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나은별과 바꾼 게 아닐 수도 있지만, 유강후가 처음부터 그 여자를 제대로 파악하고 도와주거나 편들지 않았다면 나는 그런 일을 당하지 않았을 거야. 결국 이 모든 게 유강후 때문에 일어난 일이야. 너희는 다 그 사람에게 잘못이 없다며 용서하는데, 그럼 나는? 나는 그 고통을 당연히 겪어야 했단 말이야?”그녀는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유강후가 나은별과 아무 사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내 고통도 진짜잖아. 그때 갈비뼈가 여러 개 부러졌고, 바다에 빠진 후 폐렴에 걸려 죽다 살았어. 당시 너무 괴로워 심각한 자기혐오에 빠지고 인격 분열 직전까지 갔었어.”그녀는 눈을 감은 채 컵을 꽉 쥐고 있었다. 안색은 무서울 정도로 창백했다.그때의 광경이 떠오를 때마다 그 고통이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것만 같았다.유강후에게 잘못이 없을 수 있지만 그래도 용서하고 싶지 않았다.임혜린은 그녀의 손을 가볍게 토닥이며 속삭이듯 말했다.“됐어, 더 이상 얘기하지 말자. 이 일은 천천히 생각해 보도록 하고 몸조리가 우선이야. 지금은 아기가 가장 중요하니까.”온다연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아이가 있어서 다행이야. 안 그랬으면 또 그 고통스러운 기억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뻔했어.”갑자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다연이?”생각밖에 염지훈이었다. 그는 온다연을 보고 깜짝 놀라며 급히 다가왔다.“너 왜 여기에 있어?”온다연은 그의 뒤에 서 있는 권예진을 향해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권예진 씨와 커피 마시러 오신 거예요?”염지훈은 미간을 찌푸리며 권예진을 힐끗 보더니 욕하고 싶은 충동을 꾹 참고 상냥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이 카페는 친구가 운영하는 곳인데 지나가다 들러봤어. 네가 여기 있을 줄은 몰랐네.”온다연이 걱정스럽게 물었다.“몸은 좀 괜찮아요? 이렇게 빨리 퇴원했어요? 요 며칠 일이 있어서 문안을 못 갔어요.”염지훈은 마음이 씁쓸했지만 억지로 밝은 표정을 지었다.“괜찮아. 네가 안 찾아와도 내가 알아서 네 눈앞에
온다연은 표정이 어두워졌다.“이 일은 제가 직접 얘기해 볼게요. 만약 강후 씨가 정말 그랬다면 반드시 지훈 씨에게 사과하고 보상하게 만들 거예요.”염지훈은 몹시 괴로워하며 주먹을 꽉 쥐었다.“보상? 나한테서 널 빼앗아 갔는데 그게 보상으로 해결될까? 다연아, 왜 아직까지 그 사람 편을 드는 거야?”온다연은 나지막이 말했다.“지훈 씨, 아무도 절 빼앗지 않았어요. 나의 일이고 내가 스스로 내린 결정이에요. 강후 씨가 나타나지 않았더라도 우린 결혼하지 못했을 거예요...”온다연은 컵을 움켜쥐었다.“예전의 일들이 기억나기 시작했어요. 지훈 씨는 정말 아무 문제가 없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요?”염지훈은 손을 떨며 그녀의 말을 믿지 않는 듯했다.“다연아, 정말 기억이...”온다연은 그를 보고 또박또박 말했다.“처음 지훈 씨를 만난 건 학교 주차장이었어요. 그때의 전 강후 씨를 엄청 무서워했죠. 무서워서 피하는 저를 지훈 씨가 차에 태웠잖아요.”그녀는 조금씩 하얗게 질려가는 염지훈의 표정을 보며 싸늘하게 말했다.“눈보러 산에 갔던 얘기까지 해줄까요?”염지훈은 주먹을 꽉 쥐었다가 천천히 풀었다.“그동안 거짓말을 했던 건 사실이야. 하지만 그때의 너는 고통 속에서 허덕이고 있었어. 계속 과거에 집착한다면 상황이 더 안 좋아질 것 같아서 어쩔 수 없이...”온다연이 말했다.“그래서 최면을 걸었어요? 주변 친구들과 아이의 존재까지 완전히 잊어버리게? 난 내가 누군지도 몰랐어요.”“최면으로 우리가 예전부터 만나던 사이라고 한 것도 다 저를 위한 거예요?”온다연은 그를 보며 또박또박 말했다.“거짓말을 했을 땐 기억을 되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조차 안 했겠죠? 우리 부모님을 속이고 우리가 지훈 씨를 믿고 의지하는 걸 보면서 즐거웠어요?”염지훈은 고통스럽게 고개를 가로저으며 온다연의 손을 잡았다.“다연아, 믿어줘. 널 다칠게 할 생각은 한 번도 없었어. 제발 믿어줘.”온다연은 한숨을 내쉬며 손을 빼냈다.“용서할게요.”염지훈은 그제야
