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됐어. 알았으니까 그만 해. 벌써 멀리 가버렸는데 뭘 그렇게 소리를 질러? 안 피곤하냐?”“정말 안 피곤해? 이렇게 오래 소리 질렀으면 이제 속이 시원할 만도 하지 않아?”“그래! 귀곡육신으로서 같이 나아가고 같이 물러나기로 했잖아. 행복과 슬픔도 서로 나누기로 해놓고 이렇게 좋은 폼 잡을 기회를 혼자 다 나서서 우리 다섯은 배경처럼 됐잖아. 젠장!”“닥쳐! 다 입 다물라고! 나한테 그런 말 할 자격 있어? 방금 그 주먹에 배가 터질 뻔했어. 젠장...”마훈이 배를 문지르며 말했다.“허세 부리다가 맞아 죽지 않은 게 다행이지. 꼴 좋다.”“꼴 좋다니! 내가 보기엔 주먹 한 방은 맞을 만했어. 너희들은 몰랐겠지만 얼마나 짜릿했는지 알아? 정말 끝내줬다니까? 이 세상에서, 이 고무계에서 이도현에게 그렇게 욕하고도 무사했던 사람 있어? 누가 감히 걔랑 결투하겠다고 나서? 이도현 코앞에서 손가락질하며 욕을 퍼부으면서도 손 못 대게 만든 사람 나 말고 또 있냐고! 없지? 나 하나뿐이지. 하하하! 이 세상에서 나야말로 이도현에게 도발해서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이지. 정말 자랑스러워! 하하하!”마훈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쳇...”“정말 뻔뻔한 새끼.”“그러게 말이야. 겁에 질려서 뒤꽁무니 뺀 건 어쩌고? 어떻게 말했더라? 아아, 기운이 없어서 못 싸우겠어. 제발 가줘... 제발 가!”한 노인이 마훈의 말투를 흉내 내며 말했다.“하하하! 정말 역겨운 새끼.”“가자, 여기서 더 이상 창피당하지 말고.”...귀곡육신은 서로 빈정대며 웃고 떠들며 자미각을 떠났다.정말이지, 여섯 노인은 그야말로 활기 넘치는 존재들이었다....자미각이 난장판이 되고 자미각의 각주가 살해당했으며 막 출관한 태상 장로가 참살되고 호법 장로들도 대거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은 금세 고무계 전역에 가을바람처럼 퍼져나갔다.이 소식이 사실임이 확인되자 고무계의 각 세력은 처음에는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자미각! 다른 곳도 아니고 자미각이야.
한동안 고무계의 크고 작은 모든 세력은 자미각 사건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충격과 동시에 그들은 자연스레 태허산과 곤륜옥을 떠올렸다.이도현의 실력은 모든 사람의 질투심을 유발했고 곤륜옥의 비밀은 그들의 마음을 요동치게 했다.이도현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사람들은 여전히 곤륜옥을 탐냈다.결국 사람은 탐욕으로 인해 끝을 맞이하는 법이었다.그 시각, 이도현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있었다.이도현은 윤선아의 연묘궁에 들어 그녀를 만나볼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안타깝게도 연묘궁이 어디 있는지 몰라 결국 포기했다.시간이 남아돈 그는 귀령문을 찾아갔다.고무계에서 선학신침의 행방을 조사하라고 전달하기 위함이었다.인무쌍과 양주희가 고무계에서 선학지침을 발견한 만큼 하나만 있을 리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비록 그는 고무계에 익숙하지 않았지만 귀령문은 고무계를 잘 알고 있었다.게다가 귀령문도 그의 세력 중 하나가 되었으니 있는 자원을 이용하지 않는 건 낭비였다.임무를 맡긴 뒤 그는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셋째 선배 인무쌍과 여섯 번째 선배 양주희가 그를 위해 찾아온 선학신침을 빨리 제련해야 했다.최근 이도현이 마주하는 적들은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그는 가능한 한 빨리 자신을 더 강하게 만들어야 했다.그렇지 않으면 언제 죽게 될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물론 회도경지의 강자를 죽일 수 있을 만큼의 실력은 소유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그의 온전한 실력이 아닌 음양탑의 도움을 받은 결과였다.외부의 도움도 좋지만 본인의 순수한 실력이 아니기에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자신의 것이 아닌 것은 언제든 변수가 생길 수 있다.만약 어느 날 갑자기 음양탑이 그를 떠나기라도 한다면 큰일이었다.그래서 그는 외부의 도구에 너무 의지하지 않기로 했다.돌아갈 때 그는 이전처럼 태허산의 결계를 통해 나갔다.태허산 산 어구에 도착한 이도현은 스승님에게 전화를 걸었다.인무쌍과 양주희가 무사하다는 사실을 전하려 했지만 연락하고 보니 두 사람은 이미 산에 들어와
