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네 부탁을 들어줄 것 같아?" 심아윤이 소이연에게 물었다. “거절할 이유가 없지 않아?" 소이연이 확고하게 물었다. "하하." 심아윤이 비웃었다. “육현경이 널 이렇게 좋아하는 것도, 너에게 홀린 것도 당연해. 네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나와 육현경이 이 지경이 될 수 있었을까? 우리 집안이 이 지경이 될 수 있었을까? 소이연, 네 말이 맞아. 모두 다 너 때문이야. 내가 거절할 이유가 없어.” "육현경을 풀어주면 내가 너랑 같이 죽을게." 소이연은 단호하게 말했다.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소이연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너희가 하고 싶어 하면 할수록 난 너희가 바라는 것들을 이루지 못하도록 놔두지 않을 거야! 난 네가 육현경의 죽음을 네 눈으로 똑똑히 보고 평생 후회하게 할 거야. 가끔은 죽는 것보다 사는 게 고통스러울 때가 있어. 그렇지 않아?” 심아윤은 소이연에게 사악하게 물었다. "아니, 시간은 모든 것을 잊게 해 줘. 지금 나는 육현경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가 죽는다면 슬퍼하겠지. 그런데 1년 후에는? 10년 후에도 과연 그럴까? 난 1년도 채 안 돼서 문서인을 잊었어. 내 사랑의 충성도가 그렇게 길 거라고 생각해?!” "문서인을 육현경과 비교하지 마!" 심아윤이 매섭게 말했다. 이쯤 되면, 그녀의 마음속에서 육현경은 여전히 그 독보적인 존재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육현경 때문에 심아윤 자신을 이렇게까지 망치지 않을 것이다! "육현경이 죽으면 넌, 평생 기억할 거야."심아윤은 장담했다. "육현경 대신 죽으라고 널 오라고 한 것이 아니야. 내가 오라고 한 이유는 육현경이 어떻게 죽는지 네 눈으로 똑똑히 보라고 하는 거야. 너 때문에 육현경이 어떻게 죽었는지 보라고! 널 평생 죄책감 속에 살게 할 거야!” "심아윤!" 소이연은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내가 거절할 줄 몰랐어?! 맞아, 내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은 확실히 너야. 맞아, 모든 것이 너 때문에 일어난 거야. 나는 정말 네가 죽기를 바라. 하
결국, 두 사람이 서로 삶과 죽음을 의지하는 것을 봐야 하는가?“소이연, 더 이상 말할 필요 없어.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 넌 단지 내가 육현경을 풀어주고 너와 함께 죽기를 원하는 거야! 내가 말해 줄게, 그건 불가능해! 네가 죽는 것이 육현경에게 큰 복수가 될 거라 해도, 네 죽음이 내게 최선의 결과가 아니라 해도, 난 육현경을 포기하지 않을 거야. 나는 평생 육현경을 포기하지 않을 거라고! 그게 죽음이더라도 난 그를 가질 거야!”심아윤은 자신의 속마음을 말했다.그녀의 모든 보복의 전제조건은 그를 갖는 것이었다.살아서 육현경을 얻지 못한다면 죽어서라도 그와 함께할 것이다.그래서 소이연은 더 이상 쓸모가 없었다.심아윤이 선택할 사람은 육현경일뿐이고, 소이연은 함께 묻히는 것도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그래야 죽어서는 자신과 육현경이 방해받지 않을 것이다.소이연은 눈시울이 붉어졌다.그녀는 지금 자신이 무엇을 하든 모두 헛수고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아무리 심아윤을 자극해도 소용없었다.그녀는 육현경을 보았다.육현경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그는 심아윤이 소이연의 말에 자극받아 소이연을 선택할까 봐 겁이 났었다.심아윤이 아직도 그와 함께 있고 싶어하니 다른 사람들은 모두 안전하다.그는 이 순간 마음이 편해졌다."이연아, 울지 마. 이제 최선의 결과야.”"아니......”그렇지 않다.이 결과는 조금도 좋지 않다.육현경이 곧 죽을 수도 있는 이 상황이, 뭐가 좋다는 것인가?온 가족, 세 사람이 온전히 함께 해야 좋은 것이다. "내가 너에게 했던 말을 기억해." 육현경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너와 민이를 잘 돌봐. 그리고 날 잊고, 네가 좋아하는 널 좋아하는 남자를 찾아서 잘 살아줘.” 소이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녀가 어떻게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 어떻게 그의 죽음을 직접 보고 다른 남자와 함께 있을 수 있을까? "얘기 다 했어?" 심아윤이 육현경에게 물었다. 마지막으로 남길 말을 다 한 것인가?
