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이미 유강후를 다루는 법을 완전히 익힌 듯 온다연의 다리를 꼭 붙잡고 울먹이며 말했다.“엄마, 저는 우유 계속 먹고 싶어요. 아빠가 멋대로 끊은 거잖아요. 저 키도 안 크는데, 이대로 가면 영양부족으로 머리까지 멍청해질 거예요.”온다연은 아이를 품에 안아주며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착하지, 우림이. 아빠 말 듣지 말자. 우유 조금 더 오래 먹는다고 큰일 나는 것도 아니고. 나중에 조금 더 크면 끊는 거야. 어때?”강우림은 온다연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고개를 돌려 유강후를 보며 짓궂은 표정을 지었다.어린아이의 장단에 놀아난 유강후는 화가 머리끝까지 났지만 온다연의 앞이라 참아야만 했다.“알겠어. 엄마 말대로 해야지.”온다연은 강우림은 침대에 앉히기 위해 몸을 낮추었다. 하지만 재빨리 침대에서 내려와 강우림을 의자에 앉힌 유강후는 온다연을 조심스레 부축해주며 말했다.“쟤가 아무리 어리다고 해도 몸무게는 꽤 나갈 거야. 홑몸도 아닌데 무슨 애를 안는다고 그래.”그 말에 표정을 굳힌 온다연은 당장이라도 떨어지라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곁에 아이를 두고 그런 소란을 부리고 싶지는 않았다.강우림은 불만 섞인 얼굴을 하더니 시샘 어린 말투로 중얼거렸다.“아기 생겼다고 제 우유 끊으려는 거죠? 쪼잔해요!”아이는 작은 주먹을 꽉 쥐더니 분노를 표출하기 시작했다.“앞으로는 우윳값 제가 다 낼게요! 그러니까 제 입으로 들어가는 거 아까워하지 마세요!”어렵게 온다연과 시간을 보낼 기회를 얻게 된 유강후는 시끄럽게 구는 강우림이 너무 거슬렸지만 그래도 인내심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참았다.하지만 아이는 그런 유강후의 마음도 모르는지 계속 유강후를 도발하기 시작했다. 결국, 참다못한 유강후가 입을 열었다.“너 한마디만 더 하면 당장 내쫓아버릴 거야.”그러자 온다연이 유강후를 매섭게 쏘아보며 말했다.“왜 화를 내고 그래요? 그렇게 거슬리면 아저씨가 나가면 되잖아요.”그러자 유강후는 재빨리 표정을 바꾸며 불쌍한 척을 하기 시작했다.“머리가 너무
예전이었다면 분명 사람이라도 시켜서 강제로 곁에 두었을 것이다.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온다연의 원망 어린 눈빛을 마주하는 순간, 느껴지는 고통이 전보다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커져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유강후는 더 이상 아무것도 요구할 수 없었다. 그저 온다연이 살아만 있어 준다면, 얼굴이라도 한 번씩 볼 수 있는 것만으로 그는 천국에 있는 것처럼 행복했다.아이는 온다연이 읽어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천천히 잠에 빠져들었다.온다연이 강우림의 손에서 우유병을 빼내려던 그때, 아이가 몸을 돌려 온다연의 팔을 끌어안으며 갓난아기처럼 중얼거렸다.“엄마...”그 말에 온다연의 손이 공중에서 멈추더니 눈시울이 점점 뜨거워졌다.그녀는 이 어린아이에게 너무나 큰 빚을 지고 있었다.떠나려고 마음먹을 때부터 강우림을 데리고 떠날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강우림이 양준구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마자 그녀는 강우림을 데리고 떠나려던 생각을 접었다.강우림에게도 그 아이만의 삶이 있을 것이고, 이곳에 두고 가기만 한다면 양씨 가문의 막대한 자산을 물려받을 터였다.온다연은 강우림의 앞길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아이를 두고 떠나야 한다는 결정을 내리던 때, 온다연은 정말 괴로운 시간을 보냈다. 강우림은 온다연이 마음으로 낳은 친자식이었다. 여느 모자들 같은 끈끈한 유대감도 절대 헛된 것이 아니었다.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온다연은 천천히 손을 내리고 부드럽게 아이의 등을 토닥여주었다.강우림이 깊은 잠에 빠진 후에야 온다연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온다연이 떠날 기미가 보이자 유강후가 서둘러 입을 열었다.“다연아, 요즘 제대로 못 먹고 다닌다며? 셰프한테 네가 좋아하는 음식 준비해두라고 했는데, 먹고 갈래? 조금만 기다리면 올 거야.”온다연은 그런 유강후를 무시하고 제 갈 길을 가려 했지만 배 속에서는 요란한 꼬르륵 소리가 울렸다.온다연은 배가 고팠다.이틀 동안 입덧이 더 심해진 탓에 온다연은 한꺼번에 많은 음식을 먹을 수 없어 조금
