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히 다음 증거는 폭탄과 같을 것이다! 양준식이 세 번째 영상을 재생하기 시작하자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숨을 죽이고 지켜보았다. 영상 안에 심진우 혼자 전화를 걸고 있었다. "누군가가 익명으로 육현경의 주식 불법조작과 돈세탁을 고발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누군지 아직 알아내지 못했지만, 분명히 알 수 있을 거예요. 내가 하는 말을 잘 듣고, 헌트 스티븐슨에게도 확실히 전해요. 그때 당신과 헌트 스티븐슨은 직접 죄를 인정하고 육현경이 지시한 것이라고 증언해요.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증거는 육현경이 모든 일을 했다고 증명할 수 있고 그는 반박하기 어려울 거예요. 저도 법조계 쪽과 좋은 관계를 맺도록 노력할 테니, 당신들은 제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돼요. 들키지 않도록 주의하세요. 만약 당신들이 5년에서 10년 형을 선고 받더라도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빠른 시간 안에서 빨리 나오도록 방법을 찾을 거예요. 형을 살고 나오면 돈은 절대 부족하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가족들도 걱정할 필요 없어요. 제가 잘 보살피도록 할게요." 분명 위협적인 말이었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저와 제 가족의 어떤 이름도 절대 언급해서는 안 됩니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잘 모르겠거나, 확실하지 않은 질문에는 대답하지 마세요. 일을 잘 마치면 분명 좋은 결과가 따를 거예요.” 영상이 종료되었다. 증거가 확실했다. 고화질로 찍힌 영상에서 심진우가 통화하는 동안 가끔 휴대전화의 화면에 불이 들어오며 이름은 저장되지 않았지만 상대의 번호는 선명하게 보였다.전화번호의 주인은 장문규였다.양준식은 가장 유리한 증거를 제시하고도 곧바로 또 다른 증거를 제시했다.그는 해킹 기술을 이용하여 장문규의 통화를 내용을 녹음했다.장문규의 휴대전화에 담긴 녹취록과 심진우의 전화통화 내용이 일치해 심진우와 장문규가 공모한 사실임을 밝혔다. 모든 증거들을 제출한 양준식은 육현경을 보았다.그는 자신의 의뢰인인 피고인에 대해서는 표정으로도 처음부터 끝까지 한마디도
그의 목소리가 좀 가라앉았지만 허리를 곧게 펴고 있어 약해 보이지 않았다. "피고인이 연루된 이 사건과 관련하여, 2018년부터 2021년까지, 총 3년 동안 장문규와 헌트 스티븐슨가 당신 몰래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 알고 계셨습니까? 아니면 피고인은 사실 이 사실을 알고 있었으면서 묵인하고 있었던 것입니까? 어쨌든 당신과 심씨 가문은 관계가 깊습니다." 천우진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물었다. 소이연은 순간적으로 또 긴장했다. 천우진은 육현경에게 함정을 파고 있는 것이 아닌가?만약 육현경이 그렇다고 인정한다면, 그는 묵인죄다! 분명 이렇게 함정을 파는 질문을 했는데, 양준식은 그의 말을 끊거나 항의하지 않고 그냥 담담하게 옆에 서있었다. 사실상 그에 대한 신뢰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사람들은 그가 천우진에게 속아 넘어갈까 봐 걱정했지만 육현경은 속아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육현경은 그에게 이렇게 많은 증거들을 제공했다. 심지어 그의 20년 변호사 생활 동안 실현 불가능해 보이는 증거들을 제공했다. 육현경의 생각과 사고는 이 정도로 치밀했으니, 누가 파 놓은 함정에도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모르겠습니다." 육현경이 천천히 대답했다."정확히 말하면 귀국 한 달 전쯤 뭔가를 눈치챘지만, 그 무렵에는 이런 사기 행각을 벌일 수 있는 사람이 점점 줄기 시작했음이 분명합니다.” "올해 초 귀국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왜 신고하지 않았습니까? 심씨 가문 때문에 눈감아 준 것입니까?" 천우진이 다시 육현경을 몰아세웠다. "아닙니다. 그 당시 저는 이 일이 심씨 가문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전혀 몰랐고, 저도 아무런 이익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제가 그들을 감싸줄 이유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의 이익과 명성에 관한 일이기 때문에, 저는 이 일을 절대 좌시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제 직원인 장문규와 헌트 스티븐슨은 제가 아는 한, 이렇게 대담할 수 없습니다, 심지어 그렇게 많은 돈을 사기 친 후에도 이렇게 침착하게 대응할 능력과 권한이 없습니다. 아마
