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진은 갑자기 자신이 메이크업을 해야 하는 게 떠올라 그를 밀쳐내려 했다.“일어나서 메이크업해야 해요. 놓아줘요.”“수진 씨.”그는 그런 그녀를 더욱 꽉 껴안고 놓아주려는 생각이 없었다.“계지원 씨.”지금 잠을 깼는데도 그녀를 놓아주지 않는 그였다.“나...”계지원은 그녀의 귀에 가까이에 대고 속삭였다. 그 소리는 너무 낮아 둘만 들을 수 있었다.순간, 예수진은 얼굴이 빨개졌다.“이렇게 될 줄 몰랐어요.”그의 사과에 예수진은 뭐라 할 말을 찾지 못했다.그가 잘못했다기엔 몸의 일이라서 그를 탓할 수는 없었다.하지만 그는 더 이상 사춘기의 남자아이는 또 아니었다.“그래도 날 놔줘야죠.”그녀의 말에 계지원은 드디어 예수진을 놓아주었다.그녀의 몸이 떨어지자 갑자기 공허해졌다.예수진은 일어나 그에게 속옷과 가운을 가져다주었다.“괜찮아요?”“고마워요.”“그럼 먼저 나갈게요.”“네.”예수진은 떠나며 얼굴을 붉혔다.계지원은 어린애도 아니고 이런 실수를 하다니!...6쌍 커플은 한곳에 모여 유람선을 타고 바다로 나갔다.그들은 배에 탄 후 서로 안부를 물었다.“수진 씨, 어제 잘 잤어요?”가희가 먼저 물어왔다.반대편에는 카메라가 있었기에 이렇게 친한 척할 수 밖에 없었다.그리고 가희는 하도경의 앞에서 예수진에 대한 적의를 들어내고 싶지 않았다.예수진이 아직 대답하지도 않았는데 계지원이 입을 열었다.“예의를 차려. 숙모라고 불러.”에수진은 놀란 표정으로 계지원을 돌아보았다.그가 이런 호칭을 신경 쓴단 말인가?게다가 그는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가희가 예수진을 싫어하는 것을?그녀에게 먼저 인사를 하는 건 이미 대단한데 숙모까지 불러야 한다니.“숙모라고 부르면 오히려 멀어 보이는 것 같아요. 수진 씨도 괜찮다고 하잖아요.”가희도 지지 않고 맞받아쳤다.“수진 씨가 괜찮다고 해도 네가 예의가 없어도 되는 건 아니야. 관계가 아무리 좋아도 호칭은 정확히 해야지.”계지원의 단호한 말에 가희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마음
예수진은 몸을 비틀며 입을 열었다.“여보, 조카에게 용돈 좀 줘요.”그녀의 주머니에서 돈이 나갈 일은 없었다.“그래요.”계지원의 대답에 가희는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하도경이 어색한 분위기를 무마하려 중간에서 애썼다.유람선은 한 무인도에 도착했다.제작진들은 출연자들에게 작은 게임을 준비했다.게임을 잘한 팀은 무인도의 맛있는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각 커플들의 케미를 확인할 수 있는 게임이었다.예수진과 계지원의 차례가 되었다.예수진은 그들이 아무런 케미가 없다고 생각하여 점심에 흰 쌀밥만 먹을 준비를 다 했다.제작진이 물었다.“준비 됐나요?”“네.”“계지원 씨가 좋아하는 음식은?”둘의 손에는 카드가 쥐어져 있었는데 예수진은 감자 카드를 꺼내 들었다.계지원도 감자 카드를 꺼냈다.“계지원 씨가 좋아하는 색깔은?”예수진과 계지원은 그린 색을 골랐다.“계지원 씨의 키는?”예수진은 생각도 하지 않고 183.2cm를 골랐고 계지원 또한 같은 카드를 골랐다.“계지원 씨가 오늘 입은 속옷 색은?”예수진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게 무슨 케미인가?그러나 그녀는 예능이기에 어쩔 수 없이 하얀색을 골랐다.계지원은 하늘색을 골랐다.“그럴 리가요.”예수진이 입을 열었다.“속옷은 내가 골라줬잖아요. 하얀색이에요.”“그래요? 내가 잘못 기억했나?”“한번 봐봐요.”예수진은 계지원의 속옷을 보려 했다.“수진 씨, 다른 사람들도 많은데.”계지원의 말에 예수진은 그제야 알아차렸다.제작진들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예수진도 조금 어색하여 제작진을 향해 입을 열었다.“감독님이 한번 보세요.”감독은 낮게 기침을 했다.“그럼 제가 한 번 볼게요.”감독은 카메라를 등지고 계지원의 속옷 색을 확인하고는 말했다.“하얀색이요.”제작진들은 더욱 크게 웃으며 농담을 뱉었다.“계 감독님도 예상 못 한 것 같은데, 수진 씨가 감독님에 대해 더욱 잘 아네요.”“그러게요. 영광입니다.”계지원은 입꼬리를 씩 올렸다.햇볕 아래서 자랑스럽다는 듯한 표정이
