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민아, 나눌 얘기가 있어서 왔어.”권재아는 권재민의 차가운 반응을 보고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마음은 불편했다.그동안 자신과 동생의 관계는 매우 좋았다. 강윤아가 아니었다면 그들 가족의 관계도 지금처럼 되지 않았을 것이다.“네, 말해요.”권재민은 권재아의 말을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고개를 숙이고 서류를 보기 시작했다.권재민의 태도에 권재아도 화가 치밀어올랐다.“재민아, 넌 정말 그 여자 때문에 우리의 관계를 이렇게 망칠 거야?”권재민은 가볍게 눈살을 찌푸리더니 짜증이 난 듯 고개를 들었다.“난 아주 잘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미 당신들의 안배에 따라 행동하고 있어요. 도대체 뭐가 그렇게 불만이에요?”그 말에 권재아는 순간 할 말이 없었다.권재민의 말이 사실이기 때문이다.강윤아를 포기하라고 설득하는 데에 시간이 걸릴 줄 알았는데 송해나와의 결혼을 시원하게 승낙했기에 걱정을 덜 수 있었다.“그래.”권재아는 어쩔 수 없이 대답했다.“난 단지 너무 무거운 관계가 아니었으면 좋겠어.”권재아는 아주 간절하게 말했다. 그러나 권재민은 다소 무관심해 보였다.“누나, 할 말이 있으면 그냥 말해요. 저는 할 일이 많아요.”권재아는 그의 말에 그냥 회사 일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말을 마친 후 권재아도 처리할 일이 있어 권재민에게 인사를 하고 떠났다.“재민아, 나 먼저 갈게. 해나야, 넌 여기 남아서 같이 있어 줘.”권재아는 송해나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그러자 송해나는 당연히 두말없이 승낙했다.‘쓸데없는 소리. 내가 권재민과 단둘이 있기를 얼마나 기다렸는데.’권재아가 이렇게 말하자 권재민은 눈썹을 찌푸렸다. 그는 입술을 움직이려다가 두 사람의 표정을 보고는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권재아가 떠난 후 송해나는 비로소 권재민에게 눈길을 돌렸는데 아주 부끄러운 얼굴을 하였다.“재민 씨, 이제 곧 점심이 되니 우리 같이 점심을 먹으러 가요.”“그럴 필요 없어요.”권재민은 고개를 숙인 채 그녀를 상대하고 싶지 않은 것 같았
강윤아는 소파에서 한참 동안 기다렸지만 여전히 은찬의 아무런 소식도 얻지 못했다.“도대체 은찬을 찾고 있는 거예요?”소파에 앉아있던 강윤아는 마침내 참지 못하고 집사에게 찾아가 다급하게 물었다.집사는 머리를 들어 그녀를 힐끔 보았다. 비록 은찬이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지만 그녀는 전혀 조급해하지 않았다. 자신의 아이가 아니기 때문이다.집사는 가볍게 눈살을 찌푸리며 짜증이 난 말투로 말했다.“이미 사람이 보내 찾으라고 했어요. 좀 그렇게 조급해하지 않으면 안 돼요?”“당신의 아이라면 조급하지 않겠어요?”강윤아는 분노에 찬 표정을 했다.그녀는 집사의 무관심한 태도를 알아차렸다. 만약 자신이 요구하지 않았다면 은찬을 찾으러 가지도 않았을 것이다.그러나 그녀는 지금 이곳에서 의지할 데가 없고 도움을 구할 사람도 없어 집사에게 부탁하는 신세가 아닌가?“당신이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한 거잖아요. 그렇지 않으면 괜히 잃어버리겠어요?”집사는 강윤아를 차갑게 노려보더니 시큰둥하게 말했다.강윤아는 가슴이 아파 한동안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집사는 모든 책임을 그녀에게 떠넘기는 것일까? 그러나 그녀는 은찬을 직접 찾으러 갈 수 없기에 아무런 소식도 받을 수가 없었다.그 시각 도우미는 장을 보느라 은찬이 언제 사라졌는지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도우미가 장을 보고 돌아가려고 할 때 뒤돌아보니 은찬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도우미는 당황하여 얼른 찾기 시작했다.“안녕하세요. 5, 6살 정도의 어린 남자아이를 보았나요?”하인은 다소 초조하게 계속 물었지만, 그 행인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고개를 저으며 보지 못했다고 표시했다.결국, 한바탕 찾은 후에도 도우미는 여전히 은찬을 찾지 못했다.도우미는 낯색이 어두워졌다. 만약 은찬을 찾지 못하면 돌아가서 어떻게 말해야 할지 정말 몰랐다.아주 초조한 심정으로 도우미는 결국 펜션으로 돌아왔다.도우미가 돌아오자 집사는 얼른 다가가 물었다.“그 사내아이를 봤어? 또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어.”도우미는 멍