"본인의 능력 범위 안에서 일을 하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죠.” 천우진은 다시 한번 동의했다. "네." 육현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심아윤과 심진우의 덕분에 이번 사건의 진실이 모두 밝혀지게 되었습니다. 방금 양 변호사가 처음 꺼낸 녹취록, 즉 장문규와 심진우의 녹취록은 제가 장문규의 휴대전화에 해킹하여 휴대전화에 저장된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리고 심진우의 휴대전화에 있는 복제한 제 카톡을 보고 피해자 명단을 차단한 뒤, 휴대전화에 있는 일부 은행 계좌 정보를 통해 계좌의 흐름을 알아냈습니다. 저는 심씨 가문과의 관계를 이용해 제가 원하는 모든 영상 증거를 확보했습니다." 육현경은 이 사건에 대한 일들을 다시 한번 정리했다. 그러고 나서 그는 말했다. "이번 사건 익명의 신고자는 바로 저입니다.” 그의 말에 법정이 떠들썩해졌다. 그는 스스로 자신을 고발했다. 아마 이런 경우는 처음일 것이다. 교과서에 성공적인 사례로 쓸 수 있지 않을까?"조용히 해주시길 바랍니다!" 재판장은 장내를 안정시켰다. 천우진은 육현경에게 물었다. "당신이 익명의 제보자입니까?” “네, 제가 모든 증거를 수집한 뒤 대검에 고발했습니다.” "왜 신고한 것입니까? 이미 이 모든 것이 당신과 무관하다는 증거를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까!” "제 자신을 고발해야 상대방이 경계를 풀고 모든 진실을 드러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증거를 제출하자마자 은폐될까 봐 걱정했습니다." 육현경은 명료하게 말했다. "저는 이런 방법으로 제 자신을 보호하면서 범인들이 법의 심판을 받게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육현경은 또박또박 말했다. 장내에 뜻밖에도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다. 열렬한 박수 소리가 끊이지 않다. 육현경의 총명함에 대한 인정이었다. 심씨 가문이 이런 어마어마한 일을 암암리에 한 것을 보면 그들의 권력이 얼마나 대단한 지 짐작할 수 있었다. 육현경이 증거를 제출하는 순간, 그는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할 뿐만 아니라, 심씨 가문에 의해
검찰 측은 양준식의 말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는 진지하게 물었다. "두 사람은 피고인의 명의를 이용해 불법적인 주가 조작과 돈세탁을 도왔습니까?” "네." 두 사람이 자백했다. "당신들이 한 일이 피고 측이 제시한 증거와 일치합니까?” "네." "심진우가 계속 당신들과 협력하여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는 것이 맞습니까?” "네." 두 사람은 더 이상 어떠한 사실도 숨기지 못했다. "이상입니다." 양준식은 판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저희 측이 제출한 증거와 피의자들이 직접 자백한 내용들에 근거하여 이 사건에서 피고는 아무런 범죄 사실이 없음을 주장합니다. 존경하는 재판님의 현명한 판단을 부탁드립니다. 이상 변론을 마칩니다.” "피고인 측 변호인, 제자리로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양준식이 제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30분간 휴정한 뒤, 이번 사건에 대해 최종 판결을 내릴 것입니다.” 판사는 말을 마친 뒤, 법정을 떠났다. 법정이 소란스러워졌다. 소이연 역시 긴장을 풀었다. 육현경이 이 사건을 위해 증거물을 수집하면서 법을 어긴 행위는 작은 범죄에 해당하며 형을 선고받더라도 무겁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육현경이 사형 선고나 종신형만 받지 않으면 무엇이든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나는 현경이가 불법적인 일들을 하지 않았을 거라 믿었어. 젠장, 정말 놀라서 쓰러지는 줄 알았어. 오늘 현경이는 정말 대단했어! 원래 강한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강할 줄은 생각도 못했어! 현경이를 다시 보게 됐어." 송문수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 재판은 처음부터 끝까지 반전의 반전으로 짜릿하게 진실이 밝혀졌다. "현경이 대단하긴 하다." 하도경은 인정하면서 스스로를 책망했다. "만약 내가 현경이 3분의 1만이라도 똑똑했다면, 우리 부모님은 아마 자다가도 웃으실걸.” 송문수가 말했다. "그건 잘 모르겠고, 현경이가 정말 대단했기 때문에 이런 문제들이 생긴 거 아닐까? 그냥 평범했다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현경