심아윤은 육현경을 데리고 폐공장 뒷문으로 나갔다. 소이연은 본능에 따라 그들의 뒤를 따랐다. "따라오지 마!" 심아윤은 화를 내며 소리 질렀다. 모든 사람이 매우 놀랐다. 소이연은 발걸음을 멈추었다. "다시는 나와 육현경을 귀찮게 하지 마! 소이연, 그럴 자격이 없어! 여기서 나가!" 소이연은 입술을 깨물며 육현경을 보았다. 육현경은 눈빛으로 그녀에게 따라오지 말라고 말했다. 소이연의 눈앞이 흐릿해졌다. 이 모습을 영원히 기억해야 하는가? 육현경은 심아윤을 따라 떠났다. 그들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소이연은 그들이 보이지 않자 참지 못하고 뒤쫓아갔다. 하지만 공장의 뒷문은 이미 잠겨서 어떻게 해도 열리지 않았다. 소이연은 멈출 수 없었다. 그녀는 재빨리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이명진도 밖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이명진은 소이연이 나오는 것을 보고 급히 그녀에게 갔다. "사모님.” 이명진은 육민과 함께 있었다. “엄마.” 소이연은 육민의 목소리를 듣고 자신을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녀는 아이 앞에서 무너지지 않고 울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그녀는 육민 앞에 몸을 숙이며 말했다. "엄마는 지금 아빠를 찾으러 갈 거야. 그러니까 넌 명진 실장님을 따라가.” "엄마, 싫어요...... "육민은 소이연을 꼭 껴안았다. “민아.” "엄마, 가지 마요." 육민은 소이연의 목을 꼭 껴안고 놓지 않았다. "아빠를 찾아서, 돌아올게.” "싫어요." 육민은 손에 힘을 주었다. 육민이 그녀를 잃을까 봐 두려워 작은 손으로 그녀를 꼭 붙잡고 놓지 않았다. 소이연은 육민을 힘껏 밀어냈다. 두려움이 가득한 육민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또래에 비해 의젓한 육민이었지만 겨우 7살인 이 아닌 어찌할 바를 몰랐다. "엄마, 가지 마요. 가지 마......” "민아." 소이연은 그의 작은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며 말했다. "엄마는 꼭 돌아올 거야. 먼저 명진 실장님이랑 가, 알았지?” “엄마......" 육민은 눈
소이연은 미친 듯이 앞으로 달려갔다. 해변에 도착하자마자 하얀 요트가 이미 멀리 선착장에서 멀어져 가고 있었다. 안 돼…… 소이연은 밤하늘 속에서 선착장으로부터 멀어져 가는 그 요트를 힘없이 바라보았다. 그녀는 육현경과 심아윤이 그 요트에 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심아윤이 어떤 식으로 그녀와 육현경의 삶을 끝낼지 알 수 없었다...... “꽈르릉......” 갑자기 격렬한 폭파음이 들렸다. 요트가 갑자기 폭발했다. 하늘에 갑자기 작은 태양이 떠오른 것처럼 보였다. 안돼! 소이연은 자신의 눈앞에서 갑자기 폭발하는 요트를 믿을 수 없다는 듯 쳐다보았다. 요트는 어둠 속에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그녀는 망설이지 않고 바다에 뛰어들려 했다. 어쩌면, 육현경이 아직 살아있을지도 모른다. 만약 육현경이 요트가 폭발할 때 바다로 떨어졌지만, 그녀는 그를 찾아 그를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가 움직이기 무섭게 경호원 그녀를 제지했다. "놔!”소이연이 소리쳤다. "소이연 씨, 지금 물살이 센 데다가 어두워서 보이지도 않아요. 바다로 뛰어들어도 소용없어요! 그러니 진정하세요!” 경호원이 무겁게 말했다. "놔!" 소이연은 쓰러지며 소리쳤다. "육현경 씨가 소이연 씨의 생명과 안전이 관련된 어떤 위험 상황이 발생한다면, 가장 먼저 당신을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어요! 소이연 씨, 육현경 씨는 본인을 희생해서라도 당신을 구하려 했고, 소이연 씨가 자신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기를 바라요!” "현경이를 구하러 가야 해!” "육현경 씨는......" 경호원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이렇게 큰 폭발 사고에서 육현경 씨가 살 수 없어요. 소이연 씨가 아무리 부정해도 바뀌지 않아요, 충동적으로 행동하지 마세요.” "그는 죽지 않아!” 소이연은 가슴이 찢어지는 듯, 고함을 질렀다. 경호원은 여전히 침착함을 유지했다. 그들은 삶과 죽음에 관해 비교적 냉정한 시간을 유지하도록 훈련받아왔다. 그들은 자신들의 임무를 수행
