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투에서 그녀의 분노가 느껴졌다.사실 이해는 된다.어떤 여자라도 이런 상황에서는 화가 날 것이다.소이연은 루카스를 흘끗 보았고, 결국 루카스가 입을 열었다. “어젯밤에 내가 호텔에 갔는데, 소이연을 마주쳤어. 그때 브레이크가 고장 난 오토바이가 호텔 입구로 달려왔고, 내가 소이연이랑 민이를 막아줬는데, 조금 다쳤어. 소이연은 고마운 마음에 나 병원에 데려다줬고.”“근데 왜 간호까지 해야 해?” 임아영이 물었다. “병원에 데려다줬으면 됐지, 왜 밤새 간호까지 한 거지?”“내가 여기 있겠다고 했어요. 엄마랑 상관없는 일이에요.” 그때 갑자기 육민이 입을 열었다.임아영이 시선을 돌려 그를 보았다.“루카스가 아무도 모르는 병원에 혼자 있으면 쓸쓸해 할까 봐 내가 여기 있자고 했어요. 엄마는 저 혼자 병원에 있는 게 걱정돼서 같이 있던 것 뿐이예요.” 육민이 설명했다.“민이가 말한 그대로에요.” 소이연도 말했다. “이제 아영 씨가 왔으니까 저랑 민이는 갈게요.”임아영은 입술을 꽉 깨물었고, 낯빛은 굉장히 어두워 보였다. 소이연도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았다.이런 일은 루카스가 설명하는 게 더 맞다. 제3자는 그저 그들 감정의 골을 더 깊게 만들 뿐이다.소이연은 옷을 갈아입은 뒤, 육민을 데리고 빠르게 나섰다.육민은 아쉬운지 뒤를 돌아 루카스를 한번 보았다.그리고 루카스와 임아영이 같이 있는 그 모습을 루카스가 언젠가 내장까지 다 후회하는 날이 올 것이라 생각했다. 그들이 병실을 나서고, 복도에 들어서자 임아영이 소이연을 불렀다.“소이연.”예전에는 그래도 “이연 언니”라고 청했는데, 이제는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소이연은 발길을 멈추었다.육민도 방어적인 얼굴로 임아영을 쳐다보았다.“예전에 루카스랑 거리 유지하겠다고 약속했잖아요. 근데 어젯밤에는 왜 같은 방에서 같이 잔거죠? 저도 루카스랑 같이 자본 적 없…. ”“저랑 루카스는 결백해요.” 소이연은 흥분한 임아영의 말을 끊었다.“어젯밤 일은 방금 다 얘기했고, 더 많은 얘기가 듣고 싶
“더 솔직히 말하자면, 만약 아영 씨가 저한테 거리 유지하라는 말만 안 했어도 어젯밤에 저는 호텔을 나서지도 않았을 거고, 그럼 사고도 안 생겼겠죠!” 소이연은 조금 강한 말투로 말했다.그녀의 오해를 샀기도 하고, 임아영에게 정말 대답하지 않은 것도 있었다.“진짜 똑똑하네.” 임아영은 더욱 차갑게 웃었다. “이제 모든 책임을 나한테 뒤집어 씌우다니. 하하. 소이연, 당신이 업계에서 물 만난 고기처럼 지낼 수 있는 것도 다 이유가 있는 것 같네.”“믿으면 믿고, 안 믿으면 말아요.” 소이연은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았다.그녀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그리고 소이연은 육민을 데리고 가려 했지만, 임아영이 그대로 소이연의 앞을 막았다.소이연은 미간을 찌푸렸다.“소이연, 내가 방금 말했지. 루카스를 좋아하는 여자가 그동안 너무나도 많았다고. 그렇게 많은 여자들 중에서 루카스를 꼬시는 데 성공한 여자는 없었어. 근데 그게 정말 루카스가 흔들리지 않아서, 다른 여자들한테 관심이 없어서였을까? 아니, 다 나 때문이였어.” 임아영은 차갑게 말했다.“전 두 사람 일에 끼어들 생각 정말 없어요.”“아무도 나한테서 루카스를 뺐어갈 수 없었다고! 당신이 얼마나 예쁘던, 남자를 꼬시는 능력이 얼마나 대단하던, 당신은 나 절대 못 이겨!” 임아영이 또박또박 말했다.소이연은 순간 임아영이 정신적으로 무슨 문제가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아영 씨, 제가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얘기하는데, 저 루카스 안 좋아해요. 아영 씨한테서 루카스 뺏으려는 생각은 해본 적도 없고요. 근데 만약 아영 씨가 굳이 이렇게 악의적으로 저를 비난하시면, 저도 아영 씨 망상이 현실이 되게 해드릴 수 있어요.”소이연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감히 나한테 협박을 해?” 임아영은 눈썹을 치켜 올렸다.“정답이에요. 만약 저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조그마한 원한이라도 꼭 갚아준다는 것도 잘 알겠죠.만약 못 믿겠으면 제 과거 잘 찾아봐요.” 소이연도 지지 않고 말했다.말이 끝나자마자,
