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의 혼수명원제는 깊은 밤 창가에 서서 생각에 잠겼다. ‘경제가 번영하기 시작하면 세금이 끊임없이 국고에 흘러 들어갈 것이므로 드디어 ‘알거지 황제’란 오명과 안녕이다!’현비의 병세가 위중해 명원제는 공주의 혼사를 최대한 빨리 정월 안에 치르고자 하니 예부 사람들은 바빠서 돌아가실 지경이다.다행히 업무 효율은 돈이 얼마냐 와 비례하는데, 이리 나리는 가진 게 돈이라 일하는 사람이 많고 업무 효율도 자연스레 올라갔다.혼례는 정월 보름으로 정해져 말그대로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진행하는데도 있어야 할 건 다 준비되었고 심지어 상당히 성대하기까지 하다.호부와 내무부는 당일 공주가 시집갈 때 가져가는 혼수 예단을 정리해 명원제가 살펴 볼 수 있도록 올렸다.명원제가 본 뒤 눈살을 찌푸리며, “왜 이렇게 궁상맞아?”내무부 총관(總管)이 두 손을 펴고 어쩔 수 없다는 듯, “날고 기는 재주가 있어도 쌀없이 밥은 못 만듭니다. 폐하, 지금은 연말이라 도처에 은자가 들어야 할 일 투성이입니다. 각 궁 마마님들께 드릴 연말 전례 은자, 비단, 보석과 장신구, 연지분과 화장품, 기름과 초, 거기에 제야 궁중 연회에 필요한 것들도 전부 큰 규모의 지출입니다.”명원제는 사실 공주에게 할 수 있는 한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었으나, 주머니 사정이 사정이다 보니 방법이 없다.잠시 생각하더니, “됐다. 일단 이렇게 정하도록 하지. 짐이 방법을 생각해 보도록 하마.”다음날 모든 왕야를 궁으로 소집했다.명원제의 말은 간단했다. 동생이 시집을 가니 오빠 된 도리로 축의금을 내라는 것이다.회왕이 혼인할 때도 초라했는데 이제 공주도 시집을 가게 된 마당에 마침 연말연시라 낼 수 있는 은자가 정말 별로 안 될 거라고 원경릉이 미리 예상했다.그래서 오늘 황제가 왕야들을 궁으로 불러들인 이유가 혼수와 축의금 때문임을 알고 황제는 10만냥을 공주의 혼수로 주라고 우문호에게 말했다. 우문호가 10만냥을 품에서 꺼내고, 회왕도 바로 10만냥을 준다고 했다.기왕과 안왕은 회왕을
현비 생각우문호는 분노로 일그러진 현비의 얼굴을 보며 작게 한숨을 쉬고 허탈한 눈빛으로, “어마마마, 설마 이 상황까지 왔는데도 아직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시겠습니까? 왜 이렇게 되셨습니까?”현비는 금족령 시기를 보내며 바깥 사람들이 전부 자신이 중병이라고 거의 죽은 사람 취급을 했다.겨우 고대하던 아들을 만나 아직 마음 속 울분을 다 터트리지도 못했는데, 아들에게 잔소리를 들으니 순간 절망적이고 비통한 마음 뿐으로 우문호에게 손가락질만 하다가 겨우, “불효자식!”우문호가 현비를 보며 실망이 가득한 말투로, “전에는 이렇게 편견을 고집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바마마와 태후 마마께서 대외적으로 어마마마께서 중병이라고 하셨는데 어머님은 아직도 이게 뭘 의미하는지 모르시겠습니까?” 현비가 차갑게, “난 태자의 생모야, 폐하라도 날 죽일 수 있을 것 같으냐? 폐하께서 성군의 이름을 가지시려면 날 후하게 대해야만 해.”우문호는 현비의 집념이 이미 너무 깊어서 설득할 수 없지만 여하튼 낳아준 친 엄마다 보니 핏줄이 당긴다고 우문호는 항상 현비의 일거수일투족이 마음이 아팠다.우문호가 성질을 참으며, “아바마마께서는 어마마마께 충분히 덕을 베푸셨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마마마께서 외숙과 결탁한 일로 냉궁에 가두실 수 있으셨으니까요. 아바마마께서 그렇게 하시지 않으시고 몇 번이고 거듭해 어마마마께 사정했습니다. 어마마마께서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어마마마께서 지난 일년간 소름 끼치는 일을 얼마나 많이 하셨나요? 황조모조차 어마마마께서 하신 일때문에 거들어 주지 못하셨습니다. 어마마마께서 뭐 하시려고 소씨 집안의 흥망성쇠를 짊어지셨나요? 신분의 영화로 치면 아들이 지금 이미 태자로, 누가 불경죄가 있어도 앞으로 아들이 즉위하면 어마마마께서는 태후가 되실 것인데 뭐가 급하셔서 황후 마마를 넘어서려고 하십니까?”현비가 이 말을 듣고 화도 안 나서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쉬고 잘 나가다 훌륭하게 되지 못한 우문호를 한탄하며, “넌 어릴 때부터 총명했는데 지금 어쩌자고 머리
건곤전으로 간 원경릉 가족원경릉은 할 말을 잃었다.“이렇게 하시다 가는 조만간 스스로의 목을 조르게 될 거야.” 우문호는 걱정스레 말했다.원경릉은 상당히 가능성 있는 얘기라고 생각했다. 이제 황제도 현비를 만나고 싶어하지 않고, 공주의 혼인이란 대사조차 준비하는 걸 돕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공주를 아예 만나지조차 못하게 했다. 이러니 만약 다시 사단을 일으켜 황제를 격동 시키는 날엔 그 마지막이 어떨지 불을 보듯 뻔하다.“됐어, 황조부께 문안 인사 드리러 가자!” 우문호가 마음을 추스르고 말했다.두 사람은 유모에게 아이들을 데리고 오라고 하더니, 아이들 손을 잡고 건곤전으로 같이 갔다.