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어르신."집사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급히 대답했다. 지금 신혼이었기에 다른 사람을 방에 올라오지 못하게 하는 건 이상할 게 없었다. 더구나 육현경의 모습은 너무나 태연했다. 아무런 이상함도 감지할 수 없었다.그는 임아영을 안고 방에 올라갔다. 전에 임씨 저택에 와본 적이 있어 CCTV 위치를 그는 이미 파악해 놓은 상태였다. 2층은 CCTV가 하나밖에 없었고 복도에 위치했다. 그 CCTV만 피하면 임씨 가문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을 것이다. 육현경은 임아영을 안고 그녀가 전에 머물던 방에 놓아주고 베란다 문을 열었다. 그리고 베란다 문에서 내려와 밖에 매달려 밖으로 뛰어내렸다. 그리고 베란다의 안전대를 붙잡고 다른 방으로 건너갔다. 그 방은 그가 가려고 하는 서재와 가장 가까운 방이었다. 그 방에서 나가면 CCTV가 없는 사각지대에 들어서게 된다. 육현경은 도착한 후 심호흡하며 방에서 나갔다.지금 막 천씨 가문의 집으로 향하던 임씨 남성이 전화를 받았다. "아영과 루카스가 집으로 갔다고?" "네, 아가씨가 매우 힘들어 보였어요.""루카스가 데리고 오셨는데 그들을 최대한 방해하지 말라고 하셨어요."집사가 에게 보고를 올렸다. 임아영의 아버지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임씨 할머니에게 물었다. "엄마, 루카스와 아영이가 집으로 갔다네요.""왜 우리에게 한마디 말도 없었지?"임씨 할머니의 눈빛이 예리하게 반짝였다. "전화 해 볼게요." 임아영의 아버지가 급히 말했다. "아직은 필요 없어. 아영이에게 경계를 할 필요는 없어. 중요. 루카스가 예전에 소이연과 관계가 있었고 아영과 어쩔 수 없이 결혼을 한 거야. 걔가 복수할까 봐 두려워. 하지만 아직 우리 손아귀에 있으니 큰 문제가 될 건 없어. 집사더러 루카스를 잘 감시하라고 해. 이상 행동만 없으면 크게 신경 쓸 필요 없어." 임씨 할머니가 계속 말을 이었다. "아영이가 어떻게 어렵게 성사한 결혼인데, 아영을 봐서라도 루카스를 우리 사람으로 여겨야지.""네."
육현경은 서두르지 않고 냉정함을 유지했다. 하지만 그의 이마는 식은땀이 주르륵 흐르기 시작했다. 서재의 면적은 너무나 컸고 그가 찾고자 하는 서류는 비밀문서였기에 쉽게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10분이 흘렀다. 육현경은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또 20분이 흘렀다. 그때도 유현경은 아무도 찾지 못했다. 30분 후.육현경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바닥으로 뚝뚝 흘렀다. 그때 천우진에게서 문자가 왔다. [빨리요. 임씨 사람들이 지금 돌아가려고 해요.] 육현경은 침착함을 유지하며 서재에서 계속 찾았다. ...천시 가문 저택.임씨 할머니의 얼굴은 분노로 가득 찼다. "어려서부터 네가 자라는 모습을 나는 쭉 지켜봐 왔어. 너는 항상 성격이 진지했었지. 그런데 네가 어떻게 이런 장난을 할 수 있는 거냐." 임씨 가문이 드디어 천씨 어르신이 가짜라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고모할머니를 오늘 오시라고 한 건 진실을 말씀드리기 위해서입니다."천우진은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보려 했다. "저희는 항상 의심해 왔습니다. 할아버지 일은 누군가가 계획적으로 움직인 겁니다. 그래서 이런 방식으로 그 사람을 찾아보려 애썼습니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했습니다. 고모 할머니를 계속 속이고 싶지 않았기에 오늘 만나서 진실을 말씀드리려고 한 겁니다." "아무리 그렇다 한들 나는 네 할아버지 동생이다. 이렇게 큰 일을 어떻게 나한테 속일 수 있는 거냐." "죄송합니다. 확실히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천우진이 사과했다. "하지만 저희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그럼 네 할아버지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거냐." 임씨 할머니가 화가 나서 물었다. "지금 제가 요양할 수 있는 안전한 곳으로 모셨습니다.""안전? 네 할아버지가 가까운 사람에 의해 죽임을 당할 뻔한 걸 알고 있는 데도 안전이란 말을 하는 것이냐. 게다가 아직 누구인지도 찾지 못했잖아."임씨 할머니가 그를 의심했다. 천우진은 임씨 할머니 앞에서 주눅 든 척했다. "아무런