이때, 권재아는 회사에서 최근의 협력 프로젝트를 처리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집사의 전화를 받았다.권재아는 미간을 찌푸렸다. 강윤아 별장의 집사는 별일이 없으면 절대로 전화하지 않는다. 때문에 지금 전화가 왔다는 건 뭔가 일이 생겼을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역시나, 전화를 받자마자 집사의 급하고 두려운 목소리가 들려왔다.“권재아 아가씨, 은찬이가 보이지 않습니다.”“뭐라고?” 권재아는 집사의 보고를 듣고는 놀라서 의자에서 벌떡 일어섰다.“아가씨의 아이가 보이지 않아요.” 집사도 이마에 땀을 흘리며 다급해 보였다.권재아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어떻게 안 보일 수가 있나요? 잘 지켜주라고 했잖아요?”집사도 망연자실했다. “재아 씨, 우리는 아가씨 지시대로 은찬이를 잘 지켰습니다. 그런데 오늘 어떻게 된 일인지, 갑자기 아이가 보이지 않는다는 보고가 왔고, 강윤아 아가씨는 아이를 찾으러 나가겠다고 하니 말릴 수가 없었습니다.”권재아는 미간이 깊게 찌푸려졌다. 일이 다시 통제 불능 상태로 변해 버렸다. 어렵게 모자를 가둬 놨는데,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생겼다.“재아 씨, 그럼 지금 어떻게 하죠?” 집사는 막막했다. 권재아의 도움이 절실했다.“일단 사람을 더 보낼게요. 아이는 찾아야 하니까요. 반드시 찾아야 해요! 저도 바로 갈게요.”권재아가 다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그녀는 곧장 정리를 하고 강윤아와 강은찬이 있는 그 별장으로 가는 준비를 했다.권재아는 자신이 강윤아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한다. 강윤아는 권재민을 너무 심하게 통제했다. 강윤아 때문에 권재민이 가족들과 얼굴 붉힐 정도이니까 말이다.‘아름다움은 화의 근원이여. 동생은 보통 사람 아닌데도 어떻게 여자에게 속아 이렇게 방황할 수 있단 말인가.’하지만 권재아는 강은찬을 아주 좋아한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강은찬은 영리하고 똑똑하며 또 스타처럼 잘 생겼다.가장 중요한 것은 강은찬이 말도 잘하고 예의도 바른 것이다. 어떨 때는 권재아을 칭찬 감옥에 가두어 그가
두 여직원은 바로 맞이해 주며, 아부하는 듯 송해나에게 인사를 건넸다.송해나는 회사에 자주 오지 않았지만, 그녀와 권재민이 신문에 실린 이후, 회사 사람들이 송해나를 더더욱 모를 리가 없었다.송해나는 그들 대표님의 미래 와이프이다. 그러니 왔을 때 잘 대접해야 했다.송해나는 오늘 두 리셉셔니스트의 행동이 조금 이상하다고 느껴졌다.평소 자신이 왔을 때는 인사를 열정적으로 했지만은, 이처럼 맞이하러 온 적은 없었다.두 리셉셔니스트가 인사를 마치고 송해나에게 은찬이가 아빠를 찾으려 왔다는 얘기를 했주었다.“그 아이가 자기 아빠가 권재민 대표님이라고 하더군요.” 키가 큰 리셉셔니스트가 약간 난감한 듯 리셉션에 서서 이쪽을 올려다보고 있는 은찬을 바라보았다.송해나는 은찬을 보자 얼굴빛이 크게 변했다. 그녀는 은찬이가 재민을 찾아올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그 아이는 강윤아와 함께 있어야 돼는데? 권 씨 가문에 갇혀 있어야 하는 건 아닌가? 혹시 강윤아도 풀려난 걸까?’자신과 권재민의 결혼이 임박한 지금, 해나는 자신의 꿈에도 그리던 일이 망쳐지는 것을 절대 허용할 수 없었다.송해나의 눈빛에 잠시 독기가 스쳤지만, 곧 사라졌다. 그녀는 이내 웃으며 말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무심하게.“그런 일은 없어요, 권 대표님 일에 대해서는 여러분이 더 잘 알고 있을 텐데요.”두 리셉셔니스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권재민 대표님께 데려가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데려갔다면 불똥이를 튀었을 것이다.송해나가 계속 말했다. “요즘 여자들의 수단이 점점 진화한다니까요. 재벌가에 들어가기 위해 아이까지 동원하다니.”송해나가 말을 마치고 은찬을 한 번 더 바라보았다.두 리셉셔니스트가 놀랐다. 크게 깨달은 모습이다.이 아이는 다른 여자가 사장에게 붙으려는 수단으로 쓰인 것이다. 그렇게 무리수를 둔 여자가 정말로 혐오스러웠다.곧 두 사람의 시선이 처음의 애정에서 혐오로 바뀌었다.송해나는 얼른 말했다.“이 일은 아이를 탓할 수 없어요. 아이도
은찬이는 의심스럽게 그 남자를 훑어보았고 경계했다. 필경 이렇게 많은 일들을 겪었고, 그는 이미 대다수 사람들은 믿을 만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자신도 모르게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전 누구신지 모르겠는데요”은찬은 아직 어리지만 풍기는 아우라가 있었기에 이런 말을 해도 다소 포스가 있어 보였다. 남자는 은찬이 이렇게 딱 잘라 자신을 모른다고 말하는 것을 보자 웃고 있던 얼굴이 경직되기 시작했다.“도련님, 우리는 분명히 본 적이 있는데, 어떻게 저를 모른다고 하실 수 있습니까?”남자가 이렇게 말할수록 은찬의 의심은 더욱 깊어지고 경계하는 표정으로 그를 훑어보았다. 그러자 남자는 어쩔 수 없이 한숨을 쉬며 은찬의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은찬의 머리를 만지려고 손을 뻗었지만 은찬은 망설임 없이 피했다.“은찬이, 네 엄마 이름 강윤아 맞지? 네 생일은 8월 20일, 네 엄마의 생일은 10월 3일, 맞지?”