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난 안왕비원경릉은 밖에 사람 그림자가 움직이는 것을 보니 윤곽으로 봐서는 아라인 게 분명한데 살금살금 움직이는 게 이상하다. 원경릉은 우문호의 분석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게 만약 범인이 진북후가 아니라 아라고, 만약 안왕비를 살릴 수 있다는 걸 아라가 안다면 이 얼마나 소름 돋는 상황이냐고?하지만 아라일리 없는 것이 안왕비가 깨어난 적이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만약 아라가 범인이면 안왕비는 분명 안왕에게 알렸을 게 틀림없다.안왕비가 아라를 감쌀 이유가 전혀 없는 게, 자신이 다친 건 물론이고 아이도 잃었다.안왕은 아라가 나타난 것에 전혀 개의치 않았는데, 아라의 머리가 쑥 나타났다가 바로 숨는 수상쩍기 그지 없는 행동은 원경릉이 봐도 뭔가 문제가 있다.보아하니 안왕비의 상태가 어떤 지 알아보는 거 같은데, 아라는 그냥 당당하게 들어오면 되는데 말이다.원경릉은 아라가 숨는 걸 보고 자기도 신경 쓰지 않기로 하고 관자놀이를 누르며 눈이 충혈되는 걸 좀 줄여보려고 했다. 우문호의 상처를 봉합할 때부터 이미 나가떨어진 상태였다.30분쯤 지나 안왕이 소리치는데, “태자비, 연아의 저 병안에 물이 없어요.”원경릉이 일어나 약상자에서 한 병을 새로 꺼내 계속 걸어 놓고 소변 주머니를 보니 소변이 나와있다.원경릉은 요강을 가져와서 소변을 빼내고 소변주머니를 다시 잠근 뒤 아채에게 주며, “버리고 오렴.”아채가 부랴부랴 받아 들고, “태자비 마마, 쇤네에게 어떻게 하는지 가르쳐 주세요, 이런 일을 마마께서 하시다니요.”“신경 쓰지 마!” 원경릉은 옆에 나무 대야에 손을 씻고, “나중에 알려 줄게, 앞으로 며칠은 소변줄을 꼽아 놔야 하고 나도 계속 여기서 지키고 있을 수는 없으니.”안왕이 계속 원경릉을 지켜보며 이상하다는 표정이더니 방금 원경릉의 말을 듣고 눈을 치뜨더니, “앞으로 며칠?”원경릉이 말을 고치며, “낙관적으로 생각 하면요.”안왕이 다시 풀이 죽어, “낙관적이어야 지요.” 원경릉은 일어난 김에 산소통을 바꾸며 보니 안왕비는 호흡이
범인은?안왕비는 원래 눈을 감고 있다가 갑자기 눈을 번쩍 뜨더니 아라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계속 아라를 바라보며 눈에는 의심이 가득했다.아라가 다가와 안도의 한숨을 쉬며, “왕비마마 깨어나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왕야께서 마마를 사흘간 지키고 계셨어요. 보세요 왕야도 너무 지치셨죠.”안왕비는 오직 아라만 뚫어지게 보며 눈빛이 복잡하게 계속 변하고, 원경릉은 멀찍이 서서 이 장면을 보는데 순간 마음 속에 의심이 들었다.하지만 안왕은 안왕비가 깨어난 기쁨에,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안왕비의 눈꺼풀이 힘들어서 버티지 못하는 것을 보고 작은 목소리로, “방금 깼으니 말하지 말고 조용히 쉬어.”안왕비는 안왕의 손을 꽉 움켜쥐고 있다고 천천히 펼치더니 눈을 감고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원경릉은 귀가 밝아서 곁에 서있는 아라가 다행이라는 듯 안도의 한숨을 쉬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그렇다는 건 진범은 아라?하지만 우문호가 그러는데 아라가 무공을 약간 알고 있지만 안왕비를 이렇게 심각하게 다치게 할 만큼 내공이 깊지 않았다고 했다.원경릉이 아라가 여기서 지키고 있는 것을 보고 아채를 불러내, “안왕비 마마께서 전에 깨어나셨지 않아?”아채가 고개를 끄덕이며, “예, 왕비 마마께서 한 번 깨어나셨습니다.”“깨어나셨을 때 라 후궁은 곁에 있었어?” 원경릉이 물었다.아채가 생각해 보더니, “쇤네 그때 걱정이 가득해서 라 후궁 마마께서 계셨는지 기억을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라 후궁 마마께서는 전에 계속 왕야 곁에 계셨으니 그때도 아마도 계셨을 걸요.”잠시 후 아채가 갑자기, “계셨어요, 라 후궁 마마께서 안에 계셔서 왕비 마마께서 범인을 보지 못했다고 하니까 라 후궁 마마께서 왕비 마마께 말씀 그만하고 쉬시라고.”“그때 왕비마마께서 라 후궁을 보는 게 뭔가 이상한 점 없었고?” 원경릉이 물었다.아채가 고개를 흔들며, “이상한 점은 없었어요. 당시 왕비마마께서 많이 쇠약하셔서 말도 다 끝까지 못하시고 잠시 깨어나셨다가 방금처럼 그렇게 잠드셨어요.”원경릉이 다시