건곤전은 오늘 아주 시끌벅적한데 숙친왕 부부와 몇몇 친왕, 군왕들이 자리해 있고 태상황은 높은 자리에 똬리를 틀고 있는 용이 수 놓인 조복을 입고 앉아 있는데, 하얗게 샌 머리는 옷에 바짝 붙여 ‘미 노년’ 그 자체인데 접대가 과하다 보니 피곤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원경릉 부부가 아이들 손을 잡고 같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깊이 침잠했던 눈에 순간 생기가 반짝이며 곁에 상선에게, “저 집안이 이제 아주 길을 막는 구만, 모르는 사람들은 꽃게 가족이 출동한 줄 알겠어.”사람들이 내다 보니 부부 두사람이 양쪽 끝에서 걸어오는 것만 보이고, 아이들은 가운데서 손에 손을 잡고 온 복도를 다 점거한 것도 모자라 걷는 모습도 꽃게 같이, 부부가 아이들의 걸음걸이에 맞추다 보니 뭔가 제멋대로 정신이 없다.그리고 그들의 뒤엔 걸음이 척척 맞는 눈 늑대 3마리와 유모, 희상궁 등이 따르고 있어 이게 또 장관이다.숙친왕도 웃으며, “아바마마, 아이들이 자라면 이 건곤전으로는 애들이 출동하기에 좁겠어요.”태상황이 눈을 가늘게 뜨고, “그럼 넓혀야지!”손주를 향한 무한한 사랑이 남김없이 드러난다.꽃게 세 마리가 아장아장 건곤전에 들어오더니 엄마 아빠 손을 뿌리치고 한달음에 태상황에게 엎어 질듯 뛰어갔다. 또 어찌나 바람같이 뛰는지 세 마리는 순식간에 태상황의 품에 파고
폭죽세 마리 아가들은 얌전히 바로 전에 엄마가 가르친 대로 법도대로 무릎을 꿇고 문안을 드렸다.앉았던 사람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멍하니 쳐다봤다.세 쌍둥이를 보고 다시 자기 아이를 봤다.아직 만으로 한 살도 되지 않은 아이들이 걸을 줄 알고, 말도 하다니. 부처님 오신 날에 태어난 아이들은 천부적으로 지혜롭고 총명한 모양이다.문안 인사를 드린 후, 우문호는 앉아 계신 어른들께도 문안 인사 드려야 한다고 하니 잠시 후 사탕을 먹을 생각에 아이들은 얌전히 말을 들었고, 좌중의 주목과 칭찬을 휩쓴 후 상선에게 가서 간식을 받았다.태상황이 자기는 좀 피곤하다고 다들 자리를 파하게 하더니 원경릉은 남아서 진맥을 하라고 했다. 건곤전에는 원경릉 가족만 남았다.심장소리와 맥박, 혈압을 측정하고, 문진을 마쳤는데 모두 꽤 상태가 좋다.세 녀석들이 태어나고 나서 태상황은 자신의 몸을 아끼기 시작해, 조금이라도 불편하면 원경릉을 불렀다.“어때?” 우문호는 원경릉이 검사키트를 약 상자에 돌려놓는 것을 보고, 진찰이 끝난 것을 알고 물었다.원경릉이, “상황은 괜찮습니다, 혈압은 약간 높지만 먹고 마시는 거에 주의하신 다면. 이 연세엔 기름진 음식을 드시지는 않으시겠죠.”원경릉이 눈꼬리를 살짝 치켜세우고 태상황을 바라보며 정색하더니, “그리고, 소주는 두 번 다시 마셔서는 안됩니다. 한 모금도 안돼요. 있다가 상선에게 똑똑히 잘 감시하라고 당부하겠습니다.”태상황이 화를 내며, “설을 쇠려고 하는데 흥 다 깨지게, 설쇠고 얘기해.”“드시면 안됩니다.” 원경릉이 강조하며, “절제가 안 되잖아요. 한 모금 마시면 반드시 다음 잔을 드신다고요.”태상황이 원경릉을 아랑곳하지 않고 고개를 돌려 우문호에게, “네 어미는 만나 보았느냐?”우문호가 ‘예’하는 낯빛이 좋지 않다.태상황이 말없이 원경릉이 옷 매무새를 가다듬어 주는 대로 몸을 맡기고 잠시 침묵하다가, “사람은 누구나 살면서 추구하는 게 있지, 걔는 자기가 추구하는 것만 생각하니 네가 관여할 수 있는 게 아
설날에 모인 후궁태상황이 담당하게, “멀쩡한 성인을 어디로 보낼 수 있겠나? 그리고 현 태자의 생모인데, 출궁시켜 암자로 보냈다는 사실이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더욱 난처하지 않겠어? 살고 죽는 건 전부 현비 본인의 생각에 달려 있으니 본인이 목숨이 귀한 줄 모르면 다들 어쩔 도리가 없지.”태상황은 원경릉을 보더니 미간을 찌푸리며, “넌 최대한 참견하지 마.”원경릉이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습니다. 태자 전하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플 뿐입니다.”폭죽소리가 ‘파밧 파밧’ 울려 퍼지자 우리 떡들이 신이 나서 뛰어다니고 푸바오도 멍멍 짖으며 맴도는데 오히려 눈늑대는 자세를 갖추고 미동도 하지 않고 있다.태상황의 목소리가 허망하게, “생모도 마음 아파하지 않는데 방법이 있나?”우리 떡들이 뒤뚱거리며 뛰어들어와 원경릉의 다리에 찰싹 붙어서 똑같이 생긴 얼굴 셋이 나란히 꽃 같은 웃음을 터트리더니, 손가락으로 밖을 가리키며 폭죽이 터지는 소리를 ‘빵빵빵’ 흉내 낸다.원경릉이 웃으며 찰떡이를 안아 올렸다. 찰떡이는 소심해서 이렇게 즐거워 하는 모습이 드물다.아이들의 웃음을 보니 우문호의 지금 처지가 떠올라 마음이 쓰라리다.궁중에 점점 사람이 많아지더니 원경릉과 우문호도 건곤전에서 나와 우리 떡들을 데리고 명심전으로 갔는데 마마님들과 공주들이 전부 거기 있다. 귀비, 태비, 노비, 덕비, 근비(勤妃)가 전부 있고 황후까지 다른 사람들과 같이 앉아 수다를 떨고 있었는데, 설날이란 명절을 맞아 기존에 모든 사적인 원한은 전부 사라진 듯 서로 사랑하는 한 가족 모습이다.안왕비는 고요하게 한쪽에 앉아 있고, 손왕비와 기왕비도 같이 앉아 있다. 회왕비 미색은 아직 안 왔으나 노비는 친정하게 그녀를 위해 의자를 하나 비워 놓았다.앉아 있던 비빈들은 호비를 제외하고 나이가 전부 30~40대인데 호비가 산후 조리를 마치고 나오니 얼굴이 발그레 한 것이 이전보다 더 곱다.호비의 아이도 안겨서 나왔는데, 십황자는 애늙은이처럼 고작 한달 좀 넘은 아이가 한곳을 바라보고 앉은
