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이연의 말을 들은 의사 선생님들은 다급히 경찰에 신고했다.이윽고 10분도 안 되어 경찰들이 병원으로 도착했다.소이연을 납치한 남성은 경찰을 보는 순간 자신이 속았다는 사실을 단번에 알아차렸다.그는 급히 응급실로 가서 소이연을 데려가고 싶었지만, 그가 조치를 취하기도 전에 경찰들은 이미 무기를 꺼내 그들을 구석으로 몰았다.경찰이 그들을 구금한 것을 본 소이연은 그제야 다급히 응급실에서 나와 심문헌을 끌고 갔다.“이봐요, 아가씨!”경찰이 뒤에서 그들을 불렀지만, 그들은 못 들은 척 재빨리 그 자리를 떠났다.병원에서 나온 뒤, 그들은 택시에 탔고 소이연이 기사 아저씨에게 말했다.“공항으로 가주세요.”“네.”“혹시 저 핸드폰 좀 빌려주실 수 있을까요?”“네?”“저와 제 친구가 납치를 당했었거든요. 조금 전 바로 탈출했는데 가족들한테 전화 좀 하려고요.”“...”택시 기사는 그녀의 말이 의심스럽긴 했지만, 일단은 핸드폰을 소이연에 빌려주었다.전화기를 건네받은 소이연은 바로 육민에게 전화를 걸었다.“민아.”“엄마.”그 시각, 윤민의 목소리는 자칫 잘못하면 울음이라도 터뜨릴 것만 같았다.“지금까지 어디 있었어요?”갑자기 말도 없이 사라졌다가 지금은 낯선 번호로 자신한테 전화를 거니, 육민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혹시 무슨 위험에 닥친 건 아니죠?”“아니야.”소이연이 답했다.“위험에 닥친 것도 아니고 지금 아주 안전해. 하지만 어떤 일들은 지금 전화로 다 말하기 힘들어. 너 일단 문 씨 아저씨한테 엄마랑 심문헌 삼촌 것 서울행 항공권 좀 끊어달라고 해. 티켓팅 한 뒤에, 엄마랑 심문헌 삼촌이 쓸 핸드폰도 공항으로 가져다 달라고 말해줘. 공항에서 기다릴게. ”“엄마,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거예요?”“나도 자세하게는 어떤 일이 발생했는지 잘 몰라. 그래서 서울로 가봐야 해.”“위험한 거 아니죠?”“걱정하지 마, 엄마 스스로도 잘 보호할 수 있어.”“저도 엄마랑 같이 가면 안 돼요?”“안돼.”소이연은 고민도 하지 않고
“당연하죠.”그 말에 소이연은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녀도 예전에는 그 누구와 같이 죽으려고 마음먹은 적 있었으니 말이다.하여 심문헌의 그 마음 또한 그녀는 충분히 공감이 갔다.2시간 뒤, 그들은 천 씨 가문에 도착했다.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소이연은 바로 천우진에게 전화를 걸어 직설적으로 물었다.“어디에요?”“너 서울 왔어?”천우진이 미세하게 한숨을 내쉬었다.“네, 왔어요.”소이연은 아주 태연했다.“난 임씨 가문 부근이야.”소이연은 가슴이 떨렸다.사실 천우진의 행동을 예상은 했지만, 그가 막상 행동을 시작하니 왠지 모르게 마음이 두려웠다.이것은 그녀가 계획한 것보다 훨씬 빨랐으니 말이다.그녀는 임씨 가문을 상대하는 것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고 늘 생각해왔다.안전을 위해서라도 적어도 1년은 걸릴 것이다.‘천우진, 왜 이렇게 성급한 거지?’“저 바로 갈게요.”소이연은 전화로 더는 묻지 않았다.천우진이 이미 행동했으니, 그녀 또한 반드시 그를 지지해야 할 것이다.이윽고, 소이연과 심문헌은 천우진이 알려준 곳으로 바로 달려갔다.차에서 내린 뒤, 천우진은 사람을 시켜 그들을 마중 나가게 했다.그들은 가는 길 내내 매우 신중했다.이윽고 천우진과 만나게 되었고 천우진의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했다.그것은 자신의 감정을 잘 드러낼 줄 모르는 사람이라고 해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현재의 그는 아주 초조해 보였다.아마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는 듯하다.“왜 그래요?”소이연이 물었다.“임씨 집안 사람들에게 발견이라도 된 거예요? 아니면 할아버지한테 뭔 일이라도 생긴 건가요?”천우진은 소이연을 보더니 심우헌도 한번 바라봤다.“걱정하지 마요. 저희랑 같은 편 사람이니까요.”소이연은 천우진이 심문헌을 꺼리는 줄 알고, 직설적으로 말하지는 않았다.“그런 거 아니야.”천우진이 입을 열었다.“임씨 가문에서 지금 우리를 의심하고는 있지만, 아직 움직일 정도는 아니야. 할아버지도 괜찮고 말이야. 비록 아직 혼수상태이지만,
