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이연은 퇴근하고 바로 육현경의 집으로 향했다.집에 들어서자 식탁에 음식들이 가득 차려져 있었다.그제야 지금 저녁 시간이고 밥을 먹고 오지 않았다는 것이 생각났다.문씨 아저씨가 소이연을 다정하게 부르며 같이 식사하자고 했다.육민도 그녀의 다리를 껴안고 애교를 부렸다.“엄마, 엄마. 보고 싶었어요. 같이 밥 먹어요. 아저씨가 맛있는 거 엄청 많이 해줬어요.”육민의 애교에 이기지 못하기도 했지만 전에 밥을 제대로 먹지 않아 쓰러지는 바람에 문서인에게 기회를 제공한 것을 생각하면 더는 이런 저급한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마음을 먹었다.지금 문서인은 이 세상에 없지만 육현경이 아직 살아 있다.육현경은 문서인보다 더 위험한 인물이다.소이연이 식탁에 앉았다.육현경은 오히려 그녀가 들어와서부터 한마디도 하지 않고 고상한 자세로 식탁에 앉아 있었다.소이연은 상이 부러질 정도로 차려 놓은 음식들을 보았다.대부분 그녀가 좋아하는 반찬들이었다.하지만 그의 입맛도 그녀와 비슷해서 별로 놀랄 것도 없었다.소이연이 젓가락을 들고 먹기 시작했다.식사하는 내내 육민이 깔깔 웃는 소리만 들렸다.소이연이 집에 온 것이 얼마나 기쁜지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육민이 계속 그녀에게 반찬을 짚어주면서 연신 맛있냐고 물었다.그녀가 젓가락을 놓으려 할 때마다 더 먹으라고 요구했다.그러면서 밥을 잘 먹고 건강해야 여동생을 낳아줄 수 있다고 말했다.소이연은 그 말에 하마터면 사레에 걸릴 뻔했다.평생 결혼할 생각이 없었다.아들이 생긴 이후로 더더욱 생각이 없었으니 둘째를 낳을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았다.“엄마는 민이 하나면 충분해.”소이연이 육민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육민이 무슨 말을 하려고 입을 벌였을 때 그녀가 먼저 말했다.“엄마 이젠 배불러. 더 먹으면 속이 불편해. 민이는 한창 클 나이니까 많이 먹어.”“알았어요.”육민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진지하게 말했다.“내가 어른이 되어서 아빠처럼 키가 크게 되면 엄마를 보호할 수 있어요. 그때면
소이연은 혼자 있고 싶었다.여태까지 육민이 무엇을 하든 잘못을 하든 괜찮다고 여기면서 여전히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그런데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한 것 같았다.소이연은 육민의 방에서 나와 심호흡부터 들이마셨다.한참이나 자신을 진정시킨 뒤에 물을 마시러 갔다.저녁 내내 기역만 읽었더니 목이 엄청 말랐다.거실에 나오자 육현경이 테이블에 앞에 앉아 컴퓨터를 보고 있었다.그것도 안경을 쓰고 말이다. 육현경이 안경을 쓴 모습은 처음 본다.겉보기엔 세상 점잖지만 속은 시커먼 놈.그는 업무를 처리하다가 인기척을 느끼고 그녀를 보고 있었다.아마 방금 한 행동과 표정을 다 본 모양이다.소이연은 그가 거실에 있는 줄 몰랐다.업무는 서재에서 보라고!“잘 되고 있어?”육현경이 물었다.왠지 이 상황을 즐기는 것 같았다.아들이 담임 선생님한테 꾸중을 들었는데 그는 여전히 태연했다.“아니.”소이연이 솔직하게 말했다.“내가 도와줄까?”육현경이 물었다.“기역자 알아?”“그게 뭔데?”모르면 찌그러져 있어.소이연이 힐끗 노려봤다.“물은 어디 있어?”“내가 따라줄게.”“어디 있는지만 말해. 내가 알아서 마실게.”소이연이 단호하게 거절했다.하지만 육현경은 이미 주방에 들어가 그녀가 마실 물을 들고 나왔다.따뜻한 물이었다.소이연은 화를 가라앉힐 찬물이 필요했다.“월경이 왔을 땐 따뜻한 물 마셔.”육현경이 진작에 눈치를 챘다.소이연이 입술을 오므렸다.이 인간은 어떻게 모르는 게 없어?“나도 우연히 알았어.”그가 설명을 덧붙였다.뭐야, 독심술도 할 줄 알아?소이연은 물을 마시고 컵을 돌려줬다.“고맙네요.”“좀 쉬어야 되지 않아?”육현경이 물었다.“아니.”소이연이 짧게 대답했다.“그렇게 급할 거 없어. 민이는…”“뭐가 안 급해? 반에서 혼자 못하면 친구들한테 비웃음을 당한다고! 그게 어떤 기분인지 알아? 트라우마가 평생 남아서 앞으로도 영향을 미칠 거라고!”소이연은 매우 격동했다.육현경은 입을 꾹 다물고 아무 말도 하
