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은지는 여기까지 말하다가 몇 초간 머뭇거렸다.순간 하객들은 그녀의 말을 듣고 저마다 경악을 금치 못했다.그리고 시선은 자기도 모르게 육현경과 소이연 쪽으로 향했다.갑작스러운 상황에 소이연은 그저 말없이 입술만 달싹거렸다.진은지가 자신을 언급할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다.이때, 진은지가 다시 말을 이었다.“현경 씨가 다정한 사람이란걸 알고 있고 진심으로 당신과 남은 인생을 함께하고 싶었어요. 근데 어쩔 수 없는 사실이지만 저보다는 소이연 씨가 현경 씨랑 더 잘 어울리네요. 당신이 소이연 씨에게 마음이 있단 걸 알고 있지만 계속 애써 숨기는 느낌이었는데 혹시 소이연 씨가 당신을 거절할까 두려워서인가요?”“사실 같은 여자로서 느낄 수 있는데 소이연 씨도 여전히 당신한테 마음이 있어요. 두 사람이 지금 왜 일부러 서로를 멀리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진심으로 두 사람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몰래 민이한테도 물어봤는데 비록 저도 좋아하지만 그래도 엄마 아빠가 다시 원래 사이로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했어요.”소이연이 고개를 돌려 육민이쪽을 바라보았는데 그는 아까부터 쭉 육현경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얼굴은 아직 앳되어 보였지만 키는 이미 170cm가 훌쩍 넘어 있었는데 이번 육현경의 결혼식에도 자신이 그의 들러리가 되어주겠다고 했다.그는 양복 차림에 입술을 앙다물고 있었는데 한눈에 보아도 지금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고 있는 것 같았다.진은지가 계속 말을 이었다.“육현경 씨, 비록 오늘 저는 그 자리에 가지 않았지만 당신이 조금 더 용감했으면 좋겠어요. 당당하게 한 발짝 나아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자기 행복을 되찾았으면 좋겠어요. 저도 당신의 행복을 진심으로 빌게요.” 진은지는 활짝 웃으며 한마디를 더 추가했다.“화이팅!”그렇게 영상은 끝났다.이렇게 되면 육현경의 오늘 결혼식에는 신부가 없다.신부가 식전에 도망쳤다고 봐야 한다.하객들의 의견도 분분했다.사실 오늘 결혼식에 온 하객 중 신부가 누군지 모르고 온 사람들도 있
그렇게 육현경을 가만히 서서 바라만 보고 있었지만 눈시울은 어느새 빨개져 있었다.지금 육현경이 오늘 결혼할 신부한테 바람맞은게 가슴이 아파서인지 아니면 다른 원인이지...순간 자신이 지금 어떻게 답해야 할지도 어떻게 행동해야 할 지도 모를 정도로 마음이 심란해지기 시작했다.“진은지 씨가 한 말이 다 맞아. 사실...”육현경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사실 오늘 이 결혼은 바로 너를 위해 준비한 거야.”소이연은 순간 그의 말에 깜짝 놀랐다.오늘 진은지의 부재가 사실 그녀로서는 진작에 짐작했던 일이다. 예전부터 놀기를 좋아했던 사람이라 한순간에 모든 유혹을 뿌리치고 그와 결혼하기에는 너무 힘들었을 것이다.하지만 오늘 이 결혼식이 자신을 위해 준비했다는 육현경의 말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육현경은 진은지가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황에서 어떻게 그녀가 오늘 이 자리에 나타나지 않는다는 걸 눈치챘단 말인가.소이연은 약간 기분이 나빴다.만약 그녀더러 빨리 이 민망할 상황에서 구제해달라고 부탁했더라면 오히려 좋았을 것이다.필경 오늘 이 일은 참으로 두고두고 창피한 일이니까.상류 사회를 놓고 말하면 거의 매장당할 수준과 마찬가지였다.“나랑 진은지 씨는 그저...”육현경이 심호흡을 한번 한 뒤 다시 말을 이었다.“그저 처음부터 끝까지 다 연기였을 뿐이야.”소이연의 눈살이 순간 찌푸려졌다.‘무슨 연기?’“난 이런 방식으로라도 널 붙잡고 싶었어. 심지어 날 불쌍하게 여겨줄 줄 알았거든. 어쨌든 진은지 씨의 사생활도...”육현경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굳이 진은지의 사생활까지 들먹이기는 싫었다.“나도 결혼 전날까지 혹시나 네가 이 결혼을 막아주지 않을까 하는 환상도 잠시 갖고 있었어. 물론 넌 나에게 계속 주의를 주었지. 근데 그건 나 때문이 아니라 네가 너무 착해서 그저 인도주의적인 조언을 나에게 하고 싶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육현경은 애써 감정을 추스르고 소이연과 눈을 마주치며 다시 말을 이었다.“방금 진은