“육현경 씨가 나보고 너한테 말하지 말라고 했거든.”천우진이 답하자 소이연은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육현경 씨가 뭘 걱정하는지 너도 알고 있잖아. 육현경 씨는 네가 걱정하는 걸 원치 않아.”천우진의 말에 소이연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삽시간에 그 공간의 분위기는 어색하고 무겁기 그지없었다.“지금은 어떤 상황인데요?”소이연이 갑자기 냉정하게 입을 열었다.마치 육현경이 한 모든 행동은 그녀에게 있어 아무런 영향도 없고, 오직 현재 상황에만 관심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아마 임씨 가문의 범죄 증거를 손에 넣었을 거야. 즉 그 가문에서 그동안 몰래 저질렀던 만행들 말이야. 하지만 지금 임 씨 집안사람들에게 발각됐나 봐. 지금 임씨 가문 사람들에 의해 협박당하는 중이라 나도 자세한 건 잘 몰라. 나도 그냥 육현경 씨가 보낸 메시지 하나만 받았거든.”“어떤 메시지요?”소이연이 물었다.“이것 봐봐.”천우진이 소이연에게 핸드폰을 건네 보였다.소이연은 그 안에 있는 사진을 바라봤다.육현경이 그 서류를 거기에 묻은 것은 분명하다.즉, 이제는 더 큰 위험에 닥쳤다는 뜻이기도 하다.소이연는 사진을 보며 오랫동안 침묵했다.심문헌 또한 그 사진을 보며 한참 동안 아무 말도 없었다.그는 마음이 답답하지만 그게 어떤 기분인지 말하기 어려웠다.그는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아 숨을 깊이 쉬었다.어쨌든 현재 이 일을 해결은 해야 하니 말이다.“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이 파일을 갖고 나와야죠.”한참 뒤 소이연이 입을 열었다.천우진이 소이연을 바라보자 그녀 또한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그 파일을 가져야만 우리 천 씨 집안이 안전해질 거예요. 지금 임 씨네 집안에서 외할아버지만 겨냥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외할아버지가 쓰러지기만 하면 우리 천 씨 가문은 완전히 무너져 하나도 도망갈 수 없을 거예요.”“넌 육현경이 어떻게 됐는지 걱정되지도 않아?”천우진이 더는 참을 수 없어 그녀에게 물었다.“걱정이 뭔 소용이에요? 그 사람도 자신이 임씨 가문
임계인의 눈에서는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어쩌면 다음 순간 육현경이 진짜로 죽을지도 모른다.그는 이 일을 하기로 했었을 때부터 물러날 생각은 전혀 해본 적이 없었다.임씨 가문의 비밀조직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강대했다.그는 전에 단순히 임씨 가문이 비밀조직과 공모하고 있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파일을 손에 넣은 뒤에야 임씨 가문의 내부 체계가 놀라울 수준에 도달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소위 말하는 1세대 가문인 천씨 집안도 전혀 그들의 상대가 아니었다. 조만간 천씨 가문도 초토화될 듯 보였다.하여 그는 다시 돌아가는 그 순간 이미 최악의 상황까지 생각한 것이었다.그의 유일한 소원은 천우진이 임씨 가문에 오기 전 그 파일을 가지고 가는 것이었다.아니면 임씨 가문에서 정말 땅이라도 파서 짧은 시간 내에 그것을 찾아낼 것만 같았다.그는 몸부림치기를 포기하고 눈을 감았다.이미 할 것만큼 했다고 생각한 그는 이젠 하늘의 운명에 맡기기로 했다.한편, 임계인도 루카스의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고 더욱더 살기가 짙어졌다.이윽고 그가 눈을 반짝이며 손을 들었다.“아빠.”이때 임아영이 입을 열자 임계인은 그녀 쪽을 바라보았다.“아빠, 제가 한번 시도해 볼게요.”임아영이 말했다.그러자 임계인은 약간 미덥지 않은 듯 그녀를 바라봤다.임아영만 아니었다면 임씨 가문은 지금 이러한 일을 경험해 보지도 못했을 것이다.즉, 그녀가 도적을 집으로 유인한 것이나 다름없다.만약 눈앞의 사람이 임계인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임아영은 지금 이 자리에 서있을 수 조차 없었을 것이다.하지만, 이 사건 이후 그녀도 처벌은 반드시 받을 것이다.“어쨌든 저희 두 사람, 부부 사이잖아요? 그러니 제가 물을게요.”임아영이 다시 한번 말했다.“만약 저도 저 사람 입에서 단서를 알아내지 못했다면, 그때 다시 처리해도 늦지 않잖아요.”그 말에 임계인이 머뭇거리다가 답했다.“두 시간 줄게. 만약 두 시간 뒤에도 여전히 단서를 알아내지 못한다면, 너도 루카스가 어떤 결과