바로 자리를 뜨려던 온다연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푹 쉬어요. 아저씨가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라고 해도 신은 아니잖아요. 어찌 됐든 건강이 첫째잖아요. 우리 아기 태어날 때 안아주긴 해야 할 거 아니에요?”말을 마친 그녀는 곧장 몸을 돌렸다.온다연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유강후가 천천히 입을 열어 중얼거렸다.“아까 나 걱정해준 거지?”이권이 다급히 대답해 주었다.“맞는 것 같은데요. 다연 씨가 방금 푹 쉬라고 했잖아요. 그래야 아기 태어나도 안아줄 수 있다고.”유강후는 그 말로 큰 위로를 받기라도 한 듯 혼잣말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역시 계속 나 걱정하고 있었어. 아직 다연이 마음속에 내가 있는 거야.”이권이 대답했다.“다연 씨는 당연히 도련님을 마음에 품고 있겠죠. 그냥 옛날 일 때문에 한동안 망설이는 것뿐이에요.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면 다연 씨도 생각 정리 끝내고 도련님 진심 알아줄 거예요.”그 말에 유강후의 눈이 반짝였다.“정말 그렇게 생각해?”이권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물론이죠. 다여 씨가 정말 도련님한테 관심도 없었다면 아이들 낳겠다고 이 고생을 하고 있을 리도 없죠. 정말 도련님을 증오했다면 이미 아기 지우고 본인의 삶을 살러 떠났을걸요.”“아이들이 있는 한, 다연 씨는 도련님한테 평생 얽매일 수밖에 없을 거예요. 배 속의 쌍둥이는 둘째 치더라도 지금 우림이로도 충분히 붙잡아둘 수 있잖아요. 방금도 봐요, 다연 씨가 우림이를 얼마나 예뻐하는데요.”그제야 유강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네 말도 맞아. 우린 법적으로 부부잖아. 혼인신고도 되어 있고. 아무도 우릴 갈라놓을 수 없어.”이권은 온다연을 향한 유강후의 마음이 이미 병적인 수준으로 변해버렸다는 것을 진작 알고 있었다. 3년이라는 시간 동안 고통을 겪으며 유강후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 어떤 일이 있어도 평정심을 유지하던 그는 이제 사소한 일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곤 했다.게다가 이제는 그에게 강력한
“넌 생각해본 적도 없지? 다연이 부모님이 다연이가 예전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게 되면, 정말 딸을 너한테 시집 보내려고 할 것 같아?”유강후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묵묵히 할아버지의 질책을 듣고만 있었다.말을 마친 할아버지가 기운이 빠져 소파에 앉아 잠시 숨을 고르고 있던 그때, 유강후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예전 일은 예전 일이고, 이미 일어난 일이잖아요. 그래서 최선을 다해 못 해줬던 거 다 갚아줄 거예요. 어쨌든 우린 법적으로 부부 사이고, 다연이는 제 아내잖아요. 이제는 배 속에 제 아기까지 있으니까 우린 절대 헤어질 수 없어요. 만약 진씨 가문 쪽에서 반대한다고 해도 제가 그냥 데리고 올 겁니다!”“헛소리 집어치워!”화가 치밀어오른 강양호가 테이블을 내리쳤다.“그게 깡패 건달 짓이랑 다를 게 뭐야? 예전 같았으면 너 진작에 총 맞고 죽었어! 내가 널 이렇게 키웠냐? 싫다는 사람을 억지로 데리고 와? 네가 이러고도 미래 그룹 대표야?”유강후가 낮게 말했다.“저도 어쩔 수 없어요. 저 쳐다도 안 보려고 하는데 뭘 어떡해요? 아예 눈길조차 안 주는데.”“널 안 본다고?”강양호가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그건 네 자업자득이라고 했잖아! 거들떠도 안 보는 것쯤은 양반이지, 다연이가 드센 성격이었으면 넌 진작에 총부터 맞았다니까!”“네가 정말 그런 비열한 짓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다연이는 너한테 상처를 받았어.”“그러니까, 다연이가 널 어떻게 대하든, 네가 무슨 짓을 당하든 다 겸허히 받아들여. 그럴수록 표현 더 잘 해주고.”“지금 너한테 제일 큰 장애물은 다연이가 아니야.”“다연이가 얼마나 단순한 앤지 너도 알잖아. 너한테 아직 마음이 남아 있으니까 크게 엇나갈 일은 없을 거다. 지금 제일 큰 문제는 진씨 가문이야.”“진씨 가문의 진수현은 이미 동남아 지역에서 악명 높은 인물이야. 저승 가서 염라대왕까지 만나고 왔는데 잃어버렸던 외동딸은 드디어 다시 찾았으니 지금 진수현한테 다연이는 제일 소중한 보물일 거다. 그
그날 오후, 온다연은 금빛으로 장식된 화려한 초대장을 받았다.롤스로이스를 타고 나타난 집사가 하얀 장갑을 낀 손으로 공손하게 초대장을 건네자 온다연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초대장에는 로카 가문의 훈장이 새겨져 있었다.로카 가문이라면 전 세계적으로도 가장 신비로운 최상위 가문 중 하나로, 전 세계 자산의 3분의 1은 로카 가문이 지배하고 있다는 소문까지 돌고 있었다.소문은 소문일 뿐이라지만 로카 가문의 자산이 어마어마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진씨 가문 역시 큰 부를 축적하고 있는 가문이었지만 로카 가문 같은 최상위 재벌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졌다.게다가 진씨 가문과 로카 가문은 아예 접점이 없었다. 그런 로카 가문에서 왜 갑자기 초대장을 보낸 걸까?유강후가 아닌 다른 이유는 도저히 떠오르지 않았다.잠시 망설이던 온다연은 자신에게로 온 초대장을 받아들이기로 했다.로카 가문이 누구 때문에 진씨 가문에게 초대장을 보냈든 간에 이건 절호의 기회였다.