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배지유의 장애를 싫어하지 않고 여전히 함께하려 한다면 배석준은 어쩔 수 없이 이 사위라도 받아들일 수 있었다. 배건후는 어머니가 방 밖으로 나가는 것을 보고 따라가려다 배석준에게 불려 멈췄다. “지유가 해남 대학교에서 다쳤다. 이 일에 대해 책임을 묻는 건 네가 맡아야 한다.”배건후는 침대에 누워 있는 배지유를 한 번 쳐다하며 말했다. “어떻게 된 일이야? 사실대로 말해봐.” 주현정은 병실을 나서고 복도 모퉁이에 있는 도아린을 찾았다. “가자.” 도아린은 일어나 따라가며 주현정의 손을 잡으려다 그녀의 손에 이상한 점을 느꼈다. “후유증이야.” 주현정이 손을 들어 보였다. 그녀의 손은 통제할 수 없이 떨리고 있었다. 의사는 약물이 뇌를 자극해 신경에 손상을 입혔다고 말했다. “네가 아니었으면 내 남은 인생을 침대에서만 보냈을 거야.” 주현정은 씁쓸하게 웃었다. 그녀가 깨어난 뒤 전신 검사를 받았다. 그 약은 정상적인 사람이거나 우울증이 있지만 신체 건강한 사람에게는 경미한 후유증만 남길 뿐 약을 끊고 시간이 지나면 천천히 회복된다. 하지만 주현정은 달랐다. 그녀는 방금 뇌수술을 했고 뇌가 본래도 약한 상태에서 약물 자극을 받았다. 만약 약을 한 달 이상 복용하면 뇌에 되돌릴 수 없는 손상을 주고 자율성을 잃을 수도 있다고 했다. “아린아, 아직도‘엄마’라고 불러줄 수 있을까?” 주현정은 도아린의 손을 쥐었다. 그녀의 손은 조금 떨렸지만 손바닥은 여전히 따뜻하고 예전처럼 그녀에게 안전감을 주었다. 도아린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녀는 주현정을 친엄마처럼 효도할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주현정을 여전히 ‘엄마’라고 부른다면 배건후가 오해할까 봐 걱정됐다. 배건후가 신경 쓰지 않더라도 배건후의 미래 아내는 그걸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저는...” “우리의 시어머니와 며느리 관계는 끝났어요.” 주현정이 말을 끊으며 말했다. “나는 너를 내 양딸로 삼고 싶어.” 주현정은 그녀에게
“당신이 환자분 가족이세요?” 간호사는 순간 눈이 반짝이며 급히 서류를 꺼냈다. “도정국 씨. 앞서 60만 원 넘게 미납하셨고 후속 치료비까지 해서 200만 원 먼저 입금해 주세요. 모자란 부분은 채우시고 남은 건 나중에 돌려줄게요.” 도정국은 큰 병은 없었다. 몇 가지 기본적인 질병만 있었고 입원할 필요 없었지만 계속해서 영양제를 맞고 있었다. 그래서 비용이 좀 더 나온 것이다. 간호사는 서류를 도아린 앞에 내밀었고 주현정은 이를 거부하려 했으나 도아린이 팔짱을 끼며 그녀의 팔을 잡았다. 도아린은 조금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 “저는 이분을 모르는데 왜 제가 돈을 내야 하나요?” 간호사는 깜짝 놀라며 도정국을 돌아봤다. 도정국도 당황했지만 금세 상황을 이해했다. 도아린은 자신을 돌보지 않겠다는 태도였다. 그는 강홍련과 함께 해남에 있는 친척 집으로 갔지만 강씨 가문에서는 강홍련과 그녀의 사생자만 인정했다. 그는 아무런 명분도 없는 사람이어서 대문조차 들어갈 수 없었다. 연성에 있는 부동산은 도지현 명의로 넘어가 버렸고 도정국은 도유준의 고리대금 빚을 갚기 위해 편의점까지 팔아버린 처지였다. 그런데도 강홍련 모자는 강씨 가문에서 잘 살고만 있었다. 이나윤이 연성으로 돌아갔을 때 도정국에게 대놓고 언젠가는 대가를 치르게 될 거라며 손가락질했다. 호텔 직원이 방을 청소하던 중 도정국이 화장실에서 쓰러진 것을 발견하고 그를 병원에 데려갔다. 강홍련은 도유준과 함께 병원에 와서 입원 수속을 했고 20만 원의 입원 보증금만 내고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간신히 도아린이라는 ‘돈 나무’를 잡았다고 생각한 도정국은 그를 놓칠 리 없었다. “넌 왜 아빠를 안 알아보려고 고집을 부리는 거야?” 도정국은 억지로 눈물을 두 방울 짜내며 말했다. “너 대회 때 아빠가 너 응원하려고 600만 원 넘게 불법 티켓을 샀잖아.” “아린아, 네가 네 시어머니 앞에서 친아빠를 모른 척 하면 네 시어머니가 속 안 상하겠어? 아빠도
