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히 임원들의 적극성을 향상하기 위함이죠.” 소승영은 당연하다는 듯한 태도였다.결국 여기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모두 임원들이고, 모든 사람들이 그의 편에 설 것이다.또 그는 임원들을 잘 달래기 위해서 그런 것이 분명했다. 그래야 이 사람들이 그에게 충성을 다할 테니까.“여기 앉아계신 분들도 다 임원이시니까, 더 이상 같은 얘기하지 않겠습니다. 다들 잘 알고 계시겠죠. 이 세상에는 28법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20%의 사람이 이 세상 80%의 재산을 차지한다는 것이죠! 저도 이런 원칙을 따를 뿐입니다.”소이연은 웃었다.정말 겉만 번지르르하게 말한다고 생각했다.그녀가 모른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소승영은 임원들을 통해 그녀의 실질적인 권리를 앗아가려고 했다.지금 소씨 그룹 지분이 모두 그녀의 손에 있더라도 소씨 그룹의 관리 권한은 그가 꽉 쥐고 있었다.조금 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소씨 그룹은 아직 그의 말 한마디로 통한다.정말 순진함 그 자체이다.“이사장님도 이게 무슨 잘못인 것 마냥 생각하지 마세요. 여기에 앉을 수 있는 사람들도 다 평범한 사람이 아닙니다. 평범한 직원들보다 뭔가를 더욱 많이 들였거나, 천부적인 재능으로 가치를 인정받은 사람들입니다.”“전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도 회장님의 관점을 인정하고 동의합니다. 지금의 자리에 앉을 수 있다는 건 당연히 평범한 직원들보다 능력이 훨씬 뛰어난 거겠죠. 그래서 월급을 많이 받는 것도 당연하고요.” 소이연은 덧붙였다.소승영은 목적을 달성했다는 듯 웃었다.그는 소이연이 멍청하지 않고서야 이렇게 많은 임원들 앞에서 그들이 지위에 걸맞지 않다고 말하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그래서, 임원분들께서 그들의 능력이 평범한 사원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저는 임원의 기존 급여에 5~10%를 상승시키고자 합니다.” 소이연이 또박또박 말했다.말이 끝나자마자, 현장은 소란스러워졌다.지금처럼 경기가 좋지 않을 때, 동종업계 동급 사람들은 모두 급여가 감소하고 있는데, 소씨
소씨 그룹을 조롱하던 임원들은 모두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이사의 낯빛 역시 눈에 띄게 나빠졌다.“너 뜸 들이지 말고 네 의견이나 말해!” 이사는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아주 간단해요. 제가 임원분들께 드린 보너스의 5~10%를 업무 성과로 바꾸는 거죠. 그러니까, 임원분들께서 업무 성과를 달성하시기만 하면, 제가 최고 10%의 성과금을 드리는 거예요. 하지만 만약 성과를 달성하지 못한다면, 기존 급여의 5~10%를 벌금으로 내는 겁니다.” 소이연이 또박또박 말했다.말을 꺼내니 당연히 모든 사람들은 원치 않았다.소이연은 그들에게 말할 기회도 주지 않고 이어서 말했다. “방금 회장님의 의견에 저는 아주 동의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하지만 단지 구두상의 인정은 실질적인 의미가 없죠. 소위 말하는 인정이라 함은 반드시 실질적인 효과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제가 생각해낼 수 있는 임원과 직원의 격차, 심지어 각 임원의 격차까지도 가장 크게 벌릴 방법은 바로 성과금입니다.”“이사장님, 저희는 원래 성과금이 있는데, 지금 갑자기 하나를 더 추가하니, 너무 복잡하지 않나요?저희는 지금 죽기 살기로 일하고 있는데 저희에게 또 이런 평가를 하다니, 저희 스트레스는 생각해 보셨습니까?”한 임원이 못 참겠다는 듯 반박했다.“모두가 스트레스를 받고 있습니다. 기업도 다를 바 없고요. 설마 장 팀장님은 소씨 그룹 영업 이익이 매년 줄어들고 있는 건 스트레스가 아니신가요? 제가, 또 주주들이 이 스트레스를 감당하고 있는데, 우리 버팀목인 임원들이 이 스트레스와 책임을 분담해야 하지 않겠습니까?!”소이연은 계속 주옥같은 말만 했다. “기업은 피난처가 아닙니다. 때로는 다 같이 파도를 헤쳐나가기도 해야 합니다!”“하지만......” 또 다른 임원이 반대하려고 했다.“이번 일은 반드시 해야 할 일입니다. 만약 각 임원께서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하시거나, 인정 못 하실 경우, 개인적으로 저를 찾아오시거나 퇴사를 선택하실 수 있습니다. 소씨 그룹은 여
