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이연이 인상을 찌푸렸다.“나의 재산을 너에게 절반 주려고.”육현경은 사뭇 진지했다.소이연의 마음이 일렁였다.알게 된 지 반년 밖에 안되고 사귀게 된 지는 4개월 밖에 안 되는데 이 남자는 결혼까지 생각하고 있어…아니, 사실 그는 미래에 태어날 아기 이름까지 생각해놓았다.“가자.”육현경이 그녀의 손을 잡고는 다음 가게로 향했다.소이연은 육현경이 매장 전체를 다 구매할까 봐 겁이 났다.그녀가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나 좀 힘들어. 저기서 쉬면서 커피나 한잔하고 싶어.”“그래.”육현경은 소이연을 데리고 카페로 들어갔다.그들이 산 물건은 모두 호텔 직원이 대신 들고 있었다.너무 많이 사서 여러 직원이 교대로 들기까지 했다.소이연은 아이스크림이 갑자기 당겼다.어떤 맛을 선택할까?“여기 있는 모든 맛 다 하나씩 주세요.”육현경이 카페 직원에게 말했다.카페 직원도 봐온 것이 있는 사람이었다.필경 여기에 여행 와서 쇼핑하는 사람이라면 다 큰 인물이었기 때문이다.직원이 메뉴를 누르려던 그때.“초콜릿 맛으로 주세요.”소이연이 직원한테 말했다.“그렇게 많이 못 먹어서요. 차가운 걸 많이 먹으면 몸에도 안 좋고요.”직원은 육현경을 쳐다보았고 육현경은 고개를 끄덕였다.직원은 인사를 하고는 물러났다.“너는 안 시켜?”소이연은 갑자기 생각난 듯 물었다.“이연이가 차가운 걸 먹으면 안 좋다기에.”육현경이 바로 대답했다.흥, 언제부터 내 말을 그렇게 잘 들었다고.얼마 지나지 않아 직원이 아이스크림을 가져왔다.소이연이 한입 물었다.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크림과 초콜릿 맛은 아주 일품이었다.“맛있어?”육현경은 궁금했다.“응. 엄청 맛있어.”소이연은 대답한 후 또 한 입 먹으려 했다.이때 육현경이 갑자기 고개를 내밀며 소이연이 금방 물었던 곳에 입을 댔다.소이연이 입술을 깨물었다.육현경은 소이연의 주시 하에 한 입 먹더니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정말 맛있네.”“너도 주문하지 그래?”“아니야. 차가운 걸 먹으면
촬영사는 블루투스로 원본을 육현경에게 넘겼다.육현경은 파일을 받고서 눈도 깜빡이지 않고 사진만 들여다보았다.얼마나 이쁘면 육현경이 이렇게 집중해서 볼까?관심 없던 소이연도 참지 못하고 보려고 했다.“나도 볼래.”소이연은 결국 참지 못하고 말했다.육현경은 그제야 휴대폰에서 시선을 떼고 소이연에게 휴대폰을 건넸다.소이연이 그 사진을 쳐다보았다.사진 속에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그의 옆모습은 조각상 같았다.정작 자신은 그가 아이스크림을 다 먹을까 봐 아이스크림을 보고 있는 줄 알았는데…내가 왜 육현경을 쳐다보고 있었지?그리고 이 멜로 눈깔은 도대체 뭔데!이걸 어떻게 설명하지…“다 봤어?”육현경이 부드럽게 물었다.“응.”소이연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면서 휴대폰을 육현경에게 돌려주었다.그가 웃으면서 말했다.“가자.”“어디를?”소이연은 어안이 벙벙했다.“어디긴? 번지 점프!”“응?”아니, 어딜 자꾸 돌아다녀! 좀 쉬자, 나도!여섯 번째 날.발리에서의 마지막 날이다.내일 아침이면 다시 장안으로 돌아가야 한다.처음엔 울며 겨자 먹기로 왔는데 마지막 날이 다가오니 슬슬 떠나기 아쉬웠다.이렇게 한 곳이 좋았던 적은 없었어.외국이든 장안시든, 내게 있어서 그저 지낼 곳일 뿐이었는데.발리에서는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든 것 같아.여기서 고민을 털어버리고 힐링할 수 있다는 것을 깊게 깨달았어.하지만 마지막 날, 육현경이 갑자기 사라져버렸다.이전에는 그녀가 깨어나기도 전에 육현경이 문을 박차고 들어와 그녀를 안고 나갔었다.그런데 오늘은 어딜 간 거지?소이연이 육현경에게 전화를 걸었다.육현경은 업무 상의 일로 나가봐야 해서 저녁때쯤에 돌아오겠다고 했다.그래서 일 때문에 나를 버리고 갔다, 이 거지?흥, 너무해!그래도 일이 중요하긴 하지.소이연은 혼자 심심했지만 육현경한테 잡혀서 극한 운동을 하지 않아도 되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그녀는 호텔에서 잠을 보충하고, 깨어나 밥을 먹고는 수영도 했다.하늘이 어두워지고 밤이
