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심아윤은 장안시를 떠났다.뉴스에는 온통 심아윤을 배웅하는 육현경의 모습만 담겼다. 두 사람이 공항에서 아쉬운 작별을 하는 장면만 말이다.소이연은 요즘 장안시의 뉴스거리가 그렇게도 없는지 의문이었다. 그 흔한 연예계 스캔들도 없는지? 육현경과 심아윤은 일주일 내내 인기 검색어에 올랐고, 모든 SNS에 그들의 소식들로 가득했다.소이연은 핸드폰을 내려놓고 은하패션 브랜딩 회의를 위해 VIP회의실로 향했다.그녀의 lovely 신분이 드러났기 때문에 은하와의 협력을 제안해 오는 업체들이 많았다. 소이연은 이를 비즈니스 기회라고 생각했고 은하그룹의 자금이 한정된 상황에 자금 조달을 통해 마케팅 스케일을 키우면 서로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이제 핵심은 어떻게 베스트 협력업체를 찾느냐이다.소이연은 오전 내내 회의하며 경영진들과 논의 했다.핸드폰을 무음 상태로 해놓고 있어서 사무실에 돌아와서야 부재중 전화를 확인할 수 있었다. 육현경과 문서인의 전화였다. 소이연은 그들의 부재중 전화를 그냥 무시하고 계속 일에 몰두했다.몰두하다 보니 어느덧 밤 아홉 시가 훌쩍 넘었다.결국 세 개의 괜찮은 협력업체를 선정했다. 최종적으로는 입찰을 통해 결정을 내릴 예정이었다.소이연은 허리를 펴고 일어나 가방과 차 키를 들고 퇴근했다.늦은 시간이라 다들 이미 퇴근했다.주차장도 어둡고 주차된 차도 별로 없어서 조금 무서운 느낌이 들었다.빨리 차 키를 눌러 얼른 차에 올라타려고 한 순간 갑자기 어두운 곳에서 웬 검은 그림자가 돌진해 왔다.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입은 틀어막혔고, 몸으로 아무리 저항하려 해도 남자의 힘을 이길 수가 없었다.제압당한 채로 낑낑댈 수밖에 없었다.남자는 소이연을 옆에 있는 밴 쪽으로 끌고 갔다.그때, 갑자기 또 다른 남자가 튀어나왔다. 그리고 소이연을 끌고 가는 남자를 향해 사정없이 킥을 날렸다.소이연을 제압하고 있던 손이 풀렸다.소이연은 질린 채로 남자의 제압에서 풀려났다.순간 두 남자가 미친 듯이 싸우고 있는 것
“내가 병원에 데려다줄게.”소이연이 말했다.소이연은 직접운전하고, 문서인은 경찰차를 타고 왔다.그러니 당연히 소이연이 문서인을 데려다 줄 수 밖에 없다.“괜찮아. 많이 안 다쳤어. 며칠이면 금방 나아.”문서인이 이어서 말했다. “많이 늦었어. 얼른 집에 들어가.”“그래도 마음 놓이게 가서 검사해 봐.”소이연은 단호했다.조금이라도 빚 지기 싫었다.“... 고마워.”문서인도 알겠다고 했다.두 사람은 같이 차에 올라탔다.소이연이 운전하고, 문서인은 조수석에 탔다.“네가 운전도 할 줄 몰랐어.”문서인이 말했다.“예전에는 운전 안 했잖아.”“예전엔 너무 바빴어.”소이연은 직설적으로 말했다.문서인은 죄책감을 느낀 듯 눈을 내리깔며 말했다.“미안해 이연아. 내가 예전에...”“예전 얘기하고 싶지 않아.”소이연이 그의 말을 끊었다.문서인이 절대 변하지 않을거라 생각했다.그의 앞에서 괜찮은 척 연기 하는 것조차 싫었다.“오늘 나 무슨 일로 찾아왔어?”소이연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문서인은 괜히 입술을 만지작거렸다.사실은 가장 솔직한 태도로 소이연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을 생각이었다. 소이연이 얼마나 똑똑한 여자인지 아주 잘 알기 때문이다. 그녀를 속이긴 불가능하다.그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너도 알다시피 지금 문씨 그룹이 상황이 좀 그렇잖아.”소이연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얼마 전부터 문씨그룹은 미디어의 힘으로 브랜드의 인지도를 높이려고 많은 돈을 들였다. 그런데 아무런 효과를 얻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역효과를 일으켰다. 회사 주식도 계속 하락세를 달렸고 투자자들도 투자금을 철회했다. 머지않아 파산될 직전이다.“너 한테 투자 부탁하러 온 건 아니야. 나도 알아 지금 너 한테 은하그룹만으로 벅차다는 거. 자금이 제한적이라는 것도.” “그냥 요즘 은하그룹이 다른 업체하고 협업한다는 얘기를 들었어. 문씨그룹도 오래된 패션기업이잖아. 너도 오랫동안 문씨그룹에 있었으니까 알잖아. 무엇보다 우리 그룹은 성숙한 경영관리 시스템