갑자기 들린 소리에 이도현은 깜짝 놀랐지만 이내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아챘다.이것이 바로 그가 집에 돌아올 때마다 신기를 펼치지 않는 이유이기도 했다.이도현은 집에서는 신기로 모든 것을 파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집이라는 곳은 편히 쉬는 곳이었기에 신경을 곤두세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하여 그는 집에 돌아올 때마다 산 아래에서 신기를 거두어들였다.집에 내공 경지가 강한 사람이 들어오지 않는 한 일반 사람이거나 내공이 낮은 사람이 들어오면 위협이 되지 않기에 아예 무시하고는 했다.평소와 같았다면 집에 사람이 들어왔다는 걸 바로 알아챘을 것이다.“조 선생, 무슨 바람이 불어서 우리 집까지 온 거야? 이게 얼마 만이야. 또 나쁜 소식 전하려고 온 건 아니지?”이도현은 장난스럽게 말하며 거실로 들어가서 방의 불을 켰다.멀지 않은 곳에 조철이 웃으며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조철은 이도현의 말을 듣고 입가에 경련이 일었다.‘무슨 뜻이야? 내가 나타나면 꼭 나쁜 일밖에 없다는 건가? 흥! 내가 나쁜 기운을 불러 모으는 사람도 아니고 만나기만 해도 재수 없어지기라도 한다는 말인가?’물론 이런 생각도 혼자 있을 때나 하는 거지 조철은 이도현 앞에서 차마 생각을 내비칠 수 없었다.이도현이 어떤 신분인지 다른 사람은 몰라도 조철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그는 태허산의 제자일 뿐만 아니라 그분의 제자이기도 했다.그 신분은 조철에게 엄청난 부담감이었다.“그럴 리가요. 이도현 씨, 저 여기서 몇 날 며칠이나 기다렸습니다. 드디어 오셨네요.”“기다렸다고? 무슨 일인데?”이도현이 의아해하며 물었지만 짐작 가는 바는 있었다.“저는 염황 님의 명령을 받아 모시러 왔습니다. 염황께서 뵙고 싶어 하십니다.”“염황이 만나고 싶어 한다고? 음...”이도현이 의아해하며 물었다.“조 선생, 염황이 내 대선배는 아니겠지?”비록 이도현은 이미 결론을 내렸지만 확답을 듣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장담할 수 없었다.“저를 곤란하게 하지 마세요. 저도 그 부
천급 강자는 외부에서, 예를 들면 완성 같은 곳에서는 대가문의 봉헌 대상이었다.이도현은 자신이 처음 산에서 내려왔을 때를 희미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만 해도 천급 강자들은 일반인들에게 신처럼 여겨졌다. 그건 사람들이 여기에서는 군인이라는 신분으로 있었다.‘나의 실력이 시야를 결정하고 나의 부지런함이 실력을 결정한다는 말이 맞아.’확실히 그랬다.부동한 실력을 갖춘 사람들이 사는 세계는 달랐다. 일반인들은 절대로 실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사는 세계를 볼 수 없었다.일반인들이 보는 비밀문서나 사건들은 고위층 사람들에게는 보잘것없는 것일 수도 있었다.또한 일반인들은 전설로 여기는 일들은 일정 경지에 도달한 사람들에게는 어쩌면 일상적인 일이 될 수도 있었다.완성에 있을 때 다른 사람들은 천급 강자를 세상에서 가장 강한 존재로 여겼다.하지만 진정한 강자들의 눈에는 천급 강자는 지나가는 개미와 다를 바가 없었다.현재 이도현의 눈에도 천급 경지를 지닌 존재는 무시해도 될 존재로 보였다.손만 휘두르면 한 무리의 천급 강자를 없앨 수 있었기 때문이다.“토큰을 제시해 주세요.”이도현이 주위를 살펴보고 있을 때 한 병사가 손에 보검을 들고 다가왔다.그것은 총기가 아니라 보검이었다.병사는 무사였다. 강한 무사들에게 있어 총기보다는 신병 무기가 훨씬 강력했다.총기로 죽일 수 없는 적이라도 보검이 있으면 죽일 수 있었다.조철은 주머니에서 토큰을 꺼내 병사에게 건넸다.병사는 자세히 검사한 후 다시 조철에게 돌려주었다.“안녕하십니까. 저쪽에서 검사를 받아주세요.”“알겠습니다. 수고하십니다.”조철은 미소를 지으며 이도현과 함께 검사 구역으로 향했다.그들은 한 기계를 통과했다.하지만 이도현이 통화할 때 기계가 빨간빛을 내며 경고음을 울렸다.“안녕하세요. 몸에 지닌 철제 무기를 꺼내 주세요.”두 명의 병사가 경계심 가득한 표정으로 이도현 앞에 서서 엄숙하게 말했다.“철제 병기요? 이걸 말하는 건가요?”이도현이 당황해하며 주머니에서 은침을 꺼냈다.