길어지는 침묵은 사람들의 기대감만 더욱 크게 만들었다.모든 사람이 소이연의 답만 기다리고 있었다.어쨌든 오늘 육현경의 절절한 사랑을 눈앞에서 보았다.하지만 소이연쪽은...지금 자신의 마음이 어떤지 아직까지도 잘 몰랐다.하여 두 사람은 그저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기만 했다.육민이도 옆에서 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그는 이것이 자기 아버지의 마지막 기회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만약 어머니가 이 상황에서도 아버지를 거절한다면 이제 그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볼 수 있다.하지만 그는 두 사람이 다시 합쳐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어머니에 대한 아버지의 뜨거운 사랑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고 만약 여기서 어머니를 잃게 되면 자기 아버지가 얼마나 슬퍼할지...소이연을 위해서 육현경이 사실 많은 일을 했다.싫으면서도 진은지와 커플 연기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녀의 마음을 붙잡고 싶어 했고 어떻게 해서든지 그녀와 결혼하려 했다...“미안해.”소이연이 드디어 입을 열었는데 첫 마디가 그에 대한 사과였다.육현경은 허탈함에 웃음이 나왔다.하지만 눈시울은 어느새 빨개져 있었다.마음 아픈 건 둘째로 치고 이렇게 그녀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그녀에게 준 상처가 너무 커서 이제 더 이상 자신을 사랑하지 않게 된 건가?자신이 무리했단 사실은 인정하지만 여전히 욕심을 부리고 싶었다.그는 다시 일어서려다가 순간 어지러움에 몸이 휘청거렸다.몸집도 커다란 사람이 지금 이 순간 누군가 건드리기만 해도 픽 쓰러질 것 같아 보였다.예수진은 그런 육현경의 모습이 너무 가슴이 아팠다.그리고 처음으로 그가 불쌍하다고 여겨졌다.어릴 때부터 육현경은 무엇 하나 부러운 것 없이 자란 아이라 영원히 거만하고 고고하고 두려울 게 없는 사람일 것 같았으나 지금 이 순간은 너무 초라해 보였다.유일하게 울던 모습을 본 것도 바로 오래전 자기 아버지가 돌아갔을 때였으니. 그것도 육현경이 어렸을 때라 가족을 잃었을 때의 나약함을 당연하게 여겼을
더 이상의 충격을 자신이 이겨낼 수 있을지.실낱같은 희망도 결국에는 무참히 깨지고 말았기 때문이다.하여 육현경은 그저 말없이 서서 마른침만 삼켰다.그리고 두 주먹을 꽉 쥐고 천천히 몸을 돌렸다.한눈에 보아도 지금 감정을 애써 참고 있는 것 같았다.그리고 돌아서자마자 소이연과 눈을 맞췄다.지금 이 순간, 아주 작은 희망이라도 또다시 품고 싶어졌다. 그리고 그녀와 눈이 마주친 순간 자기도 모르게 미소가 번졌다.불빛 아래, 눈앞의 소이연이 너무도 아름다워 보였기 때문이다.자신의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순간 소이연의 눈시울도 젖어 있다는 걸 느꼈다.물론 자신도 이미 눈앞이 눈물로 가득차서 잘 보이지 않기는 마찬가지지만 말이다.애써 참으려 했지만 눈물은 이미 두 볼을 타고 마구 흘러내리고 있었다.“난 우리 사이가 이미 끝났다고 생각했어.”소이연은 한껏 긴장된 모습의 육현경을 바라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우리 사이에는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어. 생사의 이별, 그리고 서로에 대한 끝없는 의심으로 결국 각자 자기의 길을 가게 되었잖아... 그래서 난 우리 둘은 여기서 끝이라고 생각했어.”육현경은 눈앞의 소이연을 가만히 바라보았다.그리고 당장에라도 그는 단 한 번도 그녀를 떠난 적이 없다고 말해주고 싶었다.기억을 잃었던 기간에는 어쩔 수 없었다고 해도 일단 그녀를 만나면 자기도 모르게 영혼의 이끌림처럼 그녀에게 다가갔다.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는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자신이 울먹이는 모습을 그녀에게 들킬 것 같았기 때문이다.하여 두 사람은 한참 동안 말없이 서로 눈빛만 주고받았다.“우리가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그리고 지금 당신에 대한 내 감정이 어떤지, 또한 예전의 나처럼 어떤 감정도 섞이지 않고 당신을 좋아할 수 있을지 아직도 잘 모르겠어.”소이연은 한껏 떨리는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두 사람 사이에는 너무나도 많은 일들이 있었다.서로 알게 된 지 고작 10년밖에 안 되는데 이미 누군가가 평생 겪어도 모자랄 가슴