소씨 그룹을 나섰다.소이연은 은하 그룹으로 돌아가는 차에 앉아있었다.명진은 차근차근 그녀의 다음 일정을 보고했다. “대표님, 30분 뒤에 은하 그룹 임원 회의가 있습니다. 예상 종료 시각은 오전 11시 20분입니다.오후 1시 30분에는 경제 잡지의 인터뷰가 있습니다. 편집장이 직접 사무실로 와서 인터뷰 진행 예정이고, 시간은 40분 내로 요청해뒀습니다. 오후 3시 8분, 서울 글로벌 쇼핑센터 은하 그룹 럭셔리 브랜드 She의 개업으로 테이프 커팅식 현장에 참여하셔야 합니다. 이때는 라이브로 생중계되고, 메이크업 담당자가 30분 전에 사무실로 갈 거예요. 저녁 6시에는 업계 회식이 있습니다. PR팀이 같이 가도록 준비해두었습니다.”소이연은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묵묵히 듣고 있었다.“내일은 제가 모든 업무를 연기해두겠습니다. 서울로 가시죠.” 명진은 계속 보고했다.“내일 오후 3시, 서울에서 글로벌 패션쇼가 있습니다. 스승님이신 마린 디자이너님이 수석 디자이너로 우리나라 최초 패션쇼입니다. 초청장은 한 달 전에 이미 받았습니다. 또 내일 쇼에는 천우진 씨가 참여하십니다. 천우진 씨께서 파트너로 참여해달라고 하셨습니다.”“알겠습니다.” 소이연은 짧게 대답했다.“네, 제가 회신 보내겠습니다.” 명진은 정중하게 말했다.그는 진지하게 책임을 다하고 있었다.“명진 씨.”“네, 대표님.”“육현경이 죽은 지 3년이네요.”“......네.” 명진은 메시지를 쓰던 손을 멈칫했다.이때 대표님은 그를 등지고 있었고, 그는 그녀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하지만 그는 그녀의 목소리를 통해 대표님이 또 전 대표님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전 대표님이 돌아가신 뒤, 그는 지금의 대표님과 일을 하고 있었다.사실상 그날 밤 전 대표님이 육민을 구하러 갈 때 이미 얘기했었다.만약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긴다면, 지금의 대표님을 따르라고 했다. 그녀를 도와 일을 많이 나눠주라고.그래서 대표님이 먼저 그를 찾아와 그에게 자신과 함께 일하자고
소이연은 그렇게 꿀물을 마시면서 육민의 관심을 느끼고 있었다.3년 동안 육민은 마치 작은 난로처럼 계속 그녀를 보살펴주고 있었다.분명 자신도 아이인데, 남자의 역할을 다하고 있었다.소이연은 꿀물을 몇 입 마신 뒤, 따뜻한 우유를 가지고 올라갔다. 잠시 망설이고는 육민의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육민은 잠들어있었다.그는 잠을 아주 잘 잤다.학교에서 에너지 소모가 클 것이다.그녀는 그의 옆에 붙어 이마에 뽀뽀를 했다.만약 육민이 없었다면, 그녀는 정말 3년 동안 그녀가 잘 버틸 수 있을 거라고 보장할 수 없었다.그녀는 앞으로의 3년, 30년도 잘 버텨낼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왠지 모르게 시간이 흐를수록 육현경에 대한 그리움이 점점 더 깊어졌다.멍해질 정도로 깊어졌다.시간이 지나면 다 잊을 수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왜,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는 점점 더 잊기 어려운 걸까.그녀는 최근에 들어서는 심지어 미친 듯이 육현경이 보고 싶었다.눈을 감고 조용히 있으면 모든 것이 육현경의 그림자로 가득 찼다. 아주 선명해서 떨쳐버릴 수 없었다.소이연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워 불을 껐다.어둠이 밀려오고, 뼛속까지 스며든 그리움이 그녀를 집어삼키는 듯했다......이튿날.소이연이 눈을 뜨고 침대에서 일어났다.그녀는 심지어 날이 밝기만을 기다리는 날도 많았다.날이 밝으면 다른 생각을 안 할 수 있기 때문이다.그녀가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육민은 이미 단정하게 식탁에 앉아 아침을 먹고 있었다.보통 그녀보다 일찍 일어났다.정확히 말하면, 육민에게 소이연은 조금 늦게 일어나는 편이었다.“엄마.” 육민이 착하게 그녀를 불렀다.3년 동안 육민은 아주 빠르게 성장했다.지금은 벌써 키가 160cm가 되었고, 그녀만큼 자랐다.그가 그녀의 옆에 있으면, 뭔가 말 못 할 안정감이 느껴졌다.소이연이 유일하게 조금 서운한 것은 육민이 육현경을 닮았다는 것이다. 점점 더 닮아갔다.이렇게 닮았으니 그녀는 평생 육현경을 잊지 못할 것이다.“