육현경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임씨 가문에서는 그를 믿지도 않거니와, 시한폭탄과 같은 그를 절대 놔두지 않을 것이다.솔직하게 말하면, 그가 말하든 말하지 않든 최후의 결과는 죽음이다.일찍 말하면 죽음만 더 앞당길 뿐이다.“루카스, 절 믿어요. 제가 제 목숨으로 장담할 수 있어요. 문서 행방만 말해주면, 제가 당신을 여기에서 꺼내 줄게요. 우리 먼 곳으로 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말자고요!”임아영이 그에게 약속했다.“그럴 수 없어요.”육현경이 겨우겨우 답했다.그도 더는 임아영을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으니 말이다.이번 일 때문에 임아영 또한 임씨 가문에서 살아남기가 힘들 것이다. 더 극단적인 경우로는, 그녀도 그처럼 똑같은 결말을 맞이할 수도 있고 말이다.그가 막다른 길에 들어섰을 때 다시 임아영의 방에 돌아갔던 가장 중요한 원인은 바로 임아영과의 관계를 명확히 하기 위함이었다. 육현경은 임아영이 자신과임씨 가문 집안 사이에서 결국은 임씨 가문을 택할 것이라는 걸 그들도 느끼게 하고 싶었다.그러면 임씨 가문에서 아무리 그녀의 죄를 물어도, 결국은 그 감정을 생각해서라도 그녀의 목숨은 살려줄 수 있으니 말이다.“임씨 가문은 보다시피 커요. 그 숨긴 문서도 언젠가는 찾아낼 건데 굳이 왜 고생을 사서 하는 거죠?”임아영이 끊임없이 그를 설득했다.“루카스, 목숨보다 더 중요한 건 없어요. 죽으면 아무것도 없어지는 거라고요.”“더는 시간 낭비하지 말아요. 저 또한 말할 리 없으니까요.”육현경이 겨우 입을 열었다. 하지만 최대한 그녀 앞에서 본인의 굳건함을 보여주고 싶었다.임아영은 그를 바라보며 눈에는 온통 속상함과 복수심이 들끓었다.‘도대체 어디까지 가려는 지경인 거야, 나더러 얼마나 더 비굴지라고?!’루카스는 그녀 앞에서 조금의 미안함도 없단 말인가?“루카스, 나 강요하지 마요.”임아영은 눈에 눈물을 머금으며 강하게 그를 위협했다.하지만 육현경은 여전히 침묵을 선택했고, 그 침묵이 모든 것을 답해줬다.그 모습에 임아영이 미친 듯이 웃
약간의 한숨을 내쉬며, 부하 직원이 공손히 입을 열었다.“아가씨, 깨울까요?”임아영은 잠시 머뭇거렸다.그녀의 아버지가 그녀한테 준 시간은 많지 않았다.지금 루카스더러 자게 한다면, 그가 깨어났을 때는 그녀의 아버지가 그를 죽이고 있을 때일 것이다.“깨워요.”임아영의 명령에 부하직원은 고개를 살짝 끄덕여 보였다.한참 뒤, 부하직원은 손에 물 한 통을 들고 와서는 육현경의 머리에 퍼부었다.그 물 한 통에 육현경은 순식간에 정신을 차렸다.그는 너무 아픈 나머지 참지 못하고 작게 소리를 내었다.그 모습에 임아영이 미간을 찌푸렸다.조금 전에 자신이 때렸을때 까지만 해도 그가 이토록 고통스러워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녀는 왠지 모르게 그가 이대로 죽어버릴 것만 같았다.“아가씨, 저희가 사용한 건 농도 있는 소금물이었습니다.”부하직원은 그녀가 궁금해하는 듯 보여 얼른 설명해 주었다.그 말에 임아영은 고개를 돌려 부하직원을 바라봤다.“미쳤어요? 어떻게 소금물을 쓸 수 있어요!”온몸이 상처투성이인 그에게 소금물이라니...그녀는 그가 얼마나 아팠을지 감히 상상조차 가지 않았다.그러자 부하직원이 공손히 답했다.“이것이 저놈을 깨어나게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입니다.”“짝!”그녀가 부하직원의 뺨을 때리자, 부하직원은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당장 꺼져.”“도련님의 명령이 있기 전까지는 안 됩니다.”부하직원의 굳건한 태도에 그녀는 자신의 감정을 컨트롤하기 힘들었다.그녀는 고개를 돌려 루카스의 현재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게다가 조금 전 자신으로 인해 그에게서 흐르는 피를 보고 있자니 차마 눈뜨고 지켜보기가 어려웠다.“그래도 말하지 않을 거예요?”임아영은 속상하기도 하면서 절망적이었다.하지만 육현경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임아영은 눈물을 흘리며 그 자리에서 크게 웃어 보였다.“루카스, 왜 소이연이어야만 하는데요? 제가 그 사람보다 뭐가 부족한데요?”임아영이 조용히 그에게 물었다.그녀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임아영은 믿어지지 않았다.루카스가 육현경일수가 있다니!하지만 지금 눈앞에 그 사실이 펼쳐져 있고, 믿지 않으려야 믿지 않을 수 없었다.‘그래서 육현경이 소이연을 그토록 사랑했구나. 그토록 사랑하면 자신의 목숨도 바칠 수 있는 건가?’“아영 씨.”육현경이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그는 한동안 그녀의 성씨까지 붙여서 그녀를 부르곤 했었다.“더는 저에게 시간 낭비하지 말아요.”육현경이 말했다.“그리고 저 때문에 자신까지 힘들게 만들지 말아요. 그럴 가치가 없거든요.”“왜 그럴 가치가 없는 건데요? 이번 한평생은 저를 사랑하지 않을 거라서요?”임아영이 울먹이며 그에게 물었다.“네, 맞아요.”육현경은 한 치의 고민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러면 소이연 씨와 먼저 안 게 아니면요? 그러면 저를 사랑할 건가요?”