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안위우문호와 원경릉이 이 말을 듣고 화들짝 놀란 것이 홍엽과 결탁했다고? 그건 외적과 결탁했다는 소리잖아?우문호가 보친왕에게 물었을 때, 마지못해 다음 계획을 선택했다고 했던 것을 기억하고, 어쩌면 정말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보친왕은 아직 한쪽 날개를 다 펴지도 못했는데 일찍 신분이 드러나는 바람에 사적으로 병장기를 제조할 수 없어 전투력 규모를 발전시킬 수 없으므로 본인의 힘으로 모반을 꾀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보친왕이 복수를 포기한다고 될 일이 아니라 북당에 심각한 타격을 주려면 적과 내통해 병여도를 선비족이나 북막에 준다면 북당은 대주에 고개를 들지 못할 것이며, 북막과 선비족이란 두 강대국과 직면해 고립무원이 처할 것이 틀림없다.만약 보친왕이 선비족과 결탁했다면 그는 일찍 이런 수를 남겨두고 홍엽과 연합전선을 유지했을 것이다. 작년에 홍엽이 왔을 때 넷째와 접촉한 적이 있어서 당시엔 넷째만 대비했지 홍엽이 접촉한 건 어쩌면 넷째가 아니라 보친왕이었을 지도 모른다.왕비는 원경릉이 근심하는 것을 보고, “할머니의 안위는 안심해도 돼, 눈 늑대가 같이 갔으니 위험한 순간 눈 늑대가 할머니를 구할 거야. 그리고 할머니께서 서절 땅을 밟을 때까지 누군가 지켜보고 있으니 아무도 할머니를 해치지 못해.”“하지만 서절은 물길을 따라 간다는데 눈 늑대가 따라간다는 보장이 없어서.” 원경릉이 걱정스레 말했다.“따라갔어, 지금 배에 있어.” 왕비가 말했다.원경릉이 놀라서, “어떻게 아세요? 배에 마마 사람이 있나요?”왕비가 미소를 지으며, “눈 늑대는 전부 GPS를 차고 있거든.”“그게 어떻게 가능해요?” 원경릉이 경악하며 아무리 능력이 출중해도 여기엔 위치 측정 시스템이 있을 리 없고 안풍친왕비가 어딘 가에서 꺼낸 칩을 이식했다고 해도 여기엔 현대문명이 전무한데 어떻게 위치 추적이 가능하단 말이야?왕비가 미소를 지으며, “비유적으로 말한 거야. 난 걔들의 어머니라 자연스레 걔들과 연락을 주고 받을 수 있어.”우문호는 여
안왕과 한배를 타다“조사해 보니 어때요?” 안왕은 아직 무슨 정보를 얻지 못했는데 우문호가 와서 서둘러 물었다.우문호가, “병여도를 훔쳐가고 휘종제의 시신을 가져간 것도, 그리고 대흥에서 온 노마님을 납치한 것도 전부 보친왕의의 짓이라고 이미 인정했어요.”“잡았어?” 안왕이 물었다.“아직, 보친왕은 병여도와 휘종제의 시신으로 위협하며 안풍친왕을 데려오라고,” 우문호가 옷자락을 젖히고 자리에 앉아, “이제 사실대로 말해 주시죠. 내가 태자로 책봉되던 때 선비족의 홍엽과 북막의 진장군이 경성에서 한동안 머물며 형이랑 사적으로 접촉했잖아요. 당신들 사이에서 어떤 협의를 한 겁니까? 아니면 그들이 무슨 의도를 가지고 있었는지 알아요?”안왕이 담담하게 우문호를 쓱 보더니, “사람을 보내 날 감시 했어?”“형도 사람을 보내 날 감시했잖아요? 형이 날 대비하니까 나도 당연히 형을 대비 해야지요. 정당방위예요 정당방위. 그 일은 됐고 얘기해 봐요, 홍엽이 형이랑 무슨 얘기를 했는지?”안왕은 뜨거운 물수건으로 얼굴을 닦고 눈을 내리 깔더니, “당시 홍엽이 분명 나와 접촉했지. 하지만 뭘 세부적을 협상하지는 않았어. 난 태자의 지위 한 길만 보는 사람이니 외적과 내통할 리 없잖아. 홍엽을 만난 걸 빌미로 내게 그런 의심 할 필요 없어.”우문호가 정색하며, “형을 의심하는 게 아니 예요. 안풍친왕 말씀이 보친왕이 선비족과 사적으로 내통할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그 홍엽 놈이 도대체 무슨 약을 팔았는지 알고 싶은 거죠. 형은 잘 생각해 봐요. 홍협이 형에게 뭘 넌지시 던지던가요?”안왕이 비웃으며, “홍엽이 나한테 뭘 넌지시 던져? 호야, 너 지금 질문하는 거냐 아니면 심문하는 거냐? 만약 홍엽이 뭘 넌지시 제안하더라 하면 넌 아바마마께 날 참소할 거잖아? 혼란을 틈타 날 제거하려는 건가?”우문호가, “그렇게 지나치게 경계심 가질 필요 없어요, 만약 형을 의심했으면 몰래 조사했으면 되지 왜 굳이 와서 물어봅니까?”안왕이 어깨를 으쓱하며, “누가 알아 지금 정국이