소이연의 얼굴은 더욱 빨개졌다. 그녀는 그런 뜻으로 말한 것이 아니었다. 정말 육현경의 건강이 걱정되었던 것뿐이었다. 육현경의 현재 건강상태는 분명히 술을 마시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그런데 아경이가 심씨 가문 때문에 육씨 그룹이 그렇게 된 건 손해가 너무 커! 육씨 가문이 몇 세대에 이룬 기업이 저렇게 되었으니 얼마나 속이 쓰릴까? 현경이가 정말 후회하지 않았을까?" 소이연을 계속 난처하게 하지 않기 위해 송문수가 화제를 돌렸다. "육 어르신께서 많이 힘드셨을 거야." 하도경도 한숨을 쉬며 말했다. 육현경이 한 모든 일은 그녀와 어느 정도 관련이 있었기에 소이연은 옆에서 아무 말없이 듣고만 있었다. "아직 법정 안이야, 조용히 해." 하지수는 소이연의 감정을 눈치채며, 송문수와 하도경에게 퉁명스럽게 말했다. 송문수는 하지수를 곁눈질하며 툴툴거렸다. "휴정의 시간이잖아. 넌 오늘 법정에 선 변호사도 아닌데, 말하든 말든 상관하지 마.” "품위 좀 지켜." 하지수는 참으며 말했다. "내가 어딜 봐서 품위가 없어? 내가 큰소리로 떠들었어? 큰소리로 떠든 사람은 이미 법정 밖으로 쫓겨났는데, 내가 쫓겨났어?" 송문수는 하지수에게 화를 내며 예의 없이 말했다. 모르는 사람은 그들이 부부가 아닌 원수인 줄 알 것이다. 하지수의 안색이 변했다. 하도경은 송문수를 끌어당겼다. "그만해, 도경 씨 말이 맞아. 조용히 해, 법정에서 품위를 지키라고.” 송문수는 그대로 일어나 자리를 떴다. "어디가? 아직 현경이 판결도 안 났어." 하도경은 송문수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담배." 송문수는 대답했다. "담배 피우기 무섭다.” “...” 송문수가 밖으로 나간 뒤 분위기가 어색했다. 모든 사람이 말을 하지 않았다. 육가희는 참지 못하고 작은 목소리로 하도경에게 물었다. "송문수와 하지수, 부부 아니에요?” 하도경 그녀의 귓가에 조용히 말했다."두 사람은 관계가 별로 좋지는 않아요. 정략결혼으로 서로 감정이 없는 것처럼 보이
모두 기쁨에서 우러나온 진심 어린 축복의 박수를 쳐주었다. 소이연은 마음 깊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스스로 생각하는 것처럼 육현경에 대해 무관심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그에게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으며 단지 자신이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도피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그녀는 앞으로 다시는 절대 그를 밀어내지 않을 것이다. “퇴정 하십시오!” 판사와 배심원들이 먼저 법정을 떠났다. 법정 안에 있던 사람들은 차례대로 법정을 빠져나갔다. 소이연과 그의 친구들도 다른 출구로 법정을 빠져나왔다. 밖에 기자들이 많았지만 법원 밖은 모두 가로막혀 들어오지 못했다. 소이연은 통로 입구에 서서 육현경을 기다렸다. 곧 나와야 할 그가 아직까지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그 순간, 1초도 고통스럽다고 느꼈다. 송문수는 그녀를 바라보며 농담을 걸었다. "목이 길어졌어요.” 그는 소이연이 계속 안을 들여다보고 있다고 놀렸지만 그녀는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그냥 그를 빨리 보고 싶었다. 시간이 흐르자 누군가 밖으로 나왔다. 소이연은 잠시 긴장했지만 천우진을 보자 또 한 번 실망했다. 천우진은 소이연의 곁을 지나며 그녀를 힐끗 쳐다보았지만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현재 소이연의 머릿속에는 육현경을 제외한 그 누구도 있지 않았다. 천우진이 떠난 뒤, 마침내 육현경이 나왔다. 소이연은 기다리다 못해 안으로 들어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육현경의 몸이 너무 안 좋아서 쓰러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을 때, 그가 밖으로 나왔다. 그는 양준식과 함께 나왔다."현경아!" 송문수가 먼저 그를 불렀다. "여기, 여기.” 흥분한 송문수에 비해 육현경은 차분해 보였다. 육현경은 송문수 하도경과 인사를 나눈 후 소이연을 바라보았다. 소이연도 계속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막상 얼굴을 마주하니 말이 나오지 않았다.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진다!” 송문수가 농담을 했다. "좋아, 좋아. 너희 둘이 오랜만에 만났는데 방해하면 안
하지수가 법정을 나오자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그들은 소이연과 육현경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그녀는 기자들을 보지 않고 무심하게 그들을 지나쳤다.그녀는 기자들에게 매력적인 인터뷰 상대가 아니었다.그녀는 매번 인터뷰 때마다 차가운 얼굴로 그들을 말문이 막힐 정도로 꾸짖었기에 기자들은 점점 그녀에게 다가가 인터뷰를 시도하지 않았다."하지수 씨.”한 기자가 갑자기 그녀를 가로막으며 말을 걸자, 다른 기자들도 그녀를 막았다.아마 한참을 기다려도 그들이 기다리는 사람들이 나오지 않자, 지나가는 그녀에게 상황을 물어보기로 한 것 같았다.하지수는 무심한 표정으로 앞에 있는 기자를 바라보았다."하지수 씨, 오늘 육현경 씨의 재판과정을 다 보셨나요? 변호사의 입장에서, 우리에게 이 소송에 대해 간단히 분석해 주실 수 있을까요?"한 기자가 그녀에게 물었다.하지수는 기자를 힐끗 쳐다본 뒤 간결하게 대답했다. "이미 판사가 이 사건의 최종 판결을 선고했습니다. 분석하고 설명할 것이 없습니다.”"이번 재판 중 놀랄 만한 반전이 많이 일어났다는데 변호사로서 이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생각이 없습니다."하지수는 짧게 대답했다."그럼 변호사의 입장에서 심씨 가문이 앞으로 법적 처벌을 받게 될지 예상해 주실 수 있습니까?”"아니요."하지수는 여전히 차갑게 대답했다."심씨 가문에 대한 법적 책임은 판사가 판결할 일이지 제가 판결할 일이 아닙니다.” 기자는 하지수의 대답에 더 이상 질문하기가 싫어졌다. 하지수는 그런 사람이었다. 기자의 질문에 대답해 주기는 하지만, 기자가 원하는 어떤 대답도 해주지 않는 그런 사람. 기자가 더 이상 하지수에게 시간을 낭비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다른 기자가 물었다. "하지수 씨, 방금 송문수 씨가 하도경 씨와 함께 떠나는 것을 봤는데 왜 송문수 씨와 함께 동행하지 않으셨나요?” 하지수는 송문수의 이름이 나오자 안색이 변하며 눈빛이 흔들렸다. 그 기자가 이어 말했다. "하지수 씨, 송문수 씨
