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그 남자랑 무슨 사이예요?”예수진이 죽을 마시며 차갑게 물었다.관심이 아니라 어떤 사이인지 궁금했을 뿐이다.어제 같은 상황을 매일 마주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가연이 애써 눈물을 삼키며 말했다.“남편이야.”예수진이 그녀를 힐끗 보았다.“육씨 가문에서 나온 뒤, 아기를 데리고 시집가기가 어려웠어. 그래서 정직한 사람을 골라 시집간 거야.”그 인간이 정직하다고?“전에는 농사를 지으면서 정직하게 살았어. 사람이 성실하고 나를 싫어하지 않고 가희에게도 잘 대해줘서…”가연이 잠시 머뭇거리다 말했다.“그래서 내게 모은 돈이 있다고 했어. 그런데 그 돈을 본 이후로 사람이 완전히 돌변했어. 계속 나를 설득해서 시내에 집을 사고 장사하자고 했지. 내가 보기엔 그 사람이 적극적이고 열정도 있는 것 같아서 막지 않았어. 그런데 장사를 할 재목이 아니었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돈을 말아먹고 집을 내놓게 되었어. 그 뒤로 마약에 중독돼 갖고 성격도 난폭해졌어.”가연은 말하면서 눈물을 계속 흘렸다.“마약을 살 돈이 없으면 나를 때리고 욕하면서 계속 돋을 뜯어냈어. 돈을 다 써버려서 난 어쩔 수 없이 가사도우미로 일했지만 월급을 받으면 다 빼앗아갔어. 한번은 내 고용주 집에 찾아가서 소란을 피웠지. 난 가사도우미 일자리를 잃고 지금은 공사장에서 노가다 뛰고 있어.”“왜 이혼하지 않아요?”예수진이 물었다.“나도 생각해왔어. 근데 이혼해 주지 않아. 나를 때리고 협박하면서 이혼하면 바로 나와 가희를 죽인다고 협박해서 생각을 접었어. 가희를 데리고 도망도 쳤는데 번마다 잡혔어. 그럴 때마다 나와 가희는 미친듯이 복수를 당해서 지금은 건드릴 엄두가 나지 않아.”“경찰에 신고할 줄도 몰라요?”“신고해서 노동으로 회개를 했어. 하지만 나오면 더 난폭해지는데 무슨 소용이 있어? 1, 2 년 정도만 조용하게 살 뿐이야.”“그럼 장안을 떠나서 그 사람이 완전히 찾지 못하는 곳에 갈 생각은 안 해봤어요?”“난 평생 살면서 장안을 떠난 적이 없어. 다른 도시는
예수진은 무너지는 가슴을 추스렸다.문득 머릿속에 그녀를 도울 수 있는 사람들이 스쳐 지나갔다.연락처를 뒤져보았지만 갑자기 전화를 걸 엄두가 나지 않았다.육현경, 소이연, 하지수…심지어 하도경까지 생각했다.그들에게 있어 손만 흔들면 바로 나오는 적은 돈이다.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이렇게 비참하고 초라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고 더군다나 자신 때문에 난처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손가락을 움직여 매니저에게 전화를 걸었다.모든 자존심을 내려놓고 6000만 원을 빌려달라고 했다.하지만 다인이 단번에 거절했다.주기 싫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예수진을 돕지 말라는 협박을 받았다고 했다.그리고 다인의 입을 통해 모든 광고가 중단되었다는 것을 알았다.심지어 이미 촬영을 마치고 방영을 기다리는 드라마와 영화도 재촬영 하거나 AI로 얼굴을 바꾸어서 방영했다가 전부 하차했다.예수진은 철저하게 연예계에서 출연 금지를 당했다.다인의 말투에 아쉬움이 가득했다. 필경 예수진은 다인이 직접 키운 거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인은 냉정했다. 연예계라는 게 원래 그랬다. 시대가 빠르게 변하기 때문에 어떤 연예인을 오래 기억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배우의 길은 이젠 완전히 막혀버렸다.다인이 도와주지 않으면 다른 영화사와 협상할 자격도 없다.예수진은 한참 망설이다가 다른 번호를 눌렀다.“예수진?”통화가 금세 연결되었다.“진우 오빠.”예수진이 불렀다.왜 그한테 전화를 했는지 본인도 알지 못했다.솔직히 잘 아는 사이도 아니었다.지난번에 심씨 가족이 육씨 저택에 온 이후로 연습하는 동안 SNS로 연락했었다. 그때는 깊게 대화를 나누지 않고 평범한 친구처럼 지냈었다. 말하자면 그냥 깊은 관계를 유지하지 않았다.심씨 가문에서 육씨를 꺼리지 않으니 심진우가 자신을 도와준다고 해도 삶에 지장을 받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리고 육은숙이 알아도 마음이 불쾌할 뿐 무리하게 심씨 가문과 눈살을 찌푸리지 않고 어느 정도 체면을 줄 것이라 생각했다.
