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다연은 조금 겁이 났다.그녀의 기억 속 유강후는 항상 덤덤하고 차갑고 고고한 사람이었다.화를 내더라도 감정을 절제하고 격한 언사를 퍼붓지 않는 사람이었다.하지만 지금 모두가 보는 앞에서 자신을 이런 곳에 밀어 넣고 이상한 말까지 하는 걸 보니 어지간히 화가 난 게 아닌 것 같다.희미한 불빛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의 눈에서 명백한 분노를 볼 수 있었다.어둡고 얼음처럼 차가워 감히 말 한마디라도 잘못하면 산 채로 짓밟아 버릴 것만 같았다.온다연은 어쩔 수 없이 조금 움츠러들었다.무섭긴 해도 동시에 억울함도 밀려왔다.그녀는 분명히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그런데 유강후가 화가 단단히 난 이상 그에게 반항하고 싶지 않아 그의 손을 잡고 자신의 얼굴에 대고 부드럽게 비비적거렸다. “아뇨, 안 좋아해요.”유강후는 조금 전 상황과 밖에 있는 사람들이 온다연을 두 눈에 담았단 생각에 이성을 잃었다.그녀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오로지 자신의 것이어야만 한다. 예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반드시!그는 갈수록 병적으로 온다연에 대한 집착과 소유욕이 심해지며 통제하려 드는 자신을 발견했다.하지만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것이니 두 눈에 자신만 담아야 한다.그러니 온다연의 나약하고 애교 섞인 모습은 별 소용이 없었다.눈 밑의 차가움이 한층 더 짙어진 그는 그녀의 턱을 감싸며 차갑고 딱딱하게 말했다. “전에는, 학교 다닐 때 좋아한 적 있어?”온다연의 등골에 한기가 올라오고 몸이 살짝 굳어졌지만 얌전히 그의 손목을 잡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아뇨, 좋아한 적 없어요.”그녀는 잠시 멈칫하며 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아무도 나를 좋아하지 않았고요.”그런 환경에서 모두가 그녀를 전염병이라도 되는 듯 피하기 바쁜데 어디 고백이라도 했겠나.간혹 그녀를 불쌍히 여겨 친구로 지내고 싶어 하는 사람이 한두명 생겼어도 며칠도 안 되어 얼굴이 시퍼렇게 매를 맞았기에 그때부터는 다들 그녀만 보면 피하기 바빴다.이 말을 들은 유강후
온다연은 그날 밤의 불쾌한 기억이 되살아나자 깜짝 놀라 발버둥 쳤지만 움직일 수가 없었다.놀란 그녀는 목소리마저 달라졌다.“안, 안 돼요. 아파요. 하지 마요...”유강후의 몸은 터질 것만 같았다.그동안 일부러 참아왔던 모든 감각이 한꺼번에 되살아나며 그녀의 여린 귓불을 잘근 깨물더니 유혹하는 듯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안 아파, 이젠 안 아플 거야...”온다연은 겁에 질려 몸을 웅크리고 그와 최대한 멀어지려고 애쓰면서 흐느낌이 섞인 목소리가 나왔다.“안 돼요, 밖에선 안 돼요, 제발...”그 순간 밖에서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터지며 야릇한 분위기가 깨지자 눈을 질끈 감았다 뜬 유강후의 눈은 이성을 되찾은 듯싶었다.그는 잠시 주위를 둘러보았다.확실히 좋은 장소도 아니었고 방음도 좋지 않았다.주요하게는 정말로 밖에서 그녀를 탐할 생각은 없었다. 처음의 상처를 돌이킬 수 없으니 앞으로는 더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그는 옷매무시를 가다듬고 온다연을 창가에서 안아서 내려주고는 그녀의 옷도 정리해 주었다.평소의 차갑고 진중한 목소리로 돌아온 그가 말했다.“이따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그냥 집어. 돈 아낄 필요 없어.”온다연은 호기심이 동했다.“아저씨, 돈 많아요?”여기가 무척 고급스러워 보였고 전부 최고급 명품 브랜드인데 아무렇게나 집으면 얼마나 써야 할까.질문을 뱉자마자 그녀는 자신이 말실수했다는 것을 깨달았다.유강후가 얼마나 부자인지는 미래그룹의 규모만 봐도 알 수 있었다.경원에 있는 본사만 해도 대형 공단 크기인데 게다가 땅값이 비싼 도심 한복판에 있었다.듣기론 전국의 크고 작은 도시마다 지사가 있고 해외까지 크고 작게 분포되어 있다고 했다.우연히 인터넷에서 유강후가 미래그룹뿐만 아니라 다른 사업체도 가지고 있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그러니 유하령과 유민준이 유강후의 힘만으로도 마음대로 누리며 억대에 달하는 슈퍼카를 차고에 쌓아놓는 것도 당연했다.심지어 유민준에게 투자한 금액은 수백억에 달했다.그 생각에 그녀는 더 이