동남아 지역에서 로카 가문의 영향력은 어마어마했다. 주로 정부와 협업해 사업을 확장하고 있던 로카 가문이었기에 이들과 좋은 관계를 맺을 수만 있다면 동남아에서 진씨 가문의 입지 역시 커질 것이다.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온다연은 자신의 배를 어루만지며 조용히 말했다.“아가, 너희 아빠가 엄마한테 엄청난 선물을 보냈네. 이 선물 참 마음에 들긴 하는데, 그래도 난 아직 너희 아빠 상대하고 싶지 않아. 내가 너무한 걸까?”그때, 임원식이 휴대폰을 들고 다가왔다.“아가씨, 사모님이랑 대표님 전화입니다.”온다연은 휴대폰을 받아들었다.“네, 아빠.”진수현의 진지한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왔다.“우리 딸, 며칠째 집에 전화도 안 하고. 설마 그 강 대표인지 뭔지 하는 놈이 또 너 괴롭히는 건 아니지?”온다연은 자신의 배를 어루만지며 대답했다.“아니에요. 아저씨가 저한테 얼마나 잘 해주는데요.”온다연은 자신이 과거에 겪었던 고통을 부모님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이제 어머니가 된 온다
온다연은 방으로 돌아가 컴퓨터를 켰다.곧바로 화면에는 진수현과 안심의 모습이 나타났다.며칠 동안 딸을 보지 못한 두 사람은 진심으로 온다연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딸의 얼굴을 마주한 안심의 눈가는 벌써 붉어져 있었다.그런 부모님의 모습을 보던 온다연은 너무 오랫동안 숨겨온 건 아닐까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조금만 더 일찍 알렸더라면 그만큼 더 오래 기뻐하실 수 있었을 텐데.“엄마, 아빠.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정말 중요한 말이거든요.”진수현이 물었다.“염지훈 문제 잘 끝난 거야?”온다연이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그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이에요.”잠시 말을 멈춘 온다연이 자신의 아랫배 위로 손을 올려놓더니 입을 열었다.“저, 저 아기 생겼어요.”진수현과 안심은 화면 속에서 그대로 굳어버렸다.그녀의 말이 끝나자 마치 시간이 멈춘 듯 화면이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그 탓에 온다연은 인터넷 연결이 끊긴 것 같다는 착각까지 했다.곧이어 안심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너, 너한테 아기가 생겼다고?”온다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네, 그것도 두 명이에요. 쌍둥이죠.”그렇게 또다시 몇 초간의 정적이 흘렀다.안심은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진수현 역시 기쁨에 두 손을 비비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감격스러워했다.진수현은 어쩔 줄 몰라 하며 말을 더듬었다.“좋아, 아주 좋아! 드디어 우리 진씨 가문에도 후계자가 생기는구나! 지금 당장이라도 사당 찾아가서 조상님들께 치성드려야겠어. 얼른 이 소식을 알려야 하지 않겠니?”“강 대표 그 자식은, 어디 간 거야? 왜 옆에 없어?”온다연이 잠시 멈칫하다가 말했다.“회의 중이에요. 잠깐 자리 좀 비웠어요.”진수현이 소리쳤다.“무슨 회의길래 딸보다 더 중요하다는 거야? 얼른 돌아오라고 해! 할 말이 있으니까.”그때, 방문이 열렸다.유강후가 문 앞에 등장했다.뒤를 돌아본 온다연은 유강후를 바라보자마자 미간을 찌푸렸다.회색 정장을 갖춰 입은 유강후는 방금 비즈니스 미팅에서
진수현은 어딘가 흥분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래, 그래야지. 당장 가서 준비할게. 일단 다연이가 좋아하는 음식부터 골라서 보내야겠어.”“가정부들도 엄선해서 데려가야 해. 강씨 가문 가정부들이 우리 다연이를 잘 돌봐주기나 하겠어?”“맞다, 아기방 인테리어도 해놔야지. 아기용품도 제일 좋은 브랜드로 다 골라와. 내가 직접 봐야겠으니까.”“그리고, 아기한테 채워줄 목걸이랑 액세서리도 장인들한테 부탁해서...”“됐어요, 그만 해요 여보.”안심이 진수현의 말을 끊었다.“이런 건 다연이 만나고도 준비할 수 있는 거잖아요. 우선은 우리 다연이가 쓸 만한 물건들부터 준비해 가야죠. 다연아, 먹고 싶은 거 있어? 우리가 갖고 갈게.”답지 않게 흥분한 부모님의 모습에 온다연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녀는 안심의 질문에 작게 대답했다.“저는 이 집사님이 해주신 녹두전이 먹고 싶네요. 그리고 엄마가 직접 만들어주시는 단팥죽도 먹고 싶고요.“기억을 되찾기 전까지 온다연은 부모님이 해주는 모든 것은 아주 당연하게만 받아들였고, 이 모든 것이 부모의 당연한 의무라고만 여겨왔다.하지만 과거의 고통스러웠던 기억까지 모두 되찾는 지금, 부모님이 주는 사랑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온다연은 불행하면서도 행복한 사람이었다.온다연은 붉어진 눈시울에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고 말했다.”엄마, 아빠. 보고 싶어요.“온다연의 말에 안심도 함께 울컥했는지 목멘 소리로 말했다.“우리가 최대한 빨리 갈게. 우선 푹 쉬고, 강 대표랑 싸우지 말고, 이제는 배 속에 애까지 있으니까 더 신중하고 조심스러워져야 해.”“그래, 이제 우리도 준비해야 하니까 이만 끊을게.”딸 앞에서 눈물을 보이기 싫었던 안심이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전화가 끊기자마자 온다연은 바로 책상 위에 엎드려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그동안의 고통과 인내, 슬픔과 서러움이 부모님의 얼굴을 마주하자마자 모두 터져 나왔다.온다연이 눈물을 흘리자 유강후는 눈에 띄게 당황했다.“다연아, 울지 마. 내가