소이연은 신부 대기실로 향했다.누가 들러리로 온 사람이 갑자기 신부가 될 줄을 상상이나 했을까?지금껏 결혼식 중에서도 아주 이례적인 상황이라고 볼 수 있었다.소이연은 웨딩드레스를 한번 입어 봤는데 마치 그녀를 위해 맞춤 제작한 것 처럼 핏이 딱 맞아 본인도 약간 어리둥절했다.전혀 실감이 안 났다.어제만 해도 아주 멀어 보였던 사람과 오늘 갑자기 결혼하게 되다니.“와! 신부님도 너무 아름다우신데 웨딩드레스도 너무 이쁘네요.”옷을 입혀주던 직원은 그녀를 칭찬하기에 바빴다.하지수도 소이연 따라 같이 옷 갈아입으러 들어왔다가 웨딩드레스를 보게 되었는데 정말 너무 아름다워 한동안 말을 잃게 만들었다.순간 무조건 신부가 더 아름답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솔직하게 웨딩드레스가 신부의 미모를 살렸다고 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신부와 드레스가 잘 어우러졌다.그러다가 하지수는 자기도 모르게 감탄했다.“오늘 이 드레스가 너한테 맞춤 제작한 게 아니었다면 아마 믿지 않았을 거야.”소이연은 하지수의 말에 커다란 전신거울을 통해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리고 하지수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진짜 내가 오늘 두 신부의 들러리가 되었단 사실을 누가 믿겠냐고.”소이연은 얼굴을 살짝 붉히며 미소를 지었다.사실 그녀도 오늘 결혼하게 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가자. 좋은 시간이 다 지나가겠어. 다들 오늘의 주인공을 기다리고 있잖아.”하지수가 그녀를 재촉했다.그러자 소이연은 수줍은 듯 고개를 살짝 끄덕이더니 원래 진은지가 서 있었어야 했을 그 성안으로 들어갔다.그리고 성안에 서서 커튼 너머로 멀리에 서 있는 육현경을 가만히 바라보았다.정말이지 너무 환상적이다. 다시 생각해 봐도 그녀의 결혼식이 이렇게나 갑작스럽게 진행될 줄은 몰랐다.여태껏 예수진이 자신한테는 이미 충분히 놀라운 존재라고 생각했는데 그녀의 결혼식이 그보다 더할 줄은 몰랐다.소이연은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사회자가 한창 그녀를 소개하고 있었다.그러다가 아름다운 음악 소리가 울리며 눈앞의 커튼이 천
그리고 그녀가 자신의 마음을 받아들이고 곧바로 소이연의 뒤쪽을 바라보았는데 그녀의 뒤에는 바로 육민이 서 있었다.하지만 어찌 되었든 소이연이 그를 받아줘서 너무 다행이라 생각했고 이외의 일들은 지금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심지어 지금 이 순간에도 어떻게 하면 소이연에게 덜 거부감을 줄 수 있는지 안절부절못했다.그런 육현경이 식은땀을 뻘뻘 흘리는 모습을 소이연은 단번에 발견했다.‘오늘 날씨가 덥지도 않고 바람도 적당히 상쾌한데 왜 땀을 흘리지? 그 정도로 긴장한 건가?’사실 방금 육현경이 자기 손을 잡으려 하는 걸 보고 그녀도 같이 잡으려고 준비하고 있었다.하지만 그는 다시 온몸이 굳은 채 손을 다시 거둔 걸 보면 그녀보다 더 떨려 하는 것 같았다.입술을 오므리고 잠깐 고민하던 소이연이 갑자기 손을 뻗어 육현경의 손을 덥석 잡았다.그녀의 돌발행동에 육현경은 깜짝 놀란 나머지 온몸이 떨렸다.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 예수진은 그만 웃음이 터졌다.이 세상에 무엇 하나 두려운 게 없던 육현경이 소이연의 행동 하나에 이 정도로 떨다니.완전히 그녀의 카리스마에 제압된 것이다.이제 평생 소이연한테 절절매면서 살듯싶었다.벌써 그 장면을 상상만 해도 예수진은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누가 어릴 적부터 육현경더러 그렇게 잘난체하라고 했던가?잘난체하는 것도 둘째가라고 하면 서운할 정도였다.그런 사람이 소이연한테 걸렸으니 고소다고 할 수 밖에.소이연이 육현경의 손을 잡아보니 이미 땀으로 흥건해 있었고 어느새 두 사람의 마음도 촉촉이 젖어 들고 있었다.그 모습을 본 사회자는 더는 참지 못하고 두 사람을 놀리기 시작했다.“우리 신랑분보다 신부님이 더 용감하시네요. 자, 그럼 우리 아름다운 신부님께서 신랑분의 손을 잡고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가 주세요.”현장은 또다시 웃음바다가 되어버렸고 소이연은 깜짝 놀란 나머지 얼굴까지 빨개졌다.그 모습에 육현경은 그저 말없이 그녀의 손만 더욱 꽉 쥐었다.이때 주례가 무대 위에 다시 올라와 두 사람에게 물었다.“신
모두가 하연의 귀여움에 반했다.육현경은 미소를 지으며 하연의 머리를 쓰다듬고 다정하게 말했다.“오빠는 좀 어려울 것 같고, 노력하면 동생은 만들어 줄 수 있을 것 같은데.”“우리 아빠, 엄마처럼 거짓말하는 거 아니죠?”하연이 진지하게 물었다.“그래.”“와, 나 여동생 생긴다!”하연은 흥분하며 말했다.“그럼 내일 바로 만날 수 있어요?”“...”로켓을 타도 불가능할 텐데.“하연아, 내려와!”밑에서 예수진이 불렀다.“오늘은 네 결혼식도 아닌데 왜 자꾸 시선을 끌려고 그래?”하연은 입을 삐죽거렸다.“엄마는 정말 나빠.”오늘 엄마는 아빠한테 뽀뽀도 못 하게 하고 말도 못 하게 했다.불만은 있었지만, 원래 말을 잘 듣는 아이였으니 하연은 총총걸음으로 내려갔다.사회자는 몇 마디 말로 분위기를 풀고는 크게 외쳤다.“신랑과 신부, 이제 결혼반지를 교환하도록 할게요!”육현경과 소이연은 서로를 바라보았다.육현경이 먼저 반지를 꺼내 소이연의 손을 들어 조심스럽게 약지에 끼워주었다.하지만 너무 긴장했던 탓인지 손이 떨려서 한참을 애를 써도 잘 안 되었다.“현경아, 진정해.”소이연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육현경은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하지만 차분해지기는 쉽지 않았다.한참이 지나서야 그는 반지를 겨우 끼울 수 있었다.