머릿속에 갑자기 가연의 모습이 떠올랐다.삶에 짓눌려 늙어간 얼굴, 굳은살이 가득한 손.그렇게 가난하게 살면서 매일 그녀에게 영양죽을 끓여주었다.이상하게 눈물이 볼을 타로 흘러내렸다.평생 가연을 용서하지 않고 마음이 약해지지도 않으며 인정하지 않을 거라 여겼다.그런데 불과 보름만에 그녀의 생사를 걱정하고 있다.얼마나 울었을까?본인은 아무런 감각이 없는데 눈물은 계속 흘러내렸다.오후가 되었을 때 다인의 메시지를 받았다.만약 이 메시지를 받지 않았다면 중요한 시기에 뻔뻔스럽게 다른 사람을 찾아가지 않고 죽기를 기다렸을지도 모른다.그 메시지를 본 후 오랫동안 침묵했다.메시지 내용은 이랬다.“현재 연예계에서 모든 활동이 중단되었어. 하지만 아직 숨겨진 보석이 있어. 네가 원하면 찾아 가든지. 네가 사치스러운 생활에 익숙해져서 갑자기 아무도 없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거 잘 알아. 나도 수많은 연예인들이 각종 부정적인 뉴스 때문에 모든 것을 잃고 몸과 영혼을 파는 것을 많이 봐왔어. 그러니까 생각해 봐. 내가 감독님 번호를 줄 테니까 감독과 잘 상의해 봐. 얼굴은 드러내지 말고.”예수진은 매니저가 보낸 일련 번호를 물끄러미 쳐다봤다.그렇다고 다인이 자신을 모욕해서 에로 영화를 찍으라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인은 그저 다양한 캐릭터들과 돈 때문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연예인을 봤을 뿐이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 그녀를 최대한 돕는다고 생각했다.예수진이 손가락을 부들부들 떨며 전화를 걸었다.같은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이라 그녀의 상황이 얼마나 비참한지 알고 가격을 일부러 낮게 불렀다. 한 편의 영화를 9000만 원밖에 주지 못한다고 했지만 대답했다.얼굴을 내밀지 않겠다는 조건을 내세우자 감독도 허락했다.저녁 8시에 시사하기로 약속했다.그녀는 일어나서 공중 목욕탕에서 가서 샤워했다,비록 내부가 많이 낡았지만 이미 익숙해졌다.차가웠다 뜨거웠다 반복하는 물 온도와 곳곳에 쓰레기와 머리카락이 널려 있는 것도 익숙해졌다.그 뿐이
그녀는 휴대폰에 대고 말했다.“지수, 나 혼자 부딪쳐보고 싶어.”하지수가 하려던 말을 삼켰다.눈가에 계속 눈물이 글썽거렸다.“다들 날 걱정해 준다는 거 알아.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나 외에 누구도 도와줄 수 없어. 우리 오랫동안 친구로 지내면서 너도 내가 육씨 가문에 얼마나 정이 깊은지 알고 있을 거야. 내가 그 가문에서 태어난 것이 얼마나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아무도 없어. 돈 문제가 아니라 내 마음이 무너졌어. 지금 네가 도와주고 보호한다고 해도 내가 이 고통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겠어. 그러니까 똑같아.”“똑같지 않아. 너를 보면 적어도 내 마음이 편해. 네 힘으로 성장하고 싶은 심정은 알겠어. 그렇지만 우리 곁에 있다고 해서 성장할 수 없는 건 아니잖아. 과도한 관심이 싫으면 우리 아무것도 묻지 않을게. 네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나도 자존심이란 게 있어. 너희들의 은혜를 그냥 받아드릴 수 없어.”“예수진, 우리의 감정을 은혜라고 생각해?”하지수가 버럭 화를 내며 그녀를 나무랐다.“너무 소중해서 관계를 망치고 싶지 않아.”“예수진.”“내가 살아있고 노력하고 있다는 걸 알려주려고 전화를 받은 거야. 어느 날 정말 살기 힘들어질 때, 삶에 억눌려서 내 존엄이 바닥을 칠 때면 내가 먼저 찾을게!”“수진아!”“너희들은 내 마지막 퇴로야.”말이 끝나기 바쁘게 예수진이 전화를 툭 끊었다.하지수가 다시 전화를 걸었을 때 이미 전원을 꺼버린 뒤였다.그녀는 눈물을 글썽이며 소이연을 바라봤다.어찌해야 될지 몰랐다.예수진은 어디에 있는지 말하지도 않아서 그녀를 찾을 방법도 없었다.“이연 씨, 어떻게 해요?”소이연이 머리를 흔들었다.그녀도 어떻게 해야 될지 몰랐다.예수진의 말을 따라야 할지 아니면 강제적으로 데리고 와야 할지 몰랐다.“수진은 지금까지 고생한 적이 없어요. 정말 밖에서 버티지 못할까 걱정돼요. 혼자 어떻게 버둥거리면서 산다고…”“혼자 직면하고 혼자 성장하려는 것이 다가 아니에요. 가장 중요한 건 우리한테 누를
