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육현경이 웃으며 말했다.“네 엄마가 내 옆에 있다는 느낌만으로도 충분해.”소이연은 이 장면을 바라보며 육현경의 입가에 번진 그 다정하고도 만족스러운 미소를 보았다...그녀는 지금, 이 순간의 복잡한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그러니까 그녀가 여전히 육현경과 진은지가 열애 중이라고 여기고 있을 때, 사실 그는 온 마음을 다해 자신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화면이 바뀌었다.육민이 육현경과 진은지에게 어떻게 가족사진을 찍을지 상의하는 장면이었다.세 사람이 잠시 논의한 후에 그녀가 등장했고 셋이서 함께 가족사진을 찍는 장면이 이어졌다.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육현경을 바라보았다.그는 긴장된 모습으로 손을 들었다 내리기를 반복하고 있었지만 결국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리지 못했다.화면이 다시 바뀌었다.이번에는 오후에 육현경이 주방에서 케이크를 만드는 장면이었다.육민은 영상 속에서 재촉했다.“엄마가 곧 내려올 거예요. 아빠, 이모, 빨리 포즈를 취해요.”곧이어 육현경과 진은지가 함께 케이크를 만드는 장면이 나왔다. 바로 소이연이 지난번 별장에서 보았던 두 사람의 다정하고 즐거운 모습이었다.알고 보니, 모두 거짓이었던 것이다.그녀는 영상을 보고 있었다. 영상 속에서 육민은 육현경더러 그녀에게 쿠키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라고 부탁하고 있었다.당시 그녀는 온전히 쿠키 만드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어 육현경의 표정을 전혀 보지 못했다.게다가 육현경은 그녀의 뒤에 있었기 때문에 그녀도 볼 수가 없었다.그러나 지금 이 영상을 통해서야 그녀는 비로소 알았다. 육현경이 자기를 그렇게 깊고 애틋하게 쳐다보고 있었던걸...그때의 그녀는 오히려 그가 젊고 싱싱하고 스릴 있는 걸 좋아한다고 여겼었다.화면이 다시 바뀌었다.육현경이 자신을 취하게 하는 장면이었다.술에 취하기 전에, 육민은 그와 함께 어떻게 하면 하룻밤을 묵을 수 있을지에 대해 의논하고 있었다...정말 이 두 사람은...소이연은 육현경을 힐끗 쳐다보았다.육현경은 입술을 오므
소이연은 하늘 가득 수놓은 불꽃을 바라보면서 그 아래 잘생긴 얼굴의 육현경에게 시선을 고정했다.마음속 감정이 파도처럼 일렁였다...육현경은 여전히 그녀를 많이 좋아하는 것 같았고, 그녀를 위해 많은 걸 준비한 것 같았다.그녀의 눈시울이 붉어졌고 코가 찡해졌다.다시는 감동하지 않을 줄 알았다. 하지만 어느새 두 눈은 촉촉해져 있었다.육현경의 시선도 소이연의 붉어진 눈시울에 멈췄다.두 사람은 서로를 애틋하게 바라보았다.그들 사이에 있었던 안 좋은 기억들, 거리감, 말하지 못했던 감정들이 이 순간 모두 사라지는 것 같았다.심지어 천지 만물이 갑자기 사라진 것 같았다.그들의 눈에는 서로만 보였다.육현경이 고개를 숙이고 소이연에게 다가갔다.소이연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리더니 살포시 눈을 감았다.육현경의 입술이 소이연의 입술에 가볍게 닿았다.입술이 포개지며 두 사람의 마음은 따스한 물결로 일렁였다.육현경의 입술이 그녀의 입술을 탐닉했다.소이연은 무의식적으로 주먹을 꽉 쥐었지만, 거부하지 않고 육현경에게 모든 걸 맡겼다.그들의 키스는 처음엔 가볍게 시작되었으나, 점점 뜨거워져 숨이 찰 정도로 격렬해졌다.육현경은 소이연을 가볍게 들어 안았다.소이연은 본능적으로 그의 목을 감싸 안았다.두 사람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숨소리는 무거워졌고 심장도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육현경은 소이연을 안고 거실을 지나 2층으로 올라가, 넓은 신혼 방문을 열었다.눈앞에는 온통 붉은색으로 가득했다.하얀 이브닝드레스를 입은 소이연은 육현경에게 안겨 침대 위에 눕혀졌다. 그녀의 아담한 몸매와 커다란 침대는 묘한 대비를 이루었고, 수줍어하는 얼굴은 침대와 잘 어우러져, 아름다움이 절정에 달했다.육현경은 서둘러 양복을 벗고 넥타이를 풀어버렸다.그는 아무렇게나 셔츠 단추 몇 개를 풀고 소이연에게 다가갔다.그의 커다란 몸이 그녀를 덮었다.소이연은 긴장해서 저도 모르게 침대 시트를 꽉 움켜쥐었다.아무도 모를 것이다. 그들이 그렇게 오랜 세월을 함께하면서 아들도 이미 열
