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희가 잠시 웃어 보였다.“괜찮아요, 신경 쓰지 않아요.”소정인은 머쓱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공손하게 말했다.“사장님, 괜한 오해를 하신 것 같아요. 우리가 어찌 우리 친딸을 괴롭히겠어요?”임구택의 시선은 싸늘했다. 그는 소정인 부부를 바라보며 무표정하게 입을 열었다.“친딸? 그 친딸은 지금 식당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는 것 아닌가요?”소정인의 얼굴빛이 일그러지며 말을 잇지 못했다. 구택은 소희의 손을 잡고 소파 쪽으로 안내하며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소정인 씨, 이전에 제가 분명히 말씀드린 적이 있죠? 무슨 일이 있으면 저를 찾아오라고요. 괜히 소희를 귀찮게 하지 마세요.”소정인은 당황한 듯 웃으며 말했다.“아, 그게 소희가 결혼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진심으로 축하하고 싶어서...”그러나 구택은 무심하게 응대했다.“제 귀엔 축하보다도 일종의 압박처럼 들리는데요.”소정인은 얼굴이 화끈거리며 더듬더듬 말했다.“아니, 사장님, 저희는 단지 소희의 결혼식을 더 완벽하게 만들어주고 싶다는 마음에서 온 거예요.”그 말에 구택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제 결혼식 준비가 불완전하다는 말씀인가요?”소정인은 입을 다물고 대꾸하지 못하자, 구택은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두 분께서는 소희에게 든든한 배경이 없어 걱정하시는 것 같지만, 제 아내의 든든한 지원군은 그 어떤 부모보다도 믿음직스러운 분들이에요.”진연은 그의 말에 얼굴빛이 어두워지며 화를 참지 못하고 비아냥거렸다.“그러게요, 사장님 말씀대로죠. 소희 뒤엔 강씨 집안이 있으니, 우리가 아무리 전성기를 누렸더라도 강씨 집안에 비할 바가 아니죠.”구택의 눈빛은 더욱 차가워지고는 강경한 어조로 말했다.“이제껏 제 아내를 키워주신 강씨 집안에게 감사를 표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비꼬고 계시다니 놀랍군요.”진연의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렸다. 구택은 그녀를 냉소적으로 바라보며 말했다.“결혼식에 부모로서 참석한다고 해도, 두 분이 감히 그 자리에서 소희의 부모라고 당당히 소개할 수 있겠습
임구택은 소희의 옆얼굴에 가볍게 입을 맞추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조금만 마셔, 밤에는 내가 돌려받을 테니까.”소희는 볼 끝이 살짝 붉어지며 눈웃음을 지었다.“좋아, 콜!”두 사람은 다시 파티장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들이 멀어지자마자, 구은서는 다른 복도 쪽에서 나타나 그들을 향해 눈길을 던졌다. 그녀는 곧바로 한 직원에게 다가가 물었다.“임구택 사장님이 예약하신 방이 어디인가요?”직원이 대답하기도 전에 등 뒤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구은서 씨, 또 무슨 일을 벌이려는 거죠?”은서는 깜짝 놀라며 돌아보았다. 어둑한 조명 아래서 천천히 다가오는 사람은 다름 아닌 심명이었다. 은서는 느긋하게 미소를 지었다.“심명 사장님이시군요.”심명은 잿빛 파란 셔츠에 고급스러운 린넨 바지를 입고, 섬세한 얼굴에 묘한 색기를 띄운 채 서 있었다. 귀에 달린 흑요석 귀걸이가 은은한 빛을 발하며 그를 더욱 신비롭고 차가운 인상으로 돋보이게 했다. 그는 은서를 향해 천천히 다가오며 차가운 눈빛으로 경고했다.“구은서 씨, 그 잔머리 굴리는 걸 멈추세요. 소희의 결혼식에 어떤 사고라도 생긴다면, 당신은 고통스러운 대가를 치르게 될 거예요.”은서는 어깨를 곧추세우고 침착한 표정으로 말했다.“심명 사장님도 소희를 좋아하신다면서요? 그럼 우리도 공통의 목표가 있는 셈 아닌가요?”그 말에 심명은 비웃음을 흘렸다.“누가 당신을 친구라고 생각하죠? 제발 착각은 그만하세요.”은서는 표정이 굳어졌고, 조소를 섞어 대꾸했다.“당신과 나는 다르죠. 저는 구택 씨를 좋아하면 제 방식대로 용감하게 다가가요.”“반면에 당신은 겁을 먹고 구택 씨의 그림자에 가려져 있으면서 감히 대놓고 다가가지도 못하고 있잖아요.”심명은 별로 대수롭지 않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구은서 씨, 당신은 남을 이간질하고 이용하는 데 능한 것 같군요. 혹시 드라마에서 내연녀 역할을 너무 많이 맡아서 그 성격이 몸에 밴 건가요?”은서는 그의 비아냥에 얼굴이 붉어지며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고