임씨 가문 차 안. 임아영의 아버지는 앞이 차량을 보며 깊은 사색에 빠졌다. "엄마, 천우진이 우리를 가지고 노는 게 아닐까?"임씨 할머니는 자신의 아들을 바라보았다. 그녀도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을 만나왔기에 결코 눈치가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처음엔 천우진을 믿었지만 지금 이 순간 그녀도 의심하기 시작했다. "엄마, 그가 우리를 그렇게 오랫동안 속이고 어르신이 이미 깨어났다고 말했는데 지금 또 갑자기 우리한테 이 모든 건 가짜라고 얘기를 했어. 천우진 이놈이 지금 우리를 속이고 있는 거야.""따라가지 마라." 임씨 할머니가 갑자기 계획을 바꿨다. "뭐라고요?" 임아영의 아버지 임계인이 깜짝 놀랐다. "천우진을 의심한다면 더 이상 그에게 휘둘릴 필요 없다. 천씨 가문에 지금 믿을만한 사람도 없고 똑똑한 사람도 얼마 없어. 하지만 천우진은 달라. 천우진은 능력이 있는 사람이야. 게다가 소이연은 천우진과 가깝게 지냈어. 소이연도 자신의 힘으로 장안시에서 살아남았기에 얕볼 수가 없어." 임씨 할머니가 잠시 말을 멈추다가 강경하게 말했다. "천우진이 모든 진실을 알아차린 것 같아." "우리가 그렇게 조심스럽게 행동했는데요?"임계인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아무튼 조심해야 돼." "알겠어요." 임계인이 더 이상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단지 조금 아쉬울 따름이었다. 조금만 더하면 이 일을 해결할 수 있었는데...그는 어쩔 수 없이 기사한테 지시했다. "임씨 가문으로 돌아가죠.""알겠습니다."차량은 급격히 방향을 틀었다. 천우진은 계속 차량의 상황을 살폈기에 임씨 가문 차량이 떠나자마자 그는 알아차릴까다.그가 육현경에게 벌어다 준 시간은 여기에서 끝난 것이다.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전화를 걸었다. 임계인은 전화가 울리자 입을 열었다. "천우진이 걸어온 겁니다.""내가 받지."임씨 할머니가 직접 전화를 받았다. "삼촌...""고모할머니다." "고모할머니, 지금 왜 갑자기 따라오지 않는 거예요?""우진아
그는 힘껏 심호흡을 하며 평정심을 유지하려 애썼다. 그리고 특수한 스프레이를 가지고 금고의 비밀번호 입력 위치에 여러 번 뿌렸다. 그 스프레이는 천우진이 그를 위해 준비한 것이었다. 몇 번 뿌리자 몇 초 만에 비밀번호 위로 지문이 나타났고 그 지문으로 비밀번호를 유추할 수 있었다. 비밀번호가 어떤 숫자로 조합된 지 유추할 수 있었고 이로써 비밀번호를 유추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건 운에 맡겨야 한다. 육현경은 나타난 숫자를 기록해 가며 유추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만드는 비밀번호에는 모두 규칙이 있다. 어떤 사람의 특정한 생일이라든지 혹은 의미 있는 숫자일 것이다. 육현경은 심호흡하며 숫자를 배열하고 임씨 가문 사람들의 모든 생일 날짜를 떠올렸다. 그가 한 숫자 배열들을 눌러 보았다. 그건 비밀번호가 아니었다. 그는 또다시 심호흡하며 다른 숫자배합을 눌렀다. 여전히 틀렸다. 육현경의 이마 위의 땀방울은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그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어쩌면 얼마 지나지 않아 임씨 가문 사람들이 들이닥칠 것이다. 그는 눈을 감으며 자신의 눈앞의 숫자와 임씨 가문의 연결고리를 찾으려고 애썼다. 모든 사람의 생일에서부터 전화번호 그리고 주민등록번호까지 모든 기억을 떠올렸다. 육현경이 갑자기 눈을 떴다. 그리고 생각난 번호들을 누르기 시작했다. '달칵.' 금고가 열리는 소리였다. 비밀번호는 이미 돌아가신 임씨 어르신의 주민등록번호 뒤 여섯 자리였다. 육현경은 숨을 고를 시간도 없이 안에서 서류를 뒤지기 시작했다. 손을 넣자마자 서재에서 경고 알림 소리가 울렸다. 육현경은 그제야 금고 안에 경보기가 설치된 것을 알아차렸다. 그는 너무 긴장한 나머지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알람 소리가 온 집을 울렸지만 그는 결코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는 미친 것처럼 자신이 원하는 물건을 찾았다. 알림 소리는 온 저택을 올렸다. 아래층의 집사도 소리를 듣고 얼굴이 긴장하여 크게 소리쳤다. "나
집사는 임씨 할머니의 지시에 보디가드 둘과 함께 임아영의 방으로 달려갔다. 방문을 두드릴 생각도 없이 문을 무력으로 열려고 했다. 하지만 방문은 이미 안에서 잠긴 상태였다. "아가씨!" 집사가 밖에서 큰 소리로 말했다. 태도는 아주 강경했다. "문을 열어주십시오!" "지금 중요한 일이라 반드시 들어가야 합니다." 안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만약 아가씨가 문을 열지 않으면 무력으로 열 것입니다." 집사가 냉정하게 말했다. "지금 열 상황이 아니에요." "죄송합니다." 임아영의 말에도 집사는 아랑곳하지않았다. 보디가드가 앞에서 힘껏 발로 방문을 찼다. "악!" 임아영이 크게 소리쳤다. 그녀는 이불을 끌어안았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그녀의 어깨로 보아 지금 옷을 입지 않았을 것이다. "이 미친! 누가 마음대로 내 방으로 들어오랬어." 임아영이 크게 화를 냈다. 집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보디가드에게 말했다. "찾아." "니들이 감히!" 보디가드들은 집사 말만 들었다. 아무리 임아영이 저지를 했어도 보디가드들은 수색하기 시작했다. "지금 도대체 무슨 짓을 하는 거야? 나한테 이렇게 하는 것 할머니에게 얘기해서 다 잘라버릴 거야." 