남자는 은찬이와 윤아의 개인정보를 줄줄이 읊었고, 모두 정확했다. 은찬은 약간 놀랐다는 듯 그 남자를 바라보았는데,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설마,이 남자 말이 다 사실인 건가?’“그래요, 믿을게요. 그러면 저를 아빠한테 데려다줄 수 있나요?”은찬은 겨우 의심을 풀고 다시 입을 열었다.남자는 웃으며 말했다.“당연하죠. 자, 도련님, 저를 따라오세요.”“네.”은찬은 고개를 끄덕이며 남자의 뒤를 따라 떠났다. 그 남자는 자신이 승낙한 후에 눈이 반짝이는 것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리고 그들과 멀지 않은 곳에서 송해나는 2층에 서서 묵묵히 이 모든 것을 주시하고 있다. 은찬이 그 남자를 따라 떠나는 것을 보고 해나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은찬이 자기 사람을 따라 떠났기에 그녀도 완전히 안심할 수 있게 되었다.은찬이 별장에서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처음에 해나는 절대 생각하지 못했다. ‘강윤아에게 이런 약점이 있었다니, 그런데 그게 무슨 소용이 있나? 결국엔 그녀가 제지하지 않았던가?’“강윤아, 내 일을 망치려 하다니 간이 배
관리실 직원들은 당연히 권재아의 신분을 잘 알고 있기에 두말없이 대답했다.“아가씨,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가 곧바로 사람을 보내 CCTV 영상 기록을 확보하겠습니다.”“그래요.”권재아는 가볍게 대답하고는 전화를 끊어버렸다.그러고는 다시 고개를 돌리자 가사도우미는 화들짝 놀라 얼른 고개를 숙이더니 권재아의 눈도 바라보지 못한 채 주먹을 꽉 그러쥐었다.그도 그럴 게, 만약 영상 기록이 도착하면 자기가 아이를 데리고 나간 사실이 그대로 발각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관리실 직원은 아주 효율적으로 얼마 자니지 않아 곧바로 영상을 보내왔다.이에 권재아도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영상을 재생했다. 그리고 영상 속에서 어느 날 아침 은찬이가 웬 차 안에 있었다는 게 확인되었다. 그 차는 다름 아닌 하인 장 보러 나갈 때 상용하는 차였다.그걸 본 여집사는 이내 눈을 부릅뜨며 하인에게 캐물었다.“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전에 아이를 본 적 없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런데 왜 아이를 데리고 나가는 영상이 떡하니 찍히죠?”모든 일이 탄로나자 하인도 당황하여 다급히 변명하기 시작했다.“죄, 죄송합니다. 저도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대체 어떻게 된 일이죠?”권재아는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역시 권재아도 이 일은 집안 하인 중 한 명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아무 이유도 없이 은찬이가 별장에서 나갈 리가 없으니까.하인은 몸을 약간 움츠리더니 결국은 승인했다. 이미 모든 게 들킨 마당에 잘못을 인정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낯 두껍게 변명을 보탰다.“그게 사실, 아침에 아이가 하도 저를 따라 나가겠다고 해서 저도 방법이 없었습니다…….”권재아는 불만스러운 듯 하인을 째려봤다. 어찌 됐든 일이 이렇게 된 건 머두 가사도우미 잘못이니.여집사도 당연히 그걸 알고 있었기에 권재아가 입을 열기도 전에 먼저 하인을 훈계하기 시작했다.“대체 일을 어떻게 하는 겁니까? 애가 따라가겠다 한다고 덜컥 승낙하면 어
권재아는 황급히 회사로 돌아가자마자 권재민의 사무실에 찾아갔다.어쩌면 은찬이가 이미 권재민을 찾아왔을 거라는 불안한 마음을 안고서.“재민아.”권재아는 너무 다급한 나머지 노크하는 것도 잊고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하지만 의외로 송해나도 사무실에 함께 있었다.권재민은 솔직히 문이 열리는 순간 화를 내려고 했다. 평소 일할 때 누군가 노크도 없이 사무실에 드나드는 걸 원래부터 싫어하기에 비서마저 매번 허락받고 들어와야 했으니까.하지만 권재아가를 보자 눈에 드러났던 분노가 이내 의문으로 변했다.권재아는 이렇게 느닷없이 자기 사무실을 드나드는 성격이 아니었으니 말이다.이에 권재민은 고개를 들어 물었다.“무슨 일인데 그래? 왜 그렇게 급해 보여?”“그게…….”권재아는 권재민의 사무실을 빙 둘러보고 은찬이가 없는 걸 먼저 확인하고는 이내 하려던 말을 삼켰다.사실은 은찬이를 본 적 있는지 묻고 싶었는데 그걸 물어보면 권재민도 은찬이가 사라졌다는 걸 알게 되고 자기가 강윤아를 감금했다는 것도 들통난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때문에 입안에 맴돌던 말을 목구멍으로 삼킬 수밖에 없었다.“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한번 얼굴 좀 보려고.”