임아영이 비굴하게 물었다.“아니요.”육현경은 여전히 굳건한 태도를 보였다.“아영 씨를 사랑할 리가 없어요. 소이연 씨 외에 다른 여자는 저한테 있어 만약의 경우 자체가 없거든요.”“하지만 전에 저와도 행복했었잖아요?”“이제야 느낀 건데, 그건 그냥 아쉬운 대로 참고 버텼을 뿐이에요.”“루카스!”임아영은 정신이 나갈 것만 같았다.“저한테 이토록 잔인할 것까지 있어요? 마지막으로 선의의 거짓말 정도는 해줄 수 있잖아요!”하지만 육현경은 침묵을 선택했다.그 모습에 임아영은 웃음이 나왔다. 그러나 눈에서는 눈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렸다.그렇다,그가 소이연에 대한 감정은 신성하기 그지없었고, 죽는 한이 있더라도 그 감정이 더러워지기를 바라지는 않았다.이윽고 그녀가 이어서 말했다.“루카스, 이왕 최악의 경우까지 결심한 거면 저도 더 이상 당신한테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네요. 죽고 싶다면 그렇게 해요!”임아영은 이를 악물며 자리를 떠났다.그녀는 더는 루카스에게서 상처를 받고 싶지 않았다.게다가 어쩌다가 자신이 이 지경까지 온 건지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그 시각, 임씨 가문의 사람들도 모두 안색이 좋지 않았다.임계인은 자기
집사는 그녀가 가장 믿고 있는 사람이었다. 임씨 가문에서 그녀는 다른 가족들보다도 집사를 더 믿고 있는지라 그의 말에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았다.다행히 임아영도 아직은 이성적인지라 사랑에 완전히 현혹되지는 않았다.그녀는 임씨 가문과 한 남자 사이에서 당연히 임씨 가문을 선택했다.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멀쩡히 여기 서 있을 리가 없을 것이다.“계속 찾아봐요! 그게 어디 증발하였을 리는 없잖아요!”임 씨 할머니가 명령을 내렸다.“네.”...임씨 가문의 대문 밖,검은색 승용차 안은 더할 나위도 없이 조용했다.게다가 날도 점차 저물어갔다.“문서 찾을 방법 생각해 봤어요? 어떻게 쳐들어갈 건데요?”소이연이 천우진에게 물었다.그러자 천우진이 고개를 가로저었다.누가 봐도 바로 쳐들어간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인 것이다.임씨 가문은 경계가 심하고 준비 태세도 된 상태라 무턱대고 쳐들어가면 양쪽 모두 다칠 뿐이다.하지만 이유를 찾아 들어간다는 것 또한 더욱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현재 임씨 가문은 중요한 시기라 파리 하나도 날아들어 가기 힘든 상태다. 그러니 그들은 더 말할 나위도 없는 것이다.그들의 행동은 오히려 임씨 가문의 의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만약 진짜로 들어갔다가는 아마 다시는 나오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현경 씨가 문서를 은밀한 곳에 감춰서 임씨 집안에서도 일단은 찾지 못할 거예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결국은 그 사람들도 찾아내겠죠. 게다가 임씨 가문에서 그 문서를 찾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출입 금지 일거에요. 이건 제가 장담할 수 있어요. 근데 그들을 나오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하나 있긴 해요.”소이연이 냉정하게 말했다.그녀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성적이었다.마치 육현경이 그 안에서 생사불명인 상태로 있다고 해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사람처럼 말이다.현재 그녀의 신경은 어떻게 하면 그 문서를 손에 넣을 수 있는지, 오직 그 생각뿐이었다.“그 방법이 뭔데?”천우진이 그녀에게 물었다.그는 소이연이 머리가
예수진의 문자를 본 소이연은 바로 그녀에게 따로 문자를 보냈다.[진정하고 일단 지수 씨가 뭐라고 하는지부터 봐요.][문수 씨가 꼭 서프라이즈 하고 싶다고 했잖아요, 우리도 도와야죠.][알겠어요, 조심할게요.][수진이 너도 알고 있었어?][내가 뭘 알겠어, 난 아무것도 모르지]갑자기 달라진 예수진의 태도에 하지수는 바로 되물었다.[그럼 아까 한 말은 무슨 뜻인데?][그냥 송문수가 갑자기 딴사람이 된 것 같단 소리지, 전엔 망나니 같던 놈이 이젠 일도 잘하잖아. 지원 씨가 문수 칭찬을 얼마나 많이 하는데. 그러면서 하도경한테 분발하라고 맨날 뭐라 한다니까.]장문의 문자를 보내 아까의 실수를 만회한 예수진 덕분에 하지수도 더 이상 그녀의 말을 의심하지는 않았다.