"다녀와서 네 고모할머니께 연락해서 시간 정하고 바로 알려줄게.” 소이연이 말했다. "네, 엄마 저 다 먹었어요. 그럼, 학교 다녀올게요.” "데려다줄게." 소이연도 수저를 놓으며 말했다. "좀 더 쉬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엄마, 어젯밤에 술 많이 마셨잖아요." 육민은 살짝 얼굴을 찡그렸다. "꿀물이랑 우유를 마셨더니 술이 다 깼어." 소이연은 웃으며 말했다. "고마워, 우리 아기.” 육민의 얼굴이 살짝 빨개졌다.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수줍은 성격을 고칠 수 없는데, 앞으로 자라서 연애는 어떻게 할까? 소이연은 학교 앞에서 육민이 길고 가느다란 몸으로 꼿꼿이 학교에 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짠해졌다. 그녀는 자신이 너무 오랫동안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 상담받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으며 운전기사에게 병원으로 데려다 달라고 말했다. "이연 씨." 그녀의 담당의 제임스는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바쁜데 어떻게 왔어요?” 소이연은 미소를 지으며 담담하게 말했다. "요즘 불면증이 심해요.” "들어와요.”제임스는 소이연을 데리고 상담실로 들어갔다. 그녀처럼 마음의 감기에 걸린 사람들을 위해 특별히 꾸며진 상담실은 매우 아늑했다. 소이연은 편안하고 부드러운 1인용 의자 위에 누웠다. 제임스는 그녀에게 담요를 덮어주었다. "그동안 업무 스트레스 많이 받았나요?" 제임스는 고급 홍차를 우려내면서 편하게 이야기를 건넸다. "스트레스가 없어서 잠을 못 자는 것 같아요.” "요즘도 계속 육현경 씨 생각하나요?” "밤새 잠을 못 잤어요." 그녀는 사실 밤새도록 육현경을 생각했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를 생각하면 1분도 잠을 잘 수 없었다. 그녀의 머릿속은 온통 육현경으로만 가득했다. 모두 그와 헤어질 때의 장면이었고, 그가 생전에 평생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장면이다. 육현경은 생전에 후회가 없었지만 그녀의 세상에 남은 것은 아쉬움뿐이었다. "그가 죽었다는 것을 이연 씨도 알고 있고 있어요." 제임스가 그녀
그녀가 잠에서 깨는 것을 지켜보며 그는 부드럽게 말을 건넸다."잘 잤어요?”"그런 것 같아요."소이연은 기지개를 켰다.그녀는 자신의 몸이 더 이상 못 버틸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여기로 와서 쉬었다 가면 한결 나아졌다."이만 가볼게요.”"그래요." 제임스가 그녀를 배웅하기 위해 문 앞까지 함께 와 웃으며 말했다."방금 제안한 것은 집에 가서 잘 생각해 봐요.”소이연은 대답을 대충 얼버무리고 자신의 차로 돌아왔다.그리고 무음으로 설정되어 있는 휴대전화를 꺼내서 몇 통 와있는 부재중 전화를 보았지만 전화를 걸지 않았다.그는 이명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공항으로 가려고 하는데 짐 좀 챙겨다 주실 수 있을까요?.”"네."소이연은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차창 밖의 풍경을 바라보았다.연애?말은 쉽지.......서울.소이연은 전용 비행기를 탔고, 천우진은 공항 입구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가 그녀를 자신의 승용차에 태워 회의장으로 향했다.회의시간에 제때 도착하기 힘들 것 같았지만 천우진은 소이연에게 아무 내색도 하지 않았다. "언제 돌아갈 계획이에요?"천우진이 물었다."일정 마치는 대로요."소이연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저는 전시회를 보고 떠날 예정인데, 괜찮을까요?”"아니요.” 천우진이 대답했다. 그러자 소이연은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이 남자 뭐라는 거야?! "저녁에 마린이랑 같이 밥 먹을래요? 아니면 저랑 같이 먹을래요?" 천우진이 또 물었다. "마린과 이미 약속이 되어있어서요.” "같이 가도 될까요?” "그건 좀 불편할 것 같애요.” 천우진은 소이연을 바라보았다. "천우진 씨, 당신 아내는 아직 산후조리 중이에요, 잊지 마세요. 일찍 집에 가서 아내와 아이를 돌보지 않으면 아마 아내분께 평생 욕 먹을 텐데, 걱정도 안 돼요?” 천우진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이후 두 사람은 조용히 회의장에 도착했다. 회의장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다. 이 전시회는 세계적으로 유명했기에 패션계의 거