긴박한 순간원경릉은 안왕비의 수액을 바꿔주고 안왕에게, “일단 호비궁에 잠시 다녀오겠습니다.”안왕이 ‘에’하더니 모호하게, “빨리요!”원경릉이, “잠깐은 괜찮아요, 반시진 정도 안에 어떻게든 돌아올 겁니다.”안왕이 ‘흠’하더니 나지막하게 고맙다고 하는데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원경릉은 거의 들리지 않았고, 그냥 못 들은 셈치고 답변 없이 바로 나갔다.이때 아라가 복도 한쪽에서 얇게 입고 어두운 눈빛으로 쳐다보는 것을 봤다.원경릉은 아라를 신경 쓰지 않고 가는데 아라가 오히려 원경릉을 붙잡으며, “태자비 마마께서 오셔서 왕비마마를 치료하실 거라고 생각도 못했네요. 제가 왕야께 목을 걸고 태자비 마마는 오시지 않을 거라고 했거든요. 마마께서 절 실망시키셨어요.”원경릉이 담담하게, “당신이 실망하던 말던 저랑 상관없네요.”아라가 입술을 삐죽거리며 비꼬듯이, “그럼 태자비 마마는 왕비 마마를 살리실 수 있나요?”원경릉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아라에게, “안왕비는 큰 문제 없어요.”아라가 뜻밖에 허둥거리며 놀라는 기색으로 냉소를 지으며, “어의가 방법이 없다 던데, 태자비 마마는 구하실 수 있나 봅니다. 태자비 마마는 정말 능력자세요. 그러니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태자비 마마를 보호하죠, 죽은 사람도 살리시니 마마께 매달리고 감사하는 사람이 차고 넘치겠네요.”원경릉은 아라의 괴변은 안 듣고 지나갔다.안왕비는 당연히 큰 문제가 있다. 사실상 지금 위험한 고비를 넘지도 못했다. 흉강에 고인 액체는 아직 빠지지 않았고 출혈도 아직 멈추지 않았다. 현재 이미 지혈제를 쓰고 있는데 가서 효과를 확인해야 한다.사실 원경릉은 일부러 이렇게 말한 것으로, 아라가 초조하게 나오는지 보려는 것이다. 안왕이 계속 안에서 지키고 있으니 크게 문제 될 리는 없다.호비의 상태는 심각하지 않았다. 단지 명원제가 호비를 긴장하게 만들어서 의녀가 실수해서 호비를 아프게 할까 봐 겁 먹은 정도다. 확실히 나이든 남자는 자상하다.원경릉이 호비를 소독해 주고 약을 갈아서 붙
숨진 안왕비원경릉은 약상자를 열어 일단 에피네프린을 하나 주사하고 바로 심장마사지를 하며 심폐소생술을 시작했다.원경릉은 두 손을 교차해 안왕비의 가슴 가운데를 누르는데 힘껏 몇 번 누른 후 입을 벌리고 숨을 불어넣었다.귀비가 옆에서 보며 원경릉이 실성했다고 생각했다.아니 사람이 죽었는데 숨을 들이쉬고 내쉬고 되겠어? 사람은 자기가 숨을 쉬어야지 어떻게 숨을 불어 넣어준다는 거야?아라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묵묵히 원경릉이 마치 미친년처럼 하는 행동을 지켜보는데, 표정은 슬픈데 눈은 통쾌한 빛으로 가득하다.죽은 사람을 살릴 수 있다고? 그럼 진짜 능력자지. 하지만 태자비에게 그런 능력은 없어.안왕은 눈도 깜박이지 앉고 바라보는데 전신에 피부가 팽팽하게 긴장하고,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데 잘못 숨을 내쉬었다가 행여라도 잘못될 까봐 심장이 오그라들었다.원경릉은 시간을 다투고 있었다. 일분이 지나고 아직 아무런 움직임이 없자 원경릉도 초조하긴 마찬가지다.막 호흡이 잠시 멈춘 것이다. 원경릉이 들어올 때 안왕이 절규하는 그 순간 심장박동이 멈췄다.원경릉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 심폐소생술을 계속하며 이마에 땀이 안왕비의 얼굴에 뚝뚝 떨어지고 목까지 굴러 떨어져 마치 안왕비가 눈물을 흘리는 것 같았다.안왕은 더이상 차마 볼 수가 없어 원경릉을 떼어 놓으려고, 원경릉이 더이상 안왕비를 괴롭게 만들지 않으려고 했으나 바로 이때 안왕비의 호흡이 돌아온 듯 했다.원경릉이 안왕에게 소리치며, “빨리 산소튜브 씌워요.”안왕이 눈가가 뜨거워 지며 눈물이 솟구쳐 올라오는데 손발이 꼬여서 겨우 옆에 둔 산소호흡기 튜브를 연결했다.원경릉이 귀를 안왕비의 가슴에 대고 소리를 듣고, 다시 청진기를 꺼내 대보더니 심장소리가 들려오자 원경릉도 한시름 놓으며 바로 그로기 상태에 빠졌다.원경릉은 비틀비틀 침대에서 내려와 몸을 부들부들 떠는데 사신에게서 사람의 목숨을 빼앗아 오는 건 정말이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속에 희열과 성취감이 가득 차 오른 것도 사실이다.원경릉은
의심이 짙어가는데아채가 말을 이으며, “쇤네와 라 후궁 마마 외에 어의와 집사, 네 사람이 여기서 지키고 있었습니다. 들어온 다른 사람은 없었습니다.”“그럼 누가 왕비 마마 곁에 접근했지?” 원경릉의 눈이 아라를 향했다.아라의 얼굴은 방금 약간 창백했으나 지금은 이미 정상으로 돌아와 담담하게, “제가 가까이 갔었습니다. 하지만 이불을 들어 왕비마마를 덮어드린 것 뿐으로 다들 봤습니다. 덮어드린 후 저는 물러나 의자에 앉아 있는데 왕비마마께서 갑자기 피를 토하시고, 피를 토하실 때 왕야께서 이미 돌아오신 상태로, 바로 아채가 태자비 마마를 모시러 간 것입니다.”어의가 증인이 되어, “맞습니다. 분명 그러했습니다. 소신 계속 침대 곁에 있었고 라 후궁 마마는 단지 왕비마마의 이불을 잘 덮어 드렸을 뿐으로 이불 모서리를 눌렀을 뿐입니다.”“그래서 태자비 마마는 무슨 말씀이 하고 싶으십니까? 아라가 왕비 마마를 해치기라도 했다고 모함하시려고요?” 