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현경은 소이연을 귀띔하지 않고 묵묵히 그녀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심지어 비행기가 더 오래... 더 오래 비행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그는 군침을 삼켰다.심장은 질서 없이 빠르게 뛰었다.한참 지나,비행기는 드디어 착륙했다.착륙하는 순간, 옆자리의 여자애는 또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이제, 이제 다시는 비행기를 안 탈거야. 흑흑...”여자애는 기쁨에 겨워 눈물을 흘렸다.이때 소이연도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여자애처럼 반응이 크지는 않았지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누구나 마찬가지였다.소이연은 심호흡을 여러 번 하고 나서야 마음을 조금 가라앉혔다.그리고 바로 그 순간, 드디어 자신이 육현경의 손을 꼭 잡고 놓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소이연은 손가락을 살짝 움직여 벗어나려고 했다. 그러나 육현경은 그녀의 손을 꽉 잡고 있었다.육현경은 소이연의 손놀림을 민첩하게 눈치채고는 얼른 손을 놓아주었다.두 사람은 조금 어색해졌다.다행히 비행기는 이미 활주를 끝내어 모든 승객이 비행기에서 내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소이연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먼저 떠나가 버렸다.육현경은 조금 느리게 움직였다.그는 일부러 소이연과 거리를 두었다.육현경은 소이연이 자신을 정말 싫어할까 봐 많이 두려웠다.두 사람은 앞뒤로 비행기에서 내렸다.“아가씨.”뒤에서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소이연이 고개를 돌려보니 방금 놀라서 울음을 터뜨렸던 여자애였다.“왜 혼자 가세요? 남자 친구는 어쩌고요?”여자애도 앞사람으로 비행기에서 내린 모양이었다.방금 너무 놀라서 1초라도 비행기에 더 머물고 싶지 않았다.“그 사람은 저의 남자 친구가 아니에요.”소이연은 솔직하게 대답했다.“에이, 설마? 그분이 아가씨를 정말 좋아하는 게 보였어요. 두 사람 무조건 싸웠나 보네요.”여자애는 아주 진지하게 말했다.“비록 그분이 마스크를 쓰고 있었고 제가 그때 많이 놀랐었지만, 저는 그분의 눈에서 아가씨에 대한 걱정과 숨길 수 없는
소이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어차피 만나고 나면 계지원은 다 알 수 있었다.소이연은 몸을 일으켜 떠나려고 했다.“이연 씨, 안 기다릴 건가요?”계지원은 약간 의아한 말투로 물었다.소이연은 미간을 찌푸렸다.“현경이가 맞는지 아닌지 안 기다릴 건가요? 비록 저도 속임수를 당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가볼게요”소이연은 무덤덤하게 말하고는 바로 그 자리를 떠났다.계지원은 소이연의 행동이 아무리 봐도 살짝 이상한 것 같았다.아예 안 믿는 건지 아니면...계지원은 심장이 두근거렸다.육현경이 그에게 전화를 건 순간부터 그는 안절부절못했다.예수진에게 알릴 엄두도 나지 않았다. 그녀가 자신보다 더 격동할까 봐.계지원은 그냥 그렇게 휠체어에 앉아 오가는 사람을 바라보았다.그러나 쭉 지켜봐도 육현경이 보이지 않았다.계지원이 자기가 역시나 속았다고 생각하는 그 때 갑자기 익숙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그저 한 눈 보았을 뿐인데.피가 끓어오르는 것만 같았다.‘진짜 현경이가 맞는 걸까?’아무리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있다고 해도 느낌이 너무 비슷했다.그러나 계지원은 여전히 냉정하게 생각했다. 그는 바로 다가가서 확인을 취하지 않았다.‘이 세상에 비슷하게 생긴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그 루카스라는 모델도 현경이랑 똑같이 생겼는데. 결국 같은 사람이 아니었잖아.’계지원은 마음속으로 숨을 깊게 들이쉬면서 자신을 진정시켰다.그 남자는 계지원의 휠체어 앞에 천천히 멈춰 섰다. 남자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지만, 계지원은 그가 웃는 것처럼 느껴졌다.그 남자는 입을 열었다.“작은 삼촌, 오랜만이야.”작은 삼촌이라고 했다.진짜 육현경이었다.목소리, 느낌, 모든 것이 너무 비슷했다.다른 사람일 리가 없다.다 큰 사내인 계지원은 지금, 이 순간 눈시울을 붉혔다.그는 종래로 육현경이 살아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육현경은 지금 그의 눈앞에 실제로 서 있었다.그는 육현경에게 이 몇 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