온다연은 아직도 가슴이 설레는 자신이 너무 원망스러웠다.‘도대체 왜 이래? 그냥 모른척하고 지나가란 말이야. 이러는 게 쪽팔리지도 않아?’죽을 만큼 미웠지만 그의 잘생김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안돼.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온다연은 시선을 거두고 돌아서서 나갔다.이때 유강후가 성큼성큼 쫓아와 그녀를 가로막았다.“유나 씨.”온다연은 돌아서지 않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이 호텔도 강후 씨가 준비한 거죠?”유강후는 그녀의 질문을 피하며 조용히 물었다.“어디 갔었어요?”온다연은 여전히 그를 등지고 있었다.“내가 어디를 가든 강후 씨와는 상관없는 일이에요.”‘이 호텔 주인이면서 왜 모르는 척해? 내가 길 건너편에 있다는 걸 알면서 도대체 왜 또 물어보는 거야?’‘하나도 변하게 없네. 3년 전이랑 똑같아.’‘여전히 강압적이고 언제 어디서든 날 통제하려고 하네.’그녀의 뒷모습을 보고 있던 유강후는 안아주고 싶은 충동을 참으며 부드럽게 말했다.“저녁에는 위험해요. 그러니까 혼자 다니지 말아요. 커피도 임산부한테 안 좋으니까 웬만하면 마시지 말고요.”온다연은 아까 카페 맞은편에 있던 사복 차림의 두 남자가 떠올랐다. 딱 봐도 경호원처럼 보였고 손이 무의식적으로 가슴에 닿는 게 꼭 무기를 꺼내려는 것 같았다.물론 본인들은 잘 숨겼다고 생각하겠지만 온다연은 단번에 그들의 존재를 알아챘다.염지훈이 다가왔을 때 그중 한 명이 밖으로 나가서 전화하는 모습에 온다연은 유강후가 보낸 사람이라고 확신했다.이를 생각한 온다연은 차갑게 말했다.“카페 있었던 두 남자 알죠? 강후 씨가 보낸 사람이에요?”유강후는 몸이 굳어지며 나지막이 말했다.“걱정돼서 그랬어요. 임신한 상태에서 혼자 다니는데 어떻게 마음을 놓을 수가 있겠어요?”온다연은 화가 나서 헛웃음이 나왔다.“마음이 안 놓인다고요? 그래서 통제하려고 했어요? 예전처럼 날 대할 생각은 꿈도 꾸지 마요.”온다연은 돌아서서 그를 바라봤다.“아니면 나은별 씨가 여기에 있다는 걸
유강후가 나타나서 수작을 부리지 않았더라면 이런 사단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유강후는 염지훈을 북아메리카로 유인한 후 많은 골치 아픈 일들을 찾아내어 그의 발목을 묶어두었다.아직까지도 그는 유강후만 없었다면 온다연과 결혼할 수 있을 거라고 착각했다.‘감히 내 앞에서 온다연이랑 애정 행각을 해? 보복이 두렵지도 않은가 봐?’서서히 염지훈의 눈시울이 붉어지며 일말의 살기가 새어 나왔다.온다연와 유강후는 앞뒤로 나란히 걷고 있었다.주차장의 모퉁이 위치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차의 전조등이 켜지며 어디선가 시동 소리가 들려왔다.뭔가를 예감한 듯 온다연은 걸음을 멈췄다.그녀는 전조등이 켜진 채로 질주하는 벤츠를 바라보며 마치 자신이 심연으로 끌려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모든 감각이 느려지고 신경이 예민해지기 시작했다.마치 낡고 오래된 라디오처럼 자동차의 시동 거는 소리가 한없이 길게 느껴졌고 그 소리는 온다연의 모든 신경을 짓밟았다.마침내 그녀는 익숙한 눈을 마주쳤다.빨갛게 충혈된 눈에는 원망 섞인 살기가 가득했고 이제 막 지옥에서 기어 나온 악귀와 다름없었다.온다연은 고개를 저으며 공포에 질려 눈을 부릅떴다.“안돼. 안돼...”갑자기 모든 것이 고요해졌고 슬로우 모션으로 보이던 장면은 2배속으로 전환되었다. 곧이어 시동을 건 차 한 대가 유강후를 향해 돌진했다.온다연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며 미친 듯이 달려갔다.“안돼.”유강후를 껴안은 순간 하얀 불빛이 그녀를 덮쳐 눈을 멀게 했다.온다연이 달려 나올 줄 몰랐던 염지훈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핸들을 세게 돌렸다.동시에 유강후도 온다연은 안은 채 몸을 돌려 그녀를 옆으로 피신시켰다.우두둑.쿵.날카로운 굉음이 두 번 울린 후, 공기 중에는 브레이크 패드가 타는 불쾌한 소리로 가득했다.벤츠는 옆에 있는 큰 나무를 들이받았고 엄청난 충격으로 사람의 허리만큼 두꺼운 나무가 두 동강이 났다. 나무가 쓰러지며 차량 지붕에 부딪혔고 몇몇 나뭇가지가 앞 유리를 뚫고 나가면서 상황이 매우 참혹
온다연은 염지훈의 손을 꽉 잡고 울먹이며 말했다.“여기 있어요. 구급차 금방 도착하니까 아무 말도 하지 말아요. 조금만 더 버텨요.”염지훈은 그녀의 손을 살며시 잡으며 말했다.“너를 다치게 할 생각은 없었어...”“무서워하지 마. 난 진짜 괜찮아...”온다연은 눈물을 터뜨렸다.“알아요. 알았으니까 말하지 마요. 제발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요.”그녀는 구급차가 도착하기를 간절히 바라며 고개를 돌려 입구를 쳐다봤다.“구급차는 왜 아직도 안오는거야...”염지훈이 죽으면 안 된다는 생각 외에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다연아. 가지 마. 날 떠나지 마...”피를 점점 더 많이 흘리며 목소리까지 약해지는 염지훈의 모습에 온다연은 참지 못하고 펑펑 울었다.“지훈 씨. 아무 말도 하지 말아요.”염지훈은 여전히 그녀의 손을 살며시 잡고 있었다.“다연아, 널 조금 더 일찍 알지 못한 게 너무 후회돼...”