소이연은 그 바다를 떠났다. 그녀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바다로 떠나보냈다. 그녀는 줄곧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육민의 곁으로 돌아왔다. 윤민은 작은 몸으로 어둠 속에 서서 울지도 않고 조용히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순간, 그녀는 만약 육민이 기다리지 않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했다. 만약 그녀가 정말 그 순간에 사랑을 택했다면 육민은 어떻게 했을까? 그녀의 마음속에 죄책감과 슬픔이 뒤섞여 그 순간 버틸 수 없었다. 그녀는 블랙홀 속으로 빠져든 것처럼 눈앞이 캄캄했다...... 그녀는 힘을 내기 위해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그녀에게는 육민이 있었다. 가진 게 없지 않다...... 그녀는 쪼그려 앉아 자신처럼 울음을 참고 있는 육민을 바라보았다. 육현경을 닮은 굳센 작은 얼굴을 보며 그녀는 말했다. "민아, 아빠는 돌아오지 않을 거야.” 육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알고 있다. 새엄마가 자신의 아빠와 함께 죽기 위해 그를 납치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린 그는 막을 수도, 반항할 수도 없었다. 육민은 아빠가 자신을 위해 새엄마에게 협박당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는 아빠의 죽음으로 자신의 엄마가 눈물을 흘리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육민은 작은 손으로 소이연의 뺨을 어루만지며, 끝없이 흐르는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며 말했다. "엄마, 내가 아빠 대신 엄마를 잘 돌볼게요.” 육민의 말에 잘 참고 있던 소이연이 끝내 무너졌다. 그녀는 육민을 품에 안아 꼭 껴안았다. 육민이 그녀에게 살아갈 용기를 주었다...... ...... 새벽, 동이 텄다. 소이연은 육민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집에 하도경과 송문수가 거실에 있었다. 그 두 사람은 밤새도록 기다리다 지친 듯 소파에 쓰러져 잠들어있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두 사람이 깼다. 하도경은 소리쳤다."현경아!” 뒤돌아보니 소이연과 육민이 거실로 들어오고 있었다. 하도경과 송문수는 소파에서 일어나 재빨리 달려왔다. 송문
심아윤의 시신도 찾지 못했다. 어쩌면 폭발로 그들은 재가 되어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경찰과 육청호, 소이연도 모드 시신을 찾는 것을 포기했다. 시신을 찾지 못한 것이 그들에게는 위안이 될지도 모른다. 그녀는 어쩌면 그가 살아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기적이 또 있을지도 모른다. 육청호는 오늘 다음 주에 있을 계지원의 수술 때문에 해외로 출국한다. 여전히 위험은 있었다. 하지만 수술하지 않으면 위험이 더 커지는 상황이었다. 만약 수술이 성공하지 못한다면 계지원은 수술대에서 죽을 수도 있다. 소이연은 육은수, 육가희 그리고 육민과 함께 육청호를 공항으로 바래다주었다. 육청호는 한순간에 많이 늙었다. 육청호는 불과 몇 개월 사이에 이렇게 많은 일이 일어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많은 일이 있었던 후, 그의 검정 머리카락은 모두 하얗게 변해 있었다. "아버지, 저랑 같이 가요.” 육은숙은 말했다. "아버지 혼자 지원이를 보살피러 가면, 만약 지원이가......” 육은숙은 눈시울을 붉히며 말을 잇지 못했다. 아마 육현경의 죽음이 생각난 것 같았다. 정말 너무 슬펐다. 육현경이 죽을 거라고는 정말 생각도 못 했다. 지난번 소송에서도 육현경의 총명함을 믿었던 그녀는 그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랬던 그가 소송이 끝나고 갑자기 죽었다......"그럴 필요 없어. 너는 가희랑 장안에 있어.” 육청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거절했다. "가희 일은 잘되고 있어서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제가 한동안 아버지랑 같이 있을게요......” "나 혼자 조용히 돌아가게 해 줘.” "아버지." "만약에 지원이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말해줄게." 육청호의 태도가 확고하자 육은숙은 더 이상 방법이 없었다. 사실 그녀는 자신의 아버지가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직면하길 원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민이와 같이 가실래요?" 소이연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육청호는 고개를 돌려 소이연을 본 뒤, 육민을
육은숙과 헤어진 뒤, 소이연은 육민을 데리고 구치소로 향했다.소나은은 심씨 가문 사건에 말려든 뒤로 아직도 재판을 기다리고 있었다.이제는 당연히 법적인 제재뿐만 아니라 밖에서도 지위와 명예까지 완전히 잃어버렸다.언론에서는 차라리 죽는 것이 나을 만큼 소나은을 악의적으로 비난하고 저주했다.모두 그녀가 마땅히 짊어져야 할 업보다.소이연은 정말 조금의 연민도 느끼지 못했다.여기에 온 것도 자의가 아니었다.게다가 구치소에서 소나은이 자신을 만나고 싶다는 전화를 몇 번 받았었다.검찰 기관에서도 그녀에게 연락이 왔었다. 소나은이 조사에 협조할 유일한 조건은 그녀가 가는 것이라고 했다.하지만 그녀는 몇 번이고 거절했다.이번에 이 사건을 아예 마무리 짓고자 하는 것이다.그녀는 누구에게도 그녀와 육민의 인생을 방해받고 싶지 않았다.그렇다.그녀는 육현경 없이 육민과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것이다.