안왕과 홍엽안왕이 그제서야, “당초에 홍엽이 사적으로 나를 찾은 건 사실 중요한 뭔가를 얘기하지 않고 그냥 나와 교제하자는 것 같았어. 당시 대주와 북당이 동맹을 맺기 시작한 시점으로 홍엽은 동맹에 대해 털끝만치도 걱정하지 않더군. 심지어 동맹이 성사된 것에 낙관적인 느낌까지 줬다니까.”“그게 어떻게 가능하죠?” 우문호가 경악했다.안왕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사실 나도 내가 잘못 느낀 건가 하는 생각마저 들어. 홍엽과 한 대화를 아직도 아주 분명하게 기억하는데 그대로 말해 줄 테니 들어봐. 당시에 두 나라가 동맹을 맺는 얘기는 내가 먼저 꺼냈어. 내가 그에게 상당히 적의가 있어서 일단 이 말로 그의 퇴로를 차단할 생각이었는데, 홍엽이 웃으면서 두 나라가 동맹을 맺는 건 좋은 일이다. 적어도 북당과 대주는 잠깐 동안 확고한 위치를 점유할거라고 하다니.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홍엽 말 대로 확고부동한 위치를 점유한다는 건 맞는 말이었어. 대주의 무기가 있으면 북당은 선비족을 침략할 수도 있을 정도니까. 당신네 독고(獨孤)가문도 와해 시킬 수 있다고 내가 얘기했지. 왜냐면 당시 홍엽이 날 아주 경멸의 찬 시선으로 봐서 일부러 심각한 말로 홍엽을 위협했던 거야. 그런데 그자가 나한테 뭐라고 대답 했는 줄 알아?”“어떻게 대답했습니까?” 안왕이 콧방귀를 뀌며, “그 놈이 뜻밖에 미소를 띠고 그 날이 오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으며, 한시도 지체할 여유가 없다는 거야. 그 놈이 반어법으로 한 말이 아니면 미친 거지.”우문호가 의아해 하며, “홍엽이 그날을 학수고대 하고 있다고요? 반어법이겠죠?”“문제가 바로 그 점이야. 그 말을 하는 홍엽 눈이 진짜 기대로 충만하더라고. 이 인간 진짜 종잡을 수가 없네. 가늠할 수가 없으니 사귈 수 없지. 나중에 뒤통수를 맞을 수도 있으니까”안왕은 상당히 영리하고 신중하다.“홍엽이 형을 찾아 온 의도는 말했나요?” 안왕이 고개를 흔들며, “아니, 하지만 대주가 병장기를 개발하는 건에 대해 두어 마디 물어보는 게 거기에 상당
보친왕을 찾아온 안풍친왕안왕의 얼굴이 구겨졌다. 방금 우문호가 알아 맞춘 것이다. 홍엽 사람이 침투해 들어왔고 보친왕의 이번 일도 홍엽이 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안왕은 우문호에게 이 일을 절대로 말할 수 없는 게 일단 얘기하게 되면 아바마마께 안왕이 홍엽과 거래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이는 황자가 적과 내통한 것이니 죽을 죄에 해당한다.그리고 이 일에 피치 못하게 안왕이 엮일 수밖에 없는 것이, 보친왕 같은 광적인 집착은 남강과 뗄 수 없는 관계가 있는 게 분명하고, 만약 남강까지 조사하고 들면 전에 고지와 짜고 셋째를 해친 사건이……여기까지 생각하고 안왕은 순간 후환이 두렵기 시작했다.안풍친왕은 이틀 후 보친왕부에 갔다.이틀간 보친왕부는 고요했다. 조정과 경조부 어디서도 사람이 찾아와서 괴롭히는 일이 없었다.보친왕은 집에서 안풍친왕이 오길 기다렸다.안풍친왕은 홀몸으로 왔는데 자신의 표식인 호랑이도 없이 푸른 옷을 입고 냉정한 얼굴이다.보친왕은 몸을 꼿꼿하게 하고 안풍친왕을 보는데 눈에 복수심이 가득했다.안풍친왕이 옷을 떨치고 앉아서 보친왕에게 “나를 보자고?”보친왕이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여전히 복수심에 불타는 눈으로 안풍친왕을 노려보다가 손바닥을 세번 치자, 정돈된 발걸음 소리가 울리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온 마당에 병사들이 가득 찼는데, 전부 손에 장검을 들고 늠름한 자세로 보친왕의 명을 기다렸다.안풍친왕은 담담하게 흘끔 보더니, “나와 맞서는 건가?”보친왕의 얼굴근육이 팽팽해 진 것이 긴장했다. 어쨌든 눈앞의 이 사람이 형이라고는 하나 큰형으로 아버지와 같은 존재기 때문이다. 하지만 복수의 불길이 모든 걸 삼켜버리고 그의 입에서, “감히 진짜 왔단 말이냐? 오늘 우리 일가족의 목숨을 전부 돌려놓아라!”안풍친왕은 밖에 보친왕부의 군사를 가리키며 약간 경멸의 빛을 띠고, “너는 저들을 써서 소위 네가 말하는 정의를 회복하겠다는 거냐?”보친왕이 냉소를 지으며, “허세는 그만 넣어둬. 당연히 네 능력은 알아, 이들이
보친왕의 외침안풍친왕은 바로 평소 표정으로 돌아와, “바꿔 말해 내가 지금 너에게 하는 말을 너는 전혀 믿지 않겠구나?”“내가 속았다고 말하고 싶은 거지?” 보친왕이 냉소를 지었다.“홍엽이 널 속였어. 홍엽이 널 찾아 온 걸 알아, 그는 선비족 독고 가문의 아들이니 그 사람 말은 믿을 게 못 돼.”“그 사람 말은 믿을 게 못되면 당신들 말은 믿을 수 있나? 하늘에 맹세코 그때 나에게 한 말이 전부 사실이었어?”안풍친왕이 침묵하며, “너에게 한 말은 분명 숨긴 게 있지만 속이진 않았어.”보친왕이 안풍친왕을 노려보며 이를 갈고, “그래, 숨기기만 했다고. 당신이 숨긴 게, 당시 네가 휘종제와 같이 우리 아버지를 해치고 너희 부자가 한 마음으로 힘을 합쳐 우리 부자를 해치려 했다는 건가. 