이게 바로 혈연이다.외모가 비슷하지 않은 거 말고도 도아린과 도정국은 기질도 완전히 달랐다. 도아린은 완벽한 맞춤 양복에 한정판 가방을 들고 있었다. 그와 함께 있는 여성 역시 고급스러운 의상에 귀걸이에 달린 진주만 해도 값이 엄청날 정도였다. 반면 도정국은 수염이 덥수룩하고 얼굴이 움푹 팬 채 지저분한 옷차림으로 바닥에 앉아 있었다. 그는 마치 생활이 어려운 거지처럼 보였다.그 모습을 본 구경꾼들이 의아해하며 수군거렸다. ‘저 사람 혹시 미쳤나? 아무나 잡고 아버지라니.’‘그냥 아무나 붙잡은 게 아니라 저 사람 분명히 돈이 많을 거야.’‘돈 많은 사람들은 그런 거 좀 도와주려고 하지 않겠어? 차라리 약값 내달라고 부탁하면 되지. 왜 갑자기 아버지라고 우기는 거야? 갑자기 아버지라고 나타나면 누가 기분 좋겠어.’도정국은 사람들이 자기 말을 믿지 않자 화가 나서 일어섰다. “도아린! 네가 친아빠 죽음을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면 하늘의 천벌을 받게 될 거다! 어디 한번 맘대로 해봐!”도아린은 웃음기를 머금고 눈을 약간 쪼그려 말했다. “아저씨, 이런 말을 하면서 자식이 벌 벋을까 봐 겁 안 나세요?”“...” 도정국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도지현은 그를 증오해 법적으로 후견인마저 도아린으로 바꿔버렸다. 그가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아들은 도유준인데 그 아들이 죽는다면... 도정국의 두 눈이 살짝 떨렸다. 그는 팔을 뻗어 길을 막았다. “내 아들에게 저주하지 마! 오늘 네가 내 병원비를 안 내면 너는 여기서 나갈 수 없어! 경찰 불러! 경찰이 오면 네가 어떻게 둘러대는지 두고 보자!”주위 사람들은 핸드폰을 들고 영상을 찍을 뿐이었다. 도정국은 아무도 반응하지 않자 간호사에게 소리쳤다. “너 돈 받고 싶잖아? 경찰에 신고해! 이 여자를 유기죄로 고소할 거야.”간호사는 도아린을 난처해하며 바라보았다.그녀는 그저 아무나 붙잡아 딸이라고 주장할 리 없다고 생각했다. 모든 집안에는 저마다의 사연이 있는 법이니까. 자기 집도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여전히 희미하게 말다툼 소리가 들려왔다. 주현정이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준비 철저하게 했네.” 도아린은 고개를 저으며 미소 지었다. 윤명희는 정말 딸을 아끼는 사람이었다. 딸이 실종된 뒤에도 호적을 정리하지 않았고 심지어 ‘진씨 글로리’의 지분을 딸에게 남겨두었다. 도아린이 진씨 가문에 들어간 후 윤명희는 그녀에게 지분을 받게 하기 위해 주민등록증부터 새로 만들라며 재촉했다. 도아린은 자신이 진씨 가문에 어떤 공도 세운 적이 없기에 그들의 혜택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윤명희의 생각은 달랐다. 윤명희는 밥도 제대로 먹지 않고 밤잠도 설치며 도아린이 새 주민등록증부터 발급받게 몰아붙였다. 그리고는 진씨 가문 사람들이 얼마나 아끼는지 먼저 충분히 느껴보고 그다음에 지분을 받을지 말지 결정하라고 하였다. “그래서 이름은 바꿀 생각이야?” 주현정은 핸드폰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나도 줄 게 좀 있는데.” 도아린은 놀란 듯 눈이 크게 떠졌다. “지유는 지나친 사랑만 받고 자라서 이미 망가졌어. 우리 주씨 가문의 공든 탑을 걔한테 맡기면 끝이 뻔히 보여. 백 년 뒤 조상님들 얼굴을 어찌 보겠어? 아니. 백 년도 못 가 내가 죽기도 전에 가문 사람들이 욕부터 하겠지.” 도아린은 그녀의 손을 꼭 잡으며 말없이 위로했다. 그녀는 주현정과 배석준의 이혼 조건을 알고 있었다. 주현정은 배지유에게 JS픽처스를 맡길 마음이 처음부터 없었던 건 아니었다. 다만 그녀는 손보미가 자칫 회사 경영을 엉망으로 만들까 봐 두려웠다. 손보미는 워낙 교활한 사람이라 주현정이 혼수상태였던 틈을 타 배석준과 약혼식까지 밀어붙일 정도였다. 배지유는 겉으로는 부모의 이혼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재산 분할을 못 받을까 봐 주현정을 끈질기게 괴롭혔다. 그런 딸에게 실망한 주현정이 그녀에게 JS픽처스를 맡길 리 없었다. 도아린은 망설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어머니, 저
모형에 들어간 국물은 완전히 씻어낼 수 없었고 지금 당장 재료를 선택해서 조각한다고 해도 대회에 참가하기에는 늦었다.“복구할 수 없습니다.”변슬기는 사실대로 말했다.“어떻게 보상해주길 원해?”주현정이 덤덤하게 물었다.“학교에서 너한테 우수상을 주라고 할까 아니면 다른 대회에 참가하게 추천해달라고 할까.”“제일 좋은 건 저를 전국 디자인 대회에 참가할 수 있도록 추천해주는 거죠.”변슬기는 고민도 안 하고 이렇게 대답했다.해남대학교의 디자인 대회는 신입생을 환영하는 절차 중의 하나였다. 학생들이 자신의 실력을 보여주도록 할 수 있고 교수님들이 학생들의 특기를 빠르게 알아볼 수 있도록 했다.그런데 이 대회에서 수상한다고 해도 딱히 실속이 많지는 않았다. 만약 전국 디자인 대회에서 수상하게 된다면 학교에 영예를 선사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실력도 증명해 보일 수 있다.주현정은 그녀가 마음에 드는 눈빛이었다.“자료를 아린이한테 줘. 다 준비되면 너한테 연락할게.”변슬기의 마음은 만감이 교차했다. 그녀는 주현정이 정말 자신의 요구를 들어줄 줄은 몰랐다.배지유의 남자친구는 밑도 끝도 없이 자신을 향해 소리를 질렀는데 배지유의 친엄마는 사리 분별을 잘하는 사람이었다.