잘 시간이 되었지만 육민은 끝내 자모에 대해 완벽히 장악하지 못했다.소이연은 육민을 더 몰아세우기 싫었는지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내일 또 공부하자고 했다.육민은 침대에 누워서 입을 삐죽 내밀고는 가지 말라고 하면서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소이연은 거절하지 못하고 육민을 재웠다.육민이 잠든 모습을 본 소이연은 저도 몰래 미소를 지었다.그녀는 머리를 숙여 육민의 이마에 뽀뽀를 해주었다.매번 갈 시간이 되면 아쉬움이 발목을 잡았다.소이연이 일어서서 나가려 할 때, 육민이 갑자기 잠꼬대를 했다.“기역, 니은, 디긋…”소이연은 마음이 쓰라렸다.그녀는 자신이 아이를 지나치게 몰아세웠나 의심이 들었다.그저 민이가 반급 친구들이나 선생님한테 비웃음 당하지 않았으면 해서…민이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줄은 생각도 못 했어.그녀는 갑자기 육현경이 한 말이 떠올라 미안한 마음에 다시 허리를 굽혀 육민한테 뽀뽀를 했다.내일은 꼭 인내심 있게 가르쳐야지.소이연은 육민한테 이불을 잘 덮어주고는 천천히 방을 나섰다.육현경은 여전히 거실의 테이블에 앉아 업무를 보고 있었다.방에서 나오는 그녀한테 물었다.“민이 자?”“응.”소이연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상의하고 싶은 게 있는데.”“말해봐.”“민이 며칠 동안 우리 집에서 재우는 건 어떨까 싶어서. 내가 매일 등하교도 같이 하고 저녁에 한글도 배워주려고. 다 배우면 다시 데려올게.”“당신이 매일 등하교를 해준다고? 내가 알기로는 8시 반에 출근하고 민이는 아침 9시에 등교하는데? 민이는 4시 10분에 하교하니까 그때 퇴근하려나? 난 아저씨가 민이를 케어하는 게 더 마음 놓여.”육현경이 솔직하게 말하자 소이연은 머뭇거렸다.요즘 입찰에 관한 업무가 늘어났고 회의도 따라서 많아졌기에 내일은 저녁 6시까지 스케줄이 꽉 차있었다.“당신이 불편하다면 내가 매일 민이를 너의 집에 데려다주고 다시 데려와도 돼.”“그럴 필요 없어.”육현경의 제의를 소이연은 단칼에 거절했다.그러면 민이가 휴식할 시간
소이연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다.뒤도 돌아보지 않는 그녀를 쳐다보던 육현경은 미소를 지었다.오만한 공주 같네.그 뒤로 소이연은 며칠 동안 육현경의 집을 드나들었다.두 번째 날은 일부러 저녁을 먹고 갔는데 육민은 소이연과 함께 저녁을 먹고 싶다고 고집을 부렸다.그녀가 거절하자 육민은 불쌍한 표정을 짓고 물었다.“엄마는 저랑 밥 먹기 싫어요?”육민의 표정에 넘어간 그녀는 그 뒤로 며칠 연속 그 집에서 함께 밥을 먹었다.습관 되면 괜찮겠지.“엄마, 선생님께서 금요일에 기중 성적에 대해서 보고할 것이 있다면서 학부모회를 한다는데요. 운동회도 같이 진행되는데 오실 수 있어요? 제가 단거리 달리기, 수영, 높이 뛰기 그리고 릴레이 경주에도 참가하거든요.”과외를 받던 육민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금요일이라면 아직도 세날이나 있으니 괜찮겠다.소이연은 기대로 가득 찬 육민의 두 눈을 보고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알겠어.”“엄마, 사랑해요.”육민은 날듯이 기뻤지만 이내 입을 삐죽 내밀었다.“그런데 기중시험 성적표가 나오는데 제가 국어에서 틀리게 답변하면 A를 받지 못해요.”“괜찮아. 아직 두 날 남았으니 같이 노력해 보자.”“네!”육민은 고개를 끄덕였다.과외하는 내내 소이연은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육민을 재우고 나온 소이연은 막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육현경은 여전히 거실에 앉아있었다.아니, 왜 편안한 서재를 내버려 두고 딱딱한 걸상에 앉아있는 거지?거기가 편한 건지… 도통 알 수 없는 인간이야.육현경이 먼저 물었다.“오늘은 어때?”“똑같지 뭐.”육현경은 미소를 지었다.그는 한숨을 푹푹 내쉬면서 나오는 소이연의 모습이 너무나도 귀여웠다.“웃음이 나와?”소이연은 따지고 들었다.“아, 내가 울상이면 좀 못생겼거든.”“……”육현경은 또 야식을 들고나왔다.매일 새로운 메뉴였다.오늘 저녁에는 홍탕 초콜릿이었는데 말랑말랑한 것이 식욕을 돋우었다.그런데 소이연은 육현경을 노려보았다.매일 저녁마다