“아영 씨가 계속 나한테 내가 널 꼬신다고 그러네.”“아니야. 난 냥, 그냥 두 사람이 거리를 유지했으면 좋겠어서 그랬어... 루카스, 네가 그랬잖아. 거리 유지하겠다고. 근데 두 사람의 어젯밤 행동들이 나 진짜 이해가 안 돼서 이연 언니랑 얘기해 본 거야.” 임아영은 정말 억울한 듯 설명했다.“내가 말할게. 난 지금 널 꼬시고 있고, 우리가 이렇게 자주 의도치 않게 만나는 것도, 어젯밤 사고도,민이가 병실에 있겠다고 한 것도 다 내가 고의로 계획한 거야.” 소이연은 시원시원하게 다 말했다.좋은 사람인척 해도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힘을 얻으려면 쟤지 말고 차라리 시원하게 나쁜 사람이 되는 게 낫지.사람은 한 번 나빠지면 피할 수 없다. 육민은 소이연의 말을 듣고 미간을 찌푸렸다.그는 엄마가 이렇게 자기 자신을 안 좋은 사람처럼 말하는 것이 싫었다.하지만 어른들 말에 쉽게 끼어들면 안 되고, 그것은 버릇없는 행동이기에 그는 작은 입술을 꽉 깨물고 침묵을 유지했다.“방금 아영 씨가 다 까발렸어. 난 화가 나서 밀어버렸고. 이제 나도 숨기지 않을게. 난 루카스 좋아하고, 난 아영 씨한테서 너를 뺏으려...” 소이연은 담담하게 말했다.“소이연 그만해.” 그러자 루카스가 재빨리 소이연의 말을 끊었다.소이연은 애초에 신경도 쓰지 않았고 루카스를 보며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기왕 다 까발려진 거, 루카스 너한테 하나만 물을게. 넌 임아영이랑 헤어지고 나랑 만날래, 아니면 내 마음 거절할래?”임아영의 몸이 그대로 굳는 것이 느껴졌다.아마 소이연이 이렇게 세게 나올 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소이연을 정말 쉽게 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루카스를 바라보고 있었다.루카스는 의외로 한참 동안 대답이 없었다.“루카스?” 임아영은 참지 못하고 그를 불렀다.루카스는 침을 꼴깍 삼키며 직설적으로 말했다. “소이연 너 막말하지 마. 난 네가 나한테 아무런 감정 없는 거 다 아니깐.”비록 말로는 소이연이 항상
“루카스.” 임아영은 참지 못하고 그를 불렀고, 루카스는 얼굴도 변하지 않은 채 돌아보고 말했다.“가자.”“지금 내 탓을 하는 거야?” 임아영이 그에게 물었다.“아니.” 루카스는 담담히 말했다.“근데 너 지금 기분 나쁘잖아.” 임아영은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루카스, 난 널 너무 사랑해서 네 아주 작은 표정 변화라도 네 기분이 어떤지 알 수 있어.그래서 소이연이랑 거리 유지하라고 한 건데, 넌 그게 그렇게나 기분 나쁜 거야?”“아니야.” 루카스가 다시 부인했다.“3년의 우리 감정이 이제 막 너를 안 소이연보다 못하다는 거야?” 임아영은 점점 더 흥분해져 눈물이 미친 듯이 흘러내렸다.루카스는 임아영을 보며 말했다. “난 그냥 네가 날 위해서 너 스스로의 양심까지 저버리지 않았으면 좋겠어.”그러자 임아영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그녀는 루카스가 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소이연이 너 안 밀었지?” 루카스가 확신에 찬 말투로 물었다.“이렇게 믿는다고?” 그의 물음에 임아영은 멘탈이 무너져 버렸다. “난 쟤 성격을 잘 아는 것뿐이야......”“대체 안지 얼마나 됐다고, 왜 쟤를 믿는 거야? 우리는 이렇게나 오랫동안 알고 지냈는데, 왜 난 못 믿고? 나는 너한테 그렇게 아무것도 아닌 존재야?”임아영은 말할수록 더 흥분했고, 창백하던 얼굴이 조금 빨개졌다.호흡도 더 빨리진 것 같았다.루카스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다시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오늘 일은 이만하면 됐어. 나랑 소이연이 아무 사이 아닌 거 정말 맞아. 이건 네가 너무 깊게 생각한 거야.”“진짜 내가 깊게 생각한 거야?” 임아영은 굴하지 않았다.“넌 지금까지 누구한테나 항상 차갑고 매정하게 대했어. 근데 소이연한테만 유일하게 잘해줬잖아?! 소이연이 예뻐서야? 네가 쟤 얼굴이 마음에 들어서 그런 거면, 나 성형하면 돼.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어......”“그만해 임아영.” 루카스는 결국 임아영의 말에 화가 나 버렸다. “난 너랑 싸우기 싫어. 만약 네가