임아영이 독하게 말했다. "오늘 저희가 하는 일은 너무 중요한 일입니다. 아가씨께서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만약 아가씨께서 불편하셨다면 일이 끝난 후에 아가씨의 처분 기다리겠습니다." 집사는 예의 있는 듯 보였지만 그의 태도는 강경하기 짝이 없었다. 임아영은 이를 악물었다. "지금 뭘 찾고 있는 거죠?" "루카스요."집사도 더 이상 속이지 않았다. "그 사람을 왜 찾는 거죠?" "루카스가 임씨 가문의 중요한 서류를 가져갔습니다. 그건 임씨 가문의 생사와 관련 있는 서류입니다. 아가씨가 루카스가 어디 있는지 안다면 우리에게 알려주시길 바랍니다." 집사의 얼굴은 진지했다. 보디가드들은 그녀의 방안에서 찾아봤지만 그를 찾아낼 수 없었다. 유일하게 남은 건 아가씨 침대였다.
임아영은 몸을 일으켜 베란다로 나갔다. 루카스의 그림자가 뒷 공원에서 부드럽게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두 눈에 원망으로 가득 찼다. 만약 그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그를 지금 바로 죽였을지도 모른다. 그녀의 집에서 무엇을 가져갔기에 오지헌이 이렇게까지 한단 말인가. 그녀가 아까 그에게 물었지만 그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녀를 깨운 후에 그는 즉시 떠났다. 임아영은 루카스가 자신을 깨운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몸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만약 자신이 루카스를 감싸지 않았다면 그는 오늘 임씨 가문에서 죽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문 앞에서 소리가 들려왔을 때 한치 주저 없이 입었던 옷을 벗어 던졌다. 루카스에게 도망갈 시간을 벌어다 준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지금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고 있었다. 그가 정말 떠난다면... 임시 가문에게 어떤 일이 발생할지 그녀는 상상할 수 없었다. 그녀는 이를 악물며 벗어 던졌던 옷을 다시 입기 시작했다. ...뒷공원에서 육현경은 한 숲속에 몸을 숨겼다. 그는 오기 전에 이미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그래서 그는 임씨 가문의 CCTV 위치를 파악했고 빠르게 피할 수 있는 루트와 도망갈 수 있는 길을 이미 파악했다. 하지만 지금 그를 찾는 사람이 많아졌고 대문도 이미 잠겼있을 것이 뻔했기에 그는 대문으로 나갈 수 없었다. 임시 저택의 난간은 고압 전선으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가 떠날 것을 방지하기 위해 지금 쯤에는 아마 모든 전원이 켜져 있었을 것이다.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임아영을 이용하여 시간을 조금 벌었지만 그가 떠나는 건 역시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사실 그는 임아영이 자신을 도울 거란 확신이 없었다. 마지막 순간에 오지헌이 서재에 들이닥치던 마지막 순간 그는 찾고자 하는 서류를 찾았다.그리고 창문에서 뛰어내려 밖의 베란다를 통해 임아영의 방으로 되돌아왔다. 임씨 가문에서 첫 번째로 의심할 대상이
"왜 또 돌아왔어요?" 임아영이 경악하며 물었다. 그리고 그녀는 순식간에 깨달았다. "나갈 수 없는 거에요?" 육현경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침묵만 지켰다. "루카스, 왜 내가 당신을 도와줄 거라고 생각한 거죠?" 임아영은 눈시울이 붉어졌다. "당신이 가져간 물건 우리 임씨 가문을 망가뜨릴 수 있는 물건인 건가요?" 임아영이 그에게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너무 낮아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조금만 목소리를 키우면 밖의 사람이 들이닥칠까 봐 무서웠다. 지금 눈앞이 남자를 죽여버리고 싶었지만 아직도 그를 사랑했다. "루카스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에요? 그렇게 소이연이 좋아요?" 임아영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 "내 어디가 소이연보다 못한 거예요? 나랑 살면 안 돼요? 당신에게 거짓말하고 싶지 않아요. 괜찮아요, 당신만 내 옆에 있다면 마음속에 다른 여자 품고 있는 것 따윈 아무렇지 않아요. 나 자신 있어요. 언젠간 당신이 나를 사랑할 거라고 믿어요." "예전엔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소이연이 나타난 이상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어요." 육현경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 사람 어디가 그렇게 좋아요? 내가 고칠게요. 내가 성형수술을 하든 그 사람 흉내를 내든 당신이 좋아하는 소이연의 모습으로 내가 고칠게요.""