유강후의 눈빛이 반짝였다. 마음속에서 꺼져가던 희망의 불꽃이 다시 싹트기 시작했다.유강후가 자리를 뜨자 온다연은 그가 두고 간 상자를 열었다.그 안에는 대여섯 벌의 맞춤 제작 드레스가 있었다. 한 벌 한 벌이 모두 유니크하게 아름다웠다.그중에서도 검은 드레스는 허리부터 치맛자락까지 천 개 이상의 다이아몬드로 장식되어 있었고 그 다이아몬드는 빛을 받아 반짝였다.온다연이 입을 열기도 전에 곁에 있던 집사가 깜짝 놀라 말했다.“이 드레스, 전 세계에 단 하나뿐인 드레스예요. 원단부터 디자인까지 전부 제이슨 장인이 손수 바느질로 완성해낸 작품이죠.”“들리는 말로는 이 드레스에 있는 다이아몬드는 영국 여왕의 왕관에서 갖고 온 다이아몬드라고 하더라고요. 그 가치도 어마어마하고요.”“원래는 이름 모를 수집가가 딸의 스무 살 생일 선물로 사 줘서 갖고 있었대요. 그때 낙찰가가 아마 1억 달러였을걸요. 지금은 몇 배로 더 뛰었을 거고요.”잠시 말을 멈춘 집사가 다시 입을 열었다.“강 대표님이 짝퉁을 샀을 리는 없고, 다른 사람이 입었던 드레스를 무턱대고 샀을 리도 없으니까, 아마 이 드레스가 강 대표님 어머니께서 입으셨던 드레스일 거예요.”집사의 말이 끝나자마자 강현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그녀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분하고 부드러웠다.“다연아, 드레스는 마음에 드니?”온다연은 강현미가 얘기하는 드레스가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설마 이거, 연서 씨 주려고 샀던 드레스예요?”강현미가 솔직하게 대답했다.“아니, 그건 3년 전에 강후가 너 주려고 샀던 거야. 그땐 네가 죽은 줄 알고 사뒀던 드레스를 나한테 맡겨뒀었는데, 이제 주인한테 돌아갔네.”“드레스 너무 예쁘지 않니? 아직 배 안 나왔으니까 입고 싶은 옷 있으면 나한테 바로 얘기해. 내가 다 사 줄게.”온다연은 굳이 거절하지 않고 대답했다.“감사해요, 대표님.”강현미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언젠가 네가 날 어머님이라고 불러줬으면 좋겠구나, 아가. 배 속에 있는 아기를 생각해서라도
봉현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너도 요즘 아이랑 마누라 돌봐야 하니 시간도 없을 거잖아. 내가 알아서 방법 구해볼게.”말을 마치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송지원도 뒤따라 나와 봉현수의 뒷모습을 보며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이번에 지예솔 씨가 진짜 큰맘 먹고 멀리 가버린 거 같은데 현수는 아직도 경원시 근처에서만 찾고 있어. 어쩌면 출국했을지도 모르는데 말을 해줄 수가 없네.”“현수 지금 상태가 매우 위험해. 마치 밧줄을 팽팽하게 잡아당겨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정도로 한계에 도달한 거 같아. 저러다 큰일이 일어날까 봐 두렵네.”두 사람은 한마디씩 하고는 침묵하였다.한참 지나 유강후가 먼저 낮은 소리로 입을 열었다.“이 일은 우리도 어떻게 도울 방법이 없어. 본인이 스스로 해결하게 해야 해. 요 며칠은 내가 아내와 아이들을 돌봐야 하니 네가 옆에서 좀 더 신경 써줘.”송지원은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그리고 한이준은 며칠 동안 보이지도 않고 전화도 안 통하던데. 내가 사무실에 전화했더니 비서가 그러는데 걔가 섬에 집을 사서 지금 장식을 하고 있고 외부 사람들과 거의 연락도 하지 않는다 하더라고. 이 자식 또 무슨 미친 짓을 벌이는지 모르겠어.”이때 방에서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려왔고 유강후는 곧바로 방으로 향했다.“들어가. 현수랑 이준의 일은 네가 좀 더 신경 써줘. 내 쪽에 사람들은 필요하면 네가 알아서 조정해서 데리고 가면 돼.”들어가 보니 동생이 울면서 손발을 자꾸 흔들어 옆에 자고 있던 오빠도 깨웠다.오빠는 오히려 깜깜한 눈을 뜨고 조용하게 누워 새로운 세상을 구경하고 있는듯 하였다.유강후가 가까이 다가가기도 전에 간호사가 아이를 안으며 말했다.“아이들이 배가 고픈가 봐요. 나와서부터 지금까지 아무것도 안 먹었어요.”말하면서 침대에 누워있는 온다연을 한 번 보고는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장화연은 간호사의 뜻을 눈치채고 말했다.“분유로 먹여요. 사모님은 지금 몸이 편찮으셔서요.”이때 온다연도 놀라 잠에서 깼다.
