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하루가 즉시 과일 주스를 시언에게 내밀며 말했다.“삼촌, 이거 드세요. 저를 그렇게 오랫동안 업어 주셨잖아요. 고마워요!”시언은 얇게 입가를 올리며 주스를 다시 돌려주었다.“난 누나와 장난친 거야.”“아...”시언은 최대한 표정을 부드럽게 하려고 했지만, 여전히 효과는 없었다. 조하루는 멍하게 대답하며 다시는 시언을 쳐다보지 못했다.아심은 입술을 꽉 다물며 웃음을 참았고, 차마 대놓고 웃을 수 없어서 고개를 돌려 빵을 베어 물었다.숲속에서 한 마리 새가 날아와 창가에 앉아 방 안을 들여다보며 검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쭈쭈 하고 소리를 내면서. 아직 인간에게 위협을 느껴본 적 없는 새는 사람을 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아심은 빵 부스러기를 조금 떼어 창가에 놓았다. 새는 신나게 부리로 쪼아먹었지만 다 먹기도 전에 갑자기 날아가 버렸다. 시언은 창 아래에 서 있는 아심을 보며 반쪽 남은 빵을 들어 올렸다.“천천히 먹어, 난 밖에 좀 보고 올게.”아심은 시언이 문을 나가는 걸 보고 하루에게 속삭였다.“볼일 보러 가야 해? 삼촌이랑 같이 가면 돼!”하루는 눈을 크게 뜨다가 이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뛰어갔다. 아심은 천천히 빵을 다 먹고 물병을 집어 들고 막 마시려던 순간, 밖에서 탕! 하고 커다란 총성이 들려왔다.아심의 얼굴이 굳어졌고, 재빠르게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찰나, 문이 갑자기 열렸다. 시언이 떨고 있는 하루를 방 안으로 밀어 넣고는, 곧바로 따라오던 한 남자를 발로 차서 밖으로 날려 보냈다.그는 고개를 돌려 매우 빠르게 말했다.“지켜, 절대 나오지 마. 창문도 다 잠가!”문이 열리는 그 순간, 아심은 이미 상황을 확인했다. 그들은 이미 포위당한 상태였다. 나무집 주위는 전부 위장복을 입고 얼굴을 가린 용병들로 가득했고, 적어도 스무 명이 넘었다.문이 닫히고 난 뒤, 바깥에서는 치열한 싸움 소리가 들려왔다.아심은 조하루를 안전한 곳에 숨기고 두 개의 창문을 빠르게 닫은 뒤, 창을 야생 동물로부터
강아심이 몸을 드러내는 순간, 밖에 있던 사람들이 안에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창문으로 들어오려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밀려들었고, 두 개의 창문을 지키기에 역부족이었던 아심은 결국 한 사람과 몸싸움을 벌이게 되었다.아심은 자신이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을 알았기에 가능한 한 빠르고 강력하게 상대의 약점을 노려 공격했다. 그러나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창문을 통해 밀려들었고, 하루가 숨던 곳에서 고개를 내밀자 한 고용병이 그를 향해 총을 겨누었다.“들어가!” 아심이 다급하게 소리치며 발로 근처에 있던 나무 의자를 걷어차 상대의 어깨를 가격해 총을 떨어뜨렸다.“탕!” 총이 땅에 떨어지는 순간 방아쇠가 당겨졌고, 총알이 벽을 뚫고 나갔다.아심은 두 명을 밀어내며 하루가 숨은 대나무 침상으로 다가가 그를 보호했다. 그 순간 또 다른 고용병이 방 안으로 뛰어들어 하루가 숨은 침상 밑을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아심은 몸을 날려 고용병의 총을 걷어차며 떨어뜨렸고, 다시 그 총을 잡으려는 찰나 또 다른 고용병 두 명이 그녀를 공격해 왔다.아심은 한 남자의 팔을 비틀어 탈골 시키고, 몸을 회전시켜 다른 남자의 복부를 강하게 가격했다. 아심의 힘은 이 고용병들보다 약했지만 몸놀림이 민첩하고 공격이 매끄러워 누구도 쉽게 다가갈 수 없었다.그러나 그 순간, 대나무 침상 위로 한 남자가 뛰어올라 침상을 들어 올리며 하루를 붙잡아 칼을 그의 여린 목에 들이댔다.“움직이지 마라, 움직이면 이 아이를 죽일 거야!”이와 동시에 문이 거칠게 열리며 시언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시언이 지나온 길에는 이미 쓰러진 사람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시언의 등장에 방 안의 고용병들은 더욱 경계하며 총을 모두 그에게 겨누었다.가장 가까이 있던 고용병이 아심의 머리에 총을 겨누자 시언이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총으로 겨누지 마.”고용병은 시언의 서늘한 시선을 받자 손이 떨렸지만, 자세를 바꾸지 않았다. 시언은 천천히 아심 쪽으로 걸어갔다. 고용병의 눈빛은 두려움이 엿보였고, 본