소이연은 눈앞에 나타난 육현경을 바라보았다.오늘 그가 수많은 전화와 메시지를 보냈지만 전화를 받거나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었다. 하루 종일 바쁘게 보내고 저녁에 퇴근하려 할 때 장지원이 나타나 복수하는 바람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답장하지 않으면 육현경이 내일까지 기다려줄 거라 생각했었다.그런데 새벽 3시에 갑자기 여기에 나타난 것이다.여기에 있는 건 또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육현경의 능력이라면 장안에서 어느 구멍으로 들어갔다고 해도 무조건 찾아낼 것이라 이상하지는 않았다.문서인도 육현경을 보고 많이 놀랐다.저 녀석 심아윤이랑 공식적으로 결혼 발표한 거 아니야?심아윤이 떠나자마자 육현경이 찾아오네, 하필이면 이 시간에?전에 소이연에게 연락했을 때 그녀는 육현경과 부적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문서인이 아는 소이연은 자신을 애인으로 만들 여자가 아니었다.그가 이를 갈며 상황을 지켜봤다.육경현이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문서인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소이연만 뚫어지게 쳐다봤다.“이젠 안 바빠?”“응.”소이연이 짧게 대답했다.“가자.”육현경이 손을 내밀어 그녀의 손을 잡았다.두 사람 사이는 아주 평화로웠다.소이연은 그에게 약혼녀가 있다고 해서 거부감을 드러내지 않았다.육현경도 그녀가 문서인과 같이 있다고 해서 화를 내지 않았다.마치 두 사람은 서로를 굳게 믿고 그 어떤 외부적인 요소가 방해해도 흔들리지 않을 것처럼 행동했다.문서인은 두 사람이 눈앞에 사라지는 것을 멀뚱히 쳐다봤다.완전히 개무시를 당했다.자존심이 상한 그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소이연, 그렇게 도도하고 고상한 척하더니 육현경의 세컨드가 되겠다?말할 수 없는 분노가 가슴에 꽉 막혀 답답하기 그지없었다.그때 휴대폰이 울렸다.문서인이 전화를 받았다. “나은아.”“어떻게 됐어? 전화가 없어서 걱정돼서 연락했어.”휴대폰 너머로 다급한 소나은의 목소리가 들렸다.그녀의 관심 어린 말투에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들었다.소
소나은이 이런 말도 했었다.소이연이 마침 육현경에 버림을 받고 한참 의기소침해 있을 때라서 문서인더러 적극적으로 다가가 위로한다면 예전의 받았던 상처를 잊어버릴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문 씨 가문을 살리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니 소이연에게 다가가도 괜찮다면서 자신의 감정은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왜냐면 소나은은 문서인과의 감정이 단단하고 믿었기 때문이다.문서인은 그렇게까지 말하는 소나은에게 감동을 받았다.자신을 이토록 사랑해 주는 여자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소이연은 그리 만만하지 않아.”문서인이 대답하면서 오늘 저녁에 있었던 일들을 말했다.소나은이 쓴웃음을 쳤다.그녀도 소이연을 잘 알고 있었다.문서인이 아무리 무릎을 꿇고 죽는 시늉을 해도 소이연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소나은은 문서인이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는 길을 가게 상황을 유도했다.“시간문제야. 전에 오빠가 그렇게 언니한테 상처를 줬는데 당연히 경계하겠지.”소나은이 좋은 마음으로 위로했다.“근데 나한테 시간이 많지 않아. 소이연이 이번 주에 외부 투자 유치에 나선다고 들었어. 문 씨 그룹도 주식이 계속 떨어져서 융자를 조달하지 않으면 파산하게 될 거야.”문서인이 또 참지 못하고 욱했다.“그럼 어떡해.”소나은이 다급한 마음에 울먹거렸다.“무슨 방법이 없어? 언니가 무조건 문 씨와 협력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거 말이야.”“지금은 협박이 전혀 먹히지…”문서인이 말하다 멈추었다.소이연이 문 씨와 협력하지 않으면 안 되는 방법?순간 그의 눈에 싸늘한 빛이 스쳤다.“나은아, 우리 감정을 믿지?”“당연하지. 안 믿었으면 전에 사귀었던 사이인 걸 알면서도 언니한테 찾아가라고 말하지도 않았어. 지금은 오빠와 문 씨가 무사할 수만 있다면 다른 건 아무래도 괜찮아.”소나은이 단호하게 말했다.“그 말이면 충분해.”문서인이 결단을 내렸다.“나도 약속할게. 어떤 일이 벌어져도 문 씨 안주인은 너야.”“알았어. 그날이 올 때까지 기다릴게.”소나은이 고분고분