“아줌마, 감사합니다. 배지유는 많이 다쳤나요? 치료 비용은...”“다리를 잃게 됐어. 의족은 적어도 2억이야.”변슬기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는 해남에 온 지 얼마 안 된 시점에 사고를 쳐서 부모님은 아마 화가 많이 나셨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감당하겠다고 했으니 그 말을 어길 수는 없다.주현정은 도아린을 보면서 말했다.“연회에 참석하는 거 잊지 말고. 나는 먼저 가볼게.”도아린은 주현정이 떠나는 것을 보고 있다가 뒤돌아 차에 올라탔다.일북이 운전하고 도아린은 조수석에 앉았고 안민아와 변슬기는 뒷좌석에 앉았다.“언니, 배지유가 언니 전남편의 동생이라고 들었는데 그러면 주 대표님은 전 시어머니겠네요.”안민아는 뒷좌석의 중간으로 몸을 옮기며 도아린의 소매를 끌어당겼다.“슬
이튿날, 도아린은 LY의 고위인사를 만나러 갔다.안민아는 그녀가 강재민과 데이트를 하러 가는 줄 알고 몰래 따라갔는데 도아린은 상가에 들어가자마자 사라졌다. 관광 엘리베이터는 영화관까지 직행했다.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밖에 있던 여자는 고개도 들지 않은 채 안으로 걸어들어오더니 들고 있던 커피를 도아린의 소매에 쏟았다.“죄송합니다!”여자는 미안한 표정을 했다.“제가 가서 씻어드릴게요. 깨끗하게 못 씻으면 돈을 배상하겠습니다.”“그럴 필요 없어요.”도아린은 고개를 들고 주위를 훑어보았다.“그럴 필요 없다니요! 화장실이 바로 저기 있어요. 갑시다.”여자가 계속 고집을 부리자 도아린은 잠시 생각하더니 그녀를 따라갔다.화장실에 들어가서 도아린은 칸막이로 된 작은 공간의 문을 열어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다음 말했다.“다음에는 작게 좀 해요. 이 비율이 맞는다고 생각해요?”여자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숙여 확인했다.“연예계에서 요즘 유행하는 것이에요. 저를 찾아와서 주문하는 게 다 이 사이즈입니다.”여자는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말하며 도아린에게 가면을 하나 건넸다.도아린이 가면을 쓰자 그녀도 함께 가면을 썼다.가면은 재질이 부드럽고 얼굴을 가렸을 뿐만 아니라 목까지 가렸고 턱에는 금속으로 된 부분이 딱 들어맞게 설계되어 있었다. 도아린은 몇 번 조절하더니 다시 말을 했는데 이때 목소리는 조금 거친 여자의 목소리로 변했다.“어제 실시간 검색어는 봤어요?”“봤어요.”여자는 목 부분의 위치를 조절하고 있었고 목소리가 높았다가 낮았다가 하더니 익숙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광고를 산 사람이 있어요. 하지만 통제 가능해요.”“통제하지 말아요. 시끄러워질수록 더 좋아요.”여자는 가면 조절을 마치고 피식 웃었다. 그 사람은 지금 돌을 들어 제 발등을 깨고 있다.두 사람은 예약한 상영관으로 가서 지정된 자리에 앉았다.여자가 핸들을 누르니 두 의자는 살짝 기울어졌고 발아래의 땅이 갈라지더니 의자가 서서히 아래로 내려갔다.영화관은 L
그는 도아린과 함께 메이크업에 관한 얘기를 나눴고 컴퓨터를 지키고 있는 두 사람은 여전히 침묵했다. 30분 정도 지나 방문이 열렸다.“죄송합니다. 일이 있어서 늦었어요.”체격이 큰 남자가 들어왔고 가면의 이마에는 검은색의 도화 표식이 있었다.그는 도아린에게로 직진하더니 곁에 앉아 그녀를 훑어보다가 손을 내밀었다.“환영해요.”행실이 좋지 못한 남자들의 전형적인 목소리였다.도아린이 은퇴했을 때 현무와 백호는 모두 여기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다.하지만 현무의 키와 몸매와 분위기가... 그녀는 이상하리만큼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아직 가입한다고 결정하지 않았습니다.”도아린은 여전히 아랑곳하지 않는 태도로 말했다.“저 혼자서도 큰돈을 벌 수 있는데 여기 가입하면 뭐가 좋은 거죠?”“LY가 가지고 있는 자원은 당신이 상상할 수 없을 겁니다.”청룡은 낮은 음성의 아저씨였다.그가 조직에 있은 시간은 도아린보다 길었다. 입을 열자마자 들리는 건 도아린에게 익숙한 음성이었다.“요구에 맞는 작품을 제공하기만 한다면 LY는 당신의 앞길을 보장해줄 것이고 당신에게 연구에 필요한 각종 귀중한 보물들을 제공할 수 있어요.”도아린은 이게 그녀가 했었던 그 일이라는 걸 알고 있다.특정 물품을 암호로 하여 조직과 인맥들 사이에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다.“명예는 뜬구름이고 돈이야말로 근본이죠. 지금은 두 손으로 돈을 벌 수 있지만 언젠가는... 그럴 바에는 인맥을 많이 쌓고 부족함 없이 사는 게 좋죠.”백호는 낯선 아저씨의 음성이었고 그의 말속에는 경고의 뜻이 담겨있었다.아현은 두 손으로 벌어 먹고사는 사람이었고 너무 훌륭하니 질투도 많이 살 것이다.만약 언젠가 그녀가 돈벌이하는 이 직업을 잃게 된다면 그 결과는 처량함을 넘어서 무척 처참할 것이다.도아린은 아무 말도 없었다. 고민에 빠진 듯해 보였지만 사실 백호의 신분을 추측하는 중이었다.3년 안에 고위 인사의 자리까지 올라온 사람이라면 신인은 아닐 것이고 백호의 어깨를 밟고 올라온 사람일 가능성도 있었다.