“이연아.”그녀의 뒤쪽에서 육현경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소이연의 가슴이 빠르게 뛰었다.육현경 이 남자, 언제 내 뒤에 온 거지?너무 긴장되어서 뒤돌아보지도 못하겠어.심장이 빨리 뛰다 못해 터질 것만 같아…그녀는 심호흡으로 가슴을 진정시키고는 뒤로 돌았다.눈 앞에 검은색 정장 차림을 한 육현경이 커다란 장미 꽃다발을 들고 있었다.알록달록한 등불과 어우러져 분위기가 로맨틱했다.평정심을 찾은지 얼마 안 되어서 그녀의 가슴이 또다시 콩닥콩닥 뛰었다.“오래 기다렸지?”육현경이 웃으면서 말했다.그의 미소는 단번에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았다.소이연은 시선을 다른 곳에 두고 대답했다.“오늘 하루 종일 안 오길래 뭐하나 했는데 업무 보러 간 게 아니라 서프라이즈를 준비한 거야?”“이것도 일종 업무지.”육현경이 미소를 지었다.“나 지금 협업 건을 위해 노력하고 있잖아?”“응?”날 협업회사 취급을 하다니…육현경이 그녀의 손을 잡고 함께 식탁 앞으로 왔다.발리는 열대지역이지만 저녁에는 선선했다.두 사람은 바닷바람을 맞으면서 여유롭게 식탁에서 식사를 나누었다.육현경이 낭만적인 남자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그저 며칠 놀다가 여행을 마무리하는 줄 알았는데 육현경은 그녀에게 최고의 엔딩을 선물해 주었다.그래서 몇 년 뒤에도 그녀는 이 밤의 설렘을 추억하곤 했다.갑자기 해변가에 바이올린 소리가 울려 퍼졌다.소이연이 그쪽으로 바라볼 때 육현경은 나이프를 내려놓고 그녀 앞으로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이연아, 나랑 춤추지 않을래?”소이연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는 천천히 육현경의 손위에 자신의 손을 올려놓았다.두 사람은 부드러운 바이올린 선율에 따라 춤을 췄다.무거운 호흡이 서로 얽힐 만큼 가까워졌다.“이연아, 이번 여행 어땠어?”육현경이 그녀에게 물었다.그 덕에 긴장되고 어딘가 간지러운 분위기를 깼다.“좋았어.”소이연이 고개를 끄덕였다.“난 그다지 좋지 않았는데.”육현경의 직설적인 발언에 소이연은 인상을 찌푸렸다.“더 놀고
아름답고 여유로운 행복한 밤.두 그림자가 얽혀 있었다.육현경은 오래도록 반응하지 못했다.오히려 소이연의 리드하에 진한 키스를 이어가고 있었다.생소하고 긴장해하던 육현경이 침을 삼키더니 큰 손으로 천천히 그녀의 작고 여린 몸을 꽉 끌어안았다.그리고 머리를 숙여 더 깊게 그녀의 입술을 삼켰다.두 사람은 여기가 어디인지도 잊을 정도로 서로에게 집중했다.깊고 뜨겁게 하나가 되었다.소이연은 다리에 힘이 풀렸다.힘 풀릴 정도로 키스할 줄이야.그때 육현경이 어린 아이를 안은 것처럼 번쩍 들어올려서 소이연은 깜짝 놀랐다.그가 그녀를 옆에 있던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육현경은 그녀에게 숨 돌릴 틈도 주지 않고 다시 키스를 퍼부었다.오래도록 깊은 숨결을 나누었다.밤이 더 깊어갔다.소이연의 여린 몸은 이미 육현경한테 밀려 식탁에 닿았다.육현경은 식탁의 식기와 그릇을 땅에 떨어뜨리고 아름다운 소이연을 올려 놓았다.가녀린 몸매 그리고 키스로 인해 빨개진 두 볼은 그에게 있어서 치명적인 유혹이었다.그녀를 안고 싶은 마음이 점점 커져만 갔다.그 마음은 불이 붙은 장작처럼 소이연을 뜨겁게 달굴 것만 같았다.성인 남녀 사이는 눈빛 하나만으로도 분위기가 바뀐다.소이연은 너무 긴장해 거친 호흡을 몰아쉬었다.거친 호흡 탓에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그 모습을 본 육현경은 당장 그녀를 덮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그녀는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이 남자의 갈증을 자극하는지 모를 것이다.이 갈증과 욕구를 참으려면 도대체 얼마나 참아야 할까?육현경의 몸이 천천히 소이연에게 다가가 그녀의 입술을 깨물었다.그가 하고 싶어 한다는 걸 알아. 그것도 아주 많이.그녀는 주먹을 꽉 쥐었다.갑자기 18살 때 겪은 악몽이 머릿속에 떠오르며 공포가 밀려왔다.하지만 육현경이 가까이에 왔을 때 그녀는 눈을 감았다.주먹을 꽉 주었지만 그를 밀어낼 생각은 없었다.억지로라도 버티면서 받아주고 싶었다.한참 후. 예상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그녀를 누르던 중력도 사라졌다.소
소이연이 해변가에 서서 불렀다.“육현경!”육현경은 바다 안에서 고개를 내밀었다.하얀 셔츠가 젖어 몸에 딱 달라붙어 그의 탄탄한 근육과 몸매 라인을 돋보이게 했다.“이제는 나오지 그래?”소이연은 그에게 말했다.“그러려고.”“나와.”소이연이 손을 뻗어 그를 잡으려 했다.“이연아, 아직 날 건드리면 안 될 것 같은데.”육현경의 경고에 소이연의 손이 멈칫했다.그 말속의 뜻을 알아차렸다.“내가 알아서 나갈게.”육현경은 바다 속에서 나왔다.저녁이라 바닷물이 차가웠다.그 속에서 나온 육현경은 온몸이 얼음장 같았는데 이때 마침 바닷바람이 불어왔다.육현경이 재채기를 했다.그 모습이 좀 불쌍해 보이기도 했다.소이연은 참지 못하고 웃었다.“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육현경은 어이가 없었다.“방에 들어가자.”소이연은 기분이 좋은지 웃으면서 대답했다.두 사람은 앞뒤로 나란히 걸어서 별장으로 들어갔다.육현경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따뜻한 물에 씻고 쉬려고 했다.“육현경.”육현경은 고개를 돌렸다.“고마워.”소이연이 환하게 웃었다.오늘 밤 그의 행동에 너무 감동을 받았어.