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수는 송승우의 차에 탔다. 사실, 그녀가 그를 부른 것이 아니었다. 방금 송승우가 그녀에게 전화해서 법률자문을 구했다. 그녀가 그에게 급하냐고 묻자, 그는 매우 급하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이 있는 장소를 알려주었으며, 그에게 와달라고 부탁했다. 차에 올라탄 하지수의 얼굴은 창백했고 몸을 떨고 있었다. "아직도 춥나요?" 송승우가 물었다. 날씨가 점점 따뜻해지고 있기는 했지만 여전히 서늘한 날씨였다. 송승우가 하지수를 부축해서 차에 태울 때, 그는 그녀의 몸이 얼음처럼 차갑다고 느꼈다. "춥지 않아요." 하지수는 송승우를 한 번 쳐다보며 억지로 미소 지었다. ”시간이 지체됐네요.” "아니에요, 오늘 볼일이 있어서 회사에 가려고 했는데, 지수 씨가 없을까 봐 전화 먼저 해봤어요." 송승우는 가능한 한 하지수를 난처하게 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말했다. "그런데 문수와 싸웠어요? 문수가 지수 씨를 길에 내려놓고 갔나요?” "그런 것 같아요." 하지수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죠?" 송승우 안색이 어두워졌다. "나중에 제가 한마디 할게요. 싸웠어도 그렇지, 어떻게 이런 곳에 지수 씨를 혼자 내버려 두고 가요? 사고라도 나면 어떻게 하려고요? 어떻게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이렇게 충동적이고 제멋대로인지, 지금까지 다른 사람을 배려한 적이 없어요. 가족들이 문수를 너무 끼고 돌아서 성격을 망친 탓도 있어요.” 하지수는 그의 말은 들을 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지수 씨를 문수와 결혼시켜서 고생만 시키네요.” 송승우는 안타까운 듯 말했다. "그때 내가 아니었다면...” "억울하지 않아요." 하지수가 송승우의 말을 끊었다. "사실 그때 나는 문수 씨에게 고마웠어요. 문수 씨가 아니었다면 제가 어떻게 송씨 가문에 남아 이렇게 편안한 생활을 할 수 있었겠어요?” 송승우는 쓸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네.” 하지수를 버린 것은 자신인데, 이제 와서 무슨 자격으로 다른 사람을 원망하겠는가?
육현경 때문에 스스로 한 결심에 타협하다. 그를 위해, 그녀는 사랑을 다시 한번 믿고 싶었다. 육현경은 품에 안겨 있는 소이연을 바라보며, 그녀의 온기를 느꼈다. 그녀가 그의 허리를 더욱더 꽉 끌어안았다. 육현경이 고개를 숙이며 미소 지었다. 치른 대가가 큰 것은 사실이지만 분명 가치가 있었다. 하지만 그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는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소이연을 품에 꼭 끌어안으며, 그녀의 존재를 실감했다. 두 사람은 한참을 계속 그렇게 껴안고 있었다. 아무도 서로의 손을 놓으려 하지 않았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 육현경은 기침을 내뱉었다. 소이연이 그때서야 육현경의 몸상태를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녀는 육현경을 몸으로 느끼며, 그의 몸에서 손을 떼면 그가 사라질까 봐 걱정했다. 그녀는 이번 일로 무엇인가 사라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행복이 무엇인지 진정으로 실감할 수 있었다. 그녀는 마지못해 육현경의 품에서 떨어졌다. 지금 이 순간 육현경은 집에 가서 잘 쉬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현재 그의 몸 상태는 서있는 것조차 힘들어 보였다. 그들은 서로를 놓아주었다. 소이연은 고개를 들어 육현경을 바라보았다. 그와 눈을 마주친 순간 소이연의 얼굴이 다시 붉어졌다. 그녀는 이전에 육현경에 대해 이렇게 열정적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자신의 충동적인 행동에 말할 수 없이 부끄러웠다. "갈 거야 말 거야?" 소이연이 그를 재촉하며 물었다. 지금 가지 않으면 여기서 밤을 새워야 할 수도 있다.그 둘이 이렇게 오랫동안 나가지 않았으니 지금쯤 밖에 있던 기자들은 떠났을 것이다. "가자." 육현경이 소이연의 손을 잡았다. 소이연은 손가락을 약간 움직이며 살짝 꺼림칙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래?" 육현경은 얼굴을 찡그렸다. "밖에 기자가 있을 것 같아." 소이연이 말했다.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는데, 우리 관계를 아직도 숨겨야 해?” 육현경은 화가 났다. 그녀는 적응하기 힘들었다. 지금 이렇게 빨
