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히 임원들의 적극성을 향상하기 위함이죠.” 소승영은 당연하다는 듯한 태도였다.결국 여기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모두 임원들이고, 모든 사람들이 그의 편에 설 것이다.또 그는 임원들을 잘 달래기 위해서 그런 것이 분명했다. 그래야 이 사람들이 그에게 충성을 다할 테니까.“여기 앉아계신 분들도 다 임원이시니까, 더 이상 같은 얘기하지 않겠습니다. 다들 잘 알고 계시겠죠. 이 세상에는 28법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20%의 사람이 이 세상 80%의 재산을 차지한다는 것이죠! 저도 이런 원칙을 따를 뿐입니다.”소이연은 웃었다.정말 겉만 번지르르하게 말한다고 생각했다.그녀가 모른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소승영은 임원들을 통해 그녀의 실질적인 권리를 앗아가려고 했다.지금 소씨 그룹 지분이 모두 그녀의 손에 있더라도 소씨 그룹의 관리 권한은 그가 꽉 쥐고 있었다.조금 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소씨 그룹은 아직 그의 말 한마디로 통한다.정말 순진함 그 자체이다.“이사장님도 이게 무슨 잘못인 것 마냥 생각하지 마세요. 여기에 앉을 수 있는 사람들도 다 평범한 사람이 아닙니다. 평범한 직원들보다 뭔가를 더욱 많이 들였거나, 천부적인 재능으로 가치를 인정받은 사람들입니다.”“전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도 회장님의 관점을 인정하고 동의합니다. 지금의 자리에 앉을 수 있다는 건 당연히 평범한 직원들보다 능력이 훨씬 뛰어난 거겠죠. 그래서 월급을 많이 받는 것도 당연하고요.” 소이연은 덧붙였다.소승영은 목적을 달성했다는 듯 웃었다.그는 소이연이 멍청하지 않고서야 이렇게 많은 임원들 앞에서 그들이 지위에 걸맞지 않다고 말하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그래서, 임원분들께서 그들의 능력이 평범한 사원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저는 임원의 기존 급여에 5~10%를 상승시키고자 합니다.” 소이연이 또박또박 말했다.말이 끝나자마자, 현장은 소란스러워졌다.지금처럼 경기가 좋지 않을 때, 동종업계 동급 사람들은 모두 급여가 감소하고 있는데, 소씨
소씨 그룹을 조롱하던 임원들은 모두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이사의 낯빛 역시 눈에 띄게 나빠졌다.“너 뜸 들이지 말고 네 의견이나 말해!” 이사는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아주 간단해요. 제가 임원분들께 드린 보너스의 5~10%를 업무 성과로 바꾸는 거죠. 그러니까, 임원분들께서 업무 성과를 달성하시기만 하면, 제가 최고 10%의 성과금을 드리는 거예요. 하지만 만약 성과를 달성하지 못한다면, 기존 급여의 5~10%를 벌금으로 내는 겁니다.” 소이연이 또박또박 말했다.말을 꺼내니 당연히 모든 사람들은 원치 않았다.소이연은 그들에게 말할 기회도 주지 않고 이어서 말했다. “방금 회장님의 의견에 저는 아주 동의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하지만 단지 구두상의 인정은 실질적인 의미가 없죠. 소위 말하는 인정이라 함은 반드시 실질적인 효과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제가 생각해낼 수 있는 임원과 직원의 격차, 심지어 각 임원의 격차까지도 가장 크게 벌릴 방법은 바로 성과금입니다.”“이사장님, 저희는 원래 성과금이 있는데, 지금 갑자기 하나를 더 추가하니, 너무 복잡하지 않나요?저희는 지금 죽기 살기로 일하고 있는데 저희에게 또 이런 평가를 하다니, 저희 스트레스는 생각해 보셨습니까?”한 임원이 못 참겠다는 듯 반박했다.“모두가 스트레스를 받고 있습니다. 기업도 다를 바 없고요. 설마 장 팀장님은 소씨 그룹 영업 이익이 매년 줄어들고 있는 건 스트레스가 아니신가요? 제가, 또 주주들이 이 스트레스를 감당하고 있는데, 우리 버팀목인 임원들이 이 스트레스와 책임을 분담해야 하지 않겠습니까?!”소이연은 계속 주옥같은 말만 했다. “기업은 피난처가 아닙니다. 때로는 다 같이 파도를 헤쳐나가기도 해야 합니다!”“하지만......” 또 다른 임원이 반대하려고 했다.“이번 일은 반드시 해야 할 일입니다. 만약 각 임원께서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하시거나, 인정 못 하실 경우, 개인적으로 저를 찾아오시거나 퇴사를 선택하실 수 있습니다. 소씨 그룹은 여