샤워를 마치고 침실로 돌아오니, 소이연은 여전히 씻고 있었다.그는 재촉하지 않고 침대 머리맡에 앉아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기다렸다.하지만 집중할 수 없었다. 신경이 자꾸 욕실 쪽으로 쏠려, 조금이라도 소리가 나면 긴장했다.약 10분이 지나, 소이연이 욕실 문을 열었다.머리에 수건을 두른 걸 보니 머리까지 감은 것 같았다.그녀는 핑크색 가운을 입고 있었는데 커플로 맞춘 파란색 가운도 있었다.그런데 그 가운은 안방 욕실에 두었기에 그는 입지 못하고 그냥 흰색 가운을 아무렇게나 걸치고 있었다.소이연의 얼굴은 여전히 붉었고 샤워를 해서 그런지 가운 밖으로 드러난 피부는 조명 아래 반짝였다.육현경은 저도 모르게 바싹 마른 입술을 한 번 핥았다.지금의 소이연은 정말 매혹적이었다.그렇다고 흥분해서 소이연을 바로 덮치진 않았다. 그는 먼저 욕실로 가서 헤어드라이어를 들고 나왔다.소이연은 육현경의 모습을 바라보며 입에서 맴돌던 말을 끝내 내뱉지 못했다.“먼저 머리 말려, 감기 걸리겠다.”육현경이 말했다.그가 얼마나 큰 인내심으로 마음속의 욕망을 억눌러야 이런 차분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이 말을 할 수 있었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그래.”소이연은 고개를 끄덕였다.육현경은 직접 그녀의 머리를 말려주기 시작했다.샴푸의 은은한 향이 배어 있는 머리카락이었다.분명 아주 정상적인 향기였다.그런데 육현경에게는 그 향기가 정신을 홀리는 것처럼 느껴졌다.그는 속에서 끓어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며 자신에게 말했다.‘좀만 더 참자. 조금만 더! 어차피 오늘 밤은 길 테니까.’그는 급하지 않았다. 전혀 서두를 것 없었다.잠시 후, 육현경은 소이연의 머리를 다 말려주고 드라이기를 내려놓았다.그리고 그윽한 눈빛으로 소이연을 바라봤다.그의 눈빛은 뜨거웠고, 그 안에 타오르는 불길은 감출 수 없었다.소이연은 입술을 오므렸다.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끝내 말하지 못했던 것이다.그러다 육현경이 마침내 참지 못하고 다시금 얼굴을 그녀의 얼굴 가까이에 들이대자
신혼 첫날밤, 한 침대에 누웠지만, 밤새 아무 일도 없었다.소이연은 사실 미안한 마음이 컸다.이미 육현경과 결혼을 결심했으니 부부의 의무를 거부할 생각은 없었다.어쨌든 결혼은 장난이 아니니까...일단 결혼을 했다면 진지하게 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오늘 밤은 정말 예상 밖이었다.우연히 서랍 속에 있던 콘돔을 보며 그녀는 더 미안해졌다.육현경은 정말 다 준비해뒀던 것이다...사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그녀의 속옷은 물론 생리대까지 다 챙겨놨으니 갑작스러운 상황에도 당황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하지만 육현경도 그녀가 오늘 밤 그걸 쓸 줄은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사실 그날 밤, 소이연은 늦게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새로운 장소가 낯설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어쨌든 뒤척이면서 오랫동안 깨어 있었다.그리고 옆에 있던 사람도 밤새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다.다음 날 아침.두 사람은 아직 잠들어 있었다.어젯밤, 쉽게 잠들지 못했기 때문이다.육현경이 휴대폰을 들어 전화를 받았다.“고모...”“아직도 집이야?”전화기 너머에서 육은숙의 약간 화난 목소리가 들려왔다.육현경은 시간을 보았다. 벌써 오전 10시였다.원래 신부는 결혼 첫날 시댁에 일찍 가야 하는 법이지만 그는 전혀 서두르지 않고 그냥 차분하게 말했다.“곧 갈게요.”“빨리 와, 한참 기다렸잖아.”“알겠어요.”전화를 끊고 육현경은 다시 잠을 청하려 했다.하지만 고개를 돌리니 소이연도 전화 소리에 깨어 있었다.그녀가 말했다.“고모가 또 재촉했어?”“괜찮아, 조금 더 자도 돼...”“그래도 일어나자. 나 돌아가서 고모한테 혼나기 싫어.”그녀는 힘겹게 침대에서 일어났다.육은숙의 성격을 소이연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그녀가 원하는 대로 해주는 게 가장 편했다.안 그러면 그녀의 표정이 얼마나 무섭게 변할지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걱정하지 마. 그럴 리 없어.”그는 소이연이 피곤함에 지쳐 있는 걸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고모는 내가 혼자 늙어가는 게 두려워서 감
그러고는 갑자기 전화를 끊었다.소이연은 육현경을 보며 말했다.“수진 씨랑 계 감독님은 이미 육 씨 별장으로 갔다고 하니 우리도 가자. 민이도 거기에 있잖아.”육현경은 고개를 끄덕였다.오늘 아침은 더 이상 편하게 자기는 틀렸기 때문이다.두 사람은 차례로 일어나 욕실로 가서 세수했다.세수하고 나오자 육현경은 욕실로 들어가면서 말했다.“네 옷은 드레스룸에 있어.”소이연은 침실과 연결된 드레스룸으로 들어갔다.드레스룸은 엄청나게 컸다.침실보다도 더 클 정도로 넓었다.그녀는 옷장 앞으로 다가가 문을 열었다. 화려한 여자 옷들이 절반 넘게 걸려 있었는데 육현경의 옷보다 훨씬 많았다.모두 그녀의 사이즈였다.육현경은 정말로 이 신혼집을 정성 들여 준비한 모양이었다...만약 그녀가 오지 않았다면, 육현경은 그 충격을 어떻게 견뎠을까.