안민아는 도아린의 곁으로 가서 그녀가 고른 넥타이의 가격이 몇백만 원이나 하는 것을 보고 놀란 동시에 그녀가 너무 사치스럽다고 생각했다.도아린이 쓰는 돈은 진씨 가문의 돈이고 삼촌, 큰 오빠와 둘째 오빠가 고생해서 벌어온 돈이었다.도아린은 금방 진씨 가문에 돌아왔고 그녀가 삼촌의 친딸이 맞기는 하지만 가문에 공헌이 없는데 돈을 이렇게 쓰는 것은 너무하다고 생각했다.안민아가 진씨 가문에 머물 때 먹고 쓰고 하는 것도 다 진씨 가문의 돈을 쓰기는 하지만 본인은 다르다고 생각했다.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진씨 가문에서 삼촌, 숙모와 함께 시간을 보냈고 두 사촌 오빠와 함께 자랐다. 그녀는 진씨 가문의 사람들에게 많은 위로가 되어주었다.만약 도아린이 계속 돌아오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삼촌 가족들의 마음속에 있는 진세은의 자리를 대체할 수도 있었고 어쩌면 진세은에게 갈 재산을 자신에게 넘겨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물론 사실대로 보면 그녀는 진씨 가문의 재산을 조금이라도 물려받을 명분이 없지만 그래도 안민아는 도아린이 진씨 가문의 돈을 쓰는 게 못마땅하다고 생각했다.불쾌한 마음을 억누르며 안민아는 도아린의 손에서 넥타이를 빼서 다시 진열대에 올려놓았다.“보통 커플일 때 넥타이를 선물하죠. 일반 친구라면 책이거나 영양제를 선물해요. 언니, 누구한테 선물할 거예요?”도아린은 자기 입으로 강재민을 안 좋아한다고 말했는데 자신에게 딱 걸린 지금 그녀가 어떻게 변명할지 안민아는 지켜보고 있었다.“책이 좋은 선택일 것 같네. 근데 무슨 책을 좋아하는지 모르겠어.”도아린은 혀를 차면서 조금은 아쉬운 표정이었다.“재민 씨는 우주에 관련된 책을 좋아해요.”도아린은 이미 넥타이핀 진열대 앞으로 갔고 뒤돌아 안민아를 보면서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안민아는 영문을 모르다가 도아린이 넥타이핀을 집어 들었을 때야 알아차렸다.도아린은 강재민에게 선물한다고 얘기하지 않았는데 안민아가 먼저 강재민이 뭘 좋아한다고 얘기했다. 이는 자신이 그녀를 의심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셈이었다
민철홍은 무표정한 얼굴로 배지유를 한 번 쳐다본 후, 다른 사람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다들 돌아가서 자신의 자리 지키세요! 이전에 맡았던 프로젝트는 차질 없이 진행하도록 하고 잘 되면 배 대표님께서 보상이 있을 겁니다. 다만 제자리를 못 지키고 딴 궁리를 한다면 짐 싸서 나가야 할 거예요!”말을 마치고 그는 주현정에게 인사를 한 뒤 자신의 사람들과 함께 떠났다.“민 사장님!”배지유가 크게 외쳤지만 그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고 남은 사람들은 서로 말없이 눈치를 봤다.‘민 사장 말 들으니 큰 문제가 없나 보네.’‘아마 얼굴의 상처가 심해서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건가 봐.’‘지금은 함부로 행동하면 안 되겠네. 나중에 책임을 물으면 어려워질 테니까.’곧, 병원 복도에는 배지유만 남았다.그녀도 더는 제 편이 없다는 걸 깨닫고 더 이상 버티지 않고 돌아가려 했다.“배지유를 지금 당장 집에 데려가! 내가 허락하지 않으면 외출하지 못하게 해!”주현정이 싸늘한 어조로 명령했다.“네! 알겠습니다!”한 경호원이 휠체어를 밀기 위해 나섰다.배지유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저항했다.“집안에 감금하는 건 불법이야!”“이게 다 널 위해서야. 더는 네가 그놈들이랑 손잡고 회사를 구렁텅이에 밀어 넣고 네 오빠의 목숨을 노리게 할 수는 없어! 너 정말 남은 생을 감옥에서 보내고 싶어?”“내가 그런 게 아니에요! 엄마! 왜 도아린 말을 믿고 내 말은 안 믿는 거예요? 내가 친딸이잖아요!”배지유가 아무리 저항하고 발버둥 쳐도 경호원은 휠체어를 붙잡고 밖으로 밀고 나갔다.배지유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집에만 가만히 앉아 배건후의 처벌을 기다릴 수 없었다.그렇다고 또 성대호에게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돌아가면 그는 또 갖은 방법으로 그녀를 괴롭힐 테였다.하지만 지금은 성대호만이 그녀를 데리고 여기를 뜰 수 있었고 모욕당하는 것과 감옥에 가는 것 중에서 그래도 전자가 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엘리베이터는 계속 내려가다 7층에 도달한 후 많은 환자들