소씨 그룹을 나섰다.소이연은 은하 그룹으로 돌아가는 차에 앉아있었다.명진은 차근차근 그녀의 다음 일정을 보고했다. “대표님, 30분 뒤에 은하 그룹 임원 회의가 있습니다. 예상 종료 시각은 오전 11시 20분입니다.오후 1시 30분에는 경제 잡지의 인터뷰가 있습니다. 편집장이 직접 사무실로 와서 인터뷰 진행 예정이고, 시간은 40분 내로 요청해뒀습니다. 오후 3시 8분, 서울 글로벌 쇼핑센터 은하 그룹 럭셔리 브랜드 She의 개업으로 테이프 커팅식 현장에 참여하셔야 합니다. 이때는 라이브로 생중계되고, 메이크업 담당자가 30분 전에 사무실로 갈 거예요. 저녁 6시에는 업계 회식이 있습니다. PR팀이 같이 가도록 준비해두었습니다.”소이연은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묵묵히 듣고 있었다.“내일은 제가 모든 업무를 연기해두겠습니다. 서울로 가시죠.” 명진은 계속 보고했다.“내일 오후 3시, 서울에서 글로벌 패션쇼가 있습니다. 스승님이신 마린 디자이너님이 수석 디자이너로 우리나라 최초 패션쇼입니다. 초청장은 한 달 전에 이미 받았습니다. 또 내일 쇼에는 천우진 씨가 참여하십니다. 천우진 씨께서 파트너로 참여해달라고 하셨습니다.”“알겠습니다.” 소이연은 짧게 대답했다.“네, 제가 회신 보내겠습니다.” 명진은 정중하게 말했다.그는 진지하게 책임을 다하고 있었다.“명진 씨.”“네, 대표님.”“육현경이 죽은 지 3년이네요.”“......네.” 명진은 메시지를 쓰던 손을 멈칫했다.이때 대표님은 그를 등지고 있었고, 그는 그녀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하지만 그는 그녀의 목소리를 통해 대표님이 또 전 대표님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전 대표님이 돌아가신 뒤, 그는 지금의 대표님과 일을 하고 있었다.사실상 그날 밤 전 대표님이 육민을 구하러 갈 때 이미 얘기했었다.만약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긴다면, 지금의 대표님을 따르라고 했다. 그녀를 도와 일을 많이 나눠주라고.그래서 대표님이 먼저 그를 찾아와 그에게 자신과 함께 일하자고
소이연은 그렇게 꿀물을 마시면서 육민의 관심을 느끼고 있었다.3년 동안 육민은 마치 작은 난로처럼 계속 그녀를 보살펴주고 있었다.분명 자신도 아이인데, 남자의 역할을 다하고 있었다.소이연은 꿀물을 몇 입 마신 뒤, 따뜻한 우유를 가지고 올라갔다. 잠시 망설이고는 육민의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육민은 잠들어있었다.그는 잠을 아주 잘 잤다.학교에서 에너지 소모가 클 것이다.그녀는 그의 옆에 붙어 이마에 뽀뽀를 했다.만약 육민이 없었다면, 그녀는 정말 3년 동안 그녀가 잘 버틸 수 있을 거라고 보장할 수 없었다.그녀는 앞으로의 3년, 30년도 잘 버텨낼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왠지 모르게 시간이 흐를수록 육현경에 대한 그리움이 점점 더 깊어졌다.멍해질 정도로 깊어졌다.시간이 지나면 다 잊을 수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왜,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는 점점 더 잊기 어려운 걸까.그녀는 최근에 들어서는 심지어 미친 듯이 육현경이 보고 싶었다.눈을 감고 조용히 있으면 모든 것이 육현경의 그림자로 가득 찼다. 아주 선명해서 떨쳐버릴 수 없었다.소이연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워 불을 껐다.어둠이 밀려오고, 뼛속까지 스며든 그리움이 그녀를 집어삼키는 듯했다......이튿날.소이연이 눈을 뜨고 침대에서 일어났다.그녀는 심지어 날이 밝기만을 기다리는 날도 많았다.날이 밝으면 다른 생각을 안 할 수 있기 때문이다.그녀가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육민은 이미 단정하게 식탁에 앉아 아침을 먹고 있었다.보통 그녀보다 일찍 일어났다.정확히 말하면, 육민에게 소이연은 조금 늦게 일어나는 편이었다.“엄마.” 육민이 착하게 그녀를 불렀다.3년 동안 육민은 아주 빠르게 성장했다.지금은 벌써 키가 160cm가 되었고, 그녀만큼 자랐다.그가 그녀의 옆에 있으면, 뭔가 말 못 할 안정감이 느껴졌다.소이연이 유일하게 조금 서운한 것은 육민이 육현경을 닮았다는 것이다. 점점 더 닮아갔다.이렇게 닮았으니 그녀는 평생 육현경을 잊지 못할 것이다.“