"어?" 육현경은 소이연이 대답하지 않자 미간을 찌푸렸다. "아직도 망설이고 있는 거야? 소이연, 이 양심도 없는 여자야. 내가 도대체 어디까지 해야 나를 진심으로 받아줄 수 있는 거야? 어떻게 해야 네 곁에 떳떳하게 설 수 있는 거야?” 육현경은 말하면 할수록 흥분했다. "심장이라도 꺼내서 보여줄까... 음!" 육현경은 갑자기 눈을 크게 떴다. 소이연이 까치발을 하고 그의 입을 자신의 입으로 막았다. 육현경의 분노 가득했던 눈빛이 순식간에 부드럽게 변했다. 이 남자... 정말 쉽게 달랠 수 있다. 육현경은 소이연을 끌어안고 더 깊게 키스하려 했지만 소이연은 또 피했다. "이렇게 해 놓고 또 책임지지 않겠다는 거야?" 육현경은 어이없어 하며 물었다. "아니야." 소이연이 부인했다. “방금 네가 너무 시끄럽다고 생각했어.” 육현경은 얼굴빛이 확연히 바뀌었다. 소이연이 자신을 거부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아니면 내가 말하는 게 싫은 건가?’ 젠장. 그녀 말고 그는 누구에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자신의 마음속에 담아둔 말을 그녀에게만 할 수 있다. 자신의 속마음을 그녀에게 보여주고 싶다. 그런데 싫다고? 육현경이 폭발하려는 바로 그 순간. 소이연은 말했다. "언제 결혼하면 좋을까?” 육현경의 모든 분노가 순식간에 삭아 들었다. 그의 눈에 충격이 가득했다. 아니, 깜짝 놀랐다. 자신이 무엇을 들었는지 믿지 못하며, 너무 흥분했다. "진심이야?"육현경의 목소리가 떨렸다.분명 너무 설레고 흥분하고 있었다."난 그냥..." 소이연은 육현경의 이글거리는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민이에게 온전한 가정을 주고 싶을 뿐이야...”"나도 원해."육현경이 갑자기 진지하게 대답했다."응?""방금 나한테 프러포즈했잖아."육현경이 웃으며 말했다."너에게 대답해준 거야. 나도 원해.”이 남자, 원하는 것을 얻고도 잘난 척하는 남자."가자."육현경은 소이연의 손을 잡아당겼다."밖으로 나가서 사람들한테 나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현장을 떠났으면 어떻게 이렇게 큰 특종을 취재할 수 있겠는가? 그들의 등장에 기자들을 순식간에 그들 두 사람을 에워싸고 그들이 현장을 떠나지 못하게 했다. 사실 소이연의 경호원 네 명은 줄곧 법정 밖에 있었지만 눈치껏 소이연과 육현경의 애틋한 시간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물러나 있었다. 그들은 소이연이 기자들에게 이렇게 에워싸인 것을 보고 급히 가서 도와주려 했지만 소이연이 눈빛으로 거절했다. 오늘 그녀는 오히려 기자들과 인터뷰하고 싶었다. "육현경 씨, 소이연 씨와 손을 잡고 나오셨는데, 두 분은 우리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그 관계입니까?” "육현경 씨, 이번 소송을 훌륭하게 마무리하셨는데, 지금 심정을 간단히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육현경 씨, 소이연 씨와 무슨 관계입니까, 두 분은 연인 사이인가요? 그럼 심아윤 씨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현장이 많이 시끄러웠다. 그들이 무엇을 묻고 있는 것인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육현경이 말하기도 전해 소이연이 입을 열었다. "잠시만 조용히 해주세요. 기자님들 질문에 모두 답해드릴 테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리고 육현경 씨는 이번 소송으로 몸상태가 좋지 않으니, 한 발짝 물러서서 그를 누르지 말아 주시겠어요?" 소이연은 자신의 몸으로 육현경을 보호하고 있었다. 소이연의 말을 들은 기자들은 한 발짝 물러섰다. 두 사람과 기자들이 거리를 유지한 후, 한 기자는 농담을 건넸다. "소이연 씨, 남편을 너무 열심히 보호하는 것 아닌가요?” 그 말 한마디에 모두가 웃었다. 소이연은 얼굴을 붉혔지만 부인하지 않았다. “그런 가요?” 그녀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진짜 난리가 났다. "정말 소이연 씨와 육현경 씨는 연인 사이라는 뜻인가요?" 기자가 큰 소리로 물었다. "아직 식을 올리지 않은 부부 사이입니다. 방금 소이연 씨가 제게 청혼했습니다.” "소이연 씨가 청혼했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럼 소이연 씨가 적극적으로 육현경 씨를 쫓