"소이연!” 뒤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이연은 아무 말도 듣지 못한 것 같았다. 그녀는 한 그림자가 군중 속으로 사라져 버리는 것을 보았다. 너무 빨리 없어져 따라잡지 못했다. "이연 씨, 왜 그래요!” 누군가 그녀의 팔을 세게 잡아당겼다. "놔!” 소이연은 화내며 소리 질렀고, 심문헌은 화내는 그녀의 모습에 놀랐다. "왜 그래요?" 심문헌은 그녀의 팔을 놓으며 물었다. 소이연은 뒤를 돌아보았다. 그 낯익은 그림자가 사라졌다.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수많은 모델들이 옷을 갈아입는 큰 탈의실에서 그 사람을 찾을 수 없었다. 잘못 본 것인가? 하지만 방금은 정말 사실 같았다. "뭘 보고 있는 거예요? 누구를 찾는 거예요?" 심문헌이 소이연에게 물었다. 소이연은 입술을 꽉 깨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도대체 누굴 찾는 거예요? 이연 씨, 지금 너무 이상해요." 심문헌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는 소이연의 이런 모습을 오랫동안보지 못했다. 육현경이 세상을 떠난 후, 그는 줄곧 소이연이 절망에 빠져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뜻밖에도 소이연은 혼자서 씩씩하게 잘 견디고 있었다. 심지어 지난 3년 동안 자신의 경력에 정점에 도달했다. 심문헌은 그동안 개인적인 일로 소이연과 자주 만났다. 소이연의 태도는 너무나도 침착해서 그녀가 육현경을 생각보다 많이 사랑하지 않아 그의 죽음에 이렇게 담담히 반응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날 전까지 말이다. 한 번은 일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때, 무심코 육현경의 이름을 언급했었다. 딱 이름 세 글자. 그의 이름에 소이연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눈물을 계속 흘렸다.눈에서 계속 흘러내리는 눈물을 제외하고는 그녀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그녀 자신도 눈물을 눈치채지 못한 듯 아무렇지 않게 심문헌과 다시 업무 이야기를 나누었다. 심문헌은 비로소 소이연이 모든 슬픔을 숨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녀의 슬픔은 아마도 모든 사람의
당국은 그동안 심씨 그룹이 사회에 공헌한 일들을 생각해 법적 책임을 크게 묻지는 않았다. 합법적으로는 심 씨 그룹의 모든 재산을 몰수하고 매각한 뒤 피해자들에게 일일이 배상하고, 모든 일을 마친 심태섭은 ‘은퇴’라는 가면 뒤에 해외에서 노후를 보내라는 비밀 명령을 받았다. 심태섭이 떠나자 심씨 가문은 자연스럽게 심태정의 손에 넘어갔다. 그들에게 심씨 그룹은 필요하지 않았고, 소이연과의 협력으로 재정적인 문제로부터 이미 자유로웠다. 정치계에서 심태정은 줄곧 확고한 지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심택섭의 일은 심태정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 통폐합을 겪은 심씨 가문은 지난 3년 동안 더욱 단단해졌고, 여전히 전국 4대 가문 중 하나였다. 심씨 가문의 유일한 후계자인 심문헌은 자연스레 정계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상황에, 그가 언제 패션계에 끼어들 틈이 있었을까! "소이연 씨는 패션계 사람이고, 난 소이연 씨의 파트너이니까 당연히 반쯤은 패션계 사람이죠." 심문헌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 문헌 씨가 이겼네요.” "이연 씨 줄게요." 심문헌은 손에 든 꽃을 소이연에게 건넸고, 소이연은 꽃을 힐끗 보았다. "싫어요?” "내가 싫어하는 건 심문헌 씨라는 걸 알고 있잖아요." 소이연은 솔직하게 말했다. “이연 씨, 내 마음을 이렇게 아프게 하지 말아 줄래요?" 그러자 심문헌은 의기소침해하며 말했다. 소이연은 어이가 없었다. 그녀는 사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파악이 되지 않았다. 심문헌은 청개구리인 건가? 왜 갑자기 그녀를 쫓아다니기 시작한 것이지?그는 아주 대놓고 그녀를 쫓아다니고 있었다. 그는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소이연을 좋아한다는 것을 숨기지 않았다. 그녀는 한때 심문헌이 정치 인생을 위해 '정상'처럼 보이기 위해 여자를 쫓아다닌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은 그를 위해 자신의 정체성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고, 그렇기에 이 구애를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분명하게 전했다. 심문헌도 그녀에게 자신도 그