나에게 은혜를 베푸는 척 아버지의 누명을 벗겨주고 날 친왕으로 봉해서 당신들에게 평생 감사하며 살게 만든 거?”안풍친왕은 보친왕의 표정이 다시 경솔하게 광증을 일으키는 것을 보고 미간을 찌푸리며, “홍엽의 말을 진짜 깊이 믿고 의심하지 않는 구만. 솔직히 난 잘 모르겠어, 넌 어릴 때부터 총명하고 시비를 분명히 가렸는데 왜 홍엽이 너에게 몇 마디 했다고 홀딱 빠져들어서 믿는 거지? 내 말은 전부 궤변을 늘어놓는 걸로 치부하는 건가? 나는 오늘 네가 증거를 찾기 위해 날 만나자고 하는 줄 알았어.”“당신을 죽이기 위해서 일 뿐이야! 그게 내 아버지의 바램이기도 해!” 보친왕은 증오의 빛을 띠고 심지어 안풍친왕이 홍엽공자를 언급한 것에 대해 반박도 하지 않았다. 안풍친왕은 아무렇지도 않게 웃더니 일이 어떻게 된 것인지 모두 알겠다는 듯, “넌 정말 여기서 나와 죽고 싶으냐? 아니면 다른 요구가 더 있는 거냐? 휘종제의 시신을 훔쳐가고 병여도를 가져간 건 그저 내 목숨을 위해서만은 아니잖아?”보친왕의 얼굴이 불쾌해지며 천천히 일어나더니 자신의 옷깃과 얼굴 표정을 가다듬고 방금의 광증을 열심히 떨쳐버리려고 체면을 잔뜩 차렸다.확고한 눈빛으로 안풍친왕을 보며, "그래,
초왕부로 돌아온 안풍친왕보친왕의 이어지는 질문에 분노와 비통함이 묻어 있어, 눈동자는 핏빛처럼 붉은 것이 마치 눈 앞에 멸문지화의 그날이 펼쳐진 듯 하다.안풍친왕이 그를 한참 보더니 천천히, “그때 내가 성지를 받아 이 사건을 처리하러 간 건 분명해. 하지만 성지는 휘종제 폐하가 아니라 헌제 폐하께서 내리신 거야. 다시 말해 유친왕부는 헌제께서 제위에 있던 시기에 멸문지화를 당한 것이지.”“거짓말은 그만 해!” 보친왕은 의자 팔걸이를 움켜쥐고 마치 안풍친왕이란 거짓말쟁이의 감언이설을 꿰뚫어 보듯, 비꼬고 멸시하며, “당신이 모든 걸 헌제에게 미룰 거라는 걸 알고 있어. 안됐네. 이 거짓말은 너무 형편없어서 3살짜리도 못 속여. 내 아바마마는 헌제의 친아들인데 아들이 제 아무리 엄청난 잘못을 했어도 절대로 멸문하지 않아. 유친왕부에는 자신의 친아들 외에도 손자 손녀가 있었어. 호랑이도 자식은 잡아먹지 않고 천하에 어떤 아버지도 그런 짓은 못하는 거야.”보친왕의 눈에서 눈물이 터져 나오고 복수심이 불타올라 얼굴을 온통 일그러졌다.안풍친왕이 보친왕의 이런 모습을 보고 그때가 생각나 잠시 침묵에 빠졌다가, “네 첫번째 조건은 내가 어쩔 수 있는 게 아니라 태상황과 황제 폐하와 상의 해야 하니 이틀 후 다시 오도록 하지.”보친왕이 고개를 들고 냉랭하게, “서둘지 마, 천천히 상의하라고. 난 기다릴 수 있으니.”안풍친왕이 보친왕을 한 번 쳐다보고 뒷짐을 지고 밖으로 나가려 막 문지방을 넘는데 뒤에서 갑자기 보친왕이 쉰 목소리로, “당신은 조금도 부끄럽지 않은가?”안풍친왕은 걸음을 지체하지 않고 이 말을 못들을 것처럼 쭉 밖으로 걸어가자 병사가 막아 서는데, 강력한 어조로, “물러나라!”물러나라는 한 마디는 마치 천군마마(千軍萬馬)가 뛰어올라 내달리는 기세인지라, 앞을 막아 선 병사의 다리에 힘이 풀리며 바로 무릎을 꿇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병사들이 양쪽으로 비켜 서서 나가는 길을 열고, 안풍친왕은 옷자락을 휘날리며 성큼성큼 나갔다.우문호는 보친왕 저
홍엽에 이어 남강까지안풍친왕이, “보친왕은 감정이 통제 되지 않아, 전에는 한번도 이런 적을 본 적이 없네. 내가 갔을 때는 옛 정을 생각해 한 두 마디 들어주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전혀 안 됐어. 보친왕은 지금 우리가 자신을 속였다고 단정하고 다른 쪽 얘기를 완전히 믿어버려서 분별력을 잃었어. 따라서 난 누가 뒤에서 보친왕을 통제하고 있다고 의심이 되네. 아니면…… 무슨 사술이나 술법이겠지. 어쨌든 전부 말할 수 없이 사악했어.”“어떻게 사술이나 술법일 수가?” 우문호가 당황했다.원경릉은 문득 한 사람이 떠올라 우문호를 보고, “위왕 전하 기억나? 위왕 전하가 고지에게 마음을 미혹 당했었잖아?”“남강의 환술?” 우문호가 흠칫 놀랐다.“고지? 셋째의 첩이 아니냐?” 안풍친왕도 그 일을 알고, “그 고지가 남강 사람이라고?”“그렇습니다. 남강의 무슨 흑마술을 하는 무녀의 계승자라고, 이 일은 만아에게 물어보면 만아가 주술 때문인지 식별해 낼 수 있을 게 확실합니다.”우문호가 눈살을 찌푸리며, “남강사람과 이 일이 관련이 있다면 쉽게 수습될 것 같지 않은데요.”고지가 죽은 후 우문호는 남강 사람이 이렇게 쉽게 포기할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어쨌든 고지는 무녀의 계승자였고 그들은 전승을 굉장히 중요시 해서 무녀의 잘못도 두둔하니까 말이다.하지만 이런 식으로 그들이 다시 덤빌 줄은 몰랐다.고지 한명이 위왕부 전체를 흔들어 놓고 위왕 부부를 헤어지게 한 것처럼, 만약 이게 남강 사람의 복수라면 이 정도로 그칠 리 없다.그리고 당시 원경릉이 고지와 위왕의 일에 끼어들어서 남강사람의 또 다른 목표가 원경릉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걱정이 태산 같아서 원경릉을 쳐다봤다.원경릉은 오히려 담대하게 올 게 왔구나 하는 마음으로 피하지 않았다.위왕이 고지의 환술에 당했던 적이 있으므로 다음날 위왕에게 초왕부에 오도록 청했다.위왕은 남강이란 두 글자를 듣자 뼈 속 깊이 복수심을 느꼈다. 그는 고지를 몹시 원망하며 남강사람까지 매우 증오하