아라가 차가운 눈빛으로 물었다.원경릉은 아라의 말에 답하지 않고 안왕을 보고, “안왕 전하의 사람이니 전하께서 만약 믿으실 수 있으면 전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하지만 넷째 동서는 아무 이유 없이 내출혈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혈흉을 야기한 건 내력을 썼기 때문으로 내력을 주입하면 그 자리에서 출혈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천천히 일어날 가능성도 있습니다. 왕야는 무공을 아시는 분이니 저보다 잘 아시겠지요.”안왕이 아라를 보는데 그 눈빛은 의심과 차가움 그 자체였다.아라는 얼굴색도 변하지 않고 안왕의 눈을 올려다보며, “아라는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울 것이 없고 왕비마마를 해친 적이 없습니다.”원경릉이, “중요하지 않아요, 넷째 동서가 깨어나면 뭐든 다 알 테니까. 동서가 방금 잠이 든 것처럼 보이지만 정신은 맑게 깨어 있었어요. 동서는 라 후궁이 다가와서 이불을 덮어주는 척하며 손을 쓴 걸 느낄 수 있었어요. 내력을 주입하는 건 장력보다 느낌이 확실해서 피해를 입은 사람이 가장 분명히 느낄 수 있거든요.”아라
범인을 밝히는 안왕비원경릉은 장의자에 반쯤 누워 생각하더니, “어쩌면 왕야께서는 제가 쓸데없이 참견한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진북후는 정말 범인이라고 할 수 없더군요. 어젯밤 저와 태자 전하께서 관아에서 얘기하다가 사건에서 의심되는 점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결코 태자 전하께서 일부러 진북후를 두둔해서가 아닙니다. 왕야께서는 이 의심되는 점을 알고 싶으신 가요?”안왕이 침대 곁에 앉아 마치 석고상처럼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한참을 있다가 고개를 들어 원경릉에게 쉰 목소리로, “말 해봐요.”원경릉이 똑바로 앉아서, “사건이 일어난 그날 경조부에서 많은 사람들의 진술을 받고 전후 비교조사를 하는데, 라 후궁이 진북후와 왕야께서 말다툼이 끝난 뒤에 비로소 만원을 떠났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그게 뭐가 어떻다는 겁니까?” 안왕의 머리는 지금 아직 완전히 깨어나지 않은 상태로 무의식적으로 원경릉이 진북후가 범인이 아니라고 하는 말을 거절했다.“그게 뭐가 어떠냐 고요?” 원경릉이 의아하다는 듯 안왕을 보고, “라 후궁이 명심전에 가서 넷째 동서에게 가서 왕야를 곤경에서 구해달라고 했어요. 그리고 나갈 때 아채에게 귀비 마마를 모시고 오라고 보냈고요. 당시에 이미 말다툼이 끝난 상황으로, 진북후도 어화원을 떠났는데 라 후궁은 왜 굳이 왕야를 구해달라며 넷째 동서를 찾아가야 했을까요?”안왕의 미간이 꿈틀하더니 흉악한 눈빛으로, “그래서 태자비 생각은 아라가 범인이다? 아라의 내공은 그렇게 좋지 않아요.”원경릉이, “전 그냥 제가 아는 걸 얘기했을 뿐이에요. 추측도 합리적인 범위에서 고요, 방금 저는 누군가 넷째 동서에게 손을 댔다는 걸 확신해요. 제가 여기 있었을 때 동서의 호흡, 맥박, 심박 전부 정상이었어요. 제가 간 뒤로 반 시진도 채 되지 않았는데 갑자기 출혈이 일어나 혈흉이 생기는 건 내공으로 혈액의 흐름을 재촉한 결과예요. 방금 이자리에 있던 몇 사람을 왕야는 알 겁니다. 당신이 아니면, 아라고, 아라가 아니면, 아채나 어의죠. 다른 사람일 수는
범인은 아라원경릉은 안왕이 어떻게 할지 모르겠고 자기 말을 완전히 믿는지도 모르겠는 것이 어쨌든 아라와 안왕은 오래 함께 한 사이가 아닌가.“아파……” 안왕비가 작게 신음하며 미간을 찡그렸다. 극도의 고통을 참으며 손으로 이불 아래 배를 만지고 있다.“괜찮아, 조금 있으면 안 아플 거야.” 안왕이 큰 손을 쓱 넣어 가볍게 마사지해 주었다.원경릉이 묵묵히 옆에서 약을 처방하며 다음 치료 방안을 생각하고 있었다.안왕비 상황은 여전히 심각해서 현재 출혈 상황을 알 수 없으니 약을 쓴 뒤에는 지혈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치료하면서 천천히 출혈을 멈춘다면 문제는 그렇게 심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안왕은 아라 쪽에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심지어 이 일에 대해 아무 의견도 발표하지 않을 뿐 아니라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는 것이, 원경릉은 안왕이 도대체 어느 쪽인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아라가 들어올 때 안왕은 고개를 옆으로 돌려 아라의 머리장식을 보더니 갑자기, “이 금옥비녀, 내가 너한테 선물한 거지?”