황후의 속마음역시 덕비의 반응이 빨라서 얼른, “하지만 태자비가 있어 현비 언니가 중병이라 해도 고칠 수 있을 테니, 황후 마마는 현비 언니를 너무 심려치 마세요.”“그래요, 그래요!” 사람들이 너도나도 덕비와 이구동성으로 외쳤다.황후는 자기가 실언했음을 깨닫고 오늘 같은 날 얼마나 상황에 맞지 않는 말인지, 황후의 체면을 구긴 자신의 실수를 뉘우쳤다.하지만 덕비의 말을 듣고 속이 타는 게 현비는 무슨 중병을 앓고 있는 게 아니라 태후와 황제가 금족령을 내려서 일 뿐이란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단지 태자의 생모가 계속 금족령이면 밖에서 듣기 썩 좋지 않아서 대외적으로 중병을 칭한 것이다.태후의 분이 사그라 들면 반드시 금족령을 취소할 것이고 앞으로 태자가 보위를 이으면 현비는 태후가 될 것이다. 자기는 태후가 된다고 쳐도 현비는 뭘 했다고 태후야 영 마뜩치 않다.그래서 방금 황후가 그렇게 말한 것도 사실 현비를 저주한 것으로 현비가 정말 박복해서 복을 누릴 운이 없었으면 좋겠다.황후는 비빈들이 전부 현비의 안색을 살피는 것을 보고 마음이 확 언짢았지만 지금 표현하긴 좀 그래서 오히려 덕비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덕비 말이 맞네, 태자비가 있으니 현비도 분명 나을 것이야.”“그래요, 폐하께서 성덕이 있으시고 마마께서 인덕을 쌓으셨으니, 폐하와 마마께서 계시면 비빈들은 반드시 복과 장수를 누릴 겁니다.” 노비가 아첨하듯 말했다. 방금 얘기에 노비가 화들짝 놀란 사실은 아무도 몰랐다. 이 화제는 노비가 꺼낸 것인데 만약 황후가 조금만 더 신랄하게 비꽜으면 그 상황을 수습하기 곤란했을 것이고 분명 태후와 황제의 귀에 들어가고 말았을 것이다.원경릉이 십황자를 무릎에 앉혔는데 여자들이 모이면 이렇게 말들이 많다. 특히 이렇게 이익관계가 다양한 여인들이 같이 앉아 있으면 반시진만 화목한 분위기를 유지하는 것도 사실 대단하다.원경릉이 십황자를 어르는데 삼중 턱에 꼼짝 않고 원경릉을 보는데, 어떻게 얼러도 반응이 없고 눈도 깜박이지 않는 것이 혈을 찍어
제왕의 진심태자를 세우려면 반드시 적자를 뽑을 거라고 지나치게 단정했던 황후 자신이 원망스럽고, 부친이 조정에서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萬人之上)’이라 만에 하나도 실수가 있을 리 없다는 생각에 사전에 그를 위한 계획을 세워 두지 못한 게 한스럽다.이제 와서 전부 때늦은 일이지만 말이다.황후는 여덟째를 곁에 앉히고 마음을 가다듬어 제왕에게, “내가 너한테 자주 이러지 않는 거 알지. 너도 잘 살아야지, 원용의 그 계집애도 지금 정혼을 했다는데 네 곁도 계속 비워 둘 수는 없어, 해를 넘기거든 네 아바마마께 주청을 드려 사람을 물색해 보마. 너도 언제까지나 죽은 사람한테 연연해서야 쓰나.”제왕의 눈에 회색빛 어둠이 끼며 조용히 고개를 흔들었다.이때 멋모르고 여덟째가, “원 누나 좋아, 나 원 누나한테 장가 갈래.”황후가 웃는데 마음이 쓰리다. 이 아이는 영원히 정상인과 같이 혼인하고 아이를 낳을 수 없으니 자신이 죽는 순간까지 여덟째 걱정일 것이다.눈가가 촉촉히 젖는데 여덟째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그래, 그래, 어미가 우리 창이한테 황자비를 구해주마, 어때?”여덟째가 고집을 부르며, “원 누나랑 할래.”황후가 울컥하고 그만 울어버렸다.황후는 여덟째에게서 떨어져서 짙은 빨강으로 손톱을 꾸민 두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울었다. 오늘이 섣달 그믐이라 소리 죽여 우는데, “내 운명은 어찌 이리도 기구한가? 원래 여인천하(女人天下)로 황후가 가장 존귀하고 너희 형제 둘은 황제와 황후의 유일한 적자들이거늘, 어째서 내 불쌍한 운명을 따르는 것이냐?”제왕의 마음도 괴로운데, 무릎을 꿇고 두 손을 황후의 무릎에 올리고 작은 소리로, “어마마마 울지 마세요, 어마마마 말씀대로 제가 하면 되지요.”황후가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며 억지로 미소를 띠고, “오늘은 좋은 날이니 울어서는 안되지, 재수없다.”황후는 제왕에게, “네 마음 속에 아직 명취에 대한 미련이 남았어? 저 세상에 간지도 오래 됐는데 그만 잊어야지. 원씨 집안의 그 계집애 내가 보기엔 꽤 괜
기왕의 기대회왕 부부는 아주 늦게 입궁했는데, 무슨 일이 있어 시간을 지체한 건 아니고, 전에 미색이 자기가 임신한 줄 알고 온데 떠벌렸다가 결과 아니었던 게 밝혀졌던 지라, 미색 본인은 모두 수다를 떨 때 입궁하기가 송구했다. 사람들을 볼 면목이 없었던 것이다.궁은 시끌벅적해서 저녁 연회 때 명원제도 제사를 지내고 돌아와 황실 종친들과 같이 애기하고 친왕들이 곁에 동석한 가운데, 태자 우문호는 오늘밤 명원제 비서로 명원제가 가는 곳은 어디든 동석해서 명원제가 무슨 말을 하면 태자는 오토 리플레이처럼 반복해야 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사람이 너무 많고 폭죽소리가 그치지 않는데다 황제의 몸으로 소리를 지를 수도 없기 때문이다. 태자로 책봉된 이래 우문호는 조정 신료들의 마음에 조금씩 그 위상이 높아져서 오늘 밤 황실의 가족 연회의 많은 종친들도 전부 태자를 둘러싸는 바람에 다른 사람은 소외되지 않을 수 없었다.