그의 협박에 기자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하지만 기자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놀라지 않은 척하며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 "제 말은 다 사실이지 않나요? 하지수 씨는 허영심에 차 있을 뿐이에요. 송문수 씨도 그녀에게 아무 감정이 없잖아요.” "그럼 내가 왜 당신을 때렸을까?” 송문수가 그에게 물었다. 기자는 갑자기 말이 없어졌다. "당신은 나와 하지수의 일을 왈가왈부할 자격이 없어. 만약 또다시 하지수를 모욕한다면, 정말 당신을 때려죽일 거야!" 송문수는 기자에게 협박한 뒤, 돌아서서 하지수의 손을 잡았다. 하지수는 잠시 당황했지만 그의 손을 거부하지 않았다. 송문수는 하지수를 데리고 가면서 기자들을 향해 협박했다. "앞으로 내가 뭘 하고 다니는지 궁금하면 나한테 와! 감히 하지수에게 가서 귀찮게 하면 그 사람은 내가 절대 편하게 살도록 놔두지 않을 거야!” 이 말을 끝으로 송문수는 하지수를 데리고 떠나자 기자는 어이가 없었다. 이 순간까지 그는 송문수가 하지수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었다... 지금 귀신을 속이는 것인가?송문수는 하지수를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은 것인가? 그런데 사생활을 통제할 수 없다고?송문수는 하지수를 자신의 차로 데려가 거칠게 조수석에 앉혔다. 그녀는 멀지 않은 곳에 주차된 자신의 승용차를 힐끗 쳐다보았고, 기사도 어찌할 바를 모르는 표정으로 하지수가 송문수에게 끌려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나도 차 갖고 왔어." 하지수가 차갑게 말했다.그녀는 송문수가 왜 이렇게 화를 내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녀는 하도경과 함께 떠난 그가 왜 갑자기 돌아왔는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입 다물어!” 송문수는 짜증을 냈다. 그의 분노는 여전히 가라앉지 않았다. 하지수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송문수는 기자에게서 받은 분노를 그녀에게 모두 쏟아냈다. 기자가 방금 그를 겨냥했을 뿐이라고, 왜 화를 내고 있냐고 묻고 싶었다. 심지어 그는 사람을 때렸다. 그는 자신이 법을 어겼다는 것을 알기나 할까?
그리고는 간호사 하나가 걸어 나오며 말했다.“소이연 씨 보호자 계세요?”“네!”“아기 나왔습니다. 3.15킬로...”“산모는요?”간호사의 말에 우렁차게 대답한 육현경은 아이는 신경도 안 쓰고 소이연의 상태부터 물었다.“산모분은 아주 건강하십니다. 지금 선생님께서 상처 처리하고 계시니까 곧 나오실 겁니다.”“아빠 맞으시죠? 아이 한 번 안아보실래요?”그제야 안도한 육현경이 아이를 안아 들자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오며 한마디씩 하기 시작했다.“어머, 어쩜 이렇게 하얗지? 내가 본 아기들 중에 제일 예쁜 것 같아.”“지금 네 아들은 못생겼다는 소리야?”“솔직히 말하면 좀 못생기긴 했어.”하도경의 시비에 예수진이 너무 솔직히 답하자 계지원이 그게 사실인 걸 알면서도 자기 아들 외모를 저렇게 평가하는 게 썩 기분 좋지는 않았는지 헛기침을 해댔다.“나도 안아볼래.”예수진의 말에 육현경은 바로 아이를 넘겨주었다.“우리 공주님, 너무 귀엽다. 왜 하필 혈연관계인 거야!”피가 섞인 남매라서 자기 아들과 맺어줄 수 없다고 안타까워하는 예수진에 하지수도 궁금해서 다가가 보았다.“나도 봐봐.”가까이에서 보니 정말 떡잎부터 남다른 예쁜 아이였다.장차 아주 예쁘게 클 것 같아서 하지수는 아이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물었다.“딸이야?”“딱 보면 딸이지, 이 얼굴이 남자일 리는 없잖아.”간호사가 대답하려던 그때 분만실 분이 또 한 번 열리고 소이연이 휠체어를 타고 나오자 육현경은 다급히 달려가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고생했어.”“이제 돌아가서 쉬자. 우리 이제 아이는 그만 가지자.”소이연이 고생하는 게 마음 아팠던 육현경은 잔뜩 굳은 얼굴로 간호사에게서 휠체어를 받아 병실로 향했다.친구들도 그런 육현경을 따라 병실로 향하고 있었는데 성큼성큼 걷던 하지수가 휑한 옆자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송문수가 아직도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왜 움직이지 않는지 의아해진 하지수가 그를 바라보자 송문수가 그녀와 시선을 맞추며 입꼬리를 올려 보였다.
