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278화

Author: 나설희
그 소식을 들은 소이연은 조금 놀랐다.

가장 비참한 결말을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그래 봤자 문서인이 10년, 20년 감옥살이를 할 거라 여겼는데 이런 방식으로 자신의 목숨을 끊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돌이켜 보면 그도 참 불쌍했다.

한 여자한테 놀아나서 문씨 가문까지 파산되었다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으니 낭패한 모습으로 사는 것이 자존심이 상했던 것이다.

아니면 죽음을 선택해서 고통에서 벗어나려 한 건가?

소이연은 이런 기분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

그렇다고 가책을 느낀 것은 아니다.

필경 그를 해친 것은 자신이 아니니까.

동정심도 아니다.

문서인은 그렇게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

그저 생명은 소중한 것인데 귀한 목숨을 포기했다는 것에 조금 안쓰러웠을 뿐이다.

문서인이 자살하자 SNS에서도 그에 대한 비난이 줄어들었다.

대부분 사람들이 죽은 문서인에게 경의를 표했다.

언론도 보름만에 막을 내렸다.

소이연이 하루 일과를 마치고 퇴근 준비를 할 때 육현경에게서 연락이 왔다.

받아야 하나?

그녀는 망설였다.

보름 동안 육현경은 먼저 찾아오지 않았다.

문서인이 자살했던 날에 메시지 하나만 보낸 것이 다였다.

“괜찮아?”

하지만 답장해 주지 않았다.

그 뒤로는 방해하지 않았는데 오늘 갑자기 연락이 왔다.

소이연이 통화 버튼을 눌렀다.

“현경 씨.”

공손한 호칭으로 인해 두 사람의 거리가 멀게만 느껴졌다.

“민이 학교에 남았어.”

육현경이 본론만 말했다.

소이연이 미간을 찌푸렸다. 육민을 언급하면 저도 모르게 긴장되었다.

주말이면 육현경이 빠짐없이 육민을 데리고 그녀 집에 왔었다.

또한 고맙게도 소이연이 학교에 육민을 데리러 가는 것을 막지 않았다.

“무슨 일이야?”

소이연이 다급하게 물었다.

“국어를 못해서 어떻게 배워줘도 소용이 없대. 내가 학교에 갔었는데 담임 말로는 민이가 한글을 떼지 못해서 학과 진도에 지장을 준다고 하더라.”

“이제 1학년이야. 뭐가 그리 심각해? 귀족사립학교도 아니고 사립학교가 무슨 공부를 빡 세게 시켜?”

소이연은 불쾌했다.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ocked Chapter

Related chapters

  • 맙소사! 보스의 아들을 줍다니   제279화

    소이연은 퇴근하고 바로 육현경의 집으로 향했다.집에 들어서자 식탁에 음식들이 가득 차려져 있었다.그제야 지금 저녁 시간이고 밥을 먹고 오지 않았다는 것이 생각났다.문씨 아저씨가 소이연을 다정하게 부르며 같이 식사하자고 했다.육민도 그녀의 다리를 껴안고 애교를 부렸다.“엄마, 엄마. 보고 싶었어요. 같이 밥 먹어요. 아저씨가 맛있는 거 엄청 많이 해줬어요.”육민의 애교에 이기지 못하기도 했지만 전에 밥을 제대로 먹지 않아 쓰러지는 바람에 문서인에게 기회를 제공한 것을 생각하면 더는 이런 저급한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마음을 먹었다.지금 문서인은 이 세상에 없지만 육현경이 아직 살아 있다.육현경은 문서인보다 더 위험한 인물이다.소이연이 식탁에 앉았다.육현경은 오히려 그녀가 들어와서부터 한마디도 하지 않고 고상한 자세로 식탁에 앉아 있었다.소이연은 상이 부러질 정도로 차려 놓은 음식들을 보았다.대부분 그녀가 좋아하는 반찬들이었다.하지만 그의 입맛도 그녀와 비슷해서 별로 놀랄 것도 없었다.소이연이 젓가락을 들고 먹기 시작했다.식사하는 내내 육민이 깔깔 웃는 소리만 들렸다.소이연이 집에 온 것이 얼마나 기쁜지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육민이 계속 그녀에게 반찬을 짚어주면서 연신 맛있냐고 물었다.그녀가 젓가락을 놓으려 할 때마다 더 먹으라고 요구했다.그러면서 밥을 잘 먹고 건강해야 여동생을 낳아줄 수 있다고 말했다.소이연은 그 말에 하마터면 사레에 걸릴 뻔했다.평생 결혼할 생각이 없었다.아들이 생긴 이후로 더더욱 생각이 없었으니 둘째를 낳을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았다.“엄마는 민이 하나면 충분해.”소이연이 육민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육민이 무슨 말을 하려고 입을 벌였을 때 그녀가 먼저 말했다.“엄마 이젠 배불러. 더 먹으면 속이 불편해. 민이는 한창 클 나이니까 많이 먹어.”“알았어요.”육민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진지하게 말했다.“내가 어른이 되어서 아빠처럼 키가 크게 되면 엄마를 보호할 수 있어요. 그때면