위왕에 대한 마음그래서 병여도를 훔치고 휘종제의 시신을 가져간 건 전체 큰 음모 중에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으며 이 작은 부분을 벌리면 그 안은 피바람이 불고 피바다에 폭풍우가 몰아칠까 두렵다.이때 대주에 또 다시 일이 생겨 7국의 큰 그림이 혼란스러워지는 듯 했다.위왕이 안왕을 언급할 때 여전히 침착하지 못함을 느끼며, “왕릉에서 그를 한 방 때리고 싶은 걸 참을 수 없었지만 어쩌겠습니까 왕릉인데, 열조가 다 보고 계시니. 그가 헤아릴 수 없는 악행을 일삼은 데다 지금 진짜 그만 두고 싶어하는 게 아닐 수 있으니, 태자 부부는 역시 그를 방비해야 합니다.”우문호가 답답한 듯, “이것도 방비하고 저것도 방비하고 지금 온 데가 다 적 입니다.”이 말이 거짓말이 아닌 게 지금 태자 지지세력이 많은 만큼 뒤에서 음해하는 사람도 많다.위왕이, “전 도울 방법이 없네요. 황조모의 삼칠일을 지내고 전 북군으로 돌아가야 해요, 아바마마께서 절 경성에 오래 머물도록 허락하지 않으실 겁니다.”“그건……” 우문호는 위왕의 까무잡잡한 얼굴을 보고, “일년 남짓 잘 지냈습니까?” 위왕이 경성으로 돌아온 건 황조모 일 때문이었는데 위왕이 경성으로 돌아온 뒤 황조모 일에 왕릉에 도난 사건이 일어나는 바람에 형제는 제대로 말을 나눌 틈도 없었다.지금도 적당한 때가 아니라 급한 안부만 물었다.위왕은 문 밖에 땅으로 넓게 깔리는 햇살을 바라봤다. 늦가을 태양은 눈부시다. 위왕은 눈가가 젖어 드는 것을 느꼈다. 속세의 햇살은 진작에 그와는 관계 없는 것, 위왕은 그늘로 몸을 피하며, “좋고 말고 할 것도 없어요. 그냥 사는 거죠.”위왕은 갑자기 고개를 들어 원경릉을 유심히 쳐다보며, “그녀한테는 소식이 없나요?”원경릉이 고개를 흔들며, “없어요.” 위왕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만약 그녀한테 소식이 오면 저한테 알려주세요. 고맙습니다.”“그게…… 답변 드리기 어려워요. 그녀가 동의한다면 몰라도.”비록 지금의 위왕은 아무런 해도 없어 보이지만 원경릉은 그의 잔인함
우문호가 원경릉에게 물었다.“참, 아이들과 그룹… 채팅이 있다고 하지 않았소? 계란이가 이 일을 안다고 한 적 있소?”“우린 그런 이야기를 나누지 않소.”원경릉이 웃으며 대답했다.“그럼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이오? 나도 들어갈 수 있소?”우문호가 물었다.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아마 안 될 것이오. 그룹 채팅은 단지 별칭일 뿐, 당신이 현대에서 본 통신 앱과 같은 것이 아니오. 우리는 의식으로 소통하는 것이라, 당신은 함께할 수 없소.”“그렇군.”우문호가 시큰둥한 표정으로 대답했다.원경릉은 그가 조금 서운해하는 것을 눈치채고는 그를 안고 말했다.“당신도 참. 지금까지 아이들과 나눈 이야기를 당신한테 숨긴 적 없이 모두 말해줬으니, 기분 나빠하지 마시오.”“기분 나쁜 것이 아니라, 혹시라도 계란이가 모르고 있다가 속상해할까 봐 걱정되는 것 뿐이라네.”우문호가 웃으며 말했다.“걱정하지 마시오. 계란이는 아직 사내를 좋아할 나이가 아니오.”우문호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만, 그저 한 아이의 아버지의 노파심으로 인해 작은 문제도 크게 보기 마련이었다.이 드넓은 세상을 아이들이 마음껏 탐험하는 것은 괜찮지만, 혹여나 아이들이 속상해할까 봐 늘 걱정이었다.한편, 요즘 다섯째는 과거시험으로 인해 바쁜 일상에 조금 지쳐 있었다.과거 시험장은 항상 부정행위로 난무하는 곳이었다. 과거로 인재를 등용하려는 조정의 목적과 달리, 일부 관리들은 그저 돈 벌 기회로 여길 뿐이었다.그래서 지금 주 시험관 자리를 차지하려는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었다.지난해까지는 냉 수보가 항상 주 시험관을 맡았지만, 그럼에도 다른 시험관들의 부정행위가 적발된 적이 있었다.이 일로 우문호는 3년에 한 번씩 화를 내곤 했다.올해 냉 수보는 주 시험관을 다른 사람으로 교체하겠다고 말하고 이 직책을 내려놓았다.최근 새로운 세금 제도를 추진하느라 바쁜 터라, 주 시험관직까지 겸할 시간이 없었다. 이에 우문호가 직접 시험관 선발 과정을 엄격히 관리하기로 했다.북당