그날 밤, 장안의 도로는 여전히 차들로 북적거렸다.예수진은 촬영 현장에 도착한 후 다시 휴대폰을 켰다.감독을 찾지 못해서 전화하려고 켠 것이다.감독이 그녀를 본 순간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예수진이 그의 영화를 찍으러 올 줄은 상상도 못했었다.정말 하늘에서 파이가 뚝 떨어진 격이다.출연료도 많지 않고 저 얼굴이 화면에 나온다면…분명 큰 돈을 벌 것이다.하지만 너무 서두르면 안 되었다.예수진이 적응이 된 후에 천천히 얼굴을 공개해도 늦지 않으니까.감독은 너무 기쁜 나머지 예수진에게 친절하게 대했다.“수진 씨, 먼저 가서 옷을 갈아입어요. 안에는 아무것도 입지 말고 가운만 걸치면 돼요. 걱정 마세요. 나왔을 땐 현장이 다 정리되어 있을 거예요. 오직 두 사진 작가와 나만 있을 겁니다.”붉게 부은 예수진의 눈을 보며 감독이 위로했다.“처음엔 부끄럽고 서먹할 수 있지만 내 요구에 따라서 하면 괜찮아요. 수진 씨의 몸매는 너무 좋아서 저기에 누워 있기만 해도 남자들이 코피를 흘릴 테니까 너무 긴장하지 마세요.”“알았어요.”예수진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이런 영화를 찍게 되어서 운 것이 아니다.하지수와 통화를 한 후 관심 어린 말투에 가슴이 무너져 내려서 운 것이다.하마터면 자신의 곤경을 말해 버리고 이곳에 오지 않으려고 했다.감독은 여자 스태프에게 예수진을 데리고 가서 옷을 갈아 입히라고 했다.스태프는 예수진을 보고 조금 당황했다.탑 배우가 망한다면 이렇게 망가지는구나.문제는 활동 금지령을 받은 지 얼마되지도 않았다.역시 여자 연예인은 돈이 없어서는 안 되었다.돈만 준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그녀는 예수진이 옷을 갈아입는 것을 시중들었다.옷을 다 벗은 뒤 가운 한 장을 걸쳤다.하지만 예수진은 탈의실에서 오랫동안 나오지 않았다.이 지경까지 올 줄은 생각도 못했던 것이다.솔직히 수많은 연예인들이 유명해지기 전에 다 남들이 알지 못하는 부끄러운 일들을 한다.‘원나잇’은 연예계에서 아주 흔한 일이고 현재 많은 탑 연예
스튜디오에서 갑자기 분노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자, 모두가 놀랐다.예수진을 보며 얼굴이 빨개진 하도경이 보였다.그녀도 놀랐다.이런 곳에서 지인을 만날 줄은 상상도 못 했다.그 순간 하도경은 분노하며 앞에 있던 카메라를 발로 걷어찼다.그리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녀의 옷이 벗겨질까 걱정하며 그녀를 목욕 수건으로 감싸며 안아 주었다."당신, 당신..." 감독도 하도경의 카리스마에 놀라 한참 만에 물었다. "누구세요?! 촬영장에 이렇게 들어오면 경찰에 무단침입으로 신고하는 수가 있어요!”"경찰에 신고해, 빨리 신고해! 어떻게 이런 걸 찍을 수가 있지? 경찰이 오면 날 잡을지 당신들을 잡을지 보자고!”감독은 화가 났지만 하도경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하도경은 지체하지 않고 고개를 돌려 예수진에게 물었다. "옷은 어디 있어?”"탈의실에.”가서 갈아입고 와.”"하도경...”"그냥 돈일 뿐이야. 그가 너에게 수억 원을 주면, 내가 너에게 주면 돼!"하도경은 폭발 직전이었다.예수진은 심지어 그의 머리에 불이 붙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그녀는 하도경에게 단지 몇천만 원 일뿐이라고 말하려 했지만, 하도경은 계속 화내고 있었다.그리고 그녀가 계속 찍으려 해도 지금 상태로는 불가능했다.그녀는 하도경에게 조용히 말했다. "잠깐만 기다려.”하도경은 한참이 지나서야 예수진을 놓아주고, 그녀가 도망갈까 봐 함께 탈의실로 갔다.예수진은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하도경은 말없이 예수진을 데리고 촬영지를 떠났다.하도경은 차에 올라타 앉았지만 차를 움직이지 않았다.아무리 해도 화가 가라앉지 않았다."여긴 왜 왔어?"예수진이 그에게 물었다.그녀의 말에 하도경은 더 화가 났다. "내가 안 왔으면 너 찍었을 거지?”그가 왔더라도 그녀는 나중에 촬영하러 갈 것이다."예수진, 내가 오늘 저녁 식사 자리에서 연예계 투자자 몇 명을 만나지 않았다면, 네가 영화 찍기로 약속했다는 소문을 듣지 못했을 거야. 난 내가 잘못 들은 줄 알고 네 오빠와 통화
차 앞에 낯익은 사람의 그림자가 그들의 키스를 보고 있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계지원은 가로등 아래 서서, 차 안에 두 사람의 머리가 서로 엉켜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그들의 표정을 볼 수 없었지만, 또한 아주 분명하게 본 것 같았다. 계지원은 말없이 돌아서 떠났다. 그는 발을 절뚝거리며 불편하게 걸었다. 그는 항상, 그녀를 놓쳤다. 그는 그들의 시선을 피해 길에 털썩 주저앉았다. 몸에 상처는 많은데 전혀 아프지 않았다. 심장이 산산조각 난 듯 아팠다. 그의 앞에 갑자기 그림자나 나타났다. 계지원은 육현경을 올려다보았다. "가자.” 예수진과 하도경이 함께 있는 모습도 보였다. 오늘 밤 육씨 가족 집에서 저녁을 먹을 때, 하도경의 급한 전화를 받고 예수진이 돈 때문에 영화를 찍으러 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나오려 했지만 그의 고모에게 저지당했다. 