시언은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고 말했다.“노도를 위해 복수하러 온 건가?”가면을 쓴 남자가 하하!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변성기를 사용한 탓에 그 웃음소리는 거칠고 듣기 거북했다. 마치 산속에서 이빨을 드러낸 야수가 내는 소리 같았다.“진언이 설마 노도의 죽음을 그냥 넘어갈 거라 생각하진 않겠지?”남자가 손짓하자, 바로 누군가가 하루를 그 앞으로 끌고 왔다. 그러고는 손가락으로 하루의 목을 쓰다듬으며 냉소를 지었다.“이게 진언의 아들인가?”“아니!” 시언이 차갑게 응수했다.“보기엔 아닌 것 같지만, 진언은 무고한 아이가 본인 앞에서 죽는 걸 원하지 않겠지?”가면을 쓴 남자가 무심하게 말했다. 하루는 겁에 질려 얼굴이 창백해지고 온몸이 떨렸다. 하루는 고개를 돌려 시언을 바라보며 극도의 공포에 휩싸여 있었지만, 도움을 청하거나 가면 남자에게 살려 달라고 애원하지는 않았다.이때 아심이 차갑게 말했다.“그 아이는 마을에 사는 평범한 농가의 아이야. 내가 인질이 될 테니 그를 풀어주고 집으로 돌려보내.”가면을 쓴 남자가 시언을 보며 물었다.“진언의 생각은 어때?”시언은 들고 있던 총을 내던졌다.“우리 조직에는 조직만의 규칙이 있어. 여성이나 아이를 인질로 잡는 건 가장 비열한 용병들만 하는 짓이야.”“너희들이 원하는 건 나니까 나를 마음대로 처리해. 하지만 여자와 아이는 산 아래로 보내.”아심이 시언을 보며 고개를 가볍게 젓자, 시언은 그녀를 바라보며 낮고 깊은 눈빛을 보냈다.“내 말을 들어.”아심은 주먹을 꽉 쥐었지만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이때, 가면을 쓴 남자가 거칠게 웃음을 터뜨렸다.“그 아이는 풀어줄 수 있어. 하지만 이 여자는 안 돼. 이름은 넘버세븐. 진언의 곁에 있었던 사람이지? 내가 틀리지 않았군!”시언은 눈을 가늘게 뜨며 가면 남자를 노려봤다. 그의 시선은 차갑게 얼어붙었다.“그럼 아이부터 풀어줘!”“서두르지 마. 그 아이가 내 손 안에 없으면, 이 사람들로는 진언을 막아낼 수 없어. 내가 그 정도는 알고
강아심은 용병에게 조하루네 집 주소를 알려주었다.용병은 냉랭하게 알겠다고 대답하며 기억해두었고, 하루가 망설이자 바로 그를 들어 어깨에 둘러메고 밖으로 걸어갔다. 이에 하루는 몸부림치며 울먹이며 외쳤다.“삼촌, 누나!”점점 그 목소리는 멀어져 갔다.아심은 목이 메었지만, 하루를 떠나보내는 것이 현재로선 최선의 선택임을 잘 알고 있었다.오두막 바깥에서는 시언에게 맞아 쓰러진 자들이 동료의 부축을 받아 일어났다. 부상이 심한 자들은 땅에 누워 쉬고, 가벼운 부상자들은 안으로 들어와 명령을 기다렸다.가면을 쓴 남자는 밖에 나가 전화를 걸고, 돌아와 자기 부하들에게 지시했다.“저들을 잘 지켜보고 있어. 윗선의 지시를 기다려.”“예!” 몇몇 용병들이 대답했다.가면 남자는 다시 밖으로 나갔고, 다른 용병들도 따라 나갔다. 오두막 안에는 두 명의 용병만이 남아 시언과 아심을 감시하고 있었다.잠시 후, 시언은 갑자기 아심을 들어 올려 돌며 옆에 있던 대나무 침대에 넘어졌다. 손발이 묶여 있어 힘 조절이 어려웠고, 그가 아심 위에 넘어지며 아심은 깜짝 놀랐다. 시언은 바로 몸을 뒤집어 아심이 자신의 위에 있도록 했다.몇 미터 떨어진 곳에서 감시 중이던 용병들은 깜짝 놀라 총을 겨누었지만, 두 사람이 단순히 침대에 누워 움직일 생각이 없어 보이자 천천히 총을 내렸다.아심은 약간 고개를 들어 아래에 있는 남자를 바라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시언은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 지었다.“두 사람이 줄에 묶여서 뻣뻣하게 서 있는 게 더 이상하지 않나? 이렇게 누워 있는 게 그나마 나아.”아심은 미간을 찌푸렸다.“이 상황에서 웃음이 나와요?”그러자 시언은 태연하게 말했다.“이보다 더 위험한 상황도 겪어봤어. 걱정하지 마, 난 쉽게 죽지 않아. 내가 살아 있는 한 너도 절대 죽지 않을 거야.”아심은 그들을 감시하는 용병들을 한 번 흘깃 보고 나서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이 사람들은 우리를 어떻게 하려는 걸까?”“잘 모르겠어. 하지만 나를 바로 죽여 노도를