육현경은 어이가 없었지만 애써 입꼬리를 올렸다.“날 욕해줬으면 했는데.”소이연이 인상을 찌푸렸다.이 사람, 혹시 학대 경향이 있어?“짐승보다 못하다고.”육현경은 이 말만을 남겨놓고 뒤돌아 갔다.굳게 닫힌 그의 방문을 보고서 소이연이 미소를 지었다.그녀는 말 뜻을 알고 있었다.아마도 다음번에 할지도 몰라.소이연은 방으로 돌아와 씻고 누웠다.여행 온 내내 피곤해서 누우면 바로 자는 편이었다.그런데 오늘 밤은 왠지 잠이 오지 않아서 머리 위에 있는 하늘을 쳐다보며 눈만 깜빡였다.그녀는 아직도 부어있는 입술을 깨물었다.방금 육현경과 진한 키스를 했던 장면을 떠올렸더니 마음이 간질거렸다.이번 키스는 반항도 하지 않고…그전에 두 번의 키스는 가벼운 터치였다면 이번은…소이연이 이불 속으로 숨었다.더 생각하면 안 돼.다음 날.소이연의 눈 밑에 다크서클
결국, 소이연과 육현경은 돌아가는 비행기에 올랐다.장안시에 도착했을 때 이미 오후 3시였다.어젯밤 잠을 설친 두 사람은 비행기에서 잠을 보충해서야 정신이 들었다.육현경의 검은색 마이바흐가 비행기 옆에 주차되어 있었다.이명진이 그 옆에 서서 정중하게 그들을 맞이했다.그가 공손히 차 문을 열며 말했다. “대표님, 사모님 돌아오신 것을 환영합니다.”사모님......소이연의 얼굴이 달아올랐다.두 사람은 차에 올라탔다.이명진이 보조석에 앉아 업무 보고를 시작했다. “대표님께서 자리를 비운 동안, 원래 잡혀 있던 접대 자리를 미뤄두었습니다. 시키신 대로 다시 내일 저녁과 모레 저녁, 글피 저녁으로 조율해 두었습니다.”육현경이 짧게 대답했다.“그리고, 오늘 저녁 육씨 그룹의 창립 기념 행사가 있습니다. 중요한 손님들이 많이 오시는 자리이고, 할아버님께서 특별히 다시 한번 꼭 참여해야 한다고 말씀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정장은 이미 준비해 두었으니 갈아입기만 하시면 됩니다.” 이명진이 보고를 마치고 이어서 말했다. “사모님의 드레스도 요청하신 대로 준비해 두었습니다.”소이연이 어리둥절했다. “나도 가야 돼?”“당연하지.” 육현경이 대답했다. “육씨 그룹의 미래 사모님인데, 당연히 가서 얼굴을 익혀 놔 야지.”소이연은 이명진도 있는 자리에서 정말 당혹스러웠다.“사모님.” 명진은 정중히 말했다. “은하 패션과 방송국의 협업 관련 미팅은 제가 내일 오전 10시로 미뤄두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미 마무리되었고, 이건 계약서입니다. 만약 사모님께서 아무 문제없다고 여기시면, 내일 직접 방송국에 가셔서 서명하시면 됩니다.”이명진이 계약서를 소이연에게 건넸다.소이연은 어떻게 감사해야 할지 정말 어쩔 줄 몰랐다.며칠 나가서 놀았는데도 일에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소이연은 서류를 보며 말했다. “명진 씨, 대표님이 월급 많이 주세요?”이명진이 입을 열기 전에 육현경이 말했다. “네가 못 빼돌릴 만큼.”소이연이 눈을 크게 뜨고 육현경을 보았다.까불
굉장히 바빴다.연회장의 작은 소동이 일어난다 해도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없었다. 그래서 소이연이 왔음에도 불구하고 별 반응이 없었다.사람들 틈으로 지나갈 때는 아름다운 금빛 자태로 시선을 사로잡긴 했지만 그 이상은 아니었다. 고위층 권력자들끼리 서로의 접대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했기 때문이다.소이연은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그녀가 아는 사람도 몇몇 있었지만 많지 않았다. 오늘 육씨 가문 창립 기념 행사에 온 사람들은 장안시 사람들뿐만이 아닌 것 같았다. 처음 보는 얼굴들이 꽤 있었기 때문이다.당연히 그녀는 여기에 집중하지 않았다. 그녀의 주요 목적은 육민을 찾는 것이었다.오랫동안 못 봐서, 너무 보고 싶었다.소이연은 오가는 사람들을 보았다.“소이연?” 갑자기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소이연이 고개를 돌려보니, 낯은 익은데 누군지 정말 생각이 안 나는 사람이 서 있었다.남자도 실망한 듯한 얼굴이 드러났다.“나 장지원.” 장지원이 떨떠름하게 자기소개를 했다.그새 나를 잊어버렸어?아니, 이 여자가 일부러 그럴 수도 있어.여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방법이 잡기 위해 일부러 놓아주는 것이 아닌가?소이연은 여전히 의아했다. 장지원이 누군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일하다 만난 사람인가?하지만 그녀와 일을 하다가 만난 사람들은 보통 마지막에 잘되지 않거나 잠시 스쳤더라도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일하기 전에 만나야 할 사람에 대해 많은 공부를 하고 있어서 아무런 기억도 없을 리가 없었다.장지원은 소이연이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화를 감추지 못하고 말했다. “소이연, 남자들이 일부러 봐준다고 너무 심하면 그것도 별로야!”소이연은 인사라도 잘해보려고 했다.그가 그녀를 안다고 하니 이런 상황에서 당연히 상대의 체면을 살려주는 것이 연회 주최자에 대한 존중이라 생각했다.하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는 상호 관계이므로, 어느 한 사람이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일은 없다.그녀는 몸을 돌렸다.“소이연