“우리가 좀 더 일찍 만났더라면... 널 다치게 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을 텐데...”“만약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꼭...”“그 사람들을 죽일 거야...”...이 유언과 같은 말은 온다연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 3년 동안 이성적인 감정은 생기지 않았지만 서로 가깝게 지내며 어느새 염지훈을 가족처럼 여겼다.그런 사람이 피를 잔뜩 흘리고 목숨까지 위태로운 상황이니 온다연은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하지만 울어도 소용없다. 염지훈의 점점 힘이 빠지며 손이 처지기 시작했다.당황한 온다연은 그의 손을 꽉 잡아 자신의 얼굴에 대고 펑펑 울었다.“지훈 씨. 죽으면 안 돼요. 제발 정신 차려요.”염지훈은 목소리마저 몹시 약해져 있었다.“다연아, 가지 마. 날 떠나지 마...”눈물이 앞을 가린 온다연은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안 떠날게요. 그러니까 죽지 마요.”염지훈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손마저 축 늘어졌다.“지훈 씨!”“염지훈!”더 이상 그의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심지어 가슴마저 움직임을 멈춘듯했
온다연은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채로 고개를 가로저었다.“싫어요. 저 때문에 이렇게 된 건데 자리를 비우면 안 되죠. 만약 정말 지훈 씨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우리 부모님이랑 박씨 가문을 볼 면목이 없어요.”염지훈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온다연은 무의식적으로 유강후의 옷깃을 잡았다.“잘못되는 건 아니겠죠?”유강후는 그녀를 안아서 의자에 앉힌 다음 부드럽게 말했다.“별일 없을 거예요. 제가 북아메리카에서 가장 실력 좋은 의사를 모셔 왔거든요. 곧 도착하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온다연은 여전히 몸을 떨고 있었다.“꼭 살려내야 해요. 절대 죽으면 안 돼요. 강후 씨, 제발 살려줘요.”유강후는 그녀의 손을 잡고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괜찮을 거라고 얘기했잖아요. 나 못 믿어요?”온다연은 피투성이가 되어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는 염지훈을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죽으면 안 돼... 절대 안 돼...”“만약 지훈 씨가 죽으면 난 평생 잠도 못 자고 밥도 못 먹을 거예요.”제정신 아닌 그녀의 모습은 유강후를 걱정하게 했다.그는 간호사에게 푹신한 의자와 따뜻한 물과 우유를 부탁했다.온다연은 배가 조금 불편했지만 염지훈이 잘못될까 봐 걱정되어 자리를 비우지 못했다.따뜻한 물을 마시고 푹신한 의자에 웅크리고 앉으니 그나마 안정되었다.하지만 온몸의 신경은 여전히 곤두선 상태였고 한시도 수술실을 떠나지 못했다.이따금 혈액 주머니가 수술실로 이송되었다.그럴 때마다 온다연은 긴장했고 너무 초조한 나머지 의자를 마구 뜯었다.다행히 이때 유강후가 모셔 온 의사가 도착했다.그는 40세 정도의 백인 의사인데 딱 봐도 경험이 많은 노련한 분위기를 풍겼다.유강후와 인사할 겨를도 없이 의사는 옷을 갈아입고 바로 수술실로 들어갔다.그가 수술실로 향하는 걸 본 유강후는 온다연에게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저분은 북아메리카 최고의 외과 의사이자 전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전문가예요. 그러니까 이제 안심해도 돼요. 지금까지 목숨이
임신한 상태에서 잔뜩 지쳐있으니 온다연은 아주 깊은 잠에 빠졌다.그럼에도 익숙한 숨결이 느껴지자 다른 한 손은 자연스레 유강후의 허리를 감쌌다.유강후는 조금 위안을 얻은 듯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아무 생각하지 말고 푹 자. 뱃속에 있는 아이들도 널 걱정하고 있을 거야.”그 말을 끝으로 유강후는 온다연의 옆에 누워 그녀를 품에 끌어안았다.그렇게 날이 밝아질 무렵 이권이 달려왔다.“도련님, 수술이 끝났습니다.”말이 끝나자마자 온다연은 벌떡 일어나서 침대에서 내려왔다.“어떻게 됐어요?”이권의 답을 듣기도 전에 그녀는 맨발로 헐레벌떡 밖으로 뛰쳐나갔다.이권은 화가 난 유강후를 보고는 감히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가만히 서 있었다.기분이 몹시 불쾌했지만 유강후도 마지못해 온다연의 뒤를 따랐다.밖으로 나오자 그녀는 마침 수술실에서 나오는 염지훈을 마주하게 되었다.