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안위우문호와 원경릉이 이 말을 듣고 화들짝 놀란 것이 홍엽과 결탁했다고? 그건 외적과 결탁했다는 소리잖아?우문호가 보친왕에게 물었을 때, 마지못해 다음 계획을 선택했다고 했던 것을 기억하고, 어쩌면 정말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보친왕은 아직 한쪽 날개를 다 펴지도 못했는데 일찍 신분이 드러나는 바람에 사적으로 병장기를 제조할 수 없어 전투력 규모를 발전시킬 수 없으므로 본인의 힘으로 모반을 꾀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보친왕이 복수를 포기한다고 될 일이 아니라 북당에 심각한 타격을 주려면 적과 내통해 병여도를 선비족이나 북막에 준다면 북당은 대주에 고개를 들지 못할 것이며, 북막과 선비족이란 두 강대국과 직면해 고립무원이 처할 것이 틀림없다.만약 보친왕이 선비족과 결탁했다면 그는 일찍 이런 수를 남겨두고 홍엽과 연합전선을 유지했을 것이다. 작년에 홍엽이 왔을 때 넷째와 접촉한 적이 있어서 당시엔 넷째만 대비했지 홍엽이 접촉한 건 어쩌면 넷째가 아니라 보친왕이었을 지도 모른다.왕비는 원경릉이 근심하는 것을 보고, “할머니의 안위는 안심해도 돼, 눈 늑대가 같이 갔으니 위험한 순간 눈 늑대가 할머니를 구할 거야. 그리고 할머니께서 서절 땅을 밟을 때까지 누군가 지켜보고 있으니 아무도 할머니를 해치지 못해.”“하지만 서절은 물길을 따라 간다는데 눈 늑대가 따라간다는 보장이 없어서.” 원경릉이 걱정스레 말했다.“따라갔어, 지금 배에 있어.” 왕비가 말했다.원경릉이 놀라서, “어떻게 아세요? 배에 마마 사람이 있나요?”왕비가 미소를 지으며, “눈 늑대는 전부 GPS를 차고 있거든.”“그게 어떻게 가능해요?” 원경릉이 경악하며 아무리 능력이 출중해도 여기엔 위치 측정 시스템이 있을 리 없고 안풍친왕비가 어딘 가에서 꺼낸 칩을 이식했다고 해도 여기엔 현대문명이 전무한데 어떻게 위치 추적이 가능하단 말이야?왕비가 미소를 지으며, “비유적으로 말한 거야. 난 걔들의 어머니라 자연스레 걔들과 연락을 주고 받을 수 있어.”우문호는 여
안왕과 한배를 타다“조사해 보니 어때요?” 안왕은 아직 무슨 정보를 얻지 못했는데 우문호가 와서 서둘러 물었다.우문호가, “병여도를 훔쳐가고 휘종제의 시신을 가져간 것도, 그리고 대흥에서 온 노마님을 납치한 것도 전부 보친왕의의 짓이라고 이미 인정했어요.”“잡았어?” 안왕이 물었다.“아직, 보친왕은 병여도와 휘종제의 시신으로 위협하며 안풍친왕을 데려오라고,” 우문호가 옷자락을 젖히고 자리에 앉아, “이제 사실대로 말해 주시죠. 내가 태자로 책봉되던 때 선비족의 홍엽과 북막의 진장군이 경성에서 한동안 머물며 형이랑 사적으로 접촉했잖아요. 당신들 사이에서 어떤 협의를 한 겁니까? 아니면 그들이 무슨 의도를 가지고 있었는지 알아요?”안왕이 담담하게 우문호를 쓱 보더니, “사람을 보내 날 감시 했어?”“형도 사람을 보내 날 감시했잖아요? 형이 날 대비하니까 나도 당연히 형을 대비 해야지요. 정당방위예요 정당방위. 그 일은 됐고 얘기해 봐요, 홍엽이 형이랑 무슨 얘기를 했는지?”안왕은 뜨거운 물수건으로 얼굴을 닦고 눈을 내리 깔더니, “당시 홍엽이 분명 나와 접촉했지. 하지만 뭘 세부적을 협상하지는 않았어. 난 태자의 지위 한 길만 보는 사람이니 외적과 내통할 리 없잖아. 홍엽을 만난 걸 빌미로 내게 그런 의심 할 필요 없어.”우문호가 정색하며, “형을 의심하는 게 아니 예요. 안풍친왕 말씀이 보친왕이 선비족과 사적으로 내통할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그 홍엽 놈이 도대체 무슨 약을 팔았는지 알고 싶은 거죠. 형은 잘 생각해 봐요. 홍협이 형에게 뭘 넌지시 던지던가요?”안왕이 비웃으며, “홍엽이 나한테 뭘 넌지시 던져? 호야, 너 지금 질문하는 거냐 아니면 심문하는 거냐? 만약 홍엽이 뭘 넌지시 제안하더라 하면 넌 아바마마께 날 참소할 거잖아? 혼란을 틈타 날 제거하려는 건가?”우문호가, “그렇게 지나치게 경계심 가질 필요 없어요, 만약 형을 의심했으면 몰래 조사했으면 되지 왜 굳이 와서 물어봅니까?”안왕이 어깨를 으쓱하며, “누가 알아 지금 정국이
안왕과 홍엽안왕이 그제서야, “당초에 홍엽이 사적으로 나를 찾은 건 사실 중요한 뭔가를 얘기하지 않고 그냥 나와 교제하자는 것 같았어. 당시 대주와 북당이 동맹을 맺기 시작한 시점으로 홍엽은 동맹에 대해 털끝만치도 걱정하지 않더군. 심지어 동맹이 성사된 것에 낙관적인 느낌까지 줬다니까.”“그게 어떻게 가능하죠?” 우문호가 경악했다.안왕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사실 나도 내가 잘못 느낀 건가 하는 생각마저 들어. 홍엽과 한 대화를 아직도 아주 분명하게 기억하는데 그대로 말해 줄 테니 들어봐. 당시에 두 나라가 동맹을 맺는 얘기는 내가 먼저 꺼냈어. 내가 그에게 상당히 적의가 있어서 일단 이 말로 그의 퇴로를 차단할 생각이었는데, 홍엽이 웃으면서 두 나라가 동맹을 맺는 건 좋은 일이다. 적어도 북당과 대주는 잠깐 동안 확고한 위치를 점유할거라고 하다니.