“이연 언니가 왔다고?”오랜만에 들려온 소이연의 소식에 하지수는 흥분하며 답했다.“그럼 당연히 가야지, 오랫동안 못 봐서 안 그래도 궁금했는데. 육현경 씨랑 이연 언니가 나 엄청 많이 도와줘서 직접 만나서 감사 인사 하고 싶었어.”“계지원 씨 집에서 모이기로 했어. 예수진 씨 배도 점점 불러서 움직이기 힘드니까 그냥 거기서 보기로 했어.”“그래. 그럼 퇴근할 때 연락해. 나는 먼저 어머님이랑 아버님 생일파티 준비하고 있을게.”“응.”밥을 다 먹은 두 사람은 각자 알아서 집을 나섰고 하지수는 바로 송 씨 가문별장에 시어머니를 모시러 갔다.하지수가 안으로 들어가자 송승우가 소파에 덩그러니 앉아있는 게 보였다.그와 단둘이 만나는 건 아직 어색했기에 하지수도 입을 다물고 있었는데 그런 그녀를 한참이나 바라보던 송승우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엄마 모시러 온 거야?”“네.”“집에 계속 계시는 거예요?”“나갔으면 좋겠어?”헛웃음을 흘리며 묻는 송승우에 하지수가 다급히 해명했다.“아뇨, 그냥 전에는 계속 일로 바쁘셨던 분이 계시니까 물어본 거예요.”“전에는 연구과제 때문에 바빴는데 이제는 나 없이도 잘 돌아가서 한가해.”“아, 네.”고개를 끄덕이는 하지수를 보며 그녀가 저를 불편해하는 걸 느낀 송승우는 올라오려는 화를 참으며 물었다.“문수는?”“출근했어요.”“주말에도 출근해?”“요즘이 회사한테 중요한 시기라서 일요일만 쉬기로 했대요. 내일은 안나가요.”사실 송문수에게는 거의 휴일이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처리해야 할 일이 매일 산더미여서 그는 시간만 나면 사무실에 틀어박혀 있었다.“송문수 많이 변했네.”“송문수가 변해서 너도 걔를 다시 보게 된 거야?”냉소를 흘리며 묻는 송승우에 하지수가 고개를 저었다.“잘 모르겠어요. 감정이라는 게 원래 언제 생겼는지도 모르게 생기는 거잖아요.”감정이라는 건 애초에 기척 없이 생겨서는 헤어나오지 못할 정도로 한 사람을 옭아매는 것이다.하지수의 말로부터 그녀가 이제는 정말로 송문수를
“하지수, 변호사 일할 때는 똑똑하더니 연애에는 영 소질이 없나 봐?”자는 척하고 자신을 놀려먹은 건 송문수인데 오히려 바보라고 핀잔을 듣자 화가 난 하지수가 얼굴을 붉혔다.“네가 나한테 뽀뽀하는 게 좋으니까 계속하라고 가만히 있은 거잖아!”송문수가 언성을 높여 말해서야 이유를 알게 된 하지수는 당황스러운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고 그 표정에 어이가 없어진 송문수는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이렇게 바보 같아서 어떡해, 누가 너 팔아넘겨도 모르겠다.”“누가 누구한테 바보래. 내가 당신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그런 생각인 줄 어떻게 알고...”말을 채 끝맺지도 못했는데 갑자기 입을 맞춰오며 진득한 키스를 이어나가는 송문수에 하지수는 눈을 크게 떴다.“아...”아까 자신이 한 건 그저 뽀뽀이지 이렇게 치열을 훑고 지나가는 키스는 아니었는데 입속 깊은 곳까지 뜨겁게 만드는 키스는 옆에서 핸드폰이 울리건 말건 오래도록 지속되었다.송문수도, 하지수도 그 벨 소리를 무시한 채 키스를 이어나가다 둘의 입술이 다 번들번들해질 때가 되어서야 송문수는 아쉬움을 뒤로한 채 하지수를 놓아주었다.송문수의 키스에 정신이 혼미해진 하지수는 나른한 눈빛으로 송문수를 보고 있었는데 핸드폰을 보던 송문수는 갑자기 욕설을 내뱉더니 서둘러 침대에서 내려가 욕실로 달려들어 갔다.그의 샤워 소리가 들릴 때에야 정신을 차린 하지수도 시간을 보자마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변호사 일을 시작하면서 누구보다 규칙적이고 자율적인 일상을 보내왔던 하지수였기에 그녀는 자신이 아주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송문수를 만난 뒤부터 이성보다 감성이 앞서는 사람이 돼버린 것 같았다.그래서 그녀는 송문수가 만약 자신을 팔아넘겨도 그를 도와 돈을 세줄 것 같다는 그의 말에 어느 정도 동의를 하고 있었다.생리대부터 바꾸러 제 방으로 돌아간 하지수가 준비를 마치고 나오자 송문수도 옷을 갈아입은 채로 거실에서 통화를 하고 있었다.평소에는 7시에 일어나서 8시 정도면
말을 마친 하지수는 송문수가 그새 깨어난 지도 모르고 그의 품에 안겨 눈을 감았고 송문수는 다정한 눈을 한 채 떨리는 손으로 제 옆에 누운 하지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이튿날 아침, 눈을 뜬 하지수는 방금 일어난 탓에 낯선 주위를 한참이나 둘러보고서야 여기가 송문수의 방임을 기억해냈다.관계 빼고는 별짓 다 한 어젯밤이 떠오른 하지수는 얼굴을 붉혔다.혼자 자는 게 습관 되어있어 송문수의 품에 안긴 뒤 빨리 뛰는 심장 때문에 뜬눈으로 밤을 새울 줄 알았는데 예상외로 그녀는 눈을 감자마자 잠에 빠져들었다.아마도 바쁜 일정 때문에 피곤했던 것 같다.완전히 정신을 차린 하지수는 고개를 돌려 아직도 곤히 자고 있는 송문수를 바라보았다.자고있는 그의 모습은 평소처럼 차갑지 않고 쫙 펴진 미간 덕분에 오히려 부드러워 보여 공격성이 다분하지도 않았다.