새벽까지 이어진 모임이 끝난 후, 소희와 임구택은 집으로 돌아왔다. 씻고 나서 침대에 누우니 시계는 이미 새벽 두 시를 넘어 있었다.깊은 밤, 임구택의 눈빛은 여전히 맑았다. 소희를 품에 안고 그녀의 부드러운 검은 머리카락을 천천히 쓰다듬으며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소희야, 이제 우리 결혼하는 거야.”소희는 그의 품에 파묻힌 채 작게 대답했다.“응.”구택은 손가락 끝으로 그녀의 얼굴을 살짝 만지며 미소 지었다.“예전에 우리 서로의 정체를 모르고 만났을 때가 있었지. 처음으로 널 본 건 강성대에서였던 거 기억해?”소희는 옆으로 살짝 몸을 돌려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맑은 눈동자가 반짝이며 대답했다.“기억나. 그때 당신이 내 편 들어줬었잖아.”구택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참 이상하지. 그때 널 잘 몰랐는데도 누군가가 너를 괴롭히는 걸 보니 이상하게 화가 났어. 그래서 돕고 싶었어.”소희는 눈썹을 살짝 치켜세우며 장난스레 말했다.“설마 외모 보고 덤빈 건 아니지?”따스한 조명 아래에서 구택의 눈빛은 깊어졌다. 소희의 얼굴을 살짝 꼬집으며 대꾸했다.“외모 때문에 행동한 거라면, 네가 우리 집에서 임유민 과외를 봐주러 왔을 때부터였겠지.”소희는 그제야 깨달은 듯 말했다.“아, 그때부터 벌써 나한테 뭔가 꿍꿍이가 있었구나?”구택은 가볍게 웃으며 답했다.“그때부터였어. 넌 일부러 나를 유혹하려고 그런 거 아니었어?”그는 잔디밭에서 유민이에게 활쏘기를 가르치던 소희의 모습을 떠올렸다. 하얀 다리와 날씬한 허리, 그리고 활을 당기던 곡선미까지 눈길을 사로잡았다.“나중에 확신했어.”소희는 그의 손을 쥐며 물었다.“뭘 확신했는데?”구택은 그녀의 턱을 가볍게 들어 올리며 말했다.“우리가 서로에게 빠져들었다는 거.”소희는 환하게 웃으며 부드럽게 반박했다.“난 아니거든?”“아니라고?” 구택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청아 오빠를 구하러 가던 그날 밤 나한테 일부러 전화 건 거잖아. 계획적이었지?”소희는 억울하다는 듯 말했
“안 울었어.”“그럼 오늘 한번 울어봐.”...밤은 짙게 깔려 세상과 경계를 이루고 있었다. 정신이 맑아질 즈음엔 이미 하늘이 미약하게 밝아 오르고 있었다.소희가 깊이 잠들자 임구택은 살며시 침대에서 일어나 방문을 조용히 닫고 거실 베란다로 나가 명우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화를 받자마자, 구택의 목소리는 어둠을 품은 듯 나직하고 깊었다.“다 알아냈나?”[네, 조사 결과를 말씀드리려 했지만, 밤늦게는 방해될까 봐 이 시간까지 기다렸어요.]명우가 설명을 덧붙인 뒤 이어 말했다. [최근 소정인은 해성 쪽 투자자를 만나 회사를 재건하려고 했어요.][그 자리에서 본인이 사장님의 장인이라며, 디자이너 King의 아버지라고 했지만 상대방은 신뢰하지 않는 눈치였죠.]구택은 곧바로 상황을 파악했다.결국 소정인은 소희가 이날 넘버 나인에 있을 걸 알고, 진연과 함께 찾아와 감성에 호소하여 부모 자격으로 결혼식에 참석하려 한 것이다. 임씨 집안의 결혼식에는 기자가 필히 참석할 터, 소정인이 소희의 아버지라는 사실이 언론에 나오면 그로 인해 투자를 확정적으로 받을 수 있게 될 것이었다.‘평소엔 관심도 없더니, 이제 와서 소원을 빌러 오는 건가...’ 구택은 냉소를 머금었다. 동시에 소정인이 여전히 소희를 놓아주지 않는다는 사실에 분노가 치밀었다. ‘어째서 아직도 소희의 인생을 착취하려는 걸까?’명우가 덧붙였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사장님. 소정인은 한 푼도 손에 쥘 수 없을 거예요.]구택은 고개를 끄덕이며 당부했다. “이 일은 절대 소희에게 알리지 말고.”[네, 알겠어요!]...다음 날 오전 11시, 운성으로 가는 비행기 시간이 가까워졌다. 소희는 일찍 일어나 사연과 함께 백양의 묘지를 찾았다.봄날의 아침 안개 속, 고요하고 아늑한 공동묘지에는 맑은 소나무와 잣나무가 안개에 둘러싸여 더욱 신비롭고 고요하게 느껴졌다.묘비에는 이름도 없고, 단지 서인이 과거 찍어둔 사진만 남아 있었다. 원래 그들 몇 명의 단체 사진이었지만, 백양의 모습만