소이연은 잠시 멍해졌다.곧이어 그녀는 화를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그걸 왜 이제야 얘기해!”그녀는 정말 스스로 말하면서도 점점 두려웠었다.이 사람은 놀리는 게 그렇게 재밌는 걸까?“말할 기회도 안 줬잖아.” 육현경이 직설적으로 말했다.“......” 소이연은 몹시 화가 났다.그럼 방금 나를 칭찬한 말들도 다 헛소리였던 건가?!소이연이 육현경과 말싸움을 하는 것은 아주 보기 드문 일이다.그녀는 디저트를 먹고 난 뒤 돌아왔다.평소와 똑같이 육현경이 차를 몰고 소이연 뒤를 따라가 그녀를 바래다주었다.그리고 이틀 뒤.소이연은 다시 육민의 방에서 글을 가르치고 있었다.밖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지만, 방음이 너무 잘 되는 탓에 잘못 들은 줄 알았다.“ㄴ, ㅏ, 나.” 소이연은 참을성 있게 가르치고 있었다.육민의 재능을 알게 된 뒤, 그녀는 평정심을 되찾았다.그녀는 돌아가 자료를 찾아봤다.천재는 고집이 센 편이고, 사실상 특정 분야에서는 100점 만점에 120점까지도 할 수 있지만, 특정 분야에서는 0점도 못 받을 정도이다.육민의 약점은 언어 능력이었다.“ㄴ, ㅏ, 나.” 육민은 따라 읽으면서 또 갑자기 새로운 글자도 만들어 냈다. “ㄱ, ㅏ, 가.”소이연은 감동했다.다시 확인하려고 다급하게 물었다. “민아, 방금 ‘ㄱ, ㅏ’가 뭐라고?”“가.” 육민이 재빨리 대답했다.“’ㅂ, ㅏ, ㅇ’은 뭐라고?” 소이연은 긴장하며 물었다.“방.”“’ㅇ, ㅜ, ㅣ’는?”“위.”“’ㄲ, ㅗ, ㅊ’은?”“꽃.”소이연은 너무 감격스러웠다.그녀는 일부러 조금 어려운 글자를 골라서 물었는데 전부 맞췄다.우연이 아니라 정말 할 수 있게 된 것이다.소이연은 육민의 얼굴을 끌어안고 뽀뽀를 마구 퍼부었다. 그 성취감은 마치 그녀가 몇 억짜리 계약을 따낸 것 못지않았다.“엄마, 나 잘하는 거예요?” 육민은 소이연이 기뻐하자, 자신도 신이 났다.“맞아. 우리 아들 너무 잘하네.” 소이연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엄마 아빠한테 가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심아윤이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소이연이 보였다. 그녀는 조금의 불쾌함이나 분노도 없었으며 심지어는 즐거워 보였다. “이연 씨도 여기 계셨네요.”심아윤의 호의에 소이연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 지 몰랐다.심씨 가문 배경에 의하면 심아윤이 육현경과 그녀의 관계를 모를 리 없었다. 그녀는 이 사실을 확신하고 있었고 육민이 그녀의 아들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그녀는 심아윤이 정말 육현경을 좋아하지 않아서 그녀의 존재도 신경 쓰지 않는 것인지,아니면 정말 다른 여자들이 자신에게서 육현경을 빼앗아 갈 수 없다는 자신감인지,그것도 아니면 이 모든 것이 가식이고 단지 육현경 앞에서 보여주기 위함인 건지 알 수 없었다.그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육현경과 심아윤의 정혼 기간 동안 그녀의 존재는 적절하지 않다.그녀는 그렇게 쿨하지 않아서 심아윤처럼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행동할 수 없었다.소이연은 담담하게 말했다. “민이 한글 좀 부족하니까 신경 좀 많이 써 주세요.”“저번에 현경이가 민이 한글을 떼지 못해서 과외 선생님 구한다고 하던데, 이연 씨가 선생님이셨어요?” 심아윤은 놀란 듯 말했지만, 조금의 적의도 느껴지지 않았다.“아니요. 선생님도 민이 포기하고 도망가셨어요. 제가 올 수밖에 없었죠.”“민이 성격 엄청 좋은데 그런 짓도 하다니, 우리 아들 성깔 있네.” 심아윤이 시원시원하게 칭찬을 늘어놓았다. 정말 별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심아윤의 무해함과 소나은의 순진함은 완전히 달랐다.소나은은 초라하고 연약하고 항상 양보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하는 사람이었다면, 심아윤은 털털하고 밝고 자신감 넘치는 사람처럼 보였다.여자들 사이에서는 심아윤의 성격이 더욱 호감 가는 성격이었다.남자들 사이에서는 사람마다 달랐다.“매일 저녁에 이연 씨가 직접 오셔서 민이 과외 해 주시느라 정말 고생 많으시네요.” 심아윤이 감사 인사를 했지만 사실상 주도권 선포였다.소이연은 단번에 알아챘다.반박하지 않았다.반박할 수도 없었다.