강아심은 그에게 대답하고 싶지 않아 시선을 돌리다가, 갑자기 무언가를 발견하고 눈이 살짝 빛났다. 아심은 가능한 시언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 귓가에 아주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벽 구석에 깨진 도자기 조각이 보여. 우리가 어떻게든 가서 그걸 손에 넣어야 해.”깨진 도자기 조각은 절반이 먼지 속에 묻혀 있었고, 아마도 산에 올라온 사람들이 여기서 밥을 먹다 그릇을 깨뜨리고는 아무렇게나 바닥에 던져놓은 것 같았다.여자의 숨결이 부드럽게 시언의 귀를 간질이며 퍼졌다. 아심의 부드러운 입술이 열렸다 닫히며 그의 귀밑 민감한 피부를 살짝 스쳤다. 시언은 몸이 순간 굳어졌다가 늦게서야 대답했다.“소용없어.”“뭐?” 아심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이 줄엔 합금 섬유가 섞여 있어. 칼로도 자를 수 없으니 도자기 조각으로는 더더욱 불가능해.”시언이 낮게 말하자, 아심은 실망한 표정을 지으며 낮게 속삭였다.“정말 당신을 특별대우해 주긴 하네요!”이번엔 시언이 이해하지 못했다.“응?”“아니, 그런 거지! 일부러 합금 줄까지 써서 묶어놨잖아요. 다른 사람들은 분명 이런 대접 못 받을걸요!” 아심이 말하자, 시언은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그녀가 자신을 칭찬하는 건지 비꼬는 건지 알 수 없었다.어느새 하늘은 서서히 어두워지고, 그들을 감시하던 사람들이 교대로 밖에 나갔다 돌아왔다. 마지막 교대 때는 가면을 쓴 남자가 부하들을 데리고 모두 오두막 안으로 들어왔다.텅 비었던 방은 순식간에 꽉 찼다. 용병들은 하나같이 덩치가 크고 험상궂은 인상에,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가 방 안 공기를 긴장감으로 가득 채웠다.시언과 아심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고 몸을 일으켜 벽에 기대어 섰다. 시언은 벽에 몸을 대고 서서 손으로 아심의 등을 감싸며 가면 남자를 주시했다.가면을 쓴 남자는 남자는 방 한쪽의 나무 의자에 앉아 있었다. 다른 용병들은 방 안에 나무 장작을 모아 불을 피우기 시작했다.방금 비가 내린 터라 산속은 밤이 되면서 습기와 차가운 기운이 감돌았다. 그
아심은 힘겹게 고개를 들어 남자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나랑 키스해줘, 제발.”시언은 고개를 숙여 아심의 부드럽지만 결연한 눈빛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는 점점 더 깊어졌다.아심은 그의 턱에 입을 맞추고 살짝 깨물었다. 부드럽고 따뜻한 입술이 시언의 피부에 닿으며 얕은 숨결과 촉촉한 감촉이 시언을 감쌌다. 아심의 눈빛은 비에 젖은 듯 촉촉했고, 마치 갈고리처럼 그를 끌어당겼다.바깥에서 몰아치는 바람과 빗소리처럼, 남자의 분노가 서서히 진정되었다.시언은 눈꼬리를 날카롭게 치켜세우며 가면 남자를 한 번 노려본 후, 고개를 숙여 아심의 입술에 자기 입술을 맞추었다. 아심은 곧바로 그의 입술을 강하게 빨아들였다.멀리서 낮은 웃음소리가 들렸지만, 두 사람은 깊은 산속에 홀로 있는 듯 서로만을 바라보며 키스를 나눴다. 아심은 눈을 반쯤 감고 시언에게만 집중했다. 아심의 귀에는 오직 빗소리와 나뭇잎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만이 들렸다.아심은 시언을 더 유혹하기 위해 평소보다 더 매혹적이고 나긋나긋하게 행동했다. 목구멍에서 흘러나오는 낮고 부드러운 신음은 시언과 자신만이 들을 수 있는 은밀한 소리였다. 마치 화려하게 피어난 꽃처럼, 그 소리는 남자의 정신을 단숨에 빼앗아 갔다.한참 후, 아심은 그의 입술을 살짝 깨물며 희미하게 말했다.“약속해 줘. 기회가 생기면, 곧바로 떠나요. 나 신경 쓰지 말고.”시언은 갑자기 눈을 번쩍 뜨고 아심을 바라보았다.그 순간, 묶여 있던 줄이 느슨해졌다. 아심은 재빨리 손을 뽑아내고 시언의 품에서 벗어나더니, 몸을 돌려 가면 남자 쪽으로 날아들다.가면을 쓴 남자와 그의 부하들은 반응이 한 박자 늦었다. 아심이 방 가운데까지 나아갔을 때야 그들은 아심을 막으려고 했다.“쾅!”아심은 손에 쥔 줄을 휘둘러 덤벼드는 용병의 목에 감았다. 그는 줄에 맞아 그대로 날아가 바닥에 떨어졌다.아심은 발을 멈추지 않고, 한 손으로 줄을 휘두르며 방어하고, 다른 발로 다가오는 용병을 걷어차며 날려버렸다. 강렬한 눈빛이 목표를 향