알고 있다고 하니 계지원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육현경은 줄곧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잘 아는 사람이었다.계지원은 육현경을 장안의 7성급 럭셔리 호텔에 데려다준 후 바로 가버린 것이 아니라 육현경과 함께 로얄 스위트룸에 들어갔다.육현경은 계지원이 보는 앞에서 모자와 마스크를 벗어 내렸다.다 벗어 내리는 순간, 계지원의 얼굴색이 확 변했다.그는 육현경의 얼굴이... 이렇게 망가졌을 줄 꿈에도 몰랐다.계지원은 하마터면 받아들이지 못했다.“많이 놀랐어?”육현경은 오히려 평온했다.“아니.”계지원이 다급하게 대답했다.“왜 이렇게 된 거야?”“아무튼 안 좋은 일을 겪긴 했어.”육현경은 냉담하게 말했다.“근데 의사한테 이미 다 알아봤어. 성형수술을 하면 회복할 가능성이 크대.”“그래.”계지원이 대꾸했다.그 시각 계지원은 뭘 말해야 할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마음이 아플 따름이었다.그는 심지어 육현경이 소이연을 속이려고 하는 것은 그의 이 망가진 얼굴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나 혼자서도 문제없을 것 같긴 한데... 수술할 때 마취제도 놓아야 하고 수술 중에 무슨 문제라도 생길 경우, 날 지키는 사람이 없으면 의사가 결정을 못 내릴 것 같아서 네가 나랑 같이 가줬으면 좋겠어. 너 요새 바빠?”육현경이 물었다.“안 바빠. 내가 같이 가줄게.”계지원은 일 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아무리 바빠도 육현경이 수술하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없었다.다만.계지원이 물었다.“위험한 수술이야?”“위험하지는 않아. 그냥 만일의 사고를 대비해서 그렇다는 거지.”육현경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계지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내일 오전 아홉 시에 장안시 제1 개인 병원에서 전문의와 회진하기로 했어. 그럼, 그때 나랑 같이 가자.”“좋아.”“이제 다른 일은 없으니까, 너도 일찍 들어가서 쉬어. 나도 이제 쉴 거야.”“현경아.”계지원은 육현경을 불렀다.“나한테 이렇게 예의 차리지 않아도 돼.
계지원이 샤워를 다 하고 나오자, 예수진은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예수진은 계지원에게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계지원은 예수진이 너무 쳐다봐서 오싹할 정도였다.그는 확실히 거짓말을 못 했다. 그렇지 않으면 입을 꾹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예수진이 꼬치꼬치 캐묻는 것을 피하고자 계지원은 얼른 말했다.“나 어제 이연 씨를 만났었어. 장안에 돌아온 것 같던데.”“뭐라고요?”예수진은 놀라서 외쳤다.순간 주의력이 다른 곳으로 쏠렸다.“당신에게 연락하지 않았어?”계지원은 믿겨 지지 않는다는 듯이 말했다.그는 마음속으로는 묵묵히 말했다.‘이연 씨, 날 원망하지 말아요. 저도 어쩔 수 없어서 그러는 거예요.’“헐!”예수진이 말했다.‘이연 언니가 오랜만에 돌아온 건데 그냥 이렇게 몰래 돌아왔다고? 나한테 연락도 없이?! 날 친구로 생각하지 않는 건가? 우리 베프 아니었어?’예수진은 씩씩거리면서 핸드폰을 꺼내 한쪽에 가서 전화를 걸었다.계지원은 안도의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드디어 위기를 모면했다.같은 시각,예수진은 소이연과 통화하기 시작했다.“지원 씨한테 들었는데 언니가 장안에 돌아왔다고 하더라고요?”그 시각 소이연은 아직 사무실에 앉아 야근하던 중이었다.얼마 전에 서울에 너무 오래 가 있었다. 돌아와 보니 처리해야 할 사무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그녀는 옆에 놓여 있는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시고는 일어나서 앞에 있는 큰 창가를 향해 걸어갔다. 장안시의 밝은 야경을 바라보면서 예수진과 이야기를 나누었다.“일이 많아서 너무 바빴어요.”“그게 이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될 수 없죠.”소이연은 바로 머리를 숙였다.돌아와서 예수진을 연락하지 않은 것은 소이연의 잘못이 맞았다.“내일 시간 있어요?”예수진이 물었다.소이연은 태양혈을 주무르면서 대답하지 않았다.“저녁이면 돼요. 출근 시간은 방해하지 않을게요.”예수진은 퉁명스럽게 말했다.사실 예수진은 소이연이 일하는 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수진 씨가 너무 예민하게 생각하는 거 아니에요?”“제가 예민하게 생각하는 그런 사람인 가요?”예수진이 반박했다.하지수는 다시 생각해 보니 예수진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예수진 마저 계지원이 수상하다고 생각한다면 그에게 문제가 있는 게 틀림없었다.근데 계지원에게 무슨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예수진에 대한 사랑과 조심스러움이 훤히 보이는데 말이다.