주현정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다시 분노에 차 소리 질렀다.“병실 밖에서 소란 피우지 말라고 했잖아요!”간호진이 곧바로 달려오고 주현정이 민철홍을 보며 말했다.“민 사장님은 나랑 안으로 들어가요!”“알겠습니다!”민철홍은 그녀를 따라 병실로 들어갔다.배지유도 틈을 타 다른 사람들에게 들어가자고 재촉하며 말했다.“이건 위급한 상황이에요! 지금 들어가지 않으면 제 오빠의 마지막 모습을 볼 수 없을 거예요!”그녀는 휠체어를 밀며 병실 안으로 달려가려 했지만 도아린이 문 앞에서 막았다.“도아린! 너는 도대체 뭐냐! 왜 우리 집안일에 자꾸 끼어들어!”“배지유, 네가 왜 회사 임원들을 여기로 불렀는지 그 꿍꿍이를 모를 것 같아?”도아린이 차분하지만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하며 배지유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너는 성대호 그 사람과 손잡고 건후 씨를 모함하고 모욕했어, 대체 뇌물을 얼마를 받은 거야?”배지유가 대답하기도 전에, 도아린이 시끄러운 임원들을 향해 말을 이어갔다.“여러분, 주 대표님의 지시에 따르고 회사를 지키지는 못할망정, 배지유처럼 직책도 없는 사람이 선동하는 대로 이렇게 우르르 몰려오신 건 정말로 회사 생각해서 그런 건가요? 아니면 배지유처럼 뇌물을 받고 이러시는 건가요?”“함부로 말하지 마! 우리는 배 대표님이 걱정돼서 온 거야!”한 노인이 불만을 표하며 반박했다.“여기에 있는 임원분들도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해요. 배지유는 자기 어머니의 약을 바꿔치기한 패륜 자예요. 게다가 자신의 친구들에게 제 아버지를 유혹하라고 시켜서 자기 부모님의 결혼생활을 파탄 냈어요. 이런 몰상식한 사람에게 선동당한 여러분도 똑같이 천벌 받을 짓을 하고 있는 거라고요!”“...”많은 사람들이 도아린의 말에 얼굴이 뜨거워졌다.그녀의 말이 맞았다. 그들 중 몇 명은 배석준이 정보를 캐내기 위해 보낸 사람들이었다.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진 배석준은 지금 전 대표의 신분으로 그 자리를 차지할 기회를 호시탐탐 엿보고 있었고 다시 회사의 권력을 쥐게 되면 지
“어떻게 된 거예요?”도아린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주현정을 바라봤고 주현정은 입을 가린 채,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병실 안에는 환자의 생명을 유지하는 각종 의료 장비가 가득했지만 정작 병상은 텅 비어 있었다.“건후 씨는 어디 있죠?”도아린은 불길한 예감이 엄습하면서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주현정의 팔을 단단히 붙잡으며 물었다.“제발 말해 주세요. 건후 씨, 도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건후가, 건후가...”그 순간, 경호원의 전화가 주현정의 말을 끊어버렸다. 그녀는 급히 눈물을 닦고 최대한 차분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말하세요.”“아가씨가 회사의 몇몇 임원분들을 데리고 와서는 배 대표님을 만나게 해달라고 소란을 피우고 있습니다!”“곧 나갈게요.”전화를 끊은 주현정은 도아린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일단 밖의 문제를 해결하고 내 사무실에서 이야기하자.”도아린이 병상을 바라보았다.“여기까지 왔다면, 완전히 단념하게 만들어야죠.”30분 후.주현정과 도아린이 병실 문을 나섰다.“배 대표님 상태가 어떤지 정확한 설명을 해 주세요!”“추천하신 임시 대표가 능력이 나쁘진 않지만 결국 우리 사람이 아니잖습니까? 배 대표님께서 만약 장기간 치료가 필요하다면 우리 쪽에서 적절한 대표를 선출하는 게 맞습니다!”“엄마! 이사님들도 이렇게 다 오셨는데, 도아린 같은 외부인은 오빠를 만나게 하면서, 왜 정작 가족인 저희는 못 보게 하는 거예요?”배지유가 휠체어를 조종하며 앞으로 나섰다.주현정은 딸을 싸늘하게 노려보다 곧바로 무리의 중심에 있는 남자를 향해 말했다.“민 사장님, 제가 여러분을 못 만나게 하는 게 아닙니다. 지금 배 대표는 절대적인 안정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무더기로 병원에 몰려와 소란을 피우는 건 환자를 위하는 행동인가요? 아니면 그의 치료를 방해하려는 건가요?”주현정의 목소리에 카리스마가 실려 있고 민철홍은 주변의 이사들을 돌아보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그리고 배지유를 한 번 힐끔 쳐다본 후, 입