권재아는 곧바로 표정을 바꾸면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굴었다.그 말에 송해나가 얼른 끼어들었다.“언니, 우리 함께 점심 먹는 거 어때요? 저 요즘 갓 오픈한 스테이크집 아는데, 평가가 꽤 좋더라고요. 우리도 가요.”“둘이 가. 나도 눈치가 있지 두 사람을 뭐 하러 방해하겠어.”권재아는 음식을 먹을 기분이 아니었기에 고민도 없이 거절했다. 은찬이를 찾기 전까지는 가슴을 누르고 있는 돌멩이가 내려가지 않을 것만 같았으니까.때문에 말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몸을 돌려 사무실을 나갔다.일이 생기면 절대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이성적으로 행동하는 모습은 권재아와 권재민이 많이 닮은 부분이다.권재민의 사무실을 나선 권재아는 곧바로 경비실로 향했다.만약 은찬이가 회사로 찾아왔다면 반드시 CCTV에 잡힐 테니까.때문에 곧바로
두 사람은 현금을 보았을 때 두 눈이 휘둥그레 졌다.‘와, 이렇게나 많이 준다고?’단지 비밀을 지키면 되는 것뿐인데, 이렇게 많은 돈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에 두 사람은 조금도 지체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세요! 우린 오늘 아무것도 보지 못했고 듣지도 못했습니다. 입 단속 잘 하고 있을 테니 걱정 하지 마시고 문 앞의 경호원도 우리가 책임지겠습니다.”‘눈치가 아주 빠르구나.’송해나는 두 사람이 꽤나 똑똑하게 움직이는 것을 보고 만족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두 사람은 사의를 표한 후 화장실을 떠났다.송해나만 화장실에 남아 더없이 득의양양한 모습을 드러냈다.이때 운전기사는 이미 은찬이를 어느 별장으로 데리고 가고 있었다.“아저씨, 우리 아빠도 거기에 있어요?”은찬이는 계속 운전 기사에게 물었다.운전 기사는 고개를 끄덕였다.“네, 도련님.”말하면서 은찬이를 별장으로 들여보내고 바로 방을 찾아 가두어 버렸다.그리고 옆에 있던 하인을 불렀다.“저 아이 잘 지키고 있어요. 절대 도망가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아가씨가 특별히 분부한 것이니 신경 써주세요. 만약 도망가면 당신들도 옷을 벗어야 할 겁니다.”하인은 당연히 감히 게을리하지 못하고 줄곧 문어귀에서 지키고 있었다.이렇게 은찬이는 방에 홀로 갇혔다.한편, 권재아는 회사 곳곳을 달아 다니며 CCTV도 꼼꼼히 찾아 보았다.별장의 집사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은찬이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는 소리를 듣고 마음이 더욱 불안해졌다.‘은찬아, 너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납치라도 된 걸까? 만약 그러면 어떡하지?’권재아는 순간 머리가 하얘지며 한동안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어떡하지?’권재아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다.결국 권재아는 김소혜에게 알려주었다.“은찬이가 왜 갑자기 사라진 거야?”김소혜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계속 강윤아 따라다니지 않았어? 근데 왜 갑자기 사라진 건데?”“하인이 데리고 나갔는데, 은찬이를 잃어버렸어요.”“그럼, 빨리 찾아! 어떻게든 찾
강윤아라는 말에 권재아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윤아가 우리 집에 온 이후로 힘든 일을 많이 겪었고 늘 다른 사람의 타깃이 되었어요. 재민이가 너무 다른 사람의 호감을 사 그녀를 연루시킨 거죠.”“재아 씨가 지금 걱정해도 소용없어요, 재아 씨부터 잘 챙겨요.”윌은 재아의 말을 듣고 웃으며 말했다.“자, 재아 씨 기분 전환하러 갔다가 나중에 우리 집에 가요.”그 말을 들은 권재아는 얼굴이 빨개졌다.“얼굴이 왜 빨개지는 거예요? 내가 옆에 있었으면 재아 씨가 좀 더 편하게 잠들 거예요.”윌은 웃으며 농담했다.재아는 얼굴이 빨갛게 상기 된 채 그를 한 대 때렸지만 거절하지 않았다.날이 저물자 바다는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겼고 이따금 파도가 아련하게 일기도 했다. 해변의 모래사장에는 간간이 등불이 있는데, 등불은 그다지 밝지 않고 군데군데 있어서 밤하늘의 별과 서로 잘 어울렸다.재아는 부드러운 모래를 밟으며 앞으로 한 걸음씩 폴짝폴짝 뛰어갔다. 귓가에 들려오는 파도 소리가 아득하고도 고요했다.윌은 재아의 뒤에서 몇 걸음 걷다가 재아가 전혀 알아채지 못하자 성큼성큼 몇 걸음 앞으로 나가 그녀의 손을 잡고 손바닥으로 감쌌다.재아는 어리둥절해 하더니 이내 두 눈이 반달 모양으로 변했다.“손잡고 싶은 거면 얘기하지 그랬어요.”재아의 표정이 너무 도도해서 윌은 눈살을 찌푸리고 손가락으로 그녀의 코끝을 긁었다.“그러게 누가 재아 씨더러 아무것도 모르래요?”술도 밥도 배불리 먹었으나 그 뒤로 딴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재아는 윌 덕분에 배불리 먹었고 지금은 기분이 너무 좋았다. 윌의 손을 잡고 있자니 따뜻한 손바닥에서 전해오는 힘에 말할 수 없는 안정감을 느꼈다.백사장을 따라 한참을 걸은 후에야 마침내 윌이 말한 그 ‘재미있는 곳’에 이르렀다.재아는 어두컴컴한 불빛 속 나무 밑에 숨어 있는 해먹에 하마터면 눈살을 찌푸릴 뻔했다.“여기가 재밌는 곳이에요?”“재미있는 곳이라고 하지 않으면 안 올 거잖아요?”윌은 미소를 지으며 먼저 올라탄