이도현이 별로 신경 쓰지 않자 조철도 더 이상 고집하지 않았다.‘그래. 이분 기분 좋으면 그걸로 됐지 뭐.’“이도현 씨, 이쪽으로 오세요.”조철은 서둘러 이도현의 앞에서 길을 안내했다.이도현은 뒤뜰로 향했다. 먼 곳에 있는 정자 아래에서 그는 황금색 긴 치마를 입은 채 고귀하고 품위 있는 모습으로 강한 기운을 발산하여 위압감을 주는 여성을 발견했다.여자의 몸에서 발산되는 강대한 기운은 이도현조차 혀를 내두르게 했다.이도현은 많은 고수들을 봤고 그중 여성 고수들도 많았다. 윤선아와 인무쌍 같은 사람들도 모두 강력한 존재들이었다.그들의 기운도 강했지만 정자 아래 서 있는 여성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특히 그녀가 내뿜는 고고하고 불가침한 위엄이 서린 기운은 윤선아와 인무쌍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었다.여자는 마치 황제와 같은 존재처럼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존경심을 느끼게 했고 또한 저도 모르게 두려움을 느끼게 했다.“폐하, 이도현 씨 오셨습니다.”조철이 멀리서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왔다는 말은 들었다.“여성의 목소리는 맑고 아름다웠다.하지만 말투에는 위엄이 묻어 있었다.부드러운 목소리에는 성지처럼 거부할 수 없는 느낌을 주었다.조철의 말에서 호칭을 들은 이도현은 그녀가 바로 염국의 여제, 염황임을 알 수 있었다.이도현은 염황의 뒷모습을 주의 깊게 살펴보며 신기를 사용해 그녀의 기운을 느꼈다. 염황이 그의 대선배인지, 태허산 무학의 특유의 기운이 있는지 확인하고자 했다.“하하하. 녀석. 이렇게 대놓고 나를 살펴보다니. 불경죄를 저지를까 두렵지는 않으냐?”염황은 이도현이 자신을 살펴보고 있다는 사실을 감지한 듯 웃으며 물었다.그 말을 들은 이도현은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지만 옆에 있던 조철은 사색이 되었다.‘정말 무서울 게 없는 놈이네. 다른 분도 아니고 염국의 여제인 염황인데... 천하에서도 몇 되지 않는 고귀한 분인데... 하... 보자마자 인사를 드리지는 못할망정 신기를 이용해 훑어보려 한다니. 이도현이기에 망정이지
이도현은 의심을 거두고 염황에게 빠르게 다가가 절을 하며 말했다.“후배, 이도현. 대선배님을 뵙습니다. 선배님, 만수무강하시길 바랍니다.”염황은 웃음을 터뜨리며 몸을 살짝 떨었다.“하하하. 너 이 자식, 언제 이렇게 착해졌어? 만수무강하라니... 나 웃겨서 죽이려고 그래? 누가 이런 걸 가르친 거야?”“선배님은 대제국의 황제시니까요. 텔레비전에서 보니까 황제를 만나면 다 이렇게 인사하던데요?”이도현이 머쓱해하며 말하자 염황이 웃음을 터뜨렸다.“하하하. 정말 날 웃겨 죽이려고 작정했구나. 너한테는 그냥 선배일 뿐이지 염황이 아니다. 그러니 선배라고 불러.”“대선배님!”이도현이 공손하게 염황을 불렀다.“옳지. 착하다.”염황이 손을 뻗어 이도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조 비서, 술과 음식을 준비해. 후배한테 거하게 대접해야지.”“알겠습니다. 폐하!”조철이 명령을 받고 한숨을 쉬며 자리를 떴다.조금 전 그 장면을 다른 사람들이 봤다면 아마 경악을 감추지 못했을 것이었다.피도 눈물도 없는 염국의 염황이 이도현에게 대놓고 애정을 표현했다.모든 규칙이 이도현에게는 해당되지 않았다.조철이 자리를 뜨자 뒤뜰에는 이도현과 염황만이 남았다.이도현은 염황을 마주하며 강렬한 압박감을 느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그는 그저 자리에 앉아 착한 아이처럼 행동했다.“하하하, 녀석. 사고는 잘만 치면서 왜 내 앞에서는 이렇게 조용해? 내가 다른 선배들보다 불편해서 그래?”염황이 웃으며 물었다.“그... 그게 아니라... 선배님은 폐하시잖아요. 존경받아야 마땅하니...”이도현이 머뭇거리며 답했다.“하하하! 녀석, 하하하!”염황은 이도현의 말에 체면 차리지도 않고 웃음을 터뜨렸다.염황은 본래 아름다운 미인이었고 몸매도 흔들렸다.웃을 때마다 가슴도 살짝 흔들리니 이도현은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랐다.특히 황금색 곤용포를 입고 있으니 더 강렬한 느낌을 주었고 정직하다고 자부하는 이도현마저 한 곳에 열이 몰리는 것 같았다.“악동 같은 놈. 나