기왕이 안왕에게 씩씩대며, “저 사람들 좀 봐, 쓰레기에 파리 꼬이는 거 같네, 재수없어.”기왕은 지금 명원제 앞에서는 개과천선한 것처럼 다시는 권력에 집착하지 않고 최대한 겸손하고 단정한 척 하지만 오늘 밤 자신이 전에 가졌던 모든 영화를 우문호에게 빼앗긴 것을 보니, 아직 수련이 부족한지 자기도 모르게 이런 말을 뱉고 말았다.안왕은 전혀 개의치 않고 미소를 지으며, “태자지 않습니까, 미래의 황제, 당연히 화제의 중심이어야 지요!”기왕이 이 말을 듣고 눈을 흘기며, “네 입에서 나오는 거 숨 쉬는 거 빼고 다 거짓말이지? 양심을 속이면 안 괴로워?”안왕이 개의치 않고 어두운 빛이 번뜩이며, “큰형, 해서 될 말, 안될 말 아직도 구분이 안되십니까? 그리고 형 머리로 오늘 이 상황이 어떤 건지 감이 안 와요? 우린 들러리인데 들러리로 역할만 하면 돼요, 누굴 질투할 상황입니까? 전에 형이 태자였을 때, 지금 태자는 형을 샘내지 않았어요.”기왕이 콧방귀를 뀌고 답답한 지 아예 입을 닫아 버렸다.기왕이 태자이던 시절, 기왕을 시샘하지 않
잔뜩 긴장한 채로 앞으로 몸을 반쯤 내밀고 있었던 주 지부는 우렁찬 상대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중심을 잃은 듯 비틀거렸다. 그는 이내 팔을 뻗어 망루의 기둥을 붙잡으려 했지만, 허공에서 멈추고 말았고, 그대로 몸이 앞으로 쏠려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말에서 빠르게 날아올라,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로 그에게 달려갔다. 상대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주 지부가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그를 안고 빙 돌아서 바닥에 착지했다.주 지부는 깜짝 놀라서 그만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를 구해준 사람은 반짝거리는 눈망울에, 품위 있는 모습의 젊고 잘생긴 사내였다. 주 지부는 그를 황제의 호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거의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겼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새도 없이 그에게 예를 올렸다.“대인,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그때 말들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는데, 서일이 먼저 말에서 내려, 다급히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괜찮으십니까?”우문호도 매우 놀란 듯했다. 조금만 늦었다면, 주 지부는 정말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숨을 들이쉬었다.“괜찮다.”그러고는 주 지부를 보며 물었다.“자네는 누구요?”주 지부는 마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보며, 누가 황제인지 추측했다.황제는 올해 마흔에 가까운 나이로 알려져 있었기에 위엄이 넘쳐 보일 것이었다. 그는 일행 중, 냉 수보와 홍엽을 만난 적 있었기에, 거친 모습을 한 이 인물은 아마도 호위로 추측된다. “묻지 않았소? 자네는 누구요? 어찌 죽으려고 하는 것이오?”서일은 그가 멍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자, 큰 소리로 다시 물었다.주 지부는 울 지경이었다. 냉 수보가 그를 보고 있으니, 예를 올려야 하지만, 황제도 자리에 있으니, 바로 냉 수보에게 예를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대체 누가 황제란 말인가?그는 황제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어, 결국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고는 그들에게만 들릴 정도로 낮은 목소
원경릉의 말은 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자리에 있던 관리들은 기쁨과 동시에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 대인은 땅에 엎드려 온몸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그는 살아생전에 자신이 황제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평소 차분하고 신중한 주 지부도, 그도 감정이 격해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눈가에는 눈물이 가득했다.황후를 만난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라 생각했는데, 황제까지 오신다는 소식에 그의 마음은 흥분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원경릉은 평생을 경성에서 다섯째와 함께 있었기에, 그녀는 그저 그가 온다는 사실을 간단히 전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그녀는 다들 걱정 없이 역병을 치료하고, 언제나 황제가 그들의 뒤를 든든히 지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의 반응을 보니, 황제가 직접 오는 것이, 지방 관리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다.