왜 눈을 뜬 모습과 감은 모습이 이렇게 다를까 하는 의문을 가지고 송문수의 얼굴을 찬찬히 보던 하지수는 날카로운 그의 눈빛을 떠올렸다.전에는 그 눈빛이 마음속을 꿰뚫어 볼 것만 같아 두려웠었는데 지금의 하지수는 더 이상 잠들어있는 송문수도, 깨어있는 송문수도 두렵지는 않았다.한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깨어있는 송문수를 마주할 때는 하지수가 주동적으로 입을 맞출 수 없다는 것뿐이었다.하지만 잠들어있을 때는 그야말로 하지수 세상이었기에 그녀는 빠르게 송문수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한 번으로는 부족했는지 하지수는 그 뒤로도 여러 번 입을 맞추다가 누군가의 핸드폰이 울릴 때가 돼서야 행동을 멈추었다.물론 자의로 멈춘 건 아니고 입맞춤을 하던 와중에 눈을 떠버린 송문수 때문에 도둑이 제 발 저리듯 깜짝 놀라 잠시 멈칫한 것이었다.당황한 하지수는 빠르게 도망가려 했지만 자신을 눌러버린 송문수 때문에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분명 방금 눈을 떴는데 이상하게 송문수의 눈은 반짝반짝 빛이 나고 있었다.몽롱한 느낌은 전혀 없는 눈으로 그는 하지수를 빤히 바라보았고 그의 진득한 눈빛을 당해내지 못한 하지수는 서둘러 눈을 피했
“미안해 문수 씨... 평소엔 이때가 아니라서 나도 몰랐어...”“응.”이 일은 애초에 하지수의 잘못이 아니었기에 그녀를 탓할 수도 없었던 송문수는 하늘이 불공평하다고 한탄하며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하지수를 만나는 날만 기다리며 3년 동안 아무와도 관계를 하지 않았던 그인지라 오늘에서야 비로소 원하던 바를 이룰 수 있겠다고 기뻐했는데 예상치 못한 변수 때문에 또 일주일을 더 기다리게 된 이 상황에 송문수는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한숨을 쉬는 송문수를 본 하지수는 그가 자신에게 실망한 줄로 알고 용기를 내어 말했다.“다음에 다시 할까?”하지수의 말에 잠시 멈칫하던 송문수는 이내 언성을 높이며 말했다.“그걸 말이라고 해? 생리 끝나면 당장 해.”자신한테 자꾸 일이 생겨버려 송문수가 다른 사람을 찾기라도 할까 봐 두려웠던 하지수는 확신에 찬 그의 대답을 듣자마자 웃음을 터뜨리며 청심환을 하나 먹고는 말했다.“그럼 편히 자, 난 내 방 가서 잘게.”“어디 간다는 거야?”“내 방 가야지.”“하지수, 네 발로 직접 내 방 찾아와 놓고 이제 돌아가겠다는 거야?”갑자기 터진 생리 때문에 관계를 못 가진 것도 화가 나는데 사람까지 가버리겠다는 말을 들은 송문수는 언짢은 티를 팍팍 내며 눈썹을 꿈틀거렸다.“나 생리 와서 어차피 못하잖아.”“그게 왜?”“아까 문수 씨도 생리 끝나면 하자고 했잖아. 지금 하는 건 나도 좀...”송문수가 되묻자 하지수는 아주 난감해하며 답했다.“하지수, 넌 날 대체 뭘로 보는 거야? 내가 아까 너 안 놔줬으면 여기 진작에 피바다 됐어.”“...”“관계까지 할 사이에 뭘 내외를 하고 그래. 앞으로는 나랑 같이 자.”“앞으로 쭉 같이 자자고? 나랑?”“왜, 싫어?”“아니.”당연히 싫진 않았지만 하지수는 그저 송문수가 관계도 없는 잠을 자신과 함께 자겠다는 게 신기했을 뿐이다.그렇게 순진해 보이는 사람은 아니었는데.“빨리 와서 자. 아까 너무 움직였더니 피곤해.”송문수가 먼저 침대 한쪽에 자리를 잡고 눕자 하
송문수의 입술이 하지수의 입술을 지나 그녀의 귓가에 닿을 때, 이런 식의 스킨십은 처음 해보는 하지수는 온몸이 떨려왔다.태어나서 딱 한 번, 송문수와 차에서 해본 게 전부인 그녀는 송문수의 유혹을 당해내지 못하고 서서히 그에게로 다가가 그의 목에 자신의 고개를 비볐다.그렇게 하지수를 안달 나게 하던 송문수는 그녀가 자신을 받아들였다는 걸 확신하고는 점차 행동을 대범하게 하기 시작했다.자연의 섭리인 것마냥 물 흐르듯 움직임을 이어나가던 송문수가 갑자기 멈췄을 때 하지수는 온몸이 뜨거워 나고 머리가 텅 빈 것 같았다.온몸이 나른해진 그녀는 송문수의 움직임에 몸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그렇게 한참 지나 송문수가 더는 움직이지 않을 때가 돼서야 정신을 차린 하지수가 그를 보며 물었다.“왜 그래?”제 아래에 누워있는 하지수를 보며 정말 이성을 잃을까 봐 걱정된 송문수는 마음을 가다듬으며 입을 다물고만 있었다.“문수 씨?”하지만 하지수는 아까는 그렇게 늑대처럼 달려들던 사람이 갑자기 말도 안 하고 거친 숨만 연신 내뱉는 게 이상했다.“문수 씨...”“지수야.”송문수가 한참 만에 입을 열자 그 숨결에 의해 뜨겁게 달궈진 피부에는 소름이 돋기까지 했다.곧 자신이 상상했던 일이 현실이 될 수 있었던 아주 아름다운 순간이었는데 다른 여자들한테는 다 곁을 내주면서 왜 자기 앞에서는 갑자기 멈추는 건지 하지수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본인이 여자로서의 매력이 떨어져서 송문수가 싫어하는 걸까 봐 자연스레 눈물이 흐르고 있었는데 송문수가 잔뜩 실망한 듯한 말투로 말했다.