  • 맙소사! 보스의 아들을 줍다니   제280화

    소이연은 혼자 있고 싶었다.여태까지 육민이 무엇을 하든 잘못을 하든 괜찮다고 여기면서 여전히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그런데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한 것 같았다.소이연은 육민의 방에서 나와 심호흡부터 들이마셨다.한참이나 자신을 진정시킨 뒤에 물을 마시러 갔다.저녁 내내 기역만 읽었더니 목이 엄청 말랐다.거실에 나오자 육현경이 테이블에 앞에 앉아 컴퓨터를 보고 있었다.그것도 안경을 쓰고 말이다. 육현경이 안경을 쓴 모습은 처음 본다.겉보기엔 세상 점잖지만 속은 시커먼 놈.그는 업무를 처리하다가 인기척을 느끼고 그녀를 보고 있었다.아마 방금 한 행동과 표정을 다 본 모양이다.소이연은 그가 거실에 있는 줄 몰랐다.업무는 서재에서 보라고!“잘 되고 있어?”육현경이 물었다.왠지 이 상황을 즐기는 것 같았다.아들이 담임 선생님한테 꾸중을 들었는데 그는 여전히 태연했다.“아니.”소이연이 솔직하게 말했다.“내가 도와줄까?”육현경이 물었다.“기역자 알아?”“그게 뭔데?”모르면 찌그러져 있어.소이연이 힐끗 노려봤다.“물은 어디 있어?”“내가 따라줄게.”“어디 있는지만 말해. 내가 알아서 마실게.”소이연이 단호하게 거절했다.하지만 육현경은 이미 주방에 들어가 그녀가 마실 물을 들고 나왔다.따뜻한 물이었다.소이연은 화를 가라앉힐 찬물이 필요했다.“월경이 왔을 땐 따뜻한 물 마셔.”육현경이 진작에 눈치를 챘다.소이연이 입술을 오므렸다.이 인간은 어떻게 모르는 게 없어?“나도 우연히 알았어.”그가 설명을 덧붙였다.뭐야, 독심술도 할 줄 알아?소이연은 물을 마시고 컵을 돌려줬다.“고맙네요.”“좀 쉬어야 되지 않아?”육현경이 물었다.“아니.”소이연이 짧게 대답했다.“그렇게 급할 거 없어. 민이는…”“뭐가 안 급해? 반에서 혼자 못하면 친구들한테 비웃음을 당한다고! 그게 어떤 기분인지 알아? 트라우마가 평생 남아서 앞으로도 영향을 미칠 거라고!”소이연은 매우 격동했다.육현경은 입을 꾹 다물고 아무 말도 하

  • 맙소사! 보스의 아들을 줍다니   제281화

    잘 시간이 되었지만 육민은 끝내 자모에 대해 완벽히 장악하지 못했다.소이연은 육민을 더 몰아세우기 싫었는지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내일 또 공부하자고 했다.육민은 침대에 누워서 입을 삐죽 내밀고는 가지 말라고 하면서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소이연은 거절하지 못하고 육민을 재웠다.육민이 잠든 모습을 본 소이연은 저도 몰래 미소를 지었다.그녀는 머리를 숙여 육민의 이마에 뽀뽀를 해주었다.매번 갈 시간이 되면 아쉬움이 발목을 잡았다.소이연이 일어서서 나가려 할 때, 육민이 갑자기 잠꼬대를 했다.“기역, 니은, 디긋…”소이연은 마음이 쓰라렸다.그녀는 자신이 아이를 지나치게 몰아세웠나 의심이 들었다.그저 민이가 반급 친구들이나 선생님한테 비웃음 당하지 않았으면 해서…민이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줄은 생각도 못 했어.그녀는 갑자기 육현경이 한 말이 떠올라 미안한 마음에 다시 허리를 굽혀 육민한테 뽀뽀를 했다.내일은 꼭 인내심 있게 가르쳐야지.소이연은 육민한테 이불을 잘 덮어주고는 천천히 방을 나섰다.육현경은 여전히 거실의 테이블에 앉아 업무를 보고 있었다.방에서 나오는 그녀한테 물었다.“민이 자?”“응.”소이연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상의하고 싶은 게 있는데.”“말해봐.”“민이 며칠 동안 우리 집에서 재우는 건 어떨까 싶어서. 내가 매일 등하교도 같이 하고 저녁에 한글도 배워주려고. 다 배우면 다시 데려올게.”“당신이 매일 등하교를 해준다고? 내가 알기로는 8시 반에 출근하고 민이는 아침 9시에 등교하는데? 민이는 4시 10분에 하교하니까 그때 퇴근하려나? 난 아저씨가 민이를 케어하는 게 더 마음 놓여.”육현경이 솔직하게 말하자 소이연은 머뭇거렸다.요즘 입찰에 관한 업무가 늘어났고 회의도 따라서 많아졌기에 내일은 저녁 6시까지 스케줄이 꽉 차있었다.“당신이 불편하다면 내가 매일 민이를 너의 집에 데려다주고 다시 데려와도 돼.”“그럴 필요 없어.”육현경의 제의를 소이연은 단칼에 거절했다.그러면 민이가 휴식할 시간