소이연이 차가운 얼굴로 장지원을 보았다.원래 우연히 알게 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사람을 화나게 할 줄 몰랐다.“오늘 저녁 행사에 온 사람들은 다들 부자 아니면 중요한 인물들이야.” 장지원이 당당히 말했다.“그래서?” 소이연이 되물었다.“그래서 나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이라고!” 장지원은 화가 치밀어 목소리가 커졌다.소이연이 비웃으며 말했다.진심으로 너무 웃겼다.그녀가 말했다. “우리 지금 그런 행사장에서 만난 거 아니야?”장지원은 멍해졌다.소이연의 비웃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근데 너는 소씨 그룹에 빌붙은 거잖아.” 장지원은 자신을 치켜세울 만한 부분을 찾고 있었다. “게다가 나는 나 스스로 초대받고 온 거야.”“그럼 넌 소씨 가문 사람들 봤겠네?” 소이연이 물었다.소씨 가문 사람뿐만 아니라, 문씨 가문 사람들도 보지 못했다.장안시에서 그들의 지위 정도면 초대받아서 오는 것이 정상이다.그리고 일단 초대를 받으면 당연히 서둘러 왔지 늦거나 참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연회장 전체를 둘러봐도 두 가문의 사람들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 2층이나 3층에 있을 가능성도 없다.대부분의 사람들은 1층에 있었고 인맥을 넓히기에도 더 편리했다. 그러니 워낙 접대를 좋아하는 두 가문에서 이런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유일한 가능성은, 그들이 정말 초대받지 못했다는 것.왜 초대를 받지 못했을까...... 소이연은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육현경의 단독 행동이었을 것이다.속으로 또 한 번 감동했다.장지원은 소이연의 말을 듣고서야 정말 소씨 가문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의식했다. 그가 연회장에 도착한 지 꽤 되었는데 못 봤을 리는 없다.“그래도 저번 대회에서 우승한 덕에 육씨 가문이 마지못해 초대한 거겠지. 너 그거 잠깐이야. 좀만 지나면 육씨 가문 눈에 들기도 힘들 걸!” 장지원은 여러 가지 이유를 억지로 끼워 맞춰 소이연을 비하했다. “넌 뭐가 그렇게 당당해?!”“진짜 내로남불이네.” 소이연은 차갑게
사실 송문수도 내성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하지수의 앞에서 늘 냉담한 표정을 지었다.송문수의 말에 하지수는 한숨을 내쉬었다.“왜 모두 날 못 믿는 거지?”송승우가 그녀를 믿지 않을 뿐만 아니라 송문수도 그녀를 믿지 않았다. 자신의 말이 이렇게 신뢰성이 없단 말인가?“그냥 송승우는 나보다 훨씬 나은데 당신이 날 선택하는 것이 이해가 안 돼서 그래.”송문수는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지만 심장이 벌렁벌렁 뛰었다. 그는 너무 긴장해서 숨이 막힐 정도였다.“승우 오빠가 문수 씨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하지 않아.”하지수는 망설이지 않고 말하였다.“응?”하지수의 말에 송문수는 눈썹을 치켜세웠고 자기의 귀를 의심하였다.송승우는 자기보다 능력이 뛰어나고 더 똑똑한 것은 모두에게 알려진 사실이었다.반대로 자신은 그냥 못난 놈이었다.그는 어렸을 때부터 무능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승우 오빠가 문수 씨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하지 않아. 점점 그런 생각이 들어.”하지수는 다시 한번 말하였다.“근데 너 어렸을 때부터 형만 좋아했잖아? 몇 년 동안 좋아했지?”“지금 생각하면 그건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의지해서 그런 것 같아.”하지수는 송문수에게 약을 발라주면서 말하였다.“어렸을 때 승우 오빠가 성숙하고 듬직하고 성격도 좋다고 생각했어. 당신처럼 걸핏하면 나를 괴롭히지는 않았으니까. 그리고 난 부모님이 돌아가셨고 또 낯선 환경에서 생활하다 보니 안전감을 줄 수 있는 듬직한 사람을 찾으려고 했던 것 같아.”하지수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그때 승우 오빠는 나를 지켜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 하지만 난 정말 승우 오빠와의 감정을 진지하게 생각한 적이 없었어. 승우 오빠에 대한 의지를 사랑으로 착각했던 것 같아. 지금 생각하면 아니야.”하지수는 연고를 내려놓고 송문수를 바라보면서 말했다.“지금은 승우 오빠가 날 결혼식장에 버려두고 간 것을 조금도 원망하지 않아. 그리고 승우 오빠와 다시 잘되고 싶은 생각이 없고 심지어 나와 더 멀리 떨어졌으면 좋겠어
