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양과 작전회의“응, 어쩔 수 있나, 조금이라도 더 신중한 게 낫지. 명단을 전해줬으니 됐어. 내일 계획대로 자네는 외부에 소식을 뿌려, ‘박원을 다치게 한 사람은 넷째인데 폐하의 자식이니 차마 추궁하지 못하는 거다.’ 하고.”탕양이 찐빵을 한입에 삼키며, “안왕 전하를 보호하실 거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보호 같은 소리 하네,” 우문호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넷째가 성심성의껏 박씨 집안에 사죄를 했으면 나도 지켜주려고 했어, 그런데 어떻게 했어? 꼴랑 편지 한 장에 미안하다는 몇 마디 쓰고 끝이야. 사람을 핫바지로 알아?”탕양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러네요, 하지만 이렇게 소문을 퍼트렸다간 폐하의 노여움을 사지 않을 까요? 목숨이 달린 큰 일을 폐하께서 금족령만 내리신 건, 자식을 싸고 돈다는 느낌이 들 텐데요. 항간이 시끄러워지면 폐하께서 전하를 벌하실 겁니다.”우문호가 안됐다는 눈빛으로, “탕양아, 내가 남의 기분을 상하게 한 게 어디 한두 번이냐? 한 번 더 그러나 안 그러나. 그냥 이렇게 밀고 가자.”탕양이 피식 웃으며, “전하 최근 농담이 느셨습니다.”“사는 게 힘드니까, 살아보자고 그런 거지!” 우문호가 마지막 찐빵을 삼키더니 차를 마시고, “다른 방법이 없어, 미움을 받던 아바마마의 위엄을 상하게 하던 박원에게 길만 잘 깔아줄 수 있다면 야, 박원이 선비로 가서 목숨이 다른 사람 손에 있는 판인데 더 신중해야지 안 그래? 홍엽과 독고흥이 다 만만한 인간들이 아니야, 다행히 지금 아무도 박원이 무공을 회복한 걸 모르고 있어서 그렇지.”“그렇기는 하죠, 그래도 무과 장원이란 끈을 폐하께 알려야 하지 않을 까요?”“안돼!” 우문호가 한 마디로 거절하며, “아바마마 곁에 귀신처럼 적이 숨어있어. 나도 알아내지 못했으니 신중한 편이 좋아. 이번에 풀어놓은 사람은 한 명도 아바마마께 알리지 않을 거야.”“순탄하게 임무를 완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탕양도 걱정이 됐다. 이제 사람을 깔기 시작한데다 임무는 또 어렵고도 막중한데
위왕을 보내고위왕이 다시 경성을 떠나는 날은, 많지는 않았지만 첫눈이 소복하게 내려 가지마다 하얀 눈꽃이 피었다.위왕은 준마를 끌고 성문 앞에 서 있고, 멀리서 시위가 오는 게 보인다. 위왕은 우문호가 말을 달려 오는 것을 보고 모자를 눌러쓰고 숨을 내뱉는데 입에서 하얀 김이 뿜어져 나온다.우문호가 성문에 도착해 말에서 내리더니, 말 등에서 술 한 단지를 꺼내 위왕에게 건네며, “북군영은 춥고 힘들 텐데, 경성의 맛있는 술이 어쩌면 한기를 좀 몰아내 줄지도 모릅니다.”위왕이 웃었다. 입술이 갈라져 피가 베어 나오는 바람에 미소가 악간 우락부락해 보이지만, 술을 받아 들고 말 등에 묶더니, “술이 이렇게 조금이면 북방까지 안 남아 나. 길에서 다 마시고 치우겠는걸.”우문호가 위왕을 보고, “언제 다시 와요?”“나한테 화 안 났어?” 위왕이 반문했다.“지난 일이예요.” 우문호가 담백하게 말하며, “형제 사이에 불쾌한 일은 기억하지 않기로 했어요. 그리고 이번에 형이 절 크게 도와줬으니 제가 감사해야죠.”“나야말로 울분을 풀 수 있었어. 이 일은 굳이 내가 아니라 누가 맡아도 되는데, 호야, 몇 년만 기다려, 다시 돌아와서 같이 술 한잔 하며 형제의 정을 나누자.” “혼자는 외로운데 새 사람을 찾을 생각은 해봤어요?” 우문호는 위왕의 이런 모습을 보고 참을 수가 없어서, 말하면 안되는 걸 알지만 역시 형 곁에 챙겨줄 사람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생기고 만다.“가당치 않아!” 찢어진 입술로 단호하게 말했다. 가볍게 말했지만 천금의 무게다.우문호가 가슴이 저릿해서, “두분 되돌릴 방법은 정말 없는 거예요?”위왕이 낮게 깔린 하늘처럼 무거운 눈빛으로, “더욱 가당치 않아!”위왕이 말을 타더니 우문호에게 등을 돌리고 손을 흔드는데 고생이 느껴진다. “나같은 사람은 죽는 것도 아까워. 죽어서도 혼백이 영원히 쉬지 못할 거야. 곁에 있는 사람에게 잘 해. 그녀에게 더 잘해. 최선을 다해서. 안 그러면 후회한다.”말발굽소리와 함께 먼지가 날리더니 검은