"다녀와서 네 고모할머니께 연락해서 시간 정하고 바로 알려줄게.” 소이연이 말했다. "네, 엄마 저 다 먹었어요. 그럼, 학교 다녀올게요.” "데려다줄게." 소이연도 수저를 놓으며 말했다. "좀 더 쉬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엄마, 어젯밤에 술 많이 마셨잖아요." 육민은 살짝 얼굴을 찡그렸다. "꿀물이랑 우유를 마셨더니 술이 다 깼어." 소이연은 웃으며 말했다. "고마워, 우리 아기.” 육민의 얼굴이 살짝 빨개졌다.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수줍은 성격을 고칠 수 없는데, 앞으로 자라서 연애는 어떻게 할까? 소이연은 학교 앞에서 육민이 길고 가느다란 몸으로 꼿꼿이 학교에 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짠해졌다. 그녀는 자신이 너무 오랫동안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 상담받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으며 운전기사에게 병원으로 데려다 달라고 말했다. "이연 씨." 그녀의 담당의 제임스는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바쁜데 어떻게 왔어요?” 소이연은 미소를 지으며 담담하게 말했다. "요즘 불면증이 심해요.” "들어와요.”제임스는 소이연을 데리고 상담실로 들어갔다. 그녀처럼 마음의 감기에 걸린 사람들을 위해 특별히 꾸며진 상담실은 매우 아늑했다. 소이연은 편안하고 부드러운 1인용 의자 위에 누웠다. 제임스는 그녀에게 담요를 덮어주었다. "그동안 업무 스트레스 많이 받았나요?" 제임스는 고급 홍차를 우려내면서 편하게 이야기를 건넸다. "스트레스가 없어서 잠을 못 자는 것 같아요.” "요즘도 계속 육현경 씨 생각하나요?” "밤새 잠을 못 잤어요." 그녀는 사실 밤새도록 육현경을 생각했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를 생각하면 1분도 잠을 잘 수 없었다. 그녀의 머릿속은 온통 육현경으로만 가득했다. 모두 그와 헤어질 때의 장면이었고, 그가 생전에 평생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장면이다. 육현경은 생전에 후회가 없었지만 그녀의 세상에 남은 것은 아쉬움뿐이었다. "그가 죽었다는 것을 이연 씨도 알고 있고 있어요." 제임스가 그녀
그녀가 잠에서 깨는 것을 지켜보며 그는 부드럽게 말을 건넸다."잘 잤어요?”"그런 것 같아요."소이연은 기지개를 켰다.그녀는 자신의 몸이 더 이상 못 버틸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여기로 와서 쉬었다 가면 한결 나아졌다."이만 가볼게요.”"그래요." 제임스가 그녀를 배웅하기 위해 문 앞까지 함께 와 웃으며 말했다."방금 제안한 것은 집에 가서 잘 생각해 봐요.”소이연은 대답을 대충 얼버무리고 자신의 차로 돌아왔다.그리고 무음으로 설정되어 있는 휴대전화를 꺼내서 몇 통 와있는 부재중 전화를 보았지만 전화를 걸지 않았다.그는 이명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공항으로 가려고 하는데 짐 좀 챙겨다 주실 수 있을까요?.”"네."소이연은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차창 밖의 풍경을 바라보았다.연애?말은 쉽지.......서울.소이연은 전용 비행기를 탔고, 천우진은 공항 입구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가 그녀를 자신의 승용차에 태워 회의장으로 향했다.회의시간에 제때 도착하기 힘들 것 같았지만 천우진은 소이연에게 아무 내색도 하지 않았다. "언제 돌아갈 계획이에요?"천우진이 물었다."일정 마치는 대로요."소이연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저는 전시회를 보고 떠날 예정인데, 괜찮을까요?”"아니요.” 천우진이 대답했다. 그러자 소이연은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이 남자 뭐라는 거야?! "저녁에 마린이랑 같이 밥 먹을래요? 아니면 저랑 같이 먹을래요?" 천우진이 또 물었다. "마린과 이미 약속이 되어있어서요.” "같이 가도 될까요?” "그건 좀 불편할 것 같애요.” 천우진은 소이연을 바라보았다. "천우진 씨, 당신 아내는 아직 산후조리 중이에요, 잊지 마세요. 일찍 집에 가서 아내와 아이를 돌보지 않으면 아마 아내분께 평생 욕 먹을 텐데, 걱정도 안 돼요?” 천우진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이후 두 사람은 조용히 회의장에 도착했다. 회의장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다. 이 전시회는 세계적으로 유명했기에 패션계의 거