  • 맙소사! 보스의 아들을 줍다니   제282화

    소이연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다.뒤도 돌아보지 않는 그녀를 쳐다보던 육현경은 미소를 지었다.오만한 공주 같네.그 뒤로 소이연은 며칠 동안 육현경의 집을 드나들었다.두 번째 날은 일부러 저녁을 먹고 갔는데 육민은 소이연과 함께 저녁을 먹고 싶다고 고집을 부렸다.그녀가 거절하자 육민은 불쌍한 표정을 짓고 물었다.“엄마는 저랑 밥 먹기 싫어요?”육민의 표정에 넘어간 그녀는 그 뒤로 며칠 연속 그 집에서 함께 밥을 먹었다.습관 되면 괜찮겠지.“엄마, 선생님께서 금요일에 기중 성적에 대해서 보고할 것이 있다면서 학부모회를 한다는데요. 운동회도 같이 진행되는데 오실 수 있어요? 제가 단거리 달리기, 수영, 높이 뛰기 그리고 릴레이 경주에도 참가하거든요.”과외를 받던 육민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금요일이라면 아직도 세날이나 있으니 괜찮겠다.소이연은 기대로 가득 찬 육민의 두 눈을 보고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알겠어.”“엄마, 사랑해요.”육민은 날듯이 기뻤지만 이내 입을 삐죽 내밀었다.“그런데 기중시험 성적표가 나오는데 제가 국어에서 틀리게 답변하면 A를 받지 못해요.”“괜찮아. 아직 두 날 남았으니 같이 노력해 보자.”“네!”육민은 고개를 끄덕였다.과외하는 내내 소이연은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육민을 재우고 나온 소이연은 막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육현경은 여전히 거실에 앉아있었다.아니, 왜 편안한 서재를 내버려 두고 딱딱한 걸상에 앉아있는 거지?거기가 편한 건지… 도통 알 수 없는 인간이야.육현경이 먼저 물었다.“오늘은 어때?”“똑같지 뭐.”육현경은 미소를 지었다.그는 한숨을 푹푹 내쉬면서 나오는 소이연의 모습이 너무나도 귀여웠다.“웃음이 나와?”소이연은 따지고 들었다.“아, 내가 울상이면 좀 못생겼거든.”“……”육현경은 또 야식을 들고나왔다.매일 새로운 메뉴였다.오늘 저녁에는 홍탕 초콜릿이었는데 말랑말랑한 것이 식욕을 돋우었다.그런데 소이연은 육현경을 노려보았다.매일 저녁마다

  • 맙소사! 보스의 아들을 줍다니   제283화

    소이연은 잠시 멍해졌다.곧이어 그녀는 화를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그걸 왜 이제야 얘기해!”그녀는 정말 스스로 말하면서도 점점 두려웠었다.이 사람은 놀리는 게 그렇게 재밌는 걸까?“말할 기회도 안 줬잖아.” 육현경이 직설적으로 말했다.“......” 소이연은 몹시 화가 났다.그럼 방금 나를 칭찬한 말들도 다 헛소리였던 건가?!소이연이 육현경과 말싸움을 하는 것은 아주 보기 드문 일이다.그녀는 디저트를 먹고 난 뒤 돌아왔다.평소와 똑같이 육현경이 차를 몰고 소이연 뒤를 따라가 그녀를 바래다주었다.그리고 이틀 뒤.소이연은 다시 육민의 방에서 글을 가르치고 있었다.밖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지만, 방음이 너무 잘 되는 탓에 잘못 들은 줄 알았다.“ㄴ, ㅏ, 나.” 소이연은 참을성 있게 가르치고 있었다.육민의 재능을 알게 된 뒤, 그녀는 평정심을 되찾았다.그녀는 돌아가 자료를 찾아봤다.천재는 고집이 센 편이고, 사실상 특정 분야에서는 100점 만점에 120점까지도 할 수 있지만, 특정 분야에서는 0점도 못 받을 정도이다.육민의 약점은 언어 능력이었다.“ㄴ, ㅏ, 나.” 육민은 따라 읽으면서 또 갑자기 새로운 글자도 만들어 냈다. “ㄱ, ㅏ, 가.”소이연은 감동했다.다시 확인하려고 다급하게 물었다. “민아, 방금 ‘ㄱ, ㅏ’가 뭐라고?”“가.” 육민이 재빨리 대답했다.“’ㅂ, ㅏ, ㅇ’은 뭐라고?” 소이연은 긴장하며 물었다.“방.”“’ㅇ, ㅜ, ㅣ’는?”“위.”“’ㄲ, ㅗ, ㅊ’은?”“꽃.”소이연은 너무 감격스러웠다.그녀는 일부러 조금 어려운 글자를 골라서 물었는데 전부 맞췄다.우연이 아니라 정말 할 수 있게 된 것이다.소이연은 육민의 얼굴을 끌어안고 뽀뽀를 마구 퍼부었다. 그 성취감은 마치 그녀가 몇 억짜리 계약을 따낸 것 못지않았다.“엄마, 나 잘하는 거예요?” 육민은 소이연이 기뻐하자, 자신도 신이 났다.“맞아. 우리 아들 너무 잘하네.” 소이연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엄마 아빠한테 가서

  • 맙소사! 보스의 아들을 줍다니   제284화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심아윤이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소이연이 보였다. 그녀는 조금의 불쾌함이나 분노도 없었으며 심지어는 즐거워 보였다. “이연 씨도 여기 계셨네요.”심아윤의 호의에 소이연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 지 몰랐다.심씨 가문 배경에 의하면 심아윤이 육현경과 그녀의 관계를 모를 리 없었다. 그녀는 이 사실을 확신하고 있었고 육민이 그녀의 아들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그녀는 심아윤이 정말 육현경을 좋아하지 않아서 그녀의 존재도 신경 쓰지 않는 것인지,아니면 정말 다른 여자들이 자신에게서 육현경을 빼앗아 갈 수 없다는 자신감인지,그것도 아니면 이 모든 것이 가식이고 단지 육현경 앞에서 보여주기 위함인 건지 알 수 없었다.그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육현경과 심아윤의 정혼 기간 동안 그녀의 존재는 적절하지 않다.그녀는 그렇게 쿨하지 않아서 심아윤처럼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행동할 수 없었다.소이연은 담담하게 말했다. “민이 한글 좀 부족하니까 신경 좀 많이 써 주세요.”“저번에 현경이가 민이 한글을 떼지 못해서 과외 선생님 구한다고 하던데, 이연 씨가 선생님이셨어요?” 심아윤은 놀란 듯 말했지만, 조금의 적의도 느껴지지 않았다.“아니요. 선생님도 민이 포기하고 도망가셨어요. 제가 올 수밖에 없었죠.”“민이 성격 엄청 좋은데 그런 짓도 하다니, 우리 아들 성깔 있네.” 심아윤이 시원시원하게 칭찬을 늘어놓았다. 정말 별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심아윤의 무해함과 소나은의 순진함은 완전히 달랐다.소나은은 초라하고 연약하고 항상 양보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하는 사람이었다면, 심아윤은 털털하고 밝고 자신감 넘치는 사람처럼 보였다.여자들 사이에서는 심아윤의 성격이 더욱 호감 가는 성격이었다.남자들 사이에서는 사람마다 달랐다.“매일 저녁에 이연 씨가 직접 오셔서 민이 과외 해 주시느라 정말 고생 많으시네요.” 심아윤이 감사 인사를 했지만 사실상 주도권 선포였다.소이연은 단번에 알아챘다.반박하지 않았다.반박할 수도 없었다.