그는 인공호흡기와 산소통을 달고 있었고 얼굴은 말도 안 될 정도로 창백했다. 전혀 움직이지 않는 모습은 마치 생명의 끝을 마주하는 것 같았다.온다연은 그의 가슴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걸 보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이때 유강후도 도착했다.의사는 간호사에게 염지훈을 중환자실로 이송하라고 한 후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나뭇가지가 가슴을 찔렀어요. 다행히 심장은 큰 문제가 없지만 폐를 약간 다쳤어요. 다른 내장에도 미세한 출혈이 있고 갈비뼈 대여섯 군데가 골절되는 등 상황이 많이 안 좋아요.”“앞으로의 72시간이 관건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 시간 동안 복강 감염이 발생하지 않으면 위험한 시기를 넘었다고 생각하셔도 됩니다.”온다연은 다리에 힘이 풀려 제대로 서 있지 못했고 유강후는 재빨리 그녀를 부축하여 의자에 앉혔다.의사는 간단하게 상황을 설명한 후 바로 떠났다.긴 복도는 쥐 죽은 듯한 정적으로 가득 찼다.온다연은 마음이 혼란스러웠고 어젯밤 내내 꾼 꿈들이 다시 떠올랐다.염지훈은 피투성이가 된 채로 그녀의 앞에 서서 왜 배신했냐며, 왜 조금의 사랑도 주
온다연은 주먹을 천천히 풀며 가볍게 말했다.“믿을게요. 하지만 설령 강후 씨의 의도가 아니었다고 해도 모든 일이 나은별에 대한 감정이 남아있어서 일어난 건 변함없어요. 그리고 난 강후 씨가 나은별에게 감정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어요. 그게 어떤 감정이든.”유강후가 입을 열기도 전에 온다연은 말을 이어갔다.“그 사람들에게 걷어차여 갈비뼈 몇 개가 부러졌고 폐까지 망가졌어요.”“폭탄이 터졌을 때, 파편들이 내 몸을 찌르고 피부를 베는 그 느낌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아요. 바다에 떠다니며 숨을 끊기기 직전 강후 씨에 대한 실망이 극에 달했어요. 그러고선 하느님에 빌었죠. 만약 다음 생이 있다면 다시는 강후 씨를 만나지 않겠다고.”“그 후로 오랫동안 혼수상태에 있었어요. 폐가 심각하게 감염되어 여러 번 죽을 뻔했어요.”“혼수상태에 빠진 보름 동안 계속 반복되는 꿈을 꿨어요. 강후 씨가 날 김원도에게 밀어 넣고 날 해변으로 데려가 죽게 만들었다는 꿈.”얼굴이 창백하게 질린 유강후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주먹을 꽉 쥐었다.그는 온다연이 큰 고통을 받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때 얼마나 아프고 절박했을지 상상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동안의 고통을 직접 말하는 걸 들으니 귀가 먹먹해졌고 심장에 큰 돌덩이가 내려앉은 듯 숨이 막혀 허리를 제대로 펴지 못했다.특히 온다연이 차분한 말투로 말하는 건 그녀가 칼로 찌르는 것보다 더한 고통으로 다가왔다.유강후는 눈을 감고 심호흡했다.“미안해요...”“내 말 끝까지 들어요.”온다연은 그의 말을 가로챘다.“강후 씨가 틀리지 않았을 수도 있고, 나은별과 나를 바꾸지 않았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여전히 강후 씨를 이해하지 못하겠고 용서할 수 없어요. 감당하지 못 할 고통을 겪었거든요. 너무 힘들어서 강후 씨를 미워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유강후는 얼굴이 더욱 창백해졌다.“알아요.”온다연은 심호흡을 하고 말을 이었다.“유씨 가문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생각하고 싶지도 않아요. 그들은 날 즐거움을 위한 도구로 생
아이는 여전히 기쁘지 않았다.“저는 엄마와 아빠를 닮고 싶어요. 아니면 나중에 외출했을 때 사람들은 남동생과 여동생만이 엄마 아빠의 아이라 하고 저는 길거리에서 데려온 아이라고 할 거예요.”온다연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누가 감히 그렇게 말한다면 너의 아빠는 그자의 입을 찢어 버릴 거야.”그제야 신이 난 아이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또 말했다.“그러나 저는 제가 외할아버지를 닮았다고 생각해요. 이런 것을 격세유전이라고 해요.” 온다연은 웃기 시작했다.“그래, 맞아. 너와 할아버지는 모두 키가 크고 위풍당당해.”아이는 비록 다섯 살도 되지 않았지만 키가 컸고 사나이의 기세가 있었다. 단단한 이목구비는 진수현과 조금 닮아 보였다.“외할아버지를 닮아도 괜찮아요, 멋있잖아요. 그러나 나중에 저는 외할아버지와 아빠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 될 거예요.”“그래, 알았어. 