"소이연!” 뒤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이연은 아무 말도 듣지 못한 것 같았다. 그녀는 한 그림자가 군중 속으로 사라져 버리는 것을 보았다. 너무 빨리 없어져 따라잡지 못했다. "이연 씨, 왜 그래요!” 누군가 그녀의 팔을 세게 잡아당겼다. "놔!” 소이연은 화내며 소리 질렀고, 심문헌은 화내는 그녀의 모습에 놀랐다. "왜 그래요?" 심문헌은 그녀의 팔을 놓으며 물었다. 소이연은 뒤를 돌아보았다. 그 낯익은 그림자가 사라졌다.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수많은 모델들이 옷을 갈아입는 큰 탈의실에서 그 사람을 찾을 수 없었다. 잘못 본 것인가? 하지만 방금은 정말 사실 같았다. "뭘 보고 있는 거예요? 누구를 찾는 거예요?" 심문헌이 소이연에게 물었다. 소이연은 입술을 꽉 깨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도대체 누굴 찾는 거예요? 이연 씨, 지금 너무 이상해요." 심문헌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는 소이연의 이런 모습을 오랫동안보지 못했다. 육현경이 세상을 떠난 후, 그는 줄곧 소이연이 절망에 빠져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뜻밖에도 소이연은 혼자서 씩씩하게 잘 견디고 있었다. 심지어 지난 3년 동안 자신의 경력에 정점에 도달했다. 심문헌은 그동안 개인적인 일로 소이연과 자주 만났다. 소이연의 태도는 너무나도 침착해서 그녀가 육현경을 생각보다 많이 사랑하지 않아 그의 죽음에 이렇게 담담히 반응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날 전까지 말이다. 한 번은 일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때, 무심코 육현경의 이름을 언급했었다. 딱 이름 세 글자. 그의 이름에 소이연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눈물을 계속 흘렸다.눈에서 계속 흘러내리는 눈물을 제외하고는 그녀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그녀 자신도 눈물을 눈치채지 못한 듯 아무렇지 않게 심문헌과 다시 업무 이야기를 나누었다. 심문헌은 비로소 소이연이 모든 슬픔을 숨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녀의 슬픔은 아마도 모든 사람의
당국은 그동안 심씨 그룹이 사회에 공헌한 일들을 생각해 법적 책임을 크게 묻지는 않았다. 합법적으로는 심 씨 그룹의 모든 재산을 몰수하고 매각한 뒤 피해자들에게 일일이 배상하고, 모든 일을 마친 심태섭은 ‘은퇴’라는 가면 뒤에 해외에서 노후를 보내라는 비밀 명령을 받았다. 심태섭이 떠나자 심씨 가문은 자연스럽게 심태정의 손에 넘어갔다. 그들에게 심씨 그룹은 필요하지 않았고, 소이연과의 협력으로 재정적인 문제로부터 이미 자유로웠다. 정치계에서 심태정은 줄곧 확고한 지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심택섭의 일은 심태정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 통폐합을 겪은 심씨 가문은 지난 3년 동안 더욱 단단해졌고, 여전히 전국 4대 가문 중 하나였다. 심씨 가문의 유일한 후계자인 심문헌은 자연스레 정계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상황에, 그가 언제 패션계에 끼어들 틈이 있었을까! "소이연 씨는 패션계 사람이고, 난 소이연 씨의 파트너이니까 당연히 반쯤은 패션계 사람이죠." 심문헌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 문헌 씨가 이겼네요.” "이연 씨 줄게요." 심문헌은 손에 든 꽃을 소이연에게 건넸고, 소이연은 꽃을 힐끗 보았다. "싫어요?” "내가 싫어하는 건 심문헌 씨라는 걸 알고 있잖아요." 소이연은 솔직하게 말했다. “이연 씨, 내 마음을 이렇게 아프게 하지 말아 줄래요?" 그러자 심문헌은 의기소침해하며 말했다. 소이연은 어이가 없었다. 그녀는 사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파악이 되지 않았다. 심문헌은 청개구리인 건가? 왜 갑자기 그녀를 쫓아다니기 시작한 것이지?그는 아주 대놓고 그녀를 쫓아다니고 있었다. 그는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소이연을 좋아한다는 것을 숨기지 않았다. 그녀는 한때 심문헌이 정치 인생을 위해 '정상'처럼 보이기 위해 여자를 쫓아다닌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은 그를 위해 자신의 정체성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고, 그렇기에 이 구애를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분명하게 전했다. 심문헌도 그녀에게 자신도 그