소이연은 더 이상 고민하지 않았다.이미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었고 모든 일은 더 나은 방향으로 흐를 것이 분명했다.그녀는 단아한 옷으로 갈아입고 가볍게 화장을 했다.육현경도 이미 정장으로 갈아입었다.두 사람은 함께 차에 탔고 소이연은 창밖의 거리를 바라보았다.분명 결혼도 했고 서로 낯선 사이도 아니었지만 이렇게 밀폐된 공간에 함께 있으니 어딘지 모르게 조금은... 어색했다.그래서 소이연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창밖에 집중했다.이때 그녀가 시선을 살짝 돌리며 말했다.“현경아, 이건 육 씨 별장으로 가는 길이 아닌 것 같은데.”“구청으로 가는 길이야.”소이연은 잠시 멍해졌다.“우리는 아직 혼인신고를 안 했잖아.”육현경이 말했다.소이연은 그제야 생각이 났다.현장에서 바로 프러포즈에 응답하고 결혼식을 올렸기에 혼인신고는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난 주민증도 안 가져왔는데.”소이연이 급급히 말했다.“내가 다 챙겼어.”육현경이 말했다.“네 것도 있어.”“뭐?”“민이가 줬어. 결혼식 전날에.”“...”역시 육현경이 직접 키운 아이다웠다.마음속으로는 여전히 아빠 편이었으니까.차는 금
문에 들어서기도 전에 예수진 때문에 난감해져서 소이연은 대문 앞에서 걸음을 딱 멈추었다.그야말로 진퇴양난이었다.그 순간, 예수진이 뒤돌아보더니 소이연을 발견하고는 전혀 민망해하지도 않고 큰 소리로 말했다.“이연 씨, 오빠랑 드디어 왔군요... 아니지. 우리 큰조카 왔구나!”“...”육현경의 입가에 경련이 일었다.예수진은 촌수가 높아지고 나서 완전 신이 난 것 같았다.하지만 문제는 누구도 반박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그야말로 소인배가 득세한 느낌이었다.“육 여사가 너희를 엄청나게 기다렸어. 조금만 더 늦었으면 침대로 쳐들어갔을 거야.”예수진은 장난스럽게 말했다.“너 왜 이렇게 버릇없어.”육은숙이 예수진을 나무랐다.“버릇없다니요? 나도 이제 집안 어른이니 뭘 하든 상관없어요.”예수진이 반박했다.“...”육은숙은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아니면 그냥 인사를 받는 게 어때요? 곧 점심시간인데, 다들 배고프잖아요. 애들은 특히 배고플 텐데.”계지원이 분위기를 풀어보려 말했다.그는 육은숙과 예수진이 다툴까 봐 진심으로 걱정됐다.요즘 모든 걸 내려놓은 예수진은 세상 두려운 게 없었다.육은숙은 예수진을 흘겨보며 무심하게 말했다.“민이는 지금 한창 클 때라서 배고프면 안 돼. 민이를 생각해서 오늘은 봐주는 거야. 아줌마, 차 준비해요.”“알겠습니다. 아가씨.”도우미가 공손하게 대답했다.육은숙은 육씨 가문의 맏누이로서 자연스럽게 상석에 앉았다.계지원과 예수진도 신혼부부였기 때문에 육은숙에게 차를 올려야 했다.예로부터 맏형은 아버지와 같고 맏누이는 어머니와 같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하지만 같은 항렬이기 때문에 그들은 무릎을 꿇을 필요가 없이 그냥 서서 차를 올리면 됐다.도우미에게서 찻잔을 받아들고 계지원은 공손하게 말했다.“누나, 차 드세요.”육은숙은 계지원을 흘끗 쳐다보고는 차를 받아 마셨다.다 마신 뒤에 그녀는 계지원에게 봉투 하나를 건넸다.“고마워요.”계지원이 차를 다 올리고 나자, 예수진이 바로 찻잔을 내밀며 말
그녀는 자신의 봉투를 다시 살펴보았다.20만도 안 될 것 같았다.그녀는 육은숙 앞에서 봉투를 열었다.열어보니 안에는 돈이 한 푼도 없었다.예수진은 화가 상투 밑까지 치밀어 올랐다.이건...그녀는 화가 나서 씩씩거렸다.그녀의 속을 뒤집는데 육은숙은 과연 일가견이 있었다.“봉투 안을 좀 더 잘 살펴봐.”육은숙은 예수진의 표정만 보고도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뭘 더 찾으라고?”예수진은 어이가 없었다.“동전이라도 있다는 거예요?”하지만 안에는 정말 작은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았다육은숙의 비난은 이미 최악이었다.쪼잔한 여자 같으니라 고야. 이렇게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마음에 두고 있다니.“안에 있는 걸 꺼내!”육은숙의 목소리가 확연하게 딱딱해졌다.그녀는 예수진이 오해하든 상관없었다.다만 불같은 성격의 예수진이 그 봉투를 그냥 던져버릴까 봐 걱정됐던 것이다.예수진은 내키지 않았지만, 오랫동안 육은숙의 말을 들어왔기에 고분고분하게 봉투 속 물건을 꺼냈다.꺼내는 순간, 예수진은 깜짝 놀랐다.동전이 아니었다.그것은 옥으로 만든 반지였다.게다가 어디선가 본 적 있는 반지였다.“네 외할머니의….”육은숙은 본능적으로 말을 하다가 멈췄다.“엄마가 돌아가실 때 나한테 남긴 유품이야.”“이렇게 귀한 걸 나한테 왜 주세요?”예수진은 놀란 얼굴로 물었다.육은숙은 정말 예수진에게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이었다.‘왜 주냐니? 몰라서 물어?!’“설마 내 혼수로 주는 거예요?”예수진이 갑자기 놀라며 물었다.“무슨 소리 하는 거야. 너랑 나랑 무슨 관계라고 내가 너한테 혼수를 줘.”육은숙은 단호하게 부정했다.“그냥 네가 지원의 아내니까 억지로나마 우리 육씨 가문의 사람으로 쳐서 우리 집 물건을 준 거야.”괜히 감동했다는 생각에 예수진은 입을 삐죽거렸다.하지만 그녀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편이라 다시 물었다.“그러니까 내 신분을 인정한 거네요?”“전 국민이 네가 지원의 아내인 걸 다 아는데 내가 인