아이들에게 죽음이란“아빠!” 세 꼬맹이가 우문호가 오는 것을 보고, 일제히 기뻐하며 소리쳤다.“전하, 이거 말이 이상합니다.” 탕양은 여전히 진지하게, “오늘밤 태자비 마마께 여쭤보려고요.”“그래,” 우문호가 세 아이들에게, “너희들 아빠와 황조부께 가는 건 어떠냐?”“좋아요!” 세 꼬맹이들이 좋아라 소리쳤다.오늘 셋째형이 가고 아바마마 마음이 서글플 텐데 아이들을 데리고 만나 뵙는 게 도리일 것이다.마차로 궁에 들어가는데 어찌나 시끄러운지 우문호는 바로 후회가 밀려왔다.아바마마께 효도하는 일이 호락호락하지 않다. 특히 1:3일때는 말이다.“태조모 궁에 녹두과자 참 맛있어, 태조모는 제일 맛난 걸 나한테 먹으라고 주신다.” 경단이가 태조모와 먹는 걸 하나로 연결시켜 그리워했다.만두가 첫째라고 어른스러운 척하며, “태조모는 이미 돌아가셨는데, 어떻게 너한테 과자를 먹여 주셔?”“태조모한테 돌아오시라고 하면 되잖아?” 경단이가 말했다.“죽었는데 어떻게 돌아올 수가 없어? 죽은 건 죽은 거야. 땅에 묻는다고.” 만두가 시무룩하게 말했다.찰떡이가 머리를 들이밀며, “땅에 묻는다고? 그럼 너무 괴로운데, 숨 쉴 수 있어? 숨 막히면 힘들어.”“바로 땅에 묻는 거 아니야,” 만두가 아는 것도 많은 지, “우선 태조모를 나무 상자에 잘 넣어야 하는 거야. 나무 상자니까 숨을 쉴 수 있지.”“그런 거구나, 그런데 혼자 나무상자에 있으면 엄청 심심하겠다. 말 할 사람도 없고.” 찰떡이가 문득 태조모가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조모가 찰떡이에게 잘 해 주신 걸 기억하고 있다.“그럼 우리가 다음에 가서 태조모랑 얘기하자.” 경단이가 우문호의 어깨를 흔들며, “아빠, 다음에 저 데리고 태조모에게 가요, 녹두 과자 먹고 싶어요.”우문호는 경단이의 천진한 눈빛에 가슴이 아린 것을 참고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 다음에 가자.”“서일 아저씨가 그러는데 할머니도 돌아가셨데요, 하지만 전 할머니가 싫어요.” 경단이가 말했다.“나도 싫어요!” 만두와 찰떡이
태상황의 병우문호가 아이들을 데리고 일단 명원제에게 갔다. 명원제는 손자들을 보고 즐거워서 전대미문으로 정사를 다 내려놓고 우리 떡들에게 바둑을 가르쳤다.명원제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걸 중시해서 아이들이 글을 알기 시작했다는 말에 목여태감을 시켜 책을 한권 가져오게 했다. 아이들에게 하나씩 짚어 나가며 글자를 알려주는데 놀랍게도 7~80%는 알고 있는 것을 보고 명원제가 화들짝 놀라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리고 옆에서 태연한 얼굴로 있는 우문호에게, “네가 어릴 때도 이렇게 똑똑하지는 않았어.”“원 선생을 닮았겠죠, 원 선생이 똑똑하잖아요.” 우문호가 웃으며 말했다.명원제가 고개를 흔들며, “걔가 똑똑한 건 둘째 문제 치고 성격이 고약해서 요령이 없어, 고집이 어찌나 센지, 특히 네 후궁 문제는 한 발자국도 양보를 안 한단 말이지. 그런데 이 고집은 네 황조부도 마찬가지야. 병이든지 그렇게 오래 되셨으면서 한사코 너희에게 알리지 못하게 하시고, 전에는 기침만 한번 해도 태자비를 들라고 하시더니 이번엔 저렇게 위중한데 알리지도 말라고 하시니.”우문호가 긴장하며, “황조부께서 아프십니까? 심각하세요? 왜 말씀을 안 하셨어요?”“심각하셔,” 명원제가 아이들을 내려놓고, 우문호와 밖으로 나가서 깊은 한숨을 내 쉬더니, “네 황조모께서 서거하신 뒤로 황조부가 넘어지시더니 도무지 낫지 않으시고 밤에는 기침이 심해서 눕지도 못하시는 게 누우면 숨을 못 쉬셔.”“숨을 못 쉬신다고요? 어떻게 그럴 수가? 어의는 뭐라고 했습니까?” 우문호가 다급하게 물었다.“어의 말이 천식이라고. 계속 약을 드리는데 차도가 없고 나아지는 기미조차 없구나.” 명원제가 근심 어린 표정으로, “네 황조부도 연세가 드셔서요 몇년간 계속 몸이 안 좋으셨어, 안 그랬으면 퇴위하실 필요도 없으셨지. 2년전에 심장 질환이 발작해 하마터면 돌아가실 뻔 하셨고. 다섯째야, 너도 정무로 바쁜 걸 알지만 최대한 짬을 내서 곁에 있어 드려. 어의 말이 이번 약을 드시고도 효과가 없으면 붕어하실
태상황과 꼬맹이단지…… 우문호가 침울하게 밖을 보니 이미 석양이 비춰 들고, 엷은 빛은 작열하던 광채를 잃었다. 우문호가 조용히, “그럼 소자는 아이들을 데리고 황조부께 문안 드리러 가겠습니다.”“인사도 좋고 곁에 있는 것도 좋지만 폐하의 뜻을 거슬러서는 안된다.” 명원제가 경고했다.우문호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고 우리 떡들을 데리고 나갔다.대전을 떠나자 만두가 혀를 내두르며, “황조부 너무 무서워. 이렇게 무서운 거 처음 봐.”“황조부는 황제 시니까 당연히 무섭지.” 경단이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놀라 죽을 뻔 했어.” 찰떡이가 조그만 목을 움츠리더니 경악한 눈빛을 지었다.우문호가 무서운 눈빛으로, “어른을 함부로 말하면 혼난다.”