우리 우림이는 외할아버지와 아빠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 될 거야.”아이는 자랑스럽다는 듯 고개를 쳐들었다.“저는 또 좋은 오빠가 될 거예요. 저는 내일부터 격투와 복싱을 배울 거예요. 나중에 누군가 남동생과 여동생을 괴롭히면 제가 그들과 싸워서 쫓아낼 거예요.”“하지만 저 사격도 배우고 싶어요.”그는 온다연의 옷깃을 잡아당기며 말했다.“엄마, 아빠랑 말해주시면 안 돼요? 저 사격 배우고 싶어요. 저 아빠한테 몇 번이나 부탁드렸는데 안 된다고 하셨어요.”온다연이 말했다.“너 아직 어리기 때문에 우선 아이로서 배워야 할 것을 잘 배워. 조금 더 크면 아빠가 배우게 할 거야”곧 얼굴이 굳어진 아이는 말했다.“네, 알았어요.”이때 유강후가 밖에서 들어오는 것을 본 아이는 바로 그의 등위에 업혔다.“강 대표님, 신용을 지키지 않네요. 어제 레이싱 보러 가기로 한 약속을 지키지 않았어요.”유강후는 등에서 그를 끌어내리고 굳은 얼굴로 말했다.“전날 내가 회의 중일 때 스크린을 공표 영화로 바꿔버린 사람이 누구야?”아이는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그건 건너편에 앉아 있는 사
유재성은 섭섭한 표정을 짓더니 한참을 지나서야 겨우 입을 열었다.“온다연이 본가에 손자 손녀를 낳아 주는 것은 공을 세운 것이니 네가 잘 대해줘야 해.”유강후는 대답도 하지 않았다.그들 부자는 한참 동안 겨우 몇 마디 말을 주고받다가 결국 유재성이 사무실에서 걸려 온 전화를 받고 자리를 떠났다.그는 미련이 남은 듯 멀리서도 뒤를 다시 한번 돌아보더니 서서히 사라졌다.유강후는 아이를 안아 다시 온다연이 있는 방으로 옮겼다.그는 온다연의 표정이 괜찮은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방금 배달된 삼계탕을 그녀의 앞에 놓아주었다.“방금 끓여온 삼계탕이야, 따뜻할 때 얼른 먹어봐.”온다연은 국그릇을 밀어내면서 말했다.“저 한 달 되도록 국물만 먹었어요. 이제 보기만 해도 지긋지긋해요.”유강후는 그런 온다연을 달래며 말했다.“너 오늘 점심도 적게 먹었고 이제 오후가 다 되었으니 조금만 먹어봐. 내일 집에 가면 네가 좋아하는 음식들로 한 상 차려줄게.”온다연은 마지못해 몇 숟가락 먹고는 자신이 좋아하는 요리의 이름을 줄줄이 말했다.다음날 이른 아침, 지수현 부부랑 강씨 가문에서 일찍 병원에 왔다.집이 가까운 거리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러 대의 차를 보내왔다.두 아이는 가운데 있는 승합차에 태웠고 앞뒤로 몇 대의 차로 빼곡히 둘러싸였다.강씨 가문 어르신은 그의 오랜 친구와 가는 내내 영상통화를 하며 얼굴에 주름이 펴지지 않을 정도로 웃었다.가족 연회에서 두 집안은 웃음이 끊기질 않았고 아이들의 교육 문제에 대해서도 말하며 또 결혼식 날짜와 절차도 확정했다.온다연은 필경 아이를 데리고 결혼식을 하는 것은 불편하니 간단하게 하려 했지만 강씨 가문 어르신과 진수현은 모두 동의하지 않았다.그들은 경원시에서도 거대한 결혼식을 올리게 해줄 뿐만 아니라 북아메리카와 신국 쪽에서도 떠들썩하게 하려고 했다.온다연과 유강후는 아무리 고집을 부려도 어른들을 이길 수 없어서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두었다.그들은 밥 한 끼를 네 시간이
한밤중이 되자 강씨 가문도 도착했다.어르신은 들어오자마자 두 아이를 보고 격동되어 눈시울을 붉히며 나중에 조상을 뵐 면목이 생겼다고 말했다.온다연이 출산한 후 입원실은 매우 북적거렸다.유강후의 친구들도 시도 때도 없이 보러 왔고 온다연의 휴식을 방해할까 봐 그는 옆에 다실을 만들어 손님들이 와도 아이를 보기 편하게끔 했다.며칠 안 되어 받은 선물이 너무 많아 다실을 가득 메울 지경이었다.그 기간에 유재성이 찾아왔었지만 유강후는 그를 만나지 않았고 온다연 모자가 퇴원하기 전날에 또다시 찾아왔다.온다연이 어색해하는 모습을 보며 유강후는 품에 안은 아이를 내려놓으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내가 나가 볼 테니 걱정하지 마, 들어오지 말라고 할게.”온다연은 아이의 부드러운 얼굴을 살짝 터치하며 낮은 소리로 속삭였다.“이번에 온 건 다섯 번째지?”유강후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온다연은 담담하게 이어 말했다.“아이를 데리고 나가 보여줘요. 그래도 당신의 친아버지시고 아이들의 친할아버지잖아요.”온다연은 확실히 본가 사람들을 싫어하지만 그녀에게 악행을 저지른 사람은 유하령과 유자성이었고 유재성은 그때 시정에 일 때문에 바쁜 탓에 본가에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가끔 얼굴을 마주쳐도 온다연에게 그런대로 예의를 갖추었고 독설은 퍼부은 적이 없었다.유강후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내가 말했지. 다시는 본가의 사람들이 널 귀찮게 하는 일이 없게 한다고.”“저도 알아요. 하지만 당신의 친아버지시잖아요. 적어도 당신을 교육하는 면에서 뒤처진 적 없었고 게다가 미래 그룹이 H 국에서 오늘날까지 있을 수 있었던 건 그의 권세 문제도 있는 거잖아요. 저한테는 별로 좋은 기억이 없고 심지어 원망하기까지 했지만 미래 그룹이랑 아이의 체면을 봐서 가끔 아이를 보러 온다고 해도 저는 그냥 모른 척할 거예요.”온다연이 이렇게 할 수 있는 건 그녀의 최대 양보였다.만약 예전 같았다면 온다연의 마음속에는 미움만 있었겠지만 지금은 아이가 있으니 그들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원망
