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재석이 물었다.“앞마당의 손님들은 다 돌아갔니?”강시언이 대답했다.“거의 다 돌아갔어요. 하준과 다른 사람들이 상황을 지키고 있으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그 말에 강재석은 고개를 끄덕이고 소희를 바라보며 말했다.“소희야, 돌아가서 잘 수 있겠니? 잠이 오지 않으면 할아버지가 계속 얘기해 줄게.”소희는 사진첩을 덮고 하품하며 말했다.“할아버지 주무세요. 잠이 안 오면 성연희랑 얘기할게요.”세 사람은 서로 잘 자라는 인사를 나누고, 소희와 시언은 함께 방을 나섰다.그 순간, 소희의 핸드폰에 메시지가 들어왔다. 구택이 보낸 것이었다.[소희야, 벌써 자정이 넘었어!]몇 시간 뒤면 구택이 강씨 저택에 올 시간이었다. 이에 소희는 미소를 머금고 천천히 답장을 썼다.[가서 자.]소희가 메시지를 보내자마자 구택은 바로 답했다.[잠이 안 와.]소희는 답하지 않았다. 밤의 시원한 공기를 깊게 들이마셨다. 뭔가 특별한 분위기 때문인지 그녀는 오히려 마음이 맑고 생기 넘치는 기분이었다.밤이 깊어가며 더더욱 고요해졌다. 회랑 아래의 붉은 등불은 더욱 밝고 눈부셨다. 온 마음에 기쁨과 설렘을 퍼지며 그녀의 가슴을 뛰게 했다.시언은 동원으로 걸음을 옮기며 담담히 말했다.“연희랑 너무 늦게까지 놀지 말고, 조금이라도 자. 잠이 안 오면 오석 집사님에게 아로마 향을 부탁해.”소희는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오케이.”소희는 회랑 아래에서 시언을 바라보며 낮고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오빠, 고마워.”시언은 깊고도 차분한 눈빛으로 소희를 바라보며 다가와 부드럽게 그녀를 안아주었다.“우리는 항상 너를 사랑할 거야.”소희는 시언의 넓은 어깨에 기대어 잠시 목소리가 떨렸다.“저도요.”할아버지의 자애로운 사랑과 오빠의 든든한 어깨가 지금의 그녀를 있게 해주었다. 사진들을 볼 때 소희는 생각했다.‘나는 정말 행운아야. 강씨 집안에 오게 됐으니.’시언은 소희의 어깨를 한 번 두드리며 말했다.“결혼하면 네 삶은 새로운 길을 걷게 되는 거야. 마치
강시언과 할아버지는 소희를 보육원에서 데리고 나왔다. 어두웠던 그녀의 어린 시절도 함께 끝났다....소희는 걸음을 재촉하며 복도를 지나 서원의 문턱에 다다랐다. 그곳에서 회랑 아래 앉아 있는 한 남자를 발견했다.심명은 머리를 뒤로 기대고 기둥에 몸을 기댄 채 소희를 바라보며 미소 짓고 있었다. 술 냄새가 은은히 풍겼고, 그의 매혹적인 복숭앗빛 눈동자에도 술기운이 살짝 배어 있었다.“술자리에서 친구들을 만나 겨우 빠져나왔어. 네가 벌써 잠들었을까 걱정했는데.”심명은 눈을 가늘게 뜨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하늘도 날 돕는군. 여기서 밤새워 기다려야 할까 봐 걱정했거든.”소희는 그 앞에 멈춰 섰다.“걸을 수는 있어? 아니면 내가 사람을 불러서 방으로 옮겨줄까?”심명은 손목을 잡아당기며 말했다.“한 시간 기다렸으니 10분만 내게 시간을 줘. 괜찮지?”소희는 심명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리고 소희 역시 기둥에 기대어 머리를 젖히고 떠오른 달을 바라보았다.심명은 풀잎 하나를 뽑아 입에 물고 자유분방한 태도를 보이며 소희를 바라보며 웃었다.“네가 좀 못생겼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네가 이렇게 예쁘지 않았다면, 예전에 한소율이 나더러 너를 유혹하라고 했을 때, 돈을 아무리 많이 준다 해도 난 거절했을지도 몰라.”소희는 심명의 말에 눈길을 돌리며 담담하게 말했다.“그러니까, 네가 나를 좋아했던 거나 예전의 여자친구들을 좋아했던 거나 별반 다르지 않네.”“자신을 순정남처럼 포장하려 들지 말고, 얼른 다른 여자를 찾아 연애해. 그러다 보면 아직 네 폼이 죽지 않았다는 걸 느끼게 될 거야.”“뭐? 그럼 지금은 폼이 죽었다는 얘기야?”심명은 미묘한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나를 놀리려는 거야?”소희는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말실수였어.”심명은 소희의 말을 무시한 채, 붉은 등불을 바라보며 스스로 중얼거렸다.“내가 널 언제 좋아하게 됐을까? 나도 모르겠어.”“그저 어느 순간 마음이 끌렸고, 너와 임구택이 함께 있는 걸 보면서 한 말들이 임