육현경은 하도경이 촬영을 하지 못하도록 막을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계지원은 그 순간 미친 듯이 육씨 저택을 뛰쳐나오려 다가 가문의 도우미에게 제지당했다. "계지원, 이 문을 나서면 넌 육씨 가문사람이 아니야!" 육청호가 협박했다. "이미 제 선택을 알고 계시잖아요." 계지원은 굳은 얼굴로 대답했다. 처음에 예수진에 사고가 나서 육씨 가문으로 돌아왔을 때 계지원은 육청호에게 고백했다. 육청호는 그동안 계지원에게 많은 협박을 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고, 결국 두 사람은 계지원이 3개월 후에도 예수진을 위해 육씨 가문을 떠나겠다고 고집하면 더 이상 막지 않기로 합의했다. 계지원은 육청호에 대한 존중의 표시로 동의했다. 하지만 그는 예수진을 위해 3개월은커녕 30 분도 참을 수 없었다. "계지원, 아버지가 네게 큰 인자함을 나타내셔서 우리 집으로 데려왔어. 그런데 지금 그런 사생아 하나 때문에 육씨 가문과 척지겠다는 거야? 이게 무슨 배은망덕한 짓이야?”육은숙은 분노하며 그를 비판했다. "나
계지원은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도록 채찍질당했다. 그러나 그는 가법 대로 채찍질이 끝날 때까지 신음 한번 내지 않고 채찍을 다 맞은 후 일어나 자리를 떴다. 육현경이 그의 뒤를 따랐다. 육은숙이 그를 막으려 하자 육청호가 손짓을 했다. 육은숙도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다. 육현경은 차를 몰고 예수진이 촬영하고 있는 곳으로 갔다. 육현경이 차를 멈추지 않자 계지원은 문을 달려가다, 가로등 아래서 무언가를 보고 천천히 몸을 돌렸다. 육현경 역시, 하도경의 차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장면을 보았다. 어쩌면 사랑은 처음부터 놓치면 계속 놓칠지도 모른다... 육현경은 계지원을 부축하기 위해 몸을 숙였다. 계지원은 그의 도움을 거절하고 스스로 천천히 일어섰다. 일어서서 두 걸음 정도 걷자 몸이 갑자기 휘청거렸다. 육현경은 정신을 잃고 쓰러진 계지원을 급히 잡아주었다. 채찍질당한 계지원의 몸이 버틸 수 없는 것인지, 아니면 그의 마음이 감당할 수 없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육현경은 계지원을 데리고 떠났다. 하도경의 차 안. 두 사람은 차밖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아채지 못하고, 어색한 표정으로 차 안에 앉아 있었다. 밝은 예수진과 하도경은 키스를 한 후 서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어색하게 눈치만 보았다. "난…" 하도경은 몇 번이나 입을 열려고 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예수진 역시 입술을 깨물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좋은 친구였던 그들의 관계가 바뀌었다!"저기, 은행 카드 먼저 줘." 하도경은 심호흡을 하며 말했다. "은행 카드는 우리 엄마가 다 가지고 계셔... 응, 육 여사님이 내 계좌를 동결해 버려서 네가 돈을 보내도 받을 수 없어." 예수진이 대답했다. "그럼… 현금은?" 하도경이 물었다. 예수진이 당황스러워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의 도움을 받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일단 가까운 은행부터 가자." 하도경은 급히 차에 시동을 걸며 말했다. 예수진은 아무 말하지 않기로 했다. 현금
허영지는 송문수의 사무실에 들어가서 말했다.“문수, 지수, 수고했어.”송문수와 하지수는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둘이 너무 일에 몰두한 나머지 허영지가 말하지 않았으면 사무실에 들어온 것조차 몰랐다.“엄마, 어떤 일로 오셨어요?”송문수는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네 아버지가 기어코 오겠다고 해서 같이 왔지.”“아버지도 오셨어요?”송문수의 미간이 찌푸려졌다.“기어코 오겠다고 해서 말리지도 못했어. 근데 두 시간 후에 네 아버지를 데리고 갈 거야.”허영지는 웃으면서 말했다.“아버님은 많이 좋아지셨어요?”하지수는 다정하게 물었다.“의사 선생님은 큰 문제가 없다고 하셨어. 하지만 다시 그럴까 봐 걱정돼.”“맞아요. 아버님은 확실히 주의하셔야 해요.”하지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하고 나서 물었다.“어머님, 뭐 좀 드시겠어요? 비서보고 준비하라고 할게요.”“됐어. 