차 안은 여전히 조용했다.육현경은 소이연의 말을 못 들은 척하고 앞만 바라보며 운전에만 집중했다.소이연은 최대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말했다.“아침에 중요한 회의가 있어. 지금 늦은 시간이야.”“알아.”육현경이 짧게 대답했다.하지만 그녀가 한참을 기다려도 그는 다시 입을 열지 않았다.소이연이 입술을 깨물었다.결국 아무 말도 안 하고 조수석에 기대어 창밖을 바라보았다.어느새 노스타운 지하 주차장에 도착했다.소이연은 안전벨트만 풀고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봤다.“이젠 말해.”한마음을 두 곳에 쓰는 게 아니라고 육현경이 운전에 집중할 수 있도록 방해하지 않은 것이다.자신의 목숨을 갖고 장난치고 싶지 않았으니까.“너무 늦었어. 먼저 올라가서 쉬어. 내일 다시 찾아올게.”육현경이 말했다.“난 우리가 계속 이렇게 만나는 게 싫어. 확실하게 말하고 끝내자. 회사 일만 해도 바빠 죽겠는데 당신과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어.”소이연이 솔직한 심정을 털어놨다.더는 이런 관계를 유지하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언제나 확실하게 선을 긋는 게 좋았다.그때 문서인한테도 그랬었다.육현경이 운전대를 꽉 잡고 그녀를 바라보았다.오늘 저녁 순순히 따르는 것 같아도 그녀의 마음이 이미 멀어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결혼은 할아버지가 갑자기 발표한 거라 난 모르고 있었어.”결국 입을 열었다.저녁에 그녀의 집 앞에서 계속 기다렸지만 새벽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그래서 모든 사람을 동원해 장안시를 뒤졌고 병원에 있다는 소식을 받고 바로 달려간 것이다.그녀가 멀쩡하게 나오는 것을 보고서야 비로소 안심이 되었다.지금은 쉬는 시간을 방해하지 않고 그냥 집에 데려다주려고 했다.그런데 소이연은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주지 않았다.이해했다.누구라도 그랬을 것이다.육현경이 계속 말했다.“며칠 동안 할아버지한테 휴대폰을 빼앗기고 감시를 당해서 찾아오지...”“알아, 수진한테서 들었어.”소이연이 그의 말을 잘라버렸다.원인과 결과가 어찌 됐든 그녀에게
”우리 감정은 이렇게 쉬운 거였어?”육현경이 물었다.“우리 사이에 따질 감정이 없어.”소이연은 여전히 차가웠다.“현경 씨도 기억할 텐데. 난 사귀어 보자고 해서 대답한 거야. 근데 순탄하지 않네.”“만약 내가 심아윤과의 결혼을 너와 연관시키지 않겠다면 날 기다려줄 수 있어?”“싫어.”소이연이 단호하게 거절했다.“내가 그렇게 미덥지 않아?”육현경이 눈시울을 붉히며 주먹을 꽉 쥐었다.“응.”그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육현경이 실소했다.갑자기 분위기가 조용해지고 공기는 숨 막힐 듯 답답했다.두 사람은 한동안 침묵했다.그렇게 말을 끝내고 소이연이 차에서 내리려고 할 때 육현경이 손목을 꽉 잡는 바람에 뼈가 부러질 것 같았다.그래도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무덤덤하게 그의 복수를 받아줬다.“내게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어?”육현경이 북받치는 감정을 억누르며 그녀를 쳐다봤다.“감정은 상호작용이야. 난 분명 느꼈어.”소이연이 입을 열기 전에 그가 계속 말했다.“당신이 순종하는 타입이라 생각하지 않아. 육 씨 혹은 심 씨가 핍박한다고 해서 쉽게 포기할 사람이 아니야.”“육현경, 난 사람이지 신이 아니야. 강력한 세력 앞에서 나도 무섭고 두렵고 그래.”“전에 혼자 힘으로 소 씨와 문 씨 가문과 싸웠잖아. 이리 쉽게 타협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 난.”육현경이 따지고 들자 그녀가 입술을 깨물었다.이 사람 앞에서 사생활이란 게 없이 자신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것 같았다.“할아버지가 뭐라고 하셨어?”육현경이 겨우 진정하고 차분하게 물었다.소이연과 할아버지가 단둘이 만난 사실을 알았다는 뜻이다.머리가 똑똑하다면 미리 그녀가 이렇게 단호하게 나오는 것이 할아버지와 관련 있다고 추측했을 것이다.“내가 먼저 떠나라고 했어.”소이연은 숨기지 않았다.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좋게 말하고 좋게 끝내려면 모든 것을 분명하게 말하는 편이 나으니까.아니면 쓸데없이 얽혀서 일이 더 복잡해진다.“그래서 떠나겠다고 했어?”“그래.”소이연이
소이연은 대답하지 않았다.가끔 침묵은 모든 것을 대신할 수 있다.“당신이 18살 때 잠자리를 했던 남자가 나였다는 사실을 일부러 숨긴 게 아니야.”육현경이 인정했다.“내가 전에 그 사람을 미워하냐고 물었을 때 당신이 밉다고 했어. 그래서 우리 감정이 안정되고 더는 내 스킨십을 거부하지 않을 때 내 존재를 받아줄 거라 생각했거든.”소이연은 그의 말을 끊지 않고 듣기만 했다.“그때 귀국한 지 얼마 되지 않았어. 바에서 하경이랑 술을 마시다가 정신이 온전치 못한 당신을 발견했어. 어떤 남자가 질척대니까 당신이 반항하더라고. 그래서 내가 나서서 그 남자를 밀어냈는데 당신이 내 몸에 기대는 거야. 그때 당신 몸이 불덩어리처럼 뜨거웠어. 내가 호텔로 데려간 것도 인정해. 그렇게 온몸이 뜨거운 사람을 어디로 데리고 가야 할지 몰랐어. 