회의가 끝난 후, 권재아는 권현우가 그녀를 쉽게 보지 못하게 하려고 여전히 당당하게 걸어 나갔지만, 사무실로 돌아온 후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초조하고 어쩔 수 없는 표정을 지은 재아는 매우 낭패한 모습이었다.재아는 권재민에게 이 일을 알리려 문자를 보냈지만, 그쪽에서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재아는 윤기태에게도 이 일을 말했다. 기태도 분노했지만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재아가 풀이 죽은 모습을 보며 화가 났지만 재아를 먼저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대표님, 이런 결과는 대표님도 원하지 않겠지만, 정말 방법이 없잖아요. 자책하지 마세요, 권재민 대표님이 돌아오시면 분명히 이 일을 해결할 수 있을 거예요.”재아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기태의 위로가 전혀 소용이 없었고 재아는 여전히 괴로웠다.재아의 이런 모습을 본 기태는 더는 방해하지 않고 그녀에게 인사한 후 자리를 떴다.늦은 시간, 재아는 여전히 회사에서 일을 처리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사무실 문이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권재아는 고개도 들지 않고 대답만 했다.갑자기 넓은 손이 재아 앞에 다가오더니 그녀의 머리를 강제로 들어 올렸다.재아는 화를 내려다가 윌임을 발견했다. 순간 화가 난 얼굴이 미리 설정된 듯 활짝 웃는 얼굴로 바뀌었다.“아, 윌, 여긴 어쩐 일이에요? 귀국하지 않았어요? 돌아왔으면 나한테 말해주지 그랬어요. 그랬으면 내가 공항으로 데리러 갔을 텐데.”윌은 재아의 머리를 받치고 있던 손을 풀고 책상을 돌아 재아의 앞으로 다가갔다. 하지만 그러는 내내 눈빛은 재아에게서 떠나지 않았다.“보고 싶어서 돌아왔어요. 알려줬으면 어떻게 서프라이즈를 해줬겠어요. 왜 이렇게 피곤한 얼굴이죠? 날 봤을 땐 화가 잔뜩 난 얼굴이었어요.”윌이 그녀 앞에 서자 재아는 윌의 허리를 끌어안고 머리를 살짝 윌의 몸에 기대며 풀이 죽은 듯 한숨을 내쉬었다.윌은 그녀가 말하고 싶지 않은 듯해 보여 더는 강요하지 않고 빨리 나가자고 재촉했다.“주차장에서 오래 기다렸는데도 안 내려와서 야근하는 거 아닌가
권재민은 강윤아의 움직임을 추적한 뒤 곧바로 현진성과 합류해 구출 계획을 논의하고 애스릭이 숨어 있는 곳으로 쳐들어가려 했다.하지만 이번에도 그들은 변장하고 다가갔다. 애스릭은 분명 그들을 경계할 것이고, 외딴 섬에서의 일을 겪었으니 애스릭의 경계와 의심이 더 강해지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그래서 그들은 반드시 만반의 계획을 세워야만 윤아를 구해낼 수 있다고 판단했다.같은 시간, 국내에 있던 김소혜와 서만옥은 출국할 예정이었다.그날 기슭에 도착한 후 재민은 아이를 안배하고 나서 소혜에게 전화를 걸었다. 소혜는 발신자가 실종된 지 오래된 자기 아들이라는 것을 보고 매우 흥분했다.“재민아, 드디어 엄마한테 전화했구나. 그동안 네가 나한테 전화 안 해서 우리도 방해할 엄두가 안 났는데 너는 지금 어때? 윤아는 행방불명이야? 윤아를 구해낸 거 아니었어?”소혜는 재민의 전화가 희소식을 전하러 걸려온 것으로 생각했다. 그녀의 마음속에서 재민은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모든 일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민의 전화를 받은 후 마음이 매우 흥분되고 기뻤기 때문이기도 했다.재민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그는 소혜의 이렇게 흥분한 말투를 들으며 차마 그녀에게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급박해서 아이를 돌볼 가족이 있어야 했다. 비록 의사가 있지만 그는 여전히 마음을 놓을 수 없다.그는 이를 악물고 실정을 소혜에게 말했다.“엄마, 내 말 좀 들어봐요. 마음을 다잡고 들어요, 일이 이렇게 됐어요…… 엄마가얘기한 거랑 상황이 좀 달라요. 윤아가 처음에 구출되긴 했는데 다시 잡혀갔어요. 그동안 연락이 없었던 건 내가 계속 그 사람의 경계에 잠복해있었기 때문이에요.”재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소혜가 말을 끊었다.“뭐? 구출되긴 했는데 또 잡혀갔다는 건 뭐야?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엄마, 내 말끝까지 들어봐요.”재민이 이마를 어루만졌다.“이 일은 당분간 자세히 말하기 어려워요. 제가 윤아를 데려가고 나서 자세히 말해줄게요.”