"그럼 기자님은 심아윤 씨가 심씨 가문이 나한테 누명을 씌운 걸 모르고 있었을 거라 생각하나요?” 육현경은 기자에게 물었다. “제가 해외에 있을 때 심씨 가문의 해외 호적들은 모두 심아윤 씨가 관리하고 있었습니다.” "육현경 씨 말은 심아윤이 당신을 사랑하면서도 생각하지도 않고 이용했다는 뜻인가요?" 기자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누가 알겠습니까? 심아윤 씨에게 물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육현경은 대답을 피했다. "모든 진실이 밝혀지면, 심씨 가문도 마땅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입니다. 육현경 씨와 소이연 씨는 결국 함께 하시게 되었네요! 축하합니다.” 기자가 말했다. "감사합니다." 소이연도 육현경도 기자의 축하인사에 감사를 표했다. "두 분 사이의 감정적인 변화를 간단히 말해주실 수 있나요? 처음에 육현경 씨와 심아윤 씨가 약혼했을 때, 소이연 씨는 어떠셨나요? 소이연 씨는 육현경 씨가 이런 방식으로 삶과 재산을 안전하게 지키는 것을 지지했나요?” "지지하지 않았습니다." 소이연은 숨김없이 답했다. "심아윤 씨와 왜 결혼하는지 저에게 전혀 알려주지 않았습니다.”"네가 나를 믿지 못할까 봐 두려웠고, 네가 위험할까 봐 두려웠어." 육현경이 설명했다. "나를 네 편으로 생각하지 않고, 소문을 퍼뜨릴까 봐 그런 거지?” “소이연, 사람이 이렇게 배은망덕하게 굴면 안 돼. 내가 너 때문에 지금 어떻게 됐는지 안 보여?” "팔, 다리가 없어졌어?” "팔, 다리도 없는데 널 어떻게 안아?” "너..." 소이연은 육현경을 말로 이길 수 없었다. 여기저기 보고 있는 사람이 이렇게 많다고! 기자들은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지 못했다. 기자들이 취재를 멈추고 말없이 취재 대상의 ‘애정 어린 다툼’을 쳐다보고 있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서로를 애정 가득한 마음으로 비판하고 있었다. 기자들은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보고만 있을 뿐이다. "심아윤이랑 결혼하는 날 내가 왜 체포됐는지 알아?" 육현경이 숨을 몰아쉬며 소이연에게 물었
"심문헌 씨가 날 좋아할 리도 없는데 무슨 질투를 해." 소이연은 어이가 없었다. "예전에 예수진한테도 질투했었어.” 육현경이 솔직하게 말했다. 소이연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 남자가 질투를 한다고? "예수진이랑 너랑 같은 침대에서 잤잖아." 육현경의 눈동자가 갈 길을 잃었다. "왜 질투해서 죽지는 않았어?" 소이연은 어이가 없었다. "나중에 나한테 더 잘해주면 돼." 육현경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소이연은 다시 한번 눈을 크게 떴다. 육현경, 이 남자는 모든 상황을 잘 이용한다. "그나저나 심씨 가문이 네 명의를 이용해서 일을 꾸미고 있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된 거야?” 소이연이 갑자기 진지하게 물었다. 재판을 하면서 많은 진실이 밝혀졌지만, 아직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이 많았다. "아니." 육현경은 소이연에게 더 이상 숨기지 않고 말했다. "나도 사업하는 사람이고 내 이익을 우선시하는 사람이야.” "그래서...” "오래전에 발견했지만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어.” "그러면 너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 한 계속 이렇게 보고만 있겠다는 거야?” 소이연은 물었다. "아마도." 육현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소이연이 입을 다물었다. "난 좋은 사람은 아니지만 나쁜 사람은 절대 아니야." 육현경이 설명했다. "난 훌륭한 사람이 아니야, 내 재산과 생명을 위험에 빠뜨릴 수 없어. 심씨 가문을 상대하는 데 성공하지 못하면, 나뿐만 아니라 내 주변의 중요한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게 될 거야. 난 위험을 무릅쓰고 행동할 수 없어. 게다가 사기는 속이겠다고 작정하고 벌이는 일이야. 욕심이 없었으면 이런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을 거야. 교훈일 뿐이야.” "널 무시하려는 뜻은 아니야.” 소이연이 말했다."나 같으면 할 수 없었을 거야. 무언가를 하기 전에 가족을 보호하는 건 나도 이해해.” "아내의 이해에 감사해." 육현경은 입꼬리를 실룩거리며 가볍게 웃었다. 아직 결혼도 안 했는데, 이 남자는 어떻게 '아내'라는 말이