집이 어디냐고 물어도 말도 하지 않았지.”“그 뒤로 호텔에 들어가자마자 당신이 나를 침대에 눕히고는…”육현경이 소이연을 바라봤다. 그녀가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오랜 세월이 흘러 흐릿하던 기억들이 잊힐 법도 한데 점점 생생하게 떠올랐다.“당신은 말로는 건드리지 말라고 하면서 얼마나 다급하게 굴었는지 몰라. 이튿날 내가 잠든 사이에 도망가지 않았더라면 내 몸에 얼마나 많은 상처들이 남아 있었는지 볼 수 있었을 거야.”소이연이 저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죽도록 잊고 싶은 과거가 육현경의 입에서 아무렇지 않게 터져 나왔다.“찾아가려고 했는데 나도 자존심이라는 게 있잖아. 그땐 어리고 철이 없어서 당신과 잠자리를 한 후에 엄청 자존심이 상했거든. 꾹 참고 해외로 떠났다가 한 달도 못 버티고 다시 귀국했는데 그때 부모님이 차 사고로 돌아가셨어.”육현경이 마른침을 삼키고 잠시 말을 멈추다가 다시 천천히 말했다.“그땐 온 집안이 슬픔에 잠겼지. 할아버지는 상심한 끝에 병원에 실려가고 육 씨 가문의 모든 일을 내가 도맡아 하게 됐어. 그때부터 국내와 해외를 오가면서 일에만 몰두하다 보니까 당신 찾을 생각을 하지 않았어. 나중에
”그 후에 갑작스럽게 불이 나서 당신이 불속에 갇혔어. 문서인이 당신은 버리고 소나은만 구하는 걸 보고 내가 불속에 뛰어들어서 구해낸 거야.”소이연이 깜짝 놀랐다.지금까지 소방관이 그녀를 구했다고 여겼다. 그 사람이 소방관 옷을 입은 모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내가 들어가기 전에 당신이 연기를 마시고 그 자리에서 죽을까 봐 옆에 있던 소방관의 헬멧을 빼앗아 쓴 거야.”육현경은 마치 그녀의 속을 꿰뚫어본 듯 그 부분을 설명했다.소이연이 눈을 감았다.순간 육현경을 처음 만났던 날, 손목에 붕대를 잔뜩 감고 있던 모습이 떠올랐다.한참 뒤에 다시 눈을 뜨고 그를 싸늘하게 쳐다봤다.“많은 일이 있었네. 그래서 내게 잘해주는 이유가 뭐야? 우연히 만나서 당신한테 상처만 줬는데 왜 날 좋아한 거지?”그를 믿지 않았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사람을 믿지 못했다.“첫눈에 반했다는 말은 하지 마. 육 도련님의 주변에는 예쁘고 능력 좋은 여자들이 많은데 하룻밤을 잤다고 나만 좋아한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그날 저녁 좋은 경험을 했어.”육현경이 솔직하게 대답하더니 한마디 덧붙였다.“처음이었어.”“당신이 보수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소이연이 반박했다.“보수적인 사람 맞아.”육현경이 똑바로 쳐다보자 소이연의 마음이 조금 흔들렸다.그의 말은 계속됐다.“몇 년 전에…”“더는 설명 듣고 싶지 않아.”소이연이 그의 말을 잘랐다.“당신이 한 말이 사실이든 아니든 상관없어. 할아버지가 결혼을 발표한 날부터 우린 끝났어. 그러니까 더는 말하지 마.”“아무런 소용도 없다는 거야?”육현경이 다시 눈시울을 붉혔다.“그래. 소용없어.”관계를 질질 끌지 않고 한 번에 정리하려고 구구절절한 설명을 들어준 것이다.어쨌든 결말을 바뀌지 않을 테니까.“당신한테 내가 이기적으로 보이겠지만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면 당신과 심아윤 어릴 때부터 절친 사이고 지금은 순리대로 결혼까지 가게 된 거야. 그리고 나는 당신과 잠자리를 강요하고 아이까지 버린 무책임한 인간이
“좋아.”송문수가 대답했다. 그는 자동차들 사이에서 한 대를 향해 걸어갔다. 헬멧을 쓰고 차에 탑승했다. 하지수는 송문수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그녀의 뒤에서 하도경이 말했다. “걱정하지 마. 문수는 운전 실력이 뛰어나. 그의 차는 여러 번 개조된 슈퍼카라서 안전해. 게다가 그의 레이싱 친구가 장안시에서 특별히 가져온 거라 절대 사고 나지 않을 거야.” 하지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음속 불안은 사라지지 않았다.그녀는 하도경 옆에 서 있었다. 세 팀으로 나뉜 자동차들이 심판의 신호와 함께 경주를 시작했다.온 산에 귀청이 찢어질 듯한 엔진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지수는 내내 긴장했다. 조금이라도 이상한 움직임이 있으면 그녀는 놀라 죽을 것 같았다. 오히려 하도경은 매우 신나 보였다. 그는 주변의 응원단과 함께 소리쳤다. “문수 왔어!”하도경이 흥분하며 말했다.“1등으로 달리고 있어!” 하지수는 그의 자동차가 멀리서 다가오는 모습을 보았다. “훨!”송문수는 그녀 앞을 스쳐 지나갔다.아직 두 바퀴가 남았다. 하지수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숫자를 세었다. “문수는 레이싱에서 거의 지지 않아. 