 할 뿐 옆에 서서 전투를 관전하고 있었다.이리율의 무공이 얼마나 뛰어난지 그를 가르친 안풍 친왕 부부를 제외하고, 사실 많은 사람들은 모르고 있었다.이리율의 검법은 신속하고 맹렬해서 안지여는 상대하느라 쩔쩔매고 구석으로 몰리고 있었다. 성안의 호위들은 늑대 무리와 늑대파, 홍매문 사람들에게 막히는 바람에 안지여는 홀로 고전을 면치 못했는데 그래도 아직은 버틸 수 있었다.하지만 30분을 못 가서 안지여는 질게 틀림없었다.놀란 나머지 계속 실성해 있던 소여쌍이 갑자기 이리봉청을 향해 바싹 마른 손을 뻗어, 그녀의 목을 조르며 광적인 집착과 분노에 사로잡혀 성질을 부렸다. “멈춰, 다들 멈추라고. 안 그러면 내가 이년을 죽여버릴 것이니까!”소여쌍은 무공을 할 줄 알았지만 잘하지 못한 것이 어릴 때부터 계속 중병을 앓아 무공 연습에 소홀했고 성주 부인이 된 뒤로는 더욱 병기에 가까이할 일이 없었지만, 공력만큼은 아직 약간 있었다.소여쌍은 증오의 힘으로 이리봉청의 목을 졸랐는데, 소여쌍이 조금만 더 힘을 주면 이리봉청의 목을 부러뜨릴 것만 같았다.안풍 친왕이 차가운 눈빛으로 나서려 하자, 안풍 친왕비가 말리며 고개를 살짝 흔들었는데, 그럴 필요 없다는 뜻으로 뒤에 있던 사람들에게도 참으라는 눈짓을 하자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모두가 이리봉청이 제압당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손가락으로 뭔가를 쥐고 있어 소여쌍의 어깨 위를 휘감고 팔을 눌러 소여쌍이 머리를 돌리게 했다. 이리봉청 손에 쥔 것은 바늘로, 그대로 소여쌍의 오른쪽 눈을 찌르고 들어갔다.소여쌍이 절규하며 이리봉청을 놔주고 선혈이 흐르는 눈을 움켜쥔 채 비틀거리다 바닥에 쓰러져 데굴데굴 구르며 새된 소리를 지르는데, 원망과 저주의 말을 끊임없이 쏟아
풍도성 중정에는 안지여의 아들들과 사위가 그의 곁에 남았는데, 크고 작은 부상을 입어 점점 공포에 질려가고 있었다.‘이 사람들, 아주 대단하구나!’안지여는 이리봉청을 보고 비록 조금 냉정해 보였지만, 여전히 놀라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갑자기 소여쌍이 큰 소리로 웃으며, 몸을 앞뒤로 흔들며 눈물을 찔끔거리더니 완전히 미친 사람처럼 갑자기 웃음을 멈추고 부들부들 떨리는 손가락으로 이리봉청을 가리키며 원망했다. “뜻밖에 네가 안 죽었단 말이지? 게다가 아들까지 있고. 참으로 황당하구나. 정말 너무 황당해. 원래 죽어야 했을 인간은 죽지 않고, 잘 살아야 할 사람은 36년간 괴로움을 당했어. 이리봉청 네가 날 비참하게 만들었으니 넌 이제 지옥에 떨어져야 해.”이리봉청은 소여쌍의 말을 들은 체 만 체했는데, 그녀 눈에는 지금 안지여만 들어왔다.안지여는 36년을 살아왔지만, 이리봉청에게 있어 36년은 마치 사라진 시간처럼 멸문지화의 원한이 어제 일 같았다.안지여도 이리봉청의 눈에서 분노와 악랄함을 보고, 처음으로 마음속에 두려움을 느꼈다.안지여는 억지로 감정을 가라앉히고 말했다. “네 사람을 데리고 가. 지난 일을 묻지 않을 테니. 그렇지 않으면 풍도성에서 곧바로 10만 대군이 올 것으로, 살아서 도망갈 생각은 꿈도 꾸지 않는 게 좋아.”이리봉청의 목소리가 낮게 잠겼다. “우리는 이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바로 네 성으로 쳐들어갈 수 있어. 넌 이미 졌어.”안지여가 웃었다. “졌다고? 그래?”안지여는 수하의 대장군이 믿음직해서, 그들을 당하게 놔줄 수도 있다고 여겼다. 대장군의 부대는 분명 치밀하게 준비되어 있을 것으로, 아마 지금쯤이면 궁수들이 이미 배치를 마치고 그들을 전부 쏴 죽이기 위해 기다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의 손을 잡고 말했다. “어머니, 저자와 말 섞으실 필요 없어요. 앉아서 지켜보시기만 하면 됩니다!”