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홍엽 말 대로 확고부동한 위치를 점유한다는 건 맞는 말이었어. 대주의 무기가 있으면 북당은 선비족을 침략할 수도 있을 정도니까. 당신네 독고(獨孤)가문도 와해 시킬 수 있다고 내가 얘기했지. 왜냐면 당시 홍엽이 날 아주 경멸의 찬 시선으로 봐서 일부러 심각한 말로 홍엽을 위협했던 거야. 그런데 그자가 나한테 뭐라고 대답 했는 줄 알아?”“어떻게 대답했습니까?” 안왕이 콧방귀를 뀌며, “그 놈이 뜻밖에 미소를 띠고 그 날이 오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으며, 한시도 지체할 여유가 없다는 거야. 그 놈이 반어법으로 한 말이 아니면 미친 거지.”우문호가 의아해 하며, “홍엽이 그날을 학수고대 하고 있다고요? 반어법이겠죠?”“문제가 바로 그 점이야. 그 말을 하는 홍엽 눈이 진짜 기대로 충만하더라고. 이 인간 진짜 종잡을 수가 없네. 가늠할 수가 없으니 사귈 수 없지. 나중에 뒤통수를 맞을 수도 있으니까”안왕은 상당히 영리하고 신중하다.“홍엽이 형을 찾아 온 의도는 말했나요?” 안왕이 고개를 흔들며, “아니, 하지만 대주가 병장기를 개발하는 건에 대해 두어 마디 물어보는 게 거기에 상당
보친왕을 찾아온 안풍친왕안왕의 얼굴이 구겨졌다. 방금 우문호가 알아 맞춘 것이다. 홍엽 사람이 침투해 들어왔고 보친왕의 이번 일도 홍엽이 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안왕은 우문호에게 이 일을 절대로 말할 수 없는 게 일단 얘기하게 되면 아바마마께 안왕이 홍엽과 거래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이는 황자가 적과 내통한 것이니 죽을 죄에 해당한다.그리고 이 일에 피치 못하게 안왕이 엮일 수밖에 없는 것이, 보친왕 같은 광적인 집착은 남강과 뗄 수 없는 관계가 있는 게 분명하고, 만약 남강까지 조사하고 들면 전에 고지와 짜고 셋째를 해친 사건이……여기까지 생각하고 안왕은 순간 후환이 두렵기 시작했다.안풍친왕은 이틀 후 보친왕부에 갔다.이틀간 보친왕부는 고요했다. 조정과 경조부 어디서도 사람이 찾아와서 괴롭히는 일이 없었다.보친왕은 집에서 안풍친왕이 오길 기다렸다.안풍친왕은 홀몸으로 왔는데 자신의 표식인 호랑이도 없이 푸른 옷을 입고 냉정한 얼굴이다.보친왕은 몸을 꼿꼿하게 하고 안풍친왕을 보는데 눈에 복수심이 가득했다.안풍친왕이 옷을 떨치고 앉아서 보친왕에게 “나를 보자고?”보친왕이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여전히 복수심에 불타는 눈으로 안풍친왕을 노려보다가 손바닥을 세번 치자, 정돈된 발걸음 소리가 울리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온 마당에 병사들이 가득 찼는데, 전부 손에 장검을 들고 늠름한 자세로 보친왕의 명을 기다렸다.안풍친왕은 담담하게 흘끔 보더니, “나와 맞서는 건가?”보친왕의 얼굴근육이 팽팽해 진 것이 긴장했다. 어쨌든 눈앞의 이 사람이 형이라고는 하나 큰형으로 아버지와 같은 존재기 때문이다. 하지만 복수의 불길이 모든 걸 삼켜버리고 그의 입에서, “감히 진짜 왔단 말이냐? 오늘 우리 일가족의 목숨을 전부 돌려놓아라!”안풍친왕은 밖에 보친왕부의 군사를 가리키며 약간 경멸의 빛을 띠고, “너는 저들을 써서 소위 네가 말하는 정의를 회복하겠다는 거냐?”보친왕이 냉소를 지으며, “허세는 그만 넣어둬. 당연히 네 능력은 알아, 이들이
보친왕의 외침안풍친왕은 바로 평소 표정으로 돌아와, “바꿔 말해 내가 지금 너에게 하는 말을 너는 전혀 믿지 않겠구나?”“내가 속았다고 말하고 싶은 거지?” 보친왕이 냉소를 지었다.“홍엽이 널 속였어. 홍엽이 널 찾아 온 걸 알아, 그는 선비족 독고 가문의 아들이니 그 사람 말은 믿을 게 못 돼.”“그 사람 말은 믿을 게 못되면 당신들 말은 믿을 수 있나? 하늘에 맹세코 그때 나에게 한 말이 전부 사실이었어?”안풍친왕이 침묵하며, “너에게 한 말은 분명 숨긴 게 있지만 속이진 않았어.”보친왕이 안풍친왕을 노려보며 이를 갈고, “그래, 숨기기만 했다고. 당신이 숨긴 게, 당시 네가 휘종제와 같이 우리 아버지를 해치고 너희 부자가 한 마음으로 힘을 합쳐 우리 부자를 해치려 했다는 건가. 나에게 은혜를 베푸는 척 아버지의 누명을 벗겨주고 날 친왕으로 봉해서 당신들에게 평생 감사하며 살게 만든 거?”안풍친왕은 보친왕의 표정이 다시 경솔하게 광증을 일으키는 것을 보고 미간을 찌푸리며, “홍엽의 말을 진짜 깊이 믿고 의심하지 않는 구만. 솔직히 난 잘 모르겠어, 넌 어릴 때부터 총명하고 시비를 분명히 가렸는데 왜 홍엽이 너에게 몇 마디 했다고 홀딱 빠져들어서 믿는 거지? 내 말은 전부 궤변을 늘어놓는 걸로 치부하는 건가? 나는 오늘 네가 증거를 찾기 위해 날 만나자고 하는 줄 알았어.”“당신을 죽이기 위해서 일 뿐이야! 그게 내 아버지의 바램이기도 해!” 보친왕은 증오의 빛을 띠고 심지어 안풍친왕이 홍엽공자를 언급한 것에 대해 반박도 하지 않았다. 안풍친왕은 아무렇지도 않게 웃더니 일이 어떻게 된 것인지 모두 알겠다는 듯, “넌 정말 여기서 나와 죽고 싶으냐? 아니면 다른 요구가 더 있는 거냐? 휘종제의 시신을 훔쳐가고 병여도를 가져간 건 그저 내 목숨을 위해서만은 아니잖아?”보친왕의 얼굴이 불쾌해지며 천천히 일어나더니 자신의 옷깃과 얼굴 표정을 가다듬고 방금의 광증을 열심히 떨쳐버리려고 체면을 잔뜩 차렸다.확고한 눈빛으로 안풍친왕을 보며, "그래,