염황이 얘기할 때, 조 선생이 마침 걸어들어오고 있었다. 그는 염황의 말을 듣고 정말 까무러칠 정도로 깜짝 놀랐다.그는 당장에서 굳어져 버렸다.‘황위를?’그건 함부로 내놓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조 선생은 자신이 이미 이도현이 염황의 마음속에서의 지위를 높게 평가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실이 말해주다시피 과소평가했다.염황의 심복인 그는 당연히 염황에 대해서 무척 잘 알고 있었다.염황이 이런 말을 내뱉었다는 것은 정말 마음속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뜻했다.이 사실이 조금이라도 밖으로 새어 나간다면 아마 염국뿐만이 아니라 온 천하가 깜짝 놀랄 것이다.하지만 이도현은 그저 웃으며 말했다.“선배. 농담하지 마세요. 제가 선배보다 더 바빠요. 수많은 사람이 저한테 시비를 걸려고 저를 찾고 있어요. 저는 사람을 죽이는 것만으로도 하루 24시간이 모자라요.”“저한테 시비를 거는 사람들을 해결해야 할 뿐만 아니라 저는 우리 사문에서 전승하는 선학신침도 찾아야 해요. 스승님께서 잃어버린 18개의 양침을 이재 6개밖에 찾지 못했어요. 그리고 스승님의 따님이 옛날에 남궁 가문에서 멸문을 당했어요. 그 따님이 요행히 살아남았는데 저는 그분을 반드시 찾아서 스승님과 한자리에 모이게 할 거예요.”이도현의 말을 들은 염황은 입을 삐쭉 내밀며 말했다.“네 이 나쁜 놈은 정말 나를 하나도 아끼지 않는구나. 내가 고생을 하는 것을 뻔히 보면서 하나도 수고를 덜어주지 않는구나.”“하지만 네가 하려는 일도 맞는 일이지. 선학신침은 마땅히 찾아야 하고 스승님의 딸도 반드시 찾아야 해. 우리 태허산의 중책도 네가 이어받아야 해. 말하고 보니 네 놈도 고생이 많네.”“그렇지만 난 그래도 너에게 잔소리 좀 해야겠다. 살육을 적게 저지르고 될수록 사람을 죽이지 않아도 되면 죽이지 마. 그 당시에는 후련한 일이지만 나중에 돌이켜보면 후회하게 될 거다.”“어찌 됐든 모두 생생히 살아있는 생명이잖아. 살육을 너무 많이 저지르면 결국에는 자신에게 영향이 미치게 될 거
어찌 됐든 그 사람들은 모두 대선배 밑에 있는 부하 관원들인데 이도현이 죽였으니 선배에게 미안하지 않을 수 없었다.“내가 언제 네 탓을 한다고 얘기했어? 솔직히 말하면 네가 한 일들은 나에게 도움이 되기도 했어. 그 사람들, 고전 무술 가문들은 자기의 가족 세력만 믿고 관리 통제를 따르지 않았어. 나는 그 사람들의 공로를 생각해서 과하게 처치하지 못했는데 네가 그놈들을 죽였으니 나를 도와 그 고민 덩이들을 해치운 셈이야.”“지금은 상황이 많이 좋아졌어. 지금 사람들은 말을 잘 들어. 정령이 떨어지면 예전보다 효과가 많이 좋아졌다. 그러고 보니 내가 너에게 고맙다고 얘기해야겠네.”“아니...”이도현은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그 뒤로 선후배 두 사람은 웃고 떠들며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동안 분위기는 화기애애했고 이도현도 처음에 행동이 딱딱하던 데로부터 후에는 점점 더 편해졌다.“나쁜 놈. 네 손안의 일이 거의 다 처리가 되면 돌아와서 날 좀 도와줘. 나 혼자서 정말 힘들어. 어때?”염황은 얼굴색이 불그스름한 것이 살짝 취한 것만 같았다.“네. 선배 앞으로 내가 나서서 해결해야 할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얘기하세요. 제가 꼭 선배를 도와 해결할게요. 사람을 죽이는 일이든 뭐든 다 할게요.”이도현은 가슴을 툭 치며 말했다.“꺼져. 나는 상제이지 도적이 아니다. 너더러 사람을 죽이라고 할 필요는 없다.”염황이 애교스럽게 말했다.“하지만 얘기가 나와서 그러는데 지국의 그 일은 네가 잘 처리했다. 네 덕에 많은 일이 해결되었어. 그리고 남한나라도 감히 예전처럼 그렇게 건방을 떨지는 못하고 지금 매우 얌전해졌다.”“감히 건방을 떠는 사람이 있으면 저한테 알려주세요. 제가 가서 그 나라의 임금을 해치울게요. 그러면 감히 건방을 떨지 못할 거예요.”이도현도 살짝 취해서 입만 열면 아무 말이나 해댔다.“하하하. 못하는 말이 없구나. 어디 네가 말한 것처럼 그렇게 쉽나? 어떤 일에 있어서 네가 마지노선을 건드리지 않아서 그렇지 네가 그 선을 넘
이도현은 냉랭하게 이 모든 광경을 바라보았다. 여섯 명의 노자는 이도현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그가 보는 앞에서 대놓고 논의했다.하여 이도현은 결국 화가 치밀어 올랐다. 노자들은 그를 무시하다 못해 하나의 장난감으로 여기며 심지어 돌아가면서 가지고 놀겠다고 했다.한 사람이 다 놀면 다음 사람에게 넘기겠다는 식으로 말이다.이도현은 그들의 대화에서 큰 모욕감을 느껴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함께 덤벼라.”이도현이 차갑게 말했다.하지만 이 말을 꺼내자마자 이도현은 어딘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그는 노자들이 자신을 어떻게 가지고 놀지에 대한 의논에 응답해버린 것이었다.참으로 멍청한 짓이었다.“이 늙은이들, 죽고 싶어서 환장했나?”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이도현은 고함을 지르며 곧바로 달려들었다.