“안 돼!” 강아심은 손에 쥔 줄을 힘껏 당겼다. 가면 남자는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었다. 아심은 줄을 약간 풀며 다시 외쳤다.“우릴 보내 줘! 그렇지 않으면 너도 살아남을 생각 하지 마!”갑자기 꽉 닫혀 있던 문이 거칠게 열리며 차가운 바람이 방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불길이 휙휙 소리를 내며 흔들렸고, 팽팽한 긴장감에 한층 더 싸늘한 기운이 더해졌다.새로 들어온 열 명이 넘는 무리가 무장한 채 총을 들고 아심과 시언을 겨누었다. 이에 시언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새로 들어온 무리의 리더는 역시 용병 차림을 하고 얼굴을 면수건으로 가리고 있었다. 그는 가면 남자를 향해 눈길을 주며 말했다.“네가 진언을 제압하지 못할 줄 알고 위에서 날 보냈다.”그러자 가면을 쓴 남자는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이 여자를 과소평가했을 뿐이지!”면수건을 쓴 남자는 아심을 향해 말했다.“너에겐 한 생명밖에 없어. 목숨 하나로 하나를 바꿀 수 있어. 네가 나갈지, 진언이 나갈지 선택해.”또한 가면을 쓴 남자는 아심을 슬쩍 흘겨보며 말했다.“네가 날 죽여도 소용없어. 여기에 있는 이 많은 총과 사람들이 있어. 나를 죽이면 너희 둘 중 누구도 살아남지 못할 거야!”그러고는 여유 있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잘 알아둬. 여기서 나갈 수 있는 건 한 사람뿐이야. 네가 남든, 진언 대인이 남든.”“네가 날 잡고 있으면 내 사람들은 조금은 신경 쓸지 몰라도, 그의 부하들은 내 목숨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아.” 가면 남자는 새로 들어온 리더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아심은 깊은숨을 들이마시고 시언을 올려다보았고, 목소리는 쉰듯하지만 차분했다.“좋아, 내가 남을 테니 진언을 보내줘.”시언의 눈빛은 깊어지고, 아심을 한순간도 놓지 않았다. 가면을 쓴 남자는 잔혹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의리만 생각하지 말고, 남는 게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잘 알아둬. 내가 충고하건대, 잘 생각하고 결정해.”“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아심은 줄을 세게 죄며, 차가운 눈빛을 빛냈다.
굉음이 천둥같이 울려 퍼지며, 마치 지붕을 뚫을 듯했다.아심은 눈앞의 상황을 보고 멍하니 굳어버렸고, 시언은 아심을 두 팔로 꽉 끌어안으며 낮은 목소리로 안심시켰다.“걱정하지 마, 이제 괜찮아. 시야가 장난친 거야.”“시야?” 아심은 멍한 얼굴로 시언이 발로 차서 바닥에 쓰러뜨린 거면 남자를 바라보았다.가면 남자가 몸을 일으켜 목소리 변조기를 벗고, 이어서 얼굴에 쓴 가면까지 벗었다. 그제야 드러난 것은 미소를 띤 잘생긴 얼굴이었다.“넘버세븐, 나 기억하지?”아심의 머릿속이 순간 멍해졌다.눈물은 여전히 그녀의 눈에 고여 있었고, 격렬한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들어 아직도 진정되지 않았다. 아심은 시야를 멍하니 바라보며 자신이 바보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시언은 그녀를 풀어주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배고프지 않아? 뭐 좀 먹고 여기서 잠시 기다려.”시언은 아심을 의자에 앉히고 나서 시야를 날카롭게 노려보았다.“나와!”시야는 아심을 향해 미소 지으며 말했다.“이건 내 생각이었어. 그냥 장난치려던 거야. 진언 님과는 아무 관련 없어. 혼나고 올 테니까, 이따가 와서 제대로 사과할게.”아심은 여전히 의자에 앉아 얼이 빠진 얼굴이었다. 너무나 강렬했던 감정이 쉽게 가라앉지 않아 멍한 상태였다.시언과 시야가 밖으로 나가자, 나머지 용병들은 일제히 일어나 벽 쪽으로 물러섰다. 그들은 총을 안고 긴장감 있게 서 있었다.뒤에 있던 면수건을 쓴 남자도 면수건을 벗고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전 시야의 부하예요. 시야가 명령을 내린 거라 따를 수밖에 없었어요. 화가 나셨다면 그를 탓하세요!”그는 말이 끝나자 아심 앞에 놓인 구운 고기를 깨끗한 칼로 잘라 작은 조각들로 내밀었다....오두막 밖, 시언은 거대한 나무 아래에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시야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갑자기 몸을 똑바로 세우고는 보고하듯 말했다.“진언 님, 보고드릴 일이 있어요.”나무 아래 걸린 백열등이 차갑게 빛났고, 시언의 눈빛도 차갑고 무미건조했다.“말해.