유강후는 그녀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과거의 일을 떠올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그는 그녀의 손을 끌어당기며 성큼성큼 밖으로 나갔다. “쇼핑하러 가자.”VIP가 온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 몇몇 유명 명품 브랜드는 이미 영업을 종료한 상태였다.잘 교육받은 직원들은 큰 소리로 말하지도 않고 시종일관 예의를 갖추었다.손쉽게 수많은 액세서리와 옷을 고른 뒤 온다연은 가격표를 보며 가슴이 두근거렸다.고작 이 정도 물건을 다 합치니 수십억대가 되었다.부자들은 돈을 종이처럼 쓴다더니!사실 대부분 유강후가 골랐고 전부 여성스러운 스타일이었다.그는 온다연에게 어울린다고 생각되거나 온다연이 한 번이라도 더 보는 물건은 전부 가져갔다.얼마 고르지도 않고 유강후는 온다연이 멍하니 있는 데다 조금 피곤해 보이자 곧바로 휴게실로 안고 갔다.잠시 후 누군가 디저트와 따뜻한 우유를 가져왔다.유강후는 디저트를 그녀 앞에 내밀며 머리를 쓰다듬었다.“집에 있는 것보다 못하겠지만 대충 먹고 피곤하면 조금 있다가 집에 가자.”금빛 시럽이 뿌려진 예쁜 아이스크림 케이크 옆면에 ‘임’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온다연은 예전에 대형 쇼핑몰에서 이런 케이크를 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 주한은 경원의 유명한 임씨 가문의 개인 제과점에서 나온 케이크이며 주문이 매우 어려워 일주일 전에 예약해도 구하기 힘들 거라고 하면서 나중에 돈이 생기면 그런 케이크를 사주겠다고 했다.온다연은 한동안 조용히 케이크를 바라보다가 작은 숟가락으로 떠서 입에 조금 넣었다.진한 우유의 풍미가 입 안을 가득 채웠고 담백하고 부드러운 게 정말 맛있었다.하지만 그래도 집에서 먹는 것보다 맛이 조금 못한 것 같았다.온다연은 집에서 먹던 과자를 떠올렸다. 보기엔 이것만큼 예쁘지는 않았지만 식감은 훨씬 좋았다.그런데도 여전히 맛있다고 생각한 그녀는 한 조각을 크게 떠서 유강후에게 건넸다.“아저씨, 먹어봐요.”유강후는 케이크를 힐끗 보고는 받아먹지 않고 대신 고개를 숙여 온다연의 입술을 살짝 깨물
“알았어, 그만해. 하령이 곧 도착할 텐데 그 말 들으면 싫어할 거야! 됐어, 넌 먼저 들어가서 기다려, 난 화장실 다녀올 테니까.”“알았어요!”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온다연의 가늘어진 눈매에 차가운 기운이 감돌았다.곧이어 진설아가 들어왔고 이곳 VIP 라운지에는 온다연만 있었기에 진설아는 온다연을 한눈에 알아봤다.그녀는 눈에서 치솟는 질투심을 억누르기가 힘들었고 얼굴은 극도로 추악해졌다.유강후가 온다연을 곁에 둔다는 건 유씨 가문 전체에 알려졌고 모든 집안의 가정부들이 샘을 냈다.특히 진설아는 그 소식을 듣고 너무 질투가 나서 밤낮으로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부모도 없이 어릴 때부터 괴롭힘을 당하던 온다연 같은 천한 년이 어떻게 유강훈 눈에 들게 된 걸까.유강후의 보살핌을 받는다는 것은 하루아침에 저 높은 위로 올라간 거와 다름없었다.머리부터 발끝까지 좋은 것들만 걸친 온다연을 보고 질투에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그 옷들은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최고급 브랜드였다.특히 온다연의 손에 착용한 연두색 플라워 다이아몬드 팔찌는 유하령도 아직 사지 못한 C브랜드에서 막 나온 신상으로 몇억짜리였다.온다연은 진설아의 붉으락푸르락하는 표정을 보며 몸에 두른 작은 가방을 쓰다듬더니 그녀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설아 언니, 오랜만이야.”진설아는 어릴 적부터 유하령과 함께 온다연을 따라다니며 괴롭혔기에 온다연이 반드시 보복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환하게 맞아줄 줄은 몰랐다.순간 그녀는 온다연의 생각을 읽을 수 없고 제자리에 굳어진 채 우는 얼굴보다 더 일그러진 미소를 보였다.“그래, 오랜만이네.”온다연은 앞으로 다가가 진설아를 훑어보며 말했다.“언니, 이 원피스 유하령이 버린 옷 사이즈만 바꾼 거지? 예쁘긴 한데 안 어울리는 것 같아.”진설아는 약이 바짝 오른 얼굴로 이를 악문 채 말했다.“온다연, 보복하고 싶으면 그렇다고 말해.”온다연은 고개를 저으며 낮게 말했다.“언니 오해야. 난 복수할 생각 없어. 과거에 있었던 일도