그로부터 반년이 지나서야 송문수는 마침내 국내로 돌아올 수 있었다.캐나다에 있는 회사도 이제 정상적으로 흘러가자 귀국한 거였지만 그도 그냥 예수진 아들의 백일을 축하하러 온 것뿐이었다.시간이 어찌나 빠른지 송문수가 나갈 때까지만 해도 배가 부른 채로 있던 예수진이 벌써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백일까지 맞이하게 된 것이다.오랜만에 온 장안시였지만 송문수는 자신의 귀국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그저 본인의 집으로 향했다.오랫동안 비워둔 집이라 그런지 온통 먼지투성이여서 일단 도우미부터 부른 송문수는 아주머니가 정리를 마친 다음에야 침대에 몸을 뉘일 수 있었다.떠나기 전만 해도 이곳에서 사랑하던 사람과 행복한 시간을 보냈었는데.이제는 그 모든 게 다시는 들춰선 안 될 과거가 돼버린 것 같았다.해외에 있던 시간 동안 송문수는 부단히 하지수를 잊으려 애쓰고 있었다.물론 정말 잊었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하지만 하지수와 송문수가 반년 동안 연락을 하지 않은 것만은 사실이었다.부모님과 영상통화를 할 때도 같은 집에 살던 하지수는 한 번도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그저 우연히 한 번, 그녀의 뒷모습이 화면에 스친 게 전부였다.몸을 뒤척이던 송문수는 내일의 백일잔치에 대해 생각했다.내일 가면 친구들이 무조건 술을 권할 텐데, 오랫동안 술을 마시지 않은 탓에 송문수는 지금 자신의 주량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그래도 푹 쉬면 조금은 낫겠지 싶어 그대로 잠을 청한 송문수는 이튿날 아침이 돼서야 눈을 떴다.언제부턴지 부모님처럼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 몸에 배어버린 탓에 송문수는 이젠 밤을 새우는 게 오히려 힘겨웠다.그렇게 여유롭게 준비를 마친 그는 한 번 더 깔끔하게 옷매무새를 정돈하고는 선물을 한 아름 안고 집을 나섰다.너무 이르지도 않고 너무 늦지도 않은 딱 적당한 시각에 집을 나선 그는 문득 옛날 자신의 모습이 떠올라 웃음을 지었다.예전에는 어쩜 그리 특이하게 살아왔는지, 참으로 유치했던 것 같다.해외에서 반년 동안 혼자 살아서
“보름 넘게 준비한 건데 서두르는 건 아니지.”자신의 가족과 친구들이 있는 고향을 떠나는 일인데도 송문수는 참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갔다가 언제 와?”“그건 몰라. 상황 봐서 잘 되면 빨리 오는 거고 잘 안되면 못 오는 거지.”어깨를 으쓱이며 말하는 송문수에 그의 결심이 바뀔 리 없다는 걸 알아챈 송승우는 그만 입을 다물고 하지수의 손을 맞잡았다.무의식중에 눈물을 흘리던 하지수는 손에서 느껴지는 온기에 빠르게 표정을 감췄다.“가자.”그리고는 송승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오늘 그녀는 송문수와 단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다.마지막 작별인사도 전하지 않은 채 그렇게 헤어졌다.하지수의 몸에 감히 시선을 두지 못하던 송문수도 그녀가 송승우와 함께 차에 타서야 차창 너머로 비치는 그 뒷모습을 어렴풋이 볼 수 있었다.그는 한참 동안 자신에게서 멀어져가는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었다.사실 캐나다도 송문수가 직접 갈 필요는 없었다.회사에 유능한 사람은 널리고 널렸으니 아무에게나 CEO라는 직급을 쥐어 보내면 될 일이었지만 송문수는 본인이 가겠다고 자처하고 나선 것이다.여기서 다정하게 지내는 둘을 보고 있는 게 더 가슴 아플 것 같아서, 눈에 보이지 않으면 조금은 낫지 않을까 싶어서.손 하나 잡았다고 이렇게 가슴이 미어질 것 같은데 이런 모습을 계속 보는 건 정말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아서 그는 이곳을 떠나기로 한 것이다....송문수는 캐나다에 도착해서야 육현경과 소이연을 비롯한 친구들에게 자신의 출국 소식을 알렸다.그리고 언제 돌아갈지는 모른다는 말까지 남기자 다들 깜짝 놀랐지만 별말은 하지 않고 몸 잘 챙기라는 소리들뿐이었다.그리고 시간 되면 놀러 오라는 얘기들로 대화가 마무리되었는데 역시나 예수진은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그녀는 굳이 송문수에게 따로 문자까지 보내며 물었다.[너 진짜 어쩌려고 그래? 이렇게 가겠다고? 다 버리고? 송문수, 너 언제부터 이렇게 나약해졌니? 내가 너였으면 당장이라도 송승우랑 싸웠어!][어차피 못 이