그냥 너희 얼굴을 잠깐 보러 온 거야. 일하는 걸 방해하지 않을게.”허영지가 상냥하게 말하고선 떠나려고 하자 하지수는 일어서서 배웅하려고 하였다.그러나 허영지는 나오지 말라고 했다.“나 신경 쓰지 말고 일이나 해. 난 여기저기 구경하고 있을게. 참, 저녁에 집에 와서 먹어. 이제 곧 아버지 60세 생신이잖아. 얼마 전에 또 죽다가 살아났으니 축하할 겸 나쁜 기운도 제거하려고.”“알겠어요.”송문수가 대답하자 하지수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오늘 문수 씨에게 일찍 퇴근하라고 할게요.”“내가 오씨 아줌마에게 반찬을 몇 개 더 준비하라고 할 테니 잊지 말고 와.”“네.”허영지는 기쁜 심정으로 떠났다. 얼마 전에 정말 너무 지쳤다.송기명의 일, 회사의 일, 송문수와 송승우의 일, 허영지는 하마터면 우울증에 걸릴 뻔했다. 지금 모두 순조롭게 풀려서 다행이었다.그녀는 고개를 돌려서 다시 송문수와 하지수를 바라보았다.두 사람도 이제 아이를 가질 때가 되겠지?이것은 지금 그녀의 유일한 아쉬움이었다.... 다섯 시 반.하지수는 송문수에게 퇴근하자고 하였다. 요새는 매일
“회사 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넌 신경 쓸 필요 없다.”송기명가 담담한 표정으로 한 말에는 송승우가 괜한 말을 했다는 뉘앙스가 들어 있다.송승우도 알아들었다.송문수가 회사를 이끌고 어려운 고비를 넘긴 후부터 모든 사람이 그를 다시 보게 된 건가? 그가 보기에 송문수는 우연히 찾아온 기회를 잡아서 운 좋게 성공한 것이었다.그는 늘 송문수를 얕잡아 보았다.“그럼 먼저 가볼게요.”송승우는 자기의 물건을 간단히 정리하고 나서 말했다.“그래.”송승우가 사무실에서 나오기 전에 문 앞에 잠시 멈춰서 말했다.“저는 장안시에 출장하러 왔어요. 여기에 며칠 머물다가 월요일에 서울로 돌아갈 거예요.”“알었어. 뭐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아주머니에게 말해.”아주머니는 집에서 가사 도우미로 일하는 오씨 아주머니였다.송승우의 눈빛이 차가워졌다.예전에 그가 돌아올 때마다 집에서는 늘 열정적으로 맛있는 음식을 준비해 주었고 아버지는 출근하지도 않고 그와 함께 있어 주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렇게 쌀쌀한 태도로 대하다니!송문수가 잘하고 있으니까 자기는 소용없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송승우는 굳은 얼굴로 떠났다.허영지는 송승우의 뒷모습을 보면서 아들의 마음이 편치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녀는 원래 좋은 말을 하고 싶지만 왠지 모르게 말하지 않았다.허영지는 송기명에게 다가가서 한숨을 내쉬었다.“지금 문수의 능력이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어서 대견스럽지만 그렇다고 해서 승우에게 차갑게 대하면 안 돼요. 예전에 우리가 문수에게 불공정하게 대했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어요. 지금은 문수 때문에 승우에게 불공정하게 대하고 싶지 않아요. 두 아이를 평등하게 대해야죠.”송기명은 대꾸하지 않았지만 마음이 여전히 불쾌했다.어쨌든 자기는 아직 은퇴도 안 했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늙지 않았는데 송승우가 어찌 자기 사무실에 있는 의자에 앉을 수 있겠는가?그는 그동안 자기가 송승우에 대한 사랑과 칭찬이 너무 지나쳐서 그를 자고자대하게 만들었고 기본적인 예의와 공손함도 잊
송승우가 막 재무제표를 보려고 할 때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인기척을 들었다.그는 고개도 들지 않고 강력한 어조로 말했다.“꺼져! 들어오기 전에 노크할 줄도 몰라?”문 앞에 선 송기명과 허영지의 안색이 조금 어두워졌다.그들은 줄곧 송승우를 그들의 자랑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들 앞에서 예의 바르고 말을 잘 듣는 아들이 갑자기 이런 말투로 말하는 것을 보자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송기명이 회사에 있을 때도 아무 이유 없이 직원을 욕하지 않았다.송승우는 문 앞에 있는 사람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느끼자 계속 짜증스러운 말투로 말했다.“말귀를 못 알아...”그가 말하면서 고개를 들어 보니 송기명과 허영지가 문 앞에 서 있었고 뒤에는 송기명의 비서가 보였다.송승우의 안색이 굳어졌고 눈빛에 당황스러운 기색이 스쳤다.그는 원래 화나 있었다. 회사의 재정이 갈수록 좋아졌고 송문수가 회사를 점점 잘 이끌고 있는 것을 보자 마음속에 말할 수 없는 답답함이 생겼다. 