우청아는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창밖을 가로지르는 새 한 마리를 바라보며 생각을 정리한 뒤, 차분하게 두 사람을 향해 말했다.“우리 집안일이 궁금하시면, 엄마에게 직접 물어보세요. 왜 제가 이렇게까지 해야 했는지. 엄마가 힘들게 살아온 거 저도 잘 알아요.”“하지만 저는 이미 갚을 만큼 갚았고, 더는 후회할 것도 없어요. 바쁜 일정이 있어서, 외삼촌과 이모는 이만 보내드릴게요.”청아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향해 걸어갔다.“청아야!”허홍천이 청아를 붙잡았다.“부모가 자식에게 잘못할 수도 있는 거야. 하지만 어떤 부모도 자식을 해치려고 하진 않아!”“설령 네 엄마가 편애했거나 실수했더라도, 네가 딸이면서 어머니에게 원한을 품고 사는 건 말이 안 되지 않냐? 그런 식으로 행동하면, 넌 불효자가 되는 거야!”하서형도 거들었다.“청아, 네 엄마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지 모르는구나. 네가 약혼식에 초대하지 않겠다고 하자,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어. 몸도 안 좋아졌고.”“네가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예전에 무슨 일이 있었든 간에, 이번 기회를 계기로 가족 간의 오해를 풀면 되잖아.”“친엄마랑 무슨 그렇게 깊은 원한이 있어서 이렇게까지 하는 거니?”하지만 청아는 두 사람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조용히 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허홍천은 집안에서 나름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평소 거들먹거리던 그가 이렇게까지 몸을 낮춰 사정하는데도 청아가 들은 척도 하지 않자, 결국 분노를 터뜨렸다.“청아야, 너 정말 이렇게 매정하고 가족도 모르는 사람이 될 거야? 나중에 남들이 널 보고 배은망덕한 인간이라고 욕해도, 그때 가서 후회하지 마!”그 순간, 청아의 발걸음이 잠깐 멈췄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한층 더 차가워졌다.“그렇게 말하라고 해요.”청아는 다시 걸음을 옮겨 문을 열었다. 그리고 문밖에서 막 들어서려던 장시원과 마주쳤다.시원은 한 손을 들고 있었다. 마치 방금 막 문을 열려고 했던 것처럼. 청아를 본 순간, 그의
그러자 직원들은 즉시 지시를 따랐다. 우청아는 허홍연과 확실히 정리했다고 생각했다. 정소연 역시 이제는 함부로 나서지 못할 것이라 믿었다.하지만 청아는 스스로 몇몇 사람들의 바닥을 너무 높게 평가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자신의 회사에서 외삼촌 허홍천과 이숙모 하서형을 보게 되면서.두 사람은 미팅룸에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리고 청아가 들어서자마자 환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미소는 청아가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지나치게 다정하고 온화한 것이었다.“청아야!”하서형이 다가와 친근하게 그녀의 손을 잡았다.“외숙모 좀 보자, 어릴 때부터 미인이 될 거라고 했는데, 정말 그렇구나!”허홍천도 잽싸게 맞장구쳤다.“우리 청아는 예쁜 것뿐만 아니라, 머리도 비상하지!”청아는 두 사람을 보며 조용히 웃었다. 허씨 집안에서는 유일하게 우씨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았다. 청아가 예전에 외삼촌 집을 방문했을 때, 허홍천은 늘 우월감을 내비쳤고, 말투도 오만했다. 눈길조차 주지 않으며 거들먹거리기 일쑤였다.그런데 허홍연은 오히려 그 가족을 붙들고 환심을 사려했고, 덕분에 사촌인 허연은 청아네 집안을 더욱 깔보았다.청아는 담담하게 말했다.“외삼촌, 외숙모, 앉으세요.”허홍천은 주위를 둘러보며 감탄을 쏟아냈다.“청아, 이게 네가 운영하는 회사야? 직접 와서 보니 믿기지 않는군. 내 조카가 이렇게 대단하다니, 남들한테 자랑할 때마다 어깨가 으쓱해!”하서형 역시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역시 명문대 졸업생은 다르네! 우리 집 허연이도 청아만큼만 따라가면 좋겠는데, 그럼 더 바랄 게 없지!”“우리 애들은 말할 것도 없고!”“그러니까, 청아가 최고야!”“네 엄마는 복이 많아. 이렇게 능력 있는 딸을 뒀으니 말이야!”두 사람은 서로 말을 주고받으며 끊임없이 웃어 보였다. 그러나 청아는 시계를 힐끗 보더니,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외삼촌, 외숙모, 무슨 일로 오셨어요? 곧 회의가 있어서요.”하서형은 재빨리 허홍천을 바라보
우청아는 점점 걸음을 재촉하다가 결국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놀란 장시원의 눈빛에 바로 그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청아는 시원을 꼭 끌어안으며 몸을 살짝 떨었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나 스스로 해결했어!”청아는 웃으며 고개를 들어 시원을 바라보았다.“당신을 이용해서 위협한 거긴 하지만 말이야.”시원은 울면서 웃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청아의 표정을 바라보며 가슴이 아려왔다. 그는 조용히 고개를 숙여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깊고 따뜻한 목소리로 속삭였다.“잘했어.”시원은 한 손으로 청아를 끌어안고, 다른 손으로 청아의 얼굴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그의 목소리는 더욱 낮아졌고, 다정한 위로가 담겨 있었다.“괜찮아. 세상 모든 부모가 다 온전하고 자식을 사랑하는 건 아니야. 하지만 넌 나와 요요가 있잖아.”“그리고 널 기다리고 있는 시부모님도 있어. 넌 잃은 것보다 얻는 게 훨씬 많을 거야.”청아는 더욱 시원의 품을 꼭 끌어안으며 중얼거렸다.“하늘이 내게 날 너무 잘해주는 것 같아.”시원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말을 정정했다.“아니, 하늘이 잘해주는 게 아니라 남편이 잘해주는 거지!”청아는 그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 순간, 청아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그의 품에서 해맑게 웃었다.시원은 그녀가 조금이나마 기운을 되찾자 안심이 됐다. 이윽고 그는 청아의 볼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자, 이제 가자. 남편이 데려다줄게.”어느덧 해가 저물어 퇴근 시간도 훌쩍 넘었다. 정말 집으로 돌아갈 때가 됐다. 청아는 노을이 반사된 차창을 바라보며 말했다.“난 차 타고 왔어!”“그럼 네가 운전해. 난 뒤에서 따라가면서 지켜줄게.”시원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그럼 내가 얼마나 운전 실력이 늘었는지 보여줄게!”“내 아내가 이렇게 똑똑한데, 안 봐도 알지. 벌써 프로 레이서 급이겠지!”그의 칭찬에 청아는 기분이 한껏 좋아졌다. 문을 닫는 청아의 동작조차도 평소보다 더 힘 있고 세련돼 보였다.두 대의 차가 차례로 출발했다.