유강후는 당황했던 마음이 그제야 풀리며 한숨을 내쉬었다.예전에 그 아이는 힘들게 임신했고 유강후도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지켜내지 못했다.하지만 이번에는 안전하게 출산까지 했고 아이도 건강하게 태어났지만 가장 걱정되는 건 바로 온다연의 건강 상태였다.“주 선생님, 앞으로 제 아내의 건강을 잘 부탁드릴게요. 두 아이도 만약 두통이나 열이 있다 해도 많이 신경 써주셔야 해요.”주 선생님은 급하게 대답했다.“괜찮아요, 큰일은 아니에요. 두 아이도 지금 봐선 건강 상태가 아주 좋으니 잘 키우실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유 대표님.”주 선생님을 보낸 후 유강후는 정성스럽게 온다연을 보살피며 약도 먹이고 재우기도 하였다.한참 뒤에 송지원과 봉현수가 아이들 보러 병원에 찾아왔다.송지원은 작업복을 입고 있는 걸 보니 시정 쪽에서 방금 온 것이 분명했다.봉현수는 비록 깔끔하게 차려입었지만 이전의 의기양양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었고 유강후는 보자마자 그의 정신이 극도로 쇠약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봉현수는 아이들의 선물을 유강후에게 건네고 나서 소파에 앉아 넋 놓고 있었다.반면 송지원은 두 아이에게 관심을 쏠리며 간호사에게 아이를 안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했다.송지원은 아이를 안고 웃으며 말했다.“넌 아들딸을 한꺼번에 얻었지만 우리 몇 명에서 한재민을 제외하고는 모두 고독한 사람들이네. 이 아이의 행운을 빌어 나도 나중에 쌍둥이가 생길 거야.”유강후는 얼른 아이를 뺏어 안고는 말했다.“저리 비켜, 누가 너더러 내 아들의 행운을 빌라 했어. 그렇게 행운을 갖고 싶으면 너 절로 절에 가서 빌던지.”송지원은 두 녀석을 매우 귀하게 여기며 또 손을 뻗어 여동생을 안았다.“핑크 팔찌를 차고 있는 걸 보니 여자아이겠지? 너무 귀여워, 나도 딸이 욕심나네.”송지원은 여동생의 작은 얼굴을 만지작거리며 웃음기가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난 이 두 아이의 양 아빠가 될 거야. 앞으로 날 송 아빠라고 부르라고 해.”유강후는 송지원이 딸을 안고 놓지 않는 것을 보고
유강후는 온다연의 상처가 아플까 봐 번갈아 가며 아이를 안아 보여줬다.조용하고 작은 아이의 얼굴을 보자 온다연은 눈시울을 붉히더니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다 건강하게 태어났어요. 이번에는 보온 실에 들어갈 필요가 없네요.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있을까요?”유강후는 속상한 마음으로 온다연의 눈물을 닦아 주면서 말했다.“보온 실은 필요 없어. 의사가 아이들이 모두 정상이라고 말해줬어. 하지만 그래도 그웬을 와서 산후조리가 끝날 때까지만 우리 집에 있으라 했어.”“우리 아들을 데리고 와봐요, 한번 보게요.”유강후는 조심스럽게 아이를 안아 온다연의 옆에 눕혔다.온다연은 감히 몸은 움직이지 못하고 머리만 옆으로 돌려 쳐다보면서 이 아이가 꿈속의 그 아이를 닮았는지 궁금했다.안타깝게도 아이는 아직 너무 작아 이목구비가 모두 주름져 있어 잘 보이지 않았기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온다연이 실망하는 모습을 본 유강후는 웃으며 말했다.“아들은 날 닮았고 딸은 널 닮았어.”온다연은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요? 아이가 이목구비도 잘 안 보이는데 어떻게 알 수 있어요?”유강후는 낮은 소리로 말했다.“난 보이거든.”유강후는 몇 시간 동안 작은 침대 옆에 붙어 서서 아이의 이목구비와 윤곽을 수없이 분석한 결과 아들은 그를 닮았고 딸은 온다연을 닮았다는 결론을 내렸다.유강후는 희망컨대 두 아이가 모두 온다연을 닮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다시 생각해 보더니 남자아이는 좀 강하게 생기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는 두 아이를 모두 온다연의 곁에 눕혀두고 팔을 뻗어 그들 세 모녀를 품에 안으며 아주 정성스럽게 낮은 소리로 말했다.“다연아, 이젠 너희들은 내 인생의 전부야.”유강후는 앞으로 약점이지만 보호막이 될, 그한테는 세상 전부인 이 사람들을 위해 끝까지 분투할 것이라고 다짐했다.온다연은 유강후의 턱에 나온 수염을 만지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당신 요즘 많이 피곤했죠? 안색이 너무 안 좋으니 이제 좀 쉬어