  • 맙소사! 보스의 아들을 줍다니   제285화

    육현경은 입술을 만지며 여전히 돌아보지 않았다.심아윤은 육현경의 등에 대고 해명했다.“할아버님께서 보내셨어. 장안시에 안 온 지 너무 오래됐다고, 보고 싶으시다고 하셔서 온 거야.원래 육씨 저택으로 바로 가려고 했는데, 할아버님께서 꼭 너한테 가보라고 하셔서 거절할 수 없으니까 온 거야. 미리 알았으면 전화라도 하고 올 걸 그랬다. 이렇게 난처하게 만들어서 정말 미안해.”육현경의 목젖이 움직였다.그는 뒤를 돌아 심아윤을 바라보았다. 미안해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그는 화도, 질책도, 위로도 없이 담담히 말했다.“호텔까지 바래다줄게.”심아윤은 가슴이 시렸다.아직도 못 자게 하는 건가?외국에 있을 때, 그녀가 그의 집에 아무리 늦은 시간까지 있고, 집에 빈방이 아무리 많더라도 그는 그녀를 바래다주었다.그는 돌아와서도 여전히 선을 그었다.예전에는 육현경의 성격이 그를 비인간적으로 만든다고 생각했지만, 이제야 깊이 깨달았다. 그냥 사랑하지 않는 것뿐이었다.하지만 그녀는 멍청하게 얌전히 그가 스스로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외국에서 그들이 같이 지낸 몇 년 동안, 그녀는 자신의 고결함을 버리고 주도적으로 행동했어야 했다.소이연에게 빈틈을 주다니 정말 후회막급이다.심아윤은 육현경을 따라 그의 집을 나섰다.그의 차 안.그는 여전히 침묵했다.사실 그녀는 정혼에 대한 육현경의 거부감과 분노를 모두 느낄 수 있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화도 한 번 내지 않았고 아무런 이유조차 묻지 않았다.그녀가 어떻게 된 일인지 몰랐다고 말해 어쩔 수 없었을 때도, 육현경은 아무런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고 그녀를 시종일관 냉담하게 대했다.“현경아.” 심아윤이 먼저 입을 열었다.“응.” 육현경은 짧게 대답하며 고개도 돌리지 않고 창밖만 바라보았다.“내일 민이 학교에서 가을 운동회 한다던데.”“응.”“할아버님이 너랑 같이 다녀오라셔. 거절하고 싶었는데, 할아버님께서......”“가자.” 육현경은 단번에 알겠다고 했다.심아윤의 입꼬리는 참지 못하고 올라갔다

  • 맙소사! 보스의 아들을 줍다니   제286화

    교장 선생님이 벌써 이번 학기 학생들의 교육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소이연이 도착했을 때 현장은 이미 학부모들로 가득했다. 그녀는 뒤쪽 구석진 곳 외에는 선택권이 없었다.그리고 진지하게 선생님께서 설명하시는 학교의 이념과 학생들의 발전해 대해 듣고 있었다.곧이어 학생들의 상장 수여식이 있었다.소이연은 육민과 한 무리의 아이들이 무대 위로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그는 무대 아래쪽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아마 그녀를 찾고 있을 것이다.소이연은 손을 흔들었다. 육민은 한눈에 그녀를 알아보고 금세 기쁜 표정으로 바뀌었다.맨 앞줄에 있던 심아윤은 웃으며 농담을 했다. “평소에는 민이가 이렇게 웃는 걸 본 적이 없는데 무대에 올라가니까 아주 인물이 사네.”육현경은 대답하지 않았다.그는 육민이 왜 갑자기 흥분한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상장 수여식이 끝난 뒤 선생님이 먼저 학생들을 데리고 운동장으로 향했다.이어서 학부모들이 서서히 자리를 떴다.운동장은 아주 큼지막했지만 소이연은 여전히 구석진 곳에 있었다.그 순간, 그녀는 앞쪽에 앉아있던 육현경과 심아윤을 발견했다. 심아윤은 쉴 새 없이 옆에 있는 육현경과 웃으며 떠들어댔다.그래서, 심아윤이 특별히 육민의 학교 행사에 참여한 것이라고?!정말...... 천성이 새엄마다.운동회가 시작되고 각 프로그램이 차례로 진행되었다.육민은 높이뛰기와 50m 달리기에 참여해서 모두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소이연은 침착한 편이라면 심아윤은 아주 열정적이었다. 육민이 참여하면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며 응원을 했다.경기에 나가던 육민을 보니 불편한 듯 얼굴을 붉혔다.다음 경기는 수영이라 일부 학부모들이 다른 장소로 이동했다.그때 심아윤은 소이연을 보았다. 그녀는 또 한번 놀라며 말했다. “이연 씨도 오셨어요? 어디 계셨어요? 어떻게 한번을 못 봤지?”“늦게 와서 뒤쪽에 있었어요.” 소이연이 대답했다.“앞으로 좀 오시지 그러셨어요. 그럼 더 잘 보였을 텐데. 맞다, 방금 민이 경기 보셨어요? 너무 잘했