원경릉이 급히 말을 덧붙였다.“폐하게서는 그저 역병 때문에 온 것이니, 모두 각자 맡은 일에만 최선을 다하면 되네.”“예, 예, 마마의 명을 따르겠습니다.”주 지부가 눈물을 닦으며 답했다.그렇게 관아와 의서가 협력하여, 오계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원 할머니는 역병을 치료할 수 있는 처방을 몇 가지 내렸다. 경증 환자는 약차를 계속 마시고, 증상이 악화하거나 중증 환자는 그녀의 처방을 사용하도록 했다.전에 이미 근처 주부에 연락해 약을 보내라 명했고, 오계부에서 구비한 약까지 있으니, 이번 역병을 대처할 수 있었다.오계부 의서는 이번 역병을 과거의 역병과 동일하게 생각하고, 소홀히 한 것 외에는 준비가 충분했다.원경릉은 황제 일행이 저녁 무렵 오계부에 도착할 것이라 예상했다.주 지부는 원래 여러 관리와 함께 황제를 맞이할 예정이었지만, 원경릉이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그녀는 황제가 미복 순행 중이니, 과하게 맞이하여 백성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다.그 말에 주 지부는 당황했다.황제가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맞이하지 않는다니, 어찌 그럴 수 있다는 말인가?그러나 그는 황
약을 쓰자, 주 지부의 열이 단번에 내려갔다.열이 내려가니 정신이 맑아져, 그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는 애써 자리에서 일어나 황후마마에게 예를 올리겠다고 고집 피웠다.원경릉은 그에게 누워 있으라고 말한 후, 역병에 관해 이야기하며 주 지부에게 이를 중시할 것을 당부했다.주 지부는 이를 듣고 깜짝 놀라 말했다.“소신은 매일 의서에 사람을 보내, 역병의 상황을 보고받고 있사옵니다. 매일 보고된 상황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역병이 발생했지만, 작년과 비슷한 정도였고, 약재도 충분한데, 어찌 이렇게 심각해진 것입니까?”“매년 역병이 발생했으나, 대대적으로 퍼지지 않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네.”원경릉이 답했다.“의서의 이 대인을 불러, 상황을 확인하겠습니다.”주 지부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어제 이미 그를 찾아가, 환자 수와 사망자 수를 조사하라 명했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것이네. 자네가 사람을 보내, 관아에 와서 상황을 보고하도록 하게.”“예!”주 지부는 곧바로 사람을 보냈다.푸른 옷을 입은 남자는 관아에서 일하는 관리였기에, 그는 반 시진도 채 되지 않아, 관아 내에서 병에 걸린 자가 얼마나 되는지 통계해냈다.관아 내에서 역병 증상을 보인 사람은 총 열여덟 명이었고, 그중 두 명은 병세가 심각하여 이미 집에서 쉬고 있는 상태였다. 주 지부는 관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병에 걸린 줄 몰랐고, 관리의 보고를 들은 후, 큰 충격을 받았다.의서의 이 대인은 하루 종일 쉬지도 않고, 바삐 움직였다. 서관 대인이 직접 오셨으니, 어떻게든 시키는 일을 완성해내야 했다.그는 사실 역병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고, 그저 작년과 비슷하다고 여겼었다.하지만 여러 지역과 의원을 돌아보고 나서야, 이번 역병이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처음엔 그저 서관 대인에게 보고만 하려고 했지만, 병세가 심각해지자 그도 조급해지기 시작했다.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인원수를 통계하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다섯째 일행은 여전히 도착하지 않았다.그래서 원경릉과 할머니는 다른 의관을 더 둘러보기로 하고, 몇 군데 더 돌아본 뒤 관아에도 갈 계획을 했다.그런데 한 의관에 들어서자마자, 푸른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다급히 뛰어오며 말을 걸었다. “수 의원, 대인께서 병세가 위중합니다. 어서 봐주셔야 합니다.”의원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약상자를 집어 들고 다른 환자들을 그냥 남겨둔 채, 푸른 옷의 중년 남자와 함께 나가려 했다.원경릉이 그를 막아 세우며 말했다.“의관에 있는 환자들을 돌봐야 하지 않소? 우리 할머님께서도 의원이니, 지부 대인의 병은 할머님께서 봐 드릴 것이오.”푸른 옷의 사내는 초조한 듯 원경릉을 향해 소리쳤다.“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대인의 병세가 급박한데, 혹여라도 지체되면 당신들이 책임질 수나 있겠소?”