육현경은 입술을 만지며 여전히 돌아보지 않았다.심아윤은 육현경의 등에 대고 해명했다.“할아버님께서 보내셨어. 장안시에 안 온 지 너무 오래됐다고, 보고 싶으시다고 하셔서 온 거야.원래 육씨 저택으로 바로 가려고 했는데, 할아버님께서 꼭 너한테 가보라고 하셔서 거절할 수 없으니까 온 거야. 미리 알았으면 전화라도 하고 올 걸 그랬다. 이렇게 난처하게 만들어서 정말 미안해.”육현경의 목젖이 움직였다.그는 뒤를 돌아 심아윤을 바라보았다. 미안해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그는 화도, 질책도, 위로도 없이 담담히 말했다.“호텔까지 바래다줄게.”심아윤은 가슴이 시렸다.아직도 못 자게 하는 건가?외국에 있을 때, 그녀가 그의 집에 아무리 늦은 시간까지 있고, 집에 빈방이 아무리 많더라도 그는 그녀를 바래다주었다.그는 돌아와서도 여전히 선을 그었다.예전에는 육현경의 성격이 그를 비인간적으로 만든다고 생각했지만, 이제야 깊이 깨달았다. 그냥 사랑하지 않는 것뿐이었다.하지만 그녀는 멍청하게 얌전히 그가 스스로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외국에서 그들이 같이 지낸 몇 년 동안, 그녀는 자신의 고결함을 버리고 주도적으로 행동했어야 했다.소이연에게 빈틈을 주다니 정말 후회막급이다.심아윤은 육현경을 따라 그의 집을 나섰다.그의 차 안.그는 여전히 침묵했다.사실 그녀는 정혼에 대한 육현경의 거부감과 분노를 모두 느낄 수 있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화도 한 번 내지 않았고 아무런 이유조차 묻지 않았다.그녀가 어떻게 된 일인지 몰랐다고 말해 어쩔 수 없었을 때도, 육현경은 아무런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고 그녀를 시종일관 냉담하게 대했다.“현경아.” 심아윤이 먼저 입을 열었다.“응.” 육현경은 짧게 대답하며 고개도 돌리지 않고 창밖만 바라보았다.“내일 민이 학교에서 가을 운동회 한다던데.”“응.”“할아버님이 너랑 같이 다녀오라셔. 거절하고 싶었는데, 할아버님께서......”“가자.” 육현경은 단번에 알겠다고 했다.심아윤의 입꼬리는 참지 못하고 올라갔다
교장 선생님이 벌써 이번 학기 학생들의 교육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소이연이 도착했을 때 현장은 이미 학부모들로 가득했다. 그녀는 뒤쪽 구석진 곳 외에는 선택권이 없었다.그리고 진지하게 선생님께서 설명하시는 학교의 이념과 학생들의 발전해 대해 듣고 있었다.곧이어 학생들의 상장 수여식이 있었다.소이연은 육민과 한 무리의 아이들이 무대 위로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그는 무대 아래쪽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아마 그녀를 찾고 있을 것이다.소이연은 손을 흔들었다. 육민은 한눈에 그녀를 알아보고 금세 기쁜 표정으로 바뀌었다.맨 앞줄에 있던 심아윤은 웃으며 농담을 했다. “평소에는 민이가 이렇게 웃는 걸 본 적이 없는데 무대에 올라가니까 아주 인물이 사네.”육현경은 대답하지 않았다.그는 육민이 왜 갑자기 흥분한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상장 수여식이 끝난 뒤 선생님이 먼저 학생들을 데리고 운동장으로 향했다.이어서 학부모들이 서서히 자리를 떴다.운동장은 아주 큼지막했지만 소이연은 여전히 구석진 곳에 있었다.그 순간, 그녀는 앞쪽에 앉아있던 육현경과 심아윤을 발견했다. 심아윤은 쉴 새 없이 옆에 있는 육현경과 웃으며 떠들어댔다.그래서, 심아윤이 특별히 육민의 학교 행사에 참여한 것이라고?!정말...... 천성이 새엄마다.운동회가 시작되고 각 프로그램이 차례로 진행되었다.육민은 높이뛰기와 50m 달리기에 참여해서 모두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소이연은 침착한 편이라면 심아윤은 아주 열정적이었다. 육민이 참여하면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며 응원을 했다.경기에 나가던 육민을 보니 불편한 듯 얼굴을 붉혔다.다음 경기는 수영이라 일부 학부모들이 다른 장소로 이동했다.그때 심아윤은 소이연을 보았다. 그녀는 또 한번 놀라며 말했다. “이연 씨도 오셨어요? 어디 계셨어요? 어떻게 한번을 못 봤지?”“늦게 와서 뒤쪽에 있었어요.” 소이연이 대답했다.“앞으로 좀 오시지 그러셨어요. 그럼 더 잘 보였을 텐데. 맞다, 방금 민이 경기 보셨어요? 너무 잘했