“뭐라고요?!”놀란 예수진이 언성을 높이자 육현경도 표정을 굳히고 소이연을 바라보았다.늘 소리소문없이 일을 처리하던 육현경은 이번에도 다들 벙쪄있는 틈을 타 소이연을 안고 밖으로 나갔다.예수진도 그 뒤를 따라 나가려 하자 계지원이 그녀를 잡아 세웠다.“수진아, 오늘 이 자리 우리가 만든 거야.”“그래도 갈 거야. 당신은 엄마랑 현경 오빠 어머님한테 손님들 좀 부탁한다고 전해줘. 난 언니한테 가봐야겠어.”예수진을 말릴 수 없다고 생각한 계지원도 잠시 고민하다가 그녀의 뒤를 따라 나가자 상황이 심상치 않게 흘러감을 눈치챈 송문수와 하지수도 아쉬운 듯 서로에게서 떨어졌다.“키스 다 했으면 빨리 병원 가. 이연 씨 출산한대.”출산이라는 말에 하지수도 다급히 뒤 따르려 하자 송문수가 그녀를 잡으며 말했다.“천천히 가. 그래도 안 늦어.”그렇게 몇 분도 안 된 사이에 많은 사람들이 파티장을 빠져나갔다.예수진이 둘째를 위해 연 백일잔치는 사라진 엄마 아빠 때문에 아이 혼자 남겨진 채로 끝이 나버렸다.그들이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양수가 터진 소이연이 분만실로 옮겨진 뒤였다.상황이 많이 급박한지 늘 침착함을 유지하던 육현경조차도 많이 초조해 보였다.아까부터 입구에서 서성이는 육현경을 보다 못한 예수진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오빠, 가만히 좀 있어 봐. 지금 다들 긴장하고 있는데 오빠 때문에 더 진정할 수가 없잖아.”직설적인 그녀의 말에 육현경이 예수진을 보자 계지원이 다급히 나서며 분위기를 풀었다.“아무 일 없을 테니까 걱정 마. 수진이도 그때 오래 걸렸잖아. 낳으면 된 거지 뭐.”말은 그렇게 해도 사실 계지원도 육현경 못지않게 초조해했었다.당장이라도 분만실로 뛰어 들어가 예수진 대신 아이를 낳아주고 싶어 했었다.그런데 그때, 분만실에서 소이연의 고통스러운 비명소리가 흘러나왔다.주먹을 쥐고 있던 육현경의 손이 점점 하얗게 질려감에 따라 지켜보던 친구들의 긴장감도 고조되고 있었다.다들 긴장하고 있는 와중에 송문수가 갑자기 하지수의 손
“임신 때문에 살쪄서 그런 거야. 문수 씨 탓 아니야.”하지수가 당황한 송문수를 달래주자 그는 벙찐 표정으로 물었다.“그럼 어떡하지?”“살 빼고 나서 다시 끼지 뭐.”“그래.”하지수에게 반지를 직접 끼워주는 건 송문수가 꿈에서도 그리던 장면이었는데 예상치 못한 이유로 못하게 되는 그는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하지수가 자신과 결혼만 해준다면 앞으로의 날은 길 것이기에 송문수는 그만 몸을 일으켰다.그런데 그가 일어서자마자 사람들이 소리높이 외치기 시작했다.“키스해! 키스해!”갑작스러운 호응에 하지수의 얼굴이 빨개지자 송문수는 그녀가 난처해지지 않게 당분간은 자신의 욕구를 억누르기로 했다.사실 그날 밤, 하지수와의 잠자리는 송문수에게 많은 미련을 남겨주었다.잠을 자다가도 쉴 새 없이 흥분해서 밤에 속옷을 몇 번이나 씻기도 했었다.그렇게 그녀를 원했어도 자리가 자리인 만큼 송문수는 하지수의 손을 잡고 내려가려 했는데 그 순간, 하지수의 입술이 송문수에게 닿아왔다.그녀가 먼저 한 입맞춤은 송문수의 심장을 뒤흔들기 충분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입맞춤을 당한 송문수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하고 있는데 그때 하도경의 장난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뽀뽀 한 번에 바보 된 거야?”“...”그 말에 욱한 송문수였지만 여자친구도 없는 친구를 위해 한번은 참아주기로 했다.“신경 쓰지 마. 우리 내려갈...”그런데 그때, 하지수가 또다시 입을 맞춰왔다.하지만 이번에는 아까처럼 닿았다가 금방 떨어지는 입맞춤이 아니라 오래도록 이어지는 키스였다.작은 그녀의 혀가 불규칙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자 송문수의 몸은 그대로 굳어버렸고 그의 심장박동 또한 정직하게 빨라졌다.정말 자신을 죽이려 드는 하지수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송문수는 하지수의 뒤통수를 손으로 잡고 키스를 이어가기 시작했다.임신을 해도 작기만 한 체구의 하지수는 금방 송문수에게 주동권을 뺏겨버렸다.두 사람의 행복을 빌어주기라도 하듯 무대 위로 장미꽃잎이 흩날리고