참 기막힌 하루였다. 조금 전에는 여자처럼 칭얼대는 사내를 만났고 이제는 이렇게 오만하고 멍청한 노자들을 만났으니 말이다.안 그래도 그 사내 때문에 속이 뒤집힐 지경이었는데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노자 여섯 명까지 만나니 이도현은 더 이상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이도현이 가까스로 억누르던 분노가 결국 폭발했다.이도현은 으르렁거리며 제자리에서 사라졌고 눈 깜짝할 사이에 여섯 노자 앞에 나타났다.“이 녀석, 죽으려고...”노자는 당황한 기색을 보이며 크게 소리쳤다.그들은 이도현이 어떻게 눈앞에 나타났는지조차 보지 못했다. 그리고 이도현의 속도에 깜짝 놀랐다.하지만 노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도현은 주먹을 날려 노자의 가슴을 쳤다.쾅.굉음과 함께 거대한 주먹이 노자의 가슴에 정확히 맞았고, 이도현의 주먹에서 푸른 용의 허영이 튀어나와 노자의 가슴을 관통했다.펑.둔탁한 소리가 들리더니 노자의 몸이 피안개로 되어 사람들 무리에서 퍼져 없어졌다.한 방. 겨우 한 방으로 조금 전까지 누가 먼저 이도현을 상대할 것인지 논의하던 노자가 시체도 남기지 않은 채 사라졌다.이도현의 이 한 방에 오만하던 다른 노인들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들은 그제야 이
연기 속에서 이도현의 조롱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금 전까지 잘난 체하던 어전 호위무사는 표정이 확 변하더니 마치 귀신이라도 본 듯한 얼굴로 앞을 바라보며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어전 호위무사는 두려움에 가득 찬 눈빛으로 앞을 바라보았고, 앞쪽의 먼지가 서서히 걷히더니 이도현의 모습이 점차 드러났다.이도현은 한 올의 상처도 없이 제자리에 멀쩡히 서 있었다. 그리고 그가 밟고 있던 땅도 무사했다. 마치 어전 호위무사의 방금 한 방이 이도현이 서 있던 곳만 교묘하게 피해간 것처럼 보였다.“너... 왜... 멀쩡해? 말도 안 돼... 이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방금 그 검기는 회도경지에 이른 고수도 감히 버티지 못하는데 네가 어떻게... 말도 안 돼. 믿을 수 없어...”어전 호위무사는 귀신이라도 본 듯한 얼굴로 이도현을 바라보며 눈앞에 벌어진 일을 믿을 수 없었다.“실력도 없으면서 말이 참 많아. 넌 이미 날 두 번이나 공격했으니 이제 내 차례다.”이도현은 차갑게 말하며 순식간에 어전 호위무사 앞에 나타나 상대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주먹을 날렸다.쿵.뼈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어전 호위무사는 비명을 지르며 날려 나가더니 그들이 지키던 커다란 돌문에 부딪혀 땅에 떨어졌다.펑.튼튼한 몸이 땅에 거세게 떨어져 먼지를 일으켰다. 어전 호위무사는 죽은 것처럼 땅에 쓰러져 오랫동안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대단한 녀석이네. 역시 제법 실력이 있군. 하지만 이렇게 쉽게 저 친구를 쓰러뜨리다니, 우리를 너무 얕잡아본 게 아니냐?”목소리와 함께 양쪽의 방에서 대여섯 명의 노자가 나타나 이도현의 앞을 가로막았다.“이 녀석, 정말 오만하구나. 이곳에 함부로 쳐들어온 것도 모자라 대진제국의 수호자까지 다치게 하다니. 너 때문에 우리가 너무 우스워졌잖아. 그러니 널 죽여야겠다. 알겠냐?”한 노자가 거만하게 말했다.“뭔 말이 그렇게 많아요. 그냥 죽이고 얼른 저 녀석을 구합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도 무사하지 못할 수 있어요.”“맞아요. 윗사람들이
어전 호위무사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이도현이 그의 직업을 무시한 것은 그에게 있어 가장 큰 모욕이었다.그는 어전 호위무사 중에서도 대진제국 황제 앞에서 검을 차고 서 있는 호위무사였다.그런데 그의 그 검, 40미터 길이의 거대한 검이 이도현에 의해 맨손으로 부수어졌으니 호위무사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맨손이 아니라 주먹으로 부수었더라도 호위무사가 이렇게까지 화내지 않았을 것이다.이는 그를 존중하지 않을뿐더러 그의 직업까지 모욕한 것이나 다름없다.잔뜩 화가 난 어전 호위무사는 몸에서 강력한 기운을 내뿜으며 전신의 힘을 검에 주입하고는 다시 이도현을 향해 내리쳤다.“죽어라...”거대한 검기는 이전보다 몇 배나 더 강력했고 수십 미터 길이의 검기는 하늘과 땅을 갈라버릴 듯한 기세로 떨어졌다.그러나 이처럼 강력한 공격에도 이도현은 여전히 꿈쩍하지 않고 제자리에 서서 검기가 떨어지기를 기다렸다.