세 꼬맹이는 입을 꾹 다물었다.넷이 건곤전 입구에 들어서기 전에 태상황의 기침소리는 가래를 동반해 끓는 물 소리처럼 쿨룩쿨룩했다.궁인이 들어와 보고하고 얼마 되지 않아 상선이 나와서 우문호와 우리 떡들을 보고 눈웃음을 지으며, “어머나, 오늘 전하께서 어떻게 시간을 내셔서 세자 저하와 입궁하셨습니까?”“태감,” 우문호가 안쪽으로 흘끔 눈짓하고, 안에서는 기침소리가 들리지만 많이 잦아들었는데 일부러 참는 듯한 느낌이다. “황조부는 어떠신가?”“태상황 폐하의 옥체는 아직 괜찮으십니다. 그저 얼마전에 감기가 들어 기침을 하는데 어의에게 보였으니 큰 일은 없을 것입니다.” 상선이 차분하게 답하고 웃음 띤 얼굴로 예를 취하는 게, 거짓말 하는 것도 감추는 것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우문호가, “그럼 우리가 들어가서 인사를 여쭙겠네.”상선이 웃으며 막더니, “전하께서 들어가시는 것은 괜찮고 세자 저하들은 여기서 노시게 하시지요. 태상황 폐하께서 병세가 중하니 아이들은 접근케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괜찮네, 쟤들은 아주 건장해.” 우문호가 말을 마치고 아이들을 데리고 갔다.상선이 막지 못하고 따라 들어가며, “아이고, 전하 좀 기다리세요. 이렇게 밀고 들어가시면 안됩니다.”우문호는 이미 세 아이
태상황의 결심“그래, 다들 일어서서, 태조부가 좀 보게 이리 오너라.”우리 떡들은 두껍게 입어서 기우뚱하면서 일어나 뒤뚱뒤뚱 오리처럼 걸어가더니 태상황 곁에 달라붙었다.찰떡이는 자상해서 통통하고 조막만한 손을 태상황의 생기 없이 파리한 얼굴에 얹고, “손이 따듯 따듯”태상황은 마음에 한없는 위로가 되었다. 하지만 기침을 참느라 얼굴이 시뻘게 지고 가슴에선 쿨룩거리는 소리가 울려 상당히 괴로워 보였다. 태상황은 손을 들어 상선을 오라고 하더니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게 했다.아이들이 태조부가 아프신 것을 알고, 얌전하게 하나씩 상선을 따라 나가 탕후루를 받아 먹었다.태상황이 계속 기침을 했으나, 아이들이 휘장 가리개 밖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는 눈빛은 여전히 아이들에게 고정되어 있다. 하지만 머리가 아래로 쳐지며 눈동자가 흔들리더니,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쟤들이 벌써 가겠다는 말을 하는구나.”우문호가 침대가에 앉아 태상황의 가슴을 치며 가볍게 진기를 불어넣자 태상황의 기침이 심해졌지만 이번 기침으로 가래가 나와서 오히려 훨씬 편해졌는지 가슴에서도 컹컹 울리는 소리가 별로 나지 않았다.태상황이 우문호에게, “왜 말이 없어? 이렇게 조용한 적이 별로 없었는데.”우문호가 걱정스레, “왜 이렇게 심하게 기침을 하세요? 원 선생에게 와서 좀 보라고 할까요?”“그럴 필요 없어.” 태상황이 하지말라는 손짓으로, “별 거 아냐, 괜찮아, 어의 약을 먹었으니 이제 약효가 듣겠지.”“그런데 기침이 아직 이렇게 심한데요.” 우문호가 태상황의 얼굴을 보니 원래도 말랐는데 지금은 더 심하게 말라서 가죽밖에 없다.“기침 한다고 안 죽어,” 태상황이 많이 괜찮아 져서 몸을 살살 일으키더니, “과인을 저기 좀 앉혀줘, 너무 오래 누워있었더니 허리가 끊어지겠어.”이불을 젖히고 발을 침대 끝에 뻗더니 손으로 우문호의 어깨를 누르는 힘으로 일어나려고 했으나 우문호가 태상황을 번쩍 안아 올렸다.갑자기 허공에 붕 뜨자 태상황이 화들짝 놀라 무의식적으로 우문호의 팔을 꽉
상선은 알까“대학이 어찌 황조부보다 중요할 수 있겠습니까? 원 선생도 알 거라고 믿어요 분명히 입궁하려고 할 겁니다.”태상황이, “그럼 모르게 해.”“손자는 정말 모르겠습니다,” 우문호가 태상황에게, “원 선생이 낫게 하지 못하면 비난 받을 까봐 황조부께서 그러시는 거라고 아바마마는 말했지만, 우린 신경 안 써요. 그동안 우리가 받은 비난이 어디 적었습니까? 황조부의 건강보다 중요한 게 뭐가 있나요?”태상황이 얼굴을 굳히고, “황조부의 말도 안 듣는 거냐? 과인이 필요 없다면 필요 없는 거야.”태상황이 흥분하더니 기침이 시작되었는데 이번엔 멈추지 않고 얼굴이 벌게졌다가 보라색이 되면서 앉아 있지도 못하자 우문호가 놀란 나머지 입도 뻥긋 못하고 얼른 태상황의 등을 쓸어 드렸다.나중에 어의도 와서 처치하며 우문호는 상선에게 끌려 나갔다. 태상황이 침대로 옮겨지는 것을 보는데 곧바로 휘장을 드리우고 시선을 차단해 버려, 안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아예 볼 수 없고 여전히 천둥 같은 기침소리만 들렸다.우문호는 마음이 찢어졌다. 근래 들어 어마마마를 보내고 태후 마마를 보내 드리며, 사망의 어두운 그림자가 아직 마음 속에서 사라지기도 전에 황조부가 또 이러신다.