초왕부로 돌아온 안풍친왕보친왕의 이어지는 질문에 분노와 비통함이 묻어 있어, 눈동자는 핏빛처럼 붉은 것이 마치 눈 앞에 멸문지화의 그날이 펼쳐진 듯 하다.안풍친왕이 그를 한참 보더니 천천히, “그때 내가 성지를 받아 이 사건을 처리하러 간 건 분명해. 하지만 성지는 휘종제 폐하가 아니라 헌제 폐하께서 내리신 거야. 다시 말해 유친왕부는 헌제께서 제위에 있던 시기에 멸문지화를 당한 것이지.”“거짓말은 그만 해!” 보친왕은 의자 팔걸이를 움켜쥐고 마치 안풍친왕이란 거짓말쟁이의 감언이설을 꿰뚫어 보듯, 비꼬고 멸시하며, “당신이 모든 걸 헌제에게 미룰 거라는 걸 알고 있어. 안됐네. 이 거짓말은 너무 형편없어서 3살짜리도 못 속여. 내 아바마마는 헌제의 친아들인데 아들이 제 아무리 엄청난 잘못을 했어도 절대로 멸문하지 않아. 유친왕부에는 자신의 친아들 외에도 손자 손녀가 있었어. 호랑이도 자식은 잡아먹지 않고 천하에 어떤 아버지도 그런 짓은 못하는 거야.”보친왕의 눈에서 눈물이 터져 나오고 복수심이 불타올라 얼굴을 온통 일그러졌다.안풍친왕이 보친왕의 이런 모습을 보고 그때가 생각나 잠시 침묵에 빠졌다가, “네 첫번째 조건은 내가 어쩔 수 있는 게 아니라 태상황과 황제 폐하와 상의 해야 하니 이틀 후 다시 오도록 하지.”보친왕이 고개를 들고 냉랭하게, “서둘지 마, 천천히 상의하라고. 난 기다릴 수 있으니.”안풍친왕이 보친왕을 한 번 쳐다보고 뒷짐을 지고 밖으로 나가려 막 문지방을 넘는데 뒤에서 갑자기 보친왕이 쉰 목소리로, “당신은 조금도 부끄럽지 않은가?”안풍친왕은 걸음을 지체하지 않고 이 말을 못들을 것처럼 쭉 밖으로 걸어가자 병사가 막아 서는데, 강력한 어조로, “물러나라!”물러나라는 한 마디는 마치 천군마마(千軍萬馬)가 뛰어올라 내달리는 기세인지라, 앞을 막아 선 병사의 다리에 힘이 풀리며 바로 무릎을 꿇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병사들이 양쪽으로 비켜 서서 나가는 길을 열고, 안풍친왕은 옷자락을 휘날리며 성큼성큼 나갔다.우문호는 보친왕 저
홍엽에 이어 남강까지안풍친왕이, “보친왕은 감정이 통제 되지 않아, 전에는 한번도 이런 적을 본 적이 없네. 내가 갔을 때는 옛 정을 생각해 한 두 마디 들어주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전혀 안 됐어. 보친왕은 지금 우리가 자신을 속였다고 단정하고 다른 쪽 얘기를 완전히 믿어버려서 분별력을 잃었어. 따라서 난 누가 뒤에서 보친왕을 통제하고 있다고 의심이 되네. 아니면…… 무슨 사술이나 술법이겠지. 어쨌든 전부 말할 수 없이 사악했어.”“어떻게 사술이나 술법일 수가?” 우문호가 당황했다.원경릉은 문득 한 사람이 떠올라 우문호를 보고, “위왕 전하 기억나? 위왕 전하가 고지에게 마음을 미혹 당했었잖아?”“남강의 환술?” 우문호가 흠칫 놀랐다.“고지? 셋째의 첩이 아니냐?” 안풍친왕도 그 일을 알고, “그 고지가 남강 사람이라고?”“그렇습니다. 남강의 무슨 흑마술을 하는 무녀의 계승자라고, 이 일은 만아에게 물어보면 만아가 주술 때문인지 식별해 낼 수 있을 게 확실합니다.”우문호가 눈살을 찌푸리며, “남강사람과 이 일이 관련이 있다면 쉽게 수습될 것 같지 않은데요.”고지가 죽은 후 우문호는 남강 사람이 이렇게 쉽게 포기할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어쨌든 고지는 무녀의 계승자였고 그들은 전승을 굉장히 중요시 해서 무녀의 잘못도 두둔하니까 말이다.하지만 이런 식으로 그들이 다시 덤빌 줄은 몰랐다.고지 한명이 위왕부 전체를 흔들어 놓고 위왕 부부를 헤어지게 한 것처럼, 만약 이게 남강 사람의 복수라면 이 정도로 그칠 리 없다.그리고 당시 원경릉이 고지와 위왕의 일에 끼어들어서 남강사람의 또 다른 목표가 원경릉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걱정이 태산 같아서 원경릉을 쳐다봤다.원경릉은 오히려 담대하게 올 게 왔구나 하는 마음으로 피하지 않았다.위왕이 고지의 환술에 당했던 적이 있으므로 다음날 위왕에게 초왕부에 오도록 청했다.위왕은 남강이란 두 글자를 듣자 뼈 속 깊이 복수심을 느꼈다. 그는 고지를 몹시 원망하며 남강사람까지 매우 증오하