“승우 오빠, 우리 사이에 정말 끝났다고 몇 번 말해야 돼요? 우린 더 이상 가능성이 없어요.”사실 하지수는 화가 좀 났다. 도대체 어떻게 말해야 송승우가 자신의 진실한 속마음을 믿을까? 왜 이렇게 집착하지?송승우는 매서운 눈초리로 하지수를 노려보면서 이를 갈았다.“후회하지 마, 하지수!”“쾅!”송승우는 차에서 내릴 때 차 문을 세게 닫아서 차가 흔들렸다.그가 얼마나 화났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기사마저 소스라쳐 놀라서 감히 숨도 쉬지 못했고 떠나야 할지 제자리에 있어야 할지 몰랐다.“가세요.”오히려 하지수는 담담한 태도로 말했다.송문수는 고개를 돌려 하지수를 바라보았다. 그는 속으로 조금 기뻤지만 감히 기뻐할 수는 없었다. 그는 하지수에 대해 늘 환득환실하였다.기사는 다시 브레이크를 밟고 그들을 데려다주었다.차 안은 여전히 조용하였다. 송문수는 하지수가 먼저 말을 걸지 않으면 죽어도 입을 열지 않겠다고 생각하였다.어느새 주차장에 이르렀다. 두 사람은 앞뒤로 차에서 내렸다.지금 두 사람은 모두 피곤하였다. 저녁 내내 난리 쳐서 벌써 새벽 3시 넘었고 이제 4시간 정도만 잘 수 있었다.“문수 씨, 먼저 씻어. 욕실에서 나오면 내가 방에서 약 발라 줄게. 당신 얼굴에 멍이 좀 들었고 손도 좀 부었잖아.”하지수는 피곤하지만 억지로 정신을 가다듬고 말했다. 송문수는 입술을 오므리다가 대답하였다.“알았어.”하지수는 우선 방에 들어가서 샤워했고 그제야 정신이 조금 들었다.그녀는 거실에서 약상자를 찾은 후 송문수의 방문을 두드렸다.송문수는 잠옷을 입고 소파에 앉아 있었다. 그는 담배를 들고 있었는데 불을 붙이지 않았다.왠지 모르게 갑자기 담배를 피고 싶지 않았고 하지수가 담배 연기를 맡으면 기침을 할까 봐 걱정되기도 하였다.하지수는 그의 옆에 앉아서 요오드포름과 상처치료용 연고를 꺼냈다.“문수 씨, 머리를 조금만 수그려줘. 바를 수가 없잖아.”하지수가 다정하게 말하자 송문수도 순순히 따라서 하였다.그가 이렇게 말을 잘 듣는
“문수 씨.”하지수는 송문수의 이름을 불렀다. 그녀는 지금 송문수가 화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지만 송승우에게 무슨 일이라도 있으면...어쨌든 한 가족이 아닌가.그녀는 가정의 불화를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그래도 승우 오빠를 병원에 보내야 하잖아.”하지수는 큰 소리로 송문수에게 말하자 송문수는 발걸음을 멈추었다.사실 송승우는 별일 없었다. 송문수는 격투기를 배운 적이 있기에 사람의 어느 부위가 다치면 안 되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송승우를 이성을 잃을 정도로 때렸어도 급소를 때리지 않았다.하지수는 송문수의 대답을 듣지 못하자 다급히 핸드폰을 꺼내서 긴급구조 요청을 하였다.구급차를 기다리는 동안, 하지수는 송승우에게 다가가지 않았다.그녀는 멀지 않은 곳에 서서 바닥에 쓰러진 송승우를 바라보았다.송승우의 분노가 극도에 이르렀지만 송문수와 싸울 힘이 없었다.사실 하지수도 요새 송승우와 송문수가 자주 싸우는 이유를 몰랐다. 오늘은 벌써 두 번째였다.어렸을 때 두 형제의 관계가 그다지 친밀하지 않았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지금 어른이 되었는데 아직 유치하게 싸우다니!이윽고 구급차가 도착했고 구조대원들은 들것으로 송승우를 구급차에 태웠다.하지수도 따라서 올라탔지만 송문수는 타지 않았다.하지수는 잠시 망설이다가 내려와서 송문수를 잡아당겨서 같이 구급차에 올라탔다.구급차 안은 매우 조용하였다.아무도 말하지 않았고 차 안의 분위기에 아직 분노의 불꽃이 튕기는 것 같았다.병원에 도착한 후 송승우는 응급실로 옮겼다.하지수와 송문수는 로비에서 기다렸다. 송문수는 차가운 분위기를 풍기면서 한쪽에 서 있었다.사실 하지수는 송문수의 얼굴에도 상처가 있는 것을 보았다. “문수 씨도 얼굴과 몸에 난 상처를 검사하지 않을래?”“필요 없어. 외상이라 금방 나을 거야”송문수가 이렇게 말하자 하지수도 강요하지 않았다.잠시 후, 송승우는 응급실에서 나왔고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모두 외상이라 별문제가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지금 입원 수속