다들 숨을 죽이고 송문수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하지수의 눈엔 눈물이 가득해서 눈을 조금만 깜빡여도 쏟아질 정도였지만 그녀 역시 온 힘을 다해 참아내고 있었다.송문수는 그 정적 속에서 입술을 말아 물며 많은 고민을 거쳐 마침내 입을 열었다.“결혼하자.”그 대답이 들리기까지의 몇 분이 하객들에게는 한 세기만큼 길게 느껴졌다.송문수의 말이 끝나자마자 하지수도 기쁨의 눈물을 왈칵 쏟아냈고 송문수는 그런 그녀를 향해 한 번 더 소리높이 외쳤다.“하지수, 결혼하자. 너랑 결혼하는 게 내 평생의 소원이었어. 나중에 후회하더라도, 네가 지금 충동적으로 결정한 거라 해도 넌 이제 평생 내 여자야. 다시는 너 다른 남자한테 안 보내. 아주 박력 넘치는 남자가 될 거라고.”“난 후회 안 해.”송문수와의 결혼을 하지수가 후회할 리는 없었다.그때 예수진이 무대 위로 올라가자 송문수는 그제야 이 자리의 주인공이 예수진이었다는 걸 깨닫고는 다급히 하지수를 데리고 내려가려 했다.그런데 그때 예수진이 빨간 보석함 하나를 송문수에게 보여주었다.“이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는 알지?”그 안에 들어있는 건 송문수가 하지수를 위해 준비한 프러포즈 반지였다.익숙한 상자가 등장하는 순간부터 그 사실을 기억해낸 송문수였다.송문수는 하지수에게 가장 특별한 반지를 만들어주기 위해 세계적인 디자이너까지 초빙하며 큰 공을 들였었다.“이제 네가 가져.”예수진이 그것을 송문수에게 건네주자 그는 떨리는 손으로 받아들고는 천천히 보석함을 열어보았다.반짝이는 5캐럿의 다이아몬드가 마침내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게 된 것이다.눈이 멀어버릴 정도로 반짝이는 반지를 집어 든 송문수는 하지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자신이 상상해왔던 화면이 눈 앞에 펼쳐지자 하지수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는데 송문수 역시 눈가가 촉촉해진 채로 목멘 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지수야.”송문수의 부름에 하지수는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예전에는 내가 진짜 나쁜 놈이었어. 맹세할게, 앞으로는 진짜 좋
그런데 하지수가 이런 마음을 전하기도 전에 송문수가 그 먼 타지로 떠나버린 것이다.그래도, 송문수가 정말 자신을 싫어한다 해도, 정말 자신과 헤어지고 싶어 한다 해도 송승우와 함께하지 않겠다는 하지수의 마음은 한 번도 변한 적이 없었다.물론 자신을 쉽게 포기하는 송문수에 잠깐 실망도 했었다.그러면서 송문수에게 자신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예수진과 소이연이 저 영상을 보여주지 않았더라면, 그들이 송문수가 준비해온 모든 것들을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하지수는 영원히 송문수가 오래도록 자신을 좋아했다는 사실을 몰랐을 것이다.눈에 눈물을 가득 매단 하지수를 보던 송문수는 가슴이 아파와 손을 뻗으려 했지만 다시 움츠러들었다.지금 송문수는 무슨 결정을 내려야 할 지 몰랐다.혹여나 자신의 선택이 하지수에게 부담으로 다가갈까 봐, 그녀의 모습을 보며 송문수는 괴로워하고 있었다.너무 괴로워서 생긴 착각인지, 송문수는 하지수도 자신을 사랑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하지만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면 그건 바로 하지수 배 속의 아이였다.물론 송승우의 아이라 해도 송문수는 상관없었지만 하지수도 개의치 않을 수 있을까가 그의 의문이었다.“나 너랑 결혼하고 싶어. 네가 나한테 잘해줘서가 아니고, 네가 오래전부터 날 좋아해서도 아니고, 날 위해 많은 걸 준비해줘서도 아니라 그냥 내가 좋아서. 그래서 결혼하고 싶어. 다른 거랑은 아무 상관없어.”하지수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송문수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네가 좋아하는 건 송승우잖아.”“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 난 송승우 안 좋아해. 아주 오래전부터 이미 끝난 사이였어. 말했잖아, 그때 좋아한다고 느꼈던 감정은 그냥 습관 같은 거였다고. 내가 좋아하는 건 너야. 미안해서가 아니라 그냥 네가 좋아!”매번 좋아한다고 할 때마다 믿질 못하는 송문수 때문에 하지수는 화가 치밀어올랐다.물론 송문수가 자신을 믿지 못해서 화가 난 게 아니라 송문수가 본인한테 자신감이 너무 없는 것 같아