물론 말 자체는 의심스러웠지만 하지수는 오랜 친구인 예수진이 자신을 속일 리 없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일이 아니라 사생활 말이야.][사생활도 많이 정리된 거 아니었어? 둘이 잘 지냈잖아.][내 착각일 수도 있지 뭐.][그건 또 무슨 말이야?]예수진의 질문에 잠시 고민하던 하지수가 이내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이연 언니가 귀국한 날 나 사실 문수 씨랑 관계 할 뻔했거든, 그런데 그날 하필 생리가 터진 거야.][그래서?][못하긴 했는데 그것 때문에 문수 씨가 엄청 아쉬워했었어. 하도 하고 싶어서 안달 난 사람처럼 굴어서 시한폭탄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다니까.][그렇게까지 자세히 말할 필요는 없는데, 아무튼 계속해봐.][그런데 지금은 생리 끝난 지 며칠이나 됐는데 아무 말도 없는 거 있지? 내가 몇 번이나 슬쩍 말했는데 내 몸엔 손도 안 대더라.]이번에는 예수진이 답장하기도 전에 소이연이 먼저 문자를 보냈다.[혹시 문수 씨가 요즘 너무 바빠서 그런 건 아닐까요? 남자들은 상황에 따라 몸 상태도 다르잖아요. 너무 힘들면 못 할 수도 있죠.][나도 처음엔 그런 줄 알았죠, 요즘 일찍 나가고 늦게 들어오니까. 그런데 내가 오늘 문수 씨 보려고 회사 왔거든요? 회사에 있다던
사무실에 들어오자마자 하지수를 마주한 송문수는 바람피우다 걸린 남자처럼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렸다.그가 들어오기 전 하지수는 송문수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으니 한순간에 고치긴 힘들었을 거라고 애써 합리화를 하며 마음을 진정시켰지만 그런 노력이 무색하게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심장이 또 요동치기 시작했다.사실 말은 안 해도 하지수는 그가 혹시라도 정말 중요한 일로 밖에 나간 걸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헛된 기대를 품고 있었다.하지만 지금 송문수의 표정이 꼭 나쁜 짓을 하다가 들킨 사람 같아서 하지수는 순간 눈시울이 붉어졌다.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낼 것 같은 붉기였지만 그녀는 빠르게 자신의 감정을 숨겼다.“너, 언제 왔어?”“좀 됐어.”마침내 정신을 차린 송문수의 질문에도 하지수는 고개를 떨군 채 서류를 정리하며 바쁜 척을 했다.“엄마랑 파티 준비하는 거 아니었어?”“준비 끝났어, 다음 주에 예정대로 파티할 거야.”“아.”“앞으로 매일 출근할 거야?”온 힘을 다해 태연한 척하고 있는데 저런 속 보이는 질문을 하는 송문수에 하지수는 키보드를 두드리던 손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안 왔으면 좋겠어?”“아니.”본인도 말을 잘못했다는 걸 깨달았는지 송문수는 다급히 손사래를 치며 대답했다.하지수가 오면 소이연, 예수진과 함께 하는 프러포즈 준비에 차질이 생길까 봐 한 질문이었지만 하지수는 다르게 받아들일 수도 있었기에 송문수는 그만 입을 다물었고 하지수도 당황한 송문수를 한번 보더니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다시 업무에 집중했다.하지만 송문수의 생각을 떨칠 수 없었던 하지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하지수는 이제 더 이상 송문수를 믿을 수가 없었다.그가 정말 모든 유혹을 뿌리치고 자신만 볼 수 있는지도 확신이 서지 않았고 그런 그를 자신이 계속 사랑할 수 있을지도 확실하지 않았다.그를 사랑하지 않았을 때는 다른 여자에게 눈길을 주는 남자 곁을 지키는 게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만 사랑에 빠지고 난 지금에는 그렇게 하지 못할 것
이제 송문수도 정신을 차렸으니 하지수는 본인도 원래의 사무실로 돌아가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하지만 송문수의 사무실이 워낙 커서 둘이 같이 쓴다 해도 문제 될 건 없었기에 그녀는 사무실을 옮기는 건 나중으로 미뤄두고 컴퓨터를 켜기 시작했다.하지수가 OA의 서류들을 훑어보려 할 때 송문수의 비서가 마침 안으로 들어왔는데 그는 하지수를 보자마자 놀란 기색을 비추며 인사를 건넸다.“하 대표님, 오셨어요?”“네, 그런데 어떻게 여기 있어요? 송 대표님이랑 같이 회의 참석한 거 아니었어요?”“회의라니요?”“지금 회의 중 아니에요?”“저희 오전 회의 없어요, 오후 3시에 첫 회의에요.”“그럼 송 대표는 어디 갔어요? 거래처랑 계약하러 간 거예요 아니면 현장 나간 거예요?”어디를 가든 대동하던 비서도 없이 혼자 나선 송문수에 하지수는 이상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대표님 오늘 안 나오셨어요.”