아라가 무의식적으로 만지더니, “예, 왕야께서 서북에서 돌아오실 때 아라에게 주신 선물로 아라가 항상 보물처럼 다룹니다.”“확실히 보물이야, 휘장 술을 만드는 금으로 만든 거거든. 안이 비어서 걸을 때 빈공간이 있는 휘장 술 금이 옥에 부딪히며 영롱한 소리가 나지. 이건 일반적인 방울 비녀와는 차원이 달라. 소리가 전혀 다르거든. 한 번 들어 보면 바로 알아볼 수 있지.” 안왕이 말했다.아라의 얼굴이 회색 빛이 되었다.아라는 마침내 알았다.이 비녀다. 아라가 현월정에서 살인을 할 때 내력을 밀어 넣을 때 자연스럽게 머리채의 비녀가 흔들렸다. 아라는 늘 하고 있어서 이 소리를 무시하는 게 익숙하지만 다른 사람은 그렇지 않았다.아라가 안왕을 보니 약간의 질책만이 있을 뿐 분노를 볼 수 없어 마음이 오히려 홀가분해 졌다. 비록 안왕이 알지만 그들 사이엔 정이 있는 것이다. 사실 아라와 약해 빠진 여자와 비교하면 누가 더 안왕을 도울 수 있을
아라가 범인인데?우문호가 상처 입은 몸으로 현장에 나온 것을 보고 진북후는 감동했다.그리고 이 일은 호비의 눈을 속일 수 없어 결국 호비가 알게 되었고 대성통곡하며 명원제 앞에서 아버지가 살인했을 리가 없다고 목숨을 걸고 보증했다.넷째가 태자를 찌른 일로 넷째를 엄히 처벌해야 한다는 상소가 조정에 올라왔으나, 안왕비 상태가 마음에 걸려 계속 미루고 있는데 이제 호비까지 슬픔에 겨워 온몸에 눈물만 남았는지 울고 있는 모습을 보면 명원제는 가슴이 찢어지고 번뇌가 극심해졌다.그래서 본인은 아예 상대하지 않고 원경릉을 불러 호비를 위로하게 했는데, 원경릉의 말이면 호비가 그래도 귀담아 들을 걸 알아서 이다.원경릉은 요 며칠 눈썹이 휘날리게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바쁘게 일했는데, 종일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남편과 아이들 얼굴도 한 번 못 보고, 순전히 다른 사람을 위해 바쁘게 일했다.그래도 다행인 것이 안왕비의 상태가 점점 호전되어 이제 위기를 벗어났고, 맥박과 호흡, 심장 박동이 정상을 향해 가는 한 편 정신도 많이 맑아졌다. 단지 여전히 허약해서 원기를 회복하려면 2~3달은 요양 해야지 싶다.어의가 약을 처방해 유산하고 남은 잔해를 처리하자 안왕비는 가슴이 응어리가 맺혔는지 엉엉 울며 슬퍼했다.안왕은 아라가 범인인지 알고 이미 3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나흘째 날 안왕은 아라에게 출궁해서 안왕부에 돌아가라고 했다.아라가 궁을 떠날 때 원경릉은 마침 호비의 궁의에서 돌아오는 길이라 침전 밖 마당에서 아라와 마주쳤다.아라가 뜻밖에도 예를 취하고, 겨울 태양빛이 아라의 맑고 아름다운 얼굴에 비취자, 모공에 새털 하나하나까지 금빛으로 칠한 듯 하고, 입가엔 예의 비웃음을 머금은 옅은 미소가 떠올라, “태자비 마마, 아라는 출궁합니다. 수고스러우시겠으나 왕비 마마는 태자비 마마께서 돌봐 주세요.”원경릉은 요 며칠 완전 초췌하기 이를 데 없어서 얼굴은 까칠하고 수면부족으로 눈가는 너구리, 머리는 대충 빗어서 엉망진창인 게 아직
원경릉은 궁으로 돌아와 이 일을 다섯째에게 이야기했다. 그러자 다섯째가 말했다.“사실 한 번 돌아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소? 그저 경성만 한 바퀴 둘러보면 되지 않소.”“아이들을 데려다줄 때 휘종제 어르신께서 슬퍼하셨소. 이번 생에 고향으로 못 돌아올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돌멩이 하나를 건네주니, 그걸 안고 울었소.”“정말 안타깝소!”다섯째는 증조할아버지 생각에 마음 아파했지만, 이내 말을 이어 나갔다.“하지만 큰할아버지께서 그를 데려오지 않는 이유도 있을 것이오. 휘종제 어르신을 잘 아는 것도 아니지 않소? 몇 번 만나보니, 활달하고 산만한 성격에 무슨 사고를 일곱째인지 모를 것 같은 느낌이 들었소.”“맞소.”원경릉도 깊이 공감했다. 특히 그가 전화로 끈질기게 설득할 때는 정말 무서울 정도였다.“다른 일은 없었소? 부모님 건강은 어땠소? 처남은 여자 친구가 생겼소? 만두는 공부를 잘하고 있소?”다섯째가 끊임없이 질문했다. “괜찮소. 부모님 건강도 괜찮긴 하지만, 아버지께서 고혈압이 생겨서 약을 오래 드셔야 하오. 오빠는 여자 친구가 없네. 주진과 아직도 서로 솔직히 이야기하지 않은 상황이오. 만두는 걱정 안 해도 되네. 내년에 돌아올 것이니.”“다행이오!”다섯째가 기뻐해 하며 말했다. 그는 늘 만두의 능력을 눈여겨보았기에, 그가 돌아오면 나라의 일들을 조금이라도 도와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비록 많은 부담을 짊어지진 못하지만 그래도 괜히 기대가 되었다.“추 할머니 병은 어떠하신가?”다섯째가 또 물었다.“아직은 괜찮소. 아주 좋아졌네. 약에 내성이 생기지만 않으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오.”원경릉이 말하자 다섯째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분들이 늘 건강해지시길 바랄 뿐이오.”평범한 사람들조차도 적성루 사람들에게 감동하기 쉬운데, 하물며 북당의 황제인 자신은 오죽하겠는가.“계란은 소식 왔소?”원경릉이 물었다.“왔네. 보시오!”다섯째는 소매 안에서 구겨진 편지를 꺼냈는데, 비둘기를 통해 받은 그 편지에는 몇 줄의 짧은