“놓지 못해?”송문수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하면서 송승우를 바라보았다.서로 마주 본 두 사람의 눈에는 분노로 가득 차 있었고 일촉즉발의 분위기였다.“이거 놔요.”하지수도 송승우의 손을 힘껏 뿌리쳤다. 그러자 송승우의 눈빛에 분노로 이글이글 타올랐다.그는 더욱 세게 하지수를 잡아당겼다.하지수는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아파요!”송문수의 안색이 더욱 어두워졌다.“놓으라고 했다!”그는 송승우의 팔을 끌어당기는 손에 힘을 꽉 주었다. 이에 송승우는 통증을 느꼈으나 승부욕 때문에 쉽게 놓을 수가 없었다.송문수가 힘을 줄수록 그도 더욱 힘을 줘서 하지수를 잡아당겼다.하지수는 너무 아파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송승우는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 “이걸 놔. 나와 지수의 일에 끼어들지 마.”“끼어들지 말라고?”송문수는 냉소를 지으면서 말했다.“형이 잊은 것 같은데 지수는 내 와이프야. 우린 부부이지만 형과 지수는 아무 사이도 아니잖아? 지금 형이 내 와이프를 데려가려고 하는데 나보고 끼어들지 말라고? 너무 뻔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너!”송문수의 쏘아붙인 말에 송승우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예전에 송승우는 하지수가 자신을 좋아했기 때문에 송문수를 안중에 넣지도 않았고 그들의 결혼 관계를 진지하게 생각한 적도 없었다.그러나 지금 송문수에게 이런 모욕을 당하다니!“지수가 좋아한 사람은 나야!”송승우는 수치심에 더 약이 올라서 노기어린 목소리로 외쳤다.하지수는 너무 아파서 반박할 힘도 없었고 송문수의 말이 들려왔다.“지수가 누구를 좋아하든 지금은 내 여자야. 누구도 데려갈 수 없고 누구도 지수를 괴롭힐 수 없다고! 셋까지 셀 테니 지수를 놓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송승우는 끄덕하지도 않고 송문수를 노려보았다.“하나.”“둘.”송문수는 ‘셋’을 세는 대신 주먹을 들고 송승우의 얼굴을 세게 강타했다.송문수의 한 방을 맞은 송승우는 코피를 흘렸고 아픔으로 이내 하지수를 놓아주었다.그러나 송승우는 소심한 사람이었다. 그는 늘
‘내가 자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건가?’“승우 씨, 사과 따위 이제 필요 없어요. 지금 제가 바라는 건 아무 탈 없이 우리 사이의 관계를 끝내는 거예요. 승우 씨는 문수 씨 형이잖아요. 게다가 저도 어릴 때부터 송씨 가문에서 자란 사람이고요. 그러니까 우리 그냥 친척 같은 관계로 돌아갔으면 좋겠어요.”하지수는 인내심을 가지고 진지하게 말했다.송승우는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며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지수는 더 이상 그와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망상에 빠진 사람은 무슨 말을 하든 헤어 나올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그녀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으니 그걸로 됐다고 생각했다.하지수는 뒤를 돌아 송문수 쪽으로 다가가려 했다. 늦은 시간이었고 그녀도 여전히 많이 피곤했다. 송문수랑 같이 집으로 가서 자고 싶었다.크레지가 아직 오지 않은 이상, 기술 투자 계약서에 사인하지 않은 이상 방심할 수는 없었다. 그들은 짬짬이 시간을 내서 잠을 잘 수밖에 없었다.그런데 막 돌아서려는 순간, 그녀의 손은 또다시 송승우에 의해 붙잡혔다.하지수가 아무리 팔을 흔들어도 벗어날 수 없었다.송문수는 차가운 눈빛으로 송승우의 행동을 지켜보며 주먹을 꽉 움켜잡았다.그가 앞으로 다가가 하지수를 데려오려던 순간, 송승우가 갑자기 말했다.“지수 씨, 방금 당신의 행동은 모든 걸 말해줬어요!”“무슨 행동이요?”하지수는 이해할 수 없었다.“방금 제가 불렀을 때, 제 쪽으로 다가왔잖아요. 그게 지수 씨 마음속에 있는 진심이에요. 더 이상 숨기지 말고 저한테로 오세요. 하지수 씨, 제가 잘 해줄게요. 지수 씨를 혼자 두는 일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을 거예요. 제가 맹세할게요...”“아니요.”하지수는 단칼에 거절해 버렸다.하지수를 바라보는 송승우의 눈빛은 분노로 가득 찼다.“승우 씨가 불었을 때 따라간 건 무의식적으로 간 거예요. 잠에서 덜 깬 상태라서 누가 불렀어도 갔을 거예요. 승우 씨인 줄도 몰랐어요. 하지만 인정할 건 인정할게요. 낯선 목