그녀는 육현경이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그리고 그녀의 인생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구치소에 도착하자마자 소승영과 양화랑, 소준환을 마주쳤다.세 사람은 어두워질 대로 어두워진 얼굴로 구치소를 나서던 참이었는데, 소이연을 본 그 순간 얼굴은 더욱 어두워졌다.“네가 여길 왜 와?” 소승영은 소이연에게 매섭게 소리치며 물었다.소이연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왜, 너도 소나은 조롱하러 왔느냐?” 소승영이 비꼬며 말했다.소이연은 아빠라는 사람이 소나은이 그들에게 어떻게 대했던, 이렇게 매정하고 차갑게, 심지어 이 정도까지 비꼬는 것이 이해가 안 되었다.“소나은 얘는 자기가 자초한 거야! 애초에 갑자기 심씨 가문에 붙어서 소씨 그룹을 빼앗아 가더니, 이제 그 벌을 받아야지!”소승영은 이 말을 밖으로 뱉으니 통쾌한 것 같았다. 아마 자신이 역정을 냈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소나은이 이렇게 되니까 자랑스러우세요?” 소이연이 차갑게 물었다.소승영은 순간 멍해져 있더니 곧바로 당당하게 말했다. “난 소나은과
“소승영 씨.” 소이연은 정말 이 사람은 아빠가 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소승영은 낯빛이 어두워졌다.소이연의 말투 때문이었다.“방금 그러셨잖아요. 소나은이랑은 부녀관계 끊으셨다고. 지금 무슨 자격으로 소씨 그룹 지분을 내놓으라고 하시는 거예요?!”“지분은 원래 내 거야!” 소승영이 정당하다는 듯 말했다.“만약 당신 거라면, 소나은의 손에 있지 않겠죠. 나이도 드실 만큼 드셨으면 이렇게 뻔뻔하게 굴지 마세요!”“너!” 소승영은 손을 번쩍 들어 소이연의 뺨에 내리치려고 했다.이때 육민이 소이연의 앞에 나섰다.작은 얼굴에는 화가 가득했다. “우리 엄마 때리게 놔둘 수 없어요!”소이연은 조금 감동했다.모두 가족이었다.같은 가족이라도 정말 안 맞는 가족이 있다.소이연은 육민의 작은 얼굴을 만지며 웃었다. “괜찮아, 이 사람 엄마 못 때려.”소승영은 확실히 때리지 못했다.소승영은 아직 그녀를 조금 두려워하고 있다.어쨌든 그녀 때문에 큰 손해를 입었기 때문이다.소승영은 손을 거세게 내리더니 힘주어 말했다. “나 소승영이 이번 생에 가장 후회하는 게 바로 너랑 소나은 두 불효녀를 키운 거야!”“그리고 더 후회할 일이 곧 생기겠네요.”소이연은 소승영의 앞으로 지나쳐갔다.“자업자득이 기다리고 있으니까요.”소이연은 육민의 손을 잡고 자리를 떴다.소승영은 화가 머리끝까지 나 소이연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언젠가 소이연이야말로 그에게 대꾸해 준 것을 후회할 것이다.......면회실 안.소이연과 소나은이 마주 앉아 있었다.소나은의 얼굴을 극도로 창백해져 있었고, 눈에 띄게 야위어 있었다.말로 형용할 수 없는 쇠약함이었다.몸뿐만 아니라, 정신도 갑자기 피폐해진 것 같았다.“나 왜 찾았어?” 소이연은 바로 본론을 꺼냈다.눈빛에도 연민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소나은은 갑자기 소이연을 보고 웃었다.자신을 비웃는 웃음이었다.그녀가 말했다. “소이연, 지금 내가 이렇게 되니까 너무 기쁘지?”“그런 셈이지.” 소이연은
그리고는 간호사 하나가 걸어 나오며 말했다.“소이연 씨 보호자 계세요?”“네!”“아기 나왔습니다. 3.15킬로...”“산모는요?”간호사의 말에 우렁차게 대답한 육현경은 아이는 신경도 안 쓰고 소이연의 상태부터 물었다.“산모분은 아주 건강하십니다. 지금 선생님께서 상처 처리하고 계시니까 곧 나오실 겁니다.”“아빠 맞으시죠? 아이 한 번 안아보실래요?”그제야 안도한 육현경이 아이를 안아 들자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오며 한마디씩 하기 시작했다.“어머, 어쩜 이렇게 하얗지? 내가 본 아기들 중에 제일 예쁜 것 같아.”“지금 네 아들은 못생겼다는 소리야?”“솔직히 말하면 좀 못생기긴 했어.”하도경의 시비에 예수진이 너무 솔직히 답하자 계지원이 그게 사실인 걸 알면서도 자기 아들 외모를 저렇게 평가하는 게 썩 기분 좋지는 않았는지 헛기침을 해댔다.“나도 안아볼래.”예수진의 말에 육현경은 바로 아이를 넘겨주었다.“우리 공주님, 너무 귀엽다. 왜 하필 혈연관계인 거야!”피가 섞인 남매라서 자기 아들과 맺어줄 수 없다고 안타까워하는 예수진에 하지수도 궁금해서 다가가 보았다.“나도 봐봐.”가까이에서 보니 정말 떡잎부터 남다른 예쁜 아이였다.장차 아주 예쁘게 클 것 같아서 하지수는 아이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물었다.“딸이야?”“딱 보면 딸이지, 이 얼굴이 남자일 리는 없잖아.”간호사가 대답하려던 그때 분만실 분이 또 한 번 열리고 소이연이 휠체어를 타고 나오자 육현경은 다급히 달려가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고생했어.”“이제 돌아가서 쉬자. 우리 이제 아이는 그만 가지자.”소이연이 고생하는 게 마음 아팠던 육현경은 잔뜩 굳은 얼굴로 간호사에게서 휠체어를 받아 병실로 향했다.친구들도 그런 육현경을 따라 병실로 향하고 있었는데 성큼성큼 걷던 하지수가 휑한 옆자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송문수가 아직도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왜 움직이지 않는지 의아해진 하지수가 그를 바라보자 송문수가 그녀와 시선을 맞추며 입꼬리를 올려 보였다.