“전하, 돌아가시지요, 아이들을 데리고 돌아가세요.” 상선이 우문호의 표정이 좋지 않자 떠나라고 권하며 말했다.“상선, 왜 황조부는 태자비를 부르지 말라고 고집을 부리시는 겁니까? 설마 태자비의 의술이 미덥지 못하신 건 아닐 텐데.”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닐 거 같다.상선이 우문호의 팔을 끌고 복도 앞으로 가며, “태자 전하 묻지 마세요, 태상황 폐하께서 이렇게 하시는 데는 그분 뜻이 있으신 겁니다. 전하께서는 그저 태상황 폐하의 말을 들으시면 됩니다.”우문호는 상선의 손을 꽉 쥐고, “상선, 자네는 황조부 곁에 수십년을 있었는데 황조부가 저렇게 괴로워하는 걸 참고 볼 수 있는가?”상선의 흐린 눈에 슬픔이 어리며, “전하 말도 마세요. 태상황 폐하께서 퇴위하실 때 몸이 이미 좋지 않으셨습니
소요공과 주재상에 따지다우문호는 우리 떡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으나 원경릉이 아직 돌아오지 않아서 아이들을 떼 놓고 소요공 저택으로 갔다.소요공 집에 도착하니 주재상도 있는데 두 사람은 서재에서 술이나 차도 마시지 않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우문호를 보더니 올 게 왔군 하는 얼굴로 침묵했다.“두 분은 황조부의 병환이 심각한 것을 아셨습니까?” 우문호는 두 사람이 침묵하는 것을 보고 물었다.소요공이 작은 소리로, “전하 앉으시지요.”“황조부께서 왜 태자비가 입궁해서 병수발을 드는 걸 원하지 않으십니까? 이유를 아시는군요 그렇죠?” 우문호가 앉지 않고 소요공과 주재상을 노려보며 질문했다.“전하 서두른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소요공이 얼굴빛을 고치고 담담하게, “일단 앉으셔서 말씀하시지요, 태상황께서 몸이 안 좋으신 게 하루 이틀일이 아니니 급히 서두실 것 없습니다.”우문호가 충혈된 눈으로, “어떻게 안 급할 수가 있습니까? 아바마마께서 말씀하시길 어의가 약을 지어 올려도 차도가 전혀 없다는데, 한사코 원 선생이 입궁해서 보는 건 원하지 않으시는 상황 아닙니까. 원 선생이 비난 받게 될까 걱정된다고 하시지만 완전 말도 안되요. 원래 태상황 폐하의 옥체는 계속 원 선생이 봐왔고, 원 선생이 폐하의 병을 가장 잘 압니다. 그동안 사람들이 뭐라고 비난하든 겁내지 않았는데 새삼 사람들 비난이 두렵겠습니까?”“태자 전하 고정하세요.” 주재상이 천천히, “이번 병은 전과 달리 아주 위독한 상태입니다. 태상황 폐하께서 태자비께서 치료하지 못하도록 하신 건, 주도 면밀하게 고려한 끝에 태자 전하 부부를 위해서 입니다. 안 좋은 말로 하면 만약 태자비께서 치료하셨다가 태상황의 병이 낫지 않으시면 태자비의 죄가 돼요, 태자 전하께서 잊으신 모양인데, 왕조 대대로 황제께서 붕어하시면 어의에게 목숨을 구하지 못한 죄를 반드시 물었습니다. 가볍게는 관직을 삭탈하고 하옥되거나, 중할 경우엔 순장 시켰지요. 나중에 태상황 폐하께서 태자비의 치료를 받다가 돌아가시면 결과
체온을 측정해 보니 무려 40도였다.“고열이오. 또 다른 증상은 없소?”원경릉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바쁜 와중에 병까지 든 다섯째가 안쓰러워졌다.우문호가 그녀의 손을 꽉 잡고 말했다.“걱정할 필요 없소. 그저 재채기 몇 번에 조금 어지럽고, 코가 막히며 목이 약간 찌릿한 정도네. 별일 아니네.”원경릉은 서둘러 청진기를 꺼내 심장과 폐를 확인해 보았는데, 다행히 특별한 이상이 없는 것으로 보아, 비를 맞아 감기에 걸려 열이 나는 듯했고, 바이러스가 호흡기를 공격하는 것으로 보였다.그녀가 말했다.“해열제를 먼저 먹고 주사를 맞은 후, 푹 자고 나면 내일 괜찮아질 것이오.”그녀는 해열제를 찾아내자, 서일이 바로 물을 준비해 왔다. 우문호는 해열제를 삼킨 뒤, 바로 물을 마셨다.이는 그가 약을 먹을 때 늘 하는 습관이었다.원경릉은 주사기를 꺼내 약물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주사기를 손에 들자마자, 우문호가 침을 꿀꺽 삼키며 말했다.“꼭 이걸 맞아야 하오?”“주사를 맞으면 빨리 낫습니다. 바쁘다 하지 않았소?”원경릉이 부드럽게 그를 달랬다. 우문호는 약은 한 움큼씩 먹을 수 있는 반면, 주사는 몹시 무서워했다.옆에서 서일도 말을 보탰다.“아프지 않습니다. 금방 끝날 겁니다.”“근육 주사가 제일 빠르오. 정말 안 아플 거라네.”원경릉이 웃으며 덧붙였다.우문호는 바쁜 나랏일을 떠올리며 더 이상 아프면 안 된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주사의 아픔을 참기만 하면 내일 나은 몸으로 조회에 참석할 수 있었다.“좋소. 그럼 빨리 낫게 두 대 놓으시게!”우문호가 용기를 내어 웃으며 말했다.“마마…!“그때 밖에서 녹주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쥐들이 갑자기 우리를 부수고 탈출했습니다. 궁녀를 시켜 잡았지만, 두 마리나 놓쳐 버렸습니다.”원경릉은 쥐들이 대나무 우리를 부술 정도로 강해질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그녀는 다급히 주사기를 약상자에 내려놓으며 말했다.“다섯째, 조금 있다가 돌아와서 다시 주사 놓겠소.”그러자 우문호