“지원 씨가 얘기 안 해주던가요?”소이연은 생각 없이 한 마디 말했다.“뭘 얘기해줘요?”예수진은 더욱 어리둥절해졌다.소이연은 미간을 찌푸렸다.‘도리대로라면, 지원 씨가 현경 씨를 만나고 나면 그 사람이 육현경 본인이 맞는지 확인했을 텐데. 그리고 현경 씨가 장안에 돌아오기로 한 이상, 분명 가족을 만날 건데 수진 씨만 따돌릴 필요는 없지 않나? 아무래도 수진 씨와 현경 씨가 긴 세월 봐온 정이 있는데...’“무슨 생각을 하는 건데요?”예수진은 의아한 눈빛으로 소이연을 바라보았다.소이연도 조금 이상해 보였다.그렇다 보니 정작 이상한 사람은 자신이 된 것 같았다.“지원 씨가 수진 씨에게 서프라이즈를 준비해 주고 있는 걸지도 모르죠.”소이연은 핑계를 갖다 댔다.예수진이 멍해 있자, 하지수도 얼른 맞장구를 쳤다.“맞아요. 그럴 가능성밖에 없어요. 이럴 때는 수진 씨가 한 눈감아주세요. 아니면 지원 씨의 적극성을 타격할 수 있어요. 지원 씨처럼 이렇게 무뚝뚝한 사람이 얼마나 큰 용기를 내야 수진 씨에게 로맨틱한 이벤트를 준비해 주겠어요!”하지수의 말을 듣자, 예지원은 바로 기분이 좋아졌다.오히려 소이연이 조금 불안해져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말아요.”“왜요?”“제가 아는 지원 씨는 그렇게 큰 서프라이즈를 꾸밀 수 있는 사람이 아닌 것 같아서요.”“그건 그래요.”예수진은 고개를 끄덕였다.“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말아야겠어요.”“아무튼 조금 기다려 보세요. 자자, 우리 간만에 모인 건데 술이나 마셔요.”하지수는 분위기를 띄웠다.예수진은 기분이 좋아지자
소이연은 장안에 한 달 넘게 머물렀다.일이 너무 많아 그녀는 도저히 서울에 갈 시간을 내지 못했다.매일 심문헌과 전화로만 연락했는데 그는 어린아이처럼 불평불만을 늘어놓곤 했다.소이연도 정말 어쩔 수 없었다.그녀는 중간에 틈을 타서 몇 번 돌아갔었다.심문헌의 몸은 거의 회복되어 이제는 휠체어 없이 천천히 걸을 수 있었다.소이연이 서울에 없다는 이유로 심문헌은 낙성으로 돌아가겠다고 야단법석을 떨었다.소이연은 더 이상 심문헌더러 서울에서 자신을 기다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 서울에 가서 직접 심문헌을 데리고 낙성에 돌아가기로 했고, 겸사겸사 그의 웃어른을 만나보기로 했다.정식으로 사귄 지 꽤 오래되었지만, 늘 심문헌이 소이연의 주위를 맴돌았지, 소이연이 주동적으로 나선 적은 없었다.그녀는 차를 타고 공항에 갔다.가는 길에 예수진의 전화를 받았다.“언니, 지원 씨의 사랑이 정말 식은 걸까요? 요 며칠 저희 두 사람이 겨우 한가해졌는데, 지원 씨는 매일 아침 일찍 나가서 밤늦게 돌아와요. 그리고 돌아와서는 한숨을 연신 내쉬었어요. 제가 아무리 기다려도 서프라이즈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요.”예수진은 거의 울 것 같은 목소리였다.겨우 계지원한테 마음을 열었는데, 이제 보니 그가 딴마음을 품은 것 같았다.계지원이 진짜 마음이 변한다면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지 예수진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다.이전에 얻지 못했을 때는 없어도 그만이었다.그러나 지금 얻은 이상, 더는 놓아주고 싶지 않았다.“어쩌면 다른 일이... 있는 걸지도 모르죠.”소이연도 거짓말을 잘하지 못했다.그녀는 마음속으로 의아했다.‘그 두 사람 도대체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거지? 수진 씨의 얘기를 듣자 하니, 이렇게 오래 지났는데 지원 씨는 아직도 수진 씨한테 현경 씨가 살아있다는 소식을 알려주지 않은 것 같은데?!’“무슨 일이 있길래 저한테 숨기는 걸까요?”예수진은 속상해 죽을 것 같았다.“오늘 아침에도 전화 한 통 받더니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어요. 튕겨 났다고
소이연은 번마다 천우진이 자신을 마중하는 게 이미 습관 되었다.그러나 심문헌이 보이지 않았다.“문헌 씨는요?”차에 탄 소이연은 조금 속상해서 물었다.육민은 진작에 장안에 돌아갔다.그러나 이번에도 소이연은 그를 데려오지 않았다.비록 영재는 실내 수업의 지식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지만, 육민의 수업 시간을 너무 빼앗고 싶지 않았던 것이었다.“문헌 씨는 집에 있어.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데다가, 내일 또 일찍 떠나야 해서 번거롭게 왔다 갔다 하지 말라고 했어.”천우진이 설명했다.“우진 씨가 저 대신 문헌 씨를 잘 보살펴주고 있네요.”소이연은 농담으로 말했지만, 천우진은 갑자기 긴장한 표정으로 설명했다.“아무래도 네 남자 친구니까 나도 당연히 신경을 써야지?”소이연은 어리둥절했다.그녀는 그냥 한 말이었다.‘우진 씨, 왜 갑자기 긴장하지?’마치 그녀가 그의 속마음을 꿰뚫어 보기라도 한 듯했다.천우진은 소이연의 눈빛 속에서 재빨리 평정심을 되찾았다.“문헌 씨가 또 내 생명의 은인이기도 하잖아?”“그렇죠.”