임씨 가문의 모든 사람들이 찾아왔다.모두 갑작스러운 임아영의 소식에 긴장한 상태처럼 보였다. 임아영은 건강의 문제로 항상 임씨 가문의 무한한 보살핌을 받았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아영아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서울 온 지 겨우 몇 개월 만에 벌써 두 번이나 응급실에 왔어.”임씨 할머니는 책임을 묻는 듯한 말투로 말했지만, 사실은 걱정 어린 눈빛을 하고 있었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임아영은 고개를 저으며 평소와 같은 착한 여자의 모습이었다.“서울이 네가 요양하기에 적합하지 않은가 보다. 할머니는 너랑 루카스가 결혼하고 나면, 너 보내기 아쉬워서 외국에 안 나가고 서울에 같이 살자고 할 생각이었는데.”임씨 할머니는 마지못해 말했다. “이런 걸 보니, 역시 외국으로 가야겠지?”임아영은 조용히 루카스를 보았다. 마치 그의 의견을 듣고 싶어 하는듯해 보였다. 루카스가 돌아온 것은 비록 아직 계속 조사 단계지만 국내 사업 확장을 위해서였다.임씨 할머니는 임아영의 시선을 보고는 고개를 돌려 루카스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루카스가 이렇게 널 사랑하는데 당연히 네가 가는 곳이 어디든 함께 가지 않겠어? 그렇지 루카스?”하지만 디루카스는 바로 대답을 하지 않았다.임씨 할머니는 이어서 말했다. “네가 서울로 오지 않았으면, 루카스는 아예 돌아오지도 않았을 거야.”“그래?” 루카스는 입술을 문지르더니 짧게 대답했다. “응.”처음 루카스가 귀국할 때, 국내 시장에 경제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잠재력 때문이었고, 다른 쪽으로는 임아영을 위해서긴 했다.“그럼 이제 만약 내가 너랑 같이 외국으로 가겠다고 하면, 넌 같이 가줄 거야?” 임아영은 루카스에게 간절한 눈빛으로 물었다.“지금은 건강이 가장 중요하니까, 넌 우선 좀 쉬고, 나중 일은 다시 얘기하자.” 루카스는 돌려서 말하고 질문에 대한 대답은 하지 않았다.임아영은 실망한 눈치였다.임씨 할머니는 손녀의 기분을 알아채고 민망함을 피하기 위해 이 일을 더 이상 묻지 않았고, 화제를 돌려
임씨 할머니가 가고, 루카스는 다시 병실로 돌아왔다.병실에는 임아영이 홀로 남아있었다.의료진과 간병인도 그녀가 모두 내보낸 것이였다. 루카스가 돌아온 것을 보고 그녀의 얼굴에 찬란한 웃음이 다시 피어났다.마치 오늘 미친 사람처럼 흥분했던 그 여자랑는 온데간데 사라진듯 해보였다. “루카스, 왔어?” 그녀는 적극적으로 그를 불렀고, 목소리에는 콧소리가 섞여있었다.마치 애교를 부리는 것 같았다.마치 정말 그들이 싸운 사실을 잊기라도 했다는 듯.“혹시 기분 안 좋아?” 임아영은 차가운 얼굴을 한 루카스를 보고 조심스럽게 물었다.“아니.”“할머니가 뭐라고 하셨어?”“아니.” 루카스는 더 이상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언제부터인지 그는 정말 변한 것 같았다. 모순적인 사람이 된 것 같았다.“할머니도 나쁜 뜻은 없을 거야.” 임아영은 긴장한 채 급히 설명했다. “할머니가 날 너무 아끼셔서 그래. 마음에 담아두지 마. 애초에 다 우리 좋으라고 그러시는 거니까, 루카스도 화 안 내면 안 돼?”“나 화 안 났어.”그는 정말 화가 나지 않았다.임씨 할머니도 그녀의 입장에서 보면 자기 손녀를 위해 뭐든 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강경한 태도에 악랄하긴 했지만, 이해는 할 수 있었다.그는 임아영에 대해 한 번도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단지 그녀는 몸이 약하니까 더더욱 보호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뿐이었다.하지만 이제는......지금은 도대체 왜 이런 거야?진짜 소이연 때문인가?루카스는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졌다.알 수 없는 공허함이 그가 속으로 생각한 것이 진짜라고 확신할 수 없게 만들었다.“아니면 내가 오늘 소이연 모함해서 나한테 화내는 거야?” 임아영이 또 물었다.이번엔 바로 자신이 한 일을 인정했다.루카스는 그녀를 보고 있었는데, 임아영은 눈이 시뻘게져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미안해 루카스. 오늘은 내가 너무 흥분했어. 그래서 나 스스로도 믿기 힘든 짓을 한 거야. 소이연은 확실히 날 밀지 않았고, 내가 모함하고 싶어서 일부러