이 약은 사실 원경릉이 맡은 프로젝트가 아닌, 그녀의 실험실에 있던 다른 전문가팀이 진행하던 것이었다. 그러나 그 전문가가 뜻밖의 사고로 행방불명이 되면서 양여혜가 그녀에게 팀을 이끌고 연구를 이어가도록 했다.원경릉은 연구 단계에 처한 약을 약상자에 넣어 가져온 후 실험용 쥐에게 주사했다. 그녀는 궁에 간단한 실험실을 마련해 실험용 쥐를 관찰하고 데이터를 정리하는 기본적인 작업을 했다. 하지만 심도 있는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현대로 돌아가야만 했다.부부는 각자의 일로 바삐 보내며, 이삼일 동안 식사도 함께하지 못하는 경우가 점점 많아졌다.전형적인 바쁜 부부의 모습이었다.며칠 밤을 상의한 끝에 우문호는 과거시험 문제를 정하고 주 시험관을 명했다. 그리고 천제를 올려, 이번 과거시험에서 나라에 유용한 인재를 선발할 수 있도록 하늘에 기원했다.그렇게 천제 의식이 반쯤 진행되었을 때, 갑작스럽게 쏟아진 폭우로 의식은 중단되었다. 제단 위에 있는 우문호와 대신들은 비에 흠뻑 젖었지만, 의식을 끝까지 마쳐야 했다. 천제를 마치고 궁으로 돌아온 우문호는 비를 맞은 탓에 연신 재채기 했다.그는 궁으로 돌아가자마자 녹주가 끓여준 생강차를 연거푸 두 그릇 마셨다. 원경릉이 아직 돌아오지 않자, 우문호는 다시 어서방으로 가서 내각에서 올린 상소문을 검토했다. 내각에서 올리는 상소문은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일반적인 문제는 냉정언이 먼저 확인한 후, 바로 처리했다.자시까지 바삐 보내고 난 후, 우문호는 몸 상태가 점점 이상하고 어지럽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문턱에 앉아서 졸고 있는 목여 태감을 보며, 그는 관자놀이를 누르며 버거움을 느꼈다.황위에 오른 후, 우문호는 거의 아픈 적이 없었다. 하지만 연달아 밤을 새우고 비까지 맞은 데다 환절기에 찬바람을 맞으니 감당하기에 더욱 어려웠다.하지만 우문호는 일을 마저 처리하려 억지로 애를 썼다.목이 조금 말랐지만, 목여 태감을 깨우기 귀찮아진 그는 차갑게 식어버린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다시 일을 이어갔다. 상소문을 보자마
우문호가 원경릉에게 물었다.“참, 아이들과 그룹… 채팅이 있다고 하지 않았소? 계란이가 이 일을 안다고 한 적 있소?”“우린 그런 이야기를 나누지 않소.”원경릉이 웃으며 대답했다.“그럼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이오? 나도 들어갈 수 있소?”우문호가 물었다.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아마 안 될 것이오. 그룹 채팅은 단지 별칭일 뿐, 당신이 현대에서 본 통신 앱과 같은 것이 아니오. 우리는 의식으로 소통하는 것이라, 당신은 함께할 수 없소.”“그렇군.”우문호가 시큰둥한 표정으로 대답했다.원경릉은 그가 조금 서운해하는 것을 눈치채고는 그를 안고 말했다.“당신도 참. 지금까지 아이들과 나눈 이야기를 당신한테 숨긴 적 없이 모두 말해줬으니, 기분 나빠하지 마시오.”“기분 나쁜 것이 아니라, 혹시라도 계란이가 모르고 있다가 속상해할까 봐 걱정되는 것 뿐이라네.”우문호가 웃으며 말했다.“걱정하지 마시오. 계란이는 아직 사내를 좋아할 나이가 아니오.”우문호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만, 그저 한 아이의 아버지의 노파심으로 인해 작은 문제도 크게 보기 마련이었다.이 드넓은 세상을 아이들이 마음껏 탐험하는 것은 괜찮지만, 혹여나 아이들이 속상해할까 봐 늘 걱정이었다.한편, 요즘 다섯째는 과거시험으로 인해 바쁜 일상에 조금 지쳐 있었다.과거 시험장은 항상 부정행위로 난무하는 곳이었다. 과거로 인재를 등용하려는 조정의 목적과 달리, 일부 관리들은 그저 돈 벌 기회로 여길 뿐이었다.그래서 지금 주 시험관 자리를 차지하려는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었다.지난해까지는 냉 수보가 항상 주 시험관을 맡았지만, 그럼에도 다른 시험관들의 부정행위가 적발된 적이 있었다.이 일로 우문호는 3년에 한 번씩 화를 내곤 했다.올해 냉 수보는 주 시험관을 다른 사람으로 교체하겠다고 말하고 이 직책을 내려놓았다.최근 새로운 세금 제도를 추진하느라 바쁜 터라, 주 시험관직까지 겸할 시간이 없었다. 이에 우문호가 직접 시험관 선발 과정을 엄격히 관리하기로 했다.북당