소희는 손을 들어 심명을 가만히 안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심명, 나는 오랫동안 어둠 속에서 지낸 적이 있어. 그래서 너에게 말할 자격이 있어. 이 모든 건 결국 지나갈 거야.”심명은 소희의 손목을 잡고 있는 손을 떨며, 이마를 그녀의 어깨에 기댄 채 이름을 반복했다.“소희야, 소희야...”조용한 회랑 아래, 하나둘씩 늘어선 고급 유리등이 붉은빛을 발하며 밤바람에 살랑거렸다. 그 빛은 몽환적이고 아련했다.소희는 목이 메인 듯한 감정을 느끼며 말했다.“너 취했어. 내가 널 데려다줄까?”심명은 고개를 저으며 쉰 목소리로 말했다.“다음 생에는 우리 조금 더 일찍 만나자. 이번엔 임구택보다 먼저, 알겠지?”심명의 인생은 그 순간부터 다음 생을 기다리는 것이 되었다.이에 소희는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나와 임구택은 다음 생에도 함께일 거야.”심명은 고개를 들어 눈물에 젖은 눈으로 소희를 바라보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그럼 다음 생엔 절대 쉽게 널 포기하지 않을 거야. 설령 빼앗아야 한다 해도 널 내 것으로 만들겠어.”소희는 진지한 눈빛으로 말했다.“넌 나도 못 이기고, 임구택도 못 이겨.”심명은 순간 멈칫했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얼굴은 눈물과 함께 다이아몬드처럼 빛났다.“내가 왜 너같이 매정한 여자를 좋아하게 된 거지?”소희는 심명은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다음 생에는 우리가 가족이 되자. 오빠와 여동생이든, 누나와 남동생이든, 태어나자마자 함께하는 가족.”심명은 눈을 깜빡이지 않고 소희를 바라보며, 마치 그녀의 모습을 기억 속 깊이 새기려는 듯 진지하게 고개를 저었다.“아니, 다음 생엔 네가 다른 사람과 결혼하는 걸 절대 두고 보지 않을 거야.”그는 다시금 소희의 손목을 꼭 쥐고 고개를 숙이며 혼잣말처럼 말했다.“왜 이렇게 슬프면서도, 널 만난 게 내 인생 최고의 일이었다고 생각하게 되는 걸까?”다음 생에 그녀를 만나지 못할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막막해졌다.소희는 심명이 정말 취했다는 것을 알았기에 부드럽게 말
“역시 소희가 제일 좋아!”심명은 또다시 소희를 안으려고 팔을 벌렸다. 그러나 이번에는 소희가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소희는 손을 들어 그를 밀어내며 말했다.“됐어, 그만하고 이제 좀 적당히 해. 얼른 돌아가서 자!”심명은 마지못해 일어나며 말했다.“알겠어, 네 말 들을게. 자러 갈게. 내일 아침에는 네가 웨딩드레스 입는 걸 봐야 하니까.”소희도 자리에서 일어섰다.“심명, 여기까지만 하자. 이제부터는 너 자신을 사랑해. 그리고 좋은 여자를 만나서 제대로 사랑해 줘.”심명은 등을 돌린 채 밤빛 속에서 잠시 멈춰 섰다. 이내 그녀를 돌아보며 반짝이는 미소를 지었다.“네 죄책감을 덜어내려고 나를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려는 생각은 하지 마.”소희는 맑은 눈빛으로 말했다. “죄책감 때문이 아니야. 단지 널 안쓰럽게 생각해서 그래.”심명은 깊고도 단단한 눈빛으로 소희를 바라보았다. 심명의 눈에는 등불이 비치며 부드러운 빛이 더해졌다.“소희야, 내가 오늘 여기 온 건 이미 모든 걸 내려놓았기 때문이야. 그저 네가 시집가는 모습을 보고 싶었을 뿐이야.”“나를 불쌍히 여기지 마. 연인은 평생 못 될 수도 있지만, 친구는 평생 될 수 있어. 그러니까, 난 사실 행복해.”소희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래.”심명은 두 팔을 벌리며 말했다.“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안아보자!”소희는 심명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소희가 한 발짝을 내디디자, 심명의 눈빛이 다시 흐릿해졌다. 그는 그녀를 부드럽게 안으며 고개를 살짝 들어 말했다.“버림받아도 내가 있다 같은 말은 안 할게. 그런 말을 하고 싶지 않아. 차라리 네가 그런 일을 겪지 않기를 바랄 뿐이야.”소희는 가늘게 목소리를 삼키며 말했다.“응.”심명은 그녀의 긴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말했다.“꼭 행복해야 해. 내가 널 임구택에게 양보한 게 헛되지 않도록.”소희는 고개를 숙여 발밑에 드리운 둘의 그림자를 바라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행복할게.”심명은 오래 안고 있지 않았다. 이