“그럼 넌...... 나랑 헤어질 생각이야?” 임아영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루카스를 보았다.루카스는 침을 꼴깍 삼켰다.그는 그 순간 단번에 대답하지 못하겠다는 자신을 발견했다.“앞으로, 앞으로는 이런 일 없을 거야. 약속해.” 임아영은 급히 잘못을 인정했다. “루카스 나 버리지 마, 응?”“나 너 안 버려.” 루카스가 말했다.그는 예전에 임아영에게 평생 보살펴주겠다고 말한적이 있었고, 한 번도 말로만 할 거라고는 생각해 본 적 없었다.소이연만 아니었다면......그렇다.감정은 선후를 나누지 않는다. 하지만 예의는 나눠야 한다.그와 임아영은 3년의 연애를 했지만, 그는 그녀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지 않았다.“루카스, 고마워.” 임아영은 눈물을 흘리며 웃었다.루카스는 억지로 웃어 보이며 말했다. “앞으로 이상한 생각 하지 마.”“응. 나 앞으로 절대 이상한 생각 안 할 거야.” 임아영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이번 싸움은 이렇게 완전히 마무리된 셈이 되었다. ......서울 최고의 7성급 호텔.소이연과 육민은 호텔을 다시 잡았다.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육민은 계속 무엇인가 말하려다가 그만두기를 반복했다.소이연은 차마 보지 못하고 장난을 쳤다. “민아, 무슨 말 하려고? 참지 말고 말해 봐. 병나겠어.”육민은 한참 동안 소이연을 보다가 일부러 용기를 내 말 했다. “엄마, 저 녹음했어요.”소이연은 조금 깜짝 놀랐다.육민의 어린 나이에 이런 생각까지 할 줄은 몰랐다.누굴 닮은 거지? 분명 육현경일 것이다.“엄마가 밀지 않았다는 걸 증명할 수 있고, 그 사람의 진짜 얼굴을 루카스한테 보여주기 위해서 녹음했어요.” 육민이 당당하게 말했다.소이연이 살짝 웃으며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이제 그녀와 키도 거의 비슷하고, 아니, 한 달 동안 또 큰 것 같았다. 그녀보다 조금 더 커졌다.그녀가 말했다. “엄마는 민이가 이렇게 똑똑해서 너무 기뻐. 시시비비가 확실한 것도. 근데 민아, 어른들 세상은 사실 민이 생각만큼 그렇게 순수하지
“근데 제 생각에는 루카스가 마음이 있는 거 같아요.” 육민은 확신에 찬 말투로 말했다. “엄마 좋아해요.”“그럼 우리는 더더욱 거리를 유지해야겠네.” 소이연은 무엇인가 결심한 얼굴로 말했다.“제일 해선 안 되는 짓이 다른 사람 감정을 망치는 일이야. 민아, 이건 꼭 기억해. 절대 제3자가 되면 안 돼!”“저희는 제3자가 아니에요. 그 사람이 제3자라고요.” 육민은 아주 흥분해서 말했다.평소에 육민이 이런 식으로 강하게 그녀에게 말한 적은 없었다.항상 그녀의 말을 잘 들었다. 근데 오늘은 왠지 모르게 고집을 부리고 싶었다. 육민은 오늘 그녀가 임아영 앞에서 억울한 일을 당했다고 생각하는 걸까?이건 억울한 일도 아니다.그 이유는 첫번째로, 비록 임아영 때문에 억울하긴 했지만, 오늘 그녀가 이렇게 대처한 게 손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임아영의 나쁜 짓으로 그녀와 루카스 사이에 서먹함을 만들었다고 생각했다.둘째로, 임아영은 그녀에게 정말 아무런 상관도 없는 존재이다. 그녀는 애초에 임아영은 물론, 이 일도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다.“민아......”“루카스는 진짜 아빠예요.” 육민은 마치 참을 수 없다는 듯 큰 소리로 외쳤다.소이연은 어떻게 육민을 달래야 할지 몰랐다.그녀는 마지못해 말했다. “진짜 아빠가 필요해?”“아니요.” 육민이 부정했다. “비록 저도 지금의 루카스가 너무 밉지만, 그 사람이 아빠라면 저는 도저히 아무 신경 안 쓸 수가 없어요.진짜 기억이 돌아오면 죽을 때까지 후회할 거예요. 엄마, 그냥 원래 아빠를 빨리 다시 꼬시면 안 돼요?”“민아.” 소이연은 꾹 눌러 참고 간절히 말했다. “만약 그 사람이 네 아빠라고 해도 엄마는 다시 그 사람을 좋아할 수 없어. 이미 자기가 선택한 길이 있으니까, 우리도 그 사람을 존중해 줘야 해.”“그렇지만 이미 다 잊어버렸잖아요......”“어쨌든, 그것 또한 그 사람 선택이잖아. 이미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는데 만약 그 사람이 더 잘 지내길 바란다면 방해하면 안 돼.”“
“둘이 아무 소리도 없더니 할 건 다하네.”당연히 가장 먼저 입을 연 건 예수진이었다.“우리 지수를 그렇게 적극적인 여자로 만들고 송문수 대단하다.”제 친구 앞이라고 빼지 않는 송문수는 고개를 쳐들며 말했다.“내가 매력이 좀 넘치잖아.”“적당히 해.”그 모습에 예수진이 어이없다는 듯 말하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언니랑 지수는 왜 술 안 마셔?”워낙 시끌벅적한 걸 좋아하던 예수진은 술도 아주 좋아하는데 본인은 임신 중이라 마실 수가 없으니 자꾸만 주변 사람들을 부추기고 있었다.“이연이는 안돼.”“지수도 오늘은 안 돼.”제 말이 끝나자마자 들려오는 송문수와 육현경의 대답에 그녀는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왜? 두 사람도 임신했어 설마?”“아니야.”얼토당토않은 말에 하지수는 다급히 부인했다.“그런데 왜 못 마셔?”“생리니까 못 마시지.”