파티장 안의 모든 불빛은 송문수와 하지수에게 집중되어 있었다.무대 중앙에 선 하지수는 송문수를 바라보고 있었고 송문수도 사람들 틈에서 하지수를 바라보고 있었다.지금 하지수는 송문수가 그냥 가버릴까 봐, 그게 제일 무서웠다.하지수는 자신이 이런 용기를 내는 것도 마지막일 것 같았다.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감정을 마주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조용한 그 공간에서 송문수가 갑자기 무대로 향해 걸어갔다.한발 한발, 무거운 발걸음이었지만 그 발걸음이 향하는 곳은 확실했다.그래서 하지수의 심장박동도 빨라졌다.더 이상 컨트롤이 되지 않을 정도로.모두들 숨죽인 채 송문수와 하지수를 보고 있었지만 그중에서 가장 마음을 졸이는 건 예수진과 소이연이었다.겁이 많은 송문수가 도망이라도 갈까 봐 걱정하고 있었는데 다행히도 송문수가 책임감은 있어서 하지수를 혼자 남겨두진 않았다.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송문수가 하지수에게로 다가섰고 두 사람은 말없이 서로를 응시했다.송문수의 눈은 빛나고 있었고 울대는 잔잔히 떨리고 있었다.심경에 크나큰 변화가 일었지만 애써 본인을 진정시키려 하는 게 눈에 훤히 보였다.“지수야, 이건 마음에 담아두지 마.”그러다 갑자기 내뱉은 말에 하지수는 송문수를 빤히 쳐다보았다.“그때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이런 걸 찍었는지도 모르겠어.”송문수는 이번에도 장난인 척 너스레를 떨며 상황을 넘기려 했다.“너도 알잖아 나 이상한 거. 충동적으로 무슨 짓이든 하는 사람이잖아. 그러니까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진 마.”말을 마친 송문수가 직원을 찾아가 영상을 지우려 하자 하지수가 입을 열었다.“난 이미 진지하게 받아들였어.”그 말에 발이 잡힌 송문수는 빨라지는 심장박동을 애써 늦추며 말했다.“미안해.”송문수의 갈등과 무력함을 보아낸 하지수의 눈에도 어느새 눈물이 차올랐다.“너 헷갈리게 해서 미안해. 만약 네가 신경 쓰인다면... 앞으로 네 앞에 안 나타날게. 너도 나 같은 사람 때문에 힘들어하지 마. 그럴 가치 없
오늘 온 손님들은 하나같이 외향형인지 호응도 아주 잘해줬다.“네! 궁금해요!”“한 여자를 위해선데요.”“누구예요?”“바로 하지수입니다.”영상 속의 자신이 한 자 한 자 내뱉는 말들을 듣던 송문수는 그제야 이게 자신의 프러포즈 영상이었음을 깨달았다.처음에는 이게 어떻게 여기 있는지 당황스러웠지만 항상 일 처리에 미흡한 예수진이 이번에도 실수한 거라 생각해 송문수는 무대 위로 올라가 영상을 멈추려 했다.그런데 그가 발을 내디디자마자 육현경과 하도경이 그 앞을 막아섰다.그리고 영상은 계속해서 재생되었다.“하지수는 제 아내입니다. 결혼한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한 번도 제대로 사랑해준 적이 없었죠. 사실 저는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라 사랑할 용기가 없었던 겁니다. 제가 너무 비겁해서 그 사람 앞에만 서면 저 자신이 쓸모없어지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늘 유치한 방법으로 그 사람에게 상처만 줬어요.”영상 속 송문수의 얼굴에는 미안함이 가득했다.“미안해 지수야. 나 지금 엄청 후회하고 있어. 괜한 질투로 널 몇 년 간 힘들게 한 걸. 매일 밤 널 안고 자고 싶었는데도 난 자존심 때문에 그런 말 한마디 못했어. 그래서 내 인생이 좀 덜 재밌었던 것 같아. 너라는 복지가 부족했잖아.”감동하며 영상을 보고 있던 사람들은 마지막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참 울지도 웃지도 못하게 하는 고백 영상이었다.“사랑해, 지수야.”뒤이어 마침내 사랑한다는 말이 나왔는데 그때 송문수의 눈은 확신이 가득 차 있었다.“널 처음 본 순간부터 사랑했었어. 그런데 네가 좋아하는 게 내가 아니니까 점점 비참해지더라. 그래서 네가 싫어하는 방법으로 네 시선을 끌려고 했어. 그때만 생각하면 아무리 나라도 너무 멍청한 것 같더라.”“하지만 이젠 아니야.”“내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은 못 돼도 세상에서 너한테 가장 잘해주는 남자는 될 수 있어.”“더 이상 너한테 성질도 안 내고 부려먹지도 않을게. 괜한 질투 때문에 너 상처받게 하지도 않아. 우리 집은 이제 너한테 맡길 거야. 돈도