Latest chapter

  • 맙소사! 보스의 아들을 줍다니   제1514화

    그리고는 간호사 하나가 걸어 나오며 말했다.“소이연 씨 보호자 계세요?”“네!”“아기 나왔습니다. 3.15킬로...”“산모는요?”간호사의 말에 우렁차게 대답한 육현경은 아이는 신경도 안 쓰고 소이연의 상태부터 물었다.“산모분은 아주 건강하십니다. 지금 선생님께서 상처 처리하고 계시니까 곧 나오실 겁니다.”“아빠 맞으시죠? 아이 한 번 안아보실래요?”그제야 안도한 육현경이 아이를 안아 들자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오며 한마디씩 하기 시작했다.“어머, 어쩜 이렇게 하얗지? 내가 본 아기들 중에 제일 예쁜 것 같아.”“지금 네 아들은 못생겼다는 소리야?”“솔직히 말하면 좀 못생기긴 했어.”하도경의 시비에 예수진이 너무 솔직히 답하자 계지원이 그게 사실인 걸 알면서도 자기 아들 외모를 저렇게 평가하는 게 썩 기분 좋지는 않았는지 헛기침을 해댔다.“나도 안아볼래.”예수진의 말에 육현경은 바로 아이를 넘겨주었다.“우리 공주님, 너무 귀엽다. 왜 하필 혈연관계인 거야!”피가 섞인 남매라서 자기 아들과 맺어줄 수 없다고 안타까워하는 예수진에 하지수도 궁금해서 다가가 보았다.“나도 봐봐.”가까이에서 보니 정말 떡잎부터 남다른 예쁜 아이였다.장차 아주 예쁘게 클 것 같아서 하지수는 아이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물었다.“딸이야?”“딱 보면 딸이지, 이 얼굴이 남자일 리는 없잖아.”간호사가 대답하려던 그때 분만실 분이 또 한 번 열리고 소이연이 휠체어를 타고 나오자 육현경은 다급히 달려가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고생했어.”“이제 돌아가서 쉬자. 우리 이제 아이는 그만 가지자.”소이연이 고생하는 게 마음 아팠던 육현경은 잔뜩 굳은 얼굴로 간호사에게서 휠체어를 받아 병실로 향했다.친구들도 그런 육현경을 따라 병실로 향하고 있었는데 성큼성큼 걷던 하지수가 휑한 옆자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송문수가 아직도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왜 움직이지 않는지 의아해진 하지수가 그를 바라보자 송문수가 그녀와 시선을 맞추며 입꼬리를 올려 보였다.

  • 맙소사! 보스의 아들을 줍다니   제1513화

    “뭐라고요?!”놀란 예수진이 언성을 높이자 육현경도 표정을 굳히고 소이연을 바라보았다.늘 소리소문없이 일을 처리하던 육현경은 이번에도 다들 벙쪄있는 틈을 타 소이연을 안고 밖으로 나갔다.예수진도 그 뒤를 따라 나가려 하자 계지원이 그녀를 잡아 세웠다.“수진아, 오늘 이 자리 우리가 만든 거야.”“그래도 갈 거야. 당신은 엄마랑 현경 오빠 어머님한테 손님들 좀 부탁한다고 전해줘. 난 언니한테 가봐야겠어.”예수진을 말릴 수 없다고 생각한 계지원도 잠시 고민하다가 그녀의 뒤를 따라 나가자 상황이 심상치 않게 흘러감을 눈치챈 송문수와 하지수도 아쉬운 듯 서로에게서 떨어졌다.“키스 다 했으면 빨리 병원 가. 이연 씨 출산한대.”출산이라는 말에 하지수도 다급히 뒤 따르려 하자 송문수가 그녀를 잡으며 말했다.“천천히 가. 그래도 안 늦어.”그렇게 몇 분도 안 된 사이에 많은 사람들이 파티장을 빠져나갔다.예수진이 둘째를 위해 연 백일잔치는 사라진 엄마 아빠 때문에 아이 혼자 남겨진 채로 끝이 나버렸다.그들이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양수가 터진 소이연이 분만실로 옮겨진 뒤였다.상황이 많이 급박한지 늘 침착함을 유지하던 육현경조차도 많이 초조해 보였다.아까부터 입구에서 서성이는 육현경을 보다 못한 예수진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오빠, 가만히 좀 있어 봐. 지금 다들 긴장하고 있는데 오빠 때문에 더 진정할 수가 없잖아.”직설적인 그녀의 말에 육현경이 예수진을 보자 계지원이 다급히 나서며 분위기를 풀었다.“아무 일 없을 테니까 걱정 마. 수진이도 그때 오래 걸렸잖아. 낳으면 된 거지 뭐.”말은 그렇게 해도 사실 계지원도 육현경 못지않게 초조해했었다.당장이라도 분만실로 뛰어 들어가 예수진 대신 아이를 낳아주고 싶어 했었다.그런데 그때, 분만실에서 소이연의 고통스러운 비명소리가 흘러나왔다.주먹을 쥐고 있던 육현경의 손이 점점 하얗게 질려감에 따라 지켜보던 친구들의 긴장감도 고조되고 있었다.다들 긴장하고 있는 와중에 송문수가 갑자기 하지수의 손