바로 그때, 원 할머니가 호패를 꺼내, 그의 눈앞에 들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길을 안내하거라!”조급한 표정을 짓던 푸른 옷의 사내는 호패를 보자마자 표정이 얼어붙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곧장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리며 말했다.“서관 대인께서 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무례를 범해 송구하옵니다.”“그만 사과하고 길 안내나 하시오.”원경릉이 말했다.“예, 예!”사내는 급히 물러서서, 예를 갖춰서 길을 가리켰다.“마차가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서관 대인, 이쪽으로 오시지요.”원경릉은 할머니를 부축해 마차에 올랐고, 곧장 관아로 향했다.지부 대인은 따로 사저가 없어 관아의 뒷마당에서 거주 중이었다. 혼자 지내는 데다 관아가 워낙 가까워 편리했기 때문이다.관아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안으로 들어갔다.주 지부는 병세가 꽤 심각해져 있었다. 그는 어지럼증과 흉통에 시달려, 침대에 누운 채 말을 꺼낼 힘도 없었다.원경릉은 직접 치료에 나섰고, 약상자를 열어 체온 측정기와 청진기를 꺼냈다.푸른 옷의 사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가씨께서도 의원이십니까?”그러자 곁에 서
이 대인이 원경릉에게 의학을 잘 모른다고 반박할 틈도 없이, 원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대로 하게. 하루만 줄 테니, 그 안에 역병에 관한 모든 자료를 가져오게. 사망자 수도 포함되어야 하네." 이 말까지 듣자, 이 대인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비록 조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서관 대인이 멀리서 오계부까지 왔으니, 시키는 일은 해야지 대인의 마음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을 보내 조사를 명한 후, 이 대인은 거처를 마련해 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원경릉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의서에 의원이 많지 않으니, 대인도 바쁘실 텐데요. 저희가 직접 오계부를 돌아보겠습니다." 이 대인은 그녀가 원 할머니의 힘을 빌려 위세를 부린다고 생각해,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말에 답도 하지 않고, 원 할머니에게 예를 올렸다. "어르신께서 머무실 계획이 있으시면, 부디 저에게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대인을 잘 대접하라, 명을 내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일이나 보게." 원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원경릉에게 말했다. "먼저 좀 돌아보다, 객사를 찾아 머물자꾸나." "예!" 두 사람은 역병을 조사하기 위해 다급히 이곳을 찾아왔기에, 먼저 각지의 의원을 직접 돌아보려 했다. 아마 다섯째 일행은 빨라야 내일이나 모레쯤 도착할 것이었다. 두 사람이 의서를 나서자, 이 대인은 뒤따라 나오려다 원 할머니의 날카로운 눈빛에 움찔하며 발길을 멈췄다. 두 사람은 오계부의 거리로 향했다. 거리가 꽤 번화했고, 사람들도 제법 많아, 대낮에는 조금 붐볐다. 그들은 곧장 의원으로 향했다. 의원 앞에는 약차가 많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환자는 얼마 없었다. 겉보기엔 역병이 퍼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원경릉은 안으로 들어가 의원에게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의원은 요즘 들어 약차가 잘 팔리고 있고, 하루에 천 봉지가 넘게 팔린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도 역병
늦게 출발한 원경릉은 신속하게 오계부로 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오계부 근처 주현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가 현지 혜민서로 가야 한다며 잠깐 멈추자고 했다. 그러고는 혜민서에 오계부로 약을 공급할 준비를 하게 했고, 명을 받으면 바로 오계부로 보낼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당부했다. 혜민서 산하의 의료기관들은 지난 몇 년간 개혁을 통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고, 지역 간의 연결도 긴밀해졌다. 특히 역병을 상대하는 체계가 가동되면 상부에서는 전력을 다해 의원과 약을 지원해줄 수 있었다. 신신당부한 뒤에야 원경릉과 할머니는 오계부로 재빨리 향했다. 