“좋아.”송문수가 대답했다. 그는 자동차들 사이에서 한 대를 향해 걸어갔다. 헬멧을 쓰고 차에 탑승했다. 하지수는 송문수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그녀의 뒤에서 하도경이 말했다. “걱정하지 마. 문수는 운전 실력이 뛰어나. 그의 차는 여러 번 개조된 슈퍼카라서 안전해. 게다가 그의 레이싱 친구가 장안시에서 특별히 가져온 거라 절대 사고 나지 않을 거야.” 하지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음속 불안은 사라지지 않았다.그녀는 하도경 옆에 서 있었다. 세 팀으로 나뉜 자동차들이 심판의 신호와 함께 경주를 시작했다.온 산에 귀청이 찢어질 듯한 엔진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지수는 내내 긴장했다. 조금이라도 이상한 움직임이 있으면 그녀는 놀라 죽을 것 같았다. 오히려 하도경은 매우 신나 보였다. 그는 주변의 응원단과 함께 소리쳤다. “문수 왔어!”하도경이 흥분하며 말했다.“1등으로 달리고 있어!” 하지수는 그의 자동차가 멀리서 다가오는 모습을 보았다. “훨!”송문수는 그녀 앞을 스쳐 지나갔다.아직 두 바퀴가 남았다. 하지수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숫자를 세었다. “문수는 레이싱에서 거의 지지 않아. 타고난 실력이 있거든.”하도경이 하지수에게 말했다.“사실, 문수는 네가 생각하는 것과 달라. 단순히 여자를 밝히는 사람이 아니야. 진지하게 임하는 일은 뭐든 잘 해내지.” 하지수는 하도경을 바라보았다. 하도경이 송문수에 대해 이렇게 높게 평가할 줄은 몰랐다. 송문수라는 사람의 능력을 떠나 육현경과 계지원의 비교로 보면 송문수는 그렇게 대단한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하도경은 친구로서 그를 옹호하고 있었다. “내가 하는 말이 진짜야. 문수를 잘 이해하면 그가 가진 많은 면을 알게 될 거야. 그런 모습은 너를 놀라게 할 거야.”하도경은 하지수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챈 듯 반복했다. 하지수는 입술을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도경이 이렇게까지 이야기했으니 그녀는 하지수의 체면을 세워주지
하지수는 그들이 사치스러운 고급 클럽에 가라 생각했지만 눈을 뜨자마자 산 정상에 와 있었다. 서울 시내와는 꽤 먼 것 같았다. “여기가 어디야?”하지수는 낯선 환경을 둘러보며 물었다. 이렇게 외지고 조용한 곳이라면 송문수가 그녀를 처리할 생각인지 의심이 들었다.“클라이맥스 레이싱해 본 적 있어?”하도경이 하지수에게 답했다. “레이싱?” “몰랐지? 문수는 슈퍼 레이서야.” “...”그녀는 전혀 몰랐다. 모두가 모르는 사실일 것이다. 그저 그가 놀이를 좋아한다고만 생각했을 뿐, 레이싱이 취미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게다가 매우 위험하다. 하지수의 표정이 확실히 변화했다. 하도경은 그런 두려움은 전혀 느끼지 못한 듯 말했다.“오늘 문수가 몇몇 레이서들을 초대했어. 곧 그의 멋진 모습을 볼 수 있을 거야. 차를 운전할 때 정말 멋져.” 하지수는 무언가 말하고 싶었지만, 송문수가 이미 차에서 내린 것을 보았다. 그 순간 주변에서 자동차 엔진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하지수는 급히 차 문을 열었다. 그곳에는 많은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빠른 속도로 질주해 왔다. 하지수는 그 모습을 보고 어안이 벙벙해지고 두려워졌다. 차가 멈추고 많은 남녀가 내렸다.그들은 화려한 옷을 입었고, 거의 모든 사람이 문신을 하고 있었다.보기에는 좋은 사람들 같지 않았다. “문수.”한 남자가 다가왔다. 드레드락과 입에 담배를 물고 있었다.“갑자기 드리프트 하러 오다니?” 송문수는 원래 서울에서 레이싱할 생각이 없었다. 아마도 감정을 발산하고 싶어서였다. 어젯밤 송승우의 전화 때문에 조금 짜증이 나서 오늘 오후와 저녁에 친구들과 놀고 싶었다. 그는 레이싱 그룹에 메시지를 남겼고 놀랍게도 전국에서 사람들이 하루 만에 모였다. 일정도 이미 잡혔고 거절할 수 없었다. 그리고 하지수가 그의 생활권에 참여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물론 그녀가 참여들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하지수는 착한 소녀여서 어릴 적부터
하지수는 송문수와 하도경을 따라 나갔다. 차는 천씨 가문의 차량으로, 운전사는 천씨 가문 소속이었다. 하도경은 조수석에, 송문수와 하지수는 뒷좌석에 앉았다.송문수와 하도경은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사이여서, 대화가 자연스럽게 오갔다.대화의 대부분은 그들 간의 이야기였다. 하지수는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않았지만, 시끄럽다고 느끼지 않고 조용히 그들의 대화를 들었다. 그러다 갑자기 그녀의 전화가 울렸다. 발신자를 확인하고 받았다.“승우 오빠.”하도경과 열심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송문수는 잠시 시선을 멈췄다. 하도경은 그 모습을 보고 약간의 미소를 지었다. 송문수는 금세 원래의 태도로 돌아와 하도경과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나는 문수랑 함께 있어요.”하지수가 말했다. “문수랑 함께 있다고? 어디야?”송승우는 놀라며 물었다. 