별장.임구택은 느긋하게 의자에 몸을 기댄 채, 여전히 술을 마시며 경쟁을 벌이고 있는 장시원과 조백림 일행을 바라보고 있었다.그때 명우가 다가와 허리를 굽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사장님, 이제 세 시간 뒤면 날이 밝는데, 조금이라도 쉬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구택은 이미 꽤 많은 술을 마신 상태였다. 그의 깊은 눈빛은 더욱 어두워졌고, 목소리에는 술기운에 섞인 허스키한 매력이 묻어났다.“내일 남궁민과 심명을 꼭 주의해서 지켜봐.”명우는 잠시 머뭇거리다 결국 솔직히 보고하기로 결심했다.“심명은 오늘 이미 운성에 도착했고, 지금 강씨 저택에 머물고 있습니다.”구택은 순간 눈빛이 매섭게 바뀌며 물었다.“왜 진작 말하지 않았지?”명우는 침묵했지만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했다.‘그랬다면 사장님이 가만히 계셨을까요?’구택은 술잔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곧바로 밖으로 향했다. 이에 명우는 급히 따라붙으며 말했다.“사장님, 진정하세요. 지금 강씨 저택에 가시면 안 돼요. 이건 룰이에요.”“룰 같은 거 말하지 마!”구택의 낮고 차가운 목소리는 밤공기를 뚫고 퍼졌다. 가벼운 말투였지만 서늘한 위압감이 서렸다.소희를 만날 수 없는 상황에서 심명이 그녀 곁에 있다는 사실이 그를 견딜 수 없게 만들었다. 구택은 기다릴 수 없었고, 룰이고 뭐고 다 잊어버리고 싶었다.명우는 심각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꺼내며 임시호 부부에게 전화해야 하나 소희에게 직접 연락할지 고민했다. 질투심에 이성을 잃어가는 그를 막아줄 누군가가 필요했다.그때 구택의 핸드폰이 울렸다. 새로운 메시지가 도착한 것이다. 구택은 핸드폰 화면을 확인하곤 걸음을 멈췄다.[자기야, 생일 축하해! 기다리고 있을테니까. 푹 자고 나서 데리러 와!]그 순간, 그를 짓누르던 모든 불안과 초조함, 그리고 질투가 눈 녹듯 사라졌다. 마치 고요한 호수 위로 달빛이 스며들 듯, 그의 마음은 차분해졌다.구택은 손가락으로 화면을 살며시 눌러 답장을 썼다.[왜 아직 안 자고 있어?]소희는 곧바로 답했다.
성연희는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말했다.“네 결혼식이라면, 그게 뭐든 다 할게! 술 말고 간장이나 식초 마시라고 해도 마셔 줄 수 있어.”소희는 웃으며 베개에 엎드려 고개를 돌려 연희를 바라보며 말했다.“오? 너 간장도 알아?”연희는 옆으로 몸을 돌리고 한 손으로 머리를 받치며 말했다.“내가 어떻게 일게 됐는지 맞혀봐.”“응?”소희는 진짜 궁금해졌고, 연희는 거만한 태도로 말했다.“어느 날 술에 취해 집에 갔는데, 주방에 빨간색 와인병이 놓여 있는 걸 봤어. 안에 반 잔 정도 남아 있길래, 고개를 들어 단숨에 마셨지.”“거실로 돌아갔을 때, 주방 아주머니가 갑자기 간장이 어디 갔냐면서 방금까지만 해도 있었는데 사라졌다고 한 말을 들었어.”연희는 자랑스럽게 말했다.“그때부터 간장은 내 머릿속에 깊이 각인됐어!”소희는 웃다가 눈물이 나올 정도가 되었다.“마실 때 이상하다고 생각 안 했어?”연희는 잠시 기억을 더듬다가 말했다.“그때는 별로 정신이 없었거든. 마실 때는 몰랐는데, 아주머니가 말하고 나니까 그제야 좀 짜더라!”소희는 웃으며 몸을 뒤집었고, 거의 침대에서 떨어질 뻔했다. 연희는 그런 소희를 붙잡아 침대 중앙으로 옮기며 미소 지었다.“기분 좀 풀렸어?”소희는 웃음을 멈추고 연희와 눈을 마주쳤다. 순간 마음이 따뜻해지며 뭉클한 감정이 차올랐다. 둘은 서로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연희는 소희가 강재석과 헤어지는 아쉬움, 심명에 대한 복잡한 감정과 미안함을 모두 이해하고 있었다. 연희는 소희의 이마를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말했다.“너 진짜 겉모습처럼 차가운 사람이었으면 좋았을 텐데.”소희는 그 손길에 눈을 감으며 조용히 대답했다.“그런 건 아니잖아.”연희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이런 일들을 겪어야 할 때가 있는 법이야. 내일이면 다 괜찮아질 거야.”“응.”그때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연희는 몸을 일으키며 웃었다.“분명 우청아겠지!”소희는 고개를 돌려 문 쪽을 향해 말했다.“들어와!”문이 열리고
소희가 말을 마치자, 세 사람은 동시에 웃음을 터뜨리며 침대 위로 쓰러졌다.우청아는 눈물이 맺힐 정도로 웃으며 말했다.“어쨌든 난 소희 편이야. 누가 와도 소용없어!”성연희는 침대 머리에 기대며 말했다.“우리 남편이 나한테 미남계를 쓰지만 않는다면, 나도 흔들리지 않을 자신 있어!”청아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다.“근데 만약에 미남계를 쓰면?”“그럼 나도...”연희는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우리 남편을 우리 쪽으로 끌어오지 뭐!”연희는 소희를 안으며 장난스럽게 말했다.“어쨌든 누구보다 소희가 더 중요하지!”소희는 청아를 보며 말했다.“그렇게 말은 해도, 막상 남편 보면 나를 까맣게 잊고 그쪽으로 달려갈 거잖아.”이에 청아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폭소했고, 연희는 소희의 옆구리를 간지럽히며 말했다.