순간 굳어버린 유강후의 눈가가 눈에 띄지 않게 부드러움으로 물들었다.손을 들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는 그의 목소리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차갑고 깊었다.“케이크 다 먹었어?”온다연은 그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두 손으로 그의 옷을 꽉 움켜쥔 채 꽉 막힌 목소리로 말했다.“아저씨, 나 이제 여기 있기 싫어요.”유강후의 눈에 온다연은 줄곧 극도로 참으며 자신의 취향조차 잘 드러내지 않는 성격이었는데 오늘 이러는 걸 봐서 분명 무슨 일이 있는 게 틀림없었다.그는 살짝 얼굴을 찡그렸다.“무슨 일이야?”온다연은 그의 허리를 꼭 껴안은 채 얼굴을 그의 옷에 파묻고 숨소리마저 불안정하게 들리더니 이윽고 답답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유하령이 선물 고르러 온대요.”유강후는 얼굴을 찡그렸다.방금 받은 연락도 유자성의 전화였는데 유하령이 어디선가 자신이 온다연과 함께 여기로 쇼핑하러 왔다는 것을 알고 집에서 한바탕 물건을 깨부수며 난동을 부리고 이제 여기로 와서 며칠 뒤 할머니에게 드릴 생신 선물을 고른다는 것이었다.그는 당연히 유하령을 신경 쓰지 않았다.하지만 심미진의 유산 때문에 어느 정도 타협을 한 상태라 유하령이 오는 것도 묵인하고 있었다.얼마 전 심미진은 온다연이 자신을 밀어서 유산했다며 우겼고 유하령과 이효진 모두 온다연이 밀치는 걸 직접 눈으로 봤다고 했다.세 사람은 모두 온다연을 감옥으로 보낼 생각이었다.게다가 유산한 아이가 이미 5개월에 형태까지 갖춘 아들이라는 사실에 유자성은 분노하며 온다연에게 책임을 묻겠다고 했고 유강후도 당연히 강경한 태도로 맞섰다.미래그룹 100명 규모의 법무팀을 준비시켜 철저히 보호할 작정이었던 터라 며칠 동안 두 형제가 싸우는 난리 통에 유씨 가문은 혼란에 빠졌다.유재성은 이에 격분해 두 형제를 불러 한바탕 꾸짖었고 결국 두 형제는 각자 한 발짝 물러서게 되었다.하지만 물러서는 데는 대가가 따랐다.유재성은 더 이상 온다연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 대신 유강후에게 당분간 유하령과 유민준에 대한 투자와 지원
주차장에 도착해 차에 타기도 전에 유강후의 전화벨이 울렸고 그는 전화를 받고 몇 마디 말을 한 뒤 다른 쪽으로 돌아갔다.온다연은 차 문 옆에 서서 그를 기다렸다.몇 분 후, 검은색 버기카가 옆 공간에 멈춰서더니 이어서 세 명의 젊은 남자가 내렸다.모두 스물다섯, 여섯 살로 보이는 남자들은 껄렁대며 한 명은 한겨울인데도 맨살을 드러내고 있었다.세 남자는 험한 말을 입에 담으며 차에서 내렸다.그들을 슬쩍 본 온다연은 넋을 잃은 듯 가만히 노려보기만 하며 두 주먹을 불끈 쥔 채 손바닥은 땀으로 흥건했다.잠시 후 그녀는 천천히 작은 가방에 손을 넣고 산 지 얼마 되지 않은 군용 칼을 꺼냈다.이 셋은 당시 주한이 죽고 그녀가 조사받으러 갔을 때 만났던 사람들이다!그녀는 전혀 양심의 가책도 없이 비아냥거리며 경멸하던 세 사람의 추악한 얼굴을 항상 기억하고 있었다.그들은 주한을 죽여놓고 벌레를 죽인 듯 쉽고 가벼운 태도를 보였다.주한은 죽었는데 왜 저들은 고작 감옥에서 몇 년 동안 지내고 다시 활개를 치며 밖을 돌아다니는 걸까.머릿속이 윙윙 울리며 죽었을 때 형체도 없이 피투성이가 된 주한의 시신이 눈앞에 적나라하게 나타나 이성을 잃을 것 같았다.세 남자는 재빨리 차 문을 닫고 농담을 건네며 앞을 향해 걸어갔다.그들이 가자 온다연이 뒤따랐는데 손에 들려 있던 군용 칼이 어느 순간 벌어져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그런데 몇 발짝 못 가서 옆 차에 있던 이권이 이상함을 감지하고 빠르게 달려 나와 온다연을 붙잡았다.“온다연 씨, 어디 가세요?”온다연은 멍하니 세 남자의 얼굴만 노려보며 뻣뻣하게 말했다.“나쁜 놈들!”그 순간 유강후도 다가와 온다연이 눈을 똑바로 뜨고 노려보는 모습에 얼굴을 찡그리며 잡아당기려 손을 뻗는데 끈적한 액체가 한 줌 느껴졌다.내려다보니 온다연이 얼마 전에 산 작은 다이아몬드가 박힌 군용 칼을 손에 들고 있었다.칼은 열려 있었고 손바닥으로 꽉 움켜쥔 날카로운 칼날이 그녀의 손바닥을 베면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그의 눈
온다연은 내려오려고 몸부림쳤지만 유강후는 그녀를 어깨에 둘러멘 채 억지로 차에 태웠다.그는 작은 구급상자를 꺼내 온다연의 상처에 간단한 처치를 해주었다.이 과정에서 온다연은 무감각한 듯 소독을 받으면서도 끙끙거리는 소리조차 내지 않았다.소리를 내지 않았지만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이 멈추지 않아 옆에 닿아있던 머리카락까지 적셨다.유강후는 그녀의 손을 치료해 준 후 옆 머리에 흐르는 땀을 닦아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늦어도 내일 아침까지 네가 만족할 만한 답을 줄게, 알았지?”온다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손을 뻗어 그의 옷을 잡았다.작지 않은 힘에 옷이 구멍 날 것 같았다.가슴도 약간 들썩거리고 입술도 깨무는 모습을 보니 상태가 안 좋아 보였다.유강후의 눈가에 깔린 서늘한 어둠이 점점 짙어지더니 운전하고 있는 이권을 흘끗 쳐다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당장 진영천 불러. 내가 도착하면 바로 만날 수 있게!”이권은 낮게 답했다.“네, 바로 연락하겠습니다!”그리고 한껏 낮춘 목소리로 전화를 걸었다.작은 목소리였지만 간간이 대화 소리가 들렸고 전화기 반대편에 있는 사람은 약간 겁에 질려 있는 것 같았다.