소희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구택의 들러리가 되어줘.”“언제 결정된 건데? 난 왜 몰랐지?” 서인은 눈살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난 싫어.”소희는 담담히 답했다.“구 씨 집안과 임 씨 집안은 원래 친하잖아. 네가 구택의 들러리를 서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해.”그 말에 서인은 비웃음을 흘렸다.“구택이 들러리가 부족할까? 강성에서 들러리 하겠다는 사람들은 줄을 섰을걸.”“눈에 맞는 사람을 고르려면 강성에도 충분히 많고, 말리연방 쪽 사람들도 올 테니 들러리 세울 사람은 차고 넘치지.”소희는 태연히 말했다.“그건 상관없어. 내가 선택한 들러리는 바로 너니까. 네가 싫다면 가서 백양에게 말해보라고.”서인은 난처한 표정으로 잠시 침묵했고, 소희는 다시 백양의 묘비를 향해 돌아서서 말했다.“얘기 없으면 동의한 걸로 알게. 그럼 이제 네가 구택의 들러리야!”서인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표정을 짓고 담배를 한 개비 꺼내 묘비 앞에 놓았다. 차가운 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렸다.“이번에는 네 말대로 해주지. 마치 백양이 널 더 아껴주라는 뜻인 것 같아서 말이야.”소희는 서인의 말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목적만 달성되면 되었기 때문이다.서인은 소희를 바라보며 잔잔히 말했다.“백양이 네게 가장 큰 위로가 되어준 거, 알고 있지?”소희는 바닥에 앉아 있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마치 그들 셋이 다시 모여 대화를 나누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알고 있어.”“기억나지? 한 번은 네가 단독으로 임무를 맡았을 때, 백양이 몰래 널 따라갔어. 네가 무사한 걸 확인하고 돌아왔는데, 그걸 진언이 알고는 엄청나게 혼냈지.”서인은 묘비에 놓인 백양의 사진을 힐끗 보며 미소를 지었다.“그때 백양은 정말 혼쭐이 났어. 엄청난 훈련을 받고 나면 밤에는 몸이 쑤셔서 잠도 못 잤지. 그런데 자기도 못 자니까 우리까지 깨워서 대화를 나누게 했어.”서인은 추억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계속했다.“그날 밤 백양은 처음엔 네 임무 얘기부터 시작했어. 나중엔 제대하고
임구택은 소희의 얼굴을 손으로 감싸며 말했다.“나도 너와 함께 갈게.”소희의 오목조목하고 작은 얼굴은 구택의 손에 감싸져 있었다. 그녀의 맑은 눈만 드러난 채 의아하게 물었다.“뭐라고?”구택이 말했다.“그냥 운성까지 함께하고, 네가 비행기에서 내려 집에 가면 나는 강성으로 돌아갈 거야.”소희는 어이가 없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뭐 하러 그렇게 복잡하게 해?”구택의 눈빛은 깊고 아련했지만, 가벼운 어조로 말했다.“가는 길이 심심할까 봐. 가는 길 동안 내가 재미 좀 붙여 줄게.”소희는 더 이상 반박하지 못했다.비행기가 이륙하기 전, 소희는 강아심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가 연결되자, 상냥한 웃음이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소희!]“아심아.” 소희는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결혼식 날, 운성 별장에서 기다릴게.”아심은 웃으며 말했다.[청첩장은 받았어. 축의금도 준비했어. 미리 너와 임구택 사장님께 축하 인사할게. 하지만 내일 해성으로 출장을 가야 해서, 돌아올 수 있을지 모르겠어.][미리 축의금을 사람 통해 보낼게.]소희는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다.“아니야, 네가 반드시 올 수 있을 거야. 아니, 꼭 와야 해!”아심은 잠시 멈춘 뒤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좋아, 반드시 갈게!]소희가 말했다.“우리 모두 너를 기다릴게.”소희가 말한 우리는 결혼식의 주인공인 자신과 구택을 뜻해야 했지만, 아심은 그녀가 말한 우리가 소희와 강시언을 뜻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아심은 웃으며 말했다.[행복하길 바랄게, 소희야!]“고마워!”소희는 전화를 끊고 구택을 보며 말했다.“내 생각엔, 아심과 지승현은 이미 헤어진 것 같아.”구택은 소희의 손을 잡아 자기 무릎 위에 올려놓고,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천천히 말했다.“결혼식 날, 지씨 집안 사람들이 올 거야. 현재 지승현이 지씨 집안의 권력을 잡고 있으니 직접 올 거야. 그때 확인하면 되겠지.”“그리고 한 가지 더.”소희는 구택의 가슴에 기대고 턱을 그의 어깨에 올리며 웃었다.