“천우진? 그 사람이 무슨 목적이 있어?” 소이연은 순간 긴장했다.그녀는 계속 육현경이 육씨 가문의 가업을 팔아 넘긴 것이 할아버님처럼 다시는 이런 시시비비를 가리는 일에 엮이지 않기 위해, 위험이 될만한 것을 처리하려는 것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 속 사정을 들여다보니, 그냥 평범한 인생을 즐기는 것만 못하다고 느꼈다.하지만 이게 천씨 가문과 관련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넌 아마 예상하고 있었겠지.” 육현경은 소이연을 보며 말했다.소이연은 가슴이 떨렸다.결론적으로는 그녀가 가장 원치 않는 답이었다.“맞아. 천우진이 나한테 일 좀 도와달라고 했어. 근데 지금 육씨 그룹의 간판이 되어버렸으니, 그 사람은 나처럼 잘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 자기 옆에서 도와주길 원해.” 육현경이 천천히 말했다.“뭘 도와줘?” 소이연이 물었다. “무슨 야망이라도 있는 거야?”“천씨 가문은 심씨 가문이랑 비슷한 상황이야. 심씨 가문은 내부적인 문제가 많잖아. 천씨 가문의 형제들도 서로 옥신각신하고 있어. 천우진은 날 이용해서 자기 형제들을 밟고 천씨 가문의 상속자가 되길 원해.”“그럼 그 사람이 상속자가 아니야?” 소이연이 물었다.밖으로 알려진 바로는 그 사람이 상속자였기 때문이다.그래도 큰 아들이고, 천씨 가문의 신임을 얻고 있으면서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스스로의 능력도 있다.그가 천씨 가문을 상속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나도 아직 구체적으로는 잘 몰라.” 육현경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깊게 파헤쳐 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아.”“꼭 그렇게 그 사람들이랑 엮여야 해?” 소이연은 걱정하는 말투로 물었다. “그냥 다 내버려 두고 나랑 평범하게 살면 안 돼?”“최대한 빨리 그렇게 해볼게.” 육현경이 약속했다.사실 처음 심씨 가문과 관계를 끊으리라 다짐했을 때부터 이미 선택권은 없었다.하지만 천씨 가문의 사람을 이용하지 않았다면, 이 소송은 애초에 순조롭게 진행될 수 없었다.만약 천우진이 오늘 법정에서 재판장을 협박해 계
“그럭저럭이요.” 소이연은 다른 사람 앞에서 자신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자신의 가장 아름다운 모든 순간은 육현경의 것이라고 이기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그럼 제가 방해 좀 할게요.” 심문헌의 목소리가 엄숙해진 것이 느껴졌다.소이연은 미간을 찌푸렸다.작은 움직임이었지만 육현경은 확실히 보았다.그는 가만히 그녀를 보고 있었다.“안 좋은 소식 하나 알려드릴게요. 아윤이가 실종됐어요.” 심문헌이 천천히 말했다.“실종이요?” 소이연은 심장박동이 빨라졌다. 그 순간 마치 뭔가 큰일이 생길 것만 같았다.“오늘 육현경 씨의 소송이 알려지면서, 저와 할아버지를 포함한 심태섭 할아버지 가족들이 모두 검찰 기관으로 끌려가서 조사를 받았어요. 심아윤은 그대로 구속되었고요. 증거가 충분해서 심태섭 할아버지와 저희는 방금 풀려났는데, 나오자마자 들은 소식이 아윤이가 경찰에 체포된 그 순간부터 실종됐다는 소식이었어요. 낙성 시 아무 데도 없어요.”“서울로 간 건 아니고요?” 소이연이 물었다.천우빈이 서울에 있으니 그를 보러 간 것은 아닐까?“안 갔어요. 장안 시로 왔어요.” 심문헌은 직설적으로 말했다.“방금 알았는데, 어제 장안 시에 왔었어요. 저는 지금 혹시 육현경 씨의 소송을 보러 간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어요.”“안 왔어요.” 소이연은 확신했다.그녀는 심아윤을 보지 못했다.“전 그냥 조금 언질을 드리는 것뿐이에요. 겸사겸사 한 마디 더 하자면, 지금 심태섭 할아버지 가족들이 정치계를 완전히 떠날 준비를 하고 있어요. 심태섭 할아버지는 이제 정치는커녕 경제 쪽으로도 발전할 수 없어요. 역시 육현경 씨가 강력하긴 하다고 할 수 있죠. 저랑 저희 할아버지가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어요. 와신상담, 성동격서, 죄를 뒤집어씌우고 모함하기도 하고... 생각나는 대로 다 해봤는데도 심태섭 할아버지는 여전히 같은 자리였고, 심지어는 이 짧은 몇 개월의 시간 동안 엉망진창이 되었죠.”소이연은 심문헌이 육현경을 진심으로 존경스럽게 생각한다는 것이 느껴졌