“별다른 뜻은 없소. 오늘 밤에 유난히 감성적이라 그저 한마디 해본 거네. 사실 너무 감동해서 그러네. 비록 항상 탕 대인에게 빨리 혼인하라고 재촉하긴 했지만, 그가 일곱째 아가씨와 혼인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소.”“괜찮소!”원경릉은 그의 품에 안겨 그의 심장 소리를 들으며 말했다.“어쨌든 탕양은 우리와 함께 걸어온 사람이오. 그러니 그가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하게 된 건 우리 모두에게 기쁜 일이오.”우문호는 벌써 술에 취한듯 머리가 약간 어지러웠다. 술에 취하면 항상 눈앞의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곤 했는데, 익숙한 천장, 익숙한 사람, 익숙한 탁자와 의자. 취기가 돌며 모든 것들이 꿈처럼 느껴졌다.그는 마치 다시 초왕 우문호로 돌아간 듯했고, 갓 원경릉과 마음이 통했던 때로 돌아간 기분이었다.그 당시 외부 정세는 불안정했고, 태자 자리를 둘러싼 다툼이 막 시작되었던 때였다. 형제끼리 반목하며, 치열하게 싸웠던 시절을 돌아보면 잃지 않고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얻었다는 사실에 감사하게 되었다.우문호가 원경릉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원 선생, 몇 년간 아주 긴 꿈을 꾼 것 같지만, 되돌아보니 정말 다행이라고 느껴지네. 사실 모든 행운과 행복은 원 선생의 잘못된 연구에서 비롯된 것이오. 원 선생이 오지 않았다면 내 인생이 어땠었을까 싶네.”그러자 원경릉이 말했다.“누군가가 이 세상에 몇 시간과 공간이 존재한다고 했소.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 다른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을 수도 있네. 아마도 어떤 공간에서는 내가 없는 대신 다른 사람이 당신과 함께 있을 수도 있소.”우문호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그 세상 속의 나는 정말 불쌍할 것이오.”“그건 모르오. 어쨌든 그곳의 당신은 나를 모르고, 우리가 지금 얼마나 행복한지도 모를 것이오. 각자가 행복을 정의하는 방식은 다르오. 어떤 사람들은 매 끼니 고기가 있는 게 최대의 행복일 수도 있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은 봉급이 오르길 바랄 것이오. 또 가족이 화목하고 건강하기를 바라기도 하고
우문호는 혼인을 하사하는 조서를 내렸다. 이는 탕양의 혼사에 화룡점정을 더하는 일이었다.온 경성 사람들이 탕양이 황제를 모시는 신하인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녀의 혼사에 주목했다.탕양은 왕부에서부터 황제를 지지해 온 충신이었으며, 군신 간의 정은 형제의 관계에 못지않았다.거기에 황제가 직접 혼인을 하사했으니, 이는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었다. 그래서 다들 두터운 예물을 준비해 축하하러 왔다.혼례는 초왕부에서 열렸다. 비록 초왕부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지만, 이번 경사에 많은 지원이 몰렸다. 여러 왕부에서 사람을 보내왔고, 미색은 돈에 힘까지 보태며 혼사 지출의 3할이나 부담했다.희상궁도 돌아와 모든 일을 총괄했다. 희상궁은 비록 나이가 많았지만, 여전히 일 처리 능력이 뛰어났다. 그녀는 여러 왕부에서 온 사람들을 지휘하며 완벽하게 일을 조율했다.혼례 당일, 황제와 황후도 참석했다.신부가 도착하여, 혼례를 올릴 때 우문호와 원경릉은 상석에 앉아 신랑 신부의 절을 받고는, 그 다음으로 기상궁도 절을 받았다.우문호가 원경릉의 손을 잡으며 흐뭇한 표정으로 말했다.“탕 대인이 드디어 철이 들었고, 가정을 이루었으니 정말 기쁘네.”원경릉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제 마음이 풀립니까? 그러니 앞으로는 더 이상 잔소리하지 마시지요.”“잔소리는 계속할 것이다. 이젠 아이를 낳으라고 해야지.”우문호는 걱정이 끝이 없다는 듯 말하자, 원경릉이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아이 낳는 일은 하늘에 맡겨야 하네.”“그래도 몇 가지 비법을 전수해 줄 수는 있소.”우문호가 자부심 넘치는 표정으로 말했다.“좀 더 크게 말해보시오. 다른 사람들이 못 들을까 봐 걱정이오?”원경릉이 그를 흘겨보았다.주변 사람들이 모두 그들을 바라보며 부러움 섞인 표정을 지었다. 많은 사람이 첩을 두고도 황제만큼 자식을 많이 두지는 못했지만, 황제는 복도 많고 자식도 많은 사람이었다. 저녁 연회에서 우문호는 과음했지만 원경릉은 그를 막지 않았다. 이런 노부의 감격은 술로 달래야 한