강씨 집안 저택.강재석과 강시언이 집 밖에서 소희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멀리서 검은 차가 다가오는 것을 보자, 강재석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우리 소희가 돌아왔네.”나이가 들었어도 여전히 정정한 그의 눈빛에는 깊은 회상의 기운이 서려 있었다. 강재석은 시언을 바라보며 말했다.“아직도 소희가 처음 집에 왔을 때를 기억하냐?”시언은 담담하게 대답했다.“기억나죠. 민감한 고슴도치 같아서 누구와도 말하지 않고, 온몸에 경계심과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죠.”강재석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 때 그 눈빛은 정말이지, 고집스러우면서도 두려워 보여서 가슴이 아팠어. 항상 생각하곤 했어. 소희와 우리 강씨 집안은 인연이 있는 것 같다고.”“아마 소희는 원래부터 강씨 집안의 사람이었어야 했는데, 잘못해서 소씨 집안에 태어나 고생을 했지만 결국은 진짜 집을 찾게 된 거지.”강재석은 갑자기 무엇인가를 떠올린 듯한 표정으로 눈에 슬픔이 어렸다.“시언아, 한 가지 너에게 말하지 않았던 일이 있어. 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임신 중이었어.”시언은 잠시 멍해졌고, 강재석은 이어서 말했다.“사고가 나기 보름 전, 네 아버지가 나에게 전화해서, 네 엄마 정은수가 임신했다고 기뻐하며 말했지.”“이번엔 꼭 딸일 것 같다고. 드디어 딸을 갖게 된 거라고. 그러나 보름 만에 사고가 나고, 그 아이는 세상에 태어날 기회를 영영 잃게 되었지.시언은 얇은 입술을 꽉 다물고 말없이 앉아 있었다.강재석은 손을 흔들며 말했다.“원래는 말할 생각이 없었는데, 오늘 왜인지 모르겠지만 말하게 되었구나. 이제 그만하자. 너무 오래된 이야기잖니!”시언은 말했다.“할아버지는 소희가 어머니 배 속에 있던 그 딸이라고 생각하세요?”강재석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아니. 그 아이는 우리 강씨 집안과 인연이 없었지. 하지만 소희는 우리와 인연이 있는 아이야!”시언의 눈빛이 깊어졌다.“사실관계는 중요하지 않아요. 제 마음속에서는 차이가 없으니까요.”강재석은 고개
강시언은 말이 없었다.소희는 입술을 오므리며 맑은 눈으로 웃었다. 소희는 강시언을 바라보며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러자 시언은 평온한 표정으로 말했다.“나와 소희는 상황이 달라요.”강재석은 깊은 의미를 담아 말했다.“상황은 다를지 몰라도, 감정은 통하는 법이지. 모든 사람의 감정적 욕구는 결국 비슷하니까.”소희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할아버지 말씀이 맞아요!”시언은 소희를 힐끔 쳐다보며 비웃듯 말했다.“밥이나 먹어.”...식사를 마친 후, 소희는 강재석과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고, 시언은 거실에서 손님들과 응대를 했다.시언이 다시 돌아왔을 때, 강재석은 자리를 비웠고 소희 혼자 나무 테이블에 엎드려 졸고 있었다. 창문이 열려 있어 햇살이 그녀의 몸을 비추고 있었다. 햇살은 따뜻하면서도 강렬했다.시언이 들어서자 소희는 눈을 뜨며 나른한 목소리로 말했다.“오빠, 고생했어.”“졸리면 방에 들어가서 자.”소희는 시원한 차를 한 잔 따라 마신 뒤 훨씬 정신이 맑아진 듯 보였다.“할아버지가 지금 경성 쪽에서 온 전화를 받고 계셔. 나보고 기다리라고 하셨거든.”시언은 소희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창살 그림자가 비친 그의 잘생긴 얼굴에 냉철한 눈빛이 깃들었다.“서울 쪽에서도 사람들이 올 거야. 할아버지가 조용히 지내고 싶어도 불가능하지. 임씨 집안도 있는데 말이야.”소희는 고개를 끄덕였다.“제이큐에서도 연락이 왔어. 축의금을 전달하겠다고 했지만, 내가 거절했거든.”시언은 시선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왜 거절했어? 오게 해. 그냥 축하하러 오는 거잖아.”소희는 눈썹을 살짝 올렸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남은 차를 마신 후, 소희는 찻잔을 내려놓고 시언에게 영자의 유골을 운송하는 이야기를 꺼냈다.시언은 말했다.“문제없어. 네 결혼식이 끝나면 바로 처리할 수 있을 거야.”소희는 미소 지었다.“예전에는 백협에 있는 것도 좋다고 생각했어. 그곳에서 오랜 세월을 보냈고, 익숙한 장소와 사람들도 있으니까.”“하지만 백양이