말을 마치고 의자를 올리더니 이리봉청을 부축해서 앉혔다.안지여가 이리 나리를 보는데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안지여가 퍼뜩 눈을 돌려 이리 나리를 보았다.‘이리봉청이 저자를 아들이라고 불렀다는 건러니까?이리 나리는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을 찬찬히 훑어보더니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안 성주와 좀 오래된 원한을 따져야 하는데, 관련되기 싫으신 분은 자리를 피해 주시지요!”그때 한 사람이 검을 짚고 일어나 호통을 쳤다. “넌 도대체 어떤 놈이냐? 무슨 자격으로 자리를 피해라 마라야? 안 성주를 귀찮게 할 생각이면 일단 나부터 통과해 보시지!”그는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장검을 뽑아 파죽지세로 이리 나리를 향해 휘둘렀다.이리 나리는 손을 살짝 움직여 손바닥으로 칼자루를 밀자, 검이 날아가며 그 사람의 귀를 베어 한 줄기 피가 공중에 뿌려지더니, 방금까지 기고만장하던 자가 비명을 지르고 귀는 바닥에 떨어졌다.검이 다시 이리 나리 수중으로 정확히 돌아왔다.이 모든 게 3초 안에 벌어진 일이었다.“회선검?” 검법을 아는 사람들이 깜짝 놀라며 외쳤다.현장은, 숨소리마저도 들리지 않았다.회선검은 검마의 검법으로, 그렇다는 건 저 사람이 검마의 계승자?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무리에서 검마를 찾았다. 과연 두 손으로 검을 안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도 차가운 안광이 느껴졌다.과연 진짜 검마구나, 사람들의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검마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이리 나리를 흘끔 보더니 속으로 의아해했다. ‘이 자식, 언제 내 비장의 검법을 배운 거야?’이리 나리의 검 끝에선 아직 선혈이 떨어지는데, 여전히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말했다. “이 아수라장에 끼고 싶은 거라면, 제가 무례하다고 원망할 생각 마세요.”“무엄하도다!” 안지여가 몹시 놀랐다가 천천히 정신을 차리고 눈을 치켜뜨며 이리 나리를 노려봤다. “너는 내가 누구인 줄 아느냐? 내가 네 아버지다!”이리 나리가 코웃음을 쳤다!안지여의 몇몇 아들이 달려 나와 소리쳤다. “아버지, 저희가 지켜드리겠습니다.”안풍 친왕이 젓가락을 던지고 일어나 차갑게 명을 내렸다
오늘은 성주의 생일이기에 경사라 섣불리 피를 볼 수는 없으므로 칼은 빼 들었지만 먼저 나서서 늑대를 죽이는 사람은 없었다.안지여는 어두운 눈빛으로 ‘늑대 무리라고? 척후병의 보고로는 안풍 친왕이 늑대 무리를 끌고 온다고 했는데, 저들이 의외로 성으로 직접 쳐들어 왔다 이거지?’라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안지여는 잔을 들고 꿈적도 하지 않은 채, 무너지기 직전까지 미동도 없는 태산처럼 냉정하고 침착했다. 늑대 무리는 안으로 들어온 뒤로 두 패로 나뉘어 서서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을 호시탐탐 엿보며 으르렁거렸다.“성주님, 성주님, 저들이 기어코 쳐들어오겠다고….” 문지기가 외치는 소리는 들렸으나 사람은 보이지 않더니, 그보다 조정에서 보낸 사람들이 먼저 들이닥쳤다.앞에 걸어들어오는 두 사람을 안지여는 본 적이 있었는데, 바로 안풍 친왕 부부로 예전에 그들이 천문 세가 사람들을 조사하러 왔을 때 그에게 속은 적이 있었다. 