“너야말로 속이 어떨지 모르지. 내 손으로 네 양심 좀 확인해 봐야겠다. 그거 다 임구택한테 간 거 아니야?”세 사람은 한동안 장난치며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이에 청아는 무릎을 안고 앉아 웃으며 말했다.“우리 지금 모습, 시카고에 있었을 때랑 비슷하지 않아?”그 시절, 밤이면 요요가 잠든 뒤 세 사람은 자주 함께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늦은 밤까지 깨어 있었다.연희는 추억에 잠긴 듯 말했다.“지금이나 그때나 별반 다를 게 없네!”청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다만 심명이 없을 뿐이지.”연희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지금은 부를 수 없어. 걔가 오면 난 걔를 보고 웃지도 못할 것 같아.”청아는 소희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걱정하지 마. 심명은 누구보다 마음이 넓어. 오늘과 내일만 지나면 다시 활기차게 돌아올 거야.”연희도 맞장구를 치며 말했다.“내일 요요를 심명의 곁에 두면 돼. 요요만 보면 심명도 분명 기뻐할 거야.”소희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근데 시원이 오빠가 안 좋아할지도 몰라.”청아는 가볍게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안 좋아해도 어쩔 수 없지, 참고 견뎌야지!”세 사람은 또 한동안 웃음을
해가 높이 떠오르고, 옅은 안개가 걷히자, 저택 전체의 아름다운 풍경이 선명하게 드러났다.수백 에이커에 달하는 대지 위의 저택은 지금 완전히 꽃바다로 변해 있었다. 꽃들로 가득 찬 그 중심에는 아름다운 별장과 정교하게 꾸며진 야외 케이크 부스, 화려한 술대, 그리고 다양한 높고 우아한 조명 조형물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다른 풍경이 펼쳐졌고, 모든 세심한 디자인이 사람들을 감탄케 하여 비명을 지르게 할 정도였다.엄숙하고 우아하며 동시에 화려한 별장은 강가에 우뚝 서 있었고, 리본처럼 감싸 도는 물줄기가 이 성을 신성하고 특별한 오늘의 주인공으로 만들어주었다.오전 9시 정각, 장시원과 조백림을 비롯한 사람들이 복장을 갖춰 입고 성채 밖에서 대기하고 있었다.들러리 중에는 진우행도 포함되어 총 6명이었다. 이들 여섯 명은 외모와 체격이 뛰어난 것은 물론, 각자가 명문가 출신이라는 점에서 풍기는 분위기가 달랐으나 모두가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잠시 후, 임구택이 2층에서 내려오자 주변에서 감탄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미 다른 남자들의 멋진 모습에 반쯤 정신을 잃은 사람들도 주인공이 등장하자 억누를 수 없는 흥분과 놀라움을 느꼈다.구택은 몸에 꼭 맞춘 맞춤 수제 정장을 입고, 곧고 단정한 자세와 안정감 있는 걸음걸이로 내려왔다. 오늘은 진심으로 기쁜 날이었기에, 구택의 잘생긴 얼굴에는 평소의 차가운 분위기가 약간 사라지고, 깊이 있는 따뜻함이 더해져 있었다. 그의 뚜렷한 이목구비와 얇은 입술은 미소를 감추지 못한 채 살짝 올라가 있었다. 구택은 마치 차가운 얼음이 황금빛 햇살 속에서 부드럽게 녹아든 듯, 젠틀하고 따스한 분위기를 자아냈다.시원이 앞으로 다가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내가 장담하건대, 오늘이 너의 인생에서 가장 멋진 날일 거야.”이에 구택이 눈썹을 약간 올리며 답했다.“문제 있어? 내 인생 최고의 멋진 날은 당연히 우리 소희에게 바쳐야지!”시원은 여전히 미소를 유지하며 말했다.“오늘 네가 무슨 말을 해
곽시양은 임유진의 사무실에서 30분 넘게 있다가 나왔다. 복도로 나서자 동료들의 시선이 어딘가 이상하게 느껴졌다.시양은 다들 자신이 승진한 걸로 수군대는 줄 알고 웃으며 지나치려 했지만, 평소 친하게 지내던 동료 한 명이 다급하게 말했다.“시양 씨, 얼른 회사 이메일 확인해 봐요.”시양은 곧장 사내 메일함을 열어봤고, 그 내용을 확인한 뒤 3분 넘게 멍하니 서 있었다.그러고는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눈에 잡히는 물건을 움켜쥐고 그대로 진소혜를 향해 달려들며 집어던졌다.소혜도 가만히 있지 않았고, 두 사람은 한순간에 몸싸움으로 번졌다. 동료들이 달려와 가까스로 둘을 떼어놓자, 시양은 눈에 광기를 담고 소리쳤다.“진소혜, 이 악랄한 년! 팀장님도 모함하고, 나도 똑같은 수법으로 뒤통수 쳐? 너 같은 건 세상에서 그냥 사라져버려야 해!”소혜도 물러서지 않았다.“미쳤어? 그게 왜 내 탓인데? 그딴 더러운 짓을 해놓고 몰래 찍혔다고 나한테 화를 내?”“너야! 너밖에 없잖아!”시양은 미친 사람처럼 소혜에게 다시 달려들려 했다. 