택란은 순간 단순히 목숨을 구해준 은혜에 대한 보답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이 들었다. 어린 황제는 어린 시절부터 외롭고 힘들었을 것이기에, 란이라는 자의 언니와 몇 년을 함께 보내며 정이 생겼을 가능성이 충분했다.어쨌든, 단순히 은혜를 갚기 위해 은인의 언니와 결혼하는 것은 말이 안 되었고, 다소 억지스러웠다. 게다가 그가 왜 그 란이라는 사람이 정말 자신의 은인인지 확인도 하지 않고 사람을 데려갔을지도 의문이었다. 어쩌면 일을 맡은 부하가 임무를 대충 하며 거짓말을 꾸며냈으니, 어린 황제가 그 란이라는 사람에 대한 은혜 때문에 섣불리 믿어버린 것일지도 모른다.어린 시절의 감정이 가장 순수한 법이니까.“걱정하지 마십시오. 저희는 오직 발전만을 목표로 합니다!”주 아가씨도 상황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감정 문제는 공주에게 어울리지 않았고 아직 어리기도 하기에 혼담은 스무 살까지 미뤄도 늦지 않았다. 아니면 그녀처럼 혼자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한편, 출발 준비를 하는 동안 냉명여가 짐을 싸는 택란을 보며 물었다.“누나, 멀리 가는 것입니까?”“금국 량주에 다녀오려고 한다.”택란은 고개를 끄덕이며, 짐을 싸는 손을 멈추지 않고 답했다.그러자 냉명여의 눈이 반짝였다.“량주요? 그럼 나도 데려가면 안 됩니까? 량주에 변신술을 잘하는 사람이 많다고 들었습니다!”“가고 싶으냐? 그래. 데리고 갈 수는 있지만 말을 잘 들어야 한다!”택란이 웃으며 말했다.“잘 듣겠습니다! 꼭 약속하지요!”냉명여가 급히 다짐했다.“좋다. 그럼 가서 짐을 싸거라. 내일 출발할 것이니 서둘러야 할 것이다.”택란의 말이 끝나자마자 냉명여는 기쁜 얼굴로 쏜살같이 방으로 달려가 짐을 싸기 시작했다.이때, 이를 본 주 아가씨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데려간다니요? 아직 어린아이인데… 귀찮게 굴지 않을까요?”“괜찮소. 지금 아직 어리니 더 많은 세상을 경험해야 하오. 계속 저택 안에만 두면 아무것도 스스로 못하는 아이로 자랄 뿐이네. 그건 냉 대인과 홍엽 아
세월이 흘러, 택란이 열한 살 되던 해에 드디어 만두가 돌아왔다.어린 나이에 집을 떠난 그는 이제 완전한 청년으로 성장해 돌아왔다. 그리고 떡들 세 명은 만으로 따지면 이미 열일곱 살이 되었다.만두는 도착하자마자 먼저 황제의 허락을 받고 군에서 수련을 시작했다. 비록 국경에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국력이 항상 군사력의 안정에 의해 뒷받침되기 때문에 군 경험이 매우 중요했다.나라를 안정적으로 통치하려면 먼저 군심을 얻어야 한다.우문호는 그의 선택을 전폭 지지하며, 국가에 대한 소속감을 키워주기 위해서 그를 작은 병사로 임명하여 군에 들여보냈다. 약도성은 이미 재건이 대부분 완료된 상태였다. 백성들도 마음을 다잡았고, 이제는 본격적인 발전만 남아 있었다. 이리 나리와 홍엽이 이곳에 왔을 때, 냉명여를 약도성에 남겨두었는데, 호명이 챙기려 했으나, 냉명여는 택란 곁에서 그녀를 보호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꽤 고집이 센 아이기에 그는 그저 놔두기로 했다. 변경은 심지를 단련하기에 좋은 곳이었고, 호명이 보살펴 주며 저택 안에 거주했기에 큰 문제는 생기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한편, 금나라에서는 새로운 소식이 전해졌다. 진국왕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 황제가 본격적으로 조정을 이끌게 되었다는 것이다. 수도는 원래 약도성 접경 지역에 새롭게 지은 곳으로 옮겨졌고, 이름 또한 량주로 바뀌었다. 금나라는 이제 공식적으로 량주를 수도로 정했다.이 소식이 약도성에 전해지자, 택란은 무척 기뻐하며 주 아가씨에게 물었다.“이제 본격적으로 채굴을 시작해도 될 것 같소. 금나라에 한 번 가볼 생각인데, 자네도 같이 가는 것이 어떻소?”그 해 택란은 훌쩍 성장해 주 아가씨보다 조금 더 커 있었다. 주 아가씨는 때때로 그녀를 보며, 대나무가 환생한 것이 아닌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며칠 사이에 또 훌쩍 자란 것이다.택란의 아이 같던 분위기는 사라졌고, 훨씬 차분하고 성숙한 분위기를 풍겼다. 약도성의 거센 바람과 강한 햇빛 때문에 원래 하얗던 피부는 건강한 빛을