곧이어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우문호 일행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계부는 인구가 500만 명에 이르는 곳으로, 두 개의 주부가 통합된 지역이었다. 열대에 있어, 경작지가 많고 산이 많아 농업을 위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조정은 이곳을 서부의 주요 곡창지대로 삼고 있었던 것이었다. 농업이 발달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경제도 번화했고, 현지 백성들은 벼 외에도 감, 자두, 리치 등을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리치는 신선할 때 먹을 수도 있고, 말려서 건과로 만들어 팔 수도 있기에, 어느 정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다. 오계부는 백월국과 인접해 있었는데, 백월국은 북당의 속국으로 사이가 우호적이며 경제 교류도 활발했다. 이는 양국의 번영을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계부의 지부는 장씨 성을 가진 오계부 출신이었다. 장 지부는 훌륭한 관리이며 지역 백성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었다.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오계부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지역 혜민서를 찾았다. 할머니는 혜민서의 서관(署館) 신분을 밝혔다. 그녀는 북당 각 주부의 의서를 총괄하는 인물이고, 총책임자이기도 했다. 혜민서의 이 의원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두 사람을 안으로 청한 후, 바로 예를 올렸는데, 마치 신선이라도 본 것처럼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다. "소인은 이자옥이라 합니다. 어르신께서 친히 오신 줄도
그녀는 일단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냉 대인이 자세한 상황을 묻는 사이에 제 대인의 피를 뽑았다. 약상자는 기능이 꽤 다양하기에, 바이러스 검사도 문제없었고, 안에는 양여혜가 준 소형 현미경도 있었다. 하지만 바이러스 관찰이나 세균 배양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오계부로 향하고, 그녀는 이곳에 남아 제 대인을 치료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면 바이러스든, 세균 감염이든, 결과가 나와야 제대로 된 치료 방안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미색이 말했다. "저도 이곳에 함께 남겠습니다. 제가 환자를 돌보는 것 정도는 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괜찮으니 먼저 가거라. 어쩌면 내가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으니깐." 원경릉이 말했다. 그녀는 혼자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미색까지 데리고 가는 건 무리였다. "우리가 먼저 출발하는데, 어찌 더 일찍 도착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미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가능한 일이다. 원 선생은 늘 기적을 만들어내니." 우문호가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원경릉에게 다가가 조심하라고 몇 마디 당부했다. "알았소. 지체하지 말고, 어서 떠나시오. 오계부에 도착하면 곧바로 관아를 찾아가, 의원의 빠른 대처를 명하라 하시오. 만약 내가 먼저 도착한다면, 내가 관아를 찾아가겠소." "알겠소. 그럼, 먼저 가겠소!" 우문호는 그녀와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보는 이가 많으니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서일은 황후를 홀로 두고 가는 것이 걱정되어, 우문호를 따라나서며 계속 물었다. "정말 황후를 이곳에 혼자 남겨도 되는 것입니까?" "그럼, 네가 남을 것이냐?" 우문호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도 원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있지 않느냐?" 회왕 부부도 걱정은 되었지만, 다섯째의 여유로운 모습에 자신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다섯째 부부는 늘 비밀이 많은 사람들이라, 그들은 더 이상 신경