아영 씨, 그렇게 할 필요 없어요. 사랑하면서 자신을 잃으면 안돼요. 그건 위대한 게 아니라 이기적인 거예요."육현경이 싸늘하게 말했다. "이기적이라고요?" 임아영이 웃었다. 그녀의 웃음엔 비옷음이 담겨 있었다. "내가 이기적이에요? 아니면 당신이 이기적인가요? 당신은 너무 잔인해. 소이연과 함께하기 위해서 우리 가문을 매장 시키려고 하는 거죠?" "이건 당신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요.""내가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나를 죽이고 우리 집을 파멸시키는 건가요?""아니요. 당신이 소이연을 놓아주지 않기 때문이에요."육현경은 모든 사실을 밝혔다. 임아영은 그의 말에 어안
경호원이 온몸을 뒤졌지만, 아무것도 없었다.집사의 안색이 극도로 어두워졌다.“좋기는 얼른 내놓으시는 게 좋을 겁니다.”“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네요.”“도련님은 현명하신 분이라고 믿어요. 쉽게 가고 싶으면 물건을 내놓으시는 게 좋을 것입니다!”집사가 협박했다.“저는 집사님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단지 아영 씨와 같이 임씨 가문에 왔을 뿐이라고요.”집사의 안색이 차가워졌다.이윽고 임가네 할머니가 임씨 가문의 사람들을 데리고 호탕하게 돌아왔다.그녀는 임아영을 흘깃 보더니 입술을 오므렸다.이윽고 임 씨 할머니가 육현경의 앞으로 다가갔다.“물건은 찾았어요?”“찾지 못했습니다.”집사가 공손히 답했다.“어디 숨겼어요?”임 씨네 할머니가 육현경에게 물었다.“지금 도통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가 어렵네요. 저는 단지 아영 씨가 집에 한번 와보고 싶다고 해서 같이 왔을 뿐입니다.”“루카스 씨, 저는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습니다!”“저 진짜...”“쾅!”임계인이 주먹으로 육현경의 얼굴을 세게 때리자, 코피가 사방으로 튀었다.그는 싸움을 잘하는 것이 분명하다.그 한방으로 하마터면 육현경의 목숨을 앗아갈 뻔했으니 말이다.육현경은 한순간 눈앞이 어둡다고 느껴졌다.옆에서 지켜보던 임아영은 놀란 나머지 몸이 떨렸다.그녀는 이렇게 피비린내 나는 듯한 장면을 본 적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단지 루카스의 이런 모습을 본 적이 없을 뿐이다.임아영은 이를 악물고 마음이 약해져서는 안 된다고 스스로 세뇌했다.‘루카스는 맞아도 싸다!’“죽고 싶지 않으면 얼른 물건 내놔!”임계인이 그를 협박했다.“저 진짜 없어요...”“이놈을 지하실로 끌고 가라.”임 씨네 할머니가 명령을 내렸다.“네.”이윽고 육현경이 거칠게 끌려갔다.임 씨네 할머니가 임계인에게 분부하며 말했다.“제대로 뒤져, 땅을 파서라도 반드시 물건을 찾아내야 할 것이야!”“네.”임계인은 곧바로 사람들을 데리고 자리를 떠났다.그녀가 자리를 떠나려다가 임아영
그리고는 간호사 하나가 걸어 나오며 말했다.“소이연 씨 보호자 계세요?”“네!”“아기 나왔습니다. 3.15킬로...”“산모는요?”간호사의 말에 우렁차게 대답한 육현경은 아이는 신경도 안 쓰고 소이연의 상태부터 물었다.“산모분은 아주 건강하십니다. 지금 선생님께서 상처 처리하고 계시니까 곧 나오실 겁니다.”“아빠 맞으시죠? 아이 한 번 안아보실래요?”그제야 안도한 육현경이 아이를 안아 들자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오며 한마디씩 하기 시작했다.“어머, 어쩜 이렇게 하얗지? 내가 본 아기들 중에 제일 예쁜 것 같아.”“지금 네 아들은 못생겼다는 소리야?”“솔직히 말하면 좀 못생기긴 했어.”하도경의 시비에 예수진이 너무 솔직히 답하자 계지원이 그게 사실인 걸 알면서도 자기 아들 외모를 저렇게 평가하는 게 썩 기분 좋지는 않았는지 헛기침을 해댔다.“나도 안아볼래.”예수진의 말에 육현경은 바로 아이를 넘겨주었다.“우리 공주님, 너무 귀엽다. 왜 하필 혈연관계인 거야!”피가 섞인 남매라서 자기 아들과 맺어줄 수 없다고 안타까워하는 예수진에 하지수도 궁금해서 다가가 보았다.“나도 봐봐.”가까이에서 보니 정말 떡잎부터 남다른 예쁜 아이였다.장차 아주 예쁘게 클 것 같아서 하지수는 아이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물었다.“딸이야?”“딱 보면 딸이지, 이 얼굴이 남자일 리는 없잖아.”간호사가 대답하려던 그때 분만실 분이 또 한 번 열리고 소이연이 휠체어를 타고 나오자 육현경은 다급히 달려가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고생했어.”“이제 돌아가서 쉬자. 우리 이제 아이는 그만 가지자.”소이연이 고생하는 게 마음 아팠던 육현경은 잔뜩 굳은 얼굴로 간호사에게서 휠체어를 받아 병실로 향했다.친구들도 그런 육현경을 따라 병실로 향하고 있었는데 성큼성큼 걷던 하지수가 휑한 옆자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송문수가 아직도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왜 움직이지 않는지 의아해진 하지수가 그를 바라보자 송문수가 그녀와 시선을 맞추며 입꼬리를 올려 보였다.