위왕에 대한 마음그래서 병여도를 훔치고 휘종제의 시신을 가져간 건 전체 큰 음모 중에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으며 이 작은 부분을 벌리면 그 안은 피바람이 불고 피바다에 폭풍우가 몰아칠까 두렵다.이때 대주에 또 다시 일이 생겨 7국의 큰 그림이 혼란스러워지는 듯 했다.위왕이 안왕을 언급할 때 여전히 침착하지 못함을 느끼며, “왕릉에서 그를 한 방 때리고 싶은 걸 참을 수 없었지만 어쩌겠습니까 왕릉인데, 열조가 다 보고 계시니. 그가 헤아릴 수 없는 악행을 일삼은 데다 지금 진짜 그만 두고 싶어하는 게 아닐 수 있으니, 태자 부부는 역시 그를 방비해야 합니다.”우문호가 답답한 듯, “이것도 방비하고 저것도 방비하고 지금 온 데가 다 적 입니다.”이 말이 거짓말이 아닌 게 지금 태자 지지세력이 많은 만큼 뒤에서 음해하는 사람도 많다.위왕이, “전 도울 방법이 없네요. 황조모의 삼칠일을 지내고 전 북군으로 돌아가야 해요, 아바마마께서 절 경성에 오래 머물도록 허락하지 않으실 겁니다.”“그건……” 우문호는 위왕의 까무잡잡한 얼굴을 보고, “일년 남짓 잘 지냈습니까?” 위왕이 경성으로 돌아온 건 황조모 일 때문이었는데 위왕이 경성으로 돌아온 뒤 황조모 일에 왕릉에 도난 사건이 일어나는 바람에 형제는 제대로 말을 나눌 틈도 없었다.지금도 적당한 때가 아니라 급한 안부만 물었다.위왕은 문 밖에 땅으로 넓게 깔리는 햇살을 바라봤다. 늦가을 태양은 눈부시다. 위왕은 눈가가 젖어 드는 것을 느꼈다. 속세의 햇살은 진작에 그와는 관계 없는 것, 위왕은 그늘로 몸을 피하며, “좋고 말고 할 것도 없어요. 그냥 사는 거죠.”위왕은 갑자기 고개를 들어 원경릉을 유심히 쳐다보며, “그녀한테는 소식이 없나요?”원경릉이 고개를 흔들며, “없어요.” 위왕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만약 그녀한테 소식이 오면 저한테 알려주세요. 고맙습니다.”“그게…… 답변 드리기 어려워요. 그녀가 동의한다면 몰라도.”비록 지금의 위왕은 아무런 해도 없어 보이지만 원경릉은 그의 잔인함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다섯째 일행은 여전히 도착하지 않았다.그래서 원경릉과 할머니는 다른 의관을 더 둘러보기로 하고, 몇 군데 더 돌아본 뒤 관아에도 갈 계획을 했다.그런데 한 의관에 들어서자마자, 푸른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다급히 뛰어오며 말을 걸었다. “수 의원, 대인께서 병세가 위중합니다. 어서 봐주셔야 합니다.”의원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약상자를 집어 들고 다른 환자들을 그냥 남겨둔 채, 푸른 옷의 중년 남자와 함께 나가려 했다.원경릉이 그를 막아 세우며 말했다.“의관에 있는 환자들을 돌봐야 하지 않소? 우리 할머님께서도 의원이니, 지부 대인의 병은 할머님께서 봐 드릴 것이오.”푸른 옷의 사내는 초조한 듯 원경릉을 향해 소리쳤다.“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대인의 병세가 급박한데, 혹여라도 지체되면 당신들이 책임질 수나 있겠소?”바로 그때, 원 할머니가 호패를 꺼내, 그의 눈앞에 들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길을 안내하거라!”조급한 표정을 짓던 푸른 옷의 사내는 호패를 보자마자 표정이 얼어붙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곧장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리며 말했다.“서관 대인께서 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무례를 범해 송구하옵니다.”“그만 사과하고 길 안내나 하시오.”원경릉이 말했다.“예, 예!”사내는 급히 물러서서, 예를 갖춰서 길을 가리켰다.“마차가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서관 대인, 이쪽으로 오시지요.”원경릉은 할머니를 부축해 마차에 올랐고, 곧장 관아로 향했다.지부 대인은 따로 사저가 없어 관아의 뒷마당에서 거주 중이었다. 혼자 지내는 데다 관아가 워낙 가까워 편리했기 때문이다.관아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안으로 들어갔다.주 지부는 병세가 꽤 심각해져 있었다. 그는 어지럼증과 흉통에 시달려, 침대에 누운 채 말을 꺼낼 힘도 없었다.원경릉은 직접 치료에 나섰고, 약상자를 열어 체온 측정기와 청진기를 꺼냈다.푸른 옷의 사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가씨께서도 의원이십니까?”그러자 곁에 서
이 대인이 원경릉에게 의학을 잘 모른다고 반박할 틈도 없이, 원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대로 하게. 하루만 줄 테니, 그 안에 역병에 관한 모든 자료를 가져오게. 사망자 수도 포함되어야 하네." 이 말까지 듣자, 이 대인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비록 조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서관 대인이 멀리서 오계부까지 왔으니, 시키는 일은 해야지 대인의 마음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을 보내 조사를 명한 후, 이 대인은 거처를 마련해 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원경릉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의서에 의원이 많지 않으니, 대인도 바쁘실 텐데요. 저희가 직접 오계부를 돌아보겠습니다." 