정소연은 우청아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단호한 태도를 보이자, 일단 한발 물러나기로 했다.“아가씨, 어머님은 그저 아가씨 약혼식에 가고 싶을 뿐이에요. 예물 문제는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자고요.”하지만 청아의 태도는 변함없었다.“죄송하지만, 초대장은 이미 다 배포됐어요!”그제야 허홍연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폭발했다.“내가 친엄마인데, 딸의 약혼식에 가는 데 청첩장이 필요하다고? 그런 소린 난생처음 들어보네!”“분명히 말해 두는데, 나는 이 결혼 반대야! 그러니 약혼식 같은 건 꿈도 꾸지 마!”소연은 다급히 청아를 달래려 했다.“아가씨, 왜 어머님을 화나게 하시는 거예요? 우리 가족끼리 그렇게 깊은 원한이 있는 것도 아닌데, 지난 일은 그냥 잊죠.”“어머님이 정말 반대해서 약혼식에서 소란이라도 피우면...”소연은 말하면서 슬쩍 허홍연에게 눈짓을 보내고는 살짝 비웃듯 말했다.“아가씨 약혼식이 과연 제대로 진행될까요? 알다시피 장씨 집안에서 초대한 사람들은 모두 강성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들이잖아요.”“근데 그 자리에서 소란이 벌어지면, 모두 난처해질 거라고요!”허홍연도 곧바로 맞장구쳤다.“청아야, 너무 고집부리지 마! 나를 끝까지 몰아붙이면, 정말로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청아는 두 사람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마지막으로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시험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그러더니 그녀는 조소를 머금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청아의 얼굴에는 씁쓸한 미소가 떠올랐다.“그럴 줄 알았어요. 내가 광명을 찾으면, 어떻게든 나를 어둠 속으로 끌어내리려고 할 테니까요.”청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소연과 허홍연을 내려다보았다.“엄마, 만약 제 약혼식에서 소란을 피우면, 오빠는 곧바로 직장을 잃게 될 거예요. 심지어 강성에서도 버티지 못하게 만들 수도 있어요.”이내 청아의 시선이 소연을 향했다.“그리고 새언니 동생 공무원 시험을 본다면서요? 그러니 가만히 계세요. 안 그러면, 평생 공무원 되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할 테니까요.”“제 말 흘려듣지 마세
허홍연은 순간 말문이 막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오랜만에 만난 우청아를 바라보니, 반년 사이에 그녀가 많이 변한 것 같았다. 예전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정소연은 눈빛을 번뜩이며 조심스럽게 단어를 고르며 말했다.“아가씨,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에요. 아무래도 우리 집안과 장씨 집안의 재산과 지위 차이가 크잖아요.”“그러니 예단과 혼수도 똑같을 수 없는 거고. 어머님도 당연히 최선을 다해서 네 혼수를 준비해 줄 거예요.”허홍연이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쳤다.“맞아, 맞아!”“엄마가 준비한다고요?” 청아는 마치 우스운 농담이라도 들은 듯 가볍게 웃었다.“왜 엄마가 제 혼수를 준비해야 하죠? 애초에 양육비 책임 협의서에 서명하지 않았나요? 오빠가 엄마를 부양하고, 저는 아빠를 부양하기로 했잖아요.”“제가 시집가는 것도 아빠가 챙겨야죠. 다들 보셨다시피, 아빠는 지금 휠체어를 타고 계세요.”“돈이 없어서 제 혼수를 마련해 줄 수 없어요. 그러니 예물도 필요 없겠네요.”그녀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덧붙였다.“그리고, 새언니 출산이 임박해서 외출이 어려운 상황이에요. 그래서 따로 엄마랑 새언니가 말하는 그 사람들에게 초대장을 보내지 않았어요.”“초대장이 없으면 아예 들어올 수 없으니, 굳이 오지 않으셔도 돼요.”허홍연과 소연의 얼굴이 굳어졌다.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던 허홍연은 이내 상처받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청아야, 네가 결혼하는데 엄마를 부르지 않겠다고? 내가 널 20년 넘게 키웠는데, 정말 그 협의서 하나 때문에 나와 인연을 끊겠다는 거야?”청아는 냉랭하게 대꾸했다.“병원에서 아빠가 응급실에서 수술을 기다리며 보상 문제를 논의할 때, 엄마는 아주 시원스럽게 협의서에 서명했잖아요.”“그때 이미 모든 게 명확하게 정리된 거 아닌가요?”허홍연은 분노하며 소리쳤다.“그래도 난 네 엄마야! 장씨 집안에서 그렇게 성대한 약혼식을 치르는데, 신부의 부모가 안 보이면 남들이 수군거리며 뭐라고 하겠니?”화를 꾹 참으며