“뭐라고요?!”놀란 예수진이 언성을 높이자 육현경도 표정을 굳히고 소이연을 바라보았다.늘 소리소문없이 일을 처리하던 육현경은 이번에도 다들 벙쪄있는 틈을 타 소이연을 안고 밖으로 나갔다.예수진도 그 뒤를 따라 나가려 하자 계지원이 그녀를 잡아 세웠다.“수진아, 오늘 이 자리 우리가 만든 거야.”“그래도 갈 거야. 당신은 엄마랑 현경 오빠 어머님한테 손님들 좀 부탁한다고 전해줘. 난 언니한테 가봐야겠어.”예수진을 말릴 수 없다고 생각한 계지원도 잠시 고민하다가 그녀의 뒤를 따라 나가자 상황이 심상치 않게 흘러감을 눈치챈 송문수와 하지수도 아쉬운 듯 서로에게서 떨어졌다.“키스 다 했으면 빨리 병원 가. 이연 씨 출산한대.”출산이라는 말에 하지수도 다급히 뒤 따르려 하자 송문수가 그녀를 잡으며 말했다.“천천히 가. 그래도 안 늦어.”그렇게 몇 분도 안 된 사이에 많은 사람들이 파티장을 빠져나갔다.예수진이 둘째를 위해 연 백일잔치는 사라진 엄마 아빠 때문에 아이 혼자 남겨진 채로 끝이 나버렸다.그들이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양수가 터진 소이연이 분만실로 옮겨진 뒤였다.상황이 많이 급박한지 늘 침착함을 유지하던 육현경조차도 많이 초조해 보였다.아까부터 입구에서 서성이는 육현경을 보다 못한 예수진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오빠, 가만히 좀 있어 봐. 지금 다들 긴장하고 있는데 오빠 때문에 더 진정할 수가 없잖아.”직설적인 그녀의 말에 육현경이 예수진을 보자 계지원이 다급히 나서며 분위기를 풀었다.“아무 일 없을 테니까 걱정 마. 수진이도 그때 오래 걸렸잖아. 낳으면 된 거지 뭐.”말은 그렇게 해도 사실 계지원도 육현경 못지않게 초조해했었다.당장이라도 분만실로 뛰어 들어가 예수진 대신 아이를 낳아주고 싶어 했었다.그런데 그때, 분만실에서 소이연의 고통스러운 비명소리가 흘러나왔다.주먹을 쥐고 있던 육현경의 손이 점점 하얗게 질려감에 따라 지켜보던 친구들의 긴장감도 고조되고 있었다.다들 긴장하고 있는 와중에 송문수가 갑자기 하지수의 손
“임신 때문에 살쪄서 그런 거야. 문수 씨 탓 아니야.”하지수가 당황한 송문수를 달래주자 그는 벙찐 표정으로 물었다.“그럼 어떡하지?”“살 빼고 나서 다시 끼지 뭐.”“그래.”하지수에게 반지를 직접 끼워주는 건 송문수가 꿈에서도 그리던 장면이었는데 예상치 못한 이유로 못하게 되는 그는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하지수가 자신과 결혼만 해준다면 앞으로의 날은 길 것이기에 송문수는 그만 몸을 일으켰다.그런데 그가 일어서자마자 사람들이 소리높이 외치기 시작했다.“키스해! 키스해!”갑작스러운 호응에 하지수의 얼굴이 빨개지자 송문수는 그녀가 난처해지지 않게 당분간은 자신의 욕구를 억누르기로 했다.사실 그날 밤, 하지수와의 잠자리는 송문수에게 많은 미련을 남겨주었다.잠을 자다가도 쉴 새 없이 흥분해서 밤에 속옷을 몇 번이나 씻기도 했었다.그렇게 그녀를 원했어도 자리가 자리인 만큼 송문수는 하지수의 손을 잡고 내려가려 했는데 그 순간, 하지수의 입술이 송문수에게 닿아왔다.그녀가 먼저 한 입맞춤은 송문수의 심장을 뒤흔들기 충분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입맞춤을 당한 송문수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하고 있는데 그때 하도경의 장난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뽀뽀 한 번에 바보 된 거야?”“...”그 말에 욱한 송문수였지만 여자친구도 없는 친구를 위해 한번은 참아주기로 했다.“신경 쓰지 마. 우리 내려갈...”그런데 그때, 하지수가 또다시 입을 맞춰왔다.하지만 이번에는 아까처럼 닿았다가 금방 떨어지는 입맞춤이 아니라 오래도록 이어지는 키스였다.작은 그녀의 혀가 불규칙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자 송문수의 몸은 그대로 굳어버렸고 그의 심장박동 또한 정직하게 빨라졌다.정말 자신을 죽이려 드는 하지수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송문수는 하지수의 뒤통수를 손으로 잡고 키스를 이어가기 시작했다.임신을 해도 작기만 한 체구의 하지수는 금방 송문수에게 주동권을 뺏겨버렸다.두 사람의 행복을 빌어주기라도 하듯 무대 위로 장미꽃잎이 흩날리고