이 대인은 그녀가 원 할머니의 힘을 빌려 위세를 부린다고 생각해,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말에 답도 하지 않고, 원 할머니에게 예를 올렸다. "어르신께서 머무실 계획이 있으시면, 부디 저에게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대인을 잘 대접하라, 명을 내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일이나 보게." 원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원경릉에게 말했다. "먼저 좀 돌아보다, 객사를 찾아 머물자꾸나." "예!" 두 사람은 역병을 조사하기 위해 다급히 이곳을 찾아왔기에, 먼저 각지의 의원을 직접 돌아보려 했다. 아마 다섯째 일행은 빨라야 내일이나 모레쯤 도착할 것이었다. 두 사람이 의서를 나서자, 이 대인은 뒤따라 나오려다 원 할머니의 날카로운 눈빛에 움찔하며 발길을 멈췄다. 두 사람은 오계부의 거리로 향했다. 거리가 꽤 번화했고, 사람들도 제법 많아, 대낮에는 조금 붐볐다. 그들은 곧장 의원으로 향했다. 의원 앞에는 약차가 많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환자는 얼마 없었다. 겉보기엔 역병이 퍼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원경릉은 안으로 들어가 의원에게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의원은 요즘 들어 약차가 잘 팔리고 있고, 하루에 천 봉지가 넘게 팔린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도 역병
늦게 출발한 원경릉은 신속하게 오계부로 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오계부 근처 주현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가 현지 혜민서로 가야 한다며 잠깐 멈추자고 했다. 그러고는 혜민서에 오계부로 약을 공급할 준비를 하게 했고, 명을 받으면 바로 오계부로 보낼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당부했다. 혜민서 산하의 의료기관들은 지난 몇 년간 개혁을 통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고, 지역 간의 연결도 긴밀해졌다. 특히 역병을 상대하는 체계가 가동되면 상부에서는 전력을 다해 의원과 약을 지원해줄 수 있었다. 신신당부한 뒤에야 원경릉과 할머니는 오계부로 재빨리 향했다. 곧이어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우문호 일행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계부는 인구가 500만 명에 이르는 곳으로, 두 개의 주부가 통합된 지역이었다. 열대에 있어, 경작지가 많고 산이 많아 농업을 위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조정은 이곳을 서부의 주요 곡창지대로 삼고 있었던 것이었다. 농업이 발달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경제도 번화했고, 현지 백성들은 벼 외에도 감, 자두, 리치 등을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리치는 신선할 때 먹을 수도 있고, 말려서 건과로 만들어 팔 수도 있기에, 어느 정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다. 오계부는 백월국과 인접해 있었는데, 백월국은 북당의 속국으로 사이가 우호적이며 경제 교류도 활발했다. 이는 양국의 번영을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계부의 지부는 장씨 성을 가진 오계부 출신이었다. 장 지부는 훌륭한 관리이며 지역 백성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었다.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오계부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지역 혜민서를 찾았다. 할머니는 혜민서의 서관(署館) 신분을 밝혔다. 그녀는 북당 각 주부의 의서를 총괄하는 인물이고, 총책임자이기도 했다. 혜민서의 이 의원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두 사람을 안으로 청한 후, 바로 예를 올렸는데, 마치 신선이라도 본 것처럼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다. "소인은 이자옥이라 합니다. 어르신께서 친히 오신 줄도