“아버지는 신경 쓰지 마세요. 곧 시합 있다면서요? 어서 아저씨랑 바둑 두세요.”우청아는 간병인을 향해 살짝 눈짓을 보내자, 간병인은 즉시 알아차리고, 우임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휠체어에 태워 방을 나갔다.“아저씨, 다른 분들이 아까 찾고 계셨어요. 우선 바둑 두시고, 조금 이따 모시러 올게요.”금세 방 안이 조용해졌다.청아는 소파에 앉아 테이블 위에 놓인 과일 주스를 들이마셨다. 목이 말랐던 듯, 반 컵을 단숨에 들이켰다.정소연이 바로 종이를 꺼내 건넸다.“천천히 마셔요. 밖에 너무 더웠어요?”이에 허홍연도 잔뜩 친절한 태도로 말했다.“다 마셨으면 내가 더 따라 줄게.”두 사람은 청아를 어떻게든 편하게 해 주려는 듯 바삐 움직였다. 하지만, 청아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부드럽게 물었다. “오빠는 요즘 잘 지내요?”소연이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늘 똑같지 뭐. 하루 종일 일만 하고, 번 돈도 많지 않고. 아가씨가 훨씬 낫죠!”허홍연이 맞장구쳤다.“그래서 내가 청아를 외국 유학 보낸 거야. 명문대 졸업한 사람이 다르긴 달라!”소연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우리 엄마도 그때 날 유학 보냈으면, 나도 지금쯤 재벌가 며느리 됐을걸요?”허홍연이 고개를 끄덕였다.“요즘 재벌가에서 며느리를 고를 때 집안보다는 외모랑 학력을 중요하게 보잖아.”소연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말했다.“그럼 우리 시댁은 청아한테 감사해야겠네. 덕분에 좋은 유전자 받았잖아.”청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반박하지도, 대꾸하지도 않았다. 그저, 두 사람이 하고 싶은 말을 하도록 내버려두었다.그리고, 드디어 허홍연과 소연이 본론을 꺼내기 시작했다. 허홍연이 의도적으로 밝게 웃으며 말했다.“청아야, 너랑 장시원 사장이 약혼한다며? 이런 큰 경사가 있는데, 왜 엄마한테 말도 안 했어?”“내가 예전부터 말했잖아. 장시원 사장이 널 좋아한다고! 봐, 결국 내 말이 맞았지?”소연이 능청스럽게 맞장구쳤다.“아가씨, 우리한테 서프라이즈 해 주려고 했던 거죠?”
롤스로이스가 멀어지자, 서현진의 동료는 놀란 얼굴로 말했다.“와, 대박! 이렇게 화려한 차에, 직접 운전기사까지 동원해서 초대장을 배달하는 거예요? 현진 씨 친구, 진짜 재벌가에 시집가는 거 아니에요?”현진도 어리둥절한 채, 초대장을 열어보자 청아의 초대장이 확실했다. 그제야 모든 상황이 이해되었고, 현진은 흥분한 목소리로 제니에게 전화를 걸었다.“이제니! 네 축의금, 내가 대신 전달 안 할 거야. 그러니 너 무조건 같이 가야 해!”...약혼식까지 10일 남았고, 청아는 특별히 신경 써야 할 일이 많지 않았다. 웨딩드레스 피팅과 메이크업 테스트 정도만 마무리하면 됐다. 장시원은 그저 회사 업무에만 집중하라고 했다. 회사는 이미 고명기를 중심으로, 시원이 보낸 유능한 관리자들이 체계적으로 운영하고 있었다.어느덧, 몇 년 동안 운영된 회사보다도 청아의 회사는 더 체계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이제 시간이 조금 여유로워진 그녀는, 운전 연습을 겸해 출퇴근을 직접 하기로 했다. 하지만, 처음 며칠 동안은 시원이 조수석에 앉아 감독하듯 지켜보았다. 그러자 오히려 긴장감이 두 배가 되었다.청아가 강력하게 항의한 끝에, 결국 시원이 조수석에 타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혼자 운전하면서도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속도를 내든, 천천히 가든, 항상 주변 차량들이 자신과 같은 페이스로 움직이고 있었다.처음엔 우연인 줄 알았지만, 몇 번 반복되자 청아는 피식 웃으며 속으로 생각했다.‘이 사람, 정말 티 안 나게 감시하는 재주가 있네.’그러면서도 묘한 따뜻함이 밀려왔다.화요일 오후, 청아는 고객과 함께 공사 현장을 둘러본 뒤, 돌아오는 길에 요양원 앞을 지나게 되었다.‘아버지를 몇 주째 못 뵀네.’청아는 차를 돌려 요양원으로 향했다. 미리 연락하지는 않았는데, 그저 얼굴만 보고, 잠깐 인사만 하고 돌아갈 생각이었다.하지만, 요양원에 도착하자마자 청아는 걸음을 멈췄다.소파 위 허홍연이 앉아 과일을 깎고 있었고, 정소연이 임신 검진 결과지를 들고 우임승에게 공