“송문수, 언제 이렇게 다정해졌냐? 지수 생리인 것도 다 알고 기특하네 좀.”예수진의 장난에도 기분이 좋았던 송문수는 아주 환하게 웃어 보였다.“이연 언니는 왜 못 마셔?”예수진은 이번에는 못마땅한 눈빛으로 육현경을 보며 물었다.“아무튼 안돼.”“언니도 생리야?”그렇게 우연이 겹칠 리가 없는데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미간을 찌푸리는 예수진에 소이연은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히고는 입술만 물어뜯고 있었다.“뭘 자꾸 그렇게 물어.”“언니 어디 아파요? 나 놀래키지 말고 말 좀 해봐요.”육현경까지 말을 아끼니 깜짝 놀란 예수진은 잔뜩 긴장한 채로 물었지만 돌아오는 건 육현경의 핀잔이었다.“넌 매일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이연이가 왜 아파!”“그럼 왜 못 마시냐고.”예수진의 질문에 입술을 말아 물며 소이연을 보는 육현경의 눈에서는 꿀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예수진은 소이연을 신 모시듯 떠받드는 제 오빠를 보며 정말 한 사람을 바꾸는 건 사랑밖에 없다는 걸 다시 한번 실감하였다.“도대체 뭘 숨기는 거야?”예수진이 끝까지 캐묻자 소이연이 할 수 없이 숨을 한번 들이마시며 답했다.“나 임신했
사실 하지수는 늘 송승우를 어떤 사람이라고 정의 내려야 할지 몰랐었다.우수하지 않다고 하기엔 국가사업에 공헌할 정도로 대단한 두뇌를 지니고 있었지만 또 그렇다고 아무도 비비지 못할 정도로 대단한 건 아니었다.그런데 송승우는 늘 고고한 척, 자신이 다른 사람의 우위에 있는 것처럼 행동했다.CEO들은 몸에서 돈 냄새가 난다면서 싫어했던 그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께 회사를 물려받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해왔었다.그는 다른 사람과 교류할 때마다 무의식인지 아니면 의도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늘 자신의 박학다식함을 뽐내며 자신의 우수함을 드러내려 했다.이제 보니 가식적이라는 말이 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것 같다.하도 가식적이어서 하지수는 이제 그가 짜증 날 지경이었다.“어릴 때 게임 할 때도 송승우는 옆에 앉아서 코드나 쳤고 우리가 예능 볼 때는 그런 조작된 건 안 본다면서 머리 나쁜 사람들만 좋아하는 거라고 비웃었어. 우리가 디저트를 먹으면 지능 떨어진다고 무시했고...”예수진은 송승우 때문에 힘들었던 지난날을 떠올리며 쉴 새 없이 말했다.하지수와 다르게 정말 힘들어했던 그녀는 송승우가 책을 너무 많이 읽어서 미친 건가 하는 생각도 잠시 했었다.“됐어, 그 사람 얘기 그만하자.”“너랑 문수만 잘 지내면 됐지, 송승우는 과거일 뿐이야.”“응.”이제 송승우한테는 조금의 감정도 남지 않은 하지수는 예수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그때 도우미 하나가 와서 식사 준비가 끝났다고 알려주자 그들은 다 같이 테이블로 향했다.거기에는 하연이와 민이도 있었는데 민이는 육현경을 쏙 빼닮아 겉은 차가워 보였지만 사실은 동생을 아주 잘 챙겨주는 아이였다.물론 그의 다정함은 자신이 인정한 사람 한해서만이었다.민이가 하연이를 챙겨주는 모습을 보던 예수진은 감탄하며 말했다.“우리 조카가 결혼할 생각만 하면 난 벌써부터 가슴이 아파.”“제수씨도 아무 말 없는데 네가 왜 가슴이 아파.”장난을 치는 송문수의 말을 예수진 바로 맞받아쳤다.“언니는 당연히 괜찮겠지, 며느
예수진의 말에 정곡을 찔린 듯 소이연은 얼굴을 붉혔다.“거봐요, 오빠는 내가 제일 잘 안다니까. 그냥 겉으로만 멀쩡해 보이는 거예요.”소이연의 반응에 예수진은 득의양양해 하며 말을 이어나갔다.“겉으로는 차가워 보여도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아주 대범해지는 사람이거든요. 언니는 이제 오빠의 넘치는 사랑을 받을 일만 남았네요, 물론 침대 위에서요.”“그만 해요 수진 씨.”신나서 얘기하는 예수진에 못 말린다는 듯 웃던 소이연이 그녀를 타박하듯 말했다.“태교하는 사람이 자꾸 그런 생각 하면 어떡해요?”“아직은 그냥 핏덩이라서 아무것도 몰라요.”“...”“지수야, 너는 요즘 뭐 하고 지내? 평소에 문자 보내도 답장 늦게 하던데.”말을 하던 예수진은 임신한 뒤로 아무것도 못 하게 하는 계지원 때문에 요즘 부쩍 재미없어진 일상을 떠올리고는 서러운 듯 입술을 삐죽였다.“그냥 회사일 처리하고 있었지. 얼마 전에 경영에 문제가 생겨서 회사 부도날 뻔했거든. 그래서 문수 씨랑 일 처리만 했어.”“송문수?”“걔가 회사 일을 한다고?”