그녀는 일단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냉 대인이 자세한 상황을 묻는 사이에 제 대인의 피를 뽑았다. 약상자는 기능이 꽤 다양하기에, 바이러스 검사도 문제없었고, 안에는 양여혜가 준 소형 현미경도 있었다. 하지만 바이러스 관찰이나 세균 배양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오계부로 향하고, 그녀는 이곳에 남아 제 대인을 치료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면 바이러스든, 세균 감염이든, 결과가 나와야 제대로 된 치료 방안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미색이 말했다. "저도 이곳에 함께 남겠습니다. 제가 환자를 돌보는 것 정도는 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괜찮으니 먼저 가거라. 어쩌면 내가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으니깐." 원경릉이 말했다. 그녀는 혼자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미색까지 데리고 가는 건 무리였다. "우리가 먼저 출발하는데, 어찌 더 일찍 도착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미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가능한 일이다. 원 선생은 늘 기적을 만들어내니." 우문호가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원경릉에게 다가가 조심하라고 몇 마디 당부했다. "알았소. 지체하지 말고, 어서 떠나시오. 오계부에 도착하면 곧바로 관아를 찾아가, 의원의 빠른 대처를 명하라 하시오. 만약 내가 먼저 도착한다면, 내가 관아를 찾아가겠소." "알겠소. 그럼, 먼저 가겠소!" 우문호는 그녀와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보는 이가 많으니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서일은 황후를 홀로 두고 가는 것이 걱정되어, 우문호를 따라나서며 계속 물었다. "정말 황후를 이곳에 혼자 남겨도 되는 것입니까?" "그럼, 네가 남을 것이냐?" 우문호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도 원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있지 않느냐?" 회왕 부부도 걱정은 되었지만, 다섯째의 여유로운 모습에 자신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다섯째 부부는 늘 비밀이 많은 사람들이라, 그들은 더 이상 신경
원경릉은 밖으로 나가, 오계부에 역병이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오계부는 서쪽에 자리 잡고 있어, 기후가 더운 탓에 가끔 역병이 생기긴 했었지만 백성들은 고뿔 치료에 쓰이는 약초로 끓인 차를 즐겨 마시기에, 대규모로 역병이 돈 적은 없었다. 냉 대인이 말했다. "오계부에서는 이 상황을 조정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비록 해마다 역병이 생기긴 하지만, 빠르게 통제해 왔으니, 이번에도 예전과 같은 상황이지 않겠습니까?"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번엔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 대인의 형도 역병으로 돌아가셨고, 그와 가까이 지낸 사람들도 병에 걸렸습니다. 이렇게 관아에만 역병에 걸린 자들이 많으니, 예전보다 더 심각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해마다 역병이 생겼으니, 그에 대한 대응책도 이미 있을 것입니다." 원경릉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마다 역병이 생겼지만, 대대적으로 유행하지 않았기에, 현지 관리들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쉽게 통제될 것이라 생각하고, 방심할 수도 있으니깐요." 우문호가 물었다. "원 선생, 역병을 어떻게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역병 상황이 안 좋을 것이라 추측할 뿐, 정말 오계부의 상황이 어떠한지는 아직 모르네. 제 대인은 여전히 고열에 시달리고 있어, 수액을 맞히고 해열제를 먹였소. 냉 대인과 함께 들어가 상황을 자세히 물어봐야겠소. 하지만 꼭 마스크를 끼고, 병을 막아야 하오." 원경릉은 유행성 독감이나 변이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일 것이라 의심하고 있었다. 그녀가 살던 세계에서는 A형 독감의 대규모 변이가 십수 년마다 한 번씩 발생했는데, 그런 변이 독감은 현대에서도 의료 체계에 큰 부담이 되곤 했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만약 역병이 다시 시작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통제해야만 했다. 