사실 그는 멀리 가지 않았다. 물론 호텔 앞에는 없었지만, 하지수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그랬다.그는 오늘 송문수에게 전화를 걸어 분명히 말했다.송문수의 성격과 그들 사이의 좋지 않은 관계를 고려할 때, 송문수는 하지수에게서 멀어지려고 할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그는 하지수가 다시 자신에게 돌아올 준비가 되었다고 믿었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도 하지수의 전화는 오지 않았다. 그는 하지수가 어릴 때부터 강하고 독립적인 성격이었다고 생각했기에, 문제가 생기면 자발적으로 도움을 청하지 않으리라 예상했다. 그래서 하지수에게 잘 위로하고 싶어서 전화를 걸었는데, 대답은 송문수와 함께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예상치 못한, 완전히 다른 답이었다. “우리는 지금 서울 구경하러 나갔어요.”하지수가 말했다. “둘이 나가서 놀고 있다고?”송승우는 믿기지 않는 듯 물었다. “송문수와 하도경이 같이 가고 싶다고 해서, 나도 따라 나갔어요.” “너... 개의하지 않냐?”송승우가 물었다. “뭘 개의치는데요?”하지수는 이해하지 못했다. “내 말은, 너와 송문수 사이가 좋지 않으니까 함께 놀
“오해라고?”송문수는 무관심한 듯 말했다. “오해야.”하지수는 확신하며 말했다.“승우 오빠가 사진을 올릴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어.” “그러니까 안 올린다고 해서 그게 존재하지 않는 일이 되나? 너희 사이에 감정이 없다는 걸 의미하는 건가? ” 그건 웃기는 일이다. “아니야.”하지수는 초조하게 대답했다. 평소에 송문수가 이렇게 말 잘하는 걸 본 적이 없었다.성적도 좋지 않고 평소엔 느긋하게 지내던 그가 지금은 그녀를 말문이 막히게 만들고 있었다.“내 말은, 그저 관광객으로서 찍은 사진이었는데 그가 올리면서 상황이 애매해진 거야. 그래서 네가 오해할까 봐 걱정됐어.”하지수는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그래서 돌아온 거야.” 송문수는 그녀의 말을 듣고 저도 모르게 마음이 흔들렸다.하지수가 자신을 조금은 좋아하는 것 같았다.“결국 돌아와서 내가 본 건 이런 장면이라니!”하지수는 방금의 장면을 떠올리며 다시 눈가가 붉어졌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고 말없이 있었다. 그냥 너무 힘들고 속상했다. 송문수는 하지수의 모습에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녀가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는 걸까? 부부로서 남편이 바람을 피워서 속상한 건지, 아니면 그에게 진짜 호감이 생긴 건지 알 수 없었다.하지만 하지수는 어릴 적부터 그를 좋아하지 않았다. 지금 송승우가 돌아왔고 송승우가 하지수를 적극적으로 구애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녀가 송승우를 거부할 이유가 있을까? “다음번엔 그러지 않겠다고 약속해 줄 수 있어?”하지수가 그에게 물었다. 송문수는 입술을 다물고 말없이 있었다. “네가 정말로 원하면 내가 도와줄 수 있어.” 송문수는 여전히 침묵했다. “어때?”하지수가 그를 바라보았다. 물론 나쁘지 않았다. 송문수는 사실 출소 이후로 여성과의 접촉이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간단한 대답을 그는 입 밖으로 내지 못했다. 그저 하지수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았다. 하지수는 죄책감 때문에 그와 함께 있
송문수는 얼굴이 갑자기 붉어졌다. 그는 하지수가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녀가 이런 말의 위험성을 알고 있을까?정말 자각이 없는 걸까?하지수는 송문수의 붉어진 얼굴과 귀를 바라보며 찡그렸다. 이건 착각일까? 송문수가 부끄러워하고 있는 걸까? 이렇게 많은 전투를 경험한 사람이 이런 표정을 보이다니?그녀가 잘못 본 걸까? 하지수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 송문수의 뺨을 만졌다. 송문수는 순간 얼어붙었다.하지수가 말했다.“정말 뜨거워.” “너 뭐 하는 거야?” 송문수는 재빨리 몸을 떼었다. 하지수는 찡그렸다. 그가 정말로 자신을 싫어하는구나. 하지만 하지수는 그들 사이에 단지 소통과 교류가 부족하다고 느꼈다. 감정은 천천히 쌓일 수 있다고 믿었다. “나는 네가 얼굴이 붉어졌다고 생각해.”하지수가 말했다. “내가 붉어졌다고? 내가 그런 사람이야?”송문수는 부인했다.“이건 화가 난 거야 알겠어? 화가 나서 가슴이 두근거려서.” “뭘 그렇게 화내?”하지수가 물었다. “내 사람을 쫓아냈으니 내가 뭐로 화내지 않겠냐?” “내가 보완할 수 있어.” “하지수, 너 조금 자제할 수 없어? 누구한테 배운 거야? 이렇게 무례하게.” 송문수는 화가 나서 성질을 부렸다. “내가 내 남편한테... 그게 무례한 거야?”하지수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다. 그녀의 얼굴도 붉어지고 귀와 목도 빨갛게 변했다. 마치 익은 게살 같았다. 송문수의 아담한 목이 움직였다. 그 깊은 욕망이 그를 자제할 수 없게 만들었다.게다가 그녀가 방금 뭐라고 했지? 남편... 그는 시선을 아래로 돌려 하지수의 벌거벗은 몸을 보고 다시 화가 치밀었다.“아직도 안 입고 있니?” 하지수는 붉어진 입술을 깨물었다. 결국 그녀는 송문수를 흔들지 못했다.비록 그녀가 이 날을 위해 오랫동안 준비했지만 준비한 것이 많았다. “정말 성가셔.”송문수는 하지수가 오랫동안 아무 행동을 하지 않