송문수가 일한다는 소리에 예수진은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그래, 안 믿길 거 아는데 진짜니까 그런 눈으로 보지 마. 문수 씨 정말 많이 변했어, 더 이상은 맨날 놀러만 다니던 망나니 아니야. 이번에도 문수 씨 덕분에 송씨 집안이 다시 일어서게 된 거야. 그리고 이연 언니랑 현경 씨도 많이 도와줬고.”하지수는 곧바로 소이연을 보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정말 고마워요 언니, 언니랑 형부 도움 아니었으면 저희 집안은 진작에 끝났을 거예요.”“아니에요, 별로 힘든 일도 아니었는데요 뭘.”“현경이가 안 그래도 문수 씨 많이 변했다는 말 하더라고요. 밤에도 전화해서 기획서 어떻냐고 물어볼 정도로 열정적이래요.”“진짜 그렇게나 많이 변했다고요?”소이연까지 긍정하자 예수진은 눈을 크게 뜨며 하지수를 바라봤다.“네가 바꾼 거야?”“내가 그 정도는 아니야. 그냥 나이가 점점 드니까 본인이 알아서 바뀐 거겠지.”“송문수가 바뀐 뒤
그래서 하지수는 이를 악문 채로 따져 물었다.“문수 씨, 당신 형이 올린 인스타 봤어?”자신이 송승우를 이긴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었는데 갑작스레 인스타를 언급하는 하지수에 송문수는 자연스레 핸들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안 그래도 거슬렸는데 하지수의 저 질문은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격이었다.“그걸 봤는데도 아무렇지도 않아?”“응, 괜찮아. 그냥 인스타일 뿐인데 뭘 신경 써.”자신이 송승우를 선택할까 봐 두려워하는 모습이 조금도 보이지 않자 하지수는 조금 실망했지만 그래도 괜찮은 척 말했다.“신경 안 쓴다니 다행이지만 그래도 당신 아내로서 해명할게. 나랑 송승우 씨는 아무 사이도 아니야.”아무 사이도 아니라니, 둘이 얼마나 뜨거운 사랑을 나눈 사이였는지 온 집안사람들이 다 아는데 저런 말을 하는 하지수가 어이없었지만 송문수 본인도 뭐 그다지 깨끗한 사람은 아니었기에 그는 자신도 하지 못한 것을 하지수에게 요구할 자격은 없다 생각해서 입을 다물었다.하지수는 송승우를 진짜 사랑한 거였지만 자신은 그저 다른 여자들을 갖고 논 것이기에 더 따질 권리가 없는 것 같았다.“오늘 어머니랑 같이 쇼핑가기로 했는데 송승우 씨가 먼저 따라가겠다고 한 건 맞아. 나랑 어머니도 거절하기 힘들어서 같이 오긴 했는데 나는 송승우 씨랑은 말도 안 섞었어. 거리도 엄청 많이 뒀고 못 믿겠으면 어머니한테 물어봐도 돼.”하지수의 해명을 듣고 있던 송문수는 오로지 저를 위해 저렇게 자세히 상황설명을 해주는 건가 싶어 또 가슴이 벌렁거리기 시작했다.그녀의 작은 행동에 또 흥분한 송문수는 운전에 집중할 수가 없어 애써 심호흡을 하며 정면을 주시했다.“내가 선택한 사람은 당신이니까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당신한테 진심일 거야. 당신한테 미안한 짓은 절대 안 해.”하지수의 약속에도 송문수는 꿈쩍도 안 했지만 하지수는 둘 사이의 작은 오해가 큰 불화로 번지지 않게 하려고 아무런 반응이 없어도 상황설명을 마쳤다.제 할 일을 마친 하지수는 안광이 사라진 눈으로 차 시트에 기대 있었
송문수는 애초에 쉽게 만족하는 사람이었기에 하지수가 조금만 잘해주면 한동안 기뻐했다.둘의 웃는 모습을 지켜보던 허영지도 흐뭇하게 그들을 지켜보며 이렇게 사이좋은 둘이라면 걱정할 필요도 없을 것 같았다.“지수 데리고 밥 먹으러 가려고 온 거라고 했지?”“네.”“옷도 다 입어봤으니까 얼른 가봐.”데이트하러 가라는 말만 안 했지 사실 허영지는 그 둘에게 오붓한 공간을 마련해주고 싶었기에 서둘러 둘의 등을 떠밀었다.“어머니는요, 저녁 어떻게 하시려고요?”“승우 집에 있잖니. 승우랑 같이 쇼핑 좀 더 하면서 네 시아버지 옷 좀 더 보려고. 내 걱정 말고 얼른 가봐.”송승우는 당연히 내키지 않았지만 어머니가 말도 다 뱉은 마당에 거절하기도 쉽지 않아 그저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그럼 차 키는 두고 갈게요.”“저랑 문수 씨는 이만 옷 갈아입을게요.”옷을 갈아입은 둘은 손을 잡고 쇼핑몰 밖으로 나갔고 그 둘의 뒷모습을 노려보던 송승우는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승우야.”송승우는 갑자기 들리는 어머니의 부름에 다급히 표정을 감추었지만 허영지는 이미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안다는 듯이 말했다.“그때 너랑 지수 사이 우리도 다 알아. 하지만 너희 둘은 이미 끝난 사이고 지수랑 문수가 저렇게 잘 지내니까 이제는 너도 형으로서 축복해줘야 하지 않겠니?”