소이연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천우진은 더 이상 소이연을 상대하지 않고 고개를 아예 다른 쪽으로 돌렸다.소이연은 갈수록 천우진이 이상하게 느껴졌다.천씨 저택에 도착한 후 그녀는 천우진이 뭘 감추려 했는지 알게 되었다.알고 보니 심문헌을 도와 서프라이즈를 숨기고 있었던 것이었다.역시 소이연이 일을... 복잡하게 생각했던 것이었다.천씨 저택에 발을 들이자, 붉은 꽃잎은 낭만 가득한 오솔길을 만들었다. 소이연은 고개를 돌려 천우진을 바라보았다.천우진은 안으로 걸어 들어가라는 눈길을 보냈다.소이연은 심장이 두근거렸다.역시나, 서프라이즈를 제대로 느꼈다.그녀는 꽃잎으로 만들어진 꽃길을 따라 천씨 저택의 정원으로 걸어 들어갔다.눈부신 봄날의 햇살.산들산들한 바람.흩날리는 버들개지.이 모든 경치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았다.소이연은 커다란 하트 모양의 꽃잎 사이에서 걸음을 멈추었다.그녀는 흰색 양복을 입은 심문헌
심문헌의 눈가에 드리워진 미소는 더 선명해졌다.그는 반지를 꺼내 소이연의 약지에 조심스럽게 끼워주었다. 찬란한 햇빛이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에 비쳐 그녀는 말이 안 나올 정도로 아름다웠다.심문헌은 몸을 일으켰다.막 일어서는 순간, 바닥의 꽃잎이 갑자기 큰바람에 흩날리기 시작했다.같은 시각 하늘에서도 꽃잎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두 사람은 완전히 꽃잎에 휩싸여 로맨틱한 분위기를 절정으로 끌어올렸다.소이연은 눈앞의 장면을 보고 눈시울을 붉혔다.“이연 씨, 당신과 키스해도 되나요?”심문헌이 물었다.소이연은 미소를 지었다.‘완전 바보잖아.’그녀는 심문헌의 목을 껴안고 주동적으로 그의 입술을 맞추었다.심문헌은 멈칫했다.그는 눈에 띄게 긴장했고, 몸이 바르르 떨릴 정도로 긴장했다.그리고 그녀의 입맞춤에 아무 반응도 하지 못했다.두 사람은 그저 입술을 서로 맞붙이고 있었다.천우진은 멀지 않은 곳에서 키스하고 있는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바람이 세게 불었다. 그들의 머리카락은 흩날렸고 꽃잎이 온 하늘을 휘날렸다.너무 아름다운 화면이라 눈길을 쉽게 뗄 수 없었다.천우진은 결국 몸을 돌려 떠나갔다.행복한 시간을 전부 두 사람에게 남겨주고, 그는 그곳에 남아 있을 필요가 없었다....다음날.장안시.예수진은 슬그머니 계지원의 뒤를 따랐다.죄책감이 조금 들긴 했다.그러나 소이연이 따라가 봐도 된다고 말했기에 그녀는 금방 부담감을 내려놓았다.그녀는 계지원을 따라 병원에 도착했다.‘이상해. 지원 씨가 왜 병원에 온 거지? 큰 병이라도 걸린 건 아니겠지?!’계지원에 대한 의심은 순간 모두 걱정으로 변했다.그녀는 계지원에게 무슨 문제라도 생기면 자기는 어떻게 할지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예수진은 겁에 잔뜩 질려 더 따라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그녀는 그저 계지원이 휠체어를 타고 엘리베이터에 탑승하는 것을 지켜보기만 했다.구석에 숨어서 엘리베이터의 숫자를 지켜보면서 소이연에 전화를 걸었다.이 시각 소이연은 심문헌과 함께 짐을 정리하고 있었
“문수 씨.”하지수는 송문수의 이름을 불렀다. 그녀는 지금 송문수가 화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지만 송승우에게 무슨 일이라도 있으면...어쨌든 한 가족이 아닌가.그녀는 가정의 불화를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그래도 승우 오빠를 병원에 보내야 하잖아.”하지수는 큰 소리로 송문수에게 말하자 송문수는 발걸음을 멈추었다.사실 송승우는 별일 없었다. 송문수는 격투기를 배운 적이 있기에 사람의 어느 부위가 다치면 안 되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송승우를 이성을 잃을 정도로 때렸어도 급소를 때리지 않았다.하지수는 송문수의 대답을 듣지 못하자 다급히 핸드폰을 꺼내서 긴급구조 요청을 하였다.구급차를 기다리는 동안, 하지수는 송승우에게 다가가지 않았다.그녀는 멀지 않은 곳에 서서 바닥에 쓰러진 송승우를 바라보았다.송승우의 분노가 극도에 이르렀지만 송문수와 싸울 힘이 없었다.사실 하지수도 요새 송승우와 송문수가 자주 싸우는 이유를 몰랐다. 오늘은 벌써 두 번째였다.어렸을 때 두 형제의 관계가 그다지 친밀하지 않았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지금 어른이 되었는데 아직 유치하게 싸우다니!이윽고 구급차가 도착했고 구조대원들은 들것으로 송승우를 구급차에 태웠다.하지수도 따라서 올라탔지만 송문수는 타지 않았다.하지수는 잠시 망설이다가 내려와서 송문수를 잡아당겨서 같이 구급차에 올라탔다.구급차 안은 매우 조용하였다.아무도 말하지 않았고 차 안의 분위기에 아직 분노의 불꽃이 튕기는 것 같았다.병원에 도착한 후 송승우는 응급실로 옮겼다.하지수와 송문수는 로비에서 기다렸다. 송문수는 차가운 분위기를 풍기면서 한쪽에 서 있었다.사실 하지수는 송문수의 얼굴에도 상처가 있는 것을 보았다. “문수 씨도 얼굴과 몸에 난 상처를 검사하지 않을래?”“필요 없어. 외상이라 금방 나을 거야”송문수가 이렇게 말하자 하지수도 강요하지 않았다.잠시 후, 송승우는 응급실에서 나왔고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모두 외상이라 별문제가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지금 입원 수속