타고난 실력이 있거든.”하도경이 하지수에게 말했다.“사실, 문수는 네가 생각하는 것과 달라. 단순히 여자를 밝히는 사람이 아니야. 진지하게 임하는 일은 뭐든 잘 해내지.” 하지수는 하도경을 바라보았다. 하도경이 송문수에 대해 이렇게 높게 평가할 줄은 몰랐다. 송문수라는 사람의 능력을 떠나 육현경과 계지원의 비교로 보면 송문수는 그렇게 대단한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하도경은 친구로서 그를 옹호하고 있었다. “내가 하는 말이 진짜야. 문수를 잘 이해하면 그가 가진 많은 면을 알게 될 거야. 그런 모습은 너를 놀라게 할 거야.”하도경은 하지수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챈 듯 반복했다. 하지수는 입술을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도경이 이렇게까지 이야기했으니 그녀는 하지수의 체면을 세워주지
하지수는 그들이 사치스러운 고급 클럽에 가라 생각했지만 눈을 뜨자마자 산 정상에 와 있었다. 서울 시내와는 꽤 먼 것 같았다. “여기가 어디야?”하지수는 낯선 환경을 둘러보며 물었다. 이렇게 외지고 조용한 곳이라면 송문수가 그녀를 처리할 생각인지 의심이 들었다.“클라이맥스 레이싱해 본 적 있어?”하도경이 하지수에게 답했다. “레이싱?” “몰랐지? 문수는 슈퍼 레이서야.” “...”그녀는 전혀 몰랐다. 모두가 모르는 사실일 것이다. 그저 그가 놀이를 좋아한다고만 생각했을 뿐, 레이싱이 취미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게다가 매우 위험하다. 하지수의 표정이 확실히 변화했다. 하도경은 그런 두려움은 전혀 느끼지 못한 듯 말했다.“오늘 문수가 몇몇 레이서들을 초대했어. 곧 그의 멋진 모습을 볼 수 있을 거야. 차를 운전할 때 정말 멋져.” 하지수는 무언가 말하고 싶었지만, 송문수가 이미 차에서 내린 것을 보았다. 그 순간 주변에서 자동차 엔진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하지수는 급히 차 문을 열었다. 그곳에는 많은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빠른 속도로 질주해 왔다. 하지수는 그 모습을 보고 어안이 벙벙해지고 두려워졌다. 차가 멈추고 많은 남녀가 내렸다.그들은 화려한 옷을 입었고, 거의 모든 사람이 문신을 하고 있었다.보기에는 좋은 사람들 같지 않았다. “문수.”한 남자가 다가왔다. 드레드락과 입에 담배를 물고 있었다.“갑자기 드리프트 하러 오다니?” 송문수는 원래 서울에서 레이싱할 생각이 없었다. 아마도 감정을 발산하고 싶어서였다. 어젯밤 송승우의 전화 때문에 조금 짜증이 나서 오늘 오후와 저녁에 친구들과 놀고 싶었다. 그는 레이싱 그룹에 메시지를 남겼고 놀랍게도 전국에서 사람들이 하루 만에 모였다. 일정도 이미 잡혔고 거절할 수 없었다. 그리고 하지수가 그의 생활권에 참여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물론 그녀가 참여들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하지수는 착한 소녀여서 어릴 적부터
하지수는 송문수와 하도경을 따라 나갔다. 차는 천씨 가문의 차량으로, 운전사는 천씨 가문 소속이었다. 하도경은 조수석에, 송문수와 하지수는 뒷좌석에 앉았다.송문수와 하도경은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사이여서, 대화가 자연스럽게 오갔다.대화의 대부분은 그들 간의 이야기였다. 하지수는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않았지만, 시끄럽다고 느끼지 않고 조용히 그들의 대화를 들었다. 그러다 갑자기 그녀의 전화가 울렸다. 발신자를 확인하고 받았다.“승우 오빠.”하도경과 열심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송문수는 잠시 시선을 멈췄다. 하도경은 그 모습을 보고 약간의 미소를 지었다. 송문수는 금세 원래의 태도로 돌아와 하도경과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나는 문수랑 함께 있어요.”하지수가 말했다. “문수랑 함께 있다고? 어디야?”송승우는 놀라며 물었다. 사실 그는 멀리 가지 않았다. 물론 호텔 앞에는 없었지만, 하지수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그랬다.그는 오늘 송문수에게 전화를 걸어 분명히 말했다.송문수의 성격과 그들 사이의 좋지 않은 관계를 고려할 때, 송문수는 하지수에게서 멀어지려고 할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그는 하지수가 다시 자신에게 돌아올 준비가 되었다고 믿었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도 하지수의 전화는 오지 않았다. 