탕양이 뜨거운 눈빛을 반짝이며 말했다.“거짓말이라면 제 목숨을 앗아가도 됩니다.”일곱째 아가씨가 그의 시선을 보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돌고 돌아 결국 대인과 함께하게 되었네요. 하지만 미리 말하자면 혼사가 너무 급작스럽게 성사되어 저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던 것입니다. 시집간 후에도 그저 명목상 부부로만 살 뿐, 당분간은 벗으로 지낼 것입니다. 이를 받아들일 수 있다면 혼사를 승낙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없던 걸로 하시지요.”그러자 탕양이 거의 생각할 겨를도 없이 대답했다.“받아들이겠습니다. 무엇이든 다 좋습니다. 혼사만 승낙한다면 그저 명분이라도 상관없습니다!”이로써 드디어 그의 수년간의 바람이 이루어졌다.일곱째 아가씨가 담담히 말했다.“그렇다면 어디서 지낼지 생각해 보시지요. 하지만 대인 방에는 다른 사람이 살고 있으니, 그곳에 지낼 수는 없습니다.”탕양이 다급하게 말했다.“걱정하지 마십시오. 황후 마마와 상의를 해보았습니다. 지금 초왕부에 아무도 살지 않으니, 우선 그곳에서 지내시지요. 전에 그 방은 저도 쓰지 않고, 바로 서일에게 줬습니다.”그러자 일곱째 아가씨가 물었다.“저택을 따로 살 생각은 안 해보셨습니까?”“전에 혼자였을 땐 그런 생각까지 하지 못 했습니다. 초왕부도 누군가 관리해야 하는 터라... 하지만 아가씨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돈을 모아 작은 집이라도 살 수 있습니다.”일곱째 아가씨는 초왕부를 둘러보았는데, 그리 호화롭지는 않았지만, 분위기가 몹시 편안했다. 하지만 황제의 옛 저택이라, 평생 이곳에서 지낼 수는 없을 것이다.“우선은 이곳에서 지내고, 나중에 땅을 사서 직접 집을 지으십시다.”땅을 사고 집을 짓는다는 것은 돈 많은 사람이나 할 수 있는 일이었기에, 탕양은 순간 자기가 보잘 것 없게 느껴졌다.그가 쭈뼛거리며 말했다.“걱정하지 마십시오. 이 일은… 꼭 마음속에 깊이 새겨 두겠습니다.”일곱째 아가씨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땅도 제가 사고, 집도 제가 지을 것입니다. 나중에 대인이 잘못이라
노태군이 손을 흔들며 말했다.“안 된다. 혼인 전에는 신랑 신부가 만날 수 없어. 이건 풍습이고 규칙이니, 어길 수 없다.”그러자 일곱째 아가씨가 웃음을 터뜨렸다.“하하하. 이 혼사에 정해진 규칙이 있긴 합니까? 어머니께서는 제가 그를 만나 오히려 싸움이 나서 혼사가 그릇될까 봐 걱정되시는 것 아닙니까? 어머니께 약속했으니, 반드시 혼사를 올릴 것입니다. 이제 마음이 놓이십니까?”노태군은 이 말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좋다. 너도 장사하는 사람이니 신임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것이다. 약속했으니, 절대 번복할 수 없어. 목을 매겠다는 이 어미의 결심은 너가 반대하면 언제든 효력을 발휘할 것이다.”일곱째 아가씨가 이를 갈며 투덜댔다.“이렇게 얄미운 늙은이는 정말 처음입니다!”“나도 너처럼 고집 센 딸은 처음 본다.”노태군이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웃음소리가 들려오자, 원가 사람들은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 일곱째 아가씨가 시집가는 것이 정말 꿈만 같게 느껴졌다.일곱째 아가씨의 혼사는 원가 사람들에게 마음의 짐과도 같았다.탕양은 일곱째 아가씨가 무사히 경성으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한숨을 내쉬었다. 한숨을 내쉬고 나니, 눈물이 터져 나올 것 같은 감정이 북받쳤다. 그녀에게 아무 일도 없다는 생각에 그는 코끝이 다 시큰 거렸다.그날 밤, 일곱째 아가씨가 초왕부로 탕양을 찾아가자, 탕양은 그녀를 안으로 들인 후, 단둘이 방 안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탕양은 그녀를 바라보았는데, 붉은색 옷차림에 머리를 단정히 올려 깔끔하고 우아한 모습이 여전히 돋보였다. 세월의 흔적이 얼굴에 남아 있었지만, 오히려 그녀의 매력을 더해 주었다.그녀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는 패기 넘치던 청춘 시절이었는데, 눈 깜짝할 새에 이렇게나 많이 늙어 버렸다.탕양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했다. 수많은 감정이 얽혀 있었지만, 한마디 말도 제대로 꺼낼 수가 없었다.특히 약도성에서의 일을 겪고 난 뒤라, 첫마디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