“놓지 못해?”송문수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하면서 송승우를 바라보았다.서로 마주 본 두 사람의 눈에는 분노로 가득 차 있었고 일촉즉발의 분위기였다.“이거 놔요.”하지수도 송승우의 손을 힘껏 뿌리쳤다. 그러자 송승우의 눈빛에 분노로 이글이글 타올랐다.그는 더욱 세게 하지수를 잡아당겼다.하지수는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아파요!”송문수의 안색이 더욱 어두워졌다.“놓으라고 했다!”그는 송승우의 팔을 끌어당기는 손에 힘을 꽉 주었다. 이에 송승우는 통증을 느꼈으나 승부욕 때문에 쉽게 놓을 수가 없었다.송문수가 힘을 줄수록 그도 더욱 힘을 줘서 하지수를 잡아당겼다.하지수는 너무 아파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송승우는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 “이걸 놔. 나와 지수의 일에 끼어들지 마.”“끼어들지 말라고?”송문수는 냉소를 지으면서 말했다.“형이 잊은 것 같은데 지수는 내 와이프야. 우린 부부이지만 형과 지수는 아무 사이도 아니잖아? 지금 형이 내 와이프를 데려가려고 하는데 나보고 끼어들지 말라고? 너무 뻔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너!”송문수의 쏘아붙인 말에 송승우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예전에 송승우는 하지수가 자신을 좋아했기 때문에 송문수를 안중에 넣지도 않았고 그들의 결혼 관계를 진지하게 생각한 적도 없었다.그러나 지금 송문수에게 이런 모욕을 당하다니!“지수가 좋아한 사람은 나야!”송승우는 수치심에 더 약이 올라서 노기어린 목소리로 외쳤다.하지수는 너무 아파서 반박할 힘도 없었고 송문수의 말이 들려왔다.“지수가 누구를 좋아하든 지금은 내 여자야. 누구도 데려갈 수 없고 누구도 지수를 괴롭힐 수 없다고! 셋까지 셀 테니 지수를 놓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송승우는 끄덕하지도 않고 송문수를 노려보았다.“하나.”“둘.”송문수는 ‘셋’을 세는 대신 주먹을 들고 송승우의 얼굴을 세게 강타했다.송문수의 한 방을 맞은 송승우는 코피를 흘렸고 아픔으로 이내 하지수를 놓아주었다.그러나 송승우는 소심한 사람이었다. 그는 늘
‘내가 자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건가?’“승우 씨, 사과 따위 이제 필요 없어요. 지금 제가 바라는 건 아무 탈 없이 우리 사이의 관계를 끝내는 거예요. 승우 씨는 문수 씨 형이잖아요. 게다가 저도 어릴 때부터 송씨 가문에서 자란 사람이고요. 그러니까 우리 그냥 친척 같은 관계로 돌아갔으면 좋겠어요.”하지수는 인내심을 가지고 진지하게 말했다.송승우는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며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지수는 더 이상 그와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망상에 빠진 사람은 무슨 말을 하든 헤어 나올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그녀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으니 그걸로 됐다고 생각했다.하지수는 뒤를 돌아 송문수 쪽으로 다가가려 했다. 늦은 시간이었고 그녀도 여전히 많이 피곤했다. 송문수랑 같이 집으로 가서 자고 싶었다.크레지가 아직 오지 않은 이상, 기술 투자 계약서에 사인하지 않은 이상 방심할 수는 없었다. 그들은 짬짬이 시간을 내서 잠을 잘 수밖에 없었다.그런데 막 돌아서려는 순간, 그녀의 손은 또다시 송승우에 의해 붙잡혔다.하지수가 아무리 팔을 흔들어도 벗어날 수 없었다.송문수는 차가운 눈빛으로 송승우의 행동을 지켜보며 주먹을 꽉 움켜잡았다.그가 앞으로 다가가 하지수를 데려오려던 순간, 송승우가 갑자기 말했다.“지수 씨, 방금 당신의 행동은 모든 걸 말해줬어요!”“무슨 행동이요?”하지수는 이해할 수 없었다.“방금 제가 불렀을 때, 제 쪽으로 다가왔잖아요. 그게 지수 씨 마음속에 있는 진심이에요. 더 이상 숨기지 말고 저한테로 오세요. 하지수 씨, 제가 잘 해줄게요. 지수 씨를 혼자 두는 일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을 거예요. 제가 맹세할게요...”“아니요.”하지수는 단칼에 거절해 버렸다.하지수를 바라보는 송승우의 눈빛은 분노로 가득 찼다.“승우 씨가 불었을 때 따라간 건 무의식적으로 간 거예요. 잠에서 덜 깬 상태라서 누가 불렀어도 갔을 거예요. 승우 씨인 줄도 몰랐어요. 하지만 인정할 건 인정할게요. 낯선 목