그러고 나서, 소이연이 반지를 집어 육현경의 손에 끼워주었다.그녀 역시 묘한 감정이 교차했다.그들은 갑자기 이렇게 결혼을 해버리게 됐으니까.“좋아요. 신의 이름을 빌려 두 분이 정식 부부가 되었음을 선언합니다. 이제 신랑은 신부에게 키스해도 됩니다!”사회자의 열정적인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순간, 사람들의 우렁찬 박수가 터져 나왔다.육현경은 소이연을 그윽이 바라보았다.소이연도 그를 바라보았다.둘은 한참을 서로 응시했지만, 육현경은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키스해!”무대 아래에서 누군가 재촉했다.하도경이었다.예수진도 속으로는 조바심이 났지만, 여자로서 공개적으로 그런 말을 하긴 부끄러웠다.하도경은 역시 그
“에헴, 에헴!”사회자가 참다못해 끼어들었다.아까는 키스를 못 하더니 지금은 키스가 끝날 줄 모르니 말이다.연회 음식이 다 식어버리겠다.사회자의 일부러 낸 기침 소리에 그제야 정신이 든 육현경과 소이연은 천천히 떨어졌다.떨어질 때 보니, 서로의 입술은 정욕에 물든 붉은 빛을 띠고 있었고 자세히 보면 소이연의 입술은 약간 부어오른 상태였다.“자, 이제 신랑과 신부님은 방으로 가서 첫날 밤을 쭉 이어가시면 되겠습니다. 하객 여러분들도 음식을 기다리고 계시니까요.”사회자가 유쾌하게 말했다.육현경과 소이연의 얼굴은 더욱 붉어졌다.소이연은 아까 왜 그렇게 몰입했는지 자신도 모를 정도였다.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입술을 오므렸다.입술에는 아직도 육현경의 향기가 남아 있는 듯했다...“이것으로 오늘 이 두 커플의 결혼식을 마치겠습니다. 이제부터 기념 촬영 시간이 있겠습니다. 손님 여러분, 무대 위로 올라오셔서 사진을 찍으셔도 됩니다.”사회자가 크게 외쳤다.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많은 손님이 두 커플과 사진을 찍으려고 경쟁하듯 무대로 올라갔다.워낙 눈부신 커플들이었고 이렇게 아름다운 두 쌍을 만나는 것도 정말 드문 일이었기 때문이다.사진을 다 찍고 나자 연회가 시작되었다.야외식장이라 음식은 서양식 뷔페로 준비되어 있었다.음식을 먹는 동안, 두 커플은 계속해서 손님들에게 술을 따랐다.소이연도 술을 따르기 위해 옷을 갈아입었다.모두 그녀의 사이즈에 딱 맞는 옷이었다.옆에서 함께 걷던 예수진이 물었다.“이연 언니, 깜짝 놀랐죠? 전혀 예상 못 했죠?”“수진 씨는 미리 알고 있었던 거예요?”소이연이 예수진을 쳐다보며 물었다.예수진은 입술을 꼭 깨물었다.스스로 무덤을 판 기분이었기 때문이다.“그러니까 현경이랑 짜고 나한테 숨긴 거예요?”“나도 일부러 숨기고 싶진 않았어요. 다 두 사람이 잘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런 거지. 내가 말하면 이연 씨는 또 현경을 안 만나줄 거잖아요.”예수진도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나도 두 사람을 위해서
“문수 씨.”하지수는 송문수의 이름을 불렀다. 그녀는 지금 송문수가 화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지만 송승우에게 무슨 일이라도 있으면...어쨌든 한 가족이 아닌가.그녀는 가정의 불화를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그래도 승우 오빠를 병원에 보내야 하잖아.”하지수는 큰 소리로 송문수에게 말하자 송문수는 발걸음을 멈추었다.사실 송승우는 별일 없었다. 송문수는 격투기를 배운 적이 있기에 사람의 어느 부위가 다치면 안 되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송승우를 이성을 잃을 정도로 때렸어도 급소를 때리지 않았다.하지수는 송문수의 대답을 듣지 못하자 다급히 핸드폰을 꺼내서 긴급구조 요청을 하였다.구급차를 기다리는 동안, 하지수는 송승우에게 다가가지 않았다.그녀는 멀지 않은 곳에 서서 바닥에 쓰러진 송승우를 바라보았다.송승우의 분노가 극도에 이르렀지만 송문수와 싸울 힘이 없었다.사실 하지수도 요새 송승우와 송문수가 자주 싸우는 이유를 몰랐다. 오늘은 벌써 두 번째였다.어렸을 때 두 형제의 관계가 그다지 친밀하지 않았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지금 어른이 되었는데 아직 유치하게 싸우다니!이윽고 구급차가 도착했고 구조대원들은 들것으로 송승우를 구급차에 태웠다.하지수도 따라서 올라탔지만 송문수는 타지 않았다.하지수는 잠시 망설이다가 내려와서 송문수를 잡아당겨서 같이 구급차에 올라탔다.구급차 안은 매우 조용하였다.아무도 말하지 않았고 차 안의 분위기에 아직 분노의 불꽃이 튕기는 것 같았다.병원에 도착한 후 송승우는 응급실로 옮겼다.하지수와 송문수는 로비에서 기다렸다. 송문수는 차가운 분위기를 풍기면서 한쪽에 서 있었다.사실 하지수는 송문수의 얼굴에도 상처가 있는 것을 보았다. “문수 씨도 얼굴과 몸에 난 상처를 검사하지 않을래?”“필요 없어. 외상이라 금방 나을 거야”송문수가 이렇게 말하자 하지수도 강요하지 않았다.잠시 후, 송승우는 응급실에서 나왔고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모두 외상이라 별문제가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지금 입원 수속