택란은 순간 단순히 목숨을 구해준 은혜에 대한 보답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이 들었다. 어린 황제는 어린 시절부터 외롭고 힘들었을 것이기에, 란이라는 자의 언니와 몇 년을 함께 보내며 정이 생겼을 가능성이 충분했다.어쨌든, 단순히 은혜를 갚기 위해 은인의 언니와 결혼하는 것은 말이 안 되었고, 다소 억지스러웠다. 게다가 그가 왜 그 란이라는 사람이 정말 자신의 은인인지 확인도 하지 않고 사람을 데려갔을지도 의문이었다. 어쩌면 일을 맡은 부하가 임무를 대충 하며 거짓말을 꾸며냈으니, 어린 황제가 그 란이라는 사람에 대한 은혜 때문에 섣불리 믿어버린 것일지도 모른다.어린 시절의 감정이 가장 순수한 법이니까.“걱정하지 마십시오. 저희는 오직 발전만을 목표로 합니다!”주 아가씨도 상황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감정 문제는 공주에게 어울리지 않았고 아직 어리기도 하기에 혼담은 스무 살까지 미뤄도 늦지 않았다. 아니면 그녀처럼 혼자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한편, 출발 준비를 하는 동안 냉명여가 짐을 싸는 택란을 보며 물었다.“누나, 멀리 가는 것입니까?”“금국 량주에 다녀오려고 한다.”택란은 고개를 끄덕이며, 짐을 싸는 손을 멈추지 않고 답했다.그러자 냉명여의 눈이 반짝였다.“량주요? 그럼 나도 데려가면 안 됩니까? 량주에 변신술을 잘하는 사람이 많다고 들었습니다!”“가고 싶으냐? 그래. 데리고 갈 수는 있지만 말을 잘 들어야 한다!”택란이 웃으며 말했다.“잘 듣겠습니다! 꼭 약속하지요!”냉명여가 급히 다짐했다.“좋다. 그럼 가서 짐을 싸거라. 내일 출발할 것이니 서둘러야 할 것이다.”택란의 말이 끝나자마자 냉명여는 기쁜 얼굴로 쏜살같이 방으로 달려가 짐을 싸기 시작했다.이때, 이를 본 주 아가씨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데려간다니요? 아직 어린아이인데… 귀찮게 굴지 않을까요?”“괜찮소. 지금 아직 어리니 더 많은 세상을 경험해야 하오. 계속 저택 안에만 두면 아무것도 스스로 못하는 아이로 자랄 뿐이네. 그건 냉 대인과 홍엽 아
세월이 흘러, 택란이 열한 살 되던 해에 드디어 만두가 돌아왔다.어린 나이에 집을 떠난 그는 이제 완전한 청년으로 성장해 돌아왔다. 그리고 떡들 세 명은 만으로 따지면 이미 열일곱 살이 되었다.만두는 도착하자마자 먼저 황제의 허락을 받고 군에서 수련을 시작했다. 비록 국경에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국력이 항상 군사력의 안정에 의해 뒷받침되기 때문에 군 경험이 매우 중요했다.나라를 안정적으로 통치하려면 먼저 군심을 얻어야 한다.우문호는 그의 선택을 전폭 지지하며, 국가에 대한 소속감을 키워주기 위해서 그를 작은 병사로 임명하여 군에 들여보냈다. 약도성은 이미 재건이 대부분 완료된 상태였다. 백성들도 마음을 다잡았고, 이제는 본격적인 발전만 남아 있었다. 이리 나리와 홍엽이 이곳에 왔을 때, 냉명여를 약도성에 남겨두었는데, 호명이 챙기려 했으나, 냉명여는 택란 곁에서 그녀를 보호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꽤 고집이 센 아이기에 그는 그저 놔두기로 했다. 변경은 심지를 단련하기에 좋은 곳이었고, 호명이 보살펴 주며 저택 안에 거주했기에 큰 문제는 생기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한편, 금나라에서는 새로운 소식이 전해졌다. 진국왕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 황제가 본격적으로 조정을 이끌게 되었다는 것이다. 수도는 원래 약도성 접경 지역에 새롭게 지은 곳으로 옮겨졌고, 이름 또한 량주로 바뀌었다. 금나라는 이제 공식적으로 량주를 수도로 정했다.이 소식이 약도성에 전해지자, 택란은 무척 기뻐하며 주 아가씨에게 물었다.“이제 본격적으로 채굴을 시작해도 될 것 같소. 금나라에 한 번 가볼 생각인데, 자네도 같이 가는 것이 어떻소?”그 해 택란은 훌쩍 성장해 주 아가씨보다 조금 더 커 있었다. 주 아가씨는 때때로 그녀를 보며, 대나무가 환생한 것이 아닌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며칠 사이에 또 훌쩍 자란 것이다.택란의 아이 같던 분위기는 사라졌고, 훨씬 차분하고 성숙한 분위기를 풍겼다. 약도성의 거센 바람과 강한 햇빛 때문에 원래 하얗던 피부는 건강한 빛을