원경릉의 말을 우문호와 냉 대인은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도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 그의 폐를 확인해 보았는데, 남녀가 가까이 접촉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제 대인은 이내 손을 뻗어 그녀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병세가 심해 아픈 데다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묘한 위압감을 풍기는 의원의 단호한 눈빛과 기운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다. 원경릉은 앞쪽을 청진한 뒤, 그에게 옆으로 돌라고 한 다음에 꼼꼼히 살피고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며칠을 아프신 것입니까?" 제 대인은 꽉 막힌 코 때문에 콧소리를 내며 천천히 몸을 돌리고 답했다. "며칠 사이의 일입니다. 오계부를 떠날 때도 멀쩡했는데, 밤새 달리고, 말을 오래 타다 보니 고뿔에 걸렸나 봅니다." "기침 말고, 가슴 통증도 있습니까?" "예. 이곳이 아픕니다!" 제 대인은 가슴 근처를 손으로 누르며 말했다가, 숨쉬기가 어려운 듯 손바닥을 움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도 아프고, 온몸 뼈마디도 다 아픕니다." 그러자 원경릉은 더 자세히 증상을 확인한 뒤 말했다. "약을 준비할게요. 수액을 좀 맞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수액이요?" 제 대인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예. 질문은 하지 마시고, 그저 치료에 협조만 해주십시오. 병세가 꽤 심각한 편입니다." 원경릉은 제 대인이 폐렴이라 확신했고, 중증 폐렴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 대인은 병이 심하다는 말에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말했다. "의원 나리, 제발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십시오… 저에게는 아직 모셔야 할 노모가 있습니다. 지난달 병으로 형님께서 세상을 떠난 터라, 형님의 자식들도 제가 돌봐야 하니, 절대 이대로 목숨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원경릉이 답했다. "최선을 다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치료에만 집중하시지요!" 제 대인은 감동을 받은 듯 감사 인사를 올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원경릉은 곧바로 약을 지어 수액을 준비했다. 수액을 맞는 동안, 제 대인은 여전히 놀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냉정언이 물었다. "그렇다면 어찌 의원을 부르지 않은 것이냐?" 역 일꾼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돈이 없다고 하셔서 해열에 좋은 약초를 조금 달여주었지만, 별 효과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방에 다른 사람이 들어오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의원을 부르고 진료하고 약을 짓는 데에는 모두 돈이 필요했지만, 역에서는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예산이 따로 없었다. "오계부의 부승이 상경하여 직무를 보고하러 왔는데, 돈도 지니지 않았다는 것이냐?" 냉정언이 놀라서 물었다. "나리께서 돈이 든 보따리를 도둑맞았다고 하셨습니다." "혼자 온 것이냐?" 냉정언이 물었다. "예. 관속이나 아전도 없이 혼자입니다." 경성과 꽤 멀리 떨어진 오계부의 부승이 그 먼 길을 수행 인원도 없이 홀로 와, 직무를 보고하는 것은 꽤 이상한 일이었다. 원경릉이 말했다. "내가 확인하겠소." "부인께서 의원이십니까?" "그렇다. 길을 안내하거라." 원경릉이 답했다. 역 일꾼은 별다른 의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 북당에서는 여인이 의술을 익히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 황후가 의학원을 세운 이후, 해마다 여인들이 입학하여 의술을 배우고 있었다. 우문호가 미색을 돌아보자, 미색이 바로 입을 열었다. "저도 함께 가겠습니다." 원경릉은 약상자를 챙겨 들고, 역 일꾼의 안내를 받아 한 객실로 향했는데, 문이 세게 잠겨져 있었다. 일꾼이 문을 두드렸다. "제 대인, 제 대인. 의원께서 오셨습니다. 문 좀 열어주십시오." 하지만 방은 일꾼의 부름에도 여전히 잠잠했다. 이내 기침 소리가 들려왔고, 한참 기침을 하다, 쇳소리 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마." 말이 끝나자, 침대에서 일어나 휘청거리며 걸어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곧 문이 열렸고, 솜으로 만든 마스크로 코와 입을 가린 채, 핏발이 선 눈만 드러낸 관리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피곤하고 지친 모습으로 문턱을 잡고 서 있었다. 그는 숨을 고른 뒤