  • 맙소사! 보스의 아들을 줍다니   제1512화

    “임신 때문에 살쪄서 그런 거야. 문수 씨 탓 아니야.”하지수가 당황한 송문수를 달래주자 그는 벙찐 표정으로 물었다.“그럼 어떡하지?”“살 빼고 나서 다시 끼지 뭐.”“그래.”하지수에게 반지를 직접 끼워주는 건 송문수가 꿈에서도 그리던 장면이었는데 예상치 못한 이유로 못하게 되는 그는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하지수가 자신과 결혼만 해준다면 앞으로의 날은 길 것이기에 송문수는 그만 몸을 일으켰다.그런데 그가 일어서자마자 사람들이 소리높이 외치기 시작했다.“키스해! 키스해!”갑작스러운 호응에 하지수의 얼굴이 빨개지자 송문수는 그녀가 난처해지지 않게 당분간은 자신의 욕구를 억누르기로 했다.사실 그날 밤, 하지수와의 잠자리는 송문수에게 많은 미련을 남겨주었다.잠을 자다가도 쉴 새 없이 흥분해서 밤에 속옷을 몇 번이나 씻기도 했었다.그렇게 그녀를 원했어도 자리가 자리인 만큼 송문수는 하지수의 손을 잡고 내려가려 했는데 그 순간, 하지수의 입술이 송문수에게 닿아왔다.그녀가 먼저 한 입맞춤은 송문수의 심장을 뒤흔들기 충분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입맞춤을 당한 송문수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하고 있는데 그때 하도경의 장난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뽀뽀 한 번에 바보 된 거야?”“...”그 말에 욱한 송문수였지만 여자친구도 없는 친구를 위해 한번은 참아주기로 했다.“신경 쓰지 마. 우리 내려갈...”그런데 그때, 하지수가 또다시 입을 맞춰왔다.하지만 이번에는 아까처럼 닿았다가 금방 떨어지는 입맞춤이 아니라 오래도록 이어지는 키스였다.작은 그녀의 혀가 불규칙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자 송문수의 몸은 그대로 굳어버렸고 그의 심장박동 또한 정직하게 빨라졌다.정말 자신을 죽이려 드는 하지수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송문수는 하지수의 뒤통수를 손으로 잡고 키스를 이어가기 시작했다.임신을 해도 작기만 한 체구의 하지수는 금방 송문수에게 주동권을 뺏겨버렸다.두 사람의 행복을 빌어주기라도 하듯 무대 위로 장미꽃잎이 흩날리고

  • 맙소사! 보스의 아들을 줍다니   제1511화

    다들 숨을 죽이고 송문수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하지수의 눈엔 눈물이 가득해서 눈을 조금만 깜빡여도 쏟아질 정도였지만 그녀 역시 온 힘을 다해 참아내고 있었다.송문수는 그 정적 속에서 입술을 말아 물며 많은 고민을 거쳐 마침내 입을 열었다.“결혼하자.”그 대답이 들리기까지의 몇 분이 하객들에게는 한 세기만큼 길게 느껴졌다.송문수의 말이 끝나자마자 하지수도 기쁨의 눈물을 왈칵 쏟아냈고 송문수는 그런 그녀를 향해 한 번 더 소리높이 외쳤다.“하지수, 결혼하자. 너랑 결혼하는 게 내 평생의 소원이었어. 나중에 후회하더라도, 네가 지금 충동적으로 결정한 거라 해도 넌 이제 평생 내 여자야. 다시는 너 다른 남자한테 안 보내. 아주 박력 넘치는 남자가 될 거라고.”“난 후회 안 해.”송문수와의 결혼을 하지수가 후회할 리는 없었다.그때 예수진이 무대 위로 올라가자 송문수는 그제야 이 자리의 주인공이 예수진이었다는 걸 깨닫고는 다급히 하지수를 데리고 내려가려 했다.그런데 그때 예수진이 빨간 보석함 하나를 송문수에게 보여주었다.“이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는 알지?”그 안에 들어있는 건 송문수가 하지수를 위해 준비한 프러포즈 반지였다.익숙한 상자가 등장하는 순간부터 그 사실을 기억해낸 송문수였다.송문수는 하지수에게 가장 특별한 반지를 만들어주기 위해 세계적인 디자이너까지 초빙하며 큰 공을 들였었다.“이제 네가 가져.”예수진이 그것을 송문수에게 건네주자 그는 떨리는 손으로 받아들고는 천천히 보석함을 열어보았다.반짝이는 5캐럿의 다이아몬드가 마침내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게 된 것이다.눈이 멀어버릴 정도로 반짝이는 반지를 집어 든 송문수는 하지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자신이 상상해왔던 화면이 눈 앞에 펼쳐지자 하지수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는데 송문수 역시 눈가가 촉촉해진 채로 목멘 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지수야.”송문수의 부름에 하지수는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예전에는 내가 진짜 나쁜 놈이었어. 맹세할게, 앞으로는 진짜 좋