그는 하지수가 어릴 때부터 강하고 독립적인 성격이었다고 생각했기에, 문제가 생기면 자발적으로 도움을 청하지 않으리라 예상했다. 그래서 하지수에게 잘 위로하고 싶어서 전화를 걸었는데, 대답은 송문수와 함께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예상치 못한, 완전히 다른 답이었다. “우리는 지금 서울 구경하러 나갔어요.”하지수가 말했다. “둘이 나가서 놀고 있다고?”송승우는 믿기지 않는 듯 물었다. “송문수와 하도경이 같이 가고 싶다고 해서, 나도 따라 나갔어요.” “너... 개의하지 않냐?”송승우가 물었다. “뭘 개의치는데요?”하지수는 이해하지 못했다. “내 말은, 너와 송문수 사이가 좋지 않으니까 함께 놀
“오해라고?”송문수는 무관심한 듯 말했다. “오해야.”하지수는 확신하며 말했다.“승우 오빠가 사진을 올릴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어.” “그러니까 안 올린다고 해서 그게 존재하지 않는 일이 되나? 너희 사이에 감정이 없다는 걸 의미하는 건가? ” 그건 웃기는 일이다. “아니야.”하지수는 초조하게 대답했다. 평소에 송문수가 이렇게 말 잘하는 걸 본 적이 없었다.성적도 좋지 않고 평소엔 느긋하게 지내던 그가 지금은 그녀를 말문이 막히게 만들고 있었다.“내 말은, 그저 관광객으로서 찍은 사진이었는데 그가 올리면서 상황이 애매해진 거야. 그래서 네가 오해할까 봐 걱정됐어.”하지수는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그래서 돌아온 거야.” 송문수는 그녀의 말을 듣고 저도 모르게 마음이 흔들렸다.하지수가 자신을 조금은 좋아하는 것 같았다.“결국 돌아와서 내가 본 건 이런 장면이라니!”하지수는 방금의 장면을 떠올리며 다시 눈가가 붉어졌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고 말없이 있었다. 그냥 너무 힘들고 속상했다. 송문수는 하지수의 모습에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녀가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는 걸까? 부부로서 남편이 바람을 피워서 속상한 건지, 아니면 그에게 진짜 호감이 생긴 건지 알 수 없었다.하지만 하지수는 어릴 적부터 그를 좋아하지 않았다. 지금 송승우가 돌아왔고 송승우가 하지수를 적극적으로 구애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녀가 송승우를 거부할 이유가 있을까? “다음번엔 그러지 않겠다고 약속해 줄 수 있어?”하지수가 그에게 물었다. 송문수는 입술을 다물고 말없이 있었다. “네가 정말로 원하면 내가 도와줄 수 있어.” 송문수는 여전히 침묵했다. “어때?”하지수가 그를 바라보았다. 물론 나쁘지 않았다. 송문수는 사실 출소 이후로 여성과의 접촉이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간단한 대답을 그는 입 밖으로 내지 못했다. 그저 하지수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았다. 하지수는 죄책감 때문에 그와 함께 있
송문수는 얼굴이 갑자기 붉어졌다. 그는 하지수가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녀가 이런 말의 위험성을 알고 있을까?정말 자각이 없는 걸까?하지수는 송문수의 붉어진 얼굴과 귀를 바라보며 찡그렸다. 이건 착각일까? 송문수가 부끄러워하고 있는 걸까? 이렇게 많은 전투를 경험한 사람이 이런 표정을 보이다니?그녀가 잘못 본 걸까? 하지수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 송문수의 뺨을 만졌다. 송문수는 순간 얼어붙었다.하지수가 말했다.“정말 뜨거워.” “너 뭐 하는 거야?” 송문수는 재빨리 몸을 떼었다. 하지수는 찡그렸다. 그가 정말로 자신을 싫어하는구나. 하지만 하지수는 그들 사이에 단지 소통과 교류가 부족하다고 느꼈다. 감정은 천천히 쌓일 수 있다고 믿었다. “나는 네가 얼굴이 붉어졌다고 생각해.”하지수가 말했다. “내가 붉어졌다고? 내가 그런 사람이야?”송문수는 부인했다.“이건 화가 난 거야 알겠어? 화가 나서 가슴이 두근거려서.” “뭘 그렇게 화내?”하지수가 물었다. “내 사람을 쫓아냈으니 내가 뭐로 화내지 않겠냐?” “내가 보완할 수 있어.” “하지수, 너 조금 자제할 수 없어? 누구한테 배운 거야? 이렇게 무례하게.” 송문수는 화가 나서 성질을 부렸다. “내가 내 남편한테... 그게 무례한 거야?”하지수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다. 그녀의 얼굴도 붉어지고 귀와 목도 빨갛게 변했다. 마치 익은 게살 같았다. 송문수의 아담한 목이 움직였다. 그 깊은 욕망이 그를 자제할 수 없게 만들었다.게다가 그녀가 방금 뭐라고 했지? 남편... 그는 시선을 아래로 돌려 하지수의 벌거벗은 몸을 보고 다시 화가 치밀었다.“아직도 안 입고 있니?” 하지수는 붉어진 입술을 깨물었다. 결국 그녀는 송문수를 흔들지 못했다.비록 그녀가 이 날을 위해 오랫동안 준비했지만 준비한 것이 많았다. “정말 성가셔.”송문수는 하지수가 오랫동안 아무 행동을 하지 않