다들 숨을 죽이고 송문수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하지수의 눈엔 눈물이 가득해서 눈을 조금만 깜빡여도 쏟아질 정도였지만 그녀 역시 온 힘을 다해 참아내고 있었다.송문수는 그 정적 속에서 입술을 말아 물며 많은 고민을 거쳐 마침내 입을 열었다.“결혼하자.”그 대답이 들리기까지의 몇 분이 하객들에게는 한 세기만큼 길게 느껴졌다.송문수의 말이 끝나자마자 하지수도 기쁨의 눈물을 왈칵 쏟아냈고 송문수는 그런 그녀를 향해 한 번 더 소리높이 외쳤다.“하지수, 결혼하자. 너랑 결혼하는 게 내 평생의 소원이었어. 나중에 후회하더라도, 네가 지금 충동적으로 결정한 거라 해도 넌 이제 평생 내 여자야. 다시는 너 다른 남자한테 안 보내. 아주 박력 넘치는 남자가 될 거라고.”“난 후회 안 해.”송문수와의 결혼을 하지수가 후회할 리는 없었다.그때 예수진이 무대 위로 올라가자 송문수는 그제야 이 자리의 주인공이 예수진이었다는 걸 깨닫고는 다급히 하지수를 데리고 내려가려 했다.그런데 그때 예수진이 빨간 보석함 하나를 송문수에게 보여주었다.“이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는 알지?”그 안에 들어있는 건 송문수가 하지수를 위해 준비한 프러포즈 반지였다.익숙한 상자가 등장하는 순간부터 그 사실을 기억해낸 송문수였다.송문수는 하지수에게 가장 특별한 반지를 만들어주기 위해 세계적인 디자이너까지 초빙하며 큰 공을 들였었다.“이제 네가 가져.”예수진이 그것을 송문수에게 건네주자 그는 떨리는 손으로 받아들고는 천천히 보석함을 열어보았다.반짝이는 5캐럿의 다이아몬드가 마침내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게 된 것이다.눈이 멀어버릴 정도로 반짝이는 반지를 집어 든 송문수는 하지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자신이 상상해왔던 화면이 눈 앞에 펼쳐지자 하지수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는데 송문수 역시 눈가가 촉촉해진 채로 목멘 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지수야.”송문수의 부름에 하지수는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예전에는 내가 진짜 나쁜 놈이었어. 맹세할게, 앞으로는 진짜 좋
그런데 하지수가 이런 마음을 전하기도 전에 송문수가 그 먼 타지로 떠나버린 것이다.그래도, 송문수가 정말 자신을 싫어한다 해도, 정말 자신과 헤어지고 싶어 한다 해도 송승우와 함께하지 않겠다는 하지수의 마음은 한 번도 변한 적이 없었다.물론 자신을 쉽게 포기하는 송문수에 잠깐 실망도 했었다.그러면서 송문수에게 자신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예수진과 소이연이 저 영상을 보여주지 않았더라면, 그들이 송문수가 준비해온 모든 것들을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하지수는 영원히 송문수가 오래도록 자신을 좋아했다는 사실을 몰랐을 것이다.눈에 눈물을 가득 매단 하지수를 보던 송문수는 가슴이 아파와 손을 뻗으려 했지만 다시 움츠러들었다.지금 송문수는 무슨 결정을 내려야 할 지 몰랐다.혹여나 자신의 선택이 하지수에게 부담으로 다가갈까 봐, 그녀의 모습을 보며 송문수는 괴로워하고 있었다.너무 괴로워서 생긴 착각인지, 송문수는 하지수도 자신을 사랑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하지만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면 그건 바로 하지수 배 속의 아이였다.물론 송승우의 아이라 해도 송문수는 상관없었지만 하지수도 개의치 않을 수 있을까가 그의 의문이었다.“나 너랑 결혼하고 싶어. 네가 나한테 잘해줘서가 아니고, 네가 오래전부터 날 좋아해서도 아니고, 날 위해 많은 걸 준비해줘서도 아니라 그냥 내가 좋아서. 그래서 결혼하고 싶어. 다른 거랑은 아무 상관없어.”하지수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송문수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네가 좋아하는 건 송승우잖아.”“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 난 송승우 안 좋아해. 아주 오래전부터 이미 끝난 사이였어. 말했잖아, 그때 좋아한다고 느꼈던 감정은 그냥 습관 같은 거였다고. 내가 좋아하는 건 너야. 미안해서가 아니라 그냥 네가 좋아!”매번 좋아한다고 할 때마다 믿질 못하는 송문수 때문에 하지수는 화가 치밀어올랐다.물론 송문수가 자신을 믿지 못해서 화가 난 게 아니라 송문수가 본인한테 자신감이 너무 없는 것 같아