둘의 이혼은 아주 빠르게 진행되었고 두 사람은 각각 손에 이혼 증명서를 들고 법원에서 나왔다.“이제 끝난 거지?”“네.”하지수에게 건네받은 이혼 증명서를 들춰보던 송승우는 안에 적힌 내용을 다 확인한 후에야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혹시라도 돌발상황이 생길까 봐 따라온 건데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도 두 사람의 이혼은 순조롭게 진행됐다.송문수는 하지수를 보고서도 한마디도 하지 않고 그저 절차대로 서류만 제출했다.아무 감정도 없는 것 같은 두 사람의 모습에 송승우는 감정이란 게 저렇게 쉽게 사라질 수도 있나 싶었다.둘 사이에 다른 일이 있었던 건 아닐까 궁금하기도 했지만 어차피 이혼만 하면 그만이었기에 송승우는 다른 건 묻지 않았다.이제 두 사람이 이혼했으니 송승우는 저와 하지수도 떳떳해진 것 같았다.그리고 그는 송문수만 연락을 끊는다면 하지수를 다시 자기 여자로 만들 자신이 있었다.그래서 법원에서 나오자마자 송승우가 먼저 송문수를 불러세웠다.“시간 되면 집에 와서 밥이라도 먹어. 엄마 아빠가 전화해도 안 오던데, 많이 바쁜 거야?”“응.”“바쁘다고 가족들도 다 내팽개치는 건 아니지. 워라벨도 신경 써야지.”어른스러운 말투로 나무라듯 말하는 송승우를 송문수는 쳐다보지도 않았다.서울에서 일할 때 1년이 넘도록 안 오던 게 누군데.부모님이 굳이 송승우를 부르지 않은 건 그의 일에 방해가 될까 봐서였다.무튼 송승우는 그런 사람이었다. 자신이 하는 일은 아주 중요한 일이고 다른 사람들의 일은 언제든지 시간을 뺄 수 있는 여유 적적한 일이라 여기는 사람.“언제 시간 되는지 알려주면 도우미들 시켜서 너 좋아하는 거...”“나 해외에 잠깐 나가봐야 해.”“뭐라고?”송문수가 송승우의 지루한 말을 끊으며 대답하자 송승우는 당황하며 물었다.“엄마 아빠가 말 안 했어?”“무슨 말이야 그게?”금시초문이었던 송승우는 하지수를 쳐다보았지만 그녀의 반응을 보니 그녀 역시 처음 듣는 말인 것 같았다.“우리 회사 전기차 해외 매출이 자꾸 오르니까 전
그런데 그때, 협탁에 놓인 물과 알약 한 알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그 옆에 나란히 놓여있는 쪽지에는 “단기 피임약”이라는 말도 적혀있었다.그 약과 물을 번갈아 보던 하지수는 피가 차게 식는다는 게 뭔지 그제야 알 것 같았다.너무나도 명확한 송문수의 의사에 하지수는 가슴이 아려왔다.성인 남녀 둘이 충동적으로 서로를 원해서 가졌던 하룻밤이니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을 것이고 아무런 미련도 없다는 걸 이렇게 약으로 알려주다니.알약을 집어 든 하지수는 참으로 처량하게 웃어 보였다....그렇게 점심이 다돼서야 하지수는 별장으로 돌아갔다.핸드폰 배터리가 다 된 탓에 그녀는 송승우가 몇 통의 전화를 했는지도 모른 채 별장 안으로 들어섰는데 송승우는 아니나 다를까 어두운 얼굴로 이제야 들어오는 그녀를 바라보았다.그와 달리 허영지와 송기명은 살갑게 하지수를 걱정해주었다.“지수야, 어제 어디 갔었어? 전화는 왜 꺼놓고. 수진이한테 전화했는데 네가 문수랑 같이 갔다고 해서 문수한테 연락해보니까 문수는 또 너랑 같이 있는 거 아니라고 그러던데. 대체 어디 있었던 거야? 어디 다친 데는 없지?”“없어요. 어제 술을 좀 많이 마셔서 문수 씨 집에서 잔 것뿐이에요.”송문수 집에서 잤다는 하지수의 말에 송승우는 더는 못 참겠는지 언성을 높였다.“하지수, 너 나랑 한 약속 잊었어? 네가 어떻게 거기서 잠을 자!”“내가 무슨 약속을 했는데요?”송승우는 아무리 화가 났어도 저 질문에만큼은 답을 할 수 없었다.가스라이팅으로 어렵게 얻어낸 기회라는 걸 다른 사람한테는 알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나 문수 씨랑 아직 이혼 안 했어요. 그러니까 아직은 뭘 하든 합법적이란 소리죠.”“하지만...”“이혼하고 나서 얘기해요. 나 피곤해서 먼저 올라 가볼 게요.”몸도 마음도 다 힘들었던 하지수는 송승우를 화를 살필 겨를이 없었기에 그대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그렇게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보고 있으니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또르륵 흘러내렸다.몸을 뒤척이며 이불을 목 끝까지 끌
“너 내일 후회할 거야.”이런 하지수를 앞에 두고 참는 건 송문수에게도 곤욕이었다.온몸이 떨릴 정도로 힘을 주고 있는 것보다 자신의 마음을 억누르는 게 더 힘들었다.“후회 안 해.”“딱 하나 후회되는 게 있다면 내가 이 나이 먹도록 한번 밖에 못 해봤다는 거야. 그리고 그 한 번도 진짜 별로였어.”“뭐?”아까부터 한번을 강조하는 하지수에 송문수는 의아하다는 듯 되물었다.“그 한 번도 다 너한테 맞춘 거였잖아.”고작 한 번이라니, 그럴 리가.그런데 또 곱씹어 보니 둘이 함께 잔 건 한 번뿐인 것 같긴 했다.하지만 송승우와 그렇게 오래도록 사귀면서 송승우 방까지 들락날락하던 게 하지수인데 그런 그녀의 인생에서 저와 한 게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이번엔 내가 움직일 거야.”하지수는 잔뜩 풀린 눈으로 당차게 말했지만 그녀의 말은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다.