도아린은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배건후가 자신의 명의로 보유한 회사의 모든 지분을 그녀에게 이전한 것이다!이건 마치... 유언을 남기고 떠날 준비를 하는 것 같았다.도아린은 애써 눈물을 참으려 했지만 결국 눈물은 서류 위로 떨어졌다.도아린이 서둘러 닦아내며 물었다.“교통사고 이후로, 장 변호사님도 배 대표를 한 번도 못 만났죠?”“네. 이건 배 대표님이 미리 준비해 둔 거였어요. 저에게 절대 먼저 도아린 씨를 찾지 말라고 했습니다. 도아린 씨가 직접 찾아오면 그때 서류를 넘기라고 했어요.”도아린이 눈을 감은 채, 조용히 눈물을 훔쳤고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배건후가 미리 위험을 감지해서 이런 거라면 분명 대응책도 마련해 두었을 것이다.그녀에게 슬퍼할 시간이 없었다.도아린은 배건후가 맡긴 책임을 짊어져야 했고 악인들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게 놔둘 수 없었다!그녀는 빠르게 서류 절차를 마무리한 후, 차에 올라타 청룡에 메시지를 보냈다.[누군가 모건 그룹을 노리고 있어요. 그들이 순순히 내가 회사를 접수하도록 두지 않을 거예요. LY의 인맥을 활용할 필요가 있어요.]청룡이 움직이자, 서대은도 곧 소식을 접하고 도아린에게 연락을 해왔다.[보스! 나에게 다시 한번 만회할 기회를 줘! 이번엔 절대 실망하게 하지 않을게!][아버님은.][이미 다른 곳으로 옮겼어. 그러니 이제 더 이상 우리 아버지를 이용해 날 협박할 수 없을 거야!][네가 하는 것 봐서.]진씨 가문의 사람들은 배건후가 미리 준비해 둔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그가 혼자 결정해 도아린에게 모든 것을 넘긴 것이었지만 도아린은 손 놓고 있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우리가 도울 일은?”“지금은 필요 없어요!”도아린이 고개를 저었다.“필요할 때가 오면 주저 없이 도움을 요청할 거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다음 날, 도아린은 곧장 연성으로 돌아가 주현정을 만났다.주현정은 아무 말 없이 그녀를 꼭 끌어안았고 도아린의 어깨가 눈물로 흠뻑 젖
“말씀하신 일은 제가 결정할 수 없을 것 같군요.”장수현은 공손한 태도로 답했다.비록 배건후의 사건에서 승소할 자신은 있었지만 남궁유민의 업계 명성은 너무나 컸다.게다가 님궁유민은 그가 오랫동안 존경해 온 인물이었기에 본능적으로 약간의 열등감을 느끼고 있었다.남궁유민은 책상 위의 유자차를 흘끗 쳐다본 뒤, 다시 입을 열었다.“모건 그룹의 공로는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에요. 우리가 확보한 새로운 증거로 볼 때 배 대표님이 주범은 아니지만 일부 불법적인 행위에 가담한 것은 사실입니다.”남궁유민이 소파에 몸을 기댄 채, 다소 오만한 태도로 말했다.“만약 배 대표님이 순순히 협조한다면 위에서는 적절히 조정해 줄 생각도 있어요. 하지만 계속해서 회피한다면...”장수현이 눈살을 찌푸렸다.그의 말에 동의할 수는 없었지만 말속에 숨은 의미는 분명히 읽을 수 있었다.경찰과 검찰이 고위급 인사를 조사하고 있으며 배건후가 이번 사건과 연관된 것으로 보였다. 배건후가 그를 고발하기만 하면 그 자신의 혐의는 쉽게 벗어날 수 있지만 끝까지 회피한다면 그를 ‘책임을 뒤집어쓸 희생양'으로 만들겠다는 뜻이었다.장수현이 강한 어조로 말했다.“현재 우리가 변호하는 사건은 배 대표님의 불법적인 회사 자금 횡령 혐의입니다. 이 사건이 완벽하게 해결된 후에야, 다음 사건을 논의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남궁유민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그건 장 변호사님께서 이미 새로운 증거를 갖고 있는 거 아닌가요? 아니면 그 증거가 배건후가 나서서 본인이 직접 입증해야만 하는 거라 그러시는 건가요?”도아린은 더 이상 듣고만 있을 수 없었다.남궁유민은 다른 곳에서 배건후의 정보를 알아낼 수 없자 장수현을 떠보러 온 것이다.끼익, 문이 열리며 도아린이 직접 나왔다.“남궁유민 씨!”그녀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피고인의 변호사를 사적으로 접촉하는 건 절차상 불법 아닌가요?”도아린을 보자마자 남궁유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내 그의 표정에는 분노