유강후는 그런 온다연의 말에 당황해하며 말했다.“아니, 그게 아니라 네가 지금 몸 상태도 안 좋고 열도 나고 하니까 약도 먹어야 하고 건강이 회복되면 그때 다시 보려고 한 거야.”온다연이 울먹이며 말했다.“그럼 저 약 안 먹을래요.”유강후는 급한 마음으로 말했다.“그건 안돼. 너 지금 면역력이 제일 낮을 때라서 의사가 처방해 준 약 먹고 푹 셔야 몸도 좋아지지.”그러나 온다연은 고집을 부리며 유강후가 아무리 달래도 다시는 그를 상대하려 하지 않았고 점심에 약 먹을 때에도 약을 바닥에 버리고 먹지도 않았다.다행히 열이 좀 내린 탓에 고열에서 미열로 되었고 유강후는 그냥 달랠 수밖에 없었다.저녁 무렵에 유강후가 나간 틈을 타서 온다연은 간호사에게 아기를 안아오게 하고 모유를 먹였다.이때 온다연은 금방 모유가 분비되기 시작했고 황색을 띤 액체가 나오는 것을 보고 의사는 그것이 초유라며 아이들한테 아주 좋은 면역단백이라고 했다.비록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았고 아이가 빨면 더 아파져 왔지만 온다연은 모유를 먹는 아이들을 보며 여태 느껴보지 못했던 평온함과 행복을 느꼈다.온다연은 전에 아이와 엄마가 텔레파시가 통한다는 것은 과장된 말이라고 생각해 왔지만 지금은 사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처음에는 모유가 별로 없어 아이를 몇 모금밖에 먹이지 못했고 유강후가 들어 오기 전에 장화연에게 아이를 다시 침대로 안아가라고 했다.장화연은 아이와 온다연을 번갈아 보며 걱정되어 말했다.“사모님, 우선 몸조리부터 하셔야 해요. 작은 도련님과 아가씨는 배를 곯지 않아요. 그리고 초유도 준비해 뒀어요.”온다연은 낮은 소리로 말했다.“저 이틀만 먹일 거예요. 그때까지도 열이 안 내리면 안 먹일게요. 장 집사님, 부탁인데 저 약을 비타민으로 바꿔주세요.”장화연이 말을 안 하고 있자 온다연은 다시 말했다.“부탁이에요. 장 집사님, 저의 몸 상태는 제가 잘 알아요. 그냥 미열만 있을 뿐 아무 문제 없어요.”장화연은 어쩔 수 없이 대답했다.“내일 오후가 되어도 열이
봉현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너도 요즘 아이랑 마누라 돌봐야 하니 시간도 없을 거잖아. 내가 알아서 방법 구해볼게.”말을 마치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송지원도 뒤따라 나와 봉현수의 뒷모습을 보며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이번에 지예솔 씨가 진짜 큰맘 먹고 멀리 가버린 거 같은데 현수는 아직도 경원시 근처에서만 찾고 있어. 어쩌면 출국했을지도 모르는데 말을 해줄 수가 없네.”“현수 지금 상태가 매우 위험해. 마치 밧줄을 팽팽하게 잡아당겨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정도로 한계에 도달한 거 같아. 저러다 큰일이 일어날까 봐 두렵네.”두 사람은 한마디씩 하고는 침묵하였다.한참 지나 유강후가 먼저 낮은 소리로 입을 열었다.“이 일은 우리도 어떻게 도울 방법이 없어. 본인이 스스로 해결하게 해야 해. 요 며칠은 내가 아내와 아이들을 돌봐야 하니 네가 옆에서 좀 더 신경 써줘.”송지원은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그리고 한이준은 며칠 동안 보이지도 않고 전화도 안 통하던데. 내가 사무실에 전화했더니 비서가 그러는데 걔가 섬에 집을 사서 지금 장식을 하고 있고 외부 사람들과 거의 연락도 하지 않는다 하더라고. 이 자식 또 무슨 미친 짓을 벌이는지 모르겠어.”이때 방에서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려왔고 유강후는 곧바로 방으로 향했다.“들어가. 현수랑 이준의 일은 네가 좀 더 신경 써줘. 내 쪽에 사람들은 필요하면 네가 알아서 조정해서 데리고 가면 돼.”들어가 보니 동생이 울면서 손발을 자꾸 흔들어 옆에 자고 있던 오빠도 깨웠다.오빠는 오히려 깜깜한 눈을 뜨고 조용하게 누워 새로운 세상을 구경하고 있는듯 하였다.유강후가 가까이 다가가기도 전에 간호사가 아이를 안으며 말했다.“아이들이 배가 고픈가 봐요. 나와서부터 지금까지 아무것도 안 먹었어요.”말하면서 침대에 누워있는 온다연을 한 번 보고는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장화연은 간호사의 뜻을 눈치채고 말했다.“분유로 먹여요. 사모님은 지금 몸이 편찮으셔서요.”이때 온다연도 놀라 잠에서 깼다.