우문호는 정정이 계란이를 언급하지 않은 것을 보고 마음이 조금 놓였다. 보아하니 혼인 문제에 있어 두 사람은 합의를 봐 더는 이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것 같았다.정정 대장군 부부는 경성에서 반 달 동안 머물렀고, 그동안 정정과 우문호는 시간이 날 때마다 말을 타거나, 군영과 산을 누비며 백성들을 살폈다.대두는 아이들과 즐겁게 지냈다. 비록 처음 이틀 동안은 계속 만두를 보고 싶다고 떼를 썼지만, 이제는 만두를 완전히 잊은 듯했다.그는 란이와도 갈등을 풀었고, 오히려 제일 친해져서 무엇을 하든 항상 함께했다.그렇게 2주가 지나 정정이 작별을 고하기 전, 우문호에게 대두의 배필을 찾은 것 같다고 말하며, 대두는 그녀가 자랄 때까지 잘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그의 말에 우문호가 어리둥절하며 물었다.“누구요?”정정이 웃으며 말했다.“지금은 말할 수 없소. 아직 확정된 일이 아니라, 나중에 잘못되면 감정이 상할 수도 있네.”“우리 사이에 말 못 할 게 어딨소?”우문호는 그의 말에 이미 기분이 상한 것 같았다.그러자 정정이 더욱 짓궂게 웃으며 말했다.“들으면 자네가 조급해질까 봐 그러네!”우문호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난 지금 이미 엄청 조급하네.”정정은 크게 웃으며 그의 어깨를 철썩 때리며 위로했다.“걱정하지 마시게. 계란이는 아니네. 계란이는 내 딸이기도 하니, 절대 며느리가 될 수 없소.”다른 남자가 계란이를 자기 딸이라 부른 건 처음이었지만, 우문호는 반감 없이 오히려 매우 기뻐, 활짝 웃으며 말했다.“맞네, 자네 말이 맞아. 계란이는 자네 딸이기도 하네. 우리 모두의 착한 딸이지.”근영군주는 이 말을 듣고 웃음을 터뜨리며 원경릉에게 말했다.“보아하니, 우리가 여기서 제일 쓸모없는 존재 같습니다…”“맞는 말입니다!”원경릉이 진지한 표정으로 맞장구치자 근영군주가 그녀를 가볍게 안으며 말했다.“앞으로는 자주 만나지 말고, 1년에 한 번만 봅시다! 시간이 어찌 이리 빨리 흐른다는 말입니까?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눈
목장에서는 전보다 훨씬 뛰어난 전투마들을 사육했기에, 우문호는 마치 보물을 자랑하고 싶은 어린아이처럼 당장이라도 정정과 함께 보러 가고 싶어 했다.그러자 근영군주가 웃으며 말했다.“폐하께서 아직도 소년 같은 순수함을 지니시고 있다니, 참 보기 드물고 귀한 일이군요.”하지만 원경릉의 귀에는 이 말이 남편이 어린아이 같다는 말로만 들렸다.그녀는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하하하. 사내들이 가끔 저렇게 유치할 때가 있잖습니까.”근영군주도 깊이 공감하며 말했다.“예. 평소엔 유치하다가도, 필요할 때는 놀라운 배짱과 결단력을 보여주지요. 집안을 지탱하기도 하고, 나라를 떠받치기도 하고. 안 그렇습니까?”원경릉도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맞습니다.”남자들이 말을 타러 나가자, 원경릉과 근영군주는 궁전 안에서 담소를 나누기 시작했다. 대두가 몹시 심심해하자 원경릉은 친왕비들에게 아이를 궁으로 데려와 아이들끼리 놀게 했다.대주의 손님을 정성껏 대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기에 친왕비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궁에 들어왔다.사실 대두와 비슷한 나이의 아이는 많지 않았다. 미색의 두 아이와, 원용의의 아이 모두 대두보다 어렸지만, 놀 벗이 없는 상황에 나이가 어린 것은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대두는 외동아들로 자라 성격이 다소 거칠었다. 하지만 미색의 딸인 란이 역시 성격이 강하고 고집스러웠다. 어머니인 미색을 닮아 태생이 강한 성격을 타고난 것이었다.게다가 그녀에게 무술을 배워 한창 센 척을 할 시기라 대두와 몇 마디 말다툼 끝에 결국 몸싸움으로 번져 버렸다.란이가 대두를 때리자, 대두는 얼굴이 퉁퉁 부어오를 정도로 맞으면서도 전혀 반격하지 않고 그저 참고만 있었다. 끝까지 이를 악물고 버텨냈다.란이는 평소 늑대파에서 무술 대련을 했기에 상대가 반격하지 않고 그저 제자리에서 맞고만 있는 멍청한 모습을 경험한 적이 없었기에, 부어오른 대두의 뺨을 발견하곤 깜짝 놀라며 물었다.“어찌... 반격하지 않는 것입니까?”대두는 화난 표정으로 대답했다.“어찌