강아심이 거실로 들어오자, 소희와 가볍게 포옹하며 부드럽게 웃었다.“결혼 축하해. 정말 완벽한 결혼식이었어. 모든 사람이 감동했어!”“고마워!” 소희도 따뜻하게 웃으며 답했다. 아심은 한발 물러서서 소희에게 소개했다.“여기는 도도희 이모야!”소희는 눈앞의 여성을 보고 순간 멍해지더니,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혹시 스승님의 딸, 도도희님이세요?”도도희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 나도 소희 씨 이름을 들어봤어. 우리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던 제자라더군요. 그런데 이렇게 오랫동안 만나지 못하다니 아쉬웠어요.”소희는 자신의 결혼식에 도도희가 찾아올 줄 몰랐기에 마음이 벅차올랐다.“스승님도 오신 걸 알고 계세요?”양재아의 일로 스승님과 도도희 사이의 일들을 조금이나마 알고 있던 소희는, 스승님이 딸을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잘 이해하고 있었다.도도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우리는 이미 만났어요.”“그렇군요. 다행이에요!” 소희도 안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고, 도도희는 부드럽게 물었다.“듣기로 양재아를 삼각주에서 찾아내 데려온 게 소희 씨라던데, 내 친딸이든 아니든 우선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네요.”소희는 온화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감사할 것까지는 없어요. 다만, 두 분께 헛된 기대를 드리지 않을까 걱정이 됐었어요.”도도희는 살짝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괜찮아요. 이런 일은 수없이 겪어봤거든요.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다 받아들일 수 있어요.”도도희의 담담한 태도에서 그녀가 왜 지금까지 친자 확인을 하지 않았는지 소희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도도희는 처음 만난 소희에게서 놀라움을 느꼈다. 그녀의 아름다운 외모뿐만 아니라 고요하고 담백한 성품에서 느껴지는 여유로움과 투명함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런 면모가 아심과도 닮아 자연스레 호감을 느끼게 했다.도도희는 한층 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지금 운성에서 산간 지역 아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치고 있어요. 이틀 후면 일이 끝나니, 강성으로 돌아
멀리서 도경수와 강아심이 지나가다가 멈춰 서서 구경하기 시작했다. 소희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뒤를 돌아보았고, 구택과 눈이 마주쳤다.손에 들고 있던 부케를 두 손으로 잡은 소희는 가볍게 손을 들어 부케를 뒤로 던졌다.햇살이 소희를 온통 감싸고, 드레스의 자락이 바람에 휘날리며 그녀의 웃음은 그림처럼 찬란했다. 앞쪽에 서 있던 사람들은 부케가 머리 위로 날아가는 것만 볼 수 있었다.몇몇 사람들은 점프했지만, 손끝과 부케는 20에서 30cm쯤 차이가 나 닿지 않았다. 시원은 부케가 멀리 날아갈 것을 예상하고 준비했지만, 소희의 던지기 실력을 과소평가했다.시원과 백림은 함께 점프했으나 손가락 끝이 꽃잎에 닿았을 뿐 결국 부케를 놓치고 말았다.사람들이 뒤를 돌아보니, 부케는 무려 10미터 이상 날아가 검은 드레스를 입은 아름다운 여성이 들고 있는 손에 정확히 떨어졌다.아심은 꽤 멀리 서 있었고, 부케가 자신에게 떨어질 줄 몰랐는지 놀라 손에 들고 멍하니 고개를 들었다.도경수는 아심이 손에 든 부케를 보며 뜻밖이라는 듯 기뻐하며 말했다.“이건 정말 하늘의 뜻인 것 같아!”아심은 말없이 웃으며 부케를 높이 들어 올렸다. 그리곤 소희와 군중 너머로 서로를 바라보며 현장의 분위기를 함께 즐겼다.주변 사람들은 웅성거리며 아심 쪽으로 몰려가 그녀와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소희도 멀리서 아심을 향해 웃었지만, 당장은 대화를 나눌 기회가 없었다.구택이 소희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먼저 할아버지께 가서 술을 올리자. 그 뒤에 만날 기회가 있을 거야.”소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멀리 서 있는 아심을 한 번 더 바라보고 구택과 함께 자리를 떠났다.소희는 웨딩드레스를 갈아입고 피로연 드레스를 입은 뒤 강재석 쪽으로 가서 술을 올렸다. 그곳에는 임씨 집안의 어른들과 강씨 가문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는데, 모두가 소희를 아끼며 환대했다.가볍게 술 한 잔을 권한 뒤, 소희에게 충분히 쉴 시간을 주었다. 소희는 오후 내내 쉴 수 있었고, 연희와 몇몇 친구들이 함께 시간을