이때, 현준이 달려 나와 그녀를 막으며 말했다.“진정 좀 해!”“꺼져!”시양은 손을 뻗어 정현준의 뺨을 그대로 후려쳤고, 그녀의 눈에선 눈물이 그렁그렁했다.“당신이 날 찍었지! 그리고 진소혜한테 넘겼지! 둘 다 정말 비열해!”현준도 결국 폭발했다.“유혹한 건 당신이 먼저였잖아!”시양은 그대로 와락 울음을 터뜨렸다.“아악!”유진은 사무실 문 앞에 서서 이 난장판을 조용히 지켜봤다. 몇 마디 오가는 대화를 듣는 것만으로도 상황이 어찌 돌아간 건지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다.시양은 입사 이후 내내 소혜에게 눌려 지냈다. 겉으론 아첨하며 따라다녔지만, 소혜가 자신을 무시하고 조롱하듯 대하던 걸 속으로는 원망하고 있었다.시양은 현준이 소혜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회사에서도 소혜에게 특혜를 줬던 그를 시양은 일부러 유혹했다. 현준을 차지해 소혜를 공격하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현준은 시양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
이날, 임유진은 티타임에 진소혜와 마주쳤다. 소혜는 입술을 다물고 웃으며 말했다.“팀장님, 구씨그룹의 총애를 받으니 우리 부서 실적도 쭉쭉 오르겠죠? 부서 직원들 대신 감사드려요, 팀장님.”유진은 커피를 받아 들고 나가려다, 소혜의 옆을 지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 일, 소혜 씨가 한 거라는 거 알아요. 이미 누가 나한테 말해줬거든요. 그래서 소혜 씨 그냥 두지 않을 거예요.”소혜의 얼굴빛이 살짝 굳어졌고, 고개를 돌려봤을 땐, 유진은 이미 자리를 떠나 있었다.오후 회의에서 유진은 이렇게 발표했다.“이번 평가 기간 동안 곽시양 씨가 업무에 성실히 임했고, 탁월한 성과를 보여주었어요. 따라서 정현준 씨의 직책을 승계하여 부서 부팀장으로 승진해요.”“인사팀에서 곧 공식 공지드릴 예정이에요.”유진의 말이 끝나자 회의실엔 놀라움이 번졌고, 시양 본인조차 믿기 힘들다는 표정이었다. 부서 내에서도 존재감이 적었고, 입사한 지 오래되지도 않았으며, 능력이나 실적 모두 소혜에 비해 부족했기에, 시양이 발탁된 건 모두에게 의외였다.소혜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팀장님, 부팀장 선발 기준이 뭔가요? 기준을 명확히 해주시죠.”유진은 싸늘한 눈빛으로 소혜를 응시하며 말했다.“기준? 내 마음대로 정하는 게 기준이라면 기준이겠죠”소혜는 눈을 크게 떴고, 유진은 고개를 돌려 멍하니 있는 시양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시양 씨, 제 사무실로 잠깐 와요.”“네?”시양은 얼떨떨한 목소리로 대답하며, 소혜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는 듯 고개를 숙인 채 서둘러 유진을 따라갔다.유진이 회의실을 나서자, 안에서는 수군거림이 폭발했다. 최근 있었던 일로 인해 유진은 여전히 비난의 대상이었고, 그런 유진이 능력도 부족한 신입을 뛰어넘어 부팀장으로 발탁했다는 점에서 불만과 의문은 더 커졌다.현준도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이 인사 결정은 사전 상의 없이 유진이 발표한 것이었고, 그 역시 놀라고 있었기 때문이다.소혜는 맞은편에 앉은 베
유진은 구은정의 표정을 보고, 가슴 어딘가가 서늘해졌다. 그는 평소와는 어딘가 다르게 느껴졌고, 유진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어제 술 마셨다던데, 괜찮아요?”은정은 유진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괜찮아.”“안 좋아 보이던데, 이제 술은 좀 줄이는 게 좋을 것 같아요.”유진이 조용히 은정에게 당부했다.“응.”그 말에 은정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시간 됐어요. 나 출근해야 해요.”유진은 그렇게 말하며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고, 그렇게 둘은 스쳐 지나갔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유진은 안으로 들어갔다.그런데 조금 전 은정이 자신을 바라보던 눈빛이 자꾸 마음에 걸렸고, 가슴이 쿵 내려앉는 것 같았다. 순간 망설임도 없이 엘리베이터 문을 다시 열고, 급히 뛰쳐나왔다.그러나 복도엔 이미 그의 모습이 없었다. 유진은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스스로가 어이없었다.‘내가 지금, 도대체 뭐 하는 거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 걸까? 아니, 지금은 내 문제부터 정리해야 해. 괜히 그 사람한테 짐이 되어선 안 돼.’