표절 논란이 다시 불거진 건 분명히 도아린과 관련이 있었고 아버지가 쉽게 고개를 숙이지 않는 이상 도아린을 달래서 해결하는 수밖에 없었다.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강재민은 빠르게 계단을 내려갔다.하지만 막 1층에 도착하자 머리 위에서 강재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도아린이 사고를 당했을 때 넌 바로 달려가지 않았어. 이미 기회를 놓친 거야. 지금 표절 논란이 다시 불거진 참인데,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우리 주얼리 매장에 심각한 타격을 줄 거라고.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칠 생각이야?”강재민의 눈빛이 흔들렸다.그는 순간적으로 욕지거리가 나갔지만 결국 방향을 바꿔 다시 위층으로 뛰어 올라갔다.강재희를 지나칠 때, 차갑게 말했다.“누나가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를 줄 알아? 내 사람한테 그럴 생각은 접어.”강재희가 그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정말 여자를 모르네!’한편, 도아린이 장수현을 찾아갔을 때 그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드디어 절 찾아왔군요!”두 사람이 악수할 때 심지어 그의 눈가가 촉촉해졌다.그가 유자차를 한 잔 내밀었지만 도아린은 차를 바라보며 손을 대지 않았다.“배 대표님이 알려주신 거예요. 아린 씨가 오면 유자차를 타 드리라고 하셨죠.”장수현은 배건후의 말을 떠올리며 덧붙였다.“따뜻한 물로 우려내고 레몬즙 두 방울 추가했어요. 한 번 맛보세요.”도아린이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머그컵을 집어 들었다.작은 컵이었지만 그녀는 손이 떨려 쉽게 들지 못했고 장수현이 걱정스럽게 물었다.“손이 아직 회복되지 않았나요?”“그런게 아니라...”말을 마친 후 도아린이 유자차를 한 모금 마셨다. 분명 그녀가 좋아하는 맛이었지만 갑자기 코끝이 시큰했다.“배 대표의 사건은요?”“그 사건은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우리가 가진 증거만으로도 배 대표님의 결백을 입증할 수 있어요.”장수현은 서랍에서 두 개의 서류봉투를 꺼냈다.“이 두 개의 문서는 도아린 씨의 협조가 필요합니다.”“저요?”도아린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찻잔
다음 날, 배지유는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하지만 그녀가 아무리 사정을 해도 경호원은 그녀를 병실에 들여보내지 않았다.결국 그녀는 의사를 이용할 방법을 생각했다.“아이고!”의사가 병실에서 나오자 그녀는 일부러 다리를 움켜잡으며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제 다리가 너무 아파요! 다시 감염된 거 아닐까요? 유 쌤, 제발 한 번만 봐주세요!”유승호가 다가가려 하자 경호원이 막아섰다.“저희 대표님 돌보느라 수고가 많으십니다. 아가씨는 저희가 병원에 모셔가겠습니다.”“유 쌤! 제발요! 오래 걸리지 않아요!”배지유가 손을 뻗어 유승호의 가운을 붙잡으려 했지만 유승호는 경호원과 함께 그녀를 지나쳐 가버렸고 더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문 앞을 지키고 있던 경호원이 말했다.“아가씨, 저희가 병원으로 모시겠습니다.”배지유는 악에 받쳐 어금니를 꽉 물었다.“필요 없어요! 제가 알아서 할게요!”경호원은 그녀가 엘리베이터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바로 주현정에게 보고했다.주현정이 비웃으며 말했다.“이제 그놈들도 슬슬 초조해지는군. 조급하면 조급할수록 약점을 드러내기 마련이지.”“어디 나갈 거야?”진경수가 단정하게 차려입고 계단을 내려오는 도아린을 보고 급히 다가갔다.“지우 씨의 촬영이 거의 끝나가요. 가서 봐야겠어요.”“일남이 하고 일북이 보호하고 있으니 별일 없을 거야. 그러니 너도...”진경수가 그녀의 가방을 잡으며 말렸지만 도아린이 피했다.“오빠, 이렇게 날 집에 가둬놓는 건 보호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적들에게 숨 돌릴 기회를 주는 거야.”“가둬놓다니...”진경수가 눈을 피하며 머뭇거리다 결국 입을 열었다.“그놈들은 인간성이 없어! 위험한 일은 우리가 할 테니, 너는 그냥 부모님 곁에서 안전하게 있어 주면 안 되겠어?”“오빠, 솔직히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긴다 해도 진씨 가문의 사업에는 영향이 별로 없잖아요. 하지만 오빠나 큰오빠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그게 더 심각한 문제예요.”도아린이 가볍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배 대표가 사