그래서 들어오는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도 하지 않고 버럭 화를 낸 것이었다.“왜 여기에 있어?”송기명은 들어오면서 송승우에게 물었다.송승우는 그제야 자기가 아버지의 사무실에 앉아 있는 것을 알아챘다.그는 아버지가 갑자기 회사에 오는 이유를 몰랐다.며칠 전에 그가 특별히 전화해서 물어봤을 때 어머니는 아버지를 집에서 좀 더 쉬게 하고 빨리 회사에 나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였다.“회사에 제가 필요하는지 보러 왔어요. 문수가 혼자 회사에 있어서 걱정돼서요.”송승우는 다급히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래?”송승우에 대한 송기명의 태도는 차가웠다.그는 자기의 사무실 의자를 향해 다가갔다.송승우는 급히 자리를 비켜주었고 얼굴에 난감한 기색이 역력했다.아무리 친부자 간이라도 권력이 있는 사람일수록 남이 자기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이것은 자기 권위에 대한 도전이었다.사실 송승우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송기영은 자기의 의자를 힐끔 쳐다보고는 앉지 않았다.분명 꺼려서 앉지
“왜 이렇게 하는 거지? 쓸데없는 짓이 아닌가? 사든지 말든지 그들이 결정하라고 하면 우리의 매출에 도움이 안 되잖아!”송승우는 차가운 목소리로 송문수에게 물었다.“제가 다시 한번 말할게요. 저는 판매량을 높이려는 목적이 아니고 직원의 피를 빨아먹으려는 것도 아닙니다. 반대로 이것은 일종의 직원 복지이고 보상입니다.”송문수는 정중한 표정으로 설명하였다.“그동안 회사에 변고가 생겼는데 직원들은 우리와 함께 어려운 고비를 넘겼어요. 이때 우리가 직원에게 복지를 주면 직원들의 열정을 자극할 수 있죠.”“그럼 직접 직원들에게 현금 인센티브를 줄 수 있는데 왜 이렇게 복잡하게 만들어?”이에 송승우는 비아냥거렸다.“직원에게 너무 큰 기대를 주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서 이런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회사가 또 다른 문제가 생길 때 그들은 회사에서 현금 인센티브를 지급할 것을 기대하게 됩니다. 우리가 이 기대를 만족시키지 못하면 직원은 부정적인 정서가 나타나게 되죠. 반대로 우리가 적당한 보상을 주고 그들이 너무 많은 기대를 하지 않게 할 수도 있으면서 혜택을 받았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송문수의 말이 끝나자 한 이사가 바로 입장을 밝혔다.“찬성합니다.”기타 이사도 연달아 맞장구를 쳤다.“나도 찬성하오.”“문수야, 어린 나이에 인심을 잘 아는구나. 참으로 대단한 친구야.”“송 회장도 드디어 후계자가 생겼네. 전에 우리가 괜한 걱정을 한 거였어.”“다음에 송 회장에게 축하 인사라도 해야겠어. 이런 아들을 둬서 정말 복을 받았다고.”송문서처럼 뻔뻔한 사람도 지나친 칭찬에 민망했다. 옆에 있는 송승우는 얼굴이 시퍼렇게 질렸다.이사들이 송문수에게 아첨하는 모습을 보자 송승우는 울화가 치밀어 올라왔다.언제부터 송문수가 사람들의 칭찬과 인정을 받게 되었고 자기는 들러리가 되었지?회의가 끝난 후 각 부문은 신에너지 자동차의 홍보 마케팅을 합리적으로 분업해서 진행하기 시작했다.보름 후, 신에너지 자동차가 다시 출시되었다.출시
지금 송문수는 짧은 시간 내에 세계 최첨단 기술의 총 책임자와 파트너십 계약을 체결하였다.이 소식이 전해지면 송씨 그룹의 매출이 좋아질 뿐만 아니라 주식도 많이 오를 것이다.파산 직전에 있었던 송씨 그룹이 갑자기 몇 단계 업그레이드될 줄은 누가 알겠는가?이 모든 것은 송문수 덕분이었다.송승우는 믿기지 않아서 확실하게 조사했었다.송씨 그룹의 자금이 부족할 때 송문수가 개인 명의로 육현경을 찾아 돈을 빌려서 부족한 자금을 메웠다.지금 크레지의 기술 투자도 송문수가 하지수를 데리고 외국에 가서 받아온 것이고 회사에서 누구도 도움을 주지 않았다.송승우는 말로 할 수 없는 착잡한 생각이 들었다.회사를 지킬 수 있어서 송승우도 매우 기뻤다. 어쨌든 아버지는 회사의 일 때문에 중환자실에 들어갔으니 아버지가 무사하기를 바랐다.그러나 회사를 지킨 사람이 송문수라는 사실이...어렸을 때부터 송문수가 자신에게 뒤떨어진 사실에 익숙했는데 갑자기 잘나가니까 왠지 불편한 느낌이 들었다.송승우는 이를 악물고 자신의 속마음을 숨겼다....송문수는 크레지와 계약을 체결한 후 기술에 대한 검토와 연개발을 진행하기 시작했다.물론 이것은 전문가가 해야 할 일들이다. 송문수는 모든 연구개발 플랫폼을 제공하였고 지원 작업도 완료했다. 이제부터 앉아서 결과를 기다리면 된다.지금 급선무는 신에너지 자동차를 생산한 후의 판매 문제를 해결한 것이다.모두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지만 마지막에 뜻대로 될 수 있는지 모르기에 미리 대비할 필요가 있다.송문수에게 있어서 신에너지 자동차가 다시 출시되고 예상 매출액을 실현하며 자금이 되돌아온다면 송씨 그룹의 모든 위기가 해결된 것이다. 그는 이사회 회의실에 앉아서 이사들과 판매 방안을 논의하였다.회의실 현장의 분위기가 매우 뜨거웠다.지금 회사가 좋은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어서 이사들도 의욕이 불타올랐다.송승우가 제 눈으로 확인하지 않았다면 송문수보다 나이가 한참 많은 이사들이 송문수에게 친절하게 대하고 송문수의 지시를 순순히