“쓸데없는 소리!”육은숙이 태연하게 말했다.“적출과 서출이 같을 수 있어?”예수진은 잠시 이해하지 못했다.한참 후에야 육은숙의 말뜻을 알아챈 그녀는 계지원을 돌아보며 말했다.“누나는 지금 지원 씨를 서출이라고 욕하는 거잖아.”“...”계지원은 어이가 없었다.예수진은 정말로 문제를 만드는 걸 즐기는 것 같았다.육은숙은 예수진을 무시하고 소이연의 손목에 팔찌를 끼워주었다.볼수록 마음에 들었다.“현경의 할머니도 분명히 기뻐하실 거야. 이렇게 좋은 손자며느리를 얻었으니.”소이연은 칭찬을 듣고 조금 쑥스러워했다.육은숙이 재빨리 말했다.“이제 그만 일어나.”“감사합니다, 고모님.”소이연은 진심으로 말했다.가족의 환영을 받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동적인지는 어릴 때부터 가족의 따뜻함을 경험하지 못한 그녀만이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인사가 끝난 후, 가족들은 육 씨 별장의 큰 식당에서 함께 점심을 먹었다.예수진은 정말 배가 너무 고팠다.늦으면 육은숙한테 혼날까 봐 아침도 거르고 나왔던 것이다.뭐든 그녀 마음에 안 들면, 트집 잡을 게 뻔했으니까.하지만 생각밖에도 그들이 서둘러 왔지만, 육현경과 소이연은 아직 도착하지도 않았다.한참이 지나도 오지 않았던 것이다.역시, 적출과 서출의 차이는 육 씨 가문에서 너무도 분명하게 드러났다.자신이 서출의 며느리인 이상 그녀는 눈치껏 처신해야 했다.“이연아, 많이 먹어.”육은숙은 소이연에게 계속 음식을 권하며 혹시라도 소홀하게 대할까 봐 염려했다.예수진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어차피 육은숙도 진심으로 자신을 잘 대해줄 리는 없었기 때문이다.빗자루로 쫓아내지 않는 것만 해도 그녀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그녀는 음식을 먹었다.하지만 착각일까?오늘 요리는 모두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이었던 것이다.심지어 그녀는 어린 시절에 먹었던 맛까지 느껴졌다.설마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 육씨 가문의 요리사는 아직도 바뀌지 않았단 말인가?그 요리사도 이젠 꽤 나이가 들었을 텐데.예수진은
“문수 씨.”하지수는 송문수의 이름을 불렀다. 그녀는 지금 송문수가 화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지만 송승우에게 무슨 일이라도 있으면...어쨌든 한 가족이 아닌가.그녀는 가정의 불화를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그래도 승우 오빠를 병원에 보내야 하잖아.”하지수는 큰 소리로 송문수에게 말하자 송문수는 발걸음을 멈추었다.사실 송승우는 별일 없었다. 송문수는 격투기를 배운 적이 있기에 사람의 어느 부위가 다치면 안 되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송승우를 이성을 잃을 정도로 때렸어도 급소를 때리지 않았다.하지수는 송문수의 대답을 듣지 못하자 다급히 핸드폰을 꺼내서 긴급구조 요청을 하였다.구급차를 기다리는 동안, 하지수는 송승우에게 다가가지 않았다.그녀는 멀지 않은 곳에 서서 바닥에 쓰러진 송승우를 바라보았다.송승우의 분노가 극도에 이르렀지만 송문수와 싸울 힘이 없었다.사실 하지수도 요새 송승우와 송문수가 자주 싸우는 이유를 몰랐다. 오늘은 벌써 두 번째였다.어렸을 때 두 형제의 관계가 그다지 친밀하지 않았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지금 어른이 되었는데 아직 유치하게 싸우다니!이윽고 구급차가 도착했고 구조대원들은 들것으로 송승우를 구급차에 태웠다.하지수도 따라서 올라탔지만 송문수는 타지 않았다.하지수는 잠시 망설이다가 내려와서 송문수를 잡아당겨서 같이 구급차에 올라탔다.구급차 안은 매우 조용하였다.아무도 말하지 않았고 차 안의 분위기에 아직 분노의 불꽃이 튕기는 것 같았다.병원에 도착한 후 송승우는 응급실로 옮겼다.하지수와 송문수는 로비에서 기다렸다. 송문수는 차가운 분위기를 풍기면서 한쪽에 서 있었다.사실 하지수는 송문수의 얼굴에도 상처가 있는 것을 보았다. “문수 씨도 얼굴과 몸에 난 상처를 검사하지 않을래?”“필요 없어. 외상이라 금방 나을 거야”송문수가 이렇게 말하자 하지수도 강요하지 않았다.잠시 후, 송승우는 응급실에서 나왔고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모두 외상이라 별문제가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지금 입원 수속