잠시 후 이권은 전화기를 내려놓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바로 온답니다.”유강후는 덤덤하게 대꾸하고는 온다연을 안아 자기 어깨에 기대게 했다.온다연은 눈을 감고 유강후에게 기댈 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얼굴은 끔찍할 정도로 창백했고 그 모습은 조금만 건드려도 부러질 것처럼 초췌했다.한참이 지나고 그녀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저 사람들이 날 사람 없는 곳으로 데려가서 내 옷을 찢었어요.”작고 나른한 목소리에 아무런 감정도 담겨있지 않았지만 좁은 공간에서 천둥처럼 사람의 고막을 뒤흔들었다.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녀의 입으로 직접 들으니 격분한 유강후의 눈가가 시뻘겋게 물들었다.온다연의 손목을 잡은 손은 감정을 억누르려는 듯 살짝 떨리고 있었다.그 순간 온다연이 덧붙였다.“아저씨, 난 저 사람들 알지도 못하고 저 사람
온다연은 입을 벙긋했지만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차 안은 다시 적막에 빠졌다.마침내 전통 한옥에 도착하기까지 한 세기가 지난 것만 같았다.유강후는 온다연을 안고 안으로 들어간 뒤 다시 그녀의 상처를 살펴보며 약을 바르고 파상풍 주사까지 맞혔다.온다연은 기운이 없는 듯 기력이 쇠약해 보였고 유강후가 주는 물과 우유를 한 모금도 마시지 않은 채 그대로 영혼을 빼앗긴 듯했다.유강후는 한참을 바라보다가 마침내 그녀를 안고 방으로 들어갔다.그는 그녀가 눈을 감을 때까지 나가지 않았다.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이권이 유강후가 나오는 것을 보자마자 말했다.“진영천이 두 시간째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도련님.”유강후는 얼음처럼 서늘한 기운을 풍기며 한마디 말도 없이 서재로 향했고 서재에서 진영천은 한참 동안 기다리고 있었다.40대 초반인 경원 지역 거물답게 깔끔한 옷차림에 점잖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목에 드러난 두꺼운 문신만 아니었다면 모두가 그를 교양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하지만 아무리 음지 양지를 휘어잡는 거물이라고 해도 유강후가 들어오자 벌떡 일어나 공손하게 허리를 굽혔다.“도련님, 시키실 일 있으십니까?”유강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차갑고 깊은 목소리로 말했다.“앉죠.”단순한 말 한마디, 무심한 행동이었지만 그 속에는 차가움과 위엄, 그리고 위에서 군림하는 자의 강한 위압감이 가득했다.진영천은 앉는 것조차 불안했다.눈앞에 있는 유씨 가문 셋째 도련님은 경원에서 무자비한 성격으로 악명이 높았다.가문도 출중하고 능력도 뛰어났을 뿐 아니라 행동하는 방식도 놀라울 정도였다.열여덟 살에 미래그룹이라는 대기업을 물려받아 당시 경쟁자들을 속절없이 무너뜨리고 미래그룹이 그의 손에 넘어간 지금은 몇 배로 몸집을 불렸다고 한다.지난 2년 동안 경원에 있지는 않았지만 그의 위상은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높아졌고 이 바닥에서 감히 그를 우습게 여기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하지만 이는 진영천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경원에 돈 많은 사람은 널리고 널렸다. 두려
집에 들어선 후, 유강후는 시원한 연고를 가져와 온다연에게 발라주었다.그런데 장화연이 어쩌다 이 장면을 보게 될 줄이야. 온다연은 한순간 얼굴을 들 수가 없었고, 밥도 먹지 않고 숨어 있었다.유강후도 너무 후회되어 그녀를 끌어안고 한참을 달랬다.저녁에 아기 보러 병원에 갈 때까지 이 상황은 계속됐다. 아이의 상태가 좋아진 것을 보고 온다연은 그제야 겨우 화를 풀었다.이튿날 아침 유강후가 침실에서 나오니 이권이 벌써 거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셋째 도련님, 인터넷을 좀 보세요. 온다연 씨가 인터넷 스타가 됐어요.”유강후가 미간을 찌푸리며 차갑게 말했다.“인터넷 스타라니, 무슨 소리야?”이권은 한숨을 쉬며 휴대폰을 건넸다.“일단 보세요. 제가 처리하고 있긴 하지만, 실검을 세 번이나 눌렀는데도 상황이 정리가 안 돼요.”‘상간녀가 보석 가게에서 본처를 때렸다’라는 제목의 동영상이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라가 있었고, 그 아래에 비슷한 댓글이 가득 달렸다.유강후는 미간을 찌푸리면서 동영상을 열었다.어제 온다연이 보석 가게에서 나은별과 싸우는 장면이었다.동영상만 보면, 확실히 온다연이 먼저 때렸다. 게다가 온다연은 날뛰고 있고, 나은별은 한 번도 반격하지 않은 채 처참하게 맞는 모습이었다.