송승우도 물론 어머니의 의도를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그 옛날 하지수가 좋아하던 건 분명 자신이었는데, 그때의 제삼자인 송문수가 하지수를 채가는 게 송승우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말을 마친 허영지는 이만 옷을 갈아입으러 피팅룸으로 들어갔다.송승우도 성인이었기에 조언도 적당히 해야지 선을 넘으면 그냥 가족 사이의 불화만 생길 것이기에 허영지도 여기서 멈춘 것이었다.하지만 어릴 때부터 송문수에게 져본 적이 없던 송승우는 이번에도 제 여자를 그에게 내어주고 싶지 않아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누르며 주먹을 꽉 쥐었다....송문수의 차에 앉은 하지수는 처음으로 저를 데리러 온 송문수에 못내 기분이 좋
하지만 원체 쇼핑을 싫어하는 송문수의 성격을 알고 있던 하지수는 그의 냉담함에 실망하지 않았다.이렇게 앉아서 옷을 갈아입는 저를 봐주는 것도 그의 노력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문수 왔구나.”허영지의 부름에 송문수가 짤막하게 답했다.“좀 있다 모임 있어서 지수 데리러 왔어요.”“그래, 젊은 사람들이야 그런 모임에 나가면 좋지.”전에는 송문수가 밖에 나가겠다고 하면 거절은 안 해도 표정은 굳어지던 허영지가 너그럽게 대꾸하는 것도 의외였다.“아직 이르니 너도 정장 한번 입어보고 가.”“바로 가야 되는데 갈아입기 귀찮아요.”“얼른 갈아입어.”“엄마, 나 온종일 일해서...”“지수가 너 준다고 한참 고른 건데 와이프 위해서 그 정도도 못 해줘?”남녀 사이에 있어서는 목석같기만 한 제 아들을 보며 허영지가 미간을 찌푸렸다.엄마의 말을 들은 송문수가 하지수를 바라보자 하지수는 다급히 말했다.“잘 어울릴 것 같아서 고르긴 했는데 갈아입기 싫으면 그냥 보기만 해. 맘에 들면 당신 사이즈로 맞출게.”“입어볼게, 맘에 안 들 수도 있으니까.”송문수가 하도 담담하게 대답해서 떨리는 그의 손가락을 주의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사실 그는 하지수가 자신을 위해 옷을 골라줬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 놀라는 중이었다.기쁜 마음 반 당황스러움 반으로 옷을 갈아입은 송문수가 나오자 직원들은 일제히 그를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너무 잘 어울리세요, 손님 더 멋있어 보이는 것 같아요.”“진짜요?”송문수가 직원들의 말을 반신반의하자 하지수가 나서며 말했다.“진짜야. 진짜 너무 멋있다.”“그래?”하지수의 확신에 찬 대답을 들은 송문수는 흘러나오는 웃음을 감추지 못하고 득의양양해 하며 대꾸했다.“다 내가 잘 생겨서 그런 거야. 옷이랑은 큰 상관 없지.”이렇게 가끔 자아도취 하는 송문수를 보며 하지수는 웃음을 터뜨리더니 그에게로 다가가 넥타이를 정리해주었다.그 둘의 다정한 모습을 보던 주위 사람들은 다들 흐뭇한 미소를 지었지만 송승우만은 아주 언짢아하
생일파티에 관한 일을 다 의논한 뒤 하지수는 허영지와 함께 그녀의 드레스를 맞추러 갔는데 하지수의 드레스도 같이 맞추자는 시어머니의 권유에 그녀도 옷을 입으로 들어가게 되었다.그래서 핸드폰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것인데 하필 그때 송승우가 송문수의 전화를 받게 된 것이다.옷을 다 입어보고 나서도 시어머니와 쇼핑을 하느라 굳이 핸드폰을 보지 않았던 하지수는 송문수에게서 연락이 온 줄도 모르고 있었다.다시 한번 그녀의 핸드폰이 울렸을 때 송승우가 이번에도 자신이 받으려고 했는데 하지수가 그걸 보고 빠르게 핸드폰을 낚아채 갔다.그녀의 행동에 표정이 굳어버렸던 송승우는 이내 송문수가 자신이 올린 인스타를 봤을 생각에 다시 입꼬리를 올리며 시선을 신문에 고정한 채 둘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문수 씨.”송문수의 이름을 부르는 하지수의 목소리에는 기대와 반가움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잠시 떨어져 있던 연인이 재회할 때나 나올법한 목소리에 송승우의 표정은 한층 더 어두워졌다.“아직도 바빠?”“어머니 모시고 드레스 피팅해보고 있었어. 지금은 디자이너님이랑 디테일 얘기하고 있어. 나도 아까 하나 입어봤는데 사진 보내줄게.”“지금 데리러 갈 건데 어디야?”잔뜩 신나서 말하던 하지수는 이제 고작 4시밖에 안 됐는데 퇴근했다는 송문수가 의아하여 놀라며 물었다.“퇴근했어?”“주말이라서 일찍 퇴근했어.”“회사도 좀 안정돼서 직원들도 앞으로 주말은 다 쉬기로 했어.”“그래.”고개를 끄덕이며 주소를 불러준 하지수는 웃는 얼굴로 전화를 끊고는 허영지에게로 다가갔다.하지만 송문수와 하지수가 싸울 것이라 예상했던 송승우는 화도 내지 않는 송문수에 혹시 그가 하지수를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하지만 사실 송문수는 인스타를 보자마자 차오르는 화에 핸드폰을 손이 하얗게 질릴 정도로 꽉 쥐고 있었다.다른 사람이 채갈까 봐 하지수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심정이 굴뚝같은데 그런 그녀가 옛날에 좋아하던 송승우와 함께 있는 걸 본 이상 그는