지금 상황에서 예수진은 그렇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그녀가 제일 싫어하는 향신료는 후추와 고수였다.예수진은 자신이 한 번도 거론한 적도 없는 것을 그가 알아챈 것에 대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그냥 추측한 것인가?아니면 그녀가 예전에 미식 프로그램에서 넌지시 뱉은 후추를 싫어한다는 말을 그가 보고 기억하였단 말인가?그렇게 일이 바쁜 계지원이 그녀의 모든 스케줄을 모니터링하고 있었단 말인가?“두 번째 문제입니다. 예수진 씨는 몇 살때 데뷔를 했나요?”“18세 3개월 15일입니다.”계지원은 카드도 선택하지 않고 망설임 없이 말을 뱉었다.그의 모습에 감독은 멍해졌다.“정확히 알고 계시네요.”“네.”“잠시만요. 조금 더 찾아볼게요.”감독은 급히 그녀의 나이를 계산하러 떠났다.제작진들이 준비한 카드는 18세라고 쓰여 있었다.예수진의 출생일과 그녀의 데뷔 일로 계산하여 보니 계지원의 대답과 맞아떨어졌다.“계 감독님, 대답이 너무 빠르셔서 대중들이 문제가 미리 노출되었다고 생각할까 봐 두렵네요.”감독은 허허 웃으며 너스레를 떨었다.“...그럼 조금 더 늦게 맞출게요.”“세 번째 입니다. 예수진 씨가 제일 좋아하는 연예인은?”두 사람은 같은 카드를 골랐다.“네 번째, 예수진 씨의 신체 사이즈는?”“지금이요, 아니면 예전이요?”계지원의 물음에 감독은 말문이 막혔다.“인터넷에 알려진 수치를 기준으로 하죠.”“그럼 81-60-90이요.”계지원의 흔들림 없는 대답에 감독은 고개를 끄덕였다.“정답입니다. 그럼 실제 사이즈는 어떻게 되죠?”“83-60-90이요.”계지원은 한치의 거짓 없이 대답했다.그런 모습에 예수진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그가 어떻게 알게 된 거지?’만져봤나? 만져봐도 이렇게 정확하게 알 수 있나?며칠 전에 예복을 맞추는 전화를 할 때 그녀의 신체 사이즈를 말한 적이 있었다.그러나 그는 옆에서 하연이와 놀아 주고 있지 않았던가?그가 모든 이야기를 듣고 있었단 말인가?“시청자 여러분도 들으셨네요, 그리고 포털
“계 감독님은요?”제작진은 계지원에게 물었다.예수진의 시선은 이미 하도경에게서 벗어났다.그녀도 그가 첫경험을 언제 했는지 궁금했다.18살? 23살? 아니면, 더 빨리?그도 언제인지 기억을 못 하면 어떡하지?들려오는 계지원의 대답에 그녀는 깜짝 놀랐다.“그녀와 같은 날이요.”제작진들도 그녀만큼이나 경악했다.3, 4년 전에 예수진은 25살이었다. 당시 그녀는 스캔들이 없었기에 믿을 수도 있었지만 그때 계지원은 이미 30살이나 되었다!이런 장면은 프로그램에서 무조건 내보낼 장면이었기에 계지원은 함부로 거짓말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어쩔 수 없죠. 누구를 기다리기 위해 오랫동안 참았어요.”계지원은 모든 이들이 경악하는 모습을 보며 담담하게 설명했다.“그럼 계 감독님은 수진 씨를 오래전부터 좋아하신 거네요? 수진 씨가 데뷔하자마자 좋아하신 건가요?”“정확히 말하자면 훨씬 전부터죠.”“그럼...”“아까 마지막 문제라고 하셨는데, 문제를 하나 더 추가하면 출연료를 다시 얘기해야겠는데요.”계지원은 제작진의 말을 끊었고 제작진들은 더 이상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끝났으니 점심 먹으러 가도 되는 거죠?”“그럼요.”계지원과 예수진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에서 값비싼 음식을 먹으러 갔다.“다른 사람들이 의심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나요?”“네?”예수진을 위해 새우를 발라주던 계지원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나랑 같은 날이라고 했잖아요.”예수진은 말하면서 살짝 쑥스러웠다.“제작진들은 시청률을 위해 이 장면을 반드시 넣을 거예요. 당신의 거짓말을 폭로하면 어쩌려고 그래요? 지금 연예계는 거짓을 감추기 어렵다고요.”그녀는 계지원 때문에 자신의 연예계 생활이 타격을 받을까 봐 두려웠다.둘은 지금 염연히 얽혀 있기 때문이다.“무섭지 않아요.”계지원은 껍질을 벗겨낸 새우를 그녀의 접시 위에 올려두었다.“그렇게 자신 있어요?”예수진은 마음이 급해졌다.끝도 없이 스캔들을 만들어 내는 곳이 바로 연예계였다.“진