동영상은 온다연이 나은별을 때리는 데서부터 시작돼 조아영이 그녀를 끌어낼 때까지 1분여 동안 지속됐다.중간에 편집 흔적이 전혀 없어 딱 봐도 원본 영상이었다.‘좋아요’가 600만 개 이상, 리트윗이 300만 개 이상에 달하고, 댓글 창은 온통 욕하는 말들로 도배됐다.[요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상간녀가 이렇게 대놓고 날뛰어도 되는 거야?][이건 너무 심하잖아. 상간녀가 누군지 신상 털어!][진짜 뻔뻔스럽군. 유부남을 꼬신 주제에 감히 이렇게 날뛰다니. 이 여자와 부모의 신상을 털어 온 가족이 고개를 쳐들고 다니지 못하게 해야 해.][본처가 진짜 나약하네. 내가 저 여자라면 그 자리에서 상간녀 머리를 부숴버렸을 거야.][상간녀가 어려 보이는
유강후는 좀 세게 때리긴 했지만 그렇다고 너무 심한 것도 아니었다고 생각했다. 고작 몇 번 때린 것이 이렇게 빨갛게 부어오를 줄은 몰랐다.“많이 아파? 집에 가서 약을 바르자.”‘당연히 아프죠.’온다연은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지 못할 정도로 아프고 몹시 서러웠다.“화를 내도 된다면서요... 아저씨는 말한 대로 하지 않고 전혀 신용을 지키지 않아요.”유강후는 어이없었다.“화를 내도 된다고 했지, 반지를 던져도 된다고는 하지 않았어. 오늘은 세게 때린 것도 아니야. 또 한 번 반지를 던지고 나랑 결혼하지 않겠다고 하면 그때는 아예 의자에 앉지 못하게 엉덩이를 부숴버릴 거야.”온다연도 자기가 잘못했다는 것을 알기에 고개를 숙이고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그녀는 한참 후에야 다시 입을 열었다.“아저씨도 저를 때렸으니 맞비긴 셈이에요. 만약 아이를 보지 못하게 하면, 저도 아저씨의 점수를 깎아버리고 영원히 보지 않을 거예요.”유강후는 걸어가면서 말했다.“이렇게 말을 잘 듣는데 왜 아기를 못 보게 하겠어? 오늘 나한테 순순히 반지를 끼워준 것을 봐서 벌을 취소할게.”“하지만 그 점수라는 게 뭔지 나한테 알려줘.”온다연은 그의 어깨에 엎드려 통증을 참으며 시큰둥하게 말했다.“아저씨만 저를 벌할 수 있는 줄 알아요? 저도 아저씨를 벌할 수 있어요.”유강후는 걸음을 잠시 멈추었다.“무슨 벌인데?”온다연이 코웃음을 치더니 나지막이 말했다.“저한테 점수를 적는 공책이 있어요. 모두 100점인데, 아저씨가 잘하면 가산점이 붙고 잘못하면 감점이 돼요.”그녀는 아주 진지하게 말했다.“원래 70점이었는데, 20점 깎여서 지금 50점이에요. 0점 혹은 마이너스 점수가 되면 저는 아저씨를 버릴 거예요.”유강후는 웃음을 참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어떻게 하면 가산점이 붙고, 어떻게 하면 감점이 되는지 말해봐.”온다연이 정색하며 말했다.“예를 들면, 그웬을 데려다 아기를 살린 것은 589점, 주희를 구한 것은 50점, 저에게 불고기를 만들어준 것은
그는 손을 내밀고 반지를 보며 느릿느릿 말했다.“네가 자발적으로 나한테 반지를 끼워줬잖아. 반지를 끼워준 건 프러포즈한 것과 같으니, 앞으로 네가 나를 책임져야 해.”온다연은 그의 말을 들으며 어딘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그의 강요에 못 이겨 끼워준 것인데, 어떻게 그녀가 프러포즈한 것이 되는지?그녀는 눈을 비비며 울먹거렸다.“아저씨가 끼워달라고 했잖아요.”유강후는 미간을 찌푸리며 살짝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그게 그거지. 별 차이 없어. 내가 끼워달라고 말했더니 네가 바로 끼워줬잖아. 이게 자발적인 것이 아니고 뭐니?”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것을 알지만, 아이를 못 보게 할까 봐 걱정인 온다연은 별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유강후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반지도 꼈으니 결혼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니?”온다연은 선뜻 대답하지 않았다. 혼인신고를 해야 결혼했다고 볼 수 있다.하지만 결혼반지를 나눠 껴도 결혼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 같긴 하다. 적어도 명목상으로는 부부가 된 거니까.그녀가 말을 하지 않자, 유강후는 눈빛이 흔들리더니 나지막이 말했다.“네가 프러포즈했고 내가 받아줬으면 결혼한 것이나 다름없어. 결혼했으면 영원히 서로의 곁에 있어야 하고, 더 이상 다른 사람을 생각하면 안 돼. 알았지?”온다연은 뭔가 잘못된 것 같으면서도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았다.결혼했으면 둘이 같이 잘 지내야 한다.그녀는 눈을 비비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약간 서러웠다.“다시는 나은별을 만지면 안 돼요. 저는 그 여자가 싫어요.”그녀는 또 한마디 덧붙였다.“살짝 닿는 것도 안 돼요.”“만나도 3m 거리를 유지해야 해요.”유강후는 그녀가 덫에 걸린 것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화제를 돌렸다.“아까 나은별이 너한테 어쨌길래 머리가 터질 정도로 쳤어? 온통 유리 조각이던데, 손은 다치지 않았어?”유강후는 말하면서 온다연의 손을 당겨다 자세히 검사했다.그는 그녀의 희고 보드라운 손에 상처가 하나도 없는 것을 보고