그날 오후, 은정은 늦게서야 회사에 출근했다.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법무팀에 최이석 관련 고소를 철회하라고 지시했다.마심호는 납득하지 못한 얼굴이었다.“그 사람 같은 놈은 봐줄 이유가 없죠. 이번 기회에 서성 라인 애들도 좀 눌러놓는 게 나아요.”그러나 은정은 별다른 설명 없이 단호하게 말했다.“저도 제 나름대로 생각이 있어요.”그날 저녁, 은정은 늘 그랬듯 이경 아파트로 돌아왔다. 조용히 복도를 지나, 곧장 유진의 집 앞으로 갔다.문 비밀번호는 여전히 바뀌지 않았고, 은정은 문을 열고 들어갔다. 집 안은 예전 그대로였고, 유진은 아무것도 챙겨가지 않았다.그런데도 방 안은 왠지 썰렁했는데, 무언가 본질적으로 달라져 있었다. 은정은 그녀가 드라마를 자주 보던 소파에 앉았다. 그 자리에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 해가 지고, 어둠이 드리울 때까지 그렇게 있다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은정은 책상 위의 휴대폰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녹음 안 했어요.”서선영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은정아, 이 일은 내가 밖에 알리지 않을게. 대신 조건이 있어. 최이석 일, 바로 고소 취하하고 다시는 들추지 마.”“그리고 스스로 구씨그룹 사장 자리에서 물러나. 회사도, 강성도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마.”“네 아버지에겐 그냥 말하면 돼. 죄책감 때문에 이 집에 더는 못 있겠다고. 이번엔 분명히 놔줄 거야.”“네가 떠날 땐, 내가 사람을 시켜서 돈도 챙겨줄게. 아버지한텐 그걸로도 충분히 체면 세워준 셈이 될 거야.”은정은 서선영을 냉랭하게 바라보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당신 딸을 희생해서까지 날 함정에 빠뜨린 이유가 최이석 때문이었네요.”서선영의 얼굴이 순간 굳더니 곧바로 해명했다.“그 사람은 내 동생 밑에서 오래 일했어. 난 내 동생을 위해서 한 거야. 은정아, 지금 네가 분위기 바꿔서 빠져나갈 생각은 아예 하지 마.”“내가 당신 말대로 안 하면요?”은정은 담배를 내뿜으며 한껏 무심한 얼굴로 말했다.“어차피 난 이미 악명 높은 놈이 됐어. 하나쯤 더 얹혀도 그만이죠. 오히려 구은서는 이제 절대 부잣집 자제와의 결혼은 꿈도 못 꾸겠죠.”서선영의 얼굴은 날카롭고 차가웠다.“끝장을 보겠다는 거야? 그렇게 되면 은서는 동정받는 쪽이 될 거야.”서선영은 은정을 똑바로 노려봤다.“임유진하고 너, 꽤 가까운 사이잖아. 그 애는 나랑 너 때문에 몇 번이나 맞붙었지. 근데 만약 그 애가 네가 술에 취해 여동생을 건드린 놈이라는 걸 알게 되면?”“그 아이 눈엔 네가 어떻게 보일까? 널 어떻게 생각할까? 넌 그걸 감당할 수 있어?”그 말에 은정의 얼굴빛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서선영은 그 반응에 확신을 얻은 듯 미소를 지었다.“내 말대로 해. 열흘 안에 강성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마. 안 그러면 임유진이든, 임씨 집안이든, 강성 전체가 너란 인간이 얼마나 추잡한 놈인지 알게 될 거야.”“널 사회적으로 매장 시킬거고, 임유진도 널 경멸하
은정은 격노한 아버지를 똑바로 바라보며 또렷하게 말했다.“저는 그런 짓 하지 않았어요. 이건 서선영 저 사람이 꾸민 함정이에요.”서선영은 엉엉 울면서 외쳤다.“내가 내 딸을 희생시켜서 너한테 함정을 판다고? 구은정, 네가 나를 미워하는 건 알아.”“예전부터 나한테 편견이 있었지. 그래, 미우면 나한테 손찌검을 해. 왜 애먼 은서를 괴롭혀?!”“은서는 아직 시집도 안 갔어. 이제 어떻게 살라고 해? 이 소문이 밖에 나가면, 우리 집안은 완전히 끝장이야!”은정은 오직 구은태만 바라보며 물었다.“저를 믿으세요?”구은태는 아들의 눈을 바라보다가, 문득 다른 기억 하나가 떠오르며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그때 갑자기 은서가 벽을 향해 몸을 던지듯 달려갔다. 죽을 각오로 내달리는 눈빛이었다.“은서야! 안 돼, 은서야!”서선영이 급히 은서를 껴안고 붙잡았고, 울음이 멎지 않았다.“은서야, 제발 그런 짓 하지 마. 이건 네 잘못이 아니야!”“거기 누구 없어요! 얘 좀 붙잡아줘요!”서선영은 울먹이며 도우미들을 향해 소리쳤다. 몇 명의 도우미가 급히 달려와 은서를 붙들고 감싸 안았다.그중 평소 은서를 따르던 도우미가 조심스럽게 구은태 앞에 다가와 입을 열었다.“회장님, 사실은 전에도 도련님께서 밤에 아가씨 방문을 두드리는 걸 몇 번 본 적이 있었어요.”“하지만 도련님이 너무 무서워서, 보복당할까 봐 말씀 못 드렸어요. 제가 잘못했어요.”그 도우미는 흐느끼며 말을 잇지 못했다.“제가 좀 더 일찍 말씀드렸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요!”은정은 도우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기억이 떠올랐다. 예전에 애옹이가 은서에게 보내졌던 그날 밤, 은정은 술에 취해 돌아와 애옹이가 사라진 걸 알고 은서를 찾아갔다. 그때 이 도우미가 어두운 구석에서 숨어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구은태는 거기까지는 떠올리지 못했다.죽을힘을 다해 몸을 던지려던 은서, 그리고 도우미의 일방적인 증언이 더해지자, 구은태는 은정을 더 이상 믿지 않았다.다시 근처에 있던 물