아무 문제가 없다면 왜 오랫동안 그녀와...그는 예수진을 좋아할 리 없었다. 적어도 예전에는.아니면 그렇게 거절할 리가 없었다.“알고 싶어요?”계지원은 그녀의 얼굴을 보며 물었다.“아니요.”하지만 그녀는 거절했다.그녀의 거절에 계지원은 입술을 깨물었다.“당신의 과거는 나랑 상관없어요.”예수진은 냉랭하게 대답했다.“네.”그가 예수진에게 줬던 상처는 지울 수도 없었고 그녀의 용서를 받을 수도 없었다.“그럼 앞으로 잘 부탁해요.”“...”예수진은 그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하연이 덕분인가?...서울.소이연과 천우진은 아직도 움직이지 않는 그의 모습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병원에서 그런 일을 벌이기 불편한 걸까요? 중환자실에 CCTV가 설치되어서 할 수 없을 것 같아요.”천우진의 말에 소이연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뭔가를 깨달았다.“우리가 생각이 짧았어요.”“지금 어떻게 해요?”“할아버지가 깨신 것이 가짜이고 이 모든 걸 우리가 꾸민 것이라는 걸 알게 된다면 다음부터는 기회가 없을 거예요.”“기회를 만들어 주죠.”소이연은 눈을 번쩍였다.“어떻게요?”“교통사고를 좋아하지 않았나요?”소이연의 말에 천우진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그러나 그를 어떻게 잡을 수 있죠? 저번처럼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잖아요.”“잠시만요. 조금 더 고민해 보죠.”소이연은 미간을 찌푸렸다.그들은 신분이 노출된 반면 상대방은 노출되지 않았다.애당초 그들은 불리한 위치에 처해 있는 것이다.“목표를 설정해 두고 지켜 보죠.”“어떻게 지켜보죠? 일을 그르치면 어떡하죠.”“신중하게 행동할 수밖에 없죠.”“당신 말처럼, 만약 이 사람이 우리의 테스트를 뚫는다면 천씨 가문은 그에게 맡기도록 하죠.”“당신의 생각을 말해봐요.”“천씨 가문과 맞설 수 있는 사람은 몇 안 돼요. 천정엽과 그의 자녀들, 그리고 당신의 동생 천우빈이요.”소이연의 말에 천우진은 그녀를 쳐다보았다.“천우빈도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당신의 부친도 생각해
천우진은 더 이상 주저하지 않았다.그는 소이연의 계획대로 이튿날 천씨 가문의 사람들을 병실로 불렀다.“반 시간 후에 할아버지는 퇴원할 겁니다. 할아버지를 모시고 가시라고 오늘 부른 겁니다.”“빨리 알려주지 그랬느냐. 왜 이제야 알려주는 거야?”천정엽은 불쾌함을 드러냈다.“빨리 알리나 늦게 알리나 똑같지 않나요? 아니면 삼촌은 미리 무엇을 준비하려고 한 건가요?”“내가 무슨 준비를 한다고!”천우진의 말에 천정엽은 화가 치밀었다.“우진아, 너는 예전에 이런 식으로 일 처리를 하지 않았어. 모든 일을 사전에 준비했었지. 소이연과 가까이한 뒤로 성격이 변한 거냐?”소이연은 천정엽을 바라보았다.천정엽은 그녀를 항상 아니꼽게 바라보았다. 천씨 가문에 돌아간 후로 어르신이 그녀에게 잘해주자 그는 불편했던 것이다.소이연은 처음에 할아버지에게 약을 먹인 사람이 천정엽이라고 의심했다.그러나 그런 일을 벌일 인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천정엽의 성격에 한 번에 성공하지 못했다면 아마도 빠른 시간 내에 두 번째 함정을 꾀했을 것이다. 지금까지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사람은 원래 위장을 잘하는 동물이기에 소이연은 천정엽에 대한 경계심을 완전히 풀지 않았다. “삼촌, 농담이 지나치시네요.”천우진은 어두운 얼굴로 대답했다.“이연 씨는 항상 모든 일을 논리정연하게 처리하죠. 제가 나이가 많지만 그녀보다 많이 뒤처집니다. 오늘 병원에 와서야 알린 것은 모두 할아버지의 뜻입니다. 삼촌이 불만이 있으시다면 할아버지가 집에 돌아가신 후 직접 물어보시죠.”“내가 무슨 불만이 있다고?”천정엽은 냉소적으로 입을 열었다.“항상 노인네가 내 잘못을 따졌지!”“할아버지는 지금 마지막 검사를 받고 계세요. 문제가 없으시면 퇴원을 할 겁니다. 여러분들은 VIP룸에서 잠시만 기다려 주시면 할아버지가 퇴원을 하신 후 알리도록 하겠습니다.”천우진은 그들을 VIP룸으로 모이게 한 후 차를 준비시켰다.차를 올리는 건 아주 관건적이었다.소이연은 천우진이 이때를 빌어 그자를 색출
“우빈이 아직 안 왔어? 뭐 하러 간 거야?”천정엽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제가 가볼까요?”천정엽의 아들인 천재림이 나섰다.“전화로 해. 들어갔다 나갔다 하지 말고.”천재림은 핸드폰을 꺼내 들어 전화를 걸었다.“우빈, 아버지가 얼마나 걸리냐고 물어보시는데? 왜 돌아오지 않는 거야?”“배가 아파서 화장실에 있어. 금방 돌아갈게.”천우빈은 대답했다.“할아버지는 어떻대?”“형이 조금 더 기다려야 한대.”“알았어.”천재림은 전화를 끊고 천우빈과의 대화를 그들에게 알렸다.천정엽은 짜증이 난 얼굴로 일어섰다.“담배 피우러 갈게.”“같이 가요.”천재림은 천정엽과 흡연구역으로 걸어갔다.VIP룸은 흡연구역과 유리로 갈라져 있었기에 그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소이연은 천우진에게 메세지를 보냈다.