생각해 보면 이렇게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의 혼사를 정하는 것이 얼마나 황당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아이가 남녀인지도 모르면서 성급한 부모들이 충동적으로 혼사를 결정해 버리다니 말이다. “대두가 아직 이리도 어린데, 벌써 혼사를 이야기하다니요, 우리 만두는 아직 애 입니다.”우문호는 괜히 기분이 답답해졌다.현대로 다녀온 뒤, 사람들이 늦은 결혼과 출산을 선호하는 것을 본 그는 생각이 바뀌었다. 열몇 살에 혼사를 하는 것은 성장의 억압이나 다름없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혼사 이야기를 한다고 당장 하는 건 아니오. 그저 약속만 하고, 몇 년 후에 하겠다는 거네.”“어찌 이리도 태연한 것이오?”우문호가 원경릉의 여유로운 표정을 보며 그녀가 그들이 빚을 받으러 온 걸 모르는 건가 싶었다.“난 걱정 없소. 딸을 보내고 싶지 않으면 당신처럼 쓸데없는 부담감 없이 그냥 바로 거절할 것이오. 형제간의 정이 거절로 인해 상할까 봐 고민한다니, 억지로 혼사를 성사하는 것이 더 정을 상하게 할 것이오.”그러자 우문호가 말했다.“이론적으로는 맞는 말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 마음이 편치가 않소.”후궁에서의 우문호는 조정에서의 단호하고 강력한 모습과는 완전히 딴 사람이었다. 조정에 나서기만 하면 단호하고 과감하며, 마치 번개 같은 결단력을 보여주는 반면, 후궁에서의 그는 망설임도 많고 잔소리도 많은 사람이었다. 원경릉이 다른 왕비들과 대화할 때, 그들도 가끔씩 이 얘기를 꺼내곤 했었다. 다들 다섯째의 평소 잔소리가 예전보다 훨씬 많아졌다며 놀라했다. 하지만 다른 친왕들의 의견은 달랐다. 그들은 그가 예전보다 훨씬 결단력이 있어졌다고 말했다.이런 얘기가 나올 때마다 이리 나리는 한숨을 쉬며, 결국 결단력 넘치는 황제도 결국 자식들 문제에서는 고민에 빠지는구나 싶었다.8월 14일, 정정 대장군 가족이 북당의 수도에 도착하자마자 초왕부에 머물렀다.그들은 초왕부에 머문 직후 탕양의 안내로 우문호를 만나기 위해 궁으로 들어갔다.아무리 큰 걱정도 오래된 벗 앞에서
예전에 원가에서 온 가문이 강북부로 이주한 적이 있었다.북쪽은 바람과 모래가 거셌지만 원가의 사람들에게는 전혀 낯설지 않았고, 오히려 고향과 비슷한 정감을 느끼게 했다.이리 나리는 원가의 사업을 줄이도록 도우며, 관리하기 쉬운 몇몇 가게만 남겼다.탕양은 일곱째 아가씨에게 장사를 내려놓아도 괜찮은지 물은 적 있었는데, 그때 일곱째 아가씨가 말했었다.“그런 말 마시오. 내 능력을 충분히 증명했으니 이제 만족스럽소. 열심히 해서 큰 성과를 얻었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오. 평생 바삐 지낼 수도 없잖소. 그렇게 돈을 많이 벌어서 뭐 하겠소? 다 잘 살기 위해 번 것이오. 가업을 나눠 받은 돈만 해도 평생 다 못 쓸 만큼 많소. 그리고 가게들도 계속 돈을 벌 텐데 뭐가 아쉽겠소?”탕양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손에 익은 일이라, 혹시라도 아쉬워할까봐 걱정했소. 사실 나도 당신이 이렇게 고생하는 것이 싫었소. 당신만 괜찮다면 다행이오.”일곱째 아가씨는 미소를 지었고, 그의 말에 모두가 기뻐했다.“한가해지는 것도 괜찮소. 1년에 두세 달은 약도성에 가서 지내면 얼마나 여유롭겠소.”하지만 탕양이 눈살을 찌푸렸다. 1년에 두세 달이면, 왕복하는 시간까지 더해 최소 반년은 걸릴 것이고, 그 말은 반년 동안이나 그의 곁에 없다는 뜻이었다.게다가 그도 경성을 몇 달씩 떠나는 건 불가능했다. 지금은 황제 곁을 하루라도 떠나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하지만 그는 그녀가 행복하면 그걸로 충분했다. 물론 그는 늘 함께하고 싶었지만, 오래된 부부였기에 항상 붙어있을 필요는 없었다.북당은 점점 부유해지고 있었다. 원가가 일부 사업을 매각하면서 그 변화를 실감할 수 있었다.가게들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싸웠고, 좋은 위치에 있는 가게들은 더더욱 귀한 존재가 되었다.원래 원가는 모든 가게를 이리 나리에게 넘기려 했지만, 이리 나리는 거절했다.그리고 안풍친왕이 먼저 나서서 이리 나리가 이미 너무 많은 가게를 보유하고 있고, 특히 경성에서의 비중이 지나치게 높아 독점 우