남궁민은 잠시 멍해졌다가 갑자기 고개를 돌려 심명을 바라보았다. 그의 진지한 표정을 보며 마음 한구석이 찌릿해졌다.남궁민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확실히 당신은 나보다 서희를 더 좋아하는 것 같네요.”심명은 남궁민의 말을 듣고 흘긋 쳐다보며 단호하게 말했다.“당연하죠. 당신은 그게 좋아하는 거라고 할 수 있어요?”남궁민은 반박하며 말했다.“왜 아니죠? 난 서희 말고는 단 한 번도 다른 사람을 좋아해 본 적 없거든요.”심명은 그의 말을 듣기 싫다는 듯 몸을 돌려 문 쪽으로 걸어갔다.햇빛을 향해 걸어가는 심명의 모습은 빛에 둘러싸여 희미하게 흐려져 보였다. 남궁민은 잠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이내 따라가며 물었다.“설마 도망치려는 거예요?”심명의 귀에 달린 흑요석 귀걸이가 햇빛에 반사되어 매혹적인 광채를 뿜었다.그는 무심한 표정으로 말했다.“도망치긴 뭘 도망쳐요?”만약 도망칠 생각이었다면 오늘 이곳에 오지도 않았을 것이었다.남궁민은 심명의 어깨를 가볍게 감싸며 말했다.“오늘은 우리 둘 다 도망칠 생각 하지 말아요. 이 세상에서 너와 나만 서로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거잖아요. 술 마시고 취할 때까지 놀아보는 건 어때요?”심명은 남궁민의 손을 곁눈질하며 투덜거렸다.“손 치워요.”그러나 남궁민의 제안은 거절하지 않았다.“좋아요. 멀리서 여기까지 온 네 성의를 봐서라도, 서희 대신 내가 너를 잘 챙겨 주도록 하죠.”...결혼식의 하이라이트가 지나고, 커다란 케이크가 나왔다. 케이크 커팅식이 끝나고 결혼식은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었다. 이제 본격적인 축하 파티가 시작될 시간이었다. 구택은 소희의 입술에 묻은 립스틱 자국을 엄지손가락으로 살짝 닦아내며 말했다.“와이프, 신혼 축하하고 사랑해.”수많은 꽃잎이 하늘에서 떨어졌고, 예식장의 조명은 더욱 환하게 빛났다. 사람들의 박수 소리는 축복과 환희로 가득했다.소희는 구택만을 바라보았다. 소희의 맑고 투명한 눈에는 세상의 그 어떤 소란도, 부귀와 영화를 쫓는 욕망도 담겨 있지
“그때, 나는 마침내 깨달았어. 네가 평안하고 행복하기만 하면, 그 이외의 어떤 의미도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임구택은 소희의 가느다란 손가락에 반지를 끝까지 밀어 넣었다. 분홍빛 다이아몬드는 그녀의 눈부신 피부 위에서 완벽하게 어우러졌고, 빛을 받아 반짝이며 찬란한 광채를 뿜어냈다.소희도 손에 든 반지를 꺼내 들었고, 구택의 손은 매끄럽고 아름다웠다.손바닥과 손가락의 비율은 완벽했고, 마치 차가운 백옥으로 조각한 듯 뚜렷한 관절선에는 부드러운 온기와 견고함이 동시에 느껴졌다.구택은 고개를 숙이고 그의 손가락에 반지를 끼우며 조용히 미소 짓고는 물었다.“내가 행복하기만 하면 된다면서, 왜 나를 다시 데려왔어?”구택은 그녀의 길게 드리운 속눈썹을 가만히 응시하며 천천히 답했다.“왜냐하면 또 하나를 깨달았으니까.”“뭔데?”“내가 주는 행복만이 진짜 행복이라는 거야.”소희는 반지를 끝까지 밀어 넣고 고개를 들어 구택을 바라보았다. 구택의 눈빛은 따뜻하면서도 단호했다.“우리 둘이 함께 있을 때만이 진짜 행복을 느낄 수 있어. 그러니까 넌 도망칠 수 없고, 나도 도망칠 수 없어.”“처음 우리가 만난 순간부터 오늘 이 순간이 정해져 있었어. 네가 나와 결혼하게 될 운명 말이야.”구택은 말을 마치고 몸을 숙여 강렬한 키스로 소희의 입술을 덮자, 주변에서는 뜨거운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임유민은 요요를 안고 계단을 내려가던 중, 그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려 한 번 돌아보았다. 그는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중얼거렸다.“역시 우리 삼촌은 다르지.”요요도 뒤를 보려고 하자, 유민은 손으로 요요의 눈을 가리며 말했다.“어린아이는 이런 거 보면 안 돼!”요요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그럼 오빠는 어른이에요?”그 말에 유민이 당황하며 대답했다.“나, 나는 반쯤 어른이야!”요요는 까만 눈을 반짝이며 더 궁금해졌다.“그럼 오빠는 머리 쪽이에요, 아니면 발 쪽이에요?”유민은 요요의 진지하고 귀여운 모습에 웃음을 터트렸다가 차분히 설명했다.“머리가
예식장 안에는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고, 주례자는 차분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이제 신랑과 신부의 결혼 서약을 낭독하겠습니다. 이 자리에 계신 모든 분께서도 함께 느껴 보시고, 곁에 있는 사람을 더 사랑해 주시길 바랍니다.”주례자의 목소리는 한층 더 엄숙해졌다.“임구택 군, 당신은 이 아름다운 소희 양을 아내로 맞이하시겠습니까?”“소희 양의 손을 맞잡고 백년해로하며, 그 어떤 간난신고임에도 불구하고 절대 곁을 떠나지 않고 평생 함께하겠다고 서약하시겠습니까?”구택은 깊은 눈빛으로 소희를 바라보며 단호하고 진지하게 대답했다.“예, 서약합니다. 소희를 평생 소중히 여기고, 챙기고, 제 생명이 다 할 때까지 충실히 사랑하겠습니다.”주례자는 이번에는 소희를 향해 물었다.“소희 양, 당신은 임구택 님을 남편으로 맞이하시겠습니까?”“임구택 군과 함께 인생의 길을 나란히 걷고, 그 어떤 간난신고임에도 불구하고 절대 곁을 떠나지 않고 평생 함께하겠다고 서약하시겠습니까?”소희는 구택을 똑바로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네, 서약합니다. 조건 없이 사랑하며, 영원히 함께할 것을 맹세합니다.”구택의 눈에는 감정이 빛나고 있었고, 그의 따뜻한 마음과 온기는 오직 소희를 위해 존재했다.주례자는 미소를 지으며 선언했다.“이제 임구택 군과 소희 양이 정식으로 부부가 되었음을 선언합니다. 두 사람을 위해 축복의 박수를 보내주세요!”예식장은 다시 한번 박수 소리로 가득 찼다. 모든 하객은 이 감동적인 순간에 눈물을 글썽이며 박수를 보냈다. 그 박수 소리는 끝없이 이어졌고, 사람들의 마음에 깊이 울려 퍼졌다.연희는 박수를 치며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가는 뜨거웠지만, 입가에는 환한 미소가 가득했다.우청아 또한 눈물을 흘리며 두 사람의 행복을 진심으로 축복했다.주례자는 박수 소리 속에서 다시 입을 열었다.“이제 신랑과 신부께서 결혼의 영원함과 순수함을 상징하는 결혼반지를 교환하시겠습니다.”그 순간, 뒤쪽 계단에서 임유민이 요요를 안고 나타