파티장 안의 모든 불빛은 송문수와 하지수에게 집중되어 있었다.무대 중앙에 선 하지수는 송문수를 바라보고 있었고 송문수도 사람들 틈에서 하지수를 바라보고 있었다.지금 하지수는 송문수가 그냥 가버릴까 봐, 그게 제일 무서웠다.하지수는 자신이 이런 용기를 내는 것도 마지막일 것 같았다.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감정을 마주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조용한 그 공간에서 송문수가 갑자기 무대로 향해 걸어갔다.한발 한발, 무거운 발걸음이었지만 그 발걸음이 향하는 곳은 확실했다.그래서 하지수의 심장박동도 빨라졌다.더 이상 컨트롤이 되지 않을 정도로.모두들 숨죽인 채 송문수와 하지수를 보고 있었지만 그중에서 가장 마음을 졸이는 건 예수진과 소이연이었다.겁이 많은 송문수가 도망이라도 갈까 봐 걱정하고 있었는데 다행히도 송문수가 책임감은 있어서 하지수를 혼자 남겨두진 않았다.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송문수가 하지수에게로 다가섰고 두 사람은 말없이 서로를 응시했다.송문수의 눈은 빛나고 있었고 울대는 잔잔히 떨리고 있었다.심경에 크나큰 변화가 일었지만 애써 본인을 진정시키려 하는 게 눈에 훤히 보였다.“지수야, 이건 마음에 담아두지 마.”그러다 갑자기 내뱉은 말에 하지수는 송문수를 빤히 쳐다보았다.“그때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이런 걸 찍었는지도 모르겠어.”송문수는 이번에도 장난인 척 너스레를 떨며 상황을 넘기려 했다.“너도 알잖아 나 이상한 거. 충동적으로 무슨 짓이든 하는 사람이잖아. 그러니까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진 마.”말을 마친 송문수가 직원을 찾아가 영상을 지우려 하자 하지수가 입을 열었다.“난 이미 진지하게 받아들였어.”그 말에 발이 잡힌 송문수는 빨라지는 심장박동을 애써 늦추며 말했다.“미안해.”송문수의 갈등과 무력함을 보아낸 하지수의 눈에도 어느새 눈물이 차올랐다.“너 헷갈리게 해서 미안해. 만약 네가 신경 쓰인다면... 앞으로 네 앞에 안 나타날게. 너도 나 같은 사람 때문에 힘들어하지 마. 그럴 가치 없
오늘 온 손님들은 하나같이 외향형인지 호응도 아주 잘해줬다.“네! 궁금해요!”“한 여자를 위해선데요.”“누구예요?”“바로 하지수입니다.”영상 속의 자신이 한 자 한 자 내뱉는 말들을 듣던 송문수는 그제야 이게 자신의 프러포즈 영상이었음을 깨달았다.처음에는 이게 어떻게 여기 있는지 당황스러웠지만 항상 일 처리에 미흡한 예수진이 이번에도 실수한 거라 생각해 송문수는 무대 위로 올라가 영상을 멈추려 했다.그런데 그가 발을 내디디자마자 육현경과 하도경이 그 앞을 막아섰다.그리고 영상은 계속해서 재생되었다.“하지수는 제 아내입니다. 결혼한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한 번도 제대로 사랑해준 적이 없었죠. 사실 저는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라 사랑할 용기가 없었던 겁니다. 제가 너무 비겁해서 그 사람 앞에만 서면 저 자신이 쓸모없어지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늘 유치한 방법으로 그 사람에게 상처만 줬어요.”영상 속 송문수의 얼굴에는 미안함이 가득했다.“미안해 지수야. 나 지금 엄청 후회하고 있어. 괜한 질투로 널 몇 년 간 힘들게 한 걸. 매일 밤 널 안고 자고 싶었는데도 난 자존심 때문에 그런 말 한마디 못했어. 그래서 내 인생이 좀 덜 재밌었던 것 같아. 너라는 복지가 부족했잖아.”감동하며 영상을 보고 있던 사람들은 마지막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참 울지도 웃지도 못하게 하는 고백 영상이었다.“사랑해, 지수야.”뒤이어 마침내 사랑한다는 말이 나왔는데 그때 송문수의 눈은 확신이 가득 차 있었다.“널 처음 본 순간부터 사랑했었어. 그런데 네가 좋아하는 게 내가 아니니까 점점 비참해지더라. 그래서 네가 싫어하는 방법으로 네 시선을 끌려고 했어. 그때만 생각하면 아무리 나라도 너무 멍청한 것 같더라.”“하지만 이젠 아니야.”“내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은 못 돼도 세상에서 너한테 가장 잘해주는 남자는 될 수 있어.”“더 이상 너한테 성질도 안 내고 부려먹지도 않을게. 괜한 질투 때문에 너 상처받게 하지도 않아. 우리 집은 이제 너한테 맡길 거야. 돈도