유강후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앞으로 아무리 화가 나도 반지를 버리거나 결혼 문제를 가지고 장난치면 안 돼. 알았어?”온다연은 일어나려고 발버둥 쳤지만, 그가 허리를 꽉 잡고 있어 움직일 수 없었다.“제가 아니라 아저씨가 장난쳤잖아요. 아직도 나은별을 마음에 담고 있어요?”그녀는 너무 서러웠다.“아직도 그 여자가 좋으면, 아기를 데리고 떠날 테니 그 여자랑 사세요!”유강후는 화가 나면서도 웃겼다.“내가 언제 나은별을 생각했다고 그래? 뭘 보고 이러는 거야? 내가 나은별을 잡아당긴 것 때문에?”온다연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나은별이 유강후의 품에 기대어 있던 것을 생각하면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 여자를 안고 있었잖아요. 가슴에 기대고 있던데요.”유강후는 웃음이 나왔다. 알고 보니, 질투하는 것이었다.어린 것이 질투심은 왜 이렇게 강한지?“질투 났어?”온다연은 몹시 화가 났다.“누가 질투해요? 놔요. 저는 갈래요.”유강후는 그녀의 허리를 힘껏 끌어안으며 이를 악물었다.“내가 언제 나은별을 안았고, 언제 내 몸에 기대게 했는데? 똑똑히 말해봐.”그는 나은별을 바닥에서 잡아당겨 일으킨 후 온다연이 바로 폭발했던 기억밖에 없다.이 말을 들은 온다연은 더욱 화가 나서 얼굴까지 빨개졌다.“아저씨가 그 여자를 안았고, 그 여자가 아저씨 품에 기대어 있는 것을 똑똑히 봤는데도 인정하지 않을 거예요? 아저씨는 이제 불합격이에요. 미워요. 이거 놔요.”발버둥 치다가 방금 맞은 곳을 건드렸다. 얼얼한 통증에 그녀는 눈물이 핑 돌았고, 엉겁결에 손으로 맞은 곳을 가렸다.유강후는 그녀의 동작을 보고 방금 너무 세게 때려서 부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는 그녀의 몸을 뒤집은 후, 치마를 올리고 살펴보려 했다.온다연은 그가 또 엉덩이를 때리려는 줄 알고 놀라서 그의 손을 잡고 놓지 않았다.“그만 때려요. 아파요.”“반지를 주워 왔잖아요. 또 때리면 다시는 당신을 안 볼 거예요.”유강후는 손을 빼며 말했다.“붓지 않았는지 보려고
유강후는 괴로워하면서도 이를 악물고 참았다.“10일.”“온다연, 너 계속 이러면 아기 퇴원하는 날에도 못 볼 줄 알아.”그 말을 듣고 얼어붙은 온다연은 재빨리 그의 손을 놓았다.유강후가 어떤 사람인지 온다연은 알고 있다. 정말 그를 화가게 한다면 아마 한 달 동안 아기를 보지 못할 수도 있다.온다연은 어쩔 수 없이 분노를 꾹 참고 돌아서서 밖으로 나갔고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억울해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심하게 때려서 그런지 유강후는 온다연의 걷는 자세가 살짝 잘못된 걸 발견했다.하지만 결혼반지를 던지고 걷어찼던 행동을 생각하면 여전히 분을 삭이지 못했다.온다연은 울며 겨자 먹기로 문을 열었는데 밖에는 수많은 경호원들이 서 있었다.이권도 그곳에 있었지만 감히 나서서 말을 건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엉덩이를 맞은 걸 모든 사람이 들었다고 생각하니 분하면서도 수치스러웠다그러나 반지를 주워 오는 것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유강후가 아기로 협박을 하니 그의 장단에 맞춰주는 게 현재로서는 최선이다.온다연은 유강후에 대한 호감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전에는 70점이었다면 이제는 50점밖에 되지 않았다.온다연은 씩씩거리며 눈물을 닦고선 마지못해 바닥에 있는 반지를 주웠다.온다연이 휴게실로 돌아오자 유강후는 자연스레 손을 내밀었다.“끼워줘.”그 모습은 어찌나 무자비하고 싸늘한지 마치 인정머리 없는 제왕 같았다.온다연은 화가 나서 반지를 다시 던져 버리고 싶었지만 아기를 볼 수 없다는 생각에 울분을 참으며 유강후에게 반지를 끼웠다.유강후는 반지를 한번 꼼꼼히 확인하더니 스크래치가 없는 걸 보고선 마음속의 분노가 절반 가라앉았다.그는 자리에 앉아 온다연을 품에 끌어안았다.“뭘 잘못했는지 알겠어?”온다연은 대답하기 싫은 듯 고개를 숙이고 계속 눈물을 닦았다.온다연의 빨갛게 부은 눈과 눈물에 젖은 머리카락을 보니 유강후도 마음이 반쯤 풀렸다. 그는 손을 뻗어 온다연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잔머리를 귀 뒤로 넘겨주었다.“네가 말해봐.