고승혁 교수가 협조를 거부했기 때문에 애스릭은 더 심하게 때렸다. 거의 몇 시간마다 가서 괴롭혔는데 매번 때리는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말로 욕했지만 고승혁 교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강윤아는 고승혁 교수가 돌아올 때마다 얼굴에 약간의 상처가 생기는 것을 보고 차마 지켜볼 수 없었다.사실, 애스릭이 매번 고승혁 교수를 데려갈 때마다 그가 입을 열어 경험을 전수해주도록 했을 뿐 매번 그를 때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고승혁 교수는 돌아올 때마다 애스릭의 부하들에게 얻어맞았다.고승혁 교수는 베티를 치료해 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배신하기까지 했기 때문에 그들은 매우 원망스러웠다.“고승혁 교수님, 저 때문에 교수님이 억울한 일을 당했으니 협조하고 절 그냥 내버려 둬요.”“괜찮아요, 때리고 싶으면 때리고 욕하고 싶으면 하라고 해요. 나는 견딜 수 있어요. 나는 오히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어디까지인 보고 싶어요. 언젠가 내가 정말 견딜 수 없게 되면 자연히 그들에게 항복할 거예요. 그때 가서 윤아 씨가 나를 원망하지 말아주세요.”고승혁 교수는 손을 내저으며 개의치 않는 듯 윤아를 향해 농담까지 했다.“교수님은 이미 내 목숨을 구해줬고 내 아이를 지켜줬어요. 이것만으로도 저는 이미 교수님에게 감사해요. 교수님이 앞으로 나를 어떻게 대하든 나는 받아들일 수 있어요.”윤아는 고승혁 교수의 이런 모습을 차마 지켜볼 수 없었다.“정말 내 걱정은 안 해도 돼요. 이건 내 인생 경험의 일부일 뿐이에요. 살아서 나갈 수 있다면 밑지는 장사는 아니에요. 굴복해 연명할 수 있지만 내 양심에 어긋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아요.”고승혁 교수는 윤아가 미안한 표정을 짓자 그녀를 안심시켰다.윤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우리가 살아서 나갈 수 있다면 교수님의 연구원에 많이 투자할게요.”“그럼 먼저 윤아 씨에게 감사해야겠어요.”“고승혁 교수님, 우리는 함께 목숨 걸고 싸운 사이이니 그냥 저를 윤아라고 부르세요, 윤아 씨는 너무 서먹서먹해요.”윤아가 고승혁을
메리는 인큐베이터 옆에 있는 의사가 멍하니 있는 것을 보고 그를 한 번 쿡 찌르며 낮은 소리로 주의를 시키었다.“존, 사람들이 묻고 있잖아요.”“네?”존은 어리둥절하게 되물었다.권재민은 옆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다시 물었다.“내 아이의 상태가 어떤지 물었어요.”“아기는 지금 상태가 안정돼 있고 아까 그 혼란스러운 상황에도 놀라지 않았어요. 달이 차지 않아 태어났기 때문에 면역력이 좋지 않아 인큐베이터에 좀 더 있어야 할 것 같아요.”존은 마침내 반응을 보였고 무서워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재민은 가볍게 알았다고 대답하고 고개를 숙이고 인큐베이터 안의 아이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는 갑자기 생명이 정말 완강하다고 느꼈다.강윤아에게 그렇게 많은 위험이 닥쳤는데도 이 아이는 이렇게 안전하고 무사하게 태어났고, 게다가 아무런 문제도 없으니 앞으로도 꿋꿋이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눈앞의 작은 아이가 이렇게 많은 일을 겪으면서도 건강할 수 있다면, 아이의 엄마 윤아는 분명 더 완강할 것이다. 그동안 많은 일을 겪었지만 윤아는 아슬아슬하게 돌아왔으니 이번에도 반드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재민은 보면 볼수록 더 반가웠고 윤아가 출산할 때 옆에 없었지만 수술실 밖에 있었으니 좀 멀지만 어떻게 보면 윤아 옆에 있은 셈이다. 다음번에는, 다음번에는 윤아 옆에 꼭 있어 줘야겠다고 생각했다.재민의 부드러운 표정을 보고 현진성과 한기현도 옆으로 다가가서 아기를 바라보았다.“윤아 씨를 많이 닮아서 참 예뻐. 앞으로 윤아 씨처럼 예쁘게 자랄 거야.”기현은 한참을 쳐다보았다.옆에 있던 진성은 자기도 모르게 웃으며 말했다.“태어난 지 얼마 안 됐는데 어떻게 윤아 씨와 닮은 줄 알아요? 갓난아이는 이목구비도 다 비슷비슷하고 쭈글쭈글한 모습이 늙은이 같다는 생각만 들어요. 게다가 머리카락이나 눈썹도 다 나지 않았잖아요.”“진성 씨…… 왜 그래요? 분명 윤아 씨를 닮았잖아요?”핀잔을 들은 기현은 얼굴이 빨개졌다.“재민아. 진성 씨 봐, 너의 아이가