[삼촌과 천재림이 흡연구역으로 갔어요. 아직 전화를 거는 사람은 없어요.][그래요.]그렇게 또 1시간이 흘러서 천우진이 돌아왔다.천정엽이 짜증스러운 말투로 물었다.“할아버지는 퇴원이 가능한 거야?”“네.”“내가 가서 퇴원을 도울게.”“아니요. 할아버지는 이미 차에 올랐어요. 천씨 저택으로 가시면 돼요.”“이미 차에 올랐다고?”천정엽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우리더러 데리러 오라 시지 않으셨어? 또 먼저 갔다고?”“할아버지의 뜻이에요.”“천우진, 또 우리를 가지고 논 거지?”천정엽이 그에게 따졌다.“모든 건 할아버지의 뜻이에요. 삼촌이 궁금하신 게 있다면 천씨 저택으로 간 후에 물어보시면 되겠네요.”그의 말에 천정엽은 눈을 날카롭게 떴다.“노인네가 떠났다니 우리도 가자.”그렇게 모든 사람들은 VIP룸을 떠났다.소이연과 천우진은 함께 “천씨 어르신”이 탄 차에 올랐다.소이연은 참지 못하고 물었다.“누군지 알아냈어요?”천우진은 고개를 흔들었다.“아니요.”“네??”소이연은 기겁했다.이 지경이 되었는데도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것인가?소이연은 미간을 찌푸렸다.“그 사람을 감싸는 건 아니겠죠?”“날 의심하는 건
천우진은 소리를 끄며 말했다.“지금 누구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어. 이자는 정말 머리가 좋아. 우리가 할 모든 일들을 예측는 거야. 아니면...”천우진은 말을 잠시 끊으며 소이연을 바라보았다.“우리의 추리는 다 틀렸어. 그자는 천씨 사람이 아니야.”소이연은 미간을 찌푸렸다.그녀도 그들의 예측이 틀렸음을 의심하기 시작했다.“어떤 것 같아?”천우진이 물었다.소이연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천우진도 더 이상 그녀를 난처하게 굴지 않았다.차 안은 삽시에 조용해졌다.순간, 기사가 급히 브레이크를 밟자 천우진과 소이연은 깜짝 놀랐다.항상 얼음왕자라고 불리는 육민도 그 자리에 굳어졌다.“무슨 상황이에요?”“오토바이 한 대가 역주행하는 바람에 하마터면 부디칠 뻔했어요.”“앞을 보세요!”천우진은 긴장어린 목소리로 소리를 쳤다.기사도 역시 역주행하여 그들을 향해 돌진해 오는 차를 발견했다.그들과 곧 부딪치려 할 때 기사는 빠르게 핸들을 돌리고 악셀을 밟아 그 자리에서 벗어났다.천우진은 일찍이 위험한 순간을 피하기 위해 기사를 유명한 카 레이서로 바꾸었다.“빨리 천씨 저택으로 가 주세요.”천우진은 연신 부탁을 했다.“조심해 주세요.”“네.”기사도 긴장을 하고 엑셀을 밟으며 속도를 올렸다.갑작스러운 속도에 소이연은 몸이 굳어져 육민의 손을 꽉 잡았다.자신이 위험에 처해도 괜찮지만 육민은 안전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그녀였다.“엄마, 나 괜찮아요.”육민은 소이연의 긴장을 느꼈는지 그녀를 다독였다.소이연은 아무런 말 없이 육민의 손을 끌어당겨 더욱 꽉 쥐었다.가는 동안 여러 대의 차가 그들을 따라다녔고 여러 번 부딪칠 뻔했지만 다행히도 아무런 일이 없었다.그들이 안전하게 저택에 도착하자 뒤를 따르던 차량들은 그들의 시선에서 사라졌다.“괜찮아?”천우진이 고개를 돌려 소이연을 바라보았다.오는 동안 여러 번 위험한 순간을 지나왔기에 천우진은 장기가 뒤틀리는 느낌을 받았다.“괜찮아요.”소이연은 대답을 하며 육민을 보았다.“엄마,
그리고는 하지수가 반응할 새도 없이 그녀에게 입을 맞춰왔다.아주 소중한 것을 다루듯 조심스럽게 입맞춤을 이어나가던 송문수는 갑자기 고개를 들어 하지수의 입술을 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엄청 부드럽네.”야한 꿈을 꾸는 게 틀림없어 보이는 남자의 행동에 하지수는 화가 나면서도 어이가 없어서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역시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더니, 이제 좀 정신 차리나 했더니 꿈속에서까지 본능을 주체하지 못하는 송문수에 하지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그런 여자친구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송문수는 또다시 그녀의 입술을 찾아 헤맸다.“문수 씨, 눈 좀 떠봐.”생리도 끝나지 않은 와중에 이렇게 꿈을 꾸는 남자랑은 하고 싶지 않았던 하지수는 이번에는 그가 깨어나길 바라며 아까보다 좀 더 힘을 주어 흔들었다.“무슨 꿈이 이렇게 진짜 같아?”좌우로 사정없이 흔들리는 몸에 어지러워진 송문수는 그제야 눈을 뜨며 말했다.