“네가 정치일에 개입도 하지 않았고 나도 이제 곧 은퇴할 것인데 만약 본가에서 나쁜 기사라도 터지면 우린 경원시에서 설 자리도 없게 돼. 그럼 우주 그룹이나 본가나 다 영향받을 수 있잖아.”유강후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그래요? 그럼 유연서는요? 연서의 일은 어떻게 말씀하실 건데요? 은혜를 갚고 싶으면 알아서 갚으세요. 아무도 당신을 막지 않겠지만 누나의 목숨으로, 또 저의 행복으로 다른 사람에게 보답하려 하지 마세요.”“그리고 제 아이들은 유씨 성을 안 가질 거고 본적에도 넣지 않을 거예요. 아이들은 이미 이름이 있어요. 하나는 강 씨 이고 하나는 진 씨 에요. 본가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으니 괜히 여기 와서 다연이의 휴식을 방해하지 마세요. 다연이는 본가 사람이라면 이제 치를 떨어요.”유재성은 급해하며 말했다.“괜찮아, 나 그렇게 보수적이지 않아. 아이들이 유 씨가 아니라도 내 손 군들이야. 다연이가 날 싫다 그러면 앞에 나타나지 않고 아이들만 잠깐 만나볼게. 그래도 할아버지인데 아이들에게 선물도 준비하고...”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유강후는 통화를 끊어버렸다.이때 이권이 걸어오더니 말했다.“대표님, 아이들의 출생증명서에 이름을 써야 하는데 작은 도련님이랑 아가씨 이름은 준비하셨죠?”유강후는 이권의 손에 쥐어져 있던 종이를 받아 그 위에 아이들의 이름을 적었다.그러자 이권은 웃으며 말했다.“역시 이미 생각해 놓으셨군요.”“남자아이는 다연이랑 같은 성씨로 진 강남으로 했고 이건 다연의 아버지가 지어주신 거고 여자아이는 강아름으로 나랑 어르신이 같이 지은 거야.”이권은 다시 웃으며 말했다.“작은 도련님이 진씨 가문의 성을 따르게 되면 어르신이 화 안 내실까요?”유강후는 종잇장을 건네주며 말했다.“어르신은 해외에서 평생을 살아 이런 일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실 거야. 그럼 아이의 성이 둘 다 진 씨라면 강씨 가문의 자손이 아닌 거야? 다연이가 목숨을 걸고 낳은 아이들인데 하나는 진 씨 성을 가지면 또 어때? 둘 다 진 씨 성을 따른
유강후가 가장 세게 흔들고 있는 작은 손을 건드렸더니 녀석은 바로 그의 엄지손가락을 잡았다.이상하게도 녀석은 곧 칭얼거리지 않았고 작은 입을 쩝쩝대더니 조용해졌다.유강후는 갑자기 멍해지며 신기하면서도 행복한 감정이 북받쳐 올라 눈물이 나올 정도였다.‘이것이 내 아이와 실제로 접촉하는 느낌인 건가?’분명히 이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보는 얼굴인데 뭔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유강후가 막 아이를 안으려 할 때 간호사가 웃으며 말했다.“입원실에 가서 안아봐요. 산모도 곧 나올 테니 여기 막아서면 안 돼요.”유강후는 몹시 아쉬워하며 장화연과 이권 더러 아이를 데리고 가게 하고 자신은 문 앞에서 온다연이 나오기를 기다렸다.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온다연도 나왔다.마취가 아직 풀리지 않은 온다연은 아직 자고 있었고 유강후는 그녀를 받아 입원실로 옮겼다.입원실은 예전 온다연이 쓰던 큰 방으로 이미 모두 정리정돈이 되어 있었고 두 꼬마 녀석은 침대 옆의 작은 침대에 두었다.두 아이와 온다연은 모두 조용히 자고 있었고 유강후는 그들 모자 셋을 옆에서 지켜보았다.잠깐 사이에 유강후는 많은 사진을 찍었고 한장 한장 들여다보면서 휴대전화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모멘트도 일 년에 한 번쯤 업데이트하는 유강후가 오늘은 연속으로 세 개의 게시물을 올렸다.그것도 모자라 다시 작은 그룹 채팅을 만들어 잘 아는 몇몇 친구들을 그룹에 끌어들이고 그중에는 염지훈도 포함되어 있었다.그러고는 제목에 쌍둥이 남매가 부럽지 않냐고 그래도 소용없다고 계속 부러워하라는 글을 덧붙여 20장이 넘는 아기의 사진을 연이어 보냈다.얼마 안 되자 답글들이 올라왔다.송지원: 아이들이 태어난 거야? 축하해, 내일 보러 갈게.봉현수: 금방 태어난 거야? 난 선물까지 미리 준비해 뒀어. 내일 지원이랑 같이 갈게.그 밑에는 붉은색으로 된 부동산 증명서 두 권의 사진이 첨부되었다.한재민: 축하해. 선물은 지금 오는 길에 있어. 설쯤에 제수와 아이들 보러 갈게.그웬: 벌써? 내가 아직 가지도 않