그는 다른 여자들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오늘 그 여자도 그냥 형식적으로 불렀을 뿐이었다. 송승우가 하지수를 도덕적으로 강요한다고 말했기 때문에 하지수의 관계를 깔끔하게 끊고 싶어 했다. “한번 해보면 어때?”하지수는 단호하게 말했다. “해보지 않을 거야.”송문수는 단칼에 거절했다.“하지수, 너...” 송문수는 정말 화가 나버릴 지경이었다. 하지수가 몰래 연습했다는 생각만 해도 화가 치밀어올랐다. “해보지 않으면 어떻게 잘할 수 있는지 알겠어?” “필요 없어.” “송문수, 그렇게 싫어해?”하지수는 겨우 참았던 눈물이 이제는 미친 듯이 쏟아졌다.“울지 마.”송문수는 더는 참을 수 없었다. 하지수가 언제 이렇게 잘 울었어?크면서 울고 있는 모습을 거의 보지 못했다. 특히 결혼한 후 하지수는 마치 다른 사람처럼 변해버렸다. 성숙하고 침착해져서 울지도 웃지도 않았다. 송문수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수가 이런 감정을 억누르고 송승우에게만 보여줬다는 것을. 하지만 지금 하지수는 아이처럼 울고 있었다. 평소의 침착함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 여자를 내보내.”하지수는 침대에 앉아 있는 여자를 가리켰다. 여자는 이 순간 두 사람의 시선에 충격을 받았다. 오늘 큰 거래를 성사했고 가격이 맨몸으로 뛰어다니게 할 만큼 좋았다. 여자는 올 때 모든 매력을 한껏 발산하려 했고, 돈이 문제인 게 아니라 진짜 남자를 보고 나니 뭔가 대박을 터뜨린 기분이었다.잘생길 뿐만 아니라 경험이 많은 여자는 직감적으로 이 남자가 큰 만족감을 줄 것 같다고 생각했다.그래서 여자는 자신의 모든 기술을 사용했지만 남자는 여자를 한 번도 보지 않고 규칙을 지키라고 했다. 둘은 같은 이불 속에 누워 있었는데 여자를 만지지 말라고 했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여자는 혼란스러웠지만 돈을 위해서는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지금 이 장면이 벌어졌다. 여자는 입을 다물고 있지 않았다.
“하지수, 너 미쳤어?” 송문수는 하지수의 등을 강하게 바라보며 눈이 금세 충혈되었다. 그의 표정은 분노라기보다는 당황스러움이 더 컸다.하지수가 자신이 바람을 피우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을 때의 여러 가지 반응을 떠올려보았다. 송문수를 때리며 분을 풀 수도 있다. 하지만 하지수의 성격을 생각했을 때, 그 가능성은 낮아 보였다. 둘째, 침대에 있는 여자를 쫓아낼 수도 있었다. 예전에 그런 적이 있었다. 셋째, 돌아서서 그냥 떠날수도 있었다.이 세 번째 가능성이 가장 현실적이라고 생각했다. 상관없다면 아무 반응도 없을 것이다. 사실 하지수는 방금 떠났었다. 그런데 왜 다시 돌아온 거지?그리고 이런 이상한 행동을 하다니, 송문수는 순간적으로 혼란스러웠다. 송문수는 서둘러 하지수의 옷을 올려주며 말했다.“하지수, 너 미쳤어?” 하지수는 그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억울한 모습에 송문수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송문수는 하지수가 자신을 위해 울고 있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갑자기 이렇게 울어버리다니. 하지수가 버림받은 듯 처참한 마음이었다.그런데 하지수는 송승우를 좋아하는 것 아닌가?송문수는 하지수를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어찌할 바를 모른 채 서 있었다. “송문수, 나도 할 수 있어.”하지수는 절규하듯 말했다. “뭐?”송문수는 얼굴을 찡그리며 물었다. 지금 이 상황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송문수의 눈에는 오직 하지수의 눈물만 보였고, 닦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나도 너와 함께 잘 수 있어.”하지수는 울먹이며 말했다. 슬픔에 차서 그녀는 계속 흐느꼈다. 송문수는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무슨 말을 해도 하지수를 더 울릴 것 같았다. 송문수는 갑자기 그녀가 울어버릴까 두려워졌다. 어릴 적처럼. 그는 사실 매번 하지수를 울리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하지수의 시선이 항상 송승우에게 향해 있었기에 그가 장난을 치지 않으면 하지수는 그를 전혀 주목하