유강후는 당황했던 마음이 그제야 풀리며 한숨을 내쉬었다.예전에 그 아이는 힘들게 임신했고 유강후도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지켜내지 못했다.하지만 이번에는 안전하게 출산까지 했고 아이도 건강하게 태어났지만 가장 걱정되는 건 바로 온다연의 건강 상태였다.“주 선생님, 앞으로 제 아내의 건강을 잘 부탁드릴게요. 두 아이도 만약 두통이나 열이 있다 해도 많이 신경 써주셔야 해요.”주 선생님은 급하게 대답했다.“괜찮아요, 큰일은 아니에요. 두 아이도 지금 봐선 건강 상태가 아주 좋으니 잘 키우실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유 대표님.”주 선생님을 보낸 후 유강후는 정성스럽게 온다연을 보살피며 약도 먹이고 재우기도 하였다.한참 뒤에 송지원과 봉현수가 아이들 보러 병원에 찾아왔다.송지원은 작업복을 입고 있는 걸 보니 시정 쪽에서 방금 온 것이 분명했다.봉현수는 비록 깔끔하게 차려입었지만 이전의 의기양양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었고 유강후는 보자마자 그의 정신이 극도로 쇠약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봉현수는 아이들의 선물을 유강후에게 건네고 나서 소파에 앉아 넋 놓고 있었다.반면 송지원은 두 아이에게 관심을 쏠리며 간호사에게 아이를 안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했다.송지원은 아이를 안고 웃으며 말했다.“넌 아들딸을 한꺼번에 얻었지만 우리 몇 명에서 한재민을 제외하고는 모두 고독한 사람들이네. 이 아이의 행운을 빌어 나도 나중에 쌍둥이가 생길 거야.”유강후는 얼른 아이를 뺏어 안고는 말했다.“저리 비켜, 누가 너더러 내 아들의 행운을 빌라 했어. 그렇게 행운을 갖고 싶으면 너 절로 절에 가서 빌던지.”송지원은 두 녀석을 매우 귀하게 여기며 또 손을 뻗어 여동생을 안았다.“핑크 팔찌를 차고 있는 걸 보니 여자아이겠지? 너무 귀여워, 나도 딸이 욕심나네.”송지원은 여동생의 작은 얼굴을 만지작거리며 웃음기가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난 이 두 아이의 양 아빠가 될 거야. 앞으로 날 송 아빠라고 부르라고 해.”유강후는 송지원이 딸을 안고 놓지 않는 것을 보고
유강후는 온다연의 상처가 아플까 봐 번갈아 가며 아이를 안아 보여줬다.조용하고 작은 아이의 얼굴을 보자 온다연은 눈시울을 붉히더니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다 건강하게 태어났어요. 이번에는 보온 실에 들어갈 필요가 없네요.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있을까요?”유강후는 속상한 마음으로 온다연의 눈물을 닦아 주면서 말했다.“보온 실은 필요 없어. 의사가 아이들이 모두 정상이라고 말해줬어. 하지만 그래도 그웬을 와서 산후조리가 끝날 때까지만 우리 집에 있으라 했어.”“우리 아들을 데리고 와봐요, 한번 보게요.”유강후는 조심스럽게 아이를 안아 온다연의 옆에 눕혔다.온다연은 감히 몸은 움직이지 못하고 머리만 옆으로 돌려 쳐다보면서 이 아이가 꿈속의 그 아이를 닮았는지 궁금했다.안타깝게도 아이는 아직 너무 작아 이목구비가 모두 주름져 있어 잘 보이지 않았기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온다연이 실망하는 모습을 본 유강후는 웃으며 말했다.“아들은 날 닮았고 딸은 널 닮았어.”온다연은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요? 아이가 이목구비도 잘 안 보이는데 어떻게 알 수 있어요?”유강후는 낮은 소리로 말했다.“난 보이거든.”유강후는 몇 시간 동안 작은 침대 옆에 붙어 서서 아이의 이목구비와 윤곽을 수없이 분석한 결과 아들은 그를 닮았고 딸은 온다연을 닮았다는 결론을 내렸다.유강후는 희망컨대 두 아이가 모두 온다연을 닮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다시 생각해 보더니 남자아이는 좀 강하게 생기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는 두 아이를 모두 온다연의 곁에 눕혀두고 팔을 뻗어 그들 세 모녀를 품에 안으며 아주 정성스럽게 낮은 소리로 말했다.“다연아, 이젠 너희들은 내 인생의 전부야.”유강후는 앞으로 약점이지만 보호막이 될, 그한테는 세상 전부인 이 사람들을 위해 끝까지 분투할 것이라고 다짐했다.온다연은 유강후의 턱에 나온 수염을 만지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당신 요즘 많이 피곤했죠? 안색이 너무 안 좋으니 이제 좀 쉬어