우문호는 정정이 계란이를 언급하지 않은 것을 보고 마음이 조금 놓였다. 보아하니 혼인 문제에 있어 두 사람은 합의를 봐 더는 이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것 같았다.정정 대장군 부부는 경성에서 반 달 동안 머물렀고, 그동안 정정과 우문호는 시간이 날 때마다 말을 타거나, 군영과 산을 누비며 백성들을 살폈다.대두는 아이들과 즐겁게 지냈다. 비록 처음 이틀 동안은 계속 만두를 보고 싶다고 떼를 썼지만, 이제는 만두를 완전히 잊은 듯했다.그는 란이와도 갈등을 풀었고, 오히려 제일 친해져서 무엇을 하든 항상 함께했다.그렇게 2주가 지나 정정이 작별을 고하기 전, 우문호에게 대두의 배필을 찾은 것 같다고 말하며, 대두는 그녀가 자랄 때까지 잘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그의 말에 우문호가 어리둥절하며 물었다.“누구요?”정정이 웃으며 말했다.“지금은 말할 수 없소. 아직 확정된 일이 아니라, 나중에 잘못되면 감정이 상할 수도 있네.”“우리 사이에 말 못 할 게 어딨소?”우문호는 그의 말에 이미 기분이 상한 것 같았다.그러자 정정이 더욱 짓궂게 웃으며 말했다.“들으면 자네가 조급해질까 봐 그러네!”우문호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난 지금 이미 엄청 조급하네.”정정은 크게 웃으며 그의 어깨를 철썩 때리며 위로했다.“걱정하지 마시게. 계란이는 아니네. 계란이는 내 딸이기도 하니, 절대 며느리가 될 수 없소.”다른 남자가 계란이를 자기 딸이라 부른 건 처음이었지만, 우문호는 반감 없이 오히려 매우 기뻐, 활짝 웃으며 말했다.“맞네, 자네 말이 맞아. 계란이는 자네 딸이기도 하네. 우리 모두의 착한 딸이지.”근영군주는 이 말을 듣고 웃음을 터뜨리며 원경릉에게 말했다.“보아하니, 우리가 여기서 제일 쓸모없는 존재 같습니다…”“맞는 말입니다!”원경릉이 진지한 표정으로 맞장구치자 근영군주가 그녀를 가볍게 안으며 말했다.“앞으로는 자주 만나지 말고, 1년에 한 번만 봅시다! 시간이 어찌 이리 빨리 흐른다는 말입니까?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눈
목장에서는 전보다 훨씬 뛰어난 전투마들을 사육했기에, 우문호는 마치 보물을 자랑하고 싶은 어린아이처럼 당장이라도 정정과 함께 보러 가고 싶어 했다.그러자 근영군주가 웃으며 말했다.“폐하께서 아직도 소년 같은 순수함을 지니시고 있다니, 참 보기 드물고 귀한 일이군요.”하지만 원경릉의 귀에는 이 말이 남편이 어린아이 같다는 말로만 들렸다.그녀는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하하하. 사내들이 가끔 저렇게 유치할 때가 있잖습니까.”근영군주도 깊이 공감하며 말했다.“예. 평소엔 유치하다가도, 필요할 때는 놀라운 배짱과 결단력을 보여주지요. 집안을 지탱하기도 하고, 나라를 떠받치기도 하고. 안 그렇습니까?”원경릉도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맞습니다.”남자들이 말을 타러 나가자, 원경릉과 근영군주는 궁전 안에서 담소를 나누기 시작했다. 대두가 몹시 심심해하자 원경릉은 친왕비들에게 아이를 궁으로 데려와 아이들끼리 놀게 했다.대주의 손님을 정성껏 대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기에 친왕비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궁에 들어왔다.사실 대두와 비슷한 나이의 아이는 많지 않았다. 미색의 두 아이와, 원용의의 아이 모두 대두보다 어렸지만, 놀 벗이 없는 상황에 나이가 어린 것은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대두는 외동아들로 자라 성격이 다소 거칠었다. 하지만 미색의 딸인 란이 역시 성격이 강하고 고집스러웠다. 어머니인 미색을 닮아 태생이 강한 성격을 타고난 것이었다.게다가 그녀에게 무술을 배워 한창 센 척을 할 시기라 대두와 몇 마디 말다툼 끝에 결국 몸싸움으로 번져 버렸다.란이가 대두를 때리자, 대두는 얼굴이 퉁퉁 부어오를 정도로 맞으면서도 전혀 반격하지 않고 그저 참고만 있었다. 끝까지 이를 악물고 버텨냈다.란이는 평소 늑대파에서 무술 대련을 했기에 상대가 반격하지 않고 그저 제자리에서 맞고만 있는 멍청한 모습을 경험한 적이 없었기에, 부어오른 대두의 뺨을 발견하곤 깜짝 놀라며 물었다.“어찌... 반격하지 않는 것입니까?”대두는 화난 표정으로 대답했다.“어찌