원경릉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일곱째요? 일곱째는 분명 원용의에게 말할 것이고, 원용의는 또 사식이에게 얘기할 것이고, 사식이도 분명 서일에게 전할 것일 텐데요. 만약 서일이 알게 되면, 이제 북당 전체가 다 알게 될 것이오.”우문호는 순간 당황해하며 말했다.“그건 내가 생각지도 못했네.”원경릉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아마 지금쯤 황실 친왕들 사이에서 이미 탕양의 이야기가 뒷말로 오가고 있을 것이었다. 겨우 부인을 얻었는데, 밤에 함께 자지 못한다니 참 안타까운 일이라 생각할 것이다.우문호는 탕 대인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다들 뒤에서 탕양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여인들이 수군거리니, 남자들은 그를 도우려 했다.물론 부부 사이의 일에 직접적으로 간섭할 수는 없었기에, 대신 탕양을 술자리로 초대해 술로 고민을 푸는 방법을 제안했다.그렇게 며칠째 술을 마시던 탕양은 자신의 비밀이 모두에게 알려졌다는 사실을 깨달아 한숨을 쉬며 말했다.“제 탓입니다. 폐하가 비밀을 지키지 못한다는 걸 깜빡했습니다.”제왕이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너무 신경 쓰지 말거라. 이런 일은 억지로 되는 게 아니다. 여인은 때로 달래줄 필요가 있는 법이다.”그러자 탕양이 어찌할 바를 몰라하며 말했다.“제가 폐하께 이 이야기를 했을 땐, 혼례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습니다.”“알고 있다. 서두르지는 말거라.”모두가 이해한다는 눈빛으로 탕양을 바라보았지만, 탕양은 더 이상 해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그들은 이미 혼인했지만, 오랜 부부 생활을 한 터라, 남녀 간의 정이 때로는 하루아침에 급격히 발전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탕 대인은 돌아가자마자 일곱째 아가씨에게 이 일을 전했다.그러자 일곱째 아가씨가 웃으며 한숨을 내쉬었다.“정말이지, 어찌 허구한 날 남의 부부 일에만 관심을 가지니, 할 일이 없나 보오.”“신경 쓰지 마시오. 우리가 잘 살면 그만이니.”탕양은 일곱째 아가씨를 안으며 자신감에 찬 표정을 지었다.
원경릉은 궁으로 돌아와 이 일을 다섯째에게 이야기했다. 그러자 다섯째가 말했다.“사실 한 번 돌아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소? 그저 경성만 한 바퀴 둘러보면 되지 않소.”“아이들을 데려다줄 때 휘종제 어르신께서 슬퍼하셨소. 이번 생에 고향으로 못 돌아올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돌멩이 하나를 건네주니, 그걸 안고 울었소.”“정말 안타깝소!”다섯째는 증조할아버지 생각에 마음 아파했지만, 이내 말을 이어 나갔다.“하지만 큰할아버지께서 그를 데려오지 않는 이유도 있을 것이오. 휘종제 어르신을 잘 아는 것도 아니지 않소? 몇 번 만나보니, 활달하고 산만한 성격에 무슨 사고를 일곱째인지 모를 것 같은 느낌이 들었소.”“맞소.”원경릉도 깊이 공감했다. 특히 그가 전화로 끈질기게 설득할 때는 정말 무서울 정도였다.“다른 일은 없었소? 부모님 건강은 어땠소? 처남은 여자 친구가 생겼소? 만두는 공부를 잘하고 있소?”다섯째가 끊임없이 질문했다. “괜찮소. 부모님 건강도 괜찮긴 하지만, 아버지께서 고혈압이 생겨서 약을 오래 드셔야 하오. 오빠는 여자 친구가 없네. 주진과 아직도 서로 솔직히 이야기하지 않은 상황이오. 만두는 걱정 안 해도 되네. 내년에 돌아올 것이니.”“다행이오!”다섯째가 기뻐해 하며 말했다. 그는 늘 만두의 능력을 눈여겨보았기에, 그가 돌아오면 나라의 일들을 조금이라도 도와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비록 많은 부담을 짊어지진 못하지만 그래도 괜히 기대가 되었다.“추 할머니 병은 어떠하신가?”다섯째가 또 물었다.“아직은 괜찮소. 아주 좋아졌네. 약에 내성이 생기지만 않으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오.”원경릉이 말하자 다섯째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분들이 늘 건강해지시길 바랄 뿐이오.”평범한 사람들조차도 적성루 사람들에게 감동하기 쉬운데, 하물며 북당의 황제인 자신은 오죽하겠는가.“계란은 소식 왔소?”원경릉이 물었다.“왔네. 보시오!”다섯째는 소매 안에서 구겨진 편지를 꺼냈는데, 비둘기를 통해 받은 그 편지에는 몇 줄의 짧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