송문수는 하지수가 일어나서 송승우 쪽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송승우는 입가에 미소를 띠며 생각했다.‘그래, 지수 씨도 아직 날 신경 쓰고 있다니까. 숨기려 해도 어떻게 숨기겠어? 이런 상태에서야 비로소 진심이 드러나는 거지.’송문수는 멀어져 가는 하지수를 잡으려 손을 뻗었지만 그녀의 옷자락에 손이 닿았을 때 살짝 멈칫했다. 하지수를 강제로 붙잡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사실 그는 항상 하지수의 선택을 존중해 왔다. 지금까지 변함없이 말이다.하지수는 송승우 앞으로 걸어갔고 송승우가 먼저 손을 뻗더니 그녀를 끌어당기려 했다.그러나 그가 손을 뻗자 하지수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승우 씨?”그녀는 그제야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깨달았다.조금 전까지 어지럽고 혼란스러웠던 상황이 이제와사 분명해졌다.그녀는 자신이 언제 잠에 들었는지도 몰랐다. 그저 너무 피곤해서 머리가 흐릿할 뿐이었다.“너무 늦었어요. 제가 데려다줄게요.”송승우가 그녀를 끌고 나가려고 하자 하지수는 급히 그의 손을 쳐내며 말했다.그러자 송승우는 눈살을 찌푸렸다.“아까는 잠에서 덜 깨서 그랬어요. 전 문수 씨랑 같이 갈 거예요.”“뭐라고요?”송승우는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언제까지 연기할 거예요?”“네?”하지수는 눈살을 찌푸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송승우가 왜 갑자기 화를 내는지 알 수 없었다.“저를 놀리는 게 재밌으세요?”송승우가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저... 저는 그런 게 아니라...”하지수는 당황해하며 말을 더듬었다.그러자 송승우가 입을 열었다.“알겠어요. 제가 잘못한 걸로 하죠.”그가 갑작스레 사과를 하자 하지수는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그녀는 송승우가 왜 갑자기 사과를 한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왜 사과를 하는 거야?’“미안했어요. 어쩔 수 없이 떠난 거라고는 하지만 우리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못했잖아요. 결혼식장에 지수 씨 혼자 남겨두고 간 건 제 잘못이에요. 미안해요.”하지수는 그제야 무슨 말인지 이해했
하지수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심장은 여전히 빨리 뛰고 있었다.그녀는 전혀 말을 듣지 않는 심장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만약 누군가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이 어색한 상황이 얼마나 계속될지 알 수 없었다.‘문수 씨도 부끄러워하는 건가?’하지수는 입술을 꽉 깨물며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려 애썼다.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올까 봐 걱정이었다.하지수는 소파에 앉아 몰래 송문수를 쳐다보았다.그는 그저 고위직 직원의 얘기를 듣고만 있을 뿐, 전혀 불편해 보이지 않았다.그녀는 깊게 숨을 쉬었다.‘단지 어색해서 그런 건가?’송문수는 언제나 체면을 중시하는 사람이었으니 말이다.‘해명하려 하지 않는 것도 결국 체면을 세우려고 그러는 건가?’하지수는 너무 많은 기대를 해선 안 된다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다잡았다....크레지를 맞이하기 위해 모든 관련 부서가 계속해서 야근을 하고 있었다.송문수와 하지수 역시 마찬가지였다.그들은 끊임없이 회의를 열고 논의하며 최대한의 성의를 보이기 위해 애썼다.새벽 2시가 되었지만 송문수는 아직 퇴근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방금까지도 각 부서와 회의를 하면서 협력 계획과 판매 계획을 다시 수정하고 보완했다.회의가 끝난 후에도 송문수는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는 계속 바쁘게 일하고 있었다.송문수는 그제야 그의 확인이 필요한 문서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무슨 서류든 제대로 보지 않고 사인을 해버렸었다. 하지만 이젠 점점 더 신중해졌고 모든 서류를 꼼꼼히 확인하고 나서야 사인을 했다.그 덕에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고 오늘 하루 동안의 모든 서류를 처리하고 나서야 송문수는 퇴근을 하려고 하지수를 쳐다봤다. 그러자 그녀는 이미 소파에 기대어 잠들어 있는 것이었다.하지수는 잠이 많은 사람은 아니었다. 송문수의 기억 속에 하지수는 늘 자신보다 일찍 일어나는 사람이었고 절대 늦잠을 자지 않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소파에 기대어 잠들어 있었다.‘많이 피곤한 걸까?’자세히 생각해 보니 그들은 지난 일주일 동안 계속해서 야