유강후는 그저 말없이 가만히 온다연을 쳐다봤고 온다연은 그의 손에 피가 날 정도로 세게 깨물고서야 힘을 풀었다.유강후는 곧바로 다시 그녀의 부드러운 엉덩이를 내리쳤다.심지어 전보다 더 무자비해졌다.고통에 얼굴이 하얗게 질린 온다연은 목 놓아 울부짖었다.“미워요. 이거 놓으란 말이에요.”“날 때릴 자격이 없잖아요.”유강후는 얼굴빛 변한 온다연을 보고선 가슴이 아픈지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또 함부로 버릴 거야?”온다연은 유강후가 미워 죽을 것 같았다. 울분이 치밀어 올라 더욱이 물러서고 싶지 않았다.“버릴 거예요. 평생 찾지 못하게 바다에 던질 거라고요. 때려죽이든 마음대로 해요.”일말의 작은 연민은 온다연의 말에 순식간에 사라졌다.유강후는 화를 주체하지 못해 손까지 떨었다.결혼반지라는 중요하고 소중한 물건을 함부로 버렸으면서 이렇게까지 고집을 부리는 온다연이 이해되지 않았다.유강후는 손을 들어 세게 두 번 정도 내리쳤다.전보다 훨씬 힘을 주어서 그런지 온다연은 괴로움에 손발을 마구 휘저으며 숨이 넘어갈 지경으로 울었다.울면서도 잊지 않고 유강후를 비난했다.“분명히 은별 씨 편을 들었으면서...”“차라리 때려죽여요. 그러면 은별 씨랑 결혼해도 되잖아요.”“우리 이제 그만해요.”...온다연이 말할수록 유강후의 분노는 더욱 커져갔고 끝내 또 세게 때렸다.분노와 두려움, 공포와 고통의 감정이 뒤섞이자 저도 모르게 주한의 이름이 튀어나왔다.“너무 아파... 주한아, 나 좀 도와줘.”“그만 때려요.... 아픈단 말이에요.”...유강후의 손은 허공에 굳어버렸다.주한... 온다연은 주한에게 도움을 청했다.심장이 철렁 내려앉은 유강후는 숨이 멎을듯한 고통이 찾아왔다.“방금 뭐라고 했어?”온다연은 심하게 울부짖은 탓에 목소리가 잔뜩 쉬었다.“뭐라 하든 상관할 바가 아니잖아요. 아저씨는 나 괴롭히고 때릴 줄밖에 모르잖아요. 싫어요. 아저씨같은 사람이랑 살고 싶지 않아요. 그러니까 이거 놔요.”유강후는 이마에 핏줄이 솟을
온다연은 유강후에게 안긴 방금 전의 상황이 왠지 모르게 민망했다.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으니 마치 유강후가 키우는 고양이나 심심할 때 가지고 노는 장난감과 별반 다를게 없는 느낌이었다. 수치심과 분노가 한꺼번에 몰려온 온다연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채로 버럭 소리를 질렀다.“싫어요. 필요 없다고 몇 번이나 말했잖아요.”유강후는 고집불통인 온다연의 모습에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눈앞에 있는 반지는 그가 이 생에 받은 것 중에 가장 소중하고 아끼는 물건이다. 이런 마음도 모른 채 온다연은 필요 없다는 말 한마디와 함께 바닥에 내팽개쳤다.마치 누군가가 그의 심장을 바닥에 내팽개치고 발로 여러 번 짓밟는 격이다.유강후는 머리가 피가 쏠릴 정도로 화가 나서 소리쳤다.“주우라고.”온다연은 유강후가 화난 걸 알았지만 그녀도 같은 상황이기에 신경 쓸 처지가 아니었다.분명히 나은별을 밀어낼 수 있었음에도 유강후는 기댈 수 있게 팔을 내어주었다.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고 그렇게 신경이 쓰이는 거면 차라리 두 사람이 결혼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온하랑은 얼굴을 붉히며 몸을 떨었다.“싫어요. 그리고 제가 나은별 씨를 먼저 때렸어요. 아저씨가 아끼는 사람을 때려서 가슴이 아파요? 그럼 다시 날 때리면 되겠네.”유강후는 점점 더 화가 치밀었다.“네가 언제 가슴 아프다고 했어?”욕하고 때리는 건 얼마든지 해도 되지만, 유독 이 반지를 떨어뜨린 건 용납할 수 없었다.이건 그의 마음과 진심을 짓밟는 것과 다름없는 해동이다.“주워서 깨끗하게 닦아.”유강후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온다연 마음속의 작은 화산이 완전히 폭발하였고 곧바로 눈앞의 반지를 발로 차버렸다.“주울 생각 없어요. 그리고 이렇게 싼 반지는 아저씨한테 어울리지도 않아요. 그러니까 나은별 씨한테 더 비싼 거로 사달라고 하세요.”온다연의 발차기에 반지는 더 멀리 날아갔다.유강후는 너무 화가 나서 목의 핏줄이 터져 나올 정도로 으르릉거렸다.“온다연, 넌 오늘 혼 좀 나야겠다.”그