“아니.”이제니는 담담한 목소리로 답했다.“우린 오래전부터 연락이 끊겼어.”그러자 고윤정은 비웃으며 말했다.“나라고 해도 나도 안 갔을 거야. 몇 년 동안 연락 한번 없다가, 갑자기 약혼한다며 연락하는 거? 결국 축의금 받으려는 거 아니야?”그 말에 제니는 눈살을 찌푸렸다.“너무 속 좁게 생각하는 거 아니야?”윤정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난 그냥 있는 그대로 말하는 거야.”그러다 문득 눈빛을 반짝이며 말했다.“어차피 같은 동기인데, 우리도 한 번 가서 축하해 주는 게 어때?”한 사람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나는 청아랑 몇 년 동안 연락도 안 했어. 굳이 찾아가서 돈까지 써야 할 이유는 없지.”윤정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축의금은 무슨 축의금이야? 우린 그냥 가서 얼굴만 비추는 거야. 청아가 명문대 출신이라면서? 도대체 어떤 재벌을 잡았는지 확인해 보는 것도 재미있겠지?”그제야 분위기가 달라졌고, 윤정의 말이 무슨 뜻인지 다들 눈치챘다.그녀는 진심으로 축하하려는 게 아니라, 청아가 어떤 남자를 만났는지 보러 가겠다는 심산이었다.누군가는 애써 걱정하는 척하며 말했다.“그렇게까지 하는 건 좀 안 좋지 않을까?”그러자 제니가 단호하게 말했다.“난 그렇게 유치한 짓 안 할 거야. 그러니 너희도 그러지 마.”윤정은 여유롭게 웃으며 말했다.“약혼식이지 결혼식도 아니잖아. 우리가 축의금을 주는 것도 아니고, 가주기만 해도 고마워해야지.”다른 몇몇이 맞장구치며 말했다.“그러네! 그러고 보니 약혼식 어디서 한다더라?”제니는 한숨을 쉬었다. 이들은 축하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청아를 깎아내리고, 우월감을 느끼기 위해 가려는 것뿐이었다. 그래서 더 이상 이들의 대화를 듣고 싶지 않았다.제니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너희들끼리 얘기해. 난 갈 데가 있어서 먼저 가볼게.”그렇게, 제니는 더 이상 말도 섞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비록 몇 년 동안 청아와의 연락이 끊겼지만, 예전에는 친구였고, 설령 이후 친구가 못 되더라도 청
우청아는 초대 명단에 고명기 부부와 하성연, 고태형의 이름을 추가했다. 고태형이 정말 자신을 좋아한다면, 그를 약혼식에 초대하는 것이, 더는 미련을 갖지 않도록 정리하는 방법일 것이다.그리고 잠시 고민한 끝에, 대학 시절 친구였던 서현진의 이름도 적었다. 현진과 청아는 같은 학과, 같은 반이었고, 한때 무척 가깝게 지냈던 친구였다.우임승이 청아 몰래 현진에게 돈을 빌린 후, 현진을 포함한 주변 친구들이 하나둘씩 멀어져 갔으나 현진만은 끝까지 남아 주었다.청아는 혹시 아버지가 현진에게 다시 손을 벌릴까 두려워, 알바가 너무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일부러 거리를 두었다.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그 선택이 너무 미안했다. 그래서 이번 약혼식에는 꼭 현진을 초대하고 싶었다.그것이 청아가 할 수 있는 조금이나마 늦은 사과이자, 다시 시작하는 계기였다.청아는 대학 시절 지도교수에게 전화를 걸어 동기 모임 단체 채팅방에 초대해 달라고 요청했다.곧 단체방에 초대된 그녀는, 현진의 연락처를 찾아 요청 메시지를 보냈다. 몇 초 후, 현진이 즉시 요청을 수락했고, 놀란 듯 메시지를 보내왔다.[청아야?]청아는 미소 지으며 답했다.[현진아, 잘 지냈어?]그러자, 이번에는 바로 음성 통화가 걸려 왔고, 현진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너 대체 그동안 어디 있었던 거야? 단톡방에도 안 들어오고, 동창회도 안 나오고!다들 널 찾았어!]청아는 미소를 머금은 채 말했다.“작년에 강성으로 돌아왔어. 이제서야 연락하게 됐네.”청아는 잠시 뜸을 들이다,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사실, 나 약혼하게 됐어. 그래서 너 초대하려고 연락했어. 시간 괜찮으면 와 줄 수 있어?”그리고 약혼 날짜를 알려주자, 현진은 깜짝 놀라며 말했다.[너 약혼한다고? 와, 대박! 난 아직 남자친구도 없는데, 그때 연애 안 한다고 말하던 네가 제일 먼저 가네?]현진의 말에 청아는 웃으며 말했다.“너도 서둘러야지.”현진은 장난스럽게 물었다.[다른 동기들은 누구 초대했어? 그냥 다 같이 미