[말 좀 해봐요.][삼촌?]서선영이 천천히 2층에서 걸어 내려오더니, 바닥에 떨어져 있던 휴대폰을 집어 장말숙 아주머니에게 건네며 눈짓을 보냈다. 이에 장말숙 아주머니는 눈치를 채고 전화를 받아 들고 말했다.“유진 씨죠? 저희 도련님이 술에 취하셨어요.”유진은 잠시 침묵하더니 말했다.[네, 신세 좀 질게요. 잘 부탁드려요.]“네!”장말숙 아주머니는 괜히 말을 더했다가 실수라도 할까 봐 다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은정의 까만 눈동자가 서선영을 향해 있었지만, 그 시선은 이미 흐릿했다.서선영은 은정을 부축하듯 손을 내밀며, 자애로운 얼굴로 말했다.“은정아, 술 너무 많이 마셨잖아. 방으로 데려다줄게.”“으악!”날카로운 비명에 은정은 정신이 번쩍 들며 눈을 떴고, 날은 훤하게 밝아 있었다.옆에서는 구은서가 실크 잠옷 차림으로, 옷가지로 몸을 허둥지둥 가리고 있었고, 얼굴은 절망감에 젖은 눈물로 가득했다. 그녀는 분노로 떨리는 눈으로 은정을 노려보고 있었다.구서의 비명은 곧 서선영과 집 안 도우미들을 방으로 불러 모았다. 문이 열리고 방 안 풍경을 본 순간, 모두가 굳어버렸다.은정은 조금씩 의식을 되찾았고, 은서를 훑어보며 눈빛이 짙게 가라앉았다. 이불을 들추고 자신을 확인해 보니, 바지는 제대로 입고 있었지만 상의는 전혀 없었다.은정은 몸을 일으켜 세우려다 이마를 짚으며 침대 머리에 기대앉았다. 머리가 묵직하게 지끈거렸다.“엄마!”은서는 멘탈이 완전히 무너져 울부짖었다.“은서야!”서선영이 달려와 은서를 안고, 옷을 덮어주며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니?”“몰라요!”구은서는 서선영 품에 얼굴을 묻은 채 오열했다.“밤에 오빠가 갑자기 방에 들어왔어요. 술에 취해서 저를 한 대 치더니 그다음은...”은서의 머리는 흐트러져 있었고, 드러난 어깨엔 붉은 자국이 가득했다. 누가 봐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짐승 같은 놈!”서선영은 벼락을 맞은 듯 충격에 빠져 온몸을 떨며 은정을 향해 소리
우정숙은 이 모든 상황이 이해되지 않아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예전에 은정은 분명히 임유진은 내 스타일 아니라며 선을 그은 적이 있는데, 왜 지금 와서 이렇게 적극적으로 쫓고 있는 걸까?“넌 어떻게 생각해?”우정숙이 묻자, 유진은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말했다.“조금 냉정해질 필요가 있을 것 같아서요. 그래서 돌아왔어요.”그 말투가 생각보다 무거워, 우정숙은 분위기를 일부러 누그러뜨리며 웃었다.“이미 거절했는데도 냉정해져야 해?”유진의 귀가 붉게 물들었다.“어쨌든, 엄마는 이 일. 할아버지, 할머니한테는 말하지 말아줘요. 그리고 삼촌한테도 되도록 비밀로 해주세요.”그 말에 우정숙은 딸의 속내를 단번에 알아차렸다.“갑자기 이렇게 서둘러 집에 돌아온 이유 혹시 일이 더 커질까 봐? 너희 할아버지가 구은정한테 가서 따질까 봐 걱정돼서 그런 거 아니야?”유진은 재빨리 대답했다.“누가 그 사람 걱정했대요? 밖에서 사는 게 질려서 온 거지, 그 사람이랑은 아무 상관 없어요.”하지만 우정숙의 따뜻하고 조용한 눈빛은 유진의 진심을 꿰뚫고 있었다. 우정숙은 다만 조용히 숨을 내쉬며, 더는 묻지 않았다.그날 밤, 구은정은 외부 일정으로 접대를 나갔고, 유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오늘 좀 늦을 것 같아. 집에 들어가면 애옹이 좀 봐줘.]유진은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저도 집에 왔어요. 아주머님께 부탁하세요.]은정은 유진이 하루 정도 집에서 자려는 줄로만 알고, 별 의심 없이 답했다.[알겠어.]밤 10시.은정은 아직 접대 자리에서 술자리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때, 휴대폰에 구은태가 보낸 메시지가 하나 들어왔다.[은정아, 나 몸이 좀 안 좋다. 한번 집에 들러줄래?]은정은 미간을 찌푸렸다.[몸 안 좋으면 병원 가시죠.]그렇게 답장을 보냈지만, 더 이상의 응답은 없었다.술자리가 끝나고 나니 이미 자정 무렵이었다. 은정은 그래도 아버지를 확인하고자 구씨 저택으로 향했다. 집에 들어서자, 애옹이를 돌봐주던 장말숙 아주머니가 거실에서 그