송문수는 하지수가 일어나서 송승우 쪽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송승우는 입가에 미소를 띠며 생각했다.‘그래, 지수 씨도 아직 날 신경 쓰고 있다니까. 숨기려 해도 어떻게 숨기겠어? 이런 상태에서야 비로소 진심이 드러나는 거지.’송문수는 멀어져 가는 하지수를 잡으려 손을 뻗었지만 그녀의 옷자락에 손이 닿았을 때 살짝 멈칫했다. 하지수를 강제로 붙잡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사실 그는 항상 하지수의 선택을 존중해 왔다. 지금까지 변함없이 말이다.하지수는 송승우 앞으로 걸어갔고 송승우가 먼저 손을 뻗더니 그녀를 끌어당기려 했다.그러나 그가 손을 뻗자 하지수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승우 씨?”그녀는 그제야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깨달았다.조금 전까지 어지럽고 혼란스러웠던 상황이 이제와사 분명해졌다.그녀는 자신이 언제 잠에 들었는지도 몰랐다. 그저 너무 피곤해서 머리가 흐릿할 뿐이었다.“너무 늦었어요. 제가 데려다줄게요.”송승우가 그녀를 끌고 나가려고 하자 하지수는 급히 그의 손을 쳐내며 말했다.그러자 송승우는 눈살을 찌푸렸다.“아까는 잠에서 덜 깨서 그랬어요. 전 문수 씨랑 같이 갈 거예요.”“뭐라고요?”송승우는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언제까지 연기할 거예요?”“네?”하지수는 눈살을 찌푸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송승우가 왜 갑자기 화를 내는지 알 수 없었다.“저를 놀리는 게 재밌으세요?”송승우가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저... 저는 그런 게 아니라...”하지수는 당황해하며 말을 더듬었다.그러자 송승우가 입을 열었다.“알겠어요. 제가 잘못한 걸로 하죠.”그가 갑작스레 사과를 하자 하지수는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그녀는 송승우가 왜 갑자기 사과를 한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왜 사과를 하는 거야?’“미안했어요. 어쩔 수 없이 떠난 거라고는 하지만 우리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못했잖아요. 결혼식장에 지수 씨 혼자 남겨두고 간 건 제 잘못이에요. 미안해요.”하지수는 그제야 무슨 말인지 이해했
하지수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심장은 여전히 빨리 뛰고 있었다.그녀는 전혀 말을 듣지 않는 심장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만약 누군가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이 어색한 상황이 얼마나 계속될지 알 수 없었다.‘문수 씨도 부끄러워하는 건가?’하지수는 입술을 꽉 깨물며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려 애썼다.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올까 봐 걱정이었다.하지수는 소파에 앉아 몰래 송문수를 쳐다보았다.그는 그저 고위직 직원의 얘기를 듣고만 있을 뿐, 전혀 불편해 보이지 않았다.그녀는 깊게 숨을 쉬었다.‘단지 어색해서 그런 건가?’송문수는 언제나 체면을 중시하는 사람이었으니 말이다.‘해명하려 하지 않는 것도 결국 체면을 세우려고 그러는 건가?’하지수는 너무 많은 기대를 해선 안 된다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다잡았다....크레지를 맞이하기 위해 모든 관련 부서가 계속해서 야근을 하고 있었다.송문수와 하지수 역시 마찬가지였다.그들은 끊임없이 회의를 열고 논의하며 최대한의 성의를 보이기 위해 애썼다.새벽 2시가 되었지만 송문수는 아직 퇴근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방금까지도 각 부서와 회의를 하면서 협력 계획과 판매 계획을 다시 수정하고 보완했다.회의가 끝난 후에도 송문수는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는 계속 바쁘게 일하고 있었다.송문수는 그제야 그의 확인이 필요한 문서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무슨 서류든 제대로 보지 않고 사인을 해버렸었다. 하지만 이젠 점점 더 신중해졌고 모든 서류를 꼼꼼히 확인하고 나서야 사인을 했다.그 덕에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고 오늘 하루 동안의 모든 서류를 처리하고 나서야 송문수는 퇴근을 하려고 하지수를 쳐다봤다. 그러자 그녀는 이미 소파에 기대어 잠들어 있는 것이었다.하지수는 잠이 많은 사람은 아니었다. 송문수의 기억 속에 하지수는 늘 자신보다 일찍 일어나는 사람이었고 절대 늦잠을 자지 않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소파에 기대어 잠들어 있었다.‘많이 피곤한 걸까?’자세히 생각해 보니 그들은 지난 일주일 동안 계속해서 야