“그럼 꿈이 아닌가 보지.”“꿈이 아니라고?!”하지수가 짚어줘서야 꿈이 아닌 현실임을 자각한 송문수는 몸을 벌떡 일으키며 소리쳤다.“꿈에 누가 나왔는데 그래?”누가 나오긴, 송문수의 꿈에 나올 사람은 늘 하지수 한 명뿐이었다.전에는 꿈속에서도 그녀와 함께하고 싶었는데 이제는 그게 현실이 되어버려 순간 당황한 것이었다.하지만 송문수는 턱 끝까지 차오른 그 말은 굳이 하지 않고 화제를 돌렸다.“나 어떻게 잠든 거야?”평소에는 말을 거침없이 하는 성격인데 이상하게 하지수 앞에만 서면... 속마음을 제대로 드러낼 수가 없었다.“피곤했나 봐.”진실이라는 게 알아서 다 좋은 건 아니었기에 하지수도 모른 척 말을 돌리는 송문수를 따라가 주었다.괜히 끝까지 캐물어서 상처받는 것보다는 아무것도 모르는 게 더 나은 것 같아서였다.“매일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느라 힘들었을 텐데 어쩌다 쉬는 날도 밖에서 돌아다니기만 했잖아. 얼른 씻고 자, 내일부터 또 출근해야지.”“너는?”하지수의 재촉에 방으로 들어가던 송문수는 갑자기 걸음을 멈
“맛있어.”처음으로 주방에 들어간 남자가 이런 맛을 낸 건 객관적으로 대단한 일이라 하지수는 송문수가 그토록 바라는 칭찬을 결국 해주었다.사실 이미 사약 같은 맛일 거라는 각오를 하고 있었는데 꽤나 달달해서 하지수도 놀라웠다.한편 원하던 칭찬을 들은 송문수는 신나서 채널을 돌리며 물었다.“이거 맞지?”“응.”“법률 채널이네?”여자들은 다 예능이나 멜로 드라마를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어울리지 않게 이런 지루한 채널을 좋아하는 하지수에 송문수는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법 좋아해서 대학 때도 법 배운 거야. 난 이런 거 좋아해.”“그래.”하지수의 말에 그제야 그녀가 변호사였다는 걸 떠올린 송문수였다.그렇게 법을 좋아하는 사람이 자신을 위해 변호사라는 직업을 포기했다는 걸 알아차리자 한 번 더 감동받은 송문수는 저도 하지수가 좋아하는 걸 함께 하겠다는 생각으로 용기를 내어 그녀 옆에 자리 잡고 앉았다.“나도 같이 봐.”그의 제안이 의외였지만 이렇게 완벽한 판례분석이라면 송문수도 관심 있어 할 것 같아 하지수는 고개를 끄덕였다.잘 접하지 않던 분야라 처음엔 싫어할 수 있어도 그 속에서 다룬 사건들을 계속 보다 보면 자연스레 호기심이 생기고 그러면서 법률 지식까지 알게 되니 그거야말로 일거양득일 것이다.역시나 하지수는 법조인답게 바로 프로그램에 빠져들었는데 처음에는 신기해하며 잘 보던 송문수는 시간이 지속될수록 점점 지루해하고 있었다.당장이라도 핸드폰을 꺼내 게임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제가 뱉은 말을 지키기 위해 참고 또 참던 그는 스르르 잠이 들어버렸다.티비에 빨려 들어갈 듯 열중하고 있던 하지수가 정신을 차리고 옆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송문수는 이미 코까지 골며 자고 있었다.몸은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져 있었고 고개도 반쯤 돌아가 있는 누가 봐도 불편한 자세를 하고도 잘 자는 송문수에 하지수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지루하면 지루하다고 말이라도 하지.하지수는 미련한 송문수가 감기라도 걸릴까 봐 담요도 덮어주었다.하지만
송문수를 따라 여기저기 다니다 보니 가지고 갔던 생리대로도 부족했었는데 양까지 많았다면 정말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생각을 마치고 나니 심심해진 하지수는 자연스레 티비를 켜고 법률 채널을 틀어놓았다.주방에서 돌아치는 송문수는 진작에 잊은 하지수가 전형적인 판례들을 넋 놓고 있는 와중에 송문수는 마침내 흑설탕물을 다 끓여냈다.맛없는 걸 가져다주는 건 안 하느니만 못하다고 먹어보고 괜찮으면 그때 가져다주라는 소이연의 당부가 있었기에 송문수는 맛을 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그런데 생각보다 괜찮은 맛이어서 그는 용기를 내어 그걸 하지수에게로 들고 갔다.“이게 뭐야?”하지수는 생전 처음 보는 남자 친구의 행동에 어리둥절해 하며 물었지만 송문수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흑설탕물이야. 뜨거울 때 마셔.”“뭐?”“생리 기간에는 이런 거 마셔야 하는 거 아니었어?”“나 주려고 당신이 직접 만든 거야?”“당연하지, 내가 생리 올 리는 없잖아.”진지하게 말하는 송문수에 하지수는 웃음을 터뜨려버렸다.