간호사가 수술실 문을 빼꼼히 열고 머리를 내밀며 말했다.“한 명은 태어났고 지금 다른 한 명도 나오는 중이니 가족들 진정하고 조용히 해주세요.”말을 하고 있는데 반쯤 열린 문에서 또 다른 한 명의 나긋나긋한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왔고 안에 있는 의사가 큰 소리로 말했다.“ 2.6킬로가 되는 여자아기예요. 아기 상태도 아주 좋아요.”“산모 상태도 좋아요. 이제 봉합 수술을 시작하죠.”유강후는 기쁜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 수가 없어 제 자리에서 굳어 있는 채로 꼼짝도 못 했다.간호사는 그 표정을 보며 웃으며 말했다.“들으셨죠? 동생도 나왔다네요. 산모와 아이 모두 무사합니다.”“유 대표님, 수술이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협조해 주시고 더는 문을 잡아당기지 말아주세요.”유강후는 바로 손을 놓고 부들부들 떨며 담배를 가지려 했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그는 오랫동안 담배를 피우지 않았었다.옆에 서 있던 이권은 웃으며 말했다.“대표님, 축하해요. 작은 아가씨가 2.6킬로나 되는 걸 보니 도련님은 더 건장할 거예요.”유강후는 기쁜 나머지 올라간 입꼬리가 내려올 수 없었고 신이 나서 말했다.“다연이가 무사히 수술실에서 나오면 바로 통지해. 우리 회사 직원들 전부 3일 동안 휴가를 내줄 것이고 이번 달은 두 배의 급여를 발급할 거야.”그 말에 이권은 너무 좋아 웃으며 말했다.“그럼 직원들은 아마 좋아 죽을걸요? 대표님은 참 통쾌하시다니까요.”장화연의 얼굴에도 웃음기가 가득했다.“도련님, 제가 가서 작은 도련님과 아가씨의 옷을 가져올게요. 방금 급하게 나서다 보니 챙기는 걸 까먹었어요.”그러자 유강후가 바로 말했다.“다른 사람 보낼 테니 장 집사는 가지 말고 여기서 다연이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 내가 혼자서 서툴까 봐 그래.”“그리고 앞으로 날 도련님이라 부르지 말고 회장님이라 불러. 나도 이제 아버지가 되었으니 좀 무게감 있는 호칭으로 바꿔야지.”장화연은 웃으며 말했다.“그럼 선생님이라 부를게요. 무게감 있고 더 뜻깊어 보이잖아요?”“집안의
당장 수술해야 한다는 말에 긴장된 온다연은 의사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왜 이렇게 빨리 수술해야 해요? 혹시 아이가 어떻게 된 건가요?”지난번의 임신 사건 후 온다연은 이제 아이에 관한 이야기를 듣기만 해도 두려웠고 지금은 당장 수술해야 한다는 말에 긴장되는 것이 당연했다.그러자 의사는 긴장을 풀어주려고 급해하며 말했다.“아이를 낳는 일은 누구도 장담 못 해요. 앞당겨 수술해야 하는 상황은 종종 많이 생겨요. 지금은 양수가 터져서 자궁 상태가 안전하지 못하니 빨리 수술해야 해요. 아직 만삭이 안 되었지만 이 두 아이는 온다연 씨의 몸에 비해 작지 않은 편이라 일찍 출산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에요.”온다연은 그제야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아이들이 무사히 태어난다면 저는 괜찮아요.”온다연은 바로 수술실로 들어갔다.수술을 집도한 사람은 비록 그웬은 아니지만 경원시 최고의 산부인과 의사이며 심지어 옆에서 수술에 도움을 주는 사람도 국내 유명한 산부인과 전문의였다.그런데도 유강후는 긴장한 나머지 수술실 밖에서 왔다 갔다 하다가 손에 쥐고 있던 휴대전화마저 바닥에 열 번 넘게 떨어뜨렸다.30분이 넘게 지났는데도 수술실에서 아무런 소식이 없자 유강후는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말했다.“장화연, 혹시 안에서 무슨 일이 생긴 거 아니야? 나도 수술실에 들어가 봐야겠어.”그렇게 말하고 바로 수술실 문을 잡아당기자 옆에 있던 간호사들이 그를 가로막으며 말했다.“유 대표님, 지금은 수술 중이라 여기서 이렇게 소란 피우시면 안 됩니다.”장화연도 재빨리 달려가 그를 잡아당기며 말했다.“도련님, 아이를 낳는 게 그렇게 쉬운 줄 아세요? 걱정하지 마세요. 사모님은 건강 상태가 아주 좋고 아기도 뱃속에서 건강한 상태였어요. 게다가 많은 전문가가 수술실에 있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니 내심이 기다려요.”유강후는 처음으로 초조하고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수술 시작한 지 한 시간이 되어가는데 왜 아직도 소식이 없는 거야?”그러자 호사가 황급히 대답했