둘의 이혼은 아주 빠르게 진행되었고 두 사람은 각각 손에 이혼 증명서를 들고 법원에서 나왔다.“이제 끝난 거지?”“네.”하지수에게 건네받은 이혼 증명서를 들춰보던 송승우는 안에 적힌 내용을 다 확인한 후에야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혹시라도 돌발상황이 생길까 봐 따라온 건데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도 두 사람의 이혼은 순조롭게 진행됐다.송문수는 하지수를 보고서도 한마디도 하지 않고 그저 절차대로 서류만 제출했다.아무 감정도 없는 것 같은 두 사람의 모습에 송승우는 감정이란 게 저렇게 쉽게 사라질 수도 있나 싶었다.둘 사이에 다른 일이 있었던 건 아닐까 궁금하기도 했지만 어차피 이혼만 하면 그만이었기에 송승우는 다른 건 묻지 않았다.이제 두 사람이 이혼했으니 송승우는 저와 하지수도 떳떳해진 것 같았다.그리고 그는 송문수만 연락을 끊는다면 하지수를 다시 자기 여자로 만들 자신이 있었다.그래서 법원에서 나오자마자 송승우가 먼저 송문수를 불러세웠다.“시간 되면 집에 와서 밥이라도 먹어. 엄마 아빠가 전화해도 안 오던데, 많이 바쁜 거야?”“응.”“바쁘다고 가족들도 다 내팽개치는 건 아니지. 워라벨도 신경 써야지.”어른스러운 말투로 나무라듯 말하는 송승우를 송문수는 쳐다보지도 않았다.서울에서 일할 때 1년이 넘도록 안 오던 게 누군데.부모님이 굳이 송승우를 부르지 않은 건 그의 일에 방해가 될까 봐서였다.무튼 송승우는 그런 사람이었다. 자신이 하는 일은 아주 중요한 일이고 다른 사람들의 일은 언제든지 시간을 뺄 수 있는 여유 적적한 일이라 여기는 사람.“언제 시간 되는지 알려주면 도우미들 시켜서 너 좋아하는 거...”“나 해외에 잠깐 나가봐야 해.”“뭐라고?”송문수가 송승우의 지루한 말을 끊으며 대답하자 송승우는 당황하며 물었다.“엄마 아빠가 말 안 했어?”“무슨 말이야 그게?”금시초문이었던 송승우는 하지수를 쳐다보았지만 그녀의 반응을 보니 그녀 역시 처음 듣는 말인 것 같았다.“우리 회사 전기차 해외 매출이 자꾸 오르니까 전
그런데 그때, 협탁에 놓인 물과 알약 한 알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그 옆에 나란히 놓여있는 쪽지에는 “단기 피임약”이라는 말도 적혀있었다.그 약과 물을 번갈아 보던 하지수는 피가 차게 식는다는 게 뭔지 그제야 알 것 같았다.너무나도 명확한 송문수의 의사에 하지수는 가슴이 아려왔다.성인 남녀 둘이 충동적으로 서로를 원해서 가졌던 하룻밤이니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을 것이고 아무런 미련도 없다는 걸 이렇게 약으로 알려주다니.알약을 집어 든 하지수는 참으로 처량하게 웃어 보였다....그렇게 점심이 다돼서야 하지수는 별장으로 돌아갔다.핸드폰 배터리가 다 된 탓에 그녀는 송승우가 몇 통의 전화를 했는지도 모른 채 별장 안으로 들어섰는데 송승우는 아니나 다를까 어두운 얼굴로 이제야 들어오는 그녀를 바라보았다.그와 달리 허영지와 송기명은 살갑게 하지수를 걱정해주었다.“지수야, 어제 어디 갔었어? 전화는 왜 꺼놓고. 수진이한테 전화했는데 네가 문수랑 같이 갔다고 해서 문수한테 연락해보니까 문수는 또 너랑 같이 있는 거 아니라고 그러던데. 대체 어디 있었던 거야? 어디 다친 데는 없지?”“없어요. 어제 술을 좀 많이 마셔서 문수 씨 집에서 잔 것뿐이에요.”송문수 집에서 잤다는 하지수의 말에 송승우는 더는 못 참겠는지 언성을 높였다.“하지수, 너 나랑 한 약속 잊었어? 네가 어떻게 거기서 잠을 자!”“내가 무슨 약속을 했는데요?”송승우는 아무리 화가 났어도 저 질문에만큼은 답을 할 수 없었다.가스라이팅으로 어렵게 얻어낸 기회라는 걸 다른 사람한테는 알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나 문수 씨랑 아직 이혼 안 했어요. 그러니까 아직은 뭘 하든 합법적이란 소리죠.”“하지만...”“이혼하고 나서 얘기해요. 나 피곤해서 먼저 올라 가볼 게요.”몸도 마음도 다 힘들었던 하지수는 송승우를 화를 살필 겨를이 없었기에 그대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그렇게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보고 있으니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또르륵 흘러내렸다.몸을 뒤척이며 이불을 목 끝까지 끌
“너 내일 후회할 거야.”이런 하지수를 앞에 두고 참는 건 송문수에게도 곤욕이었다.온몸이 떨릴 정도로 힘을 주고 있는 것보다 자신의 마음을 억누르는 게 더 힘들었다.“후회 안 해.”“딱 하나 후회되는 게 있다면 내가 이 나이 먹도록 한번 밖에 못 해봤다는 거야. 그리고 그 한 번도 진짜 별로였어.”“뭐?”아까부터 한번을 강조하는 하지수에 송문수는 의아하다는 듯 되물었다.“그 한 번도 다 너한테 맞춘 거였잖아.”고작 한 번이라니, 그럴 리가.그런데 또 곱씹어 보니 둘이 함께 잔 건 한 번뿐인 것 같긴 했다.하지만 송승우와 그렇게 오래도록 사귀면서 송승우 방까지 들락날락하던 게 하지수인데 그런 그녀의 인생에서 저와 한 게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이번엔 내가 움직일 거야.”하지수는 잔뜩 풀린 눈으로 당차게 말했지만 그녀의 말은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다.“나 또 밀어내면 그땐 진짜 물어버릴 거야.”말을 마친 하지수는 송문수를 바닥에 눕힌 뒤 그 위에 올라탔다.“반항하지 마.”