이렇게 보니 그 여자는 아무것도 입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방금 송문수가 침대에 누웠을 때 하지수도 그가 아무것도 입지 않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설마... 하지수는 침대 쪽으로 다가갔다. 송문수는 찡그린 얼굴로 하지수의 행동을 주의 깊게 바라보았다. 송문수는 하지수가 나갈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런데 하지수가 갑자기 돌아왔으니... “아!”여자가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하지수가 여자의 이불을 잡아당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분명 이 침대는 어젯밤 하지수가 덮었던 것이고 지금은 다른 여자가 그 이불을 품고 있었다. 송문수는 정말 더럽지 않은가? 정말 더럽다고 느끼지 않는가? 다른 장소로 옮길 수는 없었나?굳이 그녀가 잤던 침대에서 하겠다는 것인가?굳이 이렇게 그녀와 마주쳐야만 하는가? “뭘 하는 거야!”송문수가 하지수를 힘껏 잡아당겼다. 힘이 세서 하지수는 비틀거리며 거의 바닥에 넘어질 뻔했다. 송문수는 본능적으로 하지수를 받쳤다. 다음 순간 그는 즉시 하지수를 놓아버렸다. “나가.”송문수가 짜증을 내며 말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송문수는 바로 몸을 돌렸다. 하지수는 송문수의 냉담한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하지수는 방금 송승우에게 송문수가 함부로 행동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었다. 지금 이렇게 큰 타격을 받았다. 정말 아프게 맞았다. 하지수는 입술을 깨물어 하얗게 변했다. 조용한 방에서 하지수는 갑자기 고개를 숙이고 옷을 벗기 시작했다. 침대에 누워있던 여자는 하지수의 행동에 놀랐다. 이 여자는 그들과 함께하려는 건가?이건 너무 자극적 아닌가?아직 준비가 안 되었었다. 송문수는 하지수의 등 뒤를 바라보며 하지수가 나가길 기다리고 있었다. 송문수는 하지수가 돌아온 걸 알고 있었다. 송승우가 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송승우는 그들 사이에 감정이 없다면 더 이상 엉켜 있지 말라고 했다. 그는 하지수가 예전의 일로 송문수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있어서 그를 위
“지수야, 너는 좋은 아이라는 걸 알아. 네가 얼마나 착한지도 알아. 하지만 네가 이렇게 집착하는 건 원하지 않아.”송승우가 좀 더 진지해졌다.“너의 방식은 너 자신을 다치는 것뿐만 아니라 문수에게도 상처를 주고 있어.” 하지수는 잠시 멈칫하며 송승우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알다시피 너와 문수의 결혼은 네가 이끌어 가고 있는 거야. 네가 이혼하지 않는 한 부모님은 너희를 이혼할 수 없어. 그런데 네가 이렇게 송문수와 얽히고 있으면 그의 감정을 생각해 본 적 있어? 그는 이혼하고 싶지만 이혼할 수 없고 놀고 싶어도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돼. 지금 문수도 진퇴양난이야.” “하지만 나는 송문수가...” “그가 너를 좋아한다고 생각하니? 그날 밤 음주 운전까지 하면서 너를 만나러 오려 했던 거?”송승우가 물었다. 하지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실제로 송문수가 자신을 어느 정도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왜 그런 일을 했을까? 술을 마셨는데도 쉽게 떠날 수 없었던 그는 그녀의 전화를 받고 빗속을 뚫고 오는 데 두려워하지 않았다.그때 그녀의 마음이 흔들렸다고 인정한다.송문수에게 처음으로 심장이 두근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그 후 그녀는 그가 출소하기를 기다리며 진심으로 다시 시작하고 싶어 했지만 송문수 계속 거절했다. “지수야, 너는 너무 순수해.”송승우가 말했다.“이런 일이 누구에게나 일어나면 당연히 신경 쓰게 돼. 송문수가 네 사고 이후에 너를 찾아온 건 인간적인 걱정일 뿐이고, 그의 음주 운전은 법을 무시한 행동이었을 뿐이야. 혼동하면 안 돼.” “하지만...” “지금 나는 너를 강요하지 않아. 네가 현실을 제대로 인식할 시간을 줄게.”송승우가 하지수를 바라보며 안타까운 눈빛을 보냈다.“나는 네가 상처받는 걸 원하지 않지만 지금 보니 너는 끝까지 가봐야만 마음을 바꿀 것 같아.” 하지수는 침묵했다. 그래. 하지수는 더 노력하고 싶었다. 하지수는 송문수와의 가능성이 있다고 믿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