“아침에 연락 오셔서 개인적인 일 때문에 좀 늦는다고 저한테 오후 회의자료 준비하라고 하셨어요. 저는 그거 다 프린트해서 지금 대표님 책상에 올려두려고 들어오는 길이었고요.”제 손에 들린 서류들을 들어 보이며 말하는 비서에 하지수의 미간은 더욱더 찌푸려졌다.집안일은 다 허영지와 하지수가 책임지고 있는데 출근 시간까지 늦춰가며 처리해야 할 개인적인 일이 도대체 뭔지 하지수는 짐작이 가지 않았다.“알겠어요, 나가서 일 보세요.”“네.”서류를 송문수 책상 위에 올려둔 비서가 인사를 하며 나가자 서류를 보고 싶은 마음도 사라져버린 하지수는 곧바로 송문수에게 문자를 보내보았다.[문수 씨, 지금 어디야?][나 회사에 있지, 왜 그래?]보낸 지 1초 만에 온 답장이었지만 내용은 역시나 거짓말이었다.대체 무슨 일을 하길래 저를 속이는 건가 싶었던 하지수는 오락가락했던 지난날 송문수의 태도를 떠올렸다.생리가 온 그날만 해도 하지 못해서 안달 나 하던 사람이 생리가 끝났다는 데도 저를 피하는 게 안 그래도 이상했는데 하지수는 설마 송문수에게 이제 제가 필
아까는 앉아서도 잘만 자더니 제대로 누우니 오히려 잠이 오지 않아 송문수는 하지수를 기다리며 한참을 뒤척이고 있었다.그런데 한참이 지나도 보이지 않은 인영에 그는 문을 살짝 열고 문틈 사이로 거실 쪽을 내다보았다.그리고는 하지수가 아직도 거실에서 티비를 보는 걸 두 눈으로 확인하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시 침대로 돌아왔다.사실 송문수는 인내심이 없는 게 아니라 하지수가 그녀가 쓰던 방으로 들어가 버릴까 봐 그게 걱정돼서 확인한 것이었다.그 뒤로도 몇 번 더 훔쳐보던 송문수는 마침내 티비를 끄는 하지수에 깜짝 놀라 침대로 달려가 자는 척을 했다.한편 드디어 티비를 끈 하지수는 먼저 본인 방으로 가 세수를 마친 뒤에야 송문수의 방안으로 들어섰다.자고 있는 송문수를 발견한 그녀는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으려 조심하며 천천히 이불을 들추고 그의 곁에 나란히 누웠다.오랜만에 푹 자는 사람을 그대로 내버려 두고는 싶었지만 하지수는 본능적으로 자꾸 송문수에게 다가가고 있었다.그 때문에 자는 척하던 송문수는 온몸이 경직되어 딱딱하게 굳어버렸다.하지수랑만 있으면 몸이 멋대로 긴장하는 거라 그건 송문수의 의지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그런데 곧이어 제 몸에 닿아오는 부드럽고 따뜻한 하지수의 온기가 느껴지자 송문수는 모든 긴장이 풀리면서 이래서 사람들이 연애를 하는구나 싶었다.하지수가 있으니 평범하던 세상도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다음날부터는 송문수도 일 때문에 바빴고 하지수도 아버님의 생일 파티 준비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보니 둘이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현저히 줄어들었다.사실 둘 중에 더 바쁜 건 송문수였다.그래서 하지수도 평소에는 그 얼굴도 자주 볼 수 없었다.항상 밤늦게 귀가하는 송문수는 터덜터덜 들어와 잠든 하지수를 품에 안고 자다가 그녀가 깨어나기도 전에 출근해버렸다.밤에는 분명 온기가 느껴졌는데 일어날 때는 늘 비어있는 옆자리에 하지수는 못내 서운한 감정도 들면서 송문수가 자신을 일부러 피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
그리고는 하지수가 반응할 새도 없이 그녀에게 입을 맞춰왔다.아주 소중한 것을 다루듯 조심스럽게 입맞춤을 이어나가던 송문수는 갑자기 고개를 들어 하지수의 입술을 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엄청 부드럽네.”야한 꿈을 꾸는 게 틀림없어 보이는 남자의 행동에 하지수는 화가 나면서도 어이가 없어서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역시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더니, 이제 좀 정신 차리나 했더니 꿈속에서까지 본능을 주체하지 못하는 송문수에 하지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그런 여자친구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송문수는 또다시 그녀의 입술을 찾아 헤맸다.“문수 씨, 눈 좀 떠봐.”생리도 끝나지 않은 와중에 이렇게 꿈을 꾸는 남자랑은 하고 싶지 않았던 하지수는 이번에는 그가 깨어나길 바라며 아까보다 좀 더 힘을 주어 흔들었다.“무슨 꿈이 이렇게 진짜 같아?”좌우로 사정없이 흔들리는 몸에 어지러워진 송문수는 그제야 눈을 뜨며 말했다.“그럼 꿈이 아닌가 보지.”“꿈이 아니라고?!”