곧바로 하지수의 입술이 자신에게 다가왔지만 송문수는 정말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이 상황에 그녀를 밀어내면 하지수가 정말 울어버릴 것만 같아서.그녀의 우는 모습을 보는 건 언제나 가슴 아픈 일이었기에 송문수는 그냥 가만히 있는 걸 택했다.그렇게 내일 그녀의 원망도 다 받아낼 심산으로 송문수는 하지수의 움직임에 몸을 맡겼다.뜨거운 하룻밤을 보낸 뒤, 아침이 밝아오자 하지수는 몸을 뒤척였다.온몸에 차에 깔리기라도 한 듯 무거웠고 발가락 하나 움직이는 것도 힘들었던 그녀는 힘겹게 눈부터 떠보았다.익숙하고도 낯선 이곳은 그녀의 기억 속에 있던 송문수의 집이었다.그리고 눈을 떠 주위를 둘러보니 어제의 기억 조각들이 하나하나 수면 위로 올라오는 것 같았다.그것들이 마침내 온전한 하나가 되었을 때, 하지수는 얼굴을 붉혔다.본인도 몰랐던 자신의 대담한 모습을 그녀는 차마 깊게 생각할 수가 없었다.술이 깬 지금에 와서는 절대 못 할 일이
송문수는 자신마저도 취해버린 것 같았다.그래서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도 분간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마침내 입술을 뗀 하지수가 오랜만에 얌전해진 송문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자신의 키스에 몸을 맡기며 가만히 있기만 하는 그에 하지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문수 씨, 내가 하는 키스가 그렇게 별로야?”별로라니, 흥분해서 자칫하면 이성이 끊길뻔했는데.여기서 입을 열면 더 이상은 참지 못할 것 같아 송문수는 이번에도 그녀의 질문에 답을 하지 않았다.“어디가 별론지 얘기해주면 내가 고칠게, 응?”송문수는 아까부터 마른침만 삼키고 있었다.부단히도 움직이는 그의 울대가 그의 초조함을 대변하고 있었다.하지수 앞에서만큼은 속절없이 무너지는 송문수라 하지수가 한마디만 더 하면 그는 정말 무너져내릴 것만 같았다.“지수...”그래서 그만하라고 말하려 하는데 하지수가 본인의 손가락을 송문수의 입에 가져다 댔다.자신의 한계가 어디까진 지 아는 송문수는 지금 이마에 핏줄이 도드라질 정도로 힘을 주며 간신히 참고 있었다.이대로 가면 정말 무슨 일을 저지를 것만 같은데, 그걸 다 알면서도 그는 하지수를 밀어낼 수가 없었다.그런데 하지수는 점점 과감해지는 건지 이젠 하다 하다 손까지 집어넣어 송문수의 몸 곳곳을 어루만지고 있었다.그녀의 손길이 지나간 곳이면 그게 어디든 불에 덴 듯 뜨거워 났다.송문수 역시 술을 마신 몸이라 버티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그래서 그는 자신이 느슨해져서 이 상황을 즐기는 일이 없게 온몸에 힘을 꽉 주고 있었다.하지 마 하지수는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점점 더 깊은 곳까지 손을 움직여왔다.“아!”그러다 결국 송문수에게 손이 잡혀버린 그녀는 울망울망한 눈으로 송문수를 올려다봤다.자칫하면 그곳까지 갈 수도 있었는데 뭐가 아쉬워서 저런 표정을 짓는지.송문수는 심호흡으로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말했다.“그만해 하지수.”“왜?”“별장에 데려다줄게.”저 순진무구한 눈을 보고 있으면 송문수도 빨려 들어갈
술에 취한 하지수의 고집을 당해낼 수 없었던 송문수는 결국 그녀를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들어갔다.밤늦은 시간에 별장에 들어가면 다른 가족들을 깨울 수도 있으니 집에서 잠만 재운다는 핑계를 대가며 말이다.송문수가 하지수를 침대에 눕히고 자리를 뜨려 하자 하지수가 그의 손을 꽉 잡으며 말했다.“가지 마.”손끝에서 느껴지는 하지수의 온기에 송문수의 심장박동이 빨라지기 시작했다.“하지수, 잘 봐. 나 송문수야.”“알아, 네가 송문수인 거. 나 버린 무책임한 놈이잖아 너!”풀린 눈으로 저를 쳐다보며 말하는 하지수에 송문수는 입술을 말아 물었다.술을 마신 하지수는 송문수가 감히 컨트롤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왜 날 송승우한테 넘긴 거야? 내가 물건이야? 네가 뭔데 날 송승우한테 준다 만다냐고!”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하지수는 침대에 올라 선 채 송문수를 내려다보며 소리쳤다.“서 있지 말고 일단 앉아, 그러다가 넘어져.”“안 넘어져.”하지수는 송문수의 말을 듣지도 않고 계속 질문만 퍼부었다.“왜 날 밀어내는 건데! 내가 어디가 별로야? 몸매가 별로야 아니면 내가 못생겼어? 뭘 그렇게 일일이 다 따지고 들어? 넌 보는 눈이 그렇게 높아?”“일단 누워.”“싫어.”송문수가 그녀를 잡아주려고 손을 뻗으면 하지수는 곧장 몸을 돌려 피하곤 했다.그렇게 휘청대는 하지수를 보는 게 송문수는 조마조마하기만 했다.“내 말에 대답부터 해. 왜 날 싫어하는 거야?”“난 너 싫어한다고 안 했어.”그의 대답에 송문수를 향해 손가락질하던 하지수가 금세 눈시울을 붉혔다.“넌 그냥 내가 싫은 거잖아! 나 말고 밖에 있는 그 못된 여자들을 더 좋아하는 거잖아. 나도 그 여자들처럼 변하면 나 좋아해 줄 거야?”“그런 거 아니야.”“변명하지마! 넌 그냥 몸매 좋고 능숙한 그런 여자들만 좋아하는 거잖아. 내가 모를 줄 알아?”뭐가 그렇게 서러운지 혼자 화를 내는 하지수가 송문수는 어이없기만 했다.술을 마신 하지수는 아예 다른 사람의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으니