파티장에 들어와 보니 계지원과 예수진이 아들딸과 함께 와준 손님들에게 인사를 해주고 있었다.인사를 마친 예수진은 흥분된 목소리로 하지수를 불렀다.“이번에는 제 가장 친한 친구이자 우리 아들의 영원한 이모일 하지수 씨를 모셔보겠습니다.”파티장 한구석에 선 송문수는 무대 위로 올라가는 하지수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아까는 제대로 볼 엄두가 안 나서 애써 무시하려 했던 그녀의 배가 꽤나 불러온 것 같았다.옷을 입어도 다 가려지지 않는 게 이미 임신 몇 개월은 된 것 같았다.정말 자신은 안중에도 없었는지 이렇게 빨리 임신한 하지수가 송문수는 조금은 원망스러웠다.이어서 마이크를 잡은 하지수는 누군가를 찾는 듯 무대 아래를 훑어보았다.한참이 지나 자신에게로 향하는 그녀의 시선에 다급히 눈을 피하던 송문수가 다시 고개를 돌렸을 때 하지수의 시선은 이미 사라져있었다.그에 송문수는 그녀가 찾던 건 아마 송승우일 거라고 짐작하고 있었다.그런데 끝까지 모습을 비추지 않는 송승우 때문에 그저 시선을 거둔 것 같았다.“우선은 수진이 아들 이모가 될 수 있어서 너무 영광스럽고요.”“수진이가 제 배 속에 있는 아이가 딸이면 꼭 사돈을 맺자고 그러더라고요.”“저도 우리 조카 귀여워서 너무 사랑하거든요.”“하지만 사돈은 저 혼자 맺는 게 아니잖아요. 애 아빠 입장도 있고 하니까요.”그러자 예수진의 격앙된 목소리가 또 한 번 들려왔다.“그럼 얼른 애 아빠부터 불러서 오늘 사돈 한번 맺자!”“아이 아빠는...”그녀의 말에 담담히 웃던 하지수는 갑자기 말을 멈췄다.마른 침을 삼키며 그 모습을 보던 송문수는 정말 송승우를 한 대 때려주고 싶었다.가장 사랑하는 여자를 내어줬는데도 책임을 다하지 않고 이런 날에 하지수를 혼자 이곳에 보내고 또 혼자 무대 위에 올리는 게 어떻게 남편이라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짓인가 싶었다.“수진아, 내가 무대 좀 써도 돼?”“당연하지, 오늘 이 자리는 널 위한 거야.”“아, 아니다. 내 미래의 며느리를 위한 거지.”예수진의 한마디에
하지수의 말을 끝으로 두 사람의 시선이 맞물리자 송문수가 황급히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당연하지.”“진짜야?”“내가 왜 널 속이겠어?”“그런데 왜 안 데려왔어?”“이번엔 시간이 별로 없어서 괜히 고생만 할까 봐 안 데려왔어.”“나중에 기회 되면 데리고 올 거야.”“예뻐?”“내가 안 예쁜 여자 사귀는 거 봤어? 외국 여자들은 몸매도 좋아. 원래 S라인이 내 취향이잖아.”“사진 있어?”하지만 저 질문에는 송문수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그래서 몇 초 동안 침묵을 유지하다가 다시 능청스레 대답했다.“있지.”“내가 봐도 돼?”“왜? 뭐 심사라도 해주게?”“아니, 그냥 궁금해서. 네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여자는 어떻게 생겼는지.”“보면 너 상처받을까 봐 안 보여줄 거야.”“괜찮아.”송문수도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며 거절하려 했지만 하지수는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다음에 직접 데려와서 보여줄게.”“지금 보고 싶어.”“카메라는 잘 안 받아서 실물보다 별로야.”“왜 안 보여주는 거야? 설마 없는 거야?”“설마 내가 너 못 잊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걱정 마. 난 원래 감정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이거든. 절대 너한테 매달리지 않을 거야.”송문수가 확신에 찬 말을 하자 하지수는 씁쓸하게 웃어 보였다.“매달린 적이 있긴 해?”그런 하지수의 모습을 보니 또 가슴이 아파왔지만 송문수는 꾹 참기로 했다.송승우의 아이를 가진 하지수는 이미 자신에게서 너무 멀어져 있으니까.“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하지수는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멀어져가는 송문수의 뒷모습을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한편 화장실로 들어온 송문수는 물을 틀어놓고 손을 몇 번이니 씻어댔다.더 이상 손에 감각이 없을 정도로 아까부터 한 동작만 반복하고 있었다.“더 씻으면 손 터져.”그 모습을 본 하도경이 직접 물을 꺼주자 송문수는 넋 나간 사람처럼 고개를 끄덕이고는 하도경이 건넨 휴지를 받아 손을 닦아냈다.“고마워.”“이게 진짜 뭐 하는 짓이냐. 그렇게 좋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