“놓지 못해?”송문수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하면서 송승우를 바라보았다.서로 마주 본 두 사람의 눈에는 분노로 가득 차 있었고 일촉즉발의 분위기였다.“이거 놔요.”하지수도 송승우의 손을 힘껏 뿌리쳤다. 그러자 송승우의 눈빛에 분노로 이글이글 타올랐다.그는 더욱 세게 하지수를 잡아당겼다.하지수는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아파요!”송문수의 안색이 더욱 어두워졌다.“놓으라고 했다!”그는 송승우의 팔을 끌어당기는 손에 힘을 꽉 주었다. 이에 송승우는 통증을 느꼈으나 승부욕 때문에 쉽게 놓을 수가 없었다.송문수가 힘을 줄수록 그도 더욱 힘을 줘서 하지수를 잡아당겼다.하지수는 너무 아파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송승우는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 “이걸 놔. 나와 지수의 일에 끼어들지 마.”“끼어들지 말라고?”송문수는 냉소를 지으면서 말했다.“형이 잊은 것 같은데 지수는 내 와이프야. 우린 부부이지만 형과 지수는 아무 사이도 아니잖아? 지금 형이 내 와이프를 데려가려고 하는데 나보고 끼어들지 말라고? 너무 뻔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너!”송문수의 쏘아붙인 말에 송승우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예전에 송승우는 하지수가 자신을 좋아했기 때문에 송문수를 안중에 넣지도 않았고 그들의 결혼 관계를 진지하게 생각한 적도 없었다.그러나 지금 송문수에게 이런 모욕을 당하다니!“지수가 좋아한 사람은 나야!”송승우는 수치심에 더 약이 올라서 노기어린 목소리로 외쳤다.하지수는 너무 아파서 반박할 힘도 없었고 송문수의 말이 들려왔다.“지수가 누구를 좋아하든 지금은 내 여자야. 누구도 데려갈 수 없고 누구도 지수를 괴롭힐 수 없다고! 셋까지 셀 테니 지수를 놓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송승우는 끄덕하지도 않고 송문수를 노려보았다.“하나.”“둘.”송문수는 ‘셋’을 세는 대신 주먹을 들고 송승우의 얼굴을 세게 강타했다.송문수의 한 방을 맞은 송승우는 코피를 흘렸고 아픔으로 이내 하지수를 놓아주었다.그러나 송승우는 소심한 사람이었다. 그는 늘
‘내가 자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건가?’“승우 씨, 사과 따위 이제 필요 없어요. 지금 제가 바라는 건 아무 탈 없이 우리 사이의 관계를 끝내는 거예요. 승우 씨는 문수 씨 형이잖아요. 게다가 저도 어릴 때부터 송씨 가문에서 자란 사람이고요. 그러니까 우리 그냥 친척 같은 관계로 돌아갔으면 좋겠어요.”하지수는 인내심을 가지고 진지하게 말했다.송승우는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며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지수는 더 이상 그와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망상에 빠진 사람은 무슨 말을 하든 헤어 나올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그녀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으니 그걸로 됐다고 생각했다.하지수는 뒤를 돌아 송문수 쪽으로 다가가려 했다. 늦은 시간이었고 그녀도 여전히 많이 피곤했다. 송문수랑 같이 집으로 가서 자고 싶었다.크레지가 아직 오지 않은 이상, 기술 투자 계약서에 사인하지 않은 이상 방심할 수는 없었다. 그들은 짬짬이 시간을 내서 잠을 잘 수밖에 없었다.그런데 막 돌아서려는 순간, 그녀의 손은 또다시 송승우에 의해 붙잡혔다.하지수가 아무리 팔을 흔들어도 벗어날 수 없었다.송문수는 차가운 눈빛으로 송승우의 행동을 지켜보며 주먹을 꽉 움켜잡았다.그가 앞으로 다가가 하지수를 데려오려던 순간, 송승우가 갑자기 말했다.“지수 씨, 방금 당신의 행동은 모든 걸 말해줬어요!”“무슨 행동이요?”하지수는 이해할 수 없었다.“방금 제가 불렀을 때, 제 쪽으로 다가왔잖아요. 그게 지수 씨 마음속에 있는 진심이에요. 더 이상 숨기지 말고 저한테로 오세요. 하지수 씨, 제가 잘 해줄게요. 지수 씨를 혼자 두는 일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을 거예요. 제가 맹세할게요...”“아니요.”하지수는 단칼에 거절해 버렸다.하지수를 바라보는 송승우의 눈빛은 분노로 가득 찼다.“승우 씨가 불었을 때 따라간 건 무의식적으로 간 거예요. 잠에서 덜 깬 상태라서 누가 불렀어도 갔을 거예요. 승우 씨인 줄도 몰랐어요. 하지만 인정할 건 인정할게요. 낯선 목