“나 또 밀어내면 그땐 진짜 물어버릴 거야.”말을 마친 하지수는 송문수를 바닥에 눕힌 뒤 그 위에 올라탔다.“반항하지 마.”곧바로 하지수의 입술이 자신에게 다가왔지만 송문수는 정말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이 상황에 그녀를 밀어내면 하지수가 정말 울어버릴 것만 같아서.그녀의 우는 모습을 보는 건 언제나 가슴 아픈 일이었기에 송문수는 그냥 가만히 있는 걸 택했다.그렇게 내일 그녀의 원망도 다 받아낼 심산으로 송문수는 하지수의 움직임에 몸을 맡겼다.뜨거운 하룻밤을 보낸 뒤, 아침이 밝아오자 하지수는 몸을 뒤척였다.온몸에 차에 깔리기라도 한 듯 무거웠고 발가락 하나 움직이는 것도 힘들었던 그녀는 힘겹게 눈부터 떠보았다.익숙하고도 낯선 이곳은 그녀의 기억 속에 있던 송문수의 집이었다.그리고 눈을 떠 주위를 둘러보니 어제의 기억 조각들이 하나하나 수면 위로 올라오는 것 같았다.그것들이 마침내 온전한 하나가 되었을 때, 하지수는 얼굴을 붉혔다.본인도 몰랐던 자신의 대담한 모습을 그녀는 차마 깊게 생각할 수가 없었다.술이 깬 지금에 와서는 절대 못 할 일이
송문수는 자신마저도 취해버린 것 같았다.그래서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도 분간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마침내 입술을 뗀 하지수가 오랜만에 얌전해진 송문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자신의 키스에 몸을 맡기며 가만히 있기만 하는 그에 하지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문수 씨, 내가 하는 키스가 그렇게 별로야?”별로라니, 흥분해서 자칫하면 이성이 끊길뻔했는데.여기서 입을 열면 더 이상은 참지 못할 것 같아 송문수는 이번에도 그녀의 질문에 답을 하지 않았다.“어디가 별론지 얘기해주면 내가 고칠게, 응?”송문수는 아까부터 마른침만 삼키고 있었다.부단히도 움직이는 그의 울대가 그의 초조함을 대변하고 있었다.하지수 앞에서만큼은 속절없이 무너지는 송문수라 하지수가 한마디만 더 하면 그는 정말 무너져내릴 것만 같았다.“지수...”그래서 그만하라고 말하려 하는데 하지수가 본인의 손가락을 송문수의 입에 가져다 댔다.자신의 한계가 어디까진 지 아는 송문수는 지금 이마에 핏줄이 도드라질 정도로 힘을 주며 간신히 참고 있었다.이대로 가면 정말 무슨 일을 저지를 것만 같은데, 그걸 다 알면서도 그는 하지수를 밀어낼 수가 없었다.그런데 하지수는 점점 과감해지는 건지 이젠 하다 하다 손까지 집어넣어 송문수의 몸 곳곳을 어루만지고 있었다.그녀의 손길이 지나간 곳이면 그게 어디든 불에 덴 듯 뜨거워 났다.송문수 역시 술을 마신 몸이라 버티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그래서 그는 자신이 느슨해져서 이 상황을 즐기는 일이 없게 온몸에 힘을 꽉 주고 있었다.하지 마 하지수는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점점 더 깊은 곳까지 손을 움직여왔다.“아!”그러다 결국 송문수에게 손이 잡혀버린 그녀는 울망울망한 눈으로 송문수를 올려다봤다.자칫하면 그곳까지 갈 수도 있었는데 뭐가 아쉬워서 저런 표정을 짓는지.송문수는 심호흡으로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말했다.“그만해 하지수.”“왜?”“별장에 데려다줄게.”저 순진무구한 눈을 보고 있으면 송문수도 빨려 들어갈
술에 취한 하지수의 고집을 당해낼 수 없었던 송문수는 결국 그녀를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들어갔다.밤늦은 시간에 별장에 들어가면 다른 가족들을 깨울 수도 있으니 집에서 잠만 재운다는 핑계를 대가며 말이다.송문수가 하지수를 침대에 눕히고 자리를 뜨려 하자 하지수가 그의 손을 꽉 잡으며 말했다.“가지 마.”손끝에서 느껴지는 하지수의 온기에 송문수의 심장박동이 빨라지기 시작했다.“하지수, 잘 봐. 나 송문수야.”“알아, 네가 송문수인 거. 나 버린 무책임한 놈이잖아 너!”풀린 눈으로 저를 쳐다보며 말하는 하지수에 송문수는 입술을 말아 물었다.술을 마신 하지수는 송문수가 감히 컨트롤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왜 날 송승우한테 넘긴 거야? 내가 물건이야? 네가 뭔데 날 송승우한테 준다 만다냐고!”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하지수는 침대에 올라 선 채 송문수를 내려다보며 소리쳤다.“서 있지 말고 일단 앉아, 그러다가 넘어져.”“안 넘어져.”하지수는 송문수의 말을 듣지도 않고 계속 질문만 퍼부었다.“왜 날 밀어내는 건데! 내가 어디가 별로야? 몸매가 별로야 아니면 내가 못생겼어? 뭘 그렇게 일일이 다 따지고 들어? 