강시언은 미소를 지으며 소희의 손을 임구택의 손 위에 조심스럽게 얹었다. 마치 신성한 임무를 완수한 듯 그는 말했다.“행복하길 바랄게.”임구택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고마워요.”주변에서는 우레와 같은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 나왔고, 소희는 시언을 깊이 바라보았다.그 시선에는 어린 시절 그가 자신을 가르쳐 주고 곁에서 함께해 주었던 시간, 그리고 두터운 남매의 사랑과 가족 간의 정이 모두 담겨 있었다.시언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소희를 응원했다. 마치 어린 시절 소희의 손을 잡고, 약하고 외롭던 소녀를 강하고 단단한 소희로 성장시켜 주었던 순간처럼.앞으로도 각자의 길을 걷더라도, 그들은 서로의 곁에 있을 것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그들의 관계는 공기와 햇빛처럼 언제나 존재하며, 그들의 삶 속 깊이 자리할 것이었다.소희는 구택의 팔을 붙잡고 다시 앞으로 걸어갔다. 그녀는 시언이 바로 뒤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발걸음은 더욱 단단하고 자신감에 차 있었다.그리고 자신의 곁에 있는 남자는 소희가 앞으로 나아가는 데 있어 어떤 망설임도 없게 했다.레드카펫은 길었고, 앞으로 함께 걸어가야 할 인생의 길도 길었다. 하지만 이렇게 나란히 걷는다면 두려울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 같았다.구택은 옆에서 소희의 아름다운 옆모습을 바라보며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그의 손은 따뜻하고 힘이 있었다.예식장의 한구석, 커다란 부조 기둥에 기대어 서 있던 심명이 소희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심명의 시선은 소희를 한순간도 놓치지 않았고, 마음속으로 생각했다.‘오늘 정말 아름답네.’소희의 모습, 그녀의 미소, 모든 것이 그의 마음에 깊이 각인되고 있었다.그때, 뒤에서 놀란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서희, 정말 예쁘네요!”심명은 눈초리를 치켜들며 뒤를 돌아보자, 남궁민이 걸어오며 그의 옆에 섰다.햇빛이 남궁민의 짙은 갈색 눈에 반사되어 깊고 매혹적인 빛을 띠고 있었다.“왜 강성에 있는 구은서를 놔두고 여기까지 왔어요?”남궁민은 이미 자신이 심명의
음악 소리에 맞춰, 분위기가 최고조로 달아오를 때, 신랑인 임구택이 중앙 계단을 따라 천천히 내려왔다.그 순간, 거대한 아치형 정문이 열리며 정오의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다. 마치 수천 갈래의 황금빛이 예식장 안을 가득 채운 듯했다.찬란한 크리스탈 샹들리에, 피어난 꽃들, 그리고 붉은 카펫은 그 빛에 의해 생명을 얻은 듯 더욱 생동감 있고 화려해졌다.햇빛이 스테인드글라스 창을 통과하며 무지갯빛 광채를 만들어냈고, 이 환상적이고 웅장한 장면에 하객들은 숨을 멈추고 정문 중앙에 서 있는 한 여인에게 시선을 고정했다.소희는 시언의 팔을 잡고 붉은 카펫을 따라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예식장 안은 하객들로 가득 찼지만, 고요한 정적 속에 우아한 현악 연주만이 홀 안 구석구석을 채우고 있었다.소희는 순백의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드레스는 가슴 위를 덮는 깔끔한 디자인에 어깨를 타고 내려가는 레이스로 이루어져 있었다.얇은 꽃잎 모양의 레이스가 어깨를 감싸며 은은하게 살결을 드러냈고, 그 아래로는 매끈한 쇄골과 길고 고운 목선이 돋보였다.허리선 아래부터는 화려한 자수 문양이 드레스 끝자락까지 펼쳐졌고, 풍성한 치마는 소희의 잘록한 허리를 강조하며 단순함과 정교함의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소희의 머리에는 구택이 준비한 티아라가 얹혀 있었고, 티아라에 박힌 찬란한 다이아몬드는 그녀의 아름다움을 조금도 가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의 고운 얼굴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긴 베일이 드레스 끝까지 내려와 천천히 레드 카펫 위를 스치며 움직였다. 소희는 그림 같은 미모와 함께 단아하면서도 청아한 기품을 자아내며 성스러워 보였다.시언은 깔끔한 흰 셔츠에 검정 조끼를 입고 있었고, 훤칠하고 듬직한 모습으로 소희의 손목을 부드럽게 잡고 함께 걸어왔다.두 사람이 함께 입장하는 순간, 예식장의 조명이 한층 어두워진 것처럼 느껴질 만큼 두 사람의 존재감은 강렬했다.구택은 레드 카펫 끝에서 그녀를 바라보았다.세상에 울려 퍼지는 모든 소리가 멀어진 듯, 구택의 눈에는 소희만