“놓지 못해?”송문수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하면서 송승우를 바라보았다.서로 마주 본 두 사람의 눈에는 분노로 가득 차 있었고 일촉즉발의 분위기였다.“이거 놔요.”하지수도 송승우의 손을 힘껏 뿌리쳤다. 그러자 송승우의 눈빛에 분노로 이글이글 타올랐다.그는 더욱 세게 하지수를 잡아당겼다.하지수는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아파요!”송문수의 안색이 더욱 어두워졌다.“놓으라고 했다!”그는 송승우의 팔을 끌어당기는 손에 힘을 꽉 주었다. 이에 송승우는 통증을 느꼈으나 승부욕 때문에 쉽게 놓을 수가 없었다.송문수가 힘을 줄수록 그도 더욱 힘을 줘서 하지수를 잡아당겼다.하지수는 너무 아파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송승우는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 “이걸 놔. 나와 지수의 일에 끼어들지 마.”“끼어들지 말라고?”송문수는 냉소를 지으면서 말했다.“형이 잊은 것 같은데 지수는 내 와이프야. 우린 부부이지만 형과 지수는 아무 사이도 아니잖아? 지금 형이 내 와이프를 데려가려고 하는데 나보고 끼어들지 말라고? 너무 뻔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너!”송문수의 쏘아붙인 말에 송승우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예전에 송승우는 하지수가 자신을 좋아했기 때문에 송문수를 안중에 넣지도 않았고 그들의 결혼 관계를 진지하게 생각한 적도 없었다.그러나 지금 송문수에게 이런 모욕을 당하다니!“지수가 좋아한 사람은 나야!”송승우는 수치심에 더 약이 올라서 노기어린 목소리로 외쳤다.하지수는 너무 아파서 반박할 힘도 없었고 송문수의 말이 들려왔다.“지수가 누구를 좋아하든 지금은 내 여자야. 누구도 데려갈 수 없고 누구도 지수를 괴롭힐 수 없다고! 셋까지 셀 테니 지수를 놓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송승우는 끄덕하지도 않고 송문수를 노려보았다.“하나.”“둘.”송문수는 ‘셋’을 세는 대신 주먹을 들고 송승우의 얼굴을 세게 강타했다.송문수의 한 방을 맞은 송승우는 코피를 흘렸고 아픔으로 이내 하지수를 놓아주었다.그러나 송승우는 소심한 사람이었다. 그는 늘
‘내가 자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건가?’“승우 씨, 사과 따위 이제 필요 없어요. 지금 제가 바라는 건 아무 탈 없이 우리 사이의 관계를 끝내는 거예요. 승우 씨는 문수 씨 형이잖아요. 게다가 저도 어릴 때부터 송씨 가문에서 자란 사람이고요. 그러니까 우리 그냥 친척 같은 관계로 돌아갔으면 좋겠어요.”하지수는 인내심을 가지고 진지하게 말했다.송승우는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며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지수는 더 이상 그와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망상에 빠진 사람은 무슨 말을 하든 헤어 나올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그녀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으니 그걸로 됐다고 생각했다.하지수는 뒤를 돌아 송문수 쪽으로 다가가려 했다. 늦은 시간이었고 그녀도 여전히 많이 피곤했다. 송문수랑 같이 집으로 가서 자고 싶었다.크레지가 아직 오지 않은 이상, 기술 투자 계약서에 사인하지 않은 이상 방심할 수는 없었다. 그들은 짬짬이 시간을 내서 잠을 잘 수밖에 없었다.그런데 막 돌아서려는 순간, 그녀의 손은 또다시 송승우에 의해 붙잡혔다.하지수가 아무리 팔을 흔들어도 벗어날 수 없었다.송문수는 차가운 눈빛으로 송승우의 행동을 지켜보며 주먹을 꽉 움켜잡았다.그가 앞으로 다가가 하지수를 데려오려던 순간, 송승우가 갑자기 말했다.“지수 씨, 방금 당신의 행동은 모든 걸 말해줬어요!”“무슨 행동이요?”하지수는 이해할 수 없었다.“방금 제가 불렀을 때, 제 쪽으로 다가왔잖아요. 그게 지수 씨 마음속에 있는 진심이에요. 더 이상 숨기지 말고 저한테로 오세요. 하지수 씨, 제가 잘 해줄게요. 지수 씨를 혼자 두는 일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을 거예요. 제가 맹세할게요...”“아니요.”하지수는 단칼에 거절해 버렸다.하지수를 바라보는 송승우의 눈빛은 분노로 가득 찼다.“승우 씨가 불었을 때 따라간 건 무의식적으로 간 거예요. 잠에서 덜 깬 상태라서 누가 불렀어도 갔을 거예요. 승우 씨인 줄도 몰랐어요. 하지만 인정할 건 인정할게요. 낯선 목