송문수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크게 티가 나지는 않았지만 그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밝아졌다는 건 알 수 있었다.하지수는 송문수를 더 방해하지 않으려 했다. 송문수가 점점 더 발전하는 걸 보면서 하지수도 그를 더 지지해 주고 싶었고 송문수로 하여금 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하지수는 옆에 있는 소파로 가서 노트북을 들고 업무를 처리하기 시작했다.그리고는 습관처럼 회사의 공식 채팅방에 들어갔다.그녀는 비록 알림을 꺼 놓았지만 회사의 공식 채팅방에 메시지가 있으면 항상 첫 번째로 확인하곤 했다.그런데 그때, 그룹 채팅에 있는 메시지를 본 하지수는 깜짝 놀랐다. 그녀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아마 이 상황을 믿기 어려워할 것이었다.송문수가 회사의 공식 채팅방에 ‘하지수’라는 이름을 여러 번 보낸 것이었다.하지수는 고개를 들어 송문수를 바라보았다.그는 진지하게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채팅방에는 여전히 ‘하지수’라는 이름이 올라오고 있었다.“문수 씨, 컴퓨터 바이러스에 걸린 거 아니야?”하지수가 물었다.“어?”송문수는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했다.하지수는 송문수 앞에 서서 그의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화면에는 타자를 해놓고 아직 보내지 않은 ‘하지수’도 있었다.송문수도 그제야 자신이 채팅방에 ‘하지수’라는 이름을 여러 번 입력했다는 것을 깨달았다.그 자신도 놀란 듯했다. 그는 자신이 타자를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의식하지 못했던 것이다.하지만 방금 그의 머릿속이 온통 하지수로 가득 찬 건 사실이었다.그때, 채팅방에서 누군가 메시지를 보냈다.[회장님 지금 하 매니저님한테 애교 부리는 거야? 그걸 실수로 단체 채팅방에 보낸 거고?]메시지는 보내지자마자 삭제되었고 밖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나도 잘못 보냈네!”그룹 채팅에 두 개의 삭제 기록이 나타났다.송문수는 멍하니 앉아 있다가 그제야 메시지를 삭제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그는 ‘하지수’라는 메시지들을 삭제하려 했지만 이미 메시지를 취소할 수 있는 시간이
송승우는 이를 꽉 악물었다. 그는 하지수를 절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 그는 하지수에게 송문수를 고른 게 얼마나 잘못된 선택이었는지 반드시 알게 해주겠다고 결심했다. 그녀로 하여금 후회하도록 만들겠다고 다짐했다....하지수는 송승우의 사무실을 떠나 바로 송문수의 사무실로 갔다.송문수는 업무에 몰두해 있었다.회사에 들어선 순간부터 그는 자유시간이 없었고 퇴근 후에도 여전히 업무와 관련된 일들을 처리하고 있었다.하지수는 송문수가 많이 변했다고 느꼈다. 그녀는 하느님도 부지런한 사람을 도울 거라 믿으며 송문수가 앞으로 큰 성과를 낼 것이라고 확신했다.“형이 뭐라고 했어?”송문수는 그녀를 한 번 쳐다보며 차갑게 물었다.“자기 개인 비서로 되어달라고 하더라고.”하지수는 송문수에게 숨기지 않고 말했다. 그녀는 더 이상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을 그에게 숨기고 싶지 않았다.송문수랑 같이 오랫동안 시간을 보내고 싶었기에 최대한 마음을 다할 생각이었다.송문수는 멈칫하더니 코웃음을 치더니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녀가 어떻게 대답했는지 알고 싶지 않아 하는 것 같았다. 어쩌면 하지수가 그 제안을 무조건 받아들였을 거라고 여겼는지도 모른다.‘지수가 형 요구를 거절한 적은 한 번도 없는데 이번에도 알겠다고 했겠지...’이렇게 생각한 송문수는 일에 더 집중하려 애썼다. 회사 일을 제대로 해내기로 결심한 이상 중간에 포기할 생각은 없었으니 말이다.“거절했어.”하지수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송문수는 가슴이 약간 두근거리는 걸 느꼈다.분명 그녀의 말에 설렌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겉으로 티 내지 않으려 했다.그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척 계속해서 서류를 보고 있었다.반면, 하지수는 송문수에게 그 어떤 반응도 기대하지 않았다. 어차피 송문수는 자기한테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저 자신의 결정을 그에게 알리고 싶었을 뿐이었다.“왜 거절했는데?”송문수가 차분하게 물었다.“문수 씨한테 내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으니까.”하지수는 웃으며