어떨 때는 신기하리만치 제 마음을 몰라주다가 또 이렇게 어설픈 모습으로 저를 위해주는 걸 보면 그가 귀여워 보이기도 했다.송문수는 정말 밉지만 싫어할 수가 없는 존재였다.“고마워.”낮에 있었던 그의 독단적인 행동에 대해 살짝 서운했었는데 이렇게 흑설탕물 한번 가져다줬다고 하지수의 화는 또 사르르 풀려버렸다.“어때?”그런데 하지수가 마셔보려고 컵을 든 순간 송문수는 맛을 물으면서 자연스레 채널을 돌려버렸다.한창 판례를 보고 있었는데 또 제 의사는 묻지도 않고 멋대로 채널을 돌려버리는 그의 행동에 하지수는‘사랑이란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치는 것과도 같다’라는 가사에 깊은 공감이 가 순간 한숨을 쉬어버렸다.정말 송문수에게는 기대를 품으면 안 되는 것 같았다, 기대하는 족족 그것들이 실망으로 이어지니 말이다.한편 미간을 찌푸린 채 한숨을 내쉰 하지수를 본 송문수는 당황하며 물었다.“맛없어?”“내가 먹어볼 때는 맛있었는데? 너 생리만 아니었으면 내가 다 마
가슴을 졸이며 부둣가에 도착하니 술을 마신 송문수 때문에 하지수는 역시나 운전석에 앉아야만 했다.진짜 이런 데이트를 하는 건 자신밖에 없을 것 같아 생각할수록 기분이 나빴던 하지수는 집으로 가는 동안에 한마디도 하지 않고 삐진 티를 내고 있었지만 송문수는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따라부르며 드라이브를 즐기고 있었다.송문수는 오늘이 아주 완벽했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집으로 돌아온 하지수는 바로 방으로 들어가려 했는데 송문수는 그 속도 모르고 또 그녀를 붙잡았다.“왜 오자마자 방에 들어가, 좀 앉아있지.”아직 이른 시간이라 송문수 딴에는 하지수와 함께 티비를 보고 싶었던 것이다.“나 씻고 싶어.”“나중에 씻어.”“보트 탈 때 몸이 다 젖어버려서 아직도 추워. 나 생리 와서 생리대도 바꿔야 하는 데 그럴 거면 그냥 씻고 싶어.”하지수의 말을 듣던 송문수는 그제야 여자가 생리 기간일 때는 더욱더 신경 써서 몸을 챙겨야 한다는 말이 떠올랐다.어제까지만 해도 기억하고 있었는데 오늘 간만의 데이트라 너무 신난 탓에 그만 까먹어버린 것이다.“먼저 보고 있어, 나 금방 씻고 나올게.”“응.”하지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송문수는 갑자기 미안한 마음이 들어 단톡방에 문자를 보내보았다.[생리 기간에는 어떤 걸 신경 써줘야 하는 거예요?][송문수, 너 생리 기간도 못 참고 하려고 그러는 거야? 짐승 같은 놈.][날 좀 좋은 쪽으로 생각해주면 어디 덧나니? 나 그런 놈 아니거든.][그럼 그건 갑자기 왜 묻는데?][생리 때는 체온 유지에 신경 써줘야 해서 춥게 굴면 안 되고 피곤하지 않게 많이 쉬는 게 중요해요. 그리고 술이랑 찬 건 되도록이면 안 먹는 게 좋고요. 하지만 지수 씨 성격이라면 남한테 기대는 걸 별로 안 좋아하니까 이 정도는 알아서 했을 거예요 이미.]소이연은 이내 송문수가 해야 할 일을 알려주었다.[문수 씨는 흑설탕물이나 끓여주세요. 피도 잘 통하게 해주고 생리통 푸는 데에도 효과적이에요. 그리고 흑설탕물은 달달하
하지만 그리 남사스러운 말은 아니라서 하지수는 한마디 더 보탰다.“좀 그런 것 같기도 하고.”그 말을 들은 송문수는 입꼬리를 올린 채 어색해진 분위기를 풀려고 일부러 더 너스레를 떨었다.“내가 매력이 넘치는 걸 어떡하겠어.”그 능청스러운 모습에 하지수는 굳이 반박하지 않고 웃어 보였다.“하지수, 내가 전에 좀 막살았던 건 인정하는데 그래도 한번 결정한 일은 끝까지 하는 사람이야 나. 내가 너랑 잘 만나보겠다고 약속한 이상 절대 너한테 미안할 짓은 안 해.”“응, 알겠어.”하지수는 송문수가 하는 말이라면 뭐든 다 믿었다, 아니 다 믿고 싶었다.그리고 지금은 자신을 실망시키는 사람일지라도 언젠가는 바뀔 걸 알기에 그녀는 기다릴 수 있었다.“네가 나한테 맞춰주는 만큼 나도 너 실망시키지 않을게.”“알았어.”우쭐대며 말하는 송문수에 하지는 역시나 고개를 끄덕여주었다.송문수의 말이라면 늘 이렇게 맞장구를 쳐주는 사람이 바로 하지수였다.밥을 다 먹고 난 둘은 해변가를 거닐었는데 붉은 태양이 바다에 걸쳐져 있어 노을이 아주 예쁘게 져 있었다.주변 환경은 별로였지만 그래도 경치는 봐줄 만해서 하지수의 기분도 조금씩 풀리고 있었다.하지만 점점 어두워지는 날에 좀 있으면 파도가 더 거세질까 봐 걱정됐던 하지수는 송문수를 보며 말했다.“문수 씨, 우리 이제 가자.”“가고 싶어?”“응.”“좀 더 있다 가자, 여기 좋잖아.”“좀 있다 보트도 타야 하잖아, 저녁엔 위험할 것 같아서 그래.”낮에 올 때도 무서웠는데 밤엔 더할 것 같아 하지수는 한시라도 빨리 돌아가고 싶었다.“무서워?”송문수는 그런 하지수가 웃긴지 입꼬리를 씰룩이며 물었다.“응. 무서워.”“그럼 가자.”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에 송문수도 더는 말리지 않았다.하지만 그가 이렇게 제 의견을 바로 수락해줄 줄 몰랐던 하지수는 어벙벙한 채로 그를 따라 걷고 있었다.사실 집에 가고 싶다는 말도 원래의 그녀였다면 하지 않았겠지만 소이연이 했던 말이 떠올라 한평생 참고 살