송문수는 하지수가 일어나서 송승우 쪽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송승우는 입가에 미소를 띠며 생각했다.‘그래, 지수 씨도 아직 날 신경 쓰고 있다니까. 숨기려 해도 어떻게 숨기겠어? 이런 상태에서야 비로소 진심이 드러나는 거지.’송문수는 멀어져 가는 하지수를 잡으려 손을 뻗었지만 그녀의 옷자락에 손이 닿았을 때 살짝 멈칫했다. 하지수를 강제로 붙잡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사실 그는 항상 하지수의 선택을 존중해 왔다. 지금까지 변함없이 말이다.하지수는 송승우 앞으로 걸어갔고 송승우가 먼저 손을 뻗더니 그녀를 끌어당기려 했다.그러나 그가 손을 뻗자 하지수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승우 씨?”그녀는 그제야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깨달았다.조금 전까지 어지럽고 혼란스러웠던 상황이 이제와사 분명해졌다.그녀는 자신이 언제 잠에 들었는지도 몰랐다. 그저 너무 피곤해서 머리가 흐릿할 뿐이었다.“너무 늦었어요. 제가 데려다줄게요.”송승우가 그녀를 끌고 나가려고 하자 하지수는 급히 그의 손을 쳐내며 말했다.그러자 송승우는 눈살을 찌푸렸다.“아까는 잠에서 덜 깨서 그랬어요. 전 문수 씨랑 같이 갈 거예요.”“뭐라고요?”송승우는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언제까지 연기할 거예요?”“네?”하지수는 눈살을 찌푸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송승우가 왜 갑자기 화를 내는지 알 수 없었다.“저를 놀리는 게 재밌으세요?”송승우가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저... 저는 그런 게 아니라...”하지수는 당황해하며 말을 더듬었다.그러자 송승우가 입을 열었다.“알겠어요. 제가 잘못한 걸로 하죠.”그가 갑작스레 사과를 하자 하지수는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그녀는 송승우가 왜 갑자기 사과를 한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왜 사과를 하는 거야?’“미안했어요. 어쩔 수 없이 떠난 거라고는 하지만 우리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못했잖아요. 결혼식장에 지수 씨 혼자 남겨두고 간 건 제 잘못이에요. 미안해요.”하지수는 그제야 무슨 말인지 이해했
하지수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심장은 여전히 빨리 뛰고 있었다.그녀는 전혀 말을 듣지 않는 심장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만약 누군가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이 어색한 상황이 얼마나 계속될지 알 수 없었다.‘문수 씨도 부끄러워하는 건가?’하지수는 입술을 꽉 깨물며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려 애썼다.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올까 봐 걱정이었다.하지수는 소파에 앉아 몰래 송문수를 쳐다보았다.그는 그저 고위직 직원의 얘기를 듣고만 있을 뿐, 전혀 불편해 보이지 않았다.그녀는 깊게 숨을 쉬었다.‘단지 어색해서 그런 건가?’송문수는 언제나 체면을 중시하는 사람이었으니 말이다.‘해명하려 하지 않는 것도 결국 체면을 세우려고 그러는 건가?’하지수는 너무 많은 기대를 해선 안 된다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다잡았다....크레지를 맞이하기 위해 모든 관련 부서가 계속해서 야근을 하고 있었다.송문수와 하지수 역시 마찬가지였다.그들은 끊임없이 회의를 열고 논의하며 최대한의 성의를 보이기 위해 애썼다.새벽 2시가 되었지만 송문수는 아직 퇴근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방금까지도 각 부서와 회의를 하면서 협력 계획과 판매 계획을 다시 수정하고 보완했다.회의가 끝난 후에도 송문수는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는 계속 바쁘게 일하고 있었다.송문수는 그제야 그의 확인이 필요한 문서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무슨 서류든 제대로 보지 않고 사인을 해버렸었다. 하지만 이젠 점점 더 신중해졌고 모든 서류를 꼼꼼히 확인하고 나서야 사인을 했다.그 덕에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고 오늘 하루 동안의 모든 서류를 처리하고 나서야 송문수는 퇴근을 하려고 하지수를 쳐다봤다. 그러자 그녀는 이미 소파에 기대어 잠들어 있는 것이었다.하지수는 잠이 많은 사람은 아니었다. 송문수의 기억 속에 하지수는 늘 자신보다 일찍 일어나는 사람이었고 절대 늦잠을 자지 않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소파에 기대어 잠들어 있었다.‘많이 피곤한 걸까?’자세히 생각해 보니 그들은 지난 일주일 동안 계속해서 야