넌 보는 눈이 그렇게 높아?”“일단 누워.”“싫어.”송문수가 그녀를 잡아주려고 손을 뻗으면 하지수는 곧장 몸을 돌려 피하곤 했다.그렇게 휘청대는 하지수를 보는 게 송문수는 조마조마하기만 했다.“내 말에 대답부터 해. 왜 날 싫어하는 거야?”“난 너 싫어한다고 안 했어.”그의 대답에 송문수를 향해 손가락질하던 하지수가 금세 눈시울을 붉혔다.“넌 그냥 내가 싫은 거잖아! 나 말고 밖에 있는 그 못된 여자들을 더 좋아하는 거잖아. 나도 그 여자들처럼 변하면 나 좋아해 줄 거야?”“그런 거 아니야.”“변명하지마! 넌 그냥 몸매 좋고 능숙한 그런 여자들만 좋아하는 거잖아. 내가 모를 줄 알아?”뭐가 그렇게 서러운지 혼자 화를 내는 하지수가 송문수는 어이없기만 했다.술을 마신 하지수는 아예 다른 사람의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으니
예수진:[저 둘이 나랑 지원 씨보다 더한 것 같아요.]소이연:[수진 씨도 본인들이 너무했다는 건 아네요.]예수진:[... 송문수랑 지수 얘기나 해요.]소이연:[일단 오늘은 지수 씨도 스트레스 풀게 그냥 놔두고 내일 다시 이야기해봐요.]예수진:[그래요.]그렇게 하룻밤 사이에 하지수는 5병의 맥주를 모두 비워냈다.이미 한계에 다다른 그녀는 해롱해롱해지고 몸에 힘도 빠지자 그대로 테이블에 엎드렸다.속도 쓰리고 마음은 더할 나위 없이 아팠다.누가 자신을 억누르는 것만 같은 느낌에 하지수는 당장이라도 속 시원히 소리라도 치고 싶었지만 그녀는 습관적으로 또 참아내고 있었다.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잃은 탓에 늘 불안에 떨며 살아와서 그런지 그녀는 한 번도 자신을 가감 없이 드러내 본 적이 없었다.감정을 숨기고 애써 괜찮은 척 웃어 보이는 게 하지수라는 사람이었다.“다들 많이 마신 것 같은데 이제 일어나.”예수진이 말을 꺼내자 소이연도 남편을 보며 말했다.“현경아, 시간도 늦었는데 우리도 이만 갈까?”아내 바라기였던 육현경은 이미 입가에 가져다 댄 술잔도 바로 내려놓고는 그녀를 따라나섰다.그들이 떠나고 혼자 덩그러니 앉아있던 하도경 역시 예수진의 눈짓에 자리를 비워야만 했다.“그럼 나도 갈게.”아직 술을 덜 마신 게 아쉽긴 했지만 예수진의 눈빛을 당해낼 수 없었던 하도경은 결국 소이연 부부의 뒤를 따라갔다.모두가 자리를 뜨자 예수진은 그제야 술을 퍼마시고 있는 송문수를 향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지수 집에 좀 데려다줘.”“오늘은 그냥 여기서 자고 가라고 해.”“안돼, 난 손님 집에서 안 재워.”“하도경은 너희 집에서 잤잖아.”“지수랑 하도경이랑 같아? 걔는 내 남편이 될뻔한 사이였잖아.”아무 말이 막 하는 예수진 때문에 계지원은 마음이 아파왔다.하룻밤 사이에 두 남자의 마음을 후벼 파 놓은 예수진은 아무렇지 않게 웃음을 터뜨리는 송문수를 보며 말을 이어나갔다.“어쨌든 아직은 이혼 전이니까 네가 지수 남편이야. 지수 안전은 너한
그 말에 분위기가 순식간에 어색해지자 예수진이 다급히 말을 받았다.“너랑 나랑은 다르지.”“뭐가 다른데?”“난 너 안 좋아하니까 친구로 지낼 수 있는 거야.”그런 아픈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예수진에 하도경은 충격받은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헤어질 때 준 상처로는 부족했는지 만날 때마다 이렇게 하도경의 가슴을 후벼 파는 예수진이었다.“진짜 사랑했던 사람들은 친구가 될 수 없어, 내 말이 맞지 지수야?”일부러 하지수를 언급했지만 그녀는 입술만 말아 물고 있었고 오히려 송문수가 대답을 가로챘다.“그냥 친구로 지낼만한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고 판단해서 그럴 수도 있지.”하지수는 입까지 올라온 말을 삼켜냈고 예수진은 생각 없이 아무 말이나 막 뱉는 송문수를 노려보며 저 싹수면 이혼당할 만하다고 생각했다.“우리 진짜 오랜만에 모인다, 다음에 만날 때쯤이면 우리 애도 다 태어났겠어.”“도경아, 오늘은 진짜 취하기 전엔 아무도 집에 보내지 말자.”계지원이 분위기를 풀기 위해 말하자 하도경도 눈치 있게 대꾸했다.“좋아.”어차피 예수진 때문에 마음고생을 너무 해서 더 다칠 마음도 없었기에 하도경은 공허한 제 가슴에 술이나 퍼부으려고 맥주를 따기 시작했다.그렇게 남자들 앞에 한 병씩 놓아준 하도경은 여자들을 보며 물었다.“우리 여자분들은 물, 우유, 음료수 중에 고르세요.”“전 물 마실게요, 알아서 마실 테니까 신경 안 쓰셔도 돼요.”“전 맥주 주세요.”평소엔 술을 즐기지도 않고 예수진과 소이연이 마실 때만 한 잔씩 같이 마시던 하지수가 갑자기 맥주를 요구하자 다들 눈을 크게 뜨고 그녀를 쳐다봤다.“오랜만에 보는 거니까 저도 한잔하고 싶어서요. 요즘 송승우 옆에만 있느라 또 언제 나올지도 모르잖아요.”“송승우는 좀 어때?”궁금한 건 못 참는 예수진이었기에 말 나온 김에 하지수를 향해 물었다.“아직도 죽겠다고 난리야?”“아니, 지금은 많이 좋아졌어.”“다 큰 남자가 왜 자기 목숨으로 가족들 협박하는 거야?”처음에는 송승우를 안타까워