“뭐라고요?!”놀란 예수진이 언성을 높이자 육현경도 표정을 굳히고 소이연을 바라보았다.늘 소리소문없이 일을 처리하던 육현경은 이번에도 다들 벙쪄있는 틈을 타 소이연을 안고 밖으로 나갔다.예수진도 그 뒤를 따라 나가려 하자 계지원이 그녀를 잡아 세웠다.“수진아, 오늘 이 자리 우리가 만든 거야.”“그래도 갈 거야. 당신은 엄마랑 현경 오빠 어머님한테 손님들 좀 부탁한다고 전해줘. 난 언니한테 가봐야겠어.”예수진을 말릴 수 없다고 생각한 계지원도 잠시 고민하다가 그녀의 뒤를 따라 나가자 상황이 심상치 않게 흘러감을 눈치챈 송문수와 하지수도 아쉬운 듯 서로에게서 떨어졌다.“키스 다 했으면 빨리 병원 가. 이연 씨 출산한대.”출산이라는 말에 하지수도 다급히 뒤 따르려 하자 송문수가 그녀를 잡으며 말했다.“천천히 가. 그래도 안 늦어.”그렇게 몇 분도 안 된 사이에 많은 사람들이 파티장을 빠져나갔다.예수진이 둘째를 위해 연 백일잔치는 사라진 엄마 아빠 때문에 아이 혼자 남겨진 채로 끝이 나버렸다.그들이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양수가 터진 소이연이 분만실로 옮겨진 뒤였다.상황이 많이 급박한지 늘 침착함을 유지하던 육현경조차도 많이 초조해 보였다.아까부터 입구에서 서성이는 육현경을 보다 못한 예수진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오빠, 가만히 좀 있어 봐. 지금 다들 긴장하고 있는데 오빠 때문에 더 진정할 수가 없잖아.”직설적인 그녀의 말에 육현경이 예수진을 보자 계지원이 다급히 나서며 분위기를 풀었다.“아무 일 없을 테니까 걱정 마. 수진이도 그때 오래 걸렸잖아. 낳으면 된 거지 뭐.”말은 그렇게 해도 사실 계지원도 육현경 못지않게 초조해했었다.당장이라도 분만실로 뛰어 들어가 예수진 대신 아이를 낳아주고 싶어 했었다.그런데 그때, 분만실에서 소이연의 고통스러운 비명소리가 흘러나왔다.주먹을 쥐고 있던 육현경의 손이 점점 하얗게 질려감에 따라 지켜보던 친구들의 긴장감도 고조되고 있었다.다들 긴장하고 있는 와중에 송문수가 갑자기 하지수의 손
“임신 때문에 살쪄서 그런 거야. 문수 씨 탓 아니야.”하지수가 당황한 송문수를 달래주자 그는 벙찐 표정으로 물었다.“그럼 어떡하지?”“살 빼고 나서 다시 끼지 뭐.”“그래.”하지수에게 반지를 직접 끼워주는 건 송문수가 꿈에서도 그리던 장면이었는데 예상치 못한 이유로 못하게 되는 그는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하지수가 자신과 결혼만 해준다면 앞으로의 날은 길 것이기에 송문수는 그만 몸을 일으켰다.그런데 그가 일어서자마자 사람들이 소리높이 외치기 시작했다.“키스해! 키스해!”갑작스러운 호응에 하지수의 얼굴이 빨개지자 송문수는 그녀가 난처해지지 않게 당분간은 자신의 욕구를 억누르기로 했다.사실 그날 밤, 하지수와의 잠자리는 송문수에게 많은 미련을 남겨주었다.잠을 자다가도 쉴 새 없이 흥분해서 밤에 속옷을 몇 번이나 씻기도 했었다.그렇게 그녀를 원했어도 자리가 자리인 만큼 송문수는 하지수의 손을 잡고 내려가려 했는데 그 순간, 하지수의 입술이 송문수에게 닿아왔다.그녀가 먼저 한 입맞춤은 송문수의 심장을 뒤흔들기 충분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입맞춤을 당한 송문수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하고 있는데 그때 하도경의 장난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뽀뽀 한 번에 바보 된 거야?”“...”그 말에 욱한 송문수였지만 여자친구도 없는 친구를 위해 한번은 참아주기로 했다.“신경 쓰지 마. 우리 내려갈...”그런데 그때, 하지수가 또다시 입을 맞춰왔다.하지만 이번에는 아까처럼 닿았다가 금방 떨어지는 입맞춤이 아니라 오래도록 이어지는 키스였다.작은 그녀의 혀가 불규칙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자 송문수의 몸은 그대로 굳어버렸고 그의 심장박동 또한 정직하게 빨라졌다.정말 자신을 죽이려 드는 하지수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송문수는 하지수의 뒤통수를 손으로 잡고 키스를 이어가기 시작했다.임신을 해도 작기만 한 체구의 하지수는 금방 송문수에게 주동권을 뺏겨버렸다.두 사람의 행복을 빌어주기라도 하듯 무대 위로 장미꽃잎이 흩날리고