“늦었으니까 일찍 쉬자. 회사가 힘든 고비를 빨리 넘겼으면 좋겠어.”하지수는 송문수를 보면서 말했다.“그래.”송문수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그럼 내 방으로 갈게.”“알겠어.”“잘 자.”“잘 자.” 하지수는 일어나서 가기 전에 뭐가 조금 아쉬운 느낌이 들었다.그녀는 갑자기 허리를 굽혀 송문수의 머리를 안고 그의 이마에 뽀뽀하였다.송문수의 심장이 멈춘 것 같았다. 곧바로 폭풍우가 휘몰아친 것처럼 심장의 박동을 제어할 수 없었다.그는 손가락이 꼼지락거리면서 하지수를 끌어안으려고 하였다.그러나 하지수는 이미 그의 곁을 떠나서 손가락은 그녀의 옷을 스쳐 지났다.그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고 그는 1초간 멈칫하다가 포기하였다.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을까 봐 두려웠다.그리고 지금 시간이 너무 늦었고 하지수의 피곤함을 느낄 수 있었다.이 기간이 지나고 며칠 지나서...그와 하지수는 아직 많은 시간이 있으니까 조급할 필요가 없었다.송문수는 하지수가 그의 방을 나가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의 심장은 여전히 제어되지 않고 벌렁벌렁 뛰고 있었다.그는 미래를 기대하기 시작했다.예전에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들이 곧 현실로 다가올 것 같았다.송문수는 하늘이 드디어 그를 돌보기 시작했다고 생각했다.그러나 하늘이 그와 장난치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며칠 후.크레지는 그의 팀을 거느리고 송씨 그룹에 왔다. 송문수를 비롯한 임원들은 최고의 대우로 맞이하였다.송문수는 송씨 그룹에서 여러 번 수정한 가장 완벽한 제안서를 크레지에게 보여주었고 크레지는 매우 만족스러워했다.그러고는 크레지를 데리고 신에너지 자동차를 참관하였고 그들이 연구개발한 기술을 소개했다.그날 크레지는 바로 송씨 그룹과 합작해서 기술 투자를 해주기로 결정했다.다시 말하면, 세계 최정상 신에너지 자동차 연구개발 부서의 최고 등급의 총책임자가 곧 송씨 그룹의 신에너지 자동차의 연구개발에 참여한다는 것이다.이러면 송씨 그룹의 신에너지 자동차는 대중의 인정을
사실 송문수도 내성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하지수의 앞에서 늘 냉담한 표정을 지었다.송문수의 말에 하지수는 한숨을 내쉬었다.“왜 모두 날 못 믿는 거지?”송승우가 그녀를 믿지 않을 뿐만 아니라 송문수도 그녀를 믿지 않았다. 자신의 말이 이렇게 신뢰성이 없단 말인가?“그냥 송승우는 나보다 훨씬 나은데 당신이 날 선택하는 것이 이해가 안 돼서 그래.”송문수는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지만 심장이 벌렁벌렁 뛰었다. 그는 너무 긴장해서 숨이 막힐 정도였다.“승우 오빠가 문수 씨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하지 않아.”하지수는 망설이지 않고 말하였다.“응?”하지수의 말에 송문수는 눈썹을 치켜세웠고 자기의 귀를 의심하였다.송승우는 자기보다 능력이 뛰어나고 더 똑똑한 것은 모두에게 알려진 사실이었다.반대로 자신은 그냥 못난 놈이었다.그는 어렸을 때부터 무능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승우 오빠가 문수 씨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하지 않아. 점점 그런 생각이 들어.”하지수는 다시 한번 말하였다.“근데 너 어렸을 때부터 형만 좋아했잖아? 몇 년 동안 좋아했지?”“지금 생각하면 그건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의지해서 그런 것 같아.”하지수는 송문수에게 약을 발라주면서 말하였다.“어렸을 때 승우 오빠가 성숙하고 듬직하고 성격도 좋다고 생각했어. 당신처럼 걸핏하면 나를 괴롭히지는 않았으니까. 그리고 난 부모님이 돌아가셨고 또 낯선 환경에서 생활하다 보니 안전감을 줄 수 있는 듬직한 사람을 찾으려고 했던 것 같아.”하지수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그때 승우 오빠는 나를 지켜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 하지만 난 정말 승우 오빠와의 감정을 진지하게 생각한 적이 없었어. 승우 오빠에 대한 의지를 사랑으로 착각했던 것 같아. 지금 생각하면 아니야.”하지수는 연고를 내려놓고 송문수를 바라보면서 말했다.“지금은 승우 오빠가 날 결혼식장에 버려두고 간 것을 조금도 원망하지 않아. 그리고 승우 오빠와 다시 잘되고 싶은 생각이 없고 심지어 나와 더 멀리 떨어졌으면 좋겠어