두 사람의 실력 차이는 천지 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컸다.영급 경지의 어전 호위무사는 현재의 이도현에게 아무런 위협도 되지 못했다.이도현은 나중에 찾은 두 개의 선학신침을 제련하기 전에도 이미 음양탑의 힘으로 회도경지에 이른 고수를 거뜬히 죽일 수 있었다.그리고 두 개의 선학신침을 제련하고, 담약의 효과에 이어 용주과의 500년 원력까지 얻었으니, 지금의 이도현은 전에 천사국에서 만났던 고수 족제비마저 가볍게 죽일 수 있었다.영급 경지의 무사 따위, 지금의 이도현에게 있어서 너무나도 보잘것없었다.이도현은 전보다 더욱 지나치게 행동했다. 전에는 적어도 손을 들어 검을 막았지만, 이번에는 어전 호위무사가 내려친 거대한 검을 보고도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마치 겁에 질려 멍하니 서서 검기가 떨어지길 기다리는 것 같았다.꽝.굉음이 들리더니 이도현이 서 있던 곳은 거대한 검기에 의해 사방으로 갈라졌고, 지면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깊고 긴 구멍이 생겼다. 그 구멍은 이도현의 뒤로 수백 미터 밖까지 이어졌다.삽시에 현장은 모래바람이 날려 아무것
“어서 가요. 성역에 데려다주겠다고 했던 말 꼭 지킬게요. 우리가 처음 만났던 곳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제가 다음엔 꼭 성역에 데려다줄게요.”“동생을... 못 믿겠어... 어떻게 날 속일 수 있어... 정말 나빴어... 동생이 미워...”동백은 아주 억울한 표정으로 이도현을 한번 쳐다보고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울면서 달아났다.이도현은 동백의 반응에 소름이 끼쳤다.‘뭔 남자가 저래... 왜 응석을 부리고 난리야... 이름도 하필 동백이고...’방금 동백은 마치 남자에게 배신당한 여자처럼 행동했다. 하지만 이런 행동을 남자가 하니, 이도현은 속이 울렁거렸다.“젠장... 꼴 보기 싫어서 못 봐주겠네. 자네가 싫든 말든 나랑 뭔 상관이야.”이도현은 기분이 몹시 언짢았다. 그는 문지해보다 훨씬 더 역겨웠다.“뭐야? 어디서 굴러온 놈인데 저렇게 행동하는 거야? 남자면 남자답게 행동해야지.”어전 호위무사는 울며 달아나는 사내를 바라보며 참지 못하고 말했다.“그쪽이랑 친한 사이야?”어전 호위무사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이도현을 바라보며 물었다.“아니, 전혀. 그런 사이 아니야. 함부로 말하지 마.”어전 호위무사가 툭 던진 말에 이도현은 화들짝 놀라며 급히 부정했다.‘날 엿 먹이는 거야 뭐야.’이도현은 이런 사람이랑 친하게 지낼 리가 없었다.“아까 친하게 부르던데.”어전 호위무사는 이도현의 말을 믿지 않는다는 듯이 말했다.“관심 꺼. 난 성역에 들어갈 건데 들여보낼 거야 말 거야?”이도현은 황급히 화제를 돌렸다.“흥. 이 녀석, 결계를 통과해 성역에 들어가고 싶으면 그만한 실력을 보여줘. 넷째 황자를 건드린 네 놈의 앞날이 벌써 보인다. 네가 얼마나 대단한지 한번 보자. 덤벼라...”말을 마친 어전 호위무사는 허리춤에서 보검을 뽑아 단번에 이도현을 향해 내려쳤다.순간 수십 미터 길이의 검이 이도현을 향해 날아갔다.이 상황에서 이도현은 서둘러 맞서 싸우지도 검을 꺼내 막지도 않았다. 그저 제자리에 서서 40미터 길이의 긴 검이 자신
사내는 온몸을 덜덜 떨면서 믿기지 않는 듯한 눈빛으로 이도현을 쳐다보았다. 이 모든 것이 꿈이길 바라면서 볼을 꼬집었지만 조금 전에 들은 것은 전부 사실이었다.사내는 성역에 들어가서 어떻게 단련하고 어떻게 체력을 기를지 계획했었다. 실력을 제고하고 금의환향하면 이웃들이 아주 부러워할 것이다.사내는 앞으로 꽃길만 걷게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젊은 아버지의 힘을 빌려서 사업을 한다면 언젠가는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수 있다고 여겼다.사내의 이름은 동백이었다. 사내의 아버지가 지어준 예쁜 이름이었다.그러나 지금 모든 것이 수포가 되었다. 동백이 아버지라고 부르며 아첨했지만 눈앞에 서 있는 이 젊은이는 초대받은 귀한 손님이 아니라 대진제국과 천현문의 원수였다.동백은 다리에 힘이 풀려서 주저앉고 말았다. 괜히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따라다니다가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상상만으로도 행복했던 미래가 암흑으로 뒤덮였다.“아버지, 정말 대진제국의 손님이 아니었단 말이에요? 나를 속인 거예요?”동백은 울먹이면서 물었다. 입을 열자마자 어깨가 들썩이면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남자가 바람난 모습을 목격한 여자처럼 온몸을 떨면서 슬프게 울었다.