다들 숨을 죽이고 송문수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하지수의 눈엔 눈물이 가득해서 눈을 조금만 깜빡여도 쏟아질 정도였지만 그녀 역시 온 힘을 다해 참아내고 있었다.송문수는 그 정적 속에서 입술을 말아 물며 많은 고민을 거쳐 마침내 입을 열었다.“결혼하자.”그 대답이 들리기까지의 몇 분이 하객들에게는 한 세기만큼 길게 느껴졌다.송문수의 말이 끝나자마자 하지수도 기쁨의 눈물을 왈칵 쏟아냈고 송문수는 그런 그녀를 향해 한 번 더 소리높이 외쳤다.“하지수, 결혼하자. 너랑 결혼하는 게 내 평생의 소원이었어. 나중에 후회하더라도, 네가 지금 충동적으로 결정한 거라 해도 넌 이제 평생 내 여자야. 다시는 너 다른 남자한테 안 보내. 아주 박력 넘치는 남자가 될 거라고.”“난 후회 안 해.”송문수와의 결혼을 하지수가 후회할 리는 없었다.그때 예수진이 무대 위로 올라가자 송문수는 그제야 이 자리의 주인공이 예수진이었다는 걸 깨닫고는 다급히 하지수를 데리고 내려가려 했다.그런데 그때 예수진이 빨간 보석함 하나를 송문수에게 보여주었다.“이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는 알지?”그 안에 들어있는 건 송문수가 하지수를 위해 준비한 프러포즈 반지였다.익숙한 상자가 등장하는 순간부터 그 사실을 기억해낸 송문수였다.송문수는 하지수에게 가장 특별한 반지를 만들어주기 위해 세계적인 디자이너까지 초빙하며 큰 공을 들였었다.“이제 네가 가져.”예수진이 그것을 송문수에게 건네주자 그는 떨리는 손으로 받아들고는 천천히 보석함을 열어보았다.반짝이는 5캐럿의 다이아몬드가 마침내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게 된 것이다.눈이 멀어버릴 정도로 반짝이는 반지를 집어 든 송문수는 하지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자신이 상상해왔던 화면이 눈 앞에 펼쳐지자 하지수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는데 송문수 역시 눈가가 촉촉해진 채로 목멘 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지수야.”송문수의 부름에 하지수는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예전에는 내가 진짜 나쁜 놈이었어. 맹세할게, 앞으로는 진짜 좋
그런데 하지수가 이런 마음을 전하기도 전에 송문수가 그 먼 타지로 떠나버린 것이다.그래도, 송문수가 정말 자신을 싫어한다 해도, 정말 자신과 헤어지고 싶어 한다 해도 송승우와 함께하지 않겠다는 하지수의 마음은 한 번도 변한 적이 없었다.물론 자신을 쉽게 포기하는 송문수에 잠깐 실망도 했었다.그러면서 송문수에게 자신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예수진과 소이연이 저 영상을 보여주지 않았더라면, 그들이 송문수가 준비해온 모든 것들을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하지수는 영원히 송문수가 오래도록 자신을 좋아했다는 사실을 몰랐을 것이다.눈에 눈물을 가득 매단 하지수를 보던 송문수는 가슴이 아파와 손을 뻗으려 했지만 다시 움츠러들었다.지금 송문수는 무슨 결정을 내려야 할 지 몰랐다.혹여나 자신의 선택이 하지수에게 부담으로 다가갈까 봐, 그녀의 모습을 보며 송문수는 괴로워하고 있었다.너무 괴로워서 생긴 착각인지, 송문수는 하지수도 자신을 사랑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하지만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면 그건 바로 하지수 배 속의 아이였다.물론 송승우의 아이라 해도 송문수는 상관없었지만 하지수도 개의치 않을 수 있을까가 그의 의문이었다.“나 너랑 결혼하고 싶어. 네가 나한테 잘해줘서가 아니고, 네가 오래전부터 날 좋아해서도 아니고, 날 위해 많은 걸 준비해줘서도 아니라 그냥 내가 좋아서. 그래서 결혼하고 싶어. 다른 거랑은 아무 상관없어.”하지수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송문수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네가 좋아하는 건 송승우잖아.”“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 난 송승우 안 좋아해. 아주 오래전부터 이미 끝난 사이였어. 말했잖아, 그때 좋아한다고 느꼈던 감정은 그냥 습관 같은 거였다고. 내가 좋아하는 건 너야. 미안해서가 아니라 그냥 네가 좋아!”매번 좋아한다고 할 때마다 믿질 못하는 송문수 때문에 하지수는 화가 치밀어올랐다.물론 송문수가 자신을 믿지 못해서 화가 난 게 아니라 송문수가 본인한테 자신감이 너무 없는 것 같아