“왜 안 먹어?”송문수의 재촉에 하지수는 손으로 게를 잡고 뜯었는데 다른 곳보다는 맛있었지만 여기까지 오는데 들였던 노력에 비하면 그리 맛있는 것도 아니었다.“어때? 맛있지?”“맛있어.”하지만 기대에 찬 송문수를 보며 차마 그런 말을 내뱉을 수는 없어 하지수는 웃으며 말했다.“역시 네가 좋아할 줄 알았다니까.”하지수를 긍정을 듣고서야 드디어 먹기 시작한 송문수는 음식을 집어 먹으면서도 말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하도경이랑 여기 자주 왔었는데 현경이랑 지원이는 바빠서 같이 몇 번 못 왔었어.”“그랬구나.”“술 마실래?”“나 생리 왔잖아.”영혼 없이 답을 하던 하지수는 신나서 술을 제안하는 송문수에 또 체념한 듯 말했다.반복되는 실망에 기대를 하지 않다 보니 송문수의 무관심이 이젠 원망스럽지도 않았다.“아, 맞다. 그럼 음료수라도 마실래?”“물 줘 그냥.” 그녀의 대답에 송문수는 직원에게 물과 맥주를 부탁했다.지금 술을 마시면 좀 있다 돌아갈 때 운전은 또 하지수의 몫이 되겠지만 오랜만에 신난 송문수를 위해 하지수는 한 번 더 참기로 했다.상대방의 행복을 위해 한 사람만 계속 참는 건 좋은 연애가 아니라고들 하는데 하지수는 송문수가 기뻐할 수만 있다면 그걸로 충분했다.하지수는 정말 상대방에게 아주 관대한 사람이었다.밥을 먹으면서도 그녀는 간간이 소이연과 예수진에게 상황을 보고하고 있었다.어디에서 데이트하는지 많이 궁금하길래 솔직하게 알려주니 예수진이 바로 답장을 보내왔다.[진짜 송문수답다, 연애 고자잖아 이건.][지수 씨, 문수 씨한테 거기 별로라고 얘기 못 했어요?][안 했어요, 뭐 그렇게까지 중요한 건 아니잖아요. 아직 서로 알아가는 단계니까 나도 문수 씨가 뭘 좋아하는지는 알아보고 싶어요.][알아가는 건 좋은데 그렇다고 한쪽이 일방적으로 양보하는 건 아니죠. 지수 씨, 부부 사이에는 그렇게 내외할 필요 없어요. 앞으로 평생을 함께할 사인데 불편한 게 있으면 용기 내서 말해야죠.]소이연의 말에 고개를 들어 본 하지수
“맛있는 거 먹으러 갈 거야.”“친구들 말고는 다른 사람 데려간 적도 없는 곳이야. 네 기억에 남을 만한 맛집이니까 기대해.”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말하는 송문수에 하지수는 또 괜히 기대를 하기 시작했다.영화는 별로여도 식당은 좋은 데로 찾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차가 부둣가에 도착하고 송문수와 함께 차에서 내린 하지수는 울퉁불퉁한 길을 하이힐을 신은 상태로 걷자니 발이 아파왔지만 얼마나 대단한 맛집일까 싶어 애써 참으며 그를 따라 걸었다.그런데 식당은커녕 눈에 보이는 건 보트에 타라고 저를 향해 손짓하는 송문수뿐이어서 하지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바다에서 먹는 거야?”역시나 기대를 하지 말아야 했었던 걸까.송문수는 하지수의 질문에는 답을 하지 않고 그녀를 잡아끌며 보트에 태웠다.곧이어 출발한 보트는 물살 때문에 심하게 휘청였는데 워낙 물을 무서워하던 하지수는 난간을 꽉 붙잡고 몰아치는 파도를 버텨내고 있었다.“와아!”송문수는 물 만난 고기처럼 아주 신나 보였지만 하지수는 도저히 소리를 지를 정신이 아니었다.밀려오는 파도에 온몸이 다 젖어버린 그녀는 번진 화장부터 열심히 세팅한 머리까지 지금 걱정투성이였다.데이트한다고 치마까지 꺼내입었는데 그런 노력이 무색하게도 제 남자 친구 때문에 비 맞은 생쥐 꼴이 되어버린 것이다.게다가 생리까지 하고 있는데 여기는 화장실도 하나 없었다.도통 무슨 생각으로 이곳을 데이트코스로 선정한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나중에라도 서프라이즈가 있을 거라고 본인을 위로하며 하지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하지수가 기대한 서프라이즈는 아니었지만 다른 의미의 놀라움은 끊이지 않았다.파도를 헤치며 달리던 보트는 똑같이 아무것도 없는 해변에 멈춰 섰는데 해변가에 세워진 집으로 가려면 맨발로 거기를 걸어가야 했기에 딱딱한 모래 때문에 하지수는 안 그래도 아픈 발이 더 아파왔다.그래도 아무 말 없이 송문수를 따라갔더니 그 힘든 과정을 거쳐 도착한 곳이 바로 시골 식당이었다.두 사람은 허름한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