비록 당시 일면식 뿐이었으나 천문 세가 일을 캐내고 있다는 사실에 놀란 탓에 그들의 얼굴을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그런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어째서 별로 변한 게 없는 거지?’안풍 친왕 부부 뒤에 따라오는 10여 명의 검은 옷을 입은 노인은 그들의 호위 무사일 것으로, 주인인 안풍 친왕 부부는 별 표정이 없었으나,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들어와 고개를 들자 괴팍하고 악랄한 얼굴이 안지여 마음에 들지 않았다.안지여는 여전히 일어나지 않았고, 미소는 띠고 있었지만 매서운 눈빛으로 저들이 돌계단을 오르면 그때 일어나도 늦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게 그의 태도였다.하지만 안풍 친왕 부부는 돌계단을 오르지 않았고, 손님 중 건배를 권하느라 자리를 비운 사람들 의자에 검은 옷을 입은 노인들이 차지하고 앉아, 그들을 대놓고 밀치더니 품에서 자기 젓가락을 꺼내 옆 사람 상관하지 않고 먹기 시작해 사람들이 다 경악했다.그들이 자리를 잡고 앉자 뒤따라 들어오는 사람들이 보였다.두 사람이 사람들에 둘러싸여 천천히 걸어들어오고 있었
풍도성 안은 술잔을 주고받고 건배하며 흥겨운 잔치가 한창 무르익고 있었다.안지여는 오늘 황금색 예복을 입었는데 예복에 거대한 이무기를 수놓았으며, 황실의 밝은 황색과는 약간 구별되었지만, 자세히 보지 않으면 진짜 곤룡포로 착각할 만큼 거대한 이무기가 하늘로 날아오르는 형상이 구름을 뚫고 솟아오르는 용과 매우 흡사했다.안지여는 자신의 야심을 이미 조금도 감추지 않았다.당연히 안지여는 오늘도 야심을 감출 생각 없이 손님들에게 보란 듯이 자세를 잡았다. 심지어 인근 지역 조정 관리들이 손님으로 왔어도 안지여는 전부터 맺어온 관계였기에, 그들과 개인적인 친분이 매우 두터워 산 넘고 물 건너 저 멀리 있는 황제가 그들을 시시콜콜 관리할 수 없었다.그 자리 있던 사람들은 모두 오늘 황실에서 파견한 일행이 온다는 것을 알고, 연회석에서 큰 소리로 물었다. “성주님, 듣자하니 안풍 친왕 전하와 이리 부마께서 오늘 오신다던데 어째서 안 보입니까?”안지여가 잔을 들고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진심으로 생일을 축하한다면 결국 오겠지요.”“여정을 듣기론 오늘 분명 풍도성에 도착한다고 했는데, 어째서 밤이 되도록 아직 안 보입니까? 설마 성주님이 직접 나가서 맞이하셔야 하는 건 아니겠지요?”“성주님이 가서 맞이하셔야 한다고? 아주 허세가 대단한데? 퉤!”“누가 아니랍니까? 진심으로 생신을 축하하는 거였으면 며칠 전에 풍도성에 도착해 성의를 보여야지, 오늘까지 늑장을 부리다가 늦게서야 와서, 아직도 잔치에 오지 않은 건 분명 성주님의 체면을 안중에도 두지 않은 행태입니다. 제가 보기에 못 들어오게 막고 돌려보내시지요, 마음만 받은 셈 치고요. ”“맞습니다. 그동안 조정에서는 풍도성에서 받은 공물이 적지 않았으니, 만족한 줄도 알아야죠.”“풍도성은 더 이상 조공을 바칠 필요 없어요. 뭐 때문에 그럽니까? 수백 년 전에 풍도성은 원래 북당의 영토가 아니었어요. 선을 긋고 나와 독립해야 합니다.”모두 안지여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서, 몇 잔 들어가자, 비위를