송문수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크게 티가 나지는 않았지만 그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밝아졌다는 건 알 수 있었다.하지수는 송문수를 더 방해하지 않으려 했다. 송문수가 점점 더 발전하는 걸 보면서 하지수도 그를 더 지지해 주고 싶었고 송문수로 하여금 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하지수는 옆에 있는 소파로 가서 노트북을 들고 업무를 처리하기 시작했다.그리고는 습관처럼 회사의 공식 채팅방에 들어갔다.그녀는 비록 알림을 꺼 놓았지만 회사의 공식 채팅방에 메시지가 있으면 항상 첫 번째로 확인하곤 했다.그런데 그때, 그룹 채팅에 있는 메시지를 본 하지수는 깜짝 놀랐다. 그녀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아마 이 상황을 믿기 어려워할 것이었다.송문수가 회사의 공식 채팅방에 ‘하지수’라는 이름을 여러 번 보낸 것이었다.하지수는 고개를 들어 송문수를 바라보았다.그는 진지하게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채팅방에는 여전히 ‘하지수’라는 이름이 올라오고 있었다.“문수 씨, 컴퓨터 바이러스에 걸린 거 아니야?”하지수가 물었다.“어?”송문수는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했다.하지수는 송문수 앞에 서서 그의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화면에는 타자를 해놓고 아직 보내지 않은 ‘하지수’도 있었다.송문수도 그제야 자신이 채팅방에 ‘하지수’라는 이름을 여러 번 입력했다는 것을 깨달았다.그 자신도 놀란 듯했다. 그는 자신이 타자를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의식하지 못했던 것이다.하지만 방금 그의 머릿속이 온통 하지수로 가득 찬 건 사실이었다.그때, 채팅방에서 누군가 메시지를 보냈다.[회장님 지금 하 매니저님한테 애교 부리는 거야? 그걸 실수로 단체 채팅방에 보낸 거고?]메시지는 보내지자마자 삭제되었고 밖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나도 잘못 보냈네!”그룹 채팅에 두 개의 삭제 기록이 나타났다.송문수는 멍하니 앉아 있다가 그제야 메시지를 삭제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그는 ‘하지수’라는 메시지들을 삭제하려 했지만 이미 메시지를 취소할 수 있는 시간이
송승우는 이를 꽉 악물었다. 그는 하지수를 절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 그는 하지수에게 송문수를 고른 게 얼마나 잘못된 선택이었는지 반드시 알게 해주겠다고 결심했다. 그녀로 하여금 후회하도록 만들겠다고 다짐했다....하지수는 송승우의 사무실을 떠나 바로 송문수의 사무실로 갔다.송문수는 업무에 몰두해 있었다.회사에 들어선 순간부터 그는 자유시간이 없었고 퇴근 후에도 여전히 업무와 관련된 일들을 처리하고 있었다.하지수는 송문수가 많이 변했다고 느꼈다. 그녀는 하느님도 부지런한 사람을 도울 거라 믿으며 송문수가 앞으로 큰 성과를 낼 것이라고 확신했다.“형이 뭐라고 했어?”송문수는 그녀를 한 번 쳐다보며 차갑게 물었다.“자기 개인 비서로 되어달라고 하더라고.”하지수는 송문수에게 숨기지 않고 말했다. 그녀는 더 이상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을 그에게 숨기고 싶지 않았다.송문수랑 같이 오랫동안 시간을 보내고 싶었기에 최대한 마음을 다할 생각이었다.송문수는 멈칫하더니 코웃음을 치더니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녀가 어떻게 대답했는지 알고 싶지 않아 하는 것 같았다. 어쩌면 하지수가 그 제안을 무조건 받아들였을 거라고 여겼는지도 모른다.‘지수가 형 요구를 거절한 적은 한 번도 없는데 이번에도 알겠다고 했겠지...’이렇게 생각한 송문수는 일에 더 집중하려 애썼다. 회사 일을 제대로 해내기로 결심한 이상 중간에 포기할 생각은 없었으니 말이다.“거절했어.”하지수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송문수는 가슴이 약간 두근거리는 걸 느꼈다.분명 그녀의 말에 설렌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겉으로 티 내지 않으려 했다.그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척 계속해서 서류를 보고 있었다.반면, 하지수는 송문수에게 그 어떤 반응도 기대하지 않았다. 어차피 송문수는 자기한테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저 자신의 결정을 그에게 알리고 싶었을 뿐이었다.“왜 거절했는데?”송문수가 차분하게 물었다.“문수 씨한테 내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으니까.”하지수는 웃으며