한기현은 다시 권재민에게 전화를 걸어 그들이 숨은 곳을 알려줬지만 강윤아가 끌려갔다는 사실은 알려주지 않았다.재민은 재빨리 이곳으로 달려와 둘러보았으나 윤아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미간을 찌푸린 채 의심스러운 얼굴로 기현과 현진성을 힐끗 쳐다보았다.“기현아, 현진성 씨, 윤아 씨는요? 윤아 씨가 왜 여기에 없죠?”두 사람은 안절부절못했다. 평소 대단한 사람들이었지만 지금 재민 앞에서 감히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기현은 슬며시 진성을 쳐다보고 몰래 진성을 쿡 찔렀다. 진성은 방심하다 밀려났고 뒤를 돌아보며 기현을 노려보았지만 기현은 고개를 숙이고 더는 두 사람을 쳐다보지 않았다.“묻고 있잖아요! 윤아 씨는요? 내 아내 어디 갔어요? 당신들 윤아 씨를 어디로 데려갔어요?”재민은 두 사람의 행동을 보고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소리쳤다.진성은 미안한 표정으로 재민을 바라보며 재민에게 그가 떠난 후의 일을 대충 말했다.“권재민 대표님, 죄송합니다, 제가 윤아 씨를 제대로 돌보지 못해서 애스릭에게 빼앗겼어요. 제가 부주의했어요. 그 방에 숨으면 아무 일도 없을 줄 알았는데, 애스릭이 이렇게 교활하게 두 가지 계략을 쓸 줄은 몰랐어요.”“권재민 대표님, 지금 저를 때리고 욕해도 저 할 말이 없어요.”이 말을 들은 재민은 온몸에 살기가 피어올랐고 두 눈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진성을 노려보며 허리에서 총을 꺼내려 했다. 기현이 황급히 그런 재민을 말렸다.“재민아, 일단 흥분하지 마, 방법이 있을 거야. 같은 편이니 우릴 도울 수 있어. 게다가 인터폴이야. 너 인터폴을 죽이는 건 큰 문제가 아니지만, 윤아 씨부터 찾아야지. 지금 우리는 진성 씨가 필요해.”기현은 재민의 허리춤의 총을 쥔 손을 힘껏 눌렀다.진성도 황급히 위로했다.“권재민 대표님, 아직 기회가 있습니다. 밖에 비도 오고 바람도 심해서 빨리 갈 수 없으니 아직 멀리 가지 못했을 거예요.”“게다가, 우리 배에는 위치추적 장치가 있어요. 아주 은밀한 곳에 두었으니, 그들은 분명히 찾을 수 없
한기현은 사람과 함께 현진성의 사람들을 따라 수술실의 암도 쪽으로 후퇴하기 시작했는데 길을 따라가다가 애스릭의 사람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기현은 그들 모두가 깨끗이 떠난 줄 알고 있었는데 애스릭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사람을 남겨 그들을 몰살시킬 준비를 했을 줄은 몰랐다.기현의 눈에 갑자기 핏빛이 솟구쳐오르더니 몸을 돌볼 겨를도 없이 맨주먹으로 몇 사랑을 해치웠다. 총을 겨누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독살스러운 모습까지 보여 상대방을 놀라게 했다.그 사람들은 애스릭을 보낸 후 매우 내키지 않았다. 한바탕 뒤지고 나서 도망갈 계획이었는데, 결국 절반 정도 뒤지다가 기현 일행을 만났다. 특히 기현은 어두운 얼굴을 한 채 그들에게 원한을 품고 있는듯 보였다.그들은 원래 기현 일당과 대충 싸우려고 일부러 그들을 놓아주려 했는데 기현이 달려들어 그들 몇 사람을 쓰러 눕히자 분노가 치밀어 올라 기현 일행과 뒤엉켜 싸우기 시작했다.기현이 상대방의 생각을 알면 지금쯤 후회해 죽을지도 모른다. 몇 분 동안 아무렇게나 싸우면 될 일을 이렇게 충동적으로 또 한 번 미뤘다.몇 분 동안 싸운 후, 쌍방은 모두 머뭇거리기 시작했다. 기현의 왼팔이 그 무리의 두목을 누르고 있었고, 다른 한 손에는 총을 쥐고 그의 관자놀이에 총구를 겨누고 있어 쌍방이 모두 시기를 기다리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기현은 그들의 타협을 기다렸고, 그 사람은 반격의 기회를 기다렸다.이 팀장은 원래 타협하려 했지만, 지금 이 지경에 이르니 승리욕이 자극되었고 지금은 고개를 숙일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머리를 숙이면 부하들이 그를 무시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목숨을 걸고라도 그는 승부를 내려고 했다.이때 폭발음이 드디어 또렷하게 들렸고 그 사람은 이때 갑자기 손을 썼다.기현은 그가 성급히 달려들 것을 예상한 듯 손을 빼 권총을 내던지고 날쌔게 상대방의 손을 잡아 그의 등 뒤로 돌렸다. 두 발은 날렵하게 그의 허리와 배를 걷어찼고 곧 사납게 그의 몸을 비틀어 앞을 가