  • 맙소사! 보스의 아들을 줍다니   제1510화

    그런데 하지수가 이런 마음을 전하기도 전에 송문수가 그 먼 타지로 떠나버린 것이다.그래도, 송문수가 정말 자신을 싫어한다 해도, 정말 자신과 헤어지고 싶어 한다 해도 송승우와 함께하지 않겠다는 하지수의 마음은 한 번도 변한 적이 없었다.물론 자신을 쉽게 포기하는 송문수에 잠깐 실망도 했었다.그러면서 송문수에게 자신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예수진과 소이연이 저 영상을 보여주지 않았더라면, 그들이 송문수가 준비해온 모든 것들을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하지수는 영원히 송문수가 오래도록 자신을 좋아했다는 사실을 몰랐을 것이다.눈에 눈물을 가득 매단 하지수를 보던 송문수는 가슴이 아파와 손을 뻗으려 했지만 다시 움츠러들었다.지금 송문수는 무슨 결정을 내려야 할 지 몰랐다.혹여나 자신의 선택이 하지수에게 부담으로 다가갈까 봐, 그녀의 모습을 보며 송문수는 괴로워하고 있었다.너무 괴로워서 생긴 착각인지, 송문수는 하지수도 자신을 사랑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하지만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면 그건 바로 하지수 배 속의 아이였다.물론 송승우의 아이라 해도 송문수는 상관없었지만 하지수도 개의치 않을 수 있을까가 그의 의문이었다.“나 너랑 결혼하고 싶어. 네가 나한테 잘해줘서가 아니고, 네가 오래전부터 날 좋아해서도 아니고, 날 위해 많은 걸 준비해줘서도 아니라 그냥 내가 좋아서. 그래서 결혼하고 싶어. 다른 거랑은 아무 상관없어.”하지수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송문수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네가 좋아하는 건 송승우잖아.”“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 난 송승우 안 좋아해. 아주 오래전부터 이미 끝난 사이였어. 말했잖아, 그때 좋아한다고 느꼈던 감정은 그냥 습관 같은 거였다고. 내가 좋아하는 건 너야. 미안해서가 아니라 그냥 네가 좋아!”매번 좋아한다고 할 때마다 믿질 못하는 송문수 때문에 하지수는 화가 치밀어올랐다.물론 송문수가 자신을 믿지 못해서 화가 난 게 아니라 송문수가 본인한테 자신감이 너무 없는 것 같아

  • 맙소사! 보스의 아들을 줍다니   제1509화

    파티장 안의 모든 불빛은 송문수와 하지수에게 집중되어 있었다.무대 중앙에 선 하지수는 송문수를 바라보고 있었고 송문수도 사람들 틈에서 하지수를 바라보고 있었다.지금 하지수는 송문수가 그냥 가버릴까 봐, 그게 제일 무서웠다.하지수는 자신이 이런 용기를 내는 것도 마지막일 것 같았다.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감정을 마주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조용한 그 공간에서 송문수가 갑자기 무대로 향해 걸어갔다.한발 한발, 무거운 발걸음이었지만 그 발걸음이 향하는 곳은 확실했다.그래서 하지수의 심장박동도 빨라졌다.더 이상 컨트롤이 되지 않을 정도로.모두들 숨죽인 채 송문수와 하지수를 보고 있었지만 그중에서 가장 마음을 졸이는 건 예수진과 소이연이었다.겁이 많은 송문수가 도망이라도 갈까 봐 걱정하고 있었는데 다행히도 송문수가 책임감은 있어서 하지수를 혼자 남겨두진 않았다.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송문수가 하지수에게로 다가섰고 두 사람은 말없이 서로를 응시했다.송문수의 눈은 빛나고 있었고 울대는 잔잔히 떨리고 있었다.심경에 크나큰 변화가 일었지만 애써 본인을 진정시키려 하는 게 눈에 훤히 보였다.“지수야, 이건 마음에 담아두지 마.”그러다 갑자기 내뱉은 말에 하지수는 송문수를 빤히 쳐다보았다.“그때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이런 걸 찍었는지도 모르겠어.”송문수는 이번에도 장난인 척 너스레를 떨며 상황을 넘기려 했다.“너도 알잖아 나 이상한 거. 충동적으로 무슨 짓이든 하는 사람이잖아. 그러니까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진 마.”말을 마친 송문수가 직원을 찾아가 영상을 지우려 하자 하지수가 입을 열었다.“난 이미 진지하게 받아들였어.”그 말에 발이 잡힌 송문수는 빨라지는 심장박동을 애써 늦추며 말했다.“미안해.”송문수의 갈등과 무력함을 보아낸 하지수의 눈에도 어느새 눈물이 차올랐다.“너 헷갈리게 해서 미안해. 만약 네가 신경 쓰인다면... 앞으로 네 앞에 안 나타날게. 너도 나 같은 사람 때문에 힘들어하지 마. 그럴 가치 없

  • 맙소사! 보스의 아들을 줍다니   제1508화

    오늘 온 손님들은 하나같이 외향형인지 호응도 아주 잘해줬다.“네! 궁금해요!”“한 여자를 위해선데요.”“누구예요?”“바로 하지수입니다.”영상 속의 자신이 한 자 한 자 내뱉는 말들을 듣던 송문수는 그제야 이게 자신의 프러포즈 영상이었음을 깨달았다.처음에는 이게 어떻게 여기 있는지 당황스러웠지만 항상 일 처리에 미흡한 예수진이 이번에도 실수한 거라 생각해 송문수는 무대 위로 올라가 영상을 멈추려 했다.그런데 그가 발을 내디디자마자 육현경과 하도경이 그 앞을 막아섰다.그리고 영상은 계속해서 재생되었다.“하지수는 제 아내입니다. 결혼한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한 번도 제대로 사랑해준 적이 없었죠. 사실 저는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라 사랑할 용기가 없었던 겁니다. 제가 너무 비겁해서 그 사람 앞에만 서면 저 자신이 쓸모없어지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늘 유치한 방법으로 그 사람에게 상처만 줬어요.”영상 속 송문수의 얼굴에는 미안함이 가득했다.“미안해 지수야. 나 지금 엄청 후회하고 있어. 괜한 질투로 널 몇 년 간 힘들게 한 걸. 매일 밤 널 안고 자고 싶었는데도 난 자존심 때문에 그런 말 한마디 못했어. 그래서 내 인생이 좀 덜 재밌었던 것 같아. 너라는 복지가 부족했잖아.”감동하며 영상을 보고 있던 사람들은 마지막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참 울지도 웃지도 못하게 하는 고백 영상이었다.“사랑해, 지수야.”뒤이어 마침내 사랑한다는 말이 나왔는데 그때 송문수의 눈은 확신이 가득 차 있었다.“널 처음 본 순간부터 사랑했었어. 그런데 네가 좋아하는 게 내가 아니니까 점점 비참해지더라. 그래서 네가 싫어하는 방법으로 네 시선을 끌려고 했어. 그때만 생각하면 아무리 나라도 너무 멍청한 것 같더라.”“하지만 이젠 아니야.”“내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은 못 돼도 세상에서 너한테 가장 잘해주는 남자는 될 수 있어.”“더 이상 너한테 성질도 안 내고 부려먹지도 않을게. 괜한 질투 때문에 너 상처받게 하지도 않아. 우리 집은 이제 너한테 맡길 거야. 돈도