하지수가 짚어줘서야 꿈이 아닌 현실임을 자각한 송문수는 몸을 벌떡 일으키며 소리쳤다.“꿈에 누가 나왔는데 그래?”누가 나오긴, 송문수의 꿈에 나올 사람은 늘 하지수 한 명뿐이었다.전에는 꿈속에서도 그녀와 함께하고 싶었는데 이제는 그게 현실이 되어버려 순간 당황한 것이었다.하지만 송문수는 턱 끝까지 차오른 그 말은 굳이 하지 않고 화제를 돌렸다.“나 어떻게 잠든 거야?”평소에는 말을 거침없이 하는 성격인데 이상하게 하지수 앞에만 서면... 속마음을 제대로 드러낼 수가 없었다.“피곤했나 봐.”진실이라는 게 알아서 다 좋은 건 아니었기에 하지수도 모른 척 말을 돌리는 송문수를 따라가 주었다.괜히 끝까지 캐물어서 상처받는 것보다는 아무것도 모르는 게 더 나은 것 같아서였다.“매일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느라 힘들었을 텐데 어쩌다 쉬는 날도 밖에서 돌아다니기만 했잖아. 얼른 씻고 자, 내일부터 또 출근해야지.”“너는?”하지수의 재촉에 방으로 들어가던 송문수는 갑자기 걸음을 멈
“맛있어.”처음으로 주방에 들어간 남자가 이런 맛을 낸 건 객관적으로 대단한 일이라 하지수는 송문수가 그토록 바라는 칭찬을 결국 해주었다.사실 이미 사약 같은 맛일 거라는 각오를 하고 있었는데 꽤나 달달해서 하지수도 놀라웠다.한편 원하던 칭찬을 들은 송문수는 신나서 채널을 돌리며 물었다.“이거 맞지?”“응.”“법률 채널이네?”여자들은 다 예능이나 멜로 드라마를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어울리지 않게 이런 지루한 채널을 좋아하는 하지수에 송문수는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법 좋아해서 대학 때도 법 배운 거야. 난 이런 거 좋아해.”“그래.”하지수의 말에 그제야 그녀가 변호사였다는 걸 떠올린 송문수였다.그렇게 법을 좋아하는 사람이 자신을 위해 변호사라는 직업을 포기했다는 걸 알아차리자 한 번 더 감동받은 송문수는 저도 하지수가 좋아하는 걸 함께 하겠다는 생각으로 용기를 내어 그녀 옆에 자리 잡고 앉았다.“나도 같이 봐.”그의 제안이 의외였지만 이렇게 완벽한 판례분석이라면 송문수도 관심 있어 할 것 같아 하지수는 고개를 끄덕였다.잘 접하지 않던 분야라 처음엔 싫어할 수 있어도 그 속에서 다룬 사건들을 계속 보다 보면 자연스레 호기심이 생기고 그러면서 법률 지식까지 알게 되니 그거야말로 일거양득일 것이다.역시나 하지수는 법조인답게 바로 프로그램에 빠져들었는데 처음에는 신기해하며 잘 보던 송문수는 시간이 지속될수록 점점 지루해하고 있었다.당장이라도 핸드폰을 꺼내 게임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제가 뱉은 말을 지키기 위해 참고 또 참던 그는 스르르 잠이 들어버렸다.티비에 빨려 들어갈 듯 열중하고 있던 하지수가 정신을 차리고 옆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송문수는 이미 코까지 골며 자고 있었다.몸은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져 있었고 고개도 반쯤 돌아가 있는 누가 봐도 불편한 자세를 하고도 잘 자는 송문수에 하지수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지루하면 지루하다고 말이라도 하지.하지수는 미련한 송문수가 감기라도 걸릴까 봐 담요도 덮어주었다.하지만
송문수를 따라 여기저기 다니다 보니 가지고 갔던 생리대로도 부족했었는데 양까지 많았다면 정말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생각을 마치고 나니 심심해진 하지수는 자연스레 티비를 켜고 법률 채널을 틀어놓았다.주방에서 돌아치는 송문수는 진작에 잊은 하지수가 전형적인 판례들을 넋 놓고 있는 와중에 송문수는 마침내 흑설탕물을 다 끓여냈다.맛없는 걸 가져다주는 건 안 하느니만 못하다고 먹어보고 괜찮으면 그때 가져다주라는 소이연의 당부가 있었기에 송문수는 맛을 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그런데 생각보다 괜찮은 맛이어서 그는 용기를 내어 그걸 하지수에게로 들고 갔다.“이게 뭐야?”하지수는 생전 처음 보는 남자 친구의 행동에 어리둥절해 하며 물었지만 송문수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흑설탕물이야. 뜨거울 때 마셔.”“뭐?”“생리 기간에는 이런 거 마셔야 하는 거 아니었어?”“나 주려고 당신이 직접 만든 거야?”“당연하지, 내가 생리 올 리는 없잖아.”진지하게 말하는 송문수에 하지수는 웃음을 터뜨려버렸다.어떨 때는 신기하리만치 제 마음을 몰라주다가 또 이렇게 어설픈 모습으로 저를 위해주는 걸 보면 그가 귀여워 보이기도 했다.송문수는 정말 밉지만 싫어할 수가 없는 존재였다.“고마워.”낮에 있었던 그의 독단적인 행동에 대해 살짝 서운했었는데 이렇게 흑설탕물 한번 가져다줬다고 하지수의 화는 또 사르르 풀려버렸다.“어때?”그런데 하지수가 마셔보려고 컵을 든 순간 송문수는 맛을 물으면서 자연스레 채널을 돌려버렸다.한창 판례를 보고 있었는데 또 제 의사는 묻지도 않고 멋대로 채널을 돌려버리는 그의 행동에 하지수는‘사랑이란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치는 것과도 같다’라는 가사에 깊은 공감이 가 순간 한숨을 쉬어버렸다.정말 송문수에게는 기대를 품으면 안 되는 것 같았다, 기대하는 족족 그것들이 실망으로 이어지니 말이다.한편 미간을 찌푸린 채 한숨을 내쉰 하지수를 본 송문수는 당황하며 물었다.“맛없어?”“내가 먹어볼 때는 맛있었는데? 너 생리만 아니었으면 내가 다 마