송문수는 하지수가 일어나서 송승우 쪽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송승우는 입가에 미소를 띠며 생각했다.‘그래, 지수 씨도 아직 날 신경 쓰고 있다니까. 숨기려 해도 어떻게 숨기겠어? 이런 상태에서야 비로소 진심이 드러나는 거지.’송문수는 멀어져 가는 하지수를 잡으려 손을 뻗었지만 그녀의 옷자락에 손이 닿았을 때 살짝 멈칫했다. 하지수를 강제로 붙잡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사실 그는 항상 하지수의 선택을 존중해 왔다. 지금까지 변함없이 말이다.하지수는 송승우 앞으로 걸어갔고 송승우가 먼저 손을 뻗더니 그녀를 끌어당기려 했다.그러나 그가 손을 뻗자 하지수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승우 씨?”그녀는 그제야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깨달았다.조금 전까지 어지럽고 혼란스러웠던 상황이 이제와사 분명해졌다.그녀는 자신이 언제 잠에 들었는지도 몰랐다. 그저 너무 피곤해서 머리가 흐릿할 뿐이었다.“너무 늦었어요. 제가 데려다줄게요.”송승우가 그녀를 끌고 나가려고 하자 하지수는 급히 그의 손을 쳐내며 말했다.그러자 송승우는 눈살을 찌푸렸다.“아까는 잠에서 덜 깨서 그랬어요. 전 문수 씨랑 같이 갈 거예요.”“뭐라고요?”송승우는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언제까지 연기할 거예요?”“네?”하지수는 눈살을 찌푸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송승우가 왜 갑자기 화를 내는지 알 수 없었다.“저를 놀리는 게 재밌으세요?”송승우가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저... 저는 그런 게 아니라...”하지수는 당황해하며 말을 더듬었다.그러자 송승우가 입을 열었다.“알겠어요. 제가 잘못한 걸로 하죠.”그가 갑작스레 사과를 하자 하지수는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그녀는 송승우가 왜 갑자기 사과를 한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왜 사과를 하는 거야?’“미안했어요. 어쩔 수 없이 떠난 거라고는 하지만 우리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못했잖아요. 결혼식장에 지수 씨 혼자 남겨두고 간 건 제 잘못이에요. 미안해요.”하지수는 그제야 무슨 말인지 이해했
하지수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심장은 여전히 빨리 뛰고 있었다.그녀는 전혀 말을 듣지 않는 심장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만약 누군가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이 어색한 상황이 얼마나 계속될지 알 수 없었다.‘문수 씨도 부끄러워하는 건가?’하지수는 입술을 꽉 깨물며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려 애썼다.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올까 봐 걱정이었다.하지수는 소파에 앉아 몰래 송문수를 쳐다보았다.그는 그저 고위직 직원의 얘기를 듣고만 있을 뿐, 전혀 불편해 보이지 않았다.그녀는 깊게 숨을 쉬었다.‘단지 어색해서 그런 건가?’송문수는 언제나 체면을 중시하는 사람이었으니 말이다.‘해명하려 하지 않는 것도 결국 체면을 세우려고 그러는 건가?’하지수는 너무 많은 기대를 해선 안 된다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다잡았다....크레지를 맞이하기 위해 모든 관련 부서가 계속해서 야근을 하고 있었다.송문수와 하지수 역시 마찬가지였다.그들은 끊임없이 회의를 열고 논의하며 최대한의 성의를 보이기 위해 애썼다.새벽 2시가 되었지만 송문수는 아직 퇴근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방금까지도 각 부서와 회의를 하면서 협력 계획과 판매 계획을 다시 수정하고 보완했다.회의가 끝난 후에도 송문수는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는 계속 바쁘게 일하고 있었다.송문수는 그제야 그의 확인이 필요한 문서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무슨 서류든 제대로 보지 않고 사인을 해버렸었다. 하지만 이젠 점점 더 신중해졌고 모든 서류를 꼼꼼히 확인하고 나서야 사인을 했다.그 덕에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고 오늘 하루 동안의 모든 서류를 처리하고 나서야 송문수는 퇴근을 하려고 하지수를 쳐다봤다. 그러자 그녀는 이미 소파에 기대어 잠들어 있는 것이었다.하지수는 잠이 많은 사람은 아니었다. 송문수의 기억 속에 하지수는 늘 자신보다 일찍 일어나는 사람이었고 절대 늦잠을 자지 않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소파에 기대어 잠들어 있었다.‘많이 피곤한 걸까?’자세히 생각해 보니 그들은 지난 일주일 동안 계속해서 야