그는 다른 여자들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오늘 그 여자도 그냥 형식적으로 불렀을 뿐이었다. 송승우가 하지수를 도덕적으로 강요한다고 말했기 때문에 하지수의 관계를 깔끔하게 끊고 싶어 했다. “한번 해보면 어때?”하지수는 단호하게 말했다. “해보지 않을 거야.”송문수는 단칼에 거절했다.“하지수, 너...” 송문수는 정말 화가 나버릴 지경이었다. 하지수가 몰래 연습했다는 생각만 해도 화가 치밀어올랐다. “해보지 않으면 어떻게 잘할 수 있는지 알겠어?” “필요 없어.” “송문수, 그렇게 싫어해?”하지수는 겨우 참았던 눈물이 이제는 미친 듯이 쏟아졌다.“울지 마.”송문수는 더는 참을 수 없었다. 하지수가 언제 이렇게 잘 울었어?크면서 울고 있는 모습을 거의 보지 못했다. 특히 결혼한 후 하지수는 마치 다른 사람처럼 변해버렸다. 성숙하고 침착해져서 울지도 웃지도 않았다. 송문수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수가 이런 감정을 억누르고 송승우에게만 보여줬다는 것을. 하지만 지금 하지수는 아이처럼 울고 있었다. 평소의 침착함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 여자를 내보내.”하지수는 침대에 앉아 있는 여자를 가리켰다. 여자는 이 순간 두 사람의 시선에 충격을 받았다. 오늘 큰 거래를 성사했고 가격이 맨몸으로 뛰어다니게 할 만큼 좋았다. 여자는 올 때 모든 매력을 한껏 발산하려 했고, 돈이 문제인 게 아니라 진짜 남자를 보고 나니 뭔가 대박을 터뜨린 기분이었다.잘생길 뿐만 아니라 경험이 많은 여자는 직감적으로 이 남자가 큰 만족감을 줄 것 같다고 생각했다.그래서 여자는 자신의 모든 기술을 사용했지만 남자는 여자를 한 번도 보지 않고 규칙을 지키라고 했다. 둘은 같은 이불 속에 누워 있었는데 여자를 만지지 말라고 했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여자는 혼란스러웠지만 돈을 위해서는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지금 이 장면이 벌어졌다. 여자는 입을 다물고 있지 않았다.
“하지수, 너 미쳤어?” 송문수는 하지수의 등을 강하게 바라보며 눈이 금세 충혈되었다. 그의 표정은 분노라기보다는 당황스러움이 더 컸다.하지수가 자신이 바람을 피우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을 때의 여러 가지 반응을 떠올려보았다. 송문수를 때리며 분을 풀 수도 있다. 하지만 하지수의 성격을 생각했을 때, 그 가능성은 낮아 보였다. 둘째, 침대에 있는 여자를 쫓아낼 수도 있었다. 예전에 그런 적이 있었다. 셋째, 돌아서서 그냥 떠날수도 있었다.이 세 번째 가능성이 가장 현실적이라고 생각했다. 상관없다면 아무 반응도 없을 것이다. 사실 하지수는 방금 떠났었다. 그런데 왜 다시 돌아온 거지?그리고 이런 이상한 행동을 하다니, 송문수는 순간적으로 혼란스러웠다. 송문수는 서둘러 하지수의 옷을 올려주며 말했다.“하지수, 너 미쳤어?” 하지수는 그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억울한 모습에 송문수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송문수는 하지수가 자신을 위해 울고 있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갑자기 이렇게 울어버리다니. 하지수가 버림받은 듯 처참한 마음이었다.그런데 하지수는 송승우를 좋아하는 것 아닌가?송문수는 하지수를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어찌할 바를 모른 채 서 있었다. “송문수, 나도 할 수 있어.”하지수는 절규하듯 말했다. “뭐?”송문수는 얼굴을 찡그리며 물었다. 지금 이 상황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송문수의 눈에는 오직 하지수의 눈물만 보였고, 닦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나도 너와 함께 잘 수 있어.”하지수는 울먹이며 말했다. 슬픔에 차서 그녀는 계속 흐느꼈다. 송문수는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무슨 말을 해도 하지수를 더 울릴 것 같았다. 송문수는 갑자기 그녀가 울어버릴까 두려워졌다. 어릴 적처럼. 그는 사실 매번 하지수를 울리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하지수의 시선이 항상 송승우에게 향해 있었기에 그가 장난을 치지 않으면 하지수는 그를 전혀 주목하