“나는 내가 대진제국과 천현문에서 초대한 손님이라고 말한 적 없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당신 혼자 제멋대로 생각하고 따라온 거잖아요. 나는 초대받은 것이 아니라 사람을 죽이러 가는 거예요. 무슨 상황인지 알겠어요?”이도현이 차분하게 말했다. 그는 점점 일그러지는 동백의 표정을 보면서 통쾌해했다. 나이가 많은 남자가 자신을 아버지라고 부를 때부터 언짢았던 것이다.“아, 아니에요. 아버지, 지금 나를 놀리려고 일부러 그러는 거죠? 나한테 장난친 거라고 당장 말해요. 아무리 나를 놀리고 싶었다고 해도 장난이 너무 심하잖아요.”동백은 이도현의 말을 믿고 싶지 않았다.“장난이 아니라 사실이에요. 만약 같이 성역에 들어가고 싶다면 말리지 않을게요. 하지만 들어간 후에 알아서 하세요. 나는 사람을 죽이러 가는 거라서
멍청한 사내를 자식으로 둔 부모가 불쌍하다고 생각되었다.“네 아버지가 사람이라고? 어디 보자. 네 아버지가 진짜 사람인지 아닌지 봐야겠어.”사내의 말에 웃음을 터뜨린 한 사람이 걸어 나오면서 말했다. 흉악하게 생긴 그 중년 남자는 덩치가 컸고 언뜻 보면 백정 같았다. 그 남자의 몸에서 강렬한 기운이 흘러나왔다.이도현은 그 남자가 영급 강자라는 것을 단번에 눈치챘다. 영급 강자라면 고무계에서 일교의 교주이거나 고수들을 지휘하는 강자일 것이다.그러나 이곳에서 영급 강자는 문지기에 불과했다.“네 아버지가 어디에 있는지 말해보거라. 진짜 사람인지 아닌지 두 눈으로 확인할 테니 당장 내 앞에 데려와. 어떤 놈인지 궁금해지는구나. 만약 거짓말이라면 네 놈을 가만두지 않을 거야.”중년 남자가 사내를 쳐다보면서 피식 웃었다.“대인, 이분이 바로 저의 아버지예요. 대진제국과 천현문에서 성역으로 초대한 귀한 손님이라고요. 워낙 중요한 일이라서 이렇게 부탁드리는 거예요. 저희가 지나갈 수 있게 해주세요.”사내는 겉보기에 멍청한 것 같아도 상대를 협박할 때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대진제국과 천현문을 들먹였다는 건 사내한테 뒷배가 있으니 똑똑하게 처사하라고 경고하는 것과 같았다.“대진제국에서 초대한 손님이라면 내가 모를 리 없어. 손님이 이 결계를 넘지 못할까 봐 미리 나 같은 어전 호위무사한테 알려줬을 거란 말이야. 손님한테 밉보이면 안 되니까 며칠 전에 알려주면서 깍듯이 대하라고 했을 텐데... 오늘 손님이 온다는 소식은 없었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중년 남자는 씩 웃으며 이도현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대진제국의 귀한 손님이라... 네 이름이 무엇인지 말해 봐.”중년 남자가 이도현을 향해 물었다.이도현은 눈앞에 서 있는 남자가 대진제국의 어전 호위무사일 줄 꿈에도 몰랐다. 비록 호위무사가 이곳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맡고 있는지 몰랐지만 결국 별 볼 일 없는 놈이라는 뜻이었다.아무리 덩치가 크고 강한 기운이 느껴져도 두렵지 않았다.“
두 사람은 여인들이 놀라 피하는 와중에 성역으로 통하는 결계 앞에 도착했다.결계 바깥에는 거대한 석문이 서 있었고 문 앞에는 몇 채의 집이 늘어서 있었다. 집 안에서는 강대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 기운의 위압감에 사내는 한 발짝도 더 나아가지 못하고 얼굴이 새파래져 있었다.“아버지... 여기... 여기가 성역으로 통하는 결계입니다! 이 집 안에 있는 강자들은 모두 성역의 주요 세력에서 파견된 수호자들입니다. 그들은 성역에 들어가려는 자들을 막는 자들이죠!”“말하자면 정말 흉악한 놈들이라니까요. 성역이 뭐 자기들 집 마당도 아닌데, 왜 우리를 못 들어가게 하죠? 정말 열 받아!”“수백 년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이 여기까지 왔다가 막혔는지 몰라요. 처음에는 그냥 돌아가라고 권고만 하지만 만약 듣지 않고 억지로 들어가려고 한다면... 저들은 가차 없이 처리해 버립니다!”“그래서 많은 고수가 성역에 들어가기도 전에 이 관문에서 목숨을 잃었죠!”“그러다 보니 점차 성역에 가려는 사람들도 줄어들었고요. 모두 들어가고 싶어 하지만 목숨을 내놓을 용기가 없는 거죠!”사내는 설명을 마치며 석문 양옆의 집들을 경계하는 눈치로 조심스럽게 말했다.“하지만 아버지는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아버지는 대진제국과 현천문에서 초대한 귀빈이시니 그들이 감히 막을 수 없을 거예요!”“아버지, 잠깐만 기다리세요. 제가 가서 말씀드리고 오겠습니다. 그러면 우리 부자가 바로 들어갈 수 있을 거예요!”사내는 갑자기 태도를 바꾸더니 아첨하는 듯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아버지 라느니 우리 부자라느니 참으로 효성스러운 호칭이었지만, 이를 들은 이도현은 어이가 없어 치가 떨렸다.갑자기 자기보다 나이가 더 많은 아들이 생기다니... 그 누구라도 이런 일이 벌어지면 멘붕이 올 게 뻔했다.그는 문지해가 최고로 뻔뻔한 줄 알았는데 이제야 세상에는 더한 놈들이 널렸다는 걸 깨달았다.하지만 이 아들은... 정말 인정할 수가 없었다!“그만 하라니까요! 마지막으로 경고하는데 다시 ‘아버지’라고