그 말에 더 신이 난 송문수는 평소에는 그냥 사진도 찍기 싫어하던 사람이 하지수와 함께 필터가 잔뜩 씌여진 카메라 앞에서 바보같이 웃어 보였다.사진을 다 찍은 두 사람은 상영관 안으로 들어갔는데 아직 영화가 시작하기 전이라 하지수는 빠르게 인스타를 올려버렸다.아무 문구도 없이 올려버린 셀카에 하도경이 곧바로 댓글을 달았다.[내 눈이 이상한 거 아니죠?][이 바보같이 웃고 있는 게 진짜 송문수에요?]계지원과 육현경도 이내 좋아요를 눌렀고 예수진은 본인다운 댓글을 달았다.[이젠 남자 친구 생겼다고 나랑은 영화 안 본다는 거지?][송문수 웃는 거 진짜 바보 같긴 하다.][무슨 영화 봐요? 재밌어요?]소이연까지 댓글을 달고 회사 사람들도 수많은 좋아요를 보내며 각양각색의 축하 인사를 해오자 하지수는 깜짝 놀라버렸다.평소에 감명 깊게 본 문구나 올리던 하지수가 갑자기 일상을 올려버리니 사람들의 반응이 폭주해버린 것 같았다.그에 하지수는 답장이라도 하려 했지만 미간을 찌푸리며 말하는 송문수에 핸드폰을 가방에 찔러넣을 수밖에 없었다.“영화 곧 시작하는 데 뭐해?”“아무것도 아니야.”처음에는 송문수와의 데이트라는 생각에 설레어 영화에 집중을 못 했지만 영화가 후반부를 향해 달려갈수록 하지수는 점점 그 내용에 깊이 빠져들어 버렸다.그래서 영화가 끝나고 상영관의 불이 켜졌을 때도 넋을 놓고 있었는데 저를 흔드는 송문수 덕분에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영화관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끝났으니까 이제 가자.”차에 올라타서도 아무 말도 안 하는 하지수에 송문수는 그녀를 의아하다는 듯 쳐다보며 물었다.“왜 영화 보고 나와서 한마디도 안 해?”미간을 찌푸린 채 묻는 송문수를 보며 하지수는 오히려 본인이 더 따져 묻고 싶었다.누가 데이트하러 나와서 를 보냐고.너도 날 죽일 거냐는 질문을 할 수는 없으니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하지수는 뭐라 할 말이 없었다.“설마 나도 널 죽일 거냐 뭐 그런 질문이 하고 싶은 거야?”그런데 그때 송문수가 헛
처음에는 그냥 곁눈질로만 보던 송문수는 제 눈에 들어온 낯선 하지수의 모습에 고개를 돌려 그녀를 제대로 보기 시작했다.평소와는 완전히 다른 그녀의 옷차림에 그의 심장은 빠르게 쿵쾅대기 시작했다.이게 연애라는 건가 싶어서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는데 뻘쭘했던 하지수가 물어왔다.“나 별로야?”역시나 이런 여성스러운 원피스는 저한테 안 어울리는 건가 싶어 예수진의 말을 믿은 걸 후회하는 하지수였다.“나 옷 갈아입고... 아!”본인도 이런 착장이 어색해 옷을 갈아입으려고 했는데 그 순간 송문수가 하지수의 팔을 잡더니 그녀를 품에 안았다.그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깜짝 놀란 하지수는 빠르게 뛰는 심장박동 소리가 상대방에게 들릴 것만 같아 애써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문수 씨, 왜 그래?”제 품에 안긴 채 고개를 들며 물어오는 하지수를 바라본 송문수는 그녀와 한참 동안 시선을 맞추다가 말했다.“나 못 참을 것 같아.”“응?”“못 참겠어.”의문문이 서술문으로 바뀌는 순간, 둘의 상황도 완전히 변해버렸다.그녀를 눈앞에 두고도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안 그래도 괴로웠는데 치마까지 입으며 자신을 유혹하는 하지수에 송문수는 그녀를 집어삼킬 듯이 키스를 퍼부었다.“영화 보러 안 가?”미간을 찌푸리며 항의하는 그녀의 모습조차 예뻐 보였던 송문수는 그딴 영화는 개나 줘버리고 그저 그녀의 위에서 사랑을 나누고 싶었지만...망할 놈의 생리 때문에 또 한 번 자신의 욕구를 억누를 수밖에 없었다.이 상황이 죽을 만큼 힘들었던 송문수는 예전에 누렸던 방탕했던 생활에 대한 벌을 이렇게 받는 건가 싶기도 했다.“가자.”“나가자 이제.”송문수와의 키스가 싫은 건 아니었지만 이 상태로 더 있다가는 그가 이성을 잃고 자신을 덮쳐 피가 사방으로 흐르게 될까 봐 하지수는 그를 살짝 밀어내며 말했다.“잠깐만.”“왜?”하지만 송문수는 허리에 두른 팔을 풀 생각이 없는지 괜히 시간을 끌며 하지수 쪽으로 점점 더 다가갔다.훅 들어온 얼굴 공격에 볼이 빨개진 하지수는 속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