원경릉은 밖으로 나가, 오계부에 역병이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오계부는 서쪽에 자리 잡고 있어, 기후가 더운 탓에 가끔 역병이 생기긴 했었지만 백성들은 고뿔 치료에 쓰이는 약초로 끓인 차를 즐겨 마시기에, 대규모로 역병이 돈 적은 없었다. 냉 대인이 말했다. "오계부에서는 이 상황을 조정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비록 해마다 역병이 생기긴 하지만, 빠르게 통제해 왔으니, 이번에도 예전과 같은 상황이지 않겠습니까?"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번엔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 대인의 형도 역병으로 돌아가셨고, 그와 가까이 지낸 사람들도 병에 걸렸습니다. 이렇게 관아에만 역병에 걸린 자들이 많으니, 예전보다 더 심각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해마다 역병이 생겼으니, 그에 대한 대응책도 이미 있을 것입니다." 원경릉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마다 역병이 생겼지만, 대대적으로 유행하지 않았기에, 현지 관리들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쉽게 통제될 것이라 생각하고, 방심할 수도 있으니깐요." 우문호가 물었다. "원 선생, 역병을 어떻게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역병 상황이 안 좋을 것이라 추측할 뿐, 정말 오계부의 상황이 어떠한지는 아직 모르네. 제 대인은 여전히 고열에 시달리고 있어, 수액을 맞히고 해열제를 먹였소. 냉 대인과 함께 들어가 상황을 자세히 물어봐야겠소. 하지만 꼭 마스크를 끼고, 병을 막아야 하오." 원경릉은 유행성 독감이나 변이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일 것이라 의심하고 있었다. 그녀가 살던 세계에서는 A형 독감의 대규모 변이가 십수 년마다 한 번씩 발생했는데, 그런 변이 독감은 현대에서도 의료 체계에 큰 부담이 되곤 했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만약 역병이 다시 시작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통제해야만 했다. 원경릉의 말을 우문호와 냉 대인은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도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 그의 폐를 확인해 보았는데, 남녀가 가까이 접촉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제 대인은 이내 손을 뻗어 그녀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병세가 심해 아픈 데다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묘한 위압감을 풍기는 의원의 단호한 눈빛과 기운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다. 원경릉은 앞쪽을 청진한 뒤, 그에게 옆으로 돌라고 한 다음에 꼼꼼히 살피고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며칠을 아프신 것입니까?" 제 대인은 꽉 막힌 코 때문에 콧소리를 내며 천천히 몸을 돌리고 답했다. "며칠 사이의 일입니다. 오계부를 떠날 때도 멀쩡했는데, 밤새 달리고, 말을 오래 타다 보니 고뿔에 걸렸나 봅니다." "기침 말고, 가슴 통증도 있습니까?" "예. 이곳이 아픕니다!" 제 대인은 가슴 근처를 손으로 누르며 말했다가, 숨쉬기가 어려운 듯 손바닥을 움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도 아프고, 온몸 뼈마디도 다 아픕니다." 그러자 원경릉은 더 자세히 증상을 확인한 뒤 말했다. "약을 준비할게요. 수액을 좀 맞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수액이요?" 제 대인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예. 질문은 하지 마시고, 그저 치료에 협조만 해주십시오. 병세가 꽤 심각한 편입니다." 원경릉은 제 대인이 폐렴이라 확신했고, 중증 폐렴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 대인은 병이 심하다는 말에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말했다. "의원 나리, 제발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십시오… 저에게는 아직 모셔야 할 노모가 있습니다. 지난달 병으로 형님께서 세상을 떠난 터라, 형님의 자식들도 제가 돌봐야 하니, 절대 이대로 목숨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원경릉이 답했다. "최선을 다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치료에만 집중하시지요!" 제 대인은 감동을 받은 듯 감사 인사를 올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원경릉은 곧바로 약을 지어 수액을 준비했다. 수액을 맞는 동안, 제 대인은 여전히 놀란 모습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