이번 순행에 서일이 동참하면서 사식이도 함께 가게 되었다. 그러나 고된 여정에 아이를 데리고 다니기엔 무리가 있었다. 다행히 원가에서 사식이가 서일과 함께 순행에 나선다는 소식을 듣고, 원가는 서일 부부가 3년이든 5년이든 돌아오지 않더라도 아이를 잘 돌보겠다고 약속해주었다. 그 역시 아이들과 떠들썩하게 지내고 싶어 했던 터라 기뻤다.탕양도 순행에 참여했으나, 그의 부인은 맡은 직책이 있어 동행하지 않기로 했다. 미색 또한 당연히 회왕을 따라갈 예정이었으나, 오랜만의 외출인 만큼 아이를 데리고 간다면 재미가 없을 테니, 아이를 데리고 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러자 그녀의 시어머니인 태비도 흔쾌히 아이를 돌보겠다고 나섰다. 이제 아이도 다 컸으니 힘들게 돌볼 필요가 없어졌으니 말이다. 그렇게 모두가 신나게 순행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원경릉은 순행을 기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숙왕부의 노인들이 걱정되었다. 비록 삼대 거두는 여행을 떠난 상황이긴 하지만, 숙왕부에는 아직 흑영 어르신들이 계셨다. 그리고 안정을 찾은 추 할머니마저 지속해서 약을 복용해야만 했다. 온갖 걱정에 흽싸인 원경릉 때문에 오히려 원 할머니가 그 모습을 보고 성가시다고 느꼈는지, 진지하게 말했다. "그냥 편히 놀러 가면 되지, 뭘 그렇게 걱정하냐? 내가 있지 않느냐?"그 말에 원경릉은 할머니를 껴안으며 웃었다."맞아요. 제가 몸이 열 개라도 할머니는 못 이길 테니까요!"이 말은 틀리지 않았다. 원경릉이 비록 황후라고 해도, 숙방부에서의 위세가 그리 대단하지는 않았다. 그런 그녀가 유일하게 권력을 행사할 수 있을 때는 바로 주사기를 꺼낼 때 뿐이지만, 원 할머니는 달랐다. 그녀는 그냥 서 있기만 해도, 눈빛 하나만으로 모든 사람을 제압할 수 있었다. 게다가 최근 몇 년 사이, 그녀의 성격이 점점 난폭해져서, 틈만 나면 사람을 끌고 가서 주사를 놓았다. 원 할머니가 손수 만든 약이 한가득 담긴, 원경릉의 약상자에는 없는 귀한 약들을 보여주며 말했다. “이 약들은 수토불복, 고
조사가 끝난 후, 목을 쳐야 할 자는 목을 치고, 옥에 보내야 할 자는 옥에 보냈다. 그리고 오씨가 챙긴 돈은 전부 피해자 가족들에게 배상되었다.우문호는 신하들 앞에서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지 못했다. 그는 탐관오리를 금지하고 청렴을 장려하는 법을 내렸으며, 부정부패 전담 조사 관아를 설립해 전국을 조사하라 명했다. 부정부패를 근절해야 백성들이 잘 살 수 있다고 강조했다.동시에 그는 신하들의 봉급 인상을 제안했다. "예전엔 나라가 가난해 관리들의 봉급이 적었지만, 이제는 나라도 번영하고 산업이 활성화되었으니 함께 잘 살아야 할 때다." 봉급을 높이면 부정부패 예방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 덧붙였다.조회가 끝난 후 우문호는 수보와 친왕들을 불러 오래 전부터 품어온 생각을 털어놓았다."과인은 순행하고자 하오!"나라가 태평하지만 황제의 관심이 미치지 못하는 곳도 있다는 걱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초왕과 태자 시절에는 백성들의 고통을 잘 알았지만, 지금은 점점 백성과 멀어지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직접 돌아다니며 백성들의 삶을 보고 싶었고, 공무를 핑계로 원 선생과 북당 전역을 둘러보고 싶었다.냉정언이 적극 찬성하며 말했다."상소문만으로는 진실을 알 수 없습니다. 은폐된 사실, 억울한 사건, 고통받는 백성들을 직접 확인해야 합니다.""옳은 말이네." 우문호는 최근 냉정언의 말이 마음에 들었다.그러나 냉정언이 갑자기 태도를 바꿨다."하지만 아직 각지에 위험한 도적들이 있습니다. 그러니 폐하의 안전을 위해 소신이 대신 가는 것이..."그러자 우문호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수보의 말도 일리 있지만, 참 뻔뻔하구먼!" 그러고는 어명이 적힌 서찰을 건네며 덧붙였다."함께 순행할 명단이니 반포하시게!"냉정언은 자기가 제외될 줄 알았으나 명단에 자신의 이름이 있는 것을 보고 기쁜 목소리로 물었다."소신도 갈 수 있습니까?""가시게. 국정에 큰일이 없으니 내각에서 처리할 수 있네. 새로 양성한 인재들의 능력을 시험해볼 기회이기도 하고.""상산명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