송문수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크게 티가 나지는 않았지만 그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밝아졌다는 건 알 수 있었다.하지수는 송문수를 더 방해하지 않으려 했다. 송문수가 점점 더 발전하는 걸 보면서 하지수도 그를 더 지지해 주고 싶었고 송문수로 하여금 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하지수는 옆에 있는 소파로 가서 노트북을 들고 업무를 처리하기 시작했다.그리고는 습관처럼 회사의 공식 채팅방에 들어갔다.그녀는 비록 알림을 꺼 놓았지만 회사의 공식 채팅방에 메시지가 있으면 항상 첫 번째로 확인하곤 했다.그런데 그때, 그룹 채팅에 있는 메시지를 본 하지수는 깜짝 놀랐다. 그녀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아마 이 상황을 믿기 어려워할 것이었다.송문수가 회사의 공식 채팅방에 ‘하지수’라는 이름을 여러 번 보낸 것이었다.하지수는 고개를 들어 송문수를 바라보았다.그는 진지하게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채팅방에는 여전히 ‘하지수’라는 이름이 올라오고 있었다.“문수 씨, 컴퓨터 바이러스에 걸린 거 아니야?”하지수가 물었다.“어?”송문수는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했다.하지수는 송문수 앞에 서서 그의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화면에는 타자를 해놓고 아직 보내지 않은 ‘하지수’도 있었다.송문수도 그제야 자신이 채팅방에 ‘하지수’라는 이름을 여러 번 입력했다는 것을 깨달았다.그 자신도 놀란 듯했다. 그는 자신이 타자를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의식하지 못했던 것이다.하지만 방금 그의 머릿속이 온통 하지수로 가득 찬 건 사실이었다.그때, 채팅방에서 누군가 메시지를 보냈다.[회장님 지금 하 매니저님한테 애교 부리는 거야? 그걸 실수로 단체 채팅방에 보낸 거고?]메시지는 보내지자마자 삭제되었고 밖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나도 잘못 보냈네!”그룹 채팅에 두 개의 삭제 기록이 나타났다.송문수는 멍하니 앉아 있다가 그제야 메시지를 삭제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그는 ‘하지수’라는 메시지들을 삭제하려 했지만 이미 메시지를 취소할 수 있는 시간이
송승우는 이를 꽉 악물었다. 그는 하지수를 절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 그는 하지수에게 송문수를 고른 게 얼마나 잘못된 선택이었는지 반드시 알게 해주겠다고 결심했다. 그녀로 하여금 후회하도록 만들겠다고 다짐했다....하지수는 송승우의 사무실을 떠나 바로 송문수의 사무실로 갔다.송문수는 업무에 몰두해 있었다.회사에 들어선 순간부터 그는 자유시간이 없었고 퇴근 후에도 여전히 업무와 관련된 일들을 처리하고 있었다.하지수는 송문수가 많이 변했다고 느꼈다. 그녀는 하느님도 부지런한 사람을 도울 거라 믿으며 송문수가 앞으로 큰 성과를 낼 것이라고 확신했다.“형이 뭐라고 했어?”송문수는 그녀를 한 번 쳐다보며 차갑게 물었다.“자기 개인 비서로 되어달라고 하더라고.”하지수는 송문수에게 숨기지 않고 말했다. 그녀는 더 이상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을 그에게 숨기고 싶지 않았다.송문수랑 같이 오랫동안 시간을 보내고 싶었기에 최대한 마음을 다할 생각이었다.송문수는 멈칫하더니 코웃음을 치더니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녀가 어떻게 대답했는지 알고 싶지 않아 하는 것 같았다. 어쩌면 하지수가 그 제안을 무조건 받아들였을 거라고 여겼는지도 모른다.‘지수가 형 요구를 거절한 적은 한 번도 없는데 이번에도 알겠다고 했겠지...’이렇게 생각한 송문수는 일에 더 집중하려 애썼다. 회사 일을 제대로 해내기로 결심한 이상 중간에 포기할 생각은 없었으니 말이다.“거절했어.”하지수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송문수는 가슴이 약간 두근거리는 걸 느꼈다.분명 그녀의 말에 설렌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겉으로 티 내지 않으려 했다.그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척 계속해서 서류를 보고 있었다.반면, 하지수는 송문수에게 그 어떤 반응도 기대하지 않았다. 어차피 송문수는 자기한테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저 자신의 결정을 그에게 알리고 싶었을 뿐이었다.“왜 거절했는데?”송문수가 차분하게 물었다.“문수 씨한테 내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으니까.”하지수는 웃으며