결혼식장이 웃음과 이야기로 떠들썩하던 분위기는 주례가 결혼식 무대로 올라서자 점차 차분해졌다.결혼식장 가장 앞줄 귀빈석에는 임씨 가문과 강씨 가문의 사람들이 각각 자리했다. 시언이 입장하며 뒤쪽 하객석을 한번 훑었다. 그의 날카로운 시선은 단번에 맨 뒷자리 가까이 앉아 있는 강아심을 찾아냈다.아심은 도도희와 함께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녀는 검은색 드레스를 입고 머리를 자연스럽게 풀어 어깨에 늘어뜨리고 있었다.그 모습이 아심의 부드럽고 매혹적인 옆모습을 가리고 있었다. 희미한 미소를 띤 채 무엇인가를 이야기하며 즐거워 보였다.시언은 별다른 표정 없이 시선을 거두었다.강재석이 나타나자, 결혼식장은 잠시 숨소리마저 조용해졌다. 이내 사람들은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며 그를 화제로 삼기 시작했다.“저분이 강씨 집안의 어르신인가 봐. 정말 카리스마 넘치시네!”“옆에 있는 젊은 사람은 강재석 어르신의 손자겠지? 이름이 뭐라고 했더라?”“왜? 마음에 들어? 꿈 깨. 강씨 집안이랑 혼인을 맺으려면 임씨 가문 정도는 되어야 가능하다고.”“현실은 안 되더라도 꿈꾸는 건 내 자유잖아? 결혼식 끝나고 가서 연락처라도 물어볼 거야.”“좋아, 한번 해봐. 강씨 집안의 도련님이 연락처를 줄지 안 줄지 보자고. 근데 얻으면 나랑 공유하는 거 알지?”“내가 얼굴에 철판 깔고 얻은 연락처를 왜 너랑 공유해? 너도 도전해 보든가!”...아심은 바로 뒤에 앉아 있던 이들의 대화를 듣고 고개를 숙이며 웃음을 터뜨렸다. 도도희도 들었는지 고개를 돌려 낮은 목소리로 웃으며 말했다.“봤니? 강시언이 얼마나 인기 많은지.”아심은 나른하게 눈웃음을 치며 말했다.“그 사람들이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 모르는 거죠.”도도희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고, 아심은 주변을 둘러보다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아직 소희를 못 봤네요. 오늘 웨딩드레스 입은 모습은 정말 예쁠 것 같아요!”도도희가 물었다.“소희랑 친한 사이인가?”아심은 고개를 살짝 저으며 말했다.“그렇게
도도희는 강시언을 바라보며 말했다.“아심이 왔어.”시언의 눈빛이 깊어졌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는 뜻을 보였다. 강재석은 그보다 훨씬 더 기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아심양도 왔어?”도도희는 약간 놀라며 물었다.“아저씨도 아심을 아세요?”“당연히 알지. 우리 사이가 보통 사이인 줄 아니?”강재석은 의미심장하게 시언을 한 번 쓱 보고는 환한 미소로 말했다.“지금 어디 있나?”“아마 이미 예식장 안으로 들어갔을 거예요.”도도희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미리 알았다면 데리고 여기로 왔을 텐데.”강재석은 상관없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괜찮아. 온 것만으로도 아주 좋아. 어차피 곧 볼 테니까.”도경수의 옆에서 이 말을 듣고 있던 재아는 마음속에서 복잡한 감정이 얽혀 올라왔다.‘엄마가 강아심을 알다니... 그리고 강재석과 강시언은 아심에게 훨씬 더 호의적이잖아. 그런데 엄마도 강아심과 더 가깝다니...’자시느이 엄마가 아심과 이렇게 친분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재아는 왠지 모르게 불쾌했다.도도희는 시간을 확인하며 말했다.“아저씨, 예식장에 가셔야 할 시간이에요. 저는 여기서 이만 물러날게요. 아심을 찾아보려고요.”도경수는 다급한 표정을 지었지만, 강재석이 그의 마음을 눈치채고는 도도희에게 말했다.“결혼식 끝난 후에는 서두르지 말고, 우리와 시간을 좀 더 보내. 오랜만에 만났으니 제대로 얘기 나눠야지.”도도희는 부드럽게 웃으며 대답했다.“결혼식이 끝나면 다시 찾아뵐게요.”“좋아!”강재석은 따뜻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도경수도 말했다.“내 전화번호 알지?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연락하렴.”도도희는 알겠다고 답한 뒤, 몇 사람에게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떠났다. 도경수는 그녀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며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강재석은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그래도 드디어 도도희를 만났잖아. 그리고 직접 강씨 집안으로 돌아온다고 했으니, 좋은 소식 아닌가?”도경수는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우리 부녀가 어쩌다 이렇게 서먹서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