“승우 오빠, 우리 사이에 정말 끝났다고 몇 번 말해야 돼요? 우린 더 이상 가능성이 없어요.”사실 하지수는 화가 좀 났다. 도대체 어떻게 말해야 송승우가 자신의 진실한 속마음을 믿을까? 왜 이렇게 집착하지?송승우는 매서운 눈초리로 하지수를 노려보면서 이를 갈았다.“후회하지 마, 하지수!”“쾅!”송승우는 차에서 내릴 때 차 문을 세게 닫아서 차가 흔들렸다.그가 얼마나 화났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기사마저 소스라쳐 놀라서 감히 숨도 쉬지 못했고 떠나야 할지 제자리에 있어야 할지 몰랐다.“가세요.”오히려 하지수는 담담한 태도로 말했다.송문수는 고개를 돌려 하지수를 바라보았다. 그는 속으로 조금 기뻤지만 감히 기뻐할 수는 없었다. 그는 하지수에 대해 늘 환득환실하였다.기사는 다시 브레이크를 밟고 그들을 데려다주었다.차 안은 여전히 조용하였다. 송문수는 하지수가 먼저 말을 걸지 않으면 죽어도 입을 열지 않겠다고 생각하였다.어느새 주차장에 이르렀다. 두 사람은 앞뒤로 차에서 내렸다.지금 두 사람은 모두 피곤하였다. 저녁 내내 난리 쳐서 벌써 새벽 3시 넘었고 이제 4시간 정도만 잘 수 있었다.“문수 씨, 먼저 씻어. 욕실에서 나오면 내가 방에서 약 발라 줄게. 당신 얼굴에 멍이 좀 들었고 손도 좀 부었잖아.”하지수는 피곤하지만 억지로 정신을 가다듬고 말했다. 송문수는 입술을 오므리다가 대답하였다.“알았어.”하지수는 우선 방에 들어가서 샤워했고 그제야 정신이 조금 들었다.그녀는 거실에서 약상자를 찾은 후 송문수의 방문을 두드렸다.송문수는 잠옷을 입고 소파에 앉아 있었다. 그는 담배를 들고 있었는데 불을 붙이지 않았다.왠지 모르게 갑자기 담배를 피고 싶지 않았고 하지수가 담배 연기를 맡으면 기침을 할까 봐 걱정되기도 하였다.하지수는 그의 옆에 앉아서 요오드포름과 상처치료용 연고를 꺼냈다.“문수 씨, 머리를 조금만 수그려줘. 바를 수가 없잖아.”하지수가 다정하게 말하자 송문수도 순순히 따라서 하였다.그가 이렇게 말을 잘 듣는
“문수 씨.”하지수는 송문수의 이름을 불렀다. 그녀는 지금 송문수가 화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지만 송승우에게 무슨 일이라도 있으면...어쨌든 한 가족이 아닌가.그녀는 가정의 불화를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그래도 승우 오빠를 병원에 보내야 하잖아.”하지수는 큰 소리로 송문수에게 말하자 송문수는 발걸음을 멈추었다.사실 송승우는 별일 없었다. 송문수는 격투기를 배운 적이 있기에 사람의 어느 부위가 다치면 안 되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송승우를 이성을 잃을 정도로 때렸어도 급소를 때리지 않았다.하지수는 송문수의 대답을 듣지 못하자 다급히 핸드폰을 꺼내서 긴급구조 요청을 하였다.구급차를 기다리는 동안, 하지수는 송승우에게 다가가지 않았다.그녀는 멀지 않은 곳에 서서 바닥에 쓰러진 송승우를 바라보았다.송승우의 분노가 극도에 이르렀지만 송문수와 싸울 힘이 없었다.사실 하지수도 요새 송승우와 송문수가 자주 싸우는 이유를 몰랐다. 오늘은 벌써 두 번째였다.어렸을 때 두 형제의 관계가 그다지 친밀하지 않았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지금 어른이 되었는데 아직 유치하게 싸우다니!이윽고 구급차가 도착했고 구조대원들은 들것으로 송승우를 구급차에 태웠다.하지수도 따라서 올라탔지만 송문수는 타지 않았다.하지수는 잠시 망설이다가 내려와서 송문수를 잡아당겨서 같이 구급차에 올라탔다.구급차 안은 매우 조용하였다.아무도 말하지 않았고 차 안의 분위기에 아직 분노의 불꽃이 튕기는 것 같았다.병원에 도착한 후 송승우는 응급실로 옮겼다.하지수와 송문수는 로비에서 기다렸다. 송문수는 차가운 분위기를 풍기면서 한쪽에 서 있었다.사실 하지수는 송문수의 얼굴에도 상처가 있는 것을 보았다. “문수 씨도 얼굴과 몸에 난 상처를 검사하지 않을래?”“필요 없어. 외상이라 금방 나을 거야”송문수가 이렇게 말하자 하지수도 강요하지 않았다.잠시 후, 송승우는 응급실에서 나왔고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모두 외상이라 별문제가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지금 입원 수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