현진성은 애스릭의 부하들이 베티를 데려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마음이 가라앉았다. 애스릭이 아직도 단념하지 않고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애스릭이 베티를 포기하거나 그들과 함께 죽으려고 이 보이지 않는 장치를 작동시켰다고 생각했다.애스릭이 여전히 단념하지 않고 베티를 데려가서 부활을 꿈꾸고 있을지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렇다면 애스릭은 고승혁 교수와 강윤아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진성은 갑자기 눈꺼풀이 미친 듯이 뛰며 뭔가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 그때 윤아와 고승혁 교수가 숨어 있던 방에서 총소리가 났다.그는 급히 아까의 그 방으로 돌아갔다. 들어가 보니 그가 배치한 사람 중 몇 명은 상처를 입었고, 또 몇 명은 이미 의식을 잃었으며 그중 한 명은 이미 죽었는데 의사였다. 그 의사는 아기의 인큐베이터를 필사적으로 안고 있었다.진성은 그 의사의 시체를 땅에 부축하려고 했지만, 그 사람의 손이 인큐베이터 가장자리를 필사적으로 잡고 있어서 아주 많은 힘을 써서야 그 손을 쪼갰다. 진성은 겨우 옆 깨끗한 곳으로 메고 가서 그를 살며시 내려놓았다.의사를 내려놓은 진성은 돌아서서 인큐베이터 안의 아기를 살펴보았다. 아기는 인큐베이터 안에서 매우 달콤하게 자고 있었기에 조금 안심할 수 있었다.현장은 매우 혼란스러웠고 모두가 엎드려 있어서 진성은 한동안 누가 누군지 분간할 수 없었다. 그는 하나하나 뒤집어 보았다. 애스릭의 사람들이 그냥 들어와서 그들을 다 죽였다고 생각했지만 고승혁 교수를 데려갔을 줄은 몰랐다.진성은 갑자기 윤아가 떠올랐다. 총소리가 그렇게 컸으니 윤아가 정신을 차리지 않았을 리 없다. 진성은 급히 모퉁이의 병상 옆으로 달려갔다.이불 속이 울퉁불퉁했다. 그는 처음에는 고승혁 교수 등이 윤아를 보호하기 위해 그녀의 얼굴을 덮었다고 생각했지만 열어보니 안에 베개가 있었다. 진성은 멍해졌다.“이 방은 밀폐되어 있는데 그들은 어디에 잡혀간 거지? 게다가 방금 내가 문 앞에서 지키고 있었으니 문으로 나갔을 리가 없어.”진성은 조급했다.갑자기
고승혁 교수는 숨을 헐떡이며 말하고는 바다 위를 바라보았다. 바다 위에 배가 한 척 있었는데 애스릭이 그 배에 있었고 많은 사람이 그들에게 총을 겨누고 있었다.고승혁 교수는 깜짝 놀라 몇 발짝 뒤로 물러서며 겁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현진성은 그에게 대답할 방법이 없어서 그를 붙잡고 비밀 통로로 갔다.권재민도 급히 한기현에게 연락해 무슨 일인지 알아보라고 했다.그러나 신호를 받자마자 재민은 기현 쪽에서 싸우는 소리를 들었다.“기현아, 무슨 일이야?”재민은 노심초사하여 급히 물었다.“방금 그 사람들이 들이닥쳐 시스템을 파괴했어. 최선을 다해 구조했으니 지금은 30분 정도 지연될 수 있어.”“시스템 복구가 시급한데 지금 그들과 싸우는 중이라…… 도저히 손을 쓸 수가 없어.”기현은 시스템 감시실에서 애스릭의 부하들과 싸우며 관제탑에 다시 접근하지 못하게 막으면서 권재민과 이쪽의 상태를 보고했다.보고하는 과정에서 재민은 기현의 끙끙거리는 소리까지 듣고는 더욱 마음이 급해졌다.“기아현, 너는 어때? 버틸 수 있겠어? 시스템 쪽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지금은 복구할 방법이 없어. 이젠 네가 나설 차례야. 우리가 살아나갈 수 있는 시간은 안 남았어요, 재민아.”“상대편은 사람이 너무 많은데 우리 사람은 이 몇 명밖에 없어. 버티기 힘들 것 같아, 재민아, 빨리 와.”기현이 헐떡이며 소리쳤다.재민은 이 소식을 듣고 마음이 급했지만 윤아가 이쪽에 있었기에 결정하기 어려웠다. 윤아가 힘없는 사람들과 함께 있어서 매우 걱정했다.진성은 재민이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며 얼굴을 찌푸렸다.“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내 부하들이 애스릭의 부하들에게 습격당했고, 그자들이 통제실의 시스템을 파괴했대요. 지금 우리 부하들이 그들과 싸우고 있는데 기현이도 그들에게 얽매여 시스템을 고칠 기회가 전혀 없어요…… 나는 윤아 씨가 마음에 걸려요.”재민은 머뭇거리다가 말을 꺼냈다.“가요, 여기 내가 있을게요. 기지 안에 내 사람이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