“너 생리 왔어.”“뭐?”송문수의 말에 깜짝 놀란 하지수는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송문수를 빤히 바라보기만 했다.“속옷에 피 묻어있어, 아마 온 지 얼마 안 된 것 같아.”그제야 정신을 차린 하지수는 수치스러움에 빨개진 얼굴로 빠르게 몸을 일으켰다.이틀 뒤가 예정일인데 왜 갑자기 오늘 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하지수는 송문수의 얼굴을 제대로 보기가 민망해 침대에서 뛰어내리다가 하마터면 넘
송문수는 자신의 떨림을 선명히 느낄 수 있었다.그뿐만이 아니었다.하지수도 그의 몸 아래에서 떨리고 있었다.송문수는 이미 자신의 한계에 도달하고 있었다. 예전의 그라면 이미 마음이 가는 대로 몸을 맡겼을 것이다.그는 조심스럽게 지수에게 다가갔다.지수는 온몸이 긴장돼 있었고 두 손은 이불을 꼭 쥐고 있었다.그녀는 자신이 어떻게 송문수의 몸 아래에 있게 됐는지조차 생각이 나지 않았다. 단지 지금, 그의 숨결은 몹시 거칠고 심장 소리는 우뢰처럼 커진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는 어쩔 바를 몰라 했고 곧 무언가가 일어날 것만 같았다.그때, 송문수의 입술이 서서히 하지수의 입술에 와닿았다.송문수의 심장은 더욱 격렬히 뛰고 있었고 이불을 꼭 쥐고 있던 지수의 두 손에는 점점 더 힘이 들어가고 있었다.두 입술이 맞닿은 그 순간, 두 사람은 머리가 하얘졌다.둘만의 공간, 둘만 나누는 부드러운 촉감, 온몸으로 느끼는 서로의 떨림……이것이 진짜 입맞춤이었다.하지수의 뇌리에는 갑자기 전에 송문수의 차에서 나눴던 관계가 스쳐 지나갔다. 단지 관계를 위한 관계였을 뿐, 사실 그녀는 아무런 떨림도 느끼지 못했고 심지어 굴욕적이라는 생각까지도 들었었다.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오히려 그녀가 리드하고 있었다.송문수가 조심스러워 망설이고 있을 때 그녀가 먼저 리드했다.그는 그녀의 유혹을 당해낼 수가 없었고 둘은 더더욱 서로를 탐하고 있었다.온 세상이 조용해지고 두 사람의 심장 소리만 들리고 있었다.두 사람은 얼마 동안 키스를 나눴는지 가늠조차 못 하고 있었다. 아주 길게 또 아주 짧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입술을 뗀 두 사람의 얼굴은 너 나 할 것 없이 빨갛게 달아오르고 있었다.이런 경험은 송문수도 처음이였다. 능수능란해야 마땅한 그는 지수와의 키스 후 고장 난 사람처럼 어쩔 바를 모르고 있었다. 그저 방금 전의 달콤하고도 아름다웠던 키스에 사로잡혀 그녀를 놓치고 싶지 않았고 그렇게 온 밤을 그녀와 보내고 싶었다.그는 또다시 그녀의 입술에 다가갔다.천천히
그는 너무 기뻐하다가 오히려 일을 망칠까 봐 조금 두려웠다.“그러면 오늘밤에 같이 자는 거 어때?” 하지수는 송문수를 바라보며 물었다.“푸!” 송문수는 너무 놀란 나머지 조금 전에 마시던 물을 내뿜었다.“싫으면 말고…” 송문수의 격한 반응에 지수는 실망을 감출 수 없었다.“그런 거 아니야.” 송문수는 다급히 해명했다.지수는 어리둥절해졌다. 바로 전에 문수가 분명히 아주 격렬한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송문수는 연신 입을 닦으며 말을 덧붙였다.“너랑 같이 자는 게 절대 싫어서 그런 거 아니니까 오해하지 마.”“그럼 나 먼저 씻을게.” 하지수는 웃으며 말했다.“그래.”“네 방에서 잘까? 아니면 내 방?”“난 다 좋아.”“그러면 네 방에서 자자. 네 방이 더 크니까.”“그러자.”“나 씻을게.”“응.”“너도 빨리 씻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지수는 얼굴이 타오르듯 빨개졌다.무슨 의미인지 두 사람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송문수는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고 더 이상 자신의 마음을 감추기가 힘들었다.하지수가 먼저 방으로 들어갔다.송문수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크게 숨을 들이켰다.방금 잘못 들은 거 아니지?그는 곧 벌어질 일을 생각하니 너무 긴장되어 숨도 안 쉬어지고 물컵을 들고 있던 손도 떨릴 지경이였다.수도 없이 많은 여자를 만나봤던 그로서는 남녀관계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없었고 이런 경험이 처음일 리는 더더욱 없었다.하지만 그 상대가 하지수라니, 송문수는 머리가 하얘졌다.그는 남아있던 물을 한 모금에 다 마시고 나서 바로 방으로 돌아가 샤워하기 시작했다.오늘 밤이 지나면 둘 사이는 전혀 다른 관계가 되어 있을 것 같았다.송문수는 샤워를 마쳤다.평소라면 몇분이면 끝낼 샤워를 오늘에는 한번 또 한 번 반복해서 씻었다. 행여나 깨끗이 못 씻었을지 몇 번이나 더 씻은 후 겨우 욕실을 나와 침대에서 하지수를 기다리고 있었다.그는 지수가 이미 방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예상했으나 지수는 더 오래 걸렸다.아마도 그와 똑