파티장 안의 모든 불빛은 송문수와 하지수에게 집중되어 있었다.무대 중앙에 선 하지수는 송문수를 바라보고 있었고 송문수도 사람들 틈에서 하지수를 바라보고 있었다.지금 하지수는 송문수가 그냥 가버릴까 봐, 그게 제일 무서웠다.하지수는 자신이 이런 용기를 내는 것도 마지막일 것 같았다.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감정을 마주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조용한 그 공간에서 송문수가 갑자기 무대로 향해 걸어갔다.한발 한발, 무거운 발걸음이었지만 그 발걸음이 향하는 곳은 확실했다.그래서 하지수의 심장박동도 빨라졌다.더 이상 컨트롤이 되지 않을 정도로.모두들 숨죽인 채 송문수와 하지수를 보고 있었지만 그중에서 가장 마음을 졸이는 건 예수진과 소이연이었다.겁이 많은 송문수가 도망이라도 갈까 봐 걱정하고 있었는데 다행히도 송문수가 책임감은 있어서 하지수를 혼자 남겨두진 않았다.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송문수가 하지수에게로 다가섰고 두 사람은 말없이 서로를 응시했다.송문수의 눈은 빛나고 있었고 울대는 잔잔히 떨리고 있었다.심경에 크나큰 변화가 일었지만 애써 본인을 진정시키려 하는 게 눈에 훤히 보였다.“지수야, 이건 마음에 담아두지 마.”그러다 갑자기 내뱉은 말에 하지수는 송문수를 빤히 쳐다보았다.“그때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이런 걸 찍었는지도 모르겠어.”송문수는 이번에도 장난인 척 너스레를 떨며 상황을 넘기려 했다.“너도 알잖아 나 이상한 거. 충동적으로 무슨 짓이든 하는 사람이잖아. 그러니까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진 마.”말을 마친 송문수가 직원을 찾아가 영상을 지우려 하자 하지수가 입을 열었다.“난 이미 진지하게 받아들였어.”그 말에 발이 잡힌 송문수는 빨라지는 심장박동을 애써 늦추며 말했다.“미안해.”송문수의 갈등과 무력함을 보아낸 하지수의 눈에도 어느새 눈물이 차올랐다.“너 헷갈리게 해서 미안해. 만약 네가 신경 쓰인다면... 앞으로 네 앞에 안 나타날게. 너도 나 같은 사람 때문에 힘들어하지 마. 그럴 가치 없
오늘 온 손님들은 하나같이 외향형인지 호응도 아주 잘해줬다.“네! 궁금해요!”“한 여자를 위해선데요.”“누구예요?”“바로 하지수입니다.”영상 속의 자신이 한 자 한 자 내뱉는 말들을 듣던 송문수는 그제야 이게 자신의 프러포즈 영상이었음을 깨달았다.처음에는 이게 어떻게 여기 있는지 당황스러웠지만 항상 일 처리에 미흡한 예수진이 이번에도 실수한 거라 생각해 송문수는 무대 위로 올라가 영상을 멈추려 했다.그런데 그가 발을 내디디자마자 육현경과 하도경이 그 앞을 막아섰다.그리고 영상은 계속해서 재생되었다.“하지수는 제 아내입니다. 결혼한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한 번도 제대로 사랑해준 적이 없었죠. 사실 저는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라 사랑할 용기가 없었던 겁니다. 제가 너무 비겁해서 그 사람 앞에만 서면 저 자신이 쓸모없어지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늘 유치한 방법으로 그 사람에게 상처만 줬어요.”영상 속 송문수의 얼굴에는 미안함이 가득했다.“미안해 지수야. 나 지금 엄청 후회하고 있어. 괜한 질투로 널 몇 년 간 힘들게 한 걸. 매일 밤 널 안고 자고 싶었는데도 난 자존심 때문에 그런 말 한마디 못했어. 그래서 내 인생이 좀 덜 재밌었던 것 같아. 너라는 복지가 부족했잖아.”감동하며 영상을 보고 있던 사람들은 마지막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참 울지도 웃지도 못하게 하는 고백 영상이었다.“사랑해, 지수야.”뒤이어 마침내 사랑한다는 말이 나왔는데 그때 송문수의 눈은 확신이 가득 차 있었다.“널 처음 본 순간부터 사랑했었어. 그런데 네가 좋아하는 게 내가 아니니까 점점 비참해지더라. 그래서 네가 싫어하는 방법으로 네 시선을 끌려고 했어. 그때만 생각하면 아무리 나라도 너무 멍청한 것 같더라.”“하지만 이젠 아니야.”“내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은 못 돼도 세상에서 너한테 가장 잘해주는 남자는 될 수 있어.”“더 이상 너한테 성질도 안 내고 부려먹지도 않을게. 괜한 질투 때문에 너 상처받게 하지도 않아. 우리 집은 이제 너한테 맡길 거야. 돈도