송문수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크게 티가 나지는 않았지만 그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밝아졌다는 건 알 수 있었다.하지수는 송문수를 더 방해하지 않으려 했다. 송문수가 점점 더 발전하는 걸 보면서 하지수도 그를 더 지지해 주고 싶었고 송문수로 하여금 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하지수는 옆에 있는 소파로 가서 노트북을 들고 업무를 처리하기 시작했다.그리고는 습관처럼 회사의 공식 채팅방에 들어갔다.그녀는 비록 알림을 꺼 놓았지만 회사의 공식 채팅방에 메시지가 있으면 항상 첫 번째로 확인하곤 했다.그런데 그때, 그룹 채팅에 있는 메시지를 본 하지수는 깜짝 놀랐다. 그녀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아마 이 상황을 믿기 어려워할 것이었다.송문수가 회사의 공식 채팅방에 ‘하지수’라는 이름을 여러 번 보낸 것이었다.하지수는 고개를 들어 송문수를 바라보았다.그는 진지하게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채팅방에는 여전히 ‘하지수’라는 이름이 올라오고 있었다.“문수 씨, 컴퓨터 바이러스에 걸린 거 아니야?”하지수가 물었다.“어?”송문수는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했다.하지수는 송문수 앞에 서서 그의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화면에는 타자를 해놓고 아직 보내지 않은 ‘하지수’도 있었다.송문수도 그제야 자신이 채팅방에 ‘하지수’라는 이름을 여러 번 입력했다는 것을 깨달았다.그 자신도 놀란 듯했다. 그는 자신이 타자를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의식하지 못했던 것이다.하지만 방금 그의 머릿속이 온통 하지수로 가득 찬 건 사실이었다.그때, 채팅방에서 누군가 메시지를 보냈다.[회장님 지금 하 매니저님한테 애교 부리는 거야? 그걸 실수로 단체 채팅방에 보낸 거고?]메시지는 보내지자마자 삭제되었고 밖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나도 잘못 보냈네!”그룹 채팅에 두 개의 삭제 기록이 나타났다.송문수는 멍하니 앉아 있다가 그제야 메시지를 삭제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그는 ‘하지수’라는 메시지들을 삭제하려 했지만 이미 메시지를 취소할 수 있는 시간이
송승우는 이를 꽉 악물었다. 그는 하지수를 절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 그는 하지수에게 송문수를 고른 게 얼마나 잘못된 선택이었는지 반드시 알게 해주겠다고 결심했다. 그녀로 하여금 후회하도록 만들겠다고 다짐했다....하지수는 송승우의 사무실을 떠나 바로 송문수의 사무실로 갔다.송문수는 업무에 몰두해 있었다.회사에 들어선 순간부터 그는 자유시간이 없었고 퇴근 후에도 여전히 업무와 관련된 일들을 처리하고 있었다.하지수는 송문수가 많이 변했다고 느꼈다. 그녀는 하느님도 부지런한 사람을 도울 거라 믿으며 송문수가 앞으로 큰 성과를 낼 것이라고 확신했다.“형이 뭐라고 했어?”송문수는 그녀를 한 번 쳐다보며 차갑게 물었다.“자기 개인 비서로 되어달라고 하더라고.”하지수는 송문수에게 숨기지 않고 말했다. 그녀는 더 이상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을 그에게 숨기고 싶지 않았다.송문수랑 같이 오랫동안 시간을 보내고 싶었기에 최대한 마음을 다할 생각이었다.송문수는 멈칫하더니 코웃음을 치더니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녀가 어떻게 대답했는지 알고 싶지 않아 하는 것 같았다. 어쩌면 하지수가 그 제안을 무조건 받아들였을 거라고 여겼는지도 모른다.‘지수가 형 요구를 거절한 적은 한 번도 없는데 이번에도 알겠다고 했겠지...’이렇게 생각한 송문수는 일에 더 집중하려 애썼다. 회사 일을 제대로 해내기로 결심한 이상 중간에 포기할 생각은 없었으니 말이다.“거절했어.”하지수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송문수는 가슴이 약간 두근거리는 걸 느꼈다.분명 그녀의 말에 설렌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겉으로 티 내지 않으려 했다.그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척 계속해서 서류를 보고 있었다.반면, 하지수는 송문수에게 그 어떤 반응도 기대하지 않았다. 어차피 송문수는 자기한테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저 자신의 결정을 그에게 알리고 싶었을 뿐이었다.“왜 거절했는데?”송문수가 차분하게 물었다.“문수 씨한테 내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으니까.”하지수는 웃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