예수진:[저 둘이 나랑 지원 씨보다 더한 것 같아요.]소이연:[수진 씨도 본인들이 너무했다는 건 아네요.]예수진:[... 송문수랑 지수 얘기나 해요.]소이연:[일단 오늘은 지수 씨도 스트레스 풀게 그냥 놔두고 내일 다시 이야기해봐요.]예수진:[그래요.]그렇게 하룻밤 사이에 하지수는 5병의 맥주를 모두 비워냈다.이미 한계에 다다른 그녀는 해롱해롱해지고 몸에 힘도 빠지자 그대로 테이블에 엎드렸다.속도 쓰리고 마음은 더할 나위 없이 아팠다.누가 자신을 억누르는 것만 같은 느낌에 하지수는 당장이라도 속 시원히 소리라도 치고 싶었지만 그녀는 습관적으로 또 참아내고 있었다.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잃은 탓에 늘 불안에 떨며 살아와서 그런지 그녀는 한 번도 자신을 가감 없이 드러내 본 적이 없었다.감정을 숨기고 애써 괜찮은 척 웃어 보이는 게 하지수라는 사람이었다.“다들 많이 마신 것 같은데 이제 일어나.”예수진이 말을 꺼내자 소이연도 남편을 보며 말했다.“현경아, 시간도 늦었는데 우리도 이만 갈까?”아내 바라기였던 육현경은 이미 입가에 가져다 댄 술잔도 바로 내려놓고는 그녀를 따라나섰다.그들이 떠나고 혼자 덩그러니 앉아있던 하도경 역시 예수진의 눈짓에 자리를 비워야만 했다.“그럼 나도 갈게.”아직 술을 덜 마신 게 아쉽긴 했지만 예수진의 눈빛을 당해낼 수 없었던 하도경은 결국 소이연 부부의 뒤를 따라갔다.모두가 자리를 뜨자 예수진은 그제야 술을 퍼마시고 있는 송문수를 향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지수 집에 좀 데려다줘.”“오늘은 그냥 여기서 자고 가라고 해.”“안돼, 난 손님 집에서 안 재워.”“하도경은 너희 집에서 잤잖아.”“지수랑 하도경이랑 같아? 걔는 내 남편이 될뻔한 사이였잖아.”아무 말이 막 하는 예수진 때문에 계지원은 마음이 아파왔다.하룻밤 사이에 두 남자의 마음을 후벼 파 놓은 예수진은 아무렇지 않게 웃음을 터뜨리는 송문수를 보며 말을 이어나갔다.“어쨌든 아직은 이혼 전이니까 네가 지수 남편이야. 지수 안전은 너한
그 말에 분위기가 순식간에 어색해지자 예수진이 다급히 말을 받았다.“너랑 나랑은 다르지.”“뭐가 다른데?”“난 너 안 좋아하니까 친구로 지낼 수 있는 거야.”그런 아픈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예수진에 하도경은 충격받은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헤어질 때 준 상처로는 부족했는지 만날 때마다 이렇게 하도경의 가슴을 후벼 파는 예수진이었다.“진짜 사랑했던 사람들은 친구가 될 수 없어, 내 말이 맞지 지수야?”일부러 하지수를 언급했지만 그녀는 입술만 말아 물고 있었고 오히려 송문수가 대답을 가로챘다.“그냥 친구로 지낼만한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고 판단해서 그럴 수도 있지.”하지수는 입까지 올라온 말을 삼켜냈고 예수진은 생각 없이 아무 말이나 막 뱉는 송문수를 노려보며 저 싹수면 이혼당할 만하다고 생각했다.“우리 진짜 오랜만에 모인다, 다음에 만날 때쯤이면 우리 애도 다 태어났겠어.”“도경아, 오늘은 진짜 취하기 전엔 아무도 집에 보내지 말자.”계지원이 분위기를 풀기 위해 말하자 하도경도 눈치 있게 대꾸했다.“좋아.”어차피 예수진 때문에 마음고생을 너무 해서 더 다칠 마음도 없었기에 하도경은 공허한 제 가슴에 술이나 퍼부으려고 맥주를 따기 시작했다.그렇게 남자들 앞에 한 병씩 놓아준 하도경은 여자들을 보며 물었다.“우리 여자분들은 물, 우유, 음료수 중에 고르세요.”“전 물 마실게요, 알아서 마실 테니까 신경 안 쓰셔도 돼요.”“전 맥주 주세요.”평소엔 술을 즐기지도 않고 예수진과 소이연이 마실 때만 한 잔씩 같이 마시던 하지수가 갑자기 맥주를 요구하자 다들 눈을 크게 뜨고 그녀를 쳐다봤다.“오랜만에 보는 거니까 저도 한잔하고 싶어서요. 요즘 송승우 옆에만 있느라 또 언제 나올지도 모르잖아요.”“송승우는 좀 어때?”궁금한 건 못 참는 예수진이었기에 말 나온 김에 하지수를 향해 물었다.“아직도 죽겠다고 난리야?”“아니, 지금은 많이 좋아졌어.”“다 큰 남자가 왜 자기 목숨으로 가족들 협박하는 거야?”처음에는 송승우를 안타까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