정현준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내가 지난번에 뭐라고 했죠? 임유진 건드리지 말랬잖아요. 왜 말을 안 들어요?”진소혜는 웃었다.“들었어요. 적이 내 사람이 될 수 없다면, 없애버리라는 그 말, 정말 감명 깊었거든요. 곧 임유진은 이 회사에서 쫓겨날 거예요.”현준은 진지하게 말했다.“그럼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 임유진은 쫓겨나지 않아요. 사장님이 반드시 지킬 거니까요.”현준은 걱정 가득한 얼굴로 덧붙였다.“유진 씨, 그 정체가 간단하지 않아요. 사장님이 곤란한 일에 휘말릴 때마다 뒤에서 도와준 사람이 바로 그 애였다고요.”“이렇게 성급하게 나가면 결국 당하는 건 소헤 씨라고요.”소혜는 비웃으며 말했다.“그런 것도 그 얼굴 덕 아니었을까요? 임유진이 무슨 대단한 집안 출신이라도 돼요?”현준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그 애, 성이 임이야.”소혜는 비웃었다.“강성에 임 씨 많은데요? 임씨라고 다 임씨 집안이예요?”“임유진이 정말 그 임씨 집안 사람이었으면, 이런 작은 곳에서 평사원으로 일할 일이 없죠.”강성에서도 가장 윗자리에 있는 집안, 그 임씨 집안 사람이라면 당연히 격이 달랐을 것이다.현준은 소혜를 바라보며, 무력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소혜 씨, 소혜 씨는 너무 자만해요. 이제 막 졸업한 사람이잖아요. 세상이 어떤지 아직 몰라요.”“내가 경력은 부족하지만, 머리는 좋아요.”소혜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내가 원하는 건, 어떻게든 손에 넣을 수 있어요.”현준은 더는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막막했고, 소혜는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이번 달 말이면, 임유진은 이 회사에서 존재 자체가 사라질 거예요.”이메일은 해외 IP에서 발송된 것으로 확인되어, 추적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루머는 벌써 영업팀까지 퍼진 상황이었다.한때 유진이 구씨 프로젝트를 따낸 걸 보고 감탄했던 동료들조차, 그녀가 정말 실력만으로 이룬 건지 의심하기 시작했다.너무 젊은 나이에, 임씨 그룹 같은 대형 고객을 설득하고, 이미 다른 부서에서 거의 성
서선영은 유혹적인 눈빛으로 남자를 바라보며, 거절하려는 듯하면서도 몸은 피하지 않았다.“안 돼. 나, 한 시간밖에 못 나와 있어.”“당신 보고 싶어서 미치는 줄 알았다니까.”최이석은 그렇게 말하면서 서선영의 치마 지퍼를 내렸다.“밖에 사람 세워놨어. 아무도 안 들어와.”...오전, 임유진은 구씨그룹과의 계약을 마무리했다. 오후에는 회사 고위층 회의에 참석했고, 회의가 끝나고 마케팅부로 돌아왔을 때쯤, 팀 동료들의 시선이 평소와 달랐다.유진이 고개를 돌려 쳐다보자, 모두는 급히 예의를 갖춘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유진은 손에 든 자료를 들고 여진구를 찾아갔다.문을 열고 들어가니, 진구는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었고, 유진이 들어오자, 그는 무의식적으로 휴대폰을 내려놓았다.“무슨 일 있었어요?”유진이 맑은 목소리로 묻자, 진구는 곧바로 말을 돌렸다.“아니야. 너 손에 든 거, 청원안 자료야? 나 좀 볼게.”하지만 유진은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휴대폰, 보여줘요.”진구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휴대폰 화면을 다시 켰다. 방금 보고 있던 건, 유진과 은정이 함께 있는 사진들이었다.둘이 식당에서 식사하는 모습, 그리고 둘이 함께 아파트 단지에 들어가는 장면. 얼마 전 중식당에서 있었던 그날이었다.진구는 얼굴을 굳히고 말했다.“누군가 이 사진들을 너희 팀 메일에 전체 전송했어. 내용은, 네가 구씨 프로젝트를 따낸 게 구은정과 부적절한 관계가 있어서라고.”유진은 이미 그 메일을 확인했었다. 메일에는 프로젝트 성공을 위해 구씨 그룹 사장을 유혹했다는 식의 악의적이고 천박한 문장들이 적혀 있었다.업계 풍기를 망친다는 말까지, 표현이 거칠고 추했다. 유진은 이를 꽉 물었지만, 곧 침착하게 물었다.“발신 IP 추적할 수 있어요?”진구가 답했다.“지금 IT팀에서 추적 중이야. 내부 직원일 수도 있고, 유지그룹 쪽의 보복일 가능성도 있어. 하지만 반드시 밝혀낼 거야.”“일단 외부로 확산은 안 됐고, 회사 내부 루머 수준이야. 이미 전체 공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