하지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송승우를 바라보았다.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말이다.어린 시절 그녀는 항상 송승우를 믿었고 그가 자기를 보호해 줄 거라 생각했었다. 송승우는 같은 또래 친구들보다 성숙하고 머리가 좋다고 생각했었다.하지만 순간, 그녀는 자신이 송승우에 대해 뭔가 오해를 하고 있었던 건 아닌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게다가 그가 지금 하는 행동이 너무 유치해서 하지수는 어떻게 거절해야 할지 몰랐다.그녀는 이해할 수 없었다.‘어떻게 이런 말을 그렇게 쉽게 할 수 있지?’송승우는 하지수와 송문수의 관계를 알고 있었다. 하지수가 몇 번이나 말했으니 모를 리 없었다. 지금은 송문수와 잘 지내고 있고 송승우와의 관계는 이미 끝난 거라고 말이다.그리고 송문수가 지금 송씨 그룹의 대리 회장직을 맡고 있다는 것도 분명 알고 있었다. 송문수의 결정이 회사의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도 말이다. 송문수한테 도움이 더 필요했고 송문수가 받는 스트레스가 더 많았다.‘생각이 없는 건가? 어쩌면 이렇게 이기적인 말을 할 수 있는 거지?’“왜요? 제가 무슨 어려운 부탁이라도 했나요?”송승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하지수를 바라보며 안색이 조금 어두워졌다.“승우 씨, 정말 제대로 일하려고 온 거 맞아요? 아니면 그냥 문수 씨를 못 믿어서 온 건가요? 문수 씨가 회사를 잘 관리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감시하러 온 거냐고요!”“당연히 일하러 온 거죠. 아니면 왜 연구소 일까지 내려놓고 회사로 왔겠어요! 그리고 또...”“아까 지수 씨가 그러셨잖아요. 송문수를 못 믿냐고요. 맞아요. 전 송문수 그 자식 못 믿어요. 송문수가 회사를 제대로 이끌 수 있을지 제가 어떻게 알아요? 성과를 하나 냈다고 교만해져서 마음대로 하려 할 겁니다.”“갑자기 드는 생각인데요. 승우 씨는 왜 그렇게 문수 씨 잘되는 꼴을 못 보는 거예요?”하지수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그게 아니라면 왜 문수 씨를 그렇게 모욕하고 내 곁에서 떼어놓으려 하겠어...’하지수의 능력이 얼마나
짧은 시간이었기에 송문수가 회사의 대체적인 상황을 잘 파악한 것만으로 대단한 것이었다. 게다가 이는 단지 송문수에게 회사를 관리하는 재능이 있어서 해낸 것이라고 단정 지을 수도 없었다.송문수가 매일 얼마나 열심히 일하고 있는지 하지수는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항상 그는 조금이라도 여유가 생기면 회사를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 연구하면서 시간을 보냈고 지어는 날마다 새벽까지 야근을 하다가 집에 돌아갔다. 게다가 차에서 보는 서류들도 모두 송씨 그룹과 관련된 문서였다.송문수는 원래 시간만 나면 게임을 하거나 먹고 자고 놀기만 했던 사람이었다. 얼마 안 되는 사이에 송문수는 정말로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된 것 같았다....송문수의 말대로 하지수는 다음 주에 회사로 찾아올 크레지를 위해 연관 업무에 대한 계획을 세웠다.송문수와 하지수가 일 처리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이사님들도 점점 두 사람을 인정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이 맡긴 업무에 대해 불평이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고 바로 행동에 옮기기만 했다.그러면서 송문수와 하지수의 업무 부담도 줄어들었고 회사도 더 원활하게 운영되고 있었다.회의가 끝난 후, 하지수는 송문수를 따라 그의 사무실로 갔다.요즘 들어서 그녀는 송문수의 사무실에서 일을 하는 것에 익숙해졌던 것이다. 송문수는 자주 회사의 전문 용어나 이해할 수 없는 마케팅 계획에 대해 물었고 그녀는 언제 어디서든 그가 묻는 말에 답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두 사람은 서로의 사무실을 오가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다.“지수 씨, 잠깐 제 사무실로 올 수 있으세요?”그때, 송승우가 갑자기 하지수를 불렀다.하지수는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 망설였다. 그녀는 송문수를 한 번 바라보았다.“네 마음대로 해.”송문수는 이렇게 말하고 큰 걸음으로 사무실을 떠났다. 질투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어 보이는 송문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하지수는 속으로 약간 허탈감을 느꼈다.송문수가 많이 변한 건 사실이었지만 하지수에 대한 감정은 별로 진전이 없는 것 같았다. 물론 그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