“네가 정치일에 개입도 하지 않았고 나도 이제 곧 은퇴할 것인데 만약 본가에서 나쁜 기사라도 터지면 우린 경원시에서 설 자리도 없게 돼. 그럼 우주 그룹이나 본가나 다 영향받을 수 있잖아.”유강후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그래요? 그럼 유연서는요? 연서의 일은 어떻게 말씀하실 건데요? 은혜를 갚고 싶으면 알아서 갚으세요. 아무도 당신을 막지 않겠지만 누나의 목숨으로, 또 저의 행복으로 다른 사람에게 보답하려 하지 마세요.”“그리고 제 아이들은 유씨 성을 안 가질 거고 본적에도 넣지 않을 거예요. 아이들은 이미 이름이 있어요. 하나는 강 씨 이고 하나는 진 씨 에요. 본가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으니 괜히 여기 와서 다연이의 휴식을 방해하지 마세요. 다연이는 본가 사람이라면 이제 치를 떨어요.”유재성은 급해하며 말했다.“괜찮아, 나 그렇게 보수적이지 않아. 아이들이 유 씨가 아니라도 내 손 군들이야. 다연이가 날 싫다 그러면 앞에 나타나지 않고 아이들만 잠깐 만나볼게. 그래도 할아버지인데 아이들에게 선물도 준비하고...”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유강후는 통화를 끊어버렸다.이때 이권이 걸어오더니 말했다.“대표님, 아이들의 출생증명서에 이름을 써야 하는데 작은 도련님이랑 아가씨 이름은 준비하셨죠?”유강후는 이권의 손에 쥐어져 있던 종이를 받아 그 위에 아이들의 이름을 적었다.그러자 이권은 웃으며 말했다.“역시 이미 생각해 놓으셨군요.”“남자아이는 다연이랑 같은 성씨로 진 강남으로 했고 이건 다연의 아버지가 지어주신 거고 여자아이는 강아름으로 나랑 어르신이 같이 지은 거야.”이권은 다시 웃으며 말했다.“작은 도련님이 진씨 가문의 성을 따르게 되면 어르신이 화 안 내실까요?”유강후는 종잇장을 건네주며 말했다.“어르신은 해외에서 평생을 살아 이런 일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실 거야. 그럼 아이의 성이 둘 다 진 씨라면 강씨 가문의 자손이 아닌 거야? 다연이가 목숨을 걸고 낳은 아이들인데 하나는 진 씨 성을 가지면 또 어때? 둘 다 진 씨 성을 따른
유강후가 가장 세게 흔들고 있는 작은 손을 건드렸더니 녀석은 바로 그의 엄지손가락을 잡았다.이상하게도 녀석은 곧 칭얼거리지 않았고 작은 입을 쩝쩝대더니 조용해졌다.유강후는 갑자기 멍해지며 신기하면서도 행복한 감정이 북받쳐 올라 눈물이 나올 정도였다.‘이것이 내 아이와 실제로 접촉하는 느낌인 건가?’분명히 이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보는 얼굴인데 뭔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유강후가 막 아이를 안으려 할 때 간호사가 웃으며 말했다.“입원실에 가서 안아봐요. 산모도 곧 나올 테니 여기 막아서면 안 돼요.”유강후는 몹시 아쉬워하며 장화연과 이권 더러 아이를 데리고 가게 하고 자신은 문 앞에서 온다연이 나오기를 기다렸다.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온다연도 나왔다.마취가 아직 풀리지 않은 온다연은 아직 자고 있었고 유강후는 그녀를 받아 입원실로 옮겼다.입원실은 예전 온다연이 쓰던 큰 방으로 이미 모두 정리정돈이 되어 있었고 두 꼬마 녀석은 침대 옆의 작은 침대에 두었다.두 아이와 온다연은 모두 조용히 자고 있었고 유강후는 그들 모자 셋을 옆에서 지켜보았다.잠깐 사이에 유강후는 많은 사진을 찍었고 한장 한장 들여다보면서 휴대전화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모멘트도 일 년에 한 번쯤 업데이트하는 유강후가 오늘은 연속으로 세 개의 게시물을 올렸다.그것도 모자라 다시 작은 그룹 채팅을 만들어 잘 아는 몇몇 친구들을 그룹에 끌어들이고 그중에는 염지훈도 포함되어 있었다.그러고는 제목에 쌍둥이 남매가 부럽지 않냐고 그래도 소용없다고 계속 부러워하라는 글을 덧붙여 20장이 넘는 아기의 사진을 연이어 보냈다.얼마 안 되자 답글들이 올라왔다.송지원: 아이들이 태어난 거야? 축하해, 내일 보러 갈게.봉현수: 금방 태어난 거야? 난 선물까지 미리 준비해 뒀어. 내일 지원이랑 같이 갈게.그 밑에는 붉은색으로 된 부동산 증명서 두 권의 사진이 첨부되었다.한재민: 축하해. 선물은 지금 오는 길에 있어. 설쯤에 제수와 아이들 보러 갈게.그웬: 벌써? 내가 아직 가지도 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