하지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송승우를 바라보았다.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말이다.어린 시절 그녀는 항상 송승우를 믿었고 그가 자기를 보호해 줄 거라 생각했었다. 송승우는 같은 또래 친구들보다 성숙하고 머리가 좋다고 생각했었다.하지만 순간, 그녀는 자신이 송승우에 대해 뭔가 오해를 하고 있었던 건 아닌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게다가 그가 지금 하는 행동이 너무 유치해서 하지수는 어떻게 거절해야 할지 몰랐다.그녀는 이해할 수 없었다.‘어떻게 이런 말을 그렇게 쉽게 할 수 있지?’송승우는 하지수와 송문수의 관계를 알고 있었다. 하지수가 몇 번이나 말했으니 모를 리 없었다. 지금은 송문수와 잘 지내고 있고 송승우와의 관계는 이미 끝난 거라고 말이다.그리고 송문수가 지금 송씨 그룹의 대리 회장직을 맡고 있다는 것도 분명 알고 있었다. 송문수의 결정이 회사의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도 말이다. 송문수한테 도움이 더 필요했고 송문수가 받는 스트레스가 더 많았다.‘생각이 없는 건가? 어쩌면 이렇게 이기적인 말을 할 수 있는 거지?’“왜요? 제가 무슨 어려운 부탁이라도 했나요?”송승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하지수를 바라보며 안색이 조금 어두워졌다.“승우 씨, 정말 제대로 일하려고 온 거 맞아요? 아니면 그냥 문수 씨를 못 믿어서 온 건가요? 문수 씨가 회사를 잘 관리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감시하러 온 거냐고요!”“당연히 일하러 온 거죠. 아니면 왜 연구소 일까지 내려놓고 회사로 왔겠어요! 그리고 또...”“아까 지수 씨가 그러셨잖아요. 송문수를 못 믿냐고요. 맞아요. 전 송문수 그 자식 못 믿어요. 송문수가 회사를 제대로 이끌 수 있을지 제가 어떻게 알아요? 성과를 하나 냈다고 교만해져서 마음대로 하려 할 겁니다.”“갑자기 드는 생각인데요. 승우 씨는 왜 그렇게 문수 씨 잘되는 꼴을 못 보는 거예요?”하지수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그게 아니라면 왜 문수 씨를 그렇게 모욕하고 내 곁에서 떼어놓으려 하겠어...’하지수의 능력이 얼마나
짧은 시간이었기에 송문수가 회사의 대체적인 상황을 잘 파악한 것만으로 대단한 것이었다. 게다가 이는 단지 송문수에게 회사를 관리하는 재능이 있어서 해낸 것이라고 단정 지을 수도 없었다.송문수가 매일 얼마나 열심히 일하고 있는지 하지수는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항상 그는 조금이라도 여유가 생기면 회사를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 연구하면서 시간을 보냈고 지어는 날마다 새벽까지 야근을 하다가 집에 돌아갔다. 게다가 차에서 보는 서류들도 모두 송씨 그룹과 관련된 문서였다.송문수는 원래 시간만 나면 게임을 하거나 먹고 자고 놀기만 했던 사람이었다. 얼마 안 되는 사이에 송문수는 정말로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된 것 같았다....송문수의 말대로 하지수는 다음 주에 회사로 찾아올 크레지를 위해 연관 업무에 대한 계획을 세웠다.송문수와 하지수가 일 처리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이사님들도 점점 두 사람을 인정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이 맡긴 업무에 대해 불평이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고 바로 행동에 옮기기만 했다.그러면서 송문수와 하지수의 업무 부담도 줄어들었고 회사도 더 원활하게 운영되고 있었다.회의가 끝난 후, 하지수는 송문수를 따라 그의 사무실로 갔다.요즘 들어서 그녀는 송문수의 사무실에서 일을 하는 것에 익숙해졌던 것이다. 송문수는 자주 회사의 전문 용어나 이해할 수 없는 마케팅 계획에 대해 물었고 그녀는 언제 어디서든 그가 묻는 말에 답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두 사람은 서로의 사무실을 오가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다.“지수 씨, 잠깐 제 사무실로 올 수 있으세요?”그때, 송승우가 갑자기 하지수를 불렀다.하지수는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 망설였다. 그녀는 송문수를 한 번 바라보았다.“네 마음대로 해.”송문수는 이렇게 말하고 큰 걸음으로 사무실을 떠났다. 질투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어 보이는 송문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하지수는 속으로 약간 허탈감을 느꼈다.송문수가 많이 변한 건 사실이었지만 하지수에 대한 감정은 별로 진전이 없는 것 같았다. 물론 그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