파티장에 들어와 보니 계지원과 예수진이 아들딸과 함께 와준 손님들에게 인사를 해주고 있었다.인사를 마친 예수진은 흥분된 목소리로 하지수를 불렀다.“이번에는 제 가장 친한 친구이자 우리 아들의 영원한 이모일 하지수 씨를 모셔보겠습니다.”파티장 한구석에 선 송문수는 무대 위로 올라가는 하지수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아까는 제대로 볼 엄두가 안 나서 애써 무시하려 했던 그녀의 배가 꽤나 불러온 것 같았다.옷을 입어도 다 가려지지 않는 게 이미 임신 몇 개월은 된 것 같았다.정말 자신은 안중에도 없었는지 이렇게 빨리 임신한 하지수가 송문수는 조금은 원망스러웠다.이어서 마이크를 잡은 하지수는 누군가를 찾는 듯 무대 아래를 훑어보았다.한참이 지나 자신에게로 향하는 그녀의 시선에 다급히 눈을 피하던 송문수가 다시 고개를 돌렸을 때 하지수의 시선은 이미 사라져있었다.그에 송문수는 그녀가 찾던 건 아마 송승우일 거라고 짐작하고 있었다.그런데 끝까지 모습을 비추지 않는 송승우 때문에 그저 시선을 거둔 것 같았다.“우선은 수진이 아들 이모가 될 수 있어서 너무 영광스럽고요.”“수진이가 제 배 속에 있는 아이가 딸이면 꼭 사돈을 맺자고 그러더라고요.”“저도 우리 조카 귀여워서 너무 사랑하거든요.”“하지만 사돈은 저 혼자 맺는 게 아니잖아요. 애 아빠 입장도 있고 하니까요.”그러자 예수진의 격앙된 목소리가 또 한 번 들려왔다.“그럼 얼른 애 아빠부터 불러서 오늘 사돈 한번 맺자!”“아이 아빠는...”그녀의 말에 담담히 웃던 하지수는 갑자기 말을 멈췄다.마른 침을 삼키며 그 모습을 보던 송문수는 정말 송승우를 한 대 때려주고 싶었다.가장 사랑하는 여자를 내어줬는데도 책임을 다하지 않고 이런 날에 하지수를 혼자 이곳에 보내고 또 혼자 무대 위에 올리는 게 어떻게 남편이라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짓인가 싶었다.“수진아, 내가 무대 좀 써도 돼?”“당연하지, 오늘 이 자리는 널 위한 거야.”“아, 아니다. 내 미래의 며느리를 위한 거지.”예수진의 한마디에
하지수의 말을 끝으로 두 사람의 시선이 맞물리자 송문수가 황급히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당연하지.”“진짜야?”“내가 왜 널 속이겠어?”“그런데 왜 안 데려왔어?”“이번엔 시간이 별로 없어서 괜히 고생만 할까 봐 안 데려왔어.”“나중에 기회 되면 데리고 올 거야.”“예뻐?”“내가 안 예쁜 여자 사귀는 거 봤어? 외국 여자들은 몸매도 좋아. 원래 S라인이 내 취향이잖아.”“사진 있어?”하지만 저 질문에는 송문수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그래서 몇 초 동안 침묵을 유지하다가 다시 능청스레 대답했다.“있지.”“내가 봐도 돼?”“왜? 뭐 심사라도 해주게?”“아니, 그냥 궁금해서. 네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여자는 어떻게 생겼는지.”“보면 너 상처받을까 봐 안 보여줄 거야.”“괜찮아.”송문수도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며 거절하려 했지만 하지수는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다음에 직접 데려와서 보여줄게.”“지금 보고 싶어.”“카메라는 잘 안 받아서 실물보다 별로야.”“왜 안 보여주는 거야? 설마 없는 거야?”“설마 내가 너 못 잊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걱정 마. 난 원래 감정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이거든. 절대 너한테 매달리지 않을 거야.”송문수가 확신에 찬 말을 하자 하지수는 씁쓸하게 웃어 보였다.“매달린 적이 있긴 해?”그런 하지수의 모습을 보니 또 가슴이 아파왔지만 송문수는 꾹 참기로 했다.송승우의 아이를 가진 하지수는 이미 자신에게서 너무 멀어져 있으니까.“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하지수는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멀어져가는 송문수의 뒷모습을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한편 화장실로 들어온 송문수는 물을 틀어놓고 손을 몇 번이니 씻어댔다.더 이상 손에 감각이 없을 정도로 아까부터 한 동작만 반복하고 있었다.“더 씻으면 손 터져.”그 모습을 본 하도경이 직접 물을 꺼주자 송문수는 넋 나간 사람처럼 고개를 끄덕이고는 하도경이 건넨 휴지를 받아 손을 닦아냈다.“고마워.”“이게 진짜 뭐 하는 짓이냐. 그렇게 좋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