일곱째 아가씨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그는 지금 헛소리를 하는 것입니다! 제가 어찌 그와 그런 일을 한다는 말입니까?”그녀의 표정을 보았는데,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아 잠시 멍해졌다.노태군이 이 상황을 보고 말했다.“정말 그와... 아무 일도 없었단 말이냐?”“물론입니다! 그날 밤 그는 술에 잔뜩 취해서 정신도 없었는데, 무슨 일이 있었겠습니까?”일곱째 아가씨가 퉁명스레 답했다.노태군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녀는 그런 기본적인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탕양이 정말 쓸모없는 놈이라 생각되었다. “네가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우리가 어디 믿을 것 같으냐? 혼사는 이미 정해졌으니, 네가 무슨 말을 해도 물릴 수 없다. 혼사를 올리지 않으면, 이 어미 시신이나 수습해야 할 거다!”노태군이 차갑게 말하자, 일곱째 아가씨는 그만 분통을 터뜨렸다.“어머니, 어찌 이렇게 억지를 부리시는 것입니까?”“이 어미는 평생 이치를 따지며 살았지만 이번 일만큼은 예외다. 본디 자식의 혼사는 부모가 결정하는 법이다. 게다가 황후까지 중매에 나섰으니, 너에겐 반대할 권리가 없다. 어서 가서 준비나 하거라. 열닷새에 식을 올려야 하니.”“열닷새요? 모레잖습니까? 말도 안 됩니다! 이리 급히 저를 시집보내면, 제 체면은 어쩌라는 말씀입니까?”일곱째 아가씨가 소리치자, 노태군이 탁자를 쾅 내리치며 화를 냈다. “체면? 지금 체면이라 한 것이냐? 이 어미는 벌써 체면 다 버렸다! 네 혼담이 계속 흐지부지 되어 여태껏 시집도 못 가고 늙은 아가씨 취급받는 게 얼마나 창피한 줄 아느냐?! 매번 연회에 나가기만 하면 사람들이 물어보는데, 이 어미의 체면을 생각한 적 있느냐?”“그래도 아무에게나 시집갈 순 없지 않습니까. 평소 늘 말이 통하시는 분이신데, 어찌 이 문제에서는 이리도 고집을 부리시는 겁니까?”노태군이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아무나? 그럼 내가 물으마. 탕양에게 아직 마음이 남아 있느냐?”그러자 일곱째 아가씨의 눈빛은 흔들렸지만, 애써 침착하게 답
혼담을 꺼낸 당일에 모든 일을 결정하는 것은 정말 드문 일이었다.하지만 원가는 세속적인 것에 신경 쓰지 않았다. 혼수도 원하는 대로 준비하게 했고, 잔칫상만 제대로 차리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잔칫상은 일곱째 아가씨가 결코 시집을 못 가는 것이 아니라고 세상에 알리는 용도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혼인 상대가 황제가 가장 신임받는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자리였다.따라서 잔칫상만큼은 빠질 수 없었다.이 부분은 탕양도 문제없이 해결할 수 있었다. 그동안 나름 저축해둔 돈이 있었기 때문에, 잔칫상을 준비하는 데는 아무 어려움이 없었다.하객 문제에 대해서도, 탕양은 아는 사람이 정말 많았기에 문제없었다. 다른 곳은 말할 것도 없고, 경성에만 백 상 이상은 문제없이 마련할 수 있었다.황제를 곁에서 모시는 자로서, 조정의 문무백관 중 그와 친분이 없는 사람이 대체 몇이나 되겠는가?이 모든 것을 논의한 후, 탕양은 마침내 의문을 물어볼 수 있었다.“노태군, 만약 일곱째 아가씨께서 동의하지 않으면 어찌해야 합니까?”“동의할 것이다. 원가는 혼사를 치르거나 상을 치르거나 내릴 결정을 둘 뿐이니, 그렇게 알고 있거라. 다른 선택은 없다.”노태군이 단호하게 말했다.“그건... 너무 과하지 않습니까!”탕양이 초조해하며 말했다. 왠지 일곱째 아가씨를 강요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혼사는 본디 두 사람이 마음이 맞아야 하는 것 아닌가.돌아가는 길에 탕양이 여전히 불안했해 하자, 원경릉이 그를 위로하며 말했다.“너무 많은 생각은 하지 말고, 그저 신랑이 될 마음의 준비만 해두시게. 일곱째 아가씨는 원가 식구들이 설득할 것이오.”“그녀가 원하지 않으면 어찌합니까? 곤란하게 하거나, 억지로 결혼하게 해서 그녀가 상처받는 건 싫습니다.”“아가씨도 동의할 것이오. 그렇지 않았다면, 약도성에서 자네를 뿌리치고 떠났을 것이네. 하지만 곁에 남아 자네를 보살폈잖나? 그것만 봐도 자네에 대한 마음이 있는 것이오.”“정말입니까?”탕양이 놀랐는데, 얼굴에 은은하게 빛이 맴돌았