  • 맙소사! 보스의 아들을 줍다니   제1507화

    파티장에 들어와 보니 계지원과 예수진이 아들딸과 함께 와준 손님들에게 인사를 해주고 있었다.인사를 마친 예수진은 흥분된 목소리로 하지수를 불렀다.“이번에는 제 가장 친한 친구이자 우리 아들의 영원한 이모일 하지수 씨를 모셔보겠습니다.”파티장 한구석에 선 송문수는 무대 위로 올라가는 하지수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아까는 제대로 볼 엄두가 안 나서 애써 무시하려 했던 그녀의 배가 꽤나 불러온 것 같았다.옷을 입어도 다 가려지지 않는 게 이미 임신 몇 개월은 된 것 같았다.정말 자신은 안중에도 없었는지 이렇게 빨리 임신한 하지수가 송문수는 조금은 원망스러웠다.이어서 마이크를 잡은 하지수는 누군가를 찾는 듯 무대 아래를 훑어보았다.한참이 지나 자신에게로 향하는 그녀의 시선에 다급히 눈을 피하던 송문수가 다시 고개를 돌렸을 때 하지수의 시선은 이미 사라져있었다.그에 송문수는 그녀가 찾던 건 아마 송승우일 거라고 짐작하고 있었다.그런데 끝까지 모습을 비추지 않는 송승우 때문에 그저 시선을 거둔 것 같았다.“우선은 수진이 아들 이모가 될 수 있어서 너무 영광스럽고요.”“수진이가 제 배 속에 있는 아이가 딸이면 꼭 사돈을 맺자고 그러더라고요.”“저도 우리 조카 귀여워서 너무 사랑하거든요.”“하지만 사돈은 저 혼자 맺는 게 아니잖아요. 애 아빠 입장도 있고 하니까요.”그러자 예수진의 격앙된 목소리가 또 한 번 들려왔다.“그럼 얼른 애 아빠부터 불러서 오늘 사돈 한번 맺자!”“아이 아빠는...”그녀의 말에 담담히 웃던 하지수는 갑자기 말을 멈췄다.마른 침을 삼키며 그 모습을 보던 송문수는 정말 송승우를 한 대 때려주고 싶었다.가장 사랑하는 여자를 내어줬는데도 책임을 다하지 않고 이런 날에 하지수를 혼자 이곳에 보내고 또 혼자 무대 위에 올리는 게 어떻게 남편이라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짓인가 싶었다.“수진아, 내가 무대 좀 써도 돼?”“당연하지, 오늘 이 자리는 널 위한 거야.”“아, 아니다. 내 미래의 며느리를 위한 거지.”예수진의 한마디에

  • 맙소사! 보스의 아들을 줍다니   제1506화

    하지수의 말을 끝으로 두 사람의 시선이 맞물리자 송문수가 황급히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당연하지.”“진짜야?”“내가 왜 널 속이겠어?”“그런데 왜 안 데려왔어?”“이번엔 시간이 별로 없어서 괜히 고생만 할까 봐 안 데려왔어.”“나중에 기회 되면 데리고 올 거야.”“예뻐?”“내가 안 예쁜 여자 사귀는 거 봤어? 외국 여자들은 몸매도 좋아. 원래 S라인이 내 취향이잖아.”“사진 있어?”하지만 저 질문에는 송문수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그래서 몇 초 동안 침묵을 유지하다가 다시 능청스레 대답했다.“있지.”“내가 봐도 돼?”“왜? 뭐 심사라도 해주게?”“아니, 그냥 궁금해서. 네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여자는 어떻게 생겼는지.”“보면 너 상처받을까 봐 안 보여줄 거야.”“괜찮아.”송문수도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며 거절하려 했지만 하지수는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다음에 직접 데려와서 보여줄게.”“지금 보고 싶어.”“카메라는 잘 안 받아서 실물보다 별로야.”“왜 안 보여주는 거야? 설마 없는 거야?”“설마 내가 너 못 잊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걱정 마. 난 원래 감정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이거든. 절대 너한테 매달리지 않을 거야.”송문수가 확신에 찬 말을 하자 하지수는 씁쓸하게 웃어 보였다.“매달린 적이 있긴 해?”그런 하지수의 모습을 보니 또 가슴이 아파왔지만 송문수는 꾹 참기로 했다.송승우의 아이를 가진 하지수는 이미 자신에게서 너무 멀어져 있으니까.“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하지수는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멀어져가는 송문수의 뒷모습을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한편 화장실로 들어온 송문수는 물을 틀어놓고 손을 몇 번이니 씻어댔다.더 이상 손에 감각이 없을 정도로 아까부터 한 동작만 반복하고 있었다.“더 씻으면 손 터져.”그 모습을 본 하도경이 직접 물을 꺼주자 송문수는 넋 나간 사람처럼 고개를 끄덕이고는 하도경이 건넨 휴지를 받아 손을 닦아냈다.“고마워.”“이게 진짜 뭐 하는 짓이냐. 그렇게 좋으면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