“말해봐요...”이도현은 거의 울부짖듯이 내뱉었다.‘저놈이 결계를 열어줄 유일한 희망이 아니었으면, 당장 한 대 후려쳐서 저 자식을 골로 보냈을 텐데!’‘역겨워도 너무너무 역겨워!’“동생, 진정하게! 말할게, 이제 쑥스러움이고 뭐고 다 버리고 말할게! 사실은... 성역에 갈 때 나도 데려가 줄 수 있나?”“제발! 부탁하네! 난 평생 성역에 가보고 싶었는데, 혼자서는 결계를 지키는 고수들을 이길 수 없어서 들어갈 수가 없어”“동생이 초대로 받고 간다고 했으니 나를 데리고 가주게! 그렇게만 한다면 이제 내가 자네를 형님으로... 아니, 아버지로 모시겠네!”사내는 감동에 젖은 듯 눈물을 글썽이며 무릎까지 꿇을 기세였다.“그게 다 인가요...”이도현의 떨리는 입으로 물었다.“네! 이게 다입니다. 아버지! 부디 데려가 주십시오.”사내는 정말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었다. 이제 아예 ‘아버지’ 라고 부르고 있었다.“이 정도로 그냥 말을 하면 될걸. 뭘 사내가 처녀처럼 수줍어할 것까지 있나요? 아휴, 진짜!”“그리고 아버지라고 부르지 마요! 당신 같은 자식을 두었으면 진작에 목을 졸라 죽였을 테니까요! 사내가 되어서 쑥스러워하기나 하고. 나 참.”이도현은 정말 화가 날 대로 났다. 평생 남자한테 이렇게까지 열받아 보는 건 처음이었다.“알겠습니다, 아버지...”“닥치라고요! 한 번만 더 그렇게 부르면 내 주먹이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이도현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알겠네. 알겠네. 아버지라 부르지 않을 테니 화내지 마시오.”덩치 큰 사내는 아첨하듯 웃으며 그 표정은 효자라도 부끄러울 정도로 아부를 떨고 있었다.“됐어요! 나와 함께 성역에 가려면 지금 당장 결계로 길을 안내해요. 한마디만 더 하면 진짜 죽여버릴 거니까…”이도현은 미리 경고했다. 이 자식이 또 같은 짓을 반복할까 봐 걱정이었다. 그때는 진짜로 참지 않을 생각이었다.“네, 아버지... 당장 모시고 가겠습니다... 이쪽으로, 아버지...”결국 이도현이 ‘아버지’가 된 것은 기정
사내는 이도현의 말을 듣고 싸늘하던 눈빛이 다시 한번 불타오르기 시작했고 이전보다 더욱 뜨거워졌다.그 눈빛은 이도현이 옷을 벗은 연진이 선배를 바라볼 때보다도 더욱더 열정적이었고, 노골적인 소유욕이 담긴 시선은 이도현의 마음을 다시 한번 두렵게 만들었다.“형님.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예요?” 이도현은 진심으로 걱정이 되었다.“아니, 동생! 자네 진짜 대진제국과 현천문에서 초대한 귀빈이야?”사내는 이도현을 안아줄 듯이 다가왔다.“형님, 침착하세요! 이상한 짓 하지 마시고요. 저 무술 할 줄 알아요...”이도현이 경고하며 말했다“이상한 짓이라니, 절대 아니야! 내가 동생한테 그럴 리가 있겠어? 대진제국과 현천문의 귀빈인데!”사내가 말했다.“정말 그런 거예요?”이도현은 사기를 당한 건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그럼, 그렇고말고! 동생, 자네 진짜 대진제국의 귀빈이 맞아?”사내가 다시 확인했다.“그만 물어보시고, 성역으로 들어가는 결계를 아시는지 말씀해 주세요!”이도현은 정말 미칠 지경이었다.이렇게 큰 덩치의 사내가 어째서 이렇게 답답하게 구는지... 여자처럼 우물쭈물하기만 하고 전혀 시원스럽지 않았다.“알아! 내가 아니까 내가 데려다줄게!”사내는 극진한 친절함을 보였다.“그럼 정말 감사합니다. 부탁드립니다. 이도현이 깊게 숨을 내쉬며 말했다.“헤헤! 뭘 이 정도 가지고. 부탁이라고 할 것도 없어. 동생을 도와줄 수 있다면 내 영광이지!”사내는 아부하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이도현은 그의 표정을 보자마자 분명히 속으로 다른 꿍꿍이가 있을 거라고 직감했다.“그런데... 말이야 내 부탁 하나를 들어줬으면 해! 동생이 꼭 들어줬으면 좋겠어! 제발이야!”사내의 얼굴에는 더욱 아양스러운 표정이 떠올랐다.“무슨 부탁인데요?”이도현은 입을 비쭉거렸다. 역시나 이런 전개가 나올 줄 알았다.“그... 그게... 말하기가 좀 쑥스럽네?”사내는 의외로 수줍어하기 시작했다.“아... 진짜...”사내가 수줍어하는 모습을 보자 이도현은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