결국 송승우에게 차 키를 내어준 하지수가 허영지와 함께 밖으로 나간 뒤 자연스레 뒷좌석에 타려 하는데 송승우가 갑자기 그녀를 불러세웠다.“지수야, 넌 앞에 타.”“어머니랑 같이 앉을게요.”“장안시에 길은 나도 잘 몰라서 알려줄 사람이 필요해.”단호한 그의 말을 하지수가 거절하기 어려워하자 허영지가 나서며 말했다.“그럼 내비게이션 켜. 바로 윌런 호텔로 갈 거야, 호텔 사장이랑 얘기 다 끝나서 아마 우리 기다리고 있을 거야.”말을 마친 허영지는 또 일부러 하지수를 보며 말했다.“지수는 나랑 같이 타자, 말동무해줘.”“네, 어머니.”제 옆에 앉지 않아도 된다고 저렇게 입이 귀에 걸린 채로 좋아하는 하지수를 보며 송승우는 표정을 굳힌 채로 운전석에 올라탔다.그렇게 내비게이션을 켜고 윌런 호텔로 출발하자 허영지가 하지수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지수야, 어제 내가 한 말 그냥 흘려듣지 말고 잘 생각해봐.”“무슨 말이요?”“너랑 문수 아이 얘기 말이야.”“아, 네.”“그냥 대답만 하지 말고 노력을 해야 애가 생기지.”허영지가 거리낌 없이 남사스러운 말을 하자 하지수는 얼굴이 빨개진 채로 대답했다.“어젯밤에 문수 씨랑도 얘기했어요.”“문수도 알겠대?”“네.”“그럼 난 그냥 기다리고만 있으면 된다는 말이지?”하지수가 다시 고개를 끄덕이자 허영지는 아주 기뻐하며 말했다.“그럼 나는 할머니 될 날만 기다리고 있을게.”그런 허영지와 반대로 하지수가 송문수의 아이를 낳는 걸 용납할 수 없었던 송승우는 핸들을 잡은 손에 힘을 주며 이를 갈고 있었다.윌런 호텔에 도착한 뒤 세 사람은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사장 사무실로 향해 파티 당일의 규모와 배치에 대해 의논하기 시작했는데 이런 비즈니스적인 자리를 포함한 모든 인간관계를 꺼리던 송승우는 얘기에는 참여하지 않고 가만히 자리만 지키고 있었다.그렇게 심심해하던 송승우는 문득 무슨 생각에서인지 핸드폰을 들어 사진을 찍었다.허영지와 하지수도 담긴 사진이었지만 그 둘은 파티 준비에 열과 성을 다하고
“이연 언니가 왔다고?”오랜만에 들려온 소이연의 소식에 하지수는 흥분하며 답했다.“그럼 당연히 가야지, 오랫동안 못 봐서 안 그래도 궁금했는데. 육현경 씨랑 이연 언니가 나 엄청 많이 도와줘서 직접 만나서 감사 인사 하고 싶었어.”“계지원 씨 집에서 모이기로 했어. 예수진 씨 배도 점점 불러서 움직이기 힘드니까 그냥 거기서 보기로 했어.”“그래. 그럼 퇴근할 때 연락해. 나는 먼저 어머님이랑 아버님 생일파티 준비하고 있을게.”“응.”밥을 다 먹은 두 사람은 각자 알아서 집을 나섰고 하지수는 바로 송 씨 가문별장에 시어머니를 모시러 갔다.하지수가 안으로 들어가자 송승우가 소파에 덩그러니 앉아있는 게 보였다.그와 단둘이 만나는 건 아직 어색했기에 하지수도 입을 다물고 있었는데 그런 그녀를 한참이나 바라보던 송승우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엄마 모시러 온 거야?”“네.”“집에 계속 계시는 거예요?”“나갔으면 좋겠어?”헛웃음을 흘리며 묻는 송승우에 하지수가 다급히 해명했다.“아뇨, 그냥 전에는 계속 일로 바쁘셨던 분이 계시니까 물어본 거예요.”“전에는 연구과제 때문에 바빴는데 이제는 나 없이도 잘 돌아가서 한가해.”“아, 네.”고개를 끄덕이는 하지수를 보며 그녀가 저를 불편해하는 걸 느낀 송승우는 올라오려는 화를 참으며 물었다.“문수는?”“출근했어요.”“주말에도 출근해?”“요즘이 회사한테 중요한 시기라서 일요일만 쉬기로 했대요. 내일은 안나가요.”사실 송문수에게는 거의 휴일이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처리해야 할 일이 매일 산더미여서 그는 시간만 나면 사무실에 틀어박혀 있었다.“송문수 많이 변했네.”“송문수가 변해서 너도 걔를 다시 보게 된 거야?”냉소를 흘리며 묻는 송승우에 하지수가 고개를 저었다.“잘 모르겠어요. 감정이라는 게 원래 언제 생겼는지도 모르게 생기는 거잖아요.”감정이라는 건 애초에 기척 없이 생겨서는 헤어나오지 못할 정도로 한 사람을 옭아매는 것이다.하지수의 말로부터 그녀가 이제는 정말로 송문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