이렇게 보니 그 여자는 아무것도 입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방금 송문수가 침대에 누웠을 때 하지수도 그가 아무것도 입지 않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설마... 하지수는 침대 쪽으로 다가갔다. 송문수는 찡그린 얼굴로 하지수의 행동을 주의 깊게 바라보았다. 송문수는 하지수가 나갈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런데 하지수가 갑자기 돌아왔으니... “아!”여자가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하지수가 여자의 이불을 잡아당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분명 이 침대는 어젯밤 하지수가 덮었던 것이고 지금은 다른 여자가 그 이불을 품고 있었다. 송문수는 정말 더럽지 않은가? 정말 더럽다고 느끼지 않는가? 다른 장소로 옮길 수는 없었나?굳이 그녀가 잤던 침대에서 하겠다는 것인가?굳이 이렇게 그녀와 마주쳐야만 하는가? “뭘 하는 거야!”송문수가 하지수를 힘껏 잡아당겼다. 힘이 세서 하지수는 비틀거리며 거의 바닥에 넘어질 뻔했다. 송문수는 본능적으로 하지수를 받쳤다. 다음 순간 그는 즉시 하지수를 놓아버렸다. “나가.”송문수가 짜증을 내며 말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송문수는 바로 몸을 돌렸다. 하지수는 송문수의 냉담한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하지수는 방금 송승우에게 송문수가 함부로 행동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었다. 지금 이렇게 큰 타격을 받았다. 정말 아프게 맞았다. 하지수는 입술을 깨물어 하얗게 변했다. 조용한 방에서 하지수는 갑자기 고개를 숙이고 옷을 벗기 시작했다. 침대에 누워있던 여자는 하지수의 행동에 놀랐다. 이 여자는 그들과 함께하려는 건가?이건 너무 자극적 아닌가?아직 준비가 안 되었었다. 송문수는 하지수의 등 뒤를 바라보며 하지수가 나가길 기다리고 있었다. 송문수는 하지수가 돌아온 걸 알고 있었다. 송승우가 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송승우는 그들 사이에 감정이 없다면 더 이상 엉켜 있지 말라고 했다. 그는 하지수가 예전의 일로 송문수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있어서 그를 위
“지수야, 너는 좋은 아이라는 걸 알아. 네가 얼마나 착한지도 알아. 하지만 네가 이렇게 집착하는 건 원하지 않아.”송승우가 좀 더 진지해졌다.“너의 방식은 너 자신을 다치는 것뿐만 아니라 문수에게도 상처를 주고 있어.” 하지수는 잠시 멈칫하며 송승우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알다시피 너와 문수의 결혼은 네가 이끌어 가고 있는 거야. 네가 이혼하지 않는 한 부모님은 너희를 이혼할 수 없어. 그런데 네가 이렇게 송문수와 얽히고 있으면 그의 감정을 생각해 본 적 있어? 그는 이혼하고 싶지만 이혼할 수 없고 놀고 싶어도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돼. 지금 문수도 진퇴양난이야.” “하지만 나는 송문수가...” “그가 너를 좋아한다고 생각하니? 그날 밤 음주 운전까지 하면서 너를 만나러 오려 했던 거?”송승우가 물었다. 하지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실제로 송문수가 자신을 어느 정도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왜 그런 일을 했을까? 술을 마셨는데도 쉽게 떠날 수 없었던 그는 그녀의 전화를 받고 빗속을 뚫고 오는 데 두려워하지 않았다.그때 그녀의 마음이 흔들렸다고 인정한다.송문수에게 처음으로 심장이 두근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그 후 그녀는 그가 출소하기를 기다리며 진심으로 다시 시작하고 싶어 했지만 송문수 계속 거절했다. “지수야, 너는 너무 순수해.”송승우가 말했다.“이런 일이 누구에게나 일어나면 당연히 신경 쓰게 돼. 송문수가 네 사고 이후에 너를 찾아온 건 인간적인 걱정일 뿐이고, 그의 음주 운전은 법을 무시한 행동이었을 뿐이야. 혼동하면 안 돼.” “하지만...” “지금 나는 너를 강요하지 않아. 네가 현실을 제대로 인식할 시간을 줄게.”송승우가 하지수를 바라보며 안타까운 눈빛을 보냈다.“나는 네가 상처받는 걸 원하지 않지만 지금 보니 너는 끝까지 가봐야만 마음을 바꿀 것 같아.” 하지수는 침묵했다. 그래. 하지수는 더 노력하고 싶었다. 하지수는 송문수와의 가능성이 있다고 믿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