원경릉은 원가에서 이 혼사를 분명히 찬성할 것이라 생각했다. 노태군이 일곱째 아가씨를 시집보내고 싶어 안달이 난 상황에서 혼담을 꺼내는 것은 단지 형식적인 절차일 뿐이었기 때문이다. 원가의 유일한 문제는 일곱째 아가씨 본인이었는데, 그녀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 일은 십중팔구 성공할 것이다.역시나, 다음 날 탕양과 함께 원가로 향한 원경릉은 원가에서 심지어 점쟁이까지 청해 두 사람의 사주를 확인하겠다고 하는 것을 보았다.두 사람의 사주를 본 점쟁이는 한참 확인하더니, 이마를 찌푸리며 말했다.“두 사람의 사주가 다소 상충합니다.”원 노태군의 안색이 어두워졌다.“어디가 상충하는가?”“한 사람은 닭띠, 한 사람은 개띠입니다. 이는 닭과 개가 편치 않은 사주라, 혼사를 치른 후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노태군은 탁자를 쾅 치며 말했다.“그럼 바꾸면 되지! 이제 보니 우리 딸은 말띠다. 방금 헷갈렸었다.”“말띠요? 말띠라면 괜찮습니다. 말띠는 올해 연분이 따르는 해 입니...”노태군은 점쟁이의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괜찮다니 됐다. 이제 길일을 골라주게.”그러자 점쟁이는 다시 손을 펴고 계산하더니 말했다.“올해 좋은 날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아무리 빨라도 연말쯤이어야...”“좋다. 이번 달 15일로 하지. 보름달이 뜨는 날, 사람도 오붓이 모이는 날이니, 좋지 않겠나?”점쟁이가 책자를 닫고,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예.”혼사는 원가에서 준비하니, 제시간에만 준비 된다면 안 될 것도 없었다.15일까지 남은 시간은 단 5일, 원가에서 딸을 시집보내는 일을5일 안에 끝낼 수 있을까 걱정 되었다. 준비할 시간도 아직 부족했는데, 혼례복을 만드는 일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하지만 원가는 이미 일곱째 아가씨를 위해 혼례복을 준비해 두었다. 3년마다 한 번씩 새로 만들었기에, 지금껏 서랍 속에 쌓여 있는 혼례복만 해도 7~8벌이나 되었다.혼수도 일찌감치 마련해 두고, 혼담을 꺼낼 자가 나타나기만 기다리
사식이는 다들 일곱째 고모의 안부를 걱정하지 않는 것이 이상해 의아해하며 물었다.“일곱째 고모께서 편지를 보내신 겁니까?”그러자 셋째 부인이 웃으며 말했다.“그래. 편지가 왔단다. 며칠 놀다가 곧 경성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했다구나.”사식이는 그제서야 안도의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럼, 일곱째 고모께서 돌아오고 나서 혼담을 꺼내는 것이 어떻습니까? 일곱째 고모가 동의하지 않으면 일이 난감해질 텐데요.”노태군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이미 모든 일을 저질렀느넫 이제 와서 동의하지 않는다니? 감히 동의하지 않는다면, 그냥 목을 매겠다!”노태군은 일곱째 고모가 열여덟 살이 되던 때부터 그녀의 혼사를 기다려 왔다. 계속 기다리다가 이미 머리카락이 다 하얘져 버렸지만, 그녀는 아직 혼인 기약조차 없었다. 이번에도 혼사를 정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죽는게 더 나았다.그녀 뿐만 아니라 모두가 일곱째 아가씨가 빨리 시집가기를 바라고 이씩 때문에, 이 일은 서둘러 진행하기로 했다.“사식아, 네 고모에게 편지를 보내, 내가 갑작스레 병에 걸려 거의 죽게 생겼다고 전해라!”노태군이 단호히 명령했다.딸을 집으로 불러들이기 위해서 스스로 저주까지 불사하는 그녀는 정말 독한 늙은이었다.서일은 탕양을 데리고 서둘러 궁으로 향했다. 중매인을 찾는 일은 쉽지 않았기에, 바로 황후를 찾아가야 했다.소월궁에서 우문호 부부는 탕양의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라,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한참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우문호의 표정은 복잡해 보였다.“짐이 보기엔, 일찍 일곱째 아가씨에게 네 마음을 고백했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고, 이리 일을 저지를 줄은 꿈에도 몰랐구나!”탕양은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을 닦았고, 마음속에는 불안감이 점점 커져갔다. 하루라도 빨리 그녀를 만나지 못한다면 불안에 휩싸여 버릴 것 같았다. 그는 울먹이며 입을 열었다.“폐하, 지금은 이런 이야기를 하실 때가 아닙니다… 제발 사람을 보내 그녀가 어디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