생각해 보면 이렇게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의 혼사를 정하는 것이 얼마나 황당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아이가 남녀인지도 모르면서 성급한 부모들이 충동적으로 혼사를 결정해 버리다니 말이다. “대두가 아직 이리도 어린데, 벌써 혼사를 이야기하다니요, 우리 만두는 아직 애 입니다.”우문호는 괜히 기분이 답답해졌다.현대로 다녀온 뒤, 사람들이 늦은 결혼과 출산을 선호하는 것을 본 그는 생각이 바뀌었다. 열몇 살에 혼사를 하는 것은 성장의 억압이나 다름없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혼사 이야기를 한다고 당장 하는 건 아니오. 그저 약속만 하고, 몇 년 후에 하겠다는 거네.”“어찌 이리도 태연한 것이오?”우문호가 원경릉의 여유로운 표정을 보며 그녀가 그들이 빚을 받으러 온 걸 모르는 건가 싶었다.“난 걱정 없소. 딸을 보내고 싶지 않으면 당신처럼 쓸데없는 부담감 없이 그냥 바로 거절할 것이오. 형제간의 정이 거절로 인해 상할까 봐 고민한다니, 억지로 혼사를 성사하는 것이 더 정을 상하게 할 것이오.”그러자 우문호가 말했다.“이론적으로는 맞는 말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 마음이 편치가 않소.”후궁에서의 우문호는 조정에서의 단호하고 강력한 모습과는 완전히 딴 사람이었다. 조정에 나서기만 하면 단호하고 과감하며, 마치 번개 같은 결단력을 보여주는 반면, 후궁에서의 그는 망설임도 많고 잔소리도 많은 사람이었다. 원경릉이 다른 왕비들과 대화할 때, 그들도 가끔씩 이 얘기를 꺼내곤 했었다. 다들 다섯째의 평소 잔소리가 예전보다 훨씬 많아졌다며 놀라했다. 하지만 다른 친왕들의 의견은 달랐다. 그들은 그가 예전보다 훨씬 결단력이 있어졌다고 말했다.이런 얘기가 나올 때마다 이리 나리는 한숨을 쉬며, 결국 결단력 넘치는 황제도 결국 자식들 문제에서는 고민에 빠지는구나 싶었다.8월 14일, 정정 대장군 가족이 북당의 수도에 도착하자마자 초왕부에 머물렀다.그들은 초왕부에 머문 직후 탕양의 안내로 우문호를 만나기 위해 궁으로 들어갔다.아무리 큰 걱정도 오래된 벗 앞에서
예전에 원가에서 온 가문이 강북부로 이주한 적이 있었다.북쪽은 바람과 모래가 거셌지만 원가의 사람들에게는 전혀 낯설지 않았고, 오히려 고향과 비슷한 정감을 느끼게 했다.이리 나리는 원가의 사업을 줄이도록 도우며, 관리하기 쉬운 몇몇 가게만 남겼다.탕양은 일곱째 아가씨에게 장사를 내려놓아도 괜찮은지 물은 적 있었는데, 그때 일곱째 아가씨가 말했었다.“그런 말 마시오. 내 능력을 충분히 증명했으니 이제 만족스럽소. 열심히 해서 큰 성과를 얻었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오. 평생 바삐 지낼 수도 없잖소. 그렇게 돈을 많이 벌어서 뭐 하겠소? 다 잘 살기 위해 번 것이오. 가업을 나눠 받은 돈만 해도 평생 다 못 쓸 만큼 많소. 그리고 가게들도 계속 돈을 벌 텐데 뭐가 아쉽겠소?”탕양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손에 익은 일이라, 혹시라도 아쉬워할까봐 걱정했소. 사실 나도 당신이 이렇게 고생하는 것이 싫었소. 당신만 괜찮다면 다행이오.”일곱째 아가씨는 미소를 지었고, 그의 말에 모두가 기뻐했다.“한가해지는 것도 괜찮소. 1년에 두세 달은 약도성에 가서 지내면 얼마나 여유롭겠소.”하지만 탕양이 눈살을 찌푸렸다. 1년에 두세 달이면, 왕복하는 시간까지 더해 최소 반년은 걸릴 것이고, 그 말은 반년 동안이나 그의 곁에 없다는 뜻이었다.게다가 그도 경성을 몇 달씩 떠나는 건 불가능했다. 지금은 황제 곁을 하루라도 떠나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하지만 그는 그녀가 행복하면 그걸로 충분했다. 물론 그는 늘 함께하고 싶었지만, 오래된 부부였기에 항상 붙어있을 필요는 없었다.북당은 점점 부유해지고 있었다. 원가가 일부 사업을 매각하면서 그 변화를 실감할 수 있었다.가게들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싸웠고, 좋은 위치에 있는 가게들은 더더욱 귀한 존재가 되었다.원래 원가는 모든 가게를 이리 나리에게 넘기려 했지만, 이리 나리는 거절했다.그리고 안풍친왕이 먼저 나서서 이리 나리가 이미 너무 많은 가게를 보유하고 있고, 특히 경성에서의 비중이 지나치게 높아 독점 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