나은별은 손톱이 살을 피고들 정도로 주먹을 불끈 쥐며 나지막하게 말했다.“강후 씨, 이제 내 말은 믿지도 않는 거네? 이렇게 많은 사람이 다연 씨가 먼저 손쓴 걸 봤는데도 여전히 내 문제라는 거야?”유강후는 그 말을 가볍게 무시한 채 싸늘한 시선으로 조아영을 바라봤다.“조세진이 그쪽 아버지?”조아영은 극심한 고통에 식은땀을 흘렸지만 차마 유강후의 말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맞아요.”유강후의 말투는 단호했다.“아버지한테 전해. 파산할 거니까 미리 마음 준비하라고.”조아영은 너무 놀라서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로 울부짖었다.“대표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유강후는 무자비했다.“들리는 그대로야. 오늘부터 조씨 가문은 너 때문에 파산하게 될 거야. 기대해.”조아영은 고개를 번쩍 들고 마지막으로 발악했다.“분명히 저 여자가 먼저 때렸는데 왜 우리가 이런 불이익을 받아야 하죠?”유강후의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이었다.“먼저 때렸다고? 그래서 뭐? 내가 있는 한 다연이가 사람을 때려죽여도 잘했다고 칭찬할 거야. 너 같은 인간을 수없이 많이 봤어. 내가 너보다 지위가 낮았다면 그런 표정이랑 행동으로 말했을까?”이런 사람에게 더 이상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고 싶지 않았던 유강후는 곧바로 경호원에게 말했다.“은별이는 병원으로 데려가고, 다른 사람 전부 다 내보내. 당장.”나은별은 씩씩거리며 말했다.“강후 씨, 이럴 필요까지는 없잖아.”유강후는 못 들은 척 무시하고선 뒤를 돌아 성큼성큼 밖으로 나가며 경호원에게 말했다.“내가 왔을 때 여기에 사람이 남아있으면 너희들도 끝장인 줄 알아.”경호원들은 이구동성으로 답했다.“네, 도련님.”나은별은 멀어지는 유강후의 훤칠한 뒷모습을 바라보며 주먹을 불끈 쥐었고 눈에서는 악의가 번쩍였다.‘유강후, 날 이렇게 대한다는 거지? 두고 봐, 나도 더는 안 참아.’경호원들은 나은별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신경 쓰지 않았고 그저 의무적으로 그녀를 부축했다.“얼른 가시죠. 도련님이 분부했으니 저희는
유강후는 밀어내고 싶었지만 나은별을 중심을 잡지 못하는 듯 계속 비틀거렸다.밀어내려고 할수록 나은별은 그의 옷을 한사코 움켜쥐고 놓지 않았다.온다연의 눈에 비친 이 장면은 마치 서로에게 감정이 남아있는 연인 같았다.순간 어려서부터 각별한 사이로 자라온 소꿉친구 사이에 제3자가 끼어들 자리는 없다고 생각했다.나은별의 말대로 유강후는 어쩌면 일시적인 감정 때문에 지금처럼 행동하는 걸 수도 있다.온다연은 주먹을 불끈 쥐며 두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봤다.“내가 때렸어요. 왜요? 가슴 아파요?”그 말에 화가 난 유강후는 목소리마저 가라앉았다.“온다연,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온다연은 싸늘하게 웃었다.“말이 되는지 안 되는지는 당사자가 제일 잘 알겠죠.”이때 반지를 수정하려고 자리를 잠깐 비운 직원이 상황 파악을 못 하고 수정된 반지와 함께 걸어왔다.“다연 씨, 요청하신 대로 수정이 완료되었습니다.”온다연은 번쩍 돌리더니 큰 소리로 말했다.“이제 필요 없으니까 환불해 줘요.”유강후는 화가 치밀어 몸을 떨었다.“그러기만 해봐.”온다연은 시선은 여전히 그의 팔에 기대어있는 나은별에게 고정되어 있었다.“두 사람 결혼해요. 아주 천생연분이네.”그 말을 한 뒤 직원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환불해 줘요. 이제 필요 없어졌거든요.”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지 못한 직원은 정석대로 안내했다.“죄송합니다. 이니셜이 새겨진 특별 제작한 반지라 환불이 불가합니다.”화를 주체할 수 없었던 온다연은 앞으로 걸어가더니 반지를 집고 땅바닥에 내던졌다.“그럼 버릴게요.”단단한 반지가 바닥에 닿자 몇 미터 높이로 튕겨 나갔다가 다시 쨍그랑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유강후는 자신이 더없이 아끼고 사랑하는 물건이 버려지는 것을 보고 화가 나서 몸을 떨었다.그는 단호하게 말했다.“온다연, 당장 주워.”온다연은 차가운 표정으로 힐끗 보고선 돌아서서 밖으로 나갔다.분노로 두 눈이 빨갛게 충혈된 유강후는 단번에 나은별을 밀어내고 앞으로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