주현정은 의자에 몸을 기대며 무표정한 얼굴로 딸의 연기를 지켜보았다.배지유는 몇 번 울먹이다가 말문을 열었다. 그녀는 모든 책임을 남궁유민에게 떠넘기려고 했고 사실 그가 자신을 강요한 것이었기에 정당하다고 생각했다.“오빠가 남궁 변호사한테 내 교통사고 소송을 도와달라고 했는데 그 변호사가, 글쎄, 나한테 오히려 오빠를 모함하라고 했어요.”“나는 오빠가 얼마나 똑똑하고 능력 있는 사람인지 잘 알거든요. 오빠가 절대 회사 자금을 횡령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겉으로는 남궁유민의 협박에 따르는 척했지만, 사실은 오빠가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을 보길 바랐어요! 오빠를 해칠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주현정은 기가 막혀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딸이 이렇게 교활하고 악독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그리고 자신이 저지른 나쁜 행동을 이렇게 고상한 이유로 정당화하려는 모습에 실망감이 몰려왔다.배지유는 눈물이 나지 않자 점점 더 통곡하며 눈물 연기를 했지만 애쓴 보람도 없이 눈에는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내가 처음에 약을 바꾼 것도 엄마랑 아빠가 이혼하지 않게 하려고 그랬던 거예요. 엄마 목숨을 위협하려던 게 아니라 엄마가 좀 더 쉬었으면 하는 마음에 그랬다고요!”“게다가 내가 왜 오빠를 해치려 하겠어요? 난 미끼로 자처해서 남궁유민 그 배신자를 까발리려고 그랬던 거예요!”“엄마! 잘 생각해 보세요. 만약 두 분이 이혼하지 않았다면 우리 가족은 계속 같이 살았을 거고 아빠도 그렇게 되지 않았을 거예요. 나도 남궁유민에게 협박당하지 않았을 거고, 오빠한테 무슨 일이 생긴다 해도 회사 일을 아빠가 처리할 수 있었을 거란 말이에요! 내 말이 틀렸어요?”주현정은 점점 더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하는 딸에게 짜증이 나서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남궁유민이 널 협박했다고 하는데 그 사람이 무슨 수로 널 협박할 수 있겠어?”“그게...”배지유는 급하게 머리를 굴리며 고개를 숙였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지만 아픈 줄 몰랐다.잠시 고민하던 배지유는 사실대로 말
“누구...?”“너무 팬이에요! 저 ‘화성의 별빛’이에요!”“아, 안녕하세요!”도지현은 그녀를 바로 기억해 냈다.이 팬은 그가 방송을 시작한 날부터 채팅방에 있었고 팬 단톡방에서도 활발히 활동하는 사람이었다.도지현의 스태프가 그녀에게 팬카페 관리자가 되어달라고 제안했지만 바쁘다는 이유로 거절하며 대신, 팬으로 남아 계속 응원하겠다고 했다.두 사람은 예의상 가볍게 악수를 나눴고 전미나는 안절부절못하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저기... 부탁드릴 게 있는데, 저분한테 잘 좀 이야기해 줄 수 있을까요? 제가 급히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 보험사 직원이 올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어요. 수리비는 제가 전액 부담할게요.”도지현은 강재민을 바라보며 말했다.“형...”강재민은 낮게 한숨을 내쉬더니 손을 휙 저으며 말했다.“그냥 가세요. 괜찮습니다. 너도 얼른 차 타.”“정말 고맙습니다!”전미나는 연신 인사를 하며 빠르게 자신의 차로 돌아갔고 강재민은 명함을 휙 차 안으로 던지고 시동을 걸었다.명함이 미끄러져 내려가 도지현의 발밑에 떨어졌다.“전미나?”‘티파니 주얼리의 수석 디자이너... 거긴 진씨 가문에서 운영하는 보석 브랜드잖아?’도지현은 누나가 자신에게 보낸 메시지를 떠올리며 강재민에게 물었다.“형, 이 명함 제가 가져가도 될까요? 저 팬분인데, 팬카페 관리자로 모시고 싶어서요.”“가져가.”강재민은 애초에 전미나에게 차 수리비를 받을 생각이 없었고 단지 티파니 주얼리의 꼬투리를 잡고 싶었을 뿐이였다.그는 도지현을 집 앞에 내려준 후, 바로 차를 수리하러 갔다.도지현은 도아린의 부탁대로 그날 사고 이후 모건 그룹의 동향과 배건후의 근황을 검색하기 시작했다.그러나 결과는 뜻밖이었다.그날 사고 이후, 주현정은 모건 그룹의 고위 부사장을 지명해 그룹 운영을 대리하게 했다.한편, 배건후가 입원한 사립 병원은 철저한 경비 속에 통제되고 있었고 경호원들이 출입을 관리하고 있어 의료진 외에는 그 누구도 접근할 수 없었다.뿐만 아니라, 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