하지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송승우를 바라보았다.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말이다.어린 시절 그녀는 항상 송승우를 믿었고 그가 자기를 보호해 줄 거라 생각했었다. 송승우는 같은 또래 친구들보다 성숙하고 머리가 좋다고 생각했었다.하지만 순간, 그녀는 자신이 송승우에 대해 뭔가 오해를 하고 있었던 건 아닌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게다가 그가 지금 하는 행동이 너무 유치해서 하지수는 어떻게 거절해야 할지 몰랐다.그녀는 이해할 수 없었다.‘어떻게 이런 말을 그렇게 쉽게 할 수 있지?’송승우는 하지수와 송문수의 관계를 알고 있었다. 하지수가 몇 번이나 말했으니 모를 리 없었다. 지금은 송문수와 잘 지내고 있고 송승우와의 관계는 이미 끝난 거라고 말이다.그리고 송문수가 지금 송씨 그룹의 대리 회장직을 맡고 있다는 것도 분명 알고 있었다. 송문수의 결정이 회사의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도 말이다. 송문수한테 도움이 더 필요했고 송문수가 받는 스트레스가 더 많았다.‘생각이 없는 건가? 어쩌면 이렇게 이기적인 말을 할 수 있는 거지?’“왜요? 제가 무슨 어려운 부탁이라도 했나요?”송승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하지수를 바라보며 안색이 조금 어두워졌다.“승우 씨, 정말 제대로 일하려고 온 거 맞아요? 아니면 그냥 문수 씨를 못 믿어서 온 건가요? 문수 씨가 회사를 잘 관리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감시하러 온 거냐고요!”“당연히 일하러 온 거죠. 아니면 왜 연구소 일까지 내려놓고 회사로 왔겠어요! 그리고 또...”“아까 지수 씨가 그러셨잖아요. 송문수를 못 믿냐고요. 맞아요. 전 송문수 그 자식 못 믿어요. 송문수가 회사를 제대로 이끌 수 있을지 제가 어떻게 알아요? 성과를 하나 냈다고 교만해져서 마음대로 하려 할 겁니다.”“갑자기 드는 생각인데요. 승우 씨는 왜 그렇게 문수 씨 잘되는 꼴을 못 보는 거예요?”하지수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그게 아니라면 왜 문수 씨를 그렇게 모욕하고 내 곁에서 떼어놓으려 하겠어...’하지수의 능력이 얼마나
짧은 시간이었기에 송문수가 회사의 대체적인 상황을 잘 파악한 것만으로 대단한 것이었다. 게다가 이는 단지 송문수에게 회사를 관리하는 재능이 있어서 해낸 것이라고 단정 지을 수도 없었다.송문수가 매일 얼마나 열심히 일하고 있는지 하지수는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항상 그는 조금이라도 여유가 생기면 회사를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 연구하면서 시간을 보냈고 지어는 날마다 새벽까지 야근을 하다가 집에 돌아갔다. 게다가 차에서 보는 서류들도 모두 송씨 그룹과 관련된 문서였다.송문수는 원래 시간만 나면 게임을 하거나 먹고 자고 놀기만 했던 사람이었다. 얼마 안 되는 사이에 송문수는 정말로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된 것 같았다....송문수의 말대로 하지수는 다음 주에 회사로 찾아올 크레지를 위해 연관 업무에 대한 계획을 세웠다.송문수와 하지수가 일 처리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이사님들도 점점 두 사람을 인정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이 맡긴 업무에 대해 불평이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고 바로 행동에 옮기기만 했다.그러면서 송문수와 하지수의 업무 부담도 줄어들었고 회사도 더 원활하게 운영되고 있었다.회의가 끝난 후, 하지수는 송문수를 따라 그의 사무실로 갔다.요즘 들어서 그녀는 송문수의 사무실에서 일을 하는 것에 익숙해졌던 것이다. 송문수는 자주 회사의 전문 용어나 이해할 수 없는 마케팅 계획에 대해 물었고 그녀는 언제 어디서든 그가 묻는 말에 답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두 사람은 서로의 사무실을 오가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다.“지수 씨, 잠깐 제 사무실로 올 수 있으세요?”그때, 송승우가 갑자기 하지수를 불렀다.하지수는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 망설였다. 그녀는 송문수를 한 번 바라보았다.“네 마음대로 해.”송문수는 이렇게 말하고 큰 걸음으로 사무실을 떠났다. 질투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어 보이는 송문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하지수는 속으로 약간 허탈감을 느꼈다.송문수가 많이 변한 건 사실이었지만 하지수에 대한 감정은 별로 진전이 없는 것 같았다. 물론 그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