소여쌍의 욕은 거의 반 시진 동안 계속되었다. 이것도 별로 드문 일이 아니라 무쌍거 사람들은 다 익숙해져 있었다. 성주가 오지 않거나 소여쌍이 아프기 시작해도 이렇게 욕을 해댔다.욕하다 지치기를 기다렸다가 늙은 몸종이 가서 달랬다. “부인 그러실 게 뭐가 있으십니까? 몸이 가장 중하십니다.”소여쌍이 의자에 기대 늘어졌다. 극도로 피곤해 풀린 눈으로 천정을 보며 비참함이 가슴 깊은 곳을 타고 내렸다. “오늘이 초엿새지?”“네!” 늙은 몸종이 대답했다.소여쌍이 창백한 얼굴로 말했다. “곧 15일이구나. 또 내 명을 재촉하는 고통이 오겠지. 죽으면 죽었지 다시는 그 고통을 느끼고 싶지 않다.”그러자 늙은 몸종도 매우 괴로워했다. “부인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고통도 며칠이면 그럭저럭 지나가서, 그동안도 그렇게 지내셨잖아요?”“며칠이면 뭐 그럭저럭 지나가나?” 소여쌍이 잔인한 눈빛으로 말했다. “그건 네가 이 고통을 안 당해봐서 그래. 이게 다 이리봉청 그년 짓이야. 오빠가 그년을 쫓아가서 죽이게 한 걸 정말 후회해. 그년을 잡아 와서 가두고 내가 한 번씩 아플 때마다 그년을 갈기갈기 찢어발겨 나보다 수천 수백 배 고통스럽게 해야 했어.”늙은 몸종이 소여쌍의 손을 쥐었다. “부인 그런 생각 마세요. 벌써 죽은 사람을 이제 와서 생각해 봤자 아무 도움도 안 됩니다. 성주님과 자꾸 다투지 마세요. 자꾸 다투시다 보면 감정이 사라집니다.”소여쌍이 처연한 웃음을 지었다. “오빠는 진작부터 나한테 아무 감정 없어.”“성주님은 이리봉청에게 아무 감정 없으세요. 감정이 있을 리도 없고요. 안 그러면 당시 부인을 위해 이리봉청을 죽이고 천문 세가 사람을 다 죽이셨을 리가 없죠.”소여쌍이 고개를 돌리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전에는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요 몇 년간, 성에 들어온 여자들 생긴 걸 보라고. 전부 이리봉청을 쏙 빼닮았잖아? 오빠는 역시 후회하고 있는 거야. 날 위해 이리봉청을 죽인 걸.”소여쌍은 늙은 몸종의 손을 잡는데 고여서 썩
안지여는 소야쌍을 놓고 천천히 안으로 걸어갔다. “이틀 뒤가 내 생일인데, 당신 몸 상태는 어때?”그러자 소여쌍은 시녀의 손을 뿌리치고 얼른 안으로 따라 들어가려 했는데, 몇 걸음 만에 휘청거리더니 하마터면 안지여 뒤로 넘어질 뻔했다.안지여는 소여쌍을 잡아줄 수 있었지만, 손을 뻗지 않고 그녀를 등지며 보이지 않는 척했다.시녀는 이미 이런 상황이 익숙한 듯 얼른 소여쌍을 부축해 바닥에 넘어지는 것까지 막았다.소여쌍이 숨을 돌리고 살짝 웃었다. “몸이 많이 좋아져서 오빠 곁에 있을 수 있어요. 오빠 생일에 당연히 제가 곁에 있어야죠.”안지여는 그제야 소여쌍을 돌아봤다. “생일엔 손님이 많이 올 거야, 올해는 다른 어떤 해보다 성대하게 하니까 당신도 잘 차려입어. 내가 내일 사람을 시켜 장신구를 보내도록 하지.”“네, 알았어요!” 소여쌍이 기쁜 듯이 말하며 안지여를 한없이 바라봤다.하지만 안지여는 소여쌍을 더는 보고 싶지 않았다. 사정 설명했고 체면도 차렸으니 됐다 싶어 말했다. “난 아직 일이 있어서. 당신 쉬는 걸 방해하지 않을 테니 잘 쉬고 있어.”안지여는 말을 마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려고 했다.이때 소여쌍이 갑자기 닭발 같은 손을 뻗어 안지여의 팔을 붙잡으며 서둘렀다. “오빠, 어렵사리 왔는데 저랑 얘기 좀 더 해요.”안지여가 고개를 숙이고 소여쌍의 마르고 늙은 손을 바라봤다. 손등에 주름이 자글거리는 것이 구겨진 비단 뭉치처럼 너무 흉해서 혐오감이 든 나머지 쓱 손을 뺐다. “말했잖아, 일이 바쁘다고.”소여쌍의 눈빛이 갑자기 매서워지며, 늙고 쉰 목소리로 소리쳤다. “일이 바쁜 거예요, 아니면 그 여우 년을 찾아가는 거예요? 제가 모를 줄 아세요?! 여자를 성에 얼마나 숨겨놨는지.”안지여가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헛소리야?”소여쌍이 두 손으로 가슴을 움켜쥐고 축 처진 눈에서 원한이 쏟아져 나왔다. “제가 늙었다고 싫어하는 거잖아요, 아녜요? 잊지 마세요. 오빠의 동안도 결국 늙는다고요. 이리봉청이 아직 살아있어도 지금 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