하지수는 민망함에 얼굴이 더 붉어졌다.그녀는 송문수와의 관계가 어디까지 발전했는지 확신할 수 없었지만, 아직 아이를 가질 정도까지는 아닌 것이 분명했다.송문수도 민망해하며 말했다.“저희 둘 사이 일은 걱정하시지 마세요. 저희가 알아서 할게요.”“네가 아무 생각이 없어 보이니까 이러는 거야.” 송문수 어머니는 핀잔을 주었다.“네가 조금 더 잘했으면 지금쯤 애가 뛰어다니며 놀 나이가 됐을 거야.”“엄마! 그만 하세요.”문수는 더 이상 듣기 싫었다.“그래, 알았어. 근데 내가 다시 한번 강조하는 건데, 너 다시는 지수 같은 여자애 못만난다는거 기억해. 지수 놓치면 평생 후회하면서 혼자 살게 될 거라는걸.”“알겠어요, 알겠다고요.”송문수는 잔소리가 듣기 싫었지만, 어머니의 말에 반대는 하지 않았다.그 말을 옆에서 듣고 있던 송승우는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자리를 박차 거실을 나갔다.모든 사람의 눈길이 그에게로 향했다.송문수는 송승우가 왜 화가 났는지 잘 알고 있었다.그가 고개를 돌려보니 하지수도 송승우를 보고 있었다. 갑자기 벌어진 상황에 지수도 자신도 모르게 그쪽으로 눈길이 가게 된 것이었다.송문수의 시선을 느낀 그녀는 얼른 고개를 돌려 그와 눈을 마주쳤다. 그녀의 눈빛은 마치 송승우에 대한 마음은 일찌감치 접었음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송문수는 시선을 돌렸지만, 마음속으로는 내심 안도했다.하지수는 정말 송문수를 사랑하지 않는 걸까?송승우의 돌발행동에 사람들은 당황했지만 이에 대해 별다른 얘기는 하지 않았다.가장 많은 논의가 있었던 것은 역시나 아버지의 생일파티와 그들에게 아이를 낳는 것을 권유하는 것이었다.저녁 아홉 시, 송문수와 하지수는 집으로 돌아갔다.야근을 자주 하는 탓에 이렇게 일찍 귀가한 적은 처음이었다.예전에는 집으로 돌아오면 너무 피곤해서 샤워만 하고 각자 잠에 들었었다. 하지만 오늘은 너무 일찍 돌아온 탓에 오히려 분위기가 어색해졌다.언제부터인가 두 사람 사이의 기류는 점점 부자연스러워지고 있었다. 눈만 마주쳐도
송문수는 깍지를 끼고 있는 두 손을 바라보았다.심장은 더욱 빨리 뛰고 따뜻함은 배가 되고 있었다.그녀의 마음에 화답이라도 하듯 송문수 역시 더욱 세게 손을 잡았다.하지수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고 두 사람은 손을 꼭 잡은 채로, 로비로 들어갔다.그곳에는 문수의 부모님이 기다리고 계셨다.문수의 형, 송승우도 앉아 있었다.둘이 손을 잡고 들어오는 모습을 본 승우의 눈에는 분노가 차올랐다.지금 도발하는 건가? 송문수와 하지수가 일부러 도발을?송문수의 부모님 역시 그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알아채고 흐뭇하게 웃고 계셨다.이 얼마나 바라왔던 일인가.문수의 어머님은 두 사람을 반갑게 맞아주시며 말씀하셨다.“얼른 들어와, 지금 바로 저녁 준비하라고 할게.”“네, 엄마.”송문수는 하지수의 손을 꼭 잡은 채로 어머님의 말씀에 고개를 끄덕였다. 지수도 그런 문수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그녀는 누군가와 손을 잡는 게 이렇게도 설레는 일인지 처음 깨달은 듯싶었다.그들은 테이블에 둘러앉아 저녁을 먹기 시작했다.송문수와 하지수는 나란히 앉아 밥을 먹을 때에도 서로 눈길을 주고받으며 서로에 대한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부모님은 흐뭇하기 그지없었다.유독 송승우만 얼굴이 굳은 채로 한 술도 먹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도 그를 신경 쓰지 않았다.“너무 고생 많았어. 오늘은 특별히 너희가 좋아하는 반찬들을 준비했으니까 많이 먹어.”송문수 어머님은 반찬을 덜어주며 따뜻하게 말을 건넸다.송문수 아버님도 문수의 업무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질문도 하시곤 하셨지만, 문수를 지지해 주시는 마음은 느낄 수 있었다.저녁 식사는 시끌시끌하였다. 송승우만 빼고 말이다. 먼저 말을 걸지 않으면 아무도 그에게 눈길을 주지 않는 혼자만 쓸쓸한 저녁 식사였다.식사가 끝난 후, 수다는 계속되었다. “곧 너의 아버님 환갑인데 난 시끌벅적 크게 보내고 싶은데 어때?”“좋아.” 송문수는 고개를 끄덕였다.“원하는 대로 해. 엄마랑 아빠가 기분 좋은 게 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