그 한 달 동안 송문수는 하지수 앞에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부모님이 같이 밥이라도 먹자고 집으로 불러도 송문수는 회사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가족 모임에도 참석하지 않았다.말은 그렇게 해도 본인이 내키지 않아서 안 온다는 걸 허영지와 송기명은 알고 있었다.불행 중 다행으로 송승우의 회복속도는 눈에 띄게 빨랐다.송씨 집안 주치의가 매일같이 검사를 진행하며 회복속도를 체크하고 있었는데 이 정도면 두 달 뒤에 바로 의족을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소견도 듣게 되었다.그 말에 허영지와 송기명도 마침내 큰 시름을 덜었다는 듯 환하게 웃었다.송승우와의 교제를 약속한 하지수도 매일 그의 옆을 지키며 함께 재활 치료를 진행하고 있었다.그렇게 별장에서만 지내던 어느 날, 하지수는 예수진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곧 출산하는 데 그러면 산후조리원에 가야 해서 먹고 싶은 걸 마음껏 먹지 못하니 그전에 한 번 만나서 원 없이 밥이나 먹자는 연락이었다.그 말을 들은 하지수는 자신에게도 기분전환이 필요하다 싶어 더 고민할 것도 없이 그녀의 제안을 수락했다.지금 본인의 상태가 우울한 건지는 잘 몰랐지만 살아갈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어서 마음을 다잡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송문수도 가는 거야?”예수진과 밥을 먹으러 간다는 얘기를 송승우에게 했을 때 그가 던진 첫마디가 바로 저것이었다.송문수와 예수진의 사이가 돈독하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송문수와 하지수가 따로 만날까 봐 걱정돼서 한 질문인 것 같았지만 하지수는 바로 대답했다.“몰라요, 그건 안 물어봤어요.”“그런데 문수 씨가 간다고 해도 내가 못 갈 이유는 없잖아요. 송문수 때문에 내 가장 친한 친구를 안 볼 순 없어요.”하지수가 너무 직설적으로 말해 당황했던 송승우는 멋쩍게 웃으며 대꾸했다.“그냥 한번 물어본 거야. 속 아프니까 술은 너무 많이 마시지 마.”“네.”그날 저녁 하지수는 바로 예수진의 집으로 향했다.그때 집에는 예수진의 가족뿐이었는데 안 본 사이 더 커진 배를 보니 두
이혼 시간까지 다 정하고 나니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진 둘은 가만히 소파에 앉아있었다.그 숨 막힌 정적 속에서 한참을 앉아있던 송문수는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난 이만 가볼게.”말을 마친 송문수는 하지수가 대답하기도 전에 등을 돌려 집을 나서버렸다.서울을 떠날 때처럼 미련 없이 돌아서는 송문수에 하지수의 시야가 흐려졌다.하지수는 뿌얘진 시야에 끝까지 그의 뒷모습을 담았다.이튿날, 하지수는 약속대로 송문수와의 이혼을 위해 법원으로 향했는데 송문수는 먼저 와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그는 하지수가 차에서 내리며 안에 앉아있는 또 다른 이와 뭐라고 말하는 걸 지켜보았다.그 안의 있는 사람은 당연히 송승우일 것이기에 송문수는 시선을 돌리며 라이터를 만지작거렸다.공공장소에서는 흡연이 금지된 상태였기에 그는 이런 식으로 담배를 피우고 싶은 욕구를 잠재우고 있는 것이었다.하지수는 대화를 마친 건지 종종걸음으로 송문수에게 다가가 말했다.“오래 기다렸어? 미안해.”“아니야, 내가 빨리 온 거야.”그녀가 제게 다가오자 송문수는 라이터를 주머니에 찔러넣으며 말했다.“들어가자.”“그래.”그렇게 둘은 법원으로 들어가 대기하고 있었는데 그때 송문수가 합의서를 건네며 말했다.“내가 알아서 작성했는데 맘에 안 드는 거 있으면 바로 말해줘, USB 챙겼으니까 여기서 고칠 수 있어.”사실 어젯밤 송문수가 파일을 보내와서 하지수는 이미 확인을 마친 상태였다.둘 사이에는 자녀가 없으니 양육권 싸움도 없었고 이익을 따지는 사이가 아니니 재산분할에도 큰 문제 없었다.그럼에도 제게 40억을 주겠다는 송문수를 하지수는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어차피 큰돈도 아니라서 헤어지는 대가로 주겠다는 그의 말에 공감이 가 그저 받기로 했다.송문수한테는 정말 적은 돈이긴 하니까.그리고 돈으로서 둘 사이를 깔끔히 정리하는 걸 송문수도 원할 것 같아 하지수는 결국 그걸 받는 조건으로 서류에 사인을 한 것이다.이혼서류를 제출하자 직원이 한 달간의 이혼 숙려기간이 있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