가슴을 졸이며 부둣가에 도착하니 술을 마신 송문수 때문에 하지수는 역시나 운전석에 앉아야만 했다.진짜 이런 데이트를 하는 건 자신밖에 없을 것 같아 생각할수록 기분이 나빴던 하지수는 집으로 가는 동안에 한마디도 하지 않고 삐진 티를 내고 있었지만 송문수는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따라부르며 드라이브를 즐기고 있었다.송문수는 오늘이 아주 완벽했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집으로 돌아온 하지수는 바로 방으로 들어가려 했는데 송문수는 그 속도 모르고 또 그녀를 붙잡았다.“왜 오자마자 방에 들어가, 좀 앉아있지.”아직 이른 시간이라 송문수 딴에는 하지수와 함께 티비를 보고 싶었던 것이다.“나 씻고 싶어.”“나중에 씻어.”“보트 탈 때 몸이 다 젖어버려서 아직도 추워. 나 생리 와서 생리대도 바꿔야 하는 데 그럴 거면 그냥 씻고 싶어.”하지수의 말을 듣던 송문수는 그제야 여자가 생리 기간일 때는 더욱더 신경 써서 몸을 챙겨야 한다는 말이 떠올랐다.어제까지만 해도 기억하고 있었는데 오늘 간만의 데이트라 너무 신난 탓에 그만 까먹어버린 것이다.“먼저 보고 있어, 나 금방 씻고 나올게.”“응.”하지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송문수는 갑자기 미안한 마음이 들어 단톡방에 문자를 보내보았다.[생리 기간에는 어떤 걸 신경 써줘야 하는 거예요?][송문수, 너 생리 기간도 못 참고 하려고 그러는 거야? 짐승 같은 놈.][날 좀 좋은 쪽으로 생각해주면 어디 덧나니? 나 그런 놈 아니거든.][그럼 그건 갑자기 왜 묻는데?][생리 때는 체온 유지에 신경 써줘야 해서 춥게 굴면 안 되고 피곤하지 않게 많이 쉬는 게 중요해요. 그리고 술이랑 찬 건 되도록이면 안 먹는 게 좋고요. 하지만 지수 씨 성격이라면 남한테 기대는 걸 별로 안 좋아하니까 이 정도는 알아서 했을 거예요 이미.]소이연은 이내 송문수가 해야 할 일을 알려주었다.[문수 씨는 흑설탕물이나 끓여주세요. 피도 잘 통하게 해주고 생리통 푸는 데에도 효과적이에요. 그리고 흑설탕물은 달달하
하지만 그리 남사스러운 말은 아니라서 하지수는 한마디 더 보탰다.“좀 그런 것 같기도 하고.”그 말을 들은 송문수는 입꼬리를 올린 채 어색해진 분위기를 풀려고 일부러 더 너스레를 떨었다.“내가 매력이 넘치는 걸 어떡하겠어.”그 능청스러운 모습에 하지수는 굳이 반박하지 않고 웃어 보였다.“하지수, 내가 전에 좀 막살았던 건 인정하는데 그래도 한번 결정한 일은 끝까지 하는 사람이야 나. 내가 너랑 잘 만나보겠다고 약속한 이상 절대 너한테 미안할 짓은 안 해.”“응, 알겠어.”하지수는 송문수가 하는 말이라면 뭐든 다 믿었다, 아니 다 믿고 싶었다.그리고 지금은 자신을 실망시키는 사람일지라도 언젠가는 바뀔 걸 알기에 그녀는 기다릴 수 있었다.“네가 나한테 맞춰주는 만큼 나도 너 실망시키지 않을게.”“알았어.”우쭐대며 말하는 송문수에 하지는 역시나 고개를 끄덕여주었다.송문수의 말이라면 늘 이렇게 맞장구를 쳐주는 사람이 바로 하지수였다.밥을 다 먹고 난 둘은 해변가를 거닐었는데 붉은 태양이 바다에 걸쳐져 있어 노을이 아주 예쁘게 져 있었다.주변 환경은 별로였지만 그래도 경치는 봐줄 만해서 하지수의 기분도 조금씩 풀리고 있었다.하지만 점점 어두워지는 날에 좀 있으면 파도가 더 거세질까 봐 걱정됐던 하지수는 송문수를 보며 말했다.“문수 씨, 우리 이제 가자.”“가고 싶어?”“응.”“좀 더 있다 가자, 여기 좋잖아.”“좀 있다 보트도 타야 하잖아, 저녁엔 위험할 것 같아서 그래.”낮에 올 때도 무서웠는데 밤엔 더할 것 같아 하지수는 한시라도 빨리 돌아가고 싶었다.“무서워?”송문수는 그런 하지수가 웃긴지 입꼬리를 씰룩이며 물었다.“응. 무서워.”“그럼 가자.”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에 송문수도 더는 말리지 않았다.하지만 그가 이렇게 제 의견을 바로 수락해줄 줄 몰랐던 하지수는 어벙벙한 채로 그를 따라 걷고 있었다.사실 집에 가고 싶다는 말도 원래의 그녀였다면 하지 않았겠지만 소이연이 했던 말이 떠올라 한평생 참고 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