파티장에 들어와 보니 계지원과 예수진이 아들딸과 함께 와준 손님들에게 인사를 해주고 있었다.인사를 마친 예수진은 흥분된 목소리로 하지수를 불렀다.“이번에는 제 가장 친한 친구이자 우리 아들의 영원한 이모일 하지수 씨를 모셔보겠습니다.”파티장 한구석에 선 송문수는 무대 위로 올라가는 하지수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아까는 제대로 볼 엄두가 안 나서 애써 무시하려 했던 그녀의 배가 꽤나 불러온 것 같았다.옷을 입어도 다 가려지지 않는 게 이미 임신 몇 개월은 된 것 같았다.정말 자신은 안중에도 없었는지 이렇게 빨리 임신한 하지수가 송문수는 조금은 원망스러웠다.이어서 마이크를 잡은 하지수는 누군가를 찾는 듯 무대 아래를 훑어보았다.한참이 지나 자신에게로 향하는 그녀의 시선에 다급히 눈을 피하던 송문수가 다시 고개를 돌렸을 때 하지수의 시선은 이미 사라져있었다.그에 송문수는 그녀가 찾던 건 아마 송승우일 거라고 짐작하고 있었다.그런데 끝까지 모습을 비추지 않는 송승우 때문에 그저 시선을 거둔 것 같았다.“우선은 수진이 아들 이모가 될 수 있어서 너무 영광스럽고요.”“수진이가 제 배 속에 있는 아이가 딸이면 꼭 사돈을 맺자고 그러더라고요.”“저도 우리 조카 귀여워서 너무 사랑하거든요.”“하지만 사돈은 저 혼자 맺는 게 아니잖아요. 애 아빠 입장도 있고 하니까요.”그러자 예수진의 격앙된 목소리가 또 한 번 들려왔다.“그럼 얼른 애 아빠부터 불러서 오늘 사돈 한번 맺자!”“아이 아빠는...”그녀의 말에 담담히 웃던 하지수는 갑자기 말을 멈췄다.마른 침을 삼키며 그 모습을 보던 송문수는 정말 송승우를 한 대 때려주고 싶었다.가장 사랑하는 여자를 내어줬는데도 책임을 다하지 않고 이런 날에 하지수를 혼자 이곳에 보내고 또 혼자 무대 위에 올리는 게 어떻게 남편이라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짓인가 싶었다.“수진아, 내가 무대 좀 써도 돼?”“당연하지, 오늘 이 자리는 널 위한 거야.”“아, 아니다. 내 미래의 며느리를 위한 거지.”예수진의 한마디에
하지수의 말을 끝으로 두 사람의 시선이 맞물리자 송문수가 황급히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당연하지.”“진짜야?”“내가 왜 널 속이겠어?”“그런데 왜 안 데려왔어?”“이번엔 시간이 별로 없어서 괜히 고생만 할까 봐 안 데려왔어.”“나중에 기회 되면 데리고 올 거야.”“예뻐?”“내가 안 예쁜 여자 사귀는 거 봤어? 외국 여자들은 몸매도 좋아. 원래 S라인이 내 취향이잖아.”“사진 있어?”하지만 저 질문에는 송문수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그래서 몇 초 동안 침묵을 유지하다가 다시 능청스레 대답했다.“있지.”“내가 봐도 돼?”“왜? 뭐 심사라도 해주게?”“아니, 그냥 궁금해서. 네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여자는 어떻게 생겼는지.”“보면 너 상처받을까 봐 안 보여줄 거야.”“괜찮아.”송문수도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며 거절하려 했지만 하지수는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다음에 직접 데려와서 보여줄게.”“지금 보고 싶어.”“카메라는 잘 안 받아서 실물보다 별로야.”“왜 안 보여주는 거야? 설마 없는 거야?”“설마 내가 너 못 잊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걱정 마. 난 원래 감정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이거든. 절대 너한테 매달리지 않을 거야.”송문수가 확신에 찬 말을 하자 하지수는 씁쓸하게 웃어 보였다.“매달린 적이 있긴 해?”그런 하지수의 모습을 보니 또 가슴이 아파왔지만 송문수는 꾹 참기로 했다.송승우의 아이를 가진 하지수는 이미 자신에게서 너무 멀어져 있으니까.“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하지수는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멀어져가는 송문수의 뒷모습을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한편 화장실로 들어온 송문수는 물을 틀어놓고 손을 몇 번이니 씻어댔다.더 이상 손에 감각이 없을 정도로 아까부터 한 동작만 반복하고 있었다.“더 씻으면 손 터져.”그 모습을 본 하도경이 직접 물을 꺼주자 송문수는 넋 나간 사람처럼 고개를 끄덕이고는 하도경이 건넨 휴지를 받아 손을 닦아냈다.“고마워.”“이게 진짜 뭐 하는 짓이냐. 그렇게 좋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