“지예솔이 며칠 전에 갑자기 사라졌대. 봉현수가 경원시의 땅 전체를 파헤칠 정도로 찾았지만 사람은 찾지 못했고 아무런 소식도 없었어. 게다가 봉현수의 회사에 일이 좀 생겨 그걸 도와 처리하느라 좀 늦었어.”유강후의 말에 온다연은 당황했지만 일부러 차분한 태도로 말했다.“예솔 씨가 또 집 나갔어요? 이런 일도 이젠 한두 번이 아닌데, 며칠 더 찾아보면 찾을 수 있겠죠.”유강후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이번엔 좀 다른 거 같아. 지예솔이 봉현수와 함께 썼던 물건들을 모두 불태우고 사진이랑 다 삭제했어. 십여 년 전의 편지조차 다 버려버린 걸 보니 아주 철저하게 돌아선 거 같아. 이번엔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온다연은 냉정하게 말했다.“봉현수가 예솔 씨를 그렇게 대하는데 어떤 여자가 옆에 남아 있겠어요? 찾지 못한다 해도 자업자득이죠 뭐.”“봉현수가 지금 미친 사람처럼 날뛰고 있어. 게다가 쓰레기 처리 센터까지 가서 뒤지면서 몇 통의 편지와 망가진 장난감 몇 개를 되찾아왔어.”유강후는 온다연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지예솔이 너랑은 좀 친해 보이던데 혹시 너한테 메시지라도 보낸 건 없어?”온다연은 다시 냉정하게 말했다.“그렇게 친한 정도도 아닌데 저한테 뭐 하러 연락하겠어요? 이미 떠나려고 마음먹은 사람이니 어떤 단서도 남기지 않았을 거예요.”그러더니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근데 저는 지예솔 씨의 소식을 들었다 하더라도 말 안 해줄 거예요.”“됐어요. 남의 집안일은 집에서까지 논하지 말아요. 장 집사님이 맛있는 걸 해놨어요.”말을 마친 후 온다연은 유강후를 밀며 주방 쪽으로 향했다.겨우 두 걸음을 걷던 온다연은 배가 처지는 느낌을 받아 발걸음을 멈추며 말했다.“저는 배가 너무 무거워서 걷기도 힘드니 강후 씨 혼자 내려가서 먹어요.”유강후는 갑자기 긴장해 하며 말했다.“낳으려고 그러는 거 아니야?”온다연은 그가 긴장해 하는 모습을 보며 저도 모르게 웃으며 말했다.“아니에요. 아직도 이틀 더 있어야 겨우 8개월이
또 어느 큰 눈이 내린 날, 날씨도 엄청 추웠다.온다연은 오후에 잠깐 집을 나서 좀 먼 곳에 있는 작은 여관에 갔다.여관방에서 온다연은 주머니 하나를 지예솔에게 건네며 말했다.“이건 사람 찾아 만든 새 등록증이에요.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만든 거니 일단 받아요.”“참, 그리고 안에 카드 한 장 있어요. 천만 원이 들어 있으니 저의 성의라 생각하고 그쪽에 가서 잘 살아요.”온다연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어 말했다.“확인해 보니 라현쪽에 유강후의 지사가 있었어요. 제가 이미 이유를 대서 그 지사를 대진 그룹 명의로 옮겼어요. 그쪽 사람들한테도 이미 인사를 했고 무슨 일이라도 있으면 지금 예솔 씨의 이름으로 경리를 찾아가면 돼요. 이름은 임진혁이라 해요. 하지만 그쪽은 외진 곳이라 제가 많은 도움은 줄 수 없을 거 같으니 이후의 일은 예솔 씨가 스스로 해결해야 해요.”지예솔은 등록증과 은행 카드를 번갈아 보더니 결국 받아들이고 자그마한 짐가방에서 물건 하나를 꺼내 온다연에게 건네며 말했다.“이건 저에게 있어서 가장 귀중한 물건이니 이거라도 받아주세요.”그녀가 건넨 물건은 너무 투명하여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옥팔찌로 비록 최고급은 아니지만 그래도 몇천만은 되는 듯해 보였다.온다연이 거절하려고 하기 전에 지예솔이 한마디 덧붙였다.“이거라도 받지 않으면 제 마음이 안 편해서 그래요. 다연 씨가 갖고 있는 액세서리 하나도 이것보다 더 비싸다는 걸 잘 알고 있지만 지금 제가 내놓을 수 있는 가장 귀중한 물건이에요.”온다연은 그녀의 마음을 알고 옥팔찌를 받아들였다.“차가 도착했어요. 우리도 이제 내려가요.”지예솔은 남성복으로 갈아입고 자그마한 짐가방을 메고 온다연과 함께 내려갔다.밖에는 검은색 차량이 기다리고 있었고 지예솔은 바로 그 차에 타고 창문을 내리며 온다연에게 손을 흔들었다.차가 떠나간 후 온다연도